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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학 청소노동자 고용구조를 바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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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학 청소노동자 고용구조를 바꾼다고?

익명 (미확인) | 월, 2015/08/17- 13:00

“대학 청소노동자 고용구조를 바꾼다고? 그게 된다면 노벨 평화상 받을 일인데” 사다리 포럼을 기획하면서 자문을 구하기 위해 만난 한 경제신문사의 노동담당 기자가 한 말입니다. 거칠게 말해 직장인의 절반은 비정규직인 세상. 대통령 직속기구인 노사정위원회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나라에서, 사용자인 대학과 노동조합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 그리고 노동전문가뿐만 아니라 기업, 재정, 복지, 사회적 경제, 여성문제 전문가들 역시 중재자로 참여해 대안을 모색한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지난 한 해 서울여대, 연세대 등 수많은 사립대학들에서 청소용역업체 소속 중년 및 고령 여성 노동자들이 고용승계나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장기농성을 벌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연초에는 최저임금이 적용되면서 상당수의 아파트 경비원들이 해고된 사연이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이분들은 대개 용역업체 소속으로 1년이나 2년 단위 고용계약을 체결하는, 전형적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왜 우리사회는 사회적 약자의 일자리 영역마저 비정규직으로 만들어 고용불안과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게 만들까요. 사다리포럼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사다리포럼이라는 이름은 정규직으로 가는 사다리, 근로빈곤에서 탈출하는 사다리를 찾아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가 주최하는 사다리포럼은 특정 노동시장 또는 고용형태를 주제로 한 달에 한차례 꼴로 열립니다. 대학 청소노동자, 아파트 경비원, 청년들의 아르바이트와 열정페이, 제조업 불법파견 등이 예정된 주제들입니다. 첫 번째 주제인 대학 청소노동자와 관련해 지난 5월21일과 7월7일 두 차례 비공개포럼이 열렸습니다. 한차례 더 비공개포럼을 가진 뒤, 10월 초에는 그동안 논의결과를 정리하고 현장개선 사례를 발표하는 공개포럼을 개최할 계획입니다.

사다리포럼의 포럼위원을 구성하는 과정은 좌충우돌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섭외한 포럼위원은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본부장님이었는데요. 신문기자를 그만두고 늦깎이 변호사가 된 뒤 인사를 드리러 간 게 지난 1월쯤이었습니다. 배 박사님은 노동문제를 노-사 및 노동전문가들에게만 맡겨두지 말고 통합적, 융합적으로 논의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제안하시더군요.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님과 논의하고 있던 ‘사다리포럼’ 아이디어를 듣자마자, 박태주 노사정 서울모델협의회 위원장님을 만나보라고 소개했습니다. 지난 3월, 서울시청 앞 찻집에서 만난 박태주 위원장님은 “경비원 고용문제는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련 있다. 나도 그 문제를 풀어보려고 동대표가 됐다. 희망제작소가 ‘동대표 되기 운동’을 벌이면 어떠냐”고 제안하시더군요. 준비된 포럼위원을 제대로 찾았구나 싶었습니다.

통합적, 융합적 논의를 위해서는 기업, 복지, 재정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합류가 필수입니다. 한겨레신문 후배 기자를 통해 전화번호를 입수한 뒤,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상조 교수님(한성대)을 찾아뵈었습니다. 대공장 및 중소기업 비정규직 문제의 근원에 놓여 있는 재벌문제가 포럼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김 교수님은 1998년 제2기 노사정위원회에 경제개혁 분야 공익책임전문위원으로 참여한 이력도 있었습니다.

처음엔 포럼위원 참여를 망설이던 교수님이 애초 약속한 미팅시간 30분이 끝날 즈음 “그런데, 임 연구위원은 어쩌다 섭외하느라 돌아다니게 되었소?” 질문을 던졌습니다. “처음엔 이원재 소장님에게 ‘사다리포럼’을 조직해보라고 제안만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장님이 ‘좋은 아이디어다. 그런데 희망제작소 내에는 그 업무를 수행할 사람이 없다. 당신이 와서 해라’ 하는 바람에 희망제작소에서 상근하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교수님은 빙긋 웃으시더니 “원래 이 바닥이 그래요. 나도 참여연대에 재벌개혁 이슈를 다뤄보라고 제안했다가 경제개혁연대를 떠맡게 되었거든. 노동문제 전문가들에 비해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공부하는 자세로 사다리포럼에 참여하겠소” 하시더군요.

