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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KYC인터뷰] 변화를 위한 상상을! 최융선 KYC 전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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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KYC인터뷰] 변화를 위한 상상을! 최융선 KYC 전국 대표

익명 (미확인) | 월, 2016/08/08- 13:58



서울KYC와 함께하는 분들을 찾아보는 시간 "지금 만나러 갑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다시피 KYC는 본부가 있고,
전국 곳곳에 서울KYC와 같은 지부를 두고 있는 구조입니다.

서울KYC의 오랜 회원이기도 하면서
지난 2월 정기 대의원총회를 통해 2016-2017 KYC 대표를 맡고 계신
최융선 대표님을 서울KYC 회원 분들께 소개합니다.




최융선 대표님, 안녕하세요! 서울KYC 회원 분들에게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가끔 이력을 정리하기는 하지만 … 어색하네요.
대학시절에 어머니께서 용하다는(?) 점쟁이에게 저에 대해서 물었답니다.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사회생활이나 할 수 있을런지?”
부산에서 서울 올라 오니 갈데가 많았어요. 강의실 보다는 전시회, 박물관, 패션쇼, 발레공연, …
멀리 있는 친구들집에 놀러 가는 것도 중요했고.
돈이 필요했으니 아르바이트도 여러가지 바꿔가면서 해야 했고.
그래서 학사경고로 기숙사를 나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점쟁이가 어머니에게 해주었다는 이야기와
MBTI 검사결과로 나온 제가 너무 흡사했습니다. 성격유형이 ESTP랍니다.  
물론 시간이 흐른 지금은 좀 변하기는 했겠지만.
 
긴 설명보다는 직접적인 관찰을 중요하게 여기고,
길게 고민하기 보다는 부딪쳐 보는 것을 선호합니다.

지금은 손에 쥘 수 있는 디지털 도구 덕택에,
메모도 하고 관리도 하기 때문에 실수가 줄어 들었지만,
이순신 장군 처럼 이기는 싸움만 하는 사람이 되기는 힘들겁니다.
찰스다윈은 갈라파고스 같은 곳을 비글호 타고 돌아 댕기다가
위대한 관찰로 수만 년을 상상했잖아요. 저는 그런 삶이 부럽습니다.
 


올해부터 KYC 대표를 맡고 계십니다.
대표로 있는 동안 중점을 두겠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KYC가 우리 시대의 문제를 바라보는 메세지와
변화를 위한 상상을 내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운영체제를 업데이트 하는 정도로는
‘헬조선’에서 변화를 만들기는 어렵다고 여깁니다.
발상과 형식을 바꾸지 않으면 사람들은 도전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당연히 결과도 뻔하겠죠.  

예를 들어, 우리의 헌법과 주민자치는 국민을 위해, 주민을 위해서라고 되어 있기는 하지만
주민의 의해서 변화를 만들어가는 기회와 형식이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회서비스의 제공을 보편적으로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에 대한 참여를 보편적으로 만드는 운영체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을만들기도 주요 활동으로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을만들기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요?
마을에서 주민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소개해주신다면?
 
질문이 재미없네요.
앞서 이야기한 우리 사회의 운영체제를 바꾸기 위해, 주민참여. 주민자치를 돕는 활동을 합니다.
웬만한 드라마나 소설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방법을 어떻게 알려주나요?
“마을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지 묻지 말고 네가 마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 지 찾아 봐라.”
(참조, And so, my fellow Americans: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ask what you can for your country.
_President John F. Kennedy)”

많은 사람들이 청년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청년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 혹은 시민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혼자 쿨하게 살려고 하지 마세요. 헬조선에서는 전혀 쿨하지 않습니다.
선택가능한 보기는 1~4번까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것을 선택하든가 아니면 새로운 보기를 만들든가.
대학 경쟁력을 주장하는 후보보다 지방대학의 존재를 걱정하는 학생회장 후보를 선택하세요.
그것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중요합니다.
청년창업학교에 가기 보다는 권리금이 없는 사회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세요.
그것이 훨씬 창업에 유리합니다.
-
형식과 구조를 변화시키고, 신선한 발상으로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 수 있도록
더 크게, 더 근본적인 상상을 계속해나가야 할 KYC의 과제를
최융선 대표님의 이야기를 읽어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상상과 제안을
서울KYC도 최융선 대표님과 같이 고민해나가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최융선 대표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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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부터 서울KYC에서 상근하고 있는 조인숙 활동가입니다.
상근활동을 시작하자 마자 처음 맡은 프로그램이 이 한양도성원정대 프로그램이었어요.
꼬맹이들은 오로지 우리 첫조카 주원이녀석밖에 모르는 저인데,,,아이들이랑 어른들이랑 하는 프로그램을 해보라닛~!!
아마도 뭐라도 조금 알고 시작했더라면 쉽게 맡아서 하지 못했을것 같아요.
아무것도 몰랐기에 뭣모르고 시작한 한양도성 원정대 프로그램이 어느덧 4년째입니다.

한양도성원정대는 말은 어마무시하지만, 프로그램 내용은 참으로 아기자기 합니다.
서울KYC가 만들어질때 시작했던 역사도 유구한 '좋은친구 만들기'의 핵심~~멘토링 프로그램...
한양도성과 멘토링 프로그램을 접목해서 매년 한뼘씩 성장해온 프로그램입니다.
멘토링과 한양도성...너무 어려웠는데,
이제 4년 해보니, 정서적 지지, 유대감 형성, 그리고 서로의 사회적 성장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이렇게 4년을 진행한 한양도성원정대가 이번주 토요일 마지막 회차를 남겨두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은 한양도성원정대에 참여하고 있는 도성길라잡이선생님들 모습도 소개하고 싶어서 글을 남겨봅니다.



