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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에서 표출된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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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에서 표출된 민심

익명 (미확인) | 화, 2016/06/14- 17:11

20대 총선결과를 만들어낸 민심은 어떤 것이었을까.

14일,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사단법인 다른백년과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가 주관한 ‘여론조사로 살펴본 20대 총선결과’ 발표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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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서는 다른백년 리서치팀의 신승배 교수, 정완규 교수, 강흥수 센터장 등이 분석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번 여론조사는 20대 총선 이후 최초의 전국 조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신승배 교수는 정치효능감, 공동체의식, 기관만족도, 경제상황 인식, 정치상황 인식 등 다양한 변수에 대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정완규 교수는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유권자를 정당별 지지자로 구분한 뒤 각 지지자별 정당지지 이유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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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흥수 센터장은 “오늘은 기초적인 분석결과만을 공개했지만, 향후에 보다 심층적인 분석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여론조사분석결과는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디앤알(data & research)에 의뢰해 20대 총선 직후인 4월28일∼5월2일까지 실시됐다. 지역, 성, 연령별로 비례할당방식으로 표본을 추출했으며, 표본수는 전국 만 19∼69세 성인 남녀, 1173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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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분석결과와 분석보고서는 조만간 다른백년 홈페이지에 공개될 예정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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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이상 노년층 유권자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게 되는 이번 총선에서 종합편성 방송의 편파방송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종편 시청자의 40%가 60대 이상 노년층이기 때문이다.

JTBC를 제외한 TV조선과 채널A, MBN은 뉴스보도와 각종 시사토크 프로그램에서 여당을 두둔하고 야당을 깎아내리는 불공정한 방송과 보도를 반복해서 내보내고 있다. 특히 총선이 다가오면서 그 양상이 심해지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큰 이슈가 됐던 새누리당의 윤상현 막말 파문 때 종편 출연자들은 여당의 표 걱정을 하는 가하면 ‘술을 먹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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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지난해 5월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의 막말 사태 때 종편 출연자들이 정 의원의 정치관을 들먹이며 맹공을 가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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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공천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에 대해서도 더민주당에 대해서는 친노 패권주의를 청산해야한다며 새누리당의 입장과 같은 주문을 하는가 하면, 공천이 마무리되자 친노가 아닌 친문으로 재편됐다며 야당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부각시켰다.

반면 새누리당에 대해서는 친박과 진박을 거론하면서 패권주의란 말을 쓰지도 않을 뿐 아니라 마치 비박이 친박에 비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보도가 대부분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송통신심의위 산하 20대 총선 선거방송심의원회에 최근 3개월 동안 접수된 심의 안건 26건 가운데 14건이 종편 프로그램이었다. 이 가운데 2건이 법정제재, 7건은 행정지도를 받았지만 종편의 편향성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난 19대 총선 당시는 종편 출범 초기였기 때문에 시청률이 미미했지만 현재는 당시보다 적게는 2배에서 4배까지 시청률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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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시청자 가운데 60대 이상은 40.13%로 30대 8.66%, 40대 15.66%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2015년 9월 기준, 황성연(2015.10)-종합편성 채널의 시청률 성과와 전망)

그런데 종편의 주시청자층은 우리나라의 유권자 비율하고도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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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새로 투표권을 얻는 19살 유권자 67만여 명을 포함시키더라도 20-30대 유권자는 천500만 명으로 19대 총선 때보다 60만 명 줄어든 반면 60대 이상 유권자는 약 158만 명 늘었다. 60대 이상 유권자의 비율도 전체의 23.2%로 40대를 처음으로 앞질렀다.

또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 1월 발표한 언론수용자 의식조사를 보면 60대 이상은 TV에 대한 매체 의존도가 74%로 40%~50%대에 머문 다른 연령층보다 훨씬 심한 것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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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사실을 종합하면 우리나라 유권자 가운데 비율이 가장 높은 60대 이상의 경우 종편을 비롯한 방송의 편향성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상현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주시청층이 중장노년층으로 돼 있는 종편 방송이, 한 채널도 아니고 여러 채널이 동시에 공정성에서 어긋나는 방송을 지속, 반복, 강조하게 됐을 경우에 그 결과는 뻔한 것”이라며 권력을 비판하지 못하는 방송이 유권자에게 미칠 악영향에 대해서 우려했다.

지난 2012년 19대 총선에서 60대 이상의 투표율은 68%로 43%에 머문 20~30대나 52%를 기록한 50대보다 훨씬 높았다.

목, 2016/03/2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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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곧 누군가가 유리천장을 깨길 바란다.”

미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패배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힐러리의 패배는 여러 가지 충격을 남겼지만 무엇보다 여성들의 좌절이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그랬겠지만 한국 여성들에게도 커다란 상실감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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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이용자들은 이런 말들을 남겼다. “아마 지구상에서 살아있는 정치하는 여자들 중 가장 대단한 여자일 텐데 그런 여자가 어디에나 있는 쓰레기 강간범 남자한테 진다.”

왜 패배했을까?

