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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성장, 위기 그리고 수요와 공급의 제약들에 대한 연속적 돌파구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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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성장, 위기 그리고 수요와 공급의 제약들에 대한 연속적 돌파구들(1)

admin | 일, 2021/09/05- 06:03

이제 개발도상국이나 세계 최고 부국의 실천적인 전망들과 관련해서가 아니라 경제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측면인 공급과 수요의 관계에 대한 확산된 지식경제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자. 명료하고 단순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모호하고 수수께끼 같다. 수요와 공급의 관계에 대한 포용적 전위주의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지식경제의 경제적 성장과 위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전개하는 것이다.

적어도 19세기 후반의 한계주의 전향 이래로 주류의 경제적 사유는 시장의 작동방식에 결함이 없는 경우 수요와 공급은 서로 조정할 것이라고 가르친다. 시장에서 나타나는 각각의 결함은 완전경쟁에서의 이탈로 이어진다. 이러한 결함들이 없는 경우에 수요와 공급은 균형에 이를 것이다. 수요와 공급의 상호조정 과정은 우리의 가장 소중한 자원, 우리의 시간, 인간의 노동을 포함해서 자원들이 가장 효율적인 용처들에 투입되는 것을 보장한다.

이러한 사유방식에 따르면 공급과 수요의 각 원천들은 수요와 공급이 상호 조응하게 되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기제에 대한 이해와는 관련이 없다. 공급이나 수요의 원천이 무엇이든 간에 (시장 지배력뿐만 아니라 정보를 포함한 어떤 차원에서도) 완전경쟁의 실패가 수요공급의 상호조정을 방해하지 않는 한 수요와 공급은 결국 균형에 도달할 때까지 서로 조정할 것이다. 이러한 견해 아래서 우리는 수학적 표현을 이용하면서 수요와 공급을 각기 균질적이고 지속적인 정량으로 상상한다. 이제 우리는 수요와 공급의 상호조정에 대한 수학적 분석과 수요와 공급의 확장이나 축소의 원인에 대한 설명을 구별할 수 있다. 우리는 경제학의 개별적인 분야들, 특히 경제성장 이론과 경기순환 연구나 더 일반적으로 (그런 분과가 존재 한다면) 경제위기 연구에 인과적 탐구를 할애할 수 있다.

나는 공급과 수요에 대한 사유의 또 다른 방식, 즉 포용적 전위주의를 제안한다. 이러한 사유방식은 지식경제와 그 미래에 대한 나의 접근방식을 밑받침하고 있는 일부 가정들을 명료화한다. 이 책에서 나는 이러한 견해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것까지 희망할 수 없지만, 이러한 견해가 경제사에서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많은 부분을 어떻게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지를 보여주고 싶다. 이러한 측면 중에는 지식경제의 진화와 현재 상태와 관련되는 측면들도 있다.

모든 일반적인 견해와 마찬가지로 내가 개략적으로 제시한 견해도 직접적인 경험적인 반박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러한 견해가 경험적 도전에 난공불락이라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견해는 사실문제에 대한 결론들에서 넓은 주변부를 갖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그러한 주변부에서 반증가능하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구성하는 여섯 가지 관념들이 있다.

첫 번째 관념은 경제성장은 공급과 수요의 제약들에 대한 연속적인 돌파구들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성장이 지속되기 위해서 경제의 수요측면에서의 진전은 공급측면에서의 상응하는 진전을 만나야만 하고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수요와 공급에 대한 지배적인 접근도 이와 똑같은 관념을 통합하고 있다. 그러나 지배적인 접근은 특정한 시장의 불완전성이 가로막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경제에서 공급측면의 진전과 수요측면의 진전 간의 일치가 자동적이라고 표상한다.

우리가 수요와 공급에 대한 지배적인 설명에 붙잡혀 있는 동안 놓치게 되는 하나의 문제를 제외한다면 이 모든 것은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 분명한 것처럼 보인다. 공급의 증가가 수요의 증가를 창출하고 수요의 증가가 공급의 증가를 유발한다면 공급과 수요의 상호조정은 영구적인 경제성장을 낳아야 한다.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지금까지 경제생활에서 보편법칙의 배역에 가장 그럴 듯한 후보자)이 경제적 침체를 충분히 해명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기술적이고 조직적인 혁신들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주류사고에 따르면] 수요와 공급의 상호조정은 영구적인 경제성장을 낳을 수도 있다.

두 번째 관념은 공급과 수요의 제약들에 대한 돌파구들은 불연속적이라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을 확장하는 방법들은 다양하다. 각 방법은 각각의 작동방식과 그 잠재력과 한계와 같은 각기 고유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경제의 수요나 공급측면에서 확장을 지속시키는 이와 같이 특징적인 방식들은 각기 다른 파급 범위, 유효성과 지속력을 가지고 있다. 어떤 방식은 다른 방식보다 더 일천하고 더 단명하다. 어떤 방식들은 신속히 소진되지만 다른 방식들은 자체 보존적인 성격을 더 보여준다. 이러한 방식들은 경제주체들의 역량과 경제적 제도와 관행에 대해 더 변혁적인 효과를 갖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우리는 수요와 공급의 확대양상들을 계층으로 배열할 수 있다. 마치 이러한 확대양상 중에서 하나의 양상이 지닌 잠재력을 소진시키고 나면 다음 양상으로 이행이 보장되는 듯이 하나의 양상에서 그 다음 더 강력한 양상으로의 직접적인 혹은 자동적인 이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공급이나 수요를 증가시키는 하나의 기초에서 계층적으로 우위에 있는 그 다음의 기초로 자동적인 이행이 없다는 사정을 고려하여 나는 수요와 공급의 확대를 불연속적이라고 부른다. 지배적인 관념들과 달리 공급과 수요의 단기적 부침들과 경제성장 및 경제침체의 원인들을 분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러한 불연속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나중에 수요공급의 상호조정을 위한 이와 같이 다양한 기반들을 개관하고 경제성장을 지속시키는 잠재력의 역순으로 그러한 기반들의 순위를 매겨보겠다. 수요공급의 상호조정을 경제성장 메커니즘의 외형적이고 가시적인 형태로 전환하는 데에 있어서 각각의 기반은 그 이전 단계의 기반보다 전도유망하다.

세 번째 관념은 수요와 공급의 제약들에 대한 돌파구들이 타율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념은 수요나 공급의 확대를 위한 하나의 기초에서 진전과 공급이나 수요의 다른 측면에서의 진전 사이에는 자동적인 일치가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수요를 지지하는 데에서 진전으로부터, 즉 이러한 진전을 위한 하나의 기초에서 또 다른 기초로 진전된다는 것(예컨대, 가계부채의 장려를 통해 구매력을 증가시키는 것에서 누진세 및 사회 지출을 통해 구매력을 증가시키는 것으로)으로부터 경제의 공급측면에서 일치하는 진전(예컨대,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혁신이 없는 공급 확대에서 그러한 혁신을 동반한 공급 확대로의 진전)을 달성할 것이라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수요공급의 상호조정의 타율성은 불연속성의 효과를 심화시킨다. 불연속성은 일면적이다. 불연속성은 수요나 공급의 확대를 위한 하나의 기초에서 그 다음 더욱 효과적이고 변혁적인 기초로의 자동적인 이행이 없다는 점에 관한 것이다. 타율성은 양면적이다. 타율성은 경제의 한 측면(수요나 공급)에서의 진전이 다른 한 측면에서의 진전을 보증할 수 없다는 점에 관한 것이다.

