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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 누구나 청년이었고 누구나 노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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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 누구나 청년이었고 누구나 노년이 된다

admin | 수, 2023/03/29- 10:29

얼마 전 국민연금공단 남원지사를 방문했다. 국민연금 의무납입 기간이 올해 2월 마감되어 몇 가지를 상담받았다. 나는 2026년에 노령연금을 받는데 월 64만 원가량이 지급된다고 한다. 예상보다 많았다. 공단에서는 ‘임의 계속가입’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연금 수령 전까지 매월 일정 금액을 내면 연금 액수도 늘어나서 월 69만 원 정도를 받는다는 것이다. 또한 내가 79개월 동안 의무 연금을 내지 않았는데, 수령 시기 전까지 해당 금액을 납입하면 월 81만 원 정도 받을 수 있다고도 했다.

일단 임의 계속가입을 신청했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이리저리 헤아려 보았다. 3년 후에 월 81만 원을 받고 절에서 주는 약간의 용돈까지 더하면, 우리 절에서 나는 고액 연봉자가 되는 셈이다. 이런 정리를 마치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선 직감적으로 안심이 되었다. 큰 액난1이 닥치지 않는 이상 누추하지 않게 살 수 있겠다. 부양가족이 없으니 이 정도면 최소한의, 아니 최적의 생활비로 충분하다.

이어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산중의 수행자도 노년을 앞두고 돈에 대한 생각이 이럴진대 노년을 맞이할, 혹은 이미 맞이한 사람들 대다수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노년의 항산은 우리 시대 화두

지금의 고령화 사회에서 다시 맹자를 호명하지 않을 수 없다. 평생 백성들의 민생을 탐구하면서 여민동락2을 말한 맹자가 그토록 강조한 것이 항산恒産이고 항심恒心이다. 맹자는 항산에 중점을 두었다. 항산은 생활하는 데 필요한 일정한 재산이나 생업, 즉 안정적인 생활환경을 말한다. 오늘날 언어로 말하면 주거·의료·식생활 등이다. 맹자는 “항산이 무너지면 도덕과 예의, 즉 변함없이 늘 떳떳한 마음인 항심을 유지할 수 없다”고 했다. 오죽하면 붓다도 “가난이 극에 달하면 사람들은 비굴해진다”고 말했을까? 맹자의 말을 재생해 보자.

“항산이 없는 자는 항심이 될 수 없으니, 만약 항심이 없어 바깥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면 방탕하고 편벽하고 사악하고 사치하는 등 못할 것이 없다. 그러니 인민이 이러한 죄에 빠진 연후에 이를 처벌한다면 그것은 그물을 쳐서 인민을 잡는 것이다. 어찌 어진 임금이 임금의 자리에 있으면서 그물을 쳐서 인민을 잡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맹자에 따르면 사회의 약자와 취약계층에 대한 책임은 국가의 몫이다. 따라서 경제활동의 일선에서 물러난, 특히 극단에 내몰린 취약한 노년의 항산은 우리 시대의 화두라 하겠다.

또한 사람들의 생태계는 그물과 같아서, 유년-소년-중년-장년-노년이라는 연결망 속에서 살아간다. 어느 한쪽의 그물이 허술하면 건강한 생태계는 유지될 수 없다. 이 단순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받아들일 때 우리가 함께 살길이 열린다. 그러니 모든 세대가 어떻게 항산 속에 항심을 유지하고 키워갈지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누구나 청년이었고, 또 누구나 노년일 수 있으니 말이다.

항산만큼 항심 또한 중요하다. 항심을 유지하고 배양하는 것은 존엄한 삶의 필수 항목이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항산이다. 동시에 사람이 빵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뜻도 담겨있다. 항심이다.

노년은 세월이 주는 선물이다

노년을 맞이한 사람들은 대개 이런 생각을 한다. ‘노년에는 큰일을 할 수 없다. 노년에는 몸이 쇠약해진다. 노년에는 쾌락을 누릴 수 없다. 노년이 되면 죽을 날이 멀지 않다.’ 현상만을 보면 그럴듯하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하면 맞지 않는 말이다. 아니, 매우 위험한 말이고 어리석은 생각이다.