토요일 아침잠을 포기하고 나온 원정대 선생님들...
사무국에서 참가자들에게 나눠줄 간식 70인분과 그날그날 필요한 교구들을 챙겨서 흥인지문 앞으로 갑니다.
과일, 생수와 같은 간식과 필요한 교구등을 아침에 운반하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작년까지는 차있으신 선생님이 직접 운반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는데,
올해는 택시를 이용해서 운반을 합니다. 근데, 택시잡기 너무 어려워요.
짐이 너무 많다며 휙휙 지나는 택시가 원망스러울때까 많았죠.
그래도 요즘엔 카카오택시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장소에 도착하면,
선생님들께 운영메뉴얼(잘 아시죠? 순성놀이때마다 사전답사때 손에 들고 다니던 그 메뉴얼)을 브리핑 합니다.

전체 프로그램과 동선은 제가 총괄을 하죠..
저 혼자는 절대 아니고, 사무국에서 여러의견을 받아서 1차 정리를 하고
그 다음 원정대 선생님들과 평가활동을 통해서 동선과 프로그램 조율을 합니다.
매번 같은 포맷이지만, 내용은 매회 다르게 진행합니다.
그래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모이기도 하고, 흥인지문앞에서 모이기도 합니다.  

그리고선 팀을 나누고 장소를 확인하면, 신한은행 봉사자들이 오기 시작합니다.


봉사자들을 모아서 오리엔테이션을 합니다.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소개, 주의사항 등등을 이야기하는데,
주의사항은 휴대폰 주지말기, 내 자식은 때릴수도 있으니, 내 조카나 친구네 아이처럼 대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에 대해서는 어른도 상처받을수 있다. 미리 예방주사 한대 뙇 놔드립니다.
그리고 따끔하게 주의를 주라고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반드시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해달라는 부탁을 드립니다.
아이들이 보는 세상이 전부일수 있으니, 더 넓은 세상도 알려달라는 부탁도 함께 하죠.
이야기의 주제를 구체적으로 알려주기때문에, 대화가 훨씬 잘 풀립니다.  



아이들과 첫만남...설레기도 하겠지만, 성인입장에서도 긴장될 것예요..
특히나 결혼을 하지 않은 봉사자들은 더더욱 어려울것 같습니다.
물론 아이들도 어렵겠지요..처음보는 형, 언니와 몇시간을 같이 보내야 하는데...


그래서 만나자 마자, 아이스브레이킹을 합니다.
명찰로 짝꿍 찾아 멘토-멘티 맺기는 정말 힘듭니다.
여자아이들은 여자짝꿍 아니면 안하겠다고 저~뒤에서 삐쳐있으면
우리샘들이 달려가서 달래고 얼르고 하여 프로그램에 참여시키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명찰에 미리 표시를 해서 여자봉사자의 명찰과 고학년 여자아이들이 짝꿍이 될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성별이 딱 안맞을수도 있지만, 확실히 그런 불만은 줄어들어 처음부터 엇나가는 일은 확실히 줄어들었습니다.
이것도 다 우리 선생님들의 아이디어~~

서먹한 인사를 마치면, 퐁당퐁당노래에 맞춰 손등치기로 이어집니다. 마지막 가위바위보에서 이긴사람이
아동이든 성인이든 진사람을 지켜줘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고, 문열기 놀이를 합니다.





동동동대문을 열어라~ 남남남대문을 열어라...12시가 되며는 문을 닫는다~
문지기에 걸린 짝꿍은 문옆 좌우의 성벽이 됩니다.
놀이가 진행될수록 성벽이 좌우로 길어지고, 그러면 문을 통과하는것이 쉽지 않아지죠..
마무리는 성곽도 설명하고, 문의 의미도 설명하면서 마무리..
이렇게 한바탕 놀고나면, 멘토-멘티들이 확실히 친해집니다.



이렇게 마음의 벽을 살짝 낮추어가면서, 원정대는 다음 장소로 출발합니다.
지난번에는 동대문 역사관으로 갔습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만들어놓은 지도를 통해 [한양도성에는 누가 살았을까?] 하는 문제를 던져줍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도 설명합니다. 조선은 어떤 나라니? 라고 물으니
한친구가 3.8선이 없는 나라요..라는 뭉클한 답변도 합니다.
그리고선 캐릭터 스티커를 통해 한양도성의 동서남북에 어떤 사람이 살았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아이들도 성인들도 재밌어합니다. 저학년 친구들도 쉽게 집중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나선 나만의 에코백 만들기를 합니다. 수선전도를 색칠하면서 한껏 개성을 뽑내지요.
보현봉에 화산이 터진 모습을 표현하는 친구도 있고, 그림 옆으로 만화캐릭터를 그리는 친구 등등 ...
기발한 그림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인기프로그램, 풀피리 배우기도 있습니다.
정신없이 뛰놀던 아이들도 김완식샘의 풀피리 한곡이면 모두 초집중...
그리고 다들 풍선조각을 들고 소리내기 삼매경에 빠집니다.
다들 어지러울 정도로 풀피리에 도전을 하지요.
이때 필수 준비물은 상품입니다. 상품을 걸고 60명의 멘토-멘티가 도전을 하는데,,,
대체로 소리내는것만으로 만족할 때 즈음, 풀피리 신동 탄생~ 비행기 노래를 풀피리로 불렀습니다.
소리내기도 힘든데..노래까지...풀피리 신동~인정~!!





이렇게 집중의 시간을 이어서, 본격적인 한양도성 탐방에 나섭니다.
성곽구조는 무엇이고, 그리고 여긴 어디고..등등...
그러나, 집에 갈때쯤엔..다들 한양도성에 다녀갔다..정도만 기억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만 남습니다.^^*



한양도성탐방을 마치고 마무리 프로그램으로는 마음나누기를 합니다.
서로 즉석사진도 찍어 나누어 갖고, 서로에게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
예쁜 그림을 그려주는 친구도 있고, 이야기 들어줘서 고맙다는 친구, 또 만나자는 친구
꿈을 이루라고 응원해주는 큰짝꿍의 마음...
요시간이 제일 뭉클합니다.





