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에 등장하는 도시 답사를 통해 도시를 이해하고, 그 안에 녹아있는 역사를 배우는 서울KYC 2016 근현대사아카데미 "도시를 둘러싼 역사의 기억"
첫 답사인 5월 21일, 5.18 진실을 살펴보고 기억하기 위해 광주를 다녀왔습니다. 5.18 기록관, 전남도청 주변 금남로 일대, 망월동 묘역을 돌아보았습니다.
답사는 2년 전에도 함께했던 오월지기 신호숙 선생님의 안내로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7, 80년대 한국 사회를 되돌아보며, 부마항쟁과 5.18을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오랫동안 박정희 독재정권, 유신 체제에 반대해온 시민들! 부마항쟁은 79년 유신정권에 반대하며 부산과 마산 등지에서 일어났습니다. 부마항쟁은 사망자가 없었고, 연행된 수는 500여명 이었지만 5.18민주화운동은 공식 사망자만 165명, 400명 이상이 행방불명되었고, 조사받은 사람은 3,000여명에 이릅니다.
박정희 사망 후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대학생들이 이에 반대하여 시위를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휴교령을 내립니다. 공수부대가 투입되어 전남대에서 최초 충돌이 일어나고 시위는 시내로 확산되었습니다. 5월 20일에는 차량 시위 등 학생 뿐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함께하게 됩니다. 5월 21일, 시민들이 도청 앞에 운집해 있던 오후 1시 도청 앰프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오며 시민들에게 발포를 하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시민들이 무장하고 5월 26일까지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하였으나 5월 27일 새벽, 도청, YMCA, YWCA 등에 남아 있던 시민군은 군인들에 의해 1시간 반만에 진압됩니다.
사람이 있었음에도 속도를 줄이지 않은 장갑차가 거세게 밀고 들어온 거리, 불탄 방송국이 있던 건물, 전화를 통해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서점 주인... 광주 거리 이곳저곳에는 5.18에 얽힌 사연을 가지고 있는 건물과 자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길을 걸어가 도착한 옛 전남도청은 새로이 페인트칠을 더해 옛 모습을 찾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발포 순간에, 마지막 진압에도 중심에 있었던 도청.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았던 시민군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마침 당시 시민군이었던 분이 구 도청을 관리하고 계셔서 짧게 말씀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열아홉살 때 5.18을 겪었던 이 분은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광주 시민 모두가 유공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발포와 진압에 희생된 시신들이 임시로 안치되었던 상무관도 도청에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줄지어 분향하며, 넋을 기리고 공분했던 곳입니다.
80년 5월, 가장 가까이에서 광주 시민들을 바라보았던 분수대와 시계탑은 그날의 진실과 기억을 품고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도청과 시계탑을 뒤로 하고 금남로에 있는 5.18 기록관에 도착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의 시작과 끝, 무고하게 희생된 시민들의 사연,
광주에서 일어난 참담한 일을 외부로 알리기 위한 노력들,
주먹밥을 만들어 서로 나누어 먹고, 헌혈하기 위해 병원으로 간 시민들,
검열을 거쳐 지워진 신문, 당시의 사진과 영상,
다른 나라들의 민주화운동 사례까지.
다양한 기록을 통해 5.18 운동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도청을 지키다가, 관이 부족해 버스를 타고 나가다가, 헌혈을 하고 병원을 나서다가,
어머니가 사준 고무신을 가지러 되돌아갔다가, 집에서 창문을 가리다가
단지 그때 광주에 있었기 때문에 희생된 시민들.
또 그들을 두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사연 하나하나가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그리고 되묻게 됩니다. 그때, 광주에 내가 있었다면?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희생된 분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았습니다.
도청 앞 발포에 의해, 군인들의 무차별 사격에 의해, 구타에 의해 희생된 시민들,
무명 열사의 묘, 행방불명이 되어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이들까지..
하나하나, 가지각색의 빛을 담고 있었으나 냉혹한 국가가, 권력에 대한 욕망이 그 빛을 모두 꺼뜨려 버렸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사연을 들으며 모두 눈물을 훔치고 숙연해집니다.
36년이 지났지만, 5.18은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아픈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발포 명령을 누가 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책임을 질 사람은 발뺌하고, 오히려 피해자인 듯 말합니다.
