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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탄핵재판 불출석한 박 대통령 기자간담회에서는 무죄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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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탄핵재판 불출석한 박 대통령 기자간담회에서는 무죄 주장

익명 (미확인) | 목, 2017/01/05- 21:56
뉴욕타임스, 탄핵재판 불출석한 박 대통령 기자간담회에서는 무죄 주장 – 헌법재판소 탄핵재판 공식 심리 시작, 6월까지 복권 아니면 퇴진 결정 – 박 대통령 변호인단 통해 심리 불출석 입장 표명 – 분노한 대규모 민중들 박 대통령 축출 요구하며 10주 연속 집결 뉴욕타임스는 화요일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재판 공식 심리가 시작되었으나 박근혜 대통령의 불출석으로 9분 만에 종결되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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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 새누리당 예비후보(청주 서원구)의 배우자가 1985년 한 후보가 공직자로 재직하던 시절 농촌에 위장 전입해 농지를 매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해당 농지는 1985년 이후 적어도 10배 이상 가격이 상승했다. 한대수 예비후보는 배우자의 위장 전입을 인정했지만 관행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대수 후보 감사관 시절, 정부가 ‘투기 근절’ 외칠 때 배우자는 ‘농지 매입’

한대수 후보의 배우자 최 모 씨는 1985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영동리 구룡동 일대 8필지의 땅을 매입해 지금도 소유하고 있다. 면적은 모두 26,000m2 이고 지목은 논과 밭(전답)이다. 하지만 현장을 확인한 결과 오랫동안 방치돼 농사를 지은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1985년은 한대수 후보가 감사원 감사관으로 재직하던 시절이다. 당시 경기도 광주시는 땅값이 급등해 정부가 토지거래신고제를 발동한(1984년) 전국 26개 시군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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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 후보 배우자 최 씨가 매입한 8필지의 땅은 1990년 공시지가가 처음 발표될 때 1m2 당 1만 원이었는데 2015년 10만 원 가량으로 올랐다. 10배 가량 오른 셈이다. 최 씨가 매입한 땅에 인접한 다른 땅은 형질이 전답에서 대지로 변경돼 현재는 1m2 당 5-60만 원 이상을 호가한다고 영동리 주민은 말했다.

한 후보 배우자, 농지 매입 위해 ‘위장전입’

1985년 당시 농지 관련 규정에 따르면 외지인의 농지 매입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었고, 통작 거리(농지에서 거주지까지의 거리)는 4km로 제한돼 있었다. 당시 한대수 후보는 서울에서 감사원 감사관으로 재직하고 있었고, 배우자도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배우자 최 씨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광주시 퇴촌면에 농지를 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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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부등본에는 한대수 후보자의 배우자 최 씨가 퇴촌면 농지를 매입할 당시 주소지로 ‘퇴촌면 영동리 000번지’가 기재돼 있다. 하지만 해당 주소지에 사는 실 거주자 이 모 할머니는 최 씨도, 한대수 후보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에 70년 이상 살아온 노인회장도 역시 최 씨를 모른다고 말했다. 마을 이장은 “주민들이 주민등록등본을 떼면 모르는 사람이 전입이 돼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이런 일은 위장전입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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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 후보자, ‘위장 전입’은 인정…하지만 ‘관행’ 주장

한대수 후보는 이와 관련해 “노후에 농사를 짓기 위해서 매입했다”며 “실제로 농사를 잠시 짓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위장전입과 관련해서는 “당시에는 다들 그렇게 농지를 매입했다”며 배우자의 위장전입 사실을 인정했지만,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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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인들’이 점령한 퇴촌면 영동리 구룡동 계곡 땅

뉴스타파는 한대수 후보의 배우자가 위장전입을 통해 매입한 전답 인근의 땅은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모두 19필지의 토지 등기부등본을 분석했다.

19필지 중 2필지를 제외하고 17필지를 광주시 외부에 살고 있는 ‘외지인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가장 많은 8필지는 한대수 후보의 배우자 최 씨의 소유였고, 5필지는 모 지방언론사 사주의 소유였다. 역대 소유자 중에 지상파 방송사 기자가 발견되기도 했다. 나머지 땅도 모두 서울 강남구 등 외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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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6/03/1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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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쏘면 위성도 미사일?

지난 2월 7일 북한은 위성을 쐈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위성을 발사한 것은 사실이다. 북한은 이 위성을 지구 관측 위성 ‘광명성 4호’라고 명명했으며, 이 위성은 지금도 지구 궤도를 돌고 있다. 다만 이 위성이 정말 지구 관측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지상의 기지국과 통신이 가능한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북한의 위성 발사에 대해 실제로는 미사일 발사 실험 아니냐는 ‘의심’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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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해외 유수 언론들은 북한의 위성 발사체를 곧바로 미사일로 단정짓지는 않았다. 주요 언론들의 기사 제목을 훑어보자.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North Korea launches ‘satellite’’(2월 6일), 즉 ‘북한 ‘위성’ 발사’ 라고 해서 북한의 주장을 인용하되 따옴표로 의심을 표시했다. 뉴욕 타임즈는 ‘ North Korea Launches Rocket Seen as Cover for a Missile Test’ (2월 6일), 즉 ‘북한, 미사일 시험을 위장한 것으로 보이는 로켓 발사’라고 해서 북한의 주장과 그에 대한 의문을 모두 표현했다. 영국 BBC는 ‘North Korea fires long-range rocket despite warnings’(2월 7일), 즉 ‘북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로켓 발사’라고 했다. CNN과 알자지라 등 다른 국제 뉴스 네트워크도 모두 ‘로켓’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북한의 위성을 곧바로 미사일이라고 불렀다. 국방부는 북한의 위성 발사 당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북한의 장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조중동은 물론 KBS와 MBC 등 지상파 방송도 이를 그대로 받아 장거리 미사일 등의 표현을 단정적으로 사용했다. 그 뒤는 모두가 아는 바다. 하루 종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비난하는 종편의 아우성 속에 북한이 실제 위성을 발사했다는 것은 까맣게 잊혀졌다.

