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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양의 시작,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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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양의 시작,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익명 (미확인) | 월, 2017/04/10- 16:40
희망제작소에는 특별한 경험을 가진 연구원이 있습니다. 지속가능발전팀의 박흥석 선임연구원인데요. 박흥석 선임연구원은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세월호 3주기를 맞아 박흥석 선임연구원을 만나 그간 하지 못했던, 그리고 하고 싶었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잘 보지 않던 TV를 켰다. 익숙한 얼굴에 나도 모르게 놀람의 감탄사가 나왔다. 동료 연구원이었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에서 활동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화면 속 그는 실없이 아재개그를 날리던 사무실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진지하게 세월호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의 눈동자에서 빛이 났다. 무엇 때문일까. 궁금해졌다. ‘홍보팀’이라는 명목을 내세우며 무작정 인터뷰 요청을 했다. 그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하지만 질문지를 만들며 난관에 봉착했다.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막막했다. ‘세월호’라는 사안이 무겁기도 했고, 잘못 접근하면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줄 수도 있었다. 고민 끝에, 세월호 참사를 슬퍼하고 잊지 않으려 애쓰는 시민의 관점에서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박흥석 선임연구원(이하 박흥석 연구원)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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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일상의 붕괴를 목도한 순간

“그날이 특별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 거예요. 참사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참사 당일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질문에 그는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실시간 생중계로 배가 가라앉는 걸 보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탑승객이 400명이 넘는데, 구조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잖아요. 말도 안 되죠. 애지중지 키운 아이들이 산 채로 수장되었는데, 부모님들은 얼마나 슬플까요. 항상 곁에 있던 아이가 사라진 거잖아요. 일상이 무너진 거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게 한스러울 거예요.”

당시 박흥석 연구원은 한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었다. 자연스레 정부, 국가, 공권력에 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세월호 참사도 비슷한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와우아파트 붕괴, 서해 훼리호 침몰, 대구 지하철 화재 등에서 정부의 대처는 한결같이 미흡했어요. 사고원인을 밝히는 과정도 표면적이었죠. 세월호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를 답습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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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여객선 사고로 규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배가 침몰하기 시작했을 때 정부가 적극적으로 구조에 나섰다면,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전 사례와 비슷하게 흘러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특조위에 참여하기로 했죠. 하지만 발족 과정에서 문제가 많았어요. 세월호 특별법(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은 2015년 1월에 제정됐는데, 그해 여름이 되어서야 첫 출근을 했거든요. 그래서 지방선거 이후에 1년을 반백수로 지냈어요. 가족들이 많이 고생했죠. 저도 돈 준다고 하면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했어요.”

특조위 활동은 눈엣가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조위에서 그의 첫 역할은 이석태 위원장 보좌였다. 선체 인양이 거론되기 시작했지만, 특조위는 해양·조선·선박전공자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보통 조선·해양전문가는 고액 연봉과 좋은 대우를 받게 마련인데, 특조위 활동은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물론 처우나 급여가 좋지 않았다. 더구나 해운업계의 가장 큰 고객은 해양수산부다. 특조위 활동 경력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다. 결국 평소에 틈틈이 인양 관련 공부를 해온 박흥석 연구원에게 관련 업무가 넘어갔다.

“저는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거든요. 선박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어요. 제대로 조사하려면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죠. 1년 정도 활동하면서 쉰 날이 20일도 안 돼요. 퇴근도 거의 밤늦게 했고요. 할 게 많았지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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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특조위의 모든 조사관이 밤낮없이 진실을 밝히는 데에 몰두했다. 정부와 기득권에는 눈엣가시였을 터다. 때문에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와 같은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조사관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박 연구원은 특조위를 ‘불나방’에 빗대어 표현했다.

“많은 분이 우려하셨죠. 그래도 조사관들 사이에는 ‘그래도 시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어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죠. 반민특위 사례만 봐도 색깔과 이념 프레임으로 숨통을 끊어놨잖아요. 특조위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어요. 특조위 내부 자료가 새누리당에 넘어간 적도 있고, 정부가 특정 단체에 활동 반대집회를 시키기도 했죠. 심지어 경찰서 정보과나 국정원이 조사관과 유가족 사찰까지 하더라고요. 심적 부담이 컸어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거잖아요.”

