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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우파’의 마지막 희망,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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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우파’의 마지막 희망,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익명 (미확인) | 화, 2017/02/21- 10:44

<대선후보자 시리즈>

다른백년은 ‘금주의인물’ 코너를 통해 매주 소개해 온 인물 가운데 이번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을 추려 <대선후보자 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어떤 후보자는 소개 시점이 빨라 지금 상황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직 소개하지 않은 후보자도 있습니다.

대선 후보자들의 과거 행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이번 시리즈가 올바른 선택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마운드에 오른 폐족, 안희정 충남도지사 (2016. 9. 13)

SNS를 든 싸움닭, 이재명 성남시장 (2016. 10. 14)

말이 통하는 보수주의자, 유승민 의원 (2017. 1. 20)

계급배반을 꿈꾸는 금수저, 남경필 경기도지사 (2017. 2. 14)

아스팔트 우파의 마지막 희망,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은 ’관운’이 좋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는 1980년 만성 담마진(두드러기)로 병역을 면제받고 이듬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징병 신체검사를 받은 365만여명 가운데 담마진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남성은 4명에 불과하다 (2016년 6월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자료). 

2006년과 2007년 검사장 인사에서 두 번이나 미끄러졌지만 고검장은 사법시험 동기 가운데 가장 빨리 올랐다. 고검장을 끝으로 검사복을 벗었지만 박근혜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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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권한대행은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장관,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 권한대행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현재 박근혜 탄핵 이후 방향을 잃은 냉전보수세력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국무총리에 오를 때도 운이 따랐다. 2015년 5월 이완구 총리가 성완종 게이트로 취임 두 달 만에 낙마하며 갑자기 국무총리가 됐다. 2016년 11월에는 김병준 책임 총리 후보자가 임명되며 ‘실업자’가 될 뻔 했지만, 복잡한 정치 상황 속에서 오히려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맡았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출마를 포기하자 여권 주자 가운데 여론조사 지지율 1위에 오르며 ‘황교안 대망론’까지 불고 있다. 

이제 그의 운은 시험대에 올랐다. 박근혜 정권의 핵심이었던 그가 박근혜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할지, 아니면 억세게 좋은 운이 그에게 다시 날개를 달아줄지 말이다.

“나는 흙수저”…유신시절 학도호국단장

 “여러분은 나를 금수저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흙수저 중의 무수저다.”

2016년 12월27일 기자 간담회에서 황 권한대행은 자신이 ‘무수저’라며 6.25 전쟁 당시 월남한 가족사를 언급했다. 그는 1957년 서울 용산에서 태어났는데, 북에서 피난 온 아버지가 고물상으로 가족을 먹여 살렸다고 한다. 

그는 법무부 장관 재직시절 모교인 봉래초등학교에 방문한 자리에서 부유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언급하며 “돈을 많이 벌거나 공무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초·중등학교까지 황 권한대행은 반장을 도맡아 하는 등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지금의 그의 성향은 경기고 재학시절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 동기생이던 이종걸 민주당 의원과 노회찬 정의당 대표는 유신 선포 1주년을 맞아 유신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뿌렸지만 황 권한대항은 이에 동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3학년 때 학도호국단의 연대장(학생 대표)을 맡기도 했다. 학도호국단은 박정희가 장기집권을 위한 ‘10월 유신’ 을 밀어붙이며 학생회를 폐지하고 만든 준군사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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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왼쪽부터 황교안, 이종걸, 노회찬. 이들은 경기고 72회 동기들이다. 아래 사진은 1975년 경기고 학도호국단 연대장때의 황교안 총리(맨 앞쪽 어깨띠와 완장을 찬 이)의 모습. (사진 출처: 경기고 졸업사진)

그가 총리에 올랐을 때 이종걸과 노회찬은 “황교안 총리는 학창시절 모범생이었다. 당시 어린 마음에도 대부분 학생들이 독재 정권에 대해 비판적이어서 어용조직인 학도호국단 간부를 맡으려 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서울대 법대를 노렸지만 실패한 그는 재수 끝에 1977년 성균관 법대에 입학해 고시공부에 매진했다. 반유신 투쟁이 본격화되는 시기였지만, 그는 ‘운 좋게’ 병역면제를 받은 뒤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총리 청문회 당시 군 병원의 공식 진단 6일 전에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끝내 의혹이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았다.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운 피부병을 앓고도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기도 했다.

확신형 공안검사…민주정부에서 밀려나

그는 검사로 임용된 뒤 공안검사의 길을 걸었다. 대부분 공안검사들이 공안 경력을 내세우기 꺼리지만, 그는 법무부 장관 시절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장관보다 공안검사가 가장 적성에 맞는다”고 밝혔다. 

