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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누구를 위한 재정건전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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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누구를 위한 재정건전성인가?

admin | 금, 2023/02/24- 19:21

이상민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한국에서만 치열한 ‘재정건전성 논쟁’

작년과 올해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또 다시 재정건전성이 도마에 올랐다. 한쪽은 “재정건전성이 중요하니 국가부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고물가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 말이 맞을까? 아니면 두 개의 상반된 주장 사이 어디쯤 정답이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재정건전성 논쟁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재정건전성 논쟁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정답은 “이런 논쟁을 하지 않은 것”이다. 재정건전성은 영어 ‘financial soundness’의 번역어다. 그런데 이는 OECD 등 다른 나라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는 개념이다. 최근에는 재정건전성보다 ‘재정의 지속가능성’financial sustainability을 논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재정건전성은 부채가 적고 재정수지1가 흑자일수록 좋다고 평가받는다. 반면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중장기적인 재정의 건강 상태 유지에 관심을 둔다. 조금 거칠게 말하면, 지금 당장 빚을 져서라도 필요한 투자를 하면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즉, 단기적인 재정건전성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중장기적인 재정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당장의 재정건전성을 위해서 아무런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중장기적인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하락한다.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다.

부채가 적을수록 좋다?

CNN 뉴스 사이트에서 ‘financial soundness’를 검색하면 29개
기사만 검색되나 ‘financial sustainability’를 검색하면 347개
기사가 검색된다.(검색일 2023.2.23 기준)

국가 부채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부채는 적을수록 좋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부채는 적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가장 적절할수록 좋다. 2022년 기준 삼성전자는 115조 원이 넘는 돈을 가지고 있다.2 그럼에도 94조 원의 부채를 유지하고 있다. 10조 원의 매입채무3는 물론 5천억 원의 사채까지도 아직 존재한다. 현금이 그렇게 많은데 왜 빚을 져서 물건을 사고 사채도 안 갚고 있을까? 삼성전자의 재정 목표는 ‘가장 적은 부채비율 달성’이 아니다.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 유지’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을 유지할수록 좋다. OECD 국가 GDP 대비 부채비율 평균은 120%가 넘는다. 부채비율이 적을수록 좋다면 이 국가들이 모두 잘못된 행정을 한다고 평가해야 한다. 물론 그럴 리는 없다.

그럼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이 얼마일까? GDP 대비 50%일까? 100%일까? 불행히도 ‘알 수 없다’가 정답이다. 하버드대 로고프 교수는 적절한 부채비율을 제시한 적이 있지만, 기초적인 에러가 발견되어 큰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전 세계 어떠한 재정 전문가도 적절한 부채비율을 안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런데 유독 대한민국 언론과 정치인들은 ‘적절한 부채비율을 안다’고 주장한다. 현재 한국 부채비율이 50%로 너무 높다는 말은 곧 현재 적절한 부채비율은 50% 이하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한국의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이 40%인지 60%인지 알 수 없다. 만약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이 40%라면 현재 부채비율을 50%에서 더 낮춰야 한다. 그러나 적절한 부채비율이 60%라면 반대로 부채비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 부채비율을 높이면 빚을 더 많이 지는데, 이게 왜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일까? 물론 부채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허비한다면 당연히 부채는 낮을수록 좋다. 그러나 국가가 부채를 통해서 조달한 자금은 경제성장을 높이고 사회 후생을 높이는 데 쓰인다. 한마디로 말해서 부채 조달 비용보다 이를 통해 창출할 수 있는 사회적 후생이 더 크다면 부채를 더 조달하는 것이 이익이다.

내가 국민은행에서 4%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고 새마을금고에서는 5% 이자를 주는 예금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국민은행에서 얼마를 빌리는 것이 가장 큰 이득일까? 정답은 다다익선이다. 그러나 내가 지나치게 돈을 많이 빌리려고 하면 국민은행은 나의 대출금리를 높일 것이다. 또한 내가 지나치게 많은 돈을 예금하려고 하면 새마을금고는 나의 예금금리를 낮추게 된다. 결국 이론적으로는 대출금리와 예금금리가 같아질 때까지 돈을 빌리는 것이 가장 좋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국채 이자를 지불하고 이를 사회에 투자한다. 우리나라 전역에 완벽한 ‘포트폴리오 투자’4를 한다면 명목성장률5 정도의 이익을 얻게 된다. 2000년부터 2021년까지 우리나라 명목성장률이 국채이자율보다 낮았던 해는 단 두 해밖에 없다. 이는 지난 20년간 국채발행이 지나치게 비효율적으로 발행했다는 방증일 수 있다.