사거리 12,000 km라는데 왜 한국에 사드 배치?

한국 정부와 언론의 논리는, 위성 발사 기술이 미사일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위성이지만 이를 미사일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실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북한이 위성을 발사한 2월 7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의 위성 발사 기술이 “미사일에 적용될 경우 만 2천 킬로미터에서 만 3천 킬로 미터 정도 사거리를 지닌 미사일이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북한의 위성 발사 기술로 그처럼 어마어마한 사거리를 지닌 미사일을 곧바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쏘려면 일단 미사일을 대기권 바깥으로 쏘아 올린 뒤 우주 공간을 거쳐 목표 지점까지 보내고 (우주 공간에서는 공기의 저항이 없어 연료 소모가 거의 없다.) 목표 지점에 다다르면 이를 다시 대기권 안으로 끌어 내려야 한다. 이 때 미사일을 다시 대기권 안으로 끌어내리는 기술을 재진입 기술이라고 하는데, 북한이 이 기술을 확보했다는 증거는 아직 전혀 없다.

이런 점을 일단 접어두고 정부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의문은 남는다. 세계 지도를 열어 북한을 중심으로 지름 만 2천 킬로미터인 원을 그려보라. 동쪽으로는 미국 워싱턴을 넘어 대서양 한 복판까지,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대륙의 서쪽 끝까지 닿는다. 사실상 전 지구를 포괄하는 사정거리다. 그 말은, 당장 이번 미사일 발사로 잠재적 위험이 증대한 쪽은 북한과 겨우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한국보다는 멀리 떨어진 다른 대륙에 살고 있는 누군가라는 뜻이 된다. 물론 이번 위성 발사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 기술의 수준이 높아지고 안정화되는 증거라고 보면 남한에 대한 잠재적 위협도 증대한 것은 사실이나 딱히 이번 발사와 연관시켜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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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방부가 미국과 사드 배치를 협의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북한이 위성을 발사한 지 불과 6시간 만이었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토마스 밴달 미 8군 사령관이 동석했다. 이 사실은 이번 북한의 위성 발사로 잠재적인 위험을 안게 된 ‘누군가’가 누구인지를 잘 보여준다.

사드는 한반도 방어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경위야 어쨌든 사드가 북한의 미사일로부터 남한을 방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면 다른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사드 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할만 하다. 그러나 사드가 남한 방어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는 매우 희박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드가 아직 실전에서 사용된 적이 없는 ‘개발 중’인 무기라는 점이다. 실전에서 한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무기를 놓고 이게 한국의 전장 환경에 도움이 되는지 안되는지를 다투니 결론이 날 수가 없다. 그러나 판단을 도와주는 근거들은 있다.

미국 의회조사국은 지난 2013년 ‘아태 지역에서의 탄도 미사일 방어 : 협력과 반대’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아태 지역에 탄도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미사일 방어 체계, 즉 MD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검토한 보고서이다. 보고서의 전체 결론은 ‘도움이 된다’는 쪽이다. 보고서의 전체 결론이 그러한데도 불구하고 한국 쪽의 효용은 크지 않은 것으로 적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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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에도 미국 의회 조사국은 같은 제목의 보고서를 냈으나 여기서는 한국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 2015년에도 미국 의회 조사국은 같은 제목의 보고서를 냈으나 여기서는 한국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의 방위사업청 역시 이 문제를 검토한 바 있다. 2013년 방위사업청은 미국 현지에 직접 가서 사드에 대한 실사를 벌였다. 방위사업청의 보고에 따르면 미국 측은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했는데, 대구 부산 지역에 배치할 경우 스커드 B, C 미사일과 노동 미사일 방어에는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수도권을 위협하는 단거리 미사일에 대해서는 미국 측에서 아무런 시뮬레이션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 두 가지 사례는,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고 싶어하는 미국 측조차도 사드가 한반도 방어에 적합하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드 배치 찬성론자들은, 사드가 지난 2006년부터 지금까지 14차례나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든다. 그러나 이 실험들은 매우 제한된 조건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가장 최근에 단거리와 중거리 미사일에 대한 요격에 성공했다며 미 미사일 방어국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타겟 미사일을 비행기에서 낙하산으로 내려보내 점화시킨 뒤 표적으로 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북한이 지상의 발사대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환경과는 다르다.

뉴스타파는 이러한 실험이 한반도의 전장 환경과 얼마나 유사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 미사일 방어국에 타겟 미사일과 사드의 요격 미사일 간의 거리가 얼마인지, 요격 고도와 시간은 어떠한지, 타겟 미사일의 좌표가 사드 시스템에 사전 입력되어 있었는지 등에 대한 질의를 보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한반도 사드 배치, 미국의 속내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미국은 효과를 장담할 수도 없는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려고 하는 것일까?

