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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의 선동가, 나이젤 파라지 영국독립당(UKIP) 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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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의 선동가, 나이젤 파라지 영국독립당(UKIP) 당수

익명 (미확인) | 화, 2016/07/05- 14:46

“17년 전에 제가 여기에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캠페인을 이끌고 싶다고 했을 때 여러분 모두는 저를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웃음이 안 나오시죠?”

유럽의회 의원이기도 한 영국독립당(UKIP) 당수 나이젤 파라지(Nigel Farage)는 의회에서 조롱 섞인 연설을 내뱉었다.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EU 탈퇴로 결론이 난 후였다.

‘인종차별주의자에 가까운 괴짜들’(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정도로 치부됐던 영국독립당과 파라지는 브렉시트 이후 가장 많이 언급되는 정치세력 중 하나다. 미국의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파라지를 유럽의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5위로 선정하면서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그의 가장 큰 성공, 혹은 실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성공’의 문턱에 다다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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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젤은 브렉시트 국민투표에 1000파운드를 건다고 했고, 그의 도박은 성공을 거뒀다. (사진 출처: http://www.express.co.uk/news/politics/649750/Nigel-Farage-bet-1-000-Br…)

대학 포기하고 금융분야에서 사회 첫 발

파라지는 지난 20여 년 전부터 ‘EU 탈퇴’를 주장해 왔다. 그리스와 독일처럼 구조적으로 ‘다른’ 경제체제를 지닌 나라들에 획일적인 금리가 적용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본래 보수당에서 활동했던 그는 1992년 존 메이저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EU 출범의 기틀을 마련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서명하자 당에서 뛰쳐나와 영국독립당 창당 멤버로 합류했다. 예전에는 EU 확대를 부르짖다가 일종의 ‘정치적 승부수’로 브렉시트를 택한 몇몇 정치인들과는 결이 다르다. 적어도 진짜 그게 옳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이젠 더 이상 ‘웃을 수 없게’ 된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그는 정말로 활짝 웃으며 ‘환호작약’했다.

물론 일관성이 언제나 미덕은 아니다. 파라지의 언행에선 일관성을 넘어선 아집과 독선이 내비친다. 자신의 연설에 대해 동료 의원들의 야유가 이어지자 그는 맞받아친다. “여기에 계신 누구도 평생 동안 일을 제대로 끝내거나 비즈니스를 해보거나 무역을 해보거나 일자리를 만들어본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을 그냥 들으세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내가 해 봤는데’ 스타일이다.

파라지는 정치에 입문하기 전 런던금속거래소에서 상품중개인으로 일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런던의 금융가인 ‘더 시티’로 바로 들어갔다. 그는 이런 진로를 선택하는데 크리켓 선수 출신의 교사 존 드웨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선생님은 내가 꽤 대담하고, 연단에 서는데 능숙하며, 세상의 이목을 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끌벅적하며, 뭘 팔아먹는데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있었다.”

파라지가 ‘정치’를 비전을 갖고 사람들을 조직하고 설득해서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잘 먹힐 만한 ‘물건들’을 제시해 인기를 끌고 당선되는 잔기술로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는 드웨스 선생님이 이미 잘 파악하고 있었듯, 잘 팔릴만한 물건들은 잘 안다.

런던과 일부 대도시에는 돈과 기회가 넘치지만 그 외 지역은 날로 쇠퇴하고 있다. 실업은 만연해 있고, 공공서비스는 줄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무척 복잡한 문제지만 쉬운 표적이 하나 있다. 모든 것이 최근 어디서든 손쉽게 볼 수 있게 된 ‘이민자’ 때문이고, 결국 EU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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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최신호 표지에서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영국의 상황을 ‘걸레가 된 유니온잭’으로 묘사했다. (사진출처: 이코노미스트)

파라지는 이런 정서에 편승해 “지하철을 탔더니 영어를 들을 수 없었다”며 사람들을 자극한다. 대놓고 이민자들과 살기 싫다고도 말한다. 그에게 무슬림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제5열’(간첩)일뿐이다. 브렉시트 홍보를 위해 그가 들고 나온 것도 난민들이 떼 지어 유럽으로 들어오는 포스터였다. 난민이라고 주장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경제적 이민이며 일부는 이슬람국가(IS)의 지원군이 될 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영국민족 강조하지만 다문화가정 출신

‘영국 사람’임을 강조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파라지’라는 성은 먼 위그노 교도(16~17세기 프랑스 칼뱅파 신교도) 조상에게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19세기에 런던으로 이주한 독일계 출신이다. 이민자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 온 그이지만, 뿌리에는 프랑스와 독일계의 피가 스며있는 셈이다.

개인적으로 파라지는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독일 국적 여성과 재혼해 두 아이를 낳았다. 그가 라디오 인터뷰 중 옆집에 루마니아 사람들이 이사 와서 신경 쓰인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있다. 그때 사회자는 파라지의 가족에 빗대 “독일 아내와 아이들이 옆집에 있는 것과 차이는 뭔가”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는 “당신은 그 차이를 알지 않느냐”고 눙쳤다.

이런 태도에서 짐작가지만, 파라지는 종종 인종주의자라고 비판받는다. 독립당 소속 유일한 여성 유럽의회 의원이 파라지를 “반여성적인 스탈린주의자 독재자”라고 비판하며 보수당으로 옮기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1차 대전 참전용사여서인지는 모르겠으나, 1차 대전의 격전지를 돌아보는데 큰 열정을 쏟는 그의 모습에서 ‘그레이트’ 브리튼을 열망하는 국가주의적 냄새가 나기도 한다. 물론 술을 엄청 마셔대기 위한 핑계거리라는 얘기도 있다.

한때 EU회의론자로서 그와 가까운 동지였다가 결별한 뒤 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리처드 노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만약 인종주의자라면, 그는 유능한 배우다. 그걸 잘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그가 인종주의자라고 보지 않는다. 그저 구시대적인 대외강경론을 펼치는 애국주의자라고 본다.”

그러나 브렉시트 때문에 영국은 그가 바란 대로 ‘그레이트 브리튼’이 되기보다 ‘브리튼 소국’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벌써 스코틀랜드가 다시 독립을 꾀하고 있고 나라는 계층별, 지역별, 연령별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유럽의회 의원으로 정계 입문….영국 선거에서는 7전 전패

파라지는 전국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잇따른 망언과 구설로 당 내부에서조차 비판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인기는 꺾이지 않고 있다. BBC 기자는 ‘(비판이) 들러붙지 않는 나이젤’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유명인사’에 가깝게 자리매김한 것에는 그의 독특한 인생역정도 한몫 했다.

파라지는 1964년 영국 켄트주 판버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도 ‘더 시티’에서 일하는 주식중개인이었는데, 5살 때 이혼한 알콜중독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20대 초반이던 1985년 그는 교통사고로 죽을 뻔했다. 머리와 왼쪽 다리를 다쳤는데 거의 절단해야 할 만큼 위급한 상황이었다. 회복에는 1년 가까이 걸렸다. 그때 자신을 간호해주던 간호사가 첫 번째 부인이 됐다.

이듬해에는 고환암에 걸려 왼쪽 고환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2010년 총선 때는 지지 호소 현수막을 단 경비행기를 타고 비행하다 추락하기도 했다. 사고 직후에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리 회복해 지팡이를 짚은 채로 동료의 장례식장에 나타났다는 후문이 있다.

파라지는 1999년 남동잉글랜드 지역구에서 유럽의회 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정치인으로서 본격적 첫발을 내딛는다. 그렇게도 혐오하던 EU에 의원으로 입성한 이유를 묻자 그는 “밖에 있기보다 안에 들어가서 그곳을 바꾸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유럽연합에 반대하는 것이지, 유럽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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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젤 파라지(왼쪽 두번째)가 2014년 5월 26일, 영국의 유럽의회 선거에서 영국독립당(UKIP)이 108년 만에 보수당과 노동당의 양당체제를 무너뜨리고 1위로 도약하자 당원들과 환호하고 있다.

그는 2014년까지 연거푸 4선을 이뤄냈다. 특히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영국 양대 정당인 보수당과 노동당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양대 정당 체제가 무너진 것은 108년 만이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2013년 그를 100대 영향력 있는 우익 인사 중 캐머런 총리에 이어 2위로 선정했고, 2014년 <더 타임스>는 그를 올해의 영국인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는 강경파 유럽통합회의론자들이 모여 있는 유럽의회 내 ‘자유와 직접민주주의’ 그룹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이 그룹에는 ‘독일을 위한 대안’ 같은 극우정당도 함께 속해 있다. 그는 의회 내에서 논쟁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EU를 강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주목받았다. 2004년 그는 프랑스 출신의 자크 바로 교통 담당 EU 집행위원의 비리 은폐 시비를 폭로했고, 이듬해에는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의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그의 현란한 ‘개인플레이’에 비해 영국독립당 자체는 아직 기대에 못 비치는 성과를 내고 있다.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강한 면모를 보였지만, 아직 영국 의회 내에서는 단 한 석밖에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파라지 본인도 총선에 모두 7번이나 출마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파라지는 현재 최다 득표자 당선 방식인 영국의 소선거제도가 영국독립당에게는 ‘악몽’이라고 말한다. 2011년 선거제도를 ‘선호투표제’로 전환할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이를 지지하기도 했다.

열심히 마시고, 열심히 담배를 피우는 사람….그러나 ‘전략적 머리’ 없어

파라지를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그가 재미있고, 달변에다, 사리판단이 빠르고 똑똑하다고 말한다. 파라지는 성공회교도이자 크리켓의 광팬이며, 켄트 해안에서 혼자 평온히 낚시하는 걸 즐긴다.

상품중개인 시절 파라지의 고객이었던 친구 스티븐 스펜서는 이렇게 말했다. “특이하고, 행복하고, 쾌활하고, 솔직하고, 유머러스하다는 첫인상을 받았다. 그를 만나러 가면 늘 주변에는 죽이 잘 맞는 중개인들이 뭉쳐 있었는데, 피워대는 담배연기가 4피트나 치솟을 정도였다.”

그러나 리처드 노스는 이렇게 혹평하기도 한다. “골초인데다 와인을 너무 많이 마신다. 라이프스타일은 형편없다. 그는 매우 친근하고, 과장되게 개방적인 사람처럼 다가오지만 그 이면은 매우 불안정하다. 그는 사람들과 디테일하게 오랜 기간 동안 관계를 맺지 못한다. 사실 그는 사람들을 이용하고 소비해버린다. 사람들은 그의 주변에 모여들고 그에게서 힘을 얻지만, 파라지의 내면을 보곤 환멸을 느끼게 된다. 나 같은 사람이 아마 수백은 될 거다.”

각종 ‘독설’과 ‘망언’에서 파라지의 그 불안한 면모가 읽힌다. 그는 2010년 헤르만 반롬푀이 EU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저급한 은행원 외모에 젖은 걸레 같은 카리스마를 가졌다”고 막말을 했다.

지난 3월에는 “국제사회의 현존 지도자 중 푸틴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미 대선에 대해서도 “트럼프의 인물됨이나 시각에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는 걸 막기 위해 나라면 그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해가지 못할 행동들도 보인다. 1999년 파라지는 BBC가 자신의 유럽의회 선거 캠페인을 넉 달 간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불법복제 해 판매했다가 공정거래 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프랑스 됭케르크에서 타고 있던 자동차 바퀴의 너트가 느슨하게 풀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언론에 밝히기도 했다. 자신에 대한 암살 음모가 아니었냐는 것이다.

