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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과 행복…”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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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과 행복…”뭣이 중헌디?”

익명 (미확인) | 금, 2016/09/09- 14:18

국가와 사회를 평가하는 지수는 해당 조직을 이끌어가는 데 매우 중요한 핵심동력이자 좌표이다. 조그만 기업을 30년간 경영해 본 필자의 경험에서 보면, 일상적인 지시와 감독으로 회사가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전략 목표를 분명히 하고 이를 따르는 활동과 평가에 보상기준을 분명히 하면 회사 대부분 종업원들은 자연히 그러한 의도 방향으로 움직인다.

흔히들 노무현 참여정부를 이야기할 때, “좌측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을 했다”고 표현한다. 노대통령 자신이 개인적으로는 개혁적이고 진보성향을 지녔다 해도 정부 각 부처의 활동을 평가하는 내부의 평가기준이 신자유주의에 기초했다면, 참여정부 국정운용의 실제적인 진행과 결과가 당연히 우회전 할 수밖에 없었음을 잘 설명하고 있다.

GDP 지표는 어떻게 개발됐나

자본의 자기증식작용과 자본가의 탐욕을 떠받치는 두개의 핵심 기둥은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기술했듯이 모든 것(노동과 토지와 화폐를 포함한)이 시장을 통해 상품화되는 과정과 1930대 공황기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도입된 GDP 개념을 중심으로 한 양적 성장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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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는 한 나라의 양적 경제성장을 측정하는 지표이다. 경제의 외형이 확장될 때는 이 지표가 나름의 의미가 있었지만, 그러한 경제성장을 통해 궁극적으로 실현하려는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모호하다. (이미지 출처: http://astanatimes.com/2014/11/kazakhstans-gdp-expected-grow-5-2014/)

경제정책의 지표와 수단으로 도입되었던 GDP는 기실 단순한 국민경제의 상태를 표시하는 단순한 수치를 넘어서서 점차 기득권세력을 보호하는 이데올로기이자 강력한 통치권력의 수단으로 변질되어 이제는 우리의 삶을 일상적으로 지배하는 절대숫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GDP의 도입역사를 간단히 기술하면 1930년대 시작된 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국민소득계정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필요을 느끼기 시작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수행과정에서 전쟁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경제적 군수자원을 조직하기 위해 GNP 형식으로 신속히 도입되였다.

1988년에 소련이 동참하면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일반지표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세계화가 확산되던 1990년부터는 GNP에서 GDP로 산출방식을 바꾸게 된다. GDP의 개념은 정상적이고 평화적 시기가 아닌 공황과 전쟁이라는 위기상황과 세계화를 강화하기 위해 도입되고 발전해 온 것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기초재가 부족한 저개발국가상황에서는 신속히 경제발전을 성취하기 위한 좌표로서 GDP는 분명히 매우 효과적이고 유의미한 개념이다. 그러나 개발과정을 겪은 이후 기초재 공급의 문제가 기본적으로 해결되고 삶의 질이 중심주제가 되는 단계에서도 여전히 유효한가는 매우 회의적이다.

더구나 자원의 한계와 기후변화가 온 인류의 공통적이고 긴급한 과제상황이 된 오늘날에는 GDP 개념이 인류의 지속적 발전조건을 오히려 위협하는 장애요소로 변질되고 있다. 실제로 1930년대부터 GNP개념을 주도적으로 개발했던 쿠즈네츠도 이러한 점을 매우 염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배의 부정의 반영 못해

내용을 좀 더 상술하여 보면, GDP 개념은 서비스를 포함하여 물적 생산량을 중심으로 인간의 삶 모든 것이 계량적으로 표현될 수 있고 이러한 계량적 수치를 증대시킴(우리는 이를 성장이라 불러왔다)으로써 사회총량적 효율을 증대할 수 있다는 공리주의적 기초위에서 만들어 졌다.

불행하게도 공리주의는 결과로서 양적인 효용의 총량만을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정적 효과, 개별적 사안과 불평등 구조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사회의 집단을 상류, 중류, 하류의 세 개 집단으로 분류한다고 가정해보자. 하나의 정책을 시행했을 때 나오는 종합적 결과의 총량을 9 이라고 할 때, 내부 배분의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는 경우의 수는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다. 이해를 위해 과정과 결과의 경우의 수를 다시 세 가지로 단순화 시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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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의 수치배열에서 보듯이 공리주의적 GDP 관점은 어떠한 배분의 경우에도, 타자에게 구체적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결과로서 9 이라는 총량적 성과만 같으면 목표가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하며, 내부 과정과 구성에는 상관하지 않는 심각한 맹점을 노출한다.

배분 1의 경우는 오늘날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선진제국에서 보여주는 매우 심각한 양극화의 현실을 보여 준다. 세 집단 모두에게 동일한 양적 배분이 이루어진 2의 경우는 비난 할 수는 없지만 기득권체계를 그대로 유지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조건이다.

비로소 배분 3의 경우수로 실현되어야 ‘정의론’의 대가 존 롤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어렵고 궁핍한 집단에게 경제운용성과가 더 많이 돌아가는 최소최대윈칙(MinMax principle)의 공정한 윤리가 작동하고 있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 구성원 개개의 배분과 행복(복지적)조건이 고려되지 않는 GDP 중심의 성장주의를 이탈리아 정치학자 피오라몬티는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괴물로 비교하기도 했다.

자원낭비와 환경파괴 조장 우려

보다 치명적인 약점으로, 자원의 무제한적 소모, 환경오염과 도박 및 범죄행위 같은 활동들이 시장경제에 포함되면 양의 형태로 GDP지수가 높아지는 반면에, 우리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사회적 봉사와 공헌, 물물교환으로 이루어지는 지역경제 그리고 가계활동 등이 시장에 편입되지 않으면 반영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또한 디지털 경제로 진입하는 미래사회에서는 GIG 형태 등 비선형적 일자리가 확산되고 유의미한 활동과 자원들이 다양한 온라인 네트워크을 통해 일상적으로 공유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기존 GDP 방식으로는 이를 제대로 포착하여 계량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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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쩌면 성장 중독증에 빠져있는지도 모른다. 목표를 잃은 성장이 우리 삶에 대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에 대해 질문해 봐야 한다. 또한 양적 성장은 환경파괴, 자원 낭비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지속불가능하다. (사진 출처: http://weepel.kr/?p=804&cat=3)

되풀이 강조하자면 지구라는 자원과 환경 제약속에서 살아가는 인류에게 기후변화가 가장 치명적인 현안이 된 현 시점에서 GDP 개념은 자원을 무책임하게 낭비하며 환경오염 요인를 조장하면서도 이를 성장이라는 양의 계수로 포착된다는 자기모순을 지니게 된다.

GDP와 행복은 무관

한국에서 벌어진 예를 들면, 현 박근혜 정권이 최경환같이 참으로 무능한 자들을 경제운용 책임자로 앉히면서 오로지 GDP 성장률을 높이자는 욕심으로 가계소득의 실질적 증대가 없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소비를 유도하고 무책임하게 부동산 부양정책을 도입하여 추진하였다.

그 결과가 감당하기 어려운 가계부채의 증가를 가져 왔고 향후 한국사회의 미래에 매우 치명적인 부담을 야기시키고 있다.

