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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강의 변화의 정치학] 24강.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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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강의 변화의 정치학] 24강. 에필로그

익명 (미확인) | 금, 2015/06/12- 07:30

조성주 프로필 캐리커쳐

[지상강의 변화의 정치학] 24강. 에필로그

알린스키, 변화의 정치학

11. 에필로그

알린스키를 읽고 또 그를 이해하기 위해 다시 다양한 정치학자들의 책을 탐독하며 동료들 그리고 후배들, 무엇보다도 좋은 선배들, 선생님들과 토론했던 시간들은 사실 필자에게 위로의 시간이었다. 필자는 90년대 후반에 학생운동을 시작해서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청년노동운동, 정당, 국회, 지방행정, 시민단체 등을 정신없이 거쳐 왔다. 세상을 조금이나마 나아지도록 만드는 방법을 찾기 위해선 닥치는 대로 경험하고 뛰어들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오래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늘 격정적으로 ‘희망’과 ‘변화의 가능성’을 강변했지만 정작 바꾸고 싶었던 사회의 현실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동료들과 후배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길을 지속하기보다는 현실의 생계와 고민을 택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이전에 ‘신념’과 ‘의지’에 가득차서 강변했던 그 모든 이야기들이 무색하고 창피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가차 없이 다가온다. 괴로운 순간이다. 그리고 거대한 벽과도 같은 현실에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이 모든 몸부림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여전히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고 세상이 나아지는 속도보다 나빠지는 속도가 더 빠른 것처럼 보이는데. 나에게 알린스키를 읽는 시간은 이런 고뇌에 대한 위로이자 한편 깊은 반성의 시간이었다. 알린스키가 날을 세워서 비판하고 질책했던 어리석고 조급한 운동가들의 모습은 바로 필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닌 보고 싶어 하는 환상에 근거해 세상을 해석하고 사람들에게 강변하던 모습, 상대의 경험에 근거한 의사소통 보다 차이를 강조하며 쉽게 편을 가르고 목소리만을 높이며 공격적 언어로 상대를 매도하려 했던 태도, 실제로는 하찮기 그지없는 세상의 비밀을 아는 것처럼 젠체하며 음산한 평론이나 하며 비아냥거리던 습관…세상이 부조리하고 불평등하다고 분노하면 할수록 스스로는 더 편협해지고 강퍅해지기만 했다. 분노는 대상을 찾지 못해 가까운 주변으로 향하고 섣부른 성공에 대한 기대만큼 실망은 크게 마련이어서 내면은 황폐해져만 갔다. 필자가 그 방황의 순간에 알린스키를 만난 것은 작은 ‘구원’과도 같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 문제는 늘 스스로에게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추억의 저편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나의 추억을 아름답게 미화하기 위해 미래의 희망을 거짓으로 색칠할 수는 없다. 이제는 오랫동안 필자를 옭아매던 강박들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확신하지는 못하더라도 조금 여유로워 졌다고는 느껴진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변화할 수 있는 곳이다. 체제 안에서 일해 가는 것은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확실한 변화를 만드는 길이다. 차이를 긍정하는 법을 배웠고 차이에도 불구하고 갈등하고 설득하며 또 과감하게 타협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미래에 대한 무한한 낙관은 필요 없지만 또 크게 절망해야할 이유도 딱히 없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지혜에서 출발해서 딱 그만큼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여전히 많은 것을 다시 사랑할 수 있고 또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 세상의 변화를 위해 일해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 이 글과 강의는 필자의 동년배 세대들에 대한 위로였으면 좋겠고 더 힘든 시기를 거칠지도 모르는 다음세대를 위해선 변화를 위한 작은 참고서 정도였으면 한다. 필자의 세대들 중에서 세상의 변화를 바랬던 많은 사람들은 뜻하지 않게 많은 상처를 받았던 경우가 많다. 선배세대들이 겪었던 믿었던 것들이 무너지는 절망보다 오히려 우리 세대가 믿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와중에 지푸라기처럼 환상을 부여잡고 왔던 것에 대한 후회가 더 클지도 모른다. 그 환상의 안개가 걷히고 나서 현실을 목도했을 때 안타깝게도 많은 동료들이 실제로 마음의 병을 앓아야 했다. 이제 그만 아파했으면 한다. 모든 아픔이 추억으로 풍화되지는 않겠지만 술자리의 가끔 내뱉는 넋두리 정도로 비켜두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후회라는 감정이 새로운 도전의 발목을 잡게 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우리세대가 했어야 하는 일보다 우리가 지금부터 다시 다음세대를 위해 시작해야 하는 일들을 더 많이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다음세대에게는 어차피 필자의 경험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극적인 경험들이 기다리고 있기에 이 강의의 이야기들을 결코 ‘지침’ 따위로 삼을 필요도 없고 그럴리도 없다고 생각한다. 막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책 한권을 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제부터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야할 20대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책 말미에 붙였더랬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20대라고 말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다시 책을 한권 썼을 때 말했다. ‘지금 당신들과 같이 걷고 있다고’. 이제 30대의 중간을 넘어 마무리해가고 있는 지금은 그냥 ‘다음세대를 믿는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다음세대를 믿지 않고서는 필자가 하려고 하는 현재의 어떤 시도도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더 굳건히 다음세대의 가능성에 믿음과 애정을 보내야 할 것이다. 이제 이 글을 마칠 때이다. 조금 감상적인 마무리였지만 그 나름대로 진심이었음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알린스키의 말로 마무리하려 한다.