그는 석탄발전소 폐쇄를 비판하면서 풍력발전에 반대한다. 영국이 못생기고 역겨운 풍차로 뒤덮일 거라는 것이다. 기후변화도 거짓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2008년 찰스 왕세자가 유럽의회에서 “기후변화에 대처하는데 EU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연설해서 기립박수를 받을 때 파라지는 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왕세자의 발언이 “최고로 순진하고 어리석다”고 했다가 왕실모독죄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파라지는 또 비만이 흡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고 해서 감자튀김(칩)과 도넛 가게를 없애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총기소유와 범죄는 상관이 없다”며 총기소유도 합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리처드 노스의 이런 걱정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열심히 살고, 열심히 마시고, 열심히 담배를 피우고 그게 파라지가 가진 매력이다. 그걸로 지지자들을 끌어당긴다. 그러나 당신이 진지하고 전략적 두뇌를 지닌, 당을 이끌고 발전시키고 확장해나갈 수 있는 정치가를 찾는다면, 그는 그 같은 인물은 아니다. 영국독립당의 비극은 아마도 이렇게 대단히 효과적인 얼굴을 지녔지만 그 인물이 전략적 두뇌가 없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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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젤 파라지는 지난 7월 4일, “할 일을 다했다”며 돌연 영국독립당 당수직을 사임했다. (사진 출처: http://www.itv.com/news/story/2016-07-04/live-updates-nigel-farage-resi…)

파라지는 4일(현지시각) 결국 영국독립당 당수직을 던지는 ‘극적인’ 결말을 스스로 선택했다. 이유는 “내 삶으로 돌아가길 바란다”는 것. 본래 직업적 정치인을 할 생각도 없었고, 자신의 정치적 목표인 EU 탈퇴가 달성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럽의회 의원직은 유지하고 브렉시트 협상 과정에서 ‘무언가’는 할 수 있겠지만 다시는 총선 출마도 하지 않고 당수직에 복귀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가디언>은 이렇게 표현했다. “심각하지 않은 사람, 하지만 심각한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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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할 수 없지만, 관리는 가능한 북핵문제

여러 나라, 특히 한국에서 많은 희망을 가지고 있던 2019. 2. 27. ~ 28. 하노이 정상회담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과 달리, 트럼프와 김정은은 준비된 오찬도 먹지 않은 채 각자 숙소로 돌아가 버렸다. 이것은 갑작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지난 몇 개월 동안 사실상 미국과 북한이 거의 의미 있는 협의를 하지 않은 것을 감안한다면, 하노이 실패는 사실상 처음부터 가능성이 높은 일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노이 회담이 끝난 지 약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실망과 걱정, 그리고 우려감과 긴장감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하노이 정상회담의 결렬은 앞으로 북핵 문제에서 아무 진전이 없을 것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타협은 여전히 가능하다. 문제는 이 타협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관계 국가들이 아름다운 꿈을 꾸는 대신에 쉽지 않은 현실을 잘 인식하고, 모든 참가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약 1년 만에 낙관주의 시대가 드디어 막을 내리고, 현실주의 시대가 다시 찾아왔다.

사진: KBS뉴스

지난 2018년 4월 말, 거의 모든 한국 언론은 ‘낙관주의 쓰나미’에 덮혀졌다. 특히 진보경향 언론이 더욱 그랬다. 기자들은 한반도에서 영원한 평화시대가 도래하고, 악명높은 분단체제가 드디어 무너지고, 이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한반도를 만끽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들은 멀지 않은 미래에, 주말에 묘향산으로 가서 현지의 아줌마가 파는 군옥수수를 먹으며 산에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했고, 다른 기자들은 개성과 평양을 통과하는 기차를 타고 파리로 갈 때가 멀지 않다고 주장했다.

당시에 필자는 이 주장을 보면서 웃음을 짓거나 어깨를 으쓱했다. 솔직히 말해서 당시의 자료들을 잘 정리하고,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수많은 한국 기자와 학자들의 소박함을 보여주는 증거 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 사람들이 믿고 싶은 착각을 연구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18년 봄에 피어났던 많은 희망은, 근거가 별로 없었다.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을 비롯한 남-북-미 삼각관계에서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낙관주의가 사라졌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노이에서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로 지금 한국 관광객들이 금강산 여행 준비를 위해 가방을 싸고 있다고 하더라도, 2018년 봄에 넘쳐났던 꿈은 현실화되지 못했을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도 불가능하고, 남북한 자유왕래도 불가능하며, 남북한의 협력 강화에도 매우 강력한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초래하는 것은 어떤 사람 혹은 정치세력의 나쁜 의도 때문이 아니다. 한반도 문제를 희망대로 될 수 없게 하는 이유는, 사실상 바꿀 수 없는 구조 그리고 여러 관계 세력의 이익의 장기적인 모순과 충돌이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측이 믿을만한 안전보장을 받는다면 핵을 포기할 의지가 있다고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핵을 포기한 북한이 너무 큰 경제 성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도 한다. 누군가는 북한측이 경제건설을 위해 핵 포기 의지가 있다고도 하는데, 모두 다 틀렸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북한 당국자’들이 아니라 실제 ‘북한 당국자들이 가진 생각’이다. 제일 먼저 북한은 핵을 포기할 의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있을 수조차 없다. 북한은 시간을 벌기 위해서 비핵화가 가능하다고 할 필요가 생길 수 있지만, 북한을 이끄는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의 생각처럼 그들은 미치광이들이 아니라, 그들은 매우 합리주의적이며 냉정한 사람들이다. 최근의 세계 경향을 매우 냉정하게 분석하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스라엘의 폭격 때문에 핵개발을 하지 못한 이라크는, 미국의 침공을 당했다. 결국 이라크 통치자였던 후세인은 처형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라크 엘리트계층 사람들이 죽었고 나라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시에도 고급외교관으로 지내던 존 볼턴의 말을 잘 듣고, 핵개발을 포기했던 카다피 대령은 나토의 간섭 때문에 혁명군을 힘으로 잘 진압하지 못했고,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1994년에 러시아를 비롯한 강대국의 국경보장 약속을 믿은 우크라이나는, 자국 영토 내의 소련시대 핵무기를 양도했다. 그들은 2014년에 부다페스트 각서 당사자인 러시아의 침공을 받고 자신들의 보석으로 여기던 크림반도를 영원히 상실했다. 이것을 잘 본 북한 엘리트 계층은, 비핵화를 할 생각이 어떻게 생길 수 있을까?

물론 어떤 사람들은 북한이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체제보장을 받는다면 그들이 기꺼이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동의하기 매우 어려운 주장이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야당이 여당이 될 때’마다 과거의 정책을 매우 쉽게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이러한 경향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이 매우 어렵게 이룬 이란 핵합의를 하루아침에 취소해 버렸다. 미국에서도 차기 민주당 대통령은 트럼프 시대 북한과 맺은 체제보장이든 기타 합의이든 이와 같이 파기하지 않으리라는 근거는 어디 있을까? 그 때문에 북한은 핵무기를 관리할 수도 어느정도 감축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생각은 반드시 몇 기의 핵무기를 잘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이것은 자신의 생존을 다른 아무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북한 엘리트 계층의 입장에서 제일 합리주의적인 태도이다. 그들은 자살가들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해외에서 지원을 많이 받을 수도 없으며, 투자를 받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거의 확실히 사실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70-80년대 남한이나 80-90년대 중국과 같은 고도경제성장을 자랑하는 개발독재를 만들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북한 엘리트 계층의 입장에서 이것은 유감스럽지만 결정적인 걱정이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의 통치자들은 당연히 자기 나라가 빨리 발전하고, 잘 사는 이웃나라들을 따라잡기를 바란다. 그들은 자기 나라가 못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에게 경제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닌 체제유지이다. 그들은 체제유지가 불가능하다면, 자신의 생존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위협을 초래할 것 같은 정책을 하지 않을 것이다. 死者는 富者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 때문에 이라크나 리비아와 같은 체제붕괴를 초래할 수 있는 조치는, 그들에게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정책이다. 그래서 북한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비핵화 없이 고도경제성장이 불가능한 것을 잘 알더라도 ‘자살’과 같은 비핵화를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한 대가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같은 이유로 많은 한국 사람들이 희망하는 남북한 자유왕래도 꿈 뿐이다. 지난 2018년에 북한은 오랜만에 1인당 GDP 통계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북한 경제학자들은 2018년 북한의 1인당 GDP를 1214달러로 발표했는데, 이것은 남한보다 25배 작다. 이 세상에 남북한만큼 생활수준, 소득격차가 심한 이웃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북한 엘리트 입장에서 이것은 매우 위험한 사실이다. 인민들이 남북한 격차를 잘 알게 된다면 당연히 만성적인 위기를 야기한 체제에 대해서 불만이 많아질 것이고, 서울 주도 흡수통일을 통해서 자신들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질 수도 있다. 이것은 당연히 환상이지만, 인민들은 열심히 믿을 것이다. 그 때문에 인민들 사이에서 이와 같은 외부생활에 대한 지식이 많이 확산된다면, 김씨일가 그리고 엘리트계층은 나라를 통치하고 국내 안전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문제는 북한 엘리트계층이 나라의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전임자들에게 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다수의 경우 그 사람들은 자기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엘리트 계층이었기 때문에 자신도 그 자리에 있는데, 그들이 자신의 先代들을 비난하고 격하할 경우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험해진다. 先代에 대한 공격은 북한 엘리트계층의 정당성을 파괴하는 행동일 뿐이다.

그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전례가 없는 북한의 쇄국정책은, 북한 엘리트 계층이 편집증 환자이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쇄국정책은 북한 국가의 생존조건, 북한 국내안전의 유지조건이다. 북한 백성들이 남한을 비롯한 외부 세계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잘 알 수 없어야 체제유지가 가능하다.

쇄국정책은 북한의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핵심 이유 중의 하나이다. 등소평의 중국과 박정희의 한국이 잘 보여주었듯이, 해외로부터 투자와 기술 교류뿐만 아니라 문화, 민간 등의 교류를 많이 할 때 경제기적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엘리트 계층이 이 사실을 잘 안다고 하더라도, ‘개방’을 비핵화만큼 ‘자살’로 여길 이유가 이미 충분히 있으므로, 그들은 쇄국정책을 포기할 수 없다. 그들은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과 같은 ‘바깥사람 전용’공간을 마련할 수 있지만, 평양역이나 개성역에서 서울발 파리행 여객열차의 남한 사람들이 하차해서 역 주변을 관광하는 것도, 서울의 어떤 교수가 아무 때나 묘향산에 가서 자유롭게 등산하고, 인민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이것은 북한 집권세력이 사악하다거나 나쁜 의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 아니다. 세계 어디에나 집권세력은 오랫동안 정권을 장악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한국과 같은 민주국가에서 엘리트계층은 정권교체의 경우에도 권력을 뺐긴 사람들은 출구가 있다. 그들은 대학이나 기업으로 가거나, 아니면 야당 활동을 할 수 있다. 북한 엘리트 계층은 권력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옛날 인권침해 때문에 감옥으로 가지 않는다고 해도, 특권과 재산을 전부 잃어버릴 것이다. 즉 그들은 비상구가 없다.

그 때문에 2018년 봄에 많은 사람들이 희망했던 ‘아름다운 한반도의 미래’는 꿈 뿐이었던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북한 집권세력은 내부적인 구조의 한계 때문에 비핵화도, 개방도, 남북한 자유왕래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유감스러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국 정부와 한국 사회는 아름다운 꿈에 대해서 계속 주장할 수 있지만, 마음 속에서 진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필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했던 ‘평화체제’의 꿈이 가능할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남북한의 장기적인 평화 공존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중요한 정치목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현 단계에서 북한의 비핵화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북핵의 동결이나 감축은 가능한 일이다. 하노이 결렬 이후 북한측의 공식 발표를 보면, 그들은 앞으로도 회담을 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많이 강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하노이에서 미국측이 거부한 북한의 제안은 매우 심각한 착각과 잘못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북한측도 타협을 희망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물론 북한은 어떤 조건이라도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측은 영변을 비롯한 핵 시설의 일부를 철거하거나 폐기할 수 있고, 조건이 좋을 경우에는 이미 생산된 탄두, 무기용 플루토늄 또는 HEU의 일부를 반출할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공짜는 없으므로, 북한은 자신들의 이러한 행동에 막대한 보상을 받기를 희망한다. 적어도 대북제재를 완전히 완화하고, 대규모 대북 경제지원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볼 때, 미국(또는 남한)의 경제적인 양보는 정치적인 양보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북한측은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또는 수교가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수십억 달러 이상의 보상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극한 현실주의자들인 북한 결정권자들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군사력뿐이다. 이러한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북한측과 타협을 이루기 위해서는 북한 엘리트계층이 세계를 보는 의식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남한측이 북한과 교류를 할 때 거의 불가피하게 직간접적으로 남북 경제협력을 지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수파 박근혜 대통령도, 진보파 문재인 대통령도 통일이나 남북협력이 큰 이익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거리가 아주 먼 낙관주의이다. 하지만 보수파 일부의 주장과 달리, 남북한 경제협력을 지원하는 것은 단순히 퍼주기가 아니다. 남한의 입장에서 보면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목적이니까, 이 목적을 이루는 데 투자하는 돈을 그저 낭비된 돈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남북한 경제협력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남한 납세자들의 돈이다. 보수파 일부의 주장과 달리, 남북한 경제협력을 지원하는 것은 단순히 퍼주기가 아니다.