서로의 마음도 나누고 나서는 점심까지 먹습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미리 지역아동센터에 확인을 하고 메뉴를 정합니다.
대체로 돈까스와 불고기를 먹습니다. 불고기는 꼭 한우로~
사실 자장면에 탕수육 한번 먹이고 싶은데, 60~70명이 한꺼번에 들어갈만한 중국집을 찾기가 어렵네요.  
뭐가 제일 재밌었니 ? 물어보면, 제각기 가방색칠하기, 스티커 붙이기, 문열기 놀이, 풀피리 등등...개성강한 아이들 개성있는 답변





이렇게 프로그램을 마치고 다시 아이들은 센터로 돌아갑니다.
헤어질땐 역시 늘 아쉽습니다. 식당앞에서 짧지만 인상깊은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데,
짧은 시간동안 이런 관계맺음이 신기할 때가 많습니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생뚱맞게도 우리 모두가 외로웠구나하는 생각도 듭니다.(정말 쌩뚱맞죠?)

서로 아쉬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번 프로그램도 잘했구나 할때도 있지만,
한편으론 지속적인 만남이 될수 있도록 하면 더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더 큽니다.

2015년 다같이 돌자 서울 한바퀴, 한양도성원정대
어느덧 마지막 회차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번주 토요일에는 목멱 회현자락 발굴현장과 한양도성의 정문, 숭례문에 가려고 합니다.
얼마나 활발한 친구들을 만날까? 어떻게 좋은추억거리를 만들어줄까?
여전히 어려운 고민입니다.

마지막까지 즐겁고 신나게 [다같이 돌자 서울 한바퀴, 한양도성 원정대] 꼬꼬꼬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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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5/12/0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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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0일(토)~31일(일) 도성길라잡이가 정기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매년 다섯번째주가 있는 달을 정해 1박2일로 다녀옵니다.
강화산성 일주와 고려산부터 해서 해미읍성과 개심사, 수원화성과 남한산성, 공주일대와 공산성 그리고 마곡사
도성길라잡이로서 역량강화도 하고, 또 멤버쉽도 돈독히 하는 도성길라잡이 정기답사!!
올해는 작년에 이어 백제역사와 문화의 상징인 부여를 다녀왔습니다.

4월에 사전답사를 다녀오고 그 다음날 뉴스에 백제문화권 (공주,부여,익산) 세계문화유산등재 확실이라는
기사를 읽고선, 아~ 도성길라잡이와 세계문화유산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구나하면서
2017년 서울 한양도성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겠다는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마지막 백제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부여의 역사와 문화가 어떤 점에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지
그 근거도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부여국립문화재연구소에 계시는 양숙자 학예사님을 모시고,
부여를 샅샅히 살펴보았습니다.

첫 장소는 국립부여박물관.
백제문화의 이동경로를 알수 있는 전시물들.
혼자가면 몰라서 그냥 지나치던 청동검과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저 기와일뿐인 백제유물이
학예사님의 설명을 들으니, 생생한 백제의 역사가 되고, 살아있는 유물이 되었습니다. 


 
부여박물관의 감동은 역시 백제대향로입니다.
국사책에서 배운 세대와 못배운 세대로 나눌 만큼 최근에 발굴된 대향로 !
보는 순간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그리고 바로 박물관 바로 가까이에 있는 발굴지로 가서 기초석만 있는 모습만으로도
당시의 건축물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이동하면서 보니, 파란천막이 씌여있는 곳들이 많았는데, 전부 발굴하는 현장이라고 합니다.


점심으로 연잎밥을 먹고 나니, 떨어진 당이 재충전되었습니다.  
좋은 기분 갖고 능산리 고분군으로 갔습니다. 백제 금동대향로가 나왔던 곳이기도 하고,
부소산성의 외곽성인 나성이 연결되어 있는 능산리 고분군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고분군에 대한 설명도 이어집니다. 원래 백제의 무덤은 사진으로 보는것처럼 봉분이 저렇게 거대하지 않다며,
이는 복원하면서 보기좋게 신라의 형태를 따라하게 된 모습이라는 것과
백제의 무덤형식때문에 많은 도굴을 당하게 되었다는것과 함께 능을 지키는 능사의 모습
그리고 신분에 따른 무덤의 위치등등...
박물관에서 들을수 없는 현장감넘치는 백제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아..이런 지난번 사전답사 때 정림사지는 시간과 동선때문에 이번 답사에는 넣지 않았던 장소인데,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백제의 생활문화를 엿볼수 있고,
백제의 석탑 2기중 하나가 바로 이 정림사 5층석탑이라는 말씀에, 바로 정림사로 향했습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예사 석탑으로 안보입니다.
좀더 꼼꼼하게 보게 되고, 보다보니, 계측장치들도 눈에 보입니다.
한양도성에 요즘 많이 붙여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눈이 오거나 해가 질 무렵에 오면 더 멋지다고 하는데,
다음에 기회되면 다시 한번 찾고 싶은 공간이었습니다.
특히나 기와로 만들어진 기단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것은 석불좌상을 모셔놓은 그 시멘트 덧집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1970년대에 복원된 한양도성의 모습도 생각나고 그랬습니다.

오후 일정의 백미 부소산성으로 갑니다.
백제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장소이고, 도성길라잡이들에겐 포곡식 산성과 테뫼식산성을 만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사비백제의 주거형태와 한성백제의 주거형태를 비교해보고, 판축기술에 대한 강의도 듣고,
현재의 부소산성의 형태가 일제강점기때 이루어진 형태,
일본인들도 자신들 문화의 뿌리가 백제임을 인식하였고, 이 자리에 신궁을 지으려고 했던 사실도 놀랍습니다.
한양도성도 일제강점기때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는데 말이죠.

