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독립적 감사에 압력 행사 등 직권남용 여부 조사해야 감사원장도 의혹 조사하고, 입장과 독립성 회복 대책 내놔야
2022. 10. 12. 감사원 앞. 참여연대 임원들과 활동가들이 대통령실 이전 등 불법 의혹 국민감사청구 기자회견을 갖는 모습 <사진=참여연대>
어제(4/5) 지난해 10월 참여연대와 723명의 시민이 감사원에 청구한 <대통령실 ⋅ 관저의 이전과 비용 불법 의혹 국민감사>를 총괄하던 감사원 행정안전감사국 1과장이 지난 달 말에 돌연 사직한 배경에 유병호 사무총장의 감사 중단 압력이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헌법과 감사원법으로 독립적 권한이 보장된 감사원에서 사무총장이 직권을 남용해 국민이 청구한 대통령실 감사를 중단토록 압력을 행사하는 등 국민감사를 방해한 중대범죄행위다.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월 13일 참여연대에 감사원이 감사의 기간을 오는 5월 10일까지 연장했다고 통지한 배경에 대통령실이 감사원에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등 협조하지 않고, 유병호 사무총장이 담당과장에게 ‘더 이상 건드리지 말라’, ‘여기서 끝내라’는 취지로 감사 연장을 중단토록 하는 등 사실상 감사를 방해하기 위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유 총장에 대한 조사와 수사가 불가피하다. 가뜩이나 감사원은 국민감사청구 전까지 전혀 감사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일부 사항에 한해 감사실시를 결정하는 등 뒤늦게 감사에 나서면서 대통령 눈치를 보고 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감사원의 독립성에 대한 의혹이 끊이지 않던 이유가 바로 유병호 총장 때문이다.
우선 국회가 대통령실 이전 불법 의혹 국민감사과정에서 유병호 총장의 압력 행사 등 직권남용 여부에 대한 진상조사에 당장 나서야 한다. 조사 결과에 따라 유 총장에 대한 수사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최재해 감사원장과 감사위원회는 유병호 총장의 압력 행사 의혹에 대해 조사해 입장을 밝히고, 감사원의 추락한 독립성을 회복할 근본 대책도 내놓아야 한다.
감사원, 대통령실 이전 의혹 국민감사청구 일부 감사실시 결정 – 대통령실 ⋅ 관저 이전 의사결정과정의 직권남용 등 부패행위 및 불법 여부 : 감사실시 – 대통령실 ⋅ 관저 이전 건축 공사 등과 계약 체결의 부패행위 여부 : 감사실시 – 대통령실 ⋅ 관저 이전 비용 추계와 편성 ⋅ 집행 과정의 불법성 및 재정 낭비 의혹 : 기각 – 대통령실 소속 공무원의 채용과정의 적법성 여부 : 각하 + 국가공무원법상 겸직 의무 위반 : 기각
각 정당의 대선 후보로 유력한 문재인, 안철수, 홍준표, 유승민, 심상정 5자 구도로 조사하면 지지율은 12%까지 뛰어오른다. 같은 보수 계열 후보인 유승민(5%)을 2배 이상 따돌렸다.
적어도 자유한국당 지지자를 비롯한 보수층에게 그는 진짜 좌파 세력과 대결할 마지막 ‘스트롱맨’이자 ‘희망’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성완종 게이트에서 기사회생
몇 달 전만 해도 홍 지사의 이런 행보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 1억원을 받았다는 혐의에 휘말려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으면서 도지사직은 물론이고 정치생명까지 장담할 수 없는 처지로 몰렸다.
경남 도민들은 그의 독선적 도정운영과 ‘성완종 리스트’ 연루를 문제 삼아 주민소환까지 추진했다. 모든 것은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갔다. 주민소환은 겨우 0.31%의 유효서명이 부족해 무산된다. 2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한다.
‘만사구비지흠동풍(萬事俱備只欠東風).’
홍 지사는 2심 승소 후 페이스북에 이런 고사를 올린다. 적벽대전을 앞둔 제갈량이 주유에게 ‘모든 조건이 갖춰졌고 가장 중요한 동풍만 남았다’고 한 말이다.
