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되어 잔잔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셀마>를 보게 되었다. 1965년의 미국 앨라배마 주의 셀마에서 일어났던 흑인 투표권 쟁취를 위한 행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다. 영화는 흑인들의 투표권 쟁취를 위해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희생을 감내하는 운동을 해야 하지만 또 그만큼의 실질적인 정치적 성과를 얻어 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고뇌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영화는 인상적이었다.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던 만큼 극적인 순간에 흘러나오는 흑인영가(靈歌)들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고 스토리의 전개도 큰 군더더기 없이 흘러간다. 영화의 시작 장면부터 킹 목사는 투덜댄다. 말끔한 양복과 넥타이를 매고 정치인 행세를 해야 하는 것에 대한 불만들을 쏟아낸다. 수많은 흑인의 죽음 앞에서 그런 의례와 행사들은 어떤 의미를 가진단 말인가. 그러나 그도 알고 있듯이 유명인이 되어 미디어에 더 많이 노출되고 그것을 계기로 권력자들과 만나야만 흑인들의 권리 쟁취가 조금 더 앞당겨질 수 있다. 약자들의 입장에서 현실에서 작동하는 권력은 비난하고 질시해야 할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이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킹 목사와 그 동료들은 백악관으로 대표되는 정치권력과 끊임없이 거래하고 또 타협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을 킹 목사 진영은 이렇게 합리화한다. ‘실질적 변화’. ‘우리는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왔으며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그것은 분명 자신들을 위한 합리화이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의 진실이기도 하다. 킹 목사가 굳이 ‘셀마’라는 소도시를 선택하고 미디어에 집착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셀마의 보안관과 주민들이 흑인들에 대한 적개심이 가장 높고 그로 인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킹 목사 진영은 끊임없이 TV를 비롯한 미디어를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무자비한 진압과 폭력의 장면이 미디어에 노출되었을 때 그것이 여론을 움직이고 곧 린든 존슨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를 움직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권 운동은 중요한 순간에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것을 통해 미디어를 활용했고 이는 곧 TV라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미디어가 신문을 능가하는 매체로 성장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영화 내내 킹 목사는 운동과 정치 사이에서 고뇌한다. 그것은 물리적 폭력을 유발해야 하고 그로 인해 일정 정도의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윤리적 비애감과 그를 통해서 반드시 흑인들의 투표권이라는 정치적 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의지 사이에서의 고뇌다. 같은 시기 미국의 북부에서 도시 빈곤층을 조직했던 사울 알린스키가 말했던 목적과 수단 사이에서의 딜레마에 처한 것이다. 알린스키는 주저 없이 희생을 감수하라고 일갈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희생이라면 도대체 어느 정도의 희생이어야 한단 말인가? 희생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영화는 역사가 말해주듯이 결국 킹 목사가 셀마 행진을 성공시키고 린든 존슨 대통령은 역사적인 의회 연설을 통해 투표권법을 통과시키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사실 영화가 그려내지 않은 그다음의 정치적 상황들이다. 영화에서는 악역으로만 나오는 조지 월리스가 했던 대사, “그들은 처음에는 버스 자유 승차, 이제는 투표권, 그리고 앞으로는 일자리와 복지를 요구할 것이라고”는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실제 1965년 투표권법 통과 이후 흑인 유권자들은 미국 민주당의 가장 강력한 지지 기반이 되었고 린든 존슨 대통령이 추진한 ‘위대한 사회’라는 빈곤 퇴치 프로그램에서 건설노동조합과 지방 공공 부문 일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된다. 이는 미국 민주당의 승리 공식이었던 뉴딜 동맹을 무너뜨리게 되고 노동조합들이 민주당을 집단 탈당해서 독자 출마한 조지 월리스를 지지하게 되는 결과를 만든다. 그리고 그 이후 공화당의 장기 집권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린든 존슨과 미국 민주당의 정치적 선택은 실패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용기 있는 타협’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역사의 전진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손에 쥔 어떤 것들을 포기하게 되는 것일지라도 억압받고 소외된 누군가들에게 한 발의 전진이 될 수 있다면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는 것. 킹 목사와 린든 존슨의 그 선택이 수천만 흑인들의 자유와 정치적 성장을 가져왔고 지금의 오바마 대통령을 존재하게 한 것이 아닐까?
