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시평 305] 성완종과 통합진보당의 3가지 공통점은?

[시평 305] 성완종과 통합진보당의 3가지 공통점은?

익명 (미확인) | 목, 2015/05/14- 13:45

 

[시민정치시평 305] 

 

성완종과 통합진보당의 3가지 공통점은?

: 왜 정치인부터 민주시민교육을 받아야 하는가?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

 

독자분들이 보기에 지금 내가 대입 논술문제처럼 던지는 다음 질문은 정말 뜬금없는 것일 수 있다.

 

'성완종 사건과 통합진보당 사태의 공통점을 세 가지만 열거하고 그 이유를 제시하시오.'

 

참으로 경망하다. 성완종과 통합진보당? 이 두 사태 사이에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게 해놓고 보니 눈에 띄지 않던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우선 내가 첫 번째 꼽고 싶은 공통점은 2013년 11월 5일 대한민국 법무부가 해산을 청구하거나 2015년 4월 9일 청와대가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북한산 형제봉에서 목맨 채 발견되기 전까지 통합진보당이나 성완종이라는 정치적 활동체들이 나의 정치적 관심사가 됐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두 번째 공통점은 모두 '북한'으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은 바 없이 모두 사회적으로 또는 개인 가정사에서 아주 불운한 인생으로 출발하여 '자생적' 종북주의자나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서 한 때 찬란한 정치적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는 불굴의 일꾼들이었다는 것이다. 앞의 '자생적' 종북주의 정당은 북한이 아니라 남한에서 소외된 지역의 밑바닥 표심을 긁어 야권연대의 한 축으로 전국 유권자 10% 이상의 지지율을 확보했다. 뒤의 '자수성가형' 기업인은 여야를 막론한 보수권 정치인들의 모든 인맥을 가로질러 돈을 뿌리면서 군청이 발주한 도로포장공사에서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추진하는 자원외교에 이르기까지 국내외를 넘나드는 각종 관급 사업을 휘몰아 정경유착(政經癒着)이 아니라 아예 정경동체(政經同體)의 경지에 입신하여 차기 대권주자의 킹메이커 역할을 자임했다. 

 

마지막 세 번째 공통점은 각자의 활동권(보통 이것을 속되게 '나와바리'라고 한다) 안에서 정치적 성공을 거둔 뒤 그 다음 차원, 즉 통합진보당의 경우 진보권을 통합한 유력한 대중정당으로, 그리고 성완종의 경우 지역을 넘어 전국 정치인으로 크려는 순간, 대한민국 제도권 정치의 마지막 벽을 넘지 못하고 공히 자살성 붕괴를 거쳐 외부 타격으로 괴멸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자살성 붕괴에는 아주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통합진보당은 자기 당에 돌아올 비례대표 후보 선출을 놓고 부정경선을 벌였고, 그 경선으로 국회의원이 된 두 의원(이석기, 김재연)의 제명을 묵살하였을 뿐만 아니라, 강령개정안을 논의하는 중앙위원회에서 언론 앞에서 정파 간 난투극을 벌렸다. 성완종은 '의리'를 내세워 여야 정당의 정치인들에게 자기 기업의 재무능력 한도를 넘길 정도로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뿌리다가 집권세력의 사정 압박이 들어오자 '믿었던' 세력가들에게 총체적으로 외면당했다. 문제 핵심은 이들이 자기 활동권 안의 정당에서 자력으로 성공을 거둘 때까지 그 정당 안에서 이들의 정치적 성공방식에 대해 그 어떤 제동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당론 결정 과정에서 반드시 준수해야 할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전히 무시하고 정파 간 세력 경쟁으로 각종 정치적 직책과 당직을 안배하였다. 해산 요청 당시 통합진보당은 진보정치나 혁신의 아이콘이 아니라 국회의원직과 당직을 둘러싸고 투쟁하는 이른바 수구권 또는 보수권 정당과 별 차이 없는 속물 정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만 그 투쟁의 수단이 돈이 아니라 명분상의 선명성이었고, 그 선명성을 더 강하게 과시하는 과정에서 종북주의로 오해될 여지가 농후한 후진적 정치언어들이 난무했다는 점이 보수권 정당과 달랐을 뿐이었다.

