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집] 2021년 보건의료노조 조합원 수기-코로나와 싸운 1년 우리들의 땀과 눈물
보건의료노조_조합원수기_20210707.pdf
보건의료노조는 2021년 상반기 “코로나19와 싸운 1년, 우리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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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가을 재선을 갈망하는 미국대통령 트럼프에게 그의 지난 4년 임기 중에 이룬 주요 성과가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그는 북경당국과 통상합의를 이룬 것이라고 크게 떠벌릴 것이다. 1월에 체결된 내용에 따르면, 중국은 상당한 액수의 미국제품을 수입하여 무역적자의 폭을 대폭 줄이고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트럼프 협상의 핵심사안은 중국이 미국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도입하여 미국 에너지 분야의 성장을 돕는 것이다.

트럼프가 떠벌리는 통상협상의 승리는 코로나 팬데믹과 충돌하면서 물거품이 되었는데, 무엇보다 극적으로 추락한 것은 에너지 분야에 관한 합의사항이다. 팬데믹으로 인하여 원유수요가 격감하고 가격이 추락하는 가운데, 중국이 약속한 에너지 수입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음이 분명해 지면서, 트럼프의 퉁상전략이 어리석은 것임이 드러나고 있다.
트럼프가 중국의 무역관행에 문제가 많은 것을 지적하며 대응한 것은 옳았으나, 미국행정부의 접근은 상식 밖이었으며 팬데믹 이후에는 의미가 없어졌다.
지난 협상과정을 다시 돌아보자. 양국은 지난 18개월 동안 힘든 무역전쟁을 치르면서 소위 트럼프 협상의 제1단계에 서명하였고 미국의 에너지에 대한 중국의 수입관세를 무력화시켰다. 협상의 핵심사항은 2017년을 기준으로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수입액수를 두 배로 늘려 2000억불을 수입하는 것이었고, 주로 4개 부문에 집중되었다. 그 중의 한 부문이 에너지에 관한 것으로 중국은 2020년에 190억불, 2021년에는 340억불을 추가로 수입하는 것을 약속하였는데 이는 2017년 기준으로 각각 240% 그리고 440%의 중가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는 1월에 서명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이미 비현실적인 것이었지만, 이에 대해 트럼프와 참모진들은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협상의 내용에 따르면, 오는 11월 대선 이후 결과에 따라 중국이 실제 구매행위를 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어찌되었거나 코로나-19의 상황은 협상을 재고할 구실을 가져다 주었다. 이제 트럼프의 협상은 확실하게 무효가 되었고 중국에게 약속의 이행을 강요할 방도가 없어졌다.
산술적 계산을 해보자. 협상 내용에 따르면 2020년 간에 중국은 매달 22억 달러의 에너지를 수입해야 한다. 그러나 전문기관의 보고에 따르면, 실제로는 지난 1월과 2월에 수입액이 전혀 없었고 3월 중에 겨우 320백만 불 정도 수입했다고 한다. 1/4분기의 목표량에 90%가 부족한 액수이다.
이런 형편없는 부족액수는 물론 놀랄 일이 아니다. 중국의 1/4분기 에너지 수요는 코로나-19로 인한 봉쇄조치와 경제활동의 중단으로 붕괴되었다. 동시에 세계적인 에너지 수요 격감으로 원유가격이 폭락하였고 이는 중국이 애초 약속한 목표 액수에 도달하려면 엄청난 에너지를 수입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협상의 발효시점이 2월 14일이었고 이에 따라 중국은 미국산 원유와 가스에 대한 관세를 3월 2일까지 여전히 부과하고 있었다. 이런 배경으로 트럼프가 떠벌렸던 협상은 실제로 무효화되었고 중국은 약속을 이행할 길이 없었다.
한편, 코로나-19로 인한 봉쇄만으로 중국이 에너지 구매약속을 거의 이행하지 않은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중국은 가격의 폭락을 활용하여 전력적인 비축량을 확대하려는 목적으로 지난 1/4분기 중에 사우디와 러시아 등에서 수입하는 원유량을 늘려 왔다.
더욱이 중국의 경제활동이 재개되고 가솔린 수요가 반등함에도 불구하고, 3월에 비하여 4월에 미국원유를 수입하려는 중국 유조선의 이동에 대한 예비적 데이터는 단순히 금액뿐만 아니라 절대 수량에서도 줄어들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향후 중국의 대미 에너지 수입이 증가한다 해도 합의된 목표에 이르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산술에 불과하다. 목표치를 채우려면 중국이 4월부터 12월까지 매달 290억불을 배럴당 30불(미국당국이 2020년에 적용한 평균기획 단가)에 수입해야 하는데 이는 매일 3백만 배럴을 수입해야 한다는 것이고 미국이 수출하는 원유의 전량에 해당한다. 다시 말하면 중국이 미국의 수출원유에 대한 마지막 한방울까지 수입해가야 한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이의 공급조차 가능하지도 않은 상태이다. 미국의 세일가스 산업이 붕괴되면서 미국의 원유 수출량이 올해부터 줄어들기 시작했고 내년에는 1/3 수준으로 축소될 전망이다.
한편에서는 설령 미국이 공급량을 댄다고 하더라도 중국 역시 매일 3백만 배럴을 수입할 수 없다. 현재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인 사우디에서 원유량을 전부 미국으로 돌린다 해도 이는 매일 1.8백만 배럴 수준에 머문다. 중국이 수입하는 모든 형태의 에너지, 즉 LNG, LPG 그리고 석탄을 다 대체한다 해도 원유 수입액의 일부만을 충당할 뿐이다. 중국이 수입하는 모든 에너지 포트폴리오portfolio를 미국으로 대체한다 하더라도 산술적으로 목표액을 다 채울 수는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전략 한계가 최근 몇 주간에 매우 분명해지면서, 심각한 타격을 입은 미국의 산유업체들과 종사자들을 구제하고자 돈줄을 마구 쏟아붓는 방식으로 지원하였다.
