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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생각] 21세기 아우슈비츠, 호주 강제 수용소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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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생각] 21세기 아우슈비츠, 호주 강제 수용소의 진실

익명 (미확인) | 화, 2016/09/27- 15:09

*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016 아시아생각] ① '쯔위 사건', 돈벌이에만 혈안인 K-팝에 '경종'

[2016 아시아생각] ② 쯔위 덕 본 차이잉원 "대처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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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아시아생각] ⑨ '세계인도주의의날'을 기억해야 하는 진짜 이유

[2016 아시아생각] ⑩ 홍콩우산운동, 그후..

21세기 아우슈비츠, 호주 강제 수용소의 진실

[아시아 생각] '선상 난민 절대 수용 불가’라니…

 

레베카 헤란드 호주 시민

 

 

호주(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1951년 '유엔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The 1951 Convention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에 서명했다. 이 협약에 따르면 박해의 위험에 직면한 모든 사람은 호주에 망명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호주 정부는 2001년부터 배를 통해 호주로 들어오는 난민들을 막기 위해 다양한 강경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2001년 난민 강경책을 시행하면서 호주 정부는 선박을 통해 비자 없이 밀입국하는 난민들을 파푸아뉴기니 마누스 섬이나 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인 나우루에 있는 난민 수용소로 보냈다. 이른바 '태평양 해결책(The Pacific Solution)'이라 불리는 이 정책은 2008년에서 2012년 사이 호주 노동부에 의해 폐지되었다가 토니 애버트 전 총리와 현재 총리인 말콤 턴불에 의해 부활했다.
  
그리고 현재 자주국경작전부(Operation Sovereign Borders) 산하 국경수비대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자주국경작전부는 연안 구금 시설만 관리하는 것만 아니라 난민선이 호주에 도착하기 전 난민선을 위험하고 광활한 바다로 돌려보내기까지 한다. 호주 군대에 의해 강력하게 시행되고 있는 이 정책은 국제적으로 '당신이 호주를 집으로 삼을 방법은 없다 '라고 알려져 있다. 

 

호주 정부는 난민 수용소에 구금되어 있는 망명 신청자들에게는 세가지 선택권을 부여한다. 그것은 바로 현재 구금되어 있는 섬에 그냥 정착하거나 호주 정부와 캄보디아 정부가 맺은 동의서에 따라 캄보디아에 정착하거나 본국으로 송환되는 것이다.

 

▲ 말콤 턴불 호주 총리가 지난 16일 뉴욕 유엔정상회에서 난민.이민에 관해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AP 


난민 수용소에서 발생한 인권 유린 

 

2016년 8월말 기준 나우루 섬에는 49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411명이 구금되어 있으며 마누스 섬에는 833명(모두 성인 남성)이 구금되어 있다. 

 

지난 4월말, 파푸아뉴기니 대법원은 자국 내 마누스 섬에 호주가 망명 신청자를 억류하는 것은 불법이며 구금 시설을 폐쇄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파푸아기니 오닐 총리는 대법원 결정에 따라 호주 정부가 망명 신청자들을 위한 대체 방안을 찾도록 요구할 것이며 폐쇄 시기는 호주 정부와 협의를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8월 말 파푸아뉴기니 정부와 호주 정부는 마누스 섬의 난민 수용소를 일단 폐쇄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폐쇄 시점이나 마누스 섬에 수감된 833명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단지 "수용자가 호주에 정착하는 일은 없다"고 강조할 뿐이었다. 호주 주 정부, 캐나다, 뉴질랜드가 이들을 수용하겠다고 밝혔으나 호주 연방 정부는 현재 그들에게 어떠한 옵션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난민 수용소에 구금되었던 사람들이 향후 호주에서 비자를 받지 못하도록 법을 개정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난민 수용소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일들 

 

2016년 초 나우루 난민 캠프 수용소에서는 구금된 한 남성이 자해로 인해 사망했으며 몇주 후 한 여성이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했다. 이 여성은 치료를 받기 위해 호주로 이송되었는데 이로 인해 나우루 난민 캠프에 구금되어 있는 사람들의 자해와 자살 소식이 알려졌다. 나우루에 있는 망명 신청자들은 미래에 대해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평균 450일 동안 구금된다.

 

2016년 8월 초 영국 <가디언>이 입수해 공개한 호주 이민 당국의 8000쪽 분량 보고서에는 지난 몇 년간 나우루 수용소에서 난민들이 겪은 폭행, 성적 학대, 자해 등 인권 유린 사례 2000여 건이 담겼다. 이 소식이 보도되자마자 호주 국민은 #BringThemHere(그들을 여기로 데리고 오라), #CloseTheCamps(캠프의 문을 닫아라) 해시태그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그러나 호주 정부는 이러한 학대를 보도한 언론에 대해 정부를 공격한다며 비난할 뿐 아니라 피터 더튼 이민부 장관은 '난민들이 호주에 오기 위해 의도적으로 거짓말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은 호주 정부가 불법적인 구금 시설에 갇혀 학대 당한 사람들의 법적 보호자라는 것, 그리고 정부가 이미 이 사건에 대해 2016년 5월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누스와 나우루 섬에 구금된 난민들의 운명  

 

그렇다면 마누스 섬과 나우루 섬에 구금되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호주의 많은 사람들은 호주의 역외 난민 수용소에서 발생한 인권 유린이 난민 수용소를 폐쇄하고 2000여 건 이상의 인권 유린에 대해 조사하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길 기대한다. 많은 호주 국민들은 정부의 난민 강경 정책을 반대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기관들과 다른 나라 정부에서 호주 역외 수용소에 구금되어 있는 난민들을 수용하겠다고 밝혔으나 호주 정부는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변함없이 난민선으로 입국하는 사람들을 구금시설에 보내거나 캄보디아로 추방하거나 난민들이 탈출한 본국으로 송환하고 있다. 

