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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은 어떤 세상에 살고 싶습니까?– 절망사회를 건너는 11개의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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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은 어떤 세상에 살고 싶습니까?– 절망사회를 건너는 11개의 시대정신

익명 (미확인) | 화, 2017/02/28- 09:50

■ 소개

촛불 다음에 우린 무엇을 해야 하나?
대한민국의 5년 후를 어떻게 그려야 할까?

민간싱크탱크 희망제작소와 오피니언 리더 11인의 진단과 전망!
그리고 빅데이터로 분석한 지금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

지금 한국의 위기를 초래한 국가주도 성장지상주의 모델 ‘박정희 모델’과 시장주도 성장지상주의 모델 ‘IMF모델’을 뛰어 넘는 사회운용 모델로 ‘공동체 주도 지속가능발전 모델’을 제시했다. 책 속에는 이러한 시대정신과 미래가치를 찾고 새로운 사회운용 모델을 그리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생생한 경험과 창의적인 제안이 촘촘하게 들어 있다. 지금 사회 구성원들 각자가 실감하는 고통과 무기력함의 실체와 원인이 무엇인지, 그래서 앞으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내놓은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는 여러 차례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낸 정치적/사회적 변화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변화의 성과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거나, 기득권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쓰인 안타까운 기억도 갖고 있다. 또 다른 대변화의 순간을 앞두고 있는 지금, 이 책 <지금 당신은 어떤 세상에 살고 싶습니까?>의 눈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원하는 5년 후 한국 사회를 향하고 있다.

■ 목차

서문 /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가

1. 사회양극화 : 한국은 봉건사회로 회귀 중 – 이헌재
: 닫힌 사회를 열린 사회로 전환시켜야 한다.

2. 사회적 대타협 :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7~8년뿐 – 장덕진
: 이중화, 민주주의 훼손, 고령화 문제의 악순환

3. 임금격차 : 다음 세대는 ‘유령 인간’ – 장하성
: 경제성장 해봐야 재벌만 더 부자 된다

4. 사회안전망 : 복지는 종합적 안전망이다 – 오건호
: 세금 더 낼 준비를 하자

5. 정치의 실종 : 책임지지 않는 ‘선출된 군주정’ – 박상훈
: 더 정치적으로, 더 정당 중심으로 가자

6. 시민공공성 : 해방적 파국 통해 다시 태어나야 – 조한혜정
: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

7. 실패의 공포 : 시행착오를 공공재로 – 이정동
: 실패 없이는 축적의 시간도 없다

8. 인재다양성 : 창의적 인재를 기를 수 있다고? – 정재승
: 일사분란한 사회는 불행하다

9. 기후변화의 위기 : 화석연료시대의 종말 – 윤순진
: 에너지정책이 세상을 바꾼다

10. 세습사회 : 금수저 아버지가 모든 곳에 있는 사회 – 주성하
: 북한은 권력자 혼자 세습, 남한은 100명이 나눠서 세습

11. 공동체의식 : 돈 때문에 통일을 포기해야 하나? – 윤영관
: 한반도 통일과 사회개혁은 공동체성 회복으로

인터뷰 분석 / 안전한 놀이터와 지속가능한 삶을 향하여

■ 책 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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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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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허핑턴포스트코리아 공동기획
시대정신을 묻는다⑩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

001

“세습 사회라는 점에서 북이나 남이나 공통점이 많다.”, “자유의 측면에서 보면 북한이 더 자유로운 부분도 적지 않다.”

대한민국은 이런 말을 공공연히 했다가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나라다. 테러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보다 흔하게는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북한 가서 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는 그런 데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는 속된 말로 ‘까임방지권'(욕먹지 않을 권리라는 뜻으로 현역 군필 연예인들에게 주로 쓰임)이라 불리는 자격이 있다. “북한 정권의 3대 세습이 싫어 남한으로 왔고 평생 김정은 체제에 맞서 살겠다”고 당당히 밝혀왔기 때문이다.

“기술이 더 발달하면 공산주의, 자유민주주의가 의미 없어진다.”, “창조적 파괴가 주도하는 시대가 되면 후진국이 어느 순간 치고 올라와 한국보다 더 잘 살 수도 있다. 북한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 없다.”

이런 말도 거침없이 했다. 한국 사회에서 당연스레 금지돼 온 것, 알아서 입 닫고 덮어둔 것들이 실제로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나 돌아보게 하는 말이었다.

‘금수저’ 사회는 결국 ‘세습 사회’

희망제작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허핑턴포스트코리아와 공동으로 기획한 ‘시대정신을 묻는다’ 열 번째 인터뷰로 주 기자를 만난 것은 그가 가진 독특한 관점을 공유하려는 것이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북한 사회의 엘리트였다가 14년 전 탈북해 남한으로 온 뒤 공채 시험을 거쳐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고 있는 그는 남북한 사회 양쪽에 대해 ‘내부자’와 ‘외부자’의 입장을 가진 흔치 않은 사람이다. 국제부 기자로 일하며 한반도의 외교 및 지정학적 구도, 통일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오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야기를 들어볼 이유가 충분했다.

인터뷰는 이원재 희망제작소장의 진행으로 지난 3월23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스페이스노아에서 이뤄졌다. 주 기자는 첫 번째 질문인 “현재 한국 사회를 진단해 달라”는 데 대해 “강고한 기득권이 통로마다 꽉 막고 있는 사회”라고 답했다. “지금은 한국 사회에서 역사적인 기점”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기득권의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부정적인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002

“한국은 6‧25 전쟁 이후 산업화 시대를 모범적으로 헤쳐 왔습니다. 문제는 그 성공 신화가 아직까지도 남아 앞을 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새로운 도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인데 모든 분야, 길목마다 기득권이 사회발전을 꽉 막고 있어요. 자연히 극복되기에는 한국 사회의 유연성이 너무 떨어져 있고, 여러 가지 역량이 한계치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기득권이 막고 있다는 ‘모든 분야’에는 정치‧행정‧경제‧교육 등이 망라되지만, 특히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직업들마다 기득권, 즉 ‘금수저 아버지’가 놓여 있다고 주 기자는 지적했다. 재벌만이 아니라 의사, 법조인, 언론인 등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여유가 보장되는 직업들마다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한 개인들의 좌절감이 더 크다고 그는 진단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은 상당 부분 ‘세습 사회’라는 것이다. 그의 ‘세습’ 언급은 남다른 느낌을 준다. 앞서 설명한 대로 자기 삶의 터전을 바꿨을 만큼 ‘북한 정권의 3대 세습’에 비판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여기 살면서 깨달은 것은 “북한은 권력자 혼자서 다 가지고 세습하는 사회라면 남한은 한 100명쯤이 나눠서 세습하는 사회”라는 것이었다.

“직장 스트레스는 남한이 열 배 크다”

남한에 와서 크게 깨달은, 북한이 더 나은 측면은 또 있다. 일하는 환경에서의 자유에 대한 부분이다.

“남한에 온 탈북민 대부분은 공통적으로 ‘자유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탈북자들 중에 정말 자유롭게 사는 사람을 거의 못 봤습니다. 과거 사회주의 노선을 걸을 때 북한에는 분명 이동의 자유가 없었고, 경제활동의 자유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남한보다 자유가 큰 부분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일하는 환경 안에서의 자유예요. 직장 생활에 스트레스라는 게 거의 없거든요.”

북한은 100% 고용제 사회이고, 직장 내에서 사장이나 상사의 권한이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그냥 다른 직장으로 옮기면 된다고. 한국에서와 같이 ‘윗사람에게 잘못 보이면 해고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은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상당히 평등한 직장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고 주 기자는 전했다.

003

물론 국가 권력자를 욕하면 ‘그길로 잡혀가서 죽는’ 사회인 것도 분명하다. 그게 더 심각한 자유의 억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주 기자는 “기독교 모태신앙인 사람이 하나님 욕 못 해서 고통스럽지 않듯이, 북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권력자 욕을 안 하는 것으로 배우기 때문에 그 점을 심각하게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대통령 욕 마음껏 한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잖습니까?”라면서.

