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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 2달… “우리는 아직도 고통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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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 2달… “우리는 아직도 고통스럽습니다”

익명 (미확인) | 월, 2015/07/20- 20:43

메르스가 전국을 휩쓴 지 두달이 넘었다. 지난 7월 4일 이후 보름째 확진환자가 나오지 않으면서 이제는 메르스 종식국면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여전히 메르스의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메르스로 사망한 환자의 유가족들이다. 186명 가운데 36명이 메르스로 목숨을 잃었다. 이 가운데는 건강했던 사람이 단순히 간병하러 갔다가 메르스에 감염돼 고인이 된 경우도 있다.

메르스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정부가 초기 대응만 잘했어도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고인들은 정부가 격리자 관리를 제대로 못한 탓에 빌생한 3차 감염자들이기 때문이다. 고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국가와 병원에 책임을 물으며 소송을 제기한 김형지(49) 씨와 허영강(37)씨를 만나 그동안 억눌러왔던 이야기를 들어봤다.

확진 이틀 만에 사망한 어머니…“숨진 것도 억울한데 가해자로 몰려”

 

 

‘173번째 환자’로 불린 김형지씨의 어머니 최숙자(가명)씨는 지난 6월 24일 메르스로 세상을 떠났다.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지 불과 이틀 만의 일이었다. 70세 나이에도 장애인을 돕는 활동보조인으로 활동할 만큼 건강했던 최 씨. 어쩌다가 메르스에 걸렸고 왜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숨지게 된 것일까.

지난 6월 5일, 최 씨는 자신이 돌보는 시각장애인의 입원을 돕기 위해 강동경희대병원 응급실에 들렀다. 최 씨가 강동경희대병원에 머문 시간은 불과 10분 가량. 보건당국은 이때 강동경희대병원에 입원해 있던 76번 환자로부터 최 씨가 메르스에 감염됐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76번 환자는 지난 5월 27~28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가 14번 환자로부터 메르스에 감염된 환자다. 보건당국의 격리대상에는 포함됐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탓에 강동경희대병원까지 무방비 상태로 옮겨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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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당국은 76번 환자가 삼성서울병원에서 퇴원한 지 9일 만인 6월 6일에야 격리자 통보를 위해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강동경희대병원에 입원 중이던 76번 환자는 전화를 받지 못했다. 속수무책으로 놓쳐버린 76번 환자로부터 메르스에 감염된 사람은 최 씨를 포함해 9명이나 된다.

6월 7일, 76번 환자가 뒤늦게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당연히 밀접접촉자인 최 씨는 격리되어야 했지만, 격리 대상에서 누락됐다. 보건당국은 “당시 입원했던 시각장애인이 최 씨가 건강하다고 생각해 동행 사실을 말하지 않아 격리대상에서 누락된 것”이라며 책임을 시각장애인에게로 돌렸다. 김형지 씨는 “1급 시각장애인이 응급실에 혼자 왔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며 “CCTV 한 번만 확인해도 어머니의 동행 사실을 알 수 있었을텐데 보건당국이 역학조사를 소홀히 해놓고는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6월 7일 이전까지는 정부가 메르스 관련 병원명을 공개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최 씨는 메르스 노출을 전혀 의심할 수 없었다. 최 씨는 6월 10일부터 몸에서 열이 났지만 단순 감기로 여기고 여러 병원과 약국을 오갔다.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기 전까지 손자와 잠도 같이 자고 병문안도 오도록 했다.

 

▲ 최 씨의 강동성심병원 진료기록

▲ 최 씨의 강동성심병원 진료기록

 

열이 조금씩 잡히는가 싶던 6월 17일, 최 씨는 허리 통증으로 강동성심병원을 찾았다. 다음날 정형외과에서 X- Ray를 촬영했다. 이때 폐렴 증상이 발견됐다. 증세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정형외과에서는 6월 19일 감염내과로 메르스 검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감염내과는 메르스 검사를 시행하지 않았다. 최 씨의 병원 방문 이력에 메르스 발생 병원 접촉사실이 없었기 때문이다. 6월 19일 최 씨의 ‘진료 협의기록지’엔 “메르스 환자와의 접촉력 없고 위험병원 내원력이 없어 메르스 검사 대상이 아니다”고 나와있다. 최 씨는 자신이 치료를 받기 위해 들렀던 병원은 의사에게 얘기했지만 단순히 시각장애인과 동행했던 경희대병원 방문 이력은 말하지 않았다.

