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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글] 복지동향 제2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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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글] 복지동향 제275호

admin | 목, 2021/09/02- 00:37

편집인의 글

 

김아래미 복지동향 편집위원,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난 8월 26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특별기여자’ 378명이 한국에 입국하였다. 선진국에 걸맞은 책임 있는 대응이라며, 대체적으로 환영하고 있고 감격해 하는 분위기까지 있다. 그러나 바로 며칠 전의 국내 미군기지에 ‘난민’ 수용 가능성 기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우려와 반대를 나타냈다. 혐오표현과 차별언어가 난무했다. 같은 아프가니스탄인인데도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이주민에게는 성과주의적 관점을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기여도나 생산성이 기대되는 이주민에게는 너그러워지는 편이나, 인도주의적 조치에 대해서는 매우 냉정하고 불관용적인 모습을 많이 보인다. 이주민을 대상으로 역설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례는 이 외에도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5년 아일란이라는 시리아 난민아동이 해변에서 사망한 사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지만,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시각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이러한 인간의 패러독스는 이주민의 사회권 보장 이슈에서도 드러난다. 사회보장협정을 통해 내가 외국에서 사회보험을 이용하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이주민이 우리나라에서 사회보험을 이용하는 것은 껄끄러워 한다. 한국 국적자와 이주민 모두 코로나19를 겪고 있고, 차별과 배제 위험으로 이주민의 재난피해 가능성이 더 높지만, 이주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는 것에는 인색하다. 1~4차 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 재난지원금 대상을 국민으로 경계 짓는 것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었음에도 5차 재난지원금의 대상에서 200만 외국인 중 170만 명은 여전히 배제되었다. 재외국민이 외국에서 이러한 대우를 받는다면, 재난에 국적이 어디 있냐며 모든 인간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공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한국 사회는 이주민이 약 4~5%로 소위 ‘단일민족사회’에서 벗어난 지 꽤 되었고, 앞으로도 초연결사회구조에서 이주민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권은 인간의 패러독스와 경계 짓기 속에서 ‘국민’이라는 경계 내에서 논의되어 온 편이다. 그러나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는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 복지체제에서 사회권은 국민이라는 경계를 넘어서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이주민 권리에 대한 논의가 주로 결혼이주여성, 이주노동자, 이주아동, 북한이탈주민 등 이주민의 세부집단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번 호에서는 이주민의 사회권을 복지국가 및 사회보장체계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먼저, 김규찬 교수는 복지국가에서 이주민의 사회권이 보장되기 위해 필요한 논리와 구조를 살펴보고, 포용적 복지국가를 위한 사회권의 발전 과제를 원론적 차원에서 논의하였다. 다음으로는 김기태 박사와 곽윤경 박사가 노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사회보험이 이주민의 사회권을 어떻게 보장하고 있고, 사회보험의 차별적ㆍ배제적 요소와 정책과제는 무엇인지를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김옥녀 교수는 이주민의 사회서비스 이용권 현황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이주민의 세부집단에 편중된 사회서비스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해결과제를 제안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인권을 강조하는 사회복지계에서 관련 논의에 이주민을 배제해 왔다는 점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앞으로는 복지국가 및 사회권 논의와 사회보장정책 및 서비스 대상에 이주민을 당연히 포함시켜야 한다. 이주민이 시민으로서 생산, 소비, 납세 등을 이행하고 있는데 사회권 보장체계에서 배제되어 있는 현실의 부당함을 직시하고 해결해야 한다. 또한, 이주민도 한국사회구조가 야기하는 사회적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는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주민도 증명할 필요 없는 사회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패러독스와 경계 짓기를 멈추고 이들에게도 사회권을 동등하게 보장해야 한다. 더 미뤄서는 안 된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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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동향 제239호: 2018년 9월 발간

 

편집인의 글

복지동향 제239호 | 김형용 편집위원장,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기획주제: 국민연금 제4차 재정계산 결과

기획1 국민연금 재정추계의 의미와 과제 | 조영철 고려대학교 경제학부 초빙교수

기획2 국민연금 4차 재정계산 쟁점과 과제 |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기획3 국민연금기금운용의 과제와 발전방향 |  이찬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기획4 제4차 재정추계의 의미와 기금고갈론의 문제점 | 구창우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국장

 

