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지향)일기] 비인간동물을 사랑하는 내가 수십 년 동안 동물을 먹었다

[비건(지향)일기 시즌3]
비인간동물을 사랑하는 내가 수십 년 동안 동물을 먹었다
까몽
나는 20년 가까이 충남에서 가장 깨끗하고 개발이 덜 된 청정마을(지금도 그렇다)에 살았다. 어린 시절, 우리 집 대문 위 작은 공간에 찍찍 짹짹 참 귀여운 소리가 들렸던 적이 있다. 그 소리는 10살도 안 되었던 어린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결국 나를 대문 위로 올라가게 했고 기어코 참새와 그 새끼들의 실체를 확인한 나는 기뻐하며 가족들에게 그 소식을 전해주었던 추억이 남아있다. 가을의 해 질 무렵에는 잠자리들이 볕이 잘 드는 우리 집 담벼락에 예쁘게(?) 붙어 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좋았고 경이롭게 느껴졌었다. 어쩜 저렇게 잠자리들이 많을까? 꼬리가 빨간 고추잠자리와 날개 끝이 까맣던 이름 모를 멋진 잠자리를 나는 정말 좋아했다. 그 시절에도 깨끗하지는 않았던 냇가에는 송사리, 미꾸라지가 많아서 어린이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었고 바로 옆 논가에는 붕어도 살고 있었다. 걸어서 10분도 채 안 걸리는 산에 올라가면 나무 사이사이에 사슴벌레가 있어 그것을 찾는 것이 보물찾기 놀이처럼 나와 내 친구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안겨주었던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주변에서 동식물들을 자연스럽게 보고 자라며 살아있는 생명을 참 좋아했었던 나에게 커다란 사건 하나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에 병아리들이 온 것이다. 시골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생명 감수성이 높고 동물을 사랑했던 우리 집에서 병아리를 키우게 되면서 나와 우리 형제들은 자연스럽게 닭(어느덧 자라서)들을 친한 친구처럼 좋아하게 되었다. 꼬꼬댁, 고고, 꼬꼬라 이름도 지어주며 우리 형제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었던 어느 날, 고고가 없어졌다. 알고 보니 아빠가 우리 집 근처에 사는(시골 마을, 2차선 도로를 건너면 바로 있는) 할아버지 댁에 닭을 잡으려고 보낸 것이었다. 대실망….. 이라는 말은 이런 때에 딱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아빠에게 너무 실망하였고 키우던 닭을 어떻게 잡아먹을 수 있느냐고 울며불며 고고를 다시 데려오라고 난리를 쳤다. 그런데 다음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고고가 우리 집까지 돌아온 것이다. 와…….. 우리 형제들은 기뻐서 울었다. 거리로는 약 200미터도 안 되지만 중간에 2차선 도로가 있고 차가 다니는 길을 그 짧은 다리로 어떻게 돌아온 것인지! 할아버지 댁에서는 어디에 있었길래 나온 것인지 모든 게 궁금했다. 그리고 너무 기특했다. 그 후, 고고는 여름철 장마로 인해 닭장 안에 빗물이 침투돼 결국 병으로 죽고 말았다. 장맛비를 못 막을 정도로 닭장이 부실했던 것까지는 우리 형제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고고는 그렇게 2년을 채 못 살고 하늘로 갔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나와 우리 형제들이 사랑했던 닭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지는 못했어도 적어도 함께 살던 가족한테 잡아먹히지 않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가족한테 사랑을 받았다는 것. 이런 동화 같은 일을 어린 시절에 겪었으면서도 나는 고기를 참 좋아했다. 함께 살던 닭만 아니라면 먹어도 된다는 것이었을까? 나도 혼란스러운 적이 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고기를 아무 생각 없이 먹었던 터라 별 의심 없이 고기를 먹었고, 그것은 성인이 되어서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많이 좋아했다. 이유는 딱 하나, 쉽게 먹을 수 있었고 참 맛있었다. 동물들이 살아있을 때 어떻게 살아가는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게 직장 생활을 10년 이상 이어오던 어느 날, 가족 중 한 명이 동물 복지에 대한 적나라한 사실들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ASF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수많은 돼지가 생매장당하던 당시였다. 가족은 그런 기사를 알고 싶어 하지 않던, 외면하던 나에게 하나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 아주 커다란 웅덩이에는 큰 돼지들과 새끼 돼지들이 있었는데 새끼 돼지들은 밖으로 나오겠다며 몸부림치며 올라타는 듯한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정말 큰 충격이었다. 새끼 돼지들이 특히 너무 귀여웠다. 그리고 흔한 동화 속 주인공으로 나오는 ‘아기 돼지’. 그 ‘아기 돼지’의 실체들이 사람의 욕심으로 인해 공장식 축산의 피해로 고스란히 생매장당하고 있었다. 그 사진으로 인한 충격은 컸다. 내가 수십 년 동안 외면하고 싶었고 정확히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의 실체를 마주했으니까. 비건 지향으로 살게 된 데에는 가족의 영향이 가장 컸다. 우리나라 공장식 축산의 폐해를 직접 말해주었고 실제로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지금도 그 신념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축산업이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동물권 인식이 아주 낮은 축에 속하는 후진국(경제적으로는 선진국) 수준인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먼저냐 동물이 먼저냐 하는 이런 말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한다. 누가 먼저냐의 문제가 아닌데 말이다. 나와 내 지인들, 후손들을 위한다면 공장식 축산은 당연히 멈춰야 하고 고기소비도 줄여야 하지만 사람들은 과거의 나처럼 실체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불편해지고 즐거움이 줄어드니까. 그 한 장의 사진은 동물을 사랑하기만 하던 내가 비건을 지향하게 되는 큰 계기가 되었다. 고기를 아예 먹지 않은 지 5년 차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고기 냄새를 맡으면 역겹다거나 마냥 부정적인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고, 내 선택으로 고기를 먹지 않을 뿐이다. 주변에 지인들이 고깃집을 가자고 하면 당당하게 “나 고기 안 먹잖아”(잊었어? 후흣..)하고 말하는 용기가 생겼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을 배려하는 다른 메뉴 선택지도 있으니 이제는 미안해하는 마음을 놓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 내가 미안해하니, 마치 내가 잘못하는 행동을 하는 것 같아 그게 참 이상했다. 그래서 당당해지기로 했다. 비건을 지향하며 그 방법에 있어 옳고 그름은 없는 것 같다. 비건 지향적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한 명 두 명 점점 늘어난다면 나와 다른 사람들이 다 같이 미래에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비건을 지향하며 점차 비건의 삶이 익숙해진 내 모습을 꿈꾼다.필자 소개: 동물권 운동과 환경보호 운동에 눈을 뜬 후, 비건을 지향하고 줍깅(플러깅) 등 환경운동, 마음 공부에 관심이 많습니다. 게으름이 기본형이지만, 관심있고 좋아하는 게 많은 호기심 가득한 사람입니다.

