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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안전’의 속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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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안전’의 속임수

익명 (미확인) | 목, 2015/07/02- 19:31

양정미 씨는 올해 세 살 난 아들을 둔 젊은 엄마이자 해수담수화 수돗물 공급에 반대하는 부산시민입니다. 이진섭 씨는 아내, 어머니, 자신 등이 암에 걸렸고, 작년 말 고리 핵발전소와 아내의 갑상선 암 발병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부산지법의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부산 해수담수화 시설에 대한 현지 취재 과정에서 두 사람을 만나 긴 대화를 나눴습니다. 양 씨와 이 씨가 우려하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혹시 소심한 시민들의 기우가 아닐까요? 시청자 여러분의 판단을 구합니다.

<양정미 씨의 이야기> “언니 방송 안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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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어느 날이었어요. 평소처럼 어린이집에서 강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해운대 쪽에 사는 동생한테 전화가 왔더라구요. 받았더니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해요. 언니, 언니네 바닷물로 만든 수돗물 먹게 된다면서?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니까, 방송 안 봤냐는 거예요. 그래서 인터넷 들어가서 검색을 해봤더니 짧은 뉴스 하나가 있었어요. 부산 기장군하고 해운대구 송정동 쪽에 바닷물로 만든 수돗물을 공급할 거라고… 정말이더라고요. 그 해수담수화 공장을 2010년부터 지었다는데 그 때 처음 알았어요.

작년에 균도 아버님(이진섭 씨) 소송이 있었잖아요. 고리 핵발전소 근처에 살면 갑상선암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걸 법원이 인정했으니 주위에서도 엄청 떠들썩 했죠. 나야 얼마나 살까 싶지만 우리 강희 생각하면 기장을 떠나야 하나 싶기도 하고, 고민이 많았어요. 근데 갑자기 바닷물로 만든 물을 먹으라고? 그 바닷물은 고리 핵발전소에서 내보내는 방사성 물질들 흘러들어오는 그 바닷물이잖아요.

진짜? 왜? 우리가 먹겠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왜 그 물을 먹어야 하는데? 마음이 복잡했어요. 그날 밤까지 그 생각을 하면서 잠든 애 얼굴을 보는데… 나는 괜찮은데 우리 강희한테는 못 줄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우리 애가 미숙아로 태어났잖아요. 임신 중 유산에, 태어났는데 사산까지 거쳐서 세 번째로 정말 어렵게 얻은 아이인데 27주만에 세상 빛을 봤죠. 애 아빠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애기를 받아들고서 얼마나 걱정을 하고 울었는지 몰라요. 그래도 의사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3년만 버티면 그 다음부터는 괜찮을 거라고요. 그때부터 쭉 이 마음으로 살았어요. 강희야, 엄마가 너 지켜줄 거야.

그래서 집 밖에도 거의 못 나가고, 인스턴트 같은 거 하나도 안 먹이고 그렇게 세 살까지 키웠어요. 이제 좀 괜찮겠다 싶었죠. 그런데 갑자기 핵발전소 근처에서 만든 물을 공급하겠다는 거예요. 이건 그냥 틀면 나오는 거니까 먹고 씻고 할 때 쓸 수밖에 없잖아요. 그 때부터 이게 정말 안전한가, 여기 저기 알아보고 다녔죠. 부산시가 안전하다고 내세우는 근거들이 몇 개 있는데 정말인가 좀 따져보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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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에서 여러 차례 한 얘기가 그거였어요. NSF라고, 미국에 국제위생재단이라는 공신력있는 검사기관이 있대요. 거기서 해수담수화 물을 들고가서 방사성 물질을 58가지나 검사했는데 하나도 안 나왔다는 거예요. NSF가 품질을 보장했으니 안전한 수돗물이라는 거죠.

아무래도 뭔가 찜찜해서 직접 NSF 한국지사에 전화를 해서 물어봤어요. 부산에 해수담수화 공장에서 만든 물이 정말 안전한 물이라고 거기에서 보장하느냐구요. 그랬더니 부산시하고는 말이 다른 거예요. 자기들은 샘플로 온 물 가지고 검사 한 번 한 거 결과 통보했을 뿐이지 수돗물 자체의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수돗물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거니까 수돗물의 품질을 인증하는 일은 없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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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가 그러대요. 지금까지 수차례 국내 기관에서도 검사 받았는데 안 좋은 물질들은 다 ‘불검출’이라고 나왔으니 안전하다고요. (불검출은 전문 용어로 ND:not detect라고 한다.) 그럼 정말 그 방사성 물질들 하나도 없는데 내가 괜히 설레발 친 건가 하고 잠깐 긴장이 탁 풀리기도 했어요. 근데 동국대 의대에 김익중 교수님이라고, 방사성 물질에 대해 잘 아시는 분 얘기는 또 다르더라구요. ‘불검출’이라는 말이 물질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래요. 기계가 검사할 수 있는 한계치가 있는데, 그거 이하로 나오면 그냥 ‘불검출’이라고 읽는다는 거예요. 물질이 없는 게 아니라 찾아내질 못해서 불검출 인거죠.

균도 아버님이나 다른 갑상선암 걸리신 기장의 어머님들 보면 참 걱정스러워요. 지금까지 고리 핵발전소에서 늘 기준치 이하로 안전하게 방사성 폐기물 처리하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했잖아요. 근데 지금 이렇게 핵발전소 근처에서 살아서 암 걸린 사람들이 속속 나오고 있어요. 공기 중으로 나오는 것도 문젠데, 앞으로 식수에까지 그렇게 “미량이라서 괜찮다”고 하는 수준으로 자꾸 먹고, 또 먹고 하면 그게 문제가 되지 말란 법이 어디있어요.

기장시장 앞에서 주민들에게 서명을 받고 있는 양정미 씨

▲ 기장시장 앞에서 주민들에게 서명을 받고 있는 양정미 씨

저 요즘 길거리에서 서명운동을 하고 있어요. 이런 일은 생전 처음이죠. 사실 무척 힘들어요. 하지만 내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강희한테 너무 미안할 것 같아요. 내가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고 한 사람이라도 더 서명받으면 물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매일 이러고 있거든요. 오후 한시 되면 저는 늘 기장시장 앞으로 나갑니다.

<이진섭 씨의 이야기> “왜 하필 여기냐는 거예요.”

저한테 기장은 제 2의 고향 같은 곳입니다. 원래 부산이 고향인데 거기에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기장에 들어와서 조그마한 가구 무역 회사를 시작했어요. 장사가 꽤 잘 돼서 한 때 기장에서 손꼽힐 만큼 큰 돈도 좀 만졌습니다. 그러다 IMF와서 다들 망할 때 말아먹고 그 때부터 택시를 몰았죠.

90년에 기장 들어왔는데 2년인가 있다가 첫 아들 균도를 낳았어요. 균도가 두 살 땐가, 행동이 좀 다른 애들하고 다른 것 같아서 병원 여러 곳을 다녔는데… 알고 보니 애가 자폐성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균도와 아빠 이진섭 씨

▲ 균도와 아빠 이진섭 씨

그래도 균도하고는 재밌게 잘 살았습니다. 녀석이 말이 좀 늦되고 가끔 과잉행동을 한 달 뿐이지, 기분 좋을 땐 싹싹하고 사람들한테도 잘합니다. 녀석이 번번히 학교에서 쫓겨나고 장애 정도가 심하다고 시설에서도 밀려나고 그러는 걸 보다가 안 되겠어서 제가 장애인 인권 운동을 시작하기도 했죠. 녀석은 여전히 제 보배입니다.

애가 장애가 있어도 착하고 예쁘니까 그냥 그렇게 살면 되겠다 싶었는데, 어느 날엔가 저희 어머니가 갑상선암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 때가 시작이었습니다. 아내도 갑상선암에 걸렸다는 거예요. 유독 이 지역에 갑상선암 수술한 사람이 많긴 합니다만, 막상 내 가족이 그렇게 되고 나니 정말 충격이 컸어요. 그리고 저도 결국, 직장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왼쪽이 이진섭 씨, 그리고 아들 균도와 엄마 박 씨