이러는 동안 최 씨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됐다. 결국 강동성심병원은 22일 메르스 자체 검사를 진행했고 다음날인 6월 23일 보건당국은 최 씨에게 메르스 확진 판정을 내렸다. 즉시 격리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불과 이틀 만인 6월 24일 최 씨는 숨을 거뒀다.

김 씨는 “어머니의 폐렴증세가 처음 발견됐던 6월 18일에만 메르스 검사를 하고 곧바고 치료를 시작했다면, 아니 그보다 앞서 보건당국이 76번 환자를 제대로 격리만 했다면 어머니는 메르스에 걸리지도 사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 씨도 어머니의 메르스 확진과 동시에 즉각 격리됐다. 그래서 어머니의 임종을 지킬 수가 없었던 것이 원통하기만 하다. 그런데 가슴 아픈 일은 이 뿐만이 아니다. 명백히 메르스 피해자인 어머니가 한 순간에 가해자로 바뀌어 세상의 비난을 받게 된 것이다.

 

▲ 이해식 강동구청장 페이스북

▲ 이해식 강동구청장 페이스북

 

어머니 최 씨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던 6월 23일, 이해식 강동구청장은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 최 씨의 메르스 감염 경로를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173번 환자는 시각장애인의 치료차 강동경희대병원 응급실을 방문했으나 이 사실을 숨겼다”면서 “한 사람의 일탈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어야 한다니 어처구니가 없다”라고 썼다.

이 글은 언론에 그대로 보도됐고, 비난의 화살은 보건당국이 아닌 최 씨를 향했다. 최 씨가 수천 명의 강동구 주민들을 격리시킨 몰염치한 가해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뉴스타파는 강동구청 측에 최 씨가 경희대병원을 방문 사실을 ‘숨겼다’고 설명한 근거가 무엇인지를 물었으나 명확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정부가 일찍 병원명단을 공개했다면, 76번도 메르스에 감염되지 않았을 거고, 저희 어머니도 메르스로 사망하는 일 없었을 거에요. 정부 잘못으로 저희 어머니도 억울하게 메르스에 감염돼 사망한 피해자인데, 돌아가셔서까지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게 너무도 속상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단순히 10분 머문 병원을 인지하지 못하고 말을 안 했을 수는 있어도 일부러 메르스 사실을 숨길 분은 아니에요. 늦게라도 어머니의 명예를 회복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 김형지 / 메르스 사망 최숙자 씨 큰아들

폐암 어머니 돌보다 먼저 세상 떠난 아버지…”정부는 사과 한 마디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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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건강하셨던 분이, 멀쩡하셨던 분이 한 달만에 고인이 됐는데 정부나 병원 어디서도 사과 한 마디 없습니다.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지난달 24일 메르스로 세상을 떠난 허경범 씨의 아들 허영강 씨는 “한 달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충남 부여군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지병 없이 건강하게 살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폐암 선고를 받은 어머니를 입원시키기 위해 건양대병원을 찾았던 아버지는, 그곳에서 메르스에 감염돼 세상을 떠나게 됐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허 씨는, 평택성모병원에서 메르스에 감염된 뒤 격리되지 않은 채 건양대병원으로 옮겨온 16번 환자로부터 감염됐다. 폐암 환자인 아내를 데리고 건양대병원에 응급실에 갔던 5월 28일 16번 환자와 접촉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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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6번 환자는 5월 30일 메르스 의심 환자로 분류돼 1차 양성 판정을 받고 격리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러나 이때, 16번 환자와 접촉했던 허 씨에게는 아무런 통보도 이뤄지지 않았다. 다음날인 5월 31일에는 16번 환자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역시 허 씨에겐 이같은 사실이 고지되지 않았고 격리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애초에 정부가 관리를 잘해서 16번 환자를 접촉하지 않았으면 좋았겠죠. 하지만 적어도 5월 30일에라도 아버지를 격리시키고 메르스 환자와 있었으니 조심하라고 주의를 줬다면, 그리고 빨리 검사를 해줬더라면 이렇게 사망하시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 허영강 / 메르스 사망 허경범 씨 아들