위에 언급했지만, GDP지수와 행복지수는 초기에는 얼마간 상당한 상관관계를 형성하다가, 인간의 기본적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재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인 1만~1만5천불이 넘어서면, 서로 상관관계가 약해지면서, 오히려 GDP가 증가하면서 오히려 행복지수가 떨어지는 역현상도 발생한다(Easterlin parad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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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GDP기준으로 세계10대 국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실제 사람들의 삶의 질과 만족도는 매우 낮다. (이미지 출처: http://blog.donga.com/zmon21/archives/27429)

실제로 많은 국가들의 사례와 연구 결과는 GDP 증가가 삶의 질 및 행복과는 무관함을 증언한다.

과다한 GDP 목표는 오히려 적정한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과잉노동과 환경오염을 유발한다. 한편에서는 무책임한 정치인들이 맹목적인 성장을 사탕발림으로 포장하여 선전하면서 오히려 기업과 자본가의 탐욕만을 증대시켜주는 구실을 할 뿐이다.

2016년 한국경제의 1인당 국민소득을 들여다보면, 지난 수년간 지속적으로 재벌중심의 수출대기업을 위해 환율을 조작한 점을 감안할 경우 이미 3만불을 넘어서서 선진경제수준의 초입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구매력 평가지수(PPP)로는 이미 주요 유럽국가들을 추월한 3만5천불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GDP 3만불이라는 화려한 성취를 오히려 수치로 느껴야 할 만큼, 아래와 같은 주요 지표에서 OECD내에 최악의 국가로 알려져 있다.

국민 행복지수 / GDP 대비 복지예산 비중 / 아동 삶의 질 / 부패지수 / 조세의 불평등개선 지수 / 출산율 / 노조 조직율 /  자살율 / 평균 수면시간 등등

2016년 박근혜 정권하에 있는 한국은 자랑스럽게도(?) GDP가 가지는 허구적 맹점과 위험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국제적 모범적 사례이다.

종합발전지수(TDI) 도입해야

자연스럽게 GDP 지표가 지닌 허점과 문제점을 보완하고 대체할 많은 연구와 제안들이 이루어져 왔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경제후생지수(HEW), 참진보지수(GPI). 인간개발지수(HDI), 행복지수(GNH), 행복환경지수(HPI) 등이 있다.

GDP의 문제점과 이를 보완할 다양한 대안들을 접하면서, 이제는 한국사회도 새로운 시각과 접근이 필요한 시점임을 절감한다.

필자는 미래의 한국사회를 위하여, 몰가치한 경제총량중심의 평가지표로서 불평등과 불안정을 조장하고 자원을 고갈시키고 환경오염을 유발할 수 있는 GDP개념을 폐기하고, 사회개발지수를 중심으로 한 발전종합지수(TDI, Total Development Index)의 도입을 주장하고자 한다.

이는 창립 준비과정에서 부터 주장해온 다른백년의 전략적 슬로건인 ‘국가와 경제중심에서 시민과 사회중심으로의 전환‘과도 정확히 입장을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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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의 경제학자로 불리는 아마티어 센은 GDP개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대수명, 교육연수, 국민소득 등을 종합한 인간개발지수(HDI)개발을 주도했다. 중요한 것은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실제 그것을 통해 성취되는 개인의 역량(capability)이라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emeragency.electracy.org/content/capability)

유엔의 요청으로 인간개발지수(HDI)를 주도적으로 개발한 아마티아 센은 개발 또는 발전이라는 주제를 단순히 양적인 지수로 표현하기를 매우 주저했다고 한다. 기실, 인간이 마주한 삶과 사회현실은 다양한 상황과 조건, 각자 처해 있는 다층적 공간의 복잡함으로 이를 일반화하여 하나의 수치로 표현하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지수화하지 못하면 정책적인 선택과 집중 및 지원을 할 수 없다는 동료들의 강력한 주장을 수용하여 마지못해 지수화 작업을 동의하였다 한다. 지수로 표현되는 평가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받아들인 것이다.

필자가 제안하는 대한민국의 발전종합지수의 기본 방향은 존 롤스가 제시한 ‘공정한 사회’를 기초하여 아미티아 센의 주장인 ‘자유를 향한 발전’을 결합시킨 것이다.

한 국가가 지향해야 하는 발전의 내용은 해당 사회내 살아가는 각 개인적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어야 하며, 이를 위하여 개인과 사회 공히 자유를 확대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며, 생물학적 수명을 충분히 누릴 수 있고 지속가능한 환경적 물질적 조건을 제공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참여와 결정의 기회를 통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존재로서 목적과 가치를 실현해 가야하는 것이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개인과 사회가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경제적 물적 토대를 해결하면서 각자 가치실현을 위해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영역의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이를 지속가능한 조건으로 실현해 가는 것이 국가의 발전목표이자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종합발전지수(TDI) 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기업들이 경영에서 활용하는 다면적 평가기법인 BSC의 개념을 참조하여 적용해 보았다. 과거에 미국의 기업들이 오로지 주주이해와 경영진의 성과급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일년 단위의 평가수익과 주식시장상황에만 치중하여 운영하다 보니, 중장기적 경쟁력에 심각한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하버드 대학의 비즈니스 스쿨은 미국기업들의 중장기적 경쟁력을 키우고 지속가능조건을 살피기 위해 다음 네가지 영역을 설정하고, 양적인 stock과 질적이며 동적인 조건을 균형적으로 평가하는 BSC (Balanced Score Card) 개념을 도입했다.

내용을 대충 소개하면 1) 첫 번째 영역은 재무지표측정으로 단기간적 수익성을 넘어서 중장기적인 안정성을 검토하고,

2) 두번째 영역으로는 내부 프로세스 분석으로 상품구성과 생산 및 품질과정, 제품의 수명주기, 그리고 새로운 제품의 개발능력 등을 평가하며,

3) 세번째로는 외부적 환경요인으로 시장과 고객의 반응 및 중장기적 경쟁 상황을 점검하고,

4) 마지막으로는 학습역량 평가로서 종업원들의 구성과 업무역량 및 성실도 그리고 파트너간의 협력수준을 분석한 후, 이들 각각의 영역을 종합하여 기업을 평가하는 기법이다.

다만 지구환경적인 의무와 사회책임요소를 소홀히 한 아쉬움이 남는다.

다층적, 다면적 BSC 평가기법을 참조하여 한국의 미래를 위한 발전지수를 다음과 같이 설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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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영역의 평가항목(check-list)을 어떻게 구성하고 가중치를 부여하며 이를 종합하는 과정은 해당분야의 전문가들이 해야 할 몫이다. 다만 필자가 이해하고 경험한 범위와 수준에서 아래와 같이 평가항목의 방향에 대해 기술해 본다.

사회개발지수

유엔이 개발한 인간개발지수(HDI)와 부탄 등 몇 개 국가들이 경험한 행복지수(GNH)의 내용을 결합하여 구성하되, 주관적 항목과 아래의 영역들과 겹치는 항목들은 배제하고, 객관화할 수 있는 항목들을 중심으로 하되, 특히 21세기를 향한 정보화 수준과 복지제도적 항목을 강조하고 추가하여 편성한다.

경제후생지수 

기존 GDP보다는 구매력 평가지수 PPP중심으로 구성하고, 기존 경제후생지수(HEW)의 아이디어에 기반하여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군수, 범죄, 도박, 환경오염 등 사항과 관련된 것들은 지수에서 배제하거나 음의 계수로 적용하여 수치를 낮추도록 하고, 그동안 시장을 통하여 잡히지 않았던 지역내 물물교환, 공유 활동, 사회적 공헌, 가계노동 등 유의미한 항목들을 가능한 편입시킨다.