국채 투자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국채에 투자하지 않았다면 여유 재원을 금고가 아닌 다른 어딘가엔 투자할 것이다. 안전자산인 국채에 투자하는 대신 다른 안전자산인 토지·건물 등 부동산에 주로 투자하지 않을까? 국채는 국가입장에선 채무지만 투자자에게는 자산이다. 그리고 국채 투자자의 80% 이상은 내국인이다. 국가가 국채라는 자산을 공급해주면 투자자는 안정적 이자 수입을 얻고 더 많은 소비를 창출할 수 있다. 최소한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국가경제에 더 효율적이다. 국고채는 한국 전체 채권시장에서 약 40%의 비중을 차지하는 최대 공급원이다. 국채가 없으면 채권시장 자체가 형성되기 어려울 지경이다. 즉, 국가부채는 적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적절할수록 좋다는 점을 시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지속가능한 ‘적절한’ 부채를 이야기하자

끝으로 국가의 부채비율을 낮췄을 때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는지도 파악해 보자. ‘매크로 레버리지’macro leverage라는 개념이 있다. 정부부채·가계부채·기업부채를 통틀어서 매크로 레버리지라고 한다. 그런데 정부부채·가계부채·기업부채는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가 낮아지면 다른 두 개의 부채는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즉, 정부부채를 낮추려고 하면 가계부채나 기업부채가 높아진다. 마찬가지로 가계부채를 낮추려고 하면 정부부채나 기업부채가 높아진다.

현재 한국 매크로 레버리지 상황을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해보면, 정부부채 비율은 가장 낮은 반면 가계부채는 가장 높고 기업부채는 약간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부채를 낮춘다면 가뜩이나 높은 가계부채 문제가 악화할 수 있다.

재정정책은 균형이 중요하다. 이 세상에 아무런 부작용이 없는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부채가 높아지면 부작용이 생기지만, 국가부채가 낮아져도 부작용은 발생한다. 다시 말하지만, 국가부채 비율은 낮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적절할수록 좋다. 문제는 가장 적절한 비율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무도 적절한 부채비율을 알 수 없다면, 국민적 합의를 통해 정치적으로 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질문은 “적절한 부채비율을 구합시다”여야 한다. 즉,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낮은 부채비율을 이룩해 봅시다”라고 말하는 건 잘못된 질문이다. 재정건전성이 목표가 되면 안 된다.

한국은 이미 저출생·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이런 상황에 맞춰 지속가능한 부채비율을 유지해야 한다. 저출생·고령화 사회를 대비하는 데 있어 부채비율이 너무 높으면 재원을 마련할 수 없고, 부채비율이 너무 낮아 사회투자를 하지 못해도 적절히 대비할 수 없다. 우리는 후손에게 빚과 동시에 자산도 물려준다. ‘0원의 빚과 0원의 자산’보다 ‘10억 원의 빚과 20억 원의 자산’을 물려주는 것이 좋지 않은가. ‘재정건전성을 지킨다’는 이유로 미래의 재정 지속가능성을 희생시켜선 안 된다.

1  정부의 세입과 세출 간 차이
2  현금 및 현금성 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을 합친 액수다
3  원재료의 구입 등 일반적 상거래에서 발생하는 외상매입금과 지급어음
4  다양한 투자 대상에 분산하여 자금을 투입·운용하는 일
5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의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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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찬섭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난 2월 초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하철 재정적자’를 거론하며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70세로 상향하겠다”고 발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지하철 재정적자 타개’를 이유로 지하철 요금 인상을 발표했다. 두 지자체장의 방침은 모두 유보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노인연령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필요하다면 노인연령을 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조정하더라도 어떤 근거에서 어떻게 조정할지가 중요하다. 또 노인연령만 조정하면 되는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이와 관련해서는 노인 기준연령이 65세가 된 배경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노인연령 문제가 논란이 되자 여당 정책위의장은 “현행 노인 기준연령은 비스마르크 시절에 정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옛날에 정해진 것이어서 오늘날에 맞지 않다는 뜻이다. 사실관계를 들여다보면, 65세라는 기준이 오래전 정해지긴 했지만 비스마르크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고 2차 세계대전 후에 정해진 게 맞다. 그러면 왜 하필 65세일까? 답은 퇴직제도와 연관돼 있다.