산성을 돌아 삼천궁녀의 전설이 내려오는 낙화암에도 가보고, 고란사에 가서 젊어지는 약수도 마시고,
산성에 있는 루에 올라 부여일대도 조망해보면서, 부소산성 일주라고 큰마음 먹고 왔는데,
생각보다 여유있게 걸어볼 수 있었습니다.



부소산성이 끝나는 지점에서 만난 관북리 유적.
부소산이 후원으로도 사용되었으니, 당연히 그 앞에는 왕궁이 자리했을 터,
왕국의 기단석과 흔적들, 그리고 당시의 주작대로로 추정되는 공간배치 등등.
기단석 하나에서 당시의 왕궁의 규모를 상상하고,
거리의 흔적에서 당시의 공간배치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저녁식사하는 장소에서 계속 전화가 옵니다. 도대체 언제 도착하느냐고...음식 다 식는다며
재촉전화를 3통 정도 받은 후에 끝난 첫날의 답사.
끊이지 않는 질문은 잠시 후 특강시간에 하기로 하고 해지는 백마강을 뒤로 하고 식사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저녁은 매년 늘 그렇듯 간단하게 산채 비빔밥을 먹고,
이어진 양숙자 선생님의 [우리가 만들어가는 백제왕도] 특강이 이어집니다.
백제문화권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과정에 부여의 유산에 대한 강의와 질의응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교류의 시간~!!
답사에 대한 소감도 듣고, 또 빠질수 없는 바베큐 파티
본 파티를 위해 마장동에서 30년동안 고기장사만 하신 조사장님께 직접 구매한 우주 최고의 육즙을 간직한
돼지목살을 참나무에 구워 먹는...햐~~생각만해도 군침 돕니다.
거기에 재간둥이 최원명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웃음 넘쳐나는 퀴즈와 이야기 시간
맛있는 음식과 좋은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의 열고,오늘의 이 시간을 좋은 추억으로 만들어가는 시간입니다.



둘째날은 조금 여유있는 일정입니다.
아침에는 상콤하게 요가와 접시돌리기로 몸도 풀어주고 궁남지로 갑니다.
선화공주와 호동왕자의 전설이 전해지는 궁남지에 가서
연꽃을 보며 우주만물을 찾아봅니다. 그리고 셀카봉 들고 추억만들기도 해보았습니다.



한결 첫날보다는 여유있는 표정들입니다.
그리고 들뜬 마음도 진정시킬겸 무량사도 이동하였습니다.
백제가람의 특징인 일탑일당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고,
매월당 김시습의 부도와 영정을 직접 확인해보면서
각자 갖고 있는 지식을 서로 나누어주는, 참여와 나눔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무량사를 마치고 유홍준교수가 늘 이곳에 오면 방문한다는 삼호식당에서
산네들네 물씬 풍기는 산채비빔밥으로 점심까지 먹고,
서울로 출발~~
이렇게 1박2일의 도성길라잡이 2015 정기답사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三國史記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은  
백제 온조왕 15년에 지은 왕궁 건출물에 대한 평으로
儉而不陋 華而不侈(검이불루 화이불치)하여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 하였습니다.

부여에서 만난 문화유산들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백제의 미학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가장 기본이 되는
OUV (탁월한 보편성) 아닐까 합니다.

부여를 보면서 높은 건물이 없는 주변경관또한 백제의 문화를 간직할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부여를 톺아보고 나니 한양도성이 많이 생각났습니다.
한양도성의 관리보존과 도성길라잡이로서의 역할 등등 많은 숙제도 안고 온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도성길라잡이 선생님들의 후기도 잠깐 옮겨봅니다.

- 도성길라잡이 7기 유나래 선생님 후기 중 일부
토요일의 알찬 답사 덕분에 2박 3일 처럼 느껴졌던 1박 2일 부여 답사였습니다.
답사의 첫걸음. 부여 톺아보기 에서도 강조한 백제 금동 대향로가 있는 부여 박물관에서 시작했습니다.
항상 보아오던 박물관 초입의 다른 고대 유물과 비슷해 보여 슥 지나칠만도 한데,
선생님의 안내와 같이 걸으니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능산리 고분에서는 많은 유물이 있는 박물관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 발굴이 되었고, 지금의 묘가 왜 이러한 크기가 되었는지 능산리 고분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데,
한편으로는 수학여행으로 능에 오면 아무 설명 없이 차에서 내려 적당히 보기만 했던 그 때,
이러한 안내가 있었더라면 무덤 있는 넓디 넓은 잔디밭이 아니라 조금 더 다르게 기억했을까 싶었습니다.
정림사지도 부소산성도 유유자적했던 궁남지도 무량사도 다시 볼 기회였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고,
개인적으로 이번 답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마지막 PPT 설명이었습니다.
오늘 걸어왔던 유적을 되새겨 보기도 하고, 가지 못한 다른 백제 유적을 살펴보는데
왜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다고 하는지 자세히 보고 이야기를 들으니 알 것 같았습니다.
이제 한성백제의 흔적도, 웅진백제의 흔적도, 사비백제의 흔적도 다 찾아보았으니
다음에는 익산에 한 번 가봐야지 하며 다음 답사를 생각하게 된 부여 답사였습니다.   