노동열사들이 잠들어 있는 구 묘역도 돌아보고 나오며, 잊지 않겠다는 약속만 되풀이해봅니다.
많은 이들의 희생에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 오히려 퇴행하고 있는 듯한 사회이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내는 것이 우리들의 책무일 듯 합니다.
이렇게 5월, 더운 광주에서 근현대사아카데미 첫 번째 답사는 마무리되었습니다. 더운 날, 바쁜 일정에도 열성으로 어려운 안내해주신 신호숙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근현대사 아카데미는 9월까지 매달 계속됩니다. 6월에는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린 반골의 도시, 진보의 도시 대구를 방문해서 대구가 안고 있는 역사를 찾아갑니다.
서울KYC 회원을 한 분 한 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 회원 인터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번에는 체인지리더로 KYC와 만나, 현재 정당인으로 좋은 정치를 고민하고 있는 문정은 회원님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지금 만나 보실까요?
문정은 회원님, 안녕하세요! 우선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KYC와는 체인지리더 1기로 2009년부터 인연을 맺었고, 지금은 좋은 정치를 위한 튼튼한 정당을 만드는 일을 하는 문정은 입니다.
서울KYC와의 첫 만남은 어떠셨나요?
아무래도 처음 대면했던 최융선 간사님에 대한 인상으로부터 서울KYC에 대한 느낌을 떠올리게 되네요.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있으면 자기 생각을 분명히 전달하시는 편이었고, 프로그램 간사와 참여자를 넘어 동료 의식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KYC라는 조직 자체에 대해서 수평적 분위기, 편안한 인상을 가지게 되었어요. 한편으로는 KYC 첫인상은 썩 좋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하하. 일단 한국청년연합으로서의 목적의식이 강하게 전달되지는 않았고, 각각의 프로그램이나 과정들이 다 의미가 있긴 하지만 한국청년연합의 정체성을 희미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도 갖게 했으니까요.
체인지리더 활동을 통해 느낀 점이나 스스로 변한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에게는 정당과 정치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게 해 주었던 중요한 계기였어요. 문제의식을 형성하고 대안 마련을 추동하는 힘이 사회운동에서 나온다면, 실제 대안을 모색하고 책임 있게 실현해 나가는 정당정치는 사회운동과 유기적 관계를 이룬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당시 다니던 대학이나, 전공, 나아가서는 대학 자체에 대한 고민까지 깊어지던 시기였는데, 당시 활동으로 사회를 보는 시각이 자리잡아 가면서 원하던 곳에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맨 앞줄에서 브이를 하고 있는 체인지리더 1기 문정은 회원님~)
체인지리더 활동을 같이 하셨던 분들과 아직 교류하고 있으신가요?
많지는 않지만 서로 안부 묻고 연락 나누는 친구들은 몇몇 있어요. KYC에서는 체인지리더 이후에도 대학생동북아역사캠프에서 만난 동료들, 인턴을 하면서 알고 지낸 선배, 후배들, 체인지리더 2기, 3기 후배님들과도 인연이 이어지고 있어서 고맙네요. 최근에는 캠프에 같이 다녀왔고, 한겨레 신문 토요판에서 탈북자 문제를 조명한 강룡 오라버니와도 연락이 되어서 곧 만나 뵈러 갈 생각이고요. 인턴할 때 만났던 동경언니는 세월호 광화문 천막에서 만나 단식 중이던 제 건강을 돌봐주셔서 반갑게 이야기도 나눴어요. 체리 할 때 특히 문제 인식의 방향이 비슷해서 기억에 많이 남았던 헌기는 다른 정당에서 활동하지만 연락이 닿아 아주 반가웠어요. 특히 체리들은 이곳저곳 다방면에서 다들 열심히 사는 것 같아요.
체인지리더 외에, 서울KYC의 회원으로 함께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대학생동북아역사캠프를 2회 연달아 다녀왔어요. 한중일 대학생들이 모여 자국의 역사와 동북아시아의 역사를 함께 되짚어보고 토론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어요. 실제 우리 역사의 아픔과 슬픔의 현장을 돌아보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처럼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려는 의지를 세우는 데 아주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다만, 그 유명한 도성길라잡이와 평화길라잡이를 곁에서 침 흘리고 구경만 했다는 점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아요. 언젠가 기회가 있겠죠.
