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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발전소 뉴스레터 Vol.4가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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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발전소 뉴스레터 Vol.4가 발행되었습니다

익명 (미확인) | 토, 2015/05/3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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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치발전소 [청사과 : 청소년 정치책읽기모임]팀 입니다.

청사과 1기에 「군주론」을 함께 읽었던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소감문을 작성해주었습니다. 조금 서툴지만 본인의 생각을 담아낸 글, 공유합니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 후마니타스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후마니타스 

 

마키아벨리- 군주론

 

과거 이탈리아의 대 혼란기에 쓰여진 책으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어떤 성향을 가져야하고 행동해야하는지 말하고 있다. 정치적 현실주의를 바탕으로 내용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현대 정치학의 시조라고도 한다. 이 책에는 추가로 최장집 작가의 분석도 있어,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다.

 

‘군주론’은 5막 26장으로 이루어져있고 군주에 대해서와, 이탈리아의 방향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다. 5막으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4막, 5막 이외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1막 헌정의 편지’는 마키아벨리가 이탈리아 통일을 목적으로 쓴 이 책을 메디치 가문의 왕에게 바치면서 쓴 편지글이다. 군주론은 이탈리아가 통일되기를 바라면서 썼지만, 당시 정권을 잡았던 메디치 가문에 글을 바쳐 공직으로 복귀하려고 했다는 분석도 있다고 한다.

‘제 2막 국가를 장악하고 통치하는 문제에 관하여’부터 군주 얘기가 나오지만 2막은 예시로 등장하는 인물 외에 크게 이야기 거리가 되지 않는 것 같다. 군주국의 종류와 통치방법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2막이다.

군주론에서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중에 마키아벨리가 가장 중요시하는 인물은 ‘체사레 보르자’이다. 잔인한 사람이었지만 현명했던 그는 실수하나로 파멸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위대한 군주라 극찬하며 그의 논리를 받치고 있다.

‘3막 민중을 조직하는 것의 중요성에 관하여’에는 군사관련 내용이 나온다. 불안정한 시대에는 당연히 전쟁이 많았을 것이고, 그때 군주들은 원군, 용병을 많이 이용했는데, 그것은 위험한 행위라 비판하며 민중을 조직해서 싸워야한다고 말한다.

‘4막 인간의 정치가 갖는 윤리성의 특별함에 관하여’는 군주론에서 가장 이야기거리 인 내용이다. 군주의 사랑과 자비로움 또는 잔인함과 두려움 등을 비교하는데, 사랑을 받기위해 노력하는 플라톤적 이상주의에 반대해 그는 때로는 군주는 잔인함과 두려움의 존재가 될 수 있어야한다고 ‘정치 현실주의’를 주장한다. 그리고 또한 이 부분(4막)에서 민중의 감정과 시각을 중요시한다고 하여, 일부 정치학자들은 그를 민주주의자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한다.

‘5막 오늘날 이탈리아에는 어떤 군주가 필요한가’, 이탈리아는 대혼란의 상태였다.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강대국의 싸움터가 된 이탈리아가 단합되고 통일된 국가로 되었으면 하는 그의 바람이 있다.

 

마키아벨리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악을 써서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이에 대해 상당부분 동의한다. 민주사회서 잔인하게 시민을 관리하는 것 외에는 우리가 정치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을 경계하는 그의 시각과 그리고 악할지도 모르는 사회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 할 태도는 본받기 마땅하다.