그는 1987년 서울지검 공안검사를 시작으로 대검찰청 공안 1·3과장과 서울지검 공안2부장을 지냈으며, 공안을 총괄하는 서울지검 2차장을 맡았다. 김현희 칼(KAL)기 폭파 사건과 임수경 방북 사건, 1980년대 말 학생 운동 등 여러 굵직한 공안 사건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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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권한대행이 1988년 펴낸 ‘국가보안법’. 그는 이 책으로 ‘미스터 국보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며 민주주의와 인권의 중요성이 커졌지만 그는 공안검사의 ‘본색’을 고수했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김대중 정부 출범 첫해인 1998년  <국가보안법 해설>이란 책을 써서 ‘미스터 보안법’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2009년에 쓴 <집회·시위법 해설>에서 “집시법 역시 4·19 혁명 이후 각종 집회와 시위가 급증하여 무질서와 사회 불안이 극에 달한 상황 속에서 5·16 혁명 직후 제정됐다”며 5·16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규정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공안검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꿋꿋이 고수했다.

아예 그는 ‘좌파정권에 저항하다 밉보인 투사’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검사장 인사에 밀린 것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미운털이 박혀서라는 주장이었다. 

2011년 그는 부산고검장 시절 교회에서 한 특강에서 이렇게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김대중씨는 계속 재야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경찰에서도 조사를 받고 검찰에서도 조사받고 정부하고는 계속 갈등했던 분이다. 그런데 이런 분이 대통령 딱 되고 나니까 그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에 있던 검사들이 전부 좌천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안부 검사들에 의해 대우중공업 사태와 관련해 구속까지 된 분이다.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되니까 공안부에 오래 있던 사람들에 대해 여전히 곱지가 않았다”

박근혜 아바타…공안통치 좌장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부름을 받은 그는 법무부 장관, 총리를 거치며 정권의 해결사 노릇을 했다. 

2013년 9월 법무부 장관 재직 당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지휘하던 중 ‘혼외자’ 의혹이 불거진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의 감찰을 지시해 옷을 벗게 했다.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려 하자 “법률가의 양심”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보였다. 당연히 대선개입 사건 수사는 힘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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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은 법무부장관시절,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개입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를 노골적으로 방해했다. 이 사건이 박근혜정부의 정통성과 직결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철저히 박근혜의 아바타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헌정 사상 최초인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를 총지휘하기도 했다. 

검찰이 세월호 참사 이후 해경 123 정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하려던 것을 막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 기간 연장 요청에 그는 20일 현재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으며 야당의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실정법보다 교회법이 우선

공안검사와 함께 그를 설명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독실한 기독교 신앙이다. 문제는 그의 신앙이 공적인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7년 경기도 성남시 분당 샘물교회 교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다가 탈레반에 납치됐을 때 무분별한 선교활동에 대한 비판이 일자,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그런데 과연 납치된 그들은 비난받을 일을 한 것인가?”라고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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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권한대행 부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왼쪽 사진은 2012년 2월 열린 ‘변호사 친교의 밤’에서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는 황교안의 모습. 오른쪽은 아내 최지영씨가 낸 복음성가집 앨범 (사진 출처: http://www.bluetoday.net/)

그가 쓴 <교회와 법 이야기>에서 “주일에 사법시험 치르는 것을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결정해 유감이다”라며 실정법 위에 교회 논리를 앞세우기도 했다. 

결국 그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공안검사’, ‘독실한 기독교 신앙’, ‘박근혜 정권의 해결사’ 등을 꼽을 수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철저하게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지향했고, 이른바 ‘애국 보수세력’의 가치를 대변해왔다. 

실제로 그의 대망론을 부채질하는 것은 자유한국당(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몸으로 막겠다는 ‘아스팔트 우파’들이다. 

그는 현재 자신의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안 하며 주가를 높이고 있다. 황 권한대행의 출마 가능성에 대해 여론조사지지율이 20%까지 오르지 않으면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권한대행이라는 중책을 쉽게 내려놓는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분명한 건 광장의 촛불 민심은 그를 황교안 개인이 아닌, 박근혜 대통령의 ‘아바타’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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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가 박근혜 대통령의 올케 서향희(42) 변호사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변호사를 휴업한 상태였던 2013년 ‘철거왕 이금열’ 사건에 간여한 행위가 변호사법에 위반되는지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변협의 이번 조사는 지난 8월 25일 방송된 뉴스타파 보도에 따른 조치다. 뉴스타파는 ‘대통령 올케 서향희, 2013년 철거왕 이금열 사건 개입’ 제하의 기사를 통해, 변호사 업무를 휴업 중이던 서 씨가 횡령, 정관계 로비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던 다원그룹 이금열 회장 사건에 간여한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서 씨가 검찰 수사를 피해 도피 중이던 이금열 회장을 만나 사건 수임을 약속하고, 자신과 특수관계인 법무법인을 끌어들인 뒤, 5억 원의 변호사비 흥정에도 직접 간여했다는 내용이었다. 서 씨는 뉴스타파와 가진 6차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관련 의혹을 상당 부분 시인했다.