‘함께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들인 웃음, 아름다움, 사랑 그리고 창조의 기회를 일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딘가에서 생활인이 되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을 옛 동료들에게. 그리고 희망의 다른 이름인 다음 세대에게 존경과 애정을 보내며.

 

[조성주 공동대표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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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발전소에서 <정치적 글쓰기/말하기 반>을 모집합니다. 정치 관련 주제의 논문 및 기사, 에세이, 연설문 작성자를 위한 코스로 박상훈 학교장이 강의와 함께 글쓰기 지도를 하는 3개월 코스입니다.

첫 모임은 2016년 1월 11일(월) 저녁 7시이며, 이후 매주 월요일 저녁 7시-9시 사이에 진행됩니다. 첫 모임에서는 박상훈 학교장의 대표작인 <만들어진 현실 : 한국의 지역주의,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후마니타스 출판사)>를 교재로 “나의 정치적 글쓰기”에 대한 강의를 듣습니다. 수강자 여러분 가운데 “박상훈의 정치적 글쓰기,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에 대한 의견을 갖고 오시는 것을 환영합니다. ()

두 번째 시간부터는 <정치의 기초>를 전체 주제로 총 5주에 거쳐서 1) 인간과 정치, 2) 정치가는 누구인가, 3)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아닌 것, 4) 민주적 정당정치론, 5) 정치적 말의 힘에 대한 강의를 진행합니다. 6주째부터는 수강자 여러분이 작성한 글에 대한 발표 및 논평이 이어집니다.

참여하실 분은 각자 자신이 쓰고자 하는 정치적 글쓰기 주제에 대한 아주 짧은 소개문을 제출해야 합니다. 1월 11일 첫 모임 때까지 이메일로나 출력된 용지로 제출하면 됩니다. 분량은 짧을수록 좋고 최대 A4 1매를 넘지 않았으면 합니다. 왜 그 주제에 대해 글을 써보고자 하는지에 대해서만 간략히 이야기하면 되겠습니다.

참가를 희망하히는 분은 박상훈 학교장에게 이메일로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참가 의사를 말해주세요. 박 교장의 이메일 주소는 [email protected] 입니다. 참가비는 월 5만원(비회원 10만원)이며, 납부 방법은 신청자에 한해 별도로 연락을 하겠습니다. 혹 참가비 부담 때문에 주저하시는 분은 조교 신청을 박상훈 학교장에게 해주세요. 조교는 참가비를 면제받는 대신 이번 코스의 진행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강의 장소는 2호선 홍대입구역 2번 출구에 있는 ‘미디어카페후’입니다. 카운터에서 정치발전소 모임 공간이 어딘지를 문의하시면 됩니다. 기타 문의 역시 박상훈 학교장의 이메일로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화, 2015/12/2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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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잡이 민주주의> 출판기념토론회

많은 분들이 오셔서 성황리에 진행되었습니다.
사전 신청해주신 분들을 보고 20여분 정도가 오실 것 같다고 예상했는데, 그 수를 훌쩍 넘은 30여분 정도가 다녀가셨습니다. 정치발전소에 있던 책도 모두 다 팔렸습니다.
인문사회학 도서가 잘 팔리지 않는 시대라고들 하는데 많은 관심에 큰 감사드립니다.

오늘 토론회는 조성주 정치발전소 기획위원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첫 순서로 최장집, 서복경, 박찬표, 박상훈 네 분 저자들이 책을 쓰면서 가졌던 주요한 고민들에 대해 짧은 발제(?)를 해주셨습니다.
이후 사회자가 준비한 짧은 질문을 시작으로 참가자 분들의 다양한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이 오갔습니다.
활발하게 질의응답이 오가던 중 어느새 행사 공간을 넘어서까지 의자를 놓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후 자리를 정돈하고 행사를 이어갔습니다. 4시 반 정도에 마무리하려던 행사는 5시가 되어서야 끝났습니다.

참가자들의 질문들은 책에 대한 내용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의 원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부터 현재 시국에 대한 시각,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실천적인 주제까지 매우 다양했습니다.
<양손잡이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주신 참가자 분들과 다양한 질문들에 성실하게 답변하며 민주주의와 한국 사회를 위한 지혜를 나눠주신 저자 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정치발전소의 비정기 무크지 [폴리티쿠스]는 앞으로도 한국 사회의 중요한 정치적 사안들에 대해 정치적 해석을 내어놓으려 합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월, 2017/03/0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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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발전소와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이 공동간담회를 개최합니다.

갈수록 활동이 활발해지는 우파 정치세력의 포퓰리즘에 대해 현황을 공유하고 이에 대한 대응방안 등을 고민하고자 합니다.