무죄 판결이 그에게 진짜 ‘동풍’으로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적어도 홍 지사는 ‘동풍’이라 믿고 불붙인 화살을 잰 활시위를 당겼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저승에 가면 성완종이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다”고 했고, 자신이 연루된 것을 친박의 음모라고도 했다. 2015년 4월 자살한 성완종의 메모에는 ‘홍준표 1억’이라는 메모가 남아 있었다. (사진출처:http://m.kukinews.com/)
그는 ‘천하대란에는 크게 통치해야 한다’는 대란대치(大亂大治)의 지혜를 발휘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절망과 무력감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겠다”고 밝혔고, 딱 한 달하고 이틀 뒤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홍 지사는 “내가 밋밋한 대선후보에 머물렀으면 나한테 기회가 없었을지 모른다”며 성완종 게이트 연루가 일종의 기회가 됐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성완종 리스트 유죄 시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자살을 검토하겠다” “문재인은 별 거 아니다. 토론하면 10분 안에 제압한다” 홍 지사는 본래도 좋게 말하면 거침없는 화법, ‘막말’로 유명했지만 대선 출마를 전후해서는 더 거칠 것 없다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빗대 ‘홍 트럼프’라고 불릴 정도다. 지난 24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했을 때 진행자인 김어준은 “지사님이 출연하자 욕 문자가 폭발하고 있다, 역대 최고다”라고 말했다.
홍 지사는 맞받아친다. “그거는 집에서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욕을 하니까 전혀 괜찮다. 트럼프가 그렇게 비호감이라도 대통령됐다.”
몸으로 기억하는 가난
“(당 대표가 돼) 이제 중심에 섰지만 치열했던 ‘변방 정신’을 잊지 않겠다.”
2011년 홍 지사가 한나라당 당 대표에 선출됐을 때 한 말이다. 홍 지사는 늘 본인이 권력과 힘도 없고, 조직도 없고, 변방에 머물러 왔다고 말한다.
그는 ‘흙수저’였다.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가난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친 몸과 아픈 시간으로 기억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서민대통령’을 표방할 수 있었던 이유다.
홍 지사는 1954년 12월 경남 창녕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당 800원을 받고 현대조선소 앞 백사장에 적재된 철근 쇳조각을 지키는 일을 했다.
어머니는 ‘달비’(부녀자의 머리카락) 장사를 했다. 어머니가 고리채를 갚지 못해 사채업자에게 길거리에서 머리채를 끌려 다니는 광경도 목격해야 했다.
1. 1977년 2월 고려대 법대 행정학과를 졸업할 당시의 모습 2. 어린 시절 누이와 함께 찍은 사진. 3. 중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4. 고대 법대 1학년 시절의 모습. (사진출처: http://m.kukinews.com/)
낙동강변 하천 부지에 살아 여름철 장마 때면 집을 떠내려 보내야하기도 했다. 양식이 없어 3일 동안 굶기도 했다고 한다. 먹고살 게 없어 가족들이 리어카 하나에 전 재산을 싣고 영남 일대를 돌아다녔다.
가난했지만 공부에 뜻을 두고 큰 도시인 대구로 올라가 영남중에 진학한다. 점심 도시락을 싸 갈 형편이 못 돼 수돗물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성적이 좋았지만 당시 명문고로 꼽히던 경북고로 가지 않고 장학금을 받기 위해 영남고로 진학한다.
육군사관학교 진학도 생각했지만 아버지가 장물인 비료를 매수했다는 누명을 쓰는 것을 보고 법대에 진학해 검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고려대 법대에 진학해서도 일주일 내내 과외를 해서 겨우 학비를 마련했다. 그런 와중에 잠시 운동권에 몸담기도 했다. 여러 차례 총학생회의 지하 유인물을 작성해주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죽도록 맞고 풀려나기도 했다.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 때는 선후배 돈을 모아 격려 광고를 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대학 시절에는 학교 구내 은행에서 일하던 여직원에게 반해 프로포즈를 했고,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기도 한다.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의 모습. 홍준표 지사의 아내는 당시 은행의 말단직원이었다.
사법시험에도 몇 차례 응시했지만 합격은 하지 못했다. 시험에 떨어진 어느 겨울밤 아버지가 있는 울산에 내려갔다가 바닷가 모래밭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에 앉아 있는 ‘일당 800원짜리 경비원’ 아버지의 등판을 보고서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단기사병 복무까지 마친 뒤인 1982년, 스물여덟 살의 일이었다.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세
청주지검 초임 검사 시절 그는 이름을 ‘판표’(判杓)에서 ‘준표’(準杓)로 바꾼다. 훗날 국회의원이 되는 이주영 당시 청주지법 판사가 ‘칼 도’자가 들어가는 이름은 좋지 않다고 개명을 권유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개명이 쉽지 않았던 터라 이주영이 당시 지원장에게 ‘판관의 표상’이라는 이름 때문에 판사처럼 행동한다며 설득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마침 새로 바꾼 ‘세인의 표상’이란 뜻의 이름은 이후 그가 검사로서 유명세를 탈 것을 예고했는지도 모른다.
