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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도 ‘대학’을 꿈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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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도 ‘대학’을 꿈꾸는가

익명 (미확인) | 화, 2016/08/23- 15:48

얼마 전, 이대에서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 문제로 학생들과 학교 간에 충돌이 있었다. 교육부의 평생교육 대학 설립 사업에 참여하려던 이대는 고졸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뷰티 웰니스’ 교육과정을 제안해 승인을 얻은 상태였다. 

 2016년 8월, 이대의 ‘미래라이프’ 대학

학생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학교가 돈에 눈이 멀어 학위 장사를 하는 것은 이대가 지켜온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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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교수들>은 기업화된 미국 대학의 현실과 추락한 대학교수들의 모습을 생생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미국 대학의 모습이지만, 한국 대학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미 평생교육원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새로 성인교육 단과대학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으며, 사업비 30억이 온전히 해당 사업과 교육 여건 개선에 쓰이리라는 것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 사업이 결과적으로 재학생들의 학업환경을 악화시킬 것이며,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것으로 비판했다. 

졸업생과 동문회까지 가세하여 시위자의 수는 나날이 늘어났고, 1600여 명의 경찰 투입이라는 학교 측의 초강수에도 이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학교는 백기를 들었고, 사업은 백지화됐다.

당장은 학생들의 승리였다. 그러나 이대를 비롯한 대학의 앞날은 그리 순탄치 않아 보인다. 이번 사태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오늘날 한국의 대학들은 대체 어떤 피난길로 내몰리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가장 먼저 챙겨야 하고, 절대 빠뜨릴 수 없는 마지막 봇짐은 무엇일까.

기업화된 대학,  위태로운 교수들

<최후의 교수들>은 신자유주의 시대 대학이 마주한 현실을 교수들이 처한 상황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저자 프랭크 도너휴는 오하이오 주립대 영문학과 정교수이다. 이 책에서 그는 나날이 심화되는 미국 대학의 기업화와 시장화, 그에 따른 인문학 교수들의 지위 하락을 살펴보고 있다.

도너휴에 의하면, 지금의 대학은 정규직 교수의 종말,  곧 ‘최후의 교수’의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대학 교수는 종신 재직권(tenure)을 통한 신분적 안정을 기반으로, 자유로운 연구 활동을 보장받았다.

원래 대학은 중세의 길드(guild)를 배경으로 했는데, 경제적 사회적 제도적 독립을 통해 학문과 교육의 자율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교수의 신분 보장 또한 이에서 비롯됐다. 대학의 독립과 자율성은 곧 학문과 교육의 주체인 교수의 독립과 자율성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서보명, <대학의 몰락>, 동연,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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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대학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자치공동체의 모습으로 존속했다. 이는 대학의 독립성과 자율성의 기반이 됐다. 종신교수직도 학문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그러나 도너휴는 이러한 대학과 교수의 독립적, 자율적 지위는 나날이 와해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회복되기 어려울 거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이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학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대학의 기업화, 시장화가 본격화되면서  대학은 연구와 교육이라는 본연의 기능과 역할보다는 취업과 지표에 주력해야 하는 영리 목적 기관이 되었다. 테일러주의(Taylorism)의 논리에 따라 대학의 생산성에 대한 행정과 관리가 강화됐고, 대학의 본령이었던 학문탐구와 인문교양 교육은 계량화된 연구실적과 취업률, 직업교육 강화에 밀려났다.

교수들의 지위 역시 급락했다. 교수직의 상당수가 비정규직화됐으며, 지금까지 교수직의 필요조건으로 여겨진 종직 재직권 또한 의문시됐다. 대학은 이제 더 이상 상아탑이나 교학상장의 공동체일 필요가 없으며, 교수들은 보고서와 취업률에 쫓겨야 하는 관리감독의 대상이 되었다.

위기의 학문, 인문학

이 과정에서 가장 타격을 입는 것이 인문학 전공자들이다. 기업화, 시장화된 대학에서는 생산성이 절대적 가치가 된다. 돈이 되지 않는 인문학과 그 전공자들은 가장 먼저, 가장 신속히 사라져야 할 폐기물이 된다. 

대학들은 앞다퉈 인문학 관련 학과와 전공들은 축소, 폐지했고, 인문학 교수직과 정규직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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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인문학이 퇴출된다는 소식은 더 이상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은 뉴스이다. 인문학에 적대적인 환경에서 인문학은 항상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미지 출처: http://blog.besunny.com/?p=7353)

대학은 몇몇 저명한 인문학 교수들에게만 종신재직권을 허용했기 때문에 교수 사회 내 경쟁은 더욱 가열됐다. 얼마 안 되는 종신재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학문적이건 대중적이건, 인지도를 높여야 했고, 이 때문에 가시적인 학문적 지표들, 곧 연구물의 수와 단행본의 출간 등에 매달리게 됐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대학 개혁은 연구환경의 근간이 되는 연구비 지원과 출판 및 도서관에 대한 재정 역시 축소시켰다. 이로 인해 교수들은 자비로라도 연구와 출판의 활로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최소 투자, 최대 효과’라는 냉혹한 생산성의 논리는 교수사회에도 예외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른바 ‘열정노동’ 혹은 ‘헝그리 정신’.

인문학 전공 대학원생들 역시 해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인문학 전공 박사들은 실업자와 동의어가 됐다. 졸업 후 첫 일자리가 ‘맥도널드’라는 우스개소리는 당사자들에게는 전혀 우습지 않다.

도너휴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대학이 사라진 미래에는 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나마 학문과 교육에 대한 열정이 높은 몇몇 소수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학자와 교육자로서의 정체성을 이어가려 하겠지만, 기약 없는 ‘고속도로 인생(우리 식 표현으로는 보따리 장수)’에서 하나, 둘씩 지친 탈락자만 늘어갈 뿐이다. 바야흐로 인문학 박사 학위는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처럼 무용하고 쓸쓸하다.

미국의 경우 인문학에 대한 적대와 공격은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20세기 초부터 카네기를 위시한 자본가들이 끊임없이 대학의 인문학적 지향을 비판하고 공격했다.  

카네기는 전통적인 대학교육을 받고 졸업한 사람들을 “다른 행성에나 어울릴 녀석” 이라고 폄하했다. 셰익스피어나 호머 따위를 연구하는 일은 시간을 허비하는 쓸모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대학 교수란 노동자이기를 거부하는, 고집 세고 교만한 자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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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의 모습. 카네기도 대학의 인문학자들을 쓸모없는 인간 취급을 했다. 그래서 그는 사재를 출연해 1905년 노동자계층 자녀들을 위한 직업훈련학교로 카네기공업학교(Carnegie Technical Schools)를 세웠다. 이 학교가 이후 멜론연구소와 통합해 종합대학인 카네기-멜론대학이 됐다. 자신이 세운 학교가 그토록 경멸했던 종합대학이 된 사실을 카네기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미 당대에 ‘대학 무용론’에서부터 ‘교양대학론’, ‘실용주의 대학론’에 이르기까지 대학의 기능과 위상에 대한 온갖 논쟁이 있었으며, 이 와중에 인문학은 언제나 그 ‘무용함의 유용함’을 알지 못하는 몰이해 속에서 외롭고 고독한 존재증명을 해야 했다. 

한국의 대학, 쿼바디스?

해방 후 한국엔 미국식 시스템이 자리를 잡았다. 교육제도와 대학 체제 역시 예외가 아닌데, 한국의 대학은 기본적으로는 미국의 ‘대중 대학 모델’에 기초하고 있다. 

즉 고등교육 재정의 상당부분을 국가가 담당하는 독일이나 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미국 대학의 경우 그 태생적 논리가 수요자 중심에 기초하고 있으며, 재정 역시 학생들이나 기업 혹은 몇몇 거대 비영리 재단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국립대는 물론이고 대다수의 사립대학들은 재정의 상당 부분을 국고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는 대학의 공공성에 근거한 지원이라기 보다는 한국적 국가주의의 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미국 대학과의 차이는 미국 대학이 비영리 재단이나 기업 등 좀 더 직접적으로 자본의 영향을 받은데 비해, 한국 대학들은 교육부를 통해 간접적으로 자본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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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겪는 첫번째 사회경험은 ‘실업’이다. 대학이 졸업생의 취업을 고민하고, 진로를 도와주는 일은 불가피하다. 모두 학자가 될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대학은 본래의 대학에서 궤도를 이탈하게 된다.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신자유주의적 대학 개혁 역시 미국에  기원을 두고 있다. 예컨대 서울대가 연구중심 대학을 표방한 것이 1990년대 중반부터인데, 이는 정확히 미국식 모델을 모방한 것이다.  서울대가 학부를 축소하고 대학원 정원을 늘리면서 연구중심 대학을 표방하자 다른 대학들도 이를 따랐다. 이는 미국의 경우에서 발견되듯이, 대학들이 위계화, 서열화되어 있는 곳에서는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언젠가부터 중앙일보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대학 순위를 매기고 공개함으로써 고등교육 기관 평가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 역시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 대학에서 이뤄진 행태였다. 

