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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교수 투신자살은 교육부의 타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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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교수 투신자살은 교육부의 타살이다”

익명 (미확인) | 목, 2015/08/20- 18:21

대학 민주화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다.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
– 고 고현철 교수 유서 중

▲ 고 고현철 교수 빈소

▲ 고 고현철 교수 빈소

8월 17일 부산대 국문과 고현철(54) 교수가 대학본관 3층 국기게양대 테라스에서 투신해 숨졌다. 고 교수는 투신 당시 “총장은 약속을 이행하라”고 외쳤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평소 성실했던 학자이자 시인이였던 고 교수가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이행하라고 했던 약속은 ‘총장 직선제’였다.

김기섭 부산대 총장은 지난 2011년 10월 직선제로 치러진 총장선거에서 “총장직선제를 목숨걸고 사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하지만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고 지난 6월 차기 총장선거를 ‘간선제’로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고 교수가 투신한 날 부산대 교수회는 집단 단식 농성을 진행하고 있었다.

고 교수는 2쪽 분량의 유서에서 “직선제로 선출된 부산대 총장이 처음의 약속을 여러번 번복하더니 최종적으로 총장직선제 포기를 선언하고 교육부 방침대로 일종의 총장간선제 수순밟기에 들어갔다”며 “부산대는 현대사에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 중 하나였는데 참담한 심정일 뿐”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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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교수는 또 “대학의 자율성은 없고 총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부터 오직 교육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라면서 “이는 민주주의의 심각한 훼손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 대학과 사회 전반적으로 너무 무뎌져 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는 말을 유서에 남겼다.

교육부, 재정지원 무기로 일방적으로 ‘직선제 폐지’ 밀어부쳐

총장직선제는 1987년 민주화 항쟁의 결실로 1988년부터 전국 국공립대에 순차적으로 도입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시절, 교육부는 직선제가 파벌형성, 금권선거 등 폐단이 많다며 ‘총장직선제를 폐지’하라고 대학들에게 요구했다. 그리고 2012년 1월 총장직선제 폐지를 골자로 한 ‘2단계 국립대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2단계 방안의 핵심은 총장직선제 폐지 여부를 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하는 것이다. 교육부는 “재정지원 연계를 통해 총장직선제를 대학이 자율적으로 폐지하도록 유도한 것”이라고 했지만 국고지원으로 운영되는 국립대 입장에선 사실상 따를 수밖에 없는 강제적인 방법이었다.

2012년 실제로 교육부는 재정지원사업 가운데 규모가 큰 ‘교육역량강화사업’ 평가지표에 총장직선제 폐지 여부를 5%반영했다. 그 결과 총장직선제를 폐지하지 않은 대학 중 전북대를 제외한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목포대 등 4개 국립대가 2012년 이 사업에서 탈락됐다. 한 국립대 관계자는 “부산대, 경북대와 같이 매년 사업비를 받아오던 거점 국립대가 이 사업에서 탈락했다는 건 총장직선제를 폐지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모든 국립대에서 총장직선제가 폐지됐다. 총장직선제가 도입 20여년 만에 전국국공립대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총장 선출 자율 공언’ 취임 후 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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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정책과는 다르게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교과부가 총장직선제 폐지 등에 대해 일률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오히려 더 강하게 총장직선제 폐지를 밀어붙였다. 2013년 교육부는 전국국공립대에 수차례 공문을 보내 “직선제 요소가 남아있는 학칙, 세부규정 등 관련규정을 모두 삭제하라”고 압박했다. 직선제를 재도입할 여지까지 없애겠다는 뜻이다.

교육부는 또 총장 후보를 선임하는 추천위원회 위원을 이른바 ‘로또(무작위) 추첨’방식으로 하라고 종용했다. 2014년 3월 교육부가 전국국공립대에 보낸 공문을 보면 “무작위 추첨 방식이 아닌 투표나 추천 등을 통해 총장임용추천위원회를 선정하는 방식은 직선제 요소가 있으니 학칙, 시행세칙, 자체규정 등에서 이런 요소를 모두 삭제하라”고 명시돼 있다.

김재호 부산대 교수회 회장은 “교육부가 말하는 간선제는 제대로된 간선제도 아니고, 일종의 ‘로또’식으로 으로 교수들의 대표권한을 전혀 갖지 못하게 하는 방식”이라며 “교육부는 총장선출 제도와 관련해 규정 하나하나를 간섭했고, 대학은 완전히 자유를 잃었다”고 비판했다. 박홍원 부산대 교수회 비대위 대변인도 “문제의 핵심은 직선제냐, 간선제냐가 아니고 법이 정한 대학의 자율성을 정부가 강압으로 침해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간선제로 선출해도 이유 없이 ‘임용 제청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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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는 또 간선제로 총장 후보자를 선출한 대학에 대해서도 별다른 이유없이 임용제청을 거부하고 있다. 경북대, 공주대, 한국방송통신대는 교육부가 총장 임용제청을 거부해 수개월째 총장 자리가 공석인 상태다.

일각에선 “정부 입맞에 맞는 사람을 앉히기 위해 총장선출제도를 바꾸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교육부는 한국체대에 지난 2년간 4번이나 총장 임용제청을 거부했지만, 친박계 김성조 전 새누리당 의원이 다섯번째 후보자로 올라오자 임용을 제청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임명했다.

박홍원 부산대 교수회 비대위 대변인은 “국립대는 학칙개정 등 모든 권한이 총장 한 사람에게 집중돼 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대학 구조개혁 등 정책에 불만이 있는 교수들이 많은데, 정부로선 총장 1명만 컨트롤 하면 대학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직선제로 당선된 총장을 컨트롤 하기에는 정부로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총장 선출제도를 바꿔 보다 쉽게 대학 규정 등을 개정하려고 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투신한 고 교수가 소속된 부산대는 정부 방침을 따르지 않았다. 지난 2012년 직선제 내용을 학칙에서 폐지했던 부산대는 2014년 교수 총투표를 실시해 직선제와 간선제 실시 여부를 다시 정하기로 했다. 교수총투표 결과 84%의 압도전인 비율로 ‘직선제’가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김기섭 부산대 총장은 올해 6월 약속을 어기고 ‘간선제’추진을 선언했다. 김 총장은 고현철 교수의 투신 당일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그리고 부산대는 19일 부산대의 총장선출제도를 ‘직선제’로 재추진하기로 교수들과 합의했다.

황우여, “간선제 추진했지만 강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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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지난 19일 예결위 회의장에 참석해 “고현철 교수의 죽음에 유감을 표한다”면서도 “간선제로 대학의 모든 의사를 종합하는 방법을 직간접적으로 추진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강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 교수단체들은 “이 사건은 결국 민주주의와 대학의 본질을 파괴해 온 대한민국 정부가 자행한 사회적 타살”이라며 “교육부는 고 교수의 뜻대로 총장직선제 뿐만 아니라 대학을 반교육적 평가체제로 일방적으로 몰아가고 있는 폭력적인 정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수개월째 별다른 이유없이 총장 임용제청을 거부했던 교육부를 상대로 경북대 김사열 총장 후보자가 제기한 행정소송해서 김 후보자가 8월 20일 승소했다. 앞서 공주대 김현규 총장후보자도 교육부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1심, 2심 모두 승소한 바 있다. 한국방송통신대 류수노 후보자는 1심에선 승소했으나 2심에서 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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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있는 김련희 씨의 가족들이 CNN을 통해 김 씨를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촉구했다.

CNN은 9월 24일 오전 평양에서 김련희 씨의 딸과 남편을 취재한 영상과 그 영상을 보고 오열하는 김 씨 모습을 방송했다. CNN은 뉴스타파의 보도 영상(나를 북으로 보내주오)을 인용해 김련희 씨가 간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중국으로 간 과정과 브로커의 권유로 치료비 마련을 위해 한국에 들어온 과정,, 그리고 북으로 보내줄 것을 요구한 뒤 여권을 발급받지 못하고 결국 간첩 혐의를 받게된 과정을 보도했다.

김련희 씨의 딸 리연금(21세) 씨는 CNN 보도에서 “왜, 왜, 왜 어머니가 돌아오지 못합니까? 왜 우리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나요?”라고 되풀이해 물었다. 남편 리용금 씨는 아내에게 ‘부모와 딸, 남편, 그리고 사회주의 조국이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CNN은 아내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녹화하면서 남편 리 씨가 여러 번 울음을 터트렸다고 전했다. CNN은 평양에서 김련희 씨 가족을 인터뷰한 영상을 한국에 있는 김 씨에게 보여주고, 다시 김련희 씨의 영상을 북의 가족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김 씨 가족의 TV 상봉을 주선했다고 밝혔다. 김련희 씨는 9월 24일 뉴스타파에 “CNN 기자가 북한 가족들을 보여주는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인터뷰 후 이틀 동안 앓아 누웠다”며 4년 만에 겨우 가족들 모습을 영상으로 보게 된 안타까움과 충격을 전했다.

이번 인터뷰는 북한 당국이 CNN에 요청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당국은 최근 대외 창구를 통해 김련희 씨 송환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보도에 따르면 북한의 대외용 웹사이트 ‘조선의오늘’은 23일 한국이 “김련희의 호소와 요구를 한사코 외면하고 그의 공화국에로의 송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도 “김련희를 본인의 강렬한 호소대로 공화국의 품으로 즉시 돌려보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반면 통일부는 9월 22일 ‘김련희 씨를 북한으로 보낼 수 없다’고 밝혔다. 통일부 관계자는 김 씨가 탈북과정에서 자유 의사를 밝혔으며 그 조사과정을 뒤엎을 만한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통일부의 이런 입장이 충분한 조사를 통해 나온 정확한 입장인지는 의문이다. 뉴스타파는 이미 김련희 씨가 탈북자 대열에서 이탈해 북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동료 탈북자 취재를 통해 밝혔다. 또한 대구 고등법원 제11형사부(재판장 이범균)도 2015년 5월 18일 김련희 씨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항소심 판결문에서 “대한민국에 입국해 짧은 기간에 많은 돈을 벌어 중국으로 돌아와 재입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입국하자마자 국가정보원을 찾아 재입북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당국으로부터 재입북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아 피고인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답변을 듣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 김련희씨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항소심 판결문 중

▲ 김련희씨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항소심 판결문 중

북한이 김련희 씨 문제를 공식 제기하고 나왔고 뉴욕타임스, CNN 등 유수한 외신들이 김 씨 문제를 잇달아 보도함에 따라 김 씨 문제는 국제적인 인권 문제로 확대돼 가는 양상이다. 국제 여론이 주목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기존의 도식적인 입장을 고집한다면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해 왔던 정부의 입장과는 배치되는 태도라는 비판을 초래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목, 2015/09/24-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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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 오전 진도 팽목항. 따스한 햇살이 ‘기다림의 등대’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물살은 잔잔했고 갈매기들의 날갯짓도 한가롭기만 했다.

팽목항을 떠난 지 2시간 남짓. 조도와 관매도, 대마도 등을 두루 거친 여객선은 뱃머리를 동거차도로 돌렸다. 잠시 후 멀리서 대형 크레인선 한 척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월호 인양 작업을 하고 있는 중국 상하이샐비지의 ‘다리(大力)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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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눈앞으로 다가선 동거차도. 저 섬 꼭대기 어디쯤엔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아버지들이 9월 초부터 머물고 있다. 세월호 인양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감시하기 위해서다.

동거차도. 세월호 참사 당시 20여 분 만에 모든 주민들이 구조를 위해 사고 해역으로 배를 몰고 나섰던 곳. 이날은 모두가 고기잡이에 나섰는지 인적이라곤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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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이 미리 전화로 알려준 대로 길을 찾아 나섰다. 나무들에 묶어둔 노란 리본을 따라 올라오면 될 거라고 하셨다. 필요한 물품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생수만 챙겨달라고 하셨지만 취재진은 2리터 들이 생수 12통과 복숭아 한 박스를 들고 갔다. 즉석 햇반과 라면 등 인스턴트 식품으로만 버티고 있을 아버지들에게 제철 과일이라도 맛보게 해드릴 요량이었다.

그러나 방송장비까지 죄다 메고 산길을 오르려니 손이 부족했다. 그때 노란 티셔츠 차림의 중년 남성이 손을 흔들었다. 단원고 2학년 10반 김민정 양의 아버지였다. 산마루에서 배가 들어오는 걸 보고 마중 나오셨다고 했다. 취재진이 가져온 짐 일부를 지게에 싣고 매더니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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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진 수풀 사이로 난 길은 비좁기만 했다. 세월호 인양 감시 천막을 세우기 위해 본래는 없던 길을 낸 것이었다. 그리고 길은 가팔랐다. 짐이 많은 탓도 있었지만, 거의 5분 마다 한 차례 씩은 쉬며 올라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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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20여 분 만에 산마루에 다다랐다. 파란 비닐 천막 앞에서 아버지 두 분이 망원경을 통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망원경이 향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망망대해 위로 중국 크레인선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직선 거리로 1.6킬로미터. 배를 타고 오며 봤을 때보다 훨씬 가깝고 선명한 모습이었다.