정의당에서 정당인으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현재 활동에 대해 이야기해주신다면?
저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하고 있는 정당인입니다. 지난해에는 공직후보자로 출마했어요. 한국 사회에는 다양한 사회적 갈등과 모순이 존재하는데, 좋은 정치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많습니다. 그리고 좋은 정치를 위해서는 건강한 정당, 좋은 정당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문제의식 때문에 다니던 대학을 옮겨 제가 하고 싶었던 사회과학, 정치학 공부를 했고, 좋은 진보정당을 만드는 일에 미약하게나마 힘을 보태고 싶어 정의당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5명인 미니 정당이지만, KYC가 이야기하는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는 3% 소금처럼, 우리 사회 거대 양당으로 대변되는 기득권 정치와 보수 정치의 틈새 속에 목소리 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정치,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정치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어요.
청년들이 정치에 회의감을 가지거나 불신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청년 정당인으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간의 한국 정치는 청년들이 '정치가 내 삶을 보다 나아지게 할 수 있다'고 느낄 만한 어떤 경험도 제공해주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은 정치에 대한 어떠한 효능감이나 그것을 통해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도 제대로 배우거나 경험하지 못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청년들이 정치에 회의감이나 불신감을 갖는 것에 일견 공감이 갑니다.
다만, 청년들에게 정치는 지금의 비루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돈이나 권력, 경험이나 끌어 모을 수 있는 자원의 한계가 명확하지만, 정치의 영역에서는 1인 1표라는 제도적 기반 위에서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기회가 다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같이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은 나의 뜻에 동의해주고 함께 투표장으로 향할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것이지 않을까 싶어요.
8월부터 체인지리더 프로그램이 시작되는데, 지원하려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변화를 상상하고 창조하는 리더를 위한 체인지리더는 우리 사회 이면을 들여다 보고 대안을 모색하고 싶은 뜨거운 청춘들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은 알짜배기 프로그램입니다. 저 역시 대학생 시절, 세상과 사회에 대한 수많은 의문과 비루한 삶에 대한 답답함으로 지쳐갈 때 한여름 은행 에어컨 바람처럼 시원하게 다가왔던 기회였습니다. 물론 체리가 떠먹여 주는 밥숟가락에 입을 벌리고만 있다면 말짱 꽝이에요. 체인지리더를 통해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사회 변화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해서는 더 적극적으로 체리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올 여름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으시다면 체인지리더가 제격이죠.
서울KYC란 ________다!
서울KYC란 종합공구세트이다. 우리 사회에 고장 나거나 조여야 할 곳이 있을 때 다양한 공구를 통해 나사도 조이고 망치질도 하는 것처럼, 때로는 교육으로 때로는 캠페인이나 사회 참여 활동으로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의미로!
마지막으로 서울KYC에 바라는 점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사실, 저는 KYC가 한국청년연합으로서의 성격을 더 분명히 하고, 명실상부한 청년 조직가 양성, 청년 리더 육성, 청년들의 허브로서의 역할을 더욱 선명하게 하기를 기대하는 회원입니다. 나아가 시민운동이나 시민단체 밖의 시민들의 목소리, 청년 담론 밖의 청년들의 문제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청년상 같은 경우, 우리 사회 다양한 청년의 상을 만나며 저 스스로도 고민이 깊어졌고, 다양한 청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기회였어요.
여하튼 기회가 된다면 KYC 회원의 밤 같은 행사를 해서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하면 좋겠네요. 좋은 기회를 주셔서 활동도 되돌아보게 되고 연락하게 된 친구들도 생겨서 기분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다시피 KYC는 본부가 있고, 전국 곳곳에 서울KYC와 같은 지부를 두고 있는 구조입니다.
서울KYC의 오랜 회원이기도 하면서 지난 2월 정기 대의원총회를 통해 2016-2017 KYC 대표를 맡고 계신 최융선 대표님을 서울KYC 회원 분들께 소개합니다.