한국 직장에 잘 적응 못 하는 탈북민들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라고 했다. 못마땅한 점이 있을 때 억누르지 못 하고 표출하기 때문에 한 직장에 오래 못 다닌다는 것이다.

“살면서 받는 스트레스 대부분은 사실 주변 관계에서 오는 것이잖아요? 한국은 일터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밥줄’과 직결된다는 위기감이 있어 자유롭지 못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직장 내 스트레스로 인한 불만은 한국이 북한보다 열 배 이상 큰 것 같아요. 여기도 천국은 아닌 거죠.”

꼭 기득권 때문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개인의 능력을 인정하는 사회라면 경쟁에서 도태되는 사람도 나오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것도 어느 정도 당연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 기자는 “정말 능력에 따른 결과라면 모르지만 실제로는 왜곡이 심하다”고 했다.

“북한 김정은에게 무슨 능력이 있는지 모르지만, 주위에서 ‘뛰어난 인물’로 만들어 주니까 그 사회에서 그렇게 통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사장 자리 물려받은 사람은 가만히만 있어도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경영자로 포장해 줍니다. 반면에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은 제 능력만큼 인정받을 기회도 없죠. 그런 왜곡이 점점 고착화되기 때문에 ‘금수저’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 아니겠습니까?”

빠른 기술발전은 후진국에 오히려 기회다

한국 사회에서 ‘흙수저‧금수저’ 논의는 최근 들어 대두됐다. 주 기자가 한국에 온 14년 전만 해도 불평등에 대한 인식은 크지 않은 편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처음 한국에 와서부터 이런 점들을 느꼈다고 했다.

“제가 어쩌면 너무 기대가 컸는지, 유달리 예민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배고파서 탈북한 사람들은 여기 와서도 그런 점들이 안 보일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 사회의 불평등, 불공평함, 퇴행적인 것들이 싫고 신물 나서 온 것이기 때문에 더 잘 보이는 것 같아요.”

이쯤 되면 아무리 ‘까임방지권’이 있어도 “도로 북한 가라”거나 “다른 나라 가서 살라”는 비난 댓글이 예상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어차피 이상적인 나라는 없습니다. 현실의 문제를 인정하고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시켜 가는 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노력하면서 살아가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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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되지 않을 경우, 이대로 가면 한국 사회는 어떻게 될까? ‘시대정신을 묻는다’ 인터뷰의 두 번째 질문에 그는 “기득권 장벽이 더 공고해지고 변화해야 할 시기를 놓치면 결국 세계적 경쟁에서 심각하게 뒤처지는 후진국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고비를 넘지 못하면 후손들에게 ‘선조들은 왜 저렇게 한심했을까?’하고 평가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소 독특한 시각이 보였는데, 주 기자는 “나는 과학기술 신봉자”라면서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미래 사회의 변화에 대한 예측을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으로 말했다. 그런데 그 예측의 범주가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 혹은 북방 지역과 중국까지 연결된다는 점이 달랐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 로봇 등의 영향으로 어차피 지금 있는 직업 대부분이 사라진다”는, 요즘 자주 제기되는 주장은 “미국 알래스카 주, 북유럽처럼 기본소득이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연결되는데,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단위로 자원을 공평하게 나눠주면 결국 공산주의 체제와 비슷해지는 것이므로 이념이니 남북이니 하는 논의가 의미 없게 된다”는 전망으로 이어진다. 그것도 “반세기 안에 그런 시대가 온다”는 주장이다.

또 “후진국이 갑자기 치고 올라와 우리보다 더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과학기술이 비약적 발전되면 단계적 산업 기반이 필요 없어지기 때문이다.

“1980년대 한국에서 비디오테이프로 영화 볼 때 중국은 ‘비디오’라는 말을 몰랐습니다. 1990년대 CD가 나왔을 때는 중국에서도 사용했죠. 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에서는 비디오도 CD도 몰랐지만 지금은 USB에 담긴 영화를 컴퓨터로 봅니다. 선진국이 기득권의 장벽을 넘지 못해 머뭇거린다면 후진국이 언제든지 뛰어넘을 수 있게 된 겁니다.”

이는 “오히려 기득권으로 얽힌 복잡한 구조가 없는 사회가 미래 사회에 맞는 인프라를 구축하기 쉬울 수 있다”는 예측으로 이어졌다. 주 기자는 “3D프린터로 집을 짓고 도로를 놓으면 건설비용이 현재의 20%밖에 안 든다고 한다”면서 “그런 기술은 이미 상용화 돼 있고, 중국이 크게 앞서가고 있다”고 했다. 또 우리가 기존 금융산업의 반대로 ‘엑티브 엑스’도 없애지 못하는 동안 중국에서는 ‘핀테크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도 했다.

“북한‧아프리카처럼 인프라가 없는 나라들에는 그 의미가 엄청나게 큽니다. 이런 나라들이 어느 날 작심하고 외자유치를 해서 무인자동차용 도로를 깔고, 진공고속열차 선로를 깔고, 신산업의 기반을 건설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또, 최첨단 핀테크가 가능한 웹 인프라를 갖추면 어떻게 될까요? 어느 나라에선가 이런 기적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지요.”

이 말 끝에 주 기자는 “북한의 경우 김정은 체제가 무너지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북한도 지금은 김정은 정권이라는 기득권에 가로막혀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형태가 한국보다 단순하다는 점, 토지가 모두 국가 소유인 점 등을 감안할 때 체제 변화만 이뤄지면 비약적 발전이 가능하리라는 의견이었다.

교육‧정치부터 바뀌어야 가능성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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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기자가 북한을 다시 언급한 것은 한국 사회의 통일에 대한 고정관념을 꼬집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현재 한국에는 통일에 대한 생각으로 통일이 되면 북한에 부족한 인프라를 까는 과정이나 북한 주민의 저렴한 노동력 등으로 한국 경제가 기회를 얻을 것’이라는 식의 ‘통일대박’론, 반대로 통일이 되면 북한 사람들이 전부 남한으로 쏟아져 내려와 사회혼란이 야기되리라는 우려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짚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먼저 ‘통일대박’론에 대해서는 “10년 안에 통일이 되면 모를까, 그 뒤라면 그런 과실은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때쯤엔 한국에 중국보다 앞선 경쟁력을 유지하는 산업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중국의 과학기술력 및 경제발전 속도로 볼 때, 그리고 남북 관계가 지금처럼 유지된다고 가정한다면 모든 산업적 기회는 중국이 독차지 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북한 인구의 남한 유입 우려에 대해서는 “사회가 개방되고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면 고향을 떠나 선진국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꼭 남한으로만 온다는 보장은 없다”고 했다. 중국, 서방국가, 연해주를 비롯한 북방 지역으로 갈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면서 “특히 한국 사회가 북한 주민을 ‘저렴한 노동력’으로만 대우하려고 하면 더 안 올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이야기들에는 더 이상 북한과 남한이 멀어져서는 안 된다는 안타까움이 들어 있었다. 주 기자는 “정말 통일을 원한다면 보다 현실을 정확히 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통일 정책의 답은 분명히 정해져 있습니다. 북한이 어떤 상황일 때 통일이 되면 우리가 그 충격을 흡수할 수 있을지 가늠해보고, 충격을 최소화하는 상황으로 북한을 변화시켜 가야 하는 것이죠. 북한이 시장경제 훈련이 안 돼 있고 국민소득이 1,000달러도 안 돼 있기 때문에 감당하기 버겁다면 그 균형을 맞추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북한을 시장경제로 유도해 소득을 높이도록 말입니다. 그러자면 개성공단을 열 개, 스무 개 만드는 것이 올바른 방향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지요. 북한과 통일 문제를 정치적으로만 활용하려는 정치권의 자세가 안타깝습니다.”