이 모든 변화의 배후에는 물론 교육부가 있다. 교육부는 대학에 대한 통제와 재정 지원을 빌미로 대학을 예속시켰다. 예컨대 1980년대 대학진학률이 80퍼센트에 이르렀던 배경에는 당시 전두환 정권 교육부의 너그러운 졸업정원제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학을 졸업한 뒤  첫번째 사회경험이 ‘실업’이고, 조만간 학령인구도  40만명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예전처럼 교육부의 후원 아래 맘 편히 ‘학생 장사’만 하기에는 생존이 위태로운 지경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이번에 내든 카드는 ‘대학 구조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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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학은 교육부의 손아귀에 있다. 최근에는 구조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돈을 풀어 대학을 길들이고 있다. 생존이 급급한 대학으로서는 그 돈에 연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얻는 생존은 대학의 본질을 크게 훼손한 뒤에 얻은 성과에 불과하다. (이미지 출처: http://kkh1119.tistory.com/242)

최근의 BK(Brain Korea) 21, SSK(Social Science Korea), 프라임 사업(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 등은 모두 대학의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정책들이다. 이들 정책의 명분은 화려하지만, 실상은 알량한 푼돈을 쥐고, 대학들을 줄 세우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냉혹한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의 논리 앞에서 대학들은 다시 눈 먼 좀비처럼 교육부 앞에 도열한다. 앞서의 이대 사태는 이러한 맥락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고 사나

그 결과 책에서 언급된 미국 대학과 교수 사회의 변화는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발견된다. 이미 몇몇 대학들은 실질적으로 기업의 경영통제를 받고 있고, 인문학 관련 학과의 통폐합이나 대학 구조조정이 일상사가 되고 있다. 

대학의 강단은 스스로를 ‘일용잡직’이라고 자조하는 비정규직 강사들로 채워진지 오래이며, 인문학 박사들은 보따리 장수가 되어 오늘도 이 학교 저 학교을 헤맨다. 1-2년의 단기 계약과 저임금, 모욕적 처우 속에서 그저 지식노동자로 하루하루를 살 뿐이다. 

정규직 교수들의 사정 역시 편치 않다. 교수의 능력이 펀드나 사업따기로 평가되고, 수시로 재임용 탈락의 위협을 받는다. 논문이 아니라 보고서를 쓰느라 밤을 새고, 어떻게 하면 평가지표를 맞출까 전전긍긍한다. 학과의 생존이 자신의 생존이며, 취업률은 생존을 담보하는 유일한 필살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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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졸업생의 취업률, 인문학, 사회와 격리된 학문탐구…지금 한국의 대학은 존립의 이유를 찾기 위해 방황 중인 것처럼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대학의 본분이라는 것이다. (사진 출처: http://sgsg.hankyung.com/apps.frm/news.view?nkey=2014092900443000051&c1…)

이런 대학에서 무슨 학문을 하며, 무슨 교육이 있겠는가. 백년을 내다보는 연구, 미래인재를 키우는 교육은 공허한 빈말일 뿐이다. 

혹자는 대학 밖은 더 치열하다며 ‘우는 소리 그만 하라’고 힐난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말은 대학을 대학으로 만들었던 근본을 버리라는 말과 같다. 그걸 버리면 대학은 더 이상 대학이 아니다. 

대학은 원래 사람과 삶, 공동체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하는 곳이다.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곳이 대학이다. 문제는 사람은 밥만 먹고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해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매우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우리 자신에게 끊임없이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묻는다.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이 맞는지, 그 길의 끝에서 행여 낭떠러지를 만나는 것은 아닌지 묻는 것이 인문학이다.  

인문학만으로는 살 수 없지만, 또한 인문학없이도 살 수 없다. 정말 우리는 인문학 없이 살기를 원하는가. 

한국의 대학에게 묻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대학 스스로 자신의 운명이나 처지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 대학이 스스로의 사명과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는지 의심스럽다.

대다수의 대학들은 기업화와 시장화에 저항하기는커녕 문제의식조차 없어 보인다. 인구는 줄어가고 평균 수명이 길어져 가는 상황에서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대학의 사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어차피 고령화 사회에 필요한 기성세대의 재교육은 대학의 역할이고, 또 대학 자체의 개방과 유연화 역시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그렇더라도 대학이 대학 아닌 것으로 변질되면서까지 살아남는다면, 그때의 대학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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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와 교육은 대학의 양대 기둥이다. 인문학도 그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차분히 고민하기에는 현실의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는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말라 죽은 뒤 길을 찾으면 무슨 소용인가. 대학과 인문학에 대해 사회적 고민을 심화시켜야 할 시점인 듯 하다. (사진 출처: 건국대 제공)

나는 다소 허황되게 들릴, 공상적인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이럴 때일수록 제대로 된 인문학 교육을 강화하자!  

지금과 같은 단순한 물량공세 위주의 대학교육을 진짜 대학교육으로 질적으로 심화시키라는 것이다. 이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을 도도하게 거스르라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이상주의자의 허황된 꿈일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이상은 현실의 불가능한 꿈이었고, 그 꿈의 존재로 인해 현실도 조금씩 개선됐다. 꿈이 없는 현실은 지옥이다. 인문학은 현실의 지옥을 인간의 세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도너휴는 향후 대학에서 인문학이 극소수 대학이나 학생들의 전유물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비판적 지성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라질 수 없는 것이기에 기업화된 대학의 한켠에서 인문학은 초라하지만 굳세게 명맥을 이어갈 것이다.

어쩌면 그런 모습은 과거 수도원에 갇혀 진리탐구와 인문교양교육을 하던 일부 스콜라들의 모습과 유사할 수 있다. 어쩌면 이토록 막강한 실용의 세상에서 오늘의 인문학자들은 벌써 그렇게 돼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최후의 교수들>은 쉽고, 속도감 있게 읽힌다. 또 미국 대학의  속사정을 여러 사례로 보여주고 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 

번역 또한 매끄럽다. 옮긴이 차익종은 국문학을 전공하고 박사 학위를 받은, 그 자신 인문학자이다. 이런 이들 덕분에 태평양 너머의 생생한 지식을 편하게 앉아 읽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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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해 보이는 그 자리가, 실은 폭풍우 치는 바다 한 가운데였다.”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으로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 결정을 이끌고 헌재를 떠난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은 지난 13일 열린 자신의 퇴임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헌법재판관을 포함해 30년의 법관 생활을 마감하며 내놓은 짧은 소회다.

이 전 재판관은 선고일인 10일 분홍색 헤어롤 2개를 머리에 달고 출근해 화제를 모았다. 헌재 관계자는 “이 권한대행도 머릿속에 오로지 ‘탄핵심판을 어떻게 원활하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 밖에 없다 보니 이런 해프닝이 벌어진 게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전 재판관의 ‘헤어롤’을 세월호 7시간처럼 가장 긴박한 순간에조차 고수해야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올림머리’와 비교하며 진정한 리더십의 의미를 되새긴 사람들이 적지 않다.

법관으로서 최고 명예의 자리까지 오른 뒤 내려온 이 전 재판관의 나이는 이제 55세에 불과하다. 이 전 재판관의 퇴임 후 계획은 아직 알려진 게 없다. 다만 사회생활을 그만두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인 만큼 그가 과연 어떤 변신을 할지 주목된다.