원유가격이 붕괴되면서 지난 2월부터 미국의 원유생산량은 최소 하루 1.5백만 배럴이 줄어들고 있다.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원유가격이 회복되지 않으면 원유생산업체의 40%가 파산에 이를 것이며, 22만 명이 실업자로 전락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재난상황에 직면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원유와 가스생산업체들을 지원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제안하면서, 생산을 중단하는 업체에게 지원금을 제공하고 연방준비제도를 통하여 대출금 한도를 높이고 전략적인 석유 비축량을 늘리며 수입원유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는 둥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결국 미행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차별적 조치는 사우디와 러시아를 한데 묵어 압박하면서 OPEC과 산유국들에게 역사상 가장 극적으로 산유량을 줄이는 것이다.
이상한 것은, 원유생산업계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미행정부의 관리들이 중국에게 무역협상의 의무를 이행하라는 압력에 대해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해당 업계는 원유가격의 인상과 기업에 대한 지원조치를 앞에 두고 의견이 갈라지고 있지만, 이들이 하나의 목소리로 동의하는 것은 중국이 미국의 에너지를 많이 수입할수록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팬데믹 상황은 중국의 에너지 수입약속을 공허하게 만들었으며, 트럼프의 통상전략은 실패한 것이 되었다.
만약 중국이 미국과 약속한대로 실제로 지난 몇 개월 사이에 원유와 가스를 수입해 갔다면, 미국의 해당업체들이 그들의 저장고조차 가득 채운 상태에서 미국 원유가격을 역사상 처음으로 부負의 가격수준으로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가 중국에게 강제로 원유를 수입하도록 요구할 수 없다면, 관련업체들은 기존협상의 시효에 지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중국과 새로운 구매계약을 맺어 최소한 LNG 수출이라도 붐을 일으키도록 제안하고 있다.
원유가격의 추락이 중국이 에너지 수입목표를 이행하지 못하는 핑계를 제공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트럼프의 통상전략의 한계로 일부 특정 분야의 구매를 약속으로 받아내는 방식인 것이다. 특정상품의 구매약속이 아니라, 무역장벽의 제거에 대한 제도적 작동, 중국의 부당한 산업정책에 대한 우려 해소, 지적 재산권과 환율 그리고 보조금 등에 대한 합의 등으로 접근했어야 한다. 이러한 주제들에 관하여 중국이 수년간 문제를 야기시켜 왔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제품만을 많이 구매하도록 협박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책이 결코 될 수 없다.
코로나-19 상황은 미국의 에너지 수입에 대한 중국의 약속을 물거품으로 만들었고, 트럼프는 통상전략에서 실패했다.
출처 : 포린 폴리시 Foreign Policy on 2020-05-22.
Jason Bordoff
콜롬비아 대학교수로 국제공공정책과 에너지 전략분야의 전문가이며, 오바마 시절에 국가안보회의 참모들의 교육담당과 대통령 자문역을 지냈다
이제 코로나 팬데믹은 제2의 단계로 접어들면서, 많은 국가들이 경제활동을 재개하고 거리두기에 대한 통제를 완화하거나 일부에서는 통제조차 거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일반적인 치료법이나 백신의 개발이 지연되면서, 정상 상태로 복귀하는 것은 현실보다는 희망사항으로 남아 있다. 더구나 좁은 범위이던 광역단위이던 또는 훨씬 확대된 대륙 또는 지구적 규모로 제2차 대유행이 발발할 위험이 존재한다.

첫번째 대유행으로 펜데믹이 지구를 덮친 현재, 정책결정권자와 의료관련 전문가들, 과학자들과 공공분야의 종사자들 모두 엄청난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따라서 두번째의 대유행이 발발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긴 하지만, 첫번의 감염 때보다는 잘 대응해 나갈 것이다.
모든 경제활동을 중단시키고 사회전반을 격리시키는 대신,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온라인 업무와 영상회의 등을 활용하여 봉쇄대상을 엄격히 제한하는 조치가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대유행의 진행 정도에 따라, 심한 경우에는 해당지역 내지는 광역단위의 봉쇄가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팬데믹의 첫번째 대유행에서 경험한 것처럼, 두번째 상황이 닥치면 세가지 위기가 동시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우선 지구적 규모로 감염이 확산되는 것을 막지 못하면,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경제와 사회적 어려움에 부담을 더하게 되면서 국제정치적 와해가 가속될 것이다. 국제적으로 경제가 깊은 불황 속으로 빠져들어가 회복이 쉽지 않게 되면서 미중 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 질 것이다.
특히 미국의 대선이 예정된 11월 이전의 몇 달 간이 중대한 고비가 될 것이다. 공공보건의 위기와 사회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국제정치적 격변이 상호 결합되면서 안정을 되찾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한가지는 바로 트럼프라는 변수이다. 만약 트럼프가 재선된다면 현재 겪는 지구적 혼란은 극적으로 더욱 혼란해질 것이고, 다행히 그의 경쟁자이자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던이 이긴다면 상황은 상대적으로 안정을 찾아갈 것이다. 미국의 대선이 갖는 비중이 국제적으로 현재보다 더욱 중요한 적은 없었다.