그런데 이상하다.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 투표자들 역시 힐러리에게 열광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2012년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55%의 지지율을 보였던 여성들은 힐러리에게는 54%만 지지를 보냈다. 근소하지만 오히려 떨어진 셈이다. 반면 여성 비하 발언을 일삼고 성폭행과 성추행 혐의까지 받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여성 유권자 지지율(42%)은 2012년 공화당 미트 롬니 후보(44%)와 별 차이가 없었다.

백인 여성은 아예 반대였다. 53%가 트럼프를 찍었고, 43%가 힐러리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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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출구조사 자료. 파란색은 힐러리, 붉은색은 트럼프 지지를 의미한다. (이미지 출처: CNN)

여성뿐만이 아니다. 힐러리는 애초에 지지받을 것으로 예상했던 18~29세의 젊은층, 연소득 5만 달러 이하 저소득층, 흑인과 히스패닉 유권자층에서 오바마 때마다 지지율이 더 떨어졌다.

미국의 진보 성향 매체 <뉴리퍼블릭>은 이런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트럼프의 여성 비하보다 가정형편을 더 걱정하는 극빈층 여성들에게 힐러리의 셀리브리티 페미니즘은 들리지 않았다. 레이디 가가, 케이티 페리, 레나 던햄, 셰릴 샌드버그를 내세웠지만 이런 유명 인사들 때문에 노동 계급 여성들이 힐러리에게 투표하러 가지는 않았다. 유리천장을 깨는 것이 가족을 먹여 살리지는 못한다.”

패배에 대해 각종 분석과 말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힐러리는 지난 12일 대선 패배 원인을 뒤늦게 미 연방수사국(FBI)의 e메일 재수사 공개 탓으로 돌리고 나섰다.

수 많은 경합주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었지만 e메일 재수사 때문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힐러리의 지지자들은 트럼프 당선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선거인단 투표에서 트럼프 표를 힐러리로 바꾸자는 청원까지 하고 있다. 힐러리 패배의 진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흙수저 출신의 우등생

힐러리는 1947년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영국 웨일즈 출신 이민자였던 아버지는 작은 사업체를 운영했다. 편견에 가득 찬 인물로 부인과 자식들에게도 매우 가혹하고 비정한 인물이었다고 전해진다.

힐러리는 딸에게 “겁쟁이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힐러리가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 대법원 판사가 될 것이라고 믿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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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dad, Hugh, was a World War II Navy veteran—and a lifelong Republican who worked hard and wasted nothing. He ran a business where he designed, printed, and sold draperies.

힐러리는 어렸을 때 우주비행사를 꿈꾸기도 했다. 그녀가 미 항공우주국(NASA)에 ‘어떻게 하면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보냈지만 ‘여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본래 힐러리는 1964년 대선에서 ‘급진적 보수주의자’로 유명한 배리 골드워터를 지지하기도 하는 등 공화당 지지 성향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등에 회의를 느끼면서 민주당 지지 쪽으로 돌아선다.

명문 웰즐리 여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힐러리는 학생회장으로 당선돼 졸업식 때 학생 최초로 연설을 맡기도 했다. 상투적인 졸업 연설 대신 여성·흑인 민권 문제 등에 진보적인 입장을 피력하면서 라이프지에 소개되는 등 주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인생의 멘토라 할 수 있는 매리언 라이트 애들먼을 만난다. 애들먼은 미시시피 주 최초 흑인 여성 변호사가 된 인물이다. 클린턴은 애들먼을 본받아 평생 아동 권익 옹호에 관심을 쏟게 됐다고 한다.

가장 영향력 있는 퍼스트레이디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

대학 졸업 뒤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한 힐러리는 빌 클린턴을 만나 교제하게 된다. 1974년 빌 클린턴은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된 닉슨 대통령의 탄핵 조사단에서 일하도록 추천받았지만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여자친구인 힐러리를 대신 추천했다.

탄핵조사단에서 경력을 쌓은 힐러리는 뉴욕이나 워싱턴 DC의 일류 로펌에서 일할 수도 있었지만 빌을 따라 아칸소주로 갔다.

두 사람은 1975년 결혼했다. 빌은 1976년 아칸소 주 검찰총장이 됐고, 힐러리는 아칸소주의 유명한 로펌인 로즈 법률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이 회사의 최초 여성 변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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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Bill and Hillary Clinton celebrate Mr. Clinton’s victory in the Democratic gubernatorial runoff in Arkansas. As first lady of Arkansas, Ms. Clinton was deeply involved in efforts to bolster the rigor of academic offerings in that state’s public school system. (사진 출처: AP)

1982년 남편이 아칸소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힐러리는 그동안 유지하던 자신의 ‘로댐’이란 성을 ‘클린턴’으로 바꾸기로 한다. 아칸소의 일부 유권자들에게 심한 불쾌감을 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결혼 전의 성을 고집하는 것보다 빌이 주지사가 되는 것이 더 중요했다.