현 단계에서 북한측은 핵 동결(내지 감축)에 관심이 있는데, 문제는 미국측의 태도이다. 미국측은 이와 같은 부분적인 해결 방법을 결코 지지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지 벌써 몇 년 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포용정책도, 강경정책도 북한의 비핵화를 불러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치구조를 감안하면, 핵 관련 전략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중급이나 하급 공무원으로 볼 수 있는 한반도 전문가들이 아니다.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백악관, 의회, 국무성, 국방성 등을 움직일 수 있는 핵심 인물들이다. 유감스럽게도 그 사람들도, 미국 여론도 아직 착각을 극복하지 못 했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힘이 많은 주류 의견인 강경론은, 이와 같은 타협이 비확산체제를 위반한 파렴치한 국가에 대해서 보상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북동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유지보다 전세계에서의 핵 비확산 체제 유지를 더 중요시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북핵 동결(내지 감축)에 대해서 반대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북핵 동결은 전 세계 핵확산의 대문을 여는 전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측의 이러한 우려감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지금도 앞으로도 남한 외교관들은 미국측도, 북한측도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찾으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미·북 양측 모두 불만이 없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 있는 타협안’이 없다면, 한반도에서의 장기적인 평화공존은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핵 때문에 여전히 걱정이 많은 미국은 2017년과 비슷하게 가끔 대북 압박 정책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북한측도 핵동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자신의 핵, 미사일 능력을 더욱 열심히 개발하고 가끔 위기를 도발할 것이다. 그 때문에 남한은 북미 관계에서 위기를 예방하려 중개인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양측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타협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이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북한 관리’는 값싼 일이 아니다. 북한은 물질적인 보상 없이는 어떠한 타협에도 응하지 않고, 미국측은 ‘비핵화’를 포함하지 않는 모든 타협안에 대해서 반대감이 있는 조건 하에서 필요한 비용을 낼 수 있는 세력은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경제노선을 보면 ‘개방이 없는 개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해서 2012년부터 김정은 정권은 1980년대 초 중국과 매우 유사한 경제개혁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북한 경제상황이 많이 개선되었다. 2016년부터 많이 엄격해지기 시작한 대북제재는 북한 경제성장의 길을 가로막았지만, 이 제재가 완화된다면 북한 경제는 다시 활기를 찾고 빠르게 성장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2012-16년까지 김정은의 경제개혁 시기 북한 성장률이다. 당시에 시장화를 시작한 북한에서 성장률은 최소 3%에서 최대 7%로 추정되었다.

북한 경제 정책은 시장화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니다. 현대 세계에서 경제를 살리는 방법은 시장 중심 정책밖에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해외 유학을 통해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달리 현대세계를 잘 관찰한 김정은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등소평시대 중국과 김정은의 북한을 비교해보면, 공통점뿐만 아니라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1980년대 등소평 시대 중국과 달리 북한에서 정치자유화와 개방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북한 정권은 여전히 쇄국정치를 엄격히 실시할 뿐만 아니라, 김정일 시대보다 일정 수준 더 강화했다. 주민들에 대한 감시와 단속이 완화하기 시작할 조짐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북한 집권세력은 개방을 시작한다면 체제유지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개방은 없을 것이다.

현 단계에서 세계 역사에 전례가 없는 김정은 정권의 ‘개방이 없는 개혁’ 시도가 성공할 지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많은 관찰가들은 북한이 개방을 하지 않는다면 외부투자를 유치하지 못해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사실일 수도 있지만, 2010년대 초 상황을 고려하면 ‘개방이 없는 개혁’의 시작은 어느 정도 북한경제의 성장을 초래할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된다. 개방이 없어도 북한은 보다 더 열심히 시대착오적 중앙계획경제를 없애고 시장경제를 도입한다면, 경제상황이 어느 정도 좋아질 수밖에 없다.

남한측은 북한의 개혁을 환영해야 한다. 북한 경제가 많이 개선된다면 북한 인민들의 생활이 개선될 뿐만 아니라 북한 체제의 안정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매우 위험한 벼랑끝 외교를 할 이유가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 때문에 남한은 북한式 개방이 없는 개혁 정책을 많이 도와주면 좋다.

남한은 어떤 방법으로 도와줄 수 있을까? 다른 어떤 것보다 북한 엘리트 계층의 특수성과 우려감을 감안하여, 북한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을 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 햇볕정책의 경험이 잘 보여주듯, 북한은 개성공단과 같은 공단을 몇 개 받아들일 수도 있고, 금강산관광과 같은 ‘제한된 지역에서의 제한된 관광’에 동의할 수 있다. 북한 당국자들은 이러한 교류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이러한 제안에 동의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당연히 북한측은 관광지역이든 공업지구이든 모든 것을 감시, 통제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교류사업을 허가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해서, 묘향산에서 ‘특별관광지역’이 생길 때에만 서울의 교수는 묘향산으로 등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교수와 함께 군옥수수를 먹을 사람들은 현지 할머니들 대신에, 안내원으로 위장한 국가보위부 요원들 뿐이다. 공업지구도 비슷할 것이다. 북한측은 모든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남한측 관리자들과 비공식적으로 이야기를 한 노동자들을 조사하고 처벌하지 못한다면, 공업지구 계획에 동의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한에도 불구하고 남한 입장에서 관광사업, 특히 공업지구는 가치가 많은 사업이다. 이것은 북한 경제발전을 많이 도와주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들에게 매력이 많은 ‘자유롭고 잘 사는 남한’의 모습을 훔쳐볼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이다. 북한 사람들이 남한의 모습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혁명적인 반체제 감정이 솟구칠 수도 있지만, 체제의 단계적인 변화에 대한 많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희망은 북한이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방향으로 계속 바뀌도록 북한 통치권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압박을 가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현 단계에서 제일 바람직한 것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비롯한 농축우라늄 생산시설과 무기용 플루토늄 생산시설 대부분을 폐쇄하고, 그 대신에 유엔 안보리 제재가 완화되고, 북한측이 경제개발 또는 인프라 개발 지원을 받는 것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 이와 비슷한 특구가 몇 개 더 생기면 좋을 것이다. 남한은 북한 철도, 포장도로 건설 등에 많이 투자할 수도 있다.

벌써 말한 바와 같이 미국은 이와 같은 타협에 불만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로 미국측은 북한이 어느 정도 핵무기를 유지한다고 해도, ICBM 발사와 핵실험과 같은 도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환영할 이유가 있다. 다른 입장에서 미국은 북한측이 외부에서 알 수 없는 지하시설에서 수십기의 핵무기를 여전히 보유하며, 규모가 작더라도 여전히 핵 생산 시설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환영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북한 비핵화에 대해서 착각을 극복하지 못하는 미국 언론, 여론 그리고 전문가들이 아닌 정치인들은 반감이 많을 것이다. 미국측의 이러한 반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북한이 사실적인 핵 보유국이 되더라도 겉으로 북핵의 동결 및 감축이 ‘핵동결(내지 감축)의 완성’이 아니라 ‘비핵화 프로세스의 시작’이라고 주장할 필요가 있다.

바꾸어 말해서 북한측이 핵을 포기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조용히 인정하는 동시에, 이와 같은 핵동결이나 감축을 ‘비핵화를 위한 첫 단계‘로 공식적으로 널리 알리며, 북한과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 회담을 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회담은 별 진정성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양측 모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장기적인 목적으로 선전한다면, 국제 비확산 체제에 대한 타격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한다면,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 대신에 ’단계적이고 장기적인 비핵화를 하고 있는 나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두 개념은 아무 차이가 없지만, 후자는 듣기 좋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좋으며, 북핵이 국제 핵 비확산 체제에 만든 구멍을 어느정도 막을 수 있는 담론이다.

이와 같은 해결을 불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디에나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문제의 완벽한 해결을 이루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으며, 덜 나쁜 시나리오나 차악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보통 있는 일이다.

한편으로 남한 입장에서 이와 같은 타협과 장기적인 평화공존은 윤리적인 문제가 없지 않다. 남한 진보파도, 보수파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권문제는, 이러한 핵동결과 개방이 없는 개혁을 열심히 하는 ‘개발독재 북한’에서 여전히 큰 문제일 것이다. 물론 남한측은 이런저런 부문에서 인권침해 완화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데, 그 효과도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북한의 경우 인권침해 문제는 김정은이나 북한 통치권자들의 惡意의 결과보다도 북한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자유가 많으며 잘 사는 남한이 있기 때문에,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체제가 있을 수조차 없다.

이와 같은 타협을 이루기 위한 조건은 현 단계에서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바로 지금 그 타협이 가능한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트럼프는 매우 특수적인 미국 대통령이다. 한편으로 그는 보통 미국대통령과 다르게 대북 선제공격을 하고, 한반도와 북동 아시아에서 전쟁을 불러올 수도 있다. 다른 입장에서 보면 그는 보통 미국대통령이 상상하지도 못하는 새로운 해결방법과 타협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 때문에 평화공존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특수적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 기회를 잡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장기적인 위기와 위협 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Andrei Lankov

목, 2019/04/0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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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민주제는 대의적 제도정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상보적 경쟁과 견제를 통해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

이래경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지난 12일 제1기 시민기자학교 첫 강좌를 열어주셨는데요

예비 시민기자 수강생들이 품격있는 강의를 들었다고 아주

반응이 좋았습니다. 오늘 이렇게 다시 인터뷰어로 모시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 문1 :

먼저 선생님께서는 직접민주주의에 대해 관심 가지게 되신 특별한 계기라도 있으신지요?

▷ 답 : 우선 제게 ‘직접민주주의뉴스’ 발상이 매우 참신하게 다가옵니다.

87년 민주항쟁 이후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시절에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청와대와 여의도에만 몰려서 모든 뉴스 미디어들이 제도권 정치에 쏠려 있었는데, 이제 20여 년 세월이 지나서면서 시민들이 주체가 되고 시민이 뉴스를 만든다고 하니, 방향성과 의미가 크게 느껴집니다.

직접민주주의가 새롭게 거론되는 이유는 국민들 대수가 대한민국 정치가 이대로 있어서는 안된다 하는 문제 의식이 강하게 깔려 있고, 국회를 중심으로 하는 여의도 정치로 과연 한국사회가 비전이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실망감에 있습니다.

때마침 ‘직접민주주의’ 전도사로 알려진 브루노 카우프만(스위스 정부가 임명한 민간 외교관)의 방한이 있었고 이를 후원하는 Democracy International 이라는 독일 퀼른에 본부를 두고 전 세계 직접민주주의를 지원하는 조직이 있는데 그 조직의 책임자가 저와는 사적인 인연이 있어, 한국에 가면 이래경을 만나 보라는 조언이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Democracy International의 이사로 계신 이정옥교수를 통해서 연락이 이루어졌습니다.

브루노 카우프만의 방한기간 동안 이루어진 의원회관 강연에서 제가 사회를 보게 되었고 내용을 기사로 담아 프레시안에 기고했는데 반응이 대단히 좋았다고 들었습니다. 이후에 9월말에 열리는 로마 포럼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이 와서 이정옥교수와 민주화기념사업회 신형식 교수 등 같이 참석했는데 정말 대학 신입생 같은 기분으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포럼참여 경험담이 다시 프레시안과 녹색평론에 게재되면서 덕분에 직접민주주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모임 자리에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신세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외국의 직접민주주의 사례를 실감나게 접하면서 정당에만 위임되던 대의적 법치 시대에서 시민 직접참여의 민치 시대로 접어들고 있구나 하는 직감이 다가 왔습니다.