아버지들은 망원렌즈 등 촬영장비를 동원해 크레인선을 24시간 모니터링하고 있다. 특이사항을 일지에 꼼꼼히 적어 녹화 파일과 함께 매일 안산의 4.16가족협의회 사무실로 보낸다. 가족협의회는 당초 인양 기간 내내 현장 크레인선과 바지선에 동승하도록 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해양수산부는 이를 거부했다. 외딴 섬 꼭대기에 감시 천막을 세울 수밖에 없던 이유다.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얘기죠. 완전히 유가족을 배제시켜놓고 인양을 한다는 건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가 없어요. 이 정부가 그만큼 우리한테 숨길 게 많다는 얘기 밖엔 안 되는 거죠.
– 신창식 / 고 신호성 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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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은 망원렌즈를 통한 영상 촬영과 파일 전송 방법 등을 단기 속성으로 배운 뒤 이곳으로 왔다. 그러나 아무리 배율을 높여 감시해본다 한들 크레인선 위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 정도나 볼 수 있을 뿐, 실제로 어떤 작업이 얼마나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까지를 확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감시단 운영을 계속하는 건,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여기서 인양에 관한 어떤 중요한 자료를 입수한다는 것보다는, 우리 가족들이 이렇게 지켜보고 있으니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작업을 하라는 일종의 압박 성격이 더 크죠. 처음부터 그런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고요.
– 신창식 / 고 신호성 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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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은 3명씩 5개 조로 편성돼 1주일 마다 교대로 감시 활동을 벌인다. 한 번 들어오면 1주일 간 천막 하나에 의지해 먹고 자는 강행군이다. 몸이 힘든 건 물론이지만 더 큰 고통은 아픈 기억을 불가피하게 호출해야 한다는 것. 아이들이 숨져간 마지막 현장을 온 종일 바라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버지들이 이곳에 도착해 처음 든 느낌은 ‘울분’이었다.

인양 감시단 꾸리자고 했을 때 솔직히 처음엔 망설였죠. 세월호 침몰 장소를 또 온다는 것 자체가 싫기도 했고요. 그런데 어차피 질 수밖에 없는 짐이라고 생각하고 온 건데, 막상 와서 보니까 너무 한이 맺히는 거예요. 침몰 장소가 섬하고 이렇게 가까운지는 몰랐어요. 불과 2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인데 한 명도 구조를 못했다는 게…
– 이기용 / 고 이태민 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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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16일 호성이 아빠는 둘째 아들을, 태민이 아빠는 세 남매 중 맏이를, 민정이 아빠는 맏딸을 잃었다. 이후 520여 일이 지나는 동안 국회에서, 광화문에서, 청운동에서 함께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들이 떠나간 현장을 함께 지켜보고 있다. 이러는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었다.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를 할 수도, 친척들을 만나서 얘기를 할 수도 없어요. 서로 속내를 얘기를 할 사람은 우리 가족들 밖에 없어요. 내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 주고, 또 나한테 ‘당신 이러고 다니면 안 돼’ 이렇게 지적도 해줄 수 있는 건 우리 가족들 뿐이에요. 딴 사람들은 우리 얘기도 들어주려고 하지도 않고, 또 내가 하고 싶지도 않고요.
– 신창식 / 고 신호성 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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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차도의 밤은 육지보다 훨씬 일찍 찾아왔다. 저녁 6시가 조금 넘자 하늘은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멀리 크레인선에서는 불빛이 켜졌다. 주변 모든 사물들이 어둠에 묻히고 세월호가 침몰한 장소에만 불 밝혀지는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아이들 생각이 떠오른다고 했다.

다른 어떤 생각보다, 내가 못 해준 생각들이 많이 들어요. 남들처럼 잘 배우지도 못한 부모인데, 조금이라도 더 잘 배우고 좀 높은 지위에 있었으면 아이 보낸 뒤에라도 이렇게 힘들게 하진 않았을 텐데, 못난 아빠를 둬서 이렇게 됐구나, 그런 죄책감이 강하게 들어요.
– 김병준 / 고 김민정 양 아버지

진짜 우린 못난 부모들이에요. 아이들 그렇게 보내 놓고도 지금껏 해놓은 게 하나도 없어. 애들 지켜주지도 못하고, 또 애들 보내 놓고 그 뒷수습도 못하고 있는 진짜 못난 부모들이에요. 그래서 진짜 화가 많이 나고, 이렇게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 신창식 / 고 신호성 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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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이 동거차도에 들어온 닷새 전 밤하늘에 걸려 있던 초승달은 이제 배가 불러오고 있었다. 며칠 뒤면 추석, 아이들이 떠난 뒤 세 번째 찾아오는 명절이다. 그러나 고향을 찾거나 친지들을 만날 생각은 하지도 않은 지 이미 오래다.

저희들한테 명절이라는 건 이제 없죠. 작년 추석도 그랬었고 설도 그랬었고, 올 추석이라고 특별한 게 있나요. 이렇게 아이들 위해 할 일들 하면서 보내게 되겠죠.
– 이기용 / 고 이태민 군 아버지

추석 때 뭘 하고 있을까… 광화문 올라가야죠. 광화문에서 애들 차례상 차려 준다고 하니까…
– 신창식 / 고 신호성 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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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틑날 새벽. 밤새 바람이 점점 거세진다 싶더니 결국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멀리 크레인선의 작업도 일시 중단된 듯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아버지들도 감시 활동을 잠깐 멈추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 하지만 천막 틈새로 떨어지는 빗물을 막기 위해 또 부산하게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자니 하룻밤 취재를 마치고 배 시간에 맞춰 돌아가야 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아버지들은 비가 와서 내려가는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는 말을 몇 번이고 건네며 손을 흔들어 줬다.

금, 2015/09/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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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집회에 참가한 것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300만 원 벌금형을 받게된다면 여러분은 어떤 기분일 것 같나요? 또다시 벌금을 받는 게 두려워 다시 집회에 참여하는 게 망설여지지 않을까요? 우리 헌법에 분명 ‘집회의 자유’가 보장돼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례는 주변에서 쉽사리 볼 수 있습니다. 성공회대 학생들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성공회대학교 학생 17명은 최근 몇년 동안 경찰이 불법 집회로 규정한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모두 3,200만 원 가량의 벌금을 부과받았습니다. 적게는 수십만 원부터 많게는 수백만 원까지 일정한 수익이 없는 대학생들에게 부담이 되는 큰 금액입니다.

이에 성공회대 총학생회는 지난 23일부터 이틀간 이 학생들을 돕기 위해 ‘벌어야 한다’는 이름의 후원 주점을 열었습니다. 성공회대 학생들 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의 학생들도 참여해 의미를 더했습니다.

저 대신 벌금을 받은 사람들. 제가 내고 싶었던 목소리, 행동을 대신 해줬던 학우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 후원주점 참가 학생

최근 논란이 된 대학생들의 무개념 주점들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살인범 오원춘의 이름을 딴 안주 세트 메뉴를 만드는가 하면 성관계가 연상되는 문구를 넣은 안주에 심지어 비키니 홍보 포스터까지 보입니다.

몇몇 대학가에서 엽기적이고 선정적인 컨셉의 주점들이 학생들의 눈을 어지럽히는 가운데,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리를 낸 학우들을 위해 문을 연 성공회대의 ‘벌어야 한다’ 주점은 이 사회에 대학의 역할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어느 가을 밤 성공회대 교내에서 열린 시끌벅적한 주점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았습니다.

금, 2015/09/2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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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있지만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력 인사들이 수시로 찾아오고 마음만 먹으면 밖으로 마음껏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수감된 지 얼마 안 돼 보석 또는 형 집행정지 등으로 풀려난 적도 있고, 담당 교도관을 마치 심부름꾼처럼 부리기도 한다. 심지어 막강한 변호인단과 정관계 인맥을 배경으로 조만간 자유의 몸이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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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인표. 다소 생경한 이름이지만 5년 전 전일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은 그 이름을 잊지 못한다. 은 씨는 전일저축은행 영업정지 당시 실질적인 대주주의 위치에 있었다. 그는 자신의 차명 회사에 불법 대출을 해 은행 돈 수천 억 원을 자신의 주머니 돈처럼 사용했다. 이는 전북 제일의 저축은행이었던 전일저축은행의 부실화로 이어졌고, 6000명이 넘는 서민들의 예금액 5600여 억 원은 한순간에 증발해버렸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4년이 지났다. 당시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던 다른 저축은행의 법적 다툼은 모두 마무리됐다. 저축은행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확인돼 1년 2개월 형을 선고받았던 이상득 전 의원도 이미 2년전 만기 출소했다. 하지만 은 씨에 대해선 아직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상호저축은행법 위반 및 뇌물 혐의, 10월 29일 선고 예정). 유독 그의 재판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뭘까? 일각에서는 정관계, 법조계, 종교계에 걸쳐 있는 그의 막강한 인맥이 진상 규명을 더디게 만들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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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이같은 소문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은 씨의 구치소 접견 녹취록과 은 씨의 실제 목소리가 담겨있는 녹음파일을 입수했다. 96페이지 분량의 이 접견 녹취록에는 은 씨의 옥중 행적과 인맥 관계을 파악할 수 있는 정황들이 담겨 있다. 녹취록 분석 결과 은 씨가 감옥에서도 청와대 수석비서관 출신, 법무부 차관, 감사원 감사위원 등 각계 실력자들과 접촉하며 모종의 편의를 요청해 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종찬 전 민정수석, 특별면회하며 은씨와 카지노 사업 논의

2010년 2월, 이종찬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은 은 씨를 서울 구치소에서 직접 만났다. 10분간 진행되는 일반 접견이 아닌 장시간의 특별면회였다. 이 전 수석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중국 사람들이 은 씨가 갖고 있던 제주도 카지노의 사업권을 사겠다며 주선해 달라고 해서 은 씨를 면회 갔었던 것이다. 그 외에는 은 씨와 한 얘기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녹취록에 나오는 은 씨의 말은 다르다. 은 씨는 자신의 측근 이 모 씨와의 대화에서 “하루라도 고생을 좀 줄여주시라”고 이 전 수석에게 전했고 이 전 수석은 이에 “알겠다”고 답했다고 말한다. 또 “그 양반(이 전 수석)이 어설픈 소리는 안 할 거예요”라며 모종의 편의를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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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10년 2월 은 씨와 그의 측근 이 모 씨의 접견 녹취록 중 일부.

이00 : (이 전 수석이) 뭐 다른 얘기는 안 해? 다른 얘기 다 하지, 좀?
은인표 : 그래서 “수석님이 잘 아시지 않느냐”고 그래서 “하루라도 고생을 좀 줄여주시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알았다”고 그러고. 그 양반이 어설픈 소리는 안할 거예요. 나한테 그러더라고. 자기가 안 되는 것은 안 되는데, 안 되는 일에 들어주면 자기가 돈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중략)

황희철 전 법무부 차관 “정00(은 씨의 측근)은 내 아버지 친구 아들인데…”

2009년 11월, 사기 및 배임 혐의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선고를 앞두고 있던 은 씨는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직감한다. 2심의 형량은 2년 6개월. 그는 교도소 행이 불가피해졌을 때를 염두에 두고 적극적으로 구명책을 모색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은 씨는 교정본부가 법무부 차관의 소관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자신의 측근 정 모 씨가 황희철 당시 법무부 차관과 가까운 사이라는 점을 이용해 황 전 차관과의 소통 창구를 만들기 위해 힘썼다. 은 씨는 측근인 정 씨에게 “황 차관하고 둘이 얘기할만한 변호사 하나를 알아봐 달라”며 “내가 형 받았을 때를 대비해 미리 ‘세팅’을 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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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과 만난 황 전 차관은 이같은 녹취록의 내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내용”이라고 답했다. 황 전 차관은 “은인표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다”며 “(은 씨의 측근) 정00은 내 아버지 친구 아들인데 지난 10년동안 연락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 자신의 이름이 사칭된 것으로 보인다며 수사기관에 고발해달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은 씨 문제로 수차례 통화를 했었다는 녹취록 속 정 00씨의 말과는 상반되는 주장이다.

다음은 2009년 11월 은 씨와 그의 측근 정 모 씨의 대화 내용 일부다.

은인표 : 황희철 차관하고 친한 변호사 하나 알아볼 수 있냐? 내가 만약에 잘못될 것도 계산을 해서, 우리 모든 교도행정은 차관이 지고 있어.
정00 : 그러니까요, 내가 알아요, 형님.
은인표 : 내가 확정이 되면 면회가 잘 안 되잖아. 그러기 전에 변호사하고 나하고 완전히 ‘세팅’을 해 놓을려고. 황 차관하고 둘이 얘기할만한 사람을 나한테 보내주면 내가 미리 ‘세팅’을 하려고 그래.
정00 : (황 차관하고) 통화는 계속 해요, 형님 때문에 내가요.
은인표 : 어차피 너한테는 어릴 때부터 좋은 형이니까 네가 알아서 관리를 해.
정00 : 예, 예.

은 씨가 수감생활 동안 상식 밖의 특혜를 누렸다는 점은 분명하다. 은 씨는 이듬해인 2012년 2월 대법원에서 사기 및 배임 혐의 등에 대해 2년 6개월 형을 확정받지만(2015년 현재 진행중인 항소심은 상호저축은행법 위반 및 뇌물 혐의 사건) 형 확정 3개월만에 행집행정지 처분을 받는다. 다른 사건으로 2008년 1월 1심 선고 직후 법정구속됐다가 반년만에 보석으로 출소했던 것에 이은 두번째 의문의 특혜였다.

