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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동아시아사 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in 큐슈 잘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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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동아시아사 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in 큐슈 잘 다녀왔습니다.

익명 (미확인) | 월, 2015/08/31- 22:29
해방70년, 강제징용과 피폭의 땅에서 생각하는 전쟁 그리고 평화
[2015 서울KYC 동아시아 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in 큐슈]


지난 8월8일부터 11일까지 3박4일의 일정으로 서울KYC회원 20명과 함께
일본의 강제징용과 피폭의 장소인 후쿠오카, 나가사키, 기타큐슈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1945년 전쟁은 멈추었고, 식민지 해방을 맞이하였지만,
70년이 지난 2015년 일제강점기 당시의 상처와 고통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이런 상처와 고통을 어떻게 기억하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또 하나의 과제를 안고 온 여행이었습니다.
가장 뜨거웠던 일본을 뜨거운 가슴으로 만나고 온 기억을 사진을 통해 되짚어 봅니다.

여행첫날, 인천공항에 6시에 집결하여, 입국수속을 마치고, 8시 비행기를 탔습니다.
후쿠오카에 도착하여, 강제징용의 역사를 온몸으로 전하고있는 배동록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여행 내내 저희와 함께 해주신 재일조선인 2세 선생님이셨는데, 연세가 70대의 고령이었지만,
늘 뛰어 다니실 만큼 정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날이 너무 더워서 건강이 무척 걱정되었습니다.

답사 첫번째 장소는 지쿠호 지역의 [무궁화당]
지쿠호 지역 탄광에서 강제징용으로 끌려와서 가혹한 노동에 목숨을 잃은 조선인들의 유골은 방치되었고,

방치된 무연고묘를 2000년 지쿠호지역의 재일동포와 뜻을 함께 하는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납골당입니다.
당시 이 납골당을 만들었던 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향에 못가는 안타까움을 [고향의 봄] 노래를 합창했습니다.  



두번째 장소는 덕향추모비!
1936년 아소탄광 화재로 25명의 조선인이 목숨을 잃었고,
이후 노동자들의 동요를 막기위해 추모비를 세웠으나, 관리하지 않아 쓰러져가는 추모비를
1997년 뜻있는 일본인들과 동포들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세워졌습니다.

아소탄광은 전 총리였던 아소다로 집안이 운영하는 탄광으로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했다", "위안부결의는 조작이다"라는
망언들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인적 드문, 주택가 공터에 자리잡은 덕향추모비
찾는 사람이 없는지,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외로운 추모비 앞에서 향도 피우고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도 한잔 올렸습니다.
지금이라도 편히 쉬셨으면 하는 마음...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강제징용의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도 해봅니다.  



세번째 장소는 보타야마를 지나, 타가와지역의 [한국인징용희생자위령비]로 갔습니다.
이곳은 미쓰이 타가와 탄광이 있던 곳으로 폐광한 후 석탄역사박물관을 만들었고,
가장 높은 곳에 한국인 강제징용자 위령비를 세웠습니다.
생전에 가장 낮은 곳에서 힘겹게 살았지만,
죽어서만은 가장 높은 곳에 영혼을 쉬도록 한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석탄역사박물관은, 조선인 강제징용, 강제노동의 역사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 높은 곳에 세워진, 위령비가 당시의 아픔을 말해주고 있을 뿐입니다.



지쿠호지역은, 탄광이 밀집되어 있던 곳으로 큐슈 강제징용 역사의 아픔을 잘 보여줍니다.
그중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휴가묘지에서 우리는 모두 할말을 잃었습니다.

보타이시(쓸모없는 돌)로 겨우 이곳이 묘지였다는 표식만 되어있는
조선인 무연고묘인 휴가묘지

집에서 기르던 개 고양이를 기억하는 묘비까지도 세우는 이곳에서!
조선인의 묘는 작은 돌들로 표시되어 단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아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그 위치가 전해져 오는 곳이었습니다.
묘역표시인지, 그냥 돌인지 구분하기도 힘든 휴가묘역에서
실수로 돌을 밟기라도 할까봐 조심조심 걸으며,
배동록 선생님께서는 강제노역의 상황을 [신세타령]이라는 곡조로 증언해주셨습니다.

