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11월 11일부터 24일까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린다. 이번 소위원회 회의에는 한국인 원폭피해자 특별법안이 심사 안건에 포함되어 있다. 2004년, 원폭피해자 특별법 제정 운동이 시작되고 나서 처음으로 법안심사소위 논의 안건으로 상정된 것이다.
-. 한국은 제2의 피폭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원폭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법과 제도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현재 일본은 원폭피해자 1세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지원은 책임과 배상 차원의 지원이 아닌 ‘인도적 차원’에서의 지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한일정부의 업무를 위탁받아 재한 원폭피해자 피폭자 건강수첩 신청과 교부, 원호수당 및 장례비, 의료비 지원, 원폭증 인정 접수 관련 업무 등을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원폭피해자들이 받고 있는 모든 지원은 법률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 원폭피해자 특별법이 11월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의결되지 않는다면 이번 19대 국회에서 법안 제정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원폭피해자및자녀를위한특별법추진연대회의> 이남재 공동운영위원장은 “원폭이 투하된 지 벌써 70년이 흘렀다. 한국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원폭피해자들이 힘겨운 삶을 살아온 지도 70년이 되었다.”며 “오는 11일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원폭피해자 특별법이 통과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한국인 원폭피해자 특별법안이 국회에 처음 발의된 것은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이 대표발의한 17대 국회였다. 하지만 법안이 계류되다 폐기되었고, 18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조진래 의원이 대표발의한 특별법안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19대 국회에서는 원폭피해자 특별법안을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이학영 의원, 새누리당 이재영 의원, 정의당 김제남 의원이 각 대표 발의하였다.
-. 한국인 원폭피해자는 1945년 8월 6일과 9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인해 당시 강제징용, 이주 등으로 일본에 거주하다 피폭 당했다. 한국원폭2세환우는 원폭피해자의 자녀들 중 다양한 원폭 후유증을 앓고 있다. 2015년 현재 (사)한국원폭피해자협회 등록 기준으로 2,584명만이 생존해 있으며, 한국원폭2세환우회에는 약 1,300여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다.
-. 특별법 연대회의는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1세단체)와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중심으로 한 피해자단체와 더불어, 총 24개의 국내 시민사회단체 및 종교계로 구성되어 한국인 원폭피해자 1세와 2,3세 ‘환우’ 피해실태 진상조사 및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국내 정책의 수립을 목표로 지난 2012년 9월 12일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그동안 제 국회의원들과 협력하여 원폭피해자(후손 포함) 지원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법안을 제출했고, 법 제정을 위한 간담회 및 서명운동, 국회 입법토론회와 북콘서트, 국회 증언대회 등의 각종 행사 등을 진행하고, 국회 안팎에서의 기자회견과 대정부 질의서와 정책요구서 등을 제출하며 국내 원폭2세‘환우’의 현실을 알리고 이 문제를 사회적, 법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이번 4월 정기산행에서는, 충북괴산 연풍면과 충주 수안보면에 걸쳐있는 신선봉, 마패봉, 깃대봉을 오르고자 합니다. 마패봉과 깃대봉(치마바위봉)은 백두대간 주능선에 자리잡고 있으며, 신선봉은 대간에서 살짝 벗어나 있지만~ 정상에서의 조망은 단언컨대 다른 두 봉우리보다 압권입니다. 날씨가 허락한다면 백화산과 희양산 및 월악산까지 조망할 수 있고, 코앞에 펼쳐진 주흘산의 경우 흐린날씨에도 잘 보일정도입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뛰어난 특수 검사를 가리키는 ‘칼잡이’라는 말이 있다. 언론과 검찰은 불의에 당당히 맞서는 이상적인 검사를 그리며 ’칼잡이’라는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그들의 ‘칼’이 유독 정치권력에 무디고, 오히려 정치권력을 지키는 ‘방패’가 되는 모습을 국민들은 자주 봐왔다.
10월30일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첫 수습책으로 청와대 수석 비서관 일부를 교체하며 민정수석 자리에 또다시 ‘칼잡이’를 불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위기에 몰린 박근혜가 청와대 비서진을 개편하면서 가장 먼저 임명한 사람이 최재경 민정수석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검찰을 쥐고 가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최순실 게이트’의 한 축으로 주목받고 있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검사 시절 ‘칼잡이’로 불렸는데, 후임자 역시 당대 최고의 칼잡이로 불렸던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54·사법연수원 17기)을 내정한 것이다.
박근혜의 승부수
‘사태 해결을 위한 적임자’와 ‘정치 검사’라는 평가가 엇갈렸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 연루 의혹이 제기된 ‘비비케이(BBK) 사건’을 수사하면서 관련자 대부분을 무혐의 처분한 이력 탓에 ‘박 대통령이 MB에 손 내밀었다’는 호사가들의 반응까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김병준 책임 총리 카드’ 이전에 ‘최재경 카드’라는 수를 던진 것은 (두 차례의 사과와 상관없이) 앞으로의 검찰 수사를 컨트롤하고 국정 주도권을 계속 쥐고 가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에 대부분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민정수석은 검찰 등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자리인데 또다시 검사를, 그것도 검찰 내부에서 신뢰를 얻고 있는 ‘칼잡이’를 임명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5일 광화문광장에는 20만명의 시민이 모여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이런 상황에서 최재경 신임 민정수석은 검찰을 콘트롤함으로써 위기에 몰린 박근혜를 지켜야 할 위치에 있다. (사진 출처: http://tadream.tistory.com/16311)
11월5일 20만이 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 가운데 최 신임 민정수석의 행보는 앞으로의 정국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중 하나다.