형집행정지 처분 당시 은 씨의 행적을 추적했던 주진우 시사인 기자는 “그의 진단서만 보면 곧 죽어야 할 사람이었지만 지정된 병실에 머물지 않고 강남 유흥가 등을 돌아다녔다. 그의 탈법 행위를 관리감독해야할 법무부 등에선 당시 그를 제지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사태 ‘봐주기’ 의혹 샀던 하복동, 은진수도 거론돼

대법원 선고 직전까지 은 씨는 ‘반전’을 꾀했다. 녹취록에는 자신의 대법원 재판 주심이었던 이홍훈 대법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새 변호사를 찾는 은 씨의 모습이 나온다. 은 씨는 이 대법관이 김황식 당시 감사원장과 친분이 있었다는 점을 파악하고 감사원 인맥을 모색한다.

은 씨가 떠올린 사람은 하복동, 은진수 등 감사원 감사위원이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부산저축은행 사태 때도 로비스트 윤 모 씨와 접촉해 물의를 빚었었다.

이들의 친분 관계는 녹취록에 잘 드러난다. 은 씨는 자신의 측근인 이 모 씨에게 “은진수 전 감사위원은 면회를 왔었으니 누가 괜찮은 변호사인지 감사원장에게 물어봐 달라 하라”고 말한다. 하 감사위원에 대해서는 “자신(하복동)이 직접 알아보기 곤란할 수 있으니 은진수에게 얘기를 전하라고 하라”고 덧붙인다.

다음은 2009년 11월 은 씨와 그의 측근 이 모 씨의 대화 내용 일부다.

은인표 : 김황식 감사원장이 이홍훈(대법관) 하고 약간 친분이 있는가봐. 내 대법관하고. 그러니까 그 하복동이나, 하복동이가 지가 입장 곤란하면 은진수는 나한테 면회를 왔었잖아요. 누가 괜찮은 변호사가 있는지 한번 정보를 알려 달라고 감사원장한테 한번 물어달라고 그래요, 하복동에게. 그래 가지고 결과 가지고 한번 면회를 다시 한번 와주세요.
이00 : 예.

은진수 전 감사위원의 경우,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1억 7천만원을 받은 사실이 확인돼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지만, 전일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해서는 수사 대상에 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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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은 이같은 녹취내용에 대한 해명을 듣고자 했으나 은진수 전 감사위원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하복동 전 감사위원은 서면 인터뷰를 통해 “공무원불자연합회장을 지냈을 당시 스님들과 교류과정에서 은 씨를 소개받았다. 이후 특별히 개별적으로 만나거나 전화 등의 교류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기관장인 감사원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하거나 물어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금, 2015/10/02-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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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한살 김말순(가명) 할머니는 전일저축은행의 파산으로 7천500만 원을 날렸다. 지금은 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서 겨우 생계를 해결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편안한 노후 생활은 꿈도 꾸지 못한다.

내가 자식같은 돈이라고 해, 피같은 돈. 너무 힘들더라고. 정말 어려운 고비 넘어갔어요. 여기서 먹고 자고 해요. 살기위해 해야겠더라고.
– 김말순(가명) / 전일저축은행사태 피해자

수많은 피해자를 만든 전일저축은행의 대주주였던 은인표 씨는 현재 항소심 공판을 받고 있다. 오는 10월 29일 선고가 내려지는데, 결과에 따라서는 자유의 몸이 될 수도 있다. 한 때는 공판이 열릴 때마다 수 많은 피해자들이 법원을 찾았다. 전국에서 차를 대절해 서울로 올라와 머리띠를 두르고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지금은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은씨 사건의 피해자라는 박종영 씨의 얘기다.

피해자 여러 명이 벌써 죽었어요. 소송을 하고 재판하면 뭐하냐,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이젠 오지도 않아요.
– 박종영/전일저축은행사태 피해자

그런데 피해자들이 재판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 이상한 일이 많이 벌어졌다. 몇 달전에는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까지 지낸 한 스님이 은 씨의 석방을 탄원하는 일도 있었다. 피해자 입장에선 분통 터질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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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가 입수한 은인표 씨의 접견 녹취록에는 정.관계 인사 못지 않게 불교계 인사들이 자주 등장한다. 모두 조계종단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스님들이다. 유명사찰의 주지를 지낸 한 스님은 구속된 은 씨를 대신해 은 씨의 부동산을 처분하는데 발을 벗고 나섰고, 또 다른 스님은 은 씨를 석방시킬 구체적인 방안을 은씨에게 전달했다.

스님하고도 계속 통화를 했어요. 스님은 경주로 형님을 모셔간 것을 그렇게 원하더라고요. 그렇게 해갖고 그쪽에서 가석방 작업을 이렇게 해갖고 하고.
– 은인표 측근, 은인표 녹취파일 中

녹취록에 등장하는 정관계 인사들 중 상당수는 불교계를 통해 은 씨를 소개 받았다고 주장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인 3선의 김우남 의원, 하복동 전 감사원 사무총장 등이다. 특히 김 의원은 국회의원 신분을 이용해 한 스님이 은 씨를 특별 접견하는데 힘을 보탰다.

은 씨와 이들 불교계 인사들은 대체 어떤 관계일까?

2009년까지 은 씨의 운전기사로 일한 김모씨가 은인표씨 관련 재판에 제출한 진술서엔 이 궁금증을 풀어줄 실마리가 들어 있다. 일부 스님들이 은 씨의 정관계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김씨와의 대화내용.

= (은인표씨가) 스님들을 자주 만났나요.
네.
= 정치인들보다 더 (자주 만났나요.)
스님들이 연결고리가 됐던 것 같아요
=주로 은인표 씨가 스님들을 찾아다니는 식이었나요.
찾아가기도 하고, 오시기도 하고요.

은인표 씨의 접견 녹취록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불교계 인사는 놀랍게도 현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스님이다. 녹취록에 따르면 은씨는 자승스님에게 뭔가를 부탁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총무원장한테는 얘기를 했는가봐, ‘이거 인표가 부탁하는 거니까 꼭 이거 해줘야 한다’고 했는데, 그 뒤에 이게 어떻게 됐냐 이 말이야. 니가 갈 수 있어, 없어? … 내가 총무원장하고도 직접 통화할 수 있고, 그 쪽에다 통화할 수 있단 말이야. 상황이 급하다 생각하면 내가 검찰청 나가면 돼, 전화 하러 나가면 된단 말이야.
– 은인표, 접견 녹취록

은 씨의 한 여성 측근은 ‘은 씨를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자승 스님과의 전화 통화 내용을 전하기도 했다.

그래서 ‘(자승)스님, 회장님이 워낙 자존심이 강한 분이셔서 뭐라 그러실까봐 못가겠다고. 근데 어떻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그랬더니 ‘뭐든지 다 하신다고. 하여튼 알아갖고 오라’고 그러셨는데 왔다 가셨어요?
– 은인표 측근 김OO, 접견 녹취록

은 씨를 오랫동안 취재해 온 기자와 은 씨의 한 측근은 이 모든 것이 ‘돈의 힘’이라고 말했다.

주진우 시사인 기자 : 스님들께 사찰도 지어주고, 종도 만들어 주고…

은인표 측근 OOO씨 : 이 사람(은인표)이 처세가 좋아요. 돈으로 불쌍한 사람도 잘 도와주고. 잘 하니까 주변에 사람이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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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취재과정에서 은 씨가 불교계 현안에도 뛰어든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해 9월, 현대자동차가 10조원 이상을 주고 사들인 서울 강남의 한국전력 부지와 관련해 피해보상금을 받아 내는 계획에 은씨가 개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엔 자신의 대리인을 조계종에 보내 이 문제에 대한 설명회도 가진 사실이 드러났다. 봉은사 주지를 맡고 있는 원학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봉은사하고 종단하고 TF팀을 구성했습니다. 내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최OO이란 사람이 은인표 씨 소개로 찾아온 일은 있습니다. 제가 그 사람을 TF팀에 소개했고, 거기서 그 사람이 그 동안 조사하고 연구한 내용을 설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10년까지 봉은사 주지를 지낸 명진스님은 은씨가 이미 2007년부터 이 문제에 관여해 왔다고 증언했다.

2007년경, OO스님이 은인표 씨를 저에게 데려 왔습니다. ‘한전 부지가 원래 봉은사 소유다. 군사정권에 땅을 부당하게 빼앗긴 것이다. 그러니 이런 내용의 진술서 하나만 써 주면 500억 원을 받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솔깃한 제안이었죠. 은 씨와 MOU(양해각서) 정도를 체결한 걸로 압니다. 그런데 은 씨가 구속되면서 흐지부지 됐죠.

<뉴스타파>는 녹취록에 이름이 거론된 불교계 인사들에게 은 씨와의 관계를 물었다. 불교계 인사 중 가장 이름이 많이 나온 자승 총무원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총무원에도 취재를 요청했다. 그러나 불교계 인사들에게선 아무런 답도 듣지 못했다. 다만 조계종 총무원은 10월 1일 오전, <뉴스타파>에 서면 답변을 보내왔다. 총무원측은 답변서에서 “자승 총무원장이 은인표씨의 재판을 도왔다는 것은 근거없는 주장으로 사실이 아니며, <뉴스타파>가 확보한 녹취록은 왜곡된 정보를 담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 2015/10/02-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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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6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소상공인단체 연합회 임원단과 티타임을 갖고 선거에서 자영업자들이 자신을 특별히 지지해준 것에 감사를 표했다.그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대통령 선거 이후 한국갤럽이 분석한 직업별 득표율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자영업에서 압도적 표차로 야당의 문재인 후보를 앞선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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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박근혜 대통령은 이른바 ‘민생정치’를 한다며 시장을 찾아가 상인들과 자주 사진을 찍는다. 고향인 대구 서문시장에서는 아이돌 스타에 버금가는 환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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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영업자들이 느끼는 경기 체감의 정도는 박근혜 정부 들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소상공인 진흥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후반 2년여동안 평균 88을 기록했던 경기체감지수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2년 6개월동안 평균 73수준으로 뚝 떨어졌다.경기체감지수가 100이면 경기는 보합,100을 초과하면 호전,100미만이면 경기가 악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지난해 9월 1일,정부가 재건축 규제완화등을 골자로 한 이른바 9.1 부동산 대책을 들고 나오자 2014년 9월 한달의 부동산 업종의 경기체감지수는 100을 훌쩍 뛰어 넘어 111을 기록했다.전체적인 자영업의 경기체감지수는 대부분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 업종만 반짝 상승한 것이다.이는 정부의 대책이 특정 업종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었고 그 정책 효과도 장기적,지속적이지 못했음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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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경기가 침체되어 있다 보니 도심 주변에 빈 상가나 오피스도 늘어났다. 실제 박근혜 정부이후 상가공실률(국토교통부,중대형매장 기준)은 꾸준히 상승해 2013년 1분기 8.9%에서 지난 2분기때는 10.8%로 치솟았다.그러나 시장 관계자들은 실제 공실률은 정부의 공식통계치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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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영세업종이 입주해 있는 중소형빌딩이 대형빌딩에 비해 훨씬 높습니다. 정확한 공실률 조사자료는 없지만 평균 공실률이 최소 20%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공실없는 빌딩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입니다. 입지와 임대료 측면에서 경쟁력있는 빌딩을 제외하고는 임차인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 ㅁㅁ빌딩 자산관리 업체 대표이사

이렇게 빈 상가가 많다고 하지만 상가 임대료는 좀처럼 내려가지 않고 있다. 13년 1분기를 100으로 봤을때 상가 임대가격지수(국토교통부)는 2015년 2분기 서울이 102.6,전국적으로도 101.2를 기록했다.경기는 바닥에서 헤어날 줄 모르지만 여전히 임대료는 높은 상황인 것이다.

자영업자들의 빚도 이번 정부 들어 크게 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개인사업자들의 시중은행 대출잔액은 2013년 17조 천억원,14년 18조 8천억원,올 8월까지만 20조 4천억원이 증가해 총 229조 7천억원에 이른다.

올들어 8월까지 오히려 3.4조원의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대기업의 대출액과 대비해보면 자영업자들의 빚 증가세는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2013년과 2014년의 대기업 대출액도 자영업자들에 비해 적었다.

2013 2014 2015.1 ~ 8
대기업 8.2 18.5 -3.4
개입사업자 17.1 18.8 20.4

▲ 기업대출증가액 (출처 : 한국은행 / 단위 : 조 원)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한국은행의 통계는 사업자 분류를 통한 자영업자들의 대출잔액을 말하는 것일뿐이다. 자영업자들이 일반 금융소비자 자격으로 자신의 집을 담보로 은행권에서 빌린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을 합하면 자영업자들이 안고 있는 전체 대출액은 229조원이 아니라 550조원 안팎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경제가 외부충격 등으로 위기를 맞는다면 자영업자들이 가장 먼저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음은 그래서 경청할 만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이준협 거시경제동향실장은 국내외 경제상황이 악화돼 은행이 대출만기연장을 해 줄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자영업자들은 거대한 채무부담과 더불어 경기침체에 따른 소득 하락을 함께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염려했다.자영업자들에게는 현재의 경제상황이 빚이라는 봇짐을 잔뜩 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얼어붙은 불황의 살얼음판위를 불안하게 걸어가는 형국인 것이다.