세계적 규모로 위기가 가중되어 가면서 이제 인류는 중대한 교차점(고비)를 맞이하고 있다고 해도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경제상황이 가혹한 불황 속으로 진입할 것인지 여부는 이번 겨울이 오기 전에 판명이 날것이고, 만약 예상된 불황이 닥친다면 이는 또 다른 충격을 던질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심리적으로나 실제적인 의미에서도 오로지 지속적인 성장에만 익숙해져 왔기 때문에, 이처럼 극적으로 경제가 위축되는 상황을 감당할 경험을 일찍이 갖지 못했다. 서구와 동아시아의 부유한 국가들이 이렇게 깊고 광범하며 끝이 보이는 않는 불황 아니 공황을 극복해 낼 수 있을까? 현재 완전한 붕괴를 방어하기 위해 충분하리만큼 수조 달러의 구제지원금을 풀고 있지만, 문제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님)에, 트럼프가 재선되고 팬데믹의 제2차 대유행이 지구 전체를 덮치고 각국의 경제적 이해가 서로 충돌하면서 동아시아의 냉전이 열전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기에 언급한 삼중의 위기는 새로운 시대를 촉발하면서, 개별국가 단위의 정치경제 시스템 그리고 현재의 다자간 국제기구가 재구성될 수도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과거의 구태의연한 체제가 다시 돌아 오지 않을 것이다. 과거는 과거대로 흘러간 것이고 이제 우리는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미리 결정해서는 안된다. 팬데믹이 불러온 위기는 너무나 깊고 넓게 퍼져서 세계적 규모로 권력power과 재력wealth의 급격한 재편을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미리 예비하여 필요한 에너지와 노하우를 비축하고 투자를 진행해온 사회는 승자가 될 것이고, 미래를 읽어내지 못한 사회는 패자로 전락할 것이다.
사실 팬데믹이 발발하기 오래 전부터, 디지털의 시대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기술과 과거의 주도적 산업들 그리고 권력과 재력 등 영역에서 전환transition이 광범위하게 진행되어 왔다. 이에 더하여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세계적 위기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후위기는 우리가 겪은 어떤 것보다 깊고 심각하며, 백신이라는 해법조차 없다.
때마침 코로나 팬데믹이 전환점으로 작동하고 있다. 지난 몇 세기 동안 우리는 주권국가라는 자기이해에 갇힌 정치경제의 시스템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막론하고 화석에너지에 의존해온 산업구조, 한정된 지구자원을 무절제하게 낭비한 소비행태 등에 의존하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급격히 한계를 드러내면서 어쩔 수 없이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과제는 삼중 위기의 첫번째 대유행으로부터 가능한 많은 것을 배우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 경제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미국에 비하여) 많이 뒤쳐져 있으나, 이제 명백한 약점을 보완하여 대응할 계기가 뜻하지 않은 기회로 다가온 것이다.
유럽 사회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민주주의, 법치, 사회적 평등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유럽자신과 넓게는 인류전체의 규범과 목적을 위하여 결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적인 노하우와 투자능력을 가지고 있다. 남는 유일한 문제는 유럽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2020 on 2020-06-28.
Joschka Fischer
1998-2005년 간 독일의 외무장관을 역임하였고 지난 20년간 둑일녹색당의 지도적 역할을 맡아 왔다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건드린 뇌관: 캘리포니아는 국가이고 싶어!
영국의 역사학자 제임스 브라이스(James Bryce: 1838~1922) 자작(子爵)은 1887년에 쓴 <미연방(The American Commonwealth)>에서, 캘리포니아는 “많은 측면에서 전체 연맹 중에서 가장 월등하고, 그 어떤 주 보다 세계에서 홀로 우둑 설 수 있는 위대한 나라의 성격을 지녔기에 내가 기꺼이 거주하고픈 주”라고 썼다.
그런 존재감과 자신감에 발로인지는 모르겠으나 코로나 19 이후 캘리포니아가 미심쩍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주지사인 뉴섬(Gavin Newsom)의 입에서 미합중국주의자라면 귀에 거슬릴만한 말이 자주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캘리포니아를 ‘주’(state)가 아닌 ‘국’(nation)이라고 입버릇처럼 되뇐다. 그의 표현으로는 ‘캘리포니아국’(California nation-state)이다. 원래부터 트럼프와 각을 세우고 있는 뉴섬 주지사가 코로나 이후 무능하고 무책임한 트럼프의 코로나 대처에 열불이 나서 트럼프에게 더 날을 세우려 그러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어쨌든 주지사가 저런 말을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에 많은 매체가 주목하고 있다. 이것이 부담스러웠는지 뉴섬 지사는 4월 13일 자신의 발언은 세계 5위의 경제와 미국의 20여개 주를 합한 수 보다 많은 인구를 지닌 캘리포니아의 “규모와 범위”를 감안해 한 발언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며 한 발 물러섰다.(“Is California a Nation-State?,” New York Times, April 14, 2020).
그러나 바로 그 규모와 범위에 있어 존재감을 갖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주지사가 한 발언이기에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만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게다가 이것을 필두로 해서 불길한 조짐들이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는 미국이기에 그렇다. 그 불길한 조짐이란 바로 분열이다. 미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의 분열된 모습이 현재의 미국이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미국을 ‘미분열국’(The Un-united States of America)로 부르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낀다.
이참에 갈라서자
2001년부터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스티브 로페즈(Steve Lopez)는 지난 4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제목의 칼럼을 썼다. “코로나로 한 가지 분명해 진 사실: 이참에 갈라서자”(“Column: The coronavirus pandemic has made one thing perfectly clear: It’s time to split the country,” Los Angeles Times, April 22, 2020). 글의 요지는 간단하다. 코로나사태가 터지고 미국이 민낯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아직 정신 못 차리는 지도자(트럼프를 가리킴)와 미국인들이 즐비하다. 그걸 계속해서 보는 것도 이젠 지긋지긋하다. 더는 못 버티겠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젠 때가 된 것 같다. 연방을 해체하고 각자 갈라서자. 50개 주를 성향에 따라 3개 또는 2개로 나누자. 3개의 국가로 나눈다면 다음과 같이 이름 지으면 될 것 같단다. ‘미국우선공화국’(The Republic of America First: 트럼프의 외교정책 노선 “미국우선주의”를 빗댄 것), ‘신과 총의 연방’(The Commonwealth of God and Guns: 보수주의자들을 지칭한 것), 나머지 하나는 ‘오합지졸연합피난처’(The Federated Sanctuary of Huddled Masses: 구심점 없는 진보주의자들을 일컬음)로 맨 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에 수도가 위치했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어쩌면 저렇게 이름을 그럴 듯하게 지었을까. 그러면서 당장 3개로 나누는 것이 어려우면 이른바 ‘레드스테이트’(공화당지지우세 주)와 ‘블루스테이트’(민주당지지우세 주)로라도 나뉘었으면 좋겠다며 이참에 확실히 이혼장에 도장을 찍자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변죽을 울리고 슬쩍 빠졌던 그 “캘리포니아국”를 아예 공식화하자며 칼럼을 맺는다. 미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해서 따로 살자는 것이다.