강제노역의 처참함과 고달픔, 배고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신세타령은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들려줬습니다.
듣는것만으로도 아픔이 느껴지고,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새벽부터 시작한 첫날의 평화여행은 휴가묘지를 마지막으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던 그런 더운날,
저 한복을 입고 잊혀질지 모르는 역사를 얼마나 알리고 다니셨을까요?
낡아진 배동록 선생님의 한복 바짓단을 보니, 더워도 덥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여행 두번째날은 나가사키로 이동하였습니다.
1945년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8월 9일!
조선인위령제는 나가사키 평화공원 '조선인위령비'앞에서 7시30분에 있어서
그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습니다.

일본 남쪽의 가장 큰 항구도시 나가사키는
2차대전 당시 군수품, 선박, 무기등 전쟁물자를 생산하는 도시로, 두번째 피폭도시입니다.  
물론 이곳에는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노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1차 피폭이 되었고,
피폭된 이후 이곳에서 사고처리까지 하게 되어 2차 피폭까지 입게되었습니다.
일본은 원자폭탄의 유일한 피폭국이 일본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 피폭된 많은 수의 조선인들도 있었습니다.
재일조선인 피폭자의 인권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그리고 피폭자들이
이른 시간부터 많이 모였습니다. 정작 한국인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계단 한켠에 자리잡고 반핵평화에 대한 기원
그리고 조선인 피폭자들을 추모하는 마음, 그들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손피켓에 담았습니다.



추모제 이후, 피폭도시 나가사키를 알기위한 필드워크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리구치 선생님과 함께 나가사키 평화공원, 폭심지와 주변, 우라카미 성당 등을 답사했습니다.
모리구치 선생님은 고등학교 교사출신으로 은퇴 후 일본의 전쟁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요구하는
일본시민모임에서 활동을 하고있는 자원활동가십니다.







원자폭탄이 떨어졌을때의 상황과 복구된 지금의 모습을 모리구치 선생님의 꼼꼼한 해설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나가사키 형무소가 있던 평화공원 주변을 돌아보며,
피폭당시 떨어져나간 우라카미 천주당의 석탑, 형무소의 돌담의 흔적, 반공호 등등
70년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현장을 직접 둘어보았습니다.

자료가 가득 든 무거운 가방을 메고, 따가운 뙤약볓 속에서
나가사키의 고통과 아픔, 일본의 씻을 수 없는 전쟁의 책임을 이야기 하시는
리구치 선생님 앞에서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더욱이 70세가 넘으신 모리구치 선생님이 피폭자였다는 사실에 우리는 잠시 할말을 잃었습니다.
본인이 전쟁의 피해자이기때문에, 더욱 생생한 증언을 할 수 있고.
그렇기때문에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비판에 더욱 울림이 있었습니다.




다음 장소는 스미요시터널입니다.
아직도 터널 위로는 도로가 놓여있어 이곳에 이런 터널이 있었을까
상상하기 힘든 곳에 터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일본 비밀 터널공장으로 미쓰비시 병기 스미요시 터널공장이었습니다.
이곳 역시 조선인들의 강제 노역을 통해 침략전쟁의 병기를 만들던 곳입니다.
처음엔 시원한 바람이 나와서 좋아했는데, 이곳의 용도를 알고 나니 오히려 서늘해졌습니다.



나가사키를 둘러보며 느꼈던 것중 하나,
일본은 원폭도시를 통해 전쟁 피해자의 모습만 보여줍니다.
전쟁가해국으로써의 책임과 반성은 나가사키 역사관에서도,
또 평화의 공원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일본의 가해책임과 보상문제에 초점을 다룬 자료관이 있었습니다.
1995년 오카마사하루 목사의 뜻을 이어받아 만들어진
[오카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입니다.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에 의해 운영되는 이 기념관은
원폭의 참상을 초래한 원인이 극도의 잔학함을 만든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있다는 사실과
일본의 무책임한 태도를 알리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료관입니다.
이곳에서 강제징용당시의 탄광 갱도의 모형, 당시의 피해자들의 참상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빡빡한 일정이 모두 이렇게 진지했던것만은 아닙니다.

