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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치시평 389] 박근혜가 갈라놓은 두 개의 세상: 노동의 관점에서 불평등 문제를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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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치시평 389] 박근혜가 갈라놓은 두 개의 세상: 노동의 관점에서 불평등 문제를 바라보기

익명 (미확인) | 목, 2017/01/26- 13:38

박근혜가 갈라놓은 두 개의 세상

노동의 관점에서 불평등 문제를 바라보기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 《시민과 세계》 편집위원장

 

우리나라가 향후 5~10년 동안 최우선적인 과제로 삼아 해결해야 할 문제는 '불평등'이라는 데 이견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막연히 '불평등'이라고 하면, 이것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한 다양한 현상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일까? 지배세력의 지대 추구가 문제인가, 경제의 이중 구조와 이에 조응하는 노동 시장 이중 구조가 문제인가? 아니면 소득 양극화나 빈곤층 증가가 문제인가? 물론 이 이 모든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질문들이 결국 다 같은 것은 아니다. 핵심적인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시급한 개혁 과제는 달라질 수 있다.

 

소득 양극화가 문제라면 국가적 과제는 '중산층 복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중산층에 친화적인 소득 보장 제도와 사회보험의 강화로 복지 국가에 다가서자는 목표를 세워봄직하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의 핵심인 것 같지가 않다. 그렇다면, 소수 재벌의 지대 추구 행위가 문제인가? 물론 문제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흔들리는 경험을 하고 있지 않은가. 재벌과 권력의 유착을 통해 사적인 이익을 주고받는 범죄 행위를 목도하고 있으며, 우리 눈앞에 드러난 것이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라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기에 더욱 두렵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경제 질서로서 공정성과 투명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으로 충분할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 

 

필자는 경제의 이중 구조와 이에 조응하는 노동 시장 이중 구조를 해소하는 것이 현 단계 우리 사회가 당면한 절체절명의 과제라고 본다. 이중 구조란 우리 앞에 두 개의 세상이 각각의 원리에 따라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쪽 세상에서 저쪽 세상으로 넘어가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이런 문제의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것이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 프레임으로 이용되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당황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책한 적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노동 시장 이중 구조와 이에 따른 불평등의 책임을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에게 물었다. 기업이 비정규직을 쓰고 아웃소싱을 하는 이유가 정규직 과보호 때문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와 기업의 책임을 도외시한 시각으로서, 주어진 파이의 크기는 일정하니 약자들끼리 나누어 먹을 규칙을 찾아내라는 것이다. 전형적으로 문제의 원인을 호도하고 의제를 바꿔치기하는 속임수나 다름 없다.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찾아내기 위하여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다.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는 경제의 이중 구조에 조응하여 나타난 결과이며, 이것은 나아가 사회보장의 이중 구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것이 이중화가 '구조'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해법은 경제정책과 노동정책, 그리고 사회보장정책의 전 영역에서 일관성 있게 강구되어야 한다. 

 

수출로 성장해 온 우리나라 제조 대기업은 아시아 시장의 확대에서 따온 과실을 중소기업이나 노동자와 나누지 않았다. 자동화 시스템과 비정규직 고용, 그리고 아웃소싱 확대가 대기업의 성장 전략이었고, 국가는 이를 조장 내지 방조하였다. 이를 바로잡을 대안은 다른 전문가에게 부탁드리며 여기서는 노동정책 중심으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잘못 알려진 사실 하나를 바로잡고 가자. 흔히 비정규직은 중소기업에 주로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기업=정규직, 중소기업=비정규직인데, 대기업 종사자가 적어서 문제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보면, 비정규직의 문제는 대기업이 어찌해 볼 수 없는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다. 2015년 고용노동부의 고용 공시에 따르면, 300인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민간 대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약 473만 명인데 이 중에 20%는 직접 고용 비정규직이며, 또 다른 20%는 간접 고용 비정규직(사내 하청)이다.