최융선 대표님, 안녕하세요! 서울KYC 회원 분들에게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가끔 이력을 정리하기는 하지만 … 어색하네요. 대학시절에 어머니께서 용하다는(?) 점쟁이에게 저에 대해서 물었답니다.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사회생활이나 할 수 있을런지?” 부산에서 서울 올라 오니 갈데가 많았어요. 강의실 보다는 전시회, 박물관, 패션쇼, 발레공연, … 멀리 있는 친구들집에 놀러 가는 것도 중요했고. 돈이 필요했으니 아르바이트도 여러가지 바꿔가면서 해야 했고. 그래서 학사경고로 기숙사를 나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점쟁이가 어머니에게 해주었다는 이야기와 MBTI 검사결과로 나온 제가 너무 흡사했습니다. 성격유형이 ESTP랍니다. 물론 시간이 흐른 지금은 좀 변하기는 했겠지만.
긴 설명보다는 직접적인 관찰을 중요하게 여기고, 길게 고민하기 보다는 부딪쳐 보는 것을 선호합니다.
지금은 손에 쥘 수 있는 디지털 도구 덕택에, 메모도 하고 관리도 하기 때문에 실수가 줄어 들었지만, 이순신 장군 처럼 이기는 싸움만 하는 사람이 되기는 힘들겁니다. 찰스다윈은 갈라파고스 같은 곳을 비글호 타고 돌아 댕기다가 위대한 관찰로 수만 년을 상상했잖아요. 저는 그런 삶이 부럽습니다.
올해부터 KYC 대표를 맡고 계십니다. 대표로 있는 동안 중점을 두겠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KYC가 우리 시대의 문제를 바라보는 메세지와 변화를 위한 상상을 내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운영체제를 업데이트 하는 정도로는 ‘헬조선’에서 변화를 만들기는 어렵다고 여깁니다. 발상과 형식을 바꾸지 않으면 사람들은 도전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당연히 결과도 뻔하겠죠.
예를 들어, 우리의 헌법과 주민자치는 국민을 위해, 주민을 위해서라고 되어 있기는 하지만 주민의 의해서 변화를 만들어가는 기회와 형식이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회서비스의 제공을 보편적으로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에 대한 참여를 보편적으로 만드는 운영체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을만들기도 주요 활동으로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을만들기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요?
마을에서 주민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소개해주신다면?
질문이 재미없네요.
앞서 이야기한 우리 사회의 운영체제를 바꾸기 위해, 주민참여. 주민자치를 돕는 활동을 합니다.
웬만한 드라마나 소설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방법을 어떻게 알려주나요?
“마을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지 묻지 말고 네가 마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 지 찾아 봐라.”
(참조, And so, my fellow Americans: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ask what you can for your country.
_President John F. Kennedy)”
많은 사람들이 청년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청년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 혹은 시민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혼자 쿨하게 살려고 하지 마세요. 헬조선에서는 전혀 쿨하지 않습니다. 선택가능한 보기는 1~4번까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것을 선택하든가 아니면 새로운 보기를 만들든가. 대학 경쟁력을 주장하는 후보보다 지방대학의 존재를 걱정하는 학생회장 후보를 선택하세요. 그것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중요합니다. 청년창업학교에 가기 보다는 권리금이 없는 사회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세요. 그것이 훨씬 창업에 유리합니다.
7월 25일 토요일, 평화와 인권의 관점으로 역사적 현장을 해설하는 평화길라잡이의 남영동 대공분실 시민안내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바뀌었지만, 국가라는 이름 아래 무자비한 폭력이 이루어졌던, 아픈 과거의 기억이 남아있는 장소입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이, 박종철 군이 물고문으로 사망한 곳이기도 합니다.
7월 시민 안내에는 총 21분이 오셔서 안내를 들었습니다.
우선 건물에 들어가, 80년대 사회상을 다룬 영상을 잠시 보았습니다. 80년대를 직접 경험하셨던 분들도, 교과서로만 민주화 운동을 접했던 젊은 분들도 주의깊게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영상을 본 뒤에는 뒷문으로 이동했는데요,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뒷문으로 들어가면 5층으로 곧장 연결되는 나선형 계단이 나타납니다. 얼마나 올라가는지 자신도 모르게, 빙글빙글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5층에 도착합니다. 엘리베이터로 이동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직접 계단을 걸어 올라왔습니다.