1992년 빌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힐러리는 최초의 석사 학위 이상을 가진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과거 퍼스트레이디들은 보통 백악관 동관(east wing)에 사무실을 뒀지만 힐러리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서관(West Wing)에 집무실을 뒀다. 대통령 선거 때 빌의 캠프는 “하나를 사면 하나는 공짜”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기도 했는데 이후 그녀는 실제로도 가장 영향력 있는 퍼스트레이디로 평가받았다.

1993년 빌은 힐러리에게 국민의료보험 개혁을 맡겼다. 힐러리는 고용인이 피고용인의 의료보험을 보장하는 내용의 건의안을 만들었지만 민주당이 다수당이었음에도 부결됐다. 이 과정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 이하로 추락했다.

빌의 르윈스키 추문과 탄핵이라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전통적인 퍼스트레이디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여성·육아·보건의료 정책에 관여하는 힐러리에 대해 보수주의자들은 증오에 가까운 반감을 보이기도 했다.

정치인으로서 홀로서기는 빌의 대통령 임기 말인 2000년 뉴욕의 상원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훗날 두고두고 비판거리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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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의원 재선에 성공하고 2008년에는 대선 출마를 선언, 유력한 후보로 꼽혔으나 버락 오바마라는 뜻밖의 복병을 만나 경선에서 패하고 만다.

오바마는 새 정부의 국무장관으로 클린턴을 지명한다. 국무장관 시절 공용 업무에 개인 e메일을 사용한 문제는 두고두고 그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2016년 힐러리는 버니 샌더스의 추격을 힘겹게 따돌리고 민주당 대선 후보로 다시 지명된다.

힐러리는 왜 비호감의 대명사가 됐나

힐러리의 정치행보를 돌아보면 오랫동안 대중의 관심밖에 벗어난 적이 없을 정도로 활동한 것 같지만, 그렇다고 눈에 확 띄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딱히 이루어낸 것도 없으면서 내가 여성이니 나를 찍으라고 말하는 것 같다.”

미국에서 힐러리를 싫어하는 정서는 퍼스트레이디 시절부터 있었지만, 올해 대선 출마를 즈음해서는 더욱 심해졌다. 힐러리와 트럼프를 두고 ‘비호감 후보의 대결’이라 칭하거나 “근래 들어 이렇게나 미움 받은 민주당 대선 후보는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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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s://www.americarisingpac.org/)

힐러리에 대한 비호감은 그의 어중간한 정책이나 태도 때문일까? 배우 수잔 서랜든은 선거 직전 힐러리의 정책 때문에 그를 지지하지 않으며 녹색당 질 스타인 후보의 당선을 지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서랜든은 “난 여자란 이유로 대통령을 뽑지 않는다. 그보다 생각해야할 것들이 훨씬 많다”면서 힐러리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힐러리는 최저 임금 15달러를 지지하지 않는다. 힐러리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지지한다. 힐러리는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에 대한 입장이 없다. 힐러리는 GMO 표기에 반대한다. 힐러리는 대형 은행 해체에 반대한다. 힐러리는 로비스트들에게 선거 자금을 받는다. 힐러리는 구속력 있는 기후 조약에 반대한다. 힐러리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 군사 지원을 지지한다.”

처음 퍼스트레이디로 백악관에 들어갔을 때 힐러리는 자신감 넘치는 진보주의자였지만 1994년 중간선거에서 패한 뒤 지나치게 조심하고 과도하게 타협하는 캐릭터로 점차 변모해갔다. 빌 클린턴 시절 주춧돌을 놓은 신자유주의 노선은 월가의 금융자본을 살찌우고 실리콘밸리를 풍요롭게 만들었을지는 모르지만 서민과 노동자들의 삶은 더 피폐해졌다.

그런 와중에 힐러리는 골드만 삭스에서 막대한 강연료를 받고, 기업들이 뭉칫돈을 쥐어주는 ‘슈퍼팩’으로 선거를 치렀다. 그런 반감은 여지없이 부메랑이 됐다.

올해 대선에서 저소득층, 시골과 소도시 유권자들의 지지율은 2012년 오바마 때보다 현저하게 낮아졌다. 저학력 백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버려진 폐공장들이 즐비한 미국의 전통 공업지대인 ‘러스트 벨트’ 5개 주들은 모두 트럼프를 선택했다.

힐러리에 대한 사람들의 반감은 단지 어중간한 정책 때문만은 아니다. 무언지 모르게 의뭉스스러워 보이는 그의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의 지위 향상을 일군 대표 선수라고는 하지만 때론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을 했다. 힐러리는 1992년 빌이 대선에 나섰을 때 “집에서 쿠키 굽고 차 마시는 대신 경력을 택했다”고 발언해 많은 전업주부들의 원성을 샀다.

30여년 전 변호사 시절에 여아 성폭행범을 유죄인 걸 알면서도 감형시켜준 걸 자랑하는 육성 테이프가 공개돼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오랜 기간 아동과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운동을 해 왔다는 그녀의 경력에 먹칠을 하는 꼴이었다.

