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발전소 뉴스레터 Vol.4가 발행되었습니다




새 정부가 ‘정당 정부에 기초를 둔 책임정치 실현’을 약속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아닌 민주당 정부라 부르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아울러 국가와 정부라는 용어 사용도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민주국가’보다는 ‘민주정부’가 잘 어울리듯, 민주주의는 정부라는 개념에 상응하는 정치체제다. 자주국가, 독립국가, 주권국가라 쓰듯 국가 역시 꼭 있어야 할 정치 용어지만 민주주의와 관련된 진술에서는 절제하는 게 옳다.
정부를 뜻하는 ‘government’는 ‘키를 잡고 배를 조종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쿠베르나오(kuberna´o)’의 라틴어 옮김 말인 구베르노(guberno)에서 유래했다. 공동체를 이끄는 정치 리더십 혹은 그런 리더십의 조직체라는 의미를 갖는다. 반면 국가를 뜻하는 ‘state’는 라틴어 ‘status’에서 유래한 말로 애초에는 ‘지위’나 ‘상태’를 뜻했으나 16세기로 들어서면서 ‘배타적인 영향력의 범위를 가리키는 통치의 단위’라는 의미가 덧붙여졌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에는 ‘영토, 국민, 주권’의 세 요소를 가진 국제법적 주체로 발전했고, 그에 따라 통치자도 애국과 충성의 맹세를 해야 하는 윤리적 실체로 격상되었다.
주권(sovereignty) 개념을 기준으로 봐도 다르다. 국가는 주권의 대외적 측면을, 정부는 주권의 대내적 측면에 가리킨다. 대외적으로 주권의 부재가 ‘무국가 상태’ 혹은 ‘식민지 종속국’을 뜻한다면, 대내적으로 주권의 부재는 ‘무정부 상태’를 의미한다. 국가와 짝을 이루는 주권자는 국민(nation)이라 하고 그들의 정체성은 법률적 근거를 가진 국적(nationality)이 기준이 된다. 국가는 국민에게 충성을 요구할 수 있고 간첩죄나 내란죄를 적용할 수 있다. 반면 정부와 짝을 이루는 주권자는 시민(citizen)이라고 부르고, 그들이 가진 권리는 시민권(civil rights)이라 한다. 정부에 대해 시민은 자발적으로 지지할 수도 있고 자유로이 비판하고 반대할 수도 있다. 정부가 자신에게 충성하는 시민에게만 자유와 권리를 허용한다면, 이를 반대하는 시민과의 내전(civil war)은 피할 수 없다. 시민권에는 (정부조차 침해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유를 가리키는) ‘자유권’도 있고, (정부 선출에의 평등한 참정권을 가리키는) 정치권, 나아가 (정부에 사회경제적 분배 책임을 요구할 권리를 가리키는) 사회권 등이 있다.
비민주주주의 체제에서는 국가를 신성화하고 국가안보와 국가이익, 국민의 의무, 국민교육 등을 강조한다. 시민 주권을 부정하면서 그로 인한 정당성의 결핍을 늘 외부로부터의 안보 위협으로 채우려는 권위주의 체제일수록 더 그렇다. 국가보안법을 앞세워 민주화의 요구를 억압하려 한 것도 같은 이유로 이해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에도 반공을 국시(國是)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 정부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반공국가라는 의미를 담아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쓴다. 정부 행사라는 표현 대신 국가의 공식 행사라고 규정하길 좋아하거나,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조차 ‘임을 위한 행진곡’은 안 되고 꼭 애국가를 불러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도 국가에 대한 맹목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일 때가 많다.
국가가 아닌 정부라는 말에 친화적인 사회가 되어야, 시민은 그야말로 ‘갑’이 되고 주권자가 될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라면 정부는 ‘시민에 의해’ 선출되고, ‘시민을 위해’ 일해야 할 의무를 안게 된, ‘시민의’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의해 우리가 국민이 아닌, ‘동료 시민 여러분(My fellow citizen)’으로 호명되는 일이 많아야 민주주의일 것이다.
대통령이란 명칭도 냉정하게 말하면 문제가 있다. 통령(統領)이란 의미도 대단한데, 이를 더 크고 위대하게 높여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을 담는 듯하다. 시민의 공동체를 주관하는 의장 내지 시민 가운데 으뜸 자리임을 뜻하는 좀 더 자연스러운 용어가 있었으면 한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0523/84510160/1#csidx0a4c1c974309cf78c258b9435a72460 
[사회정책연구센터 _ 르포 읽고 쓰기 모임]
현실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사실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르포.
삶의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기록문학의 매력이죠.
…
좋은 르포를 함께 읽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생각의 폭을 넓히고자 합니다.