조목조목 짚어보자. 노년에는 큰일을 할 수 없다고? 큰일이 뭐 그리 중요한가. 행복이 어디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큰일’에만 있겠는가. 노년에는 몸이 쇠약해진다. 이 당연한 흐름을 왜 거부하려고 하는가. 노년에는 쾌락을 누릴 수 없다고? 왜 감각적 쾌락만 생각하는가.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그럼, 천년만년 살려는가.

과거에 살고 있으니 현실이 늘 우울하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드라마에서는 환생을 하고 청춘도 재생하지만, 늙지 않는 청춘은 현실에 없다. 청춘에 붙잡혀 판타지에 매여 사는가. 과거에 매몰되면 항심을 유지할 수 없다. 항심을 얻기 위하여 노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통념을 전복해야 한다. 그리고 전복은 전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으며 노년은 원숙한데, 이런 자질들은 제철이 되어야만 거두어들일 수 있는 자연의 결실과도 같은 것이라네.”

키케로가 쓴 《노년에 관하여》의 명문장을 인용해 본다. 제철이 되어야만 거두어들이는 노년의 삶에 주목한다면, 앞으로 남은 생이라는 ‘여생’이라는 말로 어찌 노년을 정의할 수 있겠는가. 키케로가 평생의 친구 아티쿠스에게 한 말을 들어보자.

“세월이 정말로 젊은 시절의 가장 위험한 약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해준다면, 그것은 세월이 우리에게 주는 얼마나 멋진 선물인가!”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금’에 이른 노년에게 선물은 무엇인가? 노년이 새롭게 만들어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 어질고 덕스러운 삶, 예의와 염치가 있는 삶, 부끄러움을 알아가는 삶, 넉넉하게 베푸는 삶, 경험과 지혜를 전해주는 삶. 이런 삶들이 모이면 다음 세대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도 노년을 저렇게 살고 싶다.”

‘노년이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사람들은 대개 늙음을 ‘생의 쇠락’, ‘활력의 결핍’, ‘감추고 싶은 모습’으로만 인식한다. 심지어 혐오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또 어떠한가. 불안이고 두려움이다. 그래서 영생을 꿈꾸면서 다음 생을 기약하기도 한다.

붓다는 생로병사가 “고통 그 자체”라고 했다. 그러나 붓다도 노쇠와 죽음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해탈했다”는 붓다의 선언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붓다의 진심은 이렇다. 늙음과 죽음 자체는 고통이 아니다. 이에 대한 그릇된 해석이 고통을 불러오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역하려는 어리석은 태도가 바로 고통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늙음과 죽음을 혐오하며 거부하고 피하려는 발상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러므로 우리는 늙음과 죽음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생명불식生命不息 즉, 생명은 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머물러 있으면 박제된 사물이지 생명체일 수 없다. 노년의 생명력은 성숙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곱게 든든하게 내실 있게 익어가는 모습이 성숙이다. 배우고 탐구하고 사색할 때 비로소 지난 세월의 경험이 씨앗이 되어 열매를 맺고 향기를 피워낼 수 있다.

노년에 성숙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찰과 반성을 해야 한다. 성찰과 반성 없이는 삶을 전환할 수 없다. 성찰은 자신을 향한 정직한 관찰에서 시작된다. 지난 삶에 대한 공정한 관찰자의 자리를 유지해야 성찰할 수 있다. 노년이여, 무엇을 망설이는가. 지금 당장 단호한 결단을 내려 더 위엄 있고 원숙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노년에 외롭지 않으려면 먼저 내면이 단단해야 하고,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우정을 키워야 한다. 우정은 같은 세대와만 나누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이들의 처지와 개성을 존중하면서 마음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노년은 스스로 고립되어 외롭다.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른’은 단지 나이로 정의되지 않는다. 어른의 권위와 존엄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겸양의 미덕, 너그러운 포용, 높은 도덕성, 모범이 되는 태도, 조용한 응원, 그리고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이겠다. 이런 덕목을 갖는다면 젊은 세대가 노년을 멀리하지 않을 것이다. 덕불고 필유린3 德不孤 必有隣을 깊이 생각해 보자. 우정의 필수 품목은 ‘지갑’이 아니라 ‘덕’이다.