그 뒤, 비정규직 문제 전문가인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님,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님, 좋은예산센터 소장인 김태일 교수님(고려대), 복지전문가인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위원장님, 여성학자인 이성은 희망제작소 연구조정실장 등이 속속 합류하였습니다. 첫 만남에서 있었던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모두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 과정은 ‘일사천리’ 또는 ‘의기투합’ 같은 단어로 축약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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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포럼은 첫 번째 주제로 ‘대학 청소노동자’를 선정했고, 목표는 ‘현장 한 곳의 실제 고용구조 변화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다른 대학들에 확산될 수 있게끔 모델을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포럼에서는 무기계약직 직접고용 모델, 자회사 모델, 사회적기업 또는 협동조합 모델 등 대학 청소노동자의 처우개선 및 고용안정을 위한 대안모델들의 장단점을 따져보고, 연세대처럼 노사분쟁이 심했던 대학이나, 경상대처럼 청소노동자 고용구조 변경을 모색하겠다고 천명한 대학의 현장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지난 2차례의 비공개포럼에는 나지현 전국여성노조 위원장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관계자, 여러 대학에서 일하고 있는 청소노동자들 등 노동계 관계자들이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님, 지하철 1,2,3,4호선 서울메트로의 청소 관련 자회사인 서울메트로환경의 조진원 대표이사님, 청소 분야 사회적기업인 함께일하는세상의 이철종 대표님 등과 함께 뜨겁고 직설적인 토론을 벌였습니다. 또한 희망제작소는 부산대, 서울시립대, 경상대를 직접 찾아가 보직교수, 노조관계자, 사무처 직원들을 인터뷰하고, 이를 포럼위원들에게 정리해 전달했습니다.

희망제작소에서 일을 시작한 뒤 자주 들은 단어가 ‘우문현답’입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의 줄임말이지요. 비공개 포럼인 탓에 노조와 학교 관계자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수많은 시민들의 공감과 연민에도 불구하고 청소노동자 분쟁이 지속되고 있는 까닭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상당수 사립대학 사무직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전체 숫자는 비슷한데, 임금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4분의 1도 안됩니다. 우리시대 대학에 만연해있는 비정규직 문제의 그늘은 대학에서 청소하는 어머니들의 얼굴 위에도 드리워져 있는 셈입니다.

사다리포럼은 현재 서울시내 소재의 A대학과 대학청소노동자 고용구조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제3회 포럼은 비공개로 A대학 관계자들과의 논의에 집중할 계획이고, 10월 초에 열릴 제4회 포럼에서는 우리 대학사회에 몇 가지 고용개선 모델을 제안함과 아울러, A대학과 진행 중인 논의과정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A대학의 구성원들은 적어도 고령자들로 구성된 청소노동자의 처우개선과 고용안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점에 대해 공감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정말로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요? 아파트 경비원들의 고용구조를 개선할 수 있을까요? 비정규직 일자리에 내몰릴 뿐 미래의 꿈을 박탈당한 청년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요? 애초 무모한 도전이었기에, 결과를 얻어내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2015년 한국 사회에서 대학 청소, 아파트 경비 등 막다른 일자리 영역의 고용구조가 잘못되었다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희망제작소가 사다리포럼을 통해 무모한 도전의 첫발을 내디딘 까닭입니다.

글_임주환(연구조정실 연구위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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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 육아헬 시작을 알리는 사랑스러운 아들의 울음소리, 퇴근 없는 육아 노동을 하게 된지 6개월 차 초보맘. 지금 희망제작소 육아휴직 중이지만 그간에 느낀 바를 나누고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육아휴직을 하기 전 솔직히 ‘육아’보다 ‘휴직’에 더 큰 기대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1년이면 평소 하고 싶었으나 시간을 핑계 삼아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내리라 믿었던 것이죠. 그래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하나 작성하고 실천할 생각에 조금은 들뜨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낳고 열흘이 지나지 않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나의 24시간은 ‘아기 돌보기’ 다섯 글자만으로도 꽉 채워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가 엄마의 삶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남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육아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했던 즐거운 상상은 얼마 가지 않아 깨졌습니다. ‘부모’라는 이름을 얻는 것은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나도 육아 같이할 ‘남편’이 있었으면 좋겠다

결혼할 때 부부는 맹세합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 그리고 힘들 때에도 서로 의지하며 함께 하겠다고-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힘들 때’가 닥쳤습니다. 온종일 아기와 집에서 자가격리된 아내는 남편의 퇴근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하지만 남편은 잦은 야근으로 정시에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기는 아빠를 보지 못한 채 잠이 들고 엄마는 녹초가 되었습니다. 밤늦게 일을 끝내고 돌아온 남편에게 안부를 묻고 대화하기에는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습니다.

이는 특별할 것 없는 대부분 가정에서의 모습입니다. 가사와 육아를 도맡아 하는 초보맘들은 지금과 같은 환경에선 부모가 적어도 셋은 돼야 건강한 가정을 운영할 수 있다고 뼈있는 농담을 던집니다.