네 번째 관념은 수요공급의 상호조정의 불연속성과 타율성이 경제불안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경제성장이 중단되기 쉬운 근본적인 이유는 지배적인 사고방식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는 것(시장의 결함이 없는 경우에 공급과 수요는 상호조정을 거쳐서 자원과 노동을 가장 효율적인 용처에 배정하는 것을 보장한다)이 없다는 데에 있다.

공급확대와 수요확대 사이의 자동적인 일치의 부재가 경제불안의 제 1의 원인이라면, 경제불안의 제2의 원인은 실물경제와 금융의 관계가 과부하상태이고 가변적이라는 데에 있다. 나는 이 장의 다음 부분에서는 케인스가 매우 강조했던 이 관계의 측면(화폐가 중요하다)을 논평하겠다. 특정한 생산적 활동과 유리된 화폐시장균형들의 유동성은 그러한 균형들이 두려움과 탐욕, 절망과 희망과 같은 충동들의 유순한 도구로 복무하도록 허용한다. 그러나 우리의 기질에 따른 이와 같은 화폐비축은 금융과 실물경제의 관계가 보여주는 더욱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측면에 대해서 부수적인 사정일 뿐이다.

시장체제의 조직에서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유일한 방식이 없는 것처럼 시장체제의 한 측면, 즉 금융과 실물경제의 관계의 형성에서도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유일한 방식은 없다. 시장경제를 조직하는 상이한 방식들은 금융과 실물경제의 관계를 강화하거나 이완시킬 수 있다. 금융과 실물경제의 연결이 느슨해질수록 또한 실물경제의 거래가 더욱 금융활동의 참된 관심사라기보다는 그 구실이 될수록 그와 같은 금융이 폐해를 야기할 위험은 그만큼 더 커진다.

부유한 국가들에서 현재 확립된 안배들 하에서 생산체계는 대체로 금융을 자체적으로 조달한다. 생산자금은 주로 기업의 재투자용 사내유보이익, 따라서 생산체계 안에서 창출되는 자금에 의존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자산을 창출하는 것(벤처캐피털 및 유사한 금융형태들의 관심사)은 금융활동의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 심지어 1차적인 기업공개나 2차적인 기업공개도 금융의 비교적 작은 부분을 나타낸다. 이러한 안배들 아래서 금융은 좋은 하인보다는 나쁜 주인이 될 공산이 크다.

경제불안 혹은 경제위기에 관한 이론은 경제성장 이론의 이면에 불과하다. 경제불안과 경제위기에 대한 이론은 성장의 붕괴가능성을 다룬다.

그리고 수요와 공급이 어떻게 시간에 맞게 동적으로 서로 조정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경제성장과 경제불안의 문제를 단기적으로 처리하는 한 가지 방법일 뿐이다.

다섯 번째 관념은 만일 우리가 공급과 수요의 확대에 대한 제약들을 극복하는 방식들의 [단계]를 멀리 넘어 가서 이러한 제약들을 폐지하는 더욱 파급력 있고 더욱 지속적인 방식들에 이른다면, 우리는 그러한 방식들이 공급을 증가시키는 데에 사용한 똑같은 수단으로 수요를 확대시키는 일단의 해법들(생산의 자원, 기회 및 역량에 대한 접근의 제도적 확장)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배적인 사고방식이 경제생활의 자연적인 상태로 상정하는 수요공급의 상호조정은 실제로 경제조직의 예외적인 변형들(더 많은 경제주체들에게 생산적 활동의 수단과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수요공급의 한계를 깨뜨리는 속성을 가진 변형들)이 가진 속성이다.

여섯 번째 관념은 다섯 번째 관념이 제시한 여건들 중 특히 유력하고 전도유망한 부분집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집합은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에 대한 접근을 확장함으로써 수요공급의 제약을 깨뜨린다. 공급측면에서 이러한 활동들은 경제의 가장 생산적인 분야의 업무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를 증가시킨다. 수요측면에서 이러한 활동들은 사람들에게 단순히 회고적이고 보상적인 재분배의 수혜자가 아니라 부의 창조자로서 그들이 생산에 기여한 부에 대한 몫을 청구할 지위를 부여한다.

이와 같은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지식경제라면, 수요와 공급의 확대 잠재력은 특히 크다. 지식경제는 기술혁신을 영구화하는 경향을 띠고 생산과정에서 투입요소의 증가에 대한 한계수확체감의 법칙을 완화시키거나 역전시키겠다고 약속하는 생산적 활동형태를 허용한다.

헨리 포드는 한때 노동자들이 포드사의 차를 살 수 있도록 그들에게 급여를 후하게 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노동자들은 다른 물건을 사거나 포드사의 경쟁업체들이 만든 차를 구입하기 위해 그 돈을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포드의 발언으로 야기된 문제에 대하여 [경제 전체의 차원에서] 계약상 해결책은 없다. 제도적인 해결책 밖에 없다.

지식경제의 발전되고 확산된 형태로서 포용적 전위주의가 바로 그러한 제도적 해결책이다. 포용적 전위주의는 더는 수요공급의 상호조정이 자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포용적 전위주의는 수요공급에 관한 지배적인 관념들이 불완전경쟁이 가로막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일어난 다고 그릇되게 가정하는 것[수요공급의 상호조정]을 시장경제에 새로운 형상을 부여함으로써 달성한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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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대국(전략국가)이라 칭하던 미국이 참으로 ‘쪼잔’하게 됐다. 불러도 대답 없는 조선(북)을 뒤로하고 자신들의 희망사항만 담긴 2019년도 1월, 혹은 2월에 제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그렇게 기정사실화하고 싶으니 말이다.

 

전략은 없고, 그렇게 희망만 있다. 그 최소한의 필요충분조건에 해당하는 전략적 발상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그냥 내년 1월, 혹은 2월에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기만을 바라고, 기정사실화한다. 상대방인 조선(북)은 ‘떡 줄’ 생각이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똥줄이 그렇게 타고만 있다.

 

사실 그 전략적 발상이라는 것도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자신들 스스로가 약속했던 대북제재 해제와 종전선언 약속이행이라는 그 전제조건을 보다 ‘분명하게’ 이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대도 그럴 생각대신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통해서는 미국인의 조선여행금지를 완화하겠다고 한 것이라든지, 비건(대북정책 특별대표)을 한국에 보내서는 자신들의 대북정책 통제장치인 워킹그룹에서 마치 선심이나 서듯 남북협력 사업에 대한 제재를 ‘(예외)면제’해주겠다고 제법 생색을 낸 것이라든지, 12월 22일(현지시각)보도를 통해서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전주에 UN에서 ‘북의 인권 탄압’을 비판하는 연설을 준비했으나 취소했다는 그것을 근거로 조선(북)에게 마치 대화의 조건을 마련하는 시그널이 되었다는 등 비본질적인 접근으로 마치 본질적인 제약조건-대북제재 해제와 종선선언이 마련된 냥 호들갑을 떤 것이다. 더불어 여기에 부화뇌동된 청와대와 여권, 대북전문가들과 지식인들도 그 정도면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조건이 어느 정도 마련되었으므로(미국이 그렇게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는 북이 응답해야 된다는 조언들을 늘어놓는다. 청와대도 내심 이런 분위기를 기대하는 눈치이다. 결론적으로 참으로 안이한 정세판단이고, 조선(북)을 몰라도 너무나도 모르는 무지의 소치라는 사실이다.