변협 법제팀의 한 관계자는 뉴스타파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변협 소속 변호사로부터 서향희 변호사의 변호사법 위반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질의가 들어와 조사가 시작됐다. 현재 법제팀에서 변호사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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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향희 사진 제공 : 한국일보

서 씨가 ‘철거왕 이금열’ 사건에 끌어들인 법무법인 세한은 서 씨와 특수관계인 곳이다. 2011년 서 씨가 설립해 대표를 맡았던 법무법인 새빛 출신 변호사 7~8명이 주축이 돼 2013년 2월 설립됐다. 대표를 맡고 있는 송모 변호사(전 부장판사)는 서 씨의 연수원 시절 은사이자 한때 법무법인을 함께 운영했던 사람이다.

서향희 변호사, ‘예비 직장’에 사건 알선 의혹

그러나 서 씨와 법무법인 세한의 관계는 단순한 인적관계를 넘어선다. 뉴스타파는 서 씨와 관련된 취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 법무법인이 서 씨에게는 조만간 입사할 ‘예비 직장’이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로 결정된 직후인 2012년 8월 변호사 업무를 중단했던 서 씨가 수차례 세한 측 관계자를 통해 변호사 업무 재개를 타진했고, 세한 측과 입사 시기를 저울질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법무법인 세한의 이영세 고문변호사(전 부장검사)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작년쯤에도 서 변호사가 ‘언제쯤 변호사 업무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냐’고 내게 문의하면서 자문을 구한 일이 있다. 나는 ‘(2016년 4월) 총선이 끝날 때까지는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서 변호사가 변호사 업무에 복귀한다면, 당연히 세한에서 시작할 것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법무법인 세한에 이금열 사건을 소개할 당시 서 씨는 변호사를 휴업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법무법인 세한은 설립 당시부터 서 씨와의 관계를 노골적으로 홍보하며 중요한 영업전략으로 삼았다. 세한 홈페이지에 “서향희 변호사와 함께 하던 변호사들이 만든 법무법인”이라는 내용의 소개 글을 게재했을 정도. 이영세 세한 고문변호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법무법인 설립 당시 공동대표였던 강모 변호사는 홈페이지에 버젓이 서 변호사와의 관계를 홍보했다. 내부에서 이것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2013년 이금열 회장 사건 당시에도 검찰은 서향희 변호사가 이금열 회장 사건에 간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변호사의 설명대로라면, 서 씨가 이금열 회장 사건을 세한에 소개한 행위는 단순 알선이 아닌 ‘예비 직장인의 영업활동’이 된다. 또 소속 변호사도 아닌 서 씨가 법무법인의 영업활동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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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향희 사진 제공 : 한국일보

현행 변호사법은 ‘금품·향응 또는 그 밖의 이익을 받거나 받기로 약속하고 특정 변호사나 그 사무직원에게 사건을 소개·알선하는 행위를 하지 못한다’(34조)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서 씨의 사건 소개와 입사 약속 등이 서로 관련돼 있다면, 대가에 대한 약속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한 변호사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할 여지가 생긴다. 이와 관련 변협의 한 관계자는 “민감한 사안이다. (뉴스타파) 보도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신중히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향희, “법무법인 세한에 알선한 사건 더 있다”

뉴스타파는 서 씨와 주고받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서 씨가 이금열 회장 사건 외에도 여러 건의 형사사건을 ‘예비 직장’인 법무법인 세한에 소개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서 씨는 8월 13일 뉴스타파에 보낸 답변을 통해 “(이금열 사건 외에) 한 두 개 형사 사건을 법무법인 세한에 더 소개했다. 그 중엔 의뢰인과 고소인이 같은 사람인 사건도 있었다…내 새끼같은 변호사들이 일하는 곳이어서 다른 곳에 사건을 맡기지 않고 세한에 소개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 씨의 변호사법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은 9월 19일 열리는 변협 법제위원회에서 심의될 예정이다. 만약 변호사법 위반 사실이 인정되면, 변협은 윤리위원회를 통해 징계절차에 착수하게 된다.


취재 : 한상진 강민수
촬영 : 김수영

금, 2016/09/0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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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부, 실종자 가족들이 황교안 전 총리 찾아간 날부터 몰래 동향 파악
-실종자 가족들 “대책은 안 세우고 가족들 감시만 했나”
-해수부 “가족들 돕기 위한 목적, 감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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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1일 오후 4시 경.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건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서울 청운동 주민센터 옆. 농성장 한 쪽에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 한 명이 멀뚱히 서 있었다. 그는 해양수산부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한 해사안전국 소속 공무원. 기자는 그에게 “실종자 가족들이 요구하는 구조 선박 투입은 어떻게 돼 가고 있느냐”고 질문했다. “저는 상황을 잘 몰라서 답변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해당 공무원은 묻는 것마다 “아는 것이 없다”고 답했다. 그 공무원은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고 우물쭈물하다 농성장을 떠났다.