 

성완종은 돈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보수정당의 민낯을 자기 죽음으로 드러냈다. 그는 자살 당시 동향 출신의 현직 총리와 현 대통령의 역대 세 비서실장, 그리고 박근혜 후보 선거운동 캠프의 두 책임자에게 자기가 돈을 주었다고 직접 거명했다. 결국 죽음이 아니면 이들의 이름조차 내불 수 없는 한국 제도권 정치의 벽을 그의 돈 보따리로도 넘어설 수 없다는 최종 계산이 나오자 그는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택했다.

 

통합진보당의 정치인이나 성완종이라는 기업가 출신 정치인이나 일단 대한민국 정치인으로서 한때 빛나는 성공을 거두었고 자신들의 빈한한 출신을 넘어서는 권위를 누렸다. 그런데 불운한 인생 출발선에서 성공한 정치인이라는 목표지점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한 번도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이 나라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살아갈 민주대한의 민주시민이라는 관점에서 자신들이 벌여갈 정치적 활동을 성찰하고 고민한 흔적이 없다. 

 

성완종 씨의 자서전 <새벽빛>의 부제는 '천원으로 2조원 그룹을 일군 경남기업 회장의 삶과 꿈'이다. 그런데 이 책이 출간된 2007년까지 이미 자민련 소속으로 두 번이나 국회의원에 도전한 전적이 있는 그의 이 자서전 안에서 국가와 사회에 관한 진술은 총 287쪽 가운데 단 두 쪽이다. 그중에서 국가와 사회를 주어로 한 문장은, '우리가 꿈꾸는 건강한 사회·건강한 나라는…나눔과 갚음·배려와 감사의 긍정적인 순환 과정을 통해 가능하다'(264쪽)는 단 한 문장이다. 그는 개인적 처세훈의 연장으로 국가와 사회를 보았다. 이 민주주의 국체와 자유로운 사회가 개인과는 별도로 작동하는 규범적 가치와 제도 운영의 원리에 대해 신경 쓴 별도의 흔적은 자서전 어디에도 없다. 다시 말해서 그는, 일단 여러 문제는 차치하고, 자수성가형의 입지전적 기업인일 수는 있어도 자신이 움직여야 하는 이 국가에 대해서는 자질미달의 정치인이었다.

 

흥망과정의 통합진보당 내부 담론들을 보면 그 대부분이 정치적이라기보다는 정파적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참여하고자 하는 이 나라의 헌법에 대해서는 마지막 소멸 순간에서야 본격적으로 신경 썼다. 그러면서 한 번도 제대로 해보거나 시도해 보지도 않은 내란 혐의로 걸려들고, 정파 간 당내 논쟁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종북성 언설로 빌미를 잡혀 말도 안 되는 형벌을 받았다. 물론 대한민국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볼 때 통합진보당 해산과 관련된 더 크고 근본적인 문제는, 통합진보당이 아니라, 정치문화적으로 아주 후진적인 이 정당의 정치적 수준보다 더 높을 것도 없는 2015년 현재의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해산 결정 그 자체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성완종과 통합진보당을 떠안았던 대한민국 제도권 정당, 즉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 공히 자기네 당의 정치인들의 민주시민적 자질, 더 나아가 민주적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제대로 검증하고 배양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성완종을 자살로 내몬 법적 기준과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결정 근거를 일관되게 밀고 가면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도 그 정치인 다수가 자살하거나 당을 해산당해야 한다. 어떤 당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그 당원과 정치인을 교육하지 않는다. 