1988년에는 전두환의 외조카인 김영도가 모 기업인에게 석방을 조건으로 뇌물수수를 받은 사실을 적발해 구속 기소했다.
광주지검 강력부 시절에는 각종 협박과 로비에도 굴하지 않고 광주지역의 조직폭력배인 국제PJ파를 일망타진한다. 그는 지역정치인, 언론까지 나서 ‘조폭’을 비호할 정도로 복잡하게 연계돼 있었던 이 사건 수사에서 큰 고생을 겪는다.
그러고 나서 ‘검사 혼자 뛰어선 안 된다’며 언론이나 여론을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또 그때부터 술집과 유흥가에 조폭이 연관된 것을 알고 나서는 여성 접대원이 나오는 술집은 안 가게 됐다고 한다.
서울지검 검사 시절에는 정덕진의 ‘슬롯머신 사건’을 맡아 ‘6공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을 구속 기소해 명성을 얻었다.
검사시절, 홍준표는 슬롯머신 비리와 엮어 ‘6공의 황태자’였던 박철언 전 의원을 구속기소함으로써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검사시절의 모습(왼쪽)과 박철언 전 의원.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인공 강우석 검사가 그를 모델로 한 것이 알려지면서 ‘모래시계 검사’라는 애칭이 붙기도 했다. 그의 칼날 앞에 당시 이건개 대전고검장, 이인섭 전 경찰청장, 엄삼탁 병무청장, 천기호 치안감 등이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법무부의 수뇌부와 선배 검사를 거침없이 수사하는 ‘소신 검사’의 표상이 됐다. 물론 당시 김영삼 정권의 6공 세력 청산 의도와 맞아떨어진 것으로 홍준표 개인의 능력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이 수사로 검찰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힌 홍 지사는 정형근의 소개로 안기부 파견 검사로 잠시 가 있기도 했지만 결국 검사직을 던진다. 1996년 김영삼의 권유로 신한국당에 입당해 15대 총선에서 송파갑에 출마해 당선되지만 곧 1999년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다.
2001년 다시 동대문을 재보궐선거에 출마, 당선되고 18대까지 같은 선거구에서 내리 4선을 이어간다. 17대에서는 탄핵 역풍도 뚫고 서울 동북권에서 홀로 살아남는 기염을 토한다.
보수주류와는 다른 컬러
정치인으로서 그가 내놓은 정책을 보면 보수 주류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 이중국적 보유자의 병역 회피를 막는 국적법과 재외동포법 개정을 이끌었다. ‘반값 아파트’ 법안을 발의하고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반대하기도 했다.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면제해주고 부유한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더 내게 하는 법안을 내기도 했다.
2006년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해 오세훈 후보에게 패배하고, 2007년에는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가 떨어지기도 한다. 그 뒤 이명박 지지로 돌아서 당 클린정치위원장으로 BBK 의혹 대응을 총괄지휘했다.
김경준의 ‘기획입국설’을 주장하며 가짜 편지를 흔들기도 했다. 당시 김경준과 이명박의 관계를 추궁하는 기자의 질문에 ‘식사했어요?’라는 엉뚱한 말로 받아치며 답변을 회피해 공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2007년 대선에서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을 맡아 BBK연루의혹을 받던 이명박 전 대통령을 온 몸으로 막아냈다. 사진은 그가 2007년 11월 한나라당사에서 각종 문건을 제시하며 기획입국설을 제기하는 모습.
이명박 정권 출범에 즈음해 원내대표를 맡기도 했지만 정권 창출 공로에 비하면 크게 중용받지는 못했다. 이명박 정권과 당 내부를 향해서도 서슴없이 ‘막말’을 내놓는 탓에 ‘좌충우돌 홍두깨’ ‘통제가 안 되는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 급기야 친이계의 지원을 받은 안상수와의 당 대표 경쟁에서 밀려나기도 했다.
2011년 재수 끝에 당 대표직에 올랐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이은 서울시장 재보선 패배,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 등에 휘말려 넉달여 만에 물러나야 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투표율 25.7%가 ‘사실상 승리’라고 발언했다가 각종 패러디에만 올랐다. 급기야 19대 총선에서 패배해 정치인으로서 마지막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스스로도 트위터에 정치를 접겠다는 듯한 발언을 올렸다. “30년 공직생활을 마감합니다. 이제 자유인으로 비아냥 받지 않고 공약으로부터도 해방되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바로 다음날 ‘정계은퇴가 아니라 공직생활 마감을 뜻한 것’이라고 해명하기는 했지만.