▲ 왼쪽이 이진섭 씨, 그리고 아들 균도와 엄마 박 씨

저는 가족들이 이렇게 다 아프게 된게 고리 핵발전소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우리 가족 다들 고리원전 10km 안팎에 90년대부터 쭉 살아왔으니까요. 물론 고리 핵발전소는 늘 기준치 이하의 방사성 물질만 배출하고 있으니 건강에 무해하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럼 핵발전소 주변 5~30km 거리에 사는 사람들이 다른 지역보다 1.8배 더 많이 갑상선암에 걸린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겁니까. 그런데 지금 또, 핵발전소의 방사성 폐기물이 흘러드는 바다에서 수돗물을 만들어서 기장하고 송정에 넣겠다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요즘 또 고민이 많던 차에, 기준치 이하의 적은 방사선도 오래 피폭되면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아, 이거구나 싶었죠. 그게 이미 학계에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인데 영어로 LNT라고 한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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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 물질이 기준치 이하의 적은 양이라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최근에 서울에서 온 어떤 기자가 부산시 수질책임자한테 이 얘기를 물어봤대요. 그랬더니 그 책임자라는 사람이 LNT라는 건 환경단체에서나 주장하는 근거없는 내용이라고 반박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 말을 들으니 내가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정말 그런가 한번 알아봤어요. 그랬더니 오히려 그 부산시 책임자 말이 근거 없는 무책임한 말입디다. 미국 환경보호국(EPA), 세계보건기구(WHO) 같은 권위 있는 곳에서도 모두 이 LNT 모델을 근거로 방사선 안전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있었어요. 보세요. 이런 자료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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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농도의 방사성 물질이 암 발생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연구한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의 논문에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 써있지 않습니까. 적은 양의 방사성 물질에 노출되더라도 암이 생길 수 있다는 LNT 모델이 자기들 생각에 가장 합리적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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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 가지 결론이 나왔습니다. 방사성 물질에 그냥 받아들여도 되는 안전한 선이란 없는 거구나. 설령 99% 안전하다고 하더라도 1% 위험을 수 십년간 겪어야 한다면 위험할 수 있는 거구나. 여기까지 생각하고 보니, 정말 해수담수화 수돗물을 먹는 게 걱정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들어보세요. 저는 해수담수화 시설 자체에 대해서 비판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거 물 부족한 곳에 먹는 물 만들어주는 좋은 기술인 거 다 압니다. 근데 왜 하필 여기냐는 거예요. 왜 핵발전소 코 앞에다 수돗물 만드는 시설을 지어놨냐는 거예요. 이거 우리가 수도 요금 내고 사먹는 물 아닙니까. 깨끗한 물이니 무조건 먹으라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용납이 안 됩니다. 한 5년 길게 모니터 해본 뒤 이상 없으면 그때 결정하든, 아니면 정말 주민투표를 해서 당장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든, 부산시는 주민들이 충분히 납득할 만한 대책을 내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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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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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말들을 안해서 그렇지, 세입자들이 재계약 걱정을 많이 해요. 조금 전에 길거리에 잠깐 서 있었는데 세입자 한 분이 와서 미리 걱정을 하더라고요. 들어보니 2년 사이에 전세보증금이 1억 4천만 원이나 올랐다고 하더라고요.
– 송파구 가락동 00공인중개사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30분 남짓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여러 번 전화가 걸려 왔다. 전세 매물이 나왔는지, 좀 더 저렴한 매물은 없는지 문의하는 전화였다. 공인중개사도 답답하다는 듯 매번 같은 대꾸를 했다.

아니, 사장님. 20평도, 30평도, 40평도 없어요.
– 송파구 가락동 00공인중개사

공인중개사의 말에 따르면 이 지역 전세가는 2년 사이 1억 원 이상 올랐다고 한다. 지역 내에서 비죠적 싼 아파트 중 하나인 가락 우성아파트의 사정만 봐도 이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아파트는 1986년 입주를 시작한, 올해로 30년이 된 아파트다.

2개의 방과 조그마한 거실, 화장실 하나가 있는 전용면적 59 제곱미터 아파트의 2년 전 전세가 1억 8천만 원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3억 원 수준이다. 2년 사이 1억 2천만 원 가량 오른 셈이다.

문제는 그조차도 귀해 전세 매물을 찾는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전세가가 매매가의 80% 이상 쫓아왔지만 앞으로도 이 현상이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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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에서는 전세 대신 일정액의 보증금과 함께 월세를 받는 ‘반전세’가 주된 임대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은행 이자보다 훨씬 수익율이 높은 월세 방식을 선호하는 임대인들이 크게 늘면서 임차인들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반전세를 택할 수밖에 없는 추세다. 이 아파트 단지에서 통용되는 6~7부(6~7%) 전월세전환율을 적용하면, 늘어난 보증금 1억 2천만 원에 대한 월세는 60~70만 원 수준이다.

※ 전월세전환율 = 월세×12÷월세 전환할 보증금 액수

임차인이 먼저 월세를 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열에 하나 정도 될까? 입장 바꿔 월세 살 이유는 없잖아요. 하지만 전세가 워낙 고공행진을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재계약하는 거죠. 이자가 싸니까 대출을 받을 수도 있지만 소득이 없는 사람은 그것도 어려워요.
– 송파구 가락동 00공인중개사

2년 사이 1억 2천만 원의 목돈을 저축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가오는 가을 이사철, 결국 2년 전 이 아파트 단지에 전세로 입주한 주민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1억 원이 넘는 돈을 빚 내든, 아니면 6, 70만 원 가량의 생활비를 깎아 월세를 내야 한다. 이도 저도 힘들면 이 지역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젊은 부부들이 이사하려고 해도 이 지역을 떠나는 게 쉽지 않아요. 학군이 괜찮다 보니 애들 교육 문제가 걸리거든요. 6, 70만원의 월세 부담하려고 보니 소비를 엄청나게 줄이는 수 밖에 없어요. 애들 학원 보내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지는 거죠. 제가 봤을 때 이대로 가면 내수 경기가 살 수 없을 거에요. 아파트 값이 계속 올라가니까…
– 송파구 가락동 00공인중개사

목돈 2억 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전세 아파트 직접 찾아보니…

2억 원이면 단순 계산으로도 1년에 1천만 원 씩 20년간 모아야 하는 목돈이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의 가구당 월평균 가계수지에 따르면 2015년 2분기 현재의 가구 평균 흑자액(저축액)은 100만 원이 조금 안된다. 일반적인 가구라면 200개월(16년8개월) 동안 꾸준히 저축을 해야 비로소 2억 원을 모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만한 목돈으로도 가락동 안에 전세 아파트 한 채를 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비단 특정 지역만의 문제일까. <뉴스타파>는 전세보증금 2억 원을 돌려받은 이 지역 주민의 상황을 가정해 서울의 다른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 새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직접 현장 조사를 해봤다. 기존의 주거 수준인 방 두 개, 전용면적 59제곱미터 이상 아파트를 기준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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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서울 동북권의 아파트 밀집지역인 성북구 길음동 길음뉴타운. 이 지역은 서울 다른 지역에 비해 시세가 저평가돼 있다는 점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도 주택 임대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던 지역이었다.

이 지역 아파트 상가의 공인중개사무실 유리창에는 ‘전세 구함’이라는 종이가 빼곡히 붙어 있다. 실제 취재진과 만난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올해 들어 활발하던 전세 공급이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들과 전세 매물을 공유하고 있지만 성북구 길음동과 강북구 미아동을 통틀어 나와 있는 전세 물량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고 한다.

그는 이처럼 전세 물량이 줄어들면서 2년 사이 전세금도 최소 7, 8천만 원 씩은 올랐다고 했다. 길음뉴타운 초기인 2003년 입주를 시작해 인근에서 가장 낮은 시세를 보이는 길음 동부아파트의 경우 2억 원 대 초반에서 거래되던 59 제곱미터 형이 현재 3억 원까지 올랐다고 한다. 2010년 이후에 입주한 아파트 단지의 경우 상승폭이 더 커서 2년 전과 비교하면 1억 원 이상 차이를 보였다.

2억 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단지는 현재 뉴타운 내에 없어요. 길음역 앞에 있는 삼부 아파트(1998년 입주)같이 재개발 이전에 지어진 아주 오래된 아파트들도 2억 원 이상은 갑니다. 뉴타운 안에서는 2억 원은 커녕 최소 2억 9천에서 3억 원은 생각해야 해요.
– 성북구 길음동 00공인중개사

서울 서북권의 대표적인 아파트 밀집지역인 은평뉴타운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지역 공인중개사의 설명에 따르면 전용면적 59제곱미터 형 전세 아파트의 시세는 2년 전 대비 6천만 원 가량 올랐다고 한다. 2억 6천만 원 선에서 거래되던 것이 현재는 호가로 3억 2천만 원까지 나온다는 설명이다. 은평뉴타운에서 가장 많은 세대를 갖고 있는 전용면적 84 제곱미터 형 전세의 경우 상황이 더욱 어렵다. 2년 전 2억 8천만 원 선에서 거래되던 것이 현재는 호가로 4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천정부지로 전세가가 오르면서 젊은 부부들이 아예 집을 사거나 역세권의 오피스텔로 발길을 돌리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풍경이라고 한다.

이 지역 특징이 젊은 맞벌이 부부들이 많이 산다는 거에요. 전세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오르다 보니까 대출을 풀(Full)로 받아서 아예 집을 사시는 분들도 많아요. 불과 1, 2년 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에요.
– 은평구 진관동 00공인중개사

2억 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아파트는 없어요. 전세가가 워낙 오르다 보니 인근 구파발 역 주변에 있는 오피스텔들이 호황을 이룬답니다. 은평뉴타운에 집을 알아보던 신혼 부부들이 방향을 틀어 10평 대의 오피스텔로 들어가는 거죠.
– 은평구 진관동 00공인중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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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저소득층 거주 비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서울 서남권의 사정은 어떨까. 취재진이 찾아간 구로구 신도림동의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도 더이상 2억 원짜리 전세 아파트는 찾아볼 수 없었다.