유력 매체의 사설이 저렇게 나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지금 미국이 정치적으로 완전히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할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이 패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에 대해서는 신물이 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예 ‘쿨’하게 갈라서자는 말이 나올 터.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마스크가 가른 미국 정치 지형
1768년, 필라델피아의 변호사이자 정치가였던 존 디킨슨(John Dickinson, 1732~1808)이 남긴 유명한 말이 바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by uniting we stand, by dividing we fall)이다. 그 뒤 독립운동의 웅변가인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 1736~1799)와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이 그 말을 인용해 유명한 연설을 한 뒤, 경구가 되다시피 한 저 문구는 250여년이 지난 지금 거꾸로 사용될 정도로 색이 바래버렸다. 왜냐하면 이제는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Divided we stand, united we fall)라는 말이 더 많이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지금 미국은 절망적으로 분열되었다. 물론 미국은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소위 ‘인종의 도가니’(melting pot)이니만큼 생각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정치색이 달라 서로 갈등하고 증오하고 싸우기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그 때마다 디킨슨이 남긴 저 말처럼 통합해서 위기의 고비를 넘기곤 하였다. 그러나 앞서 내가 여러 번 지적했다시피 이번엔 양상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어쨌든,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은 대선을 끼고 크게 3번의 거대한 분열의 양상을 보였다. 1860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은 노예제의 장래를 두고 싸웠다. 그것은 남북전쟁으로 이어졌다. 1932년 대선에서는 대공황의 대처방안을 놓고 진영간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1980년 대선에서는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을 두고 진영간의 심한 갈등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2020년 대선이다. 이번엔 무엇을 놓고 진영간 대립이 벌어지고 있을까? 힌트는 코로나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대번에 답을 댈 수 있었을 것이다. 답은 마스크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 앞서, 어떤 이들은 코로나 사태와 조지 플로이드로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나오는 걸 보면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진영 간의 극심한 대립)가 깨진 것 아니냐는 견해를 피력할 수도 있다. 미국의 정치매체 <더힐>이 그런 분석을 냈다. 전통적인 트럼프 지지층인 백인 가톨릭교도들의 지지가 지난 3월엔 60%였는데 코로나를 거치면서 37%로 떨어진 것을 두고 코로나가 혹시나 정치적 양극화라는 거대한 빙산에 금을 가게 했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Is the glacier of political polarization finally cracking?” The Hill, June 8, 2020). 그러나 내가 볼 때 이런 진단은 섣부른 것이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이렇다. 정치 진영 간의 골은 코로나 이전에도 이미 깊이 패어있었다. 즉 하루 이틀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과거에도 “확실히 갈라서자. 그게 우리가 사는 길!”이란 말이 계속해서 나왔던 게 저간의 미국의 사정이다.(“Divided We Stand: The country is hopelessly split. So why not make it official and break up?” New York Magazine, Nov. 14, 2018). 양쪽 진영끼리의 증오와 반목도 소외와 허탈을 느낄 정도로 극해 달해 있었다.(“Estranged in America: Both Sides Feel Lost and Left Out,” New York Times, Oct. 4, 2018).
물론 코로나로 트럼프 선호도가 약간 떨어진 듯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트럼프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45%로 정권 초기의 44%에 비하면 변함이 없다. 오히려 코로나가 더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보여주는 조사도 존재한다. 이번에 양쪽을 가르는 것은 마스크에 대한 것이다. 카이저재단(Kaiser Family Foundation)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5월 현재 민주당지지자 89%가 집밖에서 마스크를 착용했고 공화당지지는 58%만 착용했다.(“Trump’s mockery of wearing masks divides Republicans,” Washington Post, May 27, 2020; “Face masks now define a divided America and its politics,” The Global and Mail, May 28, 2020; “How face masks are dividing America,” The Telegraph, June 12, 2020; “Is the glacier of political polarization finally cracking?” The Hill, June 8, 2020).

어쨌든, 코로나 이전이든 이후든 분열된 정치적 지형은 더욱 공고화되고 있다. 내가 볼 때 이러한 갈등의 골은 시간이 갈수록 고조되면 됐지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 격화되고 있다.(“An Unprecedented Divide Between Red and Blue America,” The Atlantic, April 16, 2020). 이를 두고 여론조사기관 시빅사이언스(CivicScience)의 존 딕(John Dick)은 “정치적 종족주의”(political tribalism)가 미국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하며 “정치적 종족주의야말로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거의 다 예측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라고 분석한다(“Face masks now define a divided America and its politics,” The Global and Mail, May 28, 2020). 한 마디로 ‘정치적 종족주의’는 미국이 갈기갈기 찢어져 분열되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압축하는 용어인 것이다. 그러니 트럼프가 끝까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등장을 하고, 성공회 교회 앞에서 안에 들어가지도 않고 성경을 들고 사진 찍고 오는 장면을 대중에게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철저히 종족화 된 정치지형에서 자기 진영의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한 전략적 행위의 일환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남북전쟁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항의 시위가 남부연합을 역사에서 지우는 역사 전쟁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예제를 고수하려 했던 남부연합의 대통령과 장군들의 동상이 철거되거나 훼손되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다.(“Third Confederate statue toppled by protesters in Richmond in recent weeks,” Washington Post, June 17, 2020; “Confederate statues: In 2020, a renewed battle in America’s enduring Civil War,” Washington Post, June 12, 2020).