 

통계청의 일자리 행정 통계에 나타난 바, 정규직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전체 공공부문 종사자가 222만 명인 것을 감안한다면, 약 700만 명, 임금노동자의 36%는 정부와 대기업이 고용 형태를 결정지을 수 있다. 정부와 대기업은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원칙을 세워볼 만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대-중소기업간 거래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하고, 최저임금 인상과 준수율 제고와 같은 제도적 장치로 시장의 하층 부문을 떠받치는 방식으로 임금을 비롯한 근로 조건의 격차를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더라도 구석구석에서 다양한 명칭, 다양한 형태로 특수 형태 근로 종사자와 간접 고용 노동자가 늘어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독립 도급, 앱노동자(배달, 대리운전 등의 분야에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일감을 받는 노동자. 미국, 인도 등의 국가에서 주로 자리 잡기 시작한 노동 형태를 가리키는 용어), 근로자에 가까운 프랜차이즈 점주 등 임금 근로자와 자영자의 경계에서 등장하는 이들도 어떻게든 보호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고 임금과 고용 등 근로 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인 영향력이 있는 자에게 일정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근로자와 사용자의 개념을 재설정하는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함에 있어서도 비정규직이나 법적으로 '근로자성'을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정규직과 똑같은 원리로 보호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예컨대, 국민연금의 급여 수준을 높이는 것보다는 기초연금을 현실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고용형태의 다양화 추세는 사회보험 기여분을 낼 고용주를 특정하지 못해서 실업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므로, 실업부조의 도입과 함께 실업보험에서도 고용주의 기여분을 조세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와 노동 시장, 그리고 사회보장의 이중 구조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는 일은 차기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개혁 과제를 일관성 있게 추진할 능력을 가진 정부가 들어설 것인가에 우리 미래가 달려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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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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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0일도 안 된 딸을 두고… 그는 왜 스스로 몸을 던졌나

지난 6월 17일 새벽 2시경, 경남 거제의 한 아파트 입구에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신문 배달원이 남자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작업복의 ‘삼성중공업’ 마크와 가슴에 달린 이름표를 보고 신분을 확인했다. 그 남자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의 이창헌 과장이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아파트 추락 자살’로 결론 내렸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고 이창헌 과장은 사고 전날,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거제 일대를 배회했다. 평소 못 먹는 소주 1병을 마신 뒤, 부모님이 살던 아파트 15층에 올라가 스스로 몸을 던졌다. 유언은 남기지 않았다.

2012년 삼성중공업 연구소에 입사한 이 과장은 2015년부터는 현장 관리부서에서 일을 해왔다. 지난해 12월 결혼했고, 올 4월에는 딸을 얻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이 과장은 왜 스스로 몸을 던졌을까.

희망퇴직 분위기 속… 상사에게 ‘저 아웃입니까’라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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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은 조선업 불황에 따른 수주 악화로 2015년부터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희망퇴직으로 1500명이 회사를 떠났고, 남은 직원에게는 급여 삭감이 단행됐다. 이 과장이 숨지고 한 달 뒤, 삼성중공업은 희망퇴직안을 발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와 일했던 동료는 직장 상사가 이 과장에게 과도한 업무를 지시하거나 모욕을 주는 방식으로 괴롭혔다고 증언했다. 업무 압박을 줘서 스스로 희망퇴직자가 되게 하는, 이른바 찍어내기라는 것이다.

사고 났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직장 상사가 죽였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상사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이 과장을 불러요. 이 과장을 앞에 앉혀놓고 10분이고 20분 초등학생 혼내듯이 엄청 뭐라고 해요. ‘오늘 퇴근하기 전까지 가져와’, ‘내일 아침까지 가져와 내 책상에’ 이런다고요. 전 직장 동료 /음성대역

고 이 과장의 아내 배 모 씨는 “지난 3월에 남편이 ‘오늘 상사가 나한테 짜증을 많이 내시는 것 같다’고 했다”며 “남편이 강하게 표현 안 하는 편이라, 상사에게 오늘 많이 깨진 것 같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가 남긴 핸드폰 메모에도 직장 상사에 대한 긴장감이 드러나 있다. 상사에게 “죄송하다”, “앞으로 더 잘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또 상사에게 “저 아웃입니까”라며 희망퇴직 대상자인지를 묻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직장 상사가 “무슨 말이냐”고 묻자 이 과장이 “희망퇴직설이 있어서 말씀드렸다”고 하자 상사는 “없다”고 답했다.

뉴스타파는 삼성중공업 측에 희망퇴직에 따른 찍어내기와 괴롭힘 여부를 물었다.