본질은 누누이 말하지만, 그런 꼼수로는 조선(북)을 절대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낼 수가 없다.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약속해놓았으면 이를 지키겠다는 그런 이행의지가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런 구태의연한 방식, 즉 북을 정상국가(혹은, ‘전략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불량국가, 깡패국가, 언젠가는 무너질 국가정도로 상정해놓고 그렇게 요리하려 든다면 조선(북)은 절대 그러한 미국의 의도에 말려들지도 않을뿐더러 더는 대화상대로도 취급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본질은 이렇듯 조선(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태도와 그런 태도에도 끽소리 못하는 대한민국 정부와 여권, 청와대와 대북전문가들의 인식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해서 분명한 것은 위와 같은 그런 꼼수로는 절대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려지지 않는 다는 사실, 그것만은 확실하고 이는 곧 미국이 동시행동과 비례성의 등가교환문제를 ‘많은 것을 받고, 조금 생색내는 것으로는’도저히 성립되지 않는다는 그 사실을 분명히 깨닫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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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말해 철저하게 싱가폴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했던 대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이라는 그 원칙적 입장에서 모든 문제를 신뢰성 있게 풀어가야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다시 문재인 정부에게도 4월 판문점선언에서 확인한대로 ‘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에 입각해 미국이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대북제제 해제와 종전선언 약속이행을 위해-미국을 설득해야 함을 안내해주고 있다. 즉, 12월 답방무산을 통해 문재인 정부에게 보낸 분명한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캐치하고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다.(해서 참모들은 엉뚱한 보고를 통해 다른 판단을 하게끔 대통령의 귀와 눈을 닫게 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께서 본질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볼 수 있도록 조성된 정세국면을 제대로 보고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정도해놓고 본 주제와 관련된 글로 들어가 보면 2018년 상반기 어느 날이 소환된다. 부산에서 진행된 남북·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한 강연회가 그것인데 당시 이 행사는 민족사적 관심과 세기적 변화 동인이 관련되어있으니 당연히 가장 핫한 뉴스일 수밖에 없었다. 내심 대북전문가들이 무슨 말들을 쏟아낼까 싶어 참으로 궁금하기도 했고, 시기에 맞게 사람들도 참 많이 모였다.

결론은 실망 그 자체였다. 당시 드러난 현상 그 자체, 즉 남북·북미관계 분위기만을 반영하듯 발표자 대부분은 장밋빛 환상만 쏟아냈다. 비례해서 문 대통령(정부)에 대한 칭찬 일변도였다. 약간 불편했다. 문 대통령을 좋아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지만, 본인들이 지금 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도 아닌데 굳이 그렇게까지 문재인 정부의 전도사가 되어서야만 했을까? 그것도 정부 공식행사라면 모르겠으나, 민간학술행사에서 문비어천가만 남발한다? 참으로 좋지 않은 풍경이었고, 비(非)지식인적 모습이었다.

생각해봤다. 사랑의 색깔이 그렇게 문비어천가 밖에 없었을까? 하고 말이다.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봤으나 역시 ‘그건 아니’였다. 즉, 참된 지식인의 진짜사랑이 ‘비판적’에 있어야 함을 망각한 그 결과가 정부에 참여하지 않은 지식인들조차도 관료들이 볼 수 없는, 즉 박제화된 보고서와 시스템, 그리고 정부정책 틀 안에서만 바라보고 진단할 수밖에 없는, 또는 권력의 속성상 최고 권력자가 듣고만 싶은 것만 전달하려는 출세주의자들의 준동도 변수가 될 수밖에 없는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둔 자각 속에서만 자기역할이 찾아질 수 있다는 그 사실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 이조조선시대에도 그러하질 않았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당연히 정부 밖의 대북전문가라면 정부가 볼 수 없는 그런 시각과 내용을 비판적으로 조언하고 코멘트 해줬어야 했던 것이다. 앵무새처럼 정부정책을 그대로 해설해주고 더 첨언해준다면 그건 지식인도, 대북전문가라고도 할 수가 없지 않는가. 그 정도 역할을 하기위해 그 고급스러운 정보·지식을 습득하고, 불편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조선(북)의 속내를 읽어내고자 하는 노력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해서 전문가의 책무는 달라야만 하는 것이다. 특히 정부에 참여하지 않은 전문가는 더더욱 그러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다른’ 전령사 역할들을 하는 것이 학자들이고, 전문가들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어느 누구하나, 심지어 촛불시민혁명이 들어선 이 마당에도 조선(북)을 제대로 보려 하는 학자와 대북전문가들은 보이지 않는다. 내재적 접근을 포기하고, 오직 외재적 접근만으로 조선(북)의 그 마음을 헤아려 보려한다. 그러니 남북교류협력과 평화체제 구축의 상대방, 파트너로만 조선(북)이 보일 뿐이다. 철저한 도구적 관점과 기능주의적 접근방식만 있고, 그것도 희망적 사고방식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조선(북)은 호응해 나오겠지…’그 정도의 대한민국 중심주의적 발상뿐이다. 조선(북)의 관점에서 그 정세국면과 그 결과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파악해주려 하지 않는다. 기껏 파악해주더라도 경제와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조선(북)은 그렇게 밖에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그런 진단과, 말만 되풀이 되고 있다.

예하면 이런 것이다. 정부와 여권관계자들, 언론과 대북전문가들 거의 대부분은 내년(2019) 초에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것을 기정사실화한다. 하지만, 지금의 정세국면 하에서는 전문가는 다른 분석을 해줘야 하는 것이다. ‘내년 초’는 위에서 확인받듯이 미국의 희망사항이라는 것을 말해주어야 하고, 그 희망사항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조선(북)이 응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미국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이라는 제1차 정상회담 합의정신으로 복귀함과 동시에, 동시행동·단계별 해결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안내하고, 이 과정에서 또 대한민국은 정부 스스로가 규정한 지렛대 역할(혹은, 운전자 역할)로 판문점선언에 맞게-‘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정신에 기초해‘종전선언’과 ‘대북제제 해제’를 미국에게 건의(설득)하고, 그걸 해결하기 노력해야만 제4차 남북정상회담도 열린다는 것을 정부에게 건의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기능과 역할을 다하는 것이 지금의 국면 하에 맞는 지식인(대북 전문가)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자신들의 기능과 역할은 놓아두고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 반드시 ‘북핵’비핵화 로드맵이 짜져야한다는 둥(그것도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제4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 의제는 무엇이 되어야 하고, 보다 확실한 비핵화 답변을 들어야 한다는 등 그런 의견 제시만 있으니 정말 무책임 한 것이다. 그렇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 진도를 내기위한 방도를 제시하기 보다는 그냥 생각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얘기정도를 남발하는 것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대북전문가가 될 수가 없다.

다시말해 지금의 남·북, 북·미 정세국면에서 가장 큰 장애가 조선(북)의 약속 불이행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게 있고, 그런 미국을 판문점선언 정신-‘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에 입각해 설득해내지 못하는 문재인 정부에 있음을 건의하고, 그렇게 조언하고 직언하는 역할을 정부밖에 있는 대북전문가가 취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건만 해도 그렇다. 연내답방과 관련하여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에 달렸다’고 그렇게 인식하는 대통령께 “대통령님, 김정은 국무위원장님의 연내 답방은 오히려 대통령님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버티는 미국으로부터 ‘제재해제’와 ‘종전선언’을 확약 받는데 성의를 다하고, 이로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결단을 이끌어 내셔야만 합니다.”그렇게 조언하고 직언하는 참모와 대북전문가가 있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해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본다면 민족공조는 철저하게 구동존이(求同存异)의 원칙과 정신에 입각해야 한다. 만약 그런 인식을 확고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민족)공조가 강화되면 될수록 오히려 정부는 정부대로 시민사회는 시민사회대로 조선(북)체제와 그 경제작동방식을 자본주의식으로 체제전환과 흡수통합이 가능하다는 인식으로 확장이 이어지고, 종국에는 그 공조마저도 파탄될 수밖에 없다는, 즉 뿌리 깊은 대한민국체제중심의 우월주의로는 절대 남북관계 개선마저도 힘들다는 사실을 수용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철저하게 공존·공영·공리의 이념에 따라 차이를 인정하고 통 크게 하나 되는 그런 민족공조의 관점에서 모든 남북교류협력 사업이 진행되어야 하고, 그러면 서로 신뢰가 쌓이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남북관계가 보다 동질성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그 진리를 획득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조선(북)을 그냥 교류협력의 파트너, 또는 문재인 정부가 취하고 있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성공조건만으로 조선(북)을 활용하려 들고, 그런 인식정도로 남북경협을 대한민국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이용하려 들겠다는 그런 시각으로는 절대 진정한 의미에서의 남북경협도, 신경제지도도 완성될 수가 없다.