2년 전 2억 원 선에서 거래되던 신도림 우성아파트 59 제곱미터 형의 경우 현재 2억 9천만 원에 매물이 나와 있다고 한다. 이조차도 매우 드물게 나온 전세 매물이어서 사실상 전세가 산정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 인근 공인중개사의 설명이다.

여기 인근 아파트 단지가 8,000세대가 넘는데 전세 매물이 아예 없어요. 재계약하며 월세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그런 것 보면서 (돈) 없는 사람들이 더 어려워지겠다는 얘길 해요. 월세가 앞으로 올라가면 올라가지 떨어지진 않을 거 아녜요. 그간 집 사놓은 사람은 괜찮은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사정이 딱하죠. 젊은 사람들은 장가도 못 가게 생겼어요. 너무 매도자 중심의 시장인 것 같다는 생각 해요.
– 구로구 신도림동 00공인중개사

신도림동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가 2억 원으로 구할 수 있는 전세 아파트가 있다며 인근의 한 아파트를 소개했다. 신도림동의 외곽, 공단 지역에 위치한 A 아파트였다. 1989년 입주해 올해로 27년 된 아파트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52제곱미터 형의 전세 시세는 매매가에 비춰 1억 6천만 원 정도로 평가된다.

A 아파트를 찾아 가봤다. 고층 아파트들로 빼곡한 신도림동의 아파트 밀집 지역을 벗어나자 옛 구로 공단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공장 지대가 나타났다. 낡은 공장들에선 기계들이 소리를 내며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쉼없이 오가는 짐차들 때문에 좁은 길에선 이동이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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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쾌적하다고 말할 수 없는 공장 지대 한복판에 서 있는 아파트 단지, 노약자나 어린이를 둔 가정이라면 기피했을 이곳이 취재진이 사흘동안 서울 전역을 돌아다녀 찾아낸 ‘방 2, 거실 1, 화장실 1, 전용면적 59 제곱미터 내외에 해당하는’ 유일한 전세금 2억 원짜리 아파트다. 사실상 2억 원이라는 목돈을 갖고서도 서울에서 쾌적한 주거 환경의 전세 아파트를 찾을 가능성은 거의 사라진 것이다.

박근혜정부 30개월, 전세가 22.7% 상승…“월세 전환이 폭등세 견인”

<뉴스타파>는 이같은 전세가 폭등 현상의 진원을 파악하기 위해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부터 2015년 상반기 현재까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정보를 취합해 조사했다.

통계는 목돈을 쥐고도 오갈 곳이 없게 된 서울 ‘전세 난민’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지난 30개월 동안 서울의 아파트 평균 전세가는 2억 7천여 만원에서 3억 3천여 만원으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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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승분인 6천 2백여 만원은 중견기업에서 근무하는 부장급 직원의 한해 세전 연봉에 맞먹는 액수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가구당 월평균 가계수지의 가구 평균저축액으로 따져도 62개월, 즉 5년 이상 모아야 감당할 수 있다. 상승율로 환산하면 22.7% 상승한 셈인데, 이는 지난 2013년(1.3%)과 2014년(1.3%), 그리고 올해 1분기까지의 물가상승률(0.4%)을 모두 합한 것 보다도 7배 이상 높은 수치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같은 전세가 폭등이 세입자 양극화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취재진이 수소문한 2억 원 이하의 전세 아파트 거래량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1만1천 여 건에서 4천 여 건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전체 전세 거래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0% 대에서 20% 대로 10%p 이상 줄었다.

반면 서민이 감당하기 힘든 5억 원 초과의 전세 거래량은 크게 늘었다. 전체 거래량의 6.5%에 불과했던 거래 비중은 올해 상반기 13.4%까지 치솟았다. 결국 서민이 감당할만한 전세 아파트는 사라지고 소수 고소득자들을 위한 전세 아파트는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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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천정부지로 치솟는 서울 아파트 전세가의 원인은 뭘까. 부동산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최근 임대시장에서 두드러지는 월세 전환 추세에서 찾았다.

최근 임대시장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임대사업자들이 전세 대신 월세로 전환하다보니 전세를 구하기가 굉장히 힘들어졌고, 전세 가격이 너무 빨리 오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전세 수요자들이 빚을 내서 집을 사는 경우가 늘어나고 덩달아 집값도 오르게 되는 거죠. 이런 문제가 파급을 갖고 (전월세 급등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고요.
–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동향 실장

박근혜 정부가 지속적으로 저금리 정책을 펴면서 많은 임대인들이 이해타산을 따져 기존의 전세 매물을 수익률이 높은 월세로 돌렸고 그에 따라 수요에 비해 전세 공급량이 대폭 줄어 전세보증금의 시세가 치솟았다는 것이다.

아파트 실거래가 분석을 통해서도 월세 전환 추세가 확인된다.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1분기 전세 거래의 비중이 임대 시장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었지만 올해 1분기 이 수치는 60% 대까지 떨어졌다. 반면 월세나 반전세(일부 보증금을 두고 월세를 내는 방식)의 비중은 20% 대에서 출발해 올해 들어 30%대를 넘어섰다. 상당수의 소액 월세가 통계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전세와 월세의 비율은 거의 반반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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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란’ 우려되는 주거 불안…정부는 ‘유체이탈’ 화법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임대 시장의 월세 전환 분위기가 결국 주거비 폭등으로 이어지고 주거 불안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한다.

똑같은 주거비용이라면 전세에서 월세 전환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은행 이율이 1% 대인데 비해 지금의 전월세 전환율은 6%대입니다. 은행 이율에 비해 크게 높은 수준이죠. 결국 주거비 부담이 커진다는 뜻이기 때문에 월세 전환은 기본적으로 문제가 됩니다. 게다가 이같은 주거비 폭등은 저소득층에게 더 많은 부담이 가기 마련입니다.
–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위원

월세의 경우 총 소득 대비 주거 비용, 즉 월세 비용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생계의 어려움을 부를 수 있습니다. 가처분 소득의 소비 지출 중 10~15퍼센트의 가처분소득, 그리고 소비지출의 15%를 주거비로 하다 보니 많은 부담을 갖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전세 제도가 거의 사라지면서 생긴 작용이죠. 즉 주거 비용을 싸게 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때문에 주택 매매가 늘고, 월세 가격이 오르는 형태의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동향 실장

전례없는 주거비 폭등이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지만 정부는 침묵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총 8 차례의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지만 그 내용은 서민들의 주거 불안 해소가 아닌 매매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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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을 만나 서민 주거 불안에 대한 대책을 물었다. 유 장관은 “100% 완벽할 순 없겠지만 노력하고 있다”며 “부동산 정책의 최우선을 주거 안정에 두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정책 가운데 실효성있는 주거 안정 대책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정부가 주거 안정을 최우선에 놓고 부동산 정책을 펴고 있다는 유 장관의 말은 사실상 실체가 없는 ‘유체이탈’식 화법인 셈이다.

다른나라 경우 소득 대비 주거비(RIR) 부담이 얼마여야하는지 기준이 있습니다. 유럽 같은 경우 소득 대비 주거비가 25%가 넘으면 정책 대상이고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가 있는데 우리의 경우 그런 것이 전혀 없는 실정입니다. 기본적으로 서울같이 주거비 부담이 큰 도시에서는 ‘임대료 컨트롤’이나 ‘전월세 상한제’ 등의 제한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도 충분히 높은데 계속 상승하지 못하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주택 주무부처가 리얼에스테이트(부동산)에 관심을 두는 나라는 없습니다. 하우징(주거)에 관심을 둡니다. (우리 정부에)그 점이 아쉽습니다.
–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위원

목, 2015/09/0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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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해수담수 공급에 대한 주민들의 찬반 입장을 묻는 주민투표가 시작되었다. ⓒ전상규

기장 해수담수 주민투표는 물민주주의 실현의 장!