말도 자주 바꿨다. 힐러리는 동성결혼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동성결혼이 화제가 되자 2013년 이후로 지지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TPP 역시 찬성하는 입장이었지만 뒤늦게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e메일 논란에서도 사건 그 자체도 문제였지만, 거짓말이 자주 들통 나 신뢰성을 잃었다. 힐러리가 대선 경선 기간 동안 ‘좌클릭’ 행보를 보였지만, 샌더스 돌풍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변화의 아이콘에서 안정과 기득권의 표본으로

미국 대선이 트럼프의 승리로 끝나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스에 한탄의 기고를 내놓았다. “사실 우리가 사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우리는 동료 시민들이 고위직에 앉을 자격이 없고, 성격적으로 건강하지 않고, 너무 무섭지만 우스꽝스러운 후보에게는 결국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몰랐을까?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를 궁지에 몰아넣기까지 했던 샌더스 돌풍, 공화당의 유력 주자들을 거의 패대기치다시피 하며 대선 후보 자리를 손에 넣은 트럼프의 돌풍은 둘 사이의 먼 거리만큼이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도무지 반응 없는, 답답한 기존 정치체제를 뒤집을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오바마는 2008년 대선에서 변화에 대한 희망을 보여줬지만 지금와 돌이켜 보면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 반대로 공화당이 상하원을 잡도록 해 주기도 했지만 나아진 건 없다. 결탁한 정치 엘리트와 자본가들은 세상을 바꿀 마음이 없다.

“워싱턴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실현되지 않았다. 미국의 국민들은 본인들을 그토록 경멸하는 소수 특권층에게 조국을 빼앗겼다고 느끼고 있으며 양극화는 점점 더 심화되고, 중산층의 근심은 날로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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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샌더스는 반자본주의 기치를 내걸고, 상위 1%와 월가 자본을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역시 세계화와 자유무역협정, 금융엘리트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샌더스는 소액기부를 통해 선거자금을 모집했고, 트럼프도 각종 기업과 로비스트로부터 선거자금을 받은 힐러리보다 훨씬 적은 액수의 선거자금으로 선거를 치렀다.

칼럼니스트 박권일은 이렇게 말한다. “이번 미 대선에서는 여러 지향들이 경합했고, 여러 이유에서 어떤 지향이 제도적 승리를 거뒀다. 그 지향을 한 마디로 말하면 현상유지가 아니라 변화였다.”

트럼프도 힐러리도 이전 대선의 민주당·공화당 후보보다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지만, 힐러리가 훨씬 더 많은 표를 잃었다. 그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진짜 위험한 정치인은 힐러리같은 정치인”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당신이 미국인이라면 누굴 뽑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얘기한다.

“트럼프요. 저도 트럼프가 무섭습니다. 하지만 진짜 위험은 힐러리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회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는데, 트럼프는 그걸 깨뜨립니다. 만일 트럼프가 이기면 공화당과 민주당은 모두 기본으로 돌아가서 스스로를 다시 생각해볼 겁니다. 아마도 거기서부터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힐러리 스스로도 많은 변화를 써 왔다. 그녀는 자서전 <살아있는 역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퍼스트레이디나 상원의원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민주당원이나 변호사, 여성 인권 옹호자로 태어나지도 않았다. 나는 20세기 중엽에 한 미국인으로 태어났다. 그 시기에 미국에서 태어난 것은 행운이었다. 과거 세대의 미국 여성들이 얻지 못했고 오늘날에도 세계의 많은 여성들이 감히 상상조차 못하는 선택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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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힐러리는 어느새 변화보다는 안정과 기득권의 아이콘이 되고 말았다. 변화를 요구하는 오늘날 미국의 시대정신과는 점점 멀어졌다.

오늘날 한국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다음 대선을 두고 모두들 ‘변화의 아이콘’이 되고 싶어 하겠지만, 이미 그들은 시민들의 마음속에서는 ‘그 나물의 그 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는 않는지.

힐러리 캠프의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잘못한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하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그녀는 잘못된 메신저였고, 모두들 얼마나 노동자 계급들이 얼마나 열 받았는지 잘못 판단했다.”

수, 2016/11/1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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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 임종석 비서실장, 서훈 국정원장, 조국 민정수석, 조현옥 인사수석, 윤영찬 홍보수석, 이정도 총무비서관,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권혁기 춘추관장이 인선되었다. 이러한 인선은 각기 ‘컨셉’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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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첫 인사 후보자로 왼쪽부터 이낙연 국무총리, 서훈 국정원장, 임종석 비서실장을 발표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개혁 방향 담은 신선한 인사

► 이낙연 국무총리는 호남 총리 및 안정감있는 총리를 상징한다.

► 임종석 비서실장은 김기춘 비서실장에 비하면 30년 정도 젊은 비서실장이다. 그리고 비문(非文) 비서실장의 컨셉을 담고 있다.

