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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나는 무사히 노인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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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나는 무사히 노인이 될 수 있을까

admin | 수, 2023/03/29- 09:56

글 조기현 작가, 《아빠의 아빠가 됐다》, 《새파란 돌봄》 저자

“비참해지고 싶지 않아요. 자식이 무슨 죄입니까. 폐 끼치기 싫어요.”

모임에서 대화를 나누던 도중, 한 남성이 언성을 높였다. 그는 치매가 있는 부모를 돌보다가 몇 년 전 떠나보낸, 7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부모나 배우자를 돌보았던 중고령층 시민들이 모여서 ‘돌봄’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고, 이미 몇 차례 모임에서 대화를 이어온 터였다. 진행자였던 나는 그의 반응에 당황했다. 평소에 자신의 돌봄 노하우나 부모가 임종할 때 상황 등을 찬찬히 들려주던 그였기에 더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그날의 대화 주제는 ‘나에게 치매가 시작된다면?’이었다. 이제까지 돌봄을 제공하는 위치에서 이야기를 나눴으니, 반대로 돌봄을 받는 위치에서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의존하는 나’를 상상하는 건 쉽지 않았다. 누군가 “치매를 앓는 나는 상상하기도 싫다”고 말하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치매 진단을 받기 전에 미리 치매보험을 들어놔야 하고 진단을 받으면 제 발로 걸어서 요양원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도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언성을 높였던 그는 다시 숨을 고르고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가 모여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다 몸이 건강하고 인지능력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닙니까? 건강해야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다들 바쁜 사람들이에요.”

실제로 그의 말처럼 모두가 바빴다. 돌봄을 하는 사람은 돌봄과 파트타임 일을 병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돌봄이 끝난 이들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은퇴 후 사이버대학교에 입학해서 중간고사 기간에는 모임 참석이 힘들다고 했고, 누군가는 국가공인자격증을 여럿 따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또한 지역에서 이런저런 직책을 받아서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고, 빽빽한 캘린더를 보여주며 “젊었을 적 못지않게 빈틈없는 일상을 산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다양하게 도전하고 교류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 활력을 느끼면서도, 어쩐지 내 마음에 불안이 피어올랐다. 그때는 내가 왜 불안을 느끼는지 알지 못했다.

‘마처세대’라는 신조어를 알게 된 건 그 이후였다. 마지막으로 부모를 돌보는 세대이자 처음으로 자녀에게 돌봄 받지 못하는 세대를 뜻하는 말이다.1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베이비붐 세대가 부모를 부양하면서 동시에 아직 자립하지 못한 자녀까지 부양하는 이중부담에 시달린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그들이 돌봄이 필요한 시기가 되니 ‘셀프케어’, ‘셀프부양’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 ‘마처세대’라는 말을 듣고, 나는 내가 느낀 불안의 정체를 조금 더 선명하게 인식했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쓸모’가 없어지면 아무도 나를 돌봐주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이었다. 앞으로 내가 잘 돌봄 받는 미래보다 죽을 때까지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미래의 전망이 더 뚜렷해지는 듯했다. 우리는 무사히 노인이 될 수 있을까?

영 케어러는 ‘돌봄 받는 나’를 상상하지 못했다

그날 ‘치매가 시작된다면?’을 주제로 한 대화는 막막하게 끝이 났지만, 어찌 보면 더 묵직한 질문을 남겼다. 왜 돌보는 사람은 정작 자신이 돌봄 받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걸까?