 

최수영 부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email protected])

  [caption id="attachment_156872" align="aligncenter" width="640"]기장 해수담수 공급에 대한 주민들의 찬반 입장을 묻는 주민투표가 시작되었다. ⓒ전상규 기장 해수담수 공급에 대한 주민들의 찬반 입장을 묻는 주민투표가 시작되었다. ⓒ전상규[/caption] 기장 해수담수 공급에 대한 주민들의 찬반 입장을 묻는 주민투표(기장 주민투표)가 시작됐다. 기장 해수담수 공급은 ‘주민투표법’과 ‘지방자치법’이 규정하고 있듯이 주민의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단체의 사무가 명백하다. 그러나 부산시는 주민들이 청구한 주민투표에 대해 기장 해수담수 공급은 국가사무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이에 기장주민들은 부산시의 주민투표 거부를 무책임한 반시민적 행정으로 규탄하고, 2014년 삼척과 2015년 영덕에 이어 민간 주도의 주민투표 추진을 결정했다. 기장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해수담수 공급 반대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기장해수담수반대대책협의회와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기장해수담수 공급찬반 주민투표 추진위원회’(주민투표추진위)로 머리를 맞댔다. 마침내 지난 2월22일 기장 주민투표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관리할 ‘기장해수담수 공급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주민투표관리위)가 발족했다.   [caption id="attachment_156873" align="aligncenter" width="640"]지난 2월22일 기장 주민투표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관리할 ‘기장해수담수 공급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주민투표관리위)가 발족했다. ⓒ 부산환경연합 지난 2월22일 기장 주민투표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관리할 ‘기장해수담수 공급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주민투표관리위)가 발족했다. ⓒ 부산환경연합[/caption]   주민투표추진위는 공식적으로 해수담수 공급을 찬성하는 단체와 반대하는 단체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에 투표관리위 참여를 요청했다. 주민투표관리위에 찬성단체는 끝내 참여를 거부했고, 중립적 단체와 반대단체의 대표 그리고 시민단체로 구성되어 공식 일정에 돌입했다. 지금까지 주민투표 공고, 찬성∙반대단체 등록 공고, 투표구 공고가 진행됐다. 앞으로 주민투표관리위는 투표안내문 발송과 투표소 공고 그리고 투표참여를 독려하여 3월19일~20일에 실시되는 주민투표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3 투표구공고현수막   기장 주민투표는 기장 주민 스스로가 공공재인 수돗물 즉 먹는 물을 선택하는 것으로, 직접 민주주의의 실천을 통해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보장받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의미가 크다. 이번 기장 주민투표는 절차적이고 실질적인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두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 기장 주민투표는 물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일이다. 주민투표는 지난 1995년 지방자치제가 부활된 지 22만에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시행된다. 기장 주민투표는 성숙된 시민의식과 참여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역사적 현장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환경권을 지키는 생생한 다큐멘터리이다. 물의 안전성을 떠나 먹는 물의 선택은 신중하고 철저해야 한다. 기존에 공급받고 있는 물의 안전성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이거나 지속적인 수급이 불가능할 경우라도 주민의 설득과 동의가 우선이고 핵심이다. 하지만 기장 해수담수는 헌법적 기본권으로서 기장주민의 선택적 권리를 애초부터 축소하거나 침해했다. 합리와 이성보다 이익과 독선이 행정을 지배할 때 주민은 불행해진다. 헌법적 기본권이 박탈된 물 선택의 강요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기장 주민이 선택한 것이 바로 주민투표였다. 형식적 지방자치를 직접 바로잡고 자신의 환경권을 지키는 행동을 물 민주주의로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caption id="attachment_156875" align="aligncenter" width="640"]‘기장해수담수 공급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주민투표관리위)가 발족했다. 기장 주민투표는 기장 주민 스스로가 공공재인 수돗물 즉 먹는 물을 선택하는 것으로, 직접 민주주의의 실천을 통해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보장받는다는 것에서 그 의미가 크다. ⓒ 부산환경연합 ‘기장해수담수 공급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주민투표관리위)가 발족했다. 기장 주민투표는 기장 주민 스스로가 공공재인 수돗물 즉 먹는 물을 선택하는 것으로, 직접 민주주의의 실천을 통해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보장받는다는 것에서 그 의미가 크다. ⓒ 부산환경연합[/caption]   둘째, 기장 주민투표는 주민자치로서 안전한 물을 지키는 일이다. 2012년 한수원이 발주한 고리원전 운영 영향에 관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온배수 확산범위가 12.4㎞에 이른다. 고리원전에서 온배수에 포함돼 방출되는 액체성 방사성 물질이 기장 해수담수 취수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삼중수소를 비롯한 수십 종의 방사능으로 인한 해수담수 수돗물의 오염에 대한 불안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부산시와 상수도본부는 기존의 수돗물을 기장주민들에게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홍보하며 공급해왔다. 기장주민들도 기존의 낙동강 물을 이용하는데 불편하거나 어려움이 없었다. 물론 기장 해수담수 시설이 추진되어 공급이 강행되기 전까지 그랬다.   [caption id="attachment_156876" align="aligncenter" width="640"]기장 주민투표가 시작된 가운데 주민투표관리위원들이 선거인명부 동의 서명을 받기 위해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부산환경연합 기장 주민투표가 시작된 가운데 주민투표관리위원들이 선거인명부 동의 서명을 받기 위해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부산환경연합[/caption]   그러나 부산시와 상수도본부는 낙동강 정수장과 거리가 멀어 수도관의 부식과 국가의 이익 그리고 우수한 수질을 내세워 기장 해수담수를 공급을 주장했다. 또 대규모 시설의 운영 능력을 확보해야하는 기업의 이익을 위한 시범사업인 것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고리원전의 방사능 오염 영향범위에 있는 시설에서 생산되는 수돗물이 안전하다며 버젓이 수요를 강요하고 있다. 기장 주민들은 부산시와 상수도사업본부가 자신들의 안전과 생명을 국책의 미명아래 기업의 이익과 맞바꾸려 하는 처사에 분노했다. 기장 해수담수사업을 강행할수록 주민의 불신과 저항은 커져갔다. 부산시와 상수도사업본부가 여론 형성을 위한 관제 집회에 동원된 주민을 매수한 의혹이 제기되었고, 시민단체의 진정에 따라 사법당국이 수사를 진행 중이다. 기장주민들이 가지는 부산시에 대한 정책 신뢰도는 더 이상 추락할 수 없을 정도로 실추되었다. 급기야 부산시와 상수도사업본부는 기장 해수담수 강행을 위해 최근까지 안전하고 깨끗한 물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던 낙동강 수돗물을 먹을 수 없는 오염된 물이라고 홍보하는 자기부정까지 일삼고 있다.   [caption id="attachment_156877" align="aligncenter" width="640"]기장 주민투표를 성사시키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물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는 목표 아래 전국에서 수 백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환경연합 기장 주민투표를 성사시키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물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는 목표 아래 전국에서 수 백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환경연합[/caption]   미국 뉴욕시는 2014년 원전에서 5.6㎞ 떨어진 곳에 추진하던 해수담수시설을 시민과 의회의 반대 의견을 반영하여 계획을 중지하고 대안을 만드는 시민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원전관리나 수돗물 정수시설 운영에 있어 우리나라 보다 기술적 우위에 있는 미국은 취소하는 데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기장 주민투표는 다수 주민의 안전한 수돗물에 관한 요구가 행정에 반영되지 못하는 반상식적 행정에 대한 합법적 경고이다. 주민간 분열을 부추기고 공동체 갈등을 조장하는 부산시의 폭거에 대한 주민자치의 항거이다. 기업의 이익과 국책보다 앞서는 것이 주민의 안전과 미래세대의 생명임은 자명하다. 기장 주민투표는 안전한 물을 지키는 실질적 주민자치로서 완결될 것이고, 4월에 있을 20대 총선에 그 민의가 다시금 확인될 것이다. 7주민투표일 홍보웹포스터   후쿠시마 핵참사 이후 인류는 핵발전과 공존할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을 목도했다. 세계 최대의 핵단지이자 수천조 베크렐의 방사능과 삼중수소를 방출하는 고리원전에서 불과 11㎞ 떨어진 기장 해수담수는 근원적 안전성을 확보할 수 없다.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는 더 늦기전에 처음으로 되돌려 다시 맞춰야 한다. 기장 해수담수의 갈등과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바로 기장 주민투표여야 할 것이다. 미국 뉴욕시의 결정은 기장 해수담수의 해법을 가장 잘 제시하는 사례이다. 기존 상수원 인근에 원전을 지을 수 없듯이 원전 인근에 상수원을 둘 수 없는 것이다.   [caption id="attachment_156879" align="aligncenter" width="640"]주민투표는 지난 1995년 지방자치제가 부활된 지 22만에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시행된다. 기장 주민투표는 성숙된 시민의식과 참여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역사적 현장이다.ⓒ 부산환경연합 주민투표는 지난 1995년 지방자치제가 부활된 지 22만에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시행된다. 기장 주민투표는 성숙된 시민의식과 참여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역사적 현장이다.ⓒ 부산환경연합[/caption]   대안노벨상과 후쿠오카아시아문화상 대상을 수상했던 세계적 환경운동가인 반다나 시바는 물 민주주의의 원칙을 이렇게 말한다. “누구도 물을 파괴할 권리는 없다. 물의 오염권을 사고 파는 것은 물을 지속가능하고 정당하게 사용해야 하는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월, 2016/03/0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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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전북 삼례 강도치사 사건을 재수사하면서 진범을 잡은 검사를 수사에서 배제시켰고, 재수사를 담당한 검사는 진범들에 대한 수사 결과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힘없는 서민에게 억울한 옥살이를 시킨 치부를 감추기 위해 진실을 은폐한 것은 아닌지 의혹을 사고 있다.