목, 2015/10/08-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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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취재진은 서울 홍대 앞, 상암동, 망원시장, 공항시장 등에서 작은 가게를 열어 장사하는 12명의 ‘사장님’들을 만나 대한민국에서 자영업자로 먹고 사는 일에 대한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그들은 높은 임대료와 침체된 경기에 힘들어 했고 특히 자신들의 상권을 순식간에 잡아먹어 버리는 대기업들의 행태에 좌절하고 있었다.한국의 중소상인들은 대기업들과 ‘한 마디로 게임이 안 되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자영업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당사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형식으로 기사를 썼다.)

“치킨까지 배달하는 롯데리아하고 어떻게 싸웁니까”
난지도 옆 자장면집 25년… 상암동 <북경> 운영하는 정광욱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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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상암동 들어온 게 1987년이에요. 난지도에 쓰레기 매립하고 있을 때부터 여기서 장사를 했으니까. 지금이랑은 완전히 달랐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그땐 주변이 다 논밭이었고 여기서 1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쓰레기 매립하는 난지도가 있었죠. 아직도 그 때 풍경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장사가 아주 잘 될 때였거든요. 매립일 하는 사람들한테 배달 많이 갔어요. 그 때는 지금처럼 랩도 없어서 비닐로 대강 덮어가면 파리 떼가 까맣게 몰려들어서 휘휘 쫓아가며 먹고 그랬어요.

그러고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정말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이 동네가 많이 변했죠. 쓰레기더미가 공원으로 바꿔고, 월드컵 경기장 짓고 아파트 들어오고, 이제는 방송국들까지 들어와서 예전 풍경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거예요. 손님 좀 늘지 않았냐구요? 저도 개발 소식 들었을 땐 기대 좀 했죠. 그런데 아니었어요. 요 앞에 큰 길이 나면서 원래 이 앞에 다니던 마을버스도 노선이 바뀌고 오히려 오가는 사람은 줄었어요. 그래도 부부가 같이 운영하고 저 포함해서 둘이 같이 배달도 나가면서 근근이 가게 운영해 왔죠. 그런데 요즘에는 가게 문 열러 나올 때 마다 숨이 콱 막힙니다. 내년 4월부터 착공한다는 요 앞 롯데복합쇼핑몰 터를 볼 때마다 그래요.

▲ 정광욱 씨가 상암DMC 롯데복합쇼핑몰 예정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정광욱 씨가 상암DMC 롯데복합쇼핑몰 예정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일 큰 피해가 음식점이라고 해요. 얼마 전 소상공인진흥공단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봤습니다. 영등포에 유명한 복합쇼핑몰 타임스퀘어가 들어오고 나서 주변에 음식업종 상인들 매출이 평균적으로 점포당 79% 가까지 줄었다고 합니다. 당연한 얘기에요. 저런 복합쇼핑몰에는 푸드코트나 프랜차이즈 식당가가 무조건 들어가잖아요. 거기서 공연보고 쇼핑하고 밥 먹고 모든 게 해결되는 데 뭐하러 굳이 여기 까지 나오겠어요. 여기 오던 사람들도 선택항이 많고 가격도 싼 복합쇼핑몰로 가겠죠. 차 가지고 아침에 들어갔다가 저녁에 나오는 곳이 저런 곳입니다.

우리가 무조건 롯데가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롯데몰이 들어와서 주변에 유동인구도 많아지고 상권도 같이 살아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니까 소상공인들이 잘 다루지 않는 고급품목 취급하는 백화점이나 관광객 상대로 소비를 나눠가질 수 있는 호텔 같은 걸 지으면 어떻겠냐는 거예요. 주변에 큰 회사들도 많으니 수요가 있지 않겠어요? 하지만 롯데 측은 이런 제안에 대해서는 거부하고 있습니다.

롯데 생각을 하면 분통이 터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배달 문화를 만들어온 게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자장면집 아닙니까. 그런데 롯데에서 이제 햄버거로도 모자라 치킨까지 배달을 하고 있어요. 이건 서민들이 장사해먹을 수 있는 업종들을 다 자기들이 빼앗아간다는 거거든요. 치킨까지 배달하는 롯데리아하고 어떻게 싸우라는 겁니까.

이번 국감보니 국회에서도 기껏해야 롯데리아 사장 앉혀놓고 약속 받아낸 게 치킨 배달 ‘광고’ 안하겠다는 거예요. 그러고서 여야가 짝짜꿍이 맞아서 서로 잘 했다고 칭찬을 하더라고요. 저는 전 재산 투자해서 가족들이 다 여기서 먹고 살고 있어요. 자영업자들이야 다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가다가 몇 천개의 음식점 상점들 무너지면 그거 정부에서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대형복합쇼핑몰이 주변 자영업자들에게 미치는 영향

작년 11월, 소상공인진흥공단의 노화봉 조사연구실장은 서울 중서부지역의 대표적 복합쇼핑몰 영등포 타임스퀘어와 파주의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이 입점 후 주변 중소 자영업자들의 상권에 미친 영향을 조사해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도심지인 서울 타임스퀘어 인근 영등포 상권의 상인들의 경우 출점 3년 후 평균 36.5%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과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이 위치한 파주시 내의 금촌동 문화의 거리 상인들은 평균 29.8%의 매출 감소를, 인근의 고양시 덕이동 로데오타운 상인들은 평균 54.1%의 매출 감소를 겪은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세 지역에서 기타음식점업의 경우 매출 감소 규모가 79.1%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뉴발 자리에서 장사하다 밀려나서 여기 죽은 골목으로 왔어”
삼성, 이랜드 틈에 낀 두 평 신발가게 사장… 김명원(가명) 씨

6년쯤 전에 처음 홍대에 들어왔거든.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권리금이나 임대료가 비싸지 않았어. 기왕 할 거면 목 좋은 곳에서 시작하자 싶어서 홍대 정문 앞에 홍익로하고 ‘걷고 싶은 거리’가 만나는 코너 건물에 조그마하게 자리를 잡았지. 그 때만 해도 같은 건물에 안경점, 중국집, 노래방, DVD방 같은 가게들이 크고 작게 여러 개 있었어. 이 사장님들이 다들 한 몫 잡을 생각으로 들어온 건 아니어도 젊은 사람들 많이 오가는 홍대 상권에 들어와서 장사한다는 자부심도 나름 있었지.

나도 그 전부터 알던 삼촌이 안정적으로 물건 대주고, 나름 품질 좋은 물건들 마진 많이 안 붙이고 파니까 단골들도 생기고 장사하는 재미가 있더라구. 그런데 계약 기간 한 번 끝나고 재계약 할 때가 됐는데, 건물주가 임대료를 너무 높게 부르는 거야. 장사가 좀 됐다고 해도 우리 같은 조그만 신발 가게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월세였지. 결국 조건이 안 맞아서 근처에 들어갈 만한 데를 찾다가 지금 여기로 들어온 거야. 근데 그 자리에 얼마 있다가 대기업이 수입해다 파는 뉴발란스가 크게 들어오더라구. 건물 전체를 임대해서 리모델링 했는데, 보증금 20억에 월세만 1억2천이라고 들었어.

▲ 김명원(가명)씨 가게와 대기업 계열 대형 신발 매장 위치

▲ 김명원(가명)씨 가게와 대기업 계열 대형 신발 매장 위치

장사 힘들어. 우리 같은 작은 가게가 살아남기가 어려운 세상이 됐어. 요 옆에 뉴발란스도 그렇고, H&M에도 신발 팔잖아. 홍대입구 역 바로 앞에 슈펜이나 폴더 같은 대형 신발매장까지 있으니 외국 관광객들은 아예 여기로 안 와. 거기로 다 들어가서 열 개씩 한꺼번에 사가고 그러더라고. 우리 가게도 원래 매출 절반은 외국 관광객들한테 나오거든. 장사 다 한 거지 뭐. 대기업들이 하는 저런 신발 매장들 들어오고 나서 매출 절반 정도는 족히 떨어졌어.

오는 길에 봤겠지만 이 근처에서 여기는 이제 죽은 골목으로 통해. 상권이 안 살아나. 들어오는 길에 옆에 MCM 매장 크게 있는 거 봤지? 저거 들어오면 골목 살아날까 싶어서 이 옆 가게 사장들하고 나하고 기대를 많이 했는데 어림도 없더라구. 이제는 어떻게 해야하나 싶어. 인테리어나 바꿀까 생각 중이야. 바꿔서 좀 새롭게 분위기 전환이라도 좀 하려구. 그렇게라도 안 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으니까.


* 뉴스타파는 김명원씨(가명)가 장사를 하고 있는 홍대 상권을 좀 더 면밀히 분석해 보기로 했다. 김씨처럼 대기업때문에 못 살겠다고 주장하는 상인들의 말이 과장된 것이 아닌지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홍대 상권은 서울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곳 가운데 하나다.

▲ 홍대 걷고싶은 거리의 상점들

▲ 홍대 걷고싶은 거리의 상점들

<홍대 상권 전수 조사> 홍대 핵심 업종 대부분 진출한 대기업과 프랜차이즈

도대체 얼마나 많은 대기업이 지역상권에 침투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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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홍대 상권의 주요 업종은 ① 의류, 신발, 화장품 등 소매업, ② 편의점 등 종합소매업, ③ 유흥주점업, ④ 제과, 음료점업, ⑤ 음식업 등 다섯 가지로 조사됐다. 이들 업종은 전체 매장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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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상권에 진출한 대기업 매장은 총 164개였다. 대기업 계열 매장들은 유흥주점업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 들어와 있었다. 가장 많은 매장을 보유한 대기업은 롯데였다. 롯데는 편의점 세븐일레븐, 커피전문점 엔젤리너스커피, 패스트푸드 판매점 롯데리아, 화장품 및 건강관련용품 소매점 롭스, 패밀리 레스토랑 TGI프라이데이, 가전 유통업체 롯데하이마트, 아이스크림 판매점 나뚜루, 영화관 롯데시네마 등 8개 업종에 걸쳐 36개 매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밖에 신세계(스타벅스, 위드미), CJ(올리브영, 빕스, CGV, 투썸플레이스, 뚜레쥬르), 이랜드(로이드, 버터, 로운샤브샤브, 자연별곡, 피자몰, 슈펜, 폴더, 뉴발란스, 미쏘, SPAO), 아모레퍼시픽(오설록, 에뛰드하우스, 아리따움, 이니스프리) 등도 다수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었다.

대기업들이 진출한 업종의 경우 영화관을 제외하고는 (홍대 앞에는 영업중인 소규모 영화관이 없다) 모든 부분이 중소 자영업자들의 사업영역과 겹쳤다. 대기업과 프랜차이즈 매장들의 밀집된 분포를 통해 중소 자영업자들이 심각한 경쟁 상황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었다.

“홍대 졸업하고 30년 넘게 이 동네 지켜봤지만 지금이 제일 어렵습니다”
김형길 홍대 <나루수산> 사장

▲ 김형길 홍대 걷고싶은거리 상인회장

▲ 김형길 홍대 걷고싶은거리 상인회장

나는 홍대 77학번이에요. 여기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황량한 벌판이었을 때부터 이 동네를 오갔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건설회사를 20년 넘게 다니다가 퇴직하고 여기 익숙한 동네에다가 평소 좋아하는 횟집을 하나 차렸지요. 그게 한 8년 됐을 겁니다.

홍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아요? 예술가들이 많은 거리라고들 하는데 원래 그랬던 곳이 아니에요. 원래 음악하고 글쓰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신촌에 많았어요. 그런데 그 쪽에 유동인구가 많아지고 임대료가 들썩들썩 하니까 그 사람들이 90년대 중후반부터 가까운 여기에다가 터를 잡았던 거에요. 이대에는 원래 보세옷 가게나 웨딩샵이 많았는데, 그쪽도 마찬가지로 월세가 올라가면서 보세옷 가게는 홍대로 들어오고 웨딩샵은 청담으로 갔습니다. 그렇게 예술가들과 작고 특색있는 옷가게, 신발가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곳이 홍대 상권이에요. 거기 놀러온 젊은이들한테 먹을 거 팔면서 우리 자영업자들이 함께 여기 터를 잡았던 거지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예술가들하고 작은 가게 상인들이 같이 만들어놓은 문화가 재미있으니까 젊은 사람들이 많아졌던 건데, 그렇게 장사가 좀 된다 싶으니까 한 십년 전부터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그 다음이 대기업 매장들이었습니다. 건물을 통째로 사서 자기들 매장으로 바꿔버리죠. 그러면 임대료가 엄청 올라요. 건물 하나 임대료가 오르면 무슨 전염병처럼 주변 건물들도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더 버틸 수 없을 만큼 월세가 오르니까 홍대를 만들었던 사람들이 연남동으로 문래동으로 혹은 다른 변두리로 떠나게 된 거지요.