동향

국민연금 기금소진인식의 형성배경 | 남찬섭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외

복지국가와 기본소득“들”을 위해 | 윤홍식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복지톡

여성을 힘들게 하는 건 낙태가 아니라, ‘낙태죄’다 | 윤정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

 

복지칼럼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단상 | 이미진 건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목, 2018/09/0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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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불평등 사회와 마주하다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바뀌지 않은 일상

1년 전 나라를 바꾸기 위해 광장으로 모였던 1,700만 명의 시민은 어디로 갔을까. 광장에서 박근혜정권의 퇴진을,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사드 배치의 철회를,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위해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돌아온 일상에서 무엇을 위해 촛불을 들고 있을까. 아니면 촛불을 꺼버렸을까. 거리 곳곳의 촛불과 사람들의 행렬로 추울 새 없던 지난 겨울에 비해 이번 겨울은 유난히 코가 시리다.

 

광장은 대통령을 바꾸었지만 광장 밖 일상을 바꾸지는 못했다. 광장의 중심에서 몇 발자국만 떨어지면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가 보였고, 보증금이 없어 집을 구하는 데 전전긍긍하는 세입자가 보였고, 적금이 아닌 대출금을 상환하는 채무자가 보였다.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도 IMF 이후 청년실업률이 최대치를 찍고, 6평 남짓한 단칸방을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50만원으로 구해야 하고, 가계부채가 1,300조원에 육박하는 현실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더 이상 아이는 부모보다 더 나은 삶의 수준을 영위할 수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계층 이동 사다리에서 상승이 가능하다고 낙관한 응답자는 21.5%뿐이었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에서 조사한 결과 본인이 중산층이 아니라고 답한 계층의 비율이 79.1%에 달했다. 취업정보 사이트인 잡코리아에서 이직 시 고용형태 변화를 설문한 결과 정규직의 90% 이상은 정규직으로 이직이 가능했지만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이직한 비율이 50%도 채 되지 않았다.

 

이제는 노동을 해서 얻는 소득보다 부동산 투기로 얻는 소득이 자산을 형성한다. 땅값이 오르는 속도를 월급이 오르는 속도가 따라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한 나라 안의 모든 부를 그 해 국민이 벌어들인 소득으로 나눈 값인 자본/소득 배율로 한국을 대입해 계산하면 8.28배로 주요 선진국의 2배 가까이를 기록했다. 우리는 그 어떤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불평등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과열된 수도권의 부동산 시장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거취를 옮기게 되면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 중 86곳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한반도에서 서울과 경기, 인천에 살지 않는다는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불공정한 출발선 위에 놓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학을 가기 위해 또 다시 수도권에 월세방을 구하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스펙 상경을 해야 한다.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 양극화된 일자리 그리고 지역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구조적으로 작동하며 세대의 어려움을 가속화시키는 중이다.

 

청년은 이런 사회에서 삶을 시작한다. 불평등, 불공정, 불통이라는 단어가 지배적인 사회 속에서는 제아무리 건강한 청년이라도 아플 수밖에 없다. 무엇을 이뤄볼 기회도 없이 ‘N포 세대’,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청년실신’(졸업 후 실업하고 신용불량자가 되는 청년) 등의 자조적 세대 지칭어를 부여받는다. 매년 청년 세대를 풍자하는 유행어는 수십 개씩 만들어지지만 이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정책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청년, ‘미취업자’에 갇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정책은 없다. 특정한 청년에게만 존재할 뿐이다. 청년 정책은 대학생, 사회초년생, 신혼부부인 청년들에게만 시행되고 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바로 취직을 한 청년,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청년, 결혼 예정이 없거나 비혼 선언을 한 청년들은 있어도 없는 존재가 된다.

 

2004년, 처음이자 유일하게 청년을 대상으로 한 정책인 ‘청년실업해소특별법’에서는 청년을 미취업자라고 정의했다. 이는 최저주거기준에도 못 미치는 공간에서 거주하는 주거빈곤청년이나 신용 대출의 굴레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신용불량청년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 청년 담론이 고용뿐만 아니라 주거, 부채, 교육, 지역, 문화, 건강 등으로 확대되었다. 이는 청년에게 닥친 가장 큰 어려움이 실업 뿐 아니라 삶의 모든 측면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경고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는 여전히 청년에게 직업교육을 시킨 뒤 양극화된 노동시장에 투입하는 정책을 내놓을 뿐이었다.