자본가들이 바랐던 ‘퇴직’, 자본주의가 만든 ‘노인연령’

오늘날엔 퇴직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인간의 역사에서 퇴직은 대단히 새로운 제도이다.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는 극히 일부 귀족계층을 제외하고 퇴직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퇴직할 만큼 오래 살지 못했고, 더 중요하게는 죽을 때까지 일해야 겨우 먹고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가 확립된 후에도 상당 기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로 전환하는 19세기 중후반, 노인을 퇴직시키고 청년을 고용해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려는 자본가들을 중심으로 퇴직제도의 필요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퇴직 이후 생계 수단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제도가 도입되기 어려웠다. 자본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퇴직제도는 한동안 도입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공공서비스 효율화’를 명분으로 먼저 퇴직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가장 선진국이었던 영국이 19세기 후반에 공무원·우체부·교사·경찰 등 정부가 통제하는 부문에서 연금제도를 도입하면서 퇴직이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이때 퇴직연령은 통일되지 못해서 직역에 따라 62세, 65세 등으로 제각기 달랐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국가들은 공적연금을 명실상부한 복지국가 제도로 확립했다.1 이는 몇 가지 결과로 이어졌다.

첫째, 퇴직제도가 보편화되었다. 공적연금이 확립되자 퇴직 이후 생계 수단이 확보되어 비로소 사람들이 퇴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둘째, 공적연금 수급 개시연령인 65세가 노인 기준연령으로 정해졌다. 셋째, 생물학적으로는 아무 근거가 없는 공적연금 수급 개시연령에 맞춰 노인 기준연령이 정해지면서, 사람의 개별적 특성과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노인연령이 만들어졌다. 넷째, 노인연령이 획일화하면서 자본주의에서 노령은 생물학적 연령보다는 ‘퇴직’이라는 사회적 의미를 더 강하게 갖게 되었다. 다섯째, 획일화된 노인연령을 중심으로 사회구성원 전체의 생애주기가 편성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공적연금 수급 개시연령을 노인 기준연령으로 삼고 이를 중심으로 사회구성원 전체의 생애주기를 편성했다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에서 노인 기준연령이나 사회 전체의 생애주기가 사회적・인위적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회적 여건이 바뀌면 노인 기준연령과 사회 전체의 생애주기도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해방 후 자본주의를 택하고 1960년대부터 퇴직제도를 보편화한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노인연령 문제가 교육개혁까지 연결되는 이유

그러면 노인 기준연령의 변화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자본주의에서 노령은 생물학적인 연령과 함께 퇴직의 의미도 갖는다. 따라서 노인 기준연령의 조정은 퇴직 및 공적연금의 문제로도 접근해야 한다. 노인연령에 맞추어 제도화한 각종 복지제도와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노인 기준연령을 단순히 노인만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노인연령이 인위적으로 정해지면서 사회 전체의 생애주기도 그에 맞춰 편성되었으므로 사회적 생애주기 조정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현재와 같은 생애주기 편제가 적절한지 판단해야 한다. 이때는 교육 기간의 연장으로 아동기가 늘어나는 상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아동기가 연장되고 평균수명이 늘어나는데 노인 기준연령을 65세 그대로 고수한다면, 노동기간은 짧아지고 퇴직 기간은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생애주기 편제는 적절하지 않으며 전체적으로 아동연령과 노인연령을 동시에 상향하는 등 전체 생애주기의 연령을 조정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데 이러한 결론에 따라 생애주기를 조정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매우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사안이다.