고3 때 10ㆍ26사태…법대 진학 결심

이 전 재판관은 1962년 울산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다녔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었던 부친이 경남 마산으로 전근을 가면서, 이 전 재판관도 마산여고로 진학한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던 1979년 이 전 재판관은 그곳에서 역사의 순간을 대면하게 되고, 수학선생님이었던 장래 희망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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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이 선포된 지 7년만인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대규모 민중항쟁은 박정희 암살의 도화선이 됐다. 당시 마산여고에 다니던 이정미 재판관은 이 사건을 보며 법대 진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 해 10월 마산에서는 박정희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의 불씨가 부산에 이어 일제히 타올랐다. 부마항쟁이었다. 민주화 운동의 기수이던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의원직 제명안을 국회에서 변칙 처리하는 등 잇따랐던 유신 폭압 정치가 도화선이 됐다.

박정희 유신정권은 부마항쟁 수습책을 놓고 벌어진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간의 갈등 속에 10ㆍ26사태로 종말을 맞는다.

이 전 재판관은 “어떤 방향이, 사회가 올바로 가는 길일까 생각하다 법대에 진학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지난 2011년 7월 헌재 재판관 취임 100일을 맞아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집 근처에서 과격한 시위가 일어났고, 저나 친구들은 다 충격을 받았다”며 “그런 사회 모습에 혼란스러워 했던 거 같고, 그러다 보니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소수자였던 여성 법조인

이 전 재판관은 1980년 고려대 법과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상경했지만 혼란의 연속이었다. 80년 서울의 봄은 5월을 넘기지 못한 채 역사적 비극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휴교령이 내려지면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그렇게 1984년 10월 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지위를 얻게 된 측면이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여성 법조인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소수자였다. 이 전 재판관보다 선배인 여성 법조인이 19명뿐이던 시절이다.

여성 법조인은 1951년 제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이태영 변호사가 처음으로 합격했고, 1952년 황윤석 판사가 헌정사상 첫 여성 법관이 된다. 이후 18년간 명맥이 끊겼다가 1970년 훗날 스타 법조인이 된 황산성ㆍ강기원이라는 법조인도 탄생했지만, 여전히 소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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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한국 최초의 여성 법조인 이태영 여사가 1952년 법복을 입고 대법원 앞에 선 모습. 두번째 사진은 여성판사 1호 황윤석 판사. 세번째 사진은 여성검사 1호 조배숙 변호사의 모습.

이 전 재판관이 합격했던 사법시험 26회까지 3,094명 합격자 가운데 여성은 24명으로 여성 법조인 비율은 0.78%에 불과했다. 숫자만 적었던 게 아니다.

1961년 여성 판사 1호 황윤석 판사가 32세 나이로 의문사 하는 사건은 당대 여성 법조인이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경찰은 남편의 타살 가능성을 의심했지만, 물증을 찾아내지 못해 미제로 남았다.

이 전 재판관과 박보영 변호사, 윤영미 고려대 교수 등 사시 동기들과 그 해 11월 사시 여성합격자 축하 모임에 참석한 사실이 신문 기사로 보도될 정도였다.

이 전 재판관 등은 축하 모임에서 “지금까지는 책에만 매달려 법조인에게 정직 필요한 인간에 대한 공부는 부족하다”며 “주어진 위치에서 불우한 이웃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열심히 배우겠다”고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40대ㆍ비서울대ㆍ여성 헌법재판관

이 전 재판관은 1987년 3월 대전지법 판사로 임관하면서 법관의 삶을 시작한다. 서른을 넘겨 결혼한 뒤 두 아이를 키우면서는 보따리를 들고 다니며 일을 했다.

아이들이 잠든 이후에 사건 기록을 살펴봐야 했고, 아이들이 깨기 전 새벽에 판결문을 써야 했다.

이 전 재판관은 “여성이 소수이다 보니 조금만 일에 소홀해도 눈에 띈다”며 “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여성법조인에 대한 평가가 될까봐 조심스러웠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 전 재판관은 2011년 1월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으로부터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전효숙 전 재판관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재판관이자, 비 서울대, 40대 재판관이란 타이틀로 주목을 받았다.

이 대법원장은 “헌법재판소의 기능과 역할을 중시하여 소수자 보호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 다양한 이해관계를 적절히 대변하고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인물인지를 주요한 인선 기준으로 삼았다”고 지명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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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재판관이 2011년 국회 법제사법위에서 열린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http://m.blog.daum.net/sanatana/16527455)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헌법에 대한 전문성 여부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헌법에 관련해 학위를 취득했거나 관련 논문ㆍ저서도 없고, 법관으로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사례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재판관은 의원들의 지적에 “법원의 재판 자체가 헌법정신을 기초로 해 국민의 귄리를 구제하는 역할을 한다”고 반박했다.

이 전 재판관은 1987년 임관 이후 거의 모든 시간을 재판관 외길을 걸었다. 2004년 2월부터 2007년 2월까지 3년 동안 사법연수원 교수로 재직한 기간이 유일하게 재판정 밖에서 보낸 시간이었을 정도다.

인사청문회에서 원친적 답변을 해 의원들로부터 ‘소신이 없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 전 재판관은 청문회 통과 이후 “청문회를 준비하는 2주동안 짧게 생각하고 내 소신은 ‘이것’이라고 답하는 게 법률가로서 적절하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했다”며 “차라리 소신 없다는 비판을 받는 게 낫다는 게 제 소신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통진당 해산, 간통죄 위헌 등 참여… ‘법의 도리는 고통 따르지만 오래도록 이롭다’

이 전 재판관은 재임 6년간 헌정사에 남을 굵직한 사건에 다수 참여했다.

2014년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에선 주심 재판관을 맡아, “정당 해산 결정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는 것이 정당 활동 자유의 근본적 제약이나 민주주의의 일부 제한이라는 불이익에 비해 월등히 크다”는 통진당 해산 주문을 읽기도 했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린 간통죄에 대해선 “간통은 가족공동체 보호에 파괴적 영향을 미친다”는 소수 의견을 내기도 했다. 김영란법, 사시폐지, 성매매특별법에 대해서는 합헌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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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퇴임식이 열렸다.

이 전 재판관은 지난 13일 열린 퇴임식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해 “참으로 고통스럽고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법가 사상가 한비자의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法之爲道前苦而長利)는 문구를 인용하며 법치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통치구조의 위기상황과 사회갈등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인권 보장이라는 헌법의 가치를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이라고 생각한다”며 “비록 오늘은 이 진통의 아픔이 클지라도, 우리는 헌법과 법치를 통해 더 성숙한 민주국가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민주주의, 그 요체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는 당부도 빠뜨리지 않았다.

월, 2017/03/27-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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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나라가 자유를 잃다’

독일을 대표하는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지난 13일 이례적으로 특별호를 발간해 터키 정권을 강력 비판했다. 화살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정조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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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의 총리와 1번의 대통령. 2014년에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헌법까지 바꿨다. 그리고 이제 21세기의 술탄을 꿈꾸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사진 출처: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581769)

슈피겔은 에르도안 대통령을 ‘독재자’로 규정하며, “개혁가에서 폭군으로 변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유일한 이슬람 회원국으로 서로를 우방국이라고 치켜세우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어졌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터키의 대표적 지성 오르한 파묵도 앞선 11일 이탈리아 일간 라레푸블리카 1면 기고문을 통해 “터키가 법치국가로부터 멀어져 가장 빠른 속도로 공포정치 체제로 가고 있다”며 에르도안 대통령을 성토했다. 터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터키의 ‘이명박’에서 ‘박정희’로

물론 에르도안 대통령은 1922년 술탄(오스만 제국 황제)를 없애고 터키 공화국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케말 파샤)에 이어 제2의 국부로 국민적 추앙을 받는다. 지난 7월 군부의 쿠데타 시도를 ‘국민의 힘’으로 물리쳤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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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발생한 쿠데타는 터키 국민들이 직접 쿠데타 군에 맞서고, 군부 퇴출을 요구하는 야간 시위를 벌이는 등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다. 이를 계기로 에르도안은 정국 장악력을 높여갔다. 그래서 이번 쿠데타가 에르도안에 의한 자작극이라는 추측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사진 출처: http://www.stevenh.co.kr/1174)

총리 3선에 마친 뒤 연임 제한에 걸리자 헌법을 바꿔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서 ‘터키의 푸틴’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지만, 국민들은 선출된 권력인 에르도안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

살인적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을 잡고, 장기 경제 호황을 이끈 공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복귀 일성으로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권력보다 더 높은 권력은 없다”고 호응했다.

하지만 위기를 넘기자 국민은 잊혀지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즉각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장기 집권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의회를 거치지 않고 즉각 발효되는 칙령 제정권도 손에 쥐었다.