지속가능 지수

출산율 및 인구통계학적 내용, 전력공급망의 분산적 참여 개방성, 공공 자원의 고갈여부 및 회복성, 에너지 및 환경과 생태 정책 항목 등을 지수화 한다.

제도평가지수 

부패지수, 언론자유도, 정치결정 및 행정수행 과정의 시민참여지수, 공공조직의 업무 수행평가 등을 고려한다.

위에 열거된 네 분야의 구체적 조사항목( check-list)과 결과지수에 대한 가중치의 적용 여부는 국가나 사회가 나가야할 의도와 방향성에 따라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2016년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총량적 경제지표보다 구체적이고 사안적인 사회적 발전모습이 보다 중요한 주제라는 점에서 총점 1,000 만점의 바스켓을 설정하고 그의 절반인 500점을 사회개발지수에 부여하는 한편, 나머지 절반인 500점을 경제후생과 지속가능 및 제도평가 지수에 배분하여 점수를 종합하여 운용해 보는 것으로 구상해 본다. 당연히 시대변화에 따라 평가항목도 지속적으로 새로워 져야한다.

주관적 심리적으로 평가된 행복지수는 객관적 지표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암시적이며 직관적인 총괄추이의 분석용으로 활용해 봄직 하다.

행복지수의 기준점을 설정하고 이보다 낮아지거나 또는 전년보다 평점이 저하되는 경우에는 원인과 배경에 대해 세밀한(drill-down) 분석을 수행하여 상응한 정책을 수립하는 데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라 판단한다.

이를 간략하게 스케치하여 보면 다음과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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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의 내용은 적용을 위한 실행적 수준이 아니라 논의와 수정과 새로채움을 위한 하나의 제안이며 시안이다.

동시에 세계적 단위에서 일반적으로 적용한다기보다는 한국이라는 현실적인 정책단위로서 국민경제의 필요에 맞게 전략과 의도을 담아 맞춤형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이 분야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검토와 전진된 내용의 제안들이 잇따르기를 기대한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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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말 나라를 흔드는 청와대 발 ‘최순실 게이트’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이 매우 착찹하다. 국정농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고 그 끝도 보이지 않는다. 각종 인사는 물론이고 재벌총수들의 진퇴마저 결정했다 한다.

특히 예산에 관한 것은 이들이 국가를 약탈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나 싶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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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또 다른 특징은 비선실세들이 국가 중요 정책과정 뿐 아니라 국가 예산 편성과정에 개입해 사익을 챙겼다는 점이다. 2017년도 예산액 중 이른바 ‘최순실 예산’이 35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공적 시스템의 완전한 붕괴에 국민들은 울화통이 터진다.

멘슈어 올슨은 정부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빼앗아가는 ‘유랑도적’ 보다 자릿세 형식을 받아가는 ‘정주형도적’이 그나마 선호된다는 것이다. 정주형 도적은 더 많이 빼앗기 위해 생산을 장려하고 고정된 세금을 걷는다는 예측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정주형 도적이겠으나, 5년이라는 한시적인 권력시간이 이들을 유랑형 도적으로 만들어 버린 것으로 보인다.

내년도 나라살림 사상 최초 400조원 돌파

아무튼 와중에 사상 처음으로 400조를 넘은 2017년 예산은 이슈에 파묻히고 그나마 최순실 예산삭감 정도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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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살림연구소가 10월24일 제시한 865억원의 최순실 관련예산은 이제 5200억원으로까지 증가한 상태이며, 야당은 이 예산만큼은 반드시 삭감하겠다고 한다.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한다면 실질적인 예산삭감으로는 국회의 최근 10여년간의 예산심의에서 가장큰 액수가 될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국회는 1%이내의 예산삭감을 해왔으나 그나마도 정부가 미리 준비한 삭감안을 제외하면 그 액수는 0.1%를 넘지 않았다.

역대 2%가 넘는 예산 삭감을 기록한 것은 1775년 유신초기와 2005년 열린우리당이 의회권력을 교체한후 첫 예산심의때의 일이다. 특히 2005년은 의회권력이 교체되었던 시기이다. 따라서 이번 여소야대는 예산심의에서 좀더 국회의 역할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사상 최대 나랏빚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처음으로 400조가 넘어가는 2017년 예산의 특징을 살펴보겠다.

첫째, 재정적자 늘고 복지지출은 제자리이다. 저성장 시대, 실패한 재정정책만 되풀이하는 상황이다. “증세 없는 복지”, “증세 없는 재정정책”의 허구성을 드러낸 예산안이다.

현재 정부는‘최대한 확장적 편성’이라는 미명으로 지출 재원의 부족을 감추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빈 곳간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생색만 내는 예산이다.

2017년 예산액의 3.7% 증가는 전년도 2.9%보다 0.8%P 증가하였지만 10년간 연평균 증가율 6.2%에는 턱없이 부족한 증가율이다. 부족한 곳간을 채우기 위한 노력보다 없는 살림을 쪼개는 방향으로 재정정책의 방향을 설정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

둘째, 빛의 속도로 늘어가는 빚이다. 2017년 예산안에서 2017년 국가채무는 전년도 보다 37.8조원이 증가하여 역대 최고인 682.7조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40.4%로 역대 최고. ‘증세는 없다’는 재정정책의 영향으로 국가의 재정건전성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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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5년간 총 164.8조원(연평균 33.0조원)의 일반회계 적자국채를 발행 했다. 저성장 극복을 위해 재정이 더 많은 역할을 해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라곳간이 텅비다’보니 예산을 확장적으로 편성할‘능력’이 없어진 것이다.

참여정부때 연평균 6.5조원에 달했던 일반회계 적자국채는 대대적인 감세를 시행한 이명박정부들어 연평균 21.4조원으로 급증하였고, ‘증세없는 복지’를 고수한 박근혜정부들어 총 164.8조원에 달하는 일반회계 세입 적자국채를 발행한 것이다.

이로 인해 국가채무는 2012년말 443.1조원에서 2016년(예산기준) 644.9조원으로 200조원이나 증가하였으며, 2017년 예산상으로도 올해 보다 37.8조원 증가한 682.7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셋째, 후퇴하는 교육과 복지분야의 예산문제이다. 보건·복지분야 예산이 줄어들고 있다.

보건·복지·노동분야의 증가율은 5.3%로 나타나고 있으나 일자리부문을 제외할 경우 보건·복지분야의 증가율은 4.6%로 2016~2020 국가재정운용계획상 복지분야 법정지출분의 연평균 증가율 5.3%보다 0.7%P 낮다. 결국 법정지출분보다 낮은 증가율로 인해, 보건·복지분야 예산은 실질적으로는 축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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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교육예산도 후퇴하고 있다. 정부의 분야별 재원배분에서 교육분야는 53.2조원에서 56.4조원으로 3.3조원 6.1%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제외(16년 41.2조원, 17년 45.9조원)한 재원은 2016년 12조원에서 2017년 10.5조원으로 오히려 1.5조원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재정에 대한 재정 책임을 지방교육청으로 떠넘기고 정부의 교육정책을 위한 투자는 줄이겠다는 것으로 교육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방기하는 예산이다. 

정부는 “지방교육정책지원 특별회계”를 신설하여 누리과정 등 정부의 재정책임이 있는 사업에 대해 지자체의 전적인 부담을 명문화하려는 시도를 통해 재정부담을 전가시키려는 의도를 보이기도 하고 있다.

더구나 박근혜정부의 핵심 교육 공약인 ‘고등학교 무상교육’예산은 정부 마지막 해에도 전혀 편성하지 않아 “2017년까지 고등학교 무상교육 완성”이라는 공약은 사라지고 말았다.