한 실종자 가족은 “해수부 공무원이 돌아가며 아침에 나와서 사고 해역 상황을 스마트폰으로 잠깐 보여주고 사라진다. 그들은 수색 상황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하는 일도 없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나왔다는 공무원이 정작 기본적인 수색 진행 상황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 공무원들은 매일같이 나와서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해수부 공무원들이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세세하게 파악해 상부에 보고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가 해수부 내부문건인 ‘스텔라데이지호 사고 일일 상황보고’를 입수해 살펴본 결과, 해수부는 실종자 가족들의 집회상황, 언론사 인터뷰, 정치인 면담 일정 등을 파악해 보고해왔다. 해수부가 동향 파악을 시작했던 시점은 실종자 가족들이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면담을 요청하며 공관을 찾아갔다가 경찰병력에 의해 끌려나왔던 4월 17일. 해수부가 실종자 가족들을 감시하기 위해 동향파악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해수부 4월17일자 스텔라데이지호 일일 상황보고 문건 중 일부. 해수부는 실종자 가족들이 황교안 전 총리 공관에 찾아갔던 날부터 동향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해수부 4월17일자 스텔라데이지호 일일 상황보고 문건 중 일부. 해수부는 실종자 가족들이 황교안 전 총리 공관에 찾아갔던 날부터 동향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해수부의 ‘스텔라데이지호 사고 상황보고’ 문건에는 스텔라데이지호 수색 상황과 관련된 내용 외에 ‘선원가족 동향’이라는 항목이 등장한다. 선원가족 동향에는 실종자 가족들의 집회 장소와 날짜, 플래카드 게시 장소,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 등 정치인 면담 일정, 언론사 인터뷰 시간, 각종 행사 참석 일정 등 실종자 가족들의 세세한 동향이 적혀있다. 심지어 집회 때 사용한 물품을 누가 빌려줬는지까지 나온다. 이 문건은 해수부 비상대책반이 만들었고 해수부장관에게 보고됐다.

실종자 가족들이 황교안 총리 찾아갔던 날…해수부, ‘몰래 동향파악’ 시작

해수부의 실종자 가족 동향 보고는 사고 발생 18일째인 지난 4월 17일부터 시작됐다. 이전까지는 ‘가족브리핑’이라는 제목으로 가족들의 동향이 아닌 가족 요구사항을 적었다. 4월 17일은 실종자 가족들이 황교안 전 국무총리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서명지를 전달하기 위해 총리 공관에 찾아갔던 날이다. 이날 오후 2시 30분 경 총리실을 찾았던 가족들은 경찰병력에 의해 출입을 저지당했다. 경찰관들이 실종자 가족들을 인도로 끌고나오면서 가족 중 일부는 뇌진탕과 찰과상 등 부상을 입고 입원했다.

해수부는 이런 내용들을 같은날 오후 5시 상황보고서에 ‘선원가족 동향’ 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보고했다. 다음날에는 가족들이 퇴원한 내용도 파악해서 보고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직접 접촉한 해수부 직원은 없었다. 해수부 직원들이 가족들 모르게 동향만 파악한 셈이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가족협의회 허경주 공동대표는 “총리 공관에서 끌려나 병원에 입원했을 때 해수부 누구도 찾아오거나 연락한 사람이 없었다. 해수부가 우리의 일정을 파악해 보고하고 있는 줄도 몰랐다” 고 말했다.

정치인 면담 일정, 천막 대여자까지 보고…동향파악 목적은?

해수부는 실종자 가족들이 대선후보를 만나거나, 각종 행사에 참석한 현황도 파악해 보고했다. 실종자 가족 중 누가 어떤 언론사와 인터뷰 했는지도 구체적으로 보고했다. 집회에서 사용한 천막을 누가 대여해줬는지도 적혀있다.

▲해수부는 실종자 가족들이 대선후보를 만나고, 언론사 인터뷰를 하는 일정 등도 일일이 파악했다.

▲해수부는 실종자 가족들이 대선후보를 만나고, 언론사 인터뷰를 하는 일정 등도 일일이 파악했다.

▲해수부는 실종자 가족들이 대선후보를 만나고, 언론사 인터뷰를 하는 일정 등도 일일이 파악했다.

그렇다면 해수부는 이렇게 파악한 정보를 이용해 가족들에게 어떤 도움을 줬을까. 실종자 가족들이 그동안 가장 중점적으로 요구한 것은 사고해역의 현장수색을 재개하는 것이었다. 현장수색은 지난 5월 10일 선사가 일방적으로 구조선박을 철수시키면서 사실상 중단됐다. 선사는 수색 종료 당시 가족들과 협의하기로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현장수색 중단 하루 전날인 5월 9일 해수부 일일상황보고 문건을 보면, 해수부도 선사로부터 수색 종료 통보를 받았지만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았다. 해수부도 외교부도 “선사가 통보해왔다”는 말만 가족들에게 전달했을 뿐이다.