총선 패배 후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아 김두관 경남지사가 대선 출마로 사임하자 홍 지사는 경남지사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범야권 단일후보인 권영길을 누르고 당선된다.
학교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중단하고 진주의료원을 폐원시키는 등 독선적 행보로 비난을 받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3년 6개월간 1조4000억원에 이르는 채무를 갚고 흑자재정으로 전환했다며 자랑스러워한다. 도청 들머리에 ‘채무 제로’를 기념하며 사과나무를 심기도 했다.
독설? 또는 막말?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가 결국은 풍차를 깨버렸다.”
슬롯머신 수사 당시 한 신문은 홍 지사를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그 즈음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돈키호테처럼 진실하고 가식 없게 살고 싶다”며 별명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모래시계>의 강우석 검사(박상원)보다는 <넘버3>의 마동팔 검사(최민식)에 가깝다고 말한다.
“한 번 물었다 하면 표범처럼 놓지 않는” 거칠고 집요한 검사, 좌고우면하지 않고 목표물만 노리는 검사다. “검사에게 왜 변호사 자격증을 줍니까. 옷 벗어도 먹고 살 수 있으니 현직에 있을 때 소신껏 일하라는 거죠. 검사는 엉뚱한 것으로 고민할 필요 없어요.”
대학 시절 그의 별명은 ‘무계’였다고 한다. 기발하고 황당한 생각을 많이 한다 해서 ‘황당무계’가 줄어 ‘무계’가 됐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위아래 격의 없이 잘 어울려 ‘무계’가 굳어졌다고 한다. 그를 만나 본 사람들은 입담이 탁월해 좌중을 압도한다고 전한다. 코미디언 시험에도 응시하려 했다고 했을 정도다.
이런 순수하고 투박한 모습의 어딘가에는 ‘망언’에 가까운 독설이 자리잡고 있다. 그의 성정과는 반대편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거울처럼 비추는 것 같기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망언도 처음이 아니다. 이미 당 대표 시절 “자기 성깔에 못 이겨 그렇게 가신 분”이라고 했을 정도다.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을 향해서는 ‘꼴같잖은 게 패버리고 싶다’고 했고, 단식 농성 중인 도의원에게 ‘쓰레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여성과 약자에 대한 발언은 심각하다. 추미애 의원에게 “넌 일하기 싫으면 집에 가서 애나 봐라”고 했고, 종편 방송국 경비원에게는 “니들 면상 보러 온 거 아니다. 네까짓 게”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이나 풍자는 권력과 재벌을 향해 있을 때 다윗의 ‘돌팔매’ 정도로 여겨질 수 있다. 당 대표 시절 홍 지사는 TV인터뷰에 나가서 “대기업 하면 바로 떠오르는 생각이 뭐냐”는 질문에 ‘착취’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들에게 던지는 망언이나 폭언은 연못의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는 격이다. 홍 지사의 발언이 못내 불편한 이유다.
‘스트롱맨’은 역시 ‘스트롱맨’과 싸워야 멋있다. 스트롱맨이 약자를 괴롭히는 건, 그가 평생을 싸워 온 조폭만도 못하고 동네 양아치나 하는 짓이다.
보수의 구심점 될까
‘스트롱맨’인 그는 한편 스스로를 종종 ‘약자’로 자리매김한다. 성완종 게이트 연루에 대해서도 “권력이 없는 자의 숙명이고 ‘모래시계 검사’의 업보라고도 생각했다”고 말한다.
“청와대가 무너지지 않았다면 아직 재판받고 있을지 모른다”고도 말한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비판이나 국민의당, 바른정당과의 연대 시사는 극우보수층으로부터도 공격받고 있다. 상, 하, 좌, 우가 모두 그의 투쟁 대상이다.
어쩌면 ‘약자’이자 ‘스트롱맨’인 그의 정체성과 가장 비슷한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자수성가형으로, 내가 다 해 봤으니 믿고 따르라는 식의 리더십이다. 때로 내가 뱉은 이 말과 저 말이 맞지 않고 이런 태도와 저런 태도가 충돌하더라도 내가 하는 일은 옳다는 신앙에 가까운 믿음이다.
밑바닥 생활을 거쳐 검사가 되고, 조폭들의 ‘죽인다’는 협박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늘 사표를 품에 안고 수사를 했던 시절부터 예고된 성정일 것이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2016년 6월, 채무제로를 기념해 도청 앞에 사과나무를 심었다.(첫번째, 두번째 사진). 그러나 이 사과나무는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4개여월 만에 주목으로 교체됐다. (맨 오른쪽 사진). (사진출처: http://www.hani.co.kr)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도 그는 ‘리더십의 교체’를 부르짖었다. “소통과 통합이라는 위선의 가면에 숨어 눈치만 보는 리더십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반대가 두려워 결정을 미루고, 여론이 무서워 할 일도 못 하는 유약한 리더십으로는 지금의 난관을 극복할 수 없다.”