사드의 구성 요소 가운데 X밴드 레이더(AN/TPY-2)가 있다. 이 레이더는 두 가지 모드로 세팅할 수 있는데 종말 모드(terminal mode)와 전진 배치 모드 (front based mode)가 그것이다. 종말 모드의 경우 감시 범위가 600km, 전진 배치 모드의 경우 감시 범위가 1,800km에 이른다. 문제는 전진 배치 모드의 경우 북한 뿐 아니라 중국 베이징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까지 감시 범위에 포함된다는 점이다. 레이더를 통해 수집된 정보는 실시간으로 괌, 하와이, 미국 본토에 있는 미군은 물론 주일 미군을 통해 일본 자위대에게까지 공유된다. 중국과 러시아가 사드 배치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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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방부는 한번 ‘종말 모드’로 세팅을 해 놓으면 세팅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미 미사일 방어국에 질의했으나 역시 답변을 받지는 못했다.

사드 레이더를 통해 수집된 정보가 미국과 일본의 미사일 방어망에 실시간으로 전송되기 때문에 사드는 미국이 구축하고 있는 미사일 방어체제, MD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이 MD로의 사실상 편입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다. 한국을 MD에 편입시켜 한미일 삼각 동맹을 구축해 이를 통해 북한 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한다는것이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동북아 전략의 뼈대이다.

이명박조차 거절했던 미국의 MD 참여 요구

이러한 전략적 이점 때문에 미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을 MD에 끌어들이기 위해 애써왔다. 본격적인 압박이 시작된 것은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이 되면서부터다.

부시가 당선되고 몇 달 뒤,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은 워싱턴을 방문했다. 그런데 부시는 기자들이 모인 공개석상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this man’ 이라고 부르는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이 외교적 결례의 배경은 몇 달 뒤 한국일보가 보도한 외교 전문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 배경은 바로 MD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 며칠 전 미국은 한국에 외교 전문을 보내 “한국은 MD 배치 필요를 인정한다”라는 내용이 포함된 성명을 발표하라고 요구했는데, 한국의 외교부가 그 부분을 삭제한 채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한국의 이러한 조치는 부시 대통령을 화나게 했고, 이는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 내내 미국의 홀대로 이어졌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김대중 정부는 미국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끝내 MD 참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MD 참여 요구는 더욱 거세졌고, 이에 따라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이동식 레이더, 제주 해군 기지 건설 등의 요구를 받아들였지만 공식적으로는 MD 참여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MD 참여를 적극 검토했으며, 실제로 MD 편입 쪽으로 상당히 움직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인 게 한미 합동 미사일 방어 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는’ MD 참여를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으로서는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고 있는 중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고, MD를 받아들일 경우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이 가속화 되는 악순환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급선회’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표면적으로는 비슷한 기조가 계속됐다. 미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MD에 참여하라고 압박했다. 대표적인 게 2014년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이다. 고의였는지 부주의 때문인지 국내 언론은 초점을 맞춰 보도하지 않았지만 당시 한미일 공동 회견 영상을 보면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하는 얘기는 바로 MD 참여 논의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게는 미국에게 구실을 내줄만한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전시 작전권 환수 연기 문제다. 전작권 환수 연기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으며 한국은 외교력을 총동원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이행하고자 미국에 매달렸다. 이 때 미국이 내세운 조건이 바로 MD 참여였다. 한국의 전시 작전권 환수 연기와 MD체제 편입이 맞교환된 게 아니냐고 전문가들은 의심하고 있다.

상징적인 장면이 2014년 서울에서 벌어졌다. 2014년 4월 전작권 환수 연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는데, 당시 공동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전작권 환수 연기 문제를 주로 얘기했고 국내 언론의 관심도 그 부분에 집중됐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발언 마지막 부분에서 뜬금없이 “한국형 미사일 방어 체제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되 상호 운용성을 증대”하겠다고 말한다. 뒤를 이은 오바마 대통령은 발언의 순서가 정반대였다.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MD가 우선이고 전작권은 그 다음 관심사였던 것이다.

미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꾸준히 MD를 얘기하며 한국의 참여를 압박했지만 한국의 자세는 표면적으로는 요지 부동이었다. 한국은 사드 문제에 대해 이른바 ‘3 no’, 즉 미국의 요청을 받은 바도 없고 협의한 바도 없고 결정된 바도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 미국보다 중국을 외교의 중심에 놓는듯한 행보를 보이기까지 했다.

겉으로 드러난 상황이 급변한 것은 지난해 연말부터다. 첫번째 조치는 지난해 12월 28일 있었던 한일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합의다. 위안부 문제는 미국이 추진하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불과 70년 전까지 일본의 식민지로 고통받던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과의 군사협정을 추진할 경우 국내 여론의 커다란 반발이 부담이 될 것이고,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위안부 문제였기 때문이다. 역으로 보면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MD 참여를 거부하는데 있어 가장 강력한 명분 중의 하나가 위안부 문제였다. 그런데 한국이 나서서 이 걸림돌을 스스로 치운 것이다. 미국에서 환영의 논평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처음으로 사드 배치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발언한다. 중국을 대북 제재에 참여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국내 여론의 후폭풍을 감수하면서까지 위안부 협상을 타결한 점으로 미루어보면 실제로는 이미 사드 배치, 그리고 MD 편입 쪽으로 방향이 정해져 있었던 결과로 보인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1월 22일 있었던 국방부의 신년 업무보고다. 국방부는 신년 업무 보고에서 한미일의 미사일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채널을 구축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2월 7일 북한이 예정에 따라 위성을 발사하자(북한은 이 기간에 위성을 발사하겠다고 국제해사기구, IMO와 국제전기통신연합, ITU에 사전 신고를 했다.) 이를 곧바로 미사일이라고 규정하며 6시간 만에 사드 배치 협의를 공식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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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 안보와 경제 모두에 ‘최악의 결정’

