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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관클럽 19차 정기포럼] 시민의 기억이 지역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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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관클럽 19차 정기포럼] 시민의 기억이 지역을 만든다

익명 (미확인) | 화, 2017/03/28- 09:00

민선6기 목민관클럽 19차 정기포럼이 ‘시민의 기억이 지역을 만든다’는 주제로, 2017년 3월 21~22일 이틀간 경기 안산시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포럼에서는 기억문화의 중요성과 기억문화가 지역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생생한 현장의 후기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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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6기 목민관클럽 19차 정기포럼은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조문으로 시작했다. 공식 행사 시작 시간인 오후 1시가 되기 30분 전부터 많은 참석자(지자체 단체장, 공무원 등)가 분향소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검은색 옷을 입고 가슴에 노란 리본 배지를 달고 있었다.

분향소 조문을 마치고 안산경기교육청에 있는 세월호 기억교실에 방문했다. 2014년 당시 단원고 2학년 교실은 총 9반까지 있었는데, 세월호 기억교실에도 이와 동일하게 1층에는 1~3반, 2층에는 4~9반 그리고 교무실이 있었다. 유가족 어머니들께서 직접 안내해주시며 설명해주시는 걸 듣던 참가자들의 눈시울이 빨개지고 여기저기서 한숨이 들렸다. 아이들이 사용하던 교실의 빈 책상 위에는, 아이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남겨놓은 사진과 편지 등이 놓여 있었다. 아이들의 빈자리와 방문객들의 글을 접하니, 세월호 참사가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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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안산 스퀘어호텔에서 본격적인 포럼 행사가 진행됐다. 제종길 안산시장의 기조발제와 독일 초청연사 발제, 지자체장 사례 발표로 이어졌다.

안산의 기억과 기록 : 기록을 위한 안산시의 노력

안산은 단원고가 있는 곳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시의 역할이 중요했다. 지난 3년 동안 안산시는 다양한 기록 작업을 해오고 있었다. 2017년 3월 기준으로 4·16 세월호 참사 기록물이 무려 181,354건이라고 한다. 기록물 종류는 단행자료, 연구자료, 박물자료, 멀티미디어자료 등으로 다양했다. 또한 안산시민 각계각층 39명을 대상으로, 참사 이전의 일상과 그 이후 변화된 일상 등을 주제로 한 구술기록을 담았다. ‘2014 안산의 기억 구술백서’가 그것이다. 또한 416기억저장소 시민기록단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기록물 외에도 안산시에는 다양한 행정기록(전자 약 28만 철, 비전자 약 11만 권, 행정간행물 약7천 건 등 1999년부터 DB구축)과 역사문화기록(성호기념관, 안산향토사박물관, 최용신기념관, 단원미술관 등)이 있었다. 제종길 안산시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큰 논란이 된 블랙리스트에 행정가로는 유일하게 포함됐다고 한다. 웃으며 이야기 했지만, 지난 3년간 중앙정부의 비협조 아래에서 많은 노력을 했다는 점이 참 인상 깊었다.

기억문화를 위한 독일의 노력

이번 포럼을 위해 독일에서 두 명의 연사가 안산에 방문했다. 첫 번째 발표자인 미하엘 파락(Michael Parak, 반망각·민주주의진흥재단 사무총장)은 ‘아래로부터 기억문화’라는 주제로 나치, 홀로코스트, 2차 세계대전, 레지스탕스, 공산독재, 사회주의 통일당, 동서독 분단, 평화혁명, 통일’의 과정을 이야기했다. 과거 여러 사건에서 무엇을 기억할지에 대한 논의방법과 기념관 형성, 시민사회의 역할, 보상방법 등을 설명하고, 기억문화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요소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전해 주었다. 두 번째 발표자인 팀 레너(Tim Renner, 前 베를린 시 문화부 장관)는 ‘베를린의 기억 문화-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이라는 주제로, 지역민이 기억에 관해 직접 논의를 시작한 것과 독일 통일, 기억문화에 대한 제도적 논의 및 합의, 기념관 설립, 다양한 활용 시도 등을 거친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토포그래피 박물관과 그 구성요소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독일은 과거사에 대한 기억문화가 앞선 국가다’라는 막연한 이미지만 갖고 있었는데, 두 연사의 발표로 독일의 기억문화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독일도 처음에는 지역 단위의 소소한 논의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왔다는 것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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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부터 시작하는 기억문화, 더 큰 힘으로