그렇게 무방비로 나흘을 흘려보낸 6월 1일, 아버지 허 씨의 몸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열이 시작됐다. 건양대병원은 6월 2일에야 메르스가 의심된다며 허 씨를 1인실에 격리하고 검체를 채취했다. 그러나 이 때도 역시 메르스 환자와 접촉했었다는 사실은 알리지 않았다. 아들 허 씨는 “이 병원에 메르스 환자도 없는데 왜 아버지가 메르스에 걸리느냐”고 병원 측에 반문했지만 아무 대답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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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버지 허 씨는 6월 5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때서야 메르스 환자와 아버지가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치료는 더디게 진행됐다. 메르스 확진 후 바로 격리병원으로 이송되지 않고, 이틀간 건양대병원 음압병상에 머물렀다. 6월 6일이 되어서야 국가지정격리병원인 천안단국대병원으로 이송돼 본격적인 메르스 치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버지 허 씨는 6월 24일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숨진 허 씨의 아내는 아직도 남편의 사망 사실을 모르고 있다. 아들 허 씨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메르스 감염 사실을 안 후로 병세가 급격히 나빠졌다. 병원 관계자들도 어머니의 충격을 우려해 관련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해서 아직까지도 숨기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당국의 방역 부실로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허 씨는 지난 9일 국가와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73번째 환자인 최숙자 씨의 가족과, 강동경희대병원 투석실에서 메르스에 감염돼 아직도 치료 중인 165번 환자의 가족들도 소송에 동참했다.

허 씨는 “마땅히 국가의 책무인 방역을 제대로 못해 아버지가 사망했는데 어떻게 정부도 병원도 잘못했다, 미안하다, 사과 한 마디가 없을 수 있느냐”면서 “어떻게든 이번 사태의 원인과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혀내지 않으면 비극이 반복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밝혔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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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도 참여한 ‘파나마 페이퍼스’ 프로젝트 보도 당시 몰타에서 활약한 유명 탐사보도 전문기자가 테러로 추정되는 차량 폭발로 사망했다.

▲ 폭발로 인해 도로에서 들판으로 나동그라진 갈리치아 기자의 차량.(출처:AP)

▲ 폭발로 인해 도로에서 들판으로 나동그라진 갈리치아 기자의 차량.(출처:AP)

몰타 현지 신문 타임즈오브몰타(Times Of Malta)는 탐사보도 기자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치아(53)가 현지시간 10월 16일 오전 3시쯤 몰타의 수도인 발레타 교외 자택에서 차를 몰고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차량에서 발생한 강력한 폭발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몰타 국영TV는 그가 보름 전 경찰에 “살해 협박을 받고 있다”고 신고했다고 전했다.

갈리치아 기자는 지난해 4월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도피처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에 연루된 몰타 정치인들의 부패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며 활약했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2017년 유럽을 뒤흔드는 28인 가운데 한 명으로 갈리치아 기자를 포함시키며, 그를 “몰타의 불투명성과 부패에 맞서는 ‘1인 위키리크스’”라고 평가했다. 그는 ‘파나마 페이퍼스’ 보도로 올 봄 퓰리처상을 수상한 ICIJ(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의 개발자 겸 데이터 저널리스트 매튜 카루아나 갈리치아 기자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치아 기자

▲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치아 기자

갈리치아 기자는 사망하기 약 30분 전인 오후 2시 35분(현지시간) 자신의 탐사보도 블로그 러닝 코멘터리(Running Commentary)를 통해 조셉 무스카트 몰타 총리의 수석 보좌관 키스 셈브리가 조세회피 목적으로 비밀리에 파나마 등지에 회사를 설립했음에도 스스로가 부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며 그를 “사기꾼(crook)”이라고 비판하는 글을 남겼다.

무스카트 총리는 차량 폭발이 발생한 지 90분 만에 기자회견을 열고 이를 ‘야만적인 공격’으로 규정했다. 그는 “모두들 갈리치아 기자가 나를 정치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가차없이 비판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지만,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 야만적인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야당 대표 아드리안 델리아는 같은 날 저녁 6시 기자회견을 열어 해당 사건을 ‘최악의 정치적 살인’으로 규탄하며, 용의자 색출을 위해서는 진정으로 독립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는 트위터를 통해 갈리치아 기자에 대한 차량 폭탄 공격 용의자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2만 유로(약 2,676만 원)의 현상금을 걸고 나섰다.

ICIJ는 갈리치아 기자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다”며 “언론인에 대한 폭력을 규탄하며 몰타의 언론의 자유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화, 2017/10/1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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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E(Investigative Reporters & Editors)는 1975년 전 세계 탐사보도 기자들이 모여 조직한 비영리단체다. 매년 미국 전역을 돌며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컨퍼런스에 참여한 기자들은 그간의 취재성과와 새로운 취재기법을 공유한다.

올해 IRE 컨퍼런스가 열린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시는 IRE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40년 전, IRE 창립회원인 애리조나 리퍼블릭의 돈 볼스 기자가 범죄 조직과 정치권의 유착문제를 취재하다 의문의 차량폭탄테러로 사망한 곳이기 때문. IRE는 돈 볼스 기자를 추모하기 위해 10년마다 이곳에서 컨퍼런스와 함께 추모행사를 갖는다. 올해 컨퍼런스에는 전세계에서 1,500명이 넘는 기자들이 참여했다.