과거 정부들과 달리 박근혜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왜 이렇게 쉽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 이유를 현재로선 정확히 확언하기 힘들다. 군사안보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전시 작전권 환수 연기에 따른 보답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공을 들여온 중국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것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인 배신감과 분노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야권의 주장처럼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의식한 ‘북풍 몰이’일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두 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결정은 이 모든 이유들을 합한 것보다 훨씬 엄중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군사적으로 보면 북한을 더욱 벼랑 끝으로 몰아넣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할 뿐 아니라 세계 2위와 3위의 군사대국인 러시아를 잠재적인 적국으로 돌리게 된다. 더 크게 보면 미국과 중국 사이의 균형 외교라는 우리 외교의 근본 기조와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성장 전략을 뿌리채 뒤흔드는 일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한국은 90년대 중국의 개방 이후 전통적 우방인 미국으로부터는 안보를 제공 받고, 새롭게 수교를 맺은 중국으로부터는 경제적 실리를 취해왔다. 이 전략이 효과적이었던 것은, 강대국들의 이전 투구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공간을 확보해 경제발전에 매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은 이러한 전략을 포기함으로써 안보 비용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경제를 고사시킬 수도 있는 ‘최악의 결정’이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미래를 암담하게 할 역사적 결정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목, 2016/02/18-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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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일 아침, 한남동의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 앞은 어수선했다. 주방의 집기들이 뜯어져 나와 트럭에 실렸고, 아직 짐으로 꾸려지지 않은 그릇들과 식료품만 쓰레기처럼 쌓여있었다. 동네미술관을 겸한 이곳에 전시되어 있던 작품들은 전날 옮겨졌고 실내는 이미 텅 비어있었다. 많은 사람이 즐겨 찾았던 2층의 창가에는 버려진 테이블 하나만 놓여있었다.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성인이 된 승민과 서연이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눈 곳으로 유명했던 장소였다. 8월까지만 영업한다는 건물주 싸이와의 합의에 따라, 결국 이날로 테이크아웃드로잉(이하 드로잉)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 8월 31일 아침 테이크아웃드로잉 2층의 창가

▲ 8월 31일 아침 테이크아웃드로잉 2층의 창가

한남동에서의 마지막 밤

폐점을 하루 앞둔 30일 밤, 예술가, 연구자, 지역 주민 등 많은 사람들이 드로잉에 모여들었다. 일종의 폐업식인 ‘클로징 캠프’가 열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드로잉이 사라지기까지 그간의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보며 생각에 잠겼고, ‘재난유산’이라는 이름의 마지막 전시를 보며 동행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드로잉을 운영해온 최소연(48) 씨는 분주해 보였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전시된 작품들을 살펴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설명을 해주었고, 마지막이라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찾아온 단골들과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 흰 블라우스와 검은 치마를 차려입은 모습이 마지막 의식을 치르는 사람처럼 경건해 보였다.

마지막 전시의 이름 ‘재난유산’은 최 씨가 직접 지었다. 여기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다. 가게를 잃는 것이 동시대 많은 사람에게 닥친 불가항력적 일이라는 의미에서 ‘재난’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또 비슷한 일을 겪을 다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유산’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최 씨는 드로잉을 지키려고 애썼던 43명의 사람을 마지막 세 달여 시간 동안 직접 만났다. 그들은 자신들이 느끼는 드로잉의 의미를 함축해 129개의 돌에 기록했고 최 씨는 그들의 이야기를 채록했다. 그 기록들이 그대로 작품이 됐고 사라지는 드로잉이 남긴 유산이 되었다. 최 씨는 이 작업에 대해 “곳간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긴 했지만 우리는 폭력이 아니라 문화를 생산했다”며 “바람을 잠재우기 위해 광풍에 돌멩이를 하나 매다는 시각적 상상으로 이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 클로징 캠프에 온 사람들이 ‘재난유산’ 참여자의 말을 듣고 있다.

▲ 클로징 캠프에 온 사람들이 ‘재난유산’ 참여자의 말을 듣고 있다.

최 씨를 비롯한 이 카페의 디렉터 세 명은 모두 현대미술을 전공한 예술가들이다. 이들은 최근의 현대미술이 대기업이나 정부 입김에 포획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권위주의적인 경향을 띠게 됐다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담은 예술 프로젝트를 2000년대 초반부터 진행했다. 사진 등으로 출력한 대형 미술관들을 ‘접는’ 퍼포먼스를 통해 현대미술이 집단적으로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강한 의문을 던졌던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와 함께 이들은 지역의 특색이 담긴 ‘열린 미술관’을 구상했다. 최 씨는 그림자가 없는 네모난 흰 벽으로 둘러싸인 초현실적인 ‘화이트 큐브’에는 다양한 예술을 담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 연장 선상에서 2006년 <접는 미술관, 명륜동에서 찾다>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이 작품으로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다. 그리고 상금 3,000만원을 종잣돈 삼아 이듬해 본격적으로 카페 겸 미술관을 열었다.

최 씨를 비롯한 운영진들은 미술관에만 갇혀 있는 작품(드로잉)을 커피처럼 편하게 즐기자는 의미에서 카페의 이름을 ‘테이크아웃드로잉’이라고 지었다. 둥지를 튼 장소는 서울 성북동이었다. 그렇게 첫 실험이 시작된 이후 어느덧 10년이 흘러 한남동에서의 마지막 밤을 맞은 것이다.