제종길 시장과 독일 연사의 발제에 관한 반응이 뜨거웠다. 질의응답이 계속 됐다. 때문에 이후 예정돼 있던 지자체장 사례 발표가 늦춰졌는데도 모두가 진지한 자세로 포럼에 임했다. 13명의 지자체장이 각 지역의 기억문화 사례를 소개했다. 많은 지자체가 지역이 지닌 역사문화자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후대에 그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축제, 기념관, 공원 등으로 지역을 가꾸고 있었으며, 공공기록물도 충실히 관리하면서 내실화에 애쓰고 있었다. 또한 비제도권에서 쉽게 사라지는 지역의 기억과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기록·조사·정리하기 위해 구술·사진기록을 하고, 지역주민을 위한 아카이브 공간 마련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던 독일의 두 연사도 한국 지역사회에서 세밀하게 작업 중인 기억문화 활동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한 아래로부터 시작하는 기억문화가 모이기 시작하면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회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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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의 새로운 모습

포럼 둘째 날에는 참석자들과 함께 안산시의 다양한 지역자산을 살펴봤다. 시화호조력발전소를 견학하고, 대부해솔1길을 걸었다. 과거 환경문제로 골칫거리였던 시화호를 조력발전소로 전환하여, 지속가능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포럼 참석자들은 이번 포럼을 통해 한국의 기억문화가 한발 나아가 성숙한 공동체를 만드는데 기여하길 바랐고, 각 지역에서 그런 역할을 하기로 다짐했다.

– 글 : 박정호 | 경영지원실 연구원 · [email protected]
– 사진 : 목민관클럽팀

☞ ‘2017 한독도시교류포럼 – 기억의 조건’ 자료집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이곳을 클릭’해주세요!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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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뉴스타파와 정보공개센터는 정부 등 공공기관들이 생산하고 있는 메르스 관련 문서가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메르스 관련 정보공개의 중요성을 박근혜 정부도 뒤늦게나마 깨달았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공공기관들이 생산, 접수한 정보의 목록은 행정자치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정보공개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포털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이라고 검색을 하면 확진자가 발생한 5월 20일 이후 현재(6월 19일)까지 총 60,985건의 정보목록이 검색됩니다. 이 중 생산-접수시 공개로 설정된 문서의 목록은 43,255건입니다. 전체 메르스 관련 문서 가운데 1만7천5백 건 정도는 비공개 혹은 부분공개로 설정돼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검색 범위를 메르스 사태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로 한정해 봤습니다. ‘중동호흡기증후군’으로 검색해서 나오는 정보목록을 보니 같은 기간 동안 총 443건의 정보가 생산-접수된 것으로 집계됩니다. 이 중 공개로 설정된 문서의 목록은 130건에 불과했습니다. 생산-접수된 정보의 71% 가량이 비공개 또는 부분공개로 설정돼 있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국장급 이상 결재문서는 16건이었는데, 여기서도 공개로 설정된 문서는 9건 밖에 되지 않습니다.

 

비공개로 설정된 문서는 과연 얼마나 민감한 정보를 담고 있길래 국민들이 접하지 못하도록 한 것일까? 비공개 문서 몇 가지의 제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국내 유입 관련 타과 업무지원 협조 요청

– 중동호흡기 증후군 관련 비상 대책

–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확산 방지를 위한 예비비 요구안 제출

–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의심환자 발생 시 신고 철저 및 보환연 진단검사 수행 협조 요청

–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환자 접촉자 자가격리 조치 관리현황 제출 요청 및 변경된 발열 판단기준 안내

– 의료기관용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의심환자 내원 시 행동지침 배포(책받침)

–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환자 발생 관련 시도 보건과장 회의 개최 알림 및 참석 요청

–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대책 관련 예산(질병관리본부 운영비) 자체이용 승인·통보

– 「중동호흡기증후군 방역대책본부-핫라인」운영을 위한 배너 및 업무흐름도 제작 등

–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국내 환자 발생 관련 감염병 위기경보 주의발령 알림

 

▲ 보건복지부의 정보목록중 비공개로 설정되어 생산된 문서 일부

 

비공개 문서여서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의료기관용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의심환자 내원 시 행동지침 배포(책받침)’,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환자 발생 관련 시도 보건과장 회의 개최 알림 및 참석 요청’ 등의 제목을 보면 별 내용이 아닌 것 같은데 왜 비공개로 설정했는지 의문입니다.