중고령층뿐 아니라 영 케어러young carer, 즉 돌봄 청(소)년에게도 이 질문은 막막하게 다가온다. 돌봄 청년들이 모인 자조 모임에서 “우리가 나이가 들면 어떤 돌봄을 받을 수 있을지 상상해보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난 돌봄 경험에 기대어 내가 돌봄 받는 미래를 상상해보려고 해도 구체적인 상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를 돌본 우리의 경험을 생각하면, 이렇게 막막한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내가 없으면 해결할 수 없었던 돌봄의 위기 상황들을 혼자서 헤쳐 나갔고, 돌봄 받는 사람이 요양기관이나 시설에서 어떻게 취급받는지도 현현하게 보았다. 모임에 참여한 20대 여성은 어머니를 돌보고 있었는데 “돌봄 받는 나를 상상하자는 제안이 마치 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보라는 것처럼 여겨졌다”고 했다. 누군가를 잘 돌보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이 돌봄 받는 상황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지금 한국의 저출생 고령화 추세를 보면 이런 아이러니가 사회에 더 만연해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통계청이 2021년 12월 발표한 ‘장래인구추계: 2020년~2070년’을 보면 2070년 고령인구는 1,747만 명으로 증가한다. 반면 생산연령인구는 2020년 3,738만 명에서 10년간 357만 명이 감소하고, 2070년에는 1,737만 명으로 줄어든다. 2070년이면 일대일의 부양 구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한 명이 여럿을 돌볼 가능성도 크다.

아무 돌봄을 받지 못하는 노인 1인 가구가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가 되진 않을까? 2070년에 78세가 되는 나는 과연 친밀한 관계에서 돌봄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결국 셀프케어와 셀프부양이 답일까?

유병장수가 겁난다면 ‘돌봄의 사회연대’를 만들자

그러나 셀프케어와 셀프부양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우리 중 누구도 생애 전체를 셀프로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셀프’는 ‘인간은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허구적 개념에 기대서 증식한다. 우리 삶의 기반은 돌봄이고 의존이다. 하지만 의존은 혐오의 대상이 되고, 의존하는 인간상은 사회에서 배제된다. 셀프케어, 셀프부양 대신 ‘돌봄과 의존’을 다시 상상할 수는 없을까?

그러려면 모두가 돌봄을 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돌봄을 받았고, 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받을 것이다. 이렇게 모든 인간이 돌봄을 받는데도, 누구는 돌봄을 하고 누구는 돌봄을 하지 않는다. ‘무임승차자’가 있는 셈이다. 《돌봄 민주주의》의 저자 조안 C. 트론토는 돌봄에 무임승차 하는 특권을 회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력이 있고 돈이 있고 남성이라는 이유로 돌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버려야 돌봄 민주주의가 시작될 수 있고, 돌봄이 모든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 사회는 돌봄을 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려고 방향을 모색하는 듯 보인다. 정부는 돌봄 공백을 AI 복지사, 돌봄로봇 등의 기술로 대체하려는 시도에 힘을 싣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이슈화했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한술 더 뜬다. 지난 3월 20일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법안을 발의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 속에서 ‘떠넘길 수 있을 때까지 돌봄을 떠넘기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인다. 이런 추세가 가속화된다면 돌봄을 하는 사람도 돌봄을 받는 사람도 함께 소외될지도 모른다. 돌봄의 가치가 더 폭락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 모두 적극적으로 ‘돌봄 하는 나’와 ‘돌봄 받는 나’를 상상해야 한다. 이러한 상상을 통해 돌봄의 가치를 말로만 내뱉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수행할 수 있는 돌봄의 가치를 곱씹을 수 있다. 또한 돌봄 받는 이의 의존이 비정상이 아니라는 사실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 그랬을 때 돌봄은 미래세대와 노년세대의 갈등의 장이 아니라, 사회연대의 장으로 힘을 얻을 것이다.

최근 연금개혁 논의가 한창이다. 모두를 포괄하는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사회연대가 중요하듯이, 아무도 배제되지 않는 돌봄을 위해서도 사회적 연대가 꼭 필요하다. 모두가 돌봄의 역할을 나눠 가질 때 위험은 줄고 안정은 늘기 때문이다.