여전히 개발연대식 예산 편성

그런데 이러한 2017년도 예산의 분석 과정에서 우리나라 예산의 특징을 파악할수 있다.

첫째, 신규예산이 매우적다는 점이다. 2017년 예산 중 액수기준 신규예산은 1.7%에 불과하다.

2016년 예산에서는 0.2%, 2015년에는 1.1%였다. 물론 새롭게 시작하는 씨앗예산이 많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90%에 달하는 예산이 기존 하던 사업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산은 합리주의에 의해 예산을 편성하는 즉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하는 예산방식과 기존 예산에서 순증만을 꾀하는 점증주의 예산방식이 있는데, 한국은 극단적인 점증주의 국가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20%이내의 변화를 보이면 점증주의라 구분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관료적 질서가 지배하는 보수적 예산구조의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둘째, 개발연대 예산구조의 존속이다. 첫째 이유처럼 예산구조가 변화가 거의 없다보니 과거 개발연대의 예산구조가 그대로 존속하는 것이다.

개발연대 예산구조란 개발연대 시절의 지출구조 즉 경제투자 중심의 예산구조라는 것이다. SOC(사회간접자본)은 물론이고, 수출 및 기업지원, 에너지 개발, 농업지원 등 경제개발 예산이 주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은 복지예산이 적은 현상과는 별도로 경제투자가 OECD주요국의 두 배가 넘는다. 따라서 아직도 도태되어야 할 산업을 지원하고, 일자리 예산도 공공근로 방식의 지원을 하며, 각종 지원기관이라는 명목하에 관피아를 양산하는 산하기관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특히 부동산 관련 개발이 계속 유지되어 내년도에도 더욱 증가한 19조원의 토지 보상금이 지원될 예정이다.

셋쩨, 정치는 이러한 예산구조의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켰다.

이번 예산서의 특징 중 하나는 예산설명서에 VIP(대통령을 지칭)라는 항목이 546개나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관료들이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핑계삼아 본인들의 사업을 지키거나 더 나아가 만들어 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산의 절약자 역할을 해야할 재정부는 이러한 항목을 건드리지 못할뿐 아니라 오히려 예산을 늘려주기까지 하는 협조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중앙행정기관 17개 부서의 ‘VIP’ 언급 횟수는 총 546회.‘최순실 예산’과 관련해 강하게 의심받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87), 미래창조과학부(90)의 예산에서 가장 많은 수가 발견되고 있다.

나라 곳간까지 털어먹은 최순실

그런데 박근혜정부의 중점 예산은 문화예산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정권은 대선공약으로 예산액의 2%를 문화예산으로 편성하겠다고 했고, 2017년에도 복지예산보다 높은 증가율로 문화예산을 편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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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최순실예산은 문화부분에서 대거 등장하게 된다. 특히 주목할 만하 점은 이명박 정권때까지는 4대강 같은 새로운 예산을 편성해서 예산사업을 진행했는데, 최순실측은 기존 사업 내용을 변경하고 심사위원회를 바꾸고 관료를 교체해 가면서 이러한 일을 추진했다는 점이다. 예산의 시스템을 매우 잘 활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할 방도는 없는가. 예산감시운동에서는 세가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투명성이다. 올림픽조직위원회 운용에 관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각종 예산사업의 내용과 주체결정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사태에 이르고서야 문제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투명성이 조직위원회 개혁의 첫걸음이다.

둘째, 책임성이다.

예산은 관료의 책임하에서 편성된다. 하지만 사실상 권력의 영향력하에서 운영되었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하루아침에 관료가 교체되고 해임되는 사태는 시스템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무런 권한도 없고 따라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관료의 독립성을 강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결과에 책임지게 하여야 한다.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강화시켜야 한다. 납세자 소송을 도입하여 예산을 낭비한 사람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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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국민을 대신해 정부가 편성한 예산을 심의, 의결한다. 그러나 국회에만 맡겨놓지 말고, 시민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왼쪽 사진은 2017년도 예산안을 심의하는 국회 예결위의 모습. 오른쪽은 정부예산을 감시하는 시민단체의 모습

셋째, 시민참여의 확대를 위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국민들은 말못할 모멸과 자괴감에 빠져있다. 하지만 이렇게 된 데에는 자초한 측면은 없는지 반성해야 한다. 예산의 소비자로서 머물러 사태를 수수방관한 것은 아닌지 하는 측면이다. 따라서 시민들 부터 적극적으로 전체 운용 및 결정과정에 참여하여 예산의 소비자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수문장의 역할을 해야 한다.

시민단체들도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참여연대 나라살림연구소 환경연합등 시민단체들은 10월20일 나라예산토론회 등에서 150건 3조원에 달하는 낭비사업의 감액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예산 자체에 회의론도 많다. 하지만 예산은 잘못쓰면 부패의 독소이지만 잘쓰면 사회를 위한 영양분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금, 2016/11/1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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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안철수의 멘토’에서 ‘문재인의 사람’으로 변신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라는 요직을 맡았다. 외교ㆍ안보를 제외한 새 정부의 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컨트롤 타워’ 자리다.

1990년대 소액주주운동을 시작으로 개혁적 학자로서 대중적 명성과 지지를 쌓아온 그가 공직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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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추가 인사 명단을 발표한 후 장하성 정책실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출처: 뉴시스)

文 대통령 삼고초려… 안철수 멘토서 새 정부 정책실장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장 신임 정책실장을 모시기 위해 말 그대로 말 그대로 삼고초려(三顧草廬)였다.

문 대통령은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개인적 인연이 없던 장 정책실장에게 “경제 정책 설계를 맡아달라”고 캠프 참여를 제안했다. 하지만 장 정책실장은 문 대통령의 손을 뿌리치고 경쟁 관계인 ‘안철수 후보 캠프’에 국민정책본부장으로 합류했다.

문 대통령은 2016년 4ㆍ13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장 정책실장에게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이후 국민의당 창당으로 이어진 탈당 사태로 내홍에 휩싸였던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을 살리는 구원투수 역할을 맡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장 실장의 생각이 컸던 때문에 허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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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안철수, 천정배, 장하성의 위기의 대한민국, 공정성장으로 길을 찾다’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당시 안철수 공동대표와 장하성 교수.

문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고, 장 정책실장의 마음의 문을 두들겼고, 영입에 성공했다.

장 정책실장은 지난달 21일 인선 발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아주 솔직한 심정으로 문재인 정부의 인사에 감동했다”며 “문 대통령의 인사를 보면서 뭔가 변화를 일으키고 국민 눈높이에 맞춘 것을 일궈내겠다는 의지가 있구나 (하는) 그것이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고 말했다.

인선 발표가 있을 때까지 장 정책실장의 발탁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장 정책실장에 대한 신뢰는 두터워 보인다.

2015년 펴낸 자신의 저서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진보적 정부였다고 평가 받는 노무현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에 집권 초기 경제정책의 구성을 삼성경제연구소에 의뢰할 정도로 재벌에 의존적이었다”고 비판했던 정 정책실장이 문 대통령과 손을 잡고 어떤 그림을 그려낼지 주목된다.

독립운동가ㆍ정치인ㆍ학자… 3대를 이어온 뿌리

장 정책실장이 그려 낼 새 정부의 모습을 짐작해 볼 때 그의 집안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53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호남의 대표적 명문가 품 아래였다. 할아버지 세대는 독립운동가로, 아버지 세대는 정치인ㆍ관료로 이름을 떨쳤다. 장 실장을 포함한 3세대는 내로라하는 학자가 여럿 배출됐다.