 

이번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참사는 닮은 부분이 많습니다. 정부의 무능과 컨트롤타워의 부재도 닮았고 정보공개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도 마찬가집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해양수산부에서 생산한 ‘세월호’와 관련된 정보목록은 총 479건이었습니다. 이 중 공개로 설정된 정보의 목록은 135건으로 29%였습니다. 반면에 비공개된 정보의 목록은 343건으로 무려 71%를 차지했습니다. 공교롭게 비공개 비율이 메르스와 똑같았습니다. 세월호와 관련된 정보는 지금도 국민에게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아주 민감한 내용이 포함돼 있거나 정보공개법이나 기록물관리법에서 명시하는 비공개 정보에 해당하는 것들은 정보를 생산할 때 비공개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공개, 부분공개로 설정한 정보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은 중대한 사안과 관련한 공공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려는 의지를 정부가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재난 상황, 메르스 확산과 같이 예상치 못하게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태가 발생했을 때 도대체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재난 상황, 감염병 상황에서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정부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비상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매뉴얼과 전담기구를 준비해 둬야 하고, 상황 발생 시 관련 정보를 국민에게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합니다. 이제라도 정부는 투명한 정보공개와 책임있는 태도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 분석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와 '뉴스타파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가 함께 제작하였습니다.

 

이 글은 뉴스타파의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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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6/2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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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6기 목민관클럽 11차 정기포럼이 ‘젠트리피케이션을 넘어,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를 품다’라는 주제로, 2016년 1월 8일~9일 1박 2일 동안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열렸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최근 이슈로 떠오른 ‘젠트리피케이션’이었다. 21명의 단체장과 140여 명이 넘는 관계 공무원들이 참석하여 포럼 현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전주, 한국 전통문화를 보여주다

오전에 살짝 눈이 내린 가운데, 전주를 찾은 목민관클럽 정기포럼 참가자들을 먼저 맞아준 곳은 2014년 문을 연 ‘한국전통문화전당’이었다. 한류문화(K-Culture)의 융합거점으로서 전통문화의 대중화, 산업화 및 세계화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건립된 곳으로, 교육ㆍ체험ㆍ공연ㆍ전시 등을 위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참가자들은 3층에서 투어를 시작했는데, 전통공예작품 상설전시관인 온(Onn)브랜드관을 거쳐 ‘고래를 품은 한지’를 테마로 전시중인 기획전시실을 둘러보았다. 2층의 한문화관에서는 한옥, 한지, 한소리, 한글, 한식 등의 한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고, 1층 전주문화관에서는 전주의 역사와 명소를 미니어처와 영상을 통해 만났다.

전주의 오래된 미래

전날의 일정을 소화한 참가자들의 약 절반 정도인 70여 명이 해맞이를 위해 오목대(梧木臺)를 찾았다. 흐린 날씨로 제대로 된 해맞이를 볼 수는 없어서 문화 해설사로부터 오목대의 유래와 의의를 듣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한옥마을을 한 눈에 내려다보고 있는 오목대는 아직 조선왕조를 세우기 이전인 1380년 이성계가 왜구를 물리치고 승전 잔치를 베푼 곳이다. 이 오목대에서부터 이성계와 정몽주의 정치적 미래가 갈라졌다는 해설사의 설명은 자못 흥미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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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오전 프로그램의 시작은 요즘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곳 중의 하나인 전주 한옥마을이었다. 전주 한옥마을은 단지 과거의 유물로만 남아 있는 곳이 아니라, 현재도 시민들의 거주와 생활의 공간으로 기능한다. 1930년대 일본인들의 세력 확장에 대한 조선인들의 반발로 형성되기 시작했고, 1977년 정부에 의해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되었지만 적절한 대책이 뒤따르지 않아서 오히려 낙후지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가, 1999년 ‘전주생활문화특구’로 지정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약 650여 세대가 살고 있는 한옥마을은 전주를 찾는 887만명(2015년 기준)의 관광객들이 반드시 찾는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오래된 고택,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들, 다양한 전통ㆍ현대의 먹거리와 볼거리들이 밀집해 있다. 그중에서도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가 경기전(慶基殿)과 전동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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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은 먼저 전동성당을 찾아 조금이나마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전주의 근대사를 증거하고 있는 전동성당은 1914년 프랑스 신부와 중국인 기술자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규모는 크지 않지만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건축물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이어서 찾은 경기전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전주사고와 어진박물관 등을 둘러보았다. 경기전 어진 박물관장은 참가자들에게 박물관 소장품의 의의를 설명하고 전시실을 안내했는데, 그곳에는 현재 유일하게 전해져 오면서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태조어진이 상설 전시되어 있었고, ‘전라감영, 다시 꽃 피는 선화당 회화나무’라는 이름으로 전라감영 특별전이 진행 중이었다. 호남제일성을 자랑하던 전주에는 조선시대 전주를 담당하는 지방통치관서인 전주부영과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그리고 제주도까지 총괄하는 지방통치관서인 전라감영이 자리잡고 있었다.