노년이 아름다운 삶을 위해서는 항산과 항심이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항산은 국가와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하고, 항심은 각자가 부단히 노력해야 할 일이다. 법정 스님의 말을 빌려 아름다운 삶의 길을 밟아가 보자.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우리도 저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과 능력이 다하게 되면 언젠가는 이 지상에서 덧없이 사라져 갈 것입니다. 이 순간순간 우리가 하는 일이 곧 구체적인 내 인생의 내용이 되고 개인의 역사가 됩니다. 내 인생은 나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지 누가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마다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시시로 현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떳떳한 인간으로서 향상의 길로, 보다 값있는 길로 털고 나서야 합니다. 그때마다 내 인생을 내가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새롭게 살아갈 때,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됩니다.”

1  뜻밖에 일어난 재앙과 고난
2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하다’라는 뜻으로, 백성과 동고동락하는 통치자의 자세를 비유하는 말이다.《맹자》에서 유래되었다.
3  덕이 있으면 반드시 따르는 사람이 있으므로 외롭지 않다는 뜻


법인 스님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16세에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대흥사 수련원장으로 ‘새벽숲길’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냈다. 현재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수행 중이며 지은 책으로 인문에세이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중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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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녹색전환연구소 운영실장

올겨울 난방비 고지서를 받고 모두 사색이 되었을 것이다. 난방비가 많이 나온 이유는 다양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한국은 에너지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이기에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그뿐인가. 북극에서 불어닥친 한파가 보일러 온도를 올렸고 이러한 맥락에서 에너지 요금이 동반 상승했다.

난방비 문제로 곳곳에서 앓는 소리가 나오자 국회와 정부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지원금 카드부터 꺼냈다. 동시에 ‘난방비 폭탄’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여당과 야당은 서로를 탓하기 시작했다. 마땅한 해결책 없이 상대 정당을 비난하는 현수막만 동네마다 즐비하게 걸었다. 일각에서는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인상한 것 자체가 ‘공공성’ 또는 ‘에너지 기본권’을 훼손하고 박탈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결국, 작금의 난방비 사태는 ‘전쟁’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기에 난방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말이다. 한국과 해외 사례를 비교해서 살펴보자.

같은 폭탄, 다른 정책

한국에서 난방비 대란에 대한 공방攻防만이 오갈 때, 우리와 비슷하거나 혹은 더 심각하게 러-우 전쟁의 타격을 입은 국가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독일과 프랑스, 미국의 경우 난방비가 급격하게 오른 상황은 같으나 정부의 대응 방식은 한국과 큰 차이가 있었다. 이번 사태가 에너지 위기의 결과임을 인정하고 구조적 해결책을 마련한다는 점, 더 나아가 난방비를 주거 문제와 연결 지어 풀어가고 있다는 점이 핵심 차이다.

한국처럼 재생에너지 비율이 두 자릿수조차 안 되는 국가에서는 에너지 생산부터 소비까지 모든 과정에서 과도하게 탄소배출을 할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 대응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난방비 문제 해결을 위한 기존의 에너지 생산 방식은 필연적으로 사회적·경제적 비용을 상승시킨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에너지 요금 인상을 정직하게 논의하지 않았고, 이로 인한 충격을 시민들이 직격으로 맞은 것이다. 에너지 생산 및 수요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요금은 오를 수밖에 없고, 보통의 시민들이 그 부담을 각자 짊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기후위기 대응과 적응’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에너지 안보를 지켜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탄소 절감, 에너지 분권·자립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가격 변동성이 낮고 지속 가능한 재생에너지 확대도 필수적이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조차 영구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핵발전소로 탄소중립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겠다”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획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모두가 안전한 에너지 전환정책은 이제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는 더 뜨거워지고 날씨는 변덕스러워질 것이며, 에너지 가격은 감당할 수 없이 높아질 것이다.