이후 가족들은 현장수색 재개를 줄곧 요구했지만 해수부는 선사와 논의 중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정권이 바뀌고 수색 중단 27일 만인 6월 6일에야 선사를 통해 구조선박 1척을 다시 투입한 상태다. 선사가 계약한 이 구조선은 오는 14일 경 사고 추정 해역에 도착, 22일간 현장을 수색할 예정이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협의회 허경주 공동대표는 “해수부에서 매일 다른 연락관(해수부 공무원)이 나오는 데 우리에게 필요한 게 있느냐고 먼저 물어본 적도 없고, 오히려 필요한 사항을 연락관에게 전달하면 다음날 다른 연락관이 나와 ‘전달 못 받았다’는 식으로 시간만 보내는 식”이었다며 “실종자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는 게 아니고 매일 어딘가에서 감시만 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해수부 “가족들 돕기 위해 소속 공무원이 파악…감시 아냐”

이에 대해 해수부 박광열 비상대책반장(해사안전국장)은 “실종자 가족 동향파악은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파악해 지원하기 위해서 한 것으로 감시 목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총리 공관을 찾아간 날부터 동향파악을 한 이유는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비상대책반장인 자신이 지시한 게 맞다”면서도 “왜 그날부터 (동향파악을)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는 해명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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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구조와 무관한 정보수집…국민 사찰 행위”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을 돕고 있는 대한변협 황필규 변호사도 “해수부가 해야할 일은 수색 구조에 인력과 시간을 투입하고 전념하는 것이고, 그것이 실종자 가족들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며 “실종자들에게 진정 도움이 되고 싶었으면 당당하게 면전에서 요구사항을 듣고 그날의 일정을 물어보면 되지 왜 몰래 파악하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황 변호사는 “실종자 가족들이 어디서 어떤 집회를 여는 지를 파악하는 일은 수색구조와 연관성이 없다. 이런 정보수집은 국민을 사찰하는 범법행위”라며 “해수부가 파악한 정보는 해수부 직원 1명이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수색구조에 범부처적인 협력이 이뤄져야 하는데 가족 동향파악에 범부처적인 협력과 인력이 투입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스텔라데이지호는 국내 선사인 폴라리스쉬핑 소속 철광석 운반선으로, 지난 3월 31일 26만 톤 가량의 철광석을 싣고 가다 남대서양에서 침몰했다. 현재까지 필리핀 선원 2명이 구조됐으며, 한국인 8명, 필리핀 14명의 선원이 실종됐다. 오늘(6월12일 기준)로 실종 73일째다.

사고해역의 선박 수색은 지난 5월 10일 선사의 일방 통보로 중단됐으며, 통항수색(사고해역 인근을 지나는 한국선박이 통과하며 수색)만 실시돼 왔다. 이에 반발한 실종자 가족들의 요구로 선사는 실종 67일째인 지난 6일 구조선박 1척을 다시 투입했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해역을 수색하는데 필요한 선박은 최소 3척(해경 추산)이상이라며 추가 선박 투입해 적극적인 수색에 나서주기를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월, 2017/06/1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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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는 4대강 사업 철저한 평가와 복원을 약속하라"

  photo_2017-04-28_10-57-56 2017년 4월 28일, 광화문에서 "4대강사업 철저한 평가 및 복원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선언" 기자회견이 진행됐습니다. 4대강 범대위 등 176개 시민단체와 강경규 등 1132명의 개인은 긴급 성명을 통해 대선후보들이 4대강사업을 철저히 평가하고 복원을 약속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4대강사업은 지난 10년간 논란을 거듭해오면서 갈등과 불신의 대명사로 전락해버렸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들은 저마다에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4대강 복원이 정권교체 이후 얼마나 무게감있게 추진될지에 대한 시민사회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또한 대선을 앞두고 열리는 공중파 토론회는 오로지 안보만을 다룰 뿐 4대강 복원 등의 환경사안은 실종된 듯 합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7379" align="aligncenter" width="640"]ⓒ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caption] [caption id="attachment_177380" align="aligncenter" width="640"]ⓒ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caption] [caption id="attachment_177381" align="aligncenter" width="640"]ⓒ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caption] [caption id="attachment_177382" align="aligncenter" width="640"]ⓒ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caption] [caption id="attachment_177383" align="aligncenter" width="640"]ⓒ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caption] [caption id="attachment_177385" align="aligncenter" width="640"]ⓒ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caption] [영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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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대선후보는 4대강 사업 철저한 평가와 복원을 약속하라