 

민주적 정치인 없는 민주국가가 있을 수 있는가? 그리고 민주시민 아닌 사람이 민주적 정치인이 될 수 있는가?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민주정당의 외피를 쓰고 그 안에서 민주적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운 이들을 안고 이 나라의 민주적 정치제도를 능멸하고 민주주의 정치문화를 퇴행시킨다. 논리적 감정 같아서는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새누리당과 새정차연합을 당장 해산하라! 그러나 조금은 이 나라가 있는 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주권자 시민의 이성으로서는 이렇게 '강추'한다. 정치인부터 민주시민교육을 받아 민주시민으로 거듭나라!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호남이 '세속화' 되어야 한다고?

야권, '미래의 분열을 위한 연대'가 필요하다

 

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시민과 세계》 편집위원

 

더 크게 하나가 되어도 이기기 쉽지 않을 총선을 코앞에 두고 어처구니없게도 야권이 분열하고 말았다. 일반 시민의 눈에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명분 싸움으로 여러 계파들이 온갖 드잡이를 하더니, 끝내 제1야당이 분당되고 말았다. 현재로써는 선거에서 야권 연대가 이루어질 가망도 별로 없어 보인다. 안철수 의원은 대선을 목표로 하고 있기에 총선에서 가능한 한 세를 모아 교두보를 확보해야 할 터이니, "야권 연대는 없다"는 그의 선언은 결코 빈말이 아닐 것이다. 하기야 '이번 총선은 내주더라도 대선을 이기겠다'는 나름의 계산이 없었다면 그는 탈당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은 것은 총선에서 야권분열의 어부지리를 얻은 새누리당이 200석 가까이 또는 그 이상의 의석을 획득하는 것일 텐데(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친여 무소속 등 보수 세력 의석의 합이 197석이었다), 개헌 가능선을 훨씬 상회하는 의석을 가지게 될 새누리당이 대통령제를 그대로 둘지가 함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으로써는 달리 예견할 수 없는 이런 재앙적 상황은 단순히 문재인과 안철수라는 두 지도자의 노선 차이나 개인적 앙금 같은 데서만 비롯된 것이 아닌 것 같다. 여러 정황으로 보건대 이번의 야권 분열은 명백히 호남발이다. 그리고 원인은 매우 뿌리가 깊어 보일 뿐만 아니라, '지역 모순'이라 지칭되기도 하고 '반(反) 영남 패권주의'라고 불리기도 하는 둥, 도무지 통상적인 사회과학적 인식 틀로는 포착하기도 힘들어 보인다(혹자는 나 같은 영남 사람은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손쉬운 해법이 결코 있을 수 없어 보이는 요령부득의 문제라, 우리의 정치판이 일본처럼, 아니 러시아처럼 변해가는 것을 뻔히 지켜보면서도 막지 못하고 있다는 낭패감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김욱 교수가 쓴 <아주 낯선 상식>이라는 책은 지금 호남발 야권 분열의 어떤 이데올로기적 기초를 놓고 있다고 평가된다. 이 책의 표현과 인식을 빌려 말하자면, 그동안 '민주화의 성지'로 인식되어 오던 호남의 유권자들이 더 이상 그런 허울만 좋은 호남 '신성화'를 거부하고 분명하게 호남인들의 욕망을 발산하고 실현하게 해 줄 '세속화'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데서 이 모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매번 선거 때마다 몰표로 밀어주었지만 이기지도 못하면서 호남을 제대로 대접하지도 않는 소위 친노 세력들, 더 정확하게는 '은폐된 투항적 영남 패권주의자들'을 버리고 진짜로 호남의 이익에 복무하는 정치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호남인들의 염원이 야권을 갈라놓았단다.