그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이 작은 나라의 대통령도 하늘의 뜻”이라고 말한다. 은근슬쩍 자신이 하늘의 뜻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 숨기지도 않는다.
지금 상황은 그에게 박근혜의 위기이지 보수의 위기가 아니다. 후보가 되고 나면 20% 가까이 출렁이는 게 여론조사이며, 보수와 진보 진영의 대표 선수가 정해진 뒤에는 집결하는 보수표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임을 굳게 믿고 있다.
“그런 여론조사는 나는 믿지도 않고, 믿었다면 내가 국회의원 매번 할 리도 없고 경남지사 두 번 할 리도 없습니다.”
그가 ‘채무 제로’를 기념하며 경남도청 입구에 심어졌던 사과나무는 결국 시들어 뽑혀나갔다. ‘천명’은 과연 홍준표에게로 향할지…
이낙연 국무총리, 임종석 비서실장, 서훈 국정원장, 조국 민정수석, 조현옥 인사수석, 윤영찬 홍보수석, 이정도 총무비서관,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권혁기 춘추관장이 인선되었다. 이러한 인선은 각기 ‘컨셉’을 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첫 인사 후보자로 왼쪽부터 이낙연 국무총리, 서훈 국정원장, 임종석 비서실장을 발표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개혁 방향 담은 신선한 인사
► 이낙연 국무총리는 호남 총리 및 안정감있는 총리를 상징한다.
► 임종석 비서실장은 김기춘 비서실장에 비하면 30년 정도 젊은 비서실장이다. 그리고 비문(非文) 비서실장의 컨셉을 담고 있다.
► 서훈 국정원장은 국정원 출신을 통해 국정원 개혁을 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 조국 민정수석은 모두가 알고 있듯, 검찰개혁 의지를 표상한다. 검찰출신이 아닌 진보성향 법대 교수이다. 동시에 대한민국 법조는 ‘서울대 법대’ 출신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데, 조국 민정수석은 서울대 법대 출신이기에 검찰-판사-법조계에 두터운 사적 인맥을 갖고 있다. 두터운 사적 인맥은 순기능-긍정적 에너지로 쓰일 수 있다고 본다.
► 조현옥 인사수석은 ‘여성-성평등 내각’에 대한 의지를 담고 있다. 한국정치사에서 청와대 인사수석이 여성인 경우는 처음이다.
► 윤영찬 홍보수석은 네이버 출신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언론 인맥과 감각을 갖고 있다. 그리고 기획력과 기술력을 동시에 갖췄다.
► 이정도 총무비서관은 지방대를 졸업한 비(非)고시 출신, 대표적인 ‘흙수저’ 공무원이다. 문재인 후보와 일면식도 없는, 예산분야에 오래 있었던 공무원이다. ‘문고리 권력’을 휘두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력위주로 인재를 채용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정통 관료출신이다. 기획재정부에서 오랜 시간 근무했고,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출신이다. 정책적 감각이 있는, 그러나 원만한 성품을 갖고 있다. ‘유능한 관료’를 존중하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 권혁기 춘추관장은 문재인 캠프 및 선대본 대변인실 출신이다. 동시에 당직자 출신이다. 오랜 기간의 동고동락했던 ‘당’(출신)에 대한 존중 메시지를 담았다고 본다.
현재까지의 인선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체로 ‘뭔가를 해보려는’ 의지가 느껴지는 인선이다. 매우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완상 對 임동원
다만, ‘잘해 보려는’ 마음가짐과 ‘실제로 좋은 결과는 만드는 것’은 완전 별개이다. 심지어 막스 베버라는 학자는 ‘신념윤리’와 구분되는 ‘책임윤리’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 정도였다. ‘좋은 취지’와 ‘좋은 결과’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1993년 2월 김영삼 정부의 출범은 한국정치사에서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왜? 1961년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이후에, 32년 만에 등장한 ‘최초의 문민정부’였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출범 직후부터 ▴하나회 해체 ▴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 등을 통해 임기초반 한때 지지율이 90%에 달했다.
김영삼은 부총리 위상을 갖는 ‘통일원’(*지금의 통일부) 장관으로 한완상 교수를 임명했다. 한완상 교수는 7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 유명한 분이었다. 근데, 그러다보니 ‘보수 언론의 집중적인 비판과 견제’를 받았다.