5층은 박종철 군과 김근태 전 의원을 비롯, 무수한 사람들이 조사를 받았던 공간입니다. 박종철 군이 고문을 받았던 509호는 보존이 되어 있습니다. 바닥에 고정되어 있는 가구,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좁게 만들어진 창문, 그리고 욕조까지. 좁은 공간이라 모두가 한번에 들어갈 수는 없어, 차례차례 들어가 살펴보았습니다.
김근태 전 의원이 고문을 당했던 515호 내부는 보존이 되어 있지 않고, 공간만 남아있습니다. 이곳은 509호보다 넓었는데요, 더 체계적이고 복합적인 고문을 했던 공간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안내를 통해 이곳에서 이루어졌던 고문에 대한 설명도 듣고, 고문 이후의 후유증이 또한 얼마나 힘든 고통인지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설명이 끝난 뒤에는 박종철 기념 전시실이 있는 4층으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에는 80년대 사회상과 박종철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과정을 보여주는 문서,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박종철 군의 사진과 그가 남긴 책, 옷가지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전시실 관람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왔습니다. 1층에는, 지금 변화한 모습의 인권센터를 소개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변한 것일까요? 양천 경찰서 고문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등 조사과정에서의 폭력은 과거의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1층에서는 하나 더 생각할 거리가 있었습니다. 이 건물 입구에는 '주춧돌을 정하다'는 뜻의 '정초'라는 글씨가 있습니다. 이는 일제 시대 때 판검사를 지내고, 이후 서울고등지법 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 내무부 장관까지 올랐던 김치열의 흔적입니다. 그의 경력 뒤에는 김대중 납치사건, 인혁당 사건 등 국가 권력의 폭력이 이어집니다.
또한 이 건물을 치밀하게 설계한 김수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유센터, 올림픽주경기장 등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음에도, 이 건물에는 밝지 못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느낍니다.
하지만 어두운 시절에도, 박종철의 시신을 보고 물고문을 알아채서 최대한 이를 알리려고 한 의사, 박종철 사건을 외부에 알리려는 과정에서 도움을 준 교도관 등 체제에 순응하지만은 않았던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민주주의가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역할과 책임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닐까 라는 안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가지 더 특기할 만한 사항은 대공분실 내부에서 안내를 들을 때도 끊임없이 들리는 남영역의 안내 방송이었습니다. 실제로 대공분실 건물은 남영역 플랫폼에서도 한눈에 보이는 건물이었는데요. 우리가 일상 속에서 평범하게 지나치는 것들 중에서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어쩌면 절대 평범하지 않은, 어쩌면 아연실색할 만큼 폭력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가 오고, 다소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오신 시민 분들 모두 내내 진지한 표정으로 대공분실 현장을 보고, 안내를 들었습니다. 지인을 따라 오신 분, 메일을 보고 오신 분, 집 근처여서 와보신 분 등 오신 이유는 각자 달랐지만, 인권과 민주주의를 한번 더 생각해보고, 현재 우리 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안내였습니다.
다음 안내에도 많은 시민 분들이 함께 해서, 가슴 아픈, 그러나 잊지 않아야 할 현장을 함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정된 8월, 9월 안내도 많이 신청해주세요!
문재인 정부의 성공적인 출범 덕분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행복한 한 달을 보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여기저기서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다'는 시민적 자부심이 넘쳐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이런 축제 분위기 한 편에서 다름 아닌 문재인 대통령의 일부 열성 지지자들의 행태를 두고 말들이 많다.