 

호주의 이민 정책은 전반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호주는 적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부국이다. 호주 정부가 망명 신청자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는 그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안전한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다. 역외 난민 수용소는 즉시 폐쇄되어야 한다. 수용소는 구금 된 사람들의 삶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여성과 아동에게 특히 위험하다. 또한 난민 수용소 운영은 망명 신청자들을 수용하여 사회적으로 정착하도록 돕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난민 수용소는 생명을 살릴 수 있을지 몰라도 더 많은 목숨을 파괴한다. 우리는 호주로 들어오는 배들을 다시 송환하는 횟수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호주 정부의 야만적인 난민 정책을 과감하게 바꾸는 인간적인 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하다.

 

* 프레시안에서 보기 >>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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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의 18세 여성 라하프 모하마드 알 쿠눈(Rahaf Mohammed al-Qunun)에게 난민지위를 부여하고 재정착지로 호주를 제안했다는 뉴스에 대해, 사마흐 하디드(Samah Hadid) 국제앰네스티 중동 캠페인국장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라하프의 이야기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 세계는 보호를 요청하는 라하프를 돕기 위해 모였고, 대중의 힘이 그를 탄압하는 사람들을 이겼다.

사마흐 하디드(Samah Hadid) 국제앰네스티 중동 캠페인국장

라하프 모하메드의 셀카“라하프는 자신의 가족들로부터 도망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남성 후견인 제도(male guardianship rules)를 따르지 않기 위해 엄청난 위험을 감수했다. 단 며칠 만에 전세계 수백만은 그의 이야기에 감동했다. 타국에서 안전한 거처를 구하려 했던 이들이 보여준 엄청난 용기와 희생을 전 세계에 상기시키자”

“우리는 태국 정부가 라하프 사례에서 보여준 리더십에 환영을 표한다. 하지만 누구도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할 실제 위험이 있는 장소로 송환해서는 안 된다. 현재 호주에 거주중인 바레인 난민이자 고문생존자 하키 알 아라이비(Hakeem al-Araiby)는 본국송환심사를 기다리는 몇 주 동안 태국에 구금되어 있었다.”

과거 태국 정부는 종종 비호신청자와 난민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곤 했다. 라하프에게 보여준 인류애가 단발성에 그쳐서는 안된다.

사마흐 하디드(Samah Hadid) 국제앰네스티 중동 캠페인국장

배경정보

라하프 모하메드 알 쿠눈은 쿠웨이트에서 호주로 향하던 도중 2019년 1월 5일 태국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했다. 알 쿠눈은 가족들의 학대와 구타, 살해 위협을 피해 도망친 것이라고 밝혔다. 알 쿠눈은 방콕에 도착하자마자 사우디 대사관 관계자를 만났고, 그에게 여권을 압수당했다고 한다. 태국 이민당국은 알 쿠눈이 호주로 떠날 수 없는 상태이며, 이 문제를 “조율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과”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밝혔였다. 그 상황을 알리는 트윗생중계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1월 7일 알 쿠눈은 유엔의 보호아래 태국에서 체류허가를 받았다.

9일 호주 내부무는 유엔난민기구(UNHCR)가 그를 난민으로 보호하고 있으며 재정착지로 호주를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목, 2019/01/1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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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법원이 로이터통신 기자 와 론(Wa Lone)과 초 소 우(Kyaw Soe Oo)가 제기한 항소를 기각했다는 소식에 대해 티라나 하산(Tirana Hassan) 국제앰네스티 위기대응국장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로이터통신의 용기 있는 무고한 기자 2명을 감옥에 가둬 두기로 한 법원의 결정은 라킨 주에서 벌어진 잔혹행위에 대한 진실을 숨기려는 미얀마 정부가 주도한 일이다.

 

“와 론과 초 소 우는 날조된 혐의로 유죄가 선고됐다. 이들이 체포될 당시 조사하고 있던 대학살 사건은 이미 미얀마군이 인정한 사실이며, 경찰 고위 관계자 중 한 사람은 법정에서 경찰이 고의로 두 사람을 함정에 빠뜨렸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이후 수감되었지만 곧 석방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와 론과 초 소 우는 2017년 12월 체포된 이후 지금까지 1년 이상을 가족과 어린 자녀들에게서 떨어진 채 감옥에서 보내고 있다.

“두 사람에게는 감옥에서 단 하루를 보내는 것도 부당한 일이다. 이러한 촌극은 그만 끝내야 한다. 미얀마 정부는 두 사람을 아무런 조건 없이 즉시 석방해야 한다. 또한 미얀마 정부는 기자와 활동가, 인권옹호자에게 악용되는 억압적인 법률을 폐지하거나 수정하는 등 표현과 결사,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를 행사할 국민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온라인액션
미얀마: 로이터통신 기자 2명에 징역 7년형 선고
560 명 참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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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정보
와 론과 초 소 우는 2017년 12월 12일 미얀마 수도 양곤에서 체포되었다. 당시 두 사람은 라킨 주 북부에서 미얀마 보안군 소속 군인들이 저지른 대량학살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다. 미얀마 군은 강제 추방, 살인, 강간, 고문, 주택 및 마을 방화 등 로힝야인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잔혹행위를 저질렀다. 유엔 진상조사단은 이러한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인종학살에 책임이 있는 군 고위 관계자를 대상으로 형사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체포된 기자 2명은 2주간 외부와 단절된 채 구금된 후 양곤의 인세인 교도소로 이감됐다. 미얀마에 다수 존재하는 억압적인 법률 중 하나인 공직자 비밀엄수법으로 유죄가 선고되면 최대 14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체포된 기자 2명은 공직자 비밀엄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2018년 9월 3일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대해 두 사람의 변호인단은 2018년 11월 5일 항소를 제기했다.

목, 2019/01/1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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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민주주의', 집권연정은 어떻게 96%를 득표했나

[아시아생각] 정적제거용으로 전락한 과거청산...이슬람 극단주의 증폭

 

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

 

 

지난해 12월 30일 실시된 방글라데시 제 11대 총선은 아와미 리그(Awami League)가 이끄는 집권연정 '민족 대동맹(Grand National Alliance, 이하 "대동맹")'이 전체 298석 중 288석을 얻어 96% 이상을 휩쓰는 압승을 거뒀다. 1월 15일 기준 방글라데시 선관위 업데이트 현황에 따르면 이중 아와미 리그가 얻은 의석은 257석이다. 