여기 들어와 있는 대기업 매장들은 대부분 ‘안테나 매장’들이에요. 안테나 매장은 일종의 홍보팀, 혹은 척후병 같은 역할입니다. 새로운 상품이 나오면 이런 매장에 한번 내 보고 팔리나 안 팔리나 봐요. 또 사람이 많이 오가는 거리에 자기들 매장을 내 놓음으로써 홍보 효과를 보는 부분도 있지요. 무슨 말인가 하면, 그 사람들은 그 가게에 생계를 걸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대기업이야 홍대에 내 놓은 가게가 손해를 봐도 회계처리하면 그만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이 가게 하나가 망하면 가족들 대여섯 사람이 같이 벼랑에 서게 되는 거예요. 상생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여기 자영업자들 다 죽으면 떼어놓고 다들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닐거예요. 같이 다 죽게 됩니다. 이제 정말 대기업 횡포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합니다.

▲ 홍대 앞 거리

▲ 홍대 앞 거리

대기업의 중소업종 잠식 막기 어려운 동반성장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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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때 대기업의 업종 잠식으로부터 중소 상공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동반성장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출범 5년차, 동반성장위원회는 제 역할을 해내고 있을까.

동반성장위원회는 중소적합업종을 지정해 대기업이 중소 상공인의 장사 영역에서 발을 뺄 수 있도록 유도한다. <뉴스타파>가 새정치민주연합 오영식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총 107개 품목이 중소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있다. 대표적인 중소 적합업종과 권고대상 대기업을 몇 가지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품목 권고대상 대기업
단무지 CJ제일제당, 사조대림, 풀무원, 대상FNF
도시락 신세계푸드, 한화호텔앤리조트, 롯데푸드, 후레쉬서브, BGF푸드, 풀무원
떡국 및 떡볶이 떡 신세계푸드, 아워홈, 오뚜기, 대상FNF, 풀무원
김치 CJ제일제당, 대상FNF, 동원F&B, 풀무원
순대 아워홈, 진주햄
전통떡 삼립식품
막걸리 CJ제일제당, 롯데주류, 하이트진로
관성어 및 관련용품 소매업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음식점업 7개
(한식, 중식, 일식, 서양식, 기타 외국식, 분식 및 김밥, 그 외 기타 음식점업)
CJ푸드빌, 농협중앙회(목우촌), 롯데리아, 대성산업, 신세계푸드, 이랜드파크, SK네트웍스 등

위 표에서 보듯 대기업들은 순대, 김치, 떡볶이 떡 같은 분야에까지 진출해 있다. 동반성장위는 위 분야에서 해당 대기업들에게 사업철수, 사업축소, 확장자제, 진입자제 등을 권고했다. 권고 수준은 동반위가 독자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중소사업자들과 대기업이 ‘협의’를 통해 결정한다. 이미 동반성장위가 ‘권고’ 의견으로 내는 조정 수준에 대기업의 입장이 반영돼 있다는 뜻이다. 대기업이 합의해주지 않으면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적합업종 지정 외에도 동반성장위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정거래·동반성장 협약 이행실적평가’ 결과와 자체적으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중소기업 체감도조사’ 점수를 토대로 ‘동반성장지수’를 산출한다. 동반성장지수는 참여 대기업들의 상생 의지를 계량화해 평가한 자료로 활용된다.

▲ 2014년 동반성장지수 평가대상 대기업 중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처분을 받은 기업들

▲ 2014년 동반성장지수 평가대상 대기업 중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처분을 받은 기업들

동반성장지수는 최우수, 우수, 양호, 보통 등 4가지 등급으로 구성돼 있다. 처음에는 우수, 양호, 보통, 개선 등 4가지 등급이었지만 2013년 등급 산정시 ‘개선’을 없애고 최하 등급의 명칭을 ‘보통’으로 바꾸었다.

평가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뉴스타파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자료를 통해 분석해본 결과, 2014년 ‘최우수’로 평가된 LG유플러스, LG전자, KT, ‘우수’로 평가된 아모레퍼시픽, 현대모비스, ‘양호’로 평가된 농심 등이 2014년 이후 지위남용 혐의로 과징금 처분을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참여 대기업이 적은 것도 문제다. 2015년 기준으로 동반성장지수 산정에 참여하는 대기업은 137개사다. 이는 2014년 기준 대기업집단에 속한 1696사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참여가 법으로 규정돼 있지 않고 자율적이기 때문에 일부 대기업이 면피성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동반성장위 관계자는 이런 평가 기준 상의 문제에 대해 부족함을 인식하고 있으며 “앞으로 공정거래위원회와 협의를 통해 개선 방안을 찾아 나가겠다”고 밝혔다. 참여 대기업이 적은 문제에 대해서는 “자율로 운영하다보니 한계가 있지만 2011년 처음 시작했을 때에 비해 참여 대기업이 조금씩이나마 늘어가고 있으니 지켜봐 달라”고 밝혔다.

목, 2015/10/0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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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자영업의 경쟁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2가지 통계를 먼저 살펴보자.

1. 2013년 말,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OECD 기준으로 27.4%다. 경제활동인구의 1/4이 넘는 사람들이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뜻이다. OECD 회원 34개국 가운데 우리나라보다 자영업 비율이 높은 나라는 그리스, 터키, 멕시코밖에 없다. 미국도 6% 수준이고, 일본도 11.5%에 지나지 않는다. OECD 회원국의 평균도 16% 수준으로 우리보다는 한참 낮다.

2.미국 햄버거 체인점인 맥도날드의 전세계 매장 수는 35,429곳이다. 2013년 기준 맥도날드 홈페이지 경영 공시에 나와 있는 수치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추산해본 국내 치킨집 수는 이보다 조금 더 많다. 3만 6천여 곳이라 한다. 놀랍게도 국내 치킨집이 전세계 맥도날드보다도 많은 셈이다. 국내 치킨집 숫자는 통계에 따라 4만 곳이나 5만 곳으로 추산되기도 한다.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그야말로 세계적 수준의 경쟁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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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2014년 9월 정부는 제32차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자영업자들에 대한 종합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이른바 ‘장년층 고용안정 및 자영업자 대책’. 정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퇴직 장년층의 고용불안이 ‘조기퇴직→자영업 과잉진입 →과당경쟁 심화’의 악순환을 야기”하기 때문에 중장년층의 고용불안이 해소되지 않고는 자영업계의 악순환이 해결되기 어렵다고 한다.

정부는 그래서 ‘장년층 재직 단계’ 부분에서 ‘60세 이상 정년제의 실질적 안착을 위해 임금체계, 인사제도 개편’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임금피크제의 재정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때까지만 해도 임금피크제와 청년 신규채용을 연결짓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5년 9월, 노사정 합의에서 임금피크제가 다시 화제가 됐다. 정부가 ‘임금피크제로 절감되는 비용을 청년 신규채용에 쓰이도록 하겠다’며 임금피크제의 도입 명분을 청년 신규 채용으로 치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은 별 근거가 없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청년 고용이 는다는 정부의 주장은 지금까지는 올 3월에 나온 고용노동부 보도자료가 거의 전부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임금피크제를 시행할 경우 고령자 고용도 늘어나고, 신규 채용도 함께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그렇게 될 거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전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회사들을 보니 그랬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아무리 따져봐도 정부의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

사실상 구조조정 수단이 돼 버린 임금피크제

민간 기업들 가운데 임금피크제를 가장 먼저 실시한 곳은 은행권이다.

▲ 자료:김영환 의원실 / 분석:뉴스타파

그러나 위 그래프에서 보듯이 임금피크제를 실시한 우리은행이나 기업은행, 하나은행의 직원들은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100%까지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이지 않고 퇴직을 선택했다. 임금피크제를 하면 정년이 연장되거나 보장된다는 정부의 주장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주장인 셈이다.

은행권 신규 채용도 점점 줄어들었다

▲ 자료:김영환 의원실 / 분석:뉴스타파

그렇다면 임금피크제와 시중은행의 신규 채용은 어떤 관계를 보였을까? 뉴스타파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시중은행 4곳(우리, 하나, 국민, 외환)과 도입하지 않은 은행 3곳(신한, SC은행, 씨티은행)의 정규직 직원 수 대비 정규직 신입사원 채용자 수를 계산해 보니 전체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은 은행들의 신입사원 채용율이 약간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든, 도입하지 않든 업황이나 기업의 실적에 따라 신규채용규모가 결정될 것이라는 일반적인 경영 상식에 부합되는 결과다.

전국은행연합회에 정기적으로 공시되는 경영자료를 통해 이들 7개 시중은행의 고용 규모의 증감을 비교해봐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이 자료상의 노동자 수는 정규직과 전담직 행원들만 포함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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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를 도입한 4개 시중은행들 가운데 제일 마지막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곳은 KB국민은행으로 시점은 2008년이다. 따라서 임금 피크제를 도입한 시중은행(우리, 하나, 국민, 외환) 4곳과 도입하지 않은 은행 3곳(신한, SC은행, 씨티은행)의 고용규모를 비교할 수 있는 시점은 2009년부터다. 위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2009년 이후 2년 동안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은행들의 평균 고용 규모는 연속 하락한 반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은 은행들의 평균 고용 규모는 2009년과 2010년 연속으로 늘었다. 임금피크제가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정부 전망과는 상반된 결과인 것이다.

공공기관에서도 임금피크제 효과 없었다

고용이 늘지 않기는 사실상 정부 관할하에 있는 공공기관들도 마찬가지였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 7월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 실시에 따른 효과를 분석해 본 결과다.

정규직 직원 수 대비 신입사원 채용률을 보면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고령자 고용 비중도 두 그룹 사이에 별 차이가 없었다. 임금피크제 도입기관의 만 50세 이상 종사자 비중은 22.2%였고, 미도입 기관의 고령자 비중은 23.6%였다.

목, 2015/10/08-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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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방송은 2012년 4월 8일 「YTN 핵심간부들 불법사찰 협력 의혹」제하의 보도에서 YTN 감사팀장이 원충현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 조사관과 집중 통화한 사실로 미루어 불법사찰 및 증거 폐기 공모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수사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2015년 4월 16일, “원충현이 YTN 법무팀장과 당시 감사팀장으로부터 YTN 관련 정보를 취득하여 불법사찰하고 이에 대한 증거를 인멸했다는 것은 추론에 불과하고 아무런 증거도 없다”며 당시 감사팀장에 대해 무혐의 처분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월, 2015/10/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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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임기를 시작한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대한 사퇴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대해 각각 ‘변형된 공산주의자’, ‘공산주의자’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는 데다 변호사법 위반 의혹까지 받고 있어 공영방송을 관리 감독하는 기구의 대표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높다.

사학개혁국민운동본부와 언론노조는 지난 14일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을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고 이사장은 2009년 교과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위원으로 김포대 임시이사 선임 안건을 다룬 후, 2013년 김포대 이사선임결정 취소소송 대리인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이사장은 이와 관련된 기사를 쓴 한겨레 기자를 고소한 상태다.

서울지방변호사회도 지난 13일 상임이사회를 열어 고 이사장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한 예비조사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변호사법은 공무원, 조정위원 또는 중재인으로서 직무상 취급한 사건의 수임을 제한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 사학개혁국민운동본부와 언론노조는 10월 14일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 사학개혁국민운동본부와 언론노조는 10월 14일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변호사법 위반 의혹에 불신임 결의안까지 제출돼

방문진의 야당 추천 이사 3명(유기철, 이완기, 최강욱)은 10월 8일 고 이사장 불신임 결의안을 제출했다. 세 명의 이사들은 “극단적으로 편향된 언행을 거듭한 고 이사장은 방문진 이사들과 MBC 구성원들을 ‘수구 이념의 추종자’ 쯤으로 오인받도록 함으로써 수천여 방송 종사자들의 자존감과 명예, 그리고 방송사로서의 위상에 씻기 어려운 위해를 가했다”고 주장했다.

고 이사장은 최근 ‘공산주의자’ 발언이 문제가 되기 전까지 그리 알려진 사람은 아니었다. 공안 검사 출신으로 2006년 서울남부지검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1981년 부림사건,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1986년 삼민투쟁위원회 사건 등을 수사했고 1997년 한총련을 이적단체화하는 데도 관여했다.

일부 사건들은 재심에서 무죄가 났지만 고 이사장은 과거 공안사건 관련자들이 공산주의자였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 2일 방문진 국정감사에서도 “무죄를 받았든 안 받았든 제 신념은 변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은 10월 8일 방문진 이사회가 끝난 후 ‘공산주의자’ 발언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은 10월 8일 방문진 이사회가 끝난 후 ‘공산주의자’ 발언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검찰 떠난 후 보수 우익 단체 결성 주도

고 이사장의 행적은 검찰을 떠난 후 각종 보수 우익 단체에 몸 담으면서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친북반국가행위인명사전을 만들어 논란을 일으킨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고,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의 상임지도위원을 지냈다.

특히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은 2008년 이후 전교조를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차례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7년이 넘도록 검찰은 전교조를 기소하거나 불기소처분하지도 않고 사건을 마무리하지 않고 있다. 올해 9월 대법원은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이 전교조와 조합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 단체는 고용노동부가 전교조에 법외노조 통보를 하지 않는다며 장관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하기도 하는 등 전교조를 법외노조화하는 데 정부를 압박하는 역할도 했다. 이 단체의 법률 자문과 소송 대리인이 고 이사장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사 국정교과서 논란에서도 고 이사장의 이름이 등장한다. 고 이사장이 위원장을 맡았던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가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의 이념 성향을 문제 삼으면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줄기차게 요구해온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근 교육부가 새누리당에 제출한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 분석 자료도 국가정상화추진위의 자료집을 차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의혹을 처음 제기한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고 이사장이 만든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와 박근혜 대통령이 늘 이야기하는 비정상의 정상화는 충분히 연계성이 있다고 보여진다”며 “이런 인물을 쓸 수밖에 없는 박근혜 정부의 편향성이 어떠한 지를 국민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 서울 서초구에 자리잡은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사무실. 자유민주연구원과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다. 고 이사장은 국가정상화추진위원장을 지냈다.