비록 '댓글'이나 '문자 메시지' 정도뿐이지만, 일부 열성 지지자들이 이견을 가졌거나 문 대통령에 비판적인 사람들에 대해 폭력적인 언사들로 집단적 공격을 해대는 모양이다. 단순한 비방이나 조롱 정도를 넘어 심하게 욕설을 퍼붓고 혐오를 선동하기도 한다. 도무지 쉽게 믿기질 않아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적대자들이 지지자들 틈에 끼어 의도적으로 폭력적 상황을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까지 하게 된다. 조선일보는 그들의 '홍위병' 같은 행태가 '점입가경'이라는 식으로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고 나섰다.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민주 정부가 이런 일을 빌미로 어처구니없는 곤경에 처하게 되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을 무슨 반지성주의에 물든 어리석은 대중이라는 식으로만 바라보아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정치적 동기와 지향의 어떤 진정성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고, 또 그들이 우리 진보 언론들과 진보 진영에 대해 드러내는 반감이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종의 르상티망(원한 감정)일 수도 있는 그들의 도전은 진보 진영 전체와 우리 사회 진보적 엘리트 지식인들에 대해 깊은 자기 성찰을 촉구하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 '지식인 대 대중'이라는 틀로는 전혀 의미 있는 탈출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의 자기 인식을 무턱대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특정 지도자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과 충성으로 뭉친 무지몽매한 '군중' 같은 존재들이 아니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설사 문재인 대통령이 그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해도, 그게 옳지 않으면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도 한다. 그들은 무슨 대가 같은 것을 바라서라기보다는 공동선에 대한 헌신의 자세를 가지고서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비판적 주체이고, 또 무슨 조직적인 실체도 없으며, 다만 같은 생각과 실천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또 사안별로 서로 자연스럽게 결합할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항변들을 무턱대고 무시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나는 다만 그들에게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민주적 시민성'의 내용과 그 실천 양식에 대해 일정한 비판적 성찰을 함께 해 볼 것을 촉구하고 싶다. '깨어있는 시민'이 그 자체로 '민주 시민'은 아니다. 눈을 부릅뜨고 상대방과 싸우다가 상대방을 닮아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우리가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특히 지금과 같은 국면에서 우리가 가꾸고 실천해 나가야 할 민주적 시민성이 어떤 것이어야 할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모두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은 조기숙 교수 같은 이가 펼치는 '친노‧친문 왕따론'(조기숙, <왕따의 정치학>, 위즈덤하우스, 2017)을 다소간 공유하고 있다고들 한다. 우선 이 담론의 문제점을 간단히 살펴보고 대안적 인식 틀을 소개해 보려 한다.
'왕따의 정치학'을 넘어서
친노‧친문 왕따론의 기본 골격은 노무현에 이어 문재인도 좌우 언론(과 정치권) 모두로부터 공격받고 정치적 왕따를 당하고 있는 만큼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나서 행동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놀랍도록 명쾌해서 영향력이 큰 것처럼 보이는 그 '정치학'에 따르면, 엘리트주의에 물든 물질주의 '구좌파' 진보 언론과 지식인 및 정치 세력이 탈물질주의와 탈권위주의 문화에서 출발한 '신좌파' 또는 '진보적 자유주의' 세력을 보수 기득권 세력 못지않게 공격하는 게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정치 지형이다. 바로 그러한 공격이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바, 이제 각성한 '비판적 시민들'이 나서 문재인 대통령만큼은 지켜내야 한단다.
조기숙의 그 기묘한 정치학은 얼핏만 보더라도 조야하고 허점이 많아 진지하게 논할만한 거리가 못 된다. 나는 책을 읽으며 국민의 당이 민주당과 갈라지면서 관련 인사들이 퍼트리던 '영남 패권주의론'이 떠올랐다. 진실과도 부합하지 않고 정치적-윤리적으로도 올바르지 않던 그 날선 분노와 억지로 가득했던 담론 말이다. 조기숙의 '친노‧친문 왕따론'도 딱 그런 부류다.
무엇보다도 사용하는 개념들부터 상식적이지도 않고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어 학문적 토론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가령 무슨 녹색주의자도 아니면서 탈물질주의 신좌파를 자처하고, '진보적 자유주의'를 내세우지만 그 진보적 자유주의의 최우선 관심사 중의 하나가 '분배 정의'라는 점은 까맣게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최고 수준의 진보적 자유주의를 설파하고 있는 최장집 교수 같은 이를 구좌파 진보 진영의 대표적 이데올로그라고 모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 진보 진영 일반이 물질주의적 분배 패러다임에 빠져 있다는 것은 나도 하는 비판이지만, 그 대안적 핵심 가치가 아무런 구체적 초점 없이 그저 '참여'라니 허탈할 따름이다. 아무리 본격적인 학술적 논의를 담아낸 것은 아니라지만, 정치 이념을 다루는 그 단순함과 대담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정치학은 우리 사회의 현실과 진보 개혁 진영의 정치적 과제와 지향에 대해 그 어떤 건설적인 성찰도 없이 진보 진영 일반과 구분되는 엉뚱한 자기 정체성 확립에만 몰두한다. 퇴임 후 집권 시기 진보적 의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음을 반성하며 '진보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와도 거리가 한 참 멀어 보인다. 그 정치학이 문 대통령의 집권 과정에서 나름의 긍정적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강고한 반민주 부패 기득권 세력에 맞서 함께 싸워도 모자랄 민주진보 진영 내부를 결국 갈라치기하려는 엉뚱한 적대와 너무도 값싼 정치적 '진영론'일 뿐이다. '노무현은 잃었어도 문재인만은 지켜야 한다'는 의리론으로 포장해서 대중들을 호도하고 있지만 사실은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을 더 고립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왕따의 정치학은 결국 자기편을 상대로 한 위험한 '분열과 적대의 정치학'일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정치학이다.