돈 볼스 기자 사망 이후 미국 전역에서 40명 가까운 탐사보도 기자들이 피닉스시로 모였다. 돈 볼스가 못다 한 취재를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들은 일명 ‘애리조나 프로젝트’를 시작, 수많은 기사를 쏟아내며 진실을 파헤쳤다. ‘애리조나 프로젝트’는 이후 언론의 존재 이유, 언론 자유의 의미를 보여준 역사적인 사례가 됐다.

더그 하디스 IRE 대표는 “탐사보도는 어둠 속에 빛을 비추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밝혀내는 작업이다. (탐사보도 기자들이) 서로 협력하고 배우면서 저널리즘을 향한 위협이 우리를 막지 못하고 기사도 막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애리조나 프로젝트와 IRE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취재 : 한상진
영상구성 : 정형민

금, 2017/08/0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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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삶을 기록하며 차별에 저항해 온 고 박종필 감독의 영결식이 오늘(7월 31일) 오전 10시 광화문광장에서 ‘인권사회장’으로 엄수됐다. 빗속에서도 수 백여 명의 시민들이 영결식에 참석했다. 박종필 감독의 마지막 길을 뉴스타파 카메라에 담았다.

고 박종필 감독(1968~2017)은 1998년에 ‘독립다큐멘터리제작 다큐인’ 대표를 맡으면서 본격적인 미디어 활동을 시작했다. 박 감독의 카메라는 언제나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들을 기록했다. 제1회 장애인 영화제에서 ‘끝없는 싸움 – 에바다(1999)’로 우수상을 수상했고, 제28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장애인이동권투쟁보고서-버스를 타자!(2002)’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4.16연대 미디어위원장’을 맡으며 세월호를 기록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목포신항에서 세월호 선체 조사 작업을 기록했다.

고 박종필 감독은 2015년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의 부당함을 다룬 뉴스타파 <목격자들> ‘우리는 홀로 설 수 없나요’을 연출했다. 같은 해 서울 동자동 쪽방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목격자들> ‘사람이 산다’를 프로듀싱했다.


촬영 : 오준식
편집 : 박서영

월, 2017/07/3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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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돼! 노동시장 구조개악, 의료민영화 바이러스에 오염된 병원체가 보건의료노조의 백신 치료에 최후의 저항을 하는 퍼포먼스. @보건의료노조


임금피크제, 성과연봉제등 정부의 노동시장구조개악에 맞서 민주노총이 13일부터 정부세종로 청사에서 농성중인 가운데, 16일 오전 10시, 보건의료노조는 기자회견을 열고 “메르스정국에 웬 의료공공성 파괴정책”이냐며 “환자안전 위협하는 가짜정상화대책과 엉터리 노동정책 폐기하라!”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노조 유지현 위원장은 취지 발언에서 “병원 현장은 전쟁터와 같다. 간호사, 이송요원, 간병인등 병원노동자들은 현장에서는 메르스와 싸우고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차별과 싸우는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임금피크제, 2진아웃제, 성과연봉제등을 강행하고 있다. 공공의료를 늘리고 병원 노동자의 정규직화가 시급하다. 이것이 우리 국민 생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기자회견 취지를 설명했다.

민주노총 최종진 수석부위원장은 규탄발언을 통해 정부가 사회통념이라는 이름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권은 5등급으로 중국이나 캄보디와와 같은 수준이다. 세계 최악의 노동탄압국에서 우리는 살고있다며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했다.

서울본부 김숙연 본부장과 경기본부 백소영 본부장도 연이은 규탄발언에서 “현재 병원 현장은 충분한 장비와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립중앙의료원 뿐만 아니라 모든 병원이 신음하고 있다. 무슨 일 있을 때마다 공공병원에 떠넘기고서는 지나가면 병원을 폐쇄하는게 한국 보건당국의 정책이었다. 이런 나라가 질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수 있는가.” “나와 환자 모두를 보호해야 하는게 병원노동자의 일이다. 노동자가 메르스를 만든 것이 아닌데 정부는 왜 노동시장 구조개악으로 노동자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냐”며 정부의 의료정책과 노동정책을 규탄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메르스 늑장대응, 의료민영화, 노동시장 구조개악등의 바이러스를 백신으로 치료하는 퍼포먼스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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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현 위원장과 최종진 수석부위원장이 백신치료를 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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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지발언을 하는 유지현 위원장 @보건의료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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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최종진 수석부위원장 @보건의료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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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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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서울본부 김숙영 본부장 @보건의료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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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경기본부 백소영 본부장 @보건의료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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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맏은 본조 김소연 조직부장 @보건의료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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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을 발표중인 국립중앙의료원 지부 지혜원 지부장 @보건의료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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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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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구조개악과 의료민영화, 메르스바이러스등에 오염된 병원체가 백신 치료를 받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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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화, 2015/06/1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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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블랙박스 영상들 속에는 세월호가 급격하게 기울어진 이유뿐만 아니라 표류하던 선체가 어째서 그토록 급격하게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도 등장한다. 한쪽으로 급격히 쏠린 화물들에 의해 C데크 화물칸의 유리창들이 다수 깨졌고, 파손된 창문을 통해 물이 급격히 유입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단서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C데크 벽면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균열이 존재했다는 사실도 취재 과정에서 새롭게 확인됐다.