남부연합군의 깃발인 연합기도 퇴출될 운명에 놓여있다.(“Will the Black Lives Matter movement finally put an end to Confederate flags and statues?” USA Today, June 12, 2020). 미 해병대는 부대 내에서 연합기의 게양을 금지했다.(“U.S. Marine Corps Issues Ban on Confederate Battle Flags,” New York Times, June 6, 2020). 미 육군도 모든 부대 내에서 금지하는 명령을 발동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아울러 에스퍼 국방부 장관은 남북연합의 지도자 이름을 딴 미군기지 10 군데의 명칭을 변경할 용의가 있음을 시사했다.(“Army reverses course, will consider renaming bases named for Confederate leaders,” Politico, June 8, 2020).
이런 일이 지금도 벌어진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아직도 남북전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저렇게 남부 연합기가 사라지고, 남부연합군의 지도자와 병사들의 동상과 상징물들이 철거되고 훼손되는 것을 보면서 환호하는 이들도 있지만,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사람들도(이런 이들에게 요샛말로 ‘샤이’ 자를 붙여야하나? 물론 대놓고 불만을 표하는 KKK단 같은 극력백인우월주의자들도 있지만 말이다.) 적지 않게 있다. 그러니 연합기가 퇴출되고 동상들이 쓰러트려진다고 해서 미국인이 모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동화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이것은 그런 이들의 대표자인 트럼프가 에스퍼 국방부 장관이 미군 기지의 명칭 변경의사를 표명하기 무섭게 단박에 제동을 건 것을 보면 확실해 진다.(“Trump won’t rename Army posts that honor Confederates. Here’s why they’re named after traitors.” Washington Post, June 11, 2020; “Trump Might Go Down In History As The Last President of the Confederacy,” Washington Post, June 12, 2020).

심지어 현대 미국에서는 매우 보기 힘든 일도 벌어지고 있다. 시위대가 자치구(autonomous zone: 카즈‘CHAZ’라고 불림)를 선포한 곳도 있다. 워싱턴주 시애틀이다. 이들은 경찰을 몰아내고 경찰서를 점거한 뒤 현판을 “시애틀경찰서”(Seattle Police Dept.)에서 “시애틀민중서”(Seattle People Dept.)로 바꿨다. 사실상 무정부상태인 것은 맞지만 실질적으로 그 내부는 그렇게 무질서 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약간의 긴장감은 돌고 있지만 대체로 축제 분위기란다.(“Community, Not Anarchy, Inside Seattle’s Protest Zone,” Bloomberg, June 17, 2020; “Seattle’s newly police-free neighborhood, explained,” Vox, June 16, 2020). 분열의 끝에 이런 일종의 해방구까지 등장했고 해당지역의 주지사와 시장은 이들의 역성을 들고 있으니 실로 난세는 난세다.(“Trump claims ‘radical left’ has ‘taken over’ Seattle as he spends birthday at golf club,” The Guardian, June 14, 2020; “Capitol Hill Autonomous Zone becomes political flashpoint, as Durkan rebukes Trump’s message to ‘take back’ city,” Seattle Times, June 11, 2020).
분열 중인 미국
이런 분열은 단지 정치적, 인종적으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지역적으로도 일어나고 있다. 물론 이런 분열과 갈등은 코로나 이전부터 점증되고 있었다. 지금은 거의 임계점에 달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을 크게 공간적으로 나누어 볼 때, 레드스테이트와 블루스테이트로 분할해 볼 수 있다.(“An Unprecedented Divide Between Red and Blue America,” The Atlantic, April 16, 2020). 그런데 이런 지형적 분류는 솔직히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이다. 현재의 미국의 지역적 갈등 양상과 지형은 보다 더 복잡하다. 그리고 복잡성은 최근 수십여 년에 걸쳐 더욱 현저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적·지리적인 분열과 갈등의 양상은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파편화의 편재성이다. 분열과 갈등은 미국 전 지역에 고루 편재해 있다. 심지어 동일 지역 내에서조차 그러하다. 같은 주내에서도 농촌과 도시 지역간의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있다.(“Rural and Urban Americans, Equally Convinced the Rest of the Country Dislikes Them,” New York Times, May 22, 2018). 도시 외곽인 농촌지역 내에서도 지역 간에 양극화 현상이 보인다. 반목과 시기의 정서가 팽배하다.(“One County Thrives. The Next One Over Struggles. Economists Take Note,” New York Times, June 29, 2018). 또한 도시들 간에도 양극화가 진행 중에 있고(“In Superstar Cities, the Rich Get Richer, and They Get Amazon,” New York Times, Nov. 7, 2018), 같은 도시 내에서조차도 분열과 갈등은 고조되고 있다.(“As Bloomberg’s New York Prospered, Inequality Flourished Too,” New York Times, Nov. 9, 2019). 가히 홉스(Thomas Hobbes)가 말한 ‘만인 대 만인의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이란 유령이 미국을 집어 삼킨 것처럼 보일만큼, 그렇게 미국은 현재 분열 중이다.
둘째 특징은, 대체로 그런 분열이 정치색과 맞물리는 경향이 더욱 더 짙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농간의 분열을 보자. 도농간의 분열은 사실 과거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최근의 경향은 그 강도가 더 세며, 정치적으로도 훨씬 더 강한 동조화 현상을 보인다. <도표>를 보면, 농촌지역과 도시지역이 갈수록 각각 공화당과 민주당지지로 갈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농촌지역은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가 서로 엇비슷하게 엎치락뒤치락하다가 2008년 이후 공화당지지로 완전히 돌아섰음을 알 수 있다.(“Rural and Urban Americans, Equally Convinced the Rest of the Country Dislikes Them,” New York Times, May 22, 2018).