걱정 없이 늙어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풀어가야 할 문제가 산적하다. 노동시간을 늘리려고 하는 윤석열 정부가 돌봄을 할 시간은 보장할 수 있을까? 돌봄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한 서울사회서비스원을 오세훈 서울시장이 축소하려는데 이는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인구 재생산 관점을 넘어 ‘혈연이나 혼인 바깥의 돌봄’을 사회적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여성에게 편중된 돌봄에 남성들이 더 많이 참여하게 만들 수 있을까? 언제쯤 능력주의와 공정담론을 넘어 우리 모두가 취약하며 서로가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까?

이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서 이제부터라도 우리 생애 중심에 돌봄을 두고 삶을 전망해야 한다. 아프고 노쇠해 돌봄 받는 삶이 두렵지 않은 세상을 위해서 말이다.


1  ‘“내 나이 환갑, 자격증 열공중”…셀프부양 위해 일터찾는 노부모들’, 매일경제, 202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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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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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녹색전환연구소 운영실장

올겨울 난방비 고지서를 받고 모두 사색이 되었을 것이다. 난방비가 많이 나온 이유는 다양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한국은 에너지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이기에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그뿐인가. 북극에서 불어닥친 한파가 보일러 온도를 올렸고 이러한 맥락에서 에너지 요금이 동반 상승했다.

난방비 문제로 곳곳에서 앓는 소리가 나오자 국회와 정부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지원금 카드부터 꺼냈다. 동시에 ‘난방비 폭탄’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여당과 야당은 서로를 탓하기 시작했다. 마땅한 해결책 없이 상대 정당을 비난하는 현수막만 동네마다 즐비하게 걸었다. 일각에서는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인상한 것 자체가 ‘공공성’ 또는 ‘에너지 기본권’을 훼손하고 박탈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결국, 작금의 난방비 사태는 ‘전쟁’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기에 난방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말이다. 한국과 해외 사례를 비교해서 살펴보자.

같은 폭탄, 다른 정책

한국에서 난방비 대란에 대한 공방攻防만이 오갈 때, 우리와 비슷하거나 혹은 더 심각하게 러-우 전쟁의 타격을 입은 국가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독일과 프랑스, 미국의 경우 난방비가 급격하게 오른 상황은 같으나 정부의 대응 방식은 한국과 큰 차이가 있었다. 이번 사태가 에너지 위기의 결과임을 인정하고 구조적 해결책을 마련한다는 점, 더 나아가 난방비를 주거 문제와 연결 지어 풀어가고 있다는 점이 핵심 차이다.

한국처럼 재생에너지 비율이 두 자릿수조차 안 되는 국가에서는 에너지 생산부터 소비까지 모든 과정에서 과도하게 탄소배출을 할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 대응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난방비 문제 해결을 위한 기존의 에너지 생산 방식은 필연적으로 사회적·경제적 비용을 상승시킨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에너지 요금 인상을 정직하게 논의하지 않았고, 이로 인한 충격을 시민들이 직격으로 맞은 것이다. 에너지 생산 및 수요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요금은 오를 수밖에 없고, 보통의 시민들이 그 부담을 각자 짊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기후위기 대응과 적응’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에너지 안보를 지켜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탄소 절감, 에너지 분권·자립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가격 변동성이 낮고 지속 가능한 재생에너지 확대도 필수적이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조차 영구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핵발전소로 탄소중립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겠다”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획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모두가 안전한 에너지 전환정책은 이제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는 더 뜨거워지고 날씨는 변덕스러워질 것이며, 에너지 가격은 감당할 수 없이 높아질 것이다.

주거권과 에너지 기본권, 두 가지 권리 동시에 사수하기

또 하나 우리가 함께 요구할 것이 있다. 주거 공공성을 강화하는 일이다. 난방비 사태를 맞은 독일이 가장 먼저 내린 결단은 바로 ‘강제 퇴거 금지’ 조치였다. 에너지 요금을 감당하지 못해 월세를 못 내도 세입자를 내쫓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프랑스 역시 주거 관련 법안을 만들고 있다.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집은 아예 세입자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단기적인 에너지 요금 지원으로 땜질만 하는 한국과는 전혀 다르다.