전주를 넘어 대한민국의 무형문화유산을 만나다

‘국립무형유산원’은 전주에 위치한 문화재청 소속기관으로,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의 정책과제를 이행하고 무형문화유산의 보호와 전승을 위해 설립된 복합문화공간으로, 2014년 10월에 개원했다. 이곳에서는 우리의 무형문화유산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의 무형문화유산과 만날 수 있다. 일정한 형태를 갖추고 고정되어 있는 유형문화유산과는 달리, 무형문화유산은 세대를 이어가면서 전승되는 동시에 변화하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사실 무형유산이라는 말에도 낯설어한 참가자들은 국립무형유산원이 전주에 있다는 사실 자체도 대부분 모르고 있었다. 그러기에 김승수 전주시장의 소개로 찾게 된 국립무형유산원의 규모와 시설은 단체장과 공무원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대지면적 59,930㎡에 공연, 전시, 자료보관, 회의와 사무공간 기능을 하는 7개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 무형문화유산의 의미와 가치를 설명하고 다양한 전시품을 소개하는 공간이 제1상설전시실이라면, 무형문화재 공예 종목과 예능 종목을 소개하는 곳이 제2상설전시실이다. 기획전시실에서는 ‘줄다리기: 흥을 당기다’라는 이름으로 특별전이 진행 중이었다. 2015년에 우리나라 줄다리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공동 등재된걸 기념하는 전시였다. 창녕군의 영산줄다리기, 당진시의 기지시줄다리기, 삼척시의 삼척기줄다리기와 국내 줄다리기 문화유산과 베트남, 캄보디아 등의 해외 줄다리기 문화유산을 볼 수 있었다. 유산원의 시설과 전시물들을 둘러보면서, 전주시가 갑작스럽게 일정을 변경해가면서까지 참가자들에게 이곳을 소개한 이유를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도시혁신의 새로운 실험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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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오목대부터 이어진 숨 가쁜 오전 일정의 마무리를 위해서 참가자들이 찾은 곳은 ‘전주도시혁신센터’였다. 전주지역의 공동체와 사회적경제, 도시재생 사업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지역혁신 플랫폼으로서, 2015년 7월부터 운영되고 있다. 전주 도시혁신센터가 자리 잡고 있는 노송동 일대는 국토부 도시재생 테스트베드로 선정된 곳으로서 주민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다양한 형태의 재생사업이 진행되어 왔다.

시간 제약으로 당초 계획했던 ‘천사마을’ 견학은 하지 못하고, 센터 내에서 임경진 센터장의 발표를 듣는 것으로 대신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사회적경제 사업과 도시재생사업 그리고 공동체 지원 사업을 하나의 통합 플랫폼 형태로 진행한다는 혁신적인 실험에 대한 자부심과 기대 그리고 설레임을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글_정창기(정책그룹 연구위원 / [email protected])

화, 2016/01/1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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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구)호외. 세월호 청문회, 진실은 없다!  - 세월호 청문회 총정리