“괴롭힘을 주거나 하는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자체 조사를 하신 건가요?
“팀장이나 부서장 쪽에서 이창헌 과장에게다 그런 내용의 이야기는 전혀 없었습니다.”
삼성중공업 홍보팀 관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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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장은 대학 시절부터 우울증약을 먹어왔다. 그런데 숨지기 두 달 전부터는 집중적인 치료가 진행됐다. 지난 4월, 이 과장의 정신과 면담 기록지에는 구조조정에 따른 불안증세와 불면증을 느끼고 있다고 적혀 있다. 그의 휴대폰에는 ‘사람 죽는 높이’를 검색했던 게 남아 있다. 지금 심적으로 도망가고 싶은 생각,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 심하게 우울한 것은 1-2주 전부터 그렇다. (2017.6.14 정신과 면담기록지)

부인 배 씨는 이 과장의 죽음을 산재라고 주장했다. 희망 퇴직압박에 따른 스트레스가 심해 그런 선택에 내몰린 것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판단 능력이 떨어진 노동자의 자살은 산재로 인정하고 있다. 대법원도 이같은 취지의 판결을 여러 차례 내린 바 있다.

지난 2015년 경찰청 통계를 보면, 직장이나 업무상의 이유로 자살한 사람은 559명으로 하루 1.57명꼴에 이른다.

산재 입증 책임은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떠넘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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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건은 산재를 어떻게 입증하느냐는 것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노동자 측에 산재 입증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족이 직접 고 이 과장의 스트레스 강도와 초과 근로 시간, 업무량 등에 관한 자료를 찾아야하는 상황이다.

입증 자료 확보를 위해 배 씨는 남편의 회사 사무실 출입을 요구해왔다. 이 과장의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였는지, 직장 상사의 압박은 없었는지 등을 그의 사무실의 컴퓨터나 메모에서 확인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삼성중공업 측은 배 씨의 회사 출입을 거부했다. 보안상의 이유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배 씨는 회사 사무실에서 남편의 유품을 챙겨오겠다고 요구했지만, 회사는 유품을 상자에 담아 집으로 보냈다. 숨진 지 두 달이 지나 더는 유품 보관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의아한 것은 유품 상자에는 2015년 수첩은 있지만 최근인 2016년, 2017년 수첩은 보이지 않았다.

또 배 씨는 경찰에 남편과 관련된 수사 기록 일체의 공개를 요청했다. 2주 후, 경찰이 공개한 수사 기록은 고작 세 페이지였다. 사고 전날 휴가 신청 서류와 이 과장의 석달치 초과근무 신청 내역이 전부였다. 회사 동료들의 진술서, 출퇴근 기록지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배 씨는 경찰에 정보 공개에 대한 이의 신청을 냈다.

국회 개정안 냈으나 폐기…인권위 권고에도 5년째 미이행

노동자의 산재 입증 책임에 대한 분담이 여러 차례 논의됐으나 실현은 흐지부지됐다. 지난 2011년 국회에 노동자와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입증 책임을 분담하도록 하자는 취지의 개정안이 올라왔으나 당시 국회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또 국가인권위원회가 2012년, 국가와 사용자 측에게도 입증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 권고안을 냈으나 5년째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이런 입법 노력과는 반대로 2015년 헌법재판소는 산재 입증 책임이 노동자측에 있다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다. 보험재정 건전성 유지와 노동자의 입증이 용이하다는 이유였다. 다만 당시 안창호 재판관은 질병의 오랜 진행과정, 노동자측의 정보 부족으로 노동자에게 가혹한 결과를 초래한다며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보충 의견을 내기도 했다.

지난 8월, 대법원은 산재 입증 책임에 대해 노동자 측의 부담을 덜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일하다 다발성경화증이라는 희귀 질환에 걸린 노동자의 산재 소송에서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삼성전자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관련 정보를 거부한 것을 두고 “입증 증명이 곤란해진 사정은 노동자에게 유리한 간접 사실이 된다”고 판시한 것이다. 이는 노동자의 입증 부담을 덜어주면서 정보 제공을 거부한 회사의 소극적인 자세에 경고한 셈이다.

회사가 어떻게 보면 가장 큰 키를 쥐고 있지만 그 키를 안 풀어주는거 잖아요, 사실. 그로 인해서 가장 기본적인 걸 확인하고 싶어도 확인할 수 없고 회사가 자료를 제출할 의무도 없는 거고. 유족들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안도 없어요. 지금 입증 책임 전환에 대한 논의는 이미 10년 전부터 있었는데 그조차 흐지부지해왔던 것이고 좀 더 많은 변화가 있어야겠죠. 권동희 노무사

#2. 건강했던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 이유는?