그런 우려는 여기에서 그쳐지지 않는다. 조선(북)이 지금 핸드폰 가입자 수가 5백만 시대를 넘었고, 장마당 수도 증가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진작 이를 두고 대북전문가들이나 정부에서조차도 조선(북)체제가 변화하고 있다는 결정적 징표 운운할 정도이니 이는 절대 정상적인 인식이지 않다. 비례해서 제대로 된 남북관계 개선도 바랄 수 없다.

(장마당의 증가도 중요하지만, 장마당에서 거래되고 있는 품목 등이 중국산에서 북한산으로 채워진다든지, 그렇게 중국까지 가세하여 국제적인 제재가 작동되고 있었지만, 품목수도 늘어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이는 장마당에 의한 자본주의적 지표가 증가한 것이 아니라 북한식 사회주의제도를 보완하는 ‘개건’적 실리사회주의경제체제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측면도 분명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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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간단하다. 이 인식에는 조선(북)주민들의 생활이 나아지고 물질 문명화되면 자본주의적 삶에 대한 동경도 높아지기 때문에 반드시 조선(북)은 체제전환을 할 수 밖에 없고, 또 좀 더 깊게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교류협력의 결과가 조선(북)체제의 전환과 흡수통합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제 아무리 백번양보 해 위 요인들을 해석해 위의 변화-핸드폰 가입자 수와 장마당의 증대가 조선(북)이 변화하고 있다는 한 요인과 동기는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러한 변화가 조선(북)체제 전환의 결정적 요인이다? 이렇게 단정 지어야 할 그 어떤 근거도 없다는데 있다. 오히려 역으로 보자면 장마당 활성화는 내각의 정책과 당의 통제아래 이뤄지고 있는 것이고, 핸드폰 수 증가는 사회주의 발전노선이 정상궤도로 진입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변화현상을 자본주의체제로의 전환이라는 인식이라는 그 한 방향으로만 그 원인을 찾으려 하는 것은 참으로 몰이해적 조선(북)인식하기에 다름 아니게 되었다. 철저한 희망적 인식의 한 단면이고, 조선(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려는 대한민국 대북전문가들의 한 민낯에 다름 아니다. 즉, 조선(북)을 조선(북) 자신이 설정한 사회주의 강국건설을 존중하고 이해해주기 보다는 언젠가는 자본주의체제에 백기항복하고, 개혁개방을 통해 체제전환을 할 것이라는 그런 기대와 희망만 녹여져 있을 따름이다.

 

그렇지 않고-그 희망적 사고를 한 꺼풀 벗겨내고 조금만 더 사회과학과 그 이론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들이 채택하고 있는 사상과 철학에 이 문제를 접근시켜 보고자 한다면 핸드폰 가입자 증가수와 자본주의적 지표의 증가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정상적인 사회주의 발전노선을 따라가고 있다는 그런 인식을 해야 하는 것이 지극히 마땅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이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못살아야 한다는 사회과학 이론적 근거가 없을뿐더러 그럼으로 이 문제는 사회주의체제에서 핸드폰 증가는 체제후퇴로서의 자본주의로의 회귀가 아니라 사회주의체제에 더 근접하고 접근해가고 있는 그들의 노력과, 지극히 정상적인 궤도를 따라 돌고 있는 그들의 국가정책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사회주의체제하에서의 물질문명 고도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말이다.

이는 조금만 우리가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생각만 해봐도 금방 알 수 있는 문제이다. 동시에 이는 우리가 사회주의체제를 인정하는가 안하는 그것과는 상관없이 역사발전단계로서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체제를 극복해낸 체제라 했을 때 사회주의체제는 자본주의체제보다 더 잘살고 문명한 사회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사회이론으로서 그렇다는 말이고, 오히려 기간 사회주의국가가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 더 문제였기에-우리가 그런 사회주의체제를 인정하고 안하고와는 상관없이 앞으로는 사회주의가 더 많은 물질문명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그런 인식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조선(북)에서 핸드폰 가입자 수 증가는 자본주의체제로의 전환가능성 지표를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체제가 가난하지 않고, 과학적 물질문명혜택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지극히 정상적인 체제로서의 물질문명국가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분석해줘야 하는 부분도 분명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핸드폰 가입자 수 증대가 자본주의체제로의 체제전환이라는 억지논리가 만들어지지 않고, 실제 핸드폰 가입자 수 증대는 조선(북)이 자신들이 설정한 사회과학적 이론에 부합하는 사회주의체제로 진입하고, 그 건강성이 증명되고 있다는 가설을 성립시켜 조선(북)은 원래대로 사회주의체제가 더 많은 물질문명혜택을 누려야 하고(아니, 더 누려야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핸드폰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하는 것이 그들이 설정한 이론에도 부합한다고 설명해 줄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설명해내어야 할 것은 그렇다면 왜 이제까지 그렇지 못했던 이유와 근거를 설명해내어 국민들이 불필요한 오독과 오해를 하지 않게끔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대북전문가라는 사람들은 … 핸드폰 사용자 수 증가가 왜 자본주의체제를 동경하는 이유가 되어야 하고, 체제이탈의 중요한 지표가 되어야 한다고 그런 궤변을 늘어놓는 이론적 불구자가 되어야 하는지가 지금 이 촛불정부 하에서도 되풀이 되어야만 할까?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궤변도 그런 궤변이 없는데 말이다. 지독한 희망적 사고이고, 이런 것들로 자꾸 환상을 가지게 되면 종국에는 조선(북)에서 인민생활향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폭동이 일어난다는 것과 같은 주의·주장을 남발되게 되고, 그런 말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국민들은 또 그렇게 잘못된 인식으로 조선(북)을 이해해 가야만 한다. 악순환의 되돌이표는 그렇게 만들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제발 부탁드린다. 조선(북)체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과 고무 찬양하는 것과는 하등 인연이 없음을 직시해내자. 적대적 공존과 체제경쟁을 해야 했던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그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이제는 GNP와 GDI가 수십배 차이가 나지 않는가? 무엇이 두려워서 그 진실과 팩트에 눈을 감아야만 한단 말인가? 대한민국체제의 건강성에 대해 그렇게도 자신이 없는가?

물론 조선(북)도 인민생활향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조선(북)체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주성’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인민생활향상이 제 아무리 당면과제라 하더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주’의 문제를 훼손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는 조선(북)의 정신도 같이 제대로 봐줘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야만-그러한 인식으로 계속 조선(북)을 봤더라면 조선(북)은 열 백번도 더 체제전환이 일어났어야 했고, 폭동이 일어나야만 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같은 이유로 지금 조선(북)이 2020년까지 달성하기로 된 제5개년 국가발전전략의 그 성과가 미흡하더라도 김정은 체제가 휘청거리거나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그런 판단과 진단은 틀 릴 수밖에 없으며, 또 김정은 정권은 이유 불문 미국과, 대한민국과 자신들에게 불리한 비핵화를 하면서까지 대화와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그런 망상은 정말 북을 몰라도 정말 모르는 인식의 한 파편밖에 되지 않음을 자각해낼 수가 있어서 그렇다.

