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쯤이었나, 홍대입구역에서 친구와 만나 술 한잔했던 날. 술을 더 마시고 싶진 않았지만 그냥 헤어지기는 아쉬웠던 그 날. 친구와 음악을 들으러 가기로 했다. 채널1969였나, 제비다방이었나… 장소가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다. 입구부터 사람들이 북적거려서 오늘 아티스트 짱 인가보다, 땡잡았다하며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공연시간이 되어 아티스트들이 단상에 올라왔고 가운데 놓인 마이크를 잡고 쑥스러운 듯 입 꼬리를 올리던 그 사람의 모습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짧은 머리에 곱슬곱슬 파마를 하고 쿠키몬스터가 달랑달랑 거리는 옷을 입고 바지 주머니에 한 쪽 손을 넣고 편안하게 노래 부르던 사람. 곡에 따라 적확하게 어우러지는 목소리가 인상적이던 사람.
우혜미씨였다. 보이스코리아라는 프로그램에 나와 멋지게 공연했던 사람이랬다. 그이가 내 눈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름도 그때 알았다. ‘보이스코리아, 그것 좀 볼 걸…’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그이가 마이크를 잡으면 입을 틀어막고 “흡!”하고 숨을 참고 집중하며 들었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친구에게 “저 사람 뭔가 에이미 와인하우스같지 않냐?”말 걸었다가, 말 걸지 말고 듣기나 하라는 면박을 들었던 기억도 난다. 그이는 한 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자작곡을 주로 불렀고 한 곡의 커버곡을 불렀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불렀던 커버곡의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 이의 자작곡이 매우 압도적이었고, 원곡의 멜로디가 생각나지 않게 편곡해서 불러서 그런지 원곡이 떠오르지 않았다. 집으로 향하는 길 내내, 그리고 며칠 동안 그이의 음악이 입가에 맴돌았다. “이건 엿 같은 얘긴데”로 시작하는 음악을 흥얼흥얼하며 돌아다녔다. 영상이라도 찍어둘 걸 한 참을 후회했다. 나의 흥얼댐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목소리로 부른 음악이 듣고 싶었다.
그의 자작곡이 담긴 앨범은 오랜 시간 발매되지 않았다. 공연을 보고 온 다음날부터 자주 그 의 이름을 검색했지만 음반 발매 소식은 없었다. 종종 그가 피쳐링한 음원을 듣거나 유튜브에 들어가 라이브 영상을 반복해서 보았다. 아마 몇몇 동영상은 내가 천 번 정도 보지 않았을까…
2019년 7월 ‘꽃도 썩는다’싱글앨범이, 8월 ‘s.s.t'미니앨범이 발매되었다. 약 5년을 기다리고 기다렸던 앨범의 발매를 마주하고 설레어하며 반복해서 들었다. 내가 흥얼거리던 그 노래는 다음 앨범에 들어가는 건가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음반이 발매된 게 어디냐며 아쉬운 마음을 꾹꾹 눌렀다. 그리고 며칠 전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 그이의 이름이 올라왔다.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앨범을 또 발매한건 가, 예능에 나왔나? 하며 이름을 눌렀는데 그 사람의 앨범이나 활동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어떤 이유로 그이가 세상을 떠났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부디, 이제는 편히 쉬기를 바랄뿐이다. 그 말밖에 할 수 없지 않은가. 문득 천 번은 봤지 않을까 했던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에 달린 댓글에는 앨범이 발매되지 않아 몇 년 째 이 영상으로 음악을 듣는 다는 이야기가 대다수였다. 그리고 최근 추가된 댓글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내용이었다. 그 사람은 세상을 떠났지만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고 있구나 싶었다. 아름다웠던 그 사람을 곳곳에서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파란색 쿠키몬스터가 달랑거리고 한 곡이 끝나면 머쓱한 웃음을 지었던, 어떤 곡을 부를 땐 머리를 양손으로 헝클이며 부르던 그 모습이 아직도 또렷하다. 영상을 괜히 봤다 싶었다. 애석한 마음을 달래기 어려웠다.
그 사람이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 어느 누구라도 경쟁, 평가와 잣대, 빈곤에 쫓기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즐겁고 천천히 할 수 있는 세상이 필요한 건 아닐까. 너무나 과도한 경쟁, 빠르지만 더 빠르길 원하는 세상, 열심히 살아도 계속되는 빈곤…이 사회에 환기가 필요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든다. 너무 빠르고 치열한 사회에 지쳐가는 주위의 친구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저 멀리 소리를 던지듯 노래했던 우혜미씨의 목소리가 자꾸만 생각난다. 우혜미씨가 편히 쉬기를 바란다.
2019년의 달력이 몇 장 남지 않은 지금. 올해의 장면을 되짚어 보던 중 엠넷의 예능 프로그램 ‘퀸덤’을 빼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겨운 경쟁구도와 자극적인 편집으로 혀를 차게 했던 엠넷이 볼 만한, 즐길만한-MC 장성규의 맥 끊는 멘트 제외-프로그램을 내놓았다. 프로그램 ‘퀸덤’은 K팝 그룹 여섯 팀이 출연하여 매 회 놀라운 무대를 선보이는 ‘경쟁’ 프로그램으로 기획되었다. 서로를 견제하며 피 튀기는 장면을 기획했던 연출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보다 좋은 무대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아티스트들의 모습과 서로의 무대에 감탄하며 지지·응원하는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룹 오마이걸 승희씨의 감탄연발, 환호하는 모습은 화제가 되어 많은 짤이 생성되기도 했다.