2016년 해양수산부는 선체조사 관련 예산을 따로 편성하지 않았다. 특조위가 먼저 선체를 정밀히 조사해야 한다며 예산 확보를 주장했다. 그러자 해수부는 인양 선체 정리 예산으로 40억 원을 편성했다. 선체조사와 선체정리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사용처가 같다며 특조위의 요구를 예산에서 삭감해버렸다. 또한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특조위의 활동을 강제종료 시켜버렸다.

“특조위가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5년 8월이에요. 그런데 정부는 특별법 시행일인 같은 해 1월부터 활동했다고 주장했어요. 1월에는 조사인력과 예산이 없었는데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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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언제나 선(善)인가… 시민의 역량으로 감시해야

조사관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꿈에 시달리다 벌떡 일어나기도 했고, 스트레스와 분함이 극도에 달했다. 특조위 활동 이전 생활로 돌아갔지만, 공간뿐이었다.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여전히 날카롭고 아픔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박흥석 연구원도 많은 변화를 맞이해야 했다. 그는 자신이 좀 더 ‘무거워졌다’고 말한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 내면의 심연을 봤다고나 할까. 좋게 말하면 마음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이고, 나쁘게 보면 공감이 어렵다는 말이다. 요즘은 세심한 감정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구조에 직접 뛰어드신 분들의 트라우마가 가장 심할 거예요. 국가가 짊어져야 할 것을 그분들이 다 감당하셨잖아요. 깊은 바다에 들어갔다 나오면 일정 시간 감압(잠수병 방지를 위해 몸에 용해된 불활성 가스를 제거하는 것)을 해야 해요. 하지만 구조에 참여한 잠수사들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물에 다시 들어갔어요. 후유증이 생길 수밖에 없죠. 더구나 차갑게 식은 아이들을 품에 안아 뭍으로 올라와야 하는데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신체적·심리적 치료가 절실했죠. 하지만 정부는 갖은 핑계를 대가며 그분들을 외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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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故 김관홍 잠수사의 일이 안타까우면서도 그 심정이 십분 이해된다고 했다.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하지만 이내 목을 가다듬은 후,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다시 힘주어 말했다.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시민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국가라는 게 선한 것처럼 포장돼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조건 없는 믿음은 버려야 해요. 언제 위협적으로 변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시민의 역량으로 국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해요. 우리는 국가를 계속 감시해야 합니다.”

국가를 사랑하는 것을 강조한 나라보다 국가를 통제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 나라가 그나마 ‘덜 나쁜’ 나라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 어느 헌법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해법은 결국 시민의 힘을 모으는 ‘연대’에 있지 않을까?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경험했듯이 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진상규명 요구 서명에 650만 명의 시민이 참여했어요. 덕분에 특조위가 만들어졌고요. 이후 416연대라는 단체도 생겼고, 유가족협의회에 시민이 재정을 지원하는 등 여러 측면에서 연대의 움직임이 보였어요. 긍정적이죠.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아쉬운 점도 있어요. 단편적인 활동이 많았거든요. 연대체 간 갈등이 생겼을 때 조율할 수 있는 역할이 없었던 것도 아쉬워요. 사실 이런 건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않는 바람에 피해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서 생기는 일이거든요. 정부가 유가족 한 분 한 분 만나 잘 다독이고 서로 상처 주지 않게 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못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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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체 인양됐지만, 여전히 풀지 못한 질문의 답 찾아야

“참사 당시에는 이민을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하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죠. 도망가면 이준석 선장과 다를 게 없잖아요. 기울어진 이 나라의 균형이 바로 잡힐 수 있도록, 많은 사람과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사회혁신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했고요.”

사회혁신이라니! 희망제작소에서 주야장천(晝夜長川) 외치는 그 가치 아니던가. 박흥석 연구원이 희망제작소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시민의 역량을 강화하고 촉진하는 동시에 정부의 정책을 검토하고 대안을 찾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것이 여타 연구소와 비교했을 때 희망제작소만의 강점이라고도 말했다.