 

세속주의 성향의 아와미 리그와 전통적으로 경쟁해온 보수정당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angladesh Nationalists Party, 이하 "BNP")은 5석밖에 얻지 못했다.

 

BNP는 2014년 치러진 10대 총선을 보이콧 하면서 의석수가 전무했다. 이번 총선도 보이콧 할 거라는 예상을 깨고 참여했지만 결국 턱없이 모자란 의석수를 얻어 야당으로서 존재감을 거의 완전히 상실됐다. 이념적으로 거리가 먼 BNP와 손을 잡고 '자티야 오이캬 프런트'(Jatiya Oikya Front '민족단합전선'이라는 뜻. 이하 "JOF")라는 야권 연대를 구성한 진보 성향의 고노 포럼(Gono Forum)도 2석을 얻는데 그쳤다. 고노 포럼은 1992년 아와미 리그 출신 인사들과 시민사회, 방글라데시 공산당(CPB)출신들이 모여 출범시킨 정치 그룹이다. 아와미 리그를 좀 더 개혁적 입장에서 견제하는 정치 세력이라 볼 수 있다. 

 

방글라데시 공산당(CPB)이 주축이 된 또 다른 정치 동맹 좌파민주주의동맹(LDA)은 이번 선거에서 단 1석도 얻지 못했다. 아와미 리그를 "파시스트"라 맹비난했던 LDA는 8개 정당이 연대하여 131개 선거구에 147명의 후보를 냈지만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이로써 아와미 리그의 하시나 대표는 3선 총리가 됐다. 그는 지금 방글라데시 역사상 최장기 집권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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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부터 장기집권에 성공한 셰이크 하시나가 지난해 12월30일 총선 투표 직후 승리를 확신한 듯한 표정을 보이고 있다. 그는 방글라데시 초대 대통령으로 '국부'로 불리는 셰이크 라만의 맏딸이다. ⓒAP=연합

 

최장기 집권, 3선 총리 

이번 선거가 공정하지도 자유롭지도 않았다는 비판은 비단 야권만의 목소리가 아니다. '국제 투명성 기구 방글라데시'(Transparency International Bangladesh, 이하 TIB)는 1월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11대 총선은 부분적으로만 참여적이었으며 곳곳에서 부정행위가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TIB가 전체 299개 선거구에서 50개 선거구를 표본조사한 바에 따르면 47개 선거구에서 복수의 부정행위가 발견됐다.

 

97% 선거구에서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한데, 이는 흥미롭게도 집권 연정대동맹이 득표한 비율과 맞먹는 수준이다. TIB는 또한 이번 조사에서 50개 선거구 중 33개 투표소 투표함은 선거 이전부터 이미 꽉 차있었다고 말했다. 여러 정당이 선거법 위반을 저질렀지만 아와미 리그의 위반 정도는 심각하다. 아와미는 전체 위반 사례 중 95.1%에 연루됐고, BNP는 30.6% 위반 사례에 연루된 것으로 확인됐다는 게 TIB의 설명이다. 

 

공신력 있는 활동으로 신뢰 받아온 방글라데시 국내 시민단체인 오디카르(Odhikar)는 보다 구조적 문제점을 짚었다. 오디카르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아와미 리그가 국가기구를 동원한 (야권) 탄압으로 선거과정에서 일방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고, 공정하며, 신뢰할만한 선거는 불가능하다"는 것. 무엇보다도 "국가억압 시스템이 계속되면 이 억압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이슬람 극단주의가 부상할 수 있다"는 게 오디카르의 경고다. 

 

방글라데시는 1971년 동파키스탄 시절 무장독립투쟁을 통해 대학살을 딛고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한 국가다. 세속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를 건국 이념으로 자랑스럽게 공표하며 여러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절차적 민주주의와 세속주의 전통을 조화롭게 지켜온 방글라데시가 오늘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1월 14일자 <뉴욕타임즈>사설은 "아와미 리그가 굳이 부정ㅍ선거를 하지 않아도 이겼을 터인데 왜 부정ㅍ선거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타임즈는 "지난 10년간 하시나 정부 하에서 방글라데시 GDP 대비 국민소득이 증가했고, 성장은 절대 빈곤율 역시 19%에서 9%로 떨어뜨렸다"며 경제 성장과 빈곤 퇴치의 성과를 언급했다.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과반도 아니고 2/3 압승도 아닌 1당 독재 국가에서나 나올법한 96%의 압도적 승리로 집권을 연장한데는 경제 성장과 빈곤 퇴치의 성과 외에 다른 배경이 없을 리 없다. 

 

2008년 하시나 정부가 정권을 잡은 이래 지난 10여 년간 여당의 독주와 야당 탄압은 물론, 일련의 사법 판결은 야권을 서서히 그러나 철저히 무력화시켰다. 독주하는 여당의 행보와 야권에 치명적인 사법 판결, 이 두 가지 흐름이 반드시 '짜여진 각본'에 의한 거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그러나 야당의 정치 기반이 무력화됨으로써 방글라데시의 절차상 민주주의 체제가 타격을 입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컨대, 지난해 10월 10일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다카 법원은 2004년 8월 21일 아와미 리그 유세장에서 벌어진 수류탄 연쇄 공격 사건과 관련해 파장이 큰 판결을 내렸다. 이 공격은 당시 야당 대표였던 하시나를 암살하려는 정치 테러였다. 하시나는 다행이 목숨을 건졌지만 24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 이 공격은 당시 집권연정인 BNP와 종교정당 자마떼 이슬라미(이하 'JeI')가 계획하고 방글라데시 내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인 하르카툴 지하드(Hark-a-Tul Jihad)가 실행한 '정치권과 극단주의자들의 합작 테러'로 밝혀졌다. 

 

법원은 피고인 19명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다른 19명에게는 종신형을 선고했다. 이미 부패 혐의로 기소되어 현재 수감 중인 BNP 칼레다 지아 총재의 아들이자 영국에 머물고 있는 타리크 라흐만도 부재중 종신형을 받았다. 그는 수감 중인 어머니를 대신하여 BNP 총재 권한 대행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결국 당총재도, 총재 권한대행도 중형을 선고받은 BNP는 회복 불능 상태로 치달았다. 

