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후기]동아시아사 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in 큐슈 잘 다녀왔습니다.

지역

[후기]동아시아사 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in 큐슈 잘 다녀왔습니다.

익명 (미확인) | 월, 2015/08/31- 22:29
해방70년, 강제징용과 피폭의 땅에서 생각하는 전쟁 그리고 평화
[2015 서울KYC 동아시아 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in 큐슈]


지난 8월8일부터 11일까지 3박4일의 일정으로 서울KYC회원 20명과 함께
일본의 강제징용과 피폭의 장소인 후쿠오카, 나가사키, 기타큐슈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1945년 전쟁은 멈추었고, 식민지 해방을 맞이하였지만,
70년이 지난 2015년 일제강점기 당시의 상처와 고통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이런 상처와 고통을 어떻게 기억하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또 하나의 과제를 안고 온 여행이었습니다.
가장 뜨거웠던 일본을 뜨거운 가슴으로 만나고 온 기억을 사진을 통해 되짚어 봅니다.

여행첫날, 인천공항에 6시에 집결하여, 입국수속을 마치고, 8시 비행기를 탔습니다.
후쿠오카에 도착하여, 강제징용의 역사를 온몸으로 전하고있는 배동록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여행 내내 저희와 함께 해주신 재일조선인 2세 선생님이셨는데, 연세가 70대의 고령이었지만,
늘 뛰어 다니실 만큼 정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날이 너무 더워서 건강이 무척 걱정되었습니다.

답사 첫번째 장소는 지쿠호 지역의 [무궁화당]
지쿠호 지역 탄광에서 강제징용으로 끌려와서 가혹한 노동에 목숨을 잃은 조선인들의 유골은 방치되었고,

방치된 무연고묘를 2000년 지쿠호지역의 재일동포와 뜻을 함께 하는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납골당입니다.
당시 이 납골당을 만들었던 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향에 못가는 안타까움을 [고향의 봄] 노래를 합창했습니다.  



두번째 장소는 덕향추모비!
1936년 아소탄광 화재로 25명의 조선인이 목숨을 잃었고,
이후 노동자들의 동요를 막기위해 추모비를 세웠으나, 관리하지 않아 쓰러져가는 추모비를
1997년 뜻있는 일본인들과 동포들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세워졌습니다.

아소탄광은 전 총리였던 아소다로 집안이 운영하는 탄광으로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했다", "위안부결의는 조작이다"라는
망언들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인적 드문, 주택가 공터에 자리잡은 덕향추모비
찾는 사람이 없는지,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외로운 추모비 앞에서 향도 피우고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도 한잔 올렸습니다.
지금이라도 편히 쉬셨으면 하는 마음...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강제징용의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도 해봅니다.  



세번째 장소는 보타야마를 지나, 타가와지역의 [한국인징용희생자위령비]로 갔습니다.
이곳은 미쓰이 타가와 탄광이 있던 곳으로 폐광한 후 석탄역사박물관을 만들었고,
가장 높은 곳에 한국인 강제징용자 위령비를 세웠습니다.
생전에 가장 낮은 곳에서 힘겹게 살았지만,
죽어서만은 가장 높은 곳에 영혼을 쉬도록 한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석탄역사박물관은, 조선인 강제징용, 강제노동의 역사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 높은 곳에 세워진, 위령비가 당시의 아픔을 말해주고 있을 뿐입니다.



지쿠호지역은, 탄광이 밀집되어 있던 곳으로 큐슈 강제징용 역사의 아픔을 잘 보여줍니다.
그중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휴가묘지에서 우리는 모두 할말을 잃었습니다.

보타이시(쓸모없는 돌)로 겨우 이곳이 묘지였다는 표식만 되어있는
조선인 무연고묘인 휴가묘지

집에서 기르던 개 고양이를 기억하는 묘비까지도 세우는 이곳에서!
조선인의 묘는 작은 돌들로 표시되어 단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아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그 위치가 전해져 오는 곳이었습니다.
묘역표시인지, 그냥 돌인지 구분하기도 힘든 휴가묘역에서
실수로 돌을 밟기라도 할까봐 조심조심 걸으며,
배동록 선생님께서는 강제노역의 상황을 [신세타령]이라는 곡조로 증언해주셨습니다.