▲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이겨야 합니다.’ 영화 <셀마>. ⓒ찬란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역사를 전진시켜야 할 책무를 가지고 있는 진보 정치는 오히려 새로운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낡은 것을 과감하게 포기할 때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정의당 당 대표 선거 기간에 주장했던 ‘2세대 진보 정치’라는 것은 사실 전혀 새롭지 않은 말들이다. 실체 없는 제3의 무엇일 리도 없다. 그것은 우리가 설정해왔던 의제의 중요도와 우선순위를 약간만 바꾸어 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영화에서 킹 목사가 말했듯이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더 정치적이 되어보자는 것이며 그것을 위해 ‘용기 있는 타협’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말이었다.
이제 진보 정치는 윤리적 정당성을 호소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한 사회의 한정된 자원의 분배문제에서 실질적으로 기능하도록 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복지 국가로의 전망, 지속 가능한 사회로의 이행은 진보 정치가 가장 앞서서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과제다. 그리고 현재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는 극단의 불평등과 세대 간 갈등, 정치·경제적 양극화는 진보 정치가 현실을 비난하는 지표와 근거가 아니라 책임지고 개혁해야 하는 과제다. 진보 정치는 이제 비난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책임 있는 정치적 주체임을 더 깊이 자각할 필요가 있다. 내가 이전 세대의 손을 잡고 다음 세대와 함께 만들어내고 싶은 진보 정치란 그런 것이다.
(최근 정의당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해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던 조성주 정치발전소 공동대표가 프레시안과 함께 ‘조성주의 생각’이라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새로 시작하는 ‘조성주의 생각’은 격주에 한 번씩 독자 여러분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프레시안>의 성추행 의혹 보도를 두고 당사자인 정봉주 전 의원(58)과 <프레 시안>의 공방이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봉주 전 의원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정정보도와 사과가 없다면 프레시안을 상대로 취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조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프레시안이 가짜 뉴스를 서울시장 출마 선언식 1시간 반 전에 보도함으로써 출마를 못하게 하고 정치생명을 끊어놓으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도 했다.
기자회견 직후 <프레시안> 홈페이지는 일시적으로 접속 불능까지 됐다. 정 전 의원의 지지자들은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여성이 누구인지 밝히겠다며 엉뚱한 사람을 지목해 ‘신상털이’에 나섰다가 60여명이 무더기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정 전 의원을 비롯해 <프레시안>과 관련 인물들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락내리락 했다.
<프레시안>은 후속 보도로 반격했다. 정 전 의원의 팬클럽인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 카페지기였던 닉네임 ‘민국파’가 “당시 정 전 의원을 (피해자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렉싱턴 호텔로 데려다줬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국파’는 정 전 의원과 이미 사이가 벌어진 상태이고 미권스 카페에서도 문제가 된 인물이어서 증언의 신빙성이 없다는 반박도 나왔다. 정 전 의원 역시 “민국파는 수행 비서가 아니었다”고도 했다. 해당 보도를 한 <프레시안> 기자를 비롯해 몇몇 언론사 기자를 검찰에 고소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민국파’는 “피해자도 모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렉싱턴 호텔에 간 사실을 양심에 따라 진술했을 뿐”이라며 “저에 대해 각종 음해가 벌어지고 있지만 이미 정 전 의원이 먼저 도와 달라 제안해 화해를 하고 있었던 상황”이라고 밝혔다.
사건은 지난 7일 <프레시안>이 현직 기자 A씨가 기자 지망생이던 대학생 시절 서울 여의도 렉싱턴 호텔 카페 룸에서 정봉주 전 의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이 보도로 정 전 의원은 당일 예정돼 있었던 서울시장 출마 기자회견까지 뒤로 미뤘다. 정 전 의원은 이틀 뒤 보도자료를 통해 “그 날 렉싱턴 호텔을 간 사실 자체가 없고 A씨를 만난 적도 없다”고 밝혔다.
이에 <프레시안>은 피해자 A씨의 당시 남자친구였던 K씨가 사건이 벌어지고 2주 뒤 A씨로부터 받았던 e메일에서 이미 피해 사실을 밝혔을 뿐더러 이외 다른 지인들 역시 당시 피해 사실을 들었다는 보도를 내놓았다. 다만 이 e메일에서 사건 날짜가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표현됐는데, 이를 두고 정 전 의원은 최초 2011년 12월23일이라고 보도했던 성추행 날짜가 24일로 바뀌는 등 보도가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공박했다.