미국의 경우 ‘모두를 위한 청정에너지’라는 이름으로 주거 개선 사업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고, 백악관 홈페이지에 관련 정책 정보를 게재하고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 감축법1 Inflation Reduction Act의 연장선에 있는 조치로, 주거 공간의 상태에 따라 기후위기의 영향을 다르게 겪기에 정책적으로 주택 품질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2018년 한국의 여름을 복기해보자.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기록적인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160여 명에 달했다. 온열질환 사망자의 50%가 의료시설에서, 19%가 주택에서 발생했다.

이 통계는 적정하지 못한 주거 공간이 시민의 삶을 얼마나 위협하는지 잘 보여준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노인 빈곤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한국에서 폭염·혹한 등 날씨로 인한 인명피해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에게나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주거 공간확보’는 필수적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주거 공공성을 가열차게 주장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구멍 뚫린 에너지 바우처 대신 에너지복지법이 필요하다

이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화는 피할 수도 미룰 수도 없다. 대표적으로 에너지복지법이 있다. 바우처voucher로 포괄하지 못하는 시민들의 삶을 담을 더 큰 그릇이 필요하다. 여러 전문가가 지적하듯 현재 에너지 바우처는 대상자가 매우 불분명한 데다가 심각하게 파편화되어 있다. 또한 한국 복지정책의 고질적 문제점인 ‘신청주의’로 인해 당사자가 직접 신청하지 않으면 복지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수급 자격도 협소하다. 소득 기준으로는 바우처를 받을 수 있는 생계급여·의료급여 당사자라고 하더라도 노인·영유아·장애인·임산부·한부모가족 등 ‘세대원 특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수급 자격에서 탈락한다.

이로 인해 매년 에너지 바우처 지급률은 떨어지는 추세다. 단전가구2 중에서도 에너지 바우처 이용률은 10%에 불과하다. 결국 에너지 위기 속에서 사회안전망의 구멍이 더 커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2월 8일 ‘기후전망과 전략, 10인과의 대담’에서 대기 과학자 조천호 교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 6차 보고서를 토대로 “어느 때보다 나빠지는 기후 상황에서 지역별·계층별 불평등은 더 강화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제 의회를 통해 기후위기 불평등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해법을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그런 점에 최근 출범한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의 역할과 책임이 막중하다. 엘니뇨El Nino 현상으로 또다시 역대급 더위가 예상되는 2023년에 5년 전 여름처럼 불평등한 재난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1  기후변화 대응, 친환경 에너지의 보급, 취약계층 지원 확대, 일자리 창출 및 노동자 보호, 의료비 지원 등을 목표로 약 7,900억 달러의 재정을 투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
2  전기요금 체납으로 전류 제한을 겪은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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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3/02/24-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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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임성희

무제한으로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한 독일의 ‘9유로Euro 정책’이 국내외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 기후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세계적으로 무제한 또는 무상 대중교통을 확대하고 있는데, 9유로 정책은 이 흐름에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정책 내용을 살펴보자. 독일 정부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3개월 동안 지역 간 고속 열차를 제외한 모든 대중교통을 월 9유로(약 1만2천 원)로 무제한 이용하도록 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를 위해 제도 시행 기간에 26억 유로(약 3조 4천억 원)의 정부 재정을 투자했다.

9유로 정책은 시행되자마자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고 총 5,200만 장의 티켓이 판매되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독일 정부는 △물가상승률 0.7% 감소 △대중교통 이용 25% 증가 △이산화탄소 180만 톤 저감 및 대기오염 6% 감소 △교통혼잡 개선 △가구 소득보존 등의 다양한 사회경제적 효과를 달성했다. 이 밖에도 독일의 복잡한 대중교통 요금체계를 단순화하는 성과도 얻었다.

정책이 대대적으로 성공하자 상시적인 도입 요구가 거세게 일었다. 독일 연방정부와 주 정부는 논의 끝에30억 유로(약 4조 원)의 예산을 절반씩 부담하기로 하고, 2023년 5월 1일부터 월 49유로(약 6만 6천 원) 무제한 독일 티켓DeutschlandTicket을 상시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기후위기와 고물가 시대에 국가 차원에서 공공요금 정책으로 대중교통의 사회경제적 편익을 증명하면서 변화를 끌어낸 것이다.