‘세 번째’ 폐점일

다음 날인 폐점일 아침, 갑자기 더위가 가셔 실내에 감도는 아침 공기가 쌀쌀했다. 새벽부터 비까지 내려 바깥에 내놓은 집기들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아침 8시가 막 넘은 이른 시각, 또 다른 디렉터인 최지안(45) 씨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아슬아슬하게 천장의 조명을 떼어내고 있었다. 최 씨는 11시까지 건물주한테 공간을 비워주기로 했다며 서둘러 남은 물품들을 정리했다.

값비싼 커피 머신은 카페를 운영하는 젊은 두 청년이 중고로 받아갔다. 잠시 뒤에는 건물주 때문에 쫓겨나게 된 다른 음식점의 사장님들이 찾아왔다. 최 씨는 드로잉에서 쓰던 접시와 컵, 쓸만한 주방도구들을 주섬주섬 챙겨 사장님들에게 들려주었다. 상징적 의미가 있는 문짝은 떼어내 경의선 공유지에 갖다 놓기로 했다.

▲ 조명을 떼어내는 최지안 씨. 최소연, 최지안 두 사람은 자매다.

▲ 조명을 떼어내는 최지안 씨. 최소연, 최지안 두 사람은 자매다.

긴 시간 동안 어렵게 만들어 낸 드로잉이 조금씩 해체되고 있었다. 어쩌면 최 씨에게는 익숙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날은 드로잉의 세 번째 폐점일이었다. 최초의 장소 성북동에서는 계약 만료와 함께 쫓겨났다. 두 번째 장소 대학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운영진들은 계약 갱신을 요구했지만 두 건의 명도 소송에서 모두 패소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자 최 씨가 잠시 멈춰 텅 빈 공간을 둘러봤다. 간간이 바닥에 짙은 갈색의 커피 알이 굴러다니는 것 외에는 깨끗했다. 6년 전 이 카페를 처음 열 때 그랬던 것처럼, 마치 곧 새 집기들이 들어오고 다시 사람들이 북적거리게 될 것 같기도 했다.

▲ 텅 빈 실내

▲ 텅 빈 실내

2010년, 한남동

6년 전이었던 2010년 봄. 건물주의 횡포로 또다시 자신들의 공간을 잃기를 원치 않았던 드로잉 운영진들은 긴 시간의 물색 끝에 한남동의 한 건물을 찾았다. 일대는 아직 개발되지 않아 월세도 비싸지 않았고, 무엇보다 일본인 건물주가 믿음직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임차인이 원하면 얼마든 계약 연장이 가능하다며 장기영업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10년 이상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는 곳을 찾던 그들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장소였다. 건물주의 약속은 “임차인이 원할 시 매년 계약을 연장한다”는 계약서상의 특약으로 반영됐다. 최 씨를 비롯한 운영진 셋은 거액을 들여 고깃집이었던 2개 층을 수리한 뒤 다시 ‘테이크아웃드로잉’의 간판을 달았다. 세 번째 시작이었다.

▲ 드로잉의 상징이 된 간판

▲ 드로잉의 상징이 된 간판

하지만 일본인 건물주는 드로잉이 명소가 되어 건물의 가치가 오르자 한 주류수입회사에 63억 원을 받고 건물을 팔아버렸다. 그리고 그 회사는 일 년 반 만에 15억5천만 원의 차익을 내고 가수 싸이에게 건물을 팔았다. 2012년 당시 싸이의 건물 인수가격은 78억5천만 원. 주변 부동산에 따르면 올해 시가는 130~140억 원으로 추정된다. 싸이는 4년여 만에 70억 원 안팎의 시세 차익을 얻은 것이다.

새 주인이 된 싸이는 훨씬 많은 월세를 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를 들이기 위해 드로잉에게 나갈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수년간 의욕적으로 가꿔 온 공간을 포기할 수 없었던 드로잉은 퇴거를 거부했다.

그 이후로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다. 싸이 측이 명도, 명예훼손을 비롯한 20여 건의 소송전을 시작했고, 4차례의 강제집행이 있었으며, 집행을 막는 과정에서 드로잉 운영진이 부상을 당해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강제집행을 중단해달라는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을 때도 싸이 측은 드로잉 운영진이 공탁금을 내러 간 틈을 타 집기를 들어내기도 했고, 높이 6미터에 이르는 공사장용 가림막을 쳐 드로잉을 격리시키기도 했다.

▲ 갑작스러운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설치했던 철제 기둥

▲ 갑작스러운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설치했던 철제 기둥

그 과정에서 수많은 예술가와 밴드, 다큐 감독, 작가, 연구자, 주민들이 드로잉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 그들 모두에게 드로잉은 단순한 동네 카페가 아니었다. 모험적인 예술가에겐 새롭고 다양한 작품들을 조건 없이 품어주는 둥지 같은 곳이었고, 동네 이웃들에겐 갈 때마다 분위기가 바뀌는 재미난 카페였으며, 호기심 많은 젊은이에겐 다양한 현대예술을 차 한 잔 값에 접해볼 수 있는 특이한 미술관이었다.

그들은 공연과 전시를 열고 한바탕 떠들썩하게 놀면서 공간을 지켰다. 언제 수십 명의 건장한 용역들이 짓쳐들어올지 모르는 강제집행의 공포가 많은 사람들을 위축시켰지만, 그들은 너무 비장해지지는 않았다. 강제음악회, 소송문학낭독회 등 기발한 공연과 전시들이 이어졌고, 즐거움이 곧 무기가 되어 버티는 힘이 되었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영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몇 차례 진통 끝에 드로잉은 올해 8월까지만 남아있기로 싸이 측과 합의했다. 이렇게 한국 예술계가 주목했던 한남동의 실험이 건물주 한 명의 ‘재산권 행사’에 의해 허무하게 끝나게 된 것이다.