주거권과 에너지 기본권, 두 가지 권리 동시에 사수하기

또 하나 우리가 함께 요구할 것이 있다. 주거 공공성을 강화하는 일이다. 난방비 사태를 맞은 독일이 가장 먼저 내린 결단은 바로 ‘강제 퇴거 금지’ 조치였다. 에너지 요금을 감당하지 못해 월세를 못 내도 세입자를 내쫓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프랑스 역시 주거 관련 법안을 만들고 있다.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집은 아예 세입자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단기적인 에너지 요금 지원으로 땜질만 하는 한국과는 전혀 다르다.

미국의 경우 ‘모두를 위한 청정에너지’라는 이름으로 주거 개선 사업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고, 백악관 홈페이지에 관련 정책 정보를 게재하고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 감축법1 Inflation Reduction Act의 연장선에 있는 조치로, 주거 공간의 상태에 따라 기후위기의 영향을 다르게 겪기에 정책적으로 주택 품질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2018년 한국의 여름을 복기해보자.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기록적인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160여 명에 달했다. 온열질환 사망자의 50%가 의료시설에서, 19%가 주택에서 발생했다.

이 통계는 적정하지 못한 주거 공간이 시민의 삶을 얼마나 위협하는지 잘 보여준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노인 빈곤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한국에서 폭염·혹한 등 날씨로 인한 인명피해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에게나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주거 공간확보’는 필수적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주거 공공성을 가열차게 주장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구멍 뚫린 에너지 바우처 대신 에너지복지법이 필요하다

이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화는 피할 수도 미룰 수도 없다. 대표적으로 에너지복지법이 있다. 바우처voucher로 포괄하지 못하는 시민들의 삶을 담을 더 큰 그릇이 필요하다. 여러 전문가가 지적하듯 현재 에너지 바우처는 대상자가 매우 불분명한 데다가 심각하게 파편화되어 있다. 또한 한국 복지정책의 고질적 문제점인 ‘신청주의’로 인해 당사자가 직접 신청하지 않으면 복지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수급 자격도 협소하다. 소득 기준으로는 바우처를 받을 수 있는 생계급여·의료급여 당사자라고 하더라도 노인·영유아·장애인·임산부·한부모가족 등 ‘세대원 특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수급 자격에서 탈락한다.

이로 인해 매년 에너지 바우처 지급률은 떨어지는 추세다. 단전가구2 중에서도 에너지 바우처 이용률은 10%에 불과하다. 결국 에너지 위기 속에서 사회안전망의 구멍이 더 커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2월 8일 ‘기후전망과 전략, 10인과의 대담’에서 대기 과학자 조천호 교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 6차 보고서를 토대로 “어느 때보다 나빠지는 기후 상황에서 지역별·계층별 불평등은 더 강화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제 의회를 통해 기후위기 불평등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해법을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그런 점에 최근 출범한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의 역할과 책임이 막중하다. 엘니뇨El Nino 현상으로 또다시 역대급 더위가 예상되는 2023년에 5년 전 여름처럼 불평등한 재난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1  기후변화 대응, 친환경 에너지의 보급, 취약계층 지원 확대, 일자리 창출 및 노동자 보호, 의료비 지원 등을 목표로 약 7,900억 달러의 재정을 투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
2  전기요금 체납으로 전류 제한을 겪은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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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3/02/24-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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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임성희

무제한으로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한 독일의 ‘9유로Euro 정책’이 국내외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 기후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세계적으로 무제한 또는 무상 대중교통을 확대하고 있는데, 9유로 정책은 이 흐름에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정책 내용을 살펴보자. 독일 정부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3개월 동안 지역 간 고속 열차를 제외한 모든 대중교통을 월 9유로(약 1만2천 원)로 무제한 이용하도록 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를 위해 제도 시행 기간에 26억 유로(약 3조 4천억 원)의 정부 재정을 투자했다.

9유로 정책은 시행되자마자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고 총 5,200만 장의 티켓이 판매되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독일 정부는 △물가상승률 0.7% 감소 △대중교통 이용 25% 증가 △이산화탄소 180만 톤 저감 및 대기오염 6% 감소 △교통혼잡 개선 △가구 소득보존 등의 다양한 사회경제적 효과를 달성했다. 이 밖에도 독일의 복잡한 대중교통 요금체계를 단순화하는 성과도 얻었다.