정 전 의원은 당시 대법원 확정 판결과 수감을 앞두고 정신없는 와중에 모친까지 쓰러져 병원에 가야 했고 이후 명진 스님을 만나는 등 A씨를 만난 여력 자체가 없었다고 말한다. 당시 동시간대 찍은 사진까지 공개하면서 ‘알리바이’를 내세우고 있다. 피해자 A씨는 <프레시안>을 통해 입장을 밝히면서 “사적인 e메일에서 잠시 날짜를 혼동해 썼을 뿐 날짜를 번복한 적 없다”며 “2011년 12월23일 렉싱턴 호텔 1층 레스토랑에서 성추행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 잘난 척을 밉지 않게 하는 정치인
“노원구 공릉동, 월계동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17대 전 국회의원,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 위대한 정치인,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정봉주 전 의원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주었던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에서의 자기소개는 한때 가수 이승환까지 방송에서 따라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는 지역구가 태어난 고향이기도 하다. 1960년 서울 노원구 공릉동(당시 경기 양주군)에서 태어났다. 봉화 정씨로 정도전의 후손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경찰서장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집안 환경은 넉넉한 편이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독립심이 강했고 고교생 때는 복싱을 했는데 ‘전설의 일진’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 김광선 선수가 절친한 후배인데 지금도 “아마추어 대회 나가면 챔피언 먹는다”고 대회 나가자고 할 정도라고 한다.
한국외대 영어과에 입학한 뒤 학생운동에 참여해 총학생회장과 민주화추진위원회 회장을 지냈다. 1983년에는 시위 주동 혐의로 구속돼 징역 1년6개월 형을 살았다. 당시 ROTC 22기 후보생 신분이었지만 임관을 앞두고 제명됐다.
1985년 대학 졸업 뒤에는 도시빈민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운동권에서 ‘마당발’로 통했다고 한다. 해직 언론인들이 주축이 됐던 ‘민주언론운동협의회’의 간사와 월간 <말>지 기자로 활동했다. 민주 운동단체의 전국 통합 조직이었던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과 그 후신 ‘전국민족민주운동협의회’(전민련)의 기획차장으로 활동했다. 민통련 의장이었던 문익환 목사를 4년여간 수행·보좌하기도 했다. 훗날 BBK 사건 의혹 제기로 수감되기 직전에 문 목사의 묘소를 참배하기도 한 이유다.
영어과 출신이기도 한 그는 ‘영어’에 대한 애착을 놓지 않았다. 재야 단체의 각종 외신회견에 단골 통역을 맡기도 했다. 민주화운동을 하면서도 영어학원에 열심히 다녔다고 한다. 1989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교사 양성 과정인 TESOL 과정을 마쳤다. 1991년에는 서울시 의원 선거에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신민주연합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다. 이후 모교인 한국외대와 손잡고 프랜차이즈 영어 학원인 외대어학원을 운영했다. 전국적으로 20여개의 분원까지 둘 정도로 성공했는데 이 시기에 “빌딩 한 채를 샀을 정도로 돈을 벌었다”고 했을 정도다.
정치권에 입문해서는 김근태 계열의 인사로 분류됐다. 2002년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도 김근태 캠프에 참여했다. 2004년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에 힘입어 서울 노원구 갑에서 국회의원에서 당선됐다. 2007년 17대 대선 때는 이명박 후보를 겨냥한 ‘BBK 사건’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결국 이 때 활동으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 등으로 기소돼 뒤에 징역형까지 치르게 된다.
2008년 총선에서는 낙선했지만 그가 진짜 대중에게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2011년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우주는 나를 기준으로 돌아간다”며 모든 것을 자기자랑으로 마무리하는 ‘깔때기’ 화법은 거부감을 주기보다 웃음을 자아냈다. <나는 꼼수다>가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부각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그의 인지도와 인기도 수직 상승했다. 팬카페 ‘정봉주와 미래권력들’의 회원 수는 10만을 가뿐히 넘었다. 그러나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기, BBK 사건 의혹 제기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이 선고되면서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된다.
감옥에서도 그는 ‘식스팩’을 만들어 나올 정도로 열심히 운동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미리 트레이너에게 맨손으로 운동하는 법을 배우고, 좁은 감옥에서 자는 연습을 미리 하기 위해 집 한켠 파우더룸 바닥에 쭈그리고 잤다고 한다. 수감 중 모범수로 선정됐지만 가석방은 되지 못하고 ‘정치인 최초’로 만기출소했다. 그는 출소하자마자 대한문 쌍용차 농성천막과 한진중공업 고 최강서 노동자의 장례식장, 한상균 당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올라가 있던 평택 송전탑 등을 찾았다. 이후 오프라인 정치강좌를 이어가기도 했고, 경북 봉화로 내려가 살면서 봉봉협동조합을 창립하기도 했다. 진보 진영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인식을 부수고 싶었다고 했다. ‘미권스’ 회원들을 참여시켜 협동조합이든 농촌공동체든, 사업이든 시작해 보겠다고 했다.