한국산 ‘9유로 티켓’ 도입, 재정여력은 충분하다

이러한 영향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기후환경단체 중심으로 1만원패스연대(준)가 결성되었고, 정의당도 ‘3만원 무제한 패스’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반면 서울시는 ‘해외에 비해 요금이 싸며, 무임수송에 따라 적자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300~400원의 대중교통 요금 인상을 예고했다. 정부의 공공요금 동결 기조에 따라 인상 시기는 올 4월에서 하반기로 연기했지만, 계획은 바꾸지 않았다.

이러한 서울시의 입장은 대중교통 이용자가 누구인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변화된 상황은 무엇인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이다. 우선 외국과 달리 정기할인권이나 소셜Social할인 제도가 활성화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만큼 요금이 늘어난다.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는 저소득 노동자, 청년 실업자, 노인, 영세자영업자, 장애인 등에게는 요금부담이 역진逆進적이다. 특히 요즘같이 경제위기와 고물가 시기에는 그 부담이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중교통 이용률은 보수적인 정부 통계로도 이전 대비 3분의 1 이상 폭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률 회복과 증진을 위해서 적극적 인센티브 정책도 요구된다. 지금은 오히려 무제한 정액제 도입 등의 긴급 처방이 필요하다. 재정을 들여서라도 서민을 위해 요금을 내리고, 대중교통 이용률을 복원하고 더 늘려서 환경오염에도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재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교통시설 특별회계 세출 예산’을 교통 관련 재정으로 사용한다. 이 중에 불용不用 처리되어 5년2017~2021년 동안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 예탁된 돈만 무려 20조 원이라고 한다. 정부의 결단만 있으면 유류세에 부과되는 재원으로 조달된 교통시설 특별회계 예산을 대중교통 요금할인과 운영지원을 위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중앙정부가 재정을 내어놓는다면 지방정부 또한 쉽게 호응할 것이다. 정부는 이미 자가용 이용자들에게는 유가 인상에 따른 9조 원의 유류세를 감면해주었다. 대중교통 이용자에 대한 혜택도 그만큼 줄 수 있어야 한다.

사회구조를 바꾸는 요금제, 우리도 할 수 있다

독일 9유로 정책의 사회경제적 편익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증명되고 있다. 아직은 소규모이지만 강원 정선군, 경기 화성시, 경북 청송군 등에서 무상버스 정책을 도입한 것이다.

강원 정선군은 2020년 6월부터 버스공영제와 함께 65세 이상 노인과 초·중·고 학생들에 대한 부분 무상교통을 실시했는데 승객이 30% 증가하고 지역 상권이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경기 화성시 또한 2020년 11월부터 버스공영제와 함께 청소년·노인·청년(만23세 이하) 대상 무상교통을 실시해 환경개선, 교통비 절감, 경제활성화 등으로 연간 약 86억 6천만 원의 사회경제적 효과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보편복지의 일환으로 2023년부터 전면 무상버스를 도입한 경북 청송군은 시행 두 달 만에 이용객이 20% 늘었고 이동 증가로 지역경제도 활성화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광역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세종시는 광역단체 최초로 2025년부터 시내버스 요금 전면 무료화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앞으로 지역을 중심으로 부문 또는 전면 무상교통이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정책이 요금할인과 무상교통 자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책이 지속적으로 유지·확대되기 위해서는 수요 확대에 걸맞은 인프라 확대, 재정투자 증가, 안전인력 충원 그리고 통합공공교통체계가 수반되어야 한다.