아빠의 육아책임, 커진 만큼 책임 다할 도리는 없어

요즘 시쳇말로 웃.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웃기면서도 슬플 때 쓰는 말입니다. 저는 요즘 힘.복.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힘들고도 행복한 나날이지요. 육아에 관심이 많은 남편과 ‘힘복함’을 나누고 싶지만, 남편의 육아휴직은 한 번도 고려한 적이 없었습니다. 휴직 후 돌아올 불이익을 따져보면 직장을 그만둘 생각이 아니고서야 엄두도 낼 수 없습니다. 아니, 그만둔다 할지라도 남성의 육아휴직은 직장에 ‘염치없는 일’이라고 남편은 말합니다. 주변에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고 기르는 부부들도 같은 의견입니다. 현실은 법적으로 보장된 5일의 출산휴가도 눈치 보여 다 쓸 수도 없습니다. 이런 점들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설문조사의 결과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남성육아휴직제를 사용할 의사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실제 사용 경험은 현저히 낮습니다.(관련 기사: “남자가 무슨 육아휴직이야” 인식 여전) 아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복지문화라 요구조차 하지 못합니다.

저출산 시대, 사회는 ‘일과 가정의 양립 지원 법안’을 만들어 출산을 장려하고 남성의 육아 참여를 권장합니다. 언론이 소개하는 다양한 자료들은 자녀를 더 나은 아이로 키우기 위해 아빠의 역할이 막중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성들이 육아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과 배려는 미흡한 게 사실입니다. 아빠의 육아 책임은 커졌으나 그 책임을 다할 도리가 없으니 즐겁게 보던 육아 예능 프로그램은 이제 상대적 박탈감마저 들게 합니다. 아빠는 일과 육아를 완벽히 해내는 슈퍼맨이 될 수 없기에 자녀에게 미안함만 더해갑니다.

일하는 엄마 아빠들의 희망은 조화로운 일과 삶의 설계로부터

희망제작소에서 희망지수를 만들고자 합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시민들로부터 직접 자문을 받아 우리 사회 희망의 지표를 찾는 작업을 한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저는 일하는 엄마 아빠들은 단연 일과 삶의 조화로운 설계를 우리사회의 희망을 가늠하는 첫번 째 지표로 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일과 가정의 양립, 다른 말로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이라고도 합니다. 일과 가정을 양팔저울 위에 나란히 싣고 무게 중심을 잡으면 한 영역이 커질 때, 또 다른 영역은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이렇듯 일과 가정 중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를 희생시키는 프레임 속에서는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없습니다. 일과 삶을 통합하는 리더십을 연구한 스튜어트 프리드만(Stewart D. Friedman)은 일, 가정, 공동체, 개인(마음, 신체, 정신). 이 4가지 영역이 조화를 이뤄야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삶의 만족도는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입니다.(관련 기사: ‘헬조선’ 이유 있었네…) 다양한 이유야 있겠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 풀 수 없는 일과 가정을 ‘제로섬’게임처럼 놓은 채 이루어지는, 그 둘 사이의 아슬아슬한 중심 잡기가 팍팍한 삶을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을까요?

슈퍼우먼 직장맘, 용감한 아빠가 되어야 하는 험난한 도전이 아니더라도 가정과 사회, 일터 모두에서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육아와 일을 설계하고, 이를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는 미래사회를 상상해봅니다.

글_ 허새나(연구조정실 연구원 / [email protected])

월, 2015/10/2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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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에게 고용안정이란?

“저 취직했어요.”
부모님께 이렇게 말하면 가장 먼저 어떤 말을 듣게 될까? 아마도 이 말이 아닐까.
“정규직이니?”
2030세대도 마찬가지다. 친구가 “나 취직했어.”라고 한다면 정규직인지 아닌지, 즉 ‘안정적인 직장’인지부터 묻지 않을까?

청년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40만 명이 넘는 나라. 9급 공무원 공채 경쟁률이 300대 1에 이르는 나라, 외국어고 전교 1등이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언론에 소개되는 나라, 노동계가 가장 크게 요구하는 일자리 정책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인 나라 대한민국에서 ‘고용안정’은 분명 최우선의 가치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과연 ‘고용안정’이란 의미는 어느 세대에게나 똑같을까? 첫 직장에 취업하면 정년까지 다니는 것이 당연하던 시대를 살아온 세대, 그리고 취업자 절반이 6개월 이내에 직장을 그만두는 지금 세대의 사이에서 그 의미가 같을 수가 있을까?

‘자비 없네 잡이 없어-2030세대 노동 이야기’의 첫 번째 주제로 ‘고용안정’을 정한 것은 그 차이를 짚어보고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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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촌르호봇G캠퍼스에 연구자 네트워크 8인 중의 3명이 모였다. 셋은 각각 20대 후반, 30대 중반, 30대 후반의 나이이고, 영리·비영리를 포괄하는 여러 조직에서 일해 봤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게 ‘정년보장’일까?