► 서훈 국정원장은 국정원 출신을 통해 국정원 개혁을 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 조국 민정수석은 모두가 알고 있듯, 검찰개혁 의지를 표상한다. 검찰출신이 아닌 진보성향 법대 교수이다. 동시에 대한민국 법조는 ‘서울대 법대’ 출신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데, 조국 민정수석은 서울대 법대 출신이기에 검찰-판사-법조계에 두터운 사적 인맥을 갖고 있다. 두터운 사적 인맥은 순기능-긍정적 에너지로 쓰일 수 있다고 본다.

► 조현옥 인사수석은 ‘여성-성평등 내각’에 대한 의지를 담고 있다. 한국정치사에서 청와대 인사수석이 여성인 경우는 처음이다.

► 윤영찬 홍보수석은 네이버 출신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언론 인맥과 감각을 갖고 있다. 그리고 기획력과 기술력을 동시에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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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조국 민정수석, 조현옥 인사수석, 윤영찬 홍보수석, 이정도 총무비서관,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권혁기 춘추관장

► 이정도 총무비서관은 지방대를 졸업한 비(非)고시 출신, 대표적인 ‘흙수저’ 공무원이다. 문재인 후보와 일면식도 없는, 예산분야에 오래 있었던 공무원이다. ‘문고리 권력’을 휘두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력위주로 인재를 채용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정통 관료출신이다. 기획재정부에서 오랜 시간 근무했고,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출신이다. 정책적 감각이 있는, 그러나 원만한 성품을 갖고 있다. ‘유능한 관료’를 존중하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 권혁기 춘추관장은 문재인 캠프 및 선대본 대변인실 출신이다. 동시에 당직자 출신이다. 오랜 기간의 동고동락했던 ‘당’(출신)에 대한 존중 메시지를 담았다고 본다.

현재까지의 인선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체로 ‘뭔가를 해보려는’ 의지가 느껴지는 인선이다. 매우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완상 對 임동원

다만, ‘잘해 보려는’ 마음가짐과 ‘실제로 좋은 결과는 만드는 것’은 완전 별개이다. 심지어 막스 베버라는 학자는 ‘신념윤리’와 구분되는 ‘책임윤리’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 정도였다. ‘좋은 취지’와 ‘좋은 결과’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1993년 2월 김영삼 정부의 출범은 한국정치사에서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왜? 1961년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이후에, 32년 만에 등장한 ‘최초의 문민정부’였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출범 직후부터 ▴하나회 해체 ▴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 등을 통해 임기초반 한때 지지율이 90%에 달했다.

김영삼은 부총리 위상을 갖는 ‘통일원’(*지금의 통일부) 장관으로 한완상 교수를 임명했다. 한완상 교수는 7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 유명한 분이었다. 근데, 그러다보니 ‘보수 언론의 집중적인 비판과 견제’를 받았다.

한완상 (부총리겸)통일원 장관이 했던 가장 기억에 남는 정책이 이인모씨 등의 ‘비전향 장기수’를 북송(北送)한 것이다. (*비전향 장기수란, 한국전쟁 및 북에서 파견된 남파간첩 출신인데, 전향을 거부한, 장기수들을 의미한다.)

한완상 부총리겸 통일원 장관은 ‘진보 색깔’이 강한 분이어서, 보수 언론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고, 그래서 결국 단명(短命)한 장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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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은 김영삼 대통령과 함께 회의장에 입장하는 한완상 통일원장관(오른쪽 첫번째), 오른쪽 사진은 김대중 대통령과 임동원 통일부 장관

반면, 1998년 2월에 출범한 김대중 대통령은 통일부 장관으로 ‘국가정보원 출신’ 관료를 임명했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그래서 당시 통일운동단체들은 통일부 장관 임명 반대 운동을 하기도 했다.

바로 그 통일부 장관이 임동원 장관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의 철학-가치와 비슷하지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했다. 그렇게 물색의 물색 끝에 발견한 사람이 당시 국정원에서 일하고 있는 임동원 장관이었다.

김영삼 정부의 초대 통일원 장관이었던 한완상씨와 김대중 정부의 통일부 장관이었던 임동원씨의 비교는 매우 의미심장한 교훈을 준다.

김영삼-한완상 조합은 진보성향의 통일부 장관이었기에, ‘보수파-반대세력의 정서적 반감을 극대화해서’ 실질적인 개혁을 하는데 어려움으로 작용하게 됐다.

반면, 김대중-임동원 조합은, ‘국정원 출신의, 햇볕 정책 지지론자’였기 때문에 반대-보수파가 반대할 명분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이 중에서 무엇이 더 ‘실질적인 개혁’을 위해 바람직한 선택일까? 나는 김대중-임동원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강금실의 사례