강제노역의 처참함과 고달픔, 배고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신세타령은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들려줬습니다.
듣는것만으로도 아픔이 느껴지고,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새벽부터 시작한 첫날의 평화여행은 휴가묘지를 마지막으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던 그런 더운날,
저 한복을 입고 잊혀질지 모르는 역사를 얼마나 알리고 다니셨을까요?
낡아진 배동록 선생님의 한복 바짓단을 보니, 더워도 덥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여행 두번째날은 나가사키로 이동하였습니다.
1945년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8월 9일!
조선인위령제는 나가사키 평화공원 '조선인위령비'앞에서 7시30분에 있어서
그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습니다.

일본 남쪽의 가장 큰 항구도시 나가사키는
2차대전 당시 군수품, 선박, 무기등 전쟁물자를 생산하는 도시로, 두번째 피폭도시입니다.  
물론 이곳에는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노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1차 피폭이 되었고,
피폭된 이후 이곳에서 사고처리까지 하게 되어 2차 피폭까지 입게되었습니다.
일본은 원자폭탄의 유일한 피폭국이 일본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 피폭된 많은 수의 조선인들도 있었습니다.
재일조선인 피폭자의 인권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그리고 피폭자들이
이른 시간부터 많이 모였습니다. 정작 한국인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계단 한켠에 자리잡고 반핵평화에 대한 기원
그리고 조선인 피폭자들을 추모하는 마음, 그들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손피켓에 담았습니다.



추모제 이후, 피폭도시 나가사키를 알기위한 필드워크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리구치 선생님과 함께 나가사키 평화공원, 폭심지와 주변, 우라카미 성당 등을 답사했습니다.
모리구치 선생님은 고등학교 교사출신으로 은퇴 후 일본의 전쟁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요구하는
일본시민모임에서 활동을 하고있는 자원활동가십니다.







원자폭탄이 떨어졌을때의 상황과 복구된 지금의 모습을 모리구치 선생님의 꼼꼼한 해설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나가사키 형무소가 있던 평화공원 주변을 돌아보며,
피폭당시 떨어져나간 우라카미 천주당의 석탑, 형무소의 돌담의 흔적, 반공호 등등
70년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현장을 직접 둘어보았습니다.

자료가 가득 든 무거운 가방을 메고, 따가운 뙤약볓 속에서
나가사키의 고통과 아픔, 일본의 씻을 수 없는 전쟁의 책임을 이야기 하시는
리구치 선생님 앞에서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더욱이 70세가 넘으신 모리구치 선생님이 피폭자였다는 사실에 우리는 잠시 할말을 잃었습니다.
본인이 전쟁의 피해자이기때문에, 더욱 생생한 증언을 할 수 있고.
그렇기때문에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비판에 더욱 울림이 있었습니다.




다음 장소는 스미요시터널입니다.
아직도 터널 위로는 도로가 놓여있어 이곳에 이런 터널이 있었을까
상상하기 힘든 곳에 터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일본 비밀 터널공장으로 미쓰비시 병기 스미요시 터널공장이었습니다.
이곳 역시 조선인들의 강제 노역을 통해 침략전쟁의 병기를 만들던 곳입니다.
처음엔 시원한 바람이 나와서 좋아했는데, 이곳의 용도를 알고 나니 오히려 서늘해졌습니다.



나가사키를 둘러보며 느꼈던 것중 하나,
일본은 원폭도시를 통해 전쟁 피해자의 모습만 보여줍니다.
전쟁가해국으로써의 책임과 반성은 나가사키 역사관에서도,
또 평화의 공원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일본의 가해책임과 보상문제에 초점을 다룬 자료관이 있었습니다.
1995년 오카마사하루 목사의 뜻을 이어받아 만들어진
[오카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입니다.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에 의해 운영되는 이 기념관은
원폭의 참상을 초래한 원인이 극도의 잔학함을 만든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있다는 사실과
일본의 무책임한 태도를 알리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료관입니다.
이곳에서 강제징용당시의 탄광 갱도의 모형, 당시의 피해자들의 참상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빡빡한 일정이 모두 이렇게 진지했던것만은 아닙니다.