일, 2015/12/2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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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허상을 쫓았다, 구원파 “유병언 자녀들은 차명주주”… 자금관리책이라던 이석환도 실체 불명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해 총 304명(사망자 295명·실종자 9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검찰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사태의 배후로 지목하며, 유 전 회장의 행적과 그의 차명재산을 추적하는데 집중했다. 언론도 검찰 발표에 따라 그가 세월호 참사의 배후인 양 유 전회장의 대소사를 보도해왔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1년여가 지난 현재, 유병언 전 회장이 청해진해운 및 관계사의 실소유주라는 검찰의 전제는 대부분 무너졌다. 유 전 회장이 청해진해운 및 아이원아이홀딩스, 천해진 등 수십여개 관계사들의 실소유주라는 전제를 뒷받침하는 인물은 신명희, 이석환, 김혜경 씨였다.
최근 세월호 관련 항소심들에선 검찰의 주장을 뒤집는 중대한 판결들이 잇따라 나왔는데, 미디어오늘은 관련 판결문 등을 입수, 분석했다.

 

 

▲ 2014년 7월 25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유병언 전 회장에 대한 사인 감정결과 브리핑. ⓒ 연합뉴스

 

지난해 세월호 참사 후 몇개월간 ‘신엄마’라는 별칭으로 검찰 문서와 언론에 오르내리며 유 전 회장의 자금관리인으로 지목됐던 신명희씨. 검찰은 신씨가 유병언 전 회장의 비자금으로 홍익아파트 224채를 소OO씨 등의 차명으로 매입하였다고 기소했다. 그러나 4월 21일 항소심 법원(서울고법 제5형사부)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홍익아파트의 실소유자가 유병언이라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신씨는 1심 판결과 마찬가지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이 유병언 전 회장이 실소유주라는 주장만 했을 뿐, 그에 대한 입증은 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금수원 상무를 맡고 있던 이석환씨 역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제주와 안산을 오가며 영농조합을 관리하고 있다. 신씨와 마찬가지로 이석환 상무에 대한 판결에서도 유 전회장이 이석환씨의 명의를 빌은 실소유주라는 검찰의 주장은 인정되지 않았다.

지난해 6월 검찰은 이석환씨를 체포하며 그가 유 전회장의 자금관리 담당 비서이자 최측근이라고 밝혔고, 언론도 검찰의 주장만을 믿고 이석환씨를 ‘유 회장의 오른팔’이라며 곧 사태의 실마리가 풀릴 것처럼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신명희씨와 이석환씨에 대한 판결에서 홍익아파트와 영농조합 등이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재산이라는 피고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신명희, 이석환씨에 대한 항소심 판결과 아울러, 이석환 상무가 유 전회장의 자금관리인이 아니라고 볼 이유는 또 있다. 이미 오래전인 2006년 대구지법에선 유병언 전 회장으로부터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채무자로부터 압류한 금전채권을 채권자에게 강제이전시키는 결정)’을 결정한 재판 결과가 있었는데, 이 사건의 채권자가 바로 ‘이석환’이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대구지방법원 2006타채5425’ 사건의 진행내용을 보면 채권자 ‘이석환’은  2006년 4월 유병언 전 회장을 상대로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을 신청했고, 같은해 5월 2일 법원은 이씨의 압류 신청을 받아들였다. 본지가 입수한 유 전 회장에 대한 나라신용정보의 ‘보증채무 감면(종결) 신청에 대한 승인’ 문건에도 “타 채권자 이석환의 선순위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대구지법 2006타채5425, 청구액 10억)”이라고 적시되어 있다. 이 대구지법 판결의 이석환과 금수원 상무 이석환 씨가 동일인인지는 재판 당사자가 아닌 이상 확인할 길이 없으나, 대구지법 판결문에 나온 청구인의 주소가 금수원이 위치한 안성이라는 점에서 두 ‘이석환’이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 대구지방법원 2006타채5425. 유병언 전 회장에 대한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

 

만일 금수원 상무 이석환씨가 유병언 전 회장에게 10억원의 재산 압류를 걸어놓은 것이 사실이라면, 이석환 씨가 유 전 회장의 오른팔이자 자금관리인이라는 검찰 주장은 성립되기 어렵다.

검찰 주장의 신빙성을 깨뜨리는 정황은 또 있다. 이씨는 사건 초기인 5월 검찰이 금수원에 진입할 때 검찰을 금수원 내부로 안내하는 등 수사에 적극 협조했고, 일부 신도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당초 검찰이 유 전회장의 자금관리인으로 지목한 세번째 인물인 김혜경씨는 한국제약 대표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송환되어 재판이 진행중이지만 앞서 두 사람과 마찬가지의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검찰 주장에 따르더라도, 당초 추징 대상으로 보도됐던 김씨와 관련된 300억대 규모의 상당액은 ‘교회 자금’이다. 신명희씨 항소심에서도 이들 교회 자금이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의 자금이 아니라 유 전 회장의 자금이라는 검찰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청해진해운 실소유주는 누구인가?