‘한국 사회 개선을 위해 지금부터 시급히 해야 할 일’에 대한 세 번째 질문에 주 기자가 내놓은 답은 ‘교육’과 ‘정치’ 시스템을 고치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에 와서 교육과 보육 시스템을 보고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면서 특히 교육 시스템은 산업화사회에 맞는 인력을 대량으로 배출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고 짚었다. “학벌을 얻기 위해 학생들이 밤늦도록 학원에서 ‘찍는 기술’을 배우고, 스무 살 때 공부한 성적으로 일생이 결정되는 사회에서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재가 나올 수 있겠느냐?”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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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환경을 바꾸려면 “유아부터 대학생까지 큰 맥락으로 보고 관리하는 교육 정책, 각자 가진 능력을 발현할 수 있도록 단계별로 제대로 키워주는 공교육 시스템이 회복돼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도 기득권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다시 강조했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이 비대해지는 잘못된 방향이 뻔히 보이는데도 그 흐름을 바꾸지 못 하는 것은 결국 교육계의 기득권들이 통로를 막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치에 대해서는 “개인의 이익과 이해관계를 위해 정치 대표자가 되려는 사람들을 용인하는 구조를 뜯어 고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정치 지도자는 기득권의 장벽을 단호하게 부수는, ‘창조적 파괴’로 이끌 지도자”라면서 현재 정치 풍토에선 그런 지도자가 나올 수도, 살아남을 수도 없다고 했다. 따라서 정치 체제를 혁명적으로 바꿔야 미래를 걸고 국민 앞에 나서는 지도자가 나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그는 “북한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북한을 배워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했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 여러 가지 예를 들었을 뿐”이라고. 그렇지만 한국 사람들이 왜 행복하지 않은지 생각하면 평양이 떠오를 때가 있다고 했다.

“평양에 살 때 참 좋았구나 싶은 것은 대동강변이에요. 강변 바로 옆에 도로가 없어서 젊은이들이 자연을 충분히 누리며 노래도 부르고 연애도 하고 그랬지요. 서울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여기 젊은이들은 영화 보고 밥 먹고 차 마시는 것 밖에 누릴 게 없더라고요. 저도 예전에는 외워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300곡도 넘었는데, 지금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사느라고 바보가 된 것 같네요. 평양과 서울의 차이는 고작 그런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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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야기라고 하면 특이하지만, 누구나 이전 시대에 누렸다가 지금은 잃어버린 것에 대해 떠올리곤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극히 보편적인 이야기였다. 어찌 보면 앞으로만 갈 게 아니라 뒤도 보고 옆도 봐야 한다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정리 : 황세원 | 사회의제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사진 : 이우기 | 사진작가

오는 6월 15일 서울시청 시민청 동그라미방에서, 그동안 진행된 인터뷰를 정리하고 결과해석 및 2016년 시대정신을 제시하는 ‘시대정신을 묻는다 결과 발표 간담회’가 열립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자세한 내용 보기

목, 2016/06/0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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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허핑턴포스트코리아 공동기획
시대정신을 묻는다⑪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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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께서 저희 보고 앞으로 사회 나가서 이웃의 삶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봤습니다. 저희가 왜 그래야 하나요?”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장관이 전한, 어느 서울대 신입생이 했다는 말이다. 지난 2월 정년퇴임하기까지 25년간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로 재직한 윤 전 장관은 최근 9년 동안 일종의 멘토링 프로그램인 ‘신입생 세미나’에 꾸준히 참여했다. 여기서 신입생들을 만날 때마다 “서울대 학비가 싼 것은 네가 배운 것을 공동체를 위해 쓰라는 뜻이다”, “잘 배워서 이웃을 위해, 세계 시민을 위해 사용하라”는 말을 해 왔는데, 한 학생으로부터 위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이 말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면서도 윤 전 장관은 “그 학생 잘못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게 가르쳐 온 어른들의 생각 속에 ‘낙오되면 죽는다’는 위기감이 있기 때문이고 이는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의식’이 사라진 결과”라는 해석이다.

희망제작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허핑턴포스트코리아와 공동으로 기획한 ‘시대정신을 묻는다’ 시리즈의 마지막 인터뷰를 위해 지난 4월 14일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에서 윤 전 장관을 만났다. 지난 10회의 인터뷰 동안 한국 사회를 진단해 온 것에 한반도의 외교적‧지정학적 상황에 대한 분석, 통일에 대한 관점을 더함으로써 시리즈를 마무리하고자 한 것이었다.

‘같이 잘 살자’는 의식 없어진 한국 사회

인터뷰는 이원재 희망제작소장의 진행으로 두 시간 이상 이어졌다. 그중에서 위의 내용을 가장 먼저 적은 것은 인터뷰의 핵심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로 ‘공동체의식이 사라진 것이 한국 사회 여러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라는 의견이다. 통일과 교육, 복지, 정치에 대해 말할 때도 일관되게 ‘공동체 의식’을 중심에 두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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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도 갈등이야 있었겠지만 우리 국민에게는 ‘같이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의 공동체로서 함께 번영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식이 늘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 발전의 동력이었지요. 그게 서서히 약화되고, 사람들이 원자(原子)화돼서 개별 이익에 몰입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도 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 해체와 함께 윤 전 장관이 지적한 한국 사회의 문제는 ‘미래에 대한 준비 부족’이다. 그중에서도 한반도의 미래, 즉, 북한과 통일에 대한 준비 부족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윤 전 장관은 “북한 내부의 흐름으로 볼 때 체제 변화는 짧으면 5년, 길게 잡아도 10년 내에는 온다”고 전망하면서 “그때까지 정치적 구호로서가 아니라 정말로 통일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그 측면이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특히 남북 관계에 일대 전환이 일어날 수 있는 시점을 ‘2018년 봄’으로 특정했다. 미국과 우리나라 대선이 연달아 있으므로 그때까지는 북한도 미국도, 또 우리로서도 입장을 유보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존 케리 미 국무부장관이 지난 2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함께 언론브리핑을 했을 때 ‘북한이 비핵화 논의에 진지하게 나온다면 평화협정 전환도 가능하다’고 분명히 말했지요. 미국 정부는 대북 제재를 강하게 밀어붙이기는 하지만 그 목표는 어디까지나 붕괴가 아니라 협상입니다. 2018년 봄은 전환을 시도해볼 중요한 시점인 것이죠.”

문제는 그 전에 예기치 않은, 의도하지 않은 남북 간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다. 그랬다가는 중요 시점을 허무하게 넘겨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윤 전 장관은 “그때까지 남북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남북 간 소통 채널이 끊어져 있기 때문이다.

“남북 당국자 간에 대화 통로가 어떤 형태건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와 충돌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자면, 북한 비행기가 우리 영공으로 날아온다 할 때 단순한 사고인지 도발인지 먼저 확인해야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게 정상적인 겁니다. 이 채널이 없으면 의도하지 않았던 사고도 양쪽의 오해로 상승작용을 거쳐 통제 안 되는 상황으로까지 번질 수도 있기 때문에 걱정입니다.”

“북한까지 공동체로 회복하는 것이 통일”

물론, 늘 예측 불가능성으로 무장하고 도발해 오는 쪽은 북한이 아니냐는 지적도 가능하다. 윤 전 장관도 “현재 남북 관계의 많은 책임은 북한에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 하에서 최선의 대북정책을 찾는 게 한국 정부의 몫인 것도 분명하다고.

“상식적이고 대화가 통하는 북한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그렇지 않더라도 그때 그때의 도발에 흔들리지 않을 대북정책 기조를 세워왔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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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쉬운 것은 남북 주민 간 교류가 완전히 단절된 것이다. 윤 전 장관은 남북한 주민들 간에 서로 통합하려고 하는 힘을 ‘구심력'(求心力 : 원운동에서 원의 중심으로 향하는 힘)으로 표현했다. 이 구심력이 있어야 계속 더 만나고자 하는 의지도, 통일을 향한 내부 동력도 생기고 통일 이후 통합과정도 순조로울 텐데 그러지 못 해 남북이 물과 기름처럼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핵 위기가 있더라도 비정치적‧비군사적인 협력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의료‧보건, 환경 분야가 대표적입니다. 의료시설과 약이 부족해 북한 주민들이 고통을 받는다면 인도적 차원에서 도울 수 있는 일이고, 환경을 위한 협력은 우리 국민들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누군가의 말대로 페니실린이 핵무기로 바뀌지는 않으니까요. 그런 노력이 없었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철수’라는 극단적 조치까지 취한 상황에서 다소 먼 얘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윤 전 장관은 “비핵화를 위한 대북 제재 공조를 위해 미국‧중국을 설득하려는 현 정부 입장에서는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면서 “우리가 개성공단을 열어두고 대북제재를 하자는 게 자기모순처럼 느껴졌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렇지만 “꼭 ‘영구 철수’라는 입장을 취하지 않아도, 우리의 요구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중단한다는 입장표명만으로도 효과는 동일하고 향후 활용할 ‘카드’도 마련됐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윤 전 장관이 제시하는 ‘일관된 대북기조’는 바로 ‘공동체 회복’이다. “김영삼 정부 이후 이미 우리 통일방안의 핵심 개념은 ‘민족공동체’였다”고 상기시키면서 “한국 사회의 공동체성 회복의 범위에 북한 주민까지 포함하고, 품어 안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가능한 통일방안”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서 윤 전 장관은 2013년 6개월 간 독일 베를린에 머물 당시 들은 내용을 전했다. 독일 통일에 있어서 1982년 당시 헬무트 콜이 이끄는 기민당 연립정부가 경쟁 정당인 사민당의 동방정책, 즉 동독을 비롯한 공산권과의 교류를 강조하는 정책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큰 계기가 됐었는데, 그 이유에 대한 것이다.