▲ 서울 서초구에 자리잡은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사무실. 자유민주연구원과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다. 고 이사장은 국가정상화추진위원장을 지냈다.

목, 2015/10/15-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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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탐사저널리즘네트워크(GIJN)가 주최한 제 9회 국제탐사보도총회(GIJC)가 지난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120개국 9백여 명의 탐사 저널리스트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습니다.

2년에 한 번 전 세계 탐사보도 전문 언론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보도 성과와 취재 기법을 공유하는 이 총회에는 올해도 뉴욕타임스와 프로퍼블리카, BBC, 가디언 등 유력 매체뿐만 아니라 3세계 탐사보도 전문 기자들도 대거 참가했습니다.

이번 릴레함메르 총회에선 나흘 동안 주제 별로 150여 개의 세션이 진행된 가운데, 지난해 4월 GIJN의 정식 회원사로 등록된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도 2개 세션에 공식 초청 받아 보도 성과와 조직 운영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전세계에서 최근 보도된 주요 탐사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세션에서 해방 70년 특별기획 ‘친일과 망각’의 핵심 내용과 취재 과정, 보도의 파장 등을 소개했습니다. 또 탐사매체의 새로운 모델을 소개하는 세션에서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의 출범 배경과 주요 보도물, 그리고 3만 5천 명의 안정적인 후원 모델을 유지해온 비결 등을 발표해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번 총회는 자본과 권력의 영향에서 독립한 비영리 탐사매체가 저널리즘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릴레함메르 총회의 주요 내용과 의미, 그리고 뉴스타파의 발표를 영상 리포트로 정리했습니다. 또한 이번 총회에서 뉴스타파와 함께 주목받은 독일 최초의 비영리 탐사매체 ‘코렉티브’를 직접 탐방해 설립 동기와 주요 활동 상황 등을 인터뷰 영상으로 구성했습니다.

월, 2015/10/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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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강철 씨는 북한에서 탈북브로커로 일하다 2013년 9월 본인 스스로 탈북해 한국에 들어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북한 보위사령부의 지령을 받고 남파된 간첩이라고 자백했습니다. 그는 합신센터가 2008년 설립된 이후 북한의 지령을 받고 위장탈북한 간첩이라는 자백을 한 14번째 탈북자입니다.

검찰은 유우성 씨 간첩증거조작 사건으로 대검 진상규명팀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하던 날 이 사건을 발표했습니다.

‘보위사 직파 간첩 적발!’ 보수언론은 대서특필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결국 다시 국정원과 검찰의 목을 옥죄고 있습니다. 2014년 9월 1심 판결에서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만약 2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된다면 ‘유우성 사건’ 이후에도 국정원이 간첩조작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것이 입증되는 것입니다. 뉴스타파는 사건의 진실을 1년 6개월 동안 추적했습니다.

▲ 2013년 6월, 홍강철 씨가 박 씨 모녀를 데리고 천신만고 끝에 탈북에 성공한 직후의 모습

▲ 2013년 6월, 홍강철 씨가 박 씨 모녀를 데리고 천신만고 끝에 탈북에 성공한 직후의 모습

탈북브로커 홍강철, 탈북하다

위 사진은 홍강철 씨가 박 모 씨와 그녀의 딸을 데리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으로 탈북한 직후에 찍은 것입니다. 지금보다 많이 야위고 거친 얼굴이지만 무사히 탈북했다는 안도감이 느껴집니다. 이 때만 해도 그는 간첩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홍 씨가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는 이미 그가 북한 보위부 정보원이며 탈북브로커를 납치하려 했다는 첩보가 국정원에 접수된 상태였습니다. 제보한 사람은 납치될 뻔 했다는 브로커 유 모 씨였습니다.

유 씨는 홍강철 씨 일행이 중국으로 나오면 데리러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막상 연락이 오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홍 씨가 자신을 납치하려 한다는 정황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홍 씨와 박 씨 모녀가 다른 브로커와 선을 대 떠나자 유 씨는 박 씨 어머니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박 씨 어머니는 결국 유 씨를 고소했습니다. 유 씨는 벌금 5백만 원을 선고받았는데, 이 사건 뒤 홍강철 씨를 보위부 정보원이라고 제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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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강철씨가 당시 입던 생활복 차림으로 상황을 재연하는 장면. 홍 씨는 합신센터의 독방에서 135일 동안 지독한 신문을 당한다.

합신센터 독방 135일, 간첩이 되다

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관들에게 신문을 받던 상황을 재연하는 홍강철 씨입니다. 당시 입던 생활복을 그대로 입고 있습니다. 홍 씨는 합동신문센터에서 135일 간 독방 조사를 받았습니다. ‘보위사 정보원이 아니냐’는 한 가지 질문을 일주일 내내 받은 적도 있다고 합니다. 조사관들의 의도에 맞는 답변을 하면 담배도 주고 술도 줬다고 합니다. 그는 끝 없는 신문 과정에서 허위자백도 많이 했고, 번복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홍강철 씨의 혐의 중에는 ‘통일애국세력의 사상 동향을 파악하고 보고한다’는 것도 있습니다. 그 혐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홍강철 씨는 생생하게 증언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홍강철 씨가 결국 번복하지 않고 간첩임을 인정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가족을 데려다 주겠다’는 국정원 간부의 약속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간부가 ‘우리는 평양에 있는 사람도 데려다 주는데 국경지역에 있는 너희 가족 못 데려다주겠나’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홍강철 씨는 북한 보위사령부 간부의 지시에 따라 탈북브로커 유 모 씨를 납치하려했다고 자백했습니다.

우리는 해외 전문가에게 중앙합동신문센터의 시스템이 괜찮은지 물었습니다. 허위자백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인 리처드 레오 샌프란시스코 대학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80일 간의 신문, 독방 수용, 자백의 대가를 약속하는 등의 시스템은 허위자백 가능성을 매우 높인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모든 문명국가처럼’ 한국도 독방 수용 금지, 신문 기간을 줄일 것, 변호인 접근 허용, 모든 신문에 대한 영상 촬영 및 보존 등 허위자백을 막기 위한 대책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 1심 무죄 석방 직후 민변 사무실 옥상에서 첫 담배를 피우고 있다

▲ 1심 무죄 석방 직후 민변 사무실 옥상에서 첫 담배를 피우고 있다

무죄를 받다

홍강철 씨에 의하면 국정원은 홍 씨 사건을 언론에 알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국정원이 압수수색 당하던 날 검찰이 보위사 직파 간첩을 적발했다며 대대적인 언론 플레이를 했고, 구치소에 있던 홍 씨는 펄펄 뛰었습니다. 검사는 사과를 했지만 그 언론플레이는 결과적으로 ‘민들레(민들레 국가폭력 피해자와 함께 하는 사람들)’ 소속 변호인단에 이 사건을 알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민들레 소속 장경욱 변호사는 홍강철 씨를 면회했고, 그로부터 ‘모든 것이 조작’이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 뒤 5달 동안 치열한 법정공방이 이어진 끝에 홍강철 씨는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나온 뒤 홍강철 씨가 가장 먼저 원한 것은? 담배였습니다.

▲ 마흔 세살 생일 날 민들레 회원들로부터 케익을 받은 홍강철 씨

▲ 마흔 세살 생일 날 민들레 회원들로부터 케익을 받은 홍강철 씨

얼마나 많은 간첩조작 희생자가 있는 것일까

홍강철 씨는 지금 평화롭게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갈 날을 기다리며 재판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를 완전히 간첩 혐의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민들레’ 변호인단은 오늘도 바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홍강철 씨 말고도 열 세 명이 합동신문센터에서 자백한 뒤 간첩이 됐다는 것입니다. 홍강철 씨는 유우성 씨가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던 2013년 8월에 합동신문센터에 들어갔습니다. 즉 합신센터의 조사관들은 자신들이 조작한 유우성 씨의 여동생 유가려 씨의 허위자백이 법정에서 산산히 깨지는 것을 본 뒤 홍강철 씨를 신문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찰하지 않았고, 홍강철 씨는 간첩으로 기소된 뒤 무죄판결을 받는, 유우성 씨와 똑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유우성 사건이 있은 뒤에도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그 이전에는 어땠을까요? 뉴스타파가 취재한 것만 해도 이경애 씨 사건, 북에서 준 패치를 붙이고 거짓말탐지기를 속였다는 이시은 씨 사건, 그리고 합동신문센터에서 간첩이라는 자백을 하고 자살했다는 한종수 씨 사건 등 3건이나 됩니다. 이런 현실은 열세 명의 탈북자 위장 간첩 사례들을 전수 조사해 간첩조작 여부를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싣습니다.

국가폭력 희생자들을 돕는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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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는 국가폭력 희생자들을 돕는 시민들의 모임입니다. 민들레 소속 변호사들은 아무런 보수도 없이 국가폭력 희생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만약 민들레에 좀 더 힘이 실린다면 국정원은 아마 간첩조작 같은 구시대적 행태를 반복하는 게 어려워질 겁니다. 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사법절차 끝에 유죄판결을 받아 수감된 희생자들의 재심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간첩조작의 주범들을 찾아내 처벌함으로써 다시는 이런 일이 대한민국에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민들레의 활동 목표입니다.

화, 2015/10/20-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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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102명 중 34명 신원 1차로 확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와 집필거부를 선언하는 교수들의 성명이 봇물을 이루는 가운데 최근 국정화를 지지하는 교수들이 등장해 주목을 끌었으나 뉴스타파 확인 결과 이 중 상당수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 몸담았거나 새누리당 출신 인물로 확인됐다. 특히 이들은 기자회견 참석자 3명 이외엔 소속 대학과 전공을 밝히지 않은 채 이름만 공개하는 상식 밖의 행태로 동명이인이 지지 성명 참가 교수로 오인되게 하는 등 큰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이에 따라 성명에 참가한 명단을 전수 조사해 현재까지(10월 21일 자정) 신원이 확인된 이름을 소속 학교와 전공, 그리고 경력까지 함께 공개한다.

나승일 서울대 교수(전 교육부 차관),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 김희규 신라대 교수 등 3명은 지난 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른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부가 책임지고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된 성명서에는 모두 102명의 교수가 참여한 것으로 돼 있지만 이름만 있고 통상 교수들의 공동 성명이나 입장 표명 때 함께 기재되는 소속 학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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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정치권과 일부 매체에서 지지 성명에 참가한 교수라며 소속 대학과 함께 명단을 공개했는데 전혀 관계가 없는 동명이인이 일부 포함됐다며 항의하는 일이 빚어졌고, 본인의 동의 없이 이름이 올라간 정황도 발견됐다. 뉴스타파는 이 성명에 참여한 것으로 나온 교수 102명을 일일이 접촉을 시도해 1차로 실제 성명에 참여한 교수 34명을 확인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박근혜 대선 캠프나 새누리당 출신이었고, 뉴라이트단체에서 활동하는 인물도 있었다.

상당수가 박근혜 캠프·새누리당·뉴라이트 출신…교학사 교과서 지지 전력도

34명 가운데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출신으로 곽병선, 김용직, 김희규, 나승일, 양정호 교수 등 5명이 확인됐다. 지난 2013년 일제 식민지배 미화 논란으로 이른바 ‘교학사 교과서 파동’을 초래한 교학사 교과서를 지지했던 김용직, 어명하, 이주천, 최진덕, 황홍섭 교수 등 5명도 이번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곽창신, 김성조, 신용수 교수 등 3명은 새누리당 출신이고, 이주천, 김용직 교수 등 2명은 뉴라이트 단체 소속으로 확인됐다. 김용직 교수의 경우 박근혜 캠프, 교학사 교과서 지지, 뉴라이트 단체, 그리고 이번 국정교과서 지지 명단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다음은 현재까지 뉴스타파가 신원을 확인한 교수 명단이다.