다원적 민주 질서를 위한 '포용의 정치학'이 필요하다
나는 문재인 정부는 무엇보다도 30년 전 6월 항쟁의 지연된 완수라는 책무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는 단순히 그 때 성립했던 '87년 체제' 여러 정부 중의 한 정부가 아니다. 개헌 약속과 함께 제7공화국의 출범이 예고된 지금, 어떤 식으로든 그 87년 체제는 문재인 정부와 함께 종말을 고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전환의 과정은 어떤 역사적 '메타모포시스', 즉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변태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는, 좁은 의미의 진보적 정책들의 실현 그 자체 보다는(이것도 중요하지만), 고장났거나 처음부터 잘못 설계된 우리의 민주공화국을 비로소 제대로 작동하게끔 재정비하는 역사적 진보를 이루어내는 것을 더 우선적인 사명으로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나라다운 나라', 곧 좀 더 온전한 민주공화국을 만들어서 새로운 시대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 온전한 민주공화국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나뉘고 또 그 각 진영에서 중도파와 급진파 등으로 정치 세력이 나뉠지라도 그 모두는 헌법적 기본권에 대한 존중을 포함한 기본적인 절차적 정의와 상호존중과 관용 같은 민주적 가치만은 나누어 가지면서 정치적 경쟁을 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바로 그 기본적인 절차적 정의와 민주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실천하며 하나의 문화로 정착시키고 또 제도화해 내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성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사적 과제는 이것이다.
여기서 적폐 세력에 대한 청산이란 바로 그 절차적 정의와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고 무시하는 극우 수구 세력을 역사박물관 속으로 퇴장시키는 일 이상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협치라는 것도 바로 좁은 이념적 지향은 달라도 그 절차적 정의와 민주적 가치만은 공유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을 확인하고 함께 통치하는 일에 대한 다른 이름일 뿐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분열과 적대의 정치학이 아니라 그와 같은 다원적이고 민주적인 기본 질서를 위한 '포용의 정치학'을 필요로 한다. 무원칙한 타협의 정치를 주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이해관계와 가치 지향 등의 불가피한 다원성을 인정하고 모두가 함께 추구해야 할 '공동선'을 설득과 소통의 방식으로 추구하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불관용을 선동하는 관용의 적까지 관용할 수는 없다. 적대의 선(線)은 바로 그런 공동선을 위한 다원적 민주 질서 바깥을 추구하는 세력에 맞서 단호하게 그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 질서 안에서는 모든 다원적 주체들의 차이와 갈등이 인정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이제 민주시민 교육이다
그런 질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이견을 가진 다른 시민들에 대한 존중과 이질적인 것도 기꺼이 포용하려는 태도 그리고 시민적 예의(civility: 정중함) 같은 덕목들을 갖추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깨어 있는 시민은 문재인 정부가 바로 그러한 역사적 과제를 성취하는 데 함께 하는 참여적 주체여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그를 위해 필요한 민주적 시민성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런 일을 단순히 개인적 각성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무슨 '계몽'이나 '도덕적 훈계'의 방식은 '가르치려 든다'는 반발만 초래할 것이다. 손혜원 의원이 제안하듯이 가령 '문자 폭탄'을 '문자 행동'이라고 명명하는 방식으로 될 일은 더욱 아니다. 시민들이 민주적 시민성을 함양하게 할 체계적인 사회적-정치적 노력이 필요하다. 마이클 샌델은 그런 노력을 '형성적 기획' 또는 '형성적 정치'라 하면서 그러한 시민성의 함양이 오늘날에도 바람직한 민주 정치 그 자체의 핵심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바로 지금 문재인 정부가 열성 지지자들을 위해서라도 귀담아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문재인 정부는, 물론 비지지자들을 포함하여, 시민들 일반에 대한 체계적인 '민주시민 교육'을 이제라도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교육'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라기보다 시민들이 스스로 민주적 시민성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물론이고 시민사회 안에서도 미래와 현재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가치 지향을 가진 시민들이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을 배양하고 민주적 가치관과 태도 등을 몸에 배게 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우리 교육을 바꾸고 필요한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정상적인 민주 국가에서는 어디서나 그렇게 하고 있는 바, 민주시민 교육을 위한 체계를 확립하는 일은 우리 시대의 과제인 온전하고 정상적인 민주공화국 만들기의 본질적 일부다.