황세원 : 3인 토크 첫 주제를 ‘고용안정’으로 잡았는데요. 처음부터 다소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일에 대한 세대 간 시각 차이가 있다면 이 부분이 핵심이 아닐까 했어요. 정규직·대기업·공무원 등 우리 사회에 몇 안 되는 좋은 일의 보편적 기준들은 다 ‘고용안정’에 근거하니까요. 저도 언론사, 공공 업무를 하는 민간위탁기관, 비영리재단 등을 거치며 일해 왔지만 두 분은 더 다양한 조직 경험을 하셨는데요. ‘고용안정’ 측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정민 : 저는 고교 때부터 예술을 전공해서인지 ‘고용안정’을 기준으로 진로를 택해 본 적은 없어요. 그렇지만 안정성 높은 공공부문 직장을 경험해 봤더니 안정성이 왜 중요한지 이해하겠더라고요. 갑질 당할 일 없고, 어떤 일 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고, 사회적으로 보호된 직종에서 일한다는 자체가 안정감을 주니까요. 또, 건강검진, 해외연수, 경조사비, 상조서비스 등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모아 놓으면 생활에 굉장히 큰 차이를 만들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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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빛나 : 제 지인 중에도 경조사비 혜택 때문에 회사를 못 그만두겠다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지만 그 점만 봐도, 사람들이 원하는 ‘고용안정’은 단지 안정적인 조직을 말하는 건 아닌 듯해요. 어떤 일을 안정적으로 하려면 개인의 안정성도 필수적이잖아요? 가정의 상황이 어떤지, 스트레스는 감당할 만한지, 급여가 만족스러운지 등등에 따라서 아무리 안정적인 직장도 도저히 다닐 수 없는 곳이 되니까요.

황세원 : 저도 그 점이 궁금해요. 고교 3학년도, 예순이 다 된 사람도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게 우리 현실인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게 정말 ‘정년 보장’인가 하는 거죠. 저는 요즘 청소년이나 대학생 진로교육을 나갈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꼭 물어봐요. “지금 마음에 드는 직장에 들어갔다고 하면, 65세까지 다닐 수 있겠어요?” 하고요. 다들 황당한 표정을 짓죠. “왜 그래야 하는데요?” 반문하기도 하고요.

김정민 : 우리 사회에서 공무원 시험이 가지는 의미는 ‘공정한 선발’ 아닐까요? 민간 부문에서도 비슷한 공정성을 기대할 수 있다면 이 정도로 쏠림이 심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황세원 : 정규직·비정규직의 문제도 정년 보장의 차원은 아닌 듯해요. 그보다는 ‘차별’이 있느냐, 갑질을 받느냐,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해고될 위험은 없는지의 차원 아닐까요? 무엇보다도 다음 단계로의 성장 가능성이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봐요.

안정된 직장에서도 느끼는 ‘공포’

김정민 : 사실 2030세대가 ‘고용안정’을 추구한다는 건 모순이에요. 앞선 시간에도 얘기했듯이 ‘밀레니얼 세대’는 자기 자신의 욕구를 늘 탐색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기를 원하죠. 그런데 ‘고용안정’이 되는 순간 이런 갈증을 포기해야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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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빛나 : 맞아요. 제가 참여한 ‘밀레니얼 프로젝트’(밀레니얼 세대의 공익활동을 이해하고 촉진하기 위한 연구)에서도, 이 세대의 퇴직 사유 중 가장 큰 것이 ‘내가 원하는 일의 의미와 가치에 맞지 않아서’이더라고요. 일에 대한 인식이 ‘단순히 직장에 다니는 것’에서 ‘나의 전문성을 활용해서 의미와 가치를 실현하는 것’으로 변해온 것이죠.

황세원 : 그렇지만 취업준비생 10명 중 4명이 공시생이라는 통계만 봐도, 2030세대 역시 현실적으로는 안정성에 얽매여 있는 것도 사실이죠. 한국 사회의 상황이 그런 다양성을 추구하도록 허용하지 않잖아요?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임금 차이는 점점 커지는데, 그런 정규직도 생애소득은 공무원만 못 하다더군요. 명예퇴직을 피해서 정년까지 다니기가 어려운 거죠. 그러다보니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에게서도 공포가 느껴져요. 드라마 ‘미생’(2014)에 나왔던, “직장이 전쟁터 같지? 여기서 나가면 지옥이야.”라는 대사 그대로죠.