국정화 지지 교수 확인 명단

[표-1] 실명 확인 교수 명단(10월 21일 자정 현재)

이름 주요경력 소속 및 직책 전공 이력
곽병선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18대 대통령직 인수위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교육학 ·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행복교육추진단 단장
·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교육과학분과 간사
·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 마퀘트대학교 박사
· 서울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
곽창신 한나라당 수석전문위원 세종대학교 교육대학원장 겸 대외부총장 교육행정 및 정책, 직업윤리 · 한나라당 수석전문위원
· 교육과학기술부 학술연구정책실장
·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위원장
· 민주평통 자문회의 자문위원
권한용   동아대학교 대외협력처장 국제경제법  
김광래   가톨릭관동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마케팅 · 대통령자문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 사회통합전문위원
·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사무총장
· 2014년 강원도 교육감 출마
김남현   가톨릭관동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미국사 미국사학회 회장
김도기   창원대학교 음악과 교수 클라리넷, 지휘 · 창원예총 회장
· 한국 지휘연구회 회장
· 경남음악협회 회장
김성조 한나라당의원 한국체육대학교 총장 행정학 · 제16대~18대 국회의원
· 전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김용직 새누리당 100% 대한민국 대통합 위원회
교학사 교과서 지지선언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치외교학 · 새누리당 100% 대한민국 대통합 위원회 위원
· 교학사 교과서 지지 지식인 모임 참여
· 싱크넷(뉴라이트) 상임집행위원
김장수   가톨릭관동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서양근대사  
김종호   서울과기대
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
프레스 금형설계,
소성가공개발
· 서울산업대학교 제품설계금형공학과 교수
· 한국과학기술원(KAIST)조교
김태완   전 계명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철학 · 前한국교육개발원(KEDI) 15대 원장
· 前대통령자문 교육개혁위원회 전문위원
· 교육과학강국실천연합 상임대표
· 前대학선진화위원회 위원장
· 사단법인 한국미래교육연구원장
· 교육부 지방교육재정 혁신추진단장 (2015)
김형곤   건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서양사(미국)  
김희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신라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교육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행복교육추진단 추진위원
나승일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18대 대통령직 인수위
서울대학교 산업인력개발학과 교수 산업교육학 ·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교육과학분과 전문위원
·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행복교육추진단 추진위원
· 전 교육부 차관(2013)
류여해   수원대학교 법학과 겸임교수 법학 · 한국사법교육원 교수
· 국회사무처 법제실 법제관
· 대법원 재판연구관
류호섭   동의대 건축학과 건축학 · 부산광역시청 건설기술심위위원
· 한국교육시설학회 학회 감사
· 대한건축학회 이사
모영기   동원대학교 총장 교육행정학 · 국립교육평가원 원장
· 교육과학기술부 대학정책실 실장
· 문화체육관광부 교직국 국장
박명수   서울신학대학교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기독교역사  
박성수   한국학 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사학 ·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
· 성균관대학교 문과대 부교수
신용수 새누리당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경제학 ·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안보전문위원
· 다물평생교육원 이사
· 새누리당원
신형식   이화여대 사학과 명예교수 사학 ·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
· 제13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 한국고대학회 회장
· 역사교육연구회 회장
양정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교육사회학 새누리당 국민행복 추진위원회 위원
어명하 교학사 교과서 지지선언 전 통일교육원 교수 교육학 교학사 교과서 지지 지식인 모임 참여
이기숙   이화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유아교육과정 · 이화어린이연구원 원장
· 한국 유아교육학회 회장
· 세계 유아교육기구 한국위원회 회장
이주천 교학사 교과서 지지선언
뉴라이트 전국연합 대표
전 원광대학교 사학과 교수 사학(서양사) · 뉴라이트 전국연합 대표
· 교학사 교과서 지지 지식인 모임 참여
이춘수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정치학, 정치교육 · 국립대 발전 추진위원
· 대통령실 정책자문위원 역임
· 교육과학기술부 규제완화위원회위원
이택휘   전 서울교육대학교 총장 윤리교육 · 전 서울교육대학교 총장
· 한영외국어고등학교 교장
· 국학원 원장
· 국가보훈처 정책자문위원
·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이화룡   공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건축계획 및 설계 한국교육시설학회 회장
정완호   전 한국교원대학교 총장 과학교육 교육학 · 한국생물교육학회 회장
· 한국과학교육학회 회장
조연순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초등교육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초등교육과 명예교수
최진덕 교학사 교과서 지지선언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철학 교학사 교과서 지지 지식인 모임 참여
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고전문학사상 · 세종시 교육감 출마(전국 보수단체중앙회 추대)
· 한국어 교육학회 이사
· 대통령 자문위원
허숙   경인교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교육 · 경인교대 전 총장
· 교육과학기술부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황홍섭 교학사 교과서 지지선언 부산교육대학교 사회교육학과 교수 문학박사 지리학 · 한국사회과교육연구학회 부회장
· 부산좋은학교운동연합 공동 대표
· 교학사 교과서 지지 지식인 모임 참여

소속 대학 밝히지 않아 동명이인 교수 피해 속출

뉴스타파 확인 결과 지지 성명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동명이인인 관계로 성명에 참여한 것으로 오인된 피해자도 11명이나 됐다. 지지 성명 발표 이벤트 주최 측이 참여 교수들의 소속 기관과 직책 등을 기재하지 않고 이름만 발표한데다 정치권이나 언론이 본인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동명이인을 지지 교수라고 공개했기 때문이다.

[표-2] 동명이인-이름이 같아 언론에 지지 교수로 알려졌으나 성명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교수들

이름 소속 및 직책
강인수   현대경제연구원장, 숙명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박순우   대구가톨릭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서민규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
신동선   이화여대 수학과 교수
안성수   동신대 사회개발대학원 리더십학과 교수
안성진   성균관대 사범대 컴퓨터교육과 교수
이상정   경상대 건축학과 교수
이원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
이정숙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 총장
이재승   서울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정동준   대진대 역사문화콘텐츠학부 교수

또 뉴스타파 취재진이 본인 여부를 문의하는 과정에서 일부 교수들은 국정교과서 정책을 지지하기는 하지만 주최 측이 사전에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자신의 이름을 명단에 포함시켰다고 털어놓았다. 명단 자체가 급조됐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표-3]국정교과서는 지지하지만 사전 동의 없이 명단에 포함됐다고 말한 교수들

이름 소속 및 직책
김광래   가톨릭관동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신용수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신형식   이화여대 사학과 명예교수

소속 대학 비공개가 초래한 ‘블랙코미디’

이른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의 기자회견 사흘 뒤인 19일, 한 야당 의원이 지지 성명에 이름을 올린 교수 명단을 전수 조사한 결과 102명 중 역사학 전공자는 6명 뿐이라고 밝혔다. 그 무렵부터 일부 언론에서도 102명의 소속과 경력 등을 분석한 기사가 보도되기 시작했고 SNS를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뉴스타파도 자체적으로 지지 성명 교수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웃지 못할 일을 수시로 겪어야 했다.

성명에 참여한 것으로 보도된 박순우 대구카톨릭대 의과대학 교수는 “나는 의사다. 역사 문제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일에 참여했겠나. 동명이인일 것이다”라고 밝혔다. 뉴스타파는 이에 따라 ‘한국연구자정보(KRI)’ 사이트에 등록된 박순우라는 이름의 다른 교수가 있는지 확인했다. 공주대에도 박순우 교수가 있었지만, 확인 결과 지난 7월부터 미국으로 연구년 휴가를 떠난 상태였다. 더구나 공주대 박순우 교수는 지난해 4월 국정원 대선개입 관련 시국선언에 참여한 적이 있는 학자였다.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현대경제연구원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성명에 참여한 것으로 보도된 강 교수는 “거기에 내 이름이 왜 들어 있는지 모르겠다”며 지지 성명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동명이인인 강인수 수원대 교수에게도 연락해 봤지만 역시 참여한 바 없다고 밝혔다. KRI 사이트에서 검색되는 ‘마지막’ 강인수 교수(부경대·퇴임)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런 경우가 최소 11건에 달한다. 결국 한 야당 의원실의 부실한 조사와 이를 별다른 검증 없이 받아 쓴 일부 언론의 부주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근본 원인을 제공한 것은 바로 지지 성명 기자회견을 연 주최 측이다. 지지 성명 명단에는 ‘김현숙’이라는 이름이 있다. 이 이름으로 KRI 사이트를 검색하면 무려 80여 명이 나온다. 소위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이 소속 대학을 감추는 바람에 전국에 있는 ‘김현숙’이라는 이름을 가진 교수나 학자가 잠재적으로 지지 성명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대학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고,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인정받는 중 전문직 중 하나다. 그런 집단이 매우 민감한 이슈에 대해 입장을 내놓으면서 소속 대학조차 밝히지 못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뉴스타파는 더 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직접 참석했던 나승일, 양정호, 김희규 교수에게 102명의 소속 대학이 기재된 명단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특히 이번 성명과 관련해 언론 대응을 담당하고 있다는 양정호 교수는 취재진이 여러 차례 전화와 문자 연락을 취하고, 연구실까지 찾아갔지만 자신이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답 문자만 남긴 채 연락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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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화 반대 불길 맞불 놓으려 ‘지지모임’ 급조 정황 곳곳에 드러나

그렇다면 이처럼 비상식적인 형식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지지 성명은 어떤 과정을 통해 발표되게 된 것일까. 성명의 취지에 공감하고 직접 참여 의사를 밝혔다는 조연순 이화여대 교수는 “명단이 102명이나 되는 줄은 몰랐다. 저는 곽병선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김성조 한국체육대학 총장, 정완호 한국교육단체 총연합회장 등 몇 분이 주도해서 15~20명 정도가 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성명을 주도한 사람은 기자회견장에 직접 참석한 3명의 교수와 조연순 교수가 언급한 3명 등 6명 정도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주축은 곽병선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곽 이사장은 취재진에게 “몇몇 교수들이 자연스럽게 서로 얘기를 나누는 중에 의기투합해서 같은 의견이 나온 거지 딱히 내가 앞장섰다고 얘기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한 원로 교수는 “지난 주부터 곽병선 교수를 주축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성명서에 이름을 올려달라며 교육학계 교수들에게 연락이 돌았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100명이 넘는 교수 명단이 확보되는 과정에서 보수우익단체의 역할이 있었던 정황도 드러났다. 이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어떤 절차를 거쳐 성명에 참여하게 됐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대라는 단체의 대표가 연락을 해와서 부탁한다고 하길래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 단체에서 성명이 나가는 것인 줄로 알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또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도 “성명서에 내 이름을 올리겠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없다. 그러나 내가 보수단체인 애국시민연대에서 활동을 많이 해왔는데, 아마도 그쪽을 통해 이름이 올라간 것 같다”고 밝혔다.

이런 식으로 명단이 작성되다보니 본인의 동의 과정이 생략된 사실상의 ‘명의 도용’이 의심되는 사례도 적지 않게 드러났다. 102인 명단에 기재된 서민규라는 이름을 SRI에서 검색해보면 건양대 기초교양교육대학 소속 교수가 유일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해당 교수는 이번 성명에 참여한 사실도, 어떤 식으로든 관련 연락을 받은 적도 없다고 밝혔다. 또한 성명에 기재된 신동선 교수의 경우도 KRI에서 단 2명이 검색되는데, 1명은 이화여대 수학과 교수로 지난 2009년에 별세한 것으로 확인됐고 다른 1명은 호서예술전문대 교수로 이번 성명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응답했다.

결국 102명의 국정화 지지 교수 명단이 어떤 동의 절차에 따라 작성된 것인지, 명단에 들어있는 전체 이름의 실체는 해당 ‘모임’ 측에서 소속 대학이 기재된 명단을 공개해야만 정확하게 확인될 수 있다. 뉴스타파는 지지 성명 참여 교수들의 신원이 추가로 확인되는 대로 명단을 계속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국정화 찬성 교수들의 지지 이유 들어보니… “일본도 치부 가리고 역사 교육하는데 우리도…”

이번 성명에 참여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이름을 올렸다는 교수들은 현재 34명이 확인된 상태다. 취재진은 이들에게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찬성하는 이유를 물었다. 이들의 대답 가운데 일부를 소개한다.

곽창신 세종대 교육대학원장

(현대사 파트는 아예 없어야 된다는 건가요?)
“없어도 돼요. 아직 정리가 안 돼 있잖아요. 5.16 이런 거 가지고 매일 싸우게 만드는 거 아니에요. 5.16이 혁명인지 쿠데타인지는 아직 모르는 거 아니냐, 평가를 더 받아봐야 되지… 뭐가 되든지 중고등학교 역사는 하나가 됐으면 좋겠어요.”

(역사학 전공은 아니시죠?)
“교육행정학 박사에요.역사는 우리가 어릴 때 다 겪어본 거잖아요. 전공이 중요한 게 아니고, 고대사나 중세사는 다르지만 현대사는 우리가 더 잘 알 수 있어요. 우리 때는 고시공부를 했기 때문에…”

(교수님 지론이 교과서는 하나로 해야 된다?)
“그렇죠. 교과서는 하나로, 중고등학교는 하나로 가야죠. 별 오만 걸 삐딱하게 가르쳐 가지고 되겠어요? 일본도 그렇게 자기 치부를 가리고 가르치려고 그러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도 자랑스러운 역사책을 써야 한다는 말이에요.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나쁜 점은 크게 부각시키지 말고. 그런 건 얘들한테는 안 된다… 내가 교육학 선생이에요. 국론이 분열되고 이렇게 전교조 땜에 시끄럽고 그러잖아요. 그런 나라가 어디 있어요. 나는 국수주의자에요, 국수주의자. 멘탈리티가 그렇다고. 나는 6.25 사변 부상자 참전 용사자를 아버지로 두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난 좌익은 절대 용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니까.”

곽병선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지금 역사학계가 해석하고 중요시하는 역사 인식하고 보통 국민의 일반 정서하고 괴리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괴리를 반영하고 있는 게 현재의 집권 세력인 거에요. 집권세력이라는 것은 아시는 것처럼 적어도 대선을 통해서 국민의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어서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가진 세력 아닙니까? 그 사람들이 동의를 못 해주는 역사교육을 한다, 그것은 있을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국론이 분열되는 거예요. 국론 분열시키는 게 역사 교육이 아니에요.”