개항도시인 나가사키의 데지마지역에서 항구도 걸어보고,
약간의 여유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세번째 아침은 처음으로 호텔조식을 먹었습니다.
새벽비행기, 새벽출발 등으로 매번 간단하게 빵이나, 삼각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했는데,
모처럼 호텔조식을 먹어보았습니다. (물론 처음이자 마지막!)

제대로 된 아침을 먹고 가야할 장소는 다카시마(高島) 입니다.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과 전쟁포로들이 목숨을 걸고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곳이고,
군수품 생산과 수송등으로 재벌이 된 미쓰비시중공업이 있는 곳입니다.
다카시마는 하시마와 함께 이번 '메이지근대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 곳곳에 [근대문화유산 세계문화유산등재]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번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중 일부는 강제징용의 현장임에도,
이런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공간이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훼리를 타고 도착하여 기무라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어를 공부하셨다는 기무라 선생님은 한국어로 해설을 해주셨는데,
이분도 교사출신으로 모리구치 선생님과 같은 자원활동가이십니다.

우리가 갈 장소는 나가사키에서 강제노동으로 돌아가신 조선인 무연고 묘지인 공양탑입니다.
가는길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물을 만나고
그 바로 옆에 방치된 수직갱도도 눈에 보였습니다.
또 이제는 관광상품이 되버린 강제노역의 지옥섬 쿤칸지마(군함도, 하지마)도
멀찍이서 바라보았습니다. (한수산씨의 [까마귀]라는 소설에 보면 이 쿤칸지마가 무대입니다.)

군칸지마는 1년전에 예약을 해도 입도가 쉽지 않다는 관광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에겐 아픔의 공간인데, 일본인들에겐 근대유산(?)의 공간이 되버렸습니다.
각자의 기억이 이렇게 다를수가 있을까요?



조선인 위령비가 있는 공양탑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는 않았습니다.

숲속으로 들어가 낫으로 길을 만들어가며 찾아간 공양묘 주변은 한동안 인적이 없었던 것 처럼
주변에 풀들이 가득했었습니다.

각자 갖고 있는 장비들을 이용해서 주변 묘역을 정리하고,
각자 갖고 있던 음식들을 조금씩 내어서 제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먼곳에서라도 편히 쉬시라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제를 올렸습니다.
일본의 오봉이 얼마 안남은 날이라, 마치 조상님들께 차례를 지내듯
모두가 절을 하고, 이제라도 편히 쉴 수 있기를, 돌아가신 분들의 평안을 기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시작한 [고향의 봄] 노래는 그곳에 있는 모든이의 어깨를 들썩거릴만큼
눈물지게 했습니다.  



다카시마 공양묘를 나와 주변의 납골당과 다카시마 신사를 방문했습니다.

다카시마 신사의 위령비에는 어느순간 조선인의 이름이 빠졌다는 말씀을 들으니
죽어서도 차별받는게 너무 서러웠습니다.

다카시마를 나와 미쓰비시 조선소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이름없는 조선인들과 전쟁포로들이 목숨을 잃었을까요?
그리고 2차대전후 일본은 군수사업으로 재벌이 된 기업을 해체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미쓰비시는 주요산업을 갖고 있는 어마어마한 기업입니다.
조선소 앞의 아리랑 고개를 바라보면서 함께 해주셨던 기무라 선생님과 이별을 하였습니다.

어제의 모리구치선생님, 오카사마하루에서 만난 일본인들 그리고 기무라 선생님을 만나고 나니,
보통의 일본은 전쟁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었으나,
이번 여행에서 만난 일본인들을 통해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해준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한일관계를 평화적으로 풀어가는데는 이런 일본의 시민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시민들의 힘이 중요하다는것도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이렇게 3일째의 답사는 마무리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가자 교류회를 가졌습니다.
여행의 기억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가 더해져 진솔한 시간이었습니다.  
의외로 우리 가까이에 강제징용의 피해자들이 많았다는것과
이 아픔의 역사가 과거가 아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것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또 각각 활동하는 공간은 다르더라도, 역사를 해설하는 자원활동가로써
한국에 돌아가서 이 아픈 역사를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고, 잊지 않도록 해야 겠다는 이야기 등등
일본 평화여행을 통해 마음은 분노와 안타까움, 고마움으로 요동쳤지만,
적어도 평화가 왜 필요한지는 몸으로 눈으로 가슴으로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8월 12일일 마지막날은 기타큐슈지역으로 갔습니다.