김정민 : 문화가 조금씩 바뀌고는 있어요. 제가 2013년에 이직할 때만 해도 “그동안 이직을 왜 그렇게 자주 했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 이후부터는 그런 질문은 못 들었고, 오히려 이직한 것도 능력으로 봐 주더라고요. 워낙 취업 자체가 어렵다보니 그런 것도 같지만, 조직보다는 개인 기준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커지는 게 아닌가 해요. 하려는 일의 가치와 미션이 명확하다면 기업이건 비영리건 어디서 일해도 상관없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이직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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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원 : 그런가요? 아직 모든 영역에서 그래 보이지는 않는데, 그런 경향이 더 확산되면 좋겠네요. 김빛나 씨는 해외에서의 일 경험도 있으시잖아요? 한국과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김빛나 : 미국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다닐 때 학교 입학처에서도 일했고, 비영리 기관에서 인턴을 하기도 했는데요. 일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은 영리·비영리·공공부문 등의 섹터를 한국에서처럼 구분하지는 않았어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경력을 쌓아갈 뿐이죠. 그렇게 자신만의 ‘커리어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봤더니, 청소년기부터 다양한 환경과 문화, 인식을 자연스럽게 접했고 그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고 나누는 교육을 받았더라고요. 그 결과로 대학교의 전공, 직업을 택하는 것이죠. 한국에서처럼 성적에 맞춰서 전공을 정했다는 경우는 들어보지 못 했어요.

다른 삶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김정민 : 어려서부터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다른 삶은 어떤지를 상상할 수 없으면 불안해지기 마련이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첫 직장부터 안정적인 조직에 들어가서 쭉 다닌 사람일수록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중요한 의사결정권을 가지잖아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의 삶에 공감하는 감수성이 떨어지기 쉬워요. 경험치가 낮고, 시야가 좁으니까요. 그게 지금 20~30대들의 직장생활을 답답하게 하는 큰 요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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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원 : 맞아요. 2030세대가 답답해하는 점이, 열심히 노력해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만족스러워야 하는데 오히려 직장문화라든지 시스템이 더 후진적이라는 거예요. 연봉이 높으니까 참고 다니는 사람에게도, 견디지 못 해서 이직해야 하는 사람에게도 사회적인 낭비가 발생하죠.

김빛나 : 요즘은 기업이나 비영리 부문의 경험을 가지고 공무원이 되는 분들도 있고, 그 반대의 경로로 일하는 분들도 있던데 확실히 달라 보여요. 안타까운 건, 청소년 시기에 자신의 삶에 대해 열린 선택지를 두고 고민해 볼 기회가 별로 없다는 거에요. 제 청소년기를 돌아봐도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기보다는 주어진 길대로 걸어온 시간들로 느껴져요. 꿈을 꾸라, 진로를 고민해 보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정답을 정해놓은 시험을 보는 기분이었어요.

김정민 : 한국에서는 경험도 다 비용에 달려 있거든요. 부모님들의 경험치가 자녀들 진로를 좌우하기도 하고요. 경험치가 높은 부모님들은 아이에게 한 방향만 강요하지 않지만, 대부분은 딱 몇 가지 진로, 그야말로 ‘안정적이다’라고 평가되는 진로만 주입시키죠. ‘네가 아프거나 아이를 낳을 때,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도 보호 받을 수 있는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식의 메시지를 주는데, 가만히 보면 다 경제적인 이유들이에요. 다른 방식의 삶은 상상하지 못 하는 거죠.

황세원 : 다양한 경험이 부족하고, 다른 삶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까 불안감을 느끼고, 그러니까 안정성을 보장해 주는 진로에 매달리게 되고, 혹은 그런 진로를 택하라고 다음 세대에게 주입하게 된다는 거네요. 앞선 자리에서 최태섭 씨가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나 자란 세대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는 추동을 받았다고 했는데, 이런 추동과 안정성을 추구하라는 추동을 동시에 받으니 2030세대로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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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빛나 : 그런데다 간접경험은 훨씬 늘어났으니까요. 인터넷 검색만으로 해외의 새로운 조직문화나 일의 사례, 경험들을 쉽게 접할 수 있죠. 차라리 모르면 지금 체계에 순응을 할텐데, 좋은 사례들을 알아버린 상태에서는 그럴 수가 없죠.

김정민 : 그래서 저는 중학교에 도입된 ‘자유학기제’, 내년부터 확장되는 ‘자유학년제’ 같은 제도들이 제대로 활용됐으면 좋겠어요.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접어드는 시기에 ‘자기 삶’에 대해 충분히 탐색하는 시간을 준 것은 참 좋은데, 자원이 풍부한 아이들과 아닌 아이들 사이에 격차가 나타난다든지, 이전 세대인 교사들의 경험치 범위에 갇히는 일이 없었으면 해요.