개항도시인 나가사키의 데지마지역에서 항구도 걸어보고,
약간의 여유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세번째 아침은 처음으로 호텔조식을 먹었습니다.
새벽비행기, 새벽출발 등으로 매번 간단하게 빵이나, 삼각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했는데,
모처럼 호텔조식을 먹어보았습니다. (물론 처음이자 마지막!)

제대로 된 아침을 먹고 가야할 장소는 다카시마(高島) 입니다.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과 전쟁포로들이 목숨을 걸고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곳이고,
군수품 생산과 수송등으로 재벌이 된 미쓰비시중공업이 있는 곳입니다.
다카시마는 하시마와 함께 이번 '메이지근대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 곳곳에 [근대문화유산 세계문화유산등재]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번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중 일부는 강제징용의 현장임에도,
이런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공간이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훼리를 타고 도착하여 기무라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어를 공부하셨다는 기무라 선생님은 한국어로 해설을 해주셨는데,
이분도 교사출신으로 모리구치 선생님과 같은 자원활동가이십니다.

우리가 갈 장소는 나가사키에서 강제노동으로 돌아가신 조선인 무연고 묘지인 공양탑입니다.
가는길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물을 만나고
그 바로 옆에 방치된 수직갱도도 눈에 보였습니다.
또 이제는 관광상품이 되버린 강제노역의 지옥섬 쿤칸지마(군함도, 하지마)도
멀찍이서 바라보았습니다. (한수산씨의 [까마귀]라는 소설에 보면 이 쿤칸지마가 무대입니다.)

군칸지마는 1년전에 예약을 해도 입도가 쉽지 않다는 관광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에겐 아픔의 공간인데, 일본인들에겐 근대유산(?)의 공간이 되버렸습니다.
각자의 기억이 이렇게 다를수가 있을까요?



조선인 위령비가 있는 공양탑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는 않았습니다.

숲속으로 들어가 낫으로 길을 만들어가며 찾아간 공양묘 주변은 한동안 인적이 없었던 것 처럼
주변에 풀들이 가득했었습니다.

각자 갖고 있는 장비들을 이용해서 주변 묘역을 정리하고,
각자 갖고 있던 음식들을 조금씩 내어서 제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먼곳에서라도 편히 쉬시라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제를 올렸습니다.
일본의 오봉이 얼마 안남은 날이라, 마치 조상님들께 차례를 지내듯
모두가 절을 하고, 이제라도 편히 쉴 수 있기를, 돌아가신 분들의 평안을 기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시작한 [고향의 봄] 노래는 그곳에 있는 모든이의 어깨를 들썩거릴만큼
눈물지게 했습니다.  



다카시마 공양묘를 나와 주변의 납골당과 다카시마 신사를 방문했습니다.

다카시마 신사의 위령비에는 어느순간 조선인의 이름이 빠졌다는 말씀을 들으니
죽어서도 차별받는게 너무 서러웠습니다.

다카시마를 나와 미쓰비시 조선소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이름없는 조선인들과 전쟁포로들이 목숨을 잃었을까요?
그리고 2차대전후 일본은 군수사업으로 재벌이 된 기업을 해체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미쓰비시는 주요산업을 갖고 있는 어마어마한 기업입니다.
조선소 앞의 아리랑 고개를 바라보면서 함께 해주셨던 기무라 선생님과 이별을 하였습니다.

어제의 모리구치선생님, 오카사마하루에서 만난 일본인들 그리고 기무라 선생님을 만나고 나니,
보통의 일본은 전쟁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었으나,
이번 여행에서 만난 일본인들을 통해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해준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한일관계를 평화적으로 풀어가는데는 이런 일본의 시민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시민들의 힘이 중요하다는것도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이렇게 3일째의 답사는 마무리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가자 교류회를 가졌습니다.
여행의 기억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가 더해져 진솔한 시간이었습니다.  
의외로 우리 가까이에 강제징용의 피해자들이 많았다는것과
이 아픔의 역사가 과거가 아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것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또 각각 활동하는 공간은 다르더라도, 역사를 해설하는 자원활동가로써
한국에 돌아가서 이 아픈 역사를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고, 잊지 않도록 해야 겠다는 이야기 등등
일본 평화여행을 통해 마음은 분노와 안타까움, 고마움으로 요동쳤지만,
적어도 평화가 왜 필요한지는 몸으로 눈으로 가슴으로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8월 12일일 마지막날은 기타큐슈지역으로 갔습니다.