조선(북)은 그렇게 자신들이 설정한 인민생활향상이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여 폭동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 국가이다. (흘려온) 시간도 충분히 이를 증명해준다. 분단이후 60여 년간 그들은 늘 그런 상황 하에서도 폭동대신, 자주와 수령중심의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해왔다. 그렇기에 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듯이 마찬가지로 이는 2020년도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식민지 민중은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저버리지 않는 한, 또 그런 인민적 동의가 철회되지 않는 한 말이다. 인민생활 향상보다 더 앞선 원칙은 조선(북) 스스로가 택한‘자주’를 지켜내겠다는 철학이념이 있기 때문이다.

즉, 제아무리 먹고 사는 문제 중요하다 하더라도 자주의 문제와 바꾸지 않겠다는 그 조선(북)의 입장과 태도를 보지 않는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조선(북)사회의 본질을 보지 못한 것과 같게 된다. 그렇지 않고 자꾸 희망적 사고로만 보려한 결과가 지금까지 보려고만 했던 그런 조선(북)의 모습이라면 이제는 그런 망상에서 좀 벗어날 때가 되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일어났더라면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이 몰락할 때 체제전환이 일어났어야 했고,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 폭동이 일어났어야 했고, ‘아랍의 봄’때도 체제전환이 일어났어야 했다. 그러나 조선(북)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기가 설계한 그 사회주의 궤도 따라 나아가고만 있다. 그런 조선(북)을 이제는 보자.

해서 결론은 핸드폰 가입자 증대가 사회변화의 한 지표가 될 수는 있겠으나, 그 어떤 대북전문가가 말한 것과 같이 그 지표의 변화가 체제전환과 같은 그런 지표의 변화로 진단하는 것은 체제이탈자수(탈북민)로 체제전환을 예측하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음이고 이론적 오류임을 간파해내자. 그 반대편, 물질문명국가로서 사회주의국가체제가 더 잘 작동시키기 위한 그들의 국가정책으로 봐주고 이해하자. 그래야만 맞는 해석이고, 그렇게 해석이 맞아야만 제대로 된 대북정책이 나올 수 있음을 명심하자.

 

통일뉴스, 2018년 12월 25일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가 공동게재에 동의하여 실린 것임). 

금, 2018/12/2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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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퇴임한 김동연 전 기재부장관은 우리나라의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혁신성장으로 가야하고, “혁신성장은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해하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꾸준히 경제 체질을 바꾸고 구조개혁해야 한다”며 경제체질을 바꾸기 위한 노동개혁을 주장하고,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궁극적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우리나라의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이 김동연장관의 발언과 같이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며 노동시장의 유연화일까?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면 경제가 성장할까?

노동시장 유연화는 기업(고용주)이 필요한 최소 수준의 노동력만큼을 고용하고 경기변동에 따라 임시적·단기적 노동력을 탄력적으로 활용하는 유연화 전략으로 고용형태의 유연화, 노동의 외주화, 근무형태의 유연화(탄력근로확대)로 나타난다.

노동시장의 유연화정책을 한마디로 말하면 기업의 인건비부담 감소정책이다.

 

1.노동개혁이 필요한가?

노동개혁이 필요한 이유로는 우리나라산업의 국제경쟁력이 낮아져서 생산수준이 낮아지고, 생산수준이 낮아졌기 때문에 고용도 낮아졌다. 기업의 인건비부담을 낮추어줌으로서 국제경쟁력을 상승시켜 산업의 생산을 증가시키고 고용도 증가시킬 수가 있다. 그래서 노동개혁을 해서 기업의 인건비부담을 낮추어 줘야한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산업의 생산수준이 낮고 고용수준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산업의 국제경쟁력이 낮기 때문에 생산수준이 낮고 고용수준이 낮다고 만은 볼 수 없다. 이유는 우리나라산업의 국제경쟁력이 낮다면 무역적자가 발생하여야 하는데 2018년 10월 현재의 무역수지는 흑자이기 때문이다.

2018년 1월부터 10월까지의 무역흑자규모가 612억$이다(10월 수출 549.7억달러…전년동기비 22.7%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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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수출입 실적(통관기준 잠정치)(제공=산업통상자원부)

무역흑자가 발생하는데도 불구하고 산업의 생산이 낮아지고 고용이 감소한다면 이는 우리나라산업의 국제경쟁력이 낮아지기 때문이 아니고 다른 이유가 있다.

산업생산이 낮아지는 이유로는 국제경쟁력의 악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소득분배가 잘못되어 가계의 소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에 발생할 수도 있고, 국내산업의 자원배분시스템이 잘못되어 고용을 적게 하는 산업의 생산은 증가하지만 고용을 많이 하는 산업의 생산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경우에도 발생할 수가 있다.

생산가액은 판매됨으로서 확정되고, 소비는 구매됨으로 시작되며, 국민경제에서의 소비는 구매를 말한다. 그러므로 생산과 소비는 같다. 생산은 노동과 자본의 결합으로 기업에서 이루어지고, 노동으로 분배되는 소득(생산)이 임금이고, 기업으로 배분되는 소득이 영업이익이다.

생산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소비도 같이 증가해야 하고,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생산만큼 소비도 같이 증가해야 한다.

생산의 증가는 1차적으로 기업의 몫이고, 생산을 증가시키는 방법은 자원배분(생산요소의 가격결정과 조세와 예산지출)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소비의 주체는 가계이고, 소비는 자원배분(생산요소의 가격결정과 조세와 예산지출)에 의해서 결정되고, 그 중에서 임금수준의 결정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생산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소비도 같이 증가시켜야 하고, 소비의 증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임금이다. 임금수준을 낮추는 방식으로는 경제를 성장시킬 수가 없고, 고용도 생산도 증가시킬 수가 없다.

노동개혁으로 우리나라의 성장률을 높이거나 고용을 확대하거나 생산을 증가시킬 수가 없고, 더 나아가서 김동연장관의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방향 자체가 틀렸다.

 

2.소비의 감소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

소비의 주체는 가계이다. 소비가 감소하는 이유는 가계의 소득이 감소하고 소득분배가 악화하기 때문이고, 가계의 소득이 감소하는 이유는 생산된 소득을 분배함에 있어서 기업으로의 배분이 증가하고, 가계로의 배분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기업소득이 영업이익이고, 가계소득의 대부분이 노동소득인 임금이다.

2018년11월20일 통계청발표에 의하면 2017년도 기업의 세전순이익이 173조원으로 2016년도의 127조원보다 46조원이 증가했다고 한다(‘돈벌어도 사람 안써’…기업순익 173조 최대, 고용 1%↑).

기업으로의 소득배분이 증가하면 생산(공급)이 증가하고, 가계로의 소득배분이 감소하면 소비(유효수요)가 감소한다. 공급이 증가하고 수요가 감소하면 재고가 증가한다.

재고가 증가하면 가격이 하락하고, 가격이 하락하면 한계기업이 생산에서 퇴출되면서 산업의 가격경쟁력이 상승하고, 가격경쟁력이 상승하면 무역흑자가 발생한다. 무역흑자가 증가하면 자본수지의 변동 등 다른 변수가 없다면 환율이 하락하고, 환율이 하락하면 수입이 증가하고 수출이 감소하여 무역흑자가 감소하면서 무역이 균형을 이룬다. 무역이 균형을 이루는 과정에서 수입증가에 의한 내수산업의 생산감소가 뒤따른다.