정책이 대대적으로 성공하자 상시적인 도입 요구가 거세게 일었다. 독일 연방정부와 주 정부는 논의 끝에30억 유로(약 4조 원)의 예산을 절반씩 부담하기로 하고, 2023년 5월 1일부터 월 49유로(약 6만 6천 원) 무제한 독일 티켓DeutschlandTicket을 상시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기후위기와 고물가 시대에 국가 차원에서 공공요금 정책으로 대중교통의 사회경제적 편익을 증명하면서 변화를 끌어낸 것이다.

한국산 ‘9유로 티켓’ 도입, 재정여력은 충분하다

이러한 영향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기후환경단체 중심으로 1만원패스연대(준)가 결성되었고, 정의당도 ‘3만원 무제한 패스’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반면 서울시는 ‘해외에 비해 요금이 싸며, 무임수송에 따라 적자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300~400원의 대중교통 요금 인상을 예고했다. 정부의 공공요금 동결 기조에 따라 인상 시기는 올 4월에서 하반기로 연기했지만, 계획은 바꾸지 않았다.

이러한 서울시의 입장은 대중교통 이용자가 누구인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변화된 상황은 무엇인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이다. 우선 외국과 달리 정기할인권이나 소셜Social할인 제도가 활성화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만큼 요금이 늘어난다.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는 저소득 노동자, 청년 실업자, 노인, 영세자영업자, 장애인 등에게는 요금부담이 역진逆進적이다. 특히 요즘같이 경제위기와 고물가 시기에는 그 부담이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중교통 이용률은 보수적인 정부 통계로도 이전 대비 3분의 1 이상 폭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률 회복과 증진을 위해서 적극적 인센티브 정책도 요구된다. 지금은 오히려 무제한 정액제 도입 등의 긴급 처방이 필요하다. 재정을 들여서라도 서민을 위해 요금을 내리고, 대중교통 이용률을 복원하고 더 늘려서 환경오염에도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재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교통시설 특별회계 세출 예산’을 교통 관련 재정으로 사용한다. 이 중에 불용不用 처리되어 5년2017~2021년 동안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 예탁된 돈만 무려 20조 원이라고 한다. 정부의 결단만 있으면 유류세에 부과되는 재원으로 조달된 교통시설 특별회계 예산을 대중교통 요금할인과 운영지원을 위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중앙정부가 재정을 내어놓는다면 지방정부 또한 쉽게 호응할 것이다. 정부는 이미 자가용 이용자들에게는 유가 인상에 따른 9조 원의 유류세를 감면해주었다. 대중교통 이용자에 대한 혜택도 그만큼 줄 수 있어야 한다.

사회구조를 바꾸는 요금제, 우리도 할 수 있다

독일 9유로 정책의 사회경제적 편익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증명되고 있다. 아직은 소규모이지만 강원 정선군, 경기 화성시, 경북 청송군 등에서 무상버스 정책을 도입한 것이다.

강원 정선군은 2020년 6월부터 버스공영제와 함께 65세 이상 노인과 초·중·고 학생들에 대한 부분 무상교통을 실시했는데 승객이 30% 증가하고 지역 상권이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경기 화성시 또한 2020년 11월부터 버스공영제와 함께 청소년·노인·청년(만23세 이하) 대상 무상교통을 실시해 환경개선, 교통비 절감, 경제활성화 등으로 연간 약 86억 6천만 원의 사회경제적 효과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보편복지의 일환으로 2023년부터 전면 무상버스를 도입한 경북 청송군은 시행 두 달 만에 이용객이 20% 늘었고 이동 증가로 지역경제도 활성화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광역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세종시는 광역단체 최초로 2025년부터 시내버스 요금 전면 무료화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앞으로 지역을 중심으로 부문 또는 전면 무상교통이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정책이 요금할인과 무상교통 자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책이 지속적으로 유지·확대되기 위해서는 수요 확대에 걸맞은 인프라 확대, 재정투자 증가, 안전인력 충원 그리고 통합공공교통체계가 수반되어야 한다.