검찰개혁-법조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의 연장으로, 사법연수원 기수로 한참 젊은 축에 속했던 강금실을 법무부 장관으로 인선했다. 그러자 법무부-검찰에 있던 ‘기수가 높은’ 선배그룹들이 집단사퇴하며 항의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마련됐던 자리가 ‘평검사와의 대화’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탈권위주의-수평적 리더십을 중시 여겼기에 평검사와 격의 없이 대화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들과 대화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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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가오-권위’가 있어야 한다. 가오-권위는 그 자체 선•악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 없고, 오히려 가오-권위를 수단으로, 선용(善用)했어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 목적’은 잊어버리고, ‘수단-방법-소통방식’에 연연했다. 결과적으로, 참여정부는 집권초기에 검찰개혁의 동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탈권위주의-수평적 의사소통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수단과 목적이 뒤엉키면 안된다. 극단적으로 대비해서, ‘탈권위주의적 의사소통을 통해 + 반대파를 결집시키며 + 무능하게 + 검찰개혁을 실패하는 것’보다는 ‘권위주의적 의사소통을 통해 + 반대파의 결집을 최소화시키며 + 유능하게 + 검찰개혁을 성공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반대파 달래는 지혜롭고 전략적인 인선 

이제, 논의를 정리해보자. 한완상-임동원-강금실 인선의 교훈은 무엇인가?

이를 정리해보면, ‘문화는 보수적으로, 컨텐츠는 중도진보적으로’ 접근해야 ‘성공하는 개혁’에 더욱 다가설 수 있다. 같은 말의 다른 표현으로, ‘내각의 리더는 보수적으로, 컨텐츠는 중도진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조국 교수의 민정수석 임명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개혁’의 의지를 만천하에 천명했다. 그러나, ‘현직 검찰’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했을 수 있다.

그럼,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되’ + ‘검찰 내부에서 덕망이 높고, 존경받고, 연배도 지긋한 검찰출신’으로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의 의지가 높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들은 없다. 그리고 그걸 모르는 검찰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정서적 반감’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정서적 반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명분’을 이쪽이 제공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마지못해’ 검찰개혁을 수용하는 모양새라도 취할 수 있고, 검찰내부에 있는 개혁세력이 운신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질 것이다.

보수적 정서를 고려해서, 반대파의 최소화를 위해, 보수적 방법을 채택하되, 실제로는 진보개혁적 성과를 내는 것. 바로 이 지점이 김대중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정치력’의 진짜 핵심이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는 민주정부 3기이다. ‘기분 좋은-섹시한’ 내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로 ‘성공하는’ 민주정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자면, 반대파의 비판과 견제를 상수로 간주하면서도, 실제로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 대통령이 모범적으로 보여주었던 ‘지혜로운, 전략적 인사방법’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직선의 정치학’이 아니라, ‘곡선의 정치학’이다.  

월, 2017/05/1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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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 새누리당 예비후보(청주 서원구)의 배우자가 1985년 한 후보가 공직자로 재직하던 시절 농촌에 위장 전입해 농지를 매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해당 농지는 1985년 이후 적어도 10배 이상 가격이 상승했다. 한대수 예비후보는 배우자의 위장 전입을 인정했지만 관행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대수 후보 감사관 시절, 정부가 ‘투기 근절’ 외칠 때 배우자는 ‘농지 매입’

한대수 후보의 배우자 최 모 씨는 1985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영동리 구룡동 일대 8필지의 땅을 매입해 지금도 소유하고 있다. 면적은 모두 26,000m2 이고 지목은 논과 밭(전답)이다. 하지만 현장을 확인한 결과 오랫동안 방치돼 농사를 지은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1985년은 한대수 후보가 감사원 감사관으로 재직하던 시절이다. 당시 경기도 광주시는 땅값이 급등해 정부가 토지거래신고제를 발동한(1984년) 전국 26개 시군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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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 후보 배우자 최 씨가 매입한 8필지의 땅은 1990년 공시지가가 처음 발표될 때 1m2 당 1만 원이었는데 2015년 10만 원 가량으로 올랐다. 10배 가량 오른 셈이다. 최 씨가 매입한 땅에 인접한 다른 땅은 형질이 전답에서 대지로 변경돼 현재는 1m2 당 5-60만 원 이상을 호가한다고 영동리 주민은 말했다.

한 후보 배우자, 농지 매입 위해 ‘위장전입’

1985년 당시 농지 관련 규정에 따르면 외지인의 농지 매입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었고, 통작 거리(농지에서 거주지까지의 거리)는 4km로 제한돼 있었다. 당시 한대수 후보는 서울에서 감사원 감사관으로 재직하고 있었고, 배우자도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배우자 최 씨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광주시 퇴촌면에 농지를 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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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부등본에는 한대수 후보자의 배우자 최 씨가 퇴촌면 농지를 매입할 당시 주소지로 ‘퇴촌면 영동리 000번지’가 기재돼 있다. 하지만 해당 주소지에 사는 실 거주자 이 모 할머니는 최 씨도, 한대수 후보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에 70년 이상 살아온 노인회장도 역시 최 씨를 모른다고 말했다. 마을 이장은 “주민들이 주민등록등본을 떼면 모르는 사람이 전입이 돼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이런 일은 위장전입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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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 후보자, ‘위장 전입’은 인정…하지만 ‘관행’ 주장

한대수 후보는 이와 관련해 “노후에 농사를 짓기 위해서 매입했다”며 “실제로 농사를 잠시 짓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위장전입과 관련해서는 “당시에는 다들 그렇게 농지를 매입했다”며 배우자의 위장전입 사실을 인정했지만,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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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인들’이 점령한 퇴촌면 영동리 구룡동 계곡 땅

뉴스타파는 한대수 후보의 배우자가 위장전입을 통해 매입한 전답 인근의 땅은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모두 19필지의 토지 등기부등본을 분석했다.