“당시 통일에 관여한 국회의원, 전문가들의 설명은 한결같았습니다. 기민당 정치지도자들은 아데나워 총리 이후 ‘서방정책’, 즉 우방인 서방 국가들과의 교류를 우선시 한다는 정책을 고수했지만 어느 순간 우방들의 주된 관심사는 통일이 아니라 현상유지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아무리 동맹국이 중요해도 이렇게 입장이 다르다면 방향키를 돌려야겠다고 결단한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주인의식이겠지요.”

윤 전 장관은 “독일은 통일정책뿐 아니라 슈뢰더 총리 때도 경제 개혁과 관련해 과감하게 초당적인 결단을 내려왔기 때문에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에도 잘 버텨올 수 있었다”면서 “우리는 국가의 이익 앞에서 정당 이해관계를 초월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정치인들을 가졌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돈 많이 드는 통일 원치 않는’ 이상한 나라?

여기서 잠깐, 과연 통일은 한국 입장에서 ‘국가 이익’인 것이 분명할까? 한국 국민들도 주변 국가들 못지않게 ‘현상 유지’를 더 원하는 게 아닐까? 어느 정도일지 모르는 혼란을 감당하기보다는 그쪽을 택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싶어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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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윤 전 장관은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 전한 서울대 신입생의 질문과 다르지 않게 들렸던 것 같다. “지금 세대가 자라면서, 공부하면서 배운 것들을 생각하면 그런 생각들이 일반적일 수도 있겠다”면서 그는 독일 통일과 관련된 이야기 하나를 더 꺼냈다.

4년 전쯤, 독일 통일을 주도했던 인사 20명이 한국을 방문했고 독일의 권위 있는 주간지 ‘슈피겔’이 이들을 인터뷰했는데, 그들이 방한 후에 “한국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고 전했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돈 많이 드는 통일은 원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게 이해가 안 간다는 겁니다. 어찌 보면 한국보다 훨씬 앞선 자본주의 국가인 독일 사람들 눈에도 우리가 굉장히 비정상적인 겁니다. 한 나라가 유지해야 할 기본적인 가치, 공동체의 정신을 깡그리 잊어버린 상태에 와 있는 것입니다.”

윤 전 장관은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지금 민족, 국가의 상태가 지극히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정상 상태로 돌려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잘라 말했다.

“긴 역사 속에서 겨우 70년 동안의 남북 분단이고, 군사 대치 상황인데 이를 마치 정상적인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도 되는 것인가”라고 했고, “이대로 유지하는 게 낫다는 것은 내 손자손녀, 또 그 뒤 후손들의 행복을 당장 내가 편하게 살고자 희생시키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이라고도 강조했다.

즉, 통일은 “비용 계산 이상의 근본적인, 정신적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통일 비용’에 대한 인식 자체에도 오해가 있다고 부연했다.

“통일 상황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모두 우리 국민 세금으로 감당하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상당 부분은 국제 자본시장의 도입, 투자 등으로 충당될 수밖에 없지요. 우리가 내는 비용이 있다고 해도 중장기적인 ‘분단의 비용’, 즉 군비라든지 남북대결, 여러 사회적 비용, 예측 불가능성에 따른 비용과 비교해본다면 훨씬 작을 것입니다.”

교육 개혁과 복지 시스템은 연결돼 있다

이렇게 ‘경제적 이득’으로 설명해야 그나마 이해하는 한국 사회를 안타까워하면서 윤 전 장관은 그 원인을 1960~1970년대의 ‘개발연대’에서부터 시작된 ‘성장제일주의’에서 찾아야한다고 말했다.

가난 극복을 위해 열심히 일한 결과 경제 성장에는 성공했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게 된 우리 사회에 ‘정신적 빈곤’이 남았다는 것이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시장 만능주의의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이 현상이 한국사회 전반으로 확산됐고 양극화도 심화됐으며 그 결과 공동체 의식도 실종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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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문제는 교육 시스템에서도 찾을 수 있다. “미래 사회의 방향과 교육 현실의 간극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어서 개편이 시급하다”고 윤 전 장관은 강조했다.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시키고 ‘공동체 의식’을 중심에 두는 교육이 하루빨리 회복돼야 한다고도 했다.

교육과 뗄 수 없는 부문이 ‘복지’다. 앞서 말한 ‘신입생 세미나’ 때마다 학생들에게 “뭘 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좋아하는 걸 하고 싶지만 굶어 죽지 않고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한다면서 윤 전 장관은 “현실에 대한 불안 때문에 학생들이 공무원시험, 로스쿨, 의대로 몰려 엄청난 에너지가 국가적으로 낭비되고 있다”고 했다.

“새로운 걸 하다가 실패해도 선진 복지국가에서처럼 최소 2년은 소득의 70%는 보장받는다는 확신이 있으면 왜 그 길로 안 가겠습니까? 교육 시스템을 개혁하려면 복지 시스템도 바꿔야 합니다. 선진국을 보면 사회를 안정시키고 공동체 의식이 강하게 유지되고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하는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복지 시스템입니다. 복지가 어느 수준까지 올라가지 않으면 사회적 통합도 공동체 의식 형성도 어렵고, 성장 잠재력도 끌어낼 수 없습니다.”

윤 전 장관은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한국은 서서히 기울어져 내려가다가 쇠퇴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령화 문제도 교육 문제도 뻔히 보면서 방치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난제 해결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정치적 리더십이다. 개혁의 길목마다 막고 있는 기득권과 이익집단들의 영향력을 떨쳐 내고 미래 지향적인 결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국민들에 호소해서 증세도 설득해내야 한다. 다만 흔히 떠올리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아니다. 그런 구시대적 리더십은 문제를 심화시키기만 한다고 윤 전 장관은 말했다.

“한국 사회는 산업화와 국제 사회 영향으로 이미 다원적‧수평적‧개방적인 사회가 되었습니다. 1960~1970년대의, 비교적 단순한 농업 중심 사회나 초기 산업사회의 수직적이고 덜 개방된 구조와는 이미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정치적 리더십과 제도는 여전히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이지요. 이 간극이 오늘날 수많은 문제들의 근본 원인입니다.”