“저를 비롯한 희망제작소 연구원 모두가 정부, 국가, 사회의 움직임에 대한 촉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를 놓치면서 어떻게 시민을 말하고 우리 사회의 비전을 만들 수 있겠어요. 촉을 세우고 잘 살피다 보면 거대 담론뿐만 아니라 구체적 실천과제도 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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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는 국가 운영방식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집중되어 있는 권력을 나누고 중간중간 견제장치를 재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아픔 속에서 공감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자신의 상황과 형편에 맞게 공감과 지지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오면 끝 아니냐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해요. 왜 인양했는지 살펴봐야 하죠. 미수습자를 찾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진상규명을 하고, 그 과정을 통해 교훈을 얻는 것이 인양의 목적이에요. 이 세 가지를 충족하지 못하면 인양은 끝난 게 아니에요. 그 과정에서 선체조사위가 확실하게 자기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시민은 잘 지켜보고 살펴야 해요. 필요할 때는 목소리도 내야 하고요.”

“국가의 범죄는 절대 권력을 지닌 소수 독재자들의 야욕과 그들에게 복종하는 다수 봉사자들의 협력에 의해 현실화 됩니다. 정신 나간 사람들 몇 명의 손으로는 이런 거대한 범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독재 권력의 전횡에 참여하거나 방관할 때에만 비로소 국가라고 하는 괴물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 김두식 ‘헌법의 풍경’ 중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최은영 | 미디어홍보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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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잦은 자연재난의 경험을 통해 탄탄한 재난관리 체계를 구축해왔습니다. 또한 동일본대지진 이후 안전한 에너지 생산을 위해 ‘분산형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을 장려하고 있는데요. 지난 9월 희망제작소는 안신숙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전국의 공무원 27명과 함께 일본 교토시, 고베시, 아와지 섬 등지를 방문하여 일본의 재난관리 체계와 재생가능에너지 정책을 학습하고 왔습니다.


재난이란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 국가에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으로 원인과 성격에 따라 자연재난, 인적재난, 국가기반재난 등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인적재난은 인간의 노력으로 예방할 수 있지만, 태풍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재난은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어 받아들여야 할 때도 많은데요. 일본은 그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방향으로 재난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교토시 방재(防災)의 사령탑, ‘방재위기관리실’

일본은 1961년에 제정된 재해대책기본법에 근거하여 지역별로 방재회의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교토시의 ‘방재위기관리실’은 교토시 방재회의의 사무국으로, 재해(災害)의 사전예방과 복구를 총괄하고 있는데요, 지진, 수해, 산사태뿐 아니라 식품위생, 전염병, 범죄 등의 문제도 규모가 커지면 방재위기관리실이 총괄하여 각 행정부서와 협력, 대응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각 지역에서 주민이 자주적으로 방재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눈여겨볼 점은 재해 관련 정보를 상세히 수집하고 시민에게 공유하는 것입니다. 특히 지진, 폭우, 토사에 의한 지역별 위험 정도를 ‘방재지도(Hazard Map)’의 형태로 만들어 배포하고 있는데요, 시민들은 이 지도를 보고 자신이 사는 곳의 위험 정도를 미리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재난 발생에 좀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재난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 구축과 시민과의 공유가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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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시의 피난소 운영대책

일본은 재난으로 피해를 당했을 때 주민이 대피할 수 있는 피난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피난소는 크게 광역피난소와 동네피난소로 구분할 수 있는데요. 광역피난소는 화재 등 2차 피해에 대비하는 시설로, 교토의 유명 관광지인 금각사 또한 광역피난소 중 한 곳입니다. 동네피난소는 주민들의 생활권인 학교 체육관 등에 설치되며, 전국적으로 428개가 지정되어 있습니다.

교토시는 동네피난소가 주민들의 자치로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는데요. 대규모 재난 발생 시, 행정이 모든 지역에 파견되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자신의 생활권 피난소 운영에 관한 사항을 합의하여 결정하고, 각자 역할을 맡아 그에 부합하는 매뉴얼을 익히고 있습니다. 매뉴얼에는 피난소 내부 배치도 등 신속한 피난소 개설을 위한 내용이 매우 상세히 작성되어 있습니다.