분열 뒤에 숨은 으스스한 그림자, 불평등
그렇다면 왜 미국에서 분열이 이렇게 극대화되고 극력해지는가? 나는 그 기저에 불평등의 심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미국은 앞서 언급했듯 여러 민족과 인종이 모여 사는 ‘도가니’다. 그만큼 이질적 사회다. 그런데 그런 이질적 요소를 통합시키는 뭔가가 반드시 있어야 서로 공존할 수 있다. 사회학자 파슨스(Talcott Parsons, 1902~1979)는 이것을 “가치의 일반화”(value generalization)라고 말했다. 그것은 상이한 여러 가치들을 뭉뚱그리고 한데 아우르는 상위의 가치를 말한다. 예를 들면, 인종과 성별 보다는 인간이라는 개념을 더 우위에 두는 가치를 말한다.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미국에서 한국계, 일본계, 독일계 등의 다양한 민족적 배경의 범주가 있다. 그러나 그것 보다는 뉴욕커(뉴욕시민), 보스터니언(보스턴시민)이 더 상위의 범주와 개념이다. 그리고 이들을 다 아우르는 일반화된 가치를 지닌 포괄적 개념과 범주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미국시민이다. 미국인들은 이 포괄적이고 일반화된 개념으로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자기의 민족적 배경은 희생하고서 말이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이 각자의 민족적 뿌리를 고집하지 않고 희생하면서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바로 ‘아메리칸드림’이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희생해 봐야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미국인들에게 팽배하다. 그 명확한 증거가 바로 극심한 불평등이다. 그러니 통합과는 거리가 먼 분열된 미국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상위 1%(제국)에게만 가능한 아메리칸드림. 나머지는 아메리칸드림이 뭔지 모르는 비참한 상태에 놓인 것이 바로 분열의 주된 동력이다. 그러니 그 애지중지 간직하고 자랑스러워하던 미국시민임을 내팽개쳐버려도 상관없다는 듯 미국을 해체하고 각자 갈라서자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실로 격세지감이다.

향후 관전 포인트
여기서 주의할 점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상식과는 달리 어떤 사람이 처한 위치와 정치적 선호의 대칭이 안 맞을 수 있다. 말하자면, 잘 사는 이가 보수, 못 사는 이가 진보, 이런 식이 아니라 거꾸로 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마치 우리나라의 강남좌파가 있고 오히려 저소득층에서 보수성향인 사람이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단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열의 양상, 반목과 갈등의 고조, 불만과 좌절의 급증은 불평등의 심화와 궤를 같이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불평등의 원인이 모두 상대편 진영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에 그 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그릇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분명히 인식해야할 필요가 있다.
둘째, 분열 뒤에 따를 전쟁 발발 가능성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집단 내에서 갈등이 고조될 때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는 전쟁이다. 내부 또는 외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다. 미국은 과거 남북전쟁이라는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치룬 전력이 있다. 이번에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극심한 분열의 최후 승리자는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분열의 당사자들은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모두 처절한 피해자가 될 뿐이다. 그럼 일반 대중(국민)들이 서로 분열하면서 반목하고 증오하며 갈등하는 사이 그 뒤에서 웃을 이들은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그들이 극심한 불평등을 유발한 자들이며, 이러한 분열(단순한 시위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을 뒤에서 교묘히 기획, 조정, 부추기는 자들이라고 추정한다. 그들은 겉으론 이런 모든 일에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자신들에게 돌아올 화살을 저런 분열을 통해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리곤 자신들의 탐욕을 마음껏 충족한다. 나는 그들을 제국이라 부른다. 그들의 철칙이 있다. 이름하여, 분할통치(divide and rule)!
그런 제국엔 월가가 우두머리로 군림한다. 그런 월가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는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을 소개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6월 8일자 사설의 제목은 “적들은 미국을 약하고 분열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다. 작금의 시위는 미국이 지속하는 강점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 준다”였다.(“Enemies See a Weak and Divided U.S.: But they’re wrong. The protests showed some of America’s enduring strengths.” Wall Street Journal, June 8, 2020). 미국의 시위를 그저 고질적인 인종차별의 문제로만 축소 왜곡하며 동시에 장점으로 추겨 세우고, 적에 대한 경고도 날리는 애국으로 살짝 분칠을 한 이 사설. 나는 여기서 제국들이 현재 미국의 분열을 관망하는 태도를 본다. 이것은 그야말로 무책임한 유체이탈화법의 태도다. 미국이 이 지경이 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주범과 그 하수인들이 자신들은 아무 상관없는 양 유체이탈화법을 쓰고 있는데서 나는 그들의 간악무도함을 본다. 그 말할 수 없는 가증스러움을….
참고자료
“As Bloomberg’s New York Prospered, Inequality Flourished Too,” New York Times, Nov. 9, 2019.
“The Seattle Secessionists,” Wall Street Journal, June 11, 2020.
“Community, Not Anarchy, Inside Seattle’s Protest Zone,” Bloomberg, June 17, 2020.
“Seattle’s newly police-free neighborhood, explained,” Vox, June 16, 2020.
“U.S. Marine Corps Issues Ban on Confederate Battle Flags,” New York Times, June 6, 2020.
“Trump’s mockery of wearing masks divides Republicans,” Washington Post, May 27, 2020.
“Is the glacier of political polarization finally cracking?” The Hill, June 8, 2020.
“Is California a Nation-State?,” New York Times, April 14, 2020.
“George Washington Statue Vandalized in Chicago’s Washington Park,” NBC5ChicagoNews, June 14, 2020.
“Face masks now define a divided America and its politics,” The Global and Mail, May 28, 2020.
“How face masks are dividing America,” The Telegraph, June 12, 2020.
“An Unprecedented Divide Between Red and Blue America,” The Atlantic, April 16, 2020.
“Trump Might Go Down In History As The Last President of the Confederacy,” Washington Post, June 12, 2020.
“Across the Wide, Growing American Divide,” National Review, May 21, 2020.
“Estranged in America: Both Sides Feel Lost and Left Out,” New York Times, Oct. 4, 2018.
“In Superstar Cities, the Rich Get Richer, and They Get Amazon,” New York Times, Nov. 7, 2018.