한계기업의 생산퇴출과 내수산업의 생산감소에 의한 생산감소가 1회의 무역흑자에 의한 생산증가보다 훨씬 더 많다. 단 환율하락에 의한 국내소득의 구매력상승효과는 있다.

한계기업의 생산퇴출이 자동차산업이나 조선업의 구조조정이고, 중소기업의 파산이고, 자영업의 폐업이다.

한계기업은 고용계수가 대단히 높다. 한계기업의 생산감소는 곧 바로 고용의 위기로 고용대란으로 직결된다.

 

3.산업구조의 문제

생산요소의 가격변화가 산업구조를 변화시키고, 산업구조가 변화하면서 생산요소의 가격을 변화시킨다.

장치산업의 생산이 확대되고 노동기술산업의 생산이 감소하면 고용이 감소하고, 고용이 감소하면서 노동소득이 감소하고, 노동소득이 감소하여 가계소득이 감소하고, 가계소득이 감소하면 소비가 감소하며, 소비감소의 승수만큼 생산이 감소한다.

장치산업의 생산 확대는 자본비용이 감소하기 때문이며, 자본우대정책 때문이다. 생산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우대정책을 폐지해야 하고, 자본비용을 증가시킬 필요가 있다.

금융산업은 대표적인 장치산업이다. 금융에 대한 규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산업용 전기료를 낮추어주는 정책도 장치산업의 생산을 확대한다. 산업용전기료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은 고용계수가 낮고 중소기업은 고용계수가 낮다. 대기업의 생산이 증가하면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의 생산이 낮아지면서 전체 고용이 감소하고 노동소득도 감소한다. 노동소득 감소액의 소비승수만큼 생산이 감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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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노동시장의 유연화정책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한마디로 말하면 기업의 인건비감소정책이다. 인건비가 감소하는 경우에 국민소득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검토해보면 노동시장유연화정책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할 수가 있다.

1)노동시장의 유연화에 의해서 국내기업의 인건비가 10조원 감소한다면 기업의 이윤은 1차적으로 10조원 증가하고, 이윤율이 10%라면 100조원까지 생산증가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생산의 증가는 소비의 증가와 같으므로 생산증가는 국내소비의 증가에 더하여 무역흑자의 증가와 같다고 추론해볼 수 있다.

2)인건비 10조원의 감소는 가계소득의 10조원 감소이고, 노동소득의 한계소비성향을 0.7이라고 한다면 소비승수가 ‘1/(1-0.7) =1/0.3’이므로 국내소비의 감소는 33.33조원이다.

국내소비가 33.33조원 감소하므로 국내소비에 의한 국내생산도 33.33조원 감소한다.

인건비가 10조원 감소할 때 수출이 얼마나 증가할지는 현재로서는 계산할 수가 없다. 하지만 적어도 국내 생산의 감소 33.33조원과 비슷할 것이라 추측해보지만 별로 의미가 없다. 이유는 무역이 균형을 이루면 수입증가와 상쇄되기 때문이다.

자본수지의 변동없이 수출이 증가하고 무역흑자가 발생하면 환율이 하락하면서 수입이 증가하고 수출이 감소하면서 무역이 균형을 이루고, 수입증가에 의한 내수산업의 생산감소도 수출증가에 의한 생산증가만큼 발생한다. 단 1회의 무역흑자에 의한 생산(소득)증가와 환율하락에 의한 국내소득의 구매력상승효과가 있다.

인건비 10조원 감소에 의한 소득증가효과는 1회의 무역흑자에 의한 생산증가효과와 환율하락에 의한 구매력증가효과 밖에는 없고, 소득감소효과는 인건비감소액의 3.3배(소비승수)인 33.33조원으로 계산할 수 있다.

수출산업의 고용계수는 매우 낮고, 내수산업의 고용계수는 매우 높다. 수출산업의 생산증가에 의한 노동소득의 증가보다 내수산업의 생산감소에 의한 노동소득의 감소가 훨씬 더 많다. 수출산업의 노동소득증가에서 내수산업의 노동소득감소의 차액의 소비승수(약3.3)만큼 국내생산이 더 감소할 것이라고 추론해본다.

소비감소에 의한 국내생산의 감소를 부채(재정적자와 기업 및 가계부채)를 증가시켜 완화시킨다고 해도 이제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한다.

김동연장관의 노동시장의 유연화정책이 시행되면 노동시장의 붕괴로, 산업의 붕괴로, 우리나라 경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 예측해본다.

 

이동욱

재야경제학자

월, 2018/12/2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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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국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트럼프 미 대통령은 상황의 반전이라는 전개보다는 현상이라는 봉합에 중점을 두고 있는 듯 하다. 이에 대하여 영국의 정치분석가인 Tom Fowdy는 CGTN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서 트럼프의 아젠다 리스트에 우선 순위가 북한에서 중국과 중동으로 확실하게 이동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동시에 남북한 당국이 합심하여 미국의 의도와 별개로 민족사적 관점에서 대북제재를 뚫고 한반도의 상황을 주도해 가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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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핵 협상과 관련된 진행 상황을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트위터를 통해 게시했다.

“서두를 필요 없다,” 혹은 “잘 되어가고 있다”는 말들과 함께 김정은 위원장이 옳은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치면서, 북한 문제에 대하여 최근 몇 달간 진척이 없음을 비판하는 미국 내 여론을 일축했다.

그가 언급한 말들을 보면, 작년까지만 해도 트럼프 행정부가 평양의 문제에 대해 취했던 조급한 접근 방식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시 워싱턴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서지 않는다면 선제적 군사행동을 취하겠다는 협박까지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거시적인 정치적 맥락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일련의 언급들은 트럼프의 대외정책 우선순위가 변화되었음을 점점 더 확실하게 알리고 있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서 설정했던 가장 중요한 목표들은 바뀌거나 버려지지 않았겠지만,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더 큰 정치적 이해관계가 걸린 대중, 대이란 이슈에 목을 걸고 있는 상태다.

결과적으로, 제재만 유지한다면 평양에 대해 한 수 앞서 가고 있는 것이라는 가정 하에, 트럼프는 김정은이 종국에는 미국과 거래를 성사시키려 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판단으로 미 대통령은 행정부 내 매파의 영향력을 무시하고 북한과의 협상에서 기꺼이 시간적 여유를 가지려는 것으로 보인다.

2017년 트럼프 당선자로서 대통령 집무실을 넘겨 받을 때, 그는 북한문제를 대외정책 이슈에 있어서 최우선 순위로 설정하기로 했다. 그가 스스로 정한 임무란 무엇인가? 그건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제조를 멈추게 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라는 트윗을 남겼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급격히 확대되어, 워싱턴 내 기류가 바뀐 것을 인식한 평양 측에서 핵 능력을 최대한 빠르게 발전시키는 최고점의 상황에 이르게 하였다. 결국 모든 일은 트럼프가 스스로 언급했던, 북한을 “화염과 격노”로 “파괴”하겠다는 위협으로 인해 현재의 지경(북한의 ICBM 성공)에 이르렀던 것이며, 이는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바이기도 하다. 하지만, 북한 핵문제는 처음부터 트럼프의 가장 큰 목표가 아니었다. 대신 중국이라는 더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선제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었다.

2018년이 되자, 상황은 악화됐던 것만큼이나 급하게 변했다. 전쟁 위협과 끝없이 진행되었던 미사일 실험은 서울의 중재로 이루어진 워싱턴과 평양 양측의 대화로 인해 중지된 상태이다. 두 지도자들이 싱가포르에서 만났을 때, 트럼프는 “핵 위협은 끝났다”는 말로 서슴없이 승리를 선언했다.