대중교통이 잔여적이고 주변적인 한국 현실에서 무상교통 및 무제한 요금제는 고물가 대응, 환경오염 저감과 지역 활성화 등을 도모하기 위한 사회경제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자가용 중심 체계에서 대중교통 중심 체계로 전환하는 마중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독일 9유로 정책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시사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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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3/02/2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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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한국에서만 치열한 ‘재정건전성 논쟁’

작년과 올해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또 다시 재정건전성이 도마에 올랐다. 한쪽은 “재정건전성이 중요하니 국가부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고물가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 말이 맞을까? 아니면 두 개의 상반된 주장 사이 어디쯤 정답이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재정건전성 논쟁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재정건전성 논쟁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정답은 “이런 논쟁을 하지 않은 것”이다. 재정건전성은 영어 ‘financial soundness’의 번역어다. 그런데 이는 OECD 등 다른 나라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는 개념이다. 최근에는 재정건전성보다 ‘재정의 지속가능성’financial sustainability을 논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재정건전성은 부채가 적고 재정수지1가 흑자일수록 좋다고 평가받는다. 반면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중장기적인 재정의 건강 상태 유지에 관심을 둔다. 조금 거칠게 말하면, 지금 당장 빚을 져서라도 필요한 투자를 하면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즉, 단기적인 재정건전성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중장기적인 재정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당장의 재정건전성을 위해서 아무런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중장기적인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하락한다.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다.

부채가 적을수록 좋다?

CNN 뉴스 사이트에서 ‘financial soundness’를 검색하면 29개
기사만 검색되나 ‘financial sustainability’를 검색하면 347개
기사가 검색된다.(검색일 2023.2.23 기준)

국가 부채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부채는 적을수록 좋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부채는 적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가장 적절할수록 좋다. 2022년 기준 삼성전자는 115조 원이 넘는 돈을 가지고 있다.2 그럼에도 94조 원의 부채를 유지하고 있다. 10조 원의 매입채무3는 물론 5천억 원의 사채까지도 아직 존재한다. 현금이 그렇게 많은데 왜 빚을 져서 물건을 사고 사채도 안 갚고 있을까? 삼성전자의 재정 목표는 ‘가장 적은 부채비율 달성’이 아니다.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 유지’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을 유지할수록 좋다. OECD 국가 GDP 대비 부채비율 평균은 120%가 넘는다. 부채비율이 적을수록 좋다면 이 국가들이 모두 잘못된 행정을 한다고 평가해야 한다. 물론 그럴 리는 없다.

그럼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이 얼마일까? GDP 대비 50%일까? 100%일까? 불행히도 ‘알 수 없다’가 정답이다. 하버드대 로고프 교수는 적절한 부채비율을 제시한 적이 있지만, 기초적인 에러가 발견되어 큰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전 세계 어떠한 재정 전문가도 적절한 부채비율을 안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런데 유독 대한민국 언론과 정치인들은 ‘적절한 부채비율을 안다’고 주장한다. 현재 한국 부채비율이 50%로 너무 높다는 말은 곧 현재 적절한 부채비율은 50% 이하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한국의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이 40%인지 60%인지 알 수 없다. 만약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이 40%라면 현재 부채비율을 50%에서 더 낮춰야 한다. 그러나 적절한 부채비율이 60%라면 반대로 부채비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 부채비율을 높이면 빚을 더 많이 지는데, 이게 왜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일까? 물론 부채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허비한다면 당연히 부채는 낮을수록 좋다. 그러나 국가가 부채를 통해서 조달한 자금은 경제성장을 높이고 사회 후생을 높이는 데 쓰인다. 한마디로 말해서 부채 조달 비용보다 이를 통해 창출할 수 있는 사회적 후생이 더 크다면 부채를 더 조달하는 것이 이익이다.