▲ 드로잉에서는 공연이 계속됐다. 올해 2월 있었던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공연

▲ 드로잉에서는 공연이 계속됐다. 올해 2월 있었던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공연

1989년, 서울

1989년 1월 서울. 토지거래 허가제를 위반해 37세 남성 강 모 씨가 구속됐다. 그는 땅을 산 뒤 등기도 하지 않고 팔아치운 혐의로 징역 1년을 구형받았다. 토지거래 허가제는 투기꾼들의 먹잇감이 되어 온 개발용 토지에 대해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만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법률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한 것이다.

강 씨는 아무리 투기가 우려되는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사유재산인 땅을 자기 마음대로 팔고 사지 못하게 만드는 법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감옥에서 토지거래 허가제에 대한 위헌심판을 신청했다.

그해 말 헌법재판소가 결론을 내놓았다. 강 씨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헌재는 개인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토지거래 허가제가 ‘합헌’이라고 밝혔다. 당시 헌재가 낸 결정문의 한 대목이다.

사유재산 제도의 보장은 공동체 생활의 조화와 균형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야 한다. 투기적 거래는 엄청난 불로소득을 가져와 정의롭지 못한 부의 축적과 퇴폐향락성 과소비와 연결되기 쉽고 결국 국민의 건전한 근로의욕을 저해하고 계층 간 불화와 갈등을 심화시키는 것이므로 규제할 수 있다.
1989년 12월 22일, 토지거래 허가제 위헌심판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문

투기의 사전적 정의는 ‘기회를 틈타 큰 이익을 보려 하는 일’이다. 건물가 기준 4년 만에 70억 원가량의 이득을 얻은 싸이는 투기적 거래를 했다고 볼 수 있을까? 투자와 투기의 경계가 모호해 쉽게 판단할 수 없지만, 싸이가 더 많은 수익을 위해 세입자를 밀어낸 상황은 여러모로 위 결정문과 연결지어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엄청난 불로소득’ 그리고 ‘정의롭지 못한 부의 축적’이 ‘건전한 근로의욕을 저해하고 계층 간 불화와 갈등을 심화시키는 것이므로 규제해야 한다’는 문장은 곱씹어볼 만하다.

1989년에 헌법재판관들은 사회적 상식을 바탕으로 어떤 재산권은 공공복리에 어긋나면 제한할 수도 있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렇다면 2016년 우리가 믿고 있는 재산권이란 어떤 모습일까? 부(富)에 관한 우리 사회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대부분 세입자가 패하는 법원의 명도소송 판결에서부터, 세입자가 ‘을질’을 한다며 비판하는 수많은 댓글들, 그리고 미래의 꿈 2위가 건물주인 고등학생들의 모습까지… 가진 사람의 권리만 중시하는 사회의 모습이 우리가 믿는 절대적 재산권의 우상 속에 반영되어 있다.

▲ 헌법재판소

▲ 헌법재판소

“소유하지 않아도 주인일 수 있다”

다시 2016년, 드로잉을 지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소유하지 않아도 주인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건물을 가졌다는 증서를 가진 사람 못지않게, 황무지 같은 곳에 들어와 자신들의 창의와 노동으로 공간의 가치를 만든 사람들도 주인의 권리가 있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던 셈이다. 지금 한국의 법체계를 놓고 보면 허무맹랑한 주장처럼 들린다. 하지만 재산권이 반드시 배타적인 권리인가에 관해서는 논박의 여지가 있다.

재산권이라는 것이 원래 자기 재산을 배타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할까? 재산권은 자연이 부여한 절대적인 권리이므로 그 개념이 변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헌법학자 김종철 교수(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재산권의 내용은 시대 상황이나 법률로 정하는 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며 “법원에서도 공공복리를 근거로 재산권을 제한하는 헌법적 정신에 충실한 법률 해석과 판결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법원이 보수화 경향이 있는 데다 판사들이 헌법보다 사적 자치나 재산권 보호에 철저한 민법 논리에 익숙하다 보니 그런 적극적 판결에 인색한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현행 헌법은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23조)

사회적 합의에 따라 재산권을 인정하는 폭이 달라지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카페, 펍, 전통 극장 등 지역공동체 사람들에게 중요한 부동산을 ‘지역사회에 가치 있는 자산(ACV, Asset of Community Value)’으로 지정해 건물 소유자가 함부로 자신의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세입자가 계약 갱신을 요구하면 웬만해서는 그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 건물주의 재산권 이상으로 세입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차지차가법)

재산권이 소유자만을 위한 절대적인 권한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9년과 지금이 다르고, 지역에 따라서는 한국과 영국, 일본이 생각하는 재산권의 폭이 다르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재산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관해 합의한 ‘가변적인 시스템’이라고 재산권을 정의하는 편이 더 타당해 보인다.

▲ 영국 런던 레이턴스톤의 펍 ‘Heathcote Arms’를 지키려는 마을 사람들의 캠페인. 이 펍은 2015년 ‘지역사회에 가치 있는 자산(ACV)’으로 지정되어 결국 영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 영국 런던 레이턴스톤의 펍 ‘Heathcote Arms’를 지키려는 마을 사람들의 캠페인. 이 펍은 2015년 ‘지역사회에 가치 있는 자산(ACV)’으로 지정되어 결국 영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가격으로 표현되지 않는 가치

얼마 전 20대 국회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자는 목적으로 ‘자율상권법(자율상권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다. 지정된 상권에서만큼은 임대료 인상 걱정 없이 세입자들이 마음 놓고 장사할 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다. 상수동에서 카페 ‘그문화다방’을 운영하는 김남균 씨(<골목사장 생존법> 저자)는 “임대인의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자율상권구역으로 지정이 가능하다”며 “자율상권구역이 되면 임대료를 올리기 어려워지는데 이렇게 많은 임대인들이 알아서 동의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법안의 현실성을 지적했다.