(나 같은 영남 사람의 입장에서도) 이해가 가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호남 사람들은 그동안 새누리당 정권에 대한 반감 때문에 정권 교체의 유일한 가능성이라 믿고 일치단결해서 영남 개혁 세력을 지지했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 멀리는 참여정부 시절의 대북송금 특검 수용에서부터 가까이는 당 안에서의 홀대에 이르기까지, 돌아온 것은 거의 배은망덕에 가까운 것들뿐이란다. 사실 쉽게 부인하기 힘든 현실이다. 그들로서는 충분히 더 이상 이런 영남 개혁 세력과 같이 못 가겠다고 선언할 수 있을 법하다. 문재인 대표나 가까운 사람들이 이에 대해 사죄한다거나 다른 식으로라도 제대로 이해를 구했는지 심각하게 성찰해 볼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영남의 개혁 세력에 대해 은폐된 영남 패권주의자라거나 영남 패권주의에 투항했다는 투로 말하는 것은 도무지 설득력을 가지기 힘들어 보인다. 이 세력이 모두 잘했다거나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모종의 패권주의가 아예 없었다고 말하기도 힘든 모양이다. 그러나 문제를 지역주의라는 잣대로 볼 일은 결단코 아니다. 아무리 5.18 같은 현대사의 특별한 상황을 염두에 둔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지금과 같은 시대에 민주공화국의 서로 다른 지역이라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도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대립과 갈등을 빚어낼 수 있다는 것인지, 또 어째서 그 엉뚱한 지역 모순이라는 걸 계속해서 정치적 인식의 토대로 삼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씁쓸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그런 인식이야말로, 내가 볼 때 김욱 교수가 바로 그래 보이는데, 5.18은 북한에 조종된 호남인들의 반란을 영남 사람들이 나서 막는 과정에서 생긴 사건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영남 패권주의 세력의 그 말도 안 되는 마타도어에 포섭될 때에야 나올 법하지 않은가? 주위 사람들의 온갖 질시와 배척을 견디면서도 '전라도당'이라고 낙인찍힌 당에 투표해 온 많은 영남 사람들은 이제 어찌해야 한다는 것일까? 

호남이 이제 세속화되어야 한다고? 확실히 오로지 호남만이 온갖 손해를 다 보면서도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걱정해야 하는 필연적인 역사적 책무 같은 것은 없다. 호남은 충분히 욕망해도 괜찮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영남의 개혁 및 진보 세력은 선거 때마다 사실상 그저 무의미한 사표만 행사해 왔다. 지역에 자신을 대변해 줄 국회의원 하나 없을 뿐만 아니라 기초 의회부터 광역 단체장에 이르기까지 온통 새누리당 차지다. 하지만 호남은 늘 자신들의 정치적 대변자들을 가져왔다. 적어도 지역 정치는 자신들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은폐된 투항적 영남 패권주의에 반대하기 위해 호남이 세속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결국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싶은 호남의 일부 엘리트 출세주의자들의 은폐된 욕망의 표현이 아니면 무엇일까? 영남의 소수파 민주진보 세력은 그동안 민주적 시민성의 모범을 보인다며 부러워하고 강한 연대 의식을 느끼던 호남 사람들에게 큰 배반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영남 패권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는 영남 사람들이다. 지금 부산이 오랫동안 가꾸어 온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부산 시장이 앞장서 허물어트리려 하고 있다. 그 상징성과 경제성이 엄청난데도 단지 집행부가 <다이빙벨> 같은 영화를 상영하는 등 시장과 정권 쪽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았다는 이유다. 부산이 변변한 산업 하나 없고 그래서 오래전부터 많은 인구가 빠져 나간 피폐한 소비 도시로 전락한 게 이런 식의 정치적 협량함과 오랜 일당 집권의 결과일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대구도 사정이 다르다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영남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아직 이런 사정을, 그리고 지역주의를 통해 덕을 보는 사람들은 결국 서울에 뿌리를 내린 영남 출신 엘리트들과 지역 토호들뿐임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물론 마찬가지 이야기를 호남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호남의 낙후는 결국 지역의 일당 장기 집권 때문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스웨덴은 사회민주당의 오랜 장기 집권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호남은 왜 그런 모범을 따르지 못했나? 왜 그동안 호남은 그 유리한 정치적 조건을 이용하여 호남 지역을 더 민주적이고 더 복지 친화적이며 더 인간적인 삶의 공간으로 만들지 못했는가? 그랬다면 호남은 영남을 포함하여 전 국민들이 부러워하는 민주적 모범 지역이 되지 않았을까? 또 그랬다면 영남 패권주의 같은 허깨비는 만들어내지 않아도 좋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호남의 경우 진짜 문제는 여전히 '민주주의의 부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호남의 세속화나 어떤 지역주의적 '호남 정치' 따위가 아니라 호남의 더 많은 민주주의다. 호남은 더 신성화되어도 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호남이 앞장서 이 나라 민주주의를 이끌고, 호남인들이 민주적 시민성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 어째서 주저해야 할 일인지 나는 모르겠다. 민주주의를 위한 몰표는 부끄러운 일도 바보 같은 일도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중도 좌우 정당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극우파 국민전선의 득세를 막기 위해 정치적 반대 진영의 정당 후보에게 곧잘 투표하고 또 그걸 '공화국 수호를 위한 투표'라고 자랑스러워한다. 지금 새누리당은 한국의 국민전선이다. 특히 호남에게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지역 엘리트들의 출세가 아니라 이런 위기의 민주주의를 구원하는 것이 호남의 긍지가 되면 왜 안 되는 것일까?