1901년 만들어진 야하타제철소, 뜨거운 용광로에 피땀을 흘렸을 조선인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의 큰 축으로 자리잡은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등등의  일본의 기업들 ..
그 누구도 당시 조선인의 노역에 대해선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최근 한국법원 판결에서 일본제철이 조선인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판결을 내리긴 했지만,
많은 일본기업은 65년 한일조약을 근거로 배상책임을 지려들지 않습니다.
65년 졸속으로 맺은 한일조약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강제징용으로 많은 조선인들이 머물렀던 이곳에 학교가 만들어졌습니다.
후꾸오카 조선학교, 언덕배기 질척한 곳을 직접 일구어 만들었던 '우리학교'입니다.
일본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비싼 학비를 내야 하는 현실이지만, '우리학교'이기에 모두 감내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관몬터널을 지나 혼슈에 있는 시모노세끼로 넘어갑니다.
복어그림이 크게 그려진 칸몬터널을 뚫을때 조선인들이 많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저 터널을 지나 일본에서 제일 먼저 조선학교가 만들어졌다는 시모노세끼 조선학교를 둘러보았습니다.
조선학교를 지나 만난 곳은 지금은 오오츠보라고 하는 똥굴마을입니다.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이곳에는 분뇨처리장, 화장터 등등 혐오시설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어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 모여살던 곳이었고, 그러다보니, 조선인들이 많이 모여살던 곳이었습니다.
곳곳에 조선식 문패라던가 당시의 배수시설의 흔적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40년째 이곳에 거주하신다는 엄선생님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마지막 장소인 시모노세끼 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은 대륙침략의 발판이었던 관부연락선이 닿는 곳으로
조선과 일본,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연결시키는 곳이었습니다.

이 항은 많은 군수물자도 실어날랐지만, 많은 조선인들도 이곳으로 실어날랐습니다.
시모노세끼는 관부연락선을 타고 제일먼저 도착하는 곳으로,
창고에 2~3일 감금되어 있다가 큐슈, 홋카이도 등으로 강제노동 현장으로 끌려가는 곳입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얼마나 배고팠을까요?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일본 강제징용이 시작되는 출발점에서 이 평화여행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시간은 흘렀고, 그 당시의 기억과 기록은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들이 보고듣고느끼고 배웠던 것들은 다시 또렷해지고 있습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3박4일동안 함께 해주신 배동록 선생님과
오랜 작별 인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다시 관몬터널을 지나 후쿠오카 공항으로 갔습니다.

이제 서울로 갑니다. 내 소중한 가족있고, 내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서울로 갑니다.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있음이 이리 큰 기쁨인줄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지척에 가족을 두고도 못만났던 그때 그 사람들,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수 없었고, 죽으려 해도 죽음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
전쟁이 만들어낸 참혹한 현실이 70년 전 과거의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준 현실은 아직도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의 아베총리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더 많고 사과도 여러차례했으니
이젠 전쟁을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하면서도
유사시 전쟁도 할수 있는 법안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과거의 일본의 모습을 통해 일본의 잔혹함을 직접 당한 역사이기에
이런 일본의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 평화여행을 통해,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픈역사라도 기억하고 잊지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역사를 해설하는 자원활동가로서 이런 역할을 우리가 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최근 몇년간의 평화여행중 가장 힘든 여정이었지만, 가장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여행이었습니다.
이런 여행을 만들 수 있도록 일본현지에서 강사섭외, 사전답사 등등
큰 도움을 주신 김향월, 김붕앙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통역을 해주신 이기회 선생님도 고맙습니다.
 