-도성길라잡이 7기 박형록 선생님 후기 중 일부
이번 답사는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 해서 더 유익하고 즐거웠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실감한 답사였습니다.
박물관에서도 설명을 들으면서 보니 정말 문화재들이 새롭게 다가오더군요.
청동거울은 그냥 보면 어떻게 얼굴이 보일까 싶지만 물을 묻히면 얼굴이 잘 보인다고 합니다.
청동검은 짧은 검 가운에 길게 홈이 파여 있는데 이렇게 해야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고 합니다.
피가 솟구쳐나와 그 홈으로 흘러내린다고 하네요...흐미...
수막새와 암막새 설명도 듣고...보통은 수막새이고 암막새는 여기서만 발견되었다고 했던가요?
그리고 부여를 먹여 살리고 있는 느낌이 드는 금동대향로..
그리고 백제의 무덤은 산비탈에 많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앞쪽으로만 무덤을 크게 만들면 되니 훨씬 힘이 덜 들었겠지요.
자연환경을 알차게(?) 이용해 수고로움을 던 백제인들의 현명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본 무덤의 크기는 가짜라고 합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의 규모였는지
알 수 없다고 하더군요.
신라의 무덤을 보고 대충 이 정도지 않았을까? 하고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하더군요...일본인들이-.-
그리고 백제 무덤은 문만 열면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일본인들이 참 알차게(?) 도굴을 해갔다고 합니다...
소중한 문화재는 다 어디에 있을까요?-_-
그리고 정림사지 5층석탑을 보러 갔을 때 출입구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정문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주차장을 만드는 바람에 옆 문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이런 일도 생깁니다...
정림사지는 중문, 탑, 금당, 강당이 일직선으로 되어 있습니다.
금당 안에는 은지 쌤 동생과 똑같이 생겼다는 불상이 있습니다.
정림사지박물관도 꽤 볼 만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거겠죠?^^
그리고 부소산성...
여기는 옛 유물이 널려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가져가도 된다고 하시더군요.
아래를 보고 걸어가다 보면 여기 저기서 보인다고.
정말로 여러 선생님들께서 마구마구 발견하셨습니다...그저 신기할 뿐이었지요.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좋은 것은 알아가지고...-.-)
그런데 이곳에 신사를 지으려고 했다는군요.
그래서 땅을 파서 그 흙은 저 멀리...
그런데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다행스럽게도 신사는 세워지지 않았고 부소산성은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파낸 흙이 부소산성 밖으로 나가게 되면서 땅을 이루었고 그 위에 건물이 세워졌기 때문에
어떤 유적지는 꽤 많이 파야 유적지의 흔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낙화암은 3천 궁녀가 떨어져 죽었다는데 해설자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보시면 알겠지만 거기에 어떻게 3천 명이 떨어졌겠어요.
아마 나중에 떨어진 궁녀는 다 살았을 거예요. 사람 위로 떨어져서"
그래서! 확인하러 갔습니다....여기에 3천 명이 떨어져 죽기는 힘들겠죠?
그런데 우리 은지 쌤은 말합니다. "3천 명이 떨어져 죽을 수 있지 않을까요?"
흐음...은지 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고란사로 향합니다. 고란사에 있는 물을 마시면 젋어진다나요?
신윤아 선생님이 묻습니다. "선생님은 10년 전으로 돌아가면 뭐하고 싶으세요?"
제가 대답합니다. "제가 왜 10년 전으로 돌아갑니까? 어떻게 지나온 10년인데...
저는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ㅋㅋㅋㅋㅋ"
이렇게 여기저기 다 보고 내려왔습니다. 내려온 곳이 왕궁터.
학예사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그런 터로 추정이 된다...이 정도셨습니다.
위치를 보면 과연 그런 것도 같습니다.
앞으로 가면 정림사지가 있고 더 앞으로 가면 궁남지가 있습니다. 일직선으로 쭉 늘어서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왕궁 터 앞에 건물들이 있는데 분명히 그 건물들 아래에 뭔가가 있을 거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건물들은 교회와 모텔이었던 것 같은데(제 기억이 맞는지-_-)...건물 철거가 쉬워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옛 부여박물관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쓰이고 있는데 김수근 건축가가 상까지 받은 건물이라고 하는군요..
그런데 건물 모습이 일본 사무라이가 쓰는 투구(?) 같습니다.
철거해야 하는 게 맞겠죠??
저녁에는 해설자 선생님의 프레젠이션까지 보고 질문도 이어집니다.
프레젠테이션 하기도 전부터 이것저것 질문을 해댔습니다.
선생님이 많이 피곤하셨을 거예요...-.-
제가 물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한국에서 문화가 전파된 것을 인정하나요?"
선생님이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럼요...인정합니다. 정치적으로는 뭐 아닐지 모르겠지만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학자들이 이곳에 옵니다."
역시...그렇군요...
그리고 또 묻습니다.
"부여 자체가 문화유적지으로 된 것에 대해 주민들의 불만은 없나요?"
선생님이 대답해 주십니다. "당연히 있지요...이것저것 제약이 많으니까요"
이 또한 역시...그렇군요...
그렇게 질의응답까지 마치고 답사도 거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다음 날은 궁남지로 향했는데 연꽃이 여기저기 보였습니다.
여름이 되면 훨씬 더 많은 꽃들이 필 것이고 그러면 정말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하겠지요?^^
그리고 무량사에서는...아, 어떤 보살님께서 저희를 부르시더니 사과와 수박을 주셨습니다.
"보살님, 감사합니다~성불하세요~~~"
그리고 저희는 마지막으로 무량사 앞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유홍준 교수가 추천했다는 그 맛집!
맛은! 정말 좋았습니다 ㅋㅋㅋ 맛있었어요~
그곳에서는 표고버섯도토리묵(?)도 있었는데 정말 맛있었어요~이거 사오신 선생님들도 계셨는데
많이 사신 분께는 쥔장이 선물로 막걸리도 주셨다는 ㅋㅋㅋㅋㅋ
쌤들이 여기서 폭풍 쇼핑을 하신 듯이요 ㅋㅋㅋ
우미정 쌤에게 물었습니다
"쌤, 식당 쥔장에게 커미션 얼마나 받으셨어요?ㅋㅋㅋㅋㅋ"

-도성길라잡이 7기 신윤아 선생님 후기 일부 -
설레는 마음으로 선생님들과 함께한 부여답사가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네요.
일박이일동안의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이 날아가기 전에 속닥속닥 남겨봅니다??