이번 모임은 ‘읽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읽고 쓰기’입니다.
주제도 있습니다. 바로, ‘노동’입니다.
노동을 주제로 한 달에 한 편, 총 네 편의 르포를 써야 합니다.
각자 써온 르포를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고, 다시 고쳐 쓰면서 집단적 성장의 즐거움을 맛보았으면 합니다.
연말이 되면 네 권의 책, 네 편의 르포, 측정할 수 없는 보람이 남을 것입니다.
기간 : 8월~12월 격주 월요일 오후 7시30분~9시30분 (총 8회)
장소 : 서울혁신파크 내 정치발전소 (불광역 2번 출구)
방식 : 1회 책 읽고 토론하기/ 2회 각자 써온 르포 읽고 평해주기 (수정본 공유)
참가비 : 5만원 (입금 계좌 : 농협 036-12-101163 박선민)
참가신청 : http://goo.gl/forms/q0FWBJdx8J
진행 : 박선민 사회정책연구센터장
문의 : [email protected]
커리큘럼
1차(8월31일) 노동여지도 (박점규, 알마)
2차(9월14일) ‘나의 노동’ 르포 써오기
3차(10월12일) 노동자, 쓰러지다 (희정, 오월의봄)
4차(10월26일) ‘일하다, 아프다’ 르포 써오기
5차(11월9일) 그의 슬픔과 기쁨 (정혜윤, 후마니타스)
6차(11월23일) ‘다른 이의 노동’ 르포 써오기
7차(12월7일) 노동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부키)
8차(12월21일) ‘자유 주제’ 르포 써오기
* 신청 전 한 번 더 생각하세요!
글쓰기 기법 등 이론 수업이 없습니다. 르포 전문가의 가르침도 없습니다.
<르포 읽고, 쓰기 모임>은 비전문가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집니다.
[철학] 앙리 르페브르의 비판적 독해
강사 조명래
개강 2017년 10월 11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7:30 (10강, 175,000원)
강좌취지
앙리 르페브르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맑스주의 도시철학자라 할 수 있다. 1901년 태어나 199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세기 자본주의하에서 규정되는 삶의 존재론적 문제를 고민하면서 60여 권의 책과 수많은 글을 썼다. 그가 평생 다룬 테마는 소외, 변증법, 일상, 도시, 재현, 기호, 공간, 리듬, 국가 등 그 스펙트럼이 엄청 넓고 다양하다. 이 모두를 그는 헤겔, 니체, 맑스의 이론을 절합, 구성한 메타필로소피란 사유 틀에 담아 풀어내어 읽어내고자 했다. 그는 프랑스 공산당의 주요한 이론가이기도 하지만 프랑스 68혁명을 일으킨 소르본 대학생들의 멘토이기도 했다. 그의 이론에는 포스트맑시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여는 요소까지 함축되어 있다. 그만큼 르페브르는 읽을 거리가 풍부한 이론의 저장고다. 본 강좌는 르페브르에 관한 두 권의 책으로 르페브르를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방식으로 10주간 진행된다. 영국의 비판적 공간이론가인 엔디 메리필드(Andy Merrifield)가 2006년에 펴낸 『앙리 르페브르: 비판적 입문』(Henri Lefebvre: A Critical Introduction)과 호주의 비판 법학자인 크리스 버틀러(Chris Butler)가 2012년에 출간한 『앙리 르페브르: 공간정치, 일상생활, 그리고 도시에 대한 권리』(Henri Lefebvre: Spatial Politics, Everyday Life and the Right to the City)이다.
1강 르페브르의 생애, 이론세계, 연구테제
2강 테제 1: 일상생활, 테제 2: 모멘트(moments)
3강 테제 3: 자발성, 테제 4: 도시성
4강 테제 5: 공간성, 테제 6: 글로벌라이제이션과 국가
5강 테제 7: 신비화된 의식과 중간정리
6강 르페브르의 ‘사회이론’에 대한 해석
7강 르페브르의 ‘공간의 생산’에 대한 해석
8강 르페브르 이론에서 ‘공간, 추상화, 법칙’의 문제
9강 르페브르 이론에서 ‘국가권력과 공간권력’의 문제
10강 르페브르 이론에서 ‘근대성, 일상리듬, 도시권리’의 문제
참고문헌
Andy Merrifield, 2006, Henri Lefebvre: A Critical Introduction, Routledge: New York.
Chris Buttler, 2012, Henri Lefebvre: Spatial Politics, Everyday Life and the Right to the City, Routledge: New York.
강사소개
단국대학교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 한국공간환경학회장(역임), 한국엔지오학회장(역임), 인간도시컨센서스 공동대표, 환경'정의 공동대표, 내셔널트러스트 공동대표, 한국도시연구소장(역임), 국제저널 Space and Culture 편집자문위원.