2007년 이명박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로 시작된 4대강사업 논란이 10년째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0년 대선,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국민들은 4대강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재평가와 복원을 강력하게 요구해왔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 사이 4대강의 수질과 수생태계는 처참히 망가지고, 수돗물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은 어느 때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이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극단적인 불신 속에 있는 물 정책을 정상화하기 위해 후보들은 4대강 사업 철저한 평가와 복원을 약속해야 할 것이다 4대강복원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4대강범대위’)는 이번 대선에 나선 주요 후보들이 적극적으로 4대강 복원에 나설 것을 촉구하며, 아래와 같이 9대 과제를 제안한다.  
1. 16개 보 즉각 상시 개방하라
우리가 4대강사업으로 인해 보가 만들어진 이후 해마다 목도했듯이 수문을 열지 않는 한 녹조발생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즉각적인 상시개방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지하수 영향 등을 운운하며 수문개방에 소극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상시개방은 녹조라떼로 숨이 막히는 4대강을 위한 기본적인 응급조치다. 후보들이 수문 상시개방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인 편이지만, 이번 여름 즉각적인 시행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약속해야 한다.  
2. 16개 보 전면 철거하라
상시개방으로 기능과 용도가 상실된 보는 철거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다. 16개 보가 존재하는 한 물의 흐름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매년 2000억 원의 관리비용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몇몇 후보가 철거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먼저 철거의 방향성을 선명히 하고, 집행에 필요한 제반 상황을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3. 4대강사업 재평가하라
이미 지난 10년을 거치면서 정부와 시민사회의 다양한 평가를 통해 강을 살리고 경제를 살린다던 4대강사업의 명분은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그러나 정부차원에서 4대강사업에 대한 총체적 평가와 추진세력에 대한 엄중한 문책은 단 한 번도 내려지지 않았다. 과오를 청산하지 않고는 신뢰받는 물 정책은 불가능하다.  
4. 영주댐 담수 계획 중단하고, 철거하라
주요 대선 후보들이 4대강의 상시개방과 철거검토를 약속하고 있으며, 대선 이후 이 약속이 시행된다면 낙동강 본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한 영주댐은 용도를 상실하게 된다. 모래하천 내성천 생태계 파괴하는 영주댐 담수 즉각 중단하고 철거해야 한다.  
5.경인운하 연장 중단하라
한반도 대운하로 시작된 경인운하가 여전히 살아남아서 연장을 꿈꾸고 있다. 경인운하는 비용대비 편익 1.25를 주장하며 시작된 사업이나 유령운하로 전락한지 오래다. 경인운하는 철저하게 실패했으며, 이는 운항 구간을 연장하지 못한 탓이 아니라 경제성도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실패를 선언하고 운하 연장이 아닌 수질개선, 친수공간 정비 등 현실적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  
6.도수로 연결사업 중단하라
도수로 사업은 용도를 찾을 수 없는 4대강 보의 물을 억지로 상류로 끌어가는 불필요한 토목사업이다. 금강~보령댐 사업에서 확인했다시피 도수로를 통한 수량 확보 자체가 불가능한 사업이며, 상류의 수질문제만 가중시키고 있다. 차기정부는 추가사업 계획 백지화하고, 가뭄 대책 본질부터 재검토에 나서야 한다.  
7. 지방하천정비사업 전면재검토하라
치수 핑계로 멀쩡한 강을 파헤치고, 조경석으로 가득 채우는 지방하천정비사업은 즉각 중단하고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연간 5~6000억씩 예산을 최소한의 매뉴얼도 없이 지자체에 배분하는 등 환경파괴와 예산낭비의 전형이다.  
8. 친수구역 특별법 폐지하라
강변 막개발을 각종 편법을 통해 지원하는 친수구역특별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특별법이 제정된 지 7년이 지났지만, 이렇다할 성과도 내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수원과 철새도래지를 위협하고, 개발심리를 부추겨서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9. 수자원공사 해체하라
4대강사업 추진의 선봉에서 행동대장 역할을 해온 수자원공사는 해체됨이 마땅하다. 4대강사업 완공 후 생긴 8조의 부채 탕감을 위해서 해마다 3000억 이상의 예산이 낭비되고 있음은 통탄할 일이다. 댐을 만드는 일 자체를 조직의 존재근거로 삼고 있는 수자원공사라는 조직이 존재하는 한 언제든 제2, 제3의 4대강사업은 필연적이다. 지난겨울을 주말마다 밝힌 촛불은 단순히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만은 아니었다. 지난 10년 박근혜/이명박 정부를 거쳐 오면서 심화된 차별과 사회적 격차에 대한 저항이었으며, 언론과 시민에 대한 일방적 폭압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국가적 폭력 중에서도 4대강사업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아닌 대기업 중심의 토건사업은 여전히 4대강사업의 다른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새로이 탄생하는 정권은 보에 갇히지 않은 채 힘차게 흘러갈 4대강을 국민들에게 선물하고, 신뢰할 수 있는 물정책의 비전을 밝혀야 할 것이다.

2017428

4대강 사업 철저한 평가 및 복원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선언

[단체 176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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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113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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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7/04/2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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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sta la victoria simple, Fidel!”