1901년 만들어진 야하타제철소, 뜨거운 용광로에 피땀을 흘렸을 조선인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의 큰 축으로 자리잡은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등등의  일본의 기업들 ..
그 누구도 당시 조선인의 노역에 대해선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최근 한국법원 판결에서 일본제철이 조선인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판결을 내리긴 했지만,
많은 일본기업은 65년 한일조약을 근거로 배상책임을 지려들지 않습니다.
65년 졸속으로 맺은 한일조약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강제징용으로 많은 조선인들이 머물렀던 이곳에 학교가 만들어졌습니다.
후꾸오카 조선학교, 언덕배기 질척한 곳을 직접 일구어 만들었던 '우리학교'입니다.
일본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비싼 학비를 내야 하는 현실이지만, '우리학교'이기에 모두 감내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관몬터널을 지나 혼슈에 있는 시모노세끼로 넘어갑니다.
복어그림이 크게 그려진 칸몬터널을 뚫을때 조선인들이 많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저 터널을 지나 일본에서 제일 먼저 조선학교가 만들어졌다는 시모노세끼 조선학교를 둘러보았습니다.
조선학교를 지나 만난 곳은 지금은 오오츠보라고 하는 똥굴마을입니다.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이곳에는 분뇨처리장, 화장터 등등 혐오시설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어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 모여살던 곳이었고, 그러다보니, 조선인들이 많이 모여살던 곳이었습니다.
곳곳에 조선식 문패라던가 당시의 배수시설의 흔적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40년째 이곳에 거주하신다는 엄선생님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마지막 장소인 시모노세끼 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은 대륙침략의 발판이었던 관부연락선이 닿는 곳으로
조선과 일본,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연결시키는 곳이었습니다.

이 항은 많은 군수물자도 실어날랐지만, 많은 조선인들도 이곳으로 실어날랐습니다.
시모노세끼는 관부연락선을 타고 제일먼저 도착하는 곳으로,
창고에 2~3일 감금되어 있다가 큐슈, 홋카이도 등으로 강제노동 현장으로 끌려가는 곳입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얼마나 배고팠을까요?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일본 강제징용이 시작되는 출발점에서 이 평화여행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시간은 흘렀고, 그 당시의 기억과 기록은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들이 보고듣고느끼고 배웠던 것들은 다시 또렷해지고 있습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3박4일동안 함께 해주신 배동록 선생님과
오랜 작별 인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다시 관몬터널을 지나 후쿠오카 공항으로 갔습니다.

이제 서울로 갑니다. 내 소중한 가족있고, 내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서울로 갑니다.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있음이 이리 큰 기쁨인줄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지척에 가족을 두고도 못만났던 그때 그 사람들,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수 없었고, 죽으려 해도 죽음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
전쟁이 만들어낸 참혹한 현실이 70년 전 과거의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준 현실은 아직도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의 아베총리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더 많고 사과도 여러차례했으니
이젠 전쟁을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하면서도
유사시 전쟁도 할수 있는 법안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과거의 일본의 모습을 통해 일본의 잔혹함을 직접 당한 역사이기에
이런 일본의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 평화여행을 통해,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픈역사라도 기억하고 잊지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역사를 해설하는 자원활동가로서 이런 역할을 우리가 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최근 몇년간의 평화여행중 가장 힘든 여정이었지만, 가장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여행이었습니다.
이런 여행을 만들 수 있도록 일본현지에서 강사섭외, 사전답사 등등
큰 도움을 주신 김향월, 김붕앙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통역을 해주신 이기회 선생님도 고맙습니다.
 
그리고 배동록 선생님, 모리구치 선생님, 기무라 선생님!
서울KYC에서 평화여행 왔다며 많은 응원과 격려를 해주셨던 일본 현지의 동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 전합니다.