일본 피난소 운영의 특징은 ‘약자’를 매우 폭넓게 설정하여 그에 맞는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노약자와 장애인, 아이는 물론이거니와 여성, 외국인, 안경이나 의치를 잃어버린 주민까지 배려하고 있는데요. 피난소에서 주민 생존율을 더욱 높이려는 방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반려동물과 동행하는 주민에 대한 대책도 마련되어 있는데, 주민의 다양한 특성을 반영하여 피난소 생활의 피로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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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대응을 위한 시민훈련시설, ‘교토시 시민방재센터’

일본은 재난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훈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995년 개관한 교토시 시민방재센터는 시민이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도록 방재와 관련된 지식을 알리고, 체험 시설로 재난 대응 훈련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지진, 강풍, 화재, 침수 등의 재난이 발생할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체험을 통해 익힐 수 있습니다. 3D 영상을 통해 재난 상황을 실감 나게 체험할 수 있어 학생과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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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복구를 위한 자원봉사자조정센터, 교토시 ‘재해볼란티어센터’

한 지역에 재난이 발생하면 복구를 돕기 위해 일본 전역에서 자원봉사자가 모여듭니다. ‘자원봉사 활동 원년’이라고 불리는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 당시에는 약 137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모이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자원봉사자는 재해 복구에 중요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고, 더욱 효과적인 지원을 위해 ‘재해볼란티어센터’가 생겼습니다. 재해볼란티어센터는 재난이 발생한 지역에 물자와 자원봉사자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일본 전역에 187개의 센터가 긴밀히 연결되어있습니다.

재난이 발생하면 일본 시민들은 개인적으로 재해지에 가지 않고 자신이 사는 지역의 재해볼란티어센터에 참가 접수를 합니다. 재해지의 재해볼란티어센터는 전국의 재해볼란티어센터와 협조하여 복구에 필요한 기술을 가진 자원봉사자의 적절한 수를 재해지에 파견하게 됩니다. 이처럼 센터 간 체계적인 협력은 재해복구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기억함으로써 미래로, 고베시 ‘사람과방재미래센터’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지진 대책에 자신이 있던 일본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준 재난이었습니다. 고베시는 고령 인구의 비율이 높고, 주거 밀집 지역이었기 때문에 그 피해가 더욱 컸습니다. 현재 도시는 말끔히 복구되어 당시의 참담한 모습은 남아 있지 않지만, 아직 생활기반이 복구되지 않은 곳도 있다고 하니 그 피해 규모를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그 충격을 단지 상처로만 남기지 않고 철저히 기억함으로써 미래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고베시에 위치한 ‘사람과방재미래센터’는 대지진과 관련된 자료 수집, 연구 활동, 인력 육성 등으로 당시의 경험을 시민과 후대, 세계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특히 16만 점에 달하는 대지진과 관련된 도서, 비디오, 물건, 사진 자료는 시민들에게 당시의 모습을 생생히 전달할 뿐 아니라 재해 경감을 위한 연구자료로 쓰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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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힘으로는 자연재난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연구를 통해 그것의 발생을 예측하고 철저히 대비한다면 그 피해는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재난의 예방은 행정이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사례는, 행정과 시민이 협력해야 더욱 촘촘하게 재해 경감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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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이다현 | 지역정책센터 연구원 · [email protected]

수, 2017/11/0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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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 매일밥상 – 오늘의 국 · 탕

 

깊어지는 가을의 맛을 듬뿍 담은 건강 밥상

 

들깨토란탕

 

오늘의 국 · 탕 – 들깨토란탕

 

들깨토란탕

이렇게 만들어요

 

오늘의 국 · 탕 – 들깨토란탕 재료

 

재료

알토란 300g, 무 1/4개, 애호박 1/4개, 말린표고버섯 4~5개, 다시마 1조각, 들깨가루 10큰술, 찹쌀가루 1큰술, 어간장 1큰술, 쌀뜨물 3컵

 

방법

1. 껍질을 벗긴 토란을 쌀뜨물에 5분 정도 데친 뒤 먹기 좋은 크기로 깍둑 썬다.
※ 쌀뜨물에 데치면 토란의 아린 맛을 제거할 수 있다. 토란의 껍질은 쌀뜨물에 데친 후 벗겨도 상관없다.

2. 말린표고버섯은 반나절 정도 물에 불린 뒤 납작하게 썬다. 무, 애호박도 납작하게 썬다.

3. 현미유를 두른 팬에 채소를 볶다가 재료가 노릇하게 익으면 어간장을 넣고 더 볶는다.
※ 먼저 간을 하고 볶으면 채소가 질겨질 수 있으니 간은 채소를 충분히 볶은 뒤에 한다.