수평적, 개방적, 다원화 된 사회에서 정치적 리더는 수많은 이해집단들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을 이끌어내야 하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윤 전 장관은 “그것이 진정한 민주적 리더십”이라면서 “이것이 있어야 우리 사회의 욕구가 법과 정책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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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정부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국민 위에서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 안전하고 자유로운 ‘운동장’을 만들어 주는 환경 조성자, 경제 활동의 공정한 룰을 집행하는 심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규제 개혁의 문제도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현 정부는 ‘모든 규제는 암 덩어리’라는 입장이지만, 윤 전 장관은 “금지해야 할 것은 과거 정부 주도 경제발전 당시와 같은, 자유로운 기업 활동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규제”라면서 “공정한 시장경쟁을 위한 규제, 특히 대기업의 반시장적 행위 등에 대한 규제는 오히려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 고민하는 정치인 택하면 희망 있다”

인터뷰 내내 걱정과 안타까움을 주로 표현한 윤 전 장관이 유일하게 희망적으로 평가한 것은 지난 20대 총선 결과였다. “결과를 보고 상당히 놀랐다”면서 “지금처럼 가서는 안 되겠다는,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국민들의 요구가 강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다만 새로 정치권력을 얻은 정치인들의 행보가 중요할 것이고, 이를 제대로 알리는 언론과 시민단체의 역할도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향후 2년 정도의 행보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다음 대통령 선택으로 연결될 수만 있다면 희망은 있다는 것이 윤 전 장관의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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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공동체로서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정치인을 뽑는 것입니다. 눈앞에 정치적 이익과 자리 유지를 위해 뛰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를 보는 정치인, 정당을 골라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도 정치에 관심 있으면 열심히 준비해서 들어가라고 합니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참여하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정리 : 황세원 | 사회의제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사진 : 이우기 | 사진작가

이것으로 ‘시대정신을 묻는다’ 인터뷰 시리즈를 마칩니다. 6월 15일 서울시청 동그라미방에서, 그동안 진행된 인터뷰를 정리하여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고 2016년 시대정신을 제시하는 ‘시대정신을 묻는다 결과 발표 간담회’가 열립니다. 추후 홈페이지를 통해 후기를 공유하겠습니다. 그동안 ‘시대정신을 묻는다’ 인터뷰 시리즈에 관심 가져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화, 2016/06/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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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허핑턴포스트코리아 공동기획
시대정신을 묻는다④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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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과정 파행의 궁극적 목적은 무상급식 정당성 훼손이다.”

복지정책 전문가인 오건호(52)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과의 인터뷰 중 이 말이 귀를 확 잡아끌었다.

누리과정 파행 사태는 볼수록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는 누리과정 예산을 못 주겠다고 하고, 교육청은 어서 내놓으라고 하는 사이에 어린이집은 교사 월급을 못 준다 하고, 학부모들은 가계 부담이 늘게 됐다고 아우성친다. 국가 예산이라는 게 실시간으로 증감하는 것도 아닐진대, 왜 이런 파행이 벌어지고 장기간 공방만 오가는지 시민들로서는 알 수가 없다.

오 위원장은 “무상급식의 정당성, 즉 보편복지의 방향을 훼손해서 기존의 선택적 복지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도가 정부에 있다”고 분석했다.

“공방을 계속하다가 불가피하게 서로 타협한다고 가정해보죠, 정부가 누리과정 어린이집 몫 필요 예산의 절반, 약 1조원만 교육청에 떠넘겨도 자체 수입이 거의 없는 교육청은 아주 힘듭니다. 다른 사업을 먼저 줄이더라도 결국은 무상급식을 선별지원 방식으로 바꾸라는 압력을 받게 될 겁니다.”

학부모들도 “정부가 돈이 없다는데 어쩌겠나, 여유 있는 집에서 급식비 조금씩 내는 게 학교 시설 못 고치고 기본 교육 사업들이 파행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하고 현실적 판단을 하게 된다. 실제로 지난해 경상남도 무상급식 중단 국면의 여론조사에서 학부모들이 그런 반응을 보였다.

또한 오 위원장은 “이렇게 무상급식 정당성을 훼손하면 진보 교육감들이 가져간 교육 현장의 행정 권력을 되찾아 올 수 있다는 보수 진영의 노림수도 엿보인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복지 없는 증세’는 사실과 다르다

애초에 이날 인터뷰의 초점이 여기 있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 분석은 핵심적인 문제의식과 이어진다. “진보 세력은 뭘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2010년 무상급식 논쟁으로 보편복지 의제가 다소 갑작스럽게 대두된 이래, 이 의제를 내실화하는 데 무슨 노력을 했는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 위원장은 “이제부터라도 아래로부터 벽돌 쌓듯 복지 의제를 만들고, 복지 세력을 형성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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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허핑턴포스트코리아와 공동 기획한 ‘시대정신을 묻는다’ 인터뷰를 위해 오건호 위원장이 희망제작소를 방문한 것은 지난 2월 3일이었다. 인터뷰는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이 진행했다.

사회학 박사인 오 위원장은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을 지냈고 2012년부터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인터뷰 바로 전날(2월 2일) 출범한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이하 어린이병원비연대)의 공동대표직도 맡고 있다.

이렇게 직함만 보고 무슨 일을 해왔는지 분명히 알 수 있는 사람도 드물다. 오 위원장의 모든 활동의 지향점은 ‘복지국가'(welfare state)에 있다. 복지국가는 복지 수준이 높은 국가 정도로 이해해도 틀리지는 않지만 사회보장제도와 최저임금, 고용 제도 등이 잘 갖춰진 서구권, 특히 북유럽과 같은 국가를 일컫는 용어이기도 하다. 오 위원장은 이 복지국가의 관점에서 정부의 정책, 선거 공약 등을 조목조목 분석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자임해 왔다.

그런 오 위원장이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에 대해 ‘증세 없는 복지가 아니라 복지 없는 증세’라는 야권의 비판은 동의할 줄 알았다. 반대로 그는 “책임 있는 위치라면 그런 부정확한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요 몇 년 사이 대한민국 복지 시스템은 상당히 나아졌고 수혜자도 꽤 늘었다고 했다.

중간계층 불안 원인은 ‘사회안전망 부재’

그 자세한 설명을 듣기 전에, 그럼 우리가 왜 복지가 늘어났다고 느끼지 못 하는지를 들어보자. 이 답은 ‘시대정신을 묻는다’ 인터뷰의 첫 질문인 “대한민국 현실에 진단을 내려 본다면,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의 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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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사회를 사로잡고 있는 건 불안입니다. 어느 계층에나 불안은 늘 있지만 시대적 징후로써 강하게 느껴지는 건 중간계층의 불안입니다. 특히 현재에 대한 불안보다는 미래 불안이 큽니다. 앞으로 자신이 하향 이동하리라는 불안, 노후가 위태롭고 자식세대의 앞날도 깜깜하다는 불안입니다.”

중간계층이 불안을 느끼는 건 시스템이 희망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1980~1990년대 초반만 해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게 봤으니 계층 상향의 꿈이 있었고, 기업이 성장하는 만큼 자기 삶도 나아지리라 여겼는데, “기업이 언제든지 나를 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 믿음이 깨졌다는 것이다.

‘중간계층의 위기’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이중화‧극화가 심해지면서 서유럽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도 공통으로 겪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의 불안이 더 큰 이유가 바로 ‘복지’에 있다.

오 위원장은 “40~50대가 힘든 이유가 우리 사회에서는 한 번 삐끗하면 미끄럼틀을 탄 듯이 내려가고, 다시 오를 계단은 없기 때문”이라면서 “거기다 사회에는 받아줄 최소한의 안전판이 없다보니 계층 변화를 극도로 두려워하게 된다”고 했다.

사람들이 사회의 안전판, 즉 복지 시스템 강화를 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오 위원장은 “실제로 2010~2014년 우리나라의 복지 확대 과정은 서구 복지국가 형성과정과 비교해도 굉장히 빨랐다”고 했다.