*사진제공 : 양승수, 신미정, 정연하, 이명난, 조인숙

Creative Commons Lic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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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당이 만만치 않은 시련에 직면하고 있다.한국최고의 엘리트교육을 받은 이유미에 국한된 소영웅적인 일탈행위인지, 아니면 조작에 대한 지시가 있는 국민의당 집행부의 조직적인 적극적 범죄인지? 아니면 이유미의 조작의 게연성을 충분히 인지,인식 하면서도 이를 방조,묵인한 범죄인지의 여부는 수사결과 밝혀질 것으르 본다. 어찌했든 국민의당의 책임은 어떤 이유로도 비켜 갈 수는 없다.40여명의 국회의원을 갖고있는 제3당이 가장 기초적인 사실여부에 대한 진위를 소홀히하고 이를 선거홍보수단으로 대대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은 사법적 책임은 물론 정치적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 사건의 본질은 문대통 아들의 특혜취업문제다.공개채용의 요건인 공고의 공개성과 고지기간,자격구비의 합리성 등에 대한 충분한 요건을 갖추었는가에 대한 것도 국민의당의 범죄관련한 부분과는 별도로 재점검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수가 없다. 양당체제의 나눠먹기식 정치체제의 역기능은 극복해야 한다.그런의미에서 제3당의 존립은 필요하다.바른당과 함께 국민의당 출연은 두당이 보수와 진보를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는 시스템적인 가동을 해준다면 새로운 정치적 변이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추미애대표의 국민의당 선봉적비판과 일갈에 대해서는 많은 해석의 여지가 있다.소위 문빠세력의 지지를 업고 당대표가 된 그가 그틀의 눈치를 보고 지지세를 형성해 내년도 지자체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렁하겠다는 개인적, 정치적 목적에 대한 한수를 깔고 있다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이는 현재 민주당의 현실적 여건을 고려치 않은 무모한 정략적발언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다.국민의당을 비판할수는 있지만 소멸시키고 흡수합병의 대상으로 폄하하는 발언은 더 이상 자제하기를 충고한다.(노파심에서 밝혀드립니다.저는 국민의당 당뭔도 안빠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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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들어온다는 갑작스러운 발표. 사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시작된 싸움. 경북 성주군 4만5천여명의 싸움은 더 작은 2천여명 초전면으로 그리고 100여명이 사는 소성리로 옮겨갔다. 그날로로부터 벌써 1년. 사람들은 사드를 넘어...
금, 2017/07/14-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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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만평]: [7월14일] 평화/통일/국제/사드

금, 2017/07/14-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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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만평]: [7월14일] 만평/사진