4. ③의 채소에 간이 배면 ①의 토란을 넣고 함께 볶다가 재료가 잠길 정도의 물을 붓고, 다시마를 넣어 끓인다.

5. 분량의 들깨가루와 찹쌀가루를 ④에 넣고 걸쭉해질 때까지 끓인다.

 

 

요리지도_경봉스님

20년 동안 한국 전통음식과 사찰음식을 만든 경험을 토대로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 내 자연요리연구소에서 건강한 식재료 및 조리법에 대해 연구하고 강의하고 있습니다. 음식을 통한 건강하고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며, 체질과 증상에 맞는 건강식과 발효음식 등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10년 전, 한살림 식재료를 이용해 요리하는 용문사부설 어린이집의 식단을 책임지게 되면서 한살림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수, 2017/11/2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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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리우 올림픽 남자 축구에서 브라질의 우승을 이끈 네이마르는 “주장으로서 어린 선수들과 친구처럼 지내려고 노력했다. 내가 후배들에게 가르쳐준 것보다 축구에 대한 강한 열정을 지닌 후배들에게 배운 것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브라질 축구 대표팀보다 나이 차이가 훨씬 많이 나는 세대가 한 팀을 이뤄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으로 멋진 팀워크를 이룬 사례가 있다. 바로 희망제작소의 <시니어드림페스티벌>에 참가한 팀들이다. 나는 <시니어드림페스티벌>의 자문위원으로 참여하여 각 팀의 활동을 지켜볼 수 있었다. 시니어가 디지털 리터러시(Literacy)를 갖춘 주니어의 능력을 인정하고, 주니어는 시니어의 경험과 열정을 존중하면서 공동 과제(사회공헌 아이디어 실현)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의 활동을 지켜보면 한국 사회에서 대두되고 있는 세대 간 갈등의 문제는 기우에 그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눈을 돌려 한국 사회를 둘러보면 상황이 반드시 희망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경제는 예전의 활력을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청년실업률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의 실업률도 증가하고 있지만 해결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권력을 장악한 엘리트들은 부패하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 청년들은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좌절한다.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감은 거세고 세대 간 갈등은 커지고 있다. 세대공감의 여지가 없다.

진정한 세대공감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기성세대의 각성이 필요하다. 아날로그 세대인 기성세대는 디지털 시대의 주인공은 청년세대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 주인공들이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국제적인 감각, 한국 사회를 리드할 수 있는 도덕성,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출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주는 것이 기성세대의 가장 큰 의무 중 하나다. 청년세대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장단기적인 비전을 세우고 하루 빨리 실행해야 한다.

한편 청년들은 안전하고 보수적인 직업을 얻기 위한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 과연 개인과 사회의 미래를 위해 합당한 선택인가를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에 의해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직업을 위해 청춘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낭비하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하고, 창조하는 힘을 길러 활력을 잃고 있는 한국 사회를 다시 한 번 역동적인 사회로 만들어 가는 것이 미래의 주인공인 청년세대가 도전할 가치가 있는 목표가 아닌가?

기성세대는 청년세대에게 활동의 기반을 마련해주고, 청년세대는 역동적인 미래를 만들어갈 창조적인 능력을 갖춰 갈 때 진정한 세대공감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글 : 김경회 | 앙코르 코리아 대표

금, 2016/08/2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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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국민생명권 침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

 

 

일시 2017년 1월 19일 오후 1시 30분 헌법재판소앞
공동주최 4.16세월호참사국민조사위원회(4.16국민조사위),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 (사)4.16세월호참사진상규명및안전사회건설을위한피해자가족협의회(416가족협의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민주주의법학연구회(민주법연), 참여연대
주관 4.16세월호참사국민조사위원회(4.16국민조사위) 

 

순서
사회 이태호 / 4.16 국민조사위 상임연구원, 4.16 연대 상임운영위원

인사말 유경은 /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4.16국민조사위 상임연구원
의견서 소개 이정일 / 4.16국민조사위 상임연구원, 민변 세월호TF
탄핵촉구발언1 : 김선애(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
탄핵촉구발언2 : 민주법연, 참여연대 중 참가자
 

금, 2017/01/2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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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이 전하는 일본, 일본 시민사회, 일본 지역의 이야기.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에 대해 일본 현지에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안신숙의 일본통신 43