장 정책실장의 증조부는 구한말 전남 신안군 장산도 일대에서 손꼽히는 만석꾼 부호였다. 증조부 슬하 형제가 나란히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작은 할아버지 장홍재씨는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했다 일본 경찰에 붙잡힌 뒤 고문 끝에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큰 할아버지 장병준씨는 일본 니혼대를 졸업한 뒤 김구 선생 곁을 지키며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외부무장을 지냈다.

막내 할아버지 장홍렴씨는 중국 베이징국민대를 다닌 뒤 만주 신흥무관학교로 들어가 독립군에 투신했다. 광복 후에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검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장 실장의 할아버지 장병상씨가 철도공무원으로 집안을 건사하며 형제들을 뒷바라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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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tstory.tistory.com/113)

장 실장의 아버지 세대는 정치인ㆍ관료가 주축이다. 아버지 장충식씨는 한국은행 출신으로 도의원을 지냈다.

작은 아버지 장영식씨는 장면 정부에서 경제비서관을 지냈다. 막내 삼촌은 3선 의원을 지낸 장재식 전 산업부 장관이다.

독립운동에 투신한 할아버지 세대에 이어 아버지 세대 4형제 모두가 6ㆍ25 전쟁에 참전했다. 아버지 장씨는 압록강 전투에서 기관총탄에 맞았지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것으로 전해진다.

장 실장 세대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교수가 여럿 있다.

장 실장의 친누나는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 출신의 장하진 전 여성가족부 장관이다. 막내 동생은 열린우리당 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원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다. 나란히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몸담고 있는 장하준ㆍ장하석 교수가 사촌동생이다.

소액주주 운동ㆍ기업 지배구조 개선 앞장서 온 개혁성향 학자

물론 장 정책실장은 개혁 성향의 학자로서 더 이름이 나 있다. 미국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1990년부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임한 27년차 학자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소액주주 운동을 주도하며 재벌ㆍ대기업 등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주창해 왔다.

장 정책실장은 1996년 참여연대에 몸을 담으면서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모두에게 익숙한 경제민주화를 시민운동을 주도하며 참여연대에 ‘경제민주화 위원회’를 만들었다.

1998년 3월 삼성전자 주주총회에 참석해 13시간 17분간 계열사간 부당거래 문제를 집요하게 따져 물어 ‘삼성 저격수’ ‘재벌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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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3월,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당시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던 장하성 정책실장이 삼성전자의 책임경영 체제가 미흡하다며 성토하고 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소액주주들로부터 위임 받은 100만여주(지분율 1.05%)가 유일한 무기였다. 2006년 제일모직 소액주주 2명과 함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인수를 포기하게 해 제일모직에 손해를 끼쳤다”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30억여원의 배상판결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삼성 가(家) 편법승계의 핵심 고리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이끌어낸 사건이다.

시장의 힘을 빌어 기업 경쟁력을 훼손하는 불투명한 기업 지배 구조를 바꿔내겠다는 게 장 정책실장의 목표였다. 문재인 정부 첫 공정거래위원장으로 후보자로 지명된 김상조 한성대 교수 등이 장 정책실장과 함께 했었다.

2006년에는 ‘라자드한국기업지배구조편드’(KCGFㆍ일명 장하성 펀드)를 만들어 다시금 화제를 뿌렸다.

당시 태광그룹 계열사인 대한화섬 지분은 인수한 뒤 주주총회를 통해 불투명했던 그룹의 지배구조 개선 합의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8년 세계 최대 규모의 연기금인 미국 캘퍼스(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으로부터 1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남양유업ㆍ일성신약 등에 대한 지배구조 개선을 시도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좋은 기업지배구조 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운영위원과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하는 등 재벌개혁에 앞장섰다.

재벌개혁과 국민성장, 두 마리 토끼 잡을까?

대중들에게는 ‘재벌 저격수’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학자로서 장 정책실장의 관심은 항상 ‘소득 양극화 해결’에 닿아 있었다.

문 대통령도 인선 결과 발표에 직접 나서 “한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오신 경제학 분야 석학이자 실천운동가”라며 “과거 재벌 대기업 중심 경제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사람중심과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사회 정책으로의 변화와 경제 민주화, 소득주도 성장과 국민성장을 함께 추진할 수 있는 최고 적임자”라고 극찬했다.

장 정책실장은 최근 잇따라 펴낸 ‘한국 자본주의’ 등의 저서에서 소득양극화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구체적 정책으로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고 쌓아두는 내부유보금과 관련한 초과 내부보유세 도입, 소득세 누진 강화, 법인세 개혁, 집단소송제 확대, 징벌적 배상제 도입 등을 언급했다.

이명박ㆍ박근혜 보수정권 10년 동안 강조해 온 성장 중심의 ‘낙수효과’가 아닌, 분배구조 개선을 통한 ‘분수효과’과 실현에 강조점이 찍혀 있는 정책들이다.

이러한 클 틀에서 재벌개혁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장 정책실장은 임명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재벌 때리기에 나설 것이라는 재계의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재벌 개혁에 ‘두들겨 팬다’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며 “재벌 개혁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강자, 새 중소기업의 성공 신화 등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다”이라고 강조했다.

장 정책실장이 쓸 칼은 크게 두 자루다. 참여연대에서 손발을 맞춰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한 손에,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보수 성향의 테크노크라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다른 한 손에 쥐어질 것으로 보인다.

재벌개혁과 국민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추게 될 장 정책실장의 칼춤이 춤사위로 이뤄져 있을지 경제계는 물론 정치권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목, 2017/06/0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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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21일(현지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6년 리우올림픽 폐회식에 빨간 모자를 쓴 한 남자가 등장했다. 아베 신조(63) 일본 총리였다. 

일본의 대표적인 게임 캐릭터인 ‘슈퍼마리오’ 차림을 하고 2020 도쿄올림픽을 알린 그의 변신은 뜨거운 화제가 됐다. 

언론은 “일본이 리우올림픽 폐막식을 빼앗았다”고 평가했고, 그에게 감정이 좋지 않은 국내 누리꾼들마저 “신선하다”, “재밌다”는 호평을 쏟아냈다. 1985년 일본 닌텐도사가 창조한 슈퍼마리오는 배관공 마리오가 쉬지 않고 앞으로 달리며 장해물을 넘고 괴물을 쓰러트리며 공주를 구하는 게임이다.

거침없는 아베, 전후 최장수 총리

2012년 일본 총리에 오른 그는 이제 자신의 별명이 된 슈퍼마리오처럼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2016년 연말 64%로 3년 2개월 만에 국내 지지율 최고치를 기록한 그는 지난해 2021년까지 집권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새해 벽두부터는 전쟁을 금지한 현행 헌법 9조의 개정을 포함한 개헌을 천명했다. 자신의 장기집권을 바탕으로 ‘전쟁 가능한 일본’을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는 2017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과거사 문제로 아베 총리 임기 내내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 정부는 새해부터 부산 일본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설치로 일본 정부와 충돌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통화스와프 협의를 중단하고, 주한 일본대사와 부산 총영사의 귀국을 결정하는 등 강경 모드를 밀어붙이고 있다. 

2017년 아베 총리가 거침없이 달려갈수록 과거 일본 침략전쟁 피해자들의 고통은 더욱 커지고, 한국 정부는 계속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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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가 지난 4일 이세신궁에 참배하기 위해 각료들과 신궁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세신궁은 일본 전역에 있는 신사의 최정점에 있는 신사로, 일본의 건국신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를 모신 곳이다. 일본 천황은 이 건국신의 후손이라고 믿어진다.