하지만 그토록 빠르게 북핵 문제가 봉합된 만큼, 다른 문제가 부상했다. 그 문제는 다름 아닌 중국과 무역전쟁이었다. 4월이 되기가 무섭게 트럼프는 북핵 위기가 끝났음을 직감했고, 이제 더 어렵고 정치적 의미가 큰 안건을 손볼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실제로 2017년 한 해 동안, 트럼프는 북한 문제를 가장 우선시 했고, 그렇게 함으로서 베이징의 성실한 협조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는 트럼프가 북한 공격이라는 적극적인 전술을 곧바로 실행에 옮겼더라면 불가능 했을지 모를, 서로간 선의에 기반한 협조였다. 그리곤 북한이 대화의 장에 들어서고 있음이 명확해지자, 우선 순위는 자동적으로 즉시 바뀌었다. 트럼프가 중국에 대해 관세를 곧바로 꺼내든 것이다.

그 이후로, 트럼프의 정책 리스트에는 중국에 대항하는 요소들이 급부상했고 평양은 이제 그 중요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트럼프의 트윗 협박은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적 군사행동이 아닌 중국과의 관세 확대와 전면으로 확장된 경제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거의 매달, 트럼프 행정부는 아프리카에서 이루어지는 일대일로 정책과 대만 문제를 언급하면서 Huawei에 대한 공격을 확대하고 있으며, 대중 강경책은 다양한 형태로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한편, 북한 이슈는 멈춰서 버렸다. 미국이 협상의 수단으로 평양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면서, 진척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태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실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수많은 일들을 거래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트럼프는 2017년에 적용된 경제제재가 김정은을 결국 무릎 꿇게 만들 우월한 영향력의 협상 수단이라고 보고 있다. 물론, 북한이 일방적으로 약자의 위치에만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전제는 잘못 되었다.

결국 트럼프는 이러한 판단 때문에 대외정책 분석가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비판들이 그에게 큰 영향을 준 것 같진 않다. 미국 국내를 향해 그는 아직 자신이 이겼다고 주장하고 있고, 궁극적으로는 그 점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트럼프가 정해두었던 기준선은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핵 능력을 김정은이 갖추는 일을 막겠다는 것이었고, 기준선은 이미 충족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을 주창하는 국수주의적 기준과 “핵의 비확산”이라는 두 개의 국제적 의제를 분리시킬 수 있었다.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미국우선”의 이익 만을 중요시하고, 후자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

비록 북한과 협상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으며 내년 초에 있을 정상회담이 교착상태의 돌파구를 마련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음에도 트럼프는 급할 것이 없다. 그는 오히려 편한 상태에 있다. 더 큰 우선 과제라는 승부수들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문제의 중요성을 격하시키고 매파 각료들을 멀리할 수 있는 정치적 여유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이 남았다. 그의 판단대로 여유를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목, 2019/01/0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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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초에 있었던 G20회담에서 한가지만은 분명했다. 아시아와 전세계는 심각한 위험을 마주하고 있고, 그 위험의 대다수는 미국에서 기인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트럼프와 시진핑의 무역 협의가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백악관에 따르면, 미국은 관세를 10%에서 25%로 인상하지 않는 데 합의했다. 그 대가로 중국은 ‘미국과 중국간 무역 불균형을 줄이기 위해’ 미국의 수출품 ‘상당량’을 수입하기로 했다.

그런데 국가 간의 경제는 그런 방식으로 기대한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미국의 대(對)중국 무역적자는 얼마나 미국이 투자와 소비 면에서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 중국이 미국 농산물 ‘상당량’을 수입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면 우선 미국 농업계가 생산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투자를 더 늘릴 형편이 아니므로 추가 투자금은 어디에서 오겠는가?

미국 밖에서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 이렇게 외부 자본이 유입되며 미 달러가치는 상승하고, 무역수지는 더 나빠진다. 그래서 마침내 중국이 미국 농산물을 수입하는 시점에는 미 달러는 더욱 절상되고, 그렇게 미국의 무역적자는 더욱 악화일로를 걷게 될 것이다.

트럼프와 시진핑의 거래로 미국 농업계가 수익을 보면서 무역적자의 구성은 달라질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인 저축-투자 행태는 변하지 않으므로 전체 무역수지 자체를 개선하지는 못할 것이다.

대신에 이번 합의로 다른 악재를 동반하는 일들을 일어날 수 있다. 우선 규칙을 기반으로 한 세계 무역 시스템의 기반을 흔든다. 예건데 호주의 농업과 에너지공급 산업 등 다른 국가의 무역 방향을 바꿀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성장과 세계 무역 시스템의 고질적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며, 기존 관세의 인하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미국이 점점 더 전세계의 리스크로 자리잡고 있음을 강조할 뿐이다. 미국의 무역전쟁은 아시아의 공급체계를 교란시키면서, 아시아 전역의 성장과 번영을 위협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지속된 긴축 기조는 아시아의 금융통화 시장을 흔들었고, 미국 주식시장이 요동치면서 아시아의 여러 주식시장도 영향을 받고 있다.

칼럼_181229 KBS뉴스

트럼프는 미 연준과 세계무역기구 등 나라 안팎으로 기관들을 공격하며 투자와 소비를 지탱하는 정책의 예측가능성과 확실성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의 이란 제재의 재개를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으며 해당 지역에 다른 문제가 연쇄적으로 발생할 리스크도 커지게 되었다.

이러한 리스크의 중심에는 거대한 정책 불확실성이 자리잡고 있다. 트럼프의 다음 행보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중간선거 결과로 트럼프 정부의 힘이 확실히 약해졌다. 민주당이 우세한 하원 구성은 트럼프의 힘을 통제하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상처입은 짐승은 예측이 불가능한 법이다. 트럼프라면 미국 밖에서 힘을 과시하는 방법으로 미국 내에서 빠진 힘을 해결하려 할 수도 있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국내 정책에는 제한적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외교정책 특히, 무역과 재정, 안보와 관련해서는 반대로 통제불능적 권력을 가지고 있다.

트럼프의 다음 행보에 의해 전적으로 미국 경제가 영향을 받을 것이다. 조만간 미국은 역사상 가장 긴 경기회복을 기록하게 된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하기 전부터 이미 회복세가 시작되었고, 트럼프는 강력한 경제력을 발판 삼아 자신의 정책을 정당화하고 확대해왔다. 현재 미국 경제는 기존의 회복세에 트럼프 감세 등 부양책이 더해지며 가속도가 붙었다.

그런데 미국 경제가 주춤하면 어떻게 될까? 전세계의 수많은 리스크가 미국에서 비롯된 경험에 비추어, 미국 경제의 쇠퇴 가능성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호주 주립대 교수인 아담 트릭스(Adam Triggs)는 모든 경제지표가 미국의 다음 불황이 목전에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또 한번의 미국발 불황은 시간 문제이며, 아시아에 초래할 영향은 어마어마하다고 말한다. 아시아는 바로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

트릭스 교수도 언급했지만 미국의 불황을 예측하는 신호들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신호들이 하필 지금, 이렇게 많은 적색경보를 보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 중 하나는 미국의 경기순환 패턴이다. 지금껏 미국 경제는 후퇴없이 10년 이상을 버틴 적이 없었는데, 바로 10년 주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를 주목할 필요도 있다. 과거 연준이 연쇄적으로 금리를 인상한 일이 다섯 번 있었는데, 그 중 네 번은 불경기가 뒤따랐다. 현재 연준은 연쇄적 금리 인상을 진행 중이며, 투자자들은 2019년 12월 전에 최소 네 차례의 추가 인상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간 가산금리 역시 적신호를 보내고 있다. 장단기 금리 차가 줄어들며 완만해지는 수익률 곡선은 지난 60년간 발생한 미국의 모든 불황을 예측해왔다.