내가 국민은행에서 4%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고 새마을금고에서는 5% 이자를 주는 예금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국민은행에서 얼마를 빌리는 것이 가장 큰 이득일까? 정답은 다다익선이다. 그러나 내가 지나치게 돈을 많이 빌리려고 하면 국민은행은 나의 대출금리를 높일 것이다. 또한 내가 지나치게 많은 돈을 예금하려고 하면 새마을금고는 나의 예금금리를 낮추게 된다. 결국 이론적으로는 대출금리와 예금금리가 같아질 때까지 돈을 빌리는 것이 가장 좋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국채 이자를 지불하고 이를 사회에 투자한다. 우리나라 전역에 완벽한 ‘포트폴리오 투자’4를 한다면 명목성장률5 정도의 이익을 얻게 된다. 2000년부터 2021년까지 우리나라 명목성장률이 국채이자율보다 낮았던 해는 단 두 해밖에 없다. 이는 지난 20년간 국채발행이 지나치게 비효율적으로 발행했다는 방증일 수 있다.

국채 투자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국채에 투자하지 않았다면 여유 재원을 금고가 아닌 다른 어딘가엔 투자할 것이다. 안전자산인 국채에 투자하는 대신 다른 안전자산인 토지·건물 등 부동산에 주로 투자하지 않을까? 국채는 국가입장에선 채무지만 투자자에게는 자산이다. 그리고 국채 투자자의 80% 이상은 내국인이다. 국가가 국채라는 자산을 공급해주면 투자자는 안정적 이자 수입을 얻고 더 많은 소비를 창출할 수 있다. 최소한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국가경제에 더 효율적이다. 국고채는 한국 전체 채권시장에서 약 40%의 비중을 차지하는 최대 공급원이다. 국채가 없으면 채권시장 자체가 형성되기 어려울 지경이다. 즉, 국가부채는 적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적절할수록 좋다는 점을 시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지속가능한 ‘적절한’ 부채를 이야기하자

끝으로 국가의 부채비율을 낮췄을 때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는지도 파악해 보자. ‘매크로 레버리지’macro leverage라는 개념이 있다. 정부부채·가계부채·기업부채를 통틀어서 매크로 레버리지라고 한다. 그런데 정부부채·가계부채·기업부채는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가 낮아지면 다른 두 개의 부채는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즉, 정부부채를 낮추려고 하면 가계부채나 기업부채가 높아진다. 마찬가지로 가계부채를 낮추려고 하면 정부부채나 기업부채가 높아진다.

현재 한국 매크로 레버리지 상황을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해보면, 정부부채 비율은 가장 낮은 반면 가계부채는 가장 높고 기업부채는 약간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부채를 낮춘다면 가뜩이나 높은 가계부채 문제가 악화할 수 있다.

재정정책은 균형이 중요하다. 이 세상에 아무런 부작용이 없는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부채가 높아지면 부작용이 생기지만, 국가부채가 낮아져도 부작용은 발생한다. 다시 말하지만, 국가부채 비율은 낮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적절할수록 좋다. 문제는 가장 적절한 비율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무도 적절한 부채비율을 알 수 없다면, 국민적 합의를 통해 정치적으로 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질문은 “적절한 부채비율을 구합시다”여야 한다. 즉,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낮은 부채비율을 이룩해 봅시다”라고 말하는 건 잘못된 질문이다. 재정건전성이 목표가 되면 안 된다.

한국은 이미 저출생·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이런 상황에 맞춰 지속가능한 부채비율을 유지해야 한다. 저출생·고령화 사회를 대비하는 데 있어 부채비율이 너무 높으면 재원을 마련할 수 없고, 부채비율이 너무 낮아 사회투자를 하지 못해도 적절히 대비할 수 없다. 우리는 후손에게 빚과 동시에 자산도 물려준다. ‘0원의 빚과 0원의 자산’보다 ‘10억 원의 빚과 20억 원의 자산’을 물려주는 것이 좋지 않은가. ‘재정건전성을 지킨다’는 이유로 미래의 재정 지속가능성을 희생시켜선 안 된다.

1  정부의 세입과 세출 간 차이
2  현금 및 현금성 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을 합친 액수다
3  원재료의 구입 등 일반적 상거래에서 발생하는 외상매입금과 지급어음
4  다양한 투자 대상에 분산하여 자금을 투입·운용하는 일
5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의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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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3/02/2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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