문제는 거듭 벌어지는데 뾰족한 해결책은 없는 상황. 20대 국회에서 보다 나은 젠트리피케이션 대책이 나오기를 기대하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일단 건물주의 재산권은 절대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하니, 건물주가 알아서 자신의 재산권을 ‘착하게’ 행사하도록 유도하는 쪽으로만 해결책이 나오고 있다. 드로잉의 최소연 디렉터는 “잘못된 제도를 바꾸려면 시간이 걸리는 데 그 사이에 가게들이 다 쫓겨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안전장치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한다.

▲ 최소연 디렉터 ⓒ 정용택

▲ 최소연 디렉터 ⓒ 정용택

많은 사람들이 드로잉을 찾았던 이유는 드로잉이 140억짜리 건물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가격으로 표현할 수 없는 드로잉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좋아했다. 예술가들의 작업과 카페의 자유로움이 얽혀 빚어내는 문화적 가치는 ‘가격’으로 매기기 힘들다. 하지만 모든 가치를 가격으로 매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가격을 지불한 건물주가 모든 권리를 독점했다고 믿게 된다. 긴 시간 노력해서 공간을 꾸미고 다듬었던 세입자와 이용자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올해 서울에서만 가회동 장남주우리옷, 씨앗, 신사동 우장창창 등 십여 곳이 넘는 가게가 건물주의 요구 때문에 쫓겨났거나 싸우고 있다. 알려진 것만 이렇다. 멀쩡히 장사하다 어느 날 갑자기 통보를 받고 밀려나는 일이 이렇듯 계속되면 세입자들은 어차피 빼앗길 공간을 자발적으로 가꿀 의욕을 내기 어렵다. 대신 그 자리는 전국에 같은 모습을 한 매장에서 같은 상품을 파는 프랜차이즈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문화라고 할만한 것들이 사라진다. 거리에 개성을 불어넣는 사람들을 밖으로 내모는 상황은 결국 이렇게 도시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다.

목, 2016/09/0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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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씨의 조카 장시호(최순실의 언니 최순득의 딸)씨와 관련된 이권개입 의혹 회사가 새롭게 드러났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K스포츠재단의 국제회의 대행 사업을 따냈던 이벤트 업체 ‘더스포츠엠'(이하 ‘SPM’)을 설립한 사람이 장시호 씨가 주도해 설립한 ‘사단법인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이하 ‘영재센터’)의 직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 영재센터의 자금이 SPM으로 흘러들어 간 정황도 포착됐다. 이 때문에 장 씨가 차명으로 SPM을 설립한 뒤, K스포츠재단이나 영재센터의 자금을 이 회사를 통해 빼돌리려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뉴스타파는 설립 배경과 오너가 베일에 감춰져 있던 SPM을 추적하던 중 장시호 씨가 주도해 만든 영재센터와 최순실 씨가 사실상의 주인인 K스포츠재단의 돈이 용역 계약을 통해 SPM으로 흘러들어온 사실에 주목했다.(※ 관련기사 : K스포츠도 정체불명 이벤트업체와 수상한 거래)

‘장시호 법인’ 직원이 SPM 설립

SPM 법인등기부 등본에 따르면, 이 회사를 설립한 사람은 87년생 이 모 씨다. 그는 올해 3월 회사 설립 당시 등기이사에 올랐다가 일주일 만에 사임한 것으로 나온다. 뉴스타파 취재결과 이 씨는 장시호 씨가 사무총장을 지낸 영재센터의 직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 영재센터가 GKL사회공헌재단에 제출한 사업계획서 (출처:김태년 의원실)

▲ 영재센터가 GKL사회공헌재단에 제출한 사업계획서 (출처:김태년 의원실)

이런 사실은 영재센터가 지원금을 받기 위해 GKL(그랜드코리아레저) 사회공헌재단에 제출한 ‘사업계획(신청)서’를 통해 드러났다(※ 관련기사 : 삼성, 최순실 조카에 거액 지원…최 씨 일가 전방위 지원 의혹).

이 문서에는 영재센터의 과장인 이 씨가 지원금 신청 담당자로 기재돼 있다. 뉴스타파는 SPM을 설립한 이 씨가 영재센터 직원 이 씨와 동일인물이며, 최근까지 SPM 사무실에 근무한 사실도 확인했다. 다시 말해 이 씨는 정시호 씨가 주도해 설립한 사단법인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의 직원이자 동시에 베일에 가려있던 의문의 회사 SPM의 직원이기도 했던 것이다. 실제 영재센터와 SPM은 사실상 ‘한몸’처럼 운영돼 왔다. 일단 사무실이 같았다. 강원도 평창에 본사를 둔 영재센터는 서울 강남에도 사무실을 운영한다고 홍보해 왔는데, 확인해 보니 그곳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SPM 사무실과 같은 주소였다. SPM이 ‘이규혁 재능 기부 무료 빙상체험 교실’, ‘제1회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빙상영재캠프’ 등 총 4개 사업을 영재센터로부터 수주하는 등 영재센터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2016110101_02

SPM의 한 관계자는 “회사(SPM) 운영에 필요한 자금은 주로 영재센터에서 나오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SPM이 사실상 장시호 씨의 차명회사가 아닌지” 등 관련 의혹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영재센터와 SPM을 설립한 이 모 씨 측에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아무런 답도 듣지 못했다.