 

이제 청년에게 6평 남짓한 공간은 ‘방’이 아니라 ‘집’이다. 빚 없이 시작한다면 반은 성공한 인생이라 위로한다. 용은 개천이 아니라 강남 8학군에서 난다. 수도권 청년과 그 외의 지역에 사는 청년은 사투리가 아니라 서로 누릴 수 있는 인프라에서 격차를 느낀다. 이런 시대에서 청년이 겪는 어려움은 단순히 실업으로만 한정되지 않으며 이에 따라 청년도 미취업자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삶의 이행기에 놓인 청년

아직도 우리는 2004년의 청년실업해소특별법에 머물러 있다. 여전히 청년 문제도 실업이라는 주제 하나에만 집중되어 있다. 여태 중앙정부는 청년실업해소를 위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청년일자리예산에만 11조원을 썼다. 2018년에는 3조원 정도를 더 쓰겠다는 모양이다. 예산 증액에는 의지를 보여도 정책 기조의 전환에 대해서는 감감무소식이다. 청년실업률은 여전히 9%대에 머물러있으며 지표상 나아지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청년 실업만 해소한다고 청년 문제가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무엇도 해결할 수 없음을 매년 확인하고 있다. 이제는 청년을 미취업자로 한정 짓고 실업해소를 위해서만 시행하는 정책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주거, 부채, 지역을 비롯해 삶의 전반에 놓인 불공정한 기회와 걸림돌을 제거하려면 보다 다양한 분야의 대책이 만들어져야함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민달팽이 청년을 위한 주거 정책과 학자금 대출, 소액 대출로 시작된 부채 악순환에 놓인 청년 등 이 모두가 논의에 포함될 수 있도록, 어떤 청년도 소외되지 않을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청년이라는 기준을 무엇으로 잡을 수 있을까. 기준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국회에 발의된 6개의 청년기본법은 15세부터 39세와 같이 보편적 연령으로서의 청년을 제시하고 있다. 청춘은 영원할 수 있어도 청년으로 영원히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청년은 고정된 정체성이 아닌 단계적으로 유동하는 정체성이다.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거쳤던 것처럼 청년 또한 시간이 흘러 중년기를 맞이하게 된다. 청년은 미취업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삶을 이행하는 시기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부재했던 사회안전망의 회복

삶은 언제나 연속하기에 끈을 잘라내듯 조각내어 볼 수 없다. 지난 과거가 마냥 순탄치는 않았으나 지금은 별 어려움 없는 호시절을 보내고 있다면 지난 날 겪은 아픔이 잘 봉합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삶의 이행기에 놓인 청년에겐 안정적인 다음 세대로의 이행을 위한 디딤돌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일자리로, 가족의 집에서 독립적인 주거로, 원 가족에서 새 가족으로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직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어려움으로부터의 얇더라도 확실한 방패막이다.

 

무엇 하나 해결되는 것 없이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는 것은 고착화된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고민이 아닌 당장의 급한 불 끄려는 식의 응급처치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지금 청년에게 필요한건 당장 눈에 보이는 어려움만을 가리기 위해 시행되는 선별적 복지 정책이 아니라 보편의 청년을 아우를 수 있는 사회안전망 구축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그러니 청년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만들자는 이야기는 단순히 청년 세대만의 어려움을 해소해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 전반에 퍼진 구조적 문제를 생애주기에서 좀 더 빠른 시기인 청년기에 교정해나가자는 이야기다. 모든 세대가 직면할 수밖에 없는 거대한 문제에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 그것이 청년문제라는 이름에 가려진 본래 목표이다.

 
<사진=청년참여연대>
 

청년 정책의 유의미한 변화

다행히 지난 3여 년간 청년 정책을 둘러싼 환경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 2015년 1월, 서울시에서 청년조례를 세운 다음부터다.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청년들과 지자체가 만나 좋은 시너지를 내기 시작했다. 여타의 세대에 비해 제도적 대상이 되어본 적 없던 청년들을 15세에서 39세까지로 보편적 연령 기준을 설정하고, ‘청년수당’이라 일컬어지는 청년활동지원금은 그간의 청년 복지 패러다임을 전환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청년조례를 세우는 지방정부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청년조례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경우 다른 지자체와의 정보를 교류하며 이에 대한 논의를 전국적으로 확장해나가기도 한다.
 