아베는 1월4일 미에현 이세시에 있는 이세신궁을 참배한 뒤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2017년 국정운영 방침을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서 개헌과 장기집권에 대한 의욕을 감추지 않았다. 아베는 2017년이 “일본 헌법 시행 70년이 되는 해”라고 강조하며 “앞으로 70년을 내다보며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나라 만들기를 진행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우리 자신의 손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갈 것”, “아이들과 손자의 미래를 내다보며 새로운 나라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를 포함한 일본 우익들은 현재 일본의 평화헌법이 2차 세계대전 뒤 연합군최고사령부(GHQ)의 압박 때문에 만들어진 것으로 ‘자주 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즉 ‘우리 자신의 손’을 언급한 것은 이제 더는 ‘전범국가’ 일본으로 남아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김정일 회담에서 스타 부상

이러한 아베의 행보는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아베 총리는 1954년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딸인 요오코와 아베 간의 아들 아베 신타로 전 외상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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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는 정치명문가 출신이다. 외할아버지(왼쪽 4번째)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였고, 아버지가 아베 신타로 전 외상(오른쪽 첫번째)이다. 특히 이 집안은 일본 야마구치현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는 근대 일본 정치체제를 만든 메이지유신이 지금의 야마구치현(옛 조슈)과 가고시마현(옛 사쓰마) 출신 하급무사들의 반란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친할아버지 아베 간은 중의원 의원을 지낸 정치인으로 도조 히데키(1884∼1948) 내각의 퇴진과 전쟁 종결을 주장한 인사다. 외할버지인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 용의자로 투옥된 적이 있는 우익인사다. 

기시는 ‘평화헌법’을 대체하는 ‘자주 헌법’의 완성을 ‘일본의 진정한 독립’이라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는 정치적으로 친가 대신 외가의 피를 이어받았다. 스스로 “나는 아베 신타로의 아들이지만 기시 노부스케의 DNA(유전자)를 이어받았다”고 말해왔다. 

실제로 정치인으로서의 아베가 걸어온 길은 외할아버지의 유지를 잇는 것을 방불케 한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유년시절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인이던 아버지와 지역구 관리에 힘을 쏟은 어머니 대신 그를 돌본 건 유모와 주말마다 손자를 부른 외할아버지라고 한다. 

외조부를 롤모델로 정치인을 꿈꿨던 그는 세이케이대학 정치학과를 졸업, 미국 유학 뒤 귀국해 고베 제철소에서 3년 반 회사원 생활을 했다. 1982년 외상이었던 아버지의 비서관으로 재직하다 1993년 37살에 아버지의 지역구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에서 중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외할아버지, 아버지의 후광에 비해 다소 평범한 정치 이력을 보인 그는 2002년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로 열린 김정일 국방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전 총리를 수행하며 스타로 떠올랐다. “타협은 안 된다”며 강경론을 주장하며 ‘용기 있는 정치인’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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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9월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왼쪽)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오른쪽)과 인사하는 모습. 당시 관방부장관이었던 아베 신조(왼쪽 세번째)가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사진 출처: 중앙일보)

이에 그는 2003년 고이즈미 전 총리의 지지를 업고 젊은 나이에 파격적으로 자민단 간사장으로 발탁되고, 2005년 10월 관방장관으로 내각에 들어가며 탄탄대로를 걷는다. 

결국 고이즈미 퇴임 후 아베는 자민당 총재직에 오르고 2006년 9월 최연소이자 전후 세대 첫 총리를 맡으며 꽃가마를 타게 된다. 하지만 1년 만인 2007년 9월 건강 악화를 이유로 사임했다.

펄펄 나는 일본, 손 놓은 한국

총리 재직시절인 2007년 3월, 위안부 동원 과정과 관련해 “강제성이 없었다”고 발언하며 논란을 불러일으킨 그는 총리직에서 내려온 뒤에도 과거사와 관련한 다양한 망언을 쏟아내며 일본 우익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하지만 그를 다시 불러낸 건 민주당의 저조한 지지율과 침체에 빠진 일본 경제였다.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하고 5년만인 2012년 12월 다시 96대 총리에 오른 그는 경제 회복을 외치며 집권을 이어오고 있다.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강력한 양적완화 정책으로 일본 경제의 고질적 문제였던 디플레이션을 다소 해결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는 재집권에 성공하고 다시 자신의 우익 DNA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2015년 ‘전쟁 가능한 일본’의 디딤돌이나 마찬가지인 안보법 국회 처리를 밀어붙인 그는 지난해 자민당의 당규 개정으로 2021년 8월까지 자신의 집권 가능성을 열어놨다. 

이제 개헌이라는 마지막 퍼즐을 통해 일본을 ‘보통국가’로 만들어 과거사에서 완전히 벗어나겠다는 야망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일본 국민 사이에서는 안보법에 대한 반대 여론이 여전히 높아 지난해 안보법을 이유로 아베의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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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에서 시민단체 회원이 아베 총리의 가면을 쓰고, 소녀상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사진 출처: 한국일보)

하지만 아베는 이를  외교를 통해 정면 돌파하려는 모양새다. 미·일 동맹을 중심에.두고 과거 식민지 침략을 부정하며 한국과 중국과 충돌하는 것이 아베 외교 전략의 뼈대다. 

그는 2016년 연말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연이어 만나며 뜨거운 연말을 보냈다. 국내에는 ‘망언’으로 대표되는 우익 정치인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아베는 실용적인 입장을 취하며 국익을 극대화 시키는 면모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아베의 거침없는 행보에 한국 외교는 속수무책으로 쩔쩔매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 일본대사관 위안부 소녀상 설치에 대한 아베의 강경책에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한 합의가 발목을 잡고 있다.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확인한 당시의 합의를 근거로 아베는 1월6일 “10억엔(위안부 재단 기금)을 냈으니 한국이 제대로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계속 안기는 것은 물론이고 ‘주권국가’라고 말하기 힘든 상황까지 추락한 것이다. 

아베는 오늘도 거침없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지만, 한국은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합의에 발목을 잡힌데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로 인한 국정 공백으로 계속 헤매고 있을 뿐이다. 

목, 2017/01/1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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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0일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자민당은 승리에 취해 있었다. 자민·공명 연립여당과 개헌 찬성 세력이 개헌안 발의선(162석)을 넘는 165석을 확보했다. 곧바로 다음날 아베 총리는 숙원이었던 개헌 추진 의사를 공식화했다.

자민당 개헌안 초안에는 자위대를 정식 군대인 국방군으로 격상시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전쟁을 포기하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 평화헌법을 무력화시키는 셈이다.

200만의 생전 퇴위 의사…개헌 견제 의도(?)

아베의 계획이 발표되고 불과 이틀 뒤 NHK는 아키히토(明仁·82) 일왕이 생전에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보도를 내놓는다. 살아있는 일왕이 왕위를 내놓는 일은 오늘날의 일왕 체제가 갖춰진 메이지 유신 이후 처음이다. 거슬러 올라가도 1817년 고카쿠 일왕의 양위 이후 근 200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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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일본 도쿄 시내에서 시민들이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 퇴의 의사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일본 열도의 관심이 집중됐다. 아베 총리가 야심 차게 꺼내놓은 개헌 논의는 그만 쑥 들어가고 만다. 일본 사람들에게는 개헌보다 일왕의 메시지가 더 폭발력 있는 이슈였다.