 

그보다 앞서 아와미 리그는 1971년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자행된 전쟁 범죄 처벌 과정에서 BNP의 오랜 정치 동맹 JeI을 우선 퇴출시켰다. 아와미 리그는 2008년 정권을 잡고 이듬해인 2009년 국제범죄재판(International Crimes Tribunal, ICT)를 출범시켰다. 71년 독립 전쟁 당시 친 파키스탄 민병대 노릇을 하며 독립운동 진영에 대한 대학살과 강간 등의 전쟁 범죄를 저지른 JeI에 대한 처벌 수순에 들어간 것이다. 

 

이 재판은 과거청산작업으로서, 전후(post-conflict) 정의 실현 매커니즘의 일환으로 충분히 의미있는 과정이었다. 기소된 이들 다수는 JeI 소속이고, BNP 소속도 3명이나 됐다. 문제는 재판 과정이 이슈의 중대함에 비해 국제 수준에 턱없이 미치지 못한 데다 재판 후 거세게 몰아닥칠 후폭풍에 대해 국민 통합과 화해 매카니즘을 전혀 고려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방글라데시는 과거 청산과 진상 규명의 소중한 기회를 하시나 총리의 '정적 제거 용도'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결국 이 재판 과정은 JeI를 포함하여 민주적 선거 절차에 참여해온 '이슬람주의 정치' 세력을 제도권 밖에 던져 놓음으로써 더욱 급진화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민주적 선거 절차를 거부해온 폭력적 극단주의 세력은 마침 급성장중인 글로벌 지하디즘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정치적으로 불안한 방글라데시로 파고들었다.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간에 전례없는 갈등이 방글라데시를 강타했다. 세속주의 블로거, 성 수소자(LGBTI) 등에 대한 끔찍한 참수 테러가 잇따른 건 이 즈음이다. 

 

아와미 리그 : '권위주의형 세속주의'로 질주 

 

그동안 방글라데시가 군부 독재와 쿠테타, 암살과 보복 정치의 악순화 속에서도 선거 민주주의의 불씨를 되살리며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방글라데시의 독특한 민주주의 전통과 노력에 기인한다. 1996년 제 13차 헌법 개정 당시 공정한 선거를 위한 장치의 일환으로 선거 기간 '과도내각'(일명 'caretaker 정부')구성 조항을 박아 놓았던 것도 그런 노력의 일부라 할 수 있다. 이후 1996, 2001, 2008년 세 번의 선거가 선거를 위한 과도내각 하에서 공정하고 자유롭게 치러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과거 청산 과정의 사법 판결과는 별도로 아와미 리그가 권위주의 노선으로 급 선회하기 시작한 건 바로 이 조항과 관련이 있다. 그 현상은 2011년부터 뚜렷이 감지됐다. 

 

그해 5월 방글라데시 고등법원은 '과도내각 하에서 선거를 치르고 무난한 정권 이양을 마련한 헌법 조항'이 "불법"이라 판결했다. 그리고 두 달 후 방글라데시 국회는 15차 개정을 통해 '선거를 중립적으로 치르기 위한 중립 과도내각 구성' 조항을 폐지했다. 야당 BNP가 부재한 가운데 이뤄진 개정이었다. 

 

그럼에도 개정안은 다음 두차례 선거는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중립 내각 하에서 치를 수도 있다고 부가 조항을 달았지만 2014년 총선과, 2018년 총선 모두 적용되지 않았다. '선거를 위한 과도내각 구성'안은 선거에 대한 불신과 정당간 적대감이 극에 달하는 방글라데시 정치 풍토에서 갈등을 잠재우고 공정하게 선거를 치를 수 있는 합리적 방식이었다. 

 

그렇게 치른 2008년 9대 총선에서 아와미 리그는 집권이 가능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하시나는 이 과도내각 도입을 강하게 지지한 반면 BNP는 강하게 반대했다. 오늘 두 정치 세력은 정반대 입장을 내고 있다. BNP는 물론 모든 야권이 중립 선거를 위한 과도내각 구성을 요구에 한 목소리를 내는 반면 일찌감치 이 조항을 폐기한 아와미 리그는 야당의 요구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고 있다.

 

중립적 과도내각 하 재선거 요구하는 야권 

 

아와미 리그 정부의 권위주의를 향한 질주가 이번 11대 총선 전후 과정에서 극에 달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두 가지 바로미터가 있다. 

 

첫째, 폭력이 난무한 거리정치다. 지난해 7월 29일 안전 불감증이 만연한 운전으로 두 학생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즉각 도로 안전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를 촉발했다. 그런데 시위 학생들을 향해 공권력과 나란히 서서 폭력을 휘둘렀던 이들은 아와미 리그의 청년 조직 '차트라 리그'(Bangladesh Chatra League, 이하 BCL)였다. 그해 8월 5일 BCL은 시위를 취재하는 사진 기자 등 언론인 5명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들은 아와미 리그 정부에 대한 비판 세력을 용납지 않으며, 그런 이들을 가차없이 집단적으로, 정치적으로 '린치'하는 거리의 무법자로 등장했다. BCL은 과거 이슬람 정당인 JeI 학생 조직 방글라데시 이슬라미 챠트라 쉬비르(Bangladesh Islami Chatra Shibir, 이하 '쉬비르')와 폭력적으로 충돌한 적이 종종 있다. 그러나 도로 안전을 요구하는 불특정 시위대와 언론에 폭력을 휘두르는 상황은 다분히 이례적이다. 

 

집권 여당 산하 청년 조직이 거리에서 반정부 시위를 '폭력 진압' 하는 그림은 대단히 위험한 정치 현상이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BCL 지도부가 교체되는 시기였다.  이 교체는 BCL 조직 구성원에 의해 민주적 절차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하시나 총리가 직접 인선하는 방식이었다는 점은 아와미 리그 정당 내 권위주의 척도를 잘 보여준다. 