대중교통이 잔여적이고 주변적인 한국 현실에서 무상교통 및 무제한 요금제는 고물가 대응, 환경오염 저감과 지역 활성화 등을 도모하기 위한 사회경제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자가용 중심 체계에서 대중교통 중심 체계로 전환하는 마중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독일 9유로 정책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시사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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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3/02/2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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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한국에서만 치열한 ‘재정건전성 논쟁’

작년과 올해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또 다시 재정건전성이 도마에 올랐다. 한쪽은 “재정건전성이 중요하니 국가부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고물가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 말이 맞을까? 아니면 두 개의 상반된 주장 사이 어디쯤 정답이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재정건전성 논쟁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재정건전성 논쟁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정답은 “이런 논쟁을 하지 않은 것”이다. 재정건전성은 영어 ‘financial soundness’의 번역어다. 그런데 이는 OECD 등 다른 나라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는 개념이다. 최근에는 재정건전성보다 ‘재정의 지속가능성’financial sustainability을 논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재정건전성은 부채가 적고 재정수지1가 흑자일수록 좋다고 평가받는다. 반면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중장기적인 재정의 건강 상태 유지에 관심을 둔다. 조금 거칠게 말하면, 지금 당장 빚을 져서라도 필요한 투자를 하면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즉, 단기적인 재정건전성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중장기적인 재정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당장의 재정건전성을 위해서 아무런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중장기적인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하락한다.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다.

부채가 적을수록 좋다?

CNN 뉴스 사이트에서 ‘financial soundness’를 검색하면 29개
기사만 검색되나 ‘financial sustainability’를 검색하면 347개
기사가 검색된다.(검색일 2023.2.23 기준)

국가 부채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부채는 적을수록 좋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부채는 적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가장 적절할수록 좋다. 2022년 기준 삼성전자는 115조 원이 넘는 돈을 가지고 있다.2 그럼에도 94조 원의 부채를 유지하고 있다. 10조 원의 매입채무3는 물론 5천억 원의 사채까지도 아직 존재한다. 현금이 그렇게 많은데 왜 빚을 져서 물건을 사고 사채도 안 갚고 있을까? 삼성전자의 재정 목표는 ‘가장 적은 부채비율 달성’이 아니다.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 유지’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을 유지할수록 좋다. OECD 국가 GDP 대비 부채비율 평균은 120%가 넘는다. 부채비율이 적을수록 좋다면 이 국가들이 모두 잘못된 행정을 한다고 평가해야 한다. 물론 그럴 리는 없다.

그럼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이 얼마일까? GDP 대비 50%일까? 100%일까? 불행히도 ‘알 수 없다’가 정답이다. 하버드대 로고프 교수는 적절한 부채비율을 제시한 적이 있지만, 기초적인 에러가 발견되어 큰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전 세계 어떠한 재정 전문가도 적절한 부채비율을 안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런데 유독 대한민국 언론과 정치인들은 ‘적절한 부채비율을 안다’고 주장한다. 현재 한국 부채비율이 50%로 너무 높다는 말은 곧 현재 적절한 부채비율은 50% 이하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한국의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이 40%인지 60%인지 알 수 없다. 만약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이 40%라면 현재 부채비율을 50%에서 더 낮춰야 한다. 그러나 적절한 부채비율이 60%라면 반대로 부채비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 부채비율을 높이면 빚을 더 많이 지는데, 이게 왜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일까? 물론 부채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허비한다면 당연히 부채는 낮을수록 좋다. 그러나 국가가 부채를 통해서 조달한 자금은 경제성장을 높이고 사회 후생을 높이는 데 쓰인다. 한마디로 말해서 부채 조달 비용보다 이를 통해 창출할 수 있는 사회적 후생이 더 크다면 부채를 더 조달하는 것이 이익이다.