금호고속 광주지사 소속 버스 기사였던 남편. 아내는 남편이 술과 담배도 멀리한
건강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아내는 하루는 새벽에 운전을 마치고 온 남편이 힘들어 죽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최 씨가)새벽 3시에 들어오면서 ‘나 너무 힘들어 나 죽으려나 봐’라고 해요. 또 ‘봐봐 (목이)안 돌아가, 안 돌아가’, 그래서 내가 ‘그러면 얼른 씻고 자야지’ 그랬죠. 힘들어서 그런 줄만 알았죠. 금호고속 버스기사 최 씨 아내

그날 저녁, 남편 최 씨는 광주의 한 공원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최 씨는 큰 수술을 받았으나 쓰러진 지 한 달도 안 돼 숨을 거뒀다. 사인은 모야모야병에 이은 뇌출혈과 뇌경색. 모야모야병은 특별한 이유 없이 뇌 속 특정 혈관이 막히는 질환이다.

과로사 버스기사의 운행일지…쓰러지기 전날, 약 1000KM 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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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운행일지에서 실마리를 찾아 볼 수 있다. 최 씨가 쓰러지기 전날인 지난해 9월 28일의 운행을 보면, 오전 9시 강원도 원주에서 시작된 운행은 다음 날 새벽 2시 40분 광주에서 끝이 났다. 총 거리는 989km, 운행시간만 총 열네시간이다. 최 씨의 하루 평균 운행 거리인 630km보다 1.5배나 길었다. 9월 13일은 1002km, 9월 9일은 1095km, 9월 4일은 913km 등 운행일지 곳곳에서 900, 1000km 운행 거리가 눈에 띄었다.

또 수면시간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쓰러지기 일주일 전인 9월 22일 운행을 보면 최 씨는 다음날 새벽 1시에 경남 창원에 도착한 뒤, 아침 7시 40분에 버스 운전대를 잡았다. 전날 13시간을 운행한 뒤 6시간가량을 쉬고 다시 11시간을 운행한 것이다.

이 같은 운행이 가능했던 이유는 고속버스 기사는 근로기준법 59조, 근로시간 특례조항에 적용받기 때문. 이 조항에 따라 운수업, 영화제작업, 방송업 등 26개 업종에 대해서는 노사 합의만 있다면 무제한 장시간 노동이 가능하다.

여야는 지난 7월 광역버스 사고 이후 노선 버스업 등 16개 업종을 특례업종에서 삭제하기로 합의는 했지만 개정안은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또 현재 국회에는 하루 최대 10시간 이상의 버스 운행을 금지하는 여객자동차법 개정안이 올라와 있다. 유럽연합은 9시간, 미국은 10시간으로 버스 기사의 하루 최대 운행 시간을 제한하고 있는 상태다.

최 씨가 숨지고 나서야 버스기사의 휴식시간 보장은 법으로 명문화됐다. 지난 2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이 개정돼 버스의 경우 1일 운행 종료 후 연속 휴식시간 8시간을 보장하고, 1회 운행 후 15분 이상 휴게시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잇따른 졸음운전 사고에도…과로사의 현장 조사는 생략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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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근로복지공단 광주본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최 씨의 죽음을 산재로 인정했다. 이로써 최 씨의 사용자 측인 금호고속은 1명 이상이 업무로 사망한 중대재해 사업장이 됐다. 금호고속은 관할노동청의 현장조사 대상이 된다. 하지만 관할 노동청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유는 근로감독관 직무 규정 때문. 규정에는 추락, 골절 등 안전 사고 같은 사업주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위반이 아닌 재해는 현장조사를 생략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즉 눈에 보이는 안전사고가 아닌 경우에는 노동청이 조사를 안 해도 되는 것이다.

문제는 버스기사의 졸음운전이 개인의 생명뿐만 아니라 버스 승객과 도로 위 운전자들의 목숨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7월, 고속버스기사의 졸음운전으로 20대 여성 4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 지난 7월에는 광역버스기사의 졸음운전으로 50대 부부가 숨졌다.

노동청이 적극적으로 조사를 통해서 근무시간 변경이라든지 업무 형태 전환이라든지 이런 것을 지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게 회사에서는 강제로 할 수 없거든요. 본인들은 조그만 인력을 가지고 근로자를 많은 시간 일을 시켜서 수익창출을 하려는 구조로 되어 있고 그게 기업의 목표이기 때문에 기업에서 자율적으로 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배연직 노무사/최 씨 사건 대리인


취재: 강민수
촬영: 최형석 김기철 오준식
편집: 윤석민
CG: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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