당초 자금관리책으로 지목된 이들 3인의 재판결과가 배임이든 혹은 기독교복임침례회의 재산과 관련된 부동산실명제법 위반이든 이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유 전 회장이 청해진해운을 비롯해 수십여개 관계사들의 실소유주라는 검찰의 대전제 자체가 뿌리채 흔들리고 있는 점이다. 신명희 씨나 이석환 상무, 그리고 김혜경 대표 등이 유 전 회장의 자금관리 담당이 아니라면, 유 전회장이 그들의 명의를 빌은 부동산과 기업체들의 실소유주라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렇게 될 경우 청해진해운을 비롯해 검찰이 지목했던 유병언 관계사들은, 당초 기독교복음침례회가 주장했던 대로 교회재산이거나 유 전 회장의 자녀 및 친인척을 포함한 등기부등본 상 명의자들의 소유라는 얘기가 된다.

구원파 측은 일관되게 청해진해운의 지배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 등에 대한 유 전 회장 자녀들의 지분 역시 신도들의 재산이라고 밝혀왔다. 1997년 부도가 난 (주)세모는 2007년 인천지법이 기업회생계획 변경계획안을 인가함에 따라 ㈜새무리컨소시엄에 337억 가량에 매각되었다. 이 때 새무리컨소시엄은 (주)새무리(29.0%)와 문진미디어(20%.0), 다판다(31.0%) 그리고 세모우리사주조합(20.0%)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때 유 전 회장의 자녀들과 세모그룹의 간부들이 컨소시엄에 참여한 기업들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구원파 측은 교회가 소유할 수 있는 재산에 대한 법적 제한 때문에 유 전회장 자녀와 친척들의 차명을 사용한 것 뿐이라는 입장이다. 언론이 ‘오너 일가에 대한 상납’이라고 보도한 상표권 사용료 지불 등도, 실제로는 교회재산이지만 유 회장 일가의 차명으로 된 재산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대출받은 원리금을 갚기 위해 이뤄졌다는 것이다.(이태종 전 구원파 대변인 인터뷰) 검찰은 이른바 ‘유병언 계열사’들이 유 전 회장의 사진을 고가에 구입했다거나 회사의 ‘명의 사용료’를 ‘상납’했다는 것을 ‘유병언 전 회장이 실소유주’라는 주장의 근거로 제시해왔다. 항소심 재판부는 구원파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수백 건의 정정, 반론보도문

그동안 언론은 검찰의 공식 발표나 검찰이 흘리는 정보에 따라 제대로된 검증절차 없이 유 전회장이 청해진해운을 비롯한 소위 ‘유병언 계열사’들의 실소유주라고 보도해왔는데, 최근 잇따라 언론중재위 심판에서 정정보도 조정을 받고 있다. 다음은 한 언론사에 실린 반론보도문이다.

“그러나 유병언 전 회장 측에 확인한 결과, 유병언 전 회장은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주식은 물론 청해진해운의 대주주인 천해지, 천해지의 대주주인 아이원아이홀딩스의 주식을 전혀 소유하지 않았으므로 실소유주가 아니며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운영하지 않아 청해진해운의 회장이라 할 수 없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해당 기사를 바로잡습니다.”

최종적으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다른 교회 재산들이 유병언 전 회장이 아닌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실소유라면, 청해진해운은 실소유주는 누구인가?

2013년 감사보고서를 보면 청해진해운은 천해지가 39.4%, 김한식 전 대표가 11.6%, 아이원아이홀딩스가 7.1% 등을 소유하고 있고, 천해지는 아이원아이홀딩스가 42.81%로 지배하는 회사이며, 다시 아이원아이홀딩스는 유 전 회장의 자녀들인 유혁기, 유대균씨 등이 대주주인 회사다.