 

▷문2 : 선생님께서는 한국의 대의정치는 극장식 민주주의다시민들은 관객으로 참여해 박수치고 분노할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2016년 광화문에 모인 촛불시민들은 피흘리지 않고 현직 대통령 탄핵도 이끌어 내고 정권이 바뀌어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426일간이나 고공탑에서 농성하다 겨우 지상에 내려온 홍기탁 전 금속노조 파인텍 지회장이라든지 민주정권에서도 아직 해결되지 못한 노동계나 교육계의 지난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현재 한국 민주주의를 진단하신다면?

▷답 : 문재인 정부에 대해 자주 비판하게 되는데 너무 비판하지 말라 하는 시민사회 내 요청 겸 경고가 있어서 주저하게 되는 부분이 있지만 부담없이 얘기하겠습니다. 저는 ‘대의정치가 극장식’이라는 말을 뛰어 넘어서 과연 대한민국에 정당다운 정당정치가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있어요. 실현하고자 하는 강령과 정책이 분명해야만 비로소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의 정당들을 정당적이라 얘기할 수 있을까요? 제게는 어느 당이든 확실하게 뭔가를 추진하겠구나 하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현재의 한국 정당정치 구조는 선거용, 일회용으로 위임된 정치이지 국민의 뜻을 받드는 대의적 정당 정치라 하기에는 명분과 근거가 너무 부족합니다.

정당 정치가 필요한 까닭으로 제대로 된 전문성 전업성 현안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운동성, 항시성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자기 명예를 위해, 득표를 위해, 표에 따라 수시로 정책 발언의 내용이 변하고 얼굴 표정도 바뀌니까 극장식 민주주의라는 욕을 먹게 되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87년 이후 그나마 대한민국은 형식적 민주주의를 점차로 실현해 온 측면도 있고, 일단 절차적 부분에서 성과도 없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겁니다.

반면에 경희대 김상준 교수는 “대한민국 정치사는 30년 마다 악순환의 고리가 존재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근현대사를 보면 동학농민혁명이 실패로 끝났고 국권을 잃어버렸는데 동학혁명에서 기미년 3.1 만세까지 30년 이다 해방 맞이하고 전쟁 일어났고 4.19 혁명 80년 민주혁명 30년 만에 촛불 혁명 거의 30년 마다 매듭이 지어지듯이 역사가 직선으로 간 것이 아니고 굴곡되고 뒤틀어진 표면을 따라 되돌아 온 듯한 (뫼비우스의 띠처럼 말이지요?)느낌입니다. 그럼에도 일부 성과가 이루어지면서 한걸음씩 양가(兩價)적으로 성취된 내용이 한국 근대사 110년의 민주주의 역사에 존재한다고 평가합니다.

 

▷문3. 선생님께서는 저서 <다른 백년을 꿈꾸자>에서 한국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갈 시민사회의 지도력을 다양한 경로와 채널을 통해 배양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일상적 실천의 과정 속에서 모두의 참여가 가능한 열린 구조에 대해 특히 강조해서 말씀하셨는데요 직접민주주의와 접목시킨다면? 어떤 형태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답 :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친 경험을 보면 일방적인 이데올로기는 매우 위험하다는 교훈을 얻게 되죠. 극우적 파시즘 이데올로기를 앞세우는 집단들과 볼셰비즘처럼 편향된 이데올로기는 반드시 경계하고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변혁의 과정에서는 시민들에 의해 폭발하는 자연 발생성과 이를 극복하고 지도하는 예비된 전문가적인 지도력 조직력의 쌍방 간의 상합적인 주제에 성찰이 필요합니다. 논란은 있지만 그릇과 내용물, 형식과 내용처럼 끝없이 변증적으로 상호적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봅니다. 철학적 주제이긴 하지만 복잡계 이론이나 진보적 게임이론 등이 중요한 암시를 줍니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오래된 시스템에서 새로운 시스템으로 이동해 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에너지가 외부로부터 유입되어야 합니다. 자연계를 예로 들자면, 태양이 끊임없이 햇살을 비추면서 지구의 생태적 환경이 조성되는데, 사회 이론으로 치환하자면 태양 에너지를 대신하여 생활의 양극화 내지는 빈곤의 어려움 등 잘못된 현실과 모순이 끊임없이 변화의 동력을 공급해주는 셈이죠. 말하자면 ‘이게 나라냐’ 하는 자각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동기를 부여하면서 외부적 에너지를 불어 넣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구체계가 새로운 시스템으로 이동시키기 위해서 (계기적) 상황요소, 매개요소 (사회경제적 조건) 임금 차별화, 지역 문제, 세대간, 남녀간 등 변수의 존재와 더불어 행위자로서 주체 요소가 결합이 되어 정(正)의 피드백 루프를 형성하면서 기존 체제를 뛰어 넘으면 개혁이 일어나고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반면에 추동력이 약하여 기존 체제를 뛰어 넘지 못하면 네가티브(음陰) 루프로 발생하다가 스스로 해체가 되어 사라집니다. 요약하면 기존의 시스템을 뛰어 넘으면 창발 현상이 일어나면서 새로운 세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이 복잡계 이론에서 이르는 변혁입니다.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폭발성 즉흥성 부분들은 수시로 끓어오르는 반면에 기존 체제를 뛰어 넘어 양의 루프를 형성하는 주체적 역량 즉 새로운 변혁을 일으키는 리더십이 부족한 것이 문제입니다. 리더십의 역량은 항시 준비되고 상황을 예측하고 분석하고 조직하고 예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시민단체의 숫자는 인구 대비해서 세계적으로 매우 많은 편이라고 합니다. 아쉬운 것은 NGO 단체들의 자기 방향성이 함께 더불어 정확히 동기화 되고 같은 방향성으로 전진하는 것이 아니고 우후죽순처럼 되어 벡터적 합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현상을 보인다는 점이죠. 이 때문에 많은 인재들이 NGO 등에서 자각되고 직업적으로 훈련됨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가 새로운 변혁의 세상으로 나아가는데 실질적 동력의 리더십으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쉽습니다. 정확한 방향성을 지니고 조직해 내느냐 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문4 : ‘()시민과미래주권자전국회의가 함께 직접민주주의뉴스를 만들었습니다만 시민단체 들간의 협업 컨소시엄 ? 지역에서 민관 협치가 시행 되고도 있는데 제도 정치와 시민정치가 손잡으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답 : 무엇보다 제도정치가 우선 일차적이고 따라서 현존의 제도정치를 어떻게 개혁하고 활성화 시켜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선도적으로 정치개혁 운동하는 분들이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연동형비례제’는 국민들 요구와 실상을 거울처럼 비추어, 이에 기초하여 다원적인 의견을 이끌어내어 종합하는 예술로서 정치를 실현되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정치현장의 부조리를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 중에 하나가 소선거구제인데, 이런 기득권을 혁파하는 돌파구가 바로 ‘연동형비례제’이죠.

연동형비례제를 통해서 국민들 의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정치구조를 만든 다음 단계로는, 현재의 허세로 개인이 금뱃지를 달고 다니는 구락부적 정치에서 정책실현을 위한 정당 정치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현재는 독일 사민당이 비판받고 있지만 독일을 세계적인 모범국가로 키운 데는 정당정책에 한결같이 성실하게 복무해 온 것이 큰 힘이었고, 독일의 현대 역사를 만들고 이끌어 온 것은 160년 역사의 사민당이었습니다.

또 하나 정강을 중심으로 한 정책 정당으로 변화 시킬 수 있느냐는 문제와 더불어 책임성을 강화시키고 젊은 세력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제도로 정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시민발안제’는 제도정치를 없애자는 의도가 결코 아니고 상보적 경쟁과 견제를 통해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시민발안제가 도입되면 기존 대의 정치가 자극을 받아 활성화 되고 훨씬 책임을 지고 헌신적으로 변하게 된다고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상호 경쟁적이고 상호 보완적으로 될 수 있습니다.

 

▷문5. 현재 국회는 어떻습니까? ‘연동형비례제를 얘기하니 국회의원 정원을 두고 숫자에 의견이 분분한데요

▷답 : 한국은 타국에 비해(연방국가인 미국만 제외) 국회의원들이 예외적으로 많은 수의 보좌진을 갖고 권력형으로 군림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유럽 의회는 정책과 의제 사안을 중앙당 중심으로 운용되면서 의원은 이를 실천하는 개별 멤버로서 역할하면서 소수의 비서진을 필요합니다만, 중앙당 중심의 정책기능이 상실된 한국정치의 현실에서 국회의원은 개인당 보좌진이 7-9명이나 됩니다. 유럽국가 의원의 경우에는 별도의 운전사도 없고 전철 등 공공교통수단을 타고 다닌다면서 보좌진도 정책 코디네이터 정도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국회가 정책집단으로 탈바꿈하려면 의원 개인별 보좌진 대다수를 중앙당의 정책전문 연구요원으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이리되면 국회의원 정원이 300명이 아니라 500명이 되어도 괜찮다고 본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국회의원 임금도 시민들 평균임금 수준으로 낮추자는 주장을 하는데 이는 잘못된 주장입니다. 정치가 사회를 올바로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영역이어야 하기 때문에, 정치를 비하하거나 폄하하면 안 됩니다. 국회의원을 호민관으로서 정당하게 예우를 해주고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되 현재 같은 보좌진과 정당 시스템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6 : 대학 시절 학교를 두 번이나 제적당하고 군복무 후 산업 현장에서 일하다 해외 생활도 오래하신 걸로 압니다. 외국 생활하시면서 한국과 많이 비교가 되셨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불황일수록 복지 확대가 필요하다고 평소 주장하시고, ‘사회적 상속운동을 말씀하시는데요 간략하게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답 : 학생운동권으로 70년대에 대학을 두 번이나 쫓겨나고 대우중공업 직업훈련원에 들어가서 용접을 배우려 했지만 노동자 생활은 맞지 않는다는 걸 절감하고 나서 이후 30년간 무역업에 종사했습니다. 하계 올림픽이 있던 88년도에 독일 기업과 합자법인을 설립해서 2015년도까지 27년간 최장기 대표이사를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제조업 분야만 2만 명 아웃소싱까지 4만 명 정도의 종업원을 거느린 다국적 기업과 함께 하면서 철도, 상용차, 조선, 철강, 시멘트 등 주로 기계 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 분야에서 전문적인 식견과 경험을 갖게 된 것이 제게는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어느 강연에서 중앙대 김누리 교수가 독일을 어마어마한 일등 나라로 표현하고 한국을 형편없는 삼류로 표현했지만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반부패지수CPI가 선진적인 유럽국가들에 근접한 시절도 있었습니다. 반면에 이명박 시절에 아프리카 수준으로 곤두박질 쳤습니다. 정권의 성격과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예입니다.

위의 예에서 보듯이 한국은 진폭이 매우 큰 사회입니다. 매우 큰 가능성과 동시에 좌절과 절망이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일류국가인 독일이나 북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한 게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제3세계 국가 중에서는 모범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야 될 일은 많고 손을 보아야 할 부분도 태산 같지만 미래를 향한 잠재력으로 따지면 독일이나 북유럽 보다 한국 사회가 더 크다고 믿습니다.

80년 초 처음으로 독일을 방문하면서 어쩌면 이렇게 잘 조직되고 관리가 될 수 있었을까 감탄할 정도로 멋진 건축물과 효율적으로 운용되는 사회제도 등 인프라가 매우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독일이나 선진국들도 빈 구석이 보이고, 우리나라의 역사적 유물들이 6,25 등 전쟁을 겪으면서 사라지고 볼품이 없어졌지만 점차 좋은 점도 발견하게 되고 나름대로 강점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영주 부석사를 오르면서 풍광의 아름다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바로 이거다 이건 유럽 사람들은 도무지 가질 수 없는 우리만의 어마어마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나라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와 관련해서 저는 한국을 여전히 세계에 우뚝 설 수 있는 가능성의 나라라고 믿습니다.

 

▷문7: ▷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만 보아도 외국인들은 감탄을 하고 우리의 자산이 무궁무진 한데요 한국인들은 서구를 추종하고 우리 것을 도외시 해왔고 전통 문화를 잘 살려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답 : 왜 국가는 실패하는가 묻는다면 결국은 ‘제도이며 정치의 문제이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국내에서 유명해진 캠브리지 대학 교수인 장하준류의 신제도학파 입장이랄까요? “제도가 그 나라의 사회경제적 수준을 결정한다.”라는 맥락의 저술도 많이 있고 저도 정치가 한 나라의 성패를 결정한다는 입장에 서있습니다 – ‘정치의 우선성’이라고 말할 수 있죠.