ⓒ김은희[/caption]
해변가를 걷다 보면 이렇게 자갈밭에 엎드려 자다 깨서 두리번거리며 어리벙벙한 젠투펭귄을 만날 수가 있다. 겁이 많은지 절대로 사람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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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caption]
눈 시료를 채취하러 올라갔다가 홀로 낮잠을 즐기다 깨어난 젠투펭귄을 봤다. 살금살금 재빨리 눈 시료를 채취한 후 조용히 내려왔다.
빙벽이 무너지고 며칠 후 구름이 잔뜩 낀 흐린 어느 날, 해변가에서 단각류를 찾아 다니다가 턱끈펭귄 친구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한 마리가 물속에서 쑥 고개를 내밀더니 해변으로 나왔다. 두리번거리면서 소리를 내는 것이 궁금해서 근처 큰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관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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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caption]
첫번째 펭귄이 나온 곳 십여 미터 위쪽에서 또 한 마리의 펭귄이 해변으로 올라왔다. 서로 소리를 주고받더니 저쪽에 있던 펭귄이 마구 뛰어 내 쪽에 있는 펭귄에게로 다가온다. 아직 어린 두 친구들이 다른 동네 구경가보자고 같이 헤엄쳐 나왔다가 물 속에서 서로 잃어 버린 것은 아닐까 잠시 상상해봤다.
만나자마자 서로 부리를 갖다 대면서 반가움(?)의 표현을 한 뒤에 나란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때마침 세종 기지 주변 공사 현장에서 크레인 소리가 나자 몸짓으로 반응을 한다. 소리에 민감한 듯 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갑자기 두 마리가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왔다. 나도 신나서 카메라를 꺼내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는 이내 호기심이 사라졌는지 둘이 나란히 물 속으로 사라져갔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서로 놓치지 말고 같이 잘 돌아가라는 인사가 저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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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caption]
남극에 있는 동안 블리자드를 과연 경험할 수 있을지 생각했는데 드디어 일기예보가 심상치 않더니 식사하러 숙소동에서 식당으로 가는 길에도 몇 번을 강풍에 몸을 최대한 낮추고 발걸음을 멈춰야 할 정도의 날씨를 경험하게 되었다.
숙소동 복도 끝 창문에는 바람에 밀려온 눈들이 그대로 쌓이고 있었다. 내일 날씨를 걱정하며 잘 준비를 하는데 이 눈보라 속에 나와 있는 펭귄들을 보라는 연락이 왔다. 복도로 나가 창문 밖 헬기장 근처를 바라보니 세상에 이렇게 바람이 부는 날 밤에 노숙(?)을 결정한 듯 보이는 펭귄들이 보였다. 놀러 나왔다가 미처 둥지로 돌아가지 못한 펭귄들 같았다. 저 아이들이 내일 아침까지 과연 살아있을지 모두가 걱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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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caption]
눈보라가 친 다음 날 아침을 먹자 마자 신선한 눈 시료를 채취하고 싶어 나섰다가 헬기장 근처에서 놀고 있는 펭귄들을 만났다. 어젯밤에 걱정하던 그 펭귄들이 무사한 듯 해서 맘이 놓였다. 바로 내 앞에서 이렇게 발자국을 남기면서 뛰어 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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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쌓인 해변가를 뛰고 있는 젠투펭귄들. 어젯밤에 눈이 와서 신이 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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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시료를 채취하러 나왔다가 만난 젠투펭귄들. 밤새 무사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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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caption]
저 아이들이 지난밤에 걱정하던 펭귄들이라는 물증은 없지만 이른 아침 헬기장 근처에서 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충분히 우리 모두가 걱정하던 그 아이들이라 생각한다. 얼음물로 첨벙첨벙 뛰어들면서 그야말로 물놀이 삼매경에 빠져 있던 펭귄5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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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caption]
아델리 펭귄도 눈에 띄었다. 세종기지가 있는 바톤반도에는 아델리펭귄의 번식지가 없다. 아마도 저 건너편 아들레이섬 (Ardley Island)에서 살고 있는 아델리펭귄이 물 건너 이쪽으로 놀러 온 것 같았다. 바톤반도의 터줏대감인 턱끈펭귄과 젠투펭귄은 거의 매일 보는 친숙한 친구들이라면 물 건너 사는 아델리펭귄은 왠지 어쩌다 만나는 손님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음에 소개할 남극 이야기 5편은 펭귄마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김은희 박사의 남극이야기 모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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