군주론의 가장 논란거리 인 것은 ‘군주는 사랑을 받아야하나, 두려움을 받아야 하나’이다. 나는 ‘사랑의 존재보다 엄격함과 권위적인 존재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베풀어주면 줄수록 더 큰 것을 원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사랑은 관리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에 반해 두려움은 과도하게 하여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고, 국가와 대중을 관리하기 쉬울 것이다. 청사과(정치 책읽기 모임)에서도 이에 대해 이야기 해보았는데 어느 친구는 공자.맹자님의 왕도정치를 본받아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내 친구도 진나라가 법가의 사상을 적용해서 망했다고 하는데, 그 논리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때 유가 사상이 유행했던 시대는 왕이 다스리는 정치로 왕의 권위가 보장되어 있었다. 그러니 왕도정치라는 것도 나왔지 권위나 지위가 보장되어있지 않는 자연상태나, 혼란기에도 사랑과 도덕을 강조한다면 망하기 십상이다. 왕은 두려움과 권위의 존재가 우선되어야하고, 그래야 악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인간을 불신해서 그럴까, 내 생각은 마키아벨리와 비슷한 것 같다.

이 책에서 이탈리아의 혼란기에 대한 내용을 읽을 때 나는 ‘한반도 상황’을 생각해보았다. 북한과 남한의 대치에 강대국들이 개입한 상황이 과거 이탈리아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탈리아는 외세를 몰아내고 그들 내부의 자주적인 합의 통일을 이루어 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우리도 자주국방의 힘을 키우고 미군의 간섭을 최소화 하여 ‘북 대 미’가 아닌 ‘북 대 남’의 관계로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 2015/10/2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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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6/04/15-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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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책읽기_불평등편>

다시 시작되는 책읽기 모임. 이번에는 ‘불평등’입니다. 부담은 덜고, 책은 좀더 알차게 읽기 위하여 월1회, 5회씩 상하반기로 나누어 진행합니다. 일년이면 총 10권의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정치적 책읽기 모임은 분야를 정해 함께 책을 읽는 모임입니다. 책을 읽고 오시면 좋지만, 다 읽지 못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반드시 출석하겠다는 의지만 있으시면 됩니다.

다만, 이 모임은 세미나가 아니라 강독 모임입니다. 해설 없이 책의 주요 부분을 함께 읽는 방식으로 진행되니 착오없으시기 바랍니다. 집단적 책읽기의 묵직한 즐거움을 느껴보
세요.

진행 : 박선민 사회정책연구센터장
기간 : 2016년 2월~6월 매달 셋째주 토요일 오전 10시~ 12시 (월 1회/총5회)
장소 : 미디어까페 후(홍대입구역 2번출구)
참가비 : 5만 원(책은 개별 구매)
참가신청 : http://goo.gl/forms/lR0tJGvvKz
회비납부 : 농협 036-12-101163 박선민/ (입금순 마감)
*장소 관계 상 인원 제한이 있습니다.
문의 : [email protected]

1차(2월20일) 불평등한국, 복지국가를 꿈꾸다 (이정우,이창곤/후마니타스)
2차(3월19일) 불평등의 대가 (조지프 스티글리츠/열린책들)
3차(4월16일)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지그문트 바우만/동녘)
4차(5월21일) 거대한 역설-왜 개발할수록 불평등해지는가 (필립 맥마이클/교양인)
5차(6월18일) 불평등의 킬링필드 (예란 테르보른/문예춘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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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6/02/09-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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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아닌 나라를 복수정당제의 허용 여부로 구분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이해 당사자들에게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문제 역시 민주주의의 기초 요건이다. 입법부가 아닌 대통령의 포고령이나 행정명령으로 법이 만들어지고 집행된다면 그 체제를 권위주의라고 하지 민주주의라고 하지 않는다. 경쟁하는 정당과 자율적 결사체, 의회야말로 현대 민주주의의 제도적 요체라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의 기능을 최소화하는 대신 민간 자율에 맡기라는 신자유주의의 반정치 담론만큼이나, 정당과 의회 및 이해당사자들의 역할을 냉소하면서 일반 시민이 직접 개헌하고 입법하고 정책을 만들고 부적격 공직자도 쫓아내도록 하자는 직접민주주의론 역시 생각해 볼 점이 많다. 촛불 집회를 직접민주주의로 이해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직접민주주의 체제라면 촛불 집회는 허용되지 않는다. 자유로운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물론 합법적으로 뽑힌 정부에 대해 비판과 반대를 조직할 자유는 현대 대의민주주의에서 비로소 가능하게 된 기본권이다. 공론 조사로 대표되는 숙의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참여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고안되고 발전된 대의민주주의 프로젝트의 하나다.