‘정치 본능’은 버리지 못했다. 2014년 1월부터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를 시작하면서 사실상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청담동에 오프라인 문화공간 ‘벙커’를 만들기도 했다.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종합편성채널의 방송프로그램에 패널, 진행자로 출연하면서 보폭을 넓혀갔다. 선거법 위반 실형 선고로 2022년까지 피선거권이 박탈된 상태였지만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자기관리를 해 온 셈이다. 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통한 복권은 그에게 있어 ‘화룡점정’이었을 것이다. 선거 출마 기회를 얻은 그는 서울시장 출마선언까지 거침없이 내달렸다.
■ 최고의 순간에 위기를 맞다
정 전 의원은 새벽 4시까지 자료를 읽다가 잠들고, 오전 5시50분에 일어난다고 한다. 체육관에 가서 2시간 동안 운동을 하고 각종 프로그램 녹화를 진행한다. 부족한 잠은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채우는데 하루 3시간 남짓 잔다고 한다. 그의 열정은 놀랍다. 기자회견을 저지하려던 조계사 여신도를 폭행한 사건으로 벌금형을 선고받는 등 ‘다혈질’이고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와 동시에 “단군 이래 최초로 휴대전화 번호를 명함에 찍어서 공개한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화끈하고 소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생전에 문익환 목사는 정말 쉬운 표현을 썼다. 구어체로 글을 썼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었다. 설득력이란 쉬운 데서 나온다.” 정작 정치인으로서 크게 성공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적어도 정치를 일상생활로 불러 내리는 데 그는 큰 역할을 했다. 배운 사람들일수록,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보통 대중들이 어리석어서 일이 안 된다고들 한다. 그것이 진정 대중을 움직이지 못한 아쉬움의 토로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이 만들어낸 틀이나 수사를 정당화시키고 싶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정 전 의원은 그런 불평을 하지 않는다. 2012년 대선 패배에 대해서도 “실패가 아니다. 48%를 우리가 언제 얻은 적 있냐. 그걸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이 수감된 직후 ‘정봉주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그를 옭아맨 허위사실 공표죄가 선거 과정에서 검증과 의혹제기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취지에서 ‘허위임을 알고도 후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 처벌이 가능하도록 했다.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고 공공성에 부합한다면 처벌도 면책되도록 하는 조항도 넣었다. 결국 개정되지는 못했지만 감옥을 가면서까지 그가 걸었던 길이 의미 없지는 않았다는 방증이다.
남들이 말하기 어려운 진실을 폭로했다가 감옥살이까지 한 그처럼, 2018년 오늘에는 많은 이들이 성추행 피해 경험을 어렵게 털어놨다가 신상털이와 인신공격, 심지어 무고죄까지 뒤집어쓴다. ‘가카의 비행’을 폭로하는 일과 ‘미투 운동’은 서로 경중을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두 중요한 일이다. 어쩌면 후자가 더 광범위한 사회 변혁을 이끌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그가 받고 있는 성추행 의혹은 뼈아프다.
정 전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수감 중 생활을 이렇게 말했다. “150일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밤마다 울었어요. 가족이 보고 싶어서 우는 게 아니라 살아오면서 법적으로 하자가 없어도 제 양심에 비춰 잘못한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 때문에요. 어저께 잘못한 거, 그저께 잘못한 거, 한 달 전에 잘못한 거, 1년 전에 잘못한 거. 이게 어디까지 올라가냐 하면 5살 때 잘못한 것까지 기억이 나면서 멈춰요. 그게 150일 걸린 거죠.”
정 전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본인의 가장 큰 장점을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라고 밝혔다.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투견 ‘핏불테리어’가 가장 좋아하는 상징물이라고 한다. 그가 끝까지 물고 늘어졌던 ‘가카’는 검찰청으로 소환됐고, 구속에 사법처리까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것만 같았던 그의 외침이 이제 서서히 거대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려 할 무렵, 역설적으로 그는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16일 정봉주 전 의원은 성추행이 있었다고 지목된 당일 하루 종일 1~5분 단위로 자신의 행적을 찍은 사진 780장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또 <프레시안>을 제외하고 고소를 모두 취하하겠다고도 밝혔다. 이에 <프레시안>은 정 전 의원을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하겠다고 대응했다. 양쪽 모두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모양새다. 진실이 어떻게 밝혀질지 주목된다.