 

두번째 바로미터는 고노포럼의 대표로서 BNP와 손을 잡고 JOF의 대표 역할을 맡았던 카말 후사인이라는 인물이다. 하시나 정부의 권위주의 맹주에 맞선 카말은 하시나 총리 부친 라흐만의 측근으로 하시나 총리가 '엉클'로 부를 만큼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카말은 라흐만 초대 정부 하에서 세속주의를 골자로 한 방글라데시 헌법 기안 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건국 이념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다. 그 초대정부 하에서 외교부 장관(1973~1975)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런 노장 정치인조차 한때 "조카"로 통하던 하시나 총리의 권위주의에 제동을 걸겠다고 나섰고, 그런 카말조차 지난 12월 14일 선거 캠페인 차량으로 이동 중 아와미 리그 지지자로 보이는 무리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이 공격으로 카말은 다치지 않았지만 25명이 부상당했다는 보도다. 

 

카말이 하시나의 아와미 리그 정부와 대척점에 선 작금의 현실은 방글라데시 정치의 주 대립각이던 '세속주의 vs. 종교정치' 갈등 구도가 보다 다면화됐다는 점을 말해준다. 물론 카말 후사인의 고노포럼과 BNP가 손잡은 JOF 야권 동맹은 이미 한계를 드러내는 중이다. JOF 동맹에는 정당 등록이 거부되었지만 여전히 BNP의 정치동맹세력인 종교정당 자마떼 이슬라미가 가담하고 있다. 

 

카말은 13일, 그가 평생 치를 떨며 거부하던 종교정당 자마떼 이슬라미와의 연정은 "실수"였다고 말했다. BNP 역시 카말을 JOF 지도부로 동의한 건 자기들의 실수였다고 말했다. 야권의 지리멸렬은 단연코 아와미 리그의 독주와 민주주의 위축를 초래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가 위축되자 시민들의 자유로운 소통을 입막음하는 시도는 더욱 급물살을 타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9월 19일 야당 없는 국회를 통과하여 10월 8일부터 효력을 발휘한 '디지털 보안법'(Digital Security Act)은 주로 하시나 총리, 총리의 부친이자 건국의 아버지인 쉐이크 무지부르 라흐만, 그리고 아와미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을 체포 구금하는데 이용되고 있다. 10월 8일 이래 기자, 활동가등 63명이 이 법 위반으로 구금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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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19/01/1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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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 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다

 

김연주 | 난민인권센터 활동가

인터뷰 및 정리 | 조준희, 홍정훈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난민에 대한 이해와 연대로 희망이 되어주세요.’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SNS에 글을 올린 정우성이 생전 처음으로 악플에 시달린다고 한다. 전쟁을 피해 절박한 심정으로 바다를 건너 도망친 것뿐인 사람들. 얼굴도 지워진 채, 생전 처음 밟아본 외지에서 아무런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로 촉발된 사람들의 혐오는 잠재울 수 없는 산불처럼 번지고 있는 와중에도 아무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 한국사회의 난민을 옹호하는 난민인권센터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20180801_복지동향_난민인권센터_김연주

<2018년 8월호 복지동향 인터뷰에 참여한 난민인권센터 김연주 활동가> ⓒ참여연대

 

난민인권센터의 활동은

난민인권센터는 한국사회의 난민의 권리를 옹호하는 시민단체로, 정부에 대해 제도개선을 촉구하며 인권침해 사례에 개입하기도 한다. 난민인권센터는 활동가가 많지 않지만 자원활동가, 회원, 시민들과 함께 난민의 권리를 옹호하고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공감’, ‘감동’, ‘동천’, ‘어필’ 등의 공익법단체나 현장을 직접 지원하는 ‘피난처’ 등의 단체, 난민당사자 공동체, ‘두루’ 등 프로보노 활동을 하는 변호사단체 등과 힘을 모으기 위한 네트워크 활동도 중요하게 하고 있다. 한국은 제도와 인식의 장벽이 너무나 거대해서 난민의 권리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난민의 권리를 옹호하고 지원하는 단체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

 

난민법이 제정된 배경은

사실 난민법이 시행된 2013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은 1992년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했지만, 난민에 관한 규정은 「출입국관리법」에 제한적으로만 두었다. 하지만 안전한 국경관리가 최우선 목표인 「출입국관리법」은 유엔난민협약에 규정된 난민의 인권을 구현할 수 없었다. 한국은 난민신청자의 생존권이 위협받을 정도였고, 난민심사 제도의 공정성에 대해 국내외적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가 있었다. 당사자가 난민인정을 받은 경우에도 국가가 난민협약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아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시민사회는 난민의 생존권이 보장되어야 하고 처우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결국 「난민법」이 2012년 「출입국관리법」에서 독립되어 제정되었다.

 

처음에도 어려웠겠지만, 「난민법」을 개정하기 위한 운동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이는데

예전에는 한국 사람들이 난민을 ‘내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무관심했고 다른 나라만의 문제로 여겼다는 느낌이다. 지난 5년 사이에도 「난민법」을 개정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난민의 권리를 가로막는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난민네트워크 소속 단체들이 개입하고 정부 또는 국회와 협의하는 과정을 겪었다. 이제는 시민단체들만의 노력을 넘어, 사회적인 합의를 거쳐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거대한 문제가 되었다.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 이후로, 난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해 심히 우려스럽다. 난민의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흡수되고 인식될 지에 대해 이전보다 깊이 고민해야 하는 시점인 것 같다.

 

한국사회에서 난민신청자가 접근할 수 있는 사회보장 제도가 있는가?

난민인정자의 경우는 국민과 동일한 사회보장과 교육의 권리를 가진다. 반면에 난민신청자나 인도적 체류자의 권리는 매우 제한적이다. 난민심사가 지속되는 동안 난민신청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은 심사 결과에 따라 장기간 머무를 수도 있고 한국을 강제로 떠나야 할 수도 있다. 「난민법」이 제정되어 난민신청 후 6개월이 되기 전까지는 생계비를 일부 지원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정부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청자의 단 4~6%에게만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마저도 외국인등록증 발행, 통장 발행, 생계비 지급 심사 등 생계비 신청에 필요한 절차를 모두 거치고 나면 실제로 생계비를 받는 기간은 평균 2개월 정도다. 그토록 어렵게 받을 수 있는 생계비도 1인 가구 기준 월 40만 원 수준이다.