아이원아이홀딩스나 천해지에 대해서도 구원파 측은 그 대부분이 교회재산이라는 입장이다. 청해진해운에 대한 지배관계에 있는 아이원아이홀딩스의 법률적 소유권이 유 전회장의 자녀들에게 있는 가운데, 실제 실소유주가 존재한다면 그것이 누구인지는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다만 항소심 법원은 검찰과 기독교복음침례회의 공방에서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손을 들어주었다. 종합해보면 청해진해운 및 관련사들과 유병언 전 회장의 관계는 아무런 입증도 되지 못한 것이다. 검찰이 유 전 회장의 ‘그림자만 쫓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검찰이 만들어낸 ‘왝 더 독(wag the dog)

 

▲ 2014년 6월 22일 MBC 정오뉴스 화면 갈무리

 

세월호 참사 이후 유병언 전 회장에 대한 그림자 쫓기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지난 4월 9일 뉴시스 보도에 의하면 청해진해운은 “알려진 것과 달리 부도나 파산 절차를 밟지 않고 법인을 그대로 유지”했으며 다만 면허 취소에 따라 소유 선박인 “데모크라시1·5호와 오가고호·오하나마호가 경매에 넘어갔”다. 또한 경기 안성시 금수원(기독교복음침례회 안성교회)은 지난해 내걸었던 “우리가 남이가! 김기춘 실장, 갈데까지 가보자!!!”와 같은 현수막을 철거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검찰은 “유 전 회장 부인과 자녀, 형제를 비롯해 십수명의 계열사 대표와 측근들을 수십·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했지만 “지난 2월 법원에서 권윤자(부인)씨와 대균씨의 상속 포기 신청을 받아들여 이들은 정부의 구상권 청구나 재산 몰수에서 자유로워졌”고 유혁기 씨와 유섬나 씨에 대해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을 벌일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비슷한 시기에 연합뉴스도 “청해진 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일가와 측근 대부분의 수사도 성적표는 초라하다”며 “부인 권윤자 씨와 송국빈 다판다 대표, 탤런트 전양자 씨 등 측근 대부분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도피를 총괄한 혐의로 기소된 오갑렬 전 체코 대사는 무죄를 선고받았”고 “최측근 김혜경 한국제약 대표를 어렵게 잡았지만 유병언 차명재산의 실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라고 전했다. 연합뉴스가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를 유 전 회장이 아니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일가’라고 표시한 부분이 눈에 띤다.

검찰은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나흘이 지난 2014년 4월 20일경부터 유병언 전 회장을 비리 주범으로 지목하며 수사의 방향을 틀었다. 이후 유 전 회장의 신상과 차명재산 문제, 그리고 유 전 회장에 대한 추적과 체포 여부가 세월호 참사 정국의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유 전 회장은 청해진해운 및 ‘유병언 계열사’들의 실소유주로 입증되지도 못했고, 결과적으로 대중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검찰 수사는 착시효과만을 불러왔을 뿐이다. 전형적인 ‘왝 더 독(wag the dog)’이다.

한편 국정원이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제기한 이재명 성남시장은 보수단체로부터 국정원 명예훼손 및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고발당했으나, 지난 4월 30일 서울중앙지검은 무혐의 의견으로 불기소결정을 내렸다.

문형구·이재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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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6/3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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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0대 총선에 나선 정당은 모두 몇 개일까? 모두 21개였다. 유권자 가운데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고, 정당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아래 그래프는 민언련이 총선 동안 주요 언론들의 각 정당별 보도양을 분석한 것이다. 기성 언론들은 주로 거대 정당에만 관심을 뒀다.

▲ 3월 25일부터 4월 2일 사이 민언련이 분석한 주요언론(신문6개, 지상파3개, 종편4개)의 정당별 보도량, 새누리당이 압도적이다. 원내 정당인 정의당 조차 2.%대에 머물렀고, 녹색당은 0.2%였다.

▲ 3월 25일부터 4월 2일 사이 민언련이 분석한 주요언론(신문6개, 지상파3개, 종편4개)의 정당별 보도량, 새누리당이 압도적이다. 원내 정당인 정의당 조차 2.%대에 머물렀고, 녹색당은 0.2%였다.

기성 언론들이 거대 정당에만 관심을 두는 사이,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기성언론이 주목하지 않은 정당의 후보들, 그 중에서도 청년 후보 2명과 이번 총선을 같이했다. 노동당 비례대표 1번 용혜인(25살) 씨와 경기도 수원을에 민중연합당 후보로 출마한 박승하(33살) 씨다.