그리고 배동록 선생님, 모리구치 선생님, 기무라 선생님!
서울KYC에서 평화여행 왔다며 많은 응원과 격려를 해주셨던 일본 현지의 동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 전합니다.



*사진제공 : 양승수, 신미정, 정연하, 이명난, 조인숙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수, 2017/07/12- 13:18
116
0
http://v.media.daum.net/v/20170712100558731 -국방예산법안 ‘동맹의 중요성’ 신설 -美, IRBM 겨냥 사드 요격 시험 성공 사드 배치 사실상 약속한 문재인...'중국과 협의'는 별개 과제로 http://v.media.daum.net/v/20170703080419639 . . ------------------------------ 이거 참 미칠노릇이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사드는 미국과 일본을 위해 한국이 고기방패로 앞장나서겠다는것으로밖에 보이지않는데.. 문제는 한국인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있는 사람들이 얼마없어요.. 너무 화가나고 속터집니다. 사드는 정말 한국이 죽는길로 가는급행코스임에도 대중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 내지도않고있다는것..


-국방예산법안 ‘동맹의 중요성’ 신설-美, IRBM 겨냥 사드 요격 시험 성공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미국 상원이 내년도 국방예산법안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한국 배치’를 명문화했다. 미 상원은 11일(현지시간) 현재 심의중인 2018 회계연도(2017년 10월~2018년 9월) 국방예산법안에서 “의회는 평화적인 군축을 위해서 미국이
수, 2017/07/12- 13:46
84
0

지난 5월, 핀란드의 9대 대통령 마우노 꼬이비스토가 사망했다.

핀란드인이 가장 사랑하는 대통령이었던 그는 재임 중 복지국가, 개헌, 중립평화외교를 완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독립 100년 만에 이뤄낸 핀란드의 성과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의 재임 중 성과를 국내정책과 대외정책으로 나눠 2회에 걸쳐 싣는다. 

1. 국내정책 편: 핀란드가 사랑한 대통령(1), 어떻게 복지국가와 개헌을 이뤄냈나 

2. 대외정책 편: 핀란드가 사랑한 대통령(2), 어떻게 중립평화외교를 확립했나

대통령으로서 마우노 꼬이비스토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빠시끼비-께꼬넨 노선’(Paasikivi-Kekkosen linja)로 알려진 전임 대통령들의 중립 평화 외교 노선을 한 단계 심화 발전시킴으로써 동서 냉전의 해체와 유럽 통합 등 국제질서의 대전환기를 지혜롭게 헤쳐나간 일이다.

동과 서 사이에서, 중립 평화 외교의 계승자

폴란드, 체코, 헝가리, 발트3국, 우크라이나 등 다른 ‘경계국가’(border country)들처럼 핀란드도 동과 서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요소로 인해 20세기 내내 내전과 전쟁, 냉전 제약 등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과의 평화조약 협상을 주도했던 외교관 출신 대통령 빠시끼비는 핀란드가 ‘지리’(geography)를 바꿀 수는 없는 이상 “동쪽의 이웃과도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며 서방과 소련 사이의 중립적 외교 노선을 천명했다.

보수당 출신이지만 합리적 실용주의자였던 그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는 말로도 유명하다.

20170712_145545
핀란드 중립평화외교의 기틀을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 빠시끼비 대통령(사진 왼쪽)과 께꼬넨 대통령

빠시끼비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오른 께꼬넨도 같은 노선을 견지했다. 그는 핀란드는 국제관계 문제의 ‘재판관’(judge)이 아니라 ‘의사’(doctor)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권 초기의 정치적 불안정과 1950~60년대의 대소 관계 위기(소련이 민주화와 인간적 사회주의를 요구하는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를 무력 진압할 당시 핀란드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등을 집중된 권력의지와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극복한 께꼬넨 대통령은 빠시끼비의 소극적 중립외교 노선을 한층 업그레이드된 적극적 평화외교로 발전시켰다.

실제로 중도우파인 농민당(현 중앙당) 출신이면서도 적극적 대소 우호 정책을 펼친 그는 후르시초프, 브레즈네프 등 소련 서기장들과 사우나 외교를 통해 막역한 친구 관계를 맺었다. 이 시기 오히려 소련으로 치우친 듯 보였던 핀란드 정부의 대외 중립 외교 정책은 서구의 외교 이론가들로부터 ‘핀란드화’(Finlandization)라 불리며 비판받기도 했다.