금, 2017/07/14-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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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구 "사드배치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국익 최우선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금, 2017/07/1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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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입니다. 읽고 싶으신 분들만 읽으시고 긴 글을 싫어하시는 분들은 억지로 읽으신 뒤 욕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 > . 사드배치철회 투쟁이 어느덧 일 년이 되었습니다. 계절이 한 번 순회하는 자연의 변화가 막연히 우리들의 삶과 몸에 어떤 식으론가는 연결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해봅니다만 사실 달력이 표시해주는 일 년이란 시간이 우리들의 투쟁과 어떤 식으로 직접 연결되어 있는 지는 명확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이렇듯 우리들은 스스로도 알지 못할 시간에 의미를 두고 긴 나날들을 싸워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한 번의 자연이 순회되는 지점을 지나고 있습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우리들은 참으로 훌륭하게 잘 싸워왔다고 생각합니다. . 사드는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못하고는 있지만 이미 성주에 들어와 있고, 이로 인해 인근 주민들의 불안은 매우 현실적인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드가 가져올 알지 못할 미래의 사태들이 주민들뿐 만 아니라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안과 공포심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전쟁과 핵무기가 가져다주는 공포는 막연하기는 하지만 항상 현실화될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사르트르는 불안을 ‘자유의 현기증’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이 이런 불안과 공포를 이겨나가면서 투쟁에 임하고 있는 것은 바로 ‘불안’으로부터 자유를 찾아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불안은 정체를 알 수 있는 것으로부터, 공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으로부터 온다.’는 말이 기억납니다. 아마 우리들이 가지는 심리적 상태는 이렇게 알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 그동안 이런 저런 근거들을 통해 한반도, 나아가 세계의 정세를 이야기하고 이와 관련된 사드문제를 고민해왔지만 사실 그런 분석들과 그 결과들이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합리성과 과학적인 것들을 통해 추론하고 예측을 하여야 한다고 흔히 말을 하고 그렇게 믿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한 번도 과학을 통해 진리에 도달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합리성이라는 것을 통해 때로는 엉뚱한 결과로 도달한 사례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런 과학적 추론들이 얼마나 힘을 가지고 있고, 긍정적 의미들을 산출할 수 있는지도 의심이 됩니다. . 미래가 참 궁금하기는 합니다. 조금 이해가 쉽지 않고 철학적인 말이기는 합니다만 사실 미래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하는 상상일 수 있습니다. 또한 과거는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뇌의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억과 상상이 바로 과거와 미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는 지나갔기에 없고 미래는 도래하지 않았기에 없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항상 현재만 존재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어떤 미래가 현실화 되었을 때도 그것은 항상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미래를 예측하고 그것을 통해 삶을 계획하기 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 과거는 사물이나 사건이 기억의 잔상으로 뇌 속에 남아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억의 찌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기록물과 사진, 영상처럼 언어와 이미지의 형태로 존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사라진 것들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변화해서 현재로 와 있는 것들입니다. 이런 기억에 매달리는 이들을 우리는 흔히 ‘보수’라고 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신봉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믿음은 굳건합니다. 어쩌면 보수와 진보라는 구분 자체가 이런 과거와 미래라는 기억과 상상의 시간의 관념 속에서 출발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면에서 ‘진보주의’를 외치는 분들도 이런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신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하루도 쉬지 않고 싸워온 일 년의 투쟁은 ‘지속’의 관점에서 본다면 매우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런 지속이 있었기에 다른 사건과 장소와 연결될 수 있었고 그것은 변화를 겪으며 폭발적인 힘을 만들어냈습니다. 동의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들의 투쟁은 하나의 놀이이기도 했습니다. 또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투쟁과 놀이, 삶이 구분되지 않는 세상이 우리들의 세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것을 구분하는 것이야 말로 우매한 짓일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들은 재미없는 투쟁과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쁨과 재미, 신명남, 매력, 짜릿함을 통해 현재의 투쟁을 즐겨야 하는 이유는 희생과 금욕, 고뇌에 찬 투쟁이 기쁜 미래를 담보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재의 고통을 참고 견디면 달콤한 미래가 온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항상 그렇습니다. 