마냥 긍정적이지는 않다. 조례를 만드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시행에 강제성이 없는 터라 지역 시의원의 재량과 역량에만 기대야 하는 문제에 직면한 상태다. 어떤 정책을 만들어보고 예산을 얼마나 투입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는 지역 청년들의 목소리에도 나몰라라 하는 경우도 있다.
 

시작은 청년기본법으로부터

더 이상 청년기본법 제정을 늦출 수 없다. 보다 체계적이고 균형 잡힌 정책 시행을 위해 지방정부와 함께 중앙정부에서부터의 관리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간 일시적이고 제한적으로 시행되어왔던 청년 정책의 한계를 벗어나 규칙적으로 청년의 현실을 진단하고 중장기적인 처방을 내릴 수 있는 생애주기 로드맵 구성이 가능해질 것이다. 연령을 기준으로 한 보편적 정의, 청년의 시민성을 회복할 명확한 근거, 이행기에 마주친 어려움을 극복할 수단을 담은 작지만 확실한 안전망이 필요하다. 이는 미래가 보이지 않아 불안하다는 이들에게 앞날을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할 첫 번째 방법이다.
 
여태까지 청년은 빈곤 포르노 속에서 다른 세대의 연민을 구걸해왔다. 정책 하나를 얻기 위해 누가 더 불쌍하게 사는지를 두고 저마다의 가난과 결핍을 자랑해야만 했다. 세월이 흐르며 문제가 보다 구조화되고 심화된 탓도 있지만 청년의 어려움을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에 이를 수 있었던 것도 끝없는 불행자랑대회의 유일한 성과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청년에게 ‘복지를 시혜한다’는 것처럼 시행되곤 했다.
 
청년은 한국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산업 역군이 아니라 한 사회의 동료 시민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하루하루 각자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옆자리의 동료 시민과 함께 생활할 수 있을 때, 청년이 살아가는 오늘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걷어낼 수 있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월, 2018/01/0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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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2018년 2월 제232호_김형용 | 편집위원장,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기획주제

돌봄과 복지, #MeToo

기획1 페미니트스 관점에서 본 '미투 운동'의 사회적 의미

          이나영 |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기획2 돌봄 노동자가 경험하는 성폭력, 구조적 원인과 개선방향
          김양지영 |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위원

기획3 사회복지, 권력, 그리고 미투(#MeToo)
          곽효정 | 성민종합사회복지관 부장

기획4 장애인거주시설의 성폭력, 구조적 원인과 대안

          양혜정 | 사회복지사

 

동향

동향1 사고의 전환: 탈시설의 현재와 미래
          조아라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

동향2 열정을 가로막는 보상체계: 사회복지사의 처우개선 과제
          김형용 |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복지톡

장애가 무의미해지는 세상 | 홍윤희 장애인 이동권 컨텐츠 제작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복지칼럼

시대를 역행하는 정신장애인의 사회복지사 자격취득 배제 | 김도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

 

생생복지

아동·청소년 대상 성매수 범죄 피해실태와 대책 | 십대여성인권센터

일, 2018/04/0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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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최혜지ㅣ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편집위원장

 

때론 촘촘함의 부족이 누군가의 안위를 위협하고, 때론 지나친 촘촘함이 또 다른 누군가의 자유를 옥죈다. 균형의 미학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 균형점은 시원하게 제 위치를 드러낸바 없다. 정신질환과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또 다른 균형의 과제에 직면해 있다.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이라는 이름으로 개정된 정신보건법이 우려스런 모양새로 인해 각자의 견해에 무게감을 더하려는 서로 다른 시각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 중이다.

 

사회제도는 인간 집단 지성의 순수한 창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그 한계를 드러냈다. 이미 수명을 다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일부 사회제도는 집단 지성에 대한 인간의 신뢰를 조롱한다. 빈곤한 사람들에게 도덕성을 빌미로 징벌적 인권 제한을 허용했던 과거의 제도는 집단 지성의 한계를 과장 없이 보여준다. 그런데 정신질환자에 관한 사회제도만은 집단 지성에 대한 견고한 신뢰에 힘입어 더디게 변화해 왔다. 