재임 초기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그 진의를 의심할 정도로 소련과의 전폭적 신뢰 관계를 구축한 께꼬넨은 국내 권력 기반이 안정되고 세계적인 데탕트(해빙) 물결이 시작되던 1970년대 적극적 평화외교정책을 추진한다.

미국과 소련, 서구와 동구 사이의 소통의 메신저로서 평화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그 결실은 역사적인 1975년의 헬싱키 평화협정 체결로 나타난다.

129129_167535_5534
1975년 7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회의에서는 동서 양 진영의 34개 나라 정상이 ‘최종의정서’ 체결을 통해 ‘인권 존중’과 ‘국경 및 체제 존중’을 맞바꾸는 헬싱키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Muvx&articleno=78138…®dt=20160403185527)

20세기 핀란드를 대표하는 건축가 알바르 알토(Albar Aalto)가 설계한 헬싱키 핀란디아홀(Finlandia Hall)에서 개최된 <유럽안보협력정상회의>에 미국의 닉슨 대통령, 소련의 브레즈네프 서기장 등 동서 진영의 34개국 정상이 한데 모여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 절차와 방안을 담은 협약에 서명한 것이다. 당시 동독과 서독의 수상도 함께 참여하여 회담하는 등 큰 성과를 올린 역사적 정상회의 개최로 핀란드의 국제적 위상도 한껏 고조됐다.

그러나 아직 냉전 질서는 강고했고, 미소 간의 핵무기 군사경쟁 등 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께꼬넨 대통령이 연로한 나이와 체력 부담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에 연거푸 나선 데는 불안정한 국제관계에 대한 (독단적) 책임감도 작용했다. (당시 쓴 일기들에서 그는 종종 세계정세의 불안정한 발전에 대한 우려와 책임감을 토로하고 있다.)

께꼬넨의 사임 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꼬이비스또에게는 빠시끼비와 께꼬넨으로 이어진 중립 평화외교를 한층 발전시키는 동시에 국제질서의 대변동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이중의 과제가 주어졌다.

같은 시기 미국에서는 신보수주의를 표방한 레이건 정부가 들어섰고, 소련은 이내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주도하는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으로 변화의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었다.

20170711_164301
꼬이비스토 대통령은 ‘빠시끼비-께꼬넨’으로 이어지는 중립 평화 외교를 계승 발전시켰다. 1990년 미소 정상을 헬싱키로 초청해 공동 정상회담을 개최한 일은 그의 가장 큰 외교적 업적으로 꼽힌다.

꼬이비스토 대통령은 핀란드 공산당과의 경쟁 관계에 있는 핀란드 사민당에 대한 소련 권부의 전통적 불신을 극복하며 외교적 성공의 첫 발걸음을 뗀 뒤, 점차 미소간 핵무기 감축과 평화 협상을 촉진하는 메신저 겸 중재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냈다.

그는 러시아어를 직접 익히고 소련의 고위 인사들과도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소련 내부의 사정에 정통했고, 레이건과 부시 등 미국의 대통령들은 그의 해박한 식견과 외교적 역량을 존중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1990년 미국의 조시 부시 대통령 내외와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 내외를 헬싱키로 초청해 공동 정상회담을 개최한 일은 그의 외교 활동 중 백미로 꼽힌다.

대전환기, 유럽통합으로 향한 길

1980년대 후반에는 세계정세가 급변하면서 중대한 변화가 찾아왔다.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와 1990년 독일 통일, 그리고 1991년의 군사쿠데타 실패에 이은 고르바초프의 실각과 소련 해체 등이 꼬이비스토 대통령의 재임 2기에 발생했다.

사태는 꼬이비스토의 예상을 뛰어넘어 훨씬 빠르고 급진적으로 전개되었다. 대소관계의 안정적, 평화적 관리에 최우선적 역점을 둬왔던 전후 핀란드의 외교안보 정책에 첨예한 도전 과제가 제기된 것이다.