전북 삼례 강도치사 사건 피의자 3명이 9개월째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지난 1999년 11월. 부산지검은 “범인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두 달여간의 내사 끝에 진범 중 한 명인 조 모씨를 긴급 체포했다. 또 마약 투약 혐의로 잡혀 이미 수감생활을 하던 공범 이 모씨와 배 모씨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누명을 쓴 삼례 청년 3명은 전면 재조사를 받기 위해 부산교도소로 이감되는 등 사건의 진실이 곧 밝혀지는 듯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관할이 부산지검에서 전주지검으로 이첩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진범을 잡은 검사는 수사에서 배제되고, 무고한 삼례 청년 3명을 강도치사죄로 기소해 옥살이를 하게 한 전주지검 검사에게 다시 사건이 배당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최초로 수사했던 전주지검에서 사건 내용을 가장 잘 아니까 이첩한 것”이며 “조사과정에서 부산 3인조가 최종적으로 진술을 번복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자신이 진범이라고 자백한 이 모씨는 전주지검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 기존의 자백을 번복하도록 유도당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자백을 번복하려고 한게 아니었다”며 “검찰 수사가 우리가 아니라는 쪽으로 가는데 우리가 맞다고 끝까지 우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주지검이 작성한 내사결과 종합보고에는 사건 관련자들의 진술과 전혀 다른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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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피해자가 강취당한 보석은 녹색의 진짜 보석인 에메랄드가 박힌 여자용 목걸이 반지 팔지 한 세트와 남자용 반지 1개였다”며 “이는 큐빅과 가짜 자수정이 박힌 금반지를 샀다는 금은방 주인의 진술과 다르다”고 했다. 전주지검은 이를 근거로 부산 3인조를 진범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금은방 주인의 실제 진술은 전혀 달랐다. 금은방 주인은 검찰 조사에서 “보석에 관해 전문적으로 공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에메랄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수 없다”고 진술했다. 그녀는 또 “저희 같은 변두리에서 장사를 하는 규모가 작은 업소에서는 반지 자체의 금이나 18K 이외에는 에메랄드나 자수정에 대해서는 가격을 쳐주지 않기 때문에 진짜인지 감정할 필요도 없다”고 덧붙였다.

금은방 주인은 에메랄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검찰이 가짜라고 단정한 것이다. 게다가 이 보고서는 금은방 주인이 부산 3인조로부터 구입한 패물의 외양이 피해자의 것과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을 일부러 누락했다.

피해자 부부가 빼앗긴 결혼 패물의 행방은 진범을 가르는 결정적인 증거다. 검찰이 삼례 청년 3명을 기소하면서 제시한 증거는 주범인 임명선씨의 집에서 발견됐다는 드라이버와 부엌칼 등 9점 뿐. 피해자 부부가 빼앗긴 패물의 행방은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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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부부의 진술도 교묘하게 왜곡했다. 피해자 부부는 “표준말을 사용했지만 경상도 억양이 있었다”고 진술했으나 보고서에는 경상도 사투리가 불확실하다고 적시했다. 보고서엔 또 부산 3인조 중 한 명인 이씨가 슈퍼 방문의 구조와 재질, 손잡이 형태를 모른다고 했지만, 이씨는 전주지검의 피의자 신문 때 방문의 재질과 구조를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이씨의 진술은 미닫이문을 여닫이문으로 혼동한 것 외에는 경찰의 현장 검증 때 찍은 영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터널효과라고 설명했다. 경찰대 경찰행정학과 이기수 교수는 “용의자가 자백을 하면 이 사람이 죄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 일종의 터널효과라는 게 생기고 유죄와 관련된 심증, 정황, 증거만 수집해 수사를 끝내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주지검 최성우 검사는 나라슈퍼의 대문이 고장나 닫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보고서에 이를 누락시키는 등 삼례 청년들이 범행을 부인하는 증언과 증거는 철저히 무시했다.

최 검사는 현재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서 화이트컬러 범죄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어렵사리 연락처를 수소문해 문자를 보내고, 직접 사무실을 찾아가기도 했지만 그를 만날 수 없었다. 그는 따로 할 말이 없다며 기자에게 행복한 설 명절을 보내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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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범을 잡고도 무혐의로 풀어준 검찰 때문에 누명을 쓴 삼례 청년들은 성년을 감옥에서 맞이했고, 17년이 지난 지금 재심을 기다리고 있다.

목, 2016/02/11-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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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정부의 공식 통보에 따라 지난달 30일 부로 활동 종료 조치를 받은 가운데, 지난해 초 해양수산부가 법제처에 특조위 활동 시한에 대한 법령해석을 요청할 당시엔 부처 실무진 협의를 거쳤지만 이를 철회하는 과정에선 어떤 주체들이 어떤 협의를 했는지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어 ‘자의적 해석’에 따른 조치였다는 정황이 짙어지고 있다. 나아가 법제처 해석 철회를 주도했던 공무원들이 청와대와 여당의 세월호 특조위 활동 방해에 깊이 연루됐던 전력이 있어 특조위 활동시한에 대해 해수부 차원을 넘어서는 밀실협의가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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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해수부가 지난해 2월 2일 세월호 특조위의 활동 시한에 대해 법제처에 법령 해석을 요청한 공문 일체를 입수했다. 이 공문에 첨부된 ‘법령해석요청서’에 따르면 당시 해수부는 세월호 특별법 제6조(위원회의 구성 등)와 제7조(위원회의 활동기간) 및 부칙 제3조(위원회 위원 임기의 적용례)가 서로 충돌해 2가지 해석이 가능하다고 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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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이른바 ‘갑설’은 부칙 제3조를 우선 적용해 ‘최초로 임명된 위원회 위원의 임기는 이 법의 시행일(2015년1월 1일)부터이므로 설령 위원회가 2015년 2월 1일에 구성된다고 해도 위원의 임기(1년)가 2015년 12년 31일에 종료(6개월 연장 요청이 없을 경우)됨에 따라 위원회 활동도 같은 날 종료된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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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른바 ‘을설’은 특별법 제7조 ‘위원회는 그 구성을 마친 날부터 1년 이내에 활동을 완료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만약 위원회가 특별법 시행일(2015년 1월 1일) 이후인 2015월 2월 1일에 구성된다면 위원회 임기는 2016년 1월 31일에 종료되고, 위원의 임기도 이에 맞추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부칙 제3조는 ‘특별법 시행일 이전에 위원회가 구성되었을 경우 위원의 임기를 적용하기 위해 규정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가능하다고 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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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해수부는 자체적인 법령해석으로는 ‘갑설’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함께 제시하면서 법제처의 해석을 공식 의뢰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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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해수부 요청에 따라 법제처는 지난해 2월 16일자로 공문을 보내 2월 24일 오후 2시 법령해석심의위원회가 개최될 예정임을 밝히면서 해수부의 의견을 공식 전달할 사무관급 이상 직원을 출석시켜달라고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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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해수부는 이 심의가 예정됐던 2월 24일 오전 법제처에 돌연 공문을 보내 ‘의뢰했던 법령해석에 대해 추가로 검토할 내용이 있으니 심의를 보류해달라’고 요청한다. 이어 한 달이 더 지난 3월 30일에는 ‘법령해석을 철회해달라’는 공문을 보내 모든 것을 백지화시킨다.

지난달 27일 해수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은 이와 관련한 질의에 나섰다. 김영석 해수부 장관은 “처음에는 특조위 활동시한에 대한 해석이 불분명하다고 생각해 법제처 해석을 의뢰했다가 내부 검토 결과 명확하게 해석되는 사안이라고 판단해 요청을 철회했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

그러나 뉴스타파 취재 결과 몇몇 석연치 않은 구석들이 발견됐다. 우선 최초 법령해석을 의뢰했던 해수부 내 부서와 최종 철회를 요청한 부서가 서로 달랐다는 점이다. 지난해 2월 2일 법제처에 법령해석을 의뢰한 공문과 2월 24일 해석 보류를 요청한 공문의 작성 부서는 기획조정실 산하 규제개혁법무담당관실이었던 반면, 최종 철회를 요청한 공문의 작성 부서는 해양정책실이었다.

더욱 이상한 점은 최초 법제처 해석을 의뢰하기 전까지는 해수부 규제개혁법무담당관실 직원 3명(김모 사무관, 최모 담당관, 박모 법무관)과 본부 소속이던 김남규 서기관 등이 법령해석을 위한 협의를 거친 끝에 ‘법제처 해석을 의뢰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던 반면, 법제처 심의를 유보하고 최종 철회하는 과정에서는 이들 실무진의 협의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규제개혁법무담당관실의 김모 사무관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법제처 해석을 의뢰하기 전 김남규 서기관을 포함한 ‘세월호 특조위 관련 업무 지원 TF’ 직원들과 함께 특조위 활동기한에 대한 법령해석을 위한 회의를 몇 차례 가졌는데, 참석자들마다 견해가 모두 달았고, 이에 따라 법제처 해석을 의뢰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공문으로 정식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 얼마 뒤 김남규 서기관으로부터 ‘내부적으로 좀 더 검토할 것이 있으니 법제처에 법령해석 유보 공문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렇게 진행했다”고 말했다.