 

정신질환은 범죄의 선제 또는 충분조건으로 단순화 되어 정신질환자는 사회로부터의 분리가 강제되어 왔다. 사회구성원 다수의 안위를 명분으로 사회적 존재인 정신질환자에게 사회를 몰수하는 국가권력이 오랫동안 지지되어 왔다. 정신질환은 자유의사를 지닌 사회적 존재로서 개인에게 부여된 인간적 권리를 박탈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라는 신념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강력하게 작동한다. 정신질환자가 범죄에 연류 될 때마다 정신질환자를 처벌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시각은 지지되고 사회적 격리는 불가피한 이성적 결정으로 정당화 되었다. 이동의 자유, 거주의 자유는 너와 나, 우리의 천부적 권리임에도 그들에게 만은 허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은 정신질환을 이유로 가족이라는 이름의 타자, 전문가, 국가의 권력이 개인의 의사위에 행사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구법의 패러다임에 매몰되어 있다. 촘촘해진 규정으로 강제입원의 오용 가능성이 감소할 여지는 인정되나 강제입원이 지닌 정신질환자 인권 침해의 가능성을 종식시킬 의지는 결여되어 있다. 

 

정신질환자의 인권에 대한 지지는 종종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주장하는 다수의 안전의 권리와 충돌한다. 그런데 다수의 안전은 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와 개입을 통해 확보되어야 한다. 사회로부터의 격리라는 징벌적 수단이 다수의 안전을 보장하는 해법이어서는 곤란하다.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의 긍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쌍수 들어 환영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이번 호에서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의 음영을 전문가의 시각을 통해 깊이 있게 분석해 보고자 했다. 

월, 2016/08/0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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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이은주 |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정책위원

 

 

언제부터인지 새로운 해의 시작에 다다르면 다시 기운을 낼 수 있게 하는 희망이 아니라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일상들, 일상적인 암울함이 먼저 다가옴을 느낀다. 세상의 변화 속도는 빠른데 내 삶은 그만큼 빠르게 나아지지 않고 격차는 더 커질 뿐 좁혀지지 않는다. 올해는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그동안 공허하다고 생각해왔던 외침들이 구체화되는 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구호가 현실이 되는 순간 우리는 또 다시 더 큰 갈등에 직면하고 있다. 벌써부터 최저임금 인상효과가 고용을 줄이고 무급 휴가가 늘어난다는 우려들이 주말 뉴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쉽게 생각했던 제도의 변화는 결코 단순하지가 않다. 본질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우리는 늘 쉬운 선택의 유혹에 빠지거나 어설픈 전문가들의 판단에 의해 결정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기술의 진보, 변화의 속도가 빠른 것 같지만 그럼에도 이 모든 것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과정이라는 근본적인 ‘질문하기’를 놓치지 말아야 하겠다. 

 

2018년을 여는 복지동향은 ‘미래세대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영유아기 불평등이 생애 불평등으로 어떻게 쉽게 이어지는지부터 사회를 바꾸어낸 주체인 청소년의 권리를 향한 목소리, 청년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현실이 사회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경고까지 담겨 있다. 우리는 필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미래세대의 이야기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한 개인이 손대기 어렵다며 외면하기 쉽고, 심지어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합리화시키기도 한다. 이번 복지동향은 그런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모든 세대가 먹고 사는데 바빠서 악을 쓰고 살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극단의 시대를 어떻게들 버텨나가고 계신지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진실은 이 모든 문제도 함께 나누어야 해결될 수 있고, 맞닥뜨린 오해들을 드러내고 치열하게 얘기해야 풀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세대의 미래라는 주제로 문을 연 2018년은, 시간을 가지고 공감하며 문제를 풀어내자는 다짐을 더욱 꼭꼭 새기고 사는 한 해가 되길 바라본다.

 

덧붙여, 2018년은 1998년 10월 창간한 월간 복지동향이 2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 속에 여전히 부족한 점이 있지만, 복지와 복지를 둘러싼 사회를 이야기하고 현장과 지역의 소식을 담기 위해 노력해온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복지동향 편집위원회는 2018년을 맞아 독자들이 더 다양한 정보를, 더 쉽게 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작은 변화들을 준비하고 있다. 지역소식을 전하던 ‘생생복지’ 코너는 기존 지역단체의 소식을 짧게 전달하던 것에서 벗어나 보다 깊이 있는 내용을 전하기 위해 지면을 늘렸다. 참여연대의 복지운동 소식을 전하는 ‘열린광장’ 코너는 활동을 단순 나열하던 것에서 벗어나, 중요한 이슈 몇 가지를 선정하여 독자가 읽기 편한 문체로 바꾸어 싣고자 노력했다. 앞으로도 월간 복지동향 편집위원회는 복지 관련 소식을 깊이 있고 다양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월, 2018/01/0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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