내가 원하는 방향에 있느냐가 ‘안정성’

황세원 : 정리해 보면, 2030세대에게 ‘고용안정’은 분명 이전 세대와는 다른 의미네요. 한 직장에 정년까지 다닌다는 의미보다는 내가 추구하는 방향대로 경력을 쌓아갈 수 있는 환경에 있느냐는 의미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세대는 각자 자기에게 맞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야 하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경험들이 필요하겠네요. 그런 노력들이 경력 상 손해로 작용하지 않도록 조직들은 유연해져야 하겠고,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도 바뀌어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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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명이 대화했던 첫 번째 자리와 달리 이번은 ‘3인 토크’였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3시간이 쉴 틈 없이 지나갔다. 명확한 결론을 낸 것은 아니었지만 술술 풀려가는 이야기의 끝에 어떤 실마리가 나타나는 듯했다. 앞으로 7개의 주제를 더 다루는 동안에 이 실마리도 점점 더 분명해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다음 편은 3회 ‘충분한 휴식이란?-휴가 가기 위해 사표 냅니다’로, 2030세대가 원하는 휴식의 수준과 이를 위한 권리에 대해 다룬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해피빈 공감펀딩(후원) 금액은 전액 프로젝트 진행 및 출판 비용으로 활용되며, 추가 수익이 발생할 경우 재단법인 희망제작소의 공익사업에 전액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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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리즈는 2030세대의 새로운 노동에 대한 고민을 담은 공간에서 진행됩니다. 2회는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코워킹 공간 ‘신촌르호봇G캠퍼스’에서 진행됐습니다.

– 정리 : 황세원 | 시민상상센터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 사진 : 이우기 사진작가

화, 2017/11/2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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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위원회의 사망을 선고한다

2017년도 최저임금 사용자측 요구안인 시급 6,470원, 월 1,352,230원으로 일방결정
양대노총, 기울어진 구조를 바꿔내기 위한 전면적인 제도개선 투쟁에 돌입할 것

최저임금 인상억제를 위해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해 담합한 공익위원과 사용자위원에게 조의를 표한다.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500만 저임금 노동자들의 바람을 저버린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2016년 7월 16일 최저임금위원회의 사망을 선고한다.

7월 15일, 13차 전원회의에서 박준성 위원장은 시종일관 노동자위원들에 대한 협박과 횡포로 일관했다. 지금까지 지켜져 온 운영위원회 합의에 의한 회의운영 원칙을 저버리고 독단적 회의진행으로 최저임금위원회 파행을 유도하였다. 이미 비선을 통해 청와대 또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받아 안고 강행 통과 시키겠다는 의지로 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11시 30분까지 노사 양측은 표결에 붙일 수 있는 안을 제시 해달라. 만일 최종안을 함께 제출하지 못할 경우, 최종안을 제시하는 측의 안으로 표결 절차에 돌입한다“라는 협박마저 서슴치 않았다. 노동계가 1만원을 고수하면 사용자위원들의 안으로 결정하겠다는 선전포고이자 노골적인 겁박이었다.

노동자위원들은 최저임금 인상억제를 위한 공익위원과 사용자위원의 담합구조에 들러리를 설 수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7월 15일 밤 11시 40분경 13차 전원회의에서 퇴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박준성 위원장은 독단적 회의진행과 협박으로 노동자위원의 퇴장을 유도한 뒤 차수변경을 통해 7월 16일 새벽 3시 14차 전원회의를 통보하고, 곧바로 사용자위원들의 안이 공개되었는데 시급 6,470원이었다. 이 사용자측 안으로 사용자위원과 공익위원들이 표결하여 14명 찬성으로 의결했다. 사용자측 요구안을 최저임금으로 결정 사상 유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한 밤중 쿠데타에 의한 최저임금 결정이라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용납할 수 없는 폭력적 결정이다.

무엇보다 최저임금 대폭인상 소식을 고대하고 있었을 국민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최저임금 월 209만원(시급 1만원)을 위해 수 개월간 모든 노력을 다해왔다. 수많은 국민들과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1만원 요구의 정당성에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셨다. 그러나 기울어진 운동장, 대통령과 정부의 입장이 공익위원을 통해 관철되는 구조에서 2017년도 최저임금은 끝내 전년대비 7.3% 인상된 시급 6,470원, 월 1,352,230원으로 결정되었다. 두 자리수는 커녕 전년도 8.1% 인상율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악의 인상율이다.

오늘 양대노총은 최저임금 위원회가 더 이상 500만 국민의 임금을 결정하는 기구가 될 수 없음을 선언한다. 또한 공익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노동자를 등지고 사용자 편에 서있는 완전히 기울어진 구조를 바꿔내기 위한 제도개선 투쟁에 나서겠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최저임금위원회에 공익은 없었다.
대통령이 100% 임명하는 허울뿐인 9명의 공익위원들이 있는 한 정상적인 최저임금 심의가 진행될 수 없다. ‘최저임금노동자의 생활안정’이라는 최저임금법의 취지는 공익위원과 사용자위원의 담합으로 쓰레기통에 들어가 버린 지 오래다.
공익위원들은 더 이상 공익(公益)이 아닌 공익(空益)위원들에 불과하다.
공익은 고사하고 공정성과 합의의 정신마저 내팽개친 채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는 편파적 위원일 뿐이다. 이 편파적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최저임금위원회는 영원히 최저임금 최소인상위원회가 될 수밖에 없다.