무상급식이 시작된 지 3~4년 만에 전국으로 확대됐고, 무상보육도 논의가 시작된 지 2~3년 만에 전면화됐다. 기초노령연금이 2008년 도입된 뒤 7년 만에 두 배인 20만원으로 올랐다. 국민연금과 연계되는 방향으로 차등은 생겼지만 말이다. 대학 등록금도 애초에 과도하게 높은 것이 문제였고, 계층별 차등 지원 방식이지만 총액으로 보면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오 위원장은 이런 내용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지난 4~5년 간 복지의 양적 확대는 대단했다는 점을 꼭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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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일자리를 잃더라도, 잠시 사정이 나빠져도 복지가 있으니까 괜찮겠구나” 하는 안정감은 생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위원장은 그 이유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사회보험 복지의 취약입니다. 최근 보육과 기초연금 영역에서 복지가 확대됐지만 우리나라 복지체계의 근간은 질병‧노후‧실업 등에 대비하는 사회보험입니다. 아직 이 영역에선 복지가 제자리걸음이고 사각지대도 심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복지가 빠르게 늘어도 생활에 안정감을 줄 정도에는 이르지 못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복지 확대과정에서 형성돼야 할 사회적 연대와 협동이 빈약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오 위원장은 “복지는 단순히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종합적 안전망”이라며 “사회적 문화적 정신적 안전망까지 돼 줘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복지가 안전망이 되지 못 하는 것은, 지극히 물량주의적으로 정치권에 의해 위에서부터 선사되는 방식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하면 2010~2014년 복지 확대는 정치권에 의해 ‘포퓰리즘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복지 확대를 요구해 온 쪽에서 가장 불편해 할 말이 ‘포퓰리즘’일 것 같은데, 오 위원장은 거리낌이 없었다. “복지는 선물처럼 받는 것, 주면 좋고 안 주면 아쉬운 것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복지는 선물이 아니라 연대해서 만드는 것”

복지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일까? 복지와 연대‧협동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오 위원장은 어린이병원비연대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어린이병원비연대는 “어린이 병원비를 국가가 전액 보장하라”는 운동을 펼치기 위한 단체다. 오 위원장은 “지난해 국민건강보험 누적흑자가 17조원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어린이 병원비 전액 보장에 필요한 연간 5,000억 원은 큰 부담이 아니다”라면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공감대만 이뤄지면 당장이라도 ‘어린이 무상의료’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역시 ‘위’에서 결정해서 도입하는 방식이라면 그 다음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오위원장은 어린이병원비연대 운동에 기대가 컸다. 이 조직은 기존의 사회운동단체보다는 복지시설‧사회복지사‧어린이지원기관 등 일반 시민조직을 주축으로 한다. 이후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지역조직 등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아래로부터 함께 실천하는 경험을 통해 어린이 병원비 해결을 넘어서 공공의료를 향한 시민주체도 형성하겠다는 포부다.

물론 공공의료, 무상의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원이 필요하다. 오 위원장은 “우리부터 건강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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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의료가 하늘에서 떨어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특히 직장 건강보험은 노사가 5대 5로 내는데, 사측은 보험 수혜자가 아니다보니 이 비용이 커지는 데 강력히 저항합니다. 그럴 때 노동자부터 ‘우리도 더 낼 테니 기업도 더 내자’고 할 수 있어야 건강 보험 보장성을 올리는 데 대한 합의가 가능해집니다.”

그러지 않고 건강보험료 인상을 다 같이 반대만 한 결과가 사보험 시장 성장이다. 어린이 대상 사보험만 해도 4조원 규모다. 오 위원장은 “무상의료는 좋을 것 같긴 하지만 경로가 보이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사보험을 선택하게 된다”면서 “공적 건강보험으로도 무상의료가 가능한 경로를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그 힘을 키우자고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말정산으로 자녀공제 축소? 한 번 더 하자!”

‘건강보험료를 더 내자’는 것은 ‘세금을 더 내자’는 주장과 같은 방향이다. 오 위원장은 증세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무상의료‧무상보육과 같은 보편복지를 위해서는 증세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선별복지는 재정을 따지지 않아요. 정해진 재정을 놓고서 선별된 대상에게 복지 혜택을 주는 겁니다. 보편복지는 모두에게 가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재원이 늘어야 합니다. 세입과 세출의 두 바퀴가 같이 가야 하는 것이죠. 무상급식 국면에서 서구에서 보편복지 담론을 급히 들여오긴 했지만 증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 보니 세출 바퀴만 돌고 세입 바퀴는 제자리인, 제자리에서 맴돌면서 땅을 파고 들어가는 수레가 된 겁니다. 이대로는 복지가 더 확대되지 못하고 피로감을 주는 논란만 되풀이될 우려가 큽니다.”

보편복지가 북유럽 등에서 성공한 것은, 중상위 계층 이상에게까지 복지를 제공하고, 그 이점을 체험한 사람들이 증세에 합의하고, 이를 통해 재정이 확대되니 전체 복지 수준을 다시 올릴 수 있는 선순환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오 위원장은 이를 “코르피라는 학자가 말한 ‘재분배의 역설’, 즉 부자에게 복지를 주는 것이 재분배의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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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증세를 거부하는 데는 보수‧진보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연말정산에서 일부 계층에서 세금이 늘어난 사태를 ‘세금폭탄’이라고 공격한 야당과 진보 언론들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말정산 사태에서 논란이 된 건 자녀 관련 공제였어요. 출산을 했거나 6세 이하 자녀가 2명 이상 있을 때 세금이 늘어난 것으로 나왔지요. 제가 마침 여기에 해당되는데 두 아이가 6세 이하여서 12만원이 늘었습니다. 물론 ‘안 그래도 양육비 많이 드는데 이게 웬 세금폭탄이냐’하고 화 낼 수 있지요. 하지만 ‘이거 멋지다! 한 번 더 하자’라고 할 수도 있는 겁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오 위원장은 “자녀 관련 세금 혜택을 왜 주겠느냐?”고 반문했다. 양육비가 많이 드는데 그에 대한 사회보장이 빈약하니까 세금으로나마 혜택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2013년부터 전 계층에 무상보육이 시행됐으니 이를 감안해서 세금혜택을 줄인 것이다. 오 위원장은 “저로서는 두 아이로 인해 연간 500만~600만 원의 무상보육 혜택을 받고 세금은 12만원 늘었으므로 반가운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이거 멋지네!’ 한다면 다른 것도 시도해 보자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세액공제로 전환된 의료비‧교육비 지출 항목들을 무상의료‧무상교육을 조건으로 아예 없앨 수도 있다. 더 나아가 현재 상당 규모로 존재하는 근로소득공제‧인적공제 항목 등으로 이야기를 발전시킬 수 있다. 아동수당 도입‧기초연금 인상‧주거복지 등 다수 서민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복지와 연동해 이러한 공제까지 단계적으로 손보자고 말이다.

오 위원장은 “세금을 더 낸 대신 복지로 돌려받는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줄 수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더 있다. 그 혜택을 각자의 이득으로만 해석해서는 한계가 있다. 무상급식이 처음 화두가 되었을 때 “가난한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게 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듯이 ‘함께 잘 살자’는 생각, 공동체 중심의 관점에서 복지 확대와 증세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보편복지 성과가 ‘한여름 밤 꿈’ 안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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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증세에 저항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들이 있다. ‘직장인만 유리지갑’이라는 논리가 대표적이다. 고소득 자영업자들은 탈세를 일삼는데 직장인들만 꼼짝없이 세금을 다 낸다는 것이다. 오 위원장은 이에 대해 “이제 어느 사업장이나 신용카드 사용 비율이 무척 높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 정도까지 불합리하지는 않다”고 했다.

불요불급한 정부 지출을 줄이면 되지 왜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걷느냐는 논리도 있다. 여기에 대해서도 오 위원장은 “제일 답답한 게 증세 얘기만 하면 ‘4대강 사업 안 하면 되지’라는 반응”이라면서 “4대강 사업은 이미 끝났는데 지금 그 얘기만 해서 어떻게 진지한 논의를 할 수 있느냐”고 했다. 어차피 우리나라에서 지출 구조조정으로 조성할 수 있는 재원은 한정적이라는 게 오위원장의 판단이다. 이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덜 알려진 정보가 세금에 대한 것”이라면서 “강의 등으로 정확한 정보를 접하고 나면 증세 동의로 생각을 바꾸는 시민들이 많다”고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정리하면, 오 위원장은 우리 사회의 불안, 특히 중간계층이 무너진다는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서는 복지를 통한 사회안전망을 만들어야 하며, 이는 정치권에 요구해서 선물 받듯이 받을 것이 아니라 어떤 복지를 원하는지 뜻을 모아서 요구하고, 그에 필요한 증세에도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서 이뤄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지 못 하면 앞으로 한국 사회는 어떻게 될까? “2010~2014년 사이 잠깐 경험한 복지국가의 비전은 한여름 밤의 꿈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당장 해 나가야 하 것은 ‘복지국가’를 위해 진지하게 의제를 기획하고 전략을 짜고 확산시킬 ‘복지세력’을 구축하는 것이다.