처음엔 ‘퀸덤’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엠넷의 경쟁 프로그램에 진절머리가 났던 터라… 그런데 어느 날 유튜브를 통해 그룹 AOA의 ‘너나해’ 커버 영상을 접하고 난 뒤 프로그램이 궁금해졌다. AOA가 보여 주었던 컨셉과 확연히 다른 무대, “나는 져버릴 꽃이 되긴 싫어, I'm the tree”라는 지민씨의 가사, 드랙을 하고 보깅(하이패션 모델들의 잡지 속 포즈에서 영감 받은 춤)을 하는 댄서의 모습, 멤버들의 냉소적인 표정 등으로 구성된 무대를 보니기립박수가 절로 나왔다. 기립박수는 나 혼자 친 것이 아니었다. 해당 영상은 몇 백 만의 조회 수를 거뜬히 넘겼고, AOA의 새로운 모습과 환호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분석한 기사들이 쏟아졌다. 너나해 무대 이후 라이브 방송에서 멤버 설현씨는 “사람들이 이렇게 좋게 봐주는 것이 처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너나해의 파급력은 굉장했고 멤버들의 이전 인터뷰 내용이 회자되기도 했다. 프로그램 ‘퀸덤’은 AOA뿐만 아니라 출연한 아티스트들의 모든 무대가 화제가 되었다.
나는 특히 그룹 (여자)아이들의 무대가 좋았다. 멤버인 소연씨의 무대 기획력과 작사/곡, 멤버들과의 호흡, 함께 만드는 무대에 환호했다. 프로그램 1차 경연에서 이전에 발매했던 ‘라타타(LATATA)’를 주술사 컨셉으로 재구성하여 보여주었다. 정말 주술사가 된 듯 태국어로 랩을 하는 멤버 민니씨의 눈빛, 랩 말미에 “LATATA”를 읊조림과 동시에 조명이 켜지며 멤버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영상을 끝까지 집중하여 보게 만들었다. 또한 파이널 경연에서 보여주었던 ‘LION’무대는 가히 놀라웠으며 올 해 최고의 무대가 아니었나 싶다. 역시나 세계의 시청자들은 환호했고 곡 역시 빌보드차트에 올랐다고 한다.
LION은 인트로 영상의 스토리부터 흥미롭다.
옛날 옛적 어느 한 왕국에 왕위를 다투는 아주 큰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전쟁은 모두에게 무섭고 잔혹했습니다. 잔인한 전투 속에서 한 어린 소녀가 외쳤습니다. "내가 바로 여왕이다." 모두가 소녀를 비웃었습니다. 그녀는 아직 너무 어린 소녀였거든요. 하지만 소녀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싸웠습니다. 죽을 듯이, 온 힘을 다하여. 긴 전쟁이 끝나고 소녀는 여왕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 광경을 본 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사자야"
“나는 왕이야. 나는 사자야”라는 후렴구를 가진 ‘LION’을 듣다보면 여성을 과소평가하며 성역할 고정관념 강요에 저항하는 듯 느껴진다. 모두가 그 사람을 어리고 여성이라고 비웃을 때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죽을 듯이, 온 힘을 다하여 싸운 그 사람처럼. 마침내 왕, 사자라고 불린 그 사람은 퀸덤을 통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여섯 그룹의 아티스트들과 닮아 보였다.
‘여성’ 아티스트들은 ‘이미’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사회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오빠를 찾게 하고, 혀 짧은 소리를 내도록 시키고, 뜬금없이 애교를 강요하고, 계절에 상관없이 하의의 길이가 매우 짧거나 몸의 윤곽이 다 드러나는 옷을 입게 만들었다. 이제 그런 모습을 요구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을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들은 어떤 무대든 기획할 수 있고 보여줄 수 있다. 섹시하거나 귀여운 컨셉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자신의 매력을 뽐낼 수 있다는 것을 시청자들은 느꼈을 것이다. 설현씨의 “좋게 봐주는 것이 처음”이라는 말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사람들은 여성이 ‘여성다운’ 모습으로만 무대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아티스트로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아닐까. 그래서 퀸덤에 오른 아티스트들의 다채로운 모습에 열광하였던 것은 아닐까.
혹자는 ‘여성’아이돌의 안무보다 ‘남성’아이돌의 안무가 더 어렵다고 한다. 발동작이 많고 몸의 다양한 부분을 사용해야 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남성들이 하는 것을 여성들이 못할 리가 있겠나. 이제는 ‘여성’ 아티스트가 사회의 요구-성역할 고정관념-에 맞춰 무대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컨셉을 구상하고 보여줄 수 있는 세상에 한 걸음 다가간 듯하다. 프로그램 퀸덤에 나와 최선을 다해 무대를 채운 여섯 그룹의 아티스트들을 통해 변화의 장면을 포착하였다. 앞으로도 이들이 정말하고 싶은 무대가 지속되길 바란다. 세상은 변화하고 있고 사람들은 이미 변화의 장면을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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