양대노총은 기울어진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 고치는 제도개선 투쟁과 함께 2017년도에는 모든 힘을 다해 반드시 최저임금 1만원 쟁취를 하겠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약속드린다.

2016년 7월 16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화, 2016/07/1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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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회사도 손실 큰데…방지 대책 논의조차 제대로 안돼 (한겨레)

‘직장 내 괴롭힘’은 노동자 개인에 대해 인격적인 상처를 줄 뿐 아니라 해당 기업에도 커다란 금전적 손실을 미친다. 노동자들이 이 문제로 괴로워하거나 문제해결을 하기 위해 시간을 소모하면서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스트레스로 생산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정책 개발이나 법제도 정비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아래 주소에서 기사 전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729970.html

금, 2016/02/1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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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회황'과 ‘라면 상무’, 감정 노동자는 눈물만... 

착한 소비 문화 운동 넘어서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800만 명에 달하는 감정 노동 종사 노동자의 고통이 지속되고 있지만, 해결을 위한 단초가 되리라 기대했던 19대 국회 입법안은 결국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5월 9일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등 감정 노동 보호 관련 법안이 다뤄지지 못한 것이다. '땅콩 회황', '라면 상무', 압구정 현대아파트 경비원 노동자 자살에 이르기까지 감정 노동의 심각성은 너무도 많이 알려졌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법안심사소위 안건 상정부터 반대하더니, 9일 회의에서는 "노동 4법이 함께 처리해야 되어야 한다" 고 주장하면서 '비쟁점 법안이라도 다루자'는 야당의 요구를 저버렸다.

 

2013년 감정 노동네트워크에서 266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감정 노동 종사 노동자의 현실은 참으로 비참하다. "고객으로부터 인격 무시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다"는 88%, "욕설 등 폭언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81%였다. 1개월 내 고객에게 욕설 등 폭언을 당한 경험은 7.2회에 달했다. 그러나 고객에게 피해를 입었을 때 휴식을 부여받은 경험은 23%에 불과했고, 오히려 미스터리 쇼퍼(Mistery Shoper)등 친절도 암행 평가로 회사에 대해 신뢰가 실종되었다는 답변이 90%에 달했다. 조사 대상 노동자의 30%가 최근 1년 이상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변했으며, 우울증이 심리 상담이 필요한 수준인 집단이 42%에 달했다.

 

감정 노동 종사 노동자의 현실이 수년 동안 사회적으로 제기되자 홈플러스, 롯데마트, 이마트 등을 비롯해 기업들은 자체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해 왔다. 그러나 그 실체는 기업 이미지 관리를 위한 방패막에 불과했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 5월 2일에는 부산 이마트 계산대의 여성 노동자에게 50대 남성 고객이 "이 사탕을 키스할 때 먹으면 입 냄새가 나요 안나요?"라며 성희롱을 했다. 성적 수치심을 견디며 계속 일하고자 했으나 계산 물품 확인 과정에서 동일한 고객이 폭언과 욕설을 퍼부었다. 회사 관리자는 상황을 방치하고 오히려 다른 고객들의 항의로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해당 노동자가 놀란 가슴에 잠시 휴식을 취하겠다는 요청도 관리자는 거부했다. 고객 폭력과 회사 측의 태도에 놀란 이 노동자는 지금 병원에서 적응 장애 진단을 받고 병가를 낸 상태이다.

 

이 같은 상황은 이마트 다른 매장에서도 발생했다. 가양점에서는 지난해 8월에 여성 고객에 폭행을 당한 노동자를 회사가 방치해서 노동조합이 나서 고객을 고발했다. 9월에는 남성 고객이 계산대에서 기다리게 한다며 "000를 부숴버리겠다"며 음료수 병을 던지고 폭언을 했다. 그러나 회사는 불안에 떠는 노동자에게 계속 일을 시킨 것도 모자라 그 진상 고객을 다시 만나게 했다, 진상 고객은 폭언이 담긴 녹음 파일을 지워라,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회사는 노동자를 전혀 보호해주지 않았고, 결국 해당 노동자가 직접 고객을 고소해서 벌금 30만 원을 선고 받기도 했다.

 