박정희 유신 정권의 ‘긴급조치’를 떠올리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에르도안 정권에 주어지면서 정적 숙청과 민주주의 탄압이 터키의 일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치사에 빗대 에르도안 대통령이 ‘터키의 MB(이명박)’에서 ‘터키의 박정희’가 돼 가고 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꾀하며 터키만 자유를 잃은 게 아니다. ‘신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되려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민주주의 탄압에 따른 외교적 고립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와 거리를 급격히 좁히면서 유럽에 제2의 냉전 전선이 그어지는 모양새다.

자수성가한 이슬람 근본주의자

에르도안 대통령은 서민적 친화력에 자수성가 스토리까지 여러모로 우리나라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비견된다.

그는 1954년 터키 북동부 흑해 연안의 항구도시 리제의 엄격한 수니파 무슬림 집안에서 태어났다. 해안경비대원이었던 그의 부친은 자녀들이 더 나은 교육환경에서 자라길 바라며 에르도안 대통령이 13세가 되던 해에 이스탄불로 이주했다.

이스탄불 변두리 거리에서 레몬에이드와 참깨번즈(빵)를 팔아 용돈을 마련해야 했던 도시 빈민가 소년 에르도안은 이슬람 학교를 다니며 꿈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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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은 이스탄불 근처의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13세때 이스탄불로 이주했다. 그의 어린시절 모습(왼쪽 사진). 또 그는 Marmara대학 경영학과 재학 당시, 세미프로 축구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슬람주의가 자양분이 됐다. 세미 프로 축구선수로 뛰며 대학에 다니던 그가 정치에 눈을 뜬 것도, 훗날 이슬람주의자 최초로 터키 총리에 오르는 이슬람 운동가 네흐메틴 에르바칸을 만나면서다.

그는 에르바칸을 정신적 스승으로 삼은 뒤 뼛속까지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된다. 이스탄불 교통국 관리로 일하던 1980년 전역 군인 출신의 국장이 콧수염을 밀라는 지시를 하자 이를 거부하고 사표를 쓴 일화로 유명하다.

에르바칸이 이끄는 복지당에 몸담아 1991년 처음으로 의원에 당선될 당시 지역구가 터키 이슬람 원리주의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중부 아나톨리아 지역의 카이세리였다.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의 시장으로 전국적 인지도 얻은 뒤 대권을 쥐었다는 점도 이 전 대통령과 닮은 꼴이다. 1994년 40세 나이에 인구 1,000만명이 넘는 이스탄불의 시장이 된 그는 물 부족ㆍ대기 오염ㆍ교통 체증 문제 등 시의 3대 난제를 해결하면서 정계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군부가 1997년 ‘세속주의를 위협한다’는 명분으로 당시 총리였던 에르바칸을 실각시키자, 에르도안 대통령은 명실상부 터키 이슬람주의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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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의 정치적 스승인 에르바칸(왼쪽 사진). 그는 케말 파샤의 군부 5대 정책중 세속주의 정책에 반하는 이슬람정당을 창당했다. 1970년대는 연합내각을 구성해 2차례 부수상을 역임했다. 그러나 이슬람정당 활동으로 군부에 의해 구금 되는 등 정치활동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오른쪽 사진은 에르도안이 1983년 창당한 복지당에서 연설하는 모습.

군부는 헌법재판소 판결을 통해 복지당도 해산시킨다. 이른바 ‘무혈 쿠데타’ 당시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탄불 시장 신분으로 “이슬람 사원은 우리의 병영이며, 신도는 우리의 병사”라는 내용의 시를 공개 석상에서 낭송했다 체포 된다.

그는 국민을 선동했다는 혐의를 적용 받아 4개월간 복역해야 했지만, 대중에게 그는 언론의 자유 수호자로 각인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1년 이슬람계 정당인 정의개발당(AKP)을 창당한 이후 승승장구 했다. 이듬해 치러진 총선에서 승리하며 단독 정부를 구성했고, 2003년 처음으로 총리에 취임한 이후 2007년과 2011년 총선에서 잇따라 승리해 총리 3연임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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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은 2001년 동료들과 함께 정의개발당(AKP)를 창당했다. 이후 에르도안은 선거에서 연승하며 3차례나 총리를 연임한다.

2009년과 2014년 치러진 지방선거까지 모두 승리로 이끌면서 ‘선거의 술탄’으로서의 면모도 과시했다.

경제 성과로 선거 연승… 정적 귤렌 숙청으로 장기집권 틀

에르도안 대통령은 경제 해결사를 자처하며 선거에서 연전연승 한다. 지난 2004년 ‘0’을 여섯 자리 없애는 화폐단위변경(리디노미네이션)을 전격 실시하는 등 총리 취임 초기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부터 잡았다. 커피 한 잔에 100만 리라(터키 화폐 단위)에 달하는 ‘세계 최고액권’ 리라는 터키 경제의 실패의 상징과도 같았다.

국제금융기구(IMF) 구제금융 프로그램도 착실히 이행하며 총리 재임 10년 동안 터키의 국내총생산(GDP)를 3,030억달러에서 8,172억달러로 3배 가까이 키웠다. 20%대였던 실업률은 10% 선으로 떨어뜨렸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경제 노선에는 이슬람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책이 바탕에 깔렸다.

주류세를 인상하고, 터키 국민의 95%를 차지하는 무슬림에 대한 각종 경제혜택을 제공했다. 식료품 등 생필품의 가격을 최대한 낮추는 대신 자동차 및 사치품에 대한 과세를 강화했다. 저소득ㆍ저학력의 이슬람 유권자들로부터 절대적 지지가 뒤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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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을 상징하는 보스포러스 다리. 이 다리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한다. 에르도안은 재임 중 거둔 경제 성과를 바탕으로 장기 집권에 성공했다. (사진 출처: BBC)

힘을 얻은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슬람 노선 강화에 번번히 제동을 걸어온 군부 힘 빼기에 나선다.

에르도안 정권은 2010년 쿠데타 음모를 사전에 적발했다며 군부 숙청을 시작했다. 이른바 ‘철퇴 사건’으로 관련자 300명이 수감되고, 군 장성의 20%가 옷을 벗었지만, 사법부의 판결이 엇갈리면서 실제 쿠데타 음모가 있었는지는 지금까지 확정되지 않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대신 경찰력을 강화해 자신의 우군으로 삼았다. 지난 7월 군부 쿠데타를 제압한 핵심 세력이 경찰이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집권 세력 내부 권력 투쟁에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 가장 큰 힘이 된 동지이자 잠재적 경쟁자였던 온건 이슬람 사상가 페툴라 귤렌이 타깃이 됐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지난 2008년 진행한 세계 최고 100대 지성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세계적 석학이기도 한 귤렌은 터키 사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군부 숙청에 결정적 역할을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귤렌을 권력의 바깥으로 내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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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렌(왼쪽 사진)은 이슬람 교육과 사회 운동을 이끄는 저명한 학자이다. 그의 추종세력이 언론, 정치, 군과 검경에 퍼져 있어 그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귤렌과 에르도안(우)은 세속주의에 대항한 정치적 동지였다. 귤렌은 에르도안이 군부를 숙청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사진 출처: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581820&plink=TEXT&co…)

두 사람의 관계는 2013년 에르도안 대통령과 그의 아들로 추정되는 인물이 10억달러(1조여억원) 규모의 비자금을 어떻게 숨길지 논의하는 전화 통화 감청파일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파국을 맞는다. 앞서 터키 검찰은 비리 혐의로 에르도안의 3남을 포함한 정권 주요 인사 52명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고, 에르도안 당시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가 터키 전역에서 벌어졌다.

최악의 위기에 직면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더욱 노골적으로 권력에 대한 집착을 드러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비리 스캔들을 정부 내 범죄집단이 외부세력과 결탁해 체제 전복을 노린 정치적 음모라고 주장하며 그 배후로 귤렌을 지목하고 1급 지명수배 테러리스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비리 혐의를 수사하던 검찰과 경찰을 국가전복 및 불법도청 협의로 파면하거나 좌천시켰다. 비리 스캔들을 취재한 기자들을 체포하고, 이를 보도한 일간지 ‘자만’을 강제 법정관리에 처했다. 비리 스캔들이 퍼져나가지 못하도록 트위터도 차단한다.