마을 일에 침묵하던 주민들이 입을 열게 된 까닭

도쿄 도 신주쿠에서 중앙선을 타고 20여 분을 달리면 미타카 역이 나온다. 쾌속선을 타면 바로 다음 정거장으로 10여 분 만에 도착할 수도 있다. 일본 방문 계획을 세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미타카 역을 들어봤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브리 미술관’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관장으로 있는 지브리 미술관의 정식 명칭이 ‘미타카시립 애니메이션 미술관’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즉, 지브리 미술관은 (주)스튜디오 지브리(이하 ‘지브리’)가 아닌 미타카 시민의 재산인 것이다. 어떤 경위로 지브리 미술관이 미타카 시민의 공공재산으로 탄생하게 된 것일까?

▲ 미타카의 숲 지브리 미술관

▲ 미타카의 숲 지브리 미술관

미타카 시는 시내의 도립 이노카시라 공원에 문화시설을 만들고자 소유자인 도쿄 도와 1992년부터 논의하고 있었다. 마침 1997년부터 지브리 미술관 건립을 계획해 온 지브리는 미타카 시에 공동으로 미술관을 건립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도립공원 내에 민간시설을 건립할 수는 없었다. 이때부터 미타카 시와 주민들은 미술관을 유치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브리가 건축물을 미타카 시에 기부하고 시의 공공시설로 미술관을 건립한 후 지브리와 미타카 시 그리고 니혼TV가 함께 설립한 ‘공익재단법인 도쿠마 기념 애니메이션 문화재단’을 관리 운영자로 지정하기로 했다. 이른바 PFI(Private Finance Initiative)방식을 도입한 도시재생사업의 선구적인 실험 사례가 된 것이다.

미타카시의회는 ‘미술관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미술관 건립에 관한 안건들을 공개적으로 검토한 뒤 ‘미타카시립 애니메이션 미술관 조례’를 제정했다. 또한 주민들과 지역 관계자들은 ‘미타카 시립 애니메이션 미술관 마을 만들기 추진 협의회’를 조직해 교통대책과 지역활성화 대책을 협의했다. 이렇게 해서 인구 19만의 미타카 시는 세계적인 관광지인 지브리 미술관을 주민의 재산으로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주민참여와 파트너십의 인텔리전트 도시’로 불리고 있는 미타카식 민관 협동 사업의 모델이 탄생한 것이다.

50년을 이어온 주민참여와 협동의 시정

미타카 시의 주민참여와 파트너십에 의한 시정은 약 50여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미타카 시는 1950년부터 시정이 시작되어 1955년 사회당 출신의 스즈키 헤이사브로가 3대 시장에 당선됐다. 5기에 걸친 20여 년간의 재임 동안 그는 혁신 시정을 펼치면서 현재의 미타카 시정의 기초를 다졌다. 그중 하나가 시를 7개의 지구로 나누고 각 지구별로 커뮤니티센터를 건립하여 주민협의회가 이를 운영하게 하는 ‘커뮤니티 시정’이다. 커뮤니티센터를 중심으로 주민자치의 마을만들기를 실시하고 이를 통해 행동하는 주민들을 육성한다는 구상이었다. 1971년 커뮤니티센터 조례가 제정돼, 1973년에 오사와에 제1호 커뮤니티센터가 개관됐다. 1972년에는 ‘미타카 시 기본구상’에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마을만들기 시민의 모임’이 구성됐다. 여기에서 나온 의견을 바탕으로 1975년 ‘미타카 시 기본 구상’이 책정되었고 시의회에서 가결돼 미타카 시정의 기초가 됐다.

노동조합 출신의 사카모토 마사오 시장 또한 4기에 걸쳐 16년간 스즈키 시장의 커뮤니티 시정을 이어갔다. 이에 따라서 1984년 렌자크 커뮤니티센터를 마지막으로 7개 지구의 커뮤니티센터가 완성되어 주민협의회가 운영하게 되었다. ‘건설비와 운영비는 시가 부담하지만 운영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라는 방침이었다. 다양한 시민 및 단체가 자발적으로 운영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각종 시민회의가 개최되기 시작했다.

▲ 지역주민들은 이노카시라 커뮤니티센터를 거점으로 다양한 지역활동을 펼치고 있다.