우선 노인 기준연령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퇴직 시기를 조정해야 한다. 그리고 퇴직 시기를 조정하려면, 노동자를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에 조기 퇴직하게 만드는 기업 운영방식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임금체계 개편과도 연결된 사안이며, 임금체계 개편은 숙련 형성체계 개편과 연결된다. 또한 숙련 형성체계 개편은 전반적인 교육제도 개편과 연결되고, 이는 아동기(교육기)의 조정과도 연결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퇴직 시기를 조정하려면 수급 개시연령과 맞지 않는 국민연금의 현 가입 상한연령도 상향해야 한다. 국민연금 가입 상한연령을 높이려면 고령자 노동시장의 열악한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현재 비정규직은 60세 이상 노동자의 비중이 가장 큰데, 이런 현실을 그대로 둔 채 가입 상한연령만 조정하면 고령노동자 간 격차를 더 키울 우려가 있다.

즉, 이 문제는 노인 기준연령만 조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노인연령 문제를 빨리 논의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단순히 ‘지하철 재정적자’와 같은 돈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결코 안 된다. 사회 전체의 생애주기 조정, 그와 연관된 기업과 노동시장, 공적연금, 숙련 형성체계, 교육제도 전체의 조정이라는 측면에서 거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는 평등하게 늙어가지 않는다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생애주기 변화가 계층별로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18세가 되면 보호시설을 나와 사회에서 생계를 꾸려야 하지만, 30대 초중반까지 아동기(교육기)를 연장해도 생계에 지장이 없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 일찍 노화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양호한 노동조건에서 충분한 소득을 올리면서 경제활동을 해서 나이가 많이 들어도 건강에 별 탈이 없다. 퇴직 후 연금만으로는 생활비가 부족해서 노년기를 어렵게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충분한 연금을 받으면서 여유롭게 생활하는 노인도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노인 기준연령과 생애주기 조정을 세대 문제나 재정 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퇴직 시기의 조정과 노동시장 및 기업 개혁, 연금개혁, 교육개혁 등 매우 복잡한 사안과 연결된 문제다. 동시에 생애주기의 계층별 불평등을 해소하면서 풀어나가아 할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예를 들어 계층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더 빨리 늙는데 노인돌봄서비스 이용연령을 65세 혹은 70세로 똑같이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2차 세계대전 후 일률적으로 정해진 노인 기준연령을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사회 구조에서 또다시 일률적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 맞는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

물론 노인 기준연령을 유연화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더 고민해야겠지만, 다시 노인 기준연령을 획일적으로 정한다면 생애주기의 불평등 문제를 외면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지금처럼 평균수명 연장만 강조하면서 생애주기가 계층별로 불평등하게 작동하는 현실을 경시한다면, 어렵게 생애주기를 조정해도 사회적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만 악화시킬 것이다.


1  독일은 1880년대 후반 공적연금을 도입했고 다른 유럽 국가들도 독일을 따라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공적연금을 도입했다. 그러나 그에 따른 급여는 최소한으로만 지급하는 ‘구빈법’ 수준이어서 복지국가 제도라기보다는 빈곤구제 제도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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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3/03/2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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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임성희

무제한으로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한 독일의 ‘9유로Euro 정책’이 국내외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 기후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세계적으로 무제한 또는 무상 대중교통을 확대하고 있는데, 9유로 정책은 이 흐름에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정책 내용을 살펴보자. 독일 정부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3개월 동안 지역 간 고속 열차를 제외한 모든 대중교통을 월 9유로(약 1만2천 원)로 무제한 이용하도록 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를 위해 제도 시행 기간에 26억 유로(약 3조 4천억 원)의 정부 재정을 투자했다.

9유로 정책은 시행되자마자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고 총 5,200만 장의 티켓이 판매되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독일 정부는 △물가상승률 0.7% 감소 △대중교통 이용 25% 증가 △이산화탄소 180만 톤 저감 및 대기오염 6% 감소 △교통혼잡 개선 △가구 소득보존 등의 다양한 사회경제적 효과를 달성했다. 이 밖에도 독일의 복잡한 대중교통 요금체계를 단순화하는 성과도 얻었다.