당시 해수부 규제개혁법무담당관실에 파견 근무 중이던 박모 법무관의 기억도 거의 같았다. 그러나 박 법무관은 “법제처 해석 의뢰 단계에서는 직원들의 견해가 각각 제시되고 취합되는 과정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이 요청이 철회되는 과정에서는 특별한 회의나 의견 취합 절차는 없었다”면서 “그 판단은 실무선이 아니라 ‘윗선’에서 이뤄진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뉴스타파는 당시 규제개혁법무담당관실 직원들과 함께 법령해석 논의에 참여했던 김남규 서기관(현 해수부 수산정책과장)에게 연락해 ‘법령해석 철회 과정에서 어떤 단위에서 어떤 주체들 간에 협의가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김 서기관은 “너무 오래된 일이라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법제처 의뢰를 철회한 공문의 최종 전결자였던 연영진 해수부 해양정책실장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지만 “내부적으로 상당한 검토를 한 결과 부칙 제3조를 우선 적용하는 것이 명확한 해석이라고 판단되어 법제처 의뢰를 철회한 것”이라는 원론적 답변만 내놨을 뿐 역시 이런 결정이 누가 어떤 단위에서 논의해 판단한 결과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정리하면 해수부는 세월호 특조위가 설립준비를 하고 있던 지난해 1월 말부터 이미 활동시한을 언제까지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실무 단위의 논의를 진행했지만 결론을 얻을 수 없어 법제처에 공식적인 법령해석을 의뢰했지만, 이후 이를 유보하고 최종 철회하는 단계에서는 누가 어떤 근거로 판단을 내렸는지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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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당시 해수부의 법제처 법령해석 철회 공문의 결제라인에 이름이 올라 있는 두 공무원의 전력이 눈길을 끈다. 먼저 규제개혁법무담당관실과의 법령해석 논의를 주도하고 법제처 해석 철회 공문의 결제자로도 이름이 올라 있는 김남규 서기관은 앞서 2014년 12월 말부터 세월호 특조위 설립준비지원단에 파견돼 있었다. 김 서기관은 2015년 1월 16일 조대환 당시 특조위 부위원장(여당 추천)의 지시로 특조위 내부 자료를 김재원 새누리당 수석부위원장에게 전달해 결과적으로 ‘세금도둑’ 발언이 나오도록 만든 인물이다. 김 서기관은 2015년 1월 21일 특조위 전원위원회 도중 김재원 의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조대환 부위원장에게 바꿔주다가 뉴스타파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바로 다음날인 22일 김 서기관은 조대환 부위원장이 특조위 파견 공무원 전원을 무단으로 철수시키는 조치에 따라 해수부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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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해석 요청 철회 공문의 최종 결제자였던 연영진 정책실장도 마찬가지다. 현재 세월호 인양추진단장인 연 실장은 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으로 파견돼 있다가 2015년 1월 7일부로 해수부 해양정책실장으로 복귀해 세월호 특조위 관련 업무를 주도했다. 연 실장은 특히 2015년 11월 큰 파장을 일으킨 ‘특조위의 BH 조사에 대한 대응 문건’을 국회 새누리당 농해수위 의원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던 인물이기도 하다.

특조위 활동시한에 대한 법제처 법령해석 철회 공문의 최종 결제자로 기재된 두 인물이 청와대와 여당 사이를 오가며 특조위 활동 방해에 조력한 전력이 있다는 사실은, 당시 세월호 활동시한을 최대한 단축시키려는 방향의 논의가 해수부 차원을 넘어서 ‘윗선’의 의중에 따라 진행됐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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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로 활동 종료 통보를 받은 특조위는 여전히 내년 2월까지가 활동 시한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재 정부 전산망이 끊기고 홈페이지 관리 권한마저 박탈당해 실질적으로 어떤 업무도 할 수 없는 상태다. 인양된 선체에 대한 조사도 불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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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야기한 것은 근본적으로 세월호 특별법 상의 특조위 활동기한에 대한 해수부의 일방적인 해석이었지만, 해수부는 당초 실무진들의 판단에 따라 법제처에 의뢰했던 법령해석을 누가 어떤 기준과 판단에 따라 최종 철회하기로 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2016년 국정감사에서 해수부를 상대로 이 문제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는 오는13일 예정된 종합감사 뿐이다.

화, 2016/10/0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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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의혹을 받고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인 해촌 김용주가 일제 말기인 1940년 대, ‘일제 군용기 헌납’과 ‘징병’을 독려하는 기명 광고를 낸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또 1940년 이후 김용주는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하는 친일 단체의 주요 보직을 맡아왔으며, 지속적으로 강도 높은 친일반민족 발언을 한 사실이 당시 공식 문건과 신문 기사 등 문헌을 통해 확인됐다. ‘아버지는 애국자’라고 주장해 왔던 김무성 대표는 새로 발굴된 김용주의 친일 행적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의 친일 행적이 새롭게 드러났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의 친일 행적이 새롭게 드러났다.

9월 17일, 민족문제연구소는 그동안 사료발굴을 통해 군용기 헌납과 징병을 독려하는 아사히 신문 광고 등 김용주의 친일 행위를 새롭게 입증할 다수의 일제 공문서와 신문 자료를 공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김용주가 1920년대와 30년대 중반까지 야학과 신간회 활동 등 민족적 행보를 보인 것은 맞지만 1940년 이후부터 친일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 민족문제연구소는 9월 1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의 새로운 친일행적을 보여주는 자료를 공개했다.

▲ 민족문제연구소는 9월 1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의 새로운 친일행적을 보여주는 자료를 공개했다.

김용주, 일제 말 ‘군용기 헌납’, ‘징병’ 독려 기명 광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김용주는 일제가 벌인 대동아전쟁이 극에 달하던 1943년과 1944년, 두 차례에 걸쳐 태평양전쟁 중인 일제에 군용기를 헌납할 것과 조선 청년들이 대동아전쟁에 적극 나설 것을 독려하는 광고를 아사히 신문이 조선에 배포하는 ‘남선판’과 ‘중선판’에 게재했다. 두 광고 모두 김용주 자신의 창씨명인 김전용주(金田龍周)라는 이름을 내건 기명광고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 이준식 연구위원은 “본인이 적극적으로 (대동아)전쟁에 협력하고 있다는 것을 일제에 과시하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 김용주가 일제 말기 아사히 신문에 게재한 기명 광고들.

▲ 김용주가 일제 말기 아사히 신문에 게재한 기명 광고들.

김용주, 일제 징병제 관련해 “자식을 기뻐하며 바쳐라”

김용주는 1943년 서울 부민관에서 열린 전선공직자대회에 참석해 “진정한 정신적 내선일체화를 꾀”해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을 우선적 과제로 밝혔다. 김용주는 또 전쟁에 동원되는 조선 청년들의 부모를 향해 “자식을 나라의 창조신께 기뻐하며 바치는 마음가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고, “귀여운 자식이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받들어 모시어질 영광”이라 표현 등의 강도 높은 친일 발언을 했다.

▲ 전선공직자대회에 참가한 김용주는 내선일체와 황국신민, 천황의 귀일 등 징병을 독려하는 발언을 했다.

▲ 전선공직자대회에 참가한 김용주는 내선일체와 황국신민, 천황의 귀일 등 징병을 독려하는 발언을 했다.

당시 경북도회 의원 40명 가운데 전선공직자대회에 참석한 조선인 의원은 단 두 명으로 기록돼 있다. 바로 경북지역 대표적 친일파인 서병조, 그리고 김용주다.

이밖에 김용주는 여러 친일단체에도 주요 임원으로 참여했다. 일제가 조선인들의 전쟁협력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 조직한 ‘국민총력’과 ‘조선임전보국단’의 주요 보직을 두루 맡았다. 당시 경북도회 의원이던 김용주는 1941년 5월, 국민총력 경북 수산연맹 이사로 선출되고 같은 해 7월, 평의원으로 임명된다.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이기도 했던 그는 1941년 12월,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 상임이사로 선출됐다. 당시 김용주와 함께 조선임전보국단의 경북지부 상임이사로 있던 서병조, 정해붕, 문명기는 지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결정한 친일파 1,006명에 포함된 인사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김용주가 1937년 이후 해방될 때까지 10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에 벌인 각종 친일행위는 적극적인 전쟁범죄행위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아래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 씨의 주요 친일 행적을 시기별로 정리한 타임라인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 해촌 김용주
    1905.7.29 – 1985.1.27
    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05. 7. 29.

    경남 함양군 함양면 신관리 출생

  • 1923.

    조선 식산은행 본점 취직

    6개월 만에 포항지점으로 전출. 경북 영일군 포항읍 이주 정착.

    ※ 식산은행 : 1918년 설립한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식민 경제 지배에서 동양척식회사와 함께 금융 측면에서 뒷받침했던 핵심 기관 중 하나.

  • 1924.

    ‘영일청년회’ 지육부장

    독서회 조직 및 노동야학 개설. 이후 교사로 참여

  • 1926. 5. 28.

    독서회를 조직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

    검사분국으로 송치(5.30)됐으나 이틀 만에 방면

    출처 : 시대일보(時代日報) 1926년 6월 3일 2면

  • 1926.