이번 간담회에는 에버트재단 베를린본부에서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리히터 담당관과 작센-안할트 주의 에르벤 주의원의 방한 일정에 맞춰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간담회를 통해 한국과 독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생각해보고 그에 따른 민주주의적 관점에서의 포퓰리즘에 대한 대응이라는 주제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참가신청 : http://bit.ly/kor_ger_populism

화, 2017/03/2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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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진행자 서복경 박사와 게스트 박상훈 박사 그리고 정치생태보고서의 수다!

1부에서는 대선 결과에 대한 이야기, 집단(조직)으로서의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월, 2017/05/1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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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는 친밀감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과제를 해결하고 실체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동아일보DB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입헌군주정에서 왕이 지켜야 할 덕목을 가리켜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반면, 민주주의에서 정치가에게 부여된 규범을 지칭할 때는 ‘통치하되 군림하지 않는다’고 한다. 왕은 선출된 시민의 대표가 아니며, 정치가는 세습적 권위의 소유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군림한다(라틴어 Regnat·영어 reign) 함은, 일반 대중의 세계로부터 분리된 왕실이 국가를 통합하는 ‘상징적 역할’을 맡는 걸 뜻한다. 오래전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말했듯, 왕은 ‘멀리서 볼 수는 있으나 가까이에서 만질 수는 없는’ 존재다. 따라서 좋게 보이는 일, 때로는 종교적 존재에 가깝게 보이려 휘광과 이미지를 두르는 일을 게을리할 수 없다. 오늘날에도 많은 나라들이 국왕에게 ‘국민과 국가를 일체화하는 상징적 국민 통합 기능’을 맡기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반면 통치한다(라틴어 Gubernat·영어 govern) 함은, 정부(government)를 이끄는 행위를 뜻한다. 한마디로 말해, 보통 사람들의 실생활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는 ‘실체적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 하겠다.

민주주의에서 정치가는 그저 볼 수만 있는 상징과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만지고 느낄 수 있어야 하는 시민의 대표이자 실체적 존재여야 한다. 일반 대중이 악수하고 껴안고 가까이에서 냄새와 온기를 나누며 상호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정치가이지 왕은 아니다. 그렇기에 그들만이 유일하게 일정 기간 시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아 법을 만들고 정부를 이끌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통치의 권한을 갖는다. 왕이라면 가짜 위엄과 꾸며낸 친밀감을 통해서라도 대중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정치가는 해당 공동체가 당면한 여러 과제와 관련해 실체적 변화와 개선을 도모하는 일에 책임과 소명을 다하는 사람이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정치학을 강의하는 필자에게 “지금의 정치가들 가운데 당신이 신뢰하거나 모델에 가깝게 여기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많다. 아마도 필자가 여러 정치가들을 만나고 교류할 것으로 가정해서 한 질문이겠지만, 실제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기에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누군가를 꼽기보다는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정치가가 어떤 사람인지, 민주주의에서 가장 위험한 정치가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대답을 대신한다.

핵심은 ‘실체적 변화의 조직자’ 역할을 하는 정치가인가 아니면 지지자 내지 잠재적 지지자들에게 잘 보이는 데 능한 ‘아첨하는 정치가’인가에 있다. 정치가라면 실제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씨름하는 것이 중요하지, 마치 연예인들이 대중 앞에 서서 늘 말하는 것처럼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는 식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론에 보여주는 정치’와 ‘실제로 변화를 만드는 정치’는 반딧불과 벼락만큼이나 차이가 크다.

그간 정치가들이 내세웠던 말과 외양이 진짜였다면, 한국 사회는 벌써 이상사회에 가까울 만큼 좋아졌어야 했다. 모두가 계층 및 소득 간 양극화를 그대로 둘 수 없는 문제라 말했고, 비정규직의 차별과 고통을 해결하겠다고 했다. 여성과 청년들이 처한 여러 불이익과 불평등한 현실을 개선하겠다고 말하지 않은 정치가는 없다. 교육 불평등과 건강 불평등의 해결을 약속했고, 노인 빈곤과 자살 증가를 걱정했다. 그런데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선한 의지나 주장, 자신이 낸 정책과 입법안, 자신이 만든 제도와 기구를 내세우는 정치가는 많았다. 하지만 자신이 책임을 맡고 있는 동안 실제로 청년들의 소득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들의 주거와 교육환경을 얼마나 개선했는지, 노인 빈곤과 자살률 그리고 비정규직의 비율과 차별은 또 얼마나 줄였는가 하는 ‘결과로 말하는 정치가’는 보기 어렵다.

민주주의는 말로 아첨하고 선의로 군림하는 정치가가 아니라 실제 변화를 조직하기 위해 일하는 정치가를 필요로 한다. 힘들더라도 상대와 마주해 일을 풀어가는 정치, 그 속에서 공통의 기반을 개척하고 넓혀가는 정치가 아니라, 상대의 잘못을 고자질하고 일러바치는 ‘아첨 정치’만 양상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0704/85184279/1#csidx9bf351ad28582718792c8502b5c6e46

화, 2017/07/0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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