첫 보도 당시 왕실을 담당하는 궁내청 장관은 사실상 일왕의 생전 양위를 부인했다. 그러다 한 달 만인 8월5일 일왕이 입장을 미리 녹화한 영상연설 형식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왕의 영상 연설은 흔한 일이 아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에 이어 딱 두 번째였다. 일왕은 8월8일 발표한 10분 남짓한 영상에서 ‘퇴위’라는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두 차례 외과수술을 받았고 고령에 따른 체력 저하를 느끼기 시작했다”며 “점차 신체 쇠약이 진행하는 것을 감안할 때 지금까지처럼 전신전력을 다해 상징으로서 책무를 수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뜻은 분명했다. (아키히토의 퇴위 방송을 보려면 클릭!)

일왕의 세습은 헌법상 왕실전범의 규정에 따르게 돼 있다. 왕실전범은 국왕 별세 시에 왕세자가 즉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생전 양위를 하려면 전범을 개정해야 한다. 이 작업에 2~3년은 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새로운 연호, 퇴위 뒤의 호칭, 역할, 거처 등도 심사숙고해야 한다. 현 국왕에게만 적용되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아베 정부도 개헌보다 왕실전범 규정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게 됐다. 아베 내각이 허를 찔렸다는 반응도 흘러나왔다. 일왕이 결과적으로 개헌 논의에 찬물을 끼얹은 것 아니냐, 나아가 훼방을 놓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이유다.

자민당의 개헌안은 평화헌법을 무력화시키는 내용뿐만 아니라 일왕을 일본국의 ‘상징’이 아니라 ‘원수’로 바꿔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왕이 이런 내용에 부담과 불안을 느꼈으리라는 것이다. 스스로 ‘건강상의 이유’를 들었지만 아직까지 업무수행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어린시절 패전 경험….미국인 퀘이크교도에게 교육

아키히토 일왕이 평소 보여준 평화주의 성향은 그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그는 1933년 히로히토 일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여덟 살 때 부친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미군의 공습이 시작되자 방공호 생활을 해야만 했고, 결국 도쿄를 떠나 닛코 시의 다모자와 황실 별저에서 칩거하다 종전을 맞았다. 패전 이듬해 새해 첫날 13세의 소년 황태자는 새해의 다짐을 적은 붓글씨로 ‘평화국가 건설’이라는 문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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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 일왕(왼쪽에서 두번째)은 부친 히로히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도쿄 공습과 패전의 경험이 그에게 강한 평화주의적 성향을 심어줬다는 평가가 있다.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들은 1948년 그의 생일인 12월23일 처형됐다. 아키히토로서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을 것이다

아키히토는 1949년 가쿠슈인 고등과에 입학한 후 미국인 가정교사 엘리자베스 바이닝 부인에게 지도를 받았다. 바이닝 부인이 아키히토에게 끼친 영향은 미국식 사고방식뿐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이닝 부인은 어떠한 폭력과 무력에도 반대하는 퀘이커 교도였다. 아키히토도 어떤 식으로든 평화주의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됐을 터이다.

이후 그는 가쿠슈인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영국 옥스퍼드대 대학원에 진학해 어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는다. 부친이 생물학에 조예가 깊었던 것처럼 아키히토도 국내외 학술지에 여러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어류학에 깊은 애정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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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 일왕은 젊은시절, 어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세계적 학술지에 적지 않은 영어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1959년에는 최초로 왕족이 아닌 평민 출신 쇼다 미치코를 아내로 맞아 화제를 뿌리기도 한다.

아키히토는 1989년 부친이 사망한 뒤 제125대 천황에 즉위했다. 그는 즉위 직후부터 과거 태평양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지역을 차례로 방문했다. 1991년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방문을 시작으로 1992년에는 중국, 2005년에는 사이판, 2006년에는 싱가포르와 태국을 방문했다. 2009년에는 하와이, 2015년에는 팔라우를 방문했다.

방문지에서 일왕 부부는 일본인 병사의 위령비와 함께 반드시 상대국의 위령비도 참배했다. 2005년 사이판 방문 때에는 한국인 위령탑에 참배하기도 했다. 반면 야스쿠니 신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참배하지 않았다. 아버지인 히로히토 역시 야스쿠니 신사를 8번 참배했으나 A급 전범이 합사된 1978년 이후에는 참배하지 않았다.

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

아키히토 일왕의 발언에는 일본의 과거 행적에 대한 반성과 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가 드러나 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 때에도 “우리나라가 한반도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슬픔이 항상 기억 속에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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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해 아키히토 일왕과 만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아키히토 일왕은 “한반도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슬픔이 항상 기억 속에 있다”고 말했다.(사진 출처: http://m.chosun.com/svc/particle.html?sname=premium&contid=2016072500319)

2009년 즉위 20주년을 맞아서는 “내가 오히려 걱정인 것은 차츰 과거 역사가 잊혀지는 것”이라며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말도 못하는 고생과 희생 위에 지금의 일본이 세워진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후 태어난 사람들에게 제대로 (역사를) 전달해 나가는 것이 국가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우경화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2013년 팔순 생일 기자회견 때는 패전 이후 어쨌든 평화헌법이 오늘날 일본을 일궈낸 초석이라는 점을 다시 강조했다.

2015년 각료와의 신년 인사회에서도 아베 총리에게 “올해는 종전 70주년을 맞는 기념비적인 해”라며 “많은 분이 목숨을 잃은 전쟁이었다. 이 기회에 만주사변으로부터 비롯된 전쟁의 역사를 충분히 배워서 앞으로 일본 본연의 자세를 생각해 가는 것이 현재 지극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견제구를 던졌다.

지난해 8월15일에 이어 올해 8월15일에도 전몰자 추도식에 참석해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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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종전기념일 전몰자 추도식에 참석한 아키히토 일왕과 아베 총리의 모습. 이 자리에서 아키히토 일왕은 “과거를 돌이켜 보면 깊은 반성과 함께 전쟁의 참화가 재차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아베 총리는 일본의 가해사실에 대한 언급은 없이 “내일을 살 세대를 위해 희망에 찬 국가의 미래를 개척해 가겠다”만 말했다. (사진 출처: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6/08/15/20160815001866.html)

일왕은 총리가 바뀌면 사적으로 신임 총리 부부를 왕궁에 불러 환영 만찬을 열곤 한다. 그러나 아베 총리만은 한 번도 초대받지 못했는데, 이것이 아베의 우경화 노선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할 정도다.

“백제 무령왕의 후손”….한국에 친근감

아키히토 일왕은 한국에도 친근감을 표시해 왔다. 2001년 68회 생일을 맞이한 일왕은 공개 기자회견장에서 “간무(桓武) 천황(재위 781~806년)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는 사실이 <속일본기>에 기록돼있다. 한국과 깊은 연을 느낀다”고 밝혔다.

2004년에는 일왕의 당숙이 충남 공주의 백제 무령왕릉을 참배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왕실에 한국 요리사를 초청해서 김치·잡채 파티를 열고,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다 사망한 고 이수현 씨를 소재로 한 영화도 관람했다. 또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생전에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일부에서 아직까지도 아키히토 일왕을 군국주의 향수나 자극하는 인물로 묘사하는 것은 다소 결을 잘못 짚은 사례로 보인다. 일본에서조차 천황제 자체에 반대하는 쪽에서도 아키히토 일왕 개인을 비판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일왕이 한국을 방문하려면 진심으로 사죄해야 한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격은 그래서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은 잘못 짚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때에 따라서는 한일 역사화해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도 있었을 일왕의 손을 뿌리쳐 버렸을 뿐만 아니라 많은 평범한 일본인들의 반감만 샀다.