꼬이비스토는 신중하게 사태를 관찰하며 핀란드 외교정책의 전환을 준비했다. 우선 소련 해체 직후인 1992년, 1948년부터 체결해온 소련과의 ‘우호협력⦁상호지원조약’의 연장을 중단했다.

냉전 시기 이 조약이 부과한 정치 군사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난 뒤에는 서방으로 눈을 돌려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했다.

핀란드는 1994년 국민투표를 통해 EU 가입을 결정했다. 100년 전 러시아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 핀란드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초강대국으로 군림한 소련이 부과한 제약에서 다시 온전히 벗어나 새로운 초국적 정치경제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이다.

20170711_164318
꼬이비스토는 ‘전환기의 대통령’이었다. 독일 통일과 소련의 갑작스런 붕괴로 냉전이 종식되자 그는 외교 전략을 전환해 핀란드의 유럽연합 가입을 추진, 성사시켰다.

꼬이비스토의 뒤를 이은 아흐띠사리, 할로넨 대통령도 유럽연합과 UN 등 국제무대에서 핀란드의 평화 인권 외교를 지속, 확대하며 변화된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들을 수행해냈다. (아흐띠사리는 2008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2010년대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해 크림반도를 일방 병합하는 등 유럽 외교안보 질서에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고, 현 핀란드 대통령 니니스뙤(보수당, 2012~재임 중)는 국제사회의 요청으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대화를 중재하는 등 2000년 헌법 질서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꼬이비스토의 유산이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주적 혁신과 통합을 위한 리더십

마우노 꼬이비스토 대통령이 서거한 지 2주 뒤인 2017년 5월 25일(목) 오후 1시부터 헬싱키 대성당에서 부인 뗄레르보와 딸 아씨(Assi Koivisto) 등 가족과 친지, 그리고 전현직 대통령들과 현 총리 유하 시삘라(Juha Sipilä)를 비롯한 삼부 요인과 각국 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건한 장례 미사가 거행되었다.

생명을 다한 그의 육신은 하얀 바탕에 파란 십자가와 붉고 노란 사자 문양이 새긴 핀란드 국기로 감싼 관에 담겨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대성당을 출발한 장례 차량이 헬싱키 대학, 상원 광장, 정부청사, 중앙은행, 대통령궁, 의회를 지나 묘지가 있는 히에따니에미(Hietaniemi) 공원으로 향할 때 거리에 나온 수만 명의 시민들은 조용한 침묵의 눈길로 깊은 존경과 추모의 인사를 보냈다.

청명한 북구의 초여름 하늘 아래 신록으로 빛나는 자작나무 가지들이 군악대의 연주를 실은 바람결에 고요히 나부꼈다.

20170711_164333
2017년 5월 25일 꼬이비스토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우르호 께꼬넨 대통령 옆 자리에 그가 묻힌 헬싱키 국립공원 묘소에는 시민들의 참배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이 글의 필자가 묘역을 방문한 2017년 6월 14일의 풍경.

어린 나이에 직업 활동을 시작하고 전쟁에 참전했던 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중앙은행장, 재무장관, 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되어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통찰하며 핀란드형 복지국가, 합의 민주주의, 중립 평화외교를 완성해갈 수 있었다는 사실은 유라시아 대륙의 맞은편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우리는 아직 20세기가 강요한 내전과 전쟁 상태를 완전히 종식하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익과 관점이 정치적으로 온전히 대표되는 민주주의 제도를 발전시키지 못했고, 현대 자본주의의 사회구조의 변동에 대응하는 역동적 복지국가 시스템을 수립하지 못했다.