달콤한 것은 현재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미래에 오는 것입니다. 현재에는 결코 도래하지 않습니다. 소득과 분배의 문제에 있어서도 파이가 커져야 미래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파이를 나누는 일은 항상 미래의 일일 뿐입니다. . 투쟁을 놀이로, 유희로 만드는 일은 힘든 투쟁에 단순히 흥미와 유머를 도입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것은 투쟁과 놀이를 분리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니 그런 분리에 대한 의식 자체가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투쟁과 괴리된 나름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희화화된 삶일 뿐 여기에는 자유로움과 욕망이 관철되며 이루어지는 기쁨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면 재미없는 삶을 지루한 투쟁과 연결하거나 하는 방법이 투쟁과 놀이, 삶이 괴리된 형태로 다른 한편에 존재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촛불마당을 통해 기쁨과 즐거움, 신명남이 무엇인지를 느껴왔습니다. 그 힘으로 일 년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어떤 놀이도 너무 오래되면 지겨워 집니다. 한 일 년을 했으니 이제 물릴 때도 되었을 것입니다. ‘피로누적’, ‘힘듬’과 같은 말들은 육체적인 고통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런 놀이의 지루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투쟁과 놀이가 힘들어지거나 지겨워질 때면 세 가지의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그 고통을 참고 인내하며 투쟁에 나서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다른 길과 삶에 대한 욕망이 꿈틀거리는데도 그것을 누르고 참으며 투쟁에 나서는 금욕적인 길입니다. 지금까지의 많은 투쟁들이 이렇게 진행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길은 지겨움과 고통을 참지 않는 것입니다. 지겹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는 즐겁고 신명나는 다른 삶, 놀이, 투쟁을 개발하고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세 번째 길은 투쟁을 그만두는 것입니다. 오직 첫 번째 방법의 투쟁만을 아는 이들은 두 번째의 길을 세 번째 방법과 동일하게 생각합니다. 모르니 분별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 금욕적인 길에는 숭고함, 희생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심리에는 희생에 따른 보상심리가 또한 작동됩니다. 아마도 386 세대의 정치권 진입에는 이런 심리들이 작동되었을 것입니다. 투쟁과 삶이 즐겁고 기뻤던 이들은 이미 그 삶에서 충분한 보상을 누렸기에 미래의 보상심리가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숭고한 투쟁’에서는 금욕과 희생은 항상 현재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기쁨은 항상 멀거나 곧 다가올 미래의 일이 됩니다. 그런 금욕과 희생이 현실에서 기쁨을 누리는 방법은 권력화 되어가면서 보상심리를 충족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투쟁을 숭고함과 거룩함으로 치장하는 행위는 지양되어야 할 것입니다. ‘민주화를 위해서’, ‘평화를 위해서’, ‘통일을 위해서’와 같이 무엇을 위해서와 같은 의미들로 표현되는 것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민주’, ‘평화’, ‘통일’과 같은 말들은 사실 만질 수 없는 실체적 의미의 언어들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투쟁을 통해 어떤 상태가 된 상황이 존재하겠지만 그 때도 그것들은 여전히 미래에 ‘도래해야 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투쟁의 숭고함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투쟁은 숭고함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고 자신의 일이고 즐겁고 기쁘기에 나서는 것입니다. . 땅거미가 지면 놀이에 지친 아이들처럼 집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음날이면 동네 어귀 마당에는 또 다시 놀이판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피로해지면, 지겨워지면, 재미가 없어지면 놀이는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놀이인 투쟁도 변화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이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여전히 하고 있던 놀이가 재미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이 놀이 외에는 다른 놀이를 생각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같이 놀던 아이들이 흥미를 잃어버리고 그만두려 한다면 다시 같이 어울릴 수 있는 놀이로 바꾸어 놀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놀이와 투쟁은 무궁무진 합니다. 더욱 재미있고 기발한 투쟁놀이의 방법들을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기발한 상상력과 투쟁의 방법을 개발해내며 우리는 새로운 투쟁과 삶의 재미들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 사드배치문제에 대해서 미국이 추가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현재 차단되어 있습니다. 물론 독단적인 행위는 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런 행위는 오히려 ‘주권국가’라는 ‘국민’의 무의식, 의식에 상처를 만들어내며 국내의 여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지금 사드를 둘러싼 투쟁은 소성리에서 물리적으로 어떤 것을 막고 차단하는 물리적 투쟁의 성격이기 보다는 정치적 의미를 누가 장악하고 다양한 영역에서의 대중들과 결합하고 다양한 세력들을 어떻게 모아가는 가가 중요한 정치적 투쟁의 성격으로 변해있습니다.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막아야 할 것이 어떤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소성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대응하고 싸워나가야 할 이유들은 분명합니다만 중요하게 방점이 찍혀야 할 지점들과 대응의 강도와 방식은 변해야 합니다. 