물론 지금까지의 제1야당의 한심한 모습은 그것대로 따져져야 할 문제이고 또 호남의 정치적 분화가 영원히 잘못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새누리당 지배 하의 단순 다수결 선거제도 아래에서는 민주 세력의 지금과 같은 방식의 정치적 분열의 시도는 자멸의 입구다. 그런 자멸을 피하려면, 김욱 교수도 주장하듯이, 독일식 정당명부제 같은 선거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건 분열의 명분이 아니라 선결 조건이어야 한다. 그렇게 여러 정치 세력이 마음대로 분열하더라도 새누리당 같은 수구 세력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주지 않아도 되는 선거 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말하자면 '(미래의) 분열을 위한 연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최소한 수도권에서만이라도 그래야 한다. 서로 감정의 골이 아무리 깊더라도, 그런 선거제도 개혁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일단 힘을 합쳐야 한다. 바로 그런 선거제도 개혁을 매개고리로 말이다. 그게 여러 차원에서 호남의 정치적 정체성에도 맞고 또 궁극적으로 호남에게 이익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호남의 세속화는 호남뿐만 아니라 이 나라 전체의 재앙일 뿐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목, 2016/01/28- 14:46
385
0

청주충북환경연합에서 교육이면 교육 자원활동이면 자원활동을 열심히 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바로 풀꿈환경강사모임 입니다
벌써 풀꿈환경강사양성교육을 한지 2년이 되어 새로 강사양성을 실시 할까? 여러 고민끝에 ‘내실을 다지자’라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래서 2017년은 풀꿈환경강사로 있으신 분들을 심화교육하고 달마다 정기적 모임도 가지며 역량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1강은 김경중 전 사무처장께서 물환경 전반에 걸친 내용을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게 강의해 주셨습니다

2강은 충북연구원 배명순 박사로부터 충북의 물환경현황에 대해 들었습니다
우리는 평소 물을 쓸때 아껴써야 한다고만 말을 합니다 물이 시작되는 상류에서 누군가 희생(?)을 하며 우리가 쓰는 물로 온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콕 집어서 말씀을 해주셔서 듣는 선생님들도 관심을 가지게되었습니다 앞으로 물환경교육을 받을 아이들에게도 알려야 할 내용이었습니다

3강은 박현수 운영위원으로부터 물생태 관련 내용을 들었습니다 특히 무심천에 사는 물고기 관련 내용은 지난해 무심천 전수조사 활동을 통한 내용이어서 현실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마지막 4강은 김윤수 숲치유사로 부터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내용을 들었습니다 교육을 하다보면 수 많은 사람들을 처음 만나게됩니다 그랬을때 어떤식으로 다가가야 하는지, 어떻게 관계를 풀어야하는지를 알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4강이 끝나고 기념사진 한컷 찍었구요 심화과정은 이렇게 끝나는게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전문 강사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으니 풀꿈강사들도 이를 기반삼아 자기개발을 위해 더 공부하고 체험을 해야겠지요.