한완상 (부총리겸)통일원 장관이 했던 가장 기억에 남는 정책이 이인모씨 등의 ‘비전향 장기수’를 북송(北送)한 것이다. (*비전향 장기수란, 한국전쟁 및 북에서 파견된 남파간첩 출신인데, 전향을 거부한, 장기수들을 의미한다.)
한완상 부총리겸 통일원 장관은 ‘진보 색깔’이 강한 분이어서, 보수 언론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고, 그래서 결국 단명(短命)한 장관이 됐다.
왼쪽 사진은 김영삼 대통령과 함께 회의장에 입장하는 한완상 통일원장관(오른쪽 첫번째), 오른쪽 사진은 김대중 대통령과 임동원 통일부 장관
반면, 1998년 2월에 출범한 김대중 대통령은 통일부 장관으로 ‘국가정보원 출신’ 관료를 임명했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그래서 당시 통일운동단체들은 통일부 장관 임명 반대 운동을 하기도 했다.
바로 그 통일부 장관이 임동원 장관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의 철학-가치와 비슷하지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했다. 그렇게 물색의 물색 끝에 발견한 사람이 당시 국정원에서 일하고 있는 임동원 장관이었다.
김영삼 정부의 초대 통일원 장관이었던 한완상씨와 김대중 정부의 통일부 장관이었던 임동원씨의 비교는 매우 의미심장한 교훈을 준다.
김영삼-한완상 조합은 진보성향의 통일부 장관이었기에, ‘보수파-반대세력의 정서적 반감을 극대화해서’ 실질적인 개혁을 하는데 어려움으로 작용하게 됐다.
반면, 김대중-임동원 조합은, ‘국정원 출신의, 햇볕 정책 지지론자’였기 때문에 반대-보수파가 반대할 명분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이 중에서 무엇이 더 ‘실질적인 개혁’을 위해 바람직한 선택일까? 나는 김대중-임동원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강금실의 사례
검찰개혁-법조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의 연장으로, 사법연수원 기수로 한참 젊은 축에 속했던 강금실을 법무부 장관으로 인선했다. 그러자 법무부-검찰에 있던 ‘기수가 높은’ 선배그룹들이 집단사퇴하며 항의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마련됐던 자리가 ‘평검사와의 대화’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탈권위주의-수평적 리더십을 중시 여겼기에 평검사와 격의 없이 대화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들과 대화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가오-권위’가 있어야 한다. 가오-권위는 그 자체 선•악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 없고, 오히려 가오-권위를 수단으로, 선용(善用)했어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 목적’은 잊어버리고, ‘수단-방법-소통방식’에 연연했다. 결과적으로, 참여정부는 집권초기에 검찰개혁의 동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탈권위주의-수평적 의사소통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수단과 목적이 뒤엉키면 안된다. 극단적으로 대비해서, ‘탈권위주의적 의사소통을 통해 + 반대파를 결집시키며 + 무능하게 + 검찰개혁을 실패하는 것’보다는 ‘권위주의적 의사소통을 통해 + 반대파의 결집을 최소화시키며 + 유능하게 + 검찰개혁을 성공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반대파 달래는 지혜롭고 전략적인 인선
이제, 논의를 정리해보자. 한완상-임동원-강금실 인선의 교훈은 무엇인가?
이를 정리해보면, ‘문화는 보수적으로, 컨텐츠는 중도진보적으로’ 접근해야 ‘성공하는 개혁’에 더욱 다가설 수 있다. 같은 말의 다른 표현으로, ‘내각의 리더는 보수적으로, 컨텐츠는 중도진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조국 교수의 민정수석 임명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개혁’의 의지를 만천하에 천명했다. 그러나, ‘현직 검찰’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했을 수 있다.
그럼,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되’ + ‘검찰 내부에서 덕망이 높고, 존경받고, 연배도 지긋한 검찰출신’으로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의 의지가 높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들은 없다. 그리고 그걸 모르는 검찰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정서적 반감’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정서적 반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명분’을 이쪽이 제공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마지못해’ 검찰개혁을 수용하는 모양새라도 취할 수 있고, 검찰내부에 있는 개혁세력이 운신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질 것이다.
보수적 정서를 고려해서, 반대파의 최소화를 위해, 보수적 방법을 채택하되, 실제로는 진보개혁적 성과를 내는 것. 바로 이 지점이 김대중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정치력’의 진짜 핵심이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는 민주정부 3기이다. ‘기분 좋은-섹시한’ 내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로 ‘성공하는’ 민주정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자면, 반대파의 비판과 견제를 상수로 간주하면서도, 실제로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 대통령이 모범적으로 보여주었던 ‘지혜로운, 전략적 인사방법’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직선의 정치학’이 아니라, ‘곡선의 정치학’이다.