투쟁하는 방법과 노는 방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들에게는 촛불의 경험을 통해 축적된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 투쟁은 블랙홀처럼 중심으로 강하게 몰려드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구심력이 사라지면 그것은 또한 외각으로 폭발해 나가기도 합니다. 블랙홀의 중심에 어떤 것이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만 강력한 태풍이나 토네이도의 중심이 비어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중심이 비었다고 해서 그것을 약하다고 그 누구도 말할 수 없습니다. 주변으로 휘몰아치는 힘의 강도에 따라 태풍의 힘과 영향권이 결정됩니다. 많은 분들이 소성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소성리는 눈에 보이고 감각되고 만져지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사드가 발생시키는 효과는 매우 정치적입니다. 쉽게 감각되지 않습니다. 조금 다른 감각기관을 발달시키고 작동해야만 감각되어집니다. 소성리, 미대사관 등 직접적으로 감각되는 장소를 통해서 투쟁이 집중되는 현상들은 피할 수 없습니다만 그것조차도 사드가 발생시킨 정치적 효과와 의미들과 연결될 때만 의미를 가집니다. . 우리의 아픔 만을 알아 달라고 해서는 결코 사드문제는 확장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드문제가 지금 가장 큰 현안이라는 것 또한 다르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분명 우리들에게는 그렇습니다만 다른 이들은 또 다른 긴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달려가야 합니다. 그들이 아픔과 관심을 가진 영역의 주변에 같이 함께 서 있어야 합니다. 연대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너와 나의 문제로 확장하는 것, 그것은 사드가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그들의 문제로 다가서는 것을 의미하지만 또한 다른 여러 문제들이 우리의 문제로 다가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대란 이렇게 태풍의 힘이 될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이 어우러지고 만나 에너지를 확장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비의 날개 짓은 결코 그 힘만으로는 태풍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다른 힘들과 어울릴 때 몰아치는 힘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하여야 하는 것은 다른 삶들도 그 힘을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나비의 날개 짓이라는 사실입니다. . 서로 투쟁의 결이 다르다고 해서 대립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일정한 방향을 가지는 결들도 자세히 보면 서로 다른 특이한 결들이 모아져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물결, 나뭇결 모두가 그러합니다. 우리들은 사드철회라는 방향의 결을 가집니다만 다른 투쟁의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고 해서 “투쟁을 하지 않으려는 것 아니냐?”는 규정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상대에 대한 공격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못남이 있습니다. 상대를 찌질하게 만들면 자신도 동일하게 찌질해 짐을 알아야 합니다. 찌질함은 항상 더 강력한 찌질함을 통해 공격되기 때문입니다. 존재는 다른 것들을 공격함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위대함을 통해 증명해야 합니다.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투쟁을 하면서 피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투쟁하는 목적이나 가치들을 어떤 것들을 통해 상징화하면서 그것을 숭고한 어떤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그것에 대한 비판이 차단되어 버립니다. 이런 것들은 종교적 요소들과 결합하게 되면 더욱 강화되어 버립니다. ‘소성리’, ‘어머니’ 같은 것들이 상징화될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냉정할 지 모르겠지만 소성리는 수많은 투쟁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 중 하나일 뿐이고 어머니들 역시 다양하게 결합한 투쟁의 주체들 중 하나입니다. 소성리의 어머니들을 통해 숭고함을 형성하는 것은 오히려 그 분들을 대상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무의식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들뢰즈와 같은 학자들에 의하면 이는 자본주의와 공모관계에 있는 허구적인 통제와 체제 순응의 메커니즘에 다름 아닌 것이기도 합니다. 상징과 체제를 만들고 그것에 순응시키는 방식에 대한 긴장과 주의가 요구됩니다. . 소성리에서 종교 단체와 종교인들이 함께 하는 것에 동의하고 기껍기도 하지만 투쟁의 주요 전술들이 종교 집회의 성격과 형태로 진행되는 것은 깊게 고민해볼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각 사안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지만 종교집회는 투쟁에 숭고함이나 신비함을 덧씌우기도 하고 투쟁해야 할 주체들을 종교집회를 통해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광우병 촛불 집회에서도 수많은 대중들 사이를 가르면서 지나간 사제들의 행렬이 진행되는 순간 사람들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던 상황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종교는 종교 나름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존중되어야 함은 분명합니다. 그런 정체성을 잘 살리는 것과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 지금과 같은 형태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 일 년을 넘어갑니다. 그 시간에 대한 우리들의 주관적 의미를 공유하기에 새로운 시점이 될 것입니다. 파란나비의 변태(變態)가 요구됩니다. 우리는 새로운 변화를 통해 다시 하늘을 향해 훨훨 날아가야 합니다. 매번 이야기 하지만 투쟁하는 이유는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서로에 대한 애정을 가지면서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삶과 투쟁의 노정(路程)을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금, 2017/07/1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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