■ 참고자료
[경향신문 2018-01-19] 정봉주 인터뷰 “MB, 법의 심판대에 서면 더 끔찍한 비리들 드러날 것”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하리라 생각하는 시민이 많았다. 하지만 민주당 내 경선이 여러 문제를 드러내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혹자는 후보와 캠프, 그리고 지지자들 사이에서 증폭되고 있는 감정 다툼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표면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일지 모르나, 그것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선거란 원래 그런 것이라며 끝나면 다 해소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도 틀린 이야기다. 모든 선거가 그런 것은 아니다.
정당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선거는 공동체를 통합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때 선거는 서로 다른 정당 또는 이들을 각각 지지하는 시민 집단 사이에 애초부터 있던 갈등을 공적으로 마무리 짓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반면 공통의 정견을 가진 같은 당 내부에서의 경선은 있던 갈등을 키우고 없던 갈등도 만들 때가 많다. 정당 간 경쟁의 결과는 승복하지 않을 수 없는 강력한 정당성의 효과를 갖는다. 당내 경선은 다르다. 민주화 이후 지난 30년 동안 정당 간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고 정부를 교체해 왔지만 이 때문에 사회가 분열되거나 내전 상태에 이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당내 경선은 달랐다. 그간 정당들이 끊임없이 분열한 것은 대부분 당내 경선이 남긴 후유증 때문이었다.
당내 경선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격렬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배타적이고 더 적대적이 된다. 과거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는 일에 미온적인 당내 경쟁 세력을 배반자로 몰아붙이는 ‘박근혜식 정치관’이 지금 민주당 안에서 재생되는 비극은 그 때문이다. 당내 경선은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긴다. 후보나 캠프 사이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더 큰 상처는 지지자들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후보나 캠프는 신념보다 이해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측면이 크기에 경선 후에는 어느 정도 갈등이 완화될 수 있지만, 지지자들은 이해관계보다 후보에 대한 신뢰와 믿음으로 움직이기에 그 상처는 깊고 오래간다. 과거 ‘친문’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정치 엘리트 사이에서보다 일반 지지자들 사이에서 더 강렬하게 나타났던 것도 이 때문이었는데, 이번 민주당 경선은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 내고 있다.
민주적 정당 정치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본 원리가 있다.
첫째, 민주주의는 정당 내부가 아니라 정당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민 집단의 의사를 나눠서 대표하는 정당들 사이의 선거 경쟁이 없다면 주권의 정당한 위임은 이루어질 수 없다. 둘째, 정당 간 이념적·계층적 차이가 클수록 혹은 이런 차이를 만드는 사회경제적 의제들이 중시될수록, ‘경쟁의 범위’는 넓어지는 반면 ‘경쟁의 강도’는 줄어든다는 것이다. 경쟁의 이념적·계층적 범위가 넓어야 사회의 다양한 집단 이익과 열정이 폭넓게 대표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타협과 합의의 유인이 커져 사회 통합을 진작한다. 정당 간 차이가 줄면 그 반대가 된다. 조정될 수 있는 의제는 억압되고, 개혁 대 반개혁, 민주 대 반민주, 반공 대 친북 같은 적대적 갈등이 동원되기 쉽다. 인종이나 종교, 지역 같은 일차적 정체성을 둘러싼 배타적 갈등도 커진다.
그런데 이 두 원리보다 ‘당내 민주주의’가 더 중요하며, 그래서 정당 공천 역시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국민경선을 통해 이루어져야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는 민주주의를 오해한 것이다. 정당은 자율적 결사체이다. 특정한 정견과 이념, 가치, 문화, 정체성을 공유하는 유기체적 조직이다. 정당들 사이에는 반드시 경쟁이 있어야 하고 선거를 통해 시민 주권의 향배가 결정돼야 하지만, 정당 내부는 다르다. 공천을 포함해 당의 운영은 정당 스스로 혹은 당의 주권자로서 당원들이 결정할 일인 데다 정당의 조직력이나 통합적 기반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당내 경선은 정당을 해체의 위기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의 존재 이유는 공직 후보를 공천해 다른 정당과의 경쟁에 내보내는 데 있다. 공천은 정당의 역할이고, 그 뒤 공직을 둘러싼 정당 간 경쟁에서 승자를 결정하는 일은 시민의 역할이다. 이 기초적인 역할과 책임이 구분되지 않아서 정당이 분열하고 지지자가 상처받고 시민 주권이 허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지난 대선에 참여했던 정당들은 공천 갈등의 후유증으로 모두 분열했다. 이번 대선에 나선 다섯 개의 정당 가운데 4년 전의 당명을 유지하고 있는 정당은 하나도 없다. 이 불합리한 일을 반복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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