2016년 올해에도 이마트 대전과 서울에서 진상 고객에 대해 회사 측은 무조건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오히려 이마트 본사에서는 수년 동안 같은 일을 해온 해당 노동자에게 "고객 응대가 어려운 사람은 발령 조치하겠다"는 협박성 답변이 되돌아왔다. 이것이 2014년 감정 노동 종사자를 보호하겠다며 "e-케어 프로그램"을 실시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이마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언론에 보도된 이후에도 이마트는 매장마다 "우리는 매뉴얼대로 했다"며 해명 전단을 붙이고 있는 상태다. 감정 노동 보호를 하겠다는 매뉴얼이 노동자를 보호하기는커녕, 기업의 방패막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마트뿐 아니라 홈플러스는 2013년 '고객 응대 매뉴얼'을 만들고, 2017년에는 직원의 감정 케어를 위해 '해피 투게더' 프로그램을 운용한다고 한다. 롯데마트는 직원의 감정 노동과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행복UP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대형 유통 재벌의 감정 노동 보호 운운은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매출 감소를 보호하기 위한 이중 가면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감정 노동에 대한 노동부의 예방 사업은 여전히 '고객 대응 매뉴얼' 작성에 대한 행정 지도와 <착한 소비 문화 운동>에 머무르고 있다. 감정 노동 보호를 위한 법 개정도 처벌 조항 없이 권고로 하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감정 노동자 보호를 위한 입법 추진 과정에서 전경련은 '진상 고객의 문제를 왜 사업주에게 예방 조치 의무를 주는 식으로 규제를 강화하냐"고 반발하고 있다.

 

감정 노동의 원인은 갑질 고객만의 문제일까? 소비자의 자성을 촉구하는 캠페인만 열심히 하면 해결되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감정 노동의 문제는 사업장 안의 노동 통제 과정과 직결되어 있다. 유통 재벌 기업은 고객을 가장한 조사원이 노동자들의 친절도를 평가하고 인사 고과와 연계시키는 미스터리 쇼퍼 제도를 통해 노동 통제를 해왔다. 또한, 고객 대응 업무를 하는 전 업종에서 업무와 관련된 모니터링이 진행된다.

 

 

국내 주요 서비스산업 작업장 모니터링 시행 여부 의견(단위: %)*자료 : 주요 서비스산업 업종 및 직종별 감정노동 실태조사

[그림]국내 주요 서비스산업 작업장 모니터링 시행 여부 의견(단위: %)
*자료 : 주요 서비스산업 업종 및 직종별 감정노동 실태조사(2011~2012, 김종진) 원자료에서 재구성.

 

 

사업장 실태 조사에서는 고객과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벌칙이 있는 경우가 콜센터 21.25%, 판매직 25.4%, 호텔 등에서는 29.6%로 나타났다. 진상 고객이 있어도 노동자들은 임금삭감이나 부서 이동까지 이어질 수 있는 인사상 불이익 문제 때문에 힘겹게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가, 각종 정신질환과 자살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있는 상태에서, 그야말로 갑질 고객이 폭언과 폭행까지 서슴지 않아도, 회사는 방치할 뿐 아니라, 고객에게 무릎을 꿇어 사과하게 하고, 심지어는 한 부서에서 고객과 문제가 생기면 부서 직원 전체에게 '고객에게 인사하기'를 집단적으로 30분 이상 시키는 행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노동자의 밥줄을 잡고 인권을 철저히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구분 콜센터 판매직 호텔
벌칙의 종류  시말서 37.3%
 임금삭감 12.8%
 승진 불이익 7.4%
 시말서 38.4%, 
 공개적 사과 21%, 해고 10.2%
 시말서 42%, 
 공개적 사과 7.3%, 
 부서이동 6.9%

고객 친절

확인제도

 녹음 69.5%
 컴퓨터 모니터링 41.6%
 온라인민원제기 확인 31.5%
 CCTV 설치 51.3%
 암행감찰제도 40.2%
 관리자 수시확인 37.9%

 온라인게시판 민원제기 확인 56.2%
 관리자 수시확인 34.2%
 암행 감찰제도 23.9%

[표]감정노동과 인사고과 연계

*자료: 2011-2012 김종진 자료 재구성]


국제 노동기구(ILO)는 2002년 출퇴근을 포함하여 작업과 관련된 상황에서 학대받거나, 위협당하거나, 공격받은 사건 등을 작업장 폭력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외국의 제도와 가이드라인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작업장 폭력은 육체적 폭력뿐 아니라 정신적 폭력도 포함하고 있고, 가해자에 대해서도 고객, 소비자 등 제 3자의 폭력도 포함하고 있다.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이나 근로기준법 등을 통해 작업장 폭력에 대한 사업주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노동자의 정신건강에 대한 예방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과하고 있다. 대만에서도 2014년에 산업안전보건법에 작업장 폭력에 대해 사업주 의무를 부과하고, 행정기관이 감독하도록 명시했다.

 

감정 노동의 문제는 '착한 소비 문화 운동'을 넘어서서 사업장 안의 예방 조치 의무를 강력하게 부여하는 입법으로 해결의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 고객에 의한 폭언, 폭행에 대해 해당 노동자가 업무를 회피할 권리 보장, 고객에 대한 사업주 고발 의무 부여, 인사고과 연계나 암행감찰제도 금지, 감정 노동 예방과 직무 스트레스 관리 등 예방 의무 부여 등이 포함된 법 개정이 진행되어야 한다. 노동자도, 소비자도 요구하고 있는 감정 노동 보호 입법에 정부와 국회가 즉각 나서야 한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목, 2016/05/1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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