경쟁자가 사라지자 에르도안 대통령의 독주가 시작된다. 헌법을 바꿔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한 후 대선에 나가 2014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총리에서 대통령으로 자리를 바꾸면서 내각제를 대통령 중심제로 전환하려는 시도에도 나섰다. 비판 세력에는 무차별적 철퇴를 가하고 있다.

전가의 보도 된 ‘반테러법’… 국제사회 고립 자초

에르도안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인권침해와 언론탄압 비판에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배경에는 ‘반테러법’이 자리하고 있다.

반테러법에 저촉돼 유죄 판결을 받은 인원은 지난해 8,000명에 달한다. 대통령 모욕죄도 비판 목소리 내는 이들을 옥죄는 수단으로 주로 활용된다. 최근 1년 반 사이 대통령 모욕죄로 기소된 사람만 오르한 파묵을 비롯해 2,000명에 육박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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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헌법은 대통령 모욕죄를 명문화하고 있다. 에르도안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2000명이 넘는 사람이 이 죄에 걸려 고욕을 치뤘다. 여기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왼쪽 사진)과 미스 터키 출신도 포함된다.

한때 이슬람 민주주의의 성공한 모델로 꼽혔던 터키는 이제 유럽의 골칫거리가 돼 가는 모양새다.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철퇴와 시리나 난민 문제 해결이 시급한 유럽연합(EU)로서는 터키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하지만 에르도안 정권이 정적 제거에 테러법을 활용하며 언론탄압과 인권침해를 자행하는 상황을 묵인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터키로서는 경제 침체의 돌파구로 여겨왔던 EU 가입이 당분간 힘들어지면서 곤혹스런 상황이 됐지만, EU의 반테러법 수정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터키는 대신 러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8월 쿠데타 시도 이후 첫 해외순방지도 러시아를 방문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지난해 터키 전투기의 러시아 전폭기 격추 사건으로 훼손됐던 양국 관계를 전면 복원하기로 합의했다.

러시아와 서방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시리아 문제 등으로 제2의 냉전을 방불케 하는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나토의 유일한 이슬람 회원국 터키마저 EU와 마찰을 빚으며 러시아와 거리를 좁히면서 유럽 정세의 불확실성이 갈수록 증폭되는 모양새다.

목, 2016/09/2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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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 ‘열어라 국정원, 내놔라 내(불법사찰)파일! 시민행동’을 제안하는 운동에 나섰다.  국정원의 불법사찰의 전모를 밝히는 정보공개청구 운동을 통해 시민들이 국정원 개혁에 참여하자는 취지다.  곽 전 교육감이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이 운동의 취지를 밝히는 글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전재한다. 곽 전 교육감은 다른백년의 고문이기도 하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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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 (사진 출처:오마이뉴스)

‘열어라 국정원, 내놔라 내(불법사찰)파일!

연일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대국민사찰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었던 문재인 대통령,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최성 고양시장, 가수 이효리, 야구선수 이승엽, 방송인 김미화, 김제동, MC몽, 배우 김여진, 작가 이외수, 공지영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구 여당인사였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이상돈 의원, 민경욱 의원 등 전·현직 구 여권 인물들까지도 정권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이면 모두 사찰대상이 됐다. 전교조에 대해서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전교조 와해 목적으로 전교조 교사로 위장해 전교조 탈퇴 양심선언을 조작하기도 했다. 캐도 캐도 끝이 없다. 국가안보를 책임져야 할 국정원이나 군이 조직적인 대국민사찰에 여념이 없었다.

실상을 낱낱이 밝혀 진실을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기회에 국정원과 군 개혁이 근본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일부 사실 공개나 몇 사람의 책임추궁과 부분적인 조직개편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폭로된 정황으로 보면 모든 국민이 잠재적인 사찰대상이었다. 다시는 국가안보 대신 정권안보와 사회통제를 위해 국정원과 군이 동원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 책임을 일부 개혁위에 맡기고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직접 나서 그동안 국정원이 벌인 대국민사찰의 전모를 밝히는 시민참여 운동이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열어라 국정원, 내놔라 내(불법사찰)파일! 시민행동’을 제안한다. 국정원에 내 사찰파일을 공개하라는 시민운동을 벌이자는 뜻이다. 돌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할 수 있느냐고 혀를 찰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국정원이 그런다고 정보파일 하나 내줄 것 같으냐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조금만 따지고 들면 그렇지 않다. 이미 국정원에 내 개인정보를 내놓으라고 신청하는 것은 헌법과 정보공개법, 개인정보보호법이 보장하는 모든 시민의 권리다. 지금까지 우리 시민사회가 활용하지 않았을 뿐 얼마든지 활용 가능한 우리들의 소중한 권리다. 적극적인 시민들과 활동가들에게 알 권리와 정보인권을 행사하는 ‘열려라 국정원, 내놔라 내(사찰)파일’ 캠페인을 제안하는 제도적 배경이다.

지난 9년 이명박근혜 정권시절 정치활동이나 사회운동, 시민행동이나 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실이 있는 분들이 1차 대상이다. 이런저런 반정부 집회시위나 서명운동에 적극 참여한 경력이 있는 분들도 1차 대상이다. 이런 분들은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 시절 국정원의 불법사찰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열어라 국정원, 내놔라 내파일’ 운동은 그런 분들을 위해, 그런 분들을 중심으로 진행할 국정원 적폐청산 캠페인이다. 적극적인 시민의 알 권리 행사 캠페인이자 피해구제 캠페인이다. 시민 개개인의 작은 권리행사에 터를 잡아 국정원의 무차별 불법사찰을 확인하기 위한 불법사찰청산과 근절캠페인이다. 국정원의 불법사찰 중단을 넘어 산처럼 쌓여 있는 불법사찰파일의 영구삭제와 폐기를 촉구하는 과거청산캠페인이다.

국정원법상 국정원 국내파트는 국가안보에 필요한 정보(전문용어로 ‘국내보안정보’)만 수집하도록 제한된다. 내국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대북, 방첩, 대테러, 내란, 국제조직범죄’에 대한 정보만 수집할 수 있다. 국정원의 법적 존재이유는 위에서 열거한 다섯 가지 범주의 국내보안정보를 빠짐없이 효율적, 전문적으로 수집·분석하는 데 있다.

국정원 적폐청산의 시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은 국가안보정보보다 정권안보정보, 즉 정권비판 위협세력에 대한 광의의 정치정보를 더 광범위하게 수집하며 정치개입을 일삼아왔다. 국정원 적폐청산은 국정원의 불법사찰과 정치개입 관행을 정조준한다. 무엇보다 먼저 불법사찰과 정치개입의 진상을 최대한 파악해야 한다. 그러려면 피해당사자들이 정보공개법과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국정원에 내(사찰)파일을 내놓으라고 청구하는 시민운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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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전 국정원장(사진 출처: 노컷뉴스)

정보기관에 대한 내놔라 내파일 정보공개청구운동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지만 세계적으로 처음은 아니다. 미국이 이 운동의 선구자다. 국내정보기관인 FBI에 대한 사찰기록 공개청구운동이 이미 1980년대부터 활발하게 진행돼왔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에 정보자유법과 프라이버시법이 제정되면서 자연스레 알 권리와 정보인권을 행사해서 FBI의 불법사찰에 대항하자는 정보공개청구운동이 불붙었다.

FBI의 항시적 사찰대상에 올랐던 진보성향 인사들과 단체들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많은 사찰기록을 부분적으로 공개 받을 수 있었다. 수천, 수만 페이지의 FBI 기록들이 군데군데 새까맣게 지워진 채 공개되고 나서야 수많은 의문이 풀렸다. 어째서 전화통화 때마다 이상한 소리가 났는지, 어째서 미행당하는 느낌이 들었는지, 어째서 연설이나 강연 약속이 자주 취소되었는지, 과거의 미스터리들이 한꺼번에 풀렸다.

독일에서도 정보기관에 대한 정보공개청구권이 대규모로 활용된 때가 있었다.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체제이행을 서두를 당시의 독일 정부는 악명 높은 비밀정보기관 ‘슈타지’가 수집·작성·보관해온 본인 관련 사찰보고서를 누구든지 과거청산 차원에서 알 권리가 있다고 선언하고 신청을 받아 열람을 허용했다. 과연 동독은 비판세력의 입을 틀어막고 사생활까지 감시한 슈타지의 국가였다.