4강을 함께 해주신 전문강사님들 고맙습니다^^

금, 2017/04/28- 15:00
385
0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 활동가 양성 교육 프로그램


플랜트건설_교육.jpg




월, 2015/08/31- 17:31
384
0


[시민정치시평 308]

 

무능한 정치는 나쁜 정치만큼 위험하다

제7공화국'을 위한 연대 ②

 

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경기도교육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민주주의의 외관을 한 21세기형 신권위주의 체제로 갈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의 인간적 이상을 실현할 정의로운 민주공화국을 발전시킬 것인가. 지금 우리 사회는 역사적 기로에 서 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 진보 세력은 지금 극심한 혼란과 분열과 무능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올 기미가 없다. '87년 체제'가 강요하는 구조적 제약에 허덕이는 데다 주체의 공부와 준비도 턱없이 부족하다. 혹시라도 이 체제의 틀 안에서 다시 기적적으로 민주 진보 세력이 집권을 하더라도 제대로 된 사회의 진보를 이끌기는커녕 외려 시민들 사이에 민주주의와 민주 진보 세력에 대한 영원한 불신만을 남기지 않을까 걱정일 정도다. (☞관련 시평 : "87년 체제, 민주주의 가로막는 반동의 원천")

 

무언가 결정적인 돌파구가 필요하다. 지리멸렬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음을 증명한 우리의 민주 진보 세력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재·보선 이후 많은 정치 분석이 제시하는 식의 어떤 정치 공학적 계산이나 특정 지도자의 카리스마적 리더십 같은 것이 아니다. 또 지금은 수명을 다한 현존 체제 안에 갇혀 사실은 가능하지도 않을 승리에 대한 헛된 꿈으로 공천권 다툼이나 하고 있을 때도 아니다. 야권은 이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에 바탕한 담대한 기획으로 새롭게 자기 정립을 이루어 내야 한다.

 

나는 그 담대한 기획의 핵심에 말기적 병리를 드러내고 있는 현재의 87년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민주공화국 체제의 수립에 대한 전망을 두자고 제안하고 싶다. 그러니까 민주주의적 정의의 원리에 부합하는 시민의 평등한 참여와 정치적 중심성이 실현되는 참된 인간적 민주공화국인 '제7공화국'을 만드는 전망 말이다. 바로 이런 전망을 매개로, 성숙한 호남 주민들의 민주의식을 기득권 안주와 무능의 알리바이로만 악용해 온 새정치민주연합이나 대기업 및 공공 부문 정규직 조직 노동자의 이해관계 보호를 진보 정치와 등치시켜 온 자칭 진보 정당들의 정치적 클리셰를 벗어 던지고, 민주 진보 세력의 정치적 중심을 새롭게 세워보자는 이야기다.

 

물론 우리 야권에 당장 시급한 일은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정권 교체를 이루기 위한 발판을 확보하는 것이긴 하다. 시간도 부족하고 여러 정치 세력이 모두 지리멸렬해진 상황에서, 심지어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분당의 위기마저 감도는 상황에서,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만들자는 거대 기획을 외치는 일은 얼핏 망상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총선 승리나 정권 교체라는 과제도 단지 그와 같은 '체제 교체' 또는 '국가 교체'에 대한 명확하고 담대한 비전과 그 체계적 실천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기존 체제의 틀 안에 머문 채 익숙한 정치 문법과 수사를 답습하면서 새정치연합이나 진보 정당들이 제대로 성찰하고 혁신하며 연대할 수 있을까? '정권 심판' 같은 상투적 구호와 뻔한 인물과 식상한 정치 구도를 내세워서 광범위한 시민적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까? 통진당의 강제 해산으로 이제 더 이상 반복할 수 없게 된 2012년식의 야권 연대의 모델에 대한 대안 없이, 새누리당과 선거에서 맞서 이길 수 있을까?