급격한 횡경사 직후 C데크 좌측 벽면에서 분출된 물은 어디서 왔나

세월호 C데크 좌현 벽 쪽에 주차됐던 1톤 트럭의 블랙박스 영상에는 선체가 급격히 기울어진 직후 앞쪽 벽 틈새로 물이 새 들어오고 운전석 옆쪽 벽면에서도 많은 양의 물이 퍼붓듯 쏟아지는 장면이 포착된다. 이 물은 어디서 어떻게 들어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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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마리는 뉴스타파가 확보하고 있던 기존 자료들 속에서 나왔다. 그건 지난 2012년 9월, 청해진해운이 세월호를 인수하기 직전 임직원들이 일본에 직접 가서 배의 안팎 곳곳을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 자료들이다.

당시 C데크를 촬영한 동영상 속에 이 1톤 트럭이 주차됐던 위치가 확인된다. 이 위치에 트럭 모습을 포개 봤더니 운전석 바로 옆 벽면에는 유리창이, 좌측 앞으로는 에어벤트, 즉 환기구 설비가 위치하는 것으로 나온다. 또 환기구 설비 윗부분에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이 분명하게 보인다. 이 지점에 밖으로 뚫린 구멍이 있었던 것이다. 참사 당시 블랙박스 영상에서 차량이 벽면에 부딪힌 직후 앞쪽에서 솟구친 물줄기는 바로 이 균열을 통해 들어온 바닷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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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운전석 옆 방향에서 쏟아지듯 분출된 물은 어디서 온 걸까. 트럭의 위치와 물이 쏟아진 방향을 볼 때 C데크 벽면의 유리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C데크 화물칸의 유리창은 배가 정상 운항할 때는 수면보다 9미터 이상 높기 때문에 바닷물이 닿지 않는다. 그러나 이 당시엔 이미 선체가 47도나 기울어져 옆면이 수면을 훑으며 오른쪽으로 방향이 꺾이고 있었다. 결국 선체가 급격히 기울어 트럭이 벽에 부딪히면서 유리창을 깨뜨렸고, 이곳을 통해 바닷물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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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중 깨진 유리창과 환기구 통해 해수 대량 유입 가능성

그런데 C데크 화물칸 좌측면에는 모두 13개의 유리창이 있다. 만약 이 트럭의 블랙박스 속 상황처럼 왼쪽으로 쏟아진 화물들로 인해 다른 유리창들도 다수 파손됐다면, 이곳을 통해 표류하던 세월호의 C데크 내부로 많은 양의 바닷물이 계속 유입됐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오전 9시 15분쯤 둘라에이스호에서 촬영된 세월호 모습을 보면 이 유리창들과 높이가 같은 선수갑판의 불워크가 이미 수면에 잠겨 있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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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상태에서는 C데크 유리창은 물론 그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환기구를 통해서도 바닷물이 흘러 들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세월호 선조위가 선체 내부를 직접 확인한 결과 이 환기구는 흘수선보다 낮은 위치인 데크스토어로 연결돼 있었다. 환기구를 통해 이곳으로도 물이 계속 유입됐다면 선체가 가라앉는 속도를 크게 가중시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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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세월호 침수 과정을 분석한 보고서들은 표류 중인 세월호 내부로 바닷물이 유입된 경로를 D데크의 도선사 출입문, 그리고 좌현 램프의 틈새 정도로 추정해 왔다. 그러나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C데크 좌측 벽면에 존재한 균열, 파손된 유리창, 그리고 환기구를 통한 해수 유입 가능성이 확인됨에 따라 세월호 내부로 빠른 침수가 진행된 원인과 과정에 대해서도 재조사할 필요가 생겼다.


취재 : 김성수
영상취재 : 김기철
영상편집 : 정지성
CG : 정동우

금, 2017/09/1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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