19필지 중 2필지를 제외하고 17필지를 광주시 외부에 살고 있는 ‘외지인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가장 많은 8필지는 한대수 후보의 배우자 최 씨의 소유였고, 5필지는 모 지방언론사 사주의 소유였다. 역대 소유자 중에 지상파 방송사 기자가 발견되기도 했다. 나머지 땅도 모두 서울 강남구 등 외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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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6/03/1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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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정부 초기의 동아시아 및 한반도 정책을 전망하기 위해 주요하게 조명해야 하는 요소는 ‘인물’이다. 더군다나 트럼프는 당의 지원을 거의 받지 않고 ‘개인기’에 의존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나 유대계의 입김에 좌우되는 미국 대외정책의 근본 틀까지 넘어서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공화당의 기존 정책노선에 얽매일 필요는 없는 조건이다.

특히 트럼프는 핵심 지지층의 바람과 거리가 있는 정책을 펴도 용인될 정도로 상대적인 자율성을 획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트럼프 자신과 외교안보 참모진이 중국과 북한, 한국‧일본 등을 보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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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한반도 정책을 가늠할 수 있는 외교안보라인 주요 인물. 왼쪽부터 플린 국가안보보좌관, 틸러슨 국무장관, 매티스 국방장관, 폼페오 CIA국장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의 외교안보 진용 구성에서 나타난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대중‧대북 강경파를 기용했다.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내정자, 마이크 폼페오 중앙정보국(CIA) 국장 내정자 등은 중동 및 동아시아에 대한 강경한 정책을 지향한다.

둘째, 군 출신 인사를 중용했다. 플린 보좌관과 매티스 지명자는 전형적인 군인이고, 폼페오 국장도 육사를 나왔으며, 존 켈리 국토안보장관도 해병대 장성 출신이다. 군사자원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외교정책이 입안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셋째, 트럼프 당선자 개인의 선호와 ‘고집’이 관철됐다. 대통령의 아젠다인 외교안보 분야 인사에서 당선자의 뜻이 최우선 반영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트럼프는 국무장관 정도는 공화당 지도부가 천거하는 인물을 앉히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랜 저울질 끝에 선택한 이는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였다. 공화당 지도부가 뜨악해 하고 언론들도 반대하는 친러시아 성향 인물이다. 대러 제재 중인 유럽도 충격을 받았다. 트럼프가 자신의 색깔대로 대외정책을 밀고 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마이클 플린 안보보좌관의 ‘위험한 편견’

가장 주목해야 하는 인물은 안보보좌관 플린이다. 한때 부통령 후보로 뛸 것이란 예측이 나왔을 정도로 트럼프가 개인적으로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다. 지난달 트럼프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첫 회동에도 트럼프의 딸‧사위와 함께 배석했다. 대통령과 함께 백악관에 상주하는 안보보좌관으로서 초기의 대외정책은 그의 손으로 빚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시아에 대한 플린의 인식은 그가 공동저자로 참여해 지난 7월 출간된 책 ‘전쟁터’(The Field of Fight)에 나타나 있다.

플린은 이 책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북한, 중국 등의 정부가 맺은 ‘동맹’에 대해 미국이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북한과 중국에서부터 러시아, 이란, 시리아, 쿠바,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니카라과까지 확장되는 연합체와 마주한다”며 “국가뿐만 아니라 알카에다, 헤즈볼라, 이슬람국가(IS) 등 수많은 테러단체로부터 공격을 받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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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한반도정책에 가장 영향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플린 국가안보보좌관과 그의저서 ‘the Field of Fight’

플린이 열거한 국가나 테러단체가 미국에 적대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동맹을 맺고 있다는 것은 근거 없는 억측이다. 하지만 플린이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현실이다.

중국사와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존 딜러리 연세대 교수는 “이슬람 극단주의를 제거해야 한다는 플린의 집착이 중국의 부상, 일본의 재기, 북핵 등 다른 모든 것에 대한 그의 시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에 논평했다.

플린은 10월 13일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뷰에서 “(북한의) 현 체제를 오래 존속시켜서는 안 된다. 김정은과 경제적 거래를 할 생각은 없다”고 단언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한미동맹 강화를 강조하면서도 “일본과 한국은 전화(戰禍)에 휩싸였던 70년 전과 같은 경제 상황이 아니다.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고 언급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야 한다는 뜻으로, 트럼프와 꼭 같은 생각이다.