▲ 지역주민들은 이노카시라 커뮤니티센터를 거점으로 다양한 지역활동을 펼치고 있다.

1981년에는 7개 지구 주민협의회가 각 지역별로 ‘커뮤니티 카르테’를 작성해 시에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커뮤니티 카르테란 주민 스스로 지역적 과제를 진단하고 ‘마을만들기 계획’을 작성한 것이다. 시가 이를 미타카 시 기본계획과 실시계획에 반영하면서 커뮤니티 시정은 한층 발전했다. 커뮤니티 카르테는 주민협의회가 선출한 ‘카르테 작성 위원회’에 의해, 1981년, 1984년, 그리고 1989년 모두 3회에 걸쳐서 작성됐다. 카르테 작성에 참가했던 주민들은 ‘새로운 만남의 기회가 됐다’, ‘주민자치란 관용과 조정, 결단이 필요함을 알게 됐으며, 정치란 현실의 통찰로 이뤄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참가소감을 밝혔다.

1990년대에 이르러 미타카 시의 시정은 ‘참여에서 협동(파트너십)으로’ 한층 발전하게 된다. 제 5대 야스다 요지로 시장은 미타카 시 공무원 출신으로 스즈키 시장과 사카모토 시장의 시정을 보좌해 왔었다. 그 덕분에 주민의 의견을 시정에 반영하려는 ‘시민회의 방식’은 그대로 이어져 다양한 분야에서 전개됐다. 그리고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워크숍 방식’을 도입해, 마을만들기 계획뿐만 아니라 그것을 구체화하는 과정에도 주민들의 참여가 활발하게 이뤄지기 시작했다. 주민협의회 멤버뿐만 아니라 아이들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민들이 지역에 공원을 만들고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하는 일에 직접 참여하게 됐다. 워크숍에 의한 마을만들기 사업의 대표적인 예로 ‘꿈의 공원 만들기(이노카시라 테노히라 어린이 놀이터) 워크숍’과 ‘마루이케 부활 플랜 만들기 워크숍’이 유명하다.

▲ 1997년 100여 명의 주민들이 총 11회의 워크숍을 개최하여 살린 마루이케 공원

▲ 1997년 100여 명의 주민들이 총 11회의 워크숍을 개최하여 살린 마루이케 공원

시작부터 주민참여로 이뤄진 미타카 시 기본계획

1999년 10월 미타키 시 주민들로 구성된 NPO조직 ‘미타카 시민 플랜 21 회의’가 발족했다. 미타카 시의 기본 구상・제3차 기본계획을 책정하기에 앞서, 주민들이 직접 그 기본계획을 수립해 시에 제언하기 위해 구성된 조직이다. 이는 시가 계획을 수립할 때 시민 의견을 수렴하는 기존의 시민회의 방식과는 크게 다른 새로운 형태의 시민 참여 방식이었다. 즉, 시가 원안을 작성하기 전에 백지상태에서 시민회의가 구성됐다. 시민회의의 구성원 또한 공모에 의해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졌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1995년 결성된 ‘미타카 시 마을 만들기 연구소’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연구소는 기존의 공원 만들기나 학교의 재건축 등에서 이뤄졌던 워크숍 방식의 시민참여가 시의 종합계획을 수립할 때도 적용될 수 있다고 판단해 시작부터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서 토론하고 이를 계획에 반영하는 ‘시민참여의 새로운 모델’을 시에 제안한 것이다. 시는 이 제안을 수용해 먼저 준비위원회를 공모했다. 준비위원회는 새로운 시민참여 조직의 형식과 회의 운영의 기본 규칙 등을 정하고 시민 참가자를 공모했다. 인원의 제한을 두지 않는 완전 자유 참가 형식이었다. 이 공모로 모인 375명의 시민들로 1999년 10월 미타카 시민 플랜 21회의가 출범했다.

시민 플랜 21회의는 미타카 시와 파트너십 협정을 체결하고 10개의 분과 위원회로 나뉘어 계획을 수립하기 했다. 1년간의 토론에 토론을 거듭한 결과 ‘미타카 시민 플랜 21’을 완성하여 이를 시에 제출하게 된다. 미타카 시민 플랜 21은 지구・협동・순환・ 공생이라는 4개의 키워드로 정리돼 있으며 시민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자치기본조례’를 제정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시는 이 제안서를 바탕으로 신기본구상과 제3차 기본계획 초안을 작성했고, 시민 플랜 21회의는 시의 초안에 대한 의견서를 다시 제출했다.