    삼일상회(三一商會, 철도화물운송업) 설립

    “삼일 민족운동의 정신을 본받는다는 뜻에서 붙인 것인데, 일찍이 민족의식에 눈떠 청년운동에 열중했던 나의 심혼을 표시한 그 상호는 다분히 의식적이고 민족적인 인상을 풍기었다. ”

    출처 : 김용주 회고록 “풍설시대80년” 중

  • 1927. 7. 22.

    신간회 영일지회 정치부 간사

    ※ 신간회(新幹會) : 1927년 2월 민족주의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이 연합하여 창립한 민족협동 독립운동 단체

    출처 : 조선일보(朝鮮日報) 1927년 7월 25일 2면
    중외일보(中外日報) 1927년 7월 27일 4면

  • 1936. 3.

    포항 영흥학교 인계 경영 및 교장 취임

    출처 : 동아일보(東亞日報) 1936년 3월 24일 4면

  • 1936. 9. 20.

    경상북도 포항 읍회 의원(민선) 당선

    출처 : 매일신보 1936년 9월 22일 조간 4면

  • 1937. 5. 10.

    경상북도 도회의원(영일군, 민선)

    1945년 해방때까지 도회 의원 유지

    출처 : 조선총독부 관보 1937년 7월 6일
    매일신보 1937년 5월 12일 석간 1면

  • 1940. 2. 23.

    “국체명징관 내에서는 내선관계의 역사적 연원을 증명하는 자료를 진열하여 내선일체의 정신적 심도를 올려야.” 발언 – 12회 경북도희 회의 발언

    김용주 의원, 설치를 고려하는 국체명징관 내에서는 내선관계의 역사적 연원을 증명하는 자료를 진열하여 내선일체의 정신적 심도를 올릴 것.

    ※국체명징관(國體明徵館) : 국체명징(國體明徵) 즉, 황도정신(皇道情神)의 보급이라는 미명 아래 조선인들의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를 촉진한다는 목적으로 세운 건물.

    출처: 동아일보 1940년 2월 27일 자 석간 7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0. 2. 24.

    “충량한 황국신민으로서 내선일체의 이상에 향하고 있으므로 옛날과 같이 불온사상을 가진 자는 한명도 있지 않으므로 반도 교육에 일대 전환할 시기인 줄 생각한다.” 발언 – 제12회 경북도회 회의

    김용주씨 (포항) 반도인은 황도정신에서 황국신민으로서 충량한 내선일체의 이상에 향하고 있음으로 옛날과 같이 불온사상을 가진 자는 한명도 있지 않으므로 반도교육에 일대 전환할 시기인줄 생각한다.

    출처 : 매일신보 1940년 2월 26일(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0. 7. 11.

    김용주 창씨개명

    金龍周(김용주) – 金田龍周(가네다 류슈)

    출처 : 조선총독부관보(朝鮮總督府官報) 1940년 12월 20일

  • 1940. 11.

    일본 기원 2600년 축전 기념식전 및 봉축회 초대받음

    1941년 친일파 김갑순이 발행하는 조선신문사가 발행한 명단 중 김용주 수록 게재
    1941년 9월 일본동맹통신사 발행 “흥아일본건국사”에 명단 중 김용주 수록 게재

    ※ 일본 기원 2600년 축전(紀元二千六百年祝典) : 1940년 11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기원 2600년 봉축식, 일본은 전시체제를 맞아 일본의 위대성을 대내외에 알리는 대대적인 선전활동을 벌였다.

    출처 : 기원 2600년 축전기념 광영록(紀元二千六百年祝典記念光榮錄) – 조선신문사(朝鮮新聞社), 1941.10, 46쪽(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일본내각관보 1941년 11월 21일 21쪽

  • 1941. 5. 17.

    국민총력 경상북도수산연맹 이사 선임

    水産團體도 結合, 翼贊體制를 整備, 慶北聯盟 結成式 擧行(수산단체도 결합, 익찬체제를 정비, 경북연맹 결성식 거행)

    ※ 국민총력 경상북도수산연맹 : 조선인의 황국신민화와 전쟁동원을 목적으로 조직된 조선총독부의 최대 관변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 산하 단체

    출처 : 매일신보(每日新報) 1941년 5월 20일 석간 3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1. 7. 16.

    국민총력 경상북도연맹 평의원, 도회의원 자격으로 임명

    1) 總力慶北聯盟, 新道議 網羅 後 最初 常會, 中心論題는 生活新體制(총력경북연맹, 신도의 망라 후 최초 상회, 중심논제는 생활신체제)

    2) 道會議員を評議員に加へ, 慶北, 聯盟役員の常會を開へ(도회의원을 평의원에 가입, 경북, 련맹역원의 상회를 개최)

    ※ 국민총력 경상북도연맹 : 조선인의 황국신민화와 전쟁동원을 목적으로 조직된 조선총독부의 최대 관변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의 지방 조직

    출처
    1)매일신보 1941년 7월 18일 3면
    2)경성일보 1941년 7월 18일 2면

  • 1941. 9.

    대구국체명징관 1천원 헌납, 대구신사 2천원 헌납

    ※국체명징관(國體明徵館) : 국체명징(國體明徵) 즉, 황도정신(皇道情神)의 보급이라는 미명 아래 조선인들의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를 촉진한다는 목적으로 세운 건물.

    출처 : 日本同盟通信社, 1941.9, 330~332쪽
    (皇統[皇紀]二千六百年記念誌)興亞日本建國史 ; 朝鮮銃後奉公錄(황통[황기]2600년기념지) 흥아일본건국사 ; 조선총후봉공록)(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1. 9.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참여

    ※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 일제가 침략전쟁을 진행하면서 조선인들의 전쟁 협력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 조직한 전시체제기 최대의 조선인 민간조직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 참여 주요 인물
    지부장 : 장직상 (중충원 참의)
    이사장 : 신옥(신현구) 중추원 참의
    상임이사 : 서병조(중추원 참의) 문명기(중추원 참의), 정해붕(중추원 참의), 김용주 등

    출처 : 朝鮮臨戰報國團發起人·役員 名簿, “朝鮮臨戰報國團槪要”(조선임전보국단발기인·역원 명부 “조선임전보국단개요”) 27쪽(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1. 10. 8~10.

    친일파 문명기(중추원 참의)와 함께 영덕과 영천 지역에서 개로운동을 독려

    국민개로운동의 취지를 철저히 이해시켜 불노유한무직자(不勞有閑無職者)들을 적극적으로 동원하여 전시체제와 개로체제를 확립하도록 되었다. 중추원참의, 도의원 시찰일정은 다음과 같다.

    개로운동을 독려, 중추원참의, 도의들이 선두서
    文明琦一郞·金田龍周 氏, 동행자 森 職組 書記 10월 8일, 10월 10일 영덕·영천 양 군(兩郡)에
    (이하 생략)

    ※ 국민개로운동 : 일제가 전쟁 수행에 필요한 조선인의 노동력동원을 목적으로 조선인의 근로보국을 주장하면서 실시한 운동

    출처 : 매일신보 1941년 10월 7일 경상판 조간 3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1. 12. 7.

    조선임전보국단 경상북도지부 상임이사 임명 및 ‘황군장병에게 감사의 전보를 보낼 것을 제안’ 발언 제안

    1) 臨戰報國團 慶北支部設立, 結成은 卄九日擧行(임전보국단 경북지부설립, 결성은 29일 거행)

    2) 一死報國을 盟誓, 臨戰報國團 慶北支部 結成式, 七日, 盛大하게 擧行(일사보국을 맹서, 임전보국단 경북지부 결성식, 7일, 성대하게 거행)

    출처
    1) 매일신보(每日新報) 1941년 11월 24일 3면

    2) 매일신보 1941년 12월 9일 석간 3면 (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2. 1. 10.

    조선임전보국단 경상북도 사업부장 임명

    大邱府民號十機! -臨戰報國團 支部와 協力實現에 邁進(대구부민호 10기! -임전보국단 지부와 협력실현에 매진)

    출처 : 매일신보 1942년 1월 12일 2면

  • 1942. 2. 27.

    조선임전보국단 경상북도지부, 미국과 영국을 격멸한 군용기 5대 헌납

    기사에는 임전보국단 경북지부의 단체명이 나오지만, 김용주 등 경부지부 간부들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임보단서도 활동. 경북서 오기를 헌납

    경북 영일군은 애국기 헌납에 압도적인 성과를 보인 대표적인 지역의 하나이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한지 불과 2달 후인 1942년 2월 경북 영일군에서만 총 8대의 군용기가 헌납되었다. 경북지역에서 2월말까지 30대 가량 헌납된 것을 감안하면 일개 군 단위의 실적으로는 놀라운 결과라 할 수 있다. 이후 8월말까지 전국에서 헌납된 비행기는 280여대에 달했다. 도청소재재지가 아닌 지방에서 헌납기 명명식이 거행된 곳은 5대 이상의 실적을 올린 함남의 원산과 경북의 영일 단 두 곳이었다.(출처 : 민족문제연구소)

    출처 : 매일신보 1942년 2월 27일 석간 3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2. 3. 11.