[철학] 시몽동, 개체화 이론의 이해
강사 황수영
개강 2017년 10월 13일부터 매주 금요일 저녁 7:30 (7강, 122,500원)
강좌취지
시몽동의 주저 『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 본 개체화』의 번역 출간을 기념으로 저자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해설서인 『시몽동, 개체화 이론의 이해』를 기반으로 주요 개념들과 사상을 이해하고 자연과 인간, 기술과 정치 등 여러 측면에서 그의 철학이 가지는 현대적 의미를 살펴봅니다.
1강 시몽동 사상의 배경(철학과 과학)
2강 기본 개념들(개체화, 전개체적인 것, 형태와 정보)
3강 물리적 개체화
4강 생명적 개체화
5강 정신적 개체화
6강 개체초월성과 집단적 개체화
7강 사이버네틱스와 기술철학
참고문헌
시몽동, 『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 본 개체화』, 그린비, 2017
황수영, 『시몽동, 개체화 이론의 이해』, 그린비, 2017
황수영, 『시몽동』, 컴북스, 근간
강사소개
베르그손의 『창조적 진화』를 번역하고 『베르그손, 생성으로 생명을 사유하기』를 썼다. 8월 말에 시몽동의 주저 번역서와 해설서를 출간했다. 생성을 사유하는 모든 철학자들에 관심이 있다.
[미술] 오르세 미술관 : 19세기 예술의 정신병리학
강사 백상현
개강 2017년 10월 11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7:30 (8강, 140,000원)
강좌취지
19세기 미술에 대한 집중적 탐사를 시도하는 강의다. 프로이트-라깡학파의 정신병리학과 응시 이론을 토대로 근대미술의 구조를 밝힌다. 특히 『라깡 세미나 11』에 나타난 미학이론의 관점에서 19세기 미술의 전환기를 탐사한다.
이를 위해 강의자는 오르세 미술관으로 청자들을 초대한다. 오르세 미술관이 가진 역사적 의미와 구성, 정신병리적 증상들을 제시한다. 특히, 오르세의 작품들을 중세의 회귀라는 관점에서 논증하는 강의가 될 것. 퓌비 드 샤반느, 아르누보, 고흐, 고갱, 등등의 작가들은 어째서 중세적 신비주의를 추구했을까? 마네와 모네, 드가와 피사로 그리고 르느와르는 과연 현대미술의 기원이 되었던 것일까? 정신분석의 이론으로 해부되는 오르세의 작품들은 이제까지의 서양미술사가들이 보여주었던 면모와는 전혀 다른 정체를 드러내게 된다.
1강 오르세 미술관의 존재론 : 미술관의 장소, 토포스는 욕망을 가두는 미로인가?
2강 낭만주의 회화의 본질, 중세적 윤리관.
3강 쿠르베의 사실주의 회화와 프랑스 사회당의 연대 : "안녕하세요 미테랑 씨!".
4강 고갱의 오리엔탈리즘 : 사기꾼과 예술가 사이. 편력의 의미.
5강 반 고흐의 정신병리학 : 아를르의 유령과 미친 영웅.
6강 퓌비 드 샤반느와 중세의 회귀 : 신 없는 중세의 도래와 현대의 시작.
7강 프라 안젤리코의 후예로서의 마네 : 마네의 모던 신비주의.
8강 모네, 드가, 쇠라 : 광학과 신학.
참고문헌
「라깡의 인간학 : 세미나 7의 강해」(백상현, 2017, 위고).
「라깡의 루브르」(백상현, 2016, 위고).
「라깡 세미나 11」(새물결).
강사소개
정신분석학자. 프랑스 발랑스의 '에꼴데보자르' 졸업 후 파리8대학에서 예술학을 전공했다. 파리8대학 철학과에서 라깡의 정신분석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학위논문 : 「증상적 문장, 리요타르와 라깡」). 고려대, 이화여대, 숭실대 등에서 정신분석과 미학을 강의했으며 한국프로이트라깡칼리지FLC 상임교수로 활동했다. 현재 임상분석가를 대상으로 여러 형식의 강의를 시도하고 있다. 저서로는 『라깡의 인간학: 세미나 7의 강해』(위고, 2017), 『라깡의 루브르』(위고, 2016), 『고독의 매뉴얼』(위고, 2015), 『라캉 미술관의 유령들』(책세상, 2014), 『헬조선에는 정신분석』(공저, 현실문화, 2016), 『발튀스, 병적인 것의 계보학』(현실문화, 근간)이 있다.