 

월 40만 원이면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그걸 누가, 어떤 근거로 산정하는 건가?

법무부다. 난민신청자에게 지급하는 생계비는 매년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산정된다고 하지만 그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정부가 지원을 충분히 하지 않는 이유는 난민이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기간이 끝나면 취업허가를 받을 수 있으니, 그 이후부터는 각자 알아서 일자리를 알아보라는 것이다. 난민은 입국심사로부터 6개월이 지나면 ‘G-1’이라는 임시체류 자격을 받는다. 그런데 G-1 비자를 받은 사람은 원래 취업을 할 수 없다. 예외적으로 난민신청 후 6개월이 지나는 경우에만 허가에 의해 취업이 인정되는데, 실제 취업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G-1 비자를 지닌 난민이 취업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일자리를 구해서 근로계약서와 사업자등록증까지 가지고 와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실제로 이 절차를 밟을 수 있는 난민은 드물다. 난민들은 기본적으로 언어의 장벽을 마주해야 하고, 가족 부양과 신체적 이유 등으로 취업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경우도 많다.

 

역시 법무부가 지나치게 까다로운 심사기준을 두는 것이 문제인가?

생계비 지원을 받던 난민신청자가 한 달 만에 지급이 중단된 사례가 있어서 개입했으나, 담당 공무원은 명확히 설명하지도 못하는 내부의 심사기준을 충족시키지 않는다고 답변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심지어 예전에는 생계비 지급이 중단되거나 신청이 거부된 사실을 달랑 문자 한 통으로 통보하기도 했다. 법무부는 난민이 생계비를 신청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을 소송에서 다투게 되었고, 법원은 난민에게 생계비를 지급하는 것은 국가가 주는 시혜가 아니라, 난민의 생존을 위한 권리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여전히 난민신청을 거부당한 당사자들에게 그 사정을 충분히 소명할 기회도 주지 않는다. 본국이 아닌 인근 국가에 임시로 피난한 가족을 만나러 잠시 출국했던 사람, 임신한 사람도 난민신청이 거부되는 실정이다.

 

인도적 체류지위를 얻은 사람의 상황은 어떠한가?

한국은 국제협약에 따라 시리아처럼 내전을 피해 한국으로 떠나온 사람들에 대한 보충적인 보호의 취지로 인도적 체류지위를 부여한다. 하지만 인도적 체류자는 난민과 같이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난민에 준하는 처우가 필요하지만, 한국의 사회보장 제도에 전혀 편입되지 못한다. 난민신청자와 다른 점이라곤 체류기간이 1년마다 거의 자동으로 연장된다는 것뿐이다. 시리아 난민은 가족 단위로 한국에 넘어오게 된 사례가 많은데, 일하지 않는 가족 구성원들은 건강보험 지원을 받을 수 없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아동이 건강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최근에서야 보건복지부가 시민사회의 오랜 요구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해, 인도적 체류자도 건강보험의 지역가입자로 등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

 

난민인정자의 경우는 난민신청자, 인도적 체류자에 비해 상황이 나은 것인가?

국제협약은 난민인정자가 국민과 똑같은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를 갖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담긴 「난민법」이 제정된 후에도 난민인정자가 실제로 “국민”기초생활 보장제도의 보호를 받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정부는 난민인정자에게 ‘F2’ 비자를 발급하고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한글로 적힌 두 장짜리 문서를 주는 것이 전부다. 누구도 난민인정자가 사회보장 제도의 수급을 신청할 수 있다고 안내하지도 않고, 그럴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한국에는 난민인정자가 사회에 적응하고 정착하기 위한 큰 그림도 설계되어 있지 않고, 사회보장 제도로 연계하는 과정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난민법」에 난민에게 사회보장의 권리가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장애가 있는 난민이 장애인 등록을 거부당한 사례도 있다. 결국 소송을 제기해 항소심까지 가서 당사자가 권리를 인정받긴 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이미 법으로 명시된 규정조차 이행되지 않는 상황은 충격적이다. 도대체 정부는 난민에 관해 어떤 대책을 갖고 있는 것인가?

법무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의 정부 부처들이 서로 연계나 협력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 난민인정자를 어떻게 한국사회에 잘 정착시킬 것인지에 대해 큰 방향을 설계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점이 문제의 해결을 가로막는 큰 원인이다. 「난민법」에 난민인정자의 권리가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별 사회보장 제도와 연계되지 않는 한계도 있다.

 

무엇보다 난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거 문제일텐데,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하다

노숙하는 사람도 많다. 그 외에 피난처와 같은 단체나 교회를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무작정 이태원 같이 외국인들이 많이 있는 지역에 가서 누군가의 집에 얹혀살기도 한다. 최근 제주도에 있는 예멘 난민들은 공원에 텐트를 치고 자기도 한다. 정부는 그 사람들을 인근 양식장이나 원양어선 등에 취업을 알선하고 해당 업체의 기숙사에 머무르도록 유도한다.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이 관련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지나치게 열악한 기숙사에 거주하고 있는 문제도 있었는데, 난민들이 또다시 그 환경으로 유입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정부가 인천 영종도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를 건립할 때 굉장한 예산을 투여했다. 하지만 센터에 입소할 수 있는 인원은 80여 명 뿐이다. 가뜩이나 적은 난민 예산을 센터에 집중시킨 것도, 격리된 위치에 대규모 수용시설을 만드는 방식도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가족 단위로 입국하게 된 난민 아동에게 교육은 제공되는가?

다행히 초등학교, 중학교는 의무교육이어서 난민 아동들도 한국 공교육 시스템에서 교육을 받을 권리는 있다. 하지만 한국 아동들처럼 취학통지서를 받을 수 있다거나 교육의 기회를 안내받지는 못한다. 난민 아동이 있는 경우 학교장을 찾아가서 직접 입학을 요청해야 학교를 다닐 수 있다. 예전에는 허가가 불허된 사례도 있었다고 들었으나, 최근에는 듣지 못했다. 난민 아동이 겪는 어려운 문제는 의무교육 이전의 보육 단계에서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난민의 권리를 온전히 인정하지 않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조금씩 시혜를 넓혀 온 것인가?