지난 6일 발표된 법무부 인사에서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담당 검사와 간첩증거 조작사건 담당 검사의 운명이 엇갈렸다.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에서 팀장과 부팀장을 맡았던 윤석열 검사(23기)와 박형철 검사(25기)에 대해 각각 대구고검에서 대전고검으로, 대전고검에서 부산고검으로 인사 발령이 났다. 또다시 한직으로 여겨지는 고검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반면 유우성 씨 간첩사건을 수사지휘하다 조작된 증거를 법정에 냈던 이시원 검사(28기)와 이문성 검사(29기)는 모두 1년 5개월만에 지방고검 탈출에 성공했다. 이시원 검사는 대구고검에서 법무연수원 기획과장으로, 이문성 검사는 광주고검에서 전주지검 부장검사로 인사발령이 났다.
대전고검 발령 2년 만에 다시 부산고검으로 인사 통보를 받은 박형철 검사는 다음날(7일) 사표를 제출했다.
윤석열 검사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박형철 검사는 서울에 있는 가족과 오랫동안 떨어져 있으면서 힘들어했다”면서 “그런데 현재보다 먼 부산으로 내려보냈기 때문에 가족과 논의 끝에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윤석열, 박형철, 이문성, 이시원 검사
유능했다…그러나 모두 정의롭지는 않았다.
이들 4명의 검사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좌천성 인사를 받고 지방고검으로 내려가기 전에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윤석열 검사와 박형철 검사는 검사장의 승인없이 국정원 직원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는 이유로 각각 정직 1개월과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받았고, 이시원 검사와 이문성 검사는 유우성 씨 간첩사건에서 조작된 증거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항소심 재판부에 냈다가 각각 정직 1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이들이 모두 검찰 안팎에서 인정받는 유능한 검사였다는 점이다.
윤석열 검사는 대검 중수부 1.2과장과 서울지검 특수1부장을 지내며 현대차 비자금 사건, 론스타 헐값 매각 사건 등 대형사건을 처리했던 ‘특수통’이었고 박형철 검사는 선거법 분야에서 이시원 검사는 공안기획분야에서 검찰조직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으며 기수 동기들 중에서도 에이스급으로 꼽히던, 속된 말로 ‘잘 나가는’ 검사였다.
그러나 이들이 맡았던 사건의 성격은 서로 달랐다.
대선개입 사건은 파고들수록 권력자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유우성 씨 간첩증거 조작사건은 어떻게든 검사의 잘못을 최소화해야 검찰이나 국정원의 체면을 살릴 수 있는 사건이었다.
또한 수사 검사의 의지도 판이했다. 윤석열 검사와 박형철 검사는 국정원이라는 권력기관의 불법 행위에 대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법대로 처리하려고 했다. 특별수사팀을 지원하는 대신 권력자의 눈치를 보며 오히려 국정원을 옹호하는 장관과 맞서 싸웠다.
그러나 이시원 검사와 이문성 검사는 국정원 직원의 증거 조작이라는 불법 행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애써 눈감아주려고 했다. 자신들이 수사를 지휘하고도 증거 조작을 부인했고, 증거 조작 사실이 확연히 드러나자 증거 조작에 가담했거나 방조했다는 의혹으로부터 빠져나가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씀으로써 검찰 조직을 보호했다.
그 결과 지방고검으로의 문책성 전보 이후, 이번 인사에서 이들의 운명은 갈렸다.
“찍히면 끝이라는 인식 검찰 내부에 팽배”
검찰 내부 사정에 밝은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고검에서 고검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는 보통 기수가 높아서 검찰에서 나가야 하는데 자진해서 안 나가는 검사들의 경우지 박형철 검사처럼 한창 일할 나이의 능력있는 검사가 2번씩이나 지방고검을 떠도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이시원, 이문성 검사의 경우 이번 인사가 혜택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법무연수원은 한번은 들러야 되는 곳이고, 고검에서 지검 부장검사로 갔다는 것은 현장에서 일할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배려는 해주었다고 봐야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윤석열 검사는 “내 인사는 어차피 이렇게 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박 검사의 경우는 최소한 서울고검이나, 아니면 지방 차장검사 정도는 갈 것이라는 의견이 검찰 내부에서도 많았고 박 검사 본인도 그렇게 예상했다. 무슨 비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장관의 지시가 위법하다고 본 팀장의 지시에 부팀장으로서 따라온 것 뿐인데 너무 가혹할 뿐 아니라 납득하기 힘든 인사”라고 평가했다.