숙의민주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직접민주주의로 보는 것을 “난센스”라고 일축한다. 참여자들의 숙의 능력이 그 결과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다소 엘리트 편향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 숙의민주주의의 한계이기도 하다. 국민투표, 국민소환, 국민발안 등을 직접민주주의로 보는 것도 잘못이다. 정치학에서는 이를 국민투표식 민주주의(plebiscitary democracy) 혹은 우파 포퓰리즘(right-wing populism)으로 부른다.

최근의 사례는 유럽의 극우 정당들인데, 이번 독일 총선에서 제3당으로 올라선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내건 슬로건, ‘스위스처럼 직접민주주의를!’이 대표적이다. 대의민주주의를 간접민주주의라 말하는 것도 옳지 않다. 간접민주주의는 정치 이론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일종의 통속어다. 이 말이 대대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75년 2월 15일에 실시된 유신헌법 국민투표 때였다. 당시 야당과 재야 세력 중심으로 반대 운동이 확대되자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 찬반을 국민투표에 부치면서 헌법학자들을 동원해 ‘간접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라는 이상한 유형론을 펼치게 했다.

과거든 현재든 직접민주주의론자들이 확고하게 추구했던 이상은 공적 사안을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총회에서 결정하는 것이었다. 9일에 한 번씩 민회를 개최했던 고대 아테네가 대표적이다. 시민 총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집단과 조직, 결사는 인정되지 않았다. 고대 아테네의 경우 민회 밖에서의 그 어떤 집단 행위도 허용되지 않았다. 장자크 루소를 추종했던 프랑스혁명의 주도 세력들 역시 시민의 전체 의지를 분열시킨다는 이유로 정당은 물론 이익 단체의 결사를 법으로 막았다.

시민 총회에서 결정된 법을 집행하는 공직자들 역시 독립된 행정 조직을 만들 수 없었다. 관료제는 없었으며 시민이 번갈아 행정관·평의원·배심원 역할을 맡았다. 아테네에서는 추첨으로 그 역할을 수행할 시민을 뽑았다. 선거로 동료 시민의 지지를 동원해 대표가 되는 것 역시 권력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같은 공직을 두 번 할 수 없었고, 임기는 1년 이하로 짧았다. 사회 규모의 확대는 최대한 억제되었다. 규모의 증가는 기능 분화와 전문화를 낳고, 그것은 곧 소수의 전문가 집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시민의 정치 참여는 의무였다. 아테네의 경우 참여가 법으로 강제된 것은 아니었지만, 참여하지 않는 시민은 비난받았다. ‘바보 멍청이’란 뜻의 영어 ‘idiot’는 고대 그리스어 ‘idi ̄ot ̄es’에서 유래한 말로 당시에는 참여하지 않는 시민을 가리켰다.

오늘날 우리가 이런 제도와 원리를 재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직접민주주의가 해당 시기의 역사적 제약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현실적 최선을 추구한 실험인 것은 맞지만, 그때와는 전혀 다른 조건에서 이를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일 때가 많다. 지금은 지금의 조건에 맞는 민주주의 발전론이 필요하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1024/86916628/1#csidxcfc3fd8be35f8ff9b8c185d8e2eba2a

화, 2017/10/2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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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오히려 상대를 공격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최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 대립한 여야의 모습. 동아일보DB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경험이 반복돼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 있다. 공항에서 출입국 절차를 밟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죽음이라고 하는, 누군가와의 갑작스러운 이별도 그렇다.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사실 하나는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것임에도, 대개의 인간은 천년만년 죽지 않을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다가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비로소 자신의 슬픈 운명을 자각할 때가 많다. 실존에 대한 깊은 인식이 죽음과의 대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얄궂다.