1)국립부여박물관과 금동대향로

: 부여에 도착해서 향한 곳은 국립부여박물관이었습니다. 드디어 "금동대향로"의 실물을 마침내 보게되었습니다.
우아하면서 아름다운 백제인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한눈에 보여준 감동적인 문화재였죠.

2)정림사지 오층석탑
:우리가 하마터면 지나칠뻔 한, 유홍준 교수님께서 극찬을 하셨다는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백제의 탑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문화재였습니다. 석탑 뒤의 불상집(?)이 NG였지만요.

3)부소산성 일대
:한양도성을 알게 된 후 변화가 있다면 그동안 지나쳤던 우리 주변에 있던 "성"에 관심이 생겼다는거죠.
부소산성에서 바닥을 두리번 거리면서 기와를 비롯한 백제의 문화재 조각조각을 찾는 즐거움과
나무가 우거져 숲을 산책하면서 즐거움을 준 힐링시간이었습니다.

4)궁남지
:백제무왕과 선화공주 지지파(?)로서 궁남지를 둘러보며 몇백년전 서동요가 울려퍼졌을때를 생각하면서
셀카봉 장인 이영란쌤과 함께 궁!남!지!를 열심히 외치면서 빙빙 돌았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5)무량사
:한적하고 조용한 무량사를 걸으면서 이곳에 있으면 절로 수행이 될 것같은 고즈넉한 사찰이었습니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면서 말이죠.

그동안 저에게 백제는 역사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양숙자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백제를 만나니 그동안 멀게만 느껴지던
백제를 알게 된 유익한 시간이었고, 부여 곳곳을 선생님들과 함께 산책하듯이 걸으니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일상 속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정기답사를 준비한 준비팀 이상인, 김재훈, 이혜선, 그리고 사무국선생님

사전답사와 여러차례의 준비회의를 통해 보다 알찬 시간들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 다녀오라고 많은 후원해주신 도성길라잡이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좋은 선생님을 모실 수 있도록 섭외를 도와주신 서울시 한양도성도감과 김명옥 주무관님 도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부여를 통해 백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신 부여국립문화재 연구소의 양숙자 선생님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한양도성에 오시면 저희가 버선발로 나아가 맞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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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5/06/10-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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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의 기억들이 얽혀있는 도시들을 방문하고 있는
서울KYC 근현대사아카데미가 7월 방문한 곳은 군산입니다.

군산은 일제강점기 전라도 지역 평야에서 수확되어 일본으로 수탈해가는 쌀이 모이는,
그야말로 쌀수탈의 전진기지라 부를 수 있는 곳입니다.
일제강점기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하기도 했던 군산에는
당시 적산가옥을 비롯해 일본식 건물들이 상당히 남아있는데요,

군산에 일제가 남긴 흔적을 살펴보며
'일본이 철도와 같은 근대 시설의 토대를 마련함으로써 조선의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구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답사에는 군산시 해설사 심규순 선생님과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 김재호 선생님이 함께했습니다.



군산에 도착해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경암동 철길마을입니다.
제지원료를 역까지 실어나르기 위해 사용된 철길인데요,
회사 근로자들이 철로 바로 옆에 집을 지어 살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마을입니다.
2008년까지는 기차가 운행되었으나 지금은 다니지 않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 철로는 일제강점기에 쌀을 군산항까지 실어나르기 위한
수탈의 길로 사용된 내력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을 방문해서 군산의 근대를 잠시 훑어보았습니다.
군산에는 이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집들도 많지만,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새로 적산가옥으로 개조할 예정인 곳들도 많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군산의 모습과 더불어 군산에서 일어났던 민족운동, 사회운동을 소개하고
1930년대 거리를 그대로 재현해놓은 듯한 시설을 통해 군산 근대 역사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모형으로 수탈하는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부잔교(뜬다리) 또한 수탈의 상징 중 하나입니다.
부잔교는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서 큰 배들이 항구에 정박하기 힘들기 때문에
물높이에 따라 조절할 수 있도록 한 다리인데,
이 다리를 통해 쌀이 옮겨져 일본으로 반출되었습니다.
항구 주변에는 굶주린 사람들이 쌓여 있는 쌀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보초를 세웠다고 합니다.

밖으로 나가 부잔교의 모습도 직접 확인해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옛 군산세관입니다.
이곳 또한 일제가 쌀을 수탈하던 창구로 이용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908년부터 1990년대까지 세관으로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도 돌아보았습니다.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18은행은 일제 식민지 지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금융시설입니다.
쌀 반출 자금과 토지 강매 등 수탈한 자금이 이 은행들에서 관리되었습니다.
"이 금고가 채워지기까지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만 했다"는 문구가
이곳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나타내줍니다.



다음으로 임피역에 도착했습니다.
일제는 호남 평야의 쌀을 운반하기 위해 군산선을 건설했는데요,
군산선의 간이역인 임피역은 호남 지역에서 수확한 쌀을 군산항으로 옮기기 위한 중간 거점이었습니다.
해방 후 돌아오지 못한 가족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모습 또한 임피역이 가지고 있는 기억입니다.
이 역을 스쳐 지나갔을 많은 식민지 시대 사람들의 모습들이 떠오릅니다.



일본 본토에 낮은 가격으로 쌀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일본인 지주들은 농민들에게 높은 소작료를 요구했는데요,
1927년에는 터무니 없는 소작료를 요구한 농장주에 대항해 수 백명의 농민이 들고 일어난
옥구농민항일항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1919년 만세운동, 20~30년대 총파업투쟁 등 군산에도 저항 운동은 지속되었습니다.