지금 미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미국 사회가 신자유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애초 자신의 역사적 발명품인 이 민주시민 교육을 소홀히 함으로써 트럼프 같은 괴물이 등장하게 되었음을 깨닫고 통절한 반성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박근혜라는 괴물을 이미 겪었다. 그 괴물을 시민의 힘으로 권좌에서 쫓아낸 지금, 이제 우리가 모범을 보일 때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사무국에 살려야 할 생명체들의 안부가 궁금하실 듯 하여, 알려드려요. 안타깝게도 살려야 한다 1호는 싹을 틔우지 못했고(ㅜ.ㅜ), 2호, 3호는 중간에 고비가 있었지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아침 저녁 분무기로 열심히 물을 주었고, 주말에는 빨간 큰그릇에 물을 붓고 그안에 반신욕을 시키며 열심히 생명을 유지시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물을 줄때마다 "바르고 고운말"로 잘 살아달라고 속삭입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건네는 것처럼요. 그래서인지, 2호와 3호는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외에 사무국에는 산세베리아가 여러개 있습니다. 겨울을 보내면서 위기감이 돌긴 했지만, 다시금 열심히 생장에 힘을 쏟던 이 산세베리아들이 새끼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녀석 중 하나가 새끼를 두개 낳아서 좁은 화분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며칠전에 과감하게 이 녀석들 분가를 시켜주기로 했습니다. 다이*에 가서 화분과 흙, 그리고 영양제를 사서 분가시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신문지를 깔았습니다. 그리고 가위와 숟가락을 갖고 본격적인 분가를 시작했습니다. 첫번째 녀석을 잘라낼 때 어찌나 떨리던지요... 잘라낸 녀석을 화분에 담고, 영양흙을 채우고, 위에 돌로 눌러주기까지... 긴장된 순간들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분가한 산세베리아 녀석들입니다. 잘 자랄것 같지요? 뿌리를 건강하게 잘 내려줘야 할텐데요...
그리고 사무국에 있는 다육이들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키가 삐죽 자란 녀석들은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꺽꽂이를 했고, 풀피리의 재료가 됐던 녀석들은 한곳에 합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진딧물 침공을 받았던 라푼젤에게는 진딧물제거제를 뿌려주었고, 자유분방했던 기린초는 다시 정리해서 두집으로 분가해주었습니다.
너희들이라도 넉넉한 집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분갈이를 끝내고 영양제 하나씩 꼽아주고 나니, 부모가 결혼한 자식 분가시키는 것처럼 뿌듯함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첫조카를 만나는 것처럼 이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 뭐라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그래서 내친김에, 빈화분이 있어서 모기를 쫓는다는 구몬초 하나를 사왔습니다. 큰줄기가 2개여서, 각각 나누어서 한녀석은 화분에 안착시키고, 또 한 녀석은 잠시 뿌리가 안정적으로 내릴 때까지 인큐베이터 안에 있기로 했습니다. 뿌리를 잘 내려야 할텐데요..
그리고 푸르미들의 터줏대감 키다리 녀석은 사무국 천정 보다 높게 자라서 봄이 되자마자 복도로 내놨는데, 이녀석도 물을 잘 주니깐, 쑥쑥 너무 자랐습니다. 꽃집에 문의를 해보니, 과감하게 가지치기를 해주라고 하네요. 지난 장충동부터 같이 해온 녀석의 머리를 자를려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사무국 출근길,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바로 이 녀석이 반겨주는데....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