슈타지는 목사, 변호사, 교사 등 고신뢰 직업군까지 끄나풀로 고용해서 한 국가를 믿을 사람 하나 없는 밀고자들의 사회로 만들었다. 독일통일 전후의 슈타지 활동을 그린 영화 <타인의 방>이 잘 보여주듯이 많은 동독인들이 본인에 대한 사찰기록을 열람하고 경악과 슬픔에 잠겼다.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도무지 알 수 없는 시시콜콜한 사생활정보까지 상세하게 기록돼있는가 하면 음해성 엉터리 허위정보가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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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동독의 악명 높은 비밀정보기관 ‘슈타지’의 사생활 감시를 그린 영화 <타인의 방>.

번번이 용두사미로 끝난 국정원 개혁

지금까지 국정원 개혁은 언제나 용두사미로 진행됐다. 대형폭로로 시작해서 몇 사람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식으로 끝났다. 늘 폭로된 사안에만 초점이 머물렀고 좀처럼 대증요법을 넘지 못 했다. 국정원의 권한과 조직, 운영방식을 대폭 정비하는 구조개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지난 20년 넘게 간간이, 국가안보를 위한 비밀정보기관이 북풍, 세풍을 만들어내고, 간첩을 조작하고 도청에 매달리며, 블랙리스트와 정치댓글을 작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때마다 국정원 개혁요구가 높았으나 간신히 국정원장이나 그 하수인을 벌주는 선에서 무마됐다. 국정원법 개정은 고작 정치개입 금지 유형을 구체화하고 형량을 강화하는 선에서 그쳤을 뿐, 꼭 필요한 구조개혁은 시도도 못했다.

이제야 국정원을 둘러싼 근본구도와 정치상황에 큰 변화가 오고 있다. ‘촛불혁명’과 박근혜 탄핵은 정권안보와 선거개입, 심리전 수행에 일로매진한 ‘이명박근혜’ 국정원에 대한 일대 ‘징치’이기도 했다. 국정원은 오직 국가안보를 위해 음지에서 무명의 헌신을 해야 한다. ‘국정원도 적폐다, 국정원을 해체하라’는 촛불시민들의 구호는 정권안보를 위해 불법을 마다하지 않는 국정원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양지로 나와 온갖 기관을 제집 드나들 듯 출입해온 국정원은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문재인 정권의 서훈 국정원장은 국내보안정보 외에 관행적으로 수집해온 전방위적 국내정보 수집 활동을 취임 직후 전면 중단시켰다. 아예 일반국내 정보를 담당해온 국내파트 두 국을 폐지했다는 소문도 있다. 그리고는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를 만들어서 연말까지 과거청산 작업에 나선다. 개혁발전위는 한편으로는 지난 9년 동안 발생한 중요한 불법사찰과 정치개입사건을 조사해서 진실을 규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재발방지에 필요한 국정원법개정안을 만들어서 종전과 차원이 다른 구조개혁을 단행할 방침이다.

국정원은 이제 직권남용과 정치개입이라는 오랜 불법 관행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게,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벗어나야 한다. 이러려면 국내파트 전체가 잠시 쑥대밭이 되더라도 지난 9년의 일탈과 타락을 다시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특단의 진상규명과 책임추궁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적당히 넘어가면 안 된다. 다소 가혹하더라도 총체적 타락상을 밝히고 엄격하게 책임을 추궁해야만 조직 전체에 경각심을 불어넣고 망각의 유혹을 방지할 수 있다. 대선댓글사건은 물론 국내파트의 갖가지 권력 남용 관행 유형을 철저히 조사해서 합당한 처벌을 가해야 하는 이유다.

‘정권안보 본능’ 반드시 끊어야 

창설 이래로 반세기 넘게 지속되며 조직의 DNA처럼 아로새겨진 정권안보 본능과 정치개입 기질, 권력남용 체질을 이번에는 반드시 바꿔야 한다. 그것이 ‘촛불혁명’과 ‘촛불시민’의 명령이다. 문재인 정권과 국정원개혁위는 이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국정원 직원은 음지에서 민주공화국을 위해 헌신하는 본연의 역할에 자부심을 느낄 만큼 민주공화국에 대한 신념과 충성심이 투철하고 해외정보기관에 견줘서 정보수집·분석 역량이 출중할 만큼 유능하고 식견이 높아야 한다. 이제부터 업무수행의 적법성을 넘어 고도의 전문역량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국내파트는 국내보안 정보만 한정적으로 수집·분석해야 한다. 해외파트의 전문역량 제고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외교·안보·통일 정책에 필요한 최고급 정보는 물론 해외경제·무역·금융과 자원·에너지·기후변화에 관한 최고급 정보까지 제공하는 가장 스마트한 국가기관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명박근혜’ 정권의 국정원이 해온 온갖 유형의 불법행태를 생각하면 국내파트를 완전히 해체·재편하지 않고 몇 사람만 혼내주는 방식으로 바람직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부분의 국내파트 직원은 광의의 국내보안정보를 수집한 게 아니라 광의의 국내정치정보를 수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경험은 민주법치국가에서는 약에 쓸래도 쓸 데가 없다.

국정원의 국내정보 수집을 국내보안 정보로 정상화할 경우 국내파트의 대폭 인력감축이 불가피하다. 통상적인 국내정보수집분석을 멈춘 지금도 유휴인력이 워낙 많을 것이다. 국정원개혁위는 이들이 어떤 이유와 명분을 붙여서 재진입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국정원수술 운동은 정보인권운동

‘내놔라 내 파일’운동은 국정원이 수집·작성·보유한 내 파일 내용을 정보공개법과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내게 알려달라는 정보인권운동이다. 내 관련 정보가 국가안보를 위한 국내보안정보에 해당하는지, 그렇지 않고 정치사찰 정보나 사생활 정보인지 알아보는 국정원의 불법사찰확인운동이다. 만약 국가안보와 아무 관련이 없으면 국정원의 불법사찰행위에 대해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인권피해자의 국가배상청구운동이다. 그 배상금의 전부 또는 일부로 정보기관 감시 전문 시민단체를 만들려는 시민기금마련운동이기도 하다.

대규모 공개신청 후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미리 속단할 수 없다. 국정원이 정보공개법 제4조의 규정을 일방적으로 해석해서 국정원은 아예 공개신청대상 기관이 아니라고 발뺌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보공개법 제4조는 국정원과 군 기무사, 경찰정보파트가 수집한 정보를 법 적용 대상에서 아예 제외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틀림없다.

그러나 제4조의 문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법 적용대상에서 원천 배제되는 정보는 ‘국가안보 목적으로 수집, 작성된 정보’뿐이다. 국정원이 정권안보 목적, 기타 정치 목적으로 수집·작성한 불법사찰정보는 해당되지 않는다. 특정한 개인정보를 수집한 목적이 국가안보 목적인지, 비판세력제압을 위한 국내정치 목적인지는 법원의 판단을 따르면 된다.

다행히 현재 국정원개혁위가 가동 중이므로 법의 정신에 부합하는 해석을 제공하며 국정원에 정보제공을 채근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이렇게 되면 어떤 이는 군데군데가 지워진 엄청난 분량의 사찰기록을 받을 것이고 어떤 이는 해당사항 없음이나 전면 비공개 결정을 통보받을 수도 있다. 공개된 기록은 국가안보와 무관한 내용일 것이다. 안 그러면 비공개대상으로 지정돼 삭제됐을 터다. 신청인이 받아본 국가안보와 무관한 정보는 국정원이 보유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아니, 처음부터 국정원이 수집하거나 작성해서는 안 되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지금에라도 국정원이 일괄 삭제, 폐기해야 한다. 국가안보와 무관하게 정치적 이유로 불법사찰 당한 시민은 법원에 그로 인해 발생한 물질적, 정신적 피해에 대해 국가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낼 수 있다.

국정원이 나에 대해 어떤 파일을 갖고 있는지 궁금한 주권자적 시민과 활동가, 명망가는 국정원에 대해 먼저 정보공개 및 열람신청을 내도록 하자. ‘열려라 국정원, 내놔라 내파일’ 정보공개청구운동에 동참함으로써 국정원의 불법사찰과 정치개입 적폐청산을 향한 작지만 확실한 발걸음을 내딛자. 시대의 대의를 요구하며 작은 행동으로 함께 뭉친 국민을 이길 장사는 세상천지에 없다. 박근혜, 이재용, 원세훈을 촛불 하나 들고 단죄한 우리 국민 아닌가. 이번에는 내놔라 내파일 정보공개신청서를 한 장씩 써서 흔들며 불법사찰과 인권유린, 정치개입의 적폐청산에 나서자.