    “북지방면에서 대동아공영권 건설을 위해 밤낮으로 악전고투를 계속하고 있는 장병들에게 도민을 대표하여 감사전보를 발송하자”고 제안 – 제15회 경북도회 회의 중

    尨大 豫算을 俎上에, 慶北道會 開幕(第15會), 劈頭 感謝電報 發送을 決議(방대 예산을 조상[도마 위]에, 경북도회 개막(제15회), 벽두 감사전보 발송을 결의)

    출처 : 매일신보 1942년 3월 13일 경상판 석간 3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3. 9. 8.

    징병제실시에 대한 감사의 뜻을 결의하기 위한 광고를 기명으로 게재

    광고 왼쪽 두 번째 줄 金田龍周 (김용주) 게재

    (廣告)待望의 徵兵制 實施, 지금이야말로 정벌하라, 半島의 靑少年들이여((광고)대망의 징병제 실시, 지금이야말로 정벌하라, 반도의 청소년들이여)

    “대망의 징병제 실시, 지금이야말로 정벌하라, 반도의 청소년들이여… 난폭하기 짝이 없는 숙적 미영을 지금이야말로 물리쳐 멸망시키자. 징병제 실시에 대한 반도 동포의 간절한 요망을 드디어 구현했다. 반도 동포도 내지 장병으로 자리매김하여 당당히 대동아전쟁의 전열에 끼게 된 것이다. 우리 반도의 정예여. 일시동인의 천황의 위덕(大御稜威) 아래, 우리 반도의 인재가 빈틈없는 전우애로 미영 격멸의 전선에 서는 날이 온 것이다. 이 기쁨, 이 감사, 시정 30여년 역사에 전례가 없는 대전환이며 영광이다. 지금은 세계 대동란이 한창인데, 팔굉일우의 대이상을 내걸고 대동아의 천지에 깊숙이 진군하여 황국의 흥폐를 양 어깨에 짊어진 황군이 숙적 미영 격멸에 혁혁한 전과를 거듭하는 가을. 2천 5백만 반도동포, 특히 젊은 반도청년에 거는 기대가 실로 크다. 일억의 환호와 축복 속에 있는 반도의 젊은이들이여. 궐연히 일어나라! 결전이 자네들을 부른다.”

    출처 : 아사히신문(朝日新聞) 남선판(南鮮版) 1943년 9월 8일 4면
    아사히신문 중선판(中鮮版) 1943년 9월 8일 4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3. 10. 2.

    경북도회 의원 자격으로 전선공직자대회(全鮮公職者大會)에 참석

    경북도회 의원 40명 가운데 조선인 참석은 2명. 친일파 서병조와 함께 김용주 참석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기 위해 일본정신문화를 키워온 신사(神祠)를 건립해 감사의 뜻을 발휘해야 한다”고 발언.

    銃後의 戰列에 總立, 第二日 公職者大會에 滅敵의 熱火漲溢, 各議員들의 熱論(총후의 전열에 총립, 제이일 공직자대회에 멸적의 열화창일[맹렬히 넘치다] 각 의원들의 열론[열띤토론])


    김전용주 (경북도회 의원)씨가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는 길은 일본정신문화의 양양으로 각 면에 신사(神社)와 신사(神祠) 를 건립하여 경신숭조 보은감사의 참뜻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하여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귀축 미영 격멸에 돌진할 것을 촉진해야

    출처 : 매일신보 1943년 10월 3일 석간 2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3. 10. 2.

    경북도회 의원 자격으로 전선공직자대회(全鮮公職者大會)에 참석해 징병독려, 천황께 귀일 등 발언

    황국신민이 되기 위한 5가지 구체적인 방안 발언, 특히 일본에 강제 징용 될 조선 청년들의 부모를 향해 “반도의 부모가 자식을 나라의 창조신께 기뻐하며 바치는 마음가짐”을 가질 것을 강조하는 발언

    가장 급한 일은 반도 민중에게 고루고루 일본정신문화의 진수를 확실히 통하게 하고, 진정한 정신적 내선일체화를 꾀하여 이로써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그 구체적 방책으로 다음 5가지 항목을 들고 싶습니다. 첫째, 각 면에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모든 민중으로 하여금 신을 공경하고 신앙생활을 하게끔 하면 일본정신의 진수에 철저히 젖어들게 할 수 있습니다…(중략)그러므로 앞으로 징병을 보낼 반도의 부모로서 자식을 나라의 창조신께 기뻐하며 바치는 마음가짐과 귀여운 자식이 호국의 신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받들어 모시어 질 그 영광을 충분히 인식하여 모든 것을 신께 귀일하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신에 대한 신앙을 철저히 하여 현세의 신이신 천황께 귀일하는 것입니다.

    출처 : 徵兵制施行感謝 敵米英擊滅 決意宣揚 全鮮公職者大會記錄(징병제시행감사 적미영격멸 결의선양 전선공직자대회기록) 全鮮公職者大會事務局(전선공직자대회사무국) 1944년 1월(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4. 7. 9.

    일제에 전투 비행기 헌납 선전 광고 기명 게재

    “결전은 하늘이다! 보내자 비행기를!”라는 제목의 비행기 헌납 광고 기명 게재
    왼쪽 두 번째에 김전용주 이름 나옴.

    “결전은 하늘이다! 보내자 비행기를!, 승리냐 죽음이냐의 결전
    시국은 확실히 승리냐 죽음이냐의 결전의 한 가운데로 돌입하고, 더욱이 적은 공군으로써 승패를 결정지으려고 한다. 이때를 맞이하여 우리는 혁혁한 전과의 그늘에서 산화한 고귀한 영령 또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 적의 맹렬한 공습하에서 묵묵히 (조국)수호에 애쓰는 우리 아버지, 우리 아들, 우리 형, 우리 동생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과 그리고 “좀더 비행기를”이라고 외치는 필사의 요청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출처 : 아사히신문 남선판 1944년 7월 9일 4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8월 15일, 김무성 부친 김용주 ‘미화’ 평전 출간돼

김무성 대표 측은 부친의 친일 행적에 대해 지금까지 “부친은 애국자적인 삶을 살았다”며 “부친의 이름이 도용되거나 날조된 것이다”라고 주장해 왔다. 김무성 대표의 홈페이지에 마련된 ‘나의 아버지’라는 코너에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해촌 김용주 선생”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 김무성 대표의 부친 김용주의 평전이 지난 8월 15일 출판됐다.

▲ 김무성 대표의 부친 김용주의 평전이 지난 8월 15일 출판됐다.

해방 70년을 맞은 지난 8월 15일에는 김무성 대표 부친 김용주의 평전 <강을 건너는 산>이 출판됐다. 평전이라고 쓰여 있지만 김용주의 친일 의혹과 관련해서는 단 한 줄도 다루고 있지 않다.

김용주 평전 표지에는 ‘광복 70주년 기획, 새로운 역사인물 찾기 ①’이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평전 어디에도 이 시리즈의 기획의도나 다음 편 인물, 다음편 출판 예정일 등이 언급되지 않았다. 출판사 측은 “다음 편 인물로 거론되는 분들이 있다”고 밝혔다.

김무성 대표 측은 또 “친일인명사전에 부친이 등재되지 않았기 때문에 친일파가 아니다”라고 주장해 왔다.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해방직후 반민특위가 반민족 행위자로 7천 명 정도를 구상했지만,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는 1,006 명밖에 구상할 수밖에 없었다”며 “진상규명위에서 지정한 1,006명이 아니라고 친일파가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8월 15일 출판된 김무성 대표의 부친 김용주 평전 <강을 건너는 산>

▲ 8월 15일 출판된 김무성 대표의 부친 김용주 평전 <강을 건너는 산>

김무성 대표의 ‘역사 전쟁’

김무성 대표는 수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좌파와의 역사 전쟁’을 외치고 있다. “진보 좌파 세력들이 건국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굴욕의 역사라고 깎아 내리고 있다” (7월31일, LA 동포간담회)며 “좌파와의 역사 전쟁을 승리고 종식시켜야 된다” (2013년9월4일, 새누리당 근현대사 역사교실)고 주장해 왔다.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킨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긍정적인 사관에 의한 교과서”(2013년9월25일)라고 옹호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역사는 공과 과가 있는데, 이제는 공만 봐야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달 친일파 처단을 다룬 영화 <암살> 국회초청 상영회를 주관했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달 친일파 처단을 다룬 영화 <암살> 국회초청 상영회를 주관했다.

뉴스타파는 ‘군용기 헌납’과 ‘징병 독려’ 기명 광고 등 새로 발견된 김용주 씨의 친일 행적과 관련해 김무성 대표 측에 입장을 서면을 통해 물어봤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또 직접 찾아가 질의했지만 보좌진들은 기자를 막았고, 김무성 대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취재: 박중석, 김경래, 김새봄
촬영 편집 : 최형석, 김남범, 신승진, 정지성, 윤석민, 박서영
타임라인 구성 : 임종헌, 최미정
자료 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목, 2015/09/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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