그 결과, 2001년 5월에 최종안이 책정돼 그해 9월에 의회에서 의결됐으며, 이를 수용해 제3차 기본계획이 2001년 11월에 확정됐다. 임무를 마친 시민 플랜 21회의는 3년에 걸친 활동을 종료하고 해산했다. 그리고 시민 플랜 21회의는 이듬해 마크하리멧세에서 열린 일본 행정학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행정의 시작부터 주민들이 참여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궁극적인 시민참여 행정 모델로 평가받은 것이다. 기요하라 케이코 현미타카 시장이 바로 시민 플랜 21회의 3명의 의장 중 한 명이었다.

▲ 2003년 시 조례에 의해 설립된 NPO법인 미타카 시민 협동 네트워크가 운영하고 있는 시민협동센터는 시민들의 행정 참여를 돕고 있다.

▲ 2003년 시 조례에 의해 설립된 NPO법인 미타카 시민 협동 네트워크가 운영하고 있는 시민협동센터는 지역주민들의 행정 참여를 돕고 있다.

침묵하던 주민들 시정운영에 입을 열다

2006년 8월 26일~27일, 미타카 시 시민협동센터에서 ‘미타카 마을만들기 공개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날 토론회 개최를 위해 미타카 상공회의소와 미타카 시는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청년회의소 회원 12명, 미타카 시 공무원 4명, 시민단체 회원 6명으로 구성된 총 22명의 실행위원회를 조직했다. 실행위원회는 6개월 동안 총 30회가 넘는 회의를 통해 토론회를 준비했다. 우선 18세 이상 시민 1,000명을 무작위로 선발하여 토론회 참가 의뢰서를 발송했다. 그중 87명의 시민이 참가 승낙서를 보냈다. 예상을 넘는 숫자였다. 87명 중에서 공개추첨을 통해 참가자 60명을 선발했다. ‘무작위 선발’이란 방식으로 참가자를 결정한 것은 ‘침묵하는 다수의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들에게 관련 현황 등의 정보를 사전에 제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토론회는 ‘안전・안심 마을 만들기-어린이 안전’을 주제로 1시간씩 총 4회에 걸쳐 진행됐다. 먼저 5명씩 10개의 그룹으로 나눠 동시에 토론을 진행하고,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과제별로 그룹의 토론 멤버를 교체했다. 각 그룹은 제출된 다수의 의견 중에서 3개의 의견을 정한 뒤, 그룹 대표가 전체 회의에서 이를 발표하고 참가자들은 찬성하는 의견에 투표를 했다. ‘경찰과 시청, 학교가 어린이 안전을 위한 협의회를 만든다(총득표 14), 퇴직한 시니어들로 유급 어린이 보호관을 양성한다(총득표27)’ 등의 의견이 제안되었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진짜 시민이 된 것 같다’, ‘재미있었다’ 등의 소감을 밝혔다. 물론 토론회의 효과는 참가자들의 높은 만족도에 그치지 않았다. ‘제출된 제안들이 시민과 지역에서 해야 할 과제와 행정에서 해야 할 과제가 각각 구별돼 있고 매우 현실성이 높다’며 ‘제안의 질’ 또한 높이 평가됐다. 이런 평가에 힘입어 미타카 시는 ‘무작위 선발에 의한 마을만들기 공개 토론회’를 매년 정례화시켰다. ‘미타카 마을만들기 공개 토론회’는 시의 종합기본계획 책정, 외곽순환도로 주변의 마을만들기, 방재 마을만들기 등등 해마다 주제를 바꿔 개최되고 있다. 매년 각 연령층에서 무작위로 선발된 침묵하던 다수의 주민들이 모여 진지하고 활발하게 토론을 벌이고 질 높은 제안을 하고 있다. 그동안 행정 참여의 경험이 없었던 주민들이 시정에 참여하여 지역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책을 찾아보는 미타카 시의 ‘마을만들기 공개 토론회’는 매우 획기적인 사례로 평가되고 있으며, 미타카 시는 앞으로도 시민참여와 협동을 기반으로 한 시정 운영 모델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글 : 안신숙 |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 [email protected]

금, 2016/07/2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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