 

 

토, 2017/10/1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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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스티븐 J. 맥나미 (Stephen J. McNamee) 와 로버트 K. 밀러 주니어 (Robert K. Miller Jr.)의 『능력주의 신화 Tne Meritocracy Myth(3rd.)』(2013)를 완역한 것이다. 두 사람은 모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윌밍턴 캠퍼스의 사회학과 교수와 명예교수로서, 미국사회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탐구해 왔다. 이 저서 이전에도 두 사람은 『미국의 상속과 부Inheritance and Wealth in America』를 공동 편집하기도 했다.8993178615_1

공교육과 학교에 대한 논의와 비판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이미 이반 일리히(Ivan Illich)의 『학교 없는 사회(한국어판), Deschooling Society』(1970), 마이클 애플(Michael Apple)의 『교육과 이데올로기(한국어판) Ideology and Curriculum』(1979),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재생산 (La) Reproduction』 (1970) 등에서는 학교와 자본주의 체제 간의 구조적 근친성, 학교의 계급 재생산 기능, 학교내 지배적 문화자본 등이 논의되어 왔다.

최근에는 『대학의 몰락』(서보명, 2011), 『최후의 교수들』(Frank Donoghue, 2008) 등에서 학력 인플레이션과 대학 졸업장의 유명무실화, 대학교육의 직업교육화에 관한 일련의 논의들이 이어져 왔다.

이 책은 이러한 공교육과 학교 및 고등교육 비판의 연장선상에 있는 논의로서, 학교의 근본적 신화이자 가정인 능력주의를 질문한다. 근대사회의 신자유의주의적 개편 및 이에 따른 일자리 감소로 인해 졸업장은 더 이상 사회경제적 보상으로 이어질 수 없게 되었으며, 따라서 이제는 바야흐로 능력주의 자체를 회의하는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시대의 변화와 그에 따른 공교육의 몰락을 감지케 하는 바, 도대체 그간 학교 그리고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능력주의(meritocracy)는 허구다!

능력주의는 마이클 영(Michael Young)의 풍자 소설 『능력주의의 출현 The Rise of Meritocracy』(1958)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이다. 이 소설에서 미래 사회는 지능지수와 시험 결과 등 개인의 능력을 토대로 이른 바 인재를 선발하는 바, 그 결과는 엘리티즘(elitism)이 지배하는 또 다른 디스토피아(distopia)이다. 즉 능력이 많다고 간주되는 자들이 능력이 없다고 낙인 찍히니 자들을 탄압하고 착취하는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사회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낯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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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라는 용어는 마이클 영(Michael Young)의 풍자 소설 『능력주의의 출현 The Rise of Meritocracy』(1958)에서 처음 등장했다.

전통적으로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과 사회적 보상 사이에 비례적 관계가 있다고 가정한다. 즉 능력이 많을수록 혹은 높을수록 그에 걸맞는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보수를 확보할 수 있으며 또 그래 마땅하다는 것이다. 즉 능력주의에서는 개인의 능력이 성공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가정하며, 학교는 이러한 소질이나 재능의 차이가 객관적으로 드러나고 발현되는 기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러한 능력주의의 가정과 이에 기초한 학교 및 사회의 기능과 작동 방식에 의문을 던진다.

개인의 성공과 성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단순히 능력적 요인만이 아니라 비능력적 요인도 있으며, 오히려 전자보다 후자가 더 결정적이고 장기적이며 지속적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다른 출발선을 제공하거니와, 출발선에서 벌어진 차이로 인해 가난한 집 아이들은 결코 부잣집 아이들을 따라잡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아이나 여성, 소수자들은 항상적으로 사회적 차별에 노출되며,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끊임없이 성취동기를 억압하고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형성하는 사회적 차별 앞에서 능력만큼의 사회적 성취를 달성하기는 어렵다.

나아가 직업을 얻거나 괜찮은 경력을 쌓을 보일 수 있는 것은 거시적인 경제 상황이나 사회구조적 변화, 출생률, 출생시기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호황기에 태어나지 못했거나 운이 나쁘면 타고난 능력치의 발휘는 지난하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전사회에 만연된 능력주의적 환상은 여전히 사회적 성취에서 개인의 능력적 요인을 과대평가한다. 동시에 대표적인 비능력적 요인들, 즉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사회자본과 문화자본, 사회적 차별, 태어난 시기와 개인적 운, 경제상황과 거주지역 등은 본래의 능력적 요인들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한다. 마치 능력적 요인만이 개인의 성공의 결정적 변수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오히려 학교는 이러한 오해를 조장하는 주된 기관이거니와, 학교에서는 중산층 학생들의 선행학습이나 사회문화적 자본, 이들에 대한 부모의 지원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이 모두를 이들의 능력으로 합법화, 정당화한다.

또한 학교는 계급이나 젠더, 종족, 장애, 거시경제 변수와 거주지역 등 소수자들이 처한 사회구조적 조건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이들을 수업태도가 적극적이지 못하고 수업준비를 해 오지 않으며 장래에 대한 비젼이나 꿈이 없는 열등생으로 낙인찍는다. 이처럼 학교는 능력주의의 환상을 적극적으로 유포하는 바, 그 결과 실제로 작용하고 있는 비능력적 요인들을 은폐하고 간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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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근대 능력주의를 상징하고, 그것을 제도화한 것이다. 그렇지만 능력주의라는 근대의 믿음은 가정환경, 계급, 사회적 환경 등의 영향력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는 능력주의라는 근대의 신념이 현실의 불평등을 감추는 이데올로기적 효과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사진 출처: http://allwork.me/86)

사회학 전공자들답게 저자들의 결론은 좀 더 근본적이고 거시적인 지점을 향한다. 즉 지금이라도 능력주의의 환상을 꿰뚫어보는 안목을 가지고, 기회와 분배가 좀 더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지 않으면 진정한 평등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능력주의의 환상에 사로잡혀, 불평등에 면죄부를 주고 또 그것을 영속화할 것인가, 능력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자면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이는 우리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능력주의, 그 필패의 운명

사실 이 이야기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일찍이 알뛰세를 비롯하여, 부르디외, 애플 등 많은 논자들이 학교가 어떻게 계급을 재생산하고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는가를 논해 왔던 터이다. 즉 학교는 자본주의 체제와 구조적으로 유사한 바, 작동하며 그 결과 계급 재생산 기능을 충실히 대리하고 정당화한다.

사실 학교는 모든 인민에게 평등한 교육이라는 근대 부르주아지들의 이상에서 비롯되었다. 일찍이 오귀스트 꽁트(Auguste Comte)가 프랑스에서 최초로 공교육을 실험하고자 했을 때, 인민과 그의 권리는 평등하며 따라서 인민에게 교육에 다가갈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것이 이른 바 ‘기회의 평등’으로서, 취학 연령에 다다른 모든 시민은 공교육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것. 이로써 빈부와 성별, 장애, 국적에 구애받지 않는 의무교육의 이상이 인류 최초로 공교육을 통해 실현될 수 있었다.

이처럼 공화주의자들이 공교육을 통해서 의도한 것은 학교를 통한 사회적 평등의 실현이었다. 즉 신분이 아닌 능력에 의해 개인의 사회적 참여와 경제적 보상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했으며, 학교는 능력주의적 가정을 적극 수용하였으며, 개인의 능력을 판가름하고 측정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지표가 될 것이었다.

여기에는 이전 시기 신분으로 사회적 지위와 재화가 분배되는 것에 반대하여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갈망한 상 퀼로트(sans-culotte, 상 퀼로트는 귀족들이 입었는 퀼로트를 입지 않은, 프랑스의 급진 공화주의자들을 말한다)들의 염원이 있었거니와, 이들에게 학교는 능력에 따른 정의로운 분배를 실현할 수 있는 위대한 사회적 평등의 기제였다. 아울러 그렇게 될 때 도래할 사회는 능력에 따른 역할과 기능이 질서 있고 조화롭게 자리잡힌 사회로서, 근대 국가 곧 리바이어던(The Leviathan)을 실현할 것이었다.