오 위원장은 “안타깝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는 복지세력이라고 부를 만한 주체는 미약하다”고 했다. 야권 정치인들이 2010~2012년 정치적 국면에서 무상급식 정당성을 주장하고 지켜 오기는 했지만 위에서 말한 연대와 협동, 함께 만드는 복지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박근혜 정부가 막 던져 놓은 복지 정책에 대해서 비판하고, 축소 방침을 막는 데만 급급했다는 것이다.

“시민의 힘 믿고 복지의제 과감하게 기획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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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부정적이지는 않다. 오 위원장은 “우리에게는 복지국가 세력의 씨앗이 충분히 존재한다”고 했다. 2008년 촛불 시위 때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광장에 나왔던 것을 상기시키면서 “이때 외쳤던 ‘함께 살자 대한민국’의 구호에서부터 경쟁보다 협동‧연대를 지향하는 시민성이 새롭게 발견됐다”는 것이다. 2008년 이후 지금까지 협동조합‧사회적기업‧마을기업 등이 확산돼 온 것도 새롭게 발견된 시민성이 바탕이 된 것으로 오 위원장은 해석했다. 물론 2010년 이후 확대된 복지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도 소중한 밑거름이다.

또 다른 근거도 있다. 지난해 연말정산 이전까지 여러 여론조사나 학계 조사 결과를 보면 “복지가 늘어난다면 세금을 덜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찬반 응답이 절반씩 나왔다는 것이다. 오 위원장은 “단순히 세금 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저 조사에서 ‘있다’고 답한 50%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원하는 복지 수준이 가능하려면 세금을 더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한 사람들이 ‘우리 자식 세대가 살아가는 사회가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를, 승자독식보다는 실패하더라도 비참한 나락에 빠지지 않는 대한민국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응답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복지국가 세력’의 씨앗이라는 설명이다.

때문에 정치권도 보다 과감하게 복지 의제를 기획하고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오 위원장은 강조했다.
“이전까지 복지 정책에서 관전자‧수혜자였던 사람들이 이제 직접 토론하고 참여하며 의제를 쌓아 간다면 더 이상 정부도 정치권도 정책이나 공약을 막 던지고 ‘안 되면 말지’식으로는 하지 못 합니다. 더 이상 시민들이 그냥 보아 넘기지 않을 것이니까요. 그렇게 하나 둘 쌓아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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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는 두 시간 남짓으로 그리 길지 않았지만 분량은 상당했다. 말투가 온화해서 잘 느껴지지 않을 뿐 말이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최대한 쉽게 말하려 했고 사안마다 배경을 일일이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야만 상대의 공감을 구할 수 있는 분야에서 오래 일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오 위원장은 다음 회의 일정을 위해 바삐 희망제작소를 떠났다. 듣는 내내 생소하기도 하고 새롭기도 했었지만 지나고 돌아보니 아주 보편적인 이야기였다. 세금을 내는 사람과 세금의 혜택을 받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 결국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정리 : 황세원 | 사회의제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사진 : 권하형 | 사진작가
영상 : 이윤섭 |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비디오에디터

수, 2016/03/0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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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허핑턴포스트코리아 공동기획
시대정신을 묻는다⑧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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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대체되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인공지능 때문에 일자리 대부분이 없어지리라는 공포가 지난 3월 알파고‧이세돌 대국 직후 한국 사회를 거의 뒤덮었었다. 지난 4월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히브리대학 교수도 내한 때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하는 것을 넘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생각하는 사람)라는 종이 없어질 것”이라고까지 답해 불안은 더 커졌다.

알파고 충격 이후 인공지능에 대해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을 전문가인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이런 사회적 반응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진지한 논의가 시작되기보다는 충격과 공포, 불안이 확대되고 그 틈을 타고 사교육과 출판시장이 한쪽이 돈을 버는 모양새는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으로 인한 변화에 대한 진단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알파고‧이세돌 대국 후 얼마 되지 않았던 지난 3월 19일 서울 이태원동 사무실에서 만난 정 교수는 “인공지능은 일자리 지형도 자체를 바꿀 것이고, 제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업까지 전 분야에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정리했다.

특히 현재 기준으로 ‘공부 잘 하는 사람’이 위험하다고도 했다. 보통 인공지능에 대체될 일자리로 육체노동 및 단순서비스업을 떠올리는 것과는 반대다.

“지금 우리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사람이란 숫자와 언어를 잘 다루는 사람, 주어진 정보의 분석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지 않느냐?”면서 “그게 바로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창의적 인재’ 기르면 된다고?

인재의 기준이 획일적인 한국 사회가 인공지능의 위협을 느끼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정 교수는 말했다. 동시에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면 된다’는 식의 해법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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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 분석력 말고도 통찰력과 감성적 사고 능력까지 갖춘, 전뇌(全腦)적 사고를 하는 인간은 계속 중요한 역할을 하겠죠. 그렇지만 모든 인간이 그러기 힘들고, 설령 그런 인간도 일생 중에서 그 능력을 발휘하는 시간은 굉장히 짧습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인간은 기계보다 육체적 능력이, 인공지능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질 텐데 뭘 하며 살아야 할지가 문제인 거죠.”

그렇다면 충분히 불안하고, 공포스러워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정 교수는 “해법을 찾는 방향이 잘못됐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 역시 해법을 갖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 답이 당장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다양성 가운데서 예기치 못한 혁신적인 해법이 나오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얘기부터 한참 했지만, 이 인터뷰의 본래 목적은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 이대로 지속될 경우 5년~10년 후 한국의 모습,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묻는 것이다. 희망제작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허핑턴포스트코리아와 공동으로 진행 중인, 이원재 희망제작소장이 진행한 ‘시대정신을 묻는다’ 여덟 번째 인터뷰에서 정 교수가 답한 핵심은 바로 ‘다양성 부족’ 문제였다. 인공지능의 위협에 대한 분석과도 같은 방향이다.

한국 사회에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인식 자체는 새롭지 않지만, 그 심각성에 대한 진단은 전에 없이 강했다. “이대로라면 한국 사회는 심각하게 불행한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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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마치 다양성보다 중요한, 강력한 전 국가적 어젠다가 있는 것처럼 몰아가다가, 그 국가적 위협이 보이지 않게 된 후에도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는 식으로 부추기면서 다양성을 억눌러 왔어요. 그것도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집단적 폭력을 가하는 수준으로요. 그래서는 사회가 건강할 수 없고, 변화에 대응할 능력을 갖출 수도 없죠.”

그와 관련해서 정 교수는 ‘위험한 생각들’이라는 책을 소개했다. 리처드 도킨스, 제레미 다이아몬드,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등 저명한 학자들이 각자 가진 위험한 생각들을 모은 책이다. 국내에 2007년 출간된 책인데도 ‘인간은 인공지능에 대체될 것’이라는 주장부터, ‘학교는 전혀 쓸모없다’, ‘인간과 동물은 차이가 없다’, ‘범죄자가 아니라 범죄자의 유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등 도전적인 의견들이 가득하다.

정 교수는 “굉장히 기분 나쁠 수도 있고 신념 체계를 흔들 수도 있는 아이디어지만, 그 옳고 그름을 떠나서 학문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새로운 생각들을 던지고, 사회가 이를 받아서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경제성장 위해서도 ‘다양성’ 필요하다

다양한 생각들이 쏟아져 나오면 혼란도 생기지 않을까, ‘일베’류의 차별적이고 혐오를 유발하는 의견들까지 퍼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차별과 혐오는 금지돼야 한다”면서 하루빨리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했다.

“표현의 자유가 존재하려면 차별금지법도 있어야 합니다. 인종‧성별 등에 바탕한 혐오 발언, 모든 종류의 차별이 잘 규제돼야만 표현의 자유가 건강하게 확대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야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도 생겨날 수 있습니다.”

정 교수가 말하는 다양성이 필요한 이유는 첫째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개인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행복하고, 사회적 압력을 받을수록 불행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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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지금처럼 획일적인 문화가 지속되면 사회가 심각하게 불안해진다는 이유도 있다. 정 교수는 이 이야기에서 유독 “많이 걱정된다”고 했다.