“Watch 4 Decades of Inequality Drive American Cities Apart,” New York Times, Dec. 2, 2019.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역혁신을 실현하는 기초자치단체장의 정책모임인 목민관클럽 제10차 정기포럼이 지난 2일 경기 여주에서 열렸습니다. 목민관클럽 정기포럼은 전국 각지의 단체장, 공무원,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이지만, 지난 4월 포럼 때와 마찬가지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에 따른 여파로 인해 화상회의를 활용한 디지털 포럼으로 대체해 진행됐습니다.
이날 포럼에서는 코로나19가 장기화 국면으로 이어지며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만큼 ‘포스트 코로나19-뉴노멀 시대 전망과 새로운기회’를 주제로 다양한 분야의 정책적 과제가 무엇인지 살폈습니다.
‘경제와 일자리’(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지방재정’(김홍환 한국지방세연구원 박사), ‘대응과 기회’(임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선임연구위원)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포럼에서 나눴던 내용을 간략히 추려서 전합니다.
배규식 원장이 전하는 ‘포스트 코로나19 경제와 일자리 전망’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전 세계의 경제성장률은 역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아무리 선전하더라도 2019년 경제성장률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지난 5월 국내 고용 동향 자료를 보면 취업자 수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019년 11월부터 2020년 2월까지의 평균과 전년 동월 대비한 취업자 수를 비교하면 87만 명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고, 일시휴직자 수는 58만 명 증가, 비경제활동인구도 55.5만 명으로 거의 200만 개의 일자리가 감소해 근본적 대책이 요구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한국뿐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모두 고용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고용 위기대응에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고용 안전망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등 비임금 노동자와 고용보험적용을 받지 않는 특수고용 노동자가 30.4%, 임금노동자 중 고용보험 미가입자가 13.8%로 44.2%가 고용안전망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노동시장의 불안정성과 취약성은 실업자가 되었을 땐 생계의 위험에 빠지므로, 실업자들을 위한 지원과 제도를 사각지대가 없도록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배 원장은 ‘한국형 뉴딜’ 정책을 보완하고, 사회적 타협을 이뤄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김홍환 박사가 전하는 ‘코로나19, 지방재정 영향과 대응’
현재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백신 개발이 난항을 겪고 있고, 세계적으로 거시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큽니다. 각국은 금융통화 양적 완화 중심으로 돈을 푸는 정책을 벌이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전 국민 대상으로 긴급생활지원금을 지급했고, 지자체별 선별적으로 지원금을 주고 있습니다.
김 박사는 이러한 상황에 놓인 중앙정부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대규모 3차 추경에 따른 국채를 발행하면서 국가재정의 부담요소가 발생하고 있으며, 국세 수입 감소로 인해 지방교부세 감소가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당장 지방정부의 지방세 감소는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지만 장기적으로 세수 감수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따라 지역적 특수성을 고려한 소상공인, 농어어업인 등 지원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더불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신용위기가 아니라 실업증가 등으로 인해 소비가 이뤄지지 않는 실물경제 위기를 겪고 있기에 직접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김 박사는 향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기에 지방정부에서 계획한 복지, 문화, 체육, 관광 분야의 소규모 시설건립사업의 세출을 구조정하고, 제도적으로는 지방재정의 적극적 위기 대응을 위해 지방채를 발행하는 조건을 완화하는 게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임현 선임연구위원이 전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전망과 새로운 기회’
임 연구위원은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사회로 전환되는 게 가장 중요한 변화이며 기회라고 꼽았습니다. 그 중 원격 의료 및 원격 교육 등 디지털 기술이 산업에 적용되는 속도도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의료시스템은 치료 중심에서 병력 관리 중심으로 변화하고, 이에 따라 건강 데이터의 수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임 연구위원은 의료시스템의 디지털 전환이 확산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예컨대 △디지털 치료제 △ AI 기반 질병진단기술 △실시간 생체정보 측정 분석기술 △감염병 확산 예측 조기경보 기술 △ RNA 바이러스 백신 등의 기술이 각광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밖에 교육 분야는 실감형 교육을 위한 △ 가상혼합 기술 △ AI 빅데이터 기반 맞춤형 학습기술 △온라인 수업을 위한 통신 기술 등이 요구되며, 개인 맞춤형 온라인 교육도 부각된다고 봤습니다.
전세계적인 펜데믹으로 확산된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방역과 함께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경제사회적 피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목민관클럽에서는 경제위기상황에서 고용유지방안과 지방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서 코로나19 극복과정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적극 준비하기 위하여 미래유망기술 동향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전 세계적인 펜데믹속에서도 높은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을 잘 방어하고 있는 것처럼, 경제위기도 지방정부의 혁신적인 노력으로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 속기 및 사진: 자치분권센터
– 정리: 미디어센터
국제정치의 전문가와 외교관 그리고 분석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미국이 코로나 팬데믹과 싸움에서 국제사회를 방치하고 지도국가로서 역할을 포기하면서 세계무대에서 뒷걸음치고 있다고 평가한다.

전통적으로 국제적 위기에 대한 협력을 논의하는 테이블을 주도하던 미국이, 이번에는, 코로나에 대응하는 백신의 개발에 대한 협력을 논의하기 위하여 WHO(세계보건기구)와 유럽이 주관한 국제영상회의에 참석을 거부했다.
전직 대통령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위협적인 팬데믹 상황을 정치무기화하여 동맹국가들을 소외시키고 중국을 몰아 부치면서, 다른 나라들이 미국 편에 가담하기를 강요하는 위험한 짓을 벌리고 있다고 경고를 보낸다.
창궐하는 팬데믹에 국제적인 대응과 협력을 조직해야 하는 적격의 국제조직인 WHO에 대한 분담금을 거부하면서, 미행정부는 국제보건 전문가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지난 6월 19일 전염병 대유행으로 황폐화되고 있는 지구촌을 집단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모든 국제적인 분쟁과 전투를 중단하자는 취지 하에 열린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미국은 이의 제안을 거부하였다. 미국은 구체적으로 WHO를 거명하고 지적하는 대신에 유엔의 “전문적인 보건기구 specialized health agencies”라는 표현으로 일체의 타협을 거부했다고 참석한 외교관들이 밝혔다.