그들에게 학교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었으며, 그 보이지 않는 손이 개인을 그의 자유의지대로 자유롭게 한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오오, 꿈은 얼마나 야무졌던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근대 공교육은 능력주의를 차용함으로써 그 태동에서 이미 근본적인 모순을 배태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영의 소설이 그리고 있는 대로, 능력주의를 채택하게 되면 이는 소질과 재능의 위계라는 또 다른 불평등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능력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비롯되는 바, 능력의 차이는 단순한 차이에 그치지 않고 필연적으로 위계가 되고 서열이 될 것이었다.

아무리, 무슨 짓을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사람의 능력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타고난 능력이라는 개념은 있을 수가 없으며, 여기에는 불가피하게 주되게는 부모의 재산, 직업 등 사회경제적 지위(Social Economic Status, S.E.S.)가 개입할 것이다. 그리하여 가령 이른 바 금수저로 태어난 학생들이 학교에서 교사들의 관심을 받고 학업적 성취를 이루기에 유리할 것이며, 소질이나 재능이라는 것은 결국 이들에게 한정된 개념이 되고 말 것이다.

반대로 흙수저로 태어난 학생들은 소질이나 재능을 발견할 기회도 갖기 어려울 것이며, 그리하여 그것은 애초에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것이 되어 버릴 것이다. 즉 학교교육만으로 모든 학생을 ‘결과적 평등’에 이르게 하기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바, 즉 잘 사는 집 아이는 잘 살기 때문에 학교에 와서 공부 잘 하는 우등생과 모범생이 되고 못 사는 집 아이는 못 살기 때문에 부진아와 부적응아가 될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학교는 기껏해야 입학이라는 ‘기회의 평등’을 제공할 수 있을 뿐, ‘결과적 평등’은 애시당초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

이에 대해 낙관적인 학교 개혁가들이 소수자들이나 그들이 속한 ‘게토 학교’에 헤드스타트 프로그램(Head-Start Proogram, 1960년대 중반 미국 정부가 사회경제적 소수자 집단의 유아를 대상으로 교육, 보건, 복지 등에서 시도했던 일련의 ‘보상 교육(compensatory education)’)이나 양질의 교육환경과 교수자 등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처한 불리한 조건들을 상쇄하거나 만회하려고 시도해 보았지만(이것이 이른 바 ‘보상적 평등’이나 ‘과정적 평등’의 개념이다), 이 또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었음을 지난 역사들이 예증한다.

결국 학교는 학생이 속한 사회경제적 유리함을 성적이나 소질, 재능이라는 이름으로 치환하여 합법성을 부여하였을 뿐으로, 사회경제적 보상의 차등화된 분배의 기준을 귀족이라는 신분적 변수에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해서 백 여 년만에 위대한 사회적 평등의 기제가 되고자 했던 학교의 이상은 근본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마이클 영의 소설에서 그려진 미래 사회가 능력에 기초한 또 다른 위계적, 서열적 사회로 귀결된 것은 다만 우연이 아니거니와, 능력주의에 기초한 근대 사회란 필연적으로 신분에 기초한 중세사회로 회귀할 수 밖에 없다.

비근하게 영화 가타카(Gattaca)는 바로 이러한 우울한 미래를 그리고 있는 바, 능력이라는 변수가 유전인자로 바뀐 미래 사회에서 새로운 신분사회, 계급 사회가 도래한다. 근대의 장밋빛 출발선에서 오래된 미래는 앞서 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셈.

어쩌면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인간이 상상한 모든 아름다운 이상은 필연적으로 타락한다는 비관론을 수긍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순정했던 이상이 제도로 실체화하면서 거기에는 그것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유하려는 인간의 이기심이 개입한다. 그 결과 애초의 드물고 귀했던 이상은 부패하고 타락하여 원래의 고왔던 얼굴빛을 잃는다.

이미 우리는 사회주의의 실험에서 이를 목도하였으며, 능력주의의 기치를 걸고 야심차게 내달렸던 공교육의 실험 역시 그 수명이 다하였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을 포함한 오늘날 근대 공교육이 처한 보편적인 우울한 자화상이라는 것을.

사회적 연대의 정신, 아무도 굶어죽지 않을 권리를 위해

그러나 경솔하게 비관론에 빠질 필요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인류를, 사회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한 고민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필패한 능력주의 앞에서 우리는 이제 다시 무엇을 질문해야 할 것인가.

아마도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철 지난 능력주의를 붙들고 불가능한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삽질”할 것이 아니라, 능력주의를 회의하고 능력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평등과 분배를 고민하는 일일 것이다. 능력주의는 일자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사회구성원 상당수가 중산층으로 상향적 계층 이동이 가능한 산업자본주의 초기에나 적합한 아이디어였다. 당시에는 이른 바 개천 용이 가능했던 사회로서, 학교는, 결혼과 로또를 제외하는, 그러한 계층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매개가 되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에는 이러한 능력주의에 기초한 분배와 계층 상승 모델이 더 이상 유효할 수가 없다.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괜찮은 사회경제적 보상이 극도로 축소되어 가는 상황에서, 이전처럼 대졸자의 상당수가 무난히 중산층으로 편입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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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 사회에서 능력이 없으면 굶어죽어야 하나. 그렇지는 않다. 능력을 절대화하는 환상에서 깨어나 사회적 연대의 정신으로 공동체를 꾸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가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 http://www.earthtimes.org/politics/international-human-solidarity-day-2…)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능력주의에 기초한 계층상승의 가능성이 아니라, 과연 개천에서 용이 나야 하는가, 혹은 능력이 없으면 분배에서 제외되어야 하는가, 능력이 없어도 굶어죽지 않을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일 것이다.

아울러 이것은 우리가 여전히 근대 초 상 퀼로트들의 고민과 궁구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한데, 그도 그럴 것이 평등과 인권의 의제는 인간 사회가 존속하는 한 폐기되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달라진 시대상에 따라 다만 그 고민의 방식과 전략의 수정이 있을 뿐, 더 나은 사회와 공동체를 위한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

공화주의자들은 공교육을 통해 사회적 평등을 도모했으나 오늘날 우리는 공교육을 우회하지 않고 곧장 사회적 평등으로 가는 직선의 길을 상상해야 한다. 소비자본주의의 후기 근대에서도 근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수 밖에 없으며 또 진행형이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인권과 평등, 그리고 사회적 연대의 이름으로.

따라서 향후 한국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일은 계층상승을 하지 않아도 개인의 생존과 존엄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이는 한국사회가 단 한 번도 제도적으로 실현한 적이 없었던 공동체를 이 땅에서 만들어나가는 일이 될 것이며, 계급과 젠더, 장애와 다문화, 연령과 지역을 불문하고 모두에게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살게 하는 것과 같은 말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급박하고 실천적인 아젠다들, 곧 기본소득과 의료보험, 의무교육 강화 및 공공보육 확대, 최저 임금과 최저 생계비, 남녀고용 평등, 차별 금지법 등을 끊임 없이 문제제기하고 논의해 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지금처럼 학력과 학벌을 통한 지위경쟁은 현저히 완화될 수 있을 것이며, 죽은 능력주의를 붙들고 불가능한 평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멈출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사회적 개방성이라는 측면에서 계층 상승의 합법적 통로를 열어두는 것은 여전히 중요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 한정해서라면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는 여전히 중요한 화두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역자 김현정은 삼성경제연구소(SERI)에서 경제·경영 전문 번역가로 일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이 강연에 기초하여 대중 일반을 대상으로 씌어진 것이기 때문에, 원래의 문장 역시 그다지 복잡하지 않고 덕분에 번역 역시 술술 읽힌다. 사회과학에 관한 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이라도 책장을 넘기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목, 2016/07/0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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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시민의회’를 주제로 열렸던 백년포럼 시즌1의 영상 3편을 공유합니다.  

올해부터 시즌제로 일신한 백년포럼은 신선한 구성과 현장 투표 등을 활용한 관객과의 소통으로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또한 시민참여 공론장으로서의 ‘시민의회’는 국회에서 관련법이 제출되는 등 파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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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에는 ’19대 대선과 한국사회 개혁’을 주제로 백년포럼 시즌2가 열릴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시즌1, 첫번째, ‘개헌, 시민의회법, 시민의회의 제도화’

☞ 시즌1, 두번째, ‘왜 시민의회인가, 시민의회의 논리와 사례’

☞ 시즌1, 세번째, ‘왜 추첨인가, 시민의회와 추첨민주주의’

 

목, 2017/05/2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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