내가 국민은행에서 4%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고 새마을금고에서는 5% 이자를 주는 예금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국민은행에서 얼마를 빌리는 것이 가장 큰 이득일까? 정답은 다다익선이다. 그러나 내가 지나치게 돈을 많이 빌리려고 하면 국민은행은 나의 대출금리를 높일 것이다. 또한 내가 지나치게 많은 돈을 예금하려고 하면 새마을금고는 나의 예금금리를 낮추게 된다. 결국 이론적으로는 대출금리와 예금금리가 같아질 때까지 돈을 빌리는 것이 가장 좋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국채 이자를 지불하고 이를 사회에 투자한다. 우리나라 전역에 완벽한 ‘포트폴리오 투자’4를 한다면 명목성장률5 정도의 이익을 얻게 된다. 2000년부터 2021년까지 우리나라 명목성장률이 국채이자율보다 낮았던 해는 단 두 해밖에 없다. 이는 지난 20년간 국채발행이 지나치게 비효율적으로 발행했다는 방증일 수 있다.

국채 투자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국채에 투자하지 않았다면 여유 재원을 금고가 아닌 다른 어딘가엔 투자할 것이다. 안전자산인 국채에 투자하는 대신 다른 안전자산인 토지·건물 등 부동산에 주로 투자하지 않을까? 국채는 국가입장에선 채무지만 투자자에게는 자산이다. 그리고 국채 투자자의 80% 이상은 내국인이다. 국가가 국채라는 자산을 공급해주면 투자자는 안정적 이자 수입을 얻고 더 많은 소비를 창출할 수 있다. 최소한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국가경제에 더 효율적이다. 국고채는 한국 전체 채권시장에서 약 40%의 비중을 차지하는 최대 공급원이다. 국채가 없으면 채권시장 자체가 형성되기 어려울 지경이다. 즉, 국가부채는 적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적절할수록 좋다는 점을 시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지속가능한 ‘적절한’ 부채를 이야기하자

끝으로 국가의 부채비율을 낮췄을 때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는지도 파악해 보자. ‘매크로 레버리지’macro leverage라는 개념이 있다. 정부부채·가계부채·기업부채를 통틀어서 매크로 레버리지라고 한다. 그런데 정부부채·가계부채·기업부채는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가 낮아지면 다른 두 개의 부채는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즉, 정부부채를 낮추려고 하면 가계부채나 기업부채가 높아진다. 마찬가지로 가계부채를 낮추려고 하면 정부부채나 기업부채가 높아진다.

현재 한국 매크로 레버리지 상황을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해보면, 정부부채 비율은 가장 낮은 반면 가계부채는 가장 높고 기업부채는 약간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부채를 낮춘다면 가뜩이나 높은 가계부채 문제가 악화할 수 있다.

재정정책은 균형이 중요하다. 이 세상에 아무런 부작용이 없는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부채가 높아지면 부작용이 생기지만, 국가부채가 낮아져도 부작용은 발생한다. 다시 말하지만, 국가부채 비율은 낮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적절할수록 좋다. 문제는 가장 적절한 비율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무도 적절한 부채비율을 알 수 없다면, 국민적 합의를 통해 정치적으로 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질문은 “적절한 부채비율을 구합시다”여야 한다. 즉,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낮은 부채비율을 이룩해 봅시다”라고 말하는 건 잘못된 질문이다. 재정건전성이 목표가 되면 안 된다.

한국은 이미 저출생·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이런 상황에 맞춰 지속가능한 부채비율을 유지해야 한다. 저출생·고령화 사회를 대비하는 데 있어 부채비율이 너무 높으면 재원을 마련할 수 없고, 부채비율이 너무 낮아 사회투자를 하지 못해도 적절히 대비할 수 없다. 우리는 후손에게 빚과 동시에 자산도 물려준다. ‘0원의 빚과 0원의 자산’보다 ‘10억 원의 빚과 20억 원의 자산’을 물려주는 것이 좋지 않은가. ‘재정건전성을 지킨다’는 이유로 미래의 재정 지속가능성을 희생시켜선 안 된다.

1  정부의 세입과 세출 간 차이
2  현금 및 현금성 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을 합친 액수다
3  원재료의 구입 등 일반적 상거래에서 발생하는 외상매입금과 지급어음
4  다양한 투자 대상에 분산하여 자금을 투입·운용하는 일
5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의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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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3/02/2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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