(그럼 대선에서 국민들이 박근혜 후보를 선택한 것 자체가, 역사에 대한 우파적인 인식을 국민들이 허용하고 용인하고 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게 직설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겠죠. 왜냐면 대선 때는 그런 이슈가 있지 않았으니까.”

조연순 이화여대 교수

지금 현재는 역사학자들이 너무나 나름대로의 사관을 심어주려고 노력을 하니까, 그게 학생들에게 오히려 편향된 영향을 준다. 옛날에 우리 시대에는 국가에 대해서 자긍심을 갖게 해줬는데 요새는 너무나 국가를 비판적으로만 보는 사관을 주니까 이건 정말 미래 세대를 위해서 바른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친일 문제나 민주화 문제, 전체적으로 다 그런데, 친일파 문제의 경우 사실은 너무 편파적으로, 그 당시 어쨌든 일제 하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 가서 교육을 받는다든가 이런 일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다 친일파라고 볼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일본하고 관계만 있으면 다 친일파라고 보고. 또 미국에 갖다 왔다고 다 친미파, 이렇게 몰아붙일 수는 없는 거잖아요.

신용수 단국대 교수

“우리가 지구촌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데, 지금 현재 저 전교조 애들이나 진보진영에서 주장하는 내용대로 역사 교육을 하게 되면 곧 상대인 적을 이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겠어요? 그렇게 되면 나라가 가게 될 곳이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해야 한다는 이념에는 제가 백 번 박수를 치는 것이고요.”

 

목, 2015/10/22-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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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함께 주력하고 있는 이른바 ‘노동개혁’이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9월 13일 노사정이 합의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 중 일부 독소조항이 시행되고, 새누리당이 같은달 16일 발의한 5대 노동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노동현장에 거대한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저성과자로 찍히면 상시 해고 가능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는 일반해고 가이드라인 도입과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조건 완화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없고, 경영상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일반해고가 도입될 경우 인사평가에서 저성과자로 분류된 사람은 해고 1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현재도 노조에 가입하지 못한 상당수의 노동자들은 명예퇴직, 희망퇴직, 권고사직 등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지만 회사에서 노동자에게 일정 수준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런데 일반해고가 도입되면 회사가 ‘값 싸고 손 쉬운’ 해고를 할 수 있는 길을 터주게 되는 것이다.

또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때는 노조나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노동자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도 개정할 수 있도록 취업규칙 관련 행정지침을 만들고 있다.

이 두 가지 사안은 9월 13일 노사정 합의문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고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는 내용으로 봉합해 놨지만 불씨가 남아있다.

▲ 민주노총을 제외한 노사정이 노사정 합의문을 최종 의결한 9월 15일 오전, 민주노총 간부들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있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삭발하고 있다.

▲ 민주노총을 제외한 노사정이 노사정 합의문을 최종 의결한 9월 15일 오전, 민주노총 간부들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있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삭발하고 있다.

파견업종, 직접 생산 공정까지 확대

고용노동부가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관련 행정지침(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는 사이 국회에서는 새누리당이 노동 관련 5대 개정 법안을 발의해 노동계를 압박하고 있다.

노사정은 기간제와 파견노동자에 대해 공동 실태조사와 전문가 의견수렴 후 대안을 마련해 입법에 반영하겠다고 합의했지만 새누리당은 35세 이상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파견 대상자(55세 이상 고령자, 고소득 전문직)와 업종(뿌리산업)을 확대하는 내용으로 법안을 발의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에서는 ‘인력난이 심한 업종’으로만 파견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업종이 바로 ‘뿌리산업’이었다는 사실이 새누리당 법안에서 드러난 것이다.

지금까지 직접 생산 공정에는 파견이 허용되지 않았는데 뿌리산업(주조, 금형, 소성가공, 열처리, 표면처리, 용접 산업)까지 파견이 허용되면 전체 제조업에 파견이 허용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수차례 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 판결을 받은 국내 완성차 사업장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게 된다.

파견노동자는 자신을 고용한 사업주와 일하는 직장의 사업주가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도 어렵고 고용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9월 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아 134일째(10월 22일 현재) 옛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며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는 최정명 씨는 “파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이라며 “정규직도 이제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지난해 9월 법원에서 기아차 정규직 지위를 인정받는 판결을 받은 기아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한규협, 최정명 씨(사진 왼쪽부터). 22일로 134일 째 옛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옥상 광고탑에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정규직화를 촉구하는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지난해 9월 법원에서 기아차 정규직 지위를 인정받는 판결을 받은 기아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한규협, 최정명 씨(사진 왼쪽부터). 22일로 134일 째 옛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옥상 광고탑에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정규직화를 촉구하는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노동법 ‘날치기’ 과거 경험 되풀이될까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여야 의원이 동수인데다 위원장이 야당 의원이기 때문에 새누리당 발의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과거 크게 논란이 됐던 노동 관련법들이 날치기 처리된 전력이 있는 데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연일 ‘노동개혁’을 강조하고 있어 올해 연말에도 이 같은 일이 재연될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1996년 12월 26일 새벽, 당시 신한국당(현 새누리당)의 날치기로 정리해고법이 도입됐고, 2010년 1월 1일 새벽에는 타임오프를 도입하고 복수노조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는 내용의 노조법 개정안이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주도로 통과됐다.

1996년 정리해고가 법제화될 당시에도 정부와 여당은 정리해고가 자의적으로 남발되는 것을 막기위해 정리해고 사유를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을 때로 한정한다고 주장했지만 이후 정리해고는 우후죽순처럼 발생했다. 최근 고용노동부 역시 일반해고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면서 일반해고가 남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11월 12일까지 전국 1만 개소 ‘을들의 국민투표’

정부가 말하는 ‘노동개혁’이 사실상 ‘노동개악’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시민사회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등 노동, 시민단체는 지난 7일 ‘을들의 국민투표’(링크)를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와 재벌의 ‘노동개혁’ 추진안과 노동자, 청년, 서민의 요구안을 비교해 놓고 시민들이 직접 원하는 곳에 투표하도록 한 것이다. 전국 1만 곳에 투표함을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다음달 12일까지 투표를 받는다. 22일 기준 전국 137개 지역, 1천100여곳 투표소에서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투표 결과는 전태일 열사 45주기인 11월 13일 공개된다.

▲ 지난 20일 서울대 캠퍼스에 마련된 ‘을들의 국민투표소'에서 한 대학원생이 투표를 하고 있다.

▲ 지난 20일 서울대 캠퍼스에 마련된 ‘을들의 국민투표소’에서 한 대학원생이 투표를 하고 있다.

※ 첨부자료 :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합의문(2015.9.15)

목, 2015/10/2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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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상한 인상의 아버지가 운전을 한다. 옆 자리엔 성인이 된 딸이 앉아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대뜸, 딸이 말한다. “나도 아빠랑 같이 출근하고 싶다”. 말 없이 딸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딸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힘내, 우리 딸”

다시, 이번엔 인자한 모습의 어머니와 건장한 아들이 등장한다. 어머니가 마련한 소담한 밥상을 앞에 두고 대뜸, 아들이 말한다. “퇴근하고 먹는 밥맛은 어떨까” 반찬을 집던 젓가락질을 멈추고 어머니는 아들을 바라본다. “밥 맛은 다 똑같지 뭐. 힘내, 우리 아들”.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가 끝나면, 신뢰감 있는 목소리의 내레이션이 화룡점정을 장식한다. “노동개혁은 우리 딸과 우리 아들의 일자리입니다” .

정부의 이른바 ‘노동개혁’ 홍보광고 이야기다. 버전은 이외에도 서너개가 더 있다. 버전이 뭐든, 결론은 노동개혁이 청년 일자리를 창출 할 것이라고 반복한다. 정말 그럴까?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은 ‘헬조선’을 벗어나 ‘내 꿈이 이뤄지는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을까?

현실 속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

여기 광고가 아닌, 현실 속에 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가 있다. 현대중공업에서 정규직으로 29년째 근무한 이만우 씨(56)는 3년 뒤부터 임금피크제가 적용된다. 현대중공업은 2012년에 이미 노사 합의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정년을 60세까지 연장하는 대신 59세부터 임금을 줄이기로 했다.

이 씨에겐 건장한 아들이 있다. 아들 역시 현대중공업에서 일했다. 하지만 정규직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6년째 하청업체 소속 파견 노동자였다. 여러 번 정규직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리고 아들은 지난 9월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잃고 말았다.

작업장에서 사고를 당한 것이다. 큰 수술을 몇 차례 했지만, 소생 가능성이 희박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육신을 보내는 대신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아들은 지난 10월 5일 5명의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났다.

정규직은 해마다 우리 중공업 같은 경우는 해마다 6, 7백명이 나가요. 보충되는 인력은 1/10 정도에 준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거든요. 말은 무늬만 일자리 창출로 임금피크제 시행한다고 해놓고, 일자리 창출이 정규직으로 창출해야 하는데, 비정규직만 양산시키는 이런 현실이 되거든요. 빛 좋은 개살구라고 생각합니다.
– 이만우 / 고 이정욱 씨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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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잃은 이 씨는 정부의 정책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실제로 현대중공업의 경우 임금피크제 도입 후 청년일자리가 늘었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오히려 청년일자리가 줄어들었거나, 질 좋은 정규직 보다 위험한 파견 일자리만 대거 늘린 것을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2011년 이후 현대중공업의 기술교육원 수료생 규모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교육원은 청년들이 현대중공업에서 일하기 전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또 현대중공업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인력 구성을 보면 파견 노동자는 2012년 이후 급증했지만, 정규직은 제자리 걸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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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번 양보해서 임금피크제가 일자리를 늘린다고 인정하더라도, 늘어난 일자리는 이 씨의 아들처럼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하는 위험한 일자리다. 현대중공업에서는 2014년에만 파견 노동자 10명이 숨졌고, 올해도 이 씨의 아들을 포함해 3명이 숨졌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자가용을 타고 출근하더라도 아버지는 정규직으로 아들은 파견 노동자로 일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저성과자로 낙인 찍힌 아버지

또 다른 아버지와 딸 이야기도 있다. 박현중 씨(가명, 50)는 사무직으로 현대중공업에서 20년 넘게 근속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하나 있다. 한참 돈이 많이 필요할 때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올해 초 박 씨를 저성과자라는 이유로 희망퇴직 대상자로 통보했다. 박 씨와 같이 희망퇴직 대상자로 선정된 사람은 1,500여 명이다. 그중 1,300여 명이 나갔고, 박 씨를 포함한 일부는 부당한 해고라며 노조를 결성하고 맞섰다.

현대중공업에서 벌어진 희망퇴직 대란은 정부의 ‘노동개혁’으로 벌어지게 될 일반해고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구조조정 대상자들에게 저성과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퇴직을 종용하는 것이다. 퇴직을 거부하면 역량 강화를 명목으로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역량 강화 교육은 실상 ‘나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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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교육을 받았냐면은 이직, 전직, 창업 그런 내용을 주로 교육을 받았어요. 이게 과연 전문직무향상교육인지 제가 묻고 싶고 그거는 결국은 나가라 다른 회사로 가라
– 박현중 / 현대중공업 사무직 (희망퇴직 거부자)

기업이 구조조정을 할 때 희망퇴직 또는 명예퇴직이란 이름으로 개별적으로 퇴직을 종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사실상의 부당 해고를 감추기 위함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이 인정하는 정당한 해고 사유는 정당한 절차를 거친 징계해고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른 해고 뿐이다. 이외에도 해고가 정당성을 가질려면 취업규칙 또는 단체협약에 명시돼야 한다. 그렇지 않은 해고는 부당한 해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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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진하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조치를 노동계가 완강히 거부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회사가 취업규칙을 변경해 해고를 쉽게 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취업규칙 변경이 가져올 미래, 쉬워지는 해고

정우형 씨(48)는 지난 5월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에서 제초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 센터가 3번 이상 고객 클레임을 받으면 해고할 수 있도록 취업규칙을 변경하려 했기 때문이다. 센터는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소속이 아닌 직원을 대상으로 과반 이상의 동의를 얻은 후 노조에는 통보만 했다.

취업규칙을 이렇게 바꿀거고 ½ 이상이 벌써 사인을 했기 때문에 이건 노조인 당신들 사인 안 한다고 해도 통과될 것이다. 강제적으로 통보를 하더라구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통과되면 바로 잘려나갈 사람들이 순위별로 이렇게 쭉…
– 정우형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정 씨 역시 고등학생 딸을 둔 아버지였다. 딸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날 결심을 할 정도로 정 씨에겐 절박한 선택이었다. 다행히 일찍 발견돼 목숨은 건졌지만, 여전히 정 씨는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진 못했다. 이후 센터는 취업규칙 변경을 철회했지만, 정 씨는 정부의 노동개악이 가져올 미래를 벌써 염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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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게 회사 대표가 아닌 정부가 만든다고 그러면, 제가 싸움의 명분이 많이… 나라에서 하겠다는데 나라에서 하라고 하는데 뭔데 못하게 막냐, 이렇게 나오면 인제 지금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되겠죠.
– 정우형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정부는 노사정 합의문을 발표하면서 장미빛으로 가득한 미래를 전망했다. 하지만 합의문이 글이 아니라 실제로 효력을 발휘하게 될 노동현장에는 이미 잿빛 미래가 서서히 도래하고 있다.

목, 2015/10/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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