경제에 얼마나 많은 유휴 생산능력이 있는가 역시 불황을 예견하는 지표가 된다. 미국이 겪은 열 번의 경기후퇴 앞에는 항상 아웃풋 갭(GDP 성장률과 잠재성장률의 차이)의 축소가 선행되었다. 현재 미국의 아웃풋 갭은 0에 가까운 수준이고, 고용은 완전 고용을 넘어서고 있는데 물가상승과 임금상승은 완만하다. 그런데 이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기후퇴를 경고하는 목소리는 비단 트릭스 뿐이 아니다. 실제 많은 이들이 경기후퇴가 다가올 것이라 예견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와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 유닛(Economist Intelligence Unit), 그리고 NABE(National Association for Business Economics)가 조사한 경제학자의 3분의 2가 2020년 전후로 경기후퇴가 발생할 것이라 예측했다.

이는 아시아에게 심각한 수준의 복잡한 시사점을 남긴다.

트릭스는 사실상 미국 경제가 둔화되면 미 연준은 즉각 양적완화 또는 다른 형태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쓰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거 미국이 이 카드를 빼 들자, 아시아는 자본의 밀물을 만났다. 자본 유입은 반가운 일이었지만,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에 함께 도달한 변동성은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이렇게 몰려든 자본은 결국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말았다.

아시아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아시아 국가로서는 재정정책, 통화정책, 외화보유액 축적 등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외부 충격에 맞설 자체적 완충장치를 마련할 때다. 그러나 실제로 외부 충격이 발생하면 이를 물리치기 위해 아시아 역내 협력이 필수적이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와 아세안+3 거시경제 조사기구등과 같은 역내 위기대응 노력을 강화하는 것이 그 시작점이 될 것이다.

효과적인 역내 지원활성화를 위해 정치적 의지와 프레임워크를 다지는 일은 더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지역 메커니즘을 IMF 등의 글로벌 기구와 더 잘 연계할 때, 효과적인 리스크 감시와 유사시 강력한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적절한 통화스왑을 시행해 이러한 역내/다자 메커니즘을 지지하는 것 역시 도움이 될 수 있다.

다가올 폭풍우를 이겨내기 위해 아시아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다만 이 모든 것은 비가 내리기 전에 지붕을 고쳐야 가능한 일이다.

 

EAF Editorial Board

호주국립대학교아시아태평양대, 크로우포드 공공정책대학 내에 위치해있다.

토, 2018/12/2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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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6일자 NYT 칼럼.

미국은 중국과 그리고 전세계와 무역전면전을 시작할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종잡을 수 없는 것은 한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한 사람, 관세에만 집착하는 관세맨(Tariff Man)은 무식하고, 변덕스러운 데다가 망상에 젖어있다.

칼럼_181221

왜 이 모든 것을 한 사람 때문이라고 하는지 살펴보자. 2016년 미국대선과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이 , 이제 대중이 세계화에 격렬히 반발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떠들썩했던 것에 비해 지난 2년여 간의 반발은 규모도 작고 피상적 이었다.

도날드 트럼프의 관세정책과 국제협정 탈퇴위협을 지지하는 두터운 지지층은 대체 어디 있나? 큰 기업들은 무역전쟁 전망만 나와도 질색한다. 무역전쟁 가능성이 높아질 때마다 주가는 곤두박질친다. 트럼프 방식의 무역보호주의는 혜택층인 노동계조차 결집 시키지 못했다.

그 와중에 해외무역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의 비율은 사상 최고치에 근접하고 있다. 계속 무역을 비판하는 자들은 확고한 정책신념보다는 트럼프에 대한 충성심으로 변덕스런 편견을 고수하는 듯하다. 실제로 2016년 대선기간, 자칭 공화당인 트럼프 지지파는 무역협정에 찬성했다가 반대했다가, 트럼프가 무역협상을 하는 듯 하자 다시 찬성하며 갈팡질팡했다. (사실 미국은 언제나 동아시아 구가들과 무역전쟁 중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보호무역주의를 옹호하는 강력한 지지층도 없는데 우리는 왜 무역전쟁 직전까지 치달은 것인가? 한마디로 미국의 무역법 탓이다.

과거 미국의회는 관세법안에 특정 이익집단을 위한 혜택을 가득 집어넣었고, 이는 미국의 경제와 외교 모두에 파괴적 영향을 끼쳤다. 이에 1930년대 루즈벨트 대통령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에 이른다. 다른 국가와의 무역협상은 행정부가 담당하고, 그 결과에 대해 의회가 투표로 가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이후 세계무역기구WTO를 탄생시키며 글로벌 협상의 본보기가 되었다.

미국의 무역정책 입안자들은 이윽고 위기 시에는 이러한 제도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유사시 외부의 압박을 완화할 방도가 필요했고, 무역법을 통해 특정 상황에서 새로운 입법절차 없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행정부에 부여한다. 여기서 특정상황이란 주로 국가안보를 보호하거나, 불공정 무역관행에 대항하거나, 급격한 해외경쟁에 직면한 산업에 조정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 등을 말한다.

다시 말해 미국의 무역법은 부패하고 무책임한 의회의 해악을 억제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무역에 관한 상당한 재량권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지난80여 년간 문제없이 잘 운영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통령이 부패하고 무책임한 경우는 생각을 못했다. 현재 무역전쟁을 일으키려고 안달이 난 것은 트럼프 하나인 듯 하지만, 그가 무역에 대해 사실상 독점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트럼프는 이 권한을 가지고 뭘 하려는 걸까? 협상을 시도하지만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무역시장에서 그는 그저 대책없는 반항아다.

그는 스스로를 관세맨(Tariff Man)이라고 선언하면서도 관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관세는 외국인에게 부과되는 세금이 아니다. 관세는 미국의 소비자에게 부과되는 세금이다.

거래를 할 때 트럼프는 본질이 아니라 그저 “승리”를 선포할 수 있는 지에만 신경을 쓰는 듯 하다. 그는NAFTA를 대신할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 출범을 주장해왔으나, 실제 들여다 보면 기존의 NAFTA를 아주 조금 수정했을 뿐이다

무엇보다 그간 수많은 영역에서 드러난 그의 국제외교적 무능력이 무역협상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주에는 중국과 광범위한 무역합의를 도출했다고 밝혔지만, 곧이어J.P. Morgan은 고객보고서를 통해 트럼프의 주장은 “완전히 날조되었거나 심각하게 과장된 것”이라고 평했다.

금주 초 투자자들의 깨달음과 함께 주가는 크게 하락했다. 앞서 말했듯, 기업은 진심으로 무역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한가지 분명히 해두자. 중국은 세계경제의 훌륭한 참여자는 확실히 아니다. 특히 지적재산권과 관련하여 부정행위를 일삼고 있으며, 중국기업들은 기술을 빼내어 간다. 그러므로 무역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강경해질 필요가 있다.

다만 이는 중국의 부정행위로 고통받는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여 실행되어야 하며,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무역정책의 기본도 모르고, 공격적으로 모두를 들쑤시며 (캐나다산 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해 국가안보 를보호한다? 진심인가?), 미팅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차 정직하게 말할 수 없는 자와 누가 한 배를 타겠는가.

불행하게도 그런 자가 지금 미국의 수장이고, 그가 자제하도록 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따라서 세계무역의 미래는 도날드 트럼프의 의식흐름에 달려있는 셈이니 참으로 불편한 노릇이다.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교수

2000년부터 뉴욕타임즈의 논설위원으로 활동

뉴욕 시립대대학원 석좌

국제무역과 경제지리학에서 쌓은 공을 인정받아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금, 2018/12/2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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