 

판 자체를 갈아엎겠다고 나서야 한다. 완전히 새로운 체제,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해야 한다. '친노'니 '비노'니 하는 식의 계파 싸움은 그것이 단지 계파 싸움이어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과거에 얽매인 퇴행적 싸움이라서 추악하다. NL이니 PD니 하는 다툼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새롭고 희망찬 미래를 설득해야 한다. 싸우더라도 더 나은 나라에 대한 더 나은 비전을 놓고 싸워야 한다. 새로운 정치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말이다.

 

숱한 시민들이 가난 때문에 자살을 하고 '갑질'에 시달려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정치를 끝내겠다고 해야 한다. 통일은 대박이라면서도 외려 남북 간의 긴장만 조성하고 툭하면 '종북 타령'이나 해대는 냉전 정치를 끝내고 굳건한 평화 위에서 번영하는 복지국가의 비전을 보여 주고 실현하겠다고 해야 한다. 그 많은 사람들이 바닷물 속으로 수장되고 있어도 부패하고 무능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국가, 또 그래 놓고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이제는 비정함까지 보이는 국가를 완전히 뜯어고치겠다고 해야 한다. 이렇게 새로운 나라,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에 대한 상상력을 개방하여 많은 시민들의 열정을 동원하고 희망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바탕 위에서 야권의 정치 세력들은 새로운 자기 정립에 나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각기 자신들의 정치철학과 이념이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하고, 어떤 나라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지를 설득력 있게 다듬어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서로 이전투구식 딱지 붙이기 경쟁이나 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나라,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에 대한 철학의 경쟁, 비전의 경쟁, 역량의 경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 제도나 구조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87년 체제를 끝내고 우리나라를 더 나은 민주공화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들이 있다. 가령 우리는 더 이상 대통령이 제왕처럼 굴지 못하게 권력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또 민주적으로 선출되지도 견제받지도 않은 헌법재판관들 따위가 우리 헌정 질서의 이념과 원칙에 대한 해석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시민들이 더 많이 정치적 과정에 참여하고 더 많이 의제 설정을 주도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과연 우리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어떤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지 방향을 잡아가야 한다.

 

특히 민주주의적 정의의 원칙에 본원적으로 어긋나는 지금의 소선거구제의 개선 문제는 빠져서는 안 된다. 사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미 많은 정치 세력에 의해 공유되고 있다. 심지어 선관위조차도 현행 제도를 정당 명부식 비례 대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실마리를 잘 살려 새로운 정치 체제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지렛대로 다듬어 가야 할 것이다.

 

그런 개혁이 되면 우리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정치적 지형을 가지게 될 것이다. 또 그렇게 되면 단순한 정권 심판론이나 교체론 또는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 구도를 넘어서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더 이상 지역주의의 덫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대기업 및 공공 부문 정규직 조직 노동자층의 이해관계에만 매달리지 않는 새로운 민주-진보 정치에 대한 비전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런 토대 위에서 고삐 풀린 시장을 길들이고 시민들의 사회적 기본권을 강화하며 오늘날의 심각한 사회경제적 양극화도 완화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 이런 선거 제도 개혁은 지금 딜레마에 빠져 있는 야권의 연합 정치를 위한 새로운 전망도 열어 줄 수 있다. 아마도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의 여러 계파를 포함하여 지금 야권의 정파들은 각자 더 이상 '묻지 마 연대'를 강요받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이념과 노선을 선명하게 추구할 수 있는 정치 환경이 형성될 수 있기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적 체제에서 그런 환경은 불가능하다. 이제 우리는 정당 명부식 비례 대표제 같은 것을 매개로 새로운 정치 체제에 대한 비전을 공유함으로써 말하자면 '분열을 (마음대로 해도 되는 정치환경을) 위한 연대'의 정치를 구상할 수 있다.