취재 : 오대양

화, 2016/11/0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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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박형철, 그리고 이시원과 이문성 검사

지난 6일 발표된 법무부 인사에서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담당 검사와 간첩증거 조작사건 담당 검사의 운명이 엇갈렸다.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에서 팀장과 부팀장을 맡았던 윤석열 검사(23기)와 박형철 검사(25기)에 대해 각각 대구고검에서 대전고검으로, 대전고검에서 부산고검으로 인사 발령이 났다. 또다시 한직으로 여겨지는 고검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반면 유우성 씨 간첩사건을 수사지휘하다 조작된 증거를 법정에 냈던 이시원 검사(28기)와 이문성 검사(29기)는 모두 1년 5개월만에 지방고검 탈출에 성공했다. 이시원 검사는 대구고검에서 법무연수원 기획과장으로, 이문성 검사는 광주고검에서 전주지검 부장검사로 인사발령이 났다.

대전고검 발령 2년 만에 다시 부산고검으로 인사 통보를 받은 박형철 검사는 다음날(7일) 사표를 제출했다.

윤석열 검사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박형철 검사는 서울에 있는 가족과 오랫동안 떨어져 있으면서 힘들어했다”면서 “그런데 현재보다 먼 부산으로 내려보냈기 때문에 가족과 논의 끝에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윤석열, 박형철, 이문성, 이시원 검사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윤석열, 박형철, 이문성, 이시원 검사

유능했다…그러나 모두 정의롭지는 않았다.

이들 4명의 검사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좌천성 인사를 받고 지방고검으로 내려가기 전에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윤석열 검사와 박형철 검사는 검사장의 승인없이 국정원 직원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는 이유로 각각 정직 1개월과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받았고, 이시원 검사와 이문성 검사는 유우성 씨 간첩사건에서 조작된 증거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항소심 재판부에 냈다가 각각 정직 1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이들이 모두 검찰 안팎에서 인정받는 유능한 검사였다는 점이다.

윤석열 검사는 대검 중수부 1.2과장과 서울지검 특수1부장을 지내며 현대차 비자금 사건, 론스타 헐값 매각 사건 등 대형사건을 처리했던 ‘특수통’이었고 박형철 검사는 선거법 분야에서 이시원 검사는 공안기획분야에서 검찰조직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으며 기수 동기들 중에서도 에이스급으로 꼽히던, 속된 말로 ‘잘 나가는’ 검사였다.

그러나 이들이 맡았던 사건의 성격은 서로 달랐다.

대선개입 사건은 파고들수록 권력자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유우성 씨 간첩증거 조작사건은 어떻게든 검사의 잘못을 최소화해야 검찰이나 국정원의 체면을 살릴 수 있는 사건이었다.

또한 수사 검사의 의지도 판이했다. 윤석열 검사와 박형철 검사는 국정원이라는 권력기관의 불법 행위에 대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법대로 처리하려고 했다. 특별수사팀을 지원하는 대신 권력자의 눈치를 보며 오히려 국정원을 옹호하는 장관과 맞서 싸웠다.

그러나 이시원 검사와 이문성 검사는 국정원 직원의 증거 조작이라는 불법 행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애써 눈감아주려고 했다. 자신들이 수사를 지휘하고도 증거 조작을 부인했고, 증거 조작 사실이 확연히 드러나자 증거 조작에 가담했거나 방조했다는 의혹으로부터 빠져나가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씀으로써 검찰 조직을 보호했다.

그 결과 지방고검으로의 문책성 전보 이후, 이번 인사에서 이들의 운명은 갈렸다.

“찍히면 끝이라는 인식 검찰 내부에 팽배”

검찰 내부 사정에 밝은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고검에서 고검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는 보통 기수가 높아서 검찰에서 나가야 하는데 자진해서 안 나가는 검사들의 경우지 박형철 검사처럼 한창 일할 나이의 능력있는 검사가 2번씩이나 지방고검을 떠도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이시원, 이문성 검사의 경우 이번 인사가 혜택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법무연수원은 한번은 들러야 되는 곳이고, 고검에서 지검 부장검사로 갔다는 것은 현장에서 일할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배려는 해주었다고 봐야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윤석열 검사는 “내 인사는 어차피 이렇게 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박 검사의 경우는 최소한 서울고검이나, 아니면 지방 차장검사 정도는 갈 것이라는 의견이 검찰 내부에서도 많았고 박 검사 본인도 그렇게 예상했다. 무슨 비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장관의 지시가 위법하다고 본 팀장의 지시에 부팀장으로서 따라온 것 뿐인데 너무 가혹할 뿐 아니라 납득하기 힘든 인사”라고 평가했다.

박형철 검사는 검찰 내부통신망인 ‘이프로스’에 사직의 변도 올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검찰에 몸담았던 검사들은 조직을 떠나면서 쓴소리든 단소리든 내부통신망에 소회를 밝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윤 검사는 “글을 올리게 되면 동료, 후배 검사들이 그 글에 대해 댓글을 달아도 부담이고 안 달아도 부담이 되는 상황이 현재 검찰 분위기라며 그런 이유 때문에 박 검사가 아무런 글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프로스에는 2013년 징계 때와는 달리 이번 인사에 대해 성토하는 글이 현재까지 단 1건도 올라와 있지 않다. 한 변호사는 “청와대에 파견됐던 검사들이 이번 인사를 통해 다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괜히 한마디 했다가 찍히면 끝장난다”는 인식이 검찰에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금, 2016/01/0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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