최 신임 민정수석이 박 대통령의 ‘칼’이 돼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같이 할지, 아니면 박 대통령을 지키는 ‘방패’가 될지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TK성골로 승승장구…BBK 무죄 준 정치검사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지만 최 수석은 대구고를 나와 검찰의 TK(대구·경북) 인사로 꼽혀왔다. 친박 핵심인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의 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그는 1981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뒤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1985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1987년에 서울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김수남 검찰총장과 김현웅 법무부 장관의 1년 후배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 대검 수사기획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등 특수수사의 요직을 거치며 검찰 최고의 ‘칼잡이’로 불려왔다.
최 민정수석을 설명하는데 빠지지 않는 말은 ‘뛰어난 수사능력’, ‘판단력’, ‘후배들의 신망’이다. 검찰을 출입하는 기자들도 대체로 이러한 평가에 동의한다.
‘TK 성골’이라는 배경과 상관없이 실제로 그는 특별수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날렸다. 2006년 대검 중수1과장 때 현대·기아차 비자금 사건 수사를 맡아 정몽구 회장을 구속했고, 론스타 사건 주임검사를 맡았다.
대검 수사기획관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구속하며 노 전 대통령 직접 수사의 밑돌을 놓기도 했다. 정치인·공직자·재벌 등 권력을 가진 이들을 겨냥하는 특별수사의 특성상 강직한 성품과 외압에 굴하지 않는 강단이 밑바탕을 깔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그는 소탈하고 겸손한 성품으로 검찰 내부 후배들의 두터운 신망을 받아온 것도 눈에 띈다. 이에 검찰 안팎에서 그를 예비 검찰총장으로 꼽아왔다.
2011년 10월 4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BBK 사건’과 관련해서 박영선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BBK 사건’ 수사지휘 검사였던 최재경 중앙수사부장이 한상대 검찰총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전후로 그의 이름 앞에 ‘정치 검사’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2007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재직 당시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에게 면죄부를 준 BBK의 사건 수사로 그의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검찰 TK 라인이 요직을 독점하며 민간인 불법 사찰, 내곡동 사저 사건 등에서 정권의 부담을 덜어주는 수사를 진행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그의 행보 역시 이러한 흐름과 같이 묶여 평가됐다.
특히 2010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의 민간인을 불법사찰 사건을 수사하며 정치 검사라는 비판을 거세게 받았다.
2013년 1월 <한겨레> 보도 ( “최재경 중수부장, 사찰 핵심물증 틀어쥐고 시간끌었다” )를 보면 당시 대검 중수부장을 맡고 있던 최 민정수석이 민간인 사찰이 정권 차원의 조직적인 범죄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핵심증거(USB)의 수사팀 전달을 막은 의혹에 휩싸였다.
이런 그의 ‘변신’에 대해 당시 한 검찰 관계자는 “비비케이 사건 뒤 야당의 정치적·감정적 비난을 받고 방어 심리 탓인지 생각 자체가 여당 쪽으로 가버린 것 아닌가 싶었다”고 바라보기도 했다. (‘최재경 지검장, 한때 ‘특수통’ 명성…요직 거치며 승승장구’)
한상대 검찰총장과 충돌…검찰 내 신망 높아
물론 그는 2011년 대검 중수부장 시절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핵심 측근으로 꼽힌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구속하는 등 칼잡이의 자존심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검찰 내분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대검 중수부장을 맡고 있던 2012년 12월 중수부 폐지에 맞서 한상대 검찰총장과 정면으로 충돌했고, 결국 전주지검장으로 좌천성 인사를 당하기도 했다. 그를 따르는 검찰 후배들이 두터운 신망을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2012년 12월, 한상대 검찰총장은 수뢰검사와 성추문 검사, 그리고 중수부 폐지를 둘러싸고 자신에 맞섰던 최재경 중수부장에 대한 ‘보복 감찰’ 논란으로 집단 항명을 받아 사임했다. 한 총장이 사퇴 기자회견을 갖고 떠나는 모습을 최재경 중수부장이 지켜보고 있다.
차기 검찰총장으로 꼽힌 그였지만 그는 2014년 인천지검장을 끝으로 검찰 옷을 벗었다. 세월호 참사 뒤 검경이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 작전’ 실패의 책임을 진 것이다. 검찰 내부에서 승승장구하던 그가 다소 엉뚱한 데서 발목이 잡힌 셈이다.
박근혜의 검찰 될까?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능력에 인격을 더하면 최재경이다”는 말이 나올 정도(“‘전설의 특수통’은 ‘의뢰인 박근혜’를 구할 수 있을까”)로 그의 능력과 인품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언제든 민정수석의 자리에 오를 만한 자격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청와대행은 의미심장하다. 대통령의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고 전국 30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그는 검찰 등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민정수석을 맡았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11월2일 <한겨레TV>의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 “수사능력이 탁월한 검사였다. 아주 훌륭한 검사다. 여러 가지 혈연, 학연, 또 검찰에서 맺어왔던 인간관계, 그런 인연들에서 과연 자유롭게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결국 그의 청와대 입성은 검찰 수사와 국민들의 분노를 막아내는 박 대통령의 방패가 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