박형철 검사는 검찰 내부통신망인 ‘이프로스’에 사직의 변도 올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검찰에 몸담았던 검사들은 조직을 떠나면서 쓴소리든 단소리든 내부통신망에 소회를 밝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윤 검사는 “글을 올리게 되면 동료, 후배 검사들이 그 글에 대해 댓글을 달아도 부담이고 안 달아도 부담이 되는 상황이 현재 검찰 분위기라며 그런 이유 때문에 박 검사가 아무런 글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프로스에는 2013년 징계 때와는 달리 이번 인사에 대해 성토하는 글이 현재까지 단 1건도 올라와 있지 않다. 한 변호사는 “청와대에 파견됐던 검사들이 이번 인사를 통해 다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괜히 한마디 했다가 찍히면 끝장난다”는 인식이 검찰에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노동당서울시당은 노량진수산시장현대화사업비상대책총연합회(이하 총연합회)와 함께, 현재 극단적인 갈등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에 대한 감사원 감사청구를 진행한다. 오늘(22일) 오후 1시 감사원을 통해서 공식 접수될 예정이다.
이번 감사는 공익감사청구로 진행되는데, 이는 국고보조금 집행이나 법령 위반 문제 외에도 정부와 수협에서 추진한 수산시장현대화사업이 당초 목표인 '수산물유통선진화를 통한 생산자와 소비자의 편익 증진'을 달성했는지에 대한 정책사항도 감사사항에 포함했기 때문이다.
이번 감사의 대상은 수협과 함께 해양수산부를 포함한 것도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이 상인들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변화에 의해 하향식으로 추진된 사업이라는 점을 고려했다. 특히 이번 감사에서의 쟁점은 현대화사업이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추진되고 이에 따라 국고지원이 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법률에 따른 수협의 법적 지위가 모호하다는 부분이다. 실제로 법령에 따르면 노량진수산시장의 시장개설자는 서울시장으로, 도매시장의 개설은 모두 시장개설자의 권한과 역할로 규정되어 있다. 그런대도 해양수산부는 이를 우회해서 수협을 통해 사업을 추진했고, 2003년 무상으로 시장을 인수한 수협중앙회가 시장 부지의 일부를 자체 수익사업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방치했다.
이번 감사청구 외에도 총연합회와 함께 <서울시 주민참여 기본조례>에 의거한 시민청구공청회도 추진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서, 시장개설자의 지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량진수산시장의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서울시의 직접적인 책임을 묻고,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할 예정이다. [끝]
*감사청구사항 목록
(1)해양수산부에 대해
-노량진수산시장현대화사업의 법적 근거는<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 의거한 것인 만큼,현재 해양수산수가 추진하고 있는 현대화사업의 추진 방향이 근거법의 목적에 부합하는지 여부
-신규 건설된 현대화시설이 기존 도매시장을 안정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시장 건물로 부적합함에도 불구하고 현대화사업을 책임 정부부서인 해양수산부가 정책적 책임을 하지 않는 것의 정당성 여부
-해양수산부는2006년에 수행한KDI용역타당성보고서의 경제성 분석을 근거로 국고보조금1,540억원을 지원하였으나,이후 추진된 현대화사업이KDI보고서의 취지와 다름에도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적절했는지 여부
-당초 현대화사업에 따른 신축공사비용이2012년 계약당시1,827억원이었는데 최종적으로2,134억원으로 증액되었고,또 기존 비축기지 매입에 따라2,276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고보조사업의 관리 책임자인 해양수산부가 이와 같은 사업비 증액에 대해 사업관리자로서 법적 책임을 다했는지 여부
(2)수협중앙회에 대해
-국고보조사업의 보조사업자로서 수협중앙회가 당초 입안한 계획과 상이한 계획에 따라 사업을 추진한 부분에 대한 위법성 여부
-국고보조금1540억원의 집행 과정에서 사업비의 증액이 발생하고 변칙적인 사업변경이 진행됨에 따라 사실상 보조금의 목적 외 사용을 한 부분에 대한 위법성 여부(신축 건물의 층별 사용 목적 변경,도매시장 기능과는 상관없는 시설의 배치 등)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 의해 지정된 노량진수산시장의 시장개설자는 서울시임에도 불구하고,수협중앙회가 시장을 전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법적 적격이 있는지 여부
-2003년 정부의 정책에 의해 노량진수산시장이 수협중앙회의 관리로 이관될 때 어떠한 매수기관으로서의 반대급부(매각비용의 지출 등)가 없었음에도 민간법인인 수협중앙회가 노량진수산시장의 부지 등 공유재산에 대해 자의적인 처분 등을 진행할 수 있는지 여부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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