쿠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는 지난달 26일 90세로 영면한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전 의장의 타계 소식을 전하며 “영원한 승리의 그 날까지, 피델!”이라는 말을 영전에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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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혁명의 아이콘 피델 카스트로. 지금의 쿠바를 만든 장본인이지만, 독재자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사진 출처: http://www.dailymail.co.uk/)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동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 게릴라전에 투신하기 전 남긴 이 문구만큼 카스트로를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말은 없을 듯하다.

“혁명을 뭔가 섹시한 것으로 만든 사람”

외신들에 따르면 무상 교육ㆍ의료로 대표되는 쿠바식 사회주의를 체험한 쿠바 시민들에게는 “카스트로가 곧 쿠바이자 혁명”이었다. 아흐레 동안 진행된 추모 기간 동안 “내가 피델이다”를 외치며 작별인사를 하는 시민들이 거리를 매웠다고 한다.

반면 카스트로를 바라보는 서구 언론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8일자 조간 1면에 “무수한 면을 가진 카스트로”라는 제목의 머리기사를 내고, 카스트로가 쿠바를 50년 넘게 통치하며 혁명가에서 독재자로 퇴색해가는 과정을 설명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달 27일자에 실은 국제담당 칼럼니스트인 사이먼 티스달의 칼럼을 통해 카스트로를 “게릴라 지도자, 독재자 그리고 완고한 혁명가”라고 평가했다. 티스달은 그러면서 “체 게바라와 함께 혁명을 섹시한 무엇으로 만든 사람”이라는 해석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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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쿠바 하바나에서 카스트로의 사망 소식을 들은 대학생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왼쪽 사진). 그러나 같은날, 미국 마이애미주 쿠바 망명객 밀집 지역에서는 쿠바인들이 국기를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카스트로가 현대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해의 작은 섬나라의 지도자에 불과했지만 169㎞ 거리에 이웃한 세계 최강 미국의 역대 대통령 11명을 상대하며 국제정치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투옥된 게릴라… 체 게바라와 쿠바 상륙작전

카스트로는 1926년 8월 쿠바 동부 오리엔테주 비란의 스페인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5년 아바나대에 입학, 법학을 전공하며 좌파 학생운동에 몸을 담았다. 1947년 쿠바인민사회주의당에 들어가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한 그는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글을 읽으며 사회주의 혁명의 꿈을 키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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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는 사탕수수 플렌테이션을 가진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어린시절 카톨릭학교를 다니며 유복하게 자랐다(왼쪽). 그리고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기 시작한 대학시절의 모습. (사진 출처: http://www.trinity.edu/)

운명의 날을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쿠데타로 친미 군사독재정권이 세워진 1952년 그는 반독재 투쟁 선두에 선다. 이듬해 7월 26일 산티아고 몬카다 병영을 습격하면서 바티스타 정권 전복을 꾀했지만 실패하고 15년 형을 선고 받고 투옥된다. 쿠바에서 가장 중요한 기념일인 ‘7월 26일 운동’일의 유래다.

직접 변론에 나선 카스트로가 “역사가 나의 무죄를 증명할 것”이라고 밝힌 당시 법정진술은 역사를 바꾼 명 연설 중 하나로 꼽힌다. 운명적 만남도 곧장 이어진다.

정권이 안정됐다고 판단한 바티스타는 1955년 카스트로를 특별사면 한다. 카스트로는 정치적 탄압을 피해 멕시코로 망명하고, 이곳에서 아르헨티나 출신의 젊은 의사 체 게바라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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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무장게릴라 투쟁은 20세기 혁명사의 동화같은 이야기다. 이같은 수많은 사진은 그들의 무장투쟁을 더욱 로맨틱한 것으로 이미지화했다.

두 사람은 이듬해 11월 상업용 요트 ‘그란마’호에 몸을 싣고 82명의 ‘카스트로 혁명군’의 일원으로 쿠바로 잠입한다. 하지만 상륙 과정에서 교전으로 대부분이 희생되고, 피델 카스트로와 동생 라울 카스트로, 체 게바라 등 생존한 10명은 내륙으로 숨어들어 게릴라전을 시작한다.

2년 여에 걸친 무장투쟁 후 이들은 1959년 1월 1일 수도 아바나를 접수했다. 카스트로를 특별사면 했던 바티스타는 포르투갈로 탈출한다. 카스트로의 혁명이 성공한 것이다.

완고한 혁명가… 교육 개혁과 의료 보험 국영화

카스트로는 농지개혁, 기업 국유화 등 사회주의 혁명조치를 내걸었다. 1959년 5월 농장 주가 가지고 있던 농지는 농민들에게 무상 배분됐다. 카스트로의 아버지 안젤 카스트로가 평생 일군 비란의 농장도 당시 몰수 대상이 됐다.