여기에 보태어 서구에 비해 동양 사회가 가지는 매우 중요한 장점이 하나 있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서양이 발달한 것은 제도와 절차와 과정은 잘 정비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형식은 잘 되어 있는 반면에 유럽의 사회 철학 근본은 주 흐름이 개인적 자유주의와 사적 재산권입니다. 진보적이라는 사민주의 역시 존엄, 정의, 연대를 얘기하는 배경에는 자유주의와 사유재산에 대한 무조건적 존중이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항상 갈등과 대립이 상존하는 사회입니다.

반면에 동양의 역사는 그것을 뛰어 넘습니다. 서양의 인간의 존엄에 대한 사고는 소위 ‘천부인권적’ 개념인데 창조주가 자신의 형상과 인격을 부여했다는 피동적 존재로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에 동양적 유교 사상에서는 ‘천지인 합일’ 하늘과 땅과 사람이 서로 합일 상생해서 움직인다는 사상이다. 다른백년 이사이기도 한 이병한 교수는 “천인天人합작이다.”을 말하기도 합니다만 동학으로 돌아오면 창조주인 하나님이 피조물을 창조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내 속에 있다는 것. 시천주侍天主, 즉 인간은 신적인 품성과 가능성을 가지고 노력하는 존재로 끊임없이 신을 향해서 나갈 때 인간과 역사는 발전한다고 파악합니다. 해월 최시형 선생은 이를 ‘양천주養天主론’으로 설파하면서 사인여천使人如天의 큰 가르침을 주셨죠.

이런 맥락에서 서양의 인간, 사회, 역사에 대한 해석에 비해 동양적 사고와 한민족의 역사관이 갖는 잠재력이 훨씬 크고 담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를 해석하고 발굴해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 인문 학자들의 과제라고 봅니다.

 

▷문8 : 마지막으로 ‘직접민주주의뉴스’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과 개헌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답: 모두들 직접민주제의 원형은 그리스라고 믿습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그리스의 시절에는 무작위적인 추첨을 통해서 시민을 대표하는 자를 뽑았기 때문에 추첨 방식이 직접민주주의의 원형이다 하고 생각하는데 이는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그리스 시민들은 현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군중mob과 대중mass가 아니었습니다. 당시엔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자와 서비스를 노예가 제공하는 환경에서 그리스 시민들은 일상적으로 철학 문학 정치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이고 모두가 정치에 일가견을 지녔던 프로들이었습니다. 누구나 정치를 맡기면 훌륭히 처리해낼 역량과 식견을 갖춘 시민들이었습니다.

반면에 현대의 대의적 정치, 선거제적 정치는 대체로 일반시민을 우민화로 만들어 왔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직업정치인들은 ‘정치를 일반 대중에게 맡겨서는 안된다’고 핑계를 댑니다. 소위 엘리트이라는 집단들은 일반 대중은 어리석어서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위험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야기를 뒤집어 생각해야 합니다. 엘리트들이 이야기하는 군중과 대중들이 계기를 통해서 자기 판단력과 결정권을 가지고 성찰력을 지닌 시민으로 변한다면 직접민주주의를 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숙의라는 절차를 만들어서 즉흥성을 배제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어떤 정치보다도 직접민주주의, 민치의 시대로 가는 것이 최상의 해결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직접 민주주의의 과제는 바로 지배집단들이 구실로 내세우는 우민성의 문제를 거꾸로 뒤집어서 집단지성이 작동하는 계기로써 참여와 과정을 만들어 내는 시스템을 형성하는 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제도와 절차적 과정의 기술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 선결 문제이고 ‘직접민주주의뉴스’가 이를 알리고 선도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직접민주제의 핵심인 시민발안제를 전국적인 정치의 제도로 지금 당장 채택하기는 너무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시민사회 내에서도 숙의와 토론 절차에 대한 충분한 경험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에 기초 단체나 광역 단체에서 하루빨리 먼저 받아들여 시행해 보면서 이를 경험하고 기초하여 국가 단위로 점차 확산시켜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5년 정도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김태희: 오늘 긴 시간 동안 직접민주주의에 대해 좋은 말씀들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 이래경 : 네~ 수고많으셨어요. 고맙습니다

목, 2019/03/28-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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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로 장관후보자 7명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모두 마쳤다. 이제 후보자에 대해 청문회 보고서를 채택할 것인지, 후보자를 임명할 것인지는 국회와 청와대의 손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번 청문회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은 착잡하다. 흠결이 없는 후보자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우리 사회의 소위 지배엘리트 계층의 많은 문제가 또 다시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후보자 중에 최정호 국토교통부장관 후보자는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주었다. 부동산 투기를 막고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일해야 하는 국토교통부 장관으로서는 자격이 매우 의심스럽다. 1가구 3주택, 꼼수증여, 퇴직 전 공무원특별공급 악용 등 전형적인 토건관료의 행태를 보였으며, 장관후보자 지명을 앞두고 이루어진 증여도 시민들에게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 3.1서울민회를 통해 시민들은 엘리트 대의민주주의를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려움을 선언하고, 민회에 의한 직접민주주의를 활성화할 것을 결의했다. 3.1서울민회 경제민주화분과위원회에서는 당면과제로 △ 삼성 이재용 구속과 한진 조양호의 경영권 박탈 △ 토지공개념 실현과 보유세 강화 및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 △지역에 기반한 사회적경제의 실현 등 3대 과제를 선언한 바 있다.

최정호 후보자의 토건관료적 행태로 볼 때, 우리 경제민주화분과위원회에서 선언했던 토지공개념을 바탕으로 서민들의 주거, 주택 정책을 제대로 펼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최 후보자는 스스로 자질 부족을 인정하고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 만약 전문직 공무원으로 시민들에게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동안의 투기로 인한 불로소득을 서민과 청년들의 주거안정기금으로 내놓고 국민들의 판단을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지배엘리트는 권력과 부와 명예를 독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 부처의 장관은 그 자체로 권력과 명예를 누리는 자리이므로 그동안 부적절한 방식으로 치부한 이들은 이제라도 불로소득을 사회로 환원하고, 공인으로서 명예를 지키고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라도 권력과 명예와 부에 대한 더욱 엄격한 우리 사회의 기준을 세워야 하며, 청와대는 이를 계기로 부실한 인사검증을 더욱 심각하게 성찰해야 한다.

2019년 3월 28일

 

3.1서울민회 경제민주화분과위원회

금, 2019/03/2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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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벽학과 고려학

작년에는 개벽파를 자처했습니다. 올해부터는 개벽학자를 자임합니다. 하노라면 나는 한국학자인가, 자문해 보았습니다. 냉큼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개벽학이 곧 한국학이라고 등치시키는 것에는 못내 주저케 됩니다. 본디 개화좌파였습니다. 20대 구미의 사회이론을 줄줄 외다시피 다녔습니다. 꼴에 반골과 몽니 기질은 다분해서 미국보다는 유럽을 선호했습니다. 독일어와 프랑스어 회화 테이프를 귀에 꽂고 캠퍼스를 누볐습니다. 농반진반으로 ‘모던 보이’시절이었다고 회고합니다. 하얗게 탈색된 머리칼을 휘날리며 유럽 배낭여행을 쏘다니던 때입니다. 퍼뜩 자각하고 자성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서방의 사상에 해밝아도 한국 사회를 온전히 해명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커녕 구미의 이론으로 한국의 현실과 현재와 현장을 난도질하며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변태적이고 병리적인 심리가 없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격정을 토해 비판하시는 것처럼 딱 개화에 중독된 ‘식민화된 영혼’이었던 셈입니다. 저 자신을 치유해야 했습니다. 제가 터하고 있는 땅과 해원하고 상생해야 했습니다. 제대 직후에 사회학에서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던 까닭입니다. (심지어 군대마저 카투사를 다녀왔습니다)

_개벽_ 창간호 표지

애초에는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코자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근현대의 기점을 ‘개항’으로 잡든 ‘개벽’으로 삼든, 지난 150년사는 주변 국가들의 역사를 모르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또 다른 자각에 이르렀습니다. 영어는 물론이요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를 연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사보다는 동아시아사 연구로 들어선 연유입니다. 공부를 좀 하다 보니 근현대사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도 동아시아의 고전에 달통해야 한다는 자각에 이르렀습니다. 사서삼경부터 캉유웨이와 후쿠자와 유키치까지, 한문과 중어와 일어로 축적된 한자문명권의 유산을 한껏 흡입했습니다. 그러다 중화문명권의 또 다른 일각, 베트남을 경험하고 나서 유라시아 문명사학자로 회심한 것입니다. 기왕의 동아시아 감각으로는 동남아의 최북단에 자리한 베트남조차 온전히 해명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번 눈이 트이자 도저히 ‘중국사학자’로 30년을 보낼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3년 유라시아 견문을 감행한 까닭입니다. 1000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개벽파’이자 ‘고려인’으로 살겠노라 말합니다. 개벽파는 더 보탤 것도 없겠습니다. ‘고려인’이라 함은 한반도와 유라시아의 연결망이 가장 활발하게 작동했던 고려시대 사람들의 공간적 감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겠다는 뜻입니다.

기실 ‘한국학’이라는 말부터가 고약합니다. ‘남한학과 북한학’이라고도 하셨죠. ‘남한학과 북조선학’이라고 해야 더 적절할 것입니다. 또는 ‘한국학과 조선학’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휴전선 이북에 자리한 저 나라는 1945년 이후 단 한번도 ‘한국’을 표방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학과 조선학의 창조적 대화로 정립하게 될 미래학을 ‘고려학’이라고 불러주고 싶습니다. 현재의 K-POP은 어제의 한류(Korean Wave)가 진화한 것입니다. 글로벌 문화산업과 토착의 풍류가 결합되어 창조적인 지구문화(Global Culture)를 발신하게 된 것입니다. 개벽학(K-Studies) 또한 기왕의 한국학(Korean Studies)을 돌파해 내야 합니다. 고려학으로 진화해야만이 지구학(Global Studies)에 값하는 신예가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탐문해 봅니다.

그 개벽학과 고려학으로의 진화에 ‘중화’(中華)와 ‘개화’(開化)는 부채가 아니라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중화문명에 속해 있던 무렵 중화는 세계문명의 최정점이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미국의 속국으로 보낸 20세기에도 일본과 미국은 개화문명의 최첨단이었습니다. 불교 천년, 유교 오백년, 기독교 일백년의 역사 또한 비옥한 토양입니다. 동서를 망라한 유구한 문명의 유산이 이 땅에 축적되어 있는 것입니다. 중화를 섬기고 개화를 떠받드는 몰주체적 태도가 문제이지, 제국에 젖줄을 대고 맹렬하게 빨아들인 중화문명과 개화문명은 더없이 소중한 영양소라 하겠습니다. 과문한 탓인지 그토록 두터운 문명적 유산이 켜켜이 쌓여 있는 장소가 그리 흔치 않습니다. 독창이란 외골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무릇 중도(中道)와 정도(正道)라 함은 사방팔방 사통팔달 활짝 열린 길일 것입니다. 중화와 개화를 포용하고 회통하는 문명횡단적 실험 속에서 비로소 개벽학은 만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화도 개화도 사절하는 북조선식 주체사상의 착종을 복제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유학도 버리고 서학도 방기한 주체사상은 옹졸맞고 앙상했습니다. 개벽학은 필히 개방적이고 반드시 개혁적이며 기필코 계승적이어야 합니다.

동아시아론이 허구라는 비판도 통렬한 맛은 있으나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힘든 주장입니다. 과연 1860년 이후 한중일은 각자의 길을 걸었던가요? 1860년 이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한중일은 전면적인 교류가 시작되었던 것이 아닌지요? 그 이전에는 소수의 지식인들만 상호 방문하고 교류하며 한자로 작동되는 ‘문예공화국’의 혜택을 누렸을 뿐입니다. 기층 민중들까지도 시장에서 일상에서 교류하게 된 것은 동아시아 내부의 상호 개항 이후라고 보아야 합니다. 즉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의 공간적 경험이 동아시아로 일대 비약한 것 또한 19세기 말부터입니다. 아니 ‘동아’(東亞)라는 개념 자체가 창출된 것이 그 무렵이라 하겠습니다. 물질적 실체가 분명히 작동했던 것입니다. 조선인들도 반도를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열도로, 만주와 연해주로, 또 중원의 대륙으로, 동아시아 감각이 폭발적으로 확장되었습니다.