다중지성의 정원 http://daziw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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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 개혁공약들 중요하나
국가와 대통령에 권력집중을
중심적인 문제로 보지 않는다
관료행정체제 근본적 문제들의
책임을 묻고 개혁하지 않는다면
대선 과정에서 큰 공백이 될 것

최장집
고려대 정외과 명예교수
해방 후 미군정 관리로 근무하기도 했던 그레고리 헨더슨이 1960년대 말 출간한 『소용돌이의 정치』는 권력이 국가권력의 중앙으로, 공간적으로는 서울로 집중하면서 중심을 향해 치닫는 권력경쟁의 소용돌이가 한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필자는 그의 주장이 여전히 유효할 뿐만 아니라, 지금은 더 강한 설명력을 갖는다고 믿는다. 정치체제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기구 내에서 권력이 사회로 분산되고 다원화되기보다 국가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으로 더 집중화되고 있는 현상이야말로 그의 이론을 뒷받침한다. 헨더슨 이론의 모델이 되는 프랑스 정치이론가 토크빌은 구체제로부터 시작되는 중앙으로의 권력집중이 프랑스대혁명의 원인이었지만 혁명 이후 공화정하에서 그 권력집중을 구현하는 행정관료체제는 더 강화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분석은 시대와 문화를 뛰어넘어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설명력을 갖는다.
60~70년대 권위주의적 산업화는 국가가 위로부터 경제발전을 주도했던 모델 사례의 하나로 알려져 발전국가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흥미 있게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세계경제 환경의 혁명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운영하는 방식에 관한 한 국가가 주도하는 관치경제는 그래도 유지돼 왔다. 이 특징을 “신자유주의적 발전국가”라는 형용모순적 말로 표현할 수는 없을까. 원래 사적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을 줄이고, 자유시장경제를 강조했던 신자유주의 이론이 경제 운영에서의 작은 국가를 지향하는 것이었다고 할 때 한국에서의 관치경제를 통한 신자유주의는 최소한 그 원리와는 모순된다. 그 핵심원리로서 민영화는 관료기구의 역할, 기능뿐 아니라 관료행정체제의 목표와 운영의 규칙, 그리고 관료공직자들의 행위규범과 가치 자체를 외주화했다. 그리고 또한 공직윤리와 공익정신을 뚜렷하게 약화시켰다. 그러는 동안 중앙부서 산하의 300여 개에 달하는 공기업, 공사, 청 단위 여러 형태의 공공기구들의 재정 규모는 천문학적으로 팽창했다. 또한 민영화는 공적 영역과 사적 민간 영역 간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사이에 공적인 것도, 사적인 것도 아닌 애매한 기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 넓은 영역이야말로 부패와 비리, 편법과 탈법, 무능과 무책임의 온상이 되기에 적합하다.

민주주의에서는 제도를 벗어나 정치와 사회에서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의 공간은 단지 좁게 열려 있을 뿐이다. 모든 사회세력이 크든 작든 각기의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상호 간 억제와 균형의 힘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에서, 큰 개혁은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순실 사태가 불러온 정치적 격변은 일정 기간 그동안 현상을 유지했던 힘들이 작용하지 못하는 상황을 불러왔다. 평상시에는 어려운 구조개혁도 가능한 공간을 열어놓았다. 대선에 나설 주요 정당 후보들은 청와대 개혁, 검찰 개혁, 재벌 개혁 등을 포함하는 여러 주요 개혁안들을 경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개혁 사안들이 무척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과 병행하면서 그것을 떠받쳐온 중심적인 문제로 보이지는 않는다. 개별적인 개혁안들은 대통령과 국가권력의 팽창이라는 현상의 여러 측면 가운데 어떤 것들을 드러내는 문제들이다. 관료행정체제의 비대화와 무능력, 무책임과 비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은 아직 제대로 제시되지 못했다. 국가관료체제에 대해 책임을 묻고 또 그것을 개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선 경쟁 과정에서 드러나는 큰 공백이라고 생각한다.
최장집 고려대 정외과 명예교수
[출처: 중앙일보] [최장집 칼럼] 관료 행정개혁과 책임의 문제
정치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선거 시기가 되면 연락이 뜸하던 친구들로부터 종종 안부 확인을 겸한 선거의 전망을 묻는 전화를 받곤 한다. 며칠 전에도 친구로부터 ‘선거가 어떻게 될 것 같냐’는 전화를 받았다. 긴 수다 끝에 친구가 물었다. “근데 왜 이번 대선은 12월이 아니라 5월에 하지?”, 농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뜬금없는 질문을 받고 순간 당황했다. 중년의 건망증이라고 서로 웃어넘기긴 했지만, 통화가 끝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친구의 질문이 영 생뚱맞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우리가 왜 여기에 있고,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잊은 채, 선거판의 정글에 빠져들어 길을 잃고 있는 것이 단순한 건망증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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