정부가 타협하는 정책은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난민은 이동의 자유가 권리로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무부는 일종의 타협책으로 제주 예멘 난민신청자들의 출도를 제한하는 대신 취업을 연계하는 대책을 내놨다. 정부가 사실상 그 사람들을 제주도에 가둬놓은 조치에 대해, 지역의 시민들은 당황하거나 두려움을 느낀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법무부가 제주도 예멘 난민들에게 출도제한을 해제하지 않은 것이 지금 일어나는 모든 혐오의 근원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부당한 이유로 출입국관리소에 구금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는데, 출입국은 구금을 일시적으로 풀 수 있다는 권한을 이용해 대리인과 협상을 시도하기도 한다. 현재 출입국이나 난민업무와 관련한 재량권이 과도하게 부여되어 있어서, 정부가 그 권한을 남용했을 때 이를 견제하고 통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난민이 인권침해를 당하는 사례들을 살펴보면 그 가해자는 대개 정부다.

 

인권의식이 매우 높은 EU 국가들도 난민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 언어ㆍ직업 교육을 의무화하는 등 타협적인 정책을 내놓는 상황인데

난민들의 재정착을 돕기 위한 한국의 교육 과정도 한국적인 문화와 제도에 사람을 동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앞으로도 무슬림 난민들이 갖고 있는 문화적 배경에 대해 한국 사람들도 서로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을 거친다기보다, 일방적으로 난민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강요하고 수용시키는 과정을 겪게 되지 않을까. 그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 그 정도의 단계까지도 오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 난민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없는 것 같다. 이제 시민들이 난민들에 대해 알게 됐고, 궁금해 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접점을 만들어 냈어야 했다. 어느 한 쪽에게 일방적인 이해를 요구해선 절대 안 된다고 본다. 난민들에게 한국의 문화나 법 제도에 대해 교육하고 알려주는 것도 필요하고, 한국 시민들도 난민과 그들의 문화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난민들이 자신의 문화와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도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민을 논하기 이전에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식도 결코 좋은 편이라곤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혼이주여성은 한국 국적의 아동을 출산하기 위한 매개, 이주노동자는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한 매개로밖에 인식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난민은 국가에 이익이 될 만한 부분이 없는 존재, 짐이고 부담인 사람으로만 여겨지는 것 같다. 난민 문제는 절대 국가의 이익이나 경제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안 된다.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노동자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인권의 관점이 반드시 우선되어야 한다. 국가는 경제적 관점에서 우수인력으로 분류하는 외국인에 대해서는 각종 지원과 체류보장 등의 혜택을 주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심각히 차별한다. 정부가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차별을 조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한 차별은 외국인 사이에서도 또 다른 차별을 조장할 위험이 높다.

 

보수 언론이 최근 출생률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민자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난민을 공격하는 기사를 연일 보도하는 이중적인 태도는 어떻게 봐야할까

무슬림 혐오나 난민 혐오를 조성하는 행위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든다. 보수매체뿐만 아니라 인사이트나 디스패치 같은 인터넷 언론까지도 연일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낸다. 사실관계조차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수준에서, 혐오를 선동하는 방식으로 아무 상관이 없는 사건을 제주 예멘 난민 상황과 결부시키는 언론도 많다. 진보적인 언론조차도 대리인을 통하지 않고 직접 당사자와 인터뷰를 시도하거나 당사자의 허락도 받지 않고 사진을 게재하기도 한다. 많은 고민이 드는 부분이다. 난민단체들은 언론과 난민활동가, 당사자가 읽을 수 있도록 난민이 처한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혹시 난민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도 읽어보는가? 인상에 남는 구절이 있다면?

댓글이 가끔 보일 때도 있지만, 가뜩이나 숨 가쁘고 힘겨운 상황에서 더 지치지 않기 위해 가급적이면 보지 않으려고 한다.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과 얻은 교훈이다. 내국인의 인권조차도 보장하지 않는 한국사회가 과연 난민을 보호할 수 있냐는 의견을 많이 주시는 걸로 안다. 그 중에서도 난민들이 ‘비겁하다’는 표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예멘에서는 강제징집을 거부하며 피난 온 사람들이 많다. 한국의 군대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 난민들을 병역기피자로 보는 것 같다. 그 댓글이 달린 기사는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해야 한다고 결정한 날 올라왔다.

 

평범한 사람들과도 예멘 난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힘들다. 극도의 무슬림 혐오가 담긴 표현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수준이다. 심지어 난민 문제가 정권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정권이 바뀌어서 난민 문제도 많이 개선되지 않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법무부 담당자도 그대로 있는데. 난민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의 문제가 있을 때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점은 매우 아쉽다. 70만 명이 넘게 서명한 난민 반대 청원에 대해서도 곧 청와대가 답해야 할 시기가 왔다. 정도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지만, 난민은 소수자 중에서도 가장 절박한 사람이다. 난민 문제에 있어서 한국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반대의 의견을 내고 있지만, 막상 당사자는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없다. 특히 제주도 예멘 난민들은 신변의 안전에 대해 직접적인 위협을 느끼고 있고, 그 공포감은 제주도민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크다. 그런데 법무부는 여론을 이용해서 신청자의 권리를 더욱 제한하려고 시도하고 있어 경악스럽다.

 

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난민 당사자와 그들을 옹호하는 시민단체들이 무리한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난민신청 과정에서도 난민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해야 하고, 절차적 보완을 통해 온전한 심사가 이루어지도록 보장해야 하며, 심사 이후에 난민인정자나 인도적 체류자가 된 사람은 한국 사회보장 체계에 편입되도록 보장해야 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당사자가 정부에 의해서 부당하게 구금을 당하거나, 본국으로 강제송환 되거나, 당사자의 진술을 왜곡해서 허위로 심사하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정부가 인권침해의 주체가 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정우성의 소신 발언에 대한 소감은

난민 문제에 있어서는 정우성이 분명히 정치인들보다 훨씬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난민네트워크에서는 팬레터를 준비하자는 농담도 주고받았다. 노컷뉴스, 경향신문 등에 나타난 정우성의 인터뷰에서 특히나 좋았던 부분은 난민인권단체들이 이 국면에서 화만 내지 말고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서 이야기를 나누라는 말이었다. 굉장히 뜨끔했다. 현장에서 인권침해 사례를 접하는 활동가들은 이미 정부를 향한 분노가 가득 차있다. 나도 그 분노를 원동력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정우성의 발언은 시민들의 반대 의견을 혐오로만 규정했던 것을 되돌아보게 했다. 시민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단호하게 난민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은 우리보다 훨씬 성숙해보였다. 앞으로 시민들과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을 자주 만들어보려고 한다.