1919년 한성에서만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열도에서도 북방에서도 중원에서도 다양한 독립선언서가 작성되었습니다. 그 역사성을 동아시아가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포착할 수 있을지요? 도쿄에서 최신 사상을 공부하고 상하이에서 독립 운동에 투신한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작품을 쓰고 베이징에서 혁명을 논한 경우 또한 숱합니다. 20세기 전반기를 수놓은 주요 정치인과 지식인과 예술인들의 거개가 ‘동아시아인’이었던 것입니다. 우파인 백범 김구도, 좌파인 몽양 여운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물며 물질개벽과 물자교류를 선도하는 상공인은 두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제3세계? 인도와 아프리카? 너무 나아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힌디어와 아랍어로 작동하는 인도양세계와 한국의 역사적 경험이 쉬이 접속될까요? 아프리카는 어마무진장 큰 대륙입니다. 사하라 이북과 이남은 딴 세계입니다. ‘영성적 근대’로 눙칠 수 있는 범위와 사례가 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침소봉대하면 곡학아세로 빠지게 됩니다. 20세기 후반의 한 시절을 풍미했던 제3세계주의에도 ‘자생적 오리엔탈리즘’의 혐의가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시나브로 수그러든 것입니다.

무릇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한 법입니다. 모든 인류애의 출발은 이웃애라고 생각합니다. 원수 같은 네 이웃부터 사랑하는 것이 지상천국 건설의 첫걸음입니다. 동아시아를 괄호에 치고 제3세계로 비약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생산적일지 저는 몹시 회의적입니다. 현실감을 결여한 관념론이기 십상입니다. 그보다는 한중일의 20세기를 대동소이(大同小異)로 접근하는 편이 더 생산적입니다. 개화파가 주류가 되어 ‘백년의 급진’을 질주했다는 점에서 오십보백보입니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틀로 보면 중국과 일본, 북조선과 남한의 사이에는 아득한 만리장성이 쌓인 것 같지만, 고금(古今)의 분단과 성속(聖俗)의 분화라는 개벽파의 눈으로 보자면 어금버금했던 것입니다. 동아시아를 버리고 제3세계로 비약할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를 딛고 동유라시아로 전 지구로, 온 우주로 도약해야 합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이소성대(以小成大)의 자세를 견지합시다.

물론 기성의 동아시아론에도 한계가 없지 않습니다. 아니, 적지 않습니다. 다만 허구이고 허상이서가 아니라 편향되고 편중되어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쪽은 유학 중심의 전통에 치우쳤습니다. <전통과 현대>, <상상>이 대표적이죠. 전자는 유교와 자본주의를 접속시키려 들었고, 후자는 도교와 문화산업을 접맥시키려 했습니다. 은근슬쩍 개화우파에 합세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습니다. 다른 한쪽은 개화좌파에 기울었습니다. 동아시아의 ‘진보적 지성’만의 결집을 꾀한 것입니다. <창작과비평>, <황해문화> 등이 선도했습니다. 돌아보면 ‘중화와 개화의 분단체제’가 여전했던 것입니다. 좌와 우, 보수와 진보의 분단체제도 역력했습니다. 그래서는 신문명의 신천지, 개벽천하가 도래하기 힘들 것입니다. 서학과 유학과 동학의 합작을 이끌어야 개벽학이 살아납니다. 유라시아(구대륙)와 아메리카(신대륙)를 잇는 허브로 자리매김해야 한반도를 지구촌의 접(接=hub)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한국학(Korean Studies)보다는 고려학(K-studies)을 제안합니다. 마침 올해 8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리는 국제고려학회에 참여합니다. 김일성 종합대 교수를 비롯한 북조선의 주요 학자들도 참가한다고 합니다. ‘지구적 고려학’(Global K-studies)의 산실이 될 수 있을지 눈여겨 지켜보려 합니다.

인류세와 다시 개벽 세미나

 

2. 물질개벽의 최전선

한국 인문학계의 활로는 ‘인문학’의 틀을 깨야 비로소 열릴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인문’(人文)의 근간이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지성지 <현대사상>의 올해 첫 특집도 ‘포스트-인문학’이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사람(人)만이 주체가 아닙니다. 식물도 동물도 사물도 만물이 주체의 지위로 등극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인간과 더불어 국가를 구성하고 역사를 추동입니다. 포스트휴먼, 트랜스휴먼, 네오휴먼 등 백가쟁명이 한창입니다. 이른바 ANT,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Actor Network Theory)은 현재 가장 세련된 사회이론인바, 인문학의 틀을 넘어섰기에 브루노 라투르의 독창과 독보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글(文)의 처소 또한 급변하고 있습니다. 종이 위의 텍스트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글은 이미 텍스트에서 데이터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텍스트를 꼼꼼히 읽어도 빅데이터가 제공하는 실상과 통찰을 넘어서기 힘든 경우가 번다합니다. 즉 기왕의 인문에 안주해서는 인문학의 출로가 생길 리 만무합니다. 다시금 천지인의 옛 지혜를 빌려야 하겠습니다. 천문(天文)과 지문(地文)과 인문의 삼문(三文)을 회통해야 하겠습니다. 천문은 하늘의 무늬를 천착하는 학문입니다. 지구와 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입니다. 지문은 땅의 무늬, 세계지리와 세계역사를 탐구하는 문명학입니다. 하늘 천(天) 따 지(地), 집 우(宇) 집 주(宙), 천지와 우주부터 학습해야 지구 진화의 말단에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학문, 인문학도 살아날 것입니다.

선생님을 비롯한 일군의 학자들이 꾸린 하늘학회에 저도 종종 참석하지요. 천주교도도 있고 천도교도도 계십니다. 기독교 목사님이 원불교 경전도 공부하십니다. 서도와 동도를 가리지 않고 통섭하는 현장이 미덥습니다. 동학과 서학을 가르지 않고 융합하는 현실이 듬직합니다. 동/서를 나누지 않고 대도(大道)를 탐구하는 대학(大學)의 전범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함에도 아쉬움은 짙게 남습니다. 여전히 인문학자들만 모여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개벽학은 반드시 인문학 외통수를 경계해야 합니다. 동학을 품은 서학만으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과학을 품은 도학이 요청됩니다. 도학을 담은 과학도 필수입니다. 필히 과학 공부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목하 미래의 추동력은 압도적으로 과학혁명으로부터 비롯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학부 시절 수학을 공부한 점 또한 현재의 철학 연구에 알음알음 생산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수학과 철학, 서학과 동학의 회통이 개벽학의 저변에 흐르고 있을 것입니다.

(왼쪽)SKEPTIC, (오른쪽)김기석 성공회대 총장의 _신학자의 과학 산책_

제가 개벽학당 세미나에서 한국 개벽사상의 주요 텍스트를 읽기 전에 인류세를 비롯한 최신의 과학담론부터 먼저 토론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개벽학당 강의에도 과학자를 자주 모시려고 합니다. <물질개벽의 최전선>이라는 강의명도 궁리 중입니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사물인터넷과 블록체인, 진화심리학과 후성유전학 등. 지지부진한 인문학에 견주어 과학의 질주는 눈이 부십니다. 맹목하지도 외면하지도 말아야 하겠습니다. 직시하고 직핍해야 합니다. 어떤 분이 좋을까, 요즘 삼청동의 과학책방 <갈다>에도 발걸음을 자주합니다. 과학 잡지 <SKEPTIC>은 정기구독을 시작했습니다. 널리 배우고 제때 익혀야 물질개벽과 정신개벽을 아우르는 독창적인 개벽학도 일구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성과 영성이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극한 이성과 극진한 영성은 궁극에서 아름답게 만날 것입니다. 작년 성공회대 총장으로 취임하신 김기석 선생님의 <신학자의 과학 산책> 또한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이분이야말로 ‘개벽학자’라고 하겠습니다. 김에 성공회대와 원광대학 사이의 공동학술연구를 제안합니다. 개화대학과 개벽대학 간의 대합창과 대합장을 권장합니다.

아울러 머리 공부로만 그쳐서도 아니 되겠지요. 21세기의 벽청은 20세기의 문청과 다르기를 바랍니다. 이성과 지성만 비대하게 성장하는 심신(心身) 불균형의 문학청년은 사절입니다. ‘입진보’의 비아냥 또한 과학 공부가 부족하고 몸 공부가 미진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념 논쟁보다는 가설과 실험과 입증으로 실질적이고 실리적이며 실무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입놀림보다는 손발을 놀리고 몸을 써야 합니다. 체감하고 체득하여 육화된 언어, 육성으로 발화해야 합니다. 개벽학당에서 수련과 수양과 수행을 강조하는 연유입니다. 그래야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건강한 인재가 양성됩니다. 건강은 부강을 능가하는 최상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건강이야말로 삶의 기술(테크네)이자 살림의 예술(아트)입니다. 벽청들이 건강해서 저는 참 뿌듯합니다. 부암동의 그 아름다운 산세와 근사한 한옥도 모자라 텃밭 가꾸기까지 자청하는 모습이 더없이 예쁩니다. 신토불이(身土不二), 사람의 피부(身)와 지구의 피부(土)를 접촉하면 할수록 천인합일의 애틋한 사랑이 피어오르고, 천인합작의 우주적 영성도 깨어날 것입니다. 개화우파 국민과 개화좌파 시민을 넘어서 하늘을 쏙 빼다 닮은 개벽파 하늘사람을 지극하게 모시고 극진하게 섬깁시다.

 

벽청들이 가꾸어 갈 텃밭

 

3. 해방공간의 재재인식

천도교 청우당 로고

곧 꽃피는 4월로 진입합니다. 우리의 서신도 ‘포스트 3.1’로 이행하면 좋겠습니다. 동학혁명(1894)에 이어 삼일혁명(1919)도 끝내 좌초합니다. 한성을 지운 경성은 식민지 근대성으로 휘황한 개화도시의 아성으로 변모합니다. 모던걸이 득실거리고 모던보이가 우글거리는 소굴이 되었습니다. 기어코 삼세판의 기회가 열린 것이 1945년입니다. 도둑처럼 해방이 왔습니다. 광복(光復), 빛을 되찾아야 했습니다. 서둘러 조직을 재건한 것이 청우당(1946)입니다. 천도교의 이상세계를 세속에서 구현하는 전위정당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동학이 표방한 개벽국가 건설의 적기가 열리는 듯 보였습니다. 과연 청우당은 해방공간 남(접)과 북(접)을 잇고 엮는 범한반도적 연합정당으로서 매우 인상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20세기 후반에 제출된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개화좌파에 기울었습니다. 21세기 초엽에 등장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은 뉴라이트, 개화우파에 치우쳤습니다. <해방공간의 재재인식>을 위해서라도 남/북과 좌/우와는 별개의 접근이 긴요합니다. 정치와 종교를 아우르고자 했던 성-속 합작의 청우당 연구가 유력한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북과 남에 모두 걸쳐있으면서도 남한과 북조선으로 흡수되지 않는 독자적인 국가건설 구상을 제출했기 때문입니다.