아키히토 일왕은 2년 뒤면 즉위 30주년을 맞는다. 그는 ‘전쟁국가’로 질주하려는 아베 정권의 폭주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일까?

그가 평화주의적 면모를 지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왕의 메시지가 일정한 효용을 지닌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개헌을 저지하는데 일왕을 방패막이로 내세우는 것은 무언가 꺼림칙한 일이다.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는 “개헌을 원하지 않는다면 현재 민주주의 틀 내에서 결론이 나야 한다. 천황을 끌어들이고 활용하는 모양새 자체는 헌법을 지켜내더라도 불편하다”고 말한다.

일왕은 아베의 완충장치라는 견해도

따지고 보면 유구한 전통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천황제’라는 제도 자체도 근대의 산물이다. ‘만세일계’ 천황의 시조로 불리는 일본 건국의 시조 진무 천황(재위 기원전 660~585) 역시 가공의 인물이라는 것이 현대 실증사학의 정설이다.

메이지 유신 이전, 에도 막부 시절 ‘천황’은 즉위식조차 올리지 못할 정도로 권위가 땅에 떨어져 있었다. 민초들은 막부의 쇼군은 알아도 천황은 전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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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군주제를 가진 나라이다. 그 뿌리를 기원전 660년의 진무일왕(사진 왼쪽)으로 잡고 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랫동안 일왕은 정치적 실권이 없는 상징적 존재였다가 1876년 메이지유신 이후 절대권력자가 됐다. 유신주도자들은 그런 일왕을 실제보다 근엄하고 위엄있게 보이도록 상징조작을 했다. 메이지 일왕의 모습(사진 오른쪽).

오늘날 우리 머릿속에 있는 ‘천황 숭배’는 근대화의 후발주자로서 근대 국민국가를 창출하기 위해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천황제를 이용한 메이지정부의 작품이다. 메이지정부가 천황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해 천황의 전국 순행을 실시했다. 진무 천황의 능도 이때 축조된다.

그 천황제는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황국신민들을 전쟁의 참화 속으로 뛰어들게 하는 최면제로서의 신화로 자리매김하고 말았다.

패전 후 히로히토 일왕은 전쟁의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일왕이 지닌 전쟁의 책임을 희석하기 위해 조선과 대만인을 포함한 전 국민 ‘1억 총참회’가 필요하다는 기상천외한 개념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그러나 일왕의 책임은 다시 말할 것도 없다. 일본 수뇌부가 종전을 미룬 것도 상황을 오판해서라기보다, 패전이 임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황실을 보전할 것인가를 궁리했기 때문이다. 생체실험을 진행한 731부대는 히로히토 일왕의 칙령에 따라 창설된 유일한 부대이기도 하다.

천황제라는 신화는 패전 후 천황의 ‘인간선언’으로 스러져 버린 것일까.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 양위 선언을 계기로 다시금 물어보게 되는 질문이다.

아키히토 일왕 개인에 대한 평가는 남겨두고서라도, 불과 70여 년 전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천황제가 이제는 평화헌법의 수호자가 되고 있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은 결국 천황제가 보수적 일본 체제를 유지하는 안전장치와도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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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 일왕이 생전 퇴위를 하면 후계는 그의 장남 나루히토(왼쪽에서 3번째)에게로 넘어간다. 나루히토 역시 아버지와 같은 평화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사진 출처: 일본 궁내성)

아베 총리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일본이라는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기 위해 아키히토 일왕이 “적어도 천황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일왕이 일종의 완충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런 장치가 있기 때문에 아베 총리가 다소 무리를 해도 된다는 설명이다.

“평화헌법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천황제 쪽으로 쏠리고 있다는 게 문제인 것이죠. 마치 지금 평화헌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천황을 지지해야 되는 것처럼.”

일왕이 영상 메시지를 전하던 날 왕궁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는 한 남성의 사진이 보여주는 것처럼, 일본에서 천황제 신화는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인지도 모른다.

수, 2016/08/2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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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공식 출범 이후 (사)다른백년은 논평 활동을 통해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정론 정립 △전문가 네트워크 구축 △정론의 유통과 확산 등을 목표로 많은 글을 공개해왔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공개된 글은 주간논평 15개, 금주의인물 25개, 그리고 백년칼럼 4명(이래경, 김동춘, 김상준, 이대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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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논평>은 다음과 같이 해당 시기에 가장 핫한 이슈를 선정해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의 글을 실었습니다.

 

안병억 대구대 교수

브렉시트, 푸틴, 트럼프, 그리고 ‘우리’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좋은 헌법은 없다

김주언 전 KBS이사

그 분이 KBS 보던 날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교수

사드, 되돌아온 구한말

성상희 변호사

성주의 반란, 민주주의의 축제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삼성이 망해도 한국경제가 사는 길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교수

정책혁신가인가, 사익의 대변자인가?

다른백년은 동아시아에 있다

정상호 서원대 교수

문재인의 ‘국민성장’ 무엇이 문제인가

김창환 미국 캔자스대 교수

트럼프, 출구없는 시대의 선택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최순실 주머니 채운 국가 예산

최 선 연세대 연구교수

박근혜 탄핵이 마땅한 이유

정재원 국민대 교수

탄핵 이후, 우리가 해야 할 일들

황준호 프리랜서 기자

트럼프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 전망

홍일표 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

대한민국 관료, 군림하는 심부름꾼

<금주의 인물>은 매주 국내 인물과 해외 인물을 번갈아 가면서 소개했고, 화제의 인물을 통해 시대변화의 흐름을 읽고자 했습니다. 황경상 경향신문 기자, 이동현 한국일보 기자, 이승준 한겨레신문기자가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돌아가며 매주 화제의 인물을 소개했습니다.

 

국내 인물

해외 인물

극강 보수의 아이콘, 박승춘 보훈처장

‘브렉시트’의 선동가, 나이젤 파라지 영국독립당(UKIP) 당수

13번째 ‘지혜의 기둥’, 김재형 신임 대법관 후보자

브렉시트 구원투수, 테레사 메이 신임 영국 총리

반부패 잔다르크, 김영란 전 대법관

한국 불교의 죽비소리, 현각 스님

‘제2의 조응천’,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아베의 ‘적’ 혹은 ‘보완재’, 아키히토 일왕

마운드에 오른 폐족, 안희정 충남도지사

탄핵된 좌파의 실험,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

‘친박’이 된 세계 대통령, 반기문 UN사무총장

술탄이 되려는 남자,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SNS를 든 싸움닭, 이재명 성남시장

홍콩의 ‘젊은 그들’

불안한 황태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노벨상을 받은 록스타, 밥 딜런

박근혜의 승부수, 최재경 민정수석

반기문과는 다를 사람, 구테헤스 차기 UN사무총장

“국민이냐 대통령이냐” 박원순 서울시장

거부당한 기득권 정치인, 힐러리 클린턴

박근혜 탄핵 심판관,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프랑스판 트럼프’, 마린 르펜 국민전선 대표

시대를 역행한 법 기술자,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아듀,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전 의장

 

정치를 엿먹인 선동가, 베페 그릴로 오성운동 대표

<백년칼럼>이래경 칼럼, 김동춘 칼럼, 김상준 칼럼, 이대근 칼럼 등 (사)다른백년의 이사들이 정기적으로 기고했습니다.

2017년 새해가 시작됩니다. 새해에도 정론의 정립과 확산, 전문가 네트워크의 구축 등을 위해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금, 2016/12/30-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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