정책이 대대적으로 성공하자 상시적인 도입 요구가 거세게 일었다. 독일 연방정부와 주 정부는 논의 끝에30억 유로(약 4조 원)의 예산을 절반씩 부담하기로 하고, 2023년 5월 1일부터 월 49유로(약 6만 6천 원) 무제한 독일 티켓DeutschlandTicket을 상시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기후위기와 고물가 시대에 국가 차원에서 공공요금 정책으로 대중교통의 사회경제적 편익을 증명하면서 변화를 끌어낸 것이다.

한국산 ‘9유로 티켓’ 도입, 재정여력은 충분하다

이러한 영향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기후환경단체 중심으로 1만원패스연대(준)가 결성되었고, 정의당도 ‘3만원 무제한 패스’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반면 서울시는 ‘해외에 비해 요금이 싸며, 무임수송에 따라 적자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300~400원의 대중교통 요금 인상을 예고했다. 정부의 공공요금 동결 기조에 따라 인상 시기는 올 4월에서 하반기로 연기했지만, 계획은 바꾸지 않았다.

이러한 서울시의 입장은 대중교통 이용자가 누구인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변화된 상황은 무엇인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이다. 우선 외국과 달리 정기할인권이나 소셜Social할인 제도가 활성화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만큼 요금이 늘어난다.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는 저소득 노동자, 청년 실업자, 노인, 영세자영업자, 장애인 등에게는 요금부담이 역진逆進적이다. 특히 요즘같이 경제위기와 고물가 시기에는 그 부담이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중교통 이용률은 보수적인 정부 통계로도 이전 대비 3분의 1 이상 폭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률 회복과 증진을 위해서 적극적 인센티브 정책도 요구된다. 지금은 오히려 무제한 정액제 도입 등의 긴급 처방이 필요하다. 재정을 들여서라도 서민을 위해 요금을 내리고, 대중교통 이용률을 복원하고 더 늘려서 환경오염에도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재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교통시설 특별회계 세출 예산’을 교통 관련 재정으로 사용한다. 이 중에 불용不用 처리되어 5년2017~2021년 동안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 예탁된 돈만 무려 20조 원이라고 한다. 정부의 결단만 있으면 유류세에 부과되는 재원으로 조달된 교통시설 특별회계 예산을 대중교통 요금할인과 운영지원을 위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중앙정부가 재정을 내어놓는다면 지방정부 또한 쉽게 호응할 것이다. 정부는 이미 자가용 이용자들에게는 유가 인상에 따른 9조 원의 유류세를 감면해주었다. 대중교통 이용자에 대한 혜택도 그만큼 줄 수 있어야 한다.

사회구조를 바꾸는 요금제, 우리도 할 수 있다

독일 9유로 정책의 사회경제적 편익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증명되고 있다. 아직은 소규모이지만 강원 정선군, 경기 화성시, 경북 청송군 등에서 무상버스 정책을 도입한 것이다.

강원 정선군은 2020년 6월부터 버스공영제와 함께 65세 이상 노인과 초·중·고 학생들에 대한 부분 무상교통을 실시했는데 승객이 30% 증가하고 지역 상권이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경기 화성시 또한 2020년 11월부터 버스공영제와 함께 청소년·노인·청년(만23세 이하) 대상 무상교통을 실시해 환경개선, 교통비 절감, 경제활성화 등으로 연간 약 86억 6천만 원의 사회경제적 효과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보편복지의 일환으로 2023년부터 전면 무상버스를 도입한 경북 청송군은 시행 두 달 만에 이용객이 20% 늘었고 이동 증가로 지역경제도 활성화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광역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세종시는 광역단체 최초로 2025년부터 시내버스 요금 전면 무료화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앞으로 지역을 중심으로 부문 또는 전면 무상교통이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정책이 요금할인과 무상교통 자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책이 지속적으로 유지·확대되기 위해서는 수요 확대에 걸맞은 인프라 확대, 재정투자 증가, 안전인력 충원 그리고 통합공공교통체계가 수반되어야 한다.

대중교통이 잔여적이고 주변적인 한국 현실에서 무상교통 및 무제한 요금제는 고물가 대응, 환경오염 저감과 지역 활성화 등을 도모하기 위한 사회경제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자가용 중심 체계에서 대중교통 중심 체계로 전환하는 마중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독일 9유로 정책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시사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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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3/02/2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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