(왼쪽)해방 직후 재건된 청우당의 당원명부(함경도) 표지, (오른쪽)입당원서의 본문

특히 북접 2.0, 북조선 청우당이 이채롭습니다. 2월 8일에 창당합니다. 자부심이 남달랐습니다. 항일운동의 원조이자 적통을 자처했습니다. 1946년 창당의 뿌리 또한 1860년 동학 창건에 두고 있습니다. 유학국가에서 동학국가로, 자그마치 86년간 축적된 경험에 바탕하여 새 나라 만들기에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해방공간에서 우후죽순 등장한 신생정당들과는 족보가 달랐습니다. 과연 삽시간에 30만에 육박하는 당원을 확보합니다. 소련을 등에 업은 북조선 노동당에 못지않았습니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사회주의에도 어깃장을 놓았습니다. 유물적 경제만으로는 이상세계를 건설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필히 정신개벽이 수반되어야 하노라 역설했습니다. 고로 북조선에서 노동당과 청우당은 협력하면서도 경쟁하는 미묘한 관계였습니다. 미국식 자본독재를 비난함은 물론이요 소련식 무산독재도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적 신민주주의’ 국가를 선창했습니다. 서구형 민주와 동구형 민주가 아닌 동방형 민주, 개벽민주의 깃발을 휘날린 것입니다. 아슬아슬한 살얼음판의 곡예가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김일성이 아무리 항일무장투쟁에 열성이었다 한들 동학의 후예를 자임하는 청우당에 비하면 역사와 연륜이 모자랐습니다. 게다가 ‘왜놈’을 대신한 또 다른 외세 ‘로씨야’의 뒷배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었습니다. 친일파 개화우파를 이어 친소파 개화좌파로 이행한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청우당이 주창한 ‘조선적 신민주주의’는 좌우합작에 그치지도 않았습니다. 개화의 지존인 미국과 북방의 신중화로 등극한 소련이 융합하는 창조적 공간으로 한반도를 환골탈태시키는 지정학적, 지리문명적 구상력을 내장했던 것입니다. 북접 2.0(북조선 청우당)과 남접2.0(한국 청우당)을 아울러서 한반도를 아메리카와 유라시아의 허브로 전변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기획한 것이 ‘3.1재현운동’이었습니다. 미소공동위원회가 틀어지고 남북 분단이 굳어져 가던 1948년의 3.1절에 1919년의 3.1혁명을 재연시키고자 했습니다. 북과 남의 청우당이 합작하고 남과 북의 민중들이 연합하여 다시 3.1운동, 또 다시 개벽운동을 일으킬 것을 도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전선이 복잡하고 다기했습니다. 1919년처럼 다종교연합으로 대연정을 연출할 수 있을 만큼의 통일전선이 갖추어지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소련에 아부하고 미국에 굴종하는 내부의 기생 세력들이 세를 키워 갔습니다. 1948년 꾀했던 ‘다시 3.1운동’의 실패는 청우당의 쇠락에도 결정적인 사태였습니다. 노동당의 수장 김일성이 직접 청우당의 ‘우파’들에 대한 숙청과 축출에 개입하기 시작합니다. 레닌보다 수운 최제우를 높이 치는 청우당은 눈엣가시였습니다. 모스크바와 스탈린의 역린을 건드릴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청우당은 북조선 내 통일전선의 파트너(友黨)에서 노동당의 어용, 관제야당으로 강등됩니다. ‘조선적 신민주주의’가 만개하지 못함으로써 소련의 아류, 일당독재국가로 귀착된 것입니다.

분단체제는 거울상으로 작동합니다. 남쪽의 청우당 또한 쪼그라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조직의 성격 자체가 변질됩니다. 수양과 경세를 겸장했던 교정쌍전(敎政雙全)은 온간 데 없이 사라집니다. 남북분단, 좌우분열의 난세 속에서 종교적 수행 운동으로 퇴각해 버린 것입니다. 대승을 버리고 소승에 귀의했습니다. 동학과 천도교의 특장을 스스로 기각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청우당이 정치 일선에서 자취를 감춤으로써 천도교의 정치운동은 사실상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미국을 등에 업은 개화우파의 적자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면서 개벽파는 역사의 최전선에서 퇴각해 버립니다. 1960년, 동학 창도 100년을 맞춤한 4월 혁명 4.19에서도 천도교의 공헌은 미미했습니다. 도리어 <군자들의 행진>에서 추적하는 것처럼 유림들의 활약이 적지 않았습니다.

강습교재중 천도교청우당론 표지

최후의 일격은 역시 한국전쟁입니다. 해방이 개벽파의 기사회생이 아니라 치명타를 가하고 치명상을 남기게 된 것도 한국전쟁 탓입니다. 북에서는 개화좌파가 득세하고 남에서는 개화우파가 득의양양하게 됩니다. 고로 분단체제의 심급 또한 단순히 남북분단과 좌우분열에 그치지 않습니다. 동학으로 싹틔운 자생적이고 자각적인 근대에 결정적인 사망 선고를 내린 격입니다. 남북을 막론하고 좌우를 망라하여 세속화 일방으로 일주했습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각기 서구형과 동구형의 ‘조국 근대화’로 내달렸던 것입니다. 그 조국은 1894년과 1919년에 염원했던 ‘나의 소원’, 동학국가와 개벽국가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내발적 이상향과 실제로 구현된 (분단)국가의 실상 간에 아득한 간극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것이 분단체제의 알파이요 오메가입니다. 그러하다면 2019년 <개벽파 선언> 연재가 시작되었다 함은, 비로소 분단체제가 최종적 해체 국면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상징적 징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쓰라린 마음으로 청우당의 ‘가지 못한 길’을 쓸어 담고 있습니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심정으로 그 실패와 좌절의 처절한 상처들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너무 혁신적이었습니다. 시대를 앞서갔습니다. 20세기에서 21세기를 먼저 살았습니다. 때가 맞지 않았습니다. 이제야 때가 무르익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련은 진즉에 제풀에 무너졌습니다. 미국도 돌이킬 수 없는 하강세에 접어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세속주의 일방의 근대화가 한계점에 다다랐습니다. 탈세속화와 재영성화의 메가트렌드가 유라시아 도처에서 도저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정치적 영성’으로 성성했던, ‘성속합작’의 원조였던 청우당을 꼼꼼하게 복기하려는 까닭입니다.

1946년 8월 1일부터 <개벽신보>(開闢新報)라는 당 기관지를 주간으로 발행했다고 합니다. 1948년 4월 1일부터는 일간지로 발행했다고도 합니다. 1919년 3.1혁명이 <개벽>(1920)을 낳았고, 1945년 해방이 <개벽신보>(1946)로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내년 창간을 준비하고 있는 가칭 <개벽+>는 촛불혁명의 결실일 것입니다. 참조해 보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허나 천도교중앙도서관과 독립운동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 등에 자문을 구해도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하다고 합니다. 감질이 납니다. 당장 읽고 싶어 안달이 납니다. 해방공간의 ‘가지 못한 길’, ‘개벽하러 가는 길’을 복원해 내고 싶습니다. 올 여름방학은 모스크바에서 지내기로 결정지었습니다. 소련군이 수합했던 북조선 문서고를 샅샅이 뒤져보아야 하겠습니다. 21세기에는 가볼 만한 길일 것입니다. 아니, 가야 할 길일 텝니다. 개벽로(開闢路)야말로 지난 백년과는 다른 새로운 백년의 신작로일 것입니다.

벽란도의 유라시아 네트워크

<개벽신보>를 함께 읽고 논하는 세미나도 해보고 싶습니다. 당장은 개벽학당이 가장 어울리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충분치 못합니다. 한국의 벽청만으로는 미진합니다. 북조선에서도 벽청을 키워 가야 하겠습니다. 남과 북의 벽청들이 어울려 <개벽신보>를 함께 읽어가는 근미래를 내다봅니다. 장소 또한 평양이나 서울은 적절치 않습니다. 개성이 최적입니다. 개성은 본디 개경(開京), 열린 도시, 오픈 시티였습니다. 개경으로 이어지는 예성강의 끝자락 벽란도는 유라시아의 만인과 만물이 오고가는 허브(接)였습니다. 또한 개경은 최초의 대학, 국자감이 자리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21세기의 문명대학, 개벽대학을 세움직합니다. 개성공단은 재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 확대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대학을 세우면 청년과 지식인과 예술인들이 모여듭니다. 개성을 20세기형 산업단지, 공업도시로 만들어서야 쓰겠습니까. 21세기형 문명도시로 거듭나게 해야 합니다. 14-15세기의 베니스, 17-18세기의 암스테르담, 20세기의 뉴욕을 참조해 볼만 합니다. 응당 북과 남으로는 성에 차지 않습니다. 기왕이면 동북아연합의 국제개벽대학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개성에 개벽대학을 세웁시다. 그리고 ‘고려청우당’도 재건합시다. 그래서 그 개벽인과 미래인들이 주역이 되어 만들어가는 통일된 동학국가의 대망과 대업도 완수합시다.

개성의 국자감

‘해방공간의 재재인식’의 물꼬를 청우당으로 틔웠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의 개벽파가 어디 천도교뿐이었겠습니까. 그 푸르른 벗(靑友)들 가운데는 원불교도 있고 개신유교도 있으며 토착화된 기독교와 천주교 및 혁신불교도 없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소망과 소원들을 하나 둘 밝혀주고 새 숨을 불어넣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죽은 불씨를 되살려야 하겠습니다. 선생님이 해 주실 만한 이야기보따리가 적지 않으리라 기대됩니다. 맞장구와 추임새를 기대합니다. 만시지탄과 지청구도 없지 않을 테지만요.

금, 2019/03/2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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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문명은 크게 아리안족 문명과 셈족 문명 그리고 한족 문명으로 니누어 볼 수있습니다. 무엇보다 기원적 2천년전 코카써스 산맥 북쪽에서 농경생활을 하던 아리안족Arya이 이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인류문명은 대융합의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당시 서쪽으로 이주한 아리안족은 에게해의 크레타 문명을 몰락시킨 후 그리스와 터키로 연결된 지중해 연안의 도시에서 해상국가로 거듭납니다. 한편 남하한 아리안족은 이란을 거쳐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에 이르러 기존의 드라비다족을 내쫓은 후 인더스문명의 뿌리를 내리게됩니다. 이후 이란을 거쳐 아라비아 반도로 내려온 아리안족은 수메르와 아카드문명에 뒤이은 셈족의 바빌로니아 문명을 패퇴시킨 후 독자적인 페르샤문명을 구축하게 됩니다. 결국 아리안족은 인류문명, 특히 서구문명의 주축을 이루는 그리스로마 문명과 페르샤문명 그리고 인더스 문명을 구축한 주인공으로 거듭나게됩니다.

사진: 서울신문

따라서 아리안 문명의 특징을 알아봅시다. 무엇보다 여러 측면에서 발현되는 다양성을 들수 있습니다. 이는 신관에서도 나타나는데 최고신을 Deva, Jeus, Deus, Dei라고 부르는 다신론으로 표현되었으며 또한 다양한 삶을 살 수있다는 믿을을 전제로한 윤회사상을 믿어 왔습니다. 또 다른 특징을 살펴보면 특히 그리스로 이주한 아리안들은 주로 지중해 해안가 도시들에 살면서 바다를 상대로 교역을 해왔기때문에 항해시에 반드시 필요한 시각중심의 문명으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이에따라 그들은 눈에 보여진 것(파도, 현상)과 보여지게 만드는 것(바다, 본체)의 차이를 인식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본체를 인식하는 능력인 이성을 중시하게 되는 로고스logos형이상학을 발달시키게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뒤에서 보듯이 본체 중심의 사고는 파르메니데스를 거쳐 플라톤에 이르러 절대적 실체론으로 전개하게 됩니다.

한편 아라비아 반도에서 미리 정착했던 셈족 문명의 특징을 알아봅시다. 무엇보다 사막이라는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야했던 그들은 원초적으로 초능력자와 초월자를 요청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기에 초월성과 유일성 및 절대성을 문명의 본질로 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여 그들이 믿는 신은 아리안문명의 다양한 인격신을 배격하고 오로지 최고의 단일신, 예를들어 수메르의 엘, 바빌론의 마르두크, 가나안의 바알, 유대교의 야훼나 이슬람의 알라를 숭배하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거의 유사하다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실았던 바빌론의 우르지역에서 믿었던 최고의 신은 마르두크였기 때문에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하면서 시작된 유대인의 유대교 야훼는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내용의 유일신이라할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사막에서 살았기때문에 모래바람들이 내는 소리를 중시하는 청각중심의 문명입니다. 하여 야훼의 말씀이 창조를 이루고 율법(십계명)이 된 유일한 소리의 문명으로 남게된 것입니다. 따라서 시각을 배격하고 청각,즉 소리만을 유일신의 증거로 보았기에 신을 시공간속에 형상화하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한편, 중국을 살펴봅시다. 중국인들은 인격신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독특하게 하늘을 신으로 상정하여 왔습니다. 즉 신에대한 설문해자를 보면 신은 하늘의 번개 모습을 띄는데 이는 하늘이 위력과 영묘함 그리고 길흉화복의 예측능력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신은 인간의 삶의 주재자가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즉 신은 창조자나 구원자가 아니라 인간사를 좌지우지하는 주재자이기에 그의 명령을 잘 따르는 자가 인간사회의 주재자, 즉 (황)제가 된다고 보는 천명론으로 확장되어 갑니다. 즉 하늘의 천명을 받는 자는 덕을 갖춘 자이어야하기 때문에 천명론은 인성의 수양론으로 연결되어 집니다. 따라서 중국사상은 심(인간 마음)과 성(우주의 본성, 즉 하늘, 천명)은 출발부터 일치를 지향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즉성 사상은 이후 인도로부터 들어온 불성사상(불성은 가능태로서 보통 실체인 여래장과 혼동되고 있습니다)을 심즉시불(마음이 곧 부처! 즉 불성은 현실태로서 본래성을 의미한다할 것입니다)의 사상으로 격의하여 점수가 아닌 돈오 중심의 6조 혜능의 돈오돈수 사상이 선불교의 정통으로 자리잡게 되어 오늘날 한국의 선불교의 모태가 됩니다.