수, 2018/08/0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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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두로 정권의 경찰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거대한 베네수엘라 국기를 함께 들고 행진하고 있다.
지난 수 년 사이 베네수엘라를 집어삼킨 인권 위기로 수백만 명의 삶이 산산조각났다. 당신이 꼭 알아두어야 할 베네수엘라 인권 위기의 실태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과도한 무력 사용

현재 베네수엘라에 사회 불안정을 가져온 원인 중 대부분은 2017년 3월 2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법원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지지를 등에 업고, 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국회를 장악한 것이다. 이에 항의하며 시위가 벌어졌지만, 마두로 정부는 과도한 무력을 불법으로 동원해 이를 진압했다. 2017년 4월부터 7월 사이 벌어진 대규모 시위에서 120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약 1,958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5,000명 이상이 구금 당했다.

2. 대규모 시위

비영리단체 베네수엘라 사회갈등관측소(Venezuelan Observatory of Social Conflict)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전국에서 12,715건에 이르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후안 구아이도 국회의장이 마두로 대통령에 맞서 대규모 시위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면서 이러한 시위는 2019년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가 발표한 보고서 ‘공포의 밤(Nights of Terror)’은 베네수엘라 보안군과 정부의 후원을 받는 민간 무장단체가 시민들의 시위 참여 및 기타 항의 행위를 막기 위해 무단으로 주택에 들이닥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는 실태에 대해 폭로했다.

3. 나날이 심해지는 탄압

베네수엘라 정부는 인권 위기 발생 이후 조직적인 억압 정책을 유지해 왔으나, 최근 그 강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국제앰네스티는 보고서 ‘이렇게는 살 수 없다(This is no way to live)’를 통해, 국가의 지원을 받는 보안군이 “범죄와 싸운다”는 명목으로 가장 취약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살해 목적으로 치명적인 무력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9년 초에는 시위대를 대상으로 한 인권침해가 수도 없이 보고되었으며, 특히 인권 위기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빈곤 지역과 친 마두로 무장단체가 집중된 지역에서 주로 보고됐다. 베네수엘라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올해에만 시위 도중 41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4. 어린이 구금

정부는 의견이 다른 집단을 불법으로 괴롭히기 위해 사법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인권단체 포로 페날(Foro Penal)에 따르면, 2019년 1월 21일부터 31일 사이 988명이 자의적으로 구금되었다. 이들 중 137명은 어린이 및 청소년이었으며, 그 중 10명은 지금까지도 석방되지 않고 있다. 또한 구금자를 대상으로 고문 및 부당대우가 이루어졌다는 의혹도 있다. 포로 페날(Foro Penal)은 지금까지 정치적인 이유로 구금된 사람이 942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5. 군사법원에서의 민간인 재판

체포된 시위대는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는 국제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기소된 사람들은 “반란을 선동하려는 의도로 단체 조직” 혹은 “보초병 공격”과 같이 군인을 대상으로 마련된 특수한 혐의가 적용되었다. 이 역시 반대 세력을 잠재우려는 정부의 의도를 알 수 있는 또 다른 증거다.

6. 난민 및 이주민 300만명

유엔 통계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지금까지 300만명 이상이 베네수엘라를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베네수엘라 총인구의 10%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들 중 대부분은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로 피신했다. 난민들은 건강권과 식량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을 주된 피난 이유로 꼽았다. 즉 이들은 살기 위해 자국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국제앰네스티는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 국가를 대상으로 베네수엘라 난민들이 망명 신청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을 촉구한다.

7. 표현의 자유 탄압

지금까지 내국인과 외국인을 통틀어 언론 종사자 최소 19명을 임의 구금하거나 강제 추방하는 등,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 사례 역시 다수 보고되었다. 2019년 1월에는 단 7일 사이에 기자 최소 11명이 구금되었다.

8. 경제 붕괴

베네수엘라 국회에 따르면 2018년 베네수엘라의 물가 상승률은 1,698,488%로 충격적인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는 2019년에는 베네수엘라의 연간 물가 상승률이 10,000,000%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베네수엘라의 법정 최저임금은 월급 미화 6달러이며, 국민 대부분의 수입이 이 정도 수준에 머물고 있다. 결국 필연적인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구하지 못하고 있다.
식량, 약품과 같은 생필품 부족으로 인해 베네수엘라 국민 수백만 명이 나날이 악화되어만 가는 충격적인 생활 환경 속에 놓이게 됐다. 정부의 대응 조치는 노동권과 임금에 타격을 입혔다. 2013년까지만 해도 베네수엘라 정부는 경제적, 사회적 권리에서 훌륭한 진전을 이룩했으나, 최근 수 년 동안은 그와 정반대인 추세를 보이고 있다.

9. 정부의 인권 위기 부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베네수엘라가 인권 위기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부인하고 있다. 또한 식량과 약품이 부족하다는 사실조차 인정하기를 거부하며, 피해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국민 복지에 관한 공식 통계 중에는 독립적 기구에서 보고한 내용과 상반되는 것도 일부 존재한다.
정부가 이러한 생필품 부족 현상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차례 제안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특히 가장 취약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은 재앙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있다.

10. 미국의 제재

1월 28일, 미국 정부는 베네수엘라의 국영 석유회사가 판매하는 원유의 수입을 금지하는 한편, 미국 공급자들 역시 중질원유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물품을 베네수엘라에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재안을 발표했다. 베네수엘라 경제가 원유 수출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고,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주요 무역 상대국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제재는 베네수엘라 국민을 더욱 어려운 처지로 내몰 가능성이 높다.

수, 2019/02/2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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