군산의 대표적인 일본인 대농장주는 구마모토 리헤이입니다.
현 발산초등학교 한편에는 정원에 마구잡이로 가져다 놓았던
발산리 5층 석탑, 석등 등 여러가지 문화재가 남아 있고
귀중품을 보관했던 금고 건물도 한켠에 텅 빈 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견고한 벽, 두꺼운 철제 문과 숨겨진 가파른 계단이 이 건물의 용도를 말해줍니다.



근처에는 1920년대 구마모토에 의해 별장으로 지어진 가옥이 있습니다.  
당시 구마모토가 불러온 이영춘 박사가 해방 후에도 이곳에서 계속해서 거주하며
우리나라 보건 분야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겼기 때문에 이영춘 가옥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국사에 들렀습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입니다.
대웅전 뒷편에는 일본식 대나무숲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동국사 한 켠에는 군산 평화의 소녀상이 있습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분들을 뜻하는, 서 있는 소녀상입니다.
소녀상 뒤에는 일본 조동종의 참사문, 즉 참회와 사죄의 글이 적혀 있는데요,
메이지유신에서 태평양 전쟁에 이르는 시기
일본의 지배 야욕에 불교가 가담한 행태에 대해 아시아인들에게 사죄하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거점이었던 군산을 돌아보았습니다.
함께한 민족문제연구소 김재호 선생님은
일제에 의해 계획적으로 수탈의 도시로 만들어진 군산이
식민 유산에 대해 근대문화유산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우려한다면서,
관광객을 모으기 위해 새로운 건물조차도 일제식으로 만드는 등
식민지 근대화론의 긍정적 해석이 될 수 있는 오늘날 군산의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수탈을 위해 만들어지고 사용된 철길, 항만시설, 은행, 세관,
조선인들에게 높은 소작료를 징수하고 대농장을 가졌던 일본인 지주...
군산이 가지고 있는 유산은 대체로 일제강점기 수탈이라는 잔혹한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그대로 남아있는 건물과 시설을 보면서 역사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도시가 가지고 있는 유산을
지금 시대에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해야 할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근현대사아카데미는 8월에도 계속됩니다.
시민들이 만든 대통령, 시민들과 많은 것을 나누고자 한 대통령이 머물던 곳,
가장 최근의 역사를 품고 있는 김해를 방문해 참여민주주의를 생각해봅니다.


참가신청하기  http://goo.gl/forms/UYIq1Bxz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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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6/07/2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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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KYC 회원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  
서울KYC 회원인터뷰 "지금 만나러 갑니다."

6월에는 어느분을 소개해드릴까 고민하던 중
서울KYC의 다양한 영상을 만들어줬던!!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서울KYC의 20대 회원인 이분이 생각났습니다~

누군지 궁금하시죠? 지금 만나보시죠!



류승진 회원님~ 안녕하세요! 본인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23살에 KYC를 만나, 20대를 함께 보내고 어느덧 29살이 된 류승진입니다.
저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일을 주업으로 삼고 있지만
왠지 요즘은 돈 될 만한 예쁘고 샤방샤방한 영상만 만들고 있네요..
얼른 돈 안 되고, 칙칙하고, 아파해도 유쾌하게 공감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ㅠ

어떻게 서울KYC를 알게 되었고, 회원이 되었는지 궁금해요.

KYC는 저와 운명 같은 만남을 가졌죠.
KYC의 전 대표님이었던 천준호 대표님께서 영상 만드는 일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해주셨어요.
그 때 한참 다큐 꿈나무로써 여러 세상들을 만나고 발견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시기여서 무조건 좋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2010년에 KYC의 핵심 사업이었던 ‘한국청년상’ 홛동을 함께 하였습니다.
주로 명사들이 이야기하는 ‘청년’에 대한 인터뷰 영상을 제작하였었죠.
그 때 만났던 분들이 역사학자 이이화선생님, 고재열기자, 개그우먼 김미화, 시골의사 박경철,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였던 박원순시장 등등
알록달록하고 즐거운 분들 많이 만났었던 것 같아요.
100만원 주고 샀던 중고카메라 하나와 삼각대만 달랑 들고 촬영했었는데
인터뷰 한 분들이 당시 저에게는 큰 분들이어서 한편 한편 긴장하면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 그 영상들은 지금도 유튜브에 ‘한국청년상’을 검색하면 나옵니다. ㅋㅋ)

이 후 KYC는 저의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영상들을 함께 만들자고 제안해주셨어요.
분명히 벅찬 부분도 있었지만 그 때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땀 빼면서 만들었던 영상들이 있어서
즐겁게 20대를 보낼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나둘 영상을 만들면서 서울KYC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ㅎㅎ



20대 파티 활동을 되돌아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요?

20대파티 활동은 한국청년상 활동이 끝나고 같이 했던 활동인데,
으하하 그 당시에 정말 저는 진지하게 카드라이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었습니다.
체리의 주된 활동 중 하나가 우리들의 담론을 만들어가는 것이었는데요.
현재의 우리나라보다 청년이슈들이 반짝거렸었고, 우리는 카드라이팅을 통해서 우리들의 담론을 만들어갔었습니다.
우리가 모여서 포스트잇에 끄적인 단어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부분이 되게 멋졌어요.
그런 광경을 카메라로 한컷한컷 담는 것에 보람도 느꼈었구요.
가끔 하드정리를 하다보면 체리활동을 했었을 때의 영상들을 보는데 우리는 참 진지했고 유쾌했던 것 같아요.
세상을 엄청 바꾸고 싶었고요. ㅋㅋ
우리가 한 장 한 장 써나갔던 카드라이팅.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지금이라도 같이 할래요? (ㅋㅋ)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달라진 점이 있었나요?