그리면 이제부터 아리안문명이 서쪽과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기존에 터잡은 셈족 문명과 한족 문명에 끼친 영향을 알아봅시다. 먼저 아리안족이 남쪽으로 이동하여 만나게된 셈족 문명,특히 기독교와의 만남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이 만남에서 촉매역할을 한 사람이 로마 시민권자이자 유대인인 사도 바울이라할 것입니다. 그는 아리안 문명에 속한 로마시민임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말씀을 진리로 믿고 회심한 후에 셈족의 유대교를 벗어나서 예수의 가르침을 기독교로 보편 종교화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신의 말씀인 율법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유대인만의 종교틀을 벗어나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있기에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을 수있다는 보편종교로서 기독교 사상을 구축하였는데 이를 이신득의,이신칭의라고 부릅니다. 이신칭의는 그 자신이 디아스포라였기 때문에 기독교를 본토 유대인만의 민족종교가 아니라 그 밖의 유대인 나아가 인종을 초월한 보편종교를 만들기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이를 뒷받침한 사상이 로마의 만민법사상과 스토아의 사해동포주의라할 것입니다. 하여 바울이 기독교 구축에 기여한 공로는 지대하다할 것이나 근원적으로 당대의 그리스,로마의 존재론은 파르메니데스와 플라톤의 실체론이었기 때문에 결국 기독교는 바울을 만나 철학적 토대를 구축하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이데아와 현상으로 세계를 이분법적이고 수직적인 질서로 보는 실체론의 한계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실체론은 실체를 독립적이고 고정불변한 존재로 보기에 단일하고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있으므로 후행존재의 원인이 되는 선행존재는 존재근거인 실체가 되어 상대방의 본질을 파악하여 그를 도구로 지배하고 이용하게됩니다.

(그러나 실체는 인간이 대상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설명하기위한 언어적 허구개념이라는 점은 수차례 지적하였습니다만 이런 실체 개념으로 2천년동안 지구를 지배해왔으나 이런 허구적 개념으로는 현대의 문제를 절대로 해결할 수없기에 새로운 존재론, 즉 생성론을 구축하여야할 것입니다)

따라서 신을 제1원인의 실체, 즉 플라톤의 이데아로 간주하는 기독교는 피조물인 인간에 대해 초월적인 지위에서 일방적으로 지배할 권한을 갖게되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수직적 계서질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런 질서는 근대에 이르러 인간이 인간과 자연을 무자비하게 지배하게되는 제국주의 또는 인간중심주의의 근거를 제공합니다. 또한 선과 악 또한 실체로 간주하기때문에, 즉 악은 박멸해야할 실체이기때문에 중세의 대표적인 악인 마녀를 불에 태워죽이는 끔찍한 행위를 도리어 정의로 간주하는 비정상의 행태를 보입니다. 따라서 만일 바울이 그리스,로마가 아니라 인도의 불교문화를 찾아 동쪽으로 나아갔다면 상호의존의 연기법과 얽힘의세계로 이루어졌다는 화엄사상, 즉 상입상즉의 사상을 예수의 해방과 구원의 사상에 결합시켰더라면 오늘날 예수의 가르침은 어떻게 구체화되었을까요?

이에대해 BuddistChristian이 하나의 해답을 제시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아리안족이 동진하여 인더스강에 독자적인 인더스문명을 개척하여 다신교인 힌두교를 낳았으며 이후 부처라는 걸출한 각자를 만나 힌두교의 존재론과는 전혀 다른 종교인 불교를 성립하게 됩니다. 힌두교와 불교의 큰 차이는 힌두교는 실체론에 근거한 사상이고 불교는 비실체론,즉 생성론,사건론,과정론 에 근거한 자연철학이라할 것입니다. 하여 힌두교는 범(Brahman)아(Atman)일여에서 보듯이 불교와 유사하게 보입니다만 힌두교는 브라흐만과 아트만을 고정불변의 실체로 보고 불교는 존재를 실체가 아니라 사건들의 연기적 과정이라고 보고 있으므로 모든 존재는 연기법에의해 내재적으로 서로 생성과정에 참여하기에 우주의 뭇 존재는 연기로 촘촘히 얽혀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존재는 상호 내재하므로,즉 상입하기에 서로 남남이 아닙니다(즉 자기언급self reference). 또한 같이 참여하기에 서로 등가적 존재로서 평등하므로, 즉 상즉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세계관에서는 지배복종의 계서적 구조는 사라지고 오직 수평적 상호관계만 존재하므로 강자에 의한 약자를 배제하는 변증법이 아닌 강자와 약자가 중첩하여 제3의 대안을 제시하는 창발적 중도법을 따르게 됩니다. 하여 비록 아리안문명이 인도에 다신론과 실체론에 기반한 힌두교를 낳았으나 그럼에도 석가모니라는 위대한 각자를 만나 불교라는 비실체적 존재론을 통해 아리안의 실체는 허상에 불과하고 연기론이 실상의 법칙임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이제 인도불교가 중국에 미친 영향을 알아 보도록하겠습니다. 인도의 대승불교가 중국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연기사상외에 유가행 중관학의 공사상과 세친의 유식사상 그리고 화엄사상이 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인도 고승인 달마대사가 중국 남부 양나라에 들어갔을 당시 중국불교는 호국불교 또는 기복불교로 전락되어 부처 본연의 가르침이 쇠락되어 버렸으며 이를 알고난 달마태사는 부처 가르침을 신도들이 직접 깨닫게 하기위해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수행을 하게됩니다. 하여 달마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중국은 자신의 고유사상과 융합 convergence 또는 자신의 고유사상으로 격의 transformation한 중국만의 독자적인 선불교를 만들게 됩니다. 다시말하면 중국의 고대 유교의 심성론은 심과 성 (본성,자성)은 일치한다고 (심즉성) 보았으며 또한 본성은 하늘로 부터 부여받았기때문에 부지런히 수행을 하여 마음의 덕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한편 인도에서는 불성은 부처가 될 가능성을 의미하기에 자신이 불성의 가능성이 있음을 깨닫고 이후 수행을 통해 불성을 깨우쳐 우주의 실상을 깨닫는다는 것을 골격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여 중국의 심즉성 사상과 인도의 심즉시불 사상(이는 이(불)사(심)무애사상에도 나타납니다)은 서로 유사성을 띄기에 인도의 점수돈오 사상이 중국에서 선불교로 정착하게되는 계기가 됩니다. 결국 인도의 점수돈오 사상이 중국의 심즉성 사상에 힘입어 선불교로 격의하게되었다할 것입니다. 다만 차이점은 인도 불교는 불성을 여래장처럼 ‘가능태’로 보았기에 요가처럼 점수의 수행이 필요하였다고 본 반면 중국은 본성,즉 자성을 ‘현실태’로 보았기 때문에 찰나심에의해 돈오할 수있다고 보았습니다. 즉 중국인들은 불성이 현실태이기에 즉시 알아차리기만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중국 선불교는 남종선과 북종선으로 나뉘게 되는데 남종선의 좌장인 신수대사는 인도불교처럼 수행을 통해 본성을 깨달아야한다고 본 반면 6조 혜능은 본성 또한 본래무일물이므로 수행한다고 반드시 알아차릴 수있는 것만은 아니기에 수행이 의미없고 오직 찰라의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이는 위에서 본 중국 전통의 심즉성 관점을 온전히 따르고 있는 입장이라할 것입니다. 즉 신수는 점수돈오이고 혜능은 돈수돈오라할 것인바, 이런 관점은 기존의 돈오점수와 돈오돈수 논쟁과는 내용이 다른 문제이니 오해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한편 달마의 영향으로 중국인은 종래의 심성론을 불교적인 심즉시불 사상으로 다시 격의하게 되었는데 이를 달리 말하면 심즉성과 심즉시불은 같은 의미라고 보았으며 결국 마음과 우주 본성은 일치한다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금나라로부터 송나라가 남송으로 쫒겨나가게 되자 주희는 중화의 부흥과 사회기강의 확립을 부르짖게 되는데 이의 근본원인을 불교의 반사회성에 있다고 보았기에 불교를 척결하고 새로운 유교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았는데 이 것이 신유학, 즉 주자학, 성리학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도는 불성을, 중국은 자성을 본성으로 보고 주객미분 이전의 본래면목이라하여 심즉성과 심즉시불 사상에 의해 본성과 마음을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희는 우주의 본래면목(본성)을 주객을 번별하는 인간의 도덕성으로 격하시킨 후 성과 심은 일치하지가 않다며 이를 이원적으로 분리시킨후 성이 심을 수양하는 존재, 즉 (도덕)성 의 함양을 위해 성이 심을 양성해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성이 아닌 심의 덕을 쌓기위해,즉 천명을 받기위해 심을 수양해야한다는 유학의 정신과도 배치된다할 것으로 주희의 신유학은 마음과 분리된 성중심의 실체론적 계몽주의라할 것으로 뒤에서 보듯이 실체론이 갖는 문제점을 모두 노정하고 있다할 것입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그는 성을 도덕성으로 축소시킨 다음 이를 ‘성’이 아닌 ‘리’라고 칭하였으며 성으로부터 분리된 ‘심’, 즉 마음을 지닌 존재를 ‘기’라고 격하시켰습니다. 이는 불교의 ‘이’와 ‘사’의 사상의 본 뜻(자연과 인간의 일치!)을 완전히 배격해버리고 단지 형식적 이원적 구조만을 흉내낸 것에 불과합니다. 즉 그는 불교의 우주 원리를 인간의 윤리로 도용한 것이라할 것입니다. 하여 그가 불교의 우주원리인 이사무애를 형식상 차용하였지만 실상은 이를 이용하여 인간사회의 윤리기강을 잡으려하였기에 실제로는 그는 이사무애,즉 이기무애가 아닌 이선기후를 추구한 것이라할 것입니다. 즉 중화를 중심으로 그틀의 가치나 제도를 보존하기위해 타 민족을 도덕적으로 계몽하고 훈육하고자한 것에 불과하다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는 불교의 존재원리를 인간의 규범(도덕)원리로 격하시킨 후 선험적인 ‘리’에 경험적인 존재인 ‘기’가 복종해야 사회질서가 살아난다는 지극히 인간중심주의, 중화중심주의의 폐쇄적인 사상으로 유교를 전락시켰는데 이는 서구의 실체론 못지않게 리를 실체화시켜 못 존재를 그에 복종시키는 계서적 구조(3강5륜), 경직성(예론), 폐쇄성(중화사상), 인종차별(호론과 낙론) 등을 벗어나지 못하였기에 중국은 근대의 과학화, 민주화, 산업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퇴행하게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세계 문명은 항상 상호 작용에의해 생성된다는 것을 알 수있으며 나아가 실체론적 존재론(유일신사상과 신유학등)으로 무장한 문명은 개방성, 역동성, 창발성이 부족하기에 새로운 문명의 대안을 찾는 중도적 자세가 결여되어 반자연, 반인간, 반문명으로 흐른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있다할 것입니다.

ㅡ하여 바울이 서쪽으로 가지않고 동쪽으로 갔거나, 달마가 동쪽으로 가지않고 서쪽으로 갔으면 인류문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수, 2019/04/0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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