▲ 지역을 돌며 선거운동을 하는 박승하 씨, 이번 총선 동안 하루 평균 300명을 만났다고 한다. 승하 씨가 속한 민중연합당은 올해 2월 창당한 연합정당이다

▲ 지역을 돌며 선거운동을 하는 박승하 씨, 이번 총선 동안 하루 평균 300명을 만났다고 한다. 승하 씨가 속한 민중연합당은 올해 2월 창당한 연합정당이다

 

▲ 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나온 용혜인 씨, 25살로 최연소 비례 후보였다. 노동당은 진보신당의 후신이다.

▲ 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나온 용혜인 씨, 25살로 최연소 비례 후보였다. 노동당은 진보신당의 후신이다.

승하 씨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16년 동안 알바와 비정규직을 해왔다. 스스로 ‘흙수저’를 자칭한다. 기성 정치가 대변하지 못하는 사람들,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총선에 나섰다고 한다. 승하 씨의 선거 전략은 대화다. 총선 동안 하루 평균 300명을 만났다고 한다. 그러나 낯선 정치인 승하 씨를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반응은 그리 신통치 않았다.

▲ 박승하 씨는 선관위의 양해를 얻어 고가도로 밑에 천막을 설치해 선거운동기간 임시 사무소로 사용했다.

▲ 박승하 씨는 선관위의 양해를 얻어 고가도로 밑에 천막을 설치해 선거운동기간 임시 사무소로 사용했다.

승하 씨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15평 남짓 다세대 주택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보증금 8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이다. 어머니는 횟집에서 주방 일을 한다. 승하 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생활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승하 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학비와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알바와 비정규직 일을 해왔다. 공사장, 대형마트, 주유소, 식당, 산림청 간벌 작업까지. 그의 명함 뒷면에는 16년 동안 어디에서 얼마를 받고 일했는지, 이력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 승하 씨의 후보 공식 명함 뒷면, 지금까지 일했던 알바와 비정규직 일자리가 빼곡하다.

▲ 승하 씨의 후보 공식 명함 뒷면, 지금까지 일했던 알바와 비정규직 일자리가 빼곡하다.

승하 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총선 출마가 마뜩치 않았다고 말했다. 아들의 출마가 무모해 보였고, 가진 것도 없이 거대한 기성 정치의 벽에 도전하며 몸부림 치는 모습이 안쓰러워 차마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선거 운동 초기에는 아들의 선거 운동을 일부러 외면했고, 선거 사무소에도 들르지 않았다. 그런데 선거 중반 이후 아들과 함께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난생 처음 선거운동이었다. 명함을 건네는 어머니의 모습이 몹시 어색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제발 무사히 선거를 마쳤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 승하 씨의 어머니가 거리에서 유권자들에게 아들의 명함을 건네고 있다.

▲ 승하 씨의 어머니가 거리에서 유권자들에게 아들의 명함을 건네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최연소 후보인 혜인 씨는 2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가만히 있으라’는 침묵 시위를 제안했다. 세월호 참사는 혜인 씨가 정치에 뛰어들게 한 시발점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총선 후보’인 혜인 씨가 가장 해결하고 싶은 현안이다. 혜인씨는 SNS를 중심으로 소통하며 선거운동을 했다.

▲ 4월 9일 세월호 2주기 행사에 참여한 용혜인 씨가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그는 SNS를 통해 소통하며 선거운동을 했다.

▲ 4월 9일 세월호 2주기 행사에 참여한 용혜인 씨가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그는 SNS를 통해 소통하며 선거운동을 했다.

승하 씨와 혜인 씨, 이 두 청년의 총선 성적표는? 물론 예상대로다. 혜인 씨가 속한 노동당은 전국 정당투표에서 0.38%(득표수 91,795)를 얻었고, 승하 씨는 지역구에서 1.98%(득표수 2,145)을 얻어, 꼴찌였다.

현행 선거 체제가 1등이 모든 것을 다 차지하는 승자 독식 구조라고 하지만 2, 3등은 물론 꼴찌라도 의미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승자보다 더 아름다운 패자를 볼 수 있는 것도 선거의 묘미다. 선거를 민주주의 꽃이라고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취재작가 : 박은현
글 구성 : 정재홍
연출 : 김한구

토, 2016/04/1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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