 

어쨌든 야권의 정치 세력들은 연대를 하되 그런 식의 선거 제도 개혁 등을 매개로 단순히 지금의 체제 안에서 국회의 의석 몇을 더하려는 따위의 계산이나 하는 연대가 아니라 제7공화국이라는 미래의 새로운 체제 속에서 더 큰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는 연대를 해야 할 것이다. 각 정치 세력은 이제 서로가 지닌 철학의 설득력과 비전의 성숙함을 두고 경쟁하되, 지금의 87년 체제 안에서 그 체제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나라,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열려는 점에서는 하나임을 보여주는 그런 연대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이에 대해 '제7공화국을 위한 연대'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특히 알량한 기득권에 안주코자 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선뜻 그런 혁신적 연대의 길에 자발적으로 나설지 매우 의심스럽다. 그래서 결국 이런 일조차 시민 사회가 먼저 나서 기성 정치권을 압박하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질지 모르겠다. 제대로 된 민주적 정당 체제를 만들고 또 정당 정치를 강화하라고 말이다.

 

당연히 시민 정치로 정당 정치를 대신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는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사실 우리의 시민 정치는, 지금껏 이 사회의 민주화를 이끌어내고 민주주의를 위기로부터 구해내는 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그 열정적 에너지를 언제나 바람직한 방향으로 응축시키지는 못했다. 특히 특정 정치인에 대한 몰주체적-비이성적 동일시는 의도하지 않은 나쁜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에 대한 비전을 매개로 시민 정치의 새로운 모델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민 사회가 먼저 나서 올바른 정치의 비전을 세우라며 지리멸렬한 정치권을 압박하고 시민 정치와 정당 정치의 건설적 분업 관계를 확립함으로써 말이다. 바로 이런 '시민 주도성'이야말로 우리가 넘어서고자 하는 지금의 제6공화국 헌정 질서의 성립과 운영 과정에서 전적으로 빠졌던 것이었다. 제7공화국을 위한 연대는 기본적으로 시민들의 민주적 주체성이 중심에 서는 연대여야 한다. 많은 시민들이 이런 노력에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수, 2015/06/03- 10:38
372
0

【기획 연재】 다른 삶은 가능하다④
[인터뷰] 심플 라이프는 삶의 자유를 찾는 과정입니다
-탁진현(미니멀리스트)

내 삶을 구속하는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싶어요.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내면 내 삶을 구속하는 것을 버릴 수 있을 거고, 삶의 자유를 찾게 되겠지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시대, 소비가 미덕인 시대, 인간이 호모 컨슈머리쿠스로 불리는 시대. 본질적 가치에 집중하고 비움을 이야기합니다.
[유시주의 시민으로 살아가기]
‘표현의 자유’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들

“나 같은 쓰레기의 자유가 보장될 때 모든 사람들의 자유 또한 보장될 수 있다.”
혐오할 만한 의견, 무지몽매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의견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폭력적으로 막아서는 안 된다. 반박하고 비판하고 설득함으로써 그 의견을 낙후화시키고 도태시킬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시민의 준칙을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

[혁신·교육思考]
Give Something Back to Berlin!
이민자와 난민, 원주민들의 공존. 이름표와 경계를 두지 않고, 시혜가 아닌 필요와 공유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실천할 때 비소로 빗장이 열린다.

[분투의 기록_마지]
마지 주방의 기준은 항상 ‘나’였다. 주방을 책임져야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은 꽤 무거웠다. 그런데 그 기준과 선택에 대해 동료가 질문을 던진다. 함께 일을한다는 건 무엇일까.
평생학습동향_수원
평생학습동향_국내

수, 2016/06/15- 10:00
37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