캐슬린 맥파런드 국가안보부보좌관 역시 매파다. 그는 지난 8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국이 미국의 동맹인 한국과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활용해 한다.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북한과 무역을 하는 다른 나라의 기업들에 대한 제재도 강화해야 한다”며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을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외교 총사령탑인 국무장관에 렉스 틸러슨을 기용한 것은 적어도 동아시아 정책만큼은 플린 안보보좌관이 있는 백악관이 주도할 것임을 시사한다. 틸러슨은 공직 경험이 없고, 대외 문제에서의 경험은 주로 러시아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틸러슨은 장관 지명 후 성명에서 “우리는 동맹을 강화하고 공통의 국가이익을 추구하며 미국의 힘과 안보, 주권을 향상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강조점이 없는 지극히 원론적인 언급이다. 그가 한반도 문제를 인식하는 데 있어 러시아의 입김이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지만, 정부 내 수많은 강경파들을 뛰어넘어 그의 생각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란-북한 연계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

국방장관에 내정된 매티스는 ‘미친 개’라는 별명처럼 터프한 군인이다. 중동지역을 관장하는 중부군사령관을 지내던 중 이란 핵협상 등 그 지역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정책에 불만을 표하다가 해임됐는데, 동아시아 문제에 대한 특별한 입장이나 언급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매티스는 2013년 상원 청문회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동맹을 지지하고 역내 주둔 미군의 확대를 주장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이란처럼 위험하고 신뢰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으며, 중국이 남중국해 등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간다면 중국을 견제하는 정책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 출신 인사의 전형적인 시각이다.

북핵실험 위력비교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폼페오 CIA 국장 내정자는 3선 하원의원을 지낸 군 출신 정치인이다. 공화당 내에서도 초강경 우파나 네오콘(신보수주의) 그룹으로 분류되는 만큼 북한에 대해서도 매파적인 태도를 견지해 왔다. 그는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미국을 매우 위험한 길로 끌고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새로운 제재로 즉각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오바마 대통령이 맺은 이란 핵협정의 끔찍한 미래상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란과 북한이 서방에 대항하는 ‘악마의 파트너십’을 맺어 핵 관련 기술과 물질을 불법적으로 공유해 왔다고 주장했다. 며칠 후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경제력‧군사력을 모두 동원해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폼페오는 이어 2월 북한이 ‘광명성 4호’ 장거리로켓을 발사한 직후에도 성명을 발표해 이란과 북한을 ‘미친 정권’이라고 표현했다. 북한의 두 차례 도발 모두 당일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은 그가 한반도 동향에 꽤나 민감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에 대한 양립 불가능한 요구

물론 그 누구보다 중요한 인물은 대통령이다. 트럼프의 입장은 비교적 오랫동안 노출되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다.

동북아 정책과 관련해 선거 기간과 당선 후 일관되게 보여준 방향은 △뚜렷한 친러·반중 노선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이익 중심의 접근 △한국·일본이 안보비용을 더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 등으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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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에서는 북핵, 사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등이 한미 간 현안으로 등장할 것이다. 북한은 새 행정부에 맞춰 북미관계에서 이니셔티브를 쥐려 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이미지 출처: sbs)

이같은 트럼프의 기조와 외교안보 참모진들의 성향을 볼 때 트럼프 정부 초기 한반도 정책의 특징은 네 가지로 전망할 수 있다.

첫째,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부정하며 북한에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하겠지만, 기본적으로 한반도 정책은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릴 공산이 크다. 트럼프와 참모진 대부분이 우선 천착하는 이슈는 이슬람국가(IS) 대응을 비롯한 중동 문제다.

그 다음은 러시아 문제다. 동북아에서는 중국과의 관계 재설정을 우선 추진할 것으로 보이는데, 한반도 문제는 그 하위 이슈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둘째,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불거질 경우 군사적 수단과 대화·협상 사이에서 출렁거릴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는 이미 선거 때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하겠다”는 말과 “김정은은 미치광이 같다”는 말 사이를 오갔다. 적어도 정부 출범 초기에는 갈피를 잡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지난 2일 대만 총통과의 통화를 통해 ‘하나의 중국’ 원칙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며 미중관계의 근간을 흔든 바 있다. 그러면서도 지난 11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중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미국이 대만 이슈로 중국의 역린을 건드리면 중국은 북한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고 대북제재를 위한 국제공조는 붕괴된다. 그러면서도 중국에 대북 압박을 요구하는 그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트럼프 정부의 대북 갈지자 행보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셋째, 미중관계 재설정을 위한 대 중국 압박 차원에서 한국에 ‘미국이냐 중국이냐’ 양자택일적 결단을 강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과정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밀어붙이고 나아가 동북아 미사일방어(MD)의 통합을 재촉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한·일 위안부 합의 등 한·미·일 3각 협력 강화를 위해 미국의 배후 지원으로 추진됐던 사항들도 유지하려 할 것이다. 미국은 최근 이같은 요구를 한국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넷째, 한국을 더 강하게 포섭하면서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은 올려달라는 상충되는 요구를 할 것이 확실시된다. 주한미군 철수 혹은 축소 위협을 하면 한국이 결국 받아들일 것이라는 자신감이 미국에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 MD를 통합하는 과제도 트럼프의 MD 회의론이 변수로 꼽히지만, 비용을 한국이나 일본에 부담시킨다면 추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월, 2016/12/1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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