대통령 탄핵과 촛불 시민혁명이라는 비상한 계기를 통해 등장한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 시민들이 보내는 높은 기대는 동시에 한국사회가 처한 엄중한 위기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새 정부가 검찰, 국정원, 언론 개혁 등 부패한 구체제(ancien régime)의 청산과 극복, 경제사회적 불평등 해소 및 지속가능한 복지사회 건설, 한반도 분쟁 완화 및 평화공존체제로의 전환, 헌법 개혁과 선거제도 개편을 통한 민주주의 질서의 재구성 등의 과제를 수행하면서 탁월한 역량과 리더십을 발휘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글의 저자인 서현수 박사는 지난 5월 핀란드 땀뻬레대학에서 핀란드의 의회정치와 시민참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논문은 여기(☞Reaching Out to the People)를 클릭해 다운받을 수 있다)

수, 2017/07/12- 14:59
343
0
미쳤나봅니다


[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자유한국당은 12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의 조속한 배치를 위해 사드배치 찬성 집회에 참석하는 등 행동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당 사드대책특별위원회는 이날 전체회의를 갖고
수, 2017/07/12- 15:46
78
0
경찰, 견인차 때문에 사드기지 소성리에 1천500명 투입했나...주민들 “명백한 공권력의 폭력” http://www.vop.co.kr/A00001178403.html

수, 2017/07/12- 20:09
114
0

성주 사드기지 인근 경찰 1,300명 배치…정부-주민 대화 기조에도 긴장 고조 http://www.newsmin.co.kr/news/22085/

수, 2017/07/12- 20:08
408
0



“도민들은 이번 대행진으로 군사 전초기지가 되는 제주도에 새로운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제주생명평화대행진 #평화가_길이다 #우리가_평화다
수, 2017/07/12- 20:05
298
0
정치꾼을 선거를 통해서 골라낼 수 있을까? 자기와는 아무상관 없는데... 공동체의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합니다.
수, 2017/07/12- 23:18
131
0
촛불 시민이여! 게으르지 맙시다. 허구헌날 촛불을 들지 못하지만 눈가리고 아웅하는 자들은 용납하지 맙시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선거의 중요성을 알고 모르고 하는 차이이다. 우리는 아직 선진국의 개인의 인권과 권리가 작동하지 않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이 왜 G20에서 주목을 끌었을까요? 그것은 문재인이 아니라 우리의 힘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문재인이 훌륭한 점은 우리의 힘을 인정한다는 점입니다.
수, 2017/07/12- 22:58
134
0

 



샛노란 참외가 바구니채 구덩이 속에 떨어진다. 굴삭기가 흙을 파낸만큼 참외가 쌓인다.가격폭락으로 성주참외가 사흘새 퇴비장으로 버려지고 있다. 노란무덤을 바라보는 농심은 타들어간다. 경북 성주군(군수 김항곤)은 최근 이어진 고온과 마른장마로 인해 지역 특산물인 참외 수확...

 

목, 2017/07/13- 02:07
518
0
중국 동포들이 우리나라에 처음 왔을 때는 너무 반갑고 눈시울에 이슬이 맺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숫자도 많아지고 그들 자체도 그 때 만큼은 아니기 때문에..... 예전의 정치꾼들은 그래도 사방을 둘러보고 거짓말 하는 양심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대놓고 거짓을 말한다. 아니! 금권과 권력을 내세워 반대자를 몰아세운다. 누가 머슴인지 상전인지 헷갈린다. 내 페이스 북 친구 말마따나 쓰봉~ 슬픈 우리의 현실이다. 어찌할꼬! 부지런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더욱 피곤해진다. 시나브로...... 이전에 ‘이재명’은 말했다 주입된 정보가 사람의 생각을 결정한다고.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는 노력은 그래서 필요하다. 기득권을 만만하게 보지 말라! 그들은 이익집단이기에 자기 이익에 너무 충실한 집단이다. 정말 똑똑하다. 그러나 종국은 멸망! 상식적인 사람은 그래도 公同善을 추구하기에..... 그리도 대다수는 기득권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가 촛불을 든 이유가 아닐까? -안철수의 미흡한 사과를 보면서 그리고 박근혜의 후안무치를 보면서_ ps 이들의 공통점은 명백한 증거를 애써 외면하거나 자신에 대한 왜곡이라고 생각한다. 양심없이.....
목, 2017/07/13- 01:10
136
0
[신문/만평]: [7월13일] 평화/통일/국제/사드

목, 2017/07/13- 07:59
172
0
[신문/만평]: [7월13일] 만평/사진

목, 2017/07/13- 07:57
210
0


목, 2017/07/13- 09:06
22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