“지금 우리나라에 외국인 노동자가 150만 명입니다. 농촌으로 시집온 아시아권 여성들에게서 태어난 2세들은 이미 심각한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배달일도 할 수 없다고 해요. 손님들이 기분 나빠한다면서 채용해 주지 않으니까요. 그 분노가 폭력적인 방식으로 표출된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까요? 서구권과 같은 테러가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다 같은 시민’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차별받던 사람들을 껴안아 줘야 하는데 교육‧문화‧제도 중 무엇도 준비 안 돼 있다는 게 저는 공포스럽습니다.”

앞서 ‘국가적 어젠다’가 다양성을 억눌렀다는 분석처럼, 지금도 이런 우려들은 ‘경제 성장이 먼저’라는 주장에 묻히곤 한다. 정 교수는 “경제 성장을 위해서라도 다양성 존중 문화는 시급하다”고 했다.

한국 사회는 전체주의적, 획일적 일사분란함 속에서 특정 산업을 키우거나 큰 스포츠경기를 치르는 데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이는 누군가가 ‘나는 두뇌 역할을 할 테니 너희는 나의 수족이 되라’고 하면 다수가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다’고 화답하는 문화 속에서 가능했다고 설명하면서 정 교수는 “이제는 그런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질적 성장’이 요구되는 시대”라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을 억누를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도록 하고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게 해서 창의적인 결과물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지금처럼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정확하게 같은 지식을 입력시키고, 대학의 ‘한 줄 세우기’를 통해 확인하는 방식을 유지하다가는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면서 정 교수는 “새로운 생각들이 예상치 못 한 혁신을 계속 만들어내는 사회여야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인문사회학 축소는 우리 사회의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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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획일성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곳이 학계라면서 정 교수는 스스로 몸담고 있는 과학기술계의 예를 들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들은 주로 미국 유럽에서 만든 이론과 가설을 검증하는 일을 합니다. 그걸 남보다 빨리 받아들이면 유능한 학자로 인정되는 문화가 있죠. 그래서 젊은 학자들이 좀 과격한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우리나라 안에서 가장 먼저 거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다양성 존중’이 부재한 데 따른 문제지요.”

학계가 자본과 권력에 휘둘리는 문제도 있다. 과학기술 자체가 연구에 돈이 많이 드는 영역이다 보니 자금이 나오는 쪽의 입맛에 맞추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인공지능 열풍이 불면 갑자기 수조 원이 투자되고, 많은 사람들이 급작스럽게 ‘인공지능 전문가’가 되고, 그 방향으로 연구가 쏠리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어느 학자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면 학계 내부에서조차 ‘투자 받을 좋은 기회인데 초 치지 말라’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하면서 정 교수는 “줄기세포 연구가 그 선명한 사례였는데 인공지능 연구도 그 전철을 밟을까 걱정 된다”고 했다.

이런 문제를 더 키우는 것이 ‘인문사회학의 축소’라고도 했다. 지난 5월 정부가 공학계열 대학 정원을 늘리고 인문사회계열을 대폭 줄이는 ‘구조조정’을 발표하기 전 인터뷰였는데도 정 교수는 마치 예견한 듯 “자본주의 논리에 맞춰서 획일화 하고 계획을 세우는 행태들이 우리 사회의 불행”이라고 진단했다.

“과학기술 연구가 유행을 타고 한쪽으로 쏠리면 많은 자원이 낭비됩니다. 국가 경쟁력에도 큰 위협이 될 수 있어요. 그것을 견제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 인문사회과학자들에게 있습니다. 결국은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느냐, 어떻게 해야 행복하고 지속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느냐의 관점 하에서 비전을 세워야 하니까요. 그런데 대학들이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서, 인문사회학자들이 외부에서 받아오는 연구비 크기가 작고 기업들이 단기적 관점으로 학생들을 뽑는다고 해서 대학이 이쪽을 축소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고 보니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이스라엘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에게 묻고 또 물었으면서 국내 인문사회학을 축소한다는 데 문제의식이 없는 한국 사회가 새삼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인공지능 공포 과장됐지만 과제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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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야기는 다시 인공지능으로 돌아왔다. 정 교수의 진단은 시종일관 한국 사회를 향할 뿐, 인공지능 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듯했다. 그 이유는 “알파고 이후로 사람들이 가지게 된 공포 대부분은 과학적으로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능력을 다 추월하게 된다면, 그래서 사회의 통제권까지 가져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과 같은 것이다.

“알파고를 통해 우리가 새로 알게 된 것은 직관과 추론이라는 게 인간 고유의 능력이 아니라 계산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언젠가 인간의 욕망, 감정, 그런 것을 느끼는 의식조차도 계산 가능해진다면 컴퓨터도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있겠죠. 뇌가 어떻게 그런 것을 느끼는지를 알게 된다면 컴퓨터에 넣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은 인간들 스스로가 그 생물학적 기제를 몰라요. 그래서 불가능합니다. 아주 먼 미래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요.”

다만 인공지능의 계산이 고도화될 때의 문제가 있긴 하다. 어떻게 해서 그 값을 냈는지 인간이 이해할 수 없을 때의 문제다. 정 교수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한 대목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인간들이 엄청난 슈퍼컴퓨터를 만들어서 ‘이 우주와 세계에 대한 궁극적인 답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컴퓨터가 750만년 동안 계산해서 얻은 값이 ’42’였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인간들이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세돌과의 대국에서 알파고가 어떤 수를 뒀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어서 사람들이 당황하기 시작했었죠. 그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인공지능이 의료에 사용될 때, MRI 결과 등 모든 정보를 분석해서 인공지능이 ‘이 장기를 잘라내라’고 판단했는데 그게 왜 그런지, 혹시 오류가 있는지를 의사가 알 수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처럼 기계가 도구의 수준을 넘어설 때, 인간이 통제력을 상실하고 의사결정을 의탁해야 할 시점에 혼란이 올 수 있어요. 이를 잘 다루는 것이 인류의 과제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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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인터뷰가 진행된 이태원동 경리단길의 공간은 정재승 교수가 건축가 두 명과 함께 운영 중인 건축회사 ‘마인드브릭 디자인’ 사무실이었다. ‘사람이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공간은 사람들의 소통과 심리상태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의 관점을 건축에 접목하기 위해서 만든 회사라고 했다. 당연히 중요할 것 같은 그 관점이 지금까지 건축에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데 대한 문제의식으로 건축가들과 의기투합해서 설립하게 됐다는데, 그런 혁신성 덕분에 구성원이 총 6명뿐인 작은 회사인데도 굵직한 공공 및 기업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해 오고 있다고 했다.

이 설명을 들으니 정 교수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민감하게 느끼고, 그 답이 당장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비관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를 알 듯했다. ‘다양한 생각들이 빚어내는 예기치 못 한 혁신’의 예를 스스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정리 : 황세원 | 사회의제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사진 : 이우기 | 사진작가
영상 : 이윤섭 |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비디오 에디터

목, 2016/05/1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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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2015 행복한 아파트공동체 콘퍼런스
아파트공동체 작은도서관을 만나다

■ 지음

희망제작소 시민사업그룹

■ 소개

희망제작소는 SH공사, 한겨레신문과 함께 구로, 마곡, 은평 지역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2015년 ‘행복한 아파트공동체 만들기’ 사업을 진행했다.

이 자료집은 ‘행복한 아파트공동체 만들기’ 사업 과정에서 확인한 공동체 거점공간으로서
아파트작은도서관이 지닌 가능성과 한계를 논의하고, 아파트 작은도서관에서 확보한
사회적 자본(주민 역량강화 및 네트워킹 등)이 아파트 공동체 형성으로
이어지기 위한 조건을 논의한 ‘2015 행복한 아파트공동체 콘퍼런스-아파트공동체
작은도서관을 만나다’ 콘퍼런스에서 발표한 내용을 담고 있다.

■ 목차

1. 2015 행복한 아파트공동체만들기 사업소개
2. 지속가능한 아파트작은도서관을 위한 주민조직 이해와 관계 설정
  – 박정숙 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 이사
3. 아파트공동체, 작은도서관에서 희망을 보다
  – 송하진 희망제작소 시민사업그룹 연구원
4. 토론
5. 읽을거리

■ 펴낸 날

2015.11.17.

화, 2015/11/1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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