민주주의도 그런 것 같다. 모든 것이 편안하고 익숙한 민주주의 체제란 없다. 민주주의를 최선의 정치체제로 여긴 철학자도 없다. 민주주의는 완전한 체제도, 완전해질 수 있는 체제도 아니다. 민주주의에 관한 명연설이 종종 장례 행사에서 행해진 사실을 의미 깊게 생각해 본다. 2500년 전 아테네 민주주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페리클레스의 장례 연설이 대표적인데, 많은 사람은 민주주의가 군사적으로도 강한 이유를 말하는 앞부분에 주목한다. 하지만 남겨진 가족들을 위로하는 연설 후반 또한 인상적이다. 특히 “슬픔이란 우리가 모르던 것을 탐낼 때가 아니라 익숙했던 것을 잃었을 때 느끼는 것”이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적 비애임을 말하는 부분이 그렇다. 그렇기에 페리클레스는 나이 든 시민(즉, 노인)을 향해 “슬픈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 스스로를 위안”하라고 말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30년째 중단 없이 민주주의를 하고 있고 여야가 10년을 주기로 정부 운영을 번갈아 맡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민주주의이고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앞에서 여전히 혼란스럽다. ‘시민 구성원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한 의견을 갖는 것’이 민주적 권리의 요체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개개인의 자유롭고 평등한 의견을 어떻게 나누고 모아야 전체를 위해 좀 더 합리적이고 유익한 결정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의견의 자유가 뜻하지 않은 갈등과 상처로 이어질 수 있다.

비민주주의 체제와는 달리 민주주의에서는 반대 의견을 갖는다고 처벌하지는 않으니 평화롭고 안전할 거라 생각한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민주주의는 말과 마음이 시끄러운 체제다.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최초의 저자’라 할 수 있는 알렉시 드 토크빌이 강조했듯,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공격하고자 하는 욕구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더 극렬하게 표출된다.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이 정치적 의견이 달라 서로 깊은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경험은 민주주의하에서 더 일상적이다.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대와 증오의 욕구가 민주주의에 내재된 사회적 병리현상임을 보여주는 사례는 끝도 없이 많다.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를 현실화해야 변화도 가능하다. 인사청문회를 두고 지금처럼 여야가 서로에게 완전한 기준을 요구하고 그 기준에서 상대의 불완전함을 공격하는 것으로 자신은 할 일을 다했다는 식이 되면 변화는 없다. 그보다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통치 엘리트의 도덕적 수준을 점차적으로 높일 수 있는 ‘경과 기준’을 두고, 여야가 의미 있는 합의점들을 누적해갔으면 한다.

이런 과정에서 정당 정치가 좋아져야 민주주의도 미래가 있다. 그래야 의견을 달리하는 시민 집단 사이에서 ‘정신적 내전’에 가까운 공격성도 줄일 수 있다. 민주주의란 누구도 무엇이 확고하게 옳은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전제 위에 서 있는 정치체제다. 옳음이 하나일 수 없다는 ‘건강한 회의주의’에 기초를 둔 다원주의 체제라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서로 다른 시민의 의견을 나눠서 조직하는 정당들의 공적 토론이 ‘숙고된 결정’과 ‘합의된 변화’를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여야 모두 서로가 야당이고 여당이었을 때를 돌아보며, 스스로부터 공정해졌으면 한다. 야당은 야당으로서 잘해야 여당이 될 수 있다. 집권 여당은 자율적이고 창조적일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청와대만 바라보며 존재감과 역할을 잃어가는 일을 집권당 스스로 선택하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당정부’ ‘책임정부’를 약속했던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그에 충실하게 정국을 이끄는 일일 것이다. 집권당을 하위 파트너로 만드는 ‘청와대 정부’가 최선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0620/84962902/1#csidx6a76e9e53d38cb1b96e8579fe2e7bad

화, 2017/06/2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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