교육 개혁과 의료보험 국유화 등의 정책을 펼치며 무상교육·무상의료 시스템도 만들어나갔다. 쿠바는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의사를 해외에 파견하는 나라다. 유아사망률은 1,000명당 4.7명으로 미국보다도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 수립 직후 미국을 방문하는 등 국제관계에서도 유연하게 움직이기도 했다. 카스트로는 대중 연설을 통해 “새로운 쿠바는 문명적이고 민주적 정부체제를 갖출 것”이라고 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는 1961년 3월 미국이 쿠바 내 반란군을 지원한 ‘피그스만 침공 사건’이 발생하면서 완전히 무너졌다. 냉전 상황에서 쿠바는 소비에트연방(구 소련)과 급속히 가까워진다. 카스트로는 그 해 4월 쿠바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규정했고, 12월에는 자신은 마르크스ㆍ레닌 주의자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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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모스크바 크레믈린에서 당시 후르시쵸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마주 앉은 카스트로. 당시 카스트로는 왼쪽 손목에 두 개의 로렉스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이 중 하나는 쿠바 현지 시간을 표시했다. 자신이 항상 쿠바 현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 제스추어였다.

1962년 핵탄두를 쿠바에 배치할 것을 소련에 요청한 ‘쿠바 미사일 위기’로 카스트로와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맞서면서 전세계를 ‘3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의 위기상황을 맞기도 했다.

1960년대 쿠바 아바나는 사회주의 운동의 성지였다. 전 세계 좌파 진보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성지 순례하듯 하바나를 찾았다. 프랑스의 지식인 부부 장 폴 샤르트르와 시몬느 보브와르도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를 찾아 1960년 쿠바를 방문했다.

이들은 전세계 사회주의자가 고대하는 혁명을 이뤄낸 카스트로가 사회주의 실험에도 성공하길 기원했다. 카스트로는 “쿠바에서 불의와 불평등은 사라질 것”이라고 공언하며 전세계 사회주의 혁명의 대부로 자리매김해 나간다. 특히 중남미를 비롯한 제3세계 좌파의 맏형 노릇을 했다.

2014년 1월 쿠바에서 중남미카리브해국가연합(CELAC)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각국 정상들은 앞다퉈 그를 찾을 정도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이어갔다.

독재자… 항구 개방이 쇄락 신호탄

카스트로는 하지만 쿠바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강화하며 장기 집권에 나선다.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고, 언론ㆍ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1959년부터 1976년까지 내각책임제 하의 총리를, 1976년부터 2008년까지 국가평의회 의장을 지내며 반세기 가까이 최고 통치권을 행사했다. 권력을 동생 라울에게 이양한 뒤에도 ‘헤페 막시모(jefe maximo•최고지도자)’로 남아 있었다.

경제도 좀처럼 활력을 찾지 못했다. 1962년 시작된 미국의 금수조치로 무너진 경제는 끝내 다시 세우지 못했다. 쿠바 경제는 냉전 시기 소련의 원조에 의존했고, 이후에는 중국에 도움을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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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4월, 미국 마이애미주의 한 해변에서 이민수속을 기다리는 쿠바 난민들.

불만을 품은 쿠바인들은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보트에 몸을 실었다. 카스트로 정부도 항구 개방으로 맞불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 전과자 등 12만5,000여명을 미국으로 방출한 ‘마리엘 보트리프트’ 사건은 쿠바 쇄락의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쿠바 혁명 후 지금까지 쿠바를 떠난 사람이 1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된다.

카스트로는 건강상의 이유로 지난 2008년 은퇴한 이후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올해 4월 19일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서는 죽음을 예견한 듯 “곧 90세가 된다. 아마 이번이 내가 이 홀에서 말하는 마지막 순간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상의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하다면, 아무도 행복할 수 없다”

카스트로는 지난 4일 자신의 고향이자 혁명의 발원지인 산티아고 데 쿠바의 산타 이피헤니아 묘지에서 영면했다. 19세기 쿠바 독립영웅이자 그가 평생 존경했던 호세 미르티의 무덤 앞에 묻혔다. 묘지 옆에는 1953년 7ㆍ26운동 당시 그와 함께 몬카다 병영을 습격하다 숨진 반군 병사들의 묘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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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쿠바를 방문한 프란체스코 교황과 면담하는 카스트로. 그가 생전에 즐겨 입었던 삼선의 파란색 아디다스 점퍼가 인상적이다. (사진 출처: AP)

카스트로는 생전에“쿠바의 정체성은 단지 공산주의 이념만이 아니라 독립운동가 호세 마르티의 사상에서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마르티는 독립 투쟁을 벌이면서도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국민이 있다면 그 누구도 편안하게 잘 수 있는 권리가 없다”며 소외된 약자를 챙겼다. 카스트로는 마르티의 철학을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등 각종 정책을 통해 실현하려 애썼다는 평가를 받는다.

60년간 어긋났던 미국과 쿠바의 관계에 화해의 다리를 놓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역사는 한 인물이 그의 주변 사람들과 전 세계에 미친 엄청난 영향을 기록하고 판단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목, 2016/12/15-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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