그냥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그리고 영상을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좋았고요.
분명히 그 영상들은 유튜브에서 조회 수 100을 겨우 채우거나 아니면 그마저도 채우지 못하고
잊혀질 수 있었겠지만 긴 호흡으로 만드는 다큐멘터리 영화보다 빠른 피드백이 있는 영상들을
만들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기억이 있어서 요즘 제가 만드는 상업적인 영상들도 제 숨결을 담아서 만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때 아마 영상을 만드는 저의 태도를 만들어갔던 것 같아요.
아무리 작은 영상도 그걸 바라보는 순간에 같이 즐거울 수 있는 영상.
같이 기억할 수 있는 꺼리가 하나가 더 생겨도 좋은 영상. 그런거요.  



매년 순성놀이 홍보 영상도 만들고, 당일에도 함께 순성을 하며 촬영 및 영상 편집을 담당해주고 계신데요.
순성놀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추억은 무엇일지 궁금해요~


순성놀이는 정말 힘듭니다.ㅠ
하루 동안 산을 4개를 넘어야 하고, 하루 만에 촬영편집 모든 과정을 시간 내에 마쳐서 함께 보아야 하죠.
그런 어마어마한 과제를 던져준 하준태 대표님이 미웠습니다. 2012년 처음 촬영했을 때의 악몽이 선합니다.
분명 힘든 여정. 각오를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저에게 추억이라면 추억입니다.
그런데 영상 만든다는 건 봐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할 수 있는 건데,
하루 동안 4개의 산을 넘고 서울한양도성을 순성한 사람들이 함께 고생한 시간의 영상을 볼 때의 쾌감이 있어요.
만드는 과정에서도 쾌감과 성취감이 있구요.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게 되는거 같아요.
이쯤 되면 좀 중독이 되가는 거 같기두 하구요. ㅎㅎ

올해에도, 또!! 순성놀이를 함께 하게 될텐데,
이번 순성놀이에는 '이런 영상을 더 많이 담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이건 작년부터 생각한 건데, 개인을 담고 싶어요.
순성놀이에 참여하는 사람들 의외로 다 각자의 사연을 갖고 순성을 하더라고요.
산하나 넘을 때 서울의 어떤 길을 걸을 때 갖는 각자의 느낌과 생각이 있을거에요.
그런 부분들을 영상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걷는 모습에 집중했는데, 올 해에는 각자가 품은 이야기들을 속속 발견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땅도 프로덕션'을 만들어 활동하고 계신걸로 아는데
어디에 있는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알려주세요!


지금 저는 수원에서 땅도프로덕션이라는 이름으로 영상제작프로덕션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영상은 물론이고, 미디어교육과 다큐멘터리 제작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일단 지속가능하게 영화를 제작하고 싶어요. 그래서 버티기 위해서 조그만 알바를 하다보니 공간이 필요했고,
냅다 간판먼저 달고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혼자 했는데 이젠 2명이 되었어요.
작은 규모이지만 함께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친구가 생겨서 되게 두근거리는 요즘이에요. ㅎㅎ

아무리 사소한 영상이어도,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역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은 누군가의 역사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구요.
단순히 기록하고, 재연하는 일일 수 있지만 지금 내가 촬영하고 구성하고, 편집하는 이 영상이
그 사람의 한 순간을 간직 할 수 있는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인들의 사소한 영상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금은 시작하는 단계인 만큼 아직 만들고 싶은 것도, 보여드리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앞으로 기대를.... ㅎㅎㅎ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관심갖고 하는 활동이나 해보려는 활동?
영화감독으로서 다시 뭔가를 해볼 계획은 없으신지?ㅎㅎ


당연히 영화는 계속 만들고 있어요. 다만 땅도프로덕션을 만들면서 속도가 많이 더뎌졌죠.
영화작업도 개인의 역사를 탐구하는 것에 하나의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현재는 어떤 할머니와 함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벌써 그 분을 알고 지낸 시간이 3년이 되었네요.
이젠 정말 스스럼없는 관계가 되었는데, 오히려 관계가 가까워지니까 어려워진 부분도 없진 않네요.

곧 영화를 완성시킬 수 있을 겁니다. !!



류승진 회원에게 서울KYC란 _______이다?

자양분이 아닐까요?

사실 지금 수원에 와서 살게 된 것도, 이곳에서 사무실을 차리게 된 것도 KYC의 힘이 작용했었어요. ㅎㅎㅎ
서울KYC에서 간사로 활동하다 현재에는 수원 KYC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최융선 대표님께서
재작년쯤 수원에서 뭔가를 함께 해 보자고 제안해주셨어요.
그래서 아무 연고도 없던 수원에서 정말 즐겁게 활동 할 수 있었죠.

이런 식으로 어떤 계기마다 동기부여가 되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20대를 함께 보낸 KYC가 소중할 수밖에 없죠. 고마워요 KYC!

마지막으로 서울KYC와 회원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KYC가 있어서 행복한 사람들이 분명 있잖아요. 우리 함께 더 행복할 수 있도록 힘냅시다!!


한국청년상, 체인지리더, 20대파티, 순성놀이, 그리고 수원에서의 다양한 활동까지~
20대를 함께 보낸 KYC가 소중하고 고맙다는 류승진 회원님!
KYC도 류승진 회원에게 참 많이 고맙습니다!!

순성놀이때 카메라를 들고 있는 류승진 회원이 보인다면~
반갑게 인사 나눠주세요.
그리고 곧 완성될것 같다는 영화 소식도 다시 전해주시길!

회원인터뷰에 정말 흔쾌히~ 응해주신 류승진 회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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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6/0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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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임 첫날에는 별도의 유인물을 배포함으로 교재는 준비하지 않아도 됩니다.
* 문의 : 사무국 _ 02-2273-2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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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7/07-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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