미국은 G7과 G20의 회의에서도 중국과 WHO에 대한 비난을 근거로 유사한 제안을 거부했다.
과거의 미국은 이러한 모임과 회의에서 주도하는 목소리를 내었던 반면에, 현직 트럼프 대통령의 상기와 같은 입장에 대해 아시아 태평양과 유럽을 대표하는 참석자들은 반신반의와 호기심과 슬픔을 동시에 공유하면서, 미국의 대외적 이미지가 크게 손상당하고 있다고 증언한다.
미국 담당자들은 이에 대하여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하여 상당한 자금을 대고 있으며 트럼프가 세계지도자들과 50회가 넘는 통화를 진행하면서 주요 7개국 그룹들과 당자간의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떠벌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온전한 국제적 협력이 없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오히려 대응과정을 지연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전세계의 확진자가 4백만 명을 넘어서자, 국제사회의 외교관들은 과거 전염병에 대해서 미국 지도력이 보여준 사례, 즉 에볼라에 대응한 오바마 대통령 시절과 HIV/AIDS에 대해 보여준 부시 대통령의 역할을 언급하면서, 미국의 확고한 지도력을 기대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미국에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미국이 개발국가들을 포함하여 여러 나라들과 많은 일들을 양자간의 방식으로 훌륭히 해온 것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많은 나라들은 환호를 보냈다. 현재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점(pivotal moment)이며, 국제사회는 미국은 이러한 시점마다 주요한 역할을 맡아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유럽의 외교관들은 이야기한다.
비판을 하는 측은 ‘트럼프 행정부가 팬데믹과 대처하는 과정에 집중하지 않고, 오히려 불확실성만 증가시키면서 미국에 대한 존경심을 사라지게 만들고 국제적인 협력체제가 더 이상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는 지금 국제적인 지도력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는 말 그대로 지구촌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입니다. 강대국의 지도자들이 나서서 건설적 방식으로 협력하고 대응체제를 구축해야 할 때입니다” 라고 영국의 싱크탱크에서 국제보건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는 Robert Yates는 주장한다 “국제적 노력을 조정하는 미국의 주도적 역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만, 현재는 이것이 완전하게 결여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국제보건의 책임자들은 팬데믹이 한창 진행중인 가운데 WHO에 대한 분담금을 거부한 것에 대하여 ‘숨을 순간적으로 멈추게 하는 일 – absolutely breathtaking’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Yates는 ‘협력의 부재보다 악질적인 파괴적 행위’라고 첨언한다.
국무부의 고위관리는 출입기자들에게 ‘대통령이 WHO를 신뢰하지 않으며 트럼프는 WHO가 중국 편을 들고 있다고 비난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들 공직자들은 미국이 세계에서 보건과 인도적 활동을 가장 크게 지원하는 국가라는 것을 재차 강조하면서 G7의 의장으로서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는 팬데믹과 전투에서 국제적인 협력을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영리단체인 ONE Campaign의 회장인 Gayle Smith는 미국이 주도한다는 국제적 대응기구가 작동조차 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대체로 그녀는 다음과 같은 사항에 주목한다 “우리는 정상회담에서도, 유엔안보리에서도, 주요 국가들의 책임자들 모임에서도 어떻게 조직하고 어떤 방식으로 관리해야 하고 국제적으로 필요한 물자를 어떻게 공급해야 하는 것 등 논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지구촌의 대부분 같은 물자를 기다리고 있다. 세계경제가 이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공급해 준다는 것을 어떻게 자신할 수 있을까?”라고 전직 국제개발처의 국장이었던 Smith는 질문을 던지면서 “미국이 세계를 다차원에서 움직이는 별도의 노력에 경주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심정을 털어 놓는다
미국의 공직자들은 트럼프가 G7의 장관들이 서로 협력하도록 정기적인 화상회의를 주관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백악관은 백신을 개발하고자 하는 국제회의를 거부하고 해당 전문가들을 방치해 놓고 있다.
WHO가 주관하기도 하고 40여 국가가 참여하는 별도의 회의와 여러 기구들이 모여서 백신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80억 불을 조성하기로 결의했고 효과적인 개발이 확인되는 대로 전세계 가능한 모든 국가들이 생산하도록 약속을 확인했는데, 정작 미국이 모임에 불참한 것이다.
이는 “미국에게 대단히 대단히 불행한 사건으로, 미국은 전통적으로 지도적 역할을 해왔다. 해당모임은 백신과 치료법의 개발을 촉진시키려는 것이고 백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며, 당연히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협력의 기반에 함께 해야만 했다”고 Smith는 탄식한다.
국제전략연구소의 국제보건정책 책임자인 Stephen Morrison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가장 재무적 역량이 크고 개발시스템도 제일 잘 갖추었고 이해관계가 깊은 나라가 미국인 만큼, 상기 모임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미친 짓이고 일을 망치려는 것이다.”
백신개발회의에 미국이 불참한 것에 대하여 계속적인 질문이 쏟아지자, 국무부 해당 담당자는 코로나와 싸우는데 미국은 엄청난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더니, 다음 날에는 미국이 이미 별도의 백신국제연맹과 같은 조직과 일하면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성명과 함께, 언급된 백신개발모임은 미국의 노력에 보조적인 역할 정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추가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미국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국제적 싸움에 진전을 보이고 있으며, 중국과 WHO의 역할에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 동맹과 협력자로 동조하는 나라들을 평가하고자 한다.”
미국이 중국을 동맹으로부터 분리시키려 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이를 백악관이 대선의 해에 팬데믹을 잘못 대응한 것에 대한 비난으로부터 트럼프를 보호하며 동맹들에게 미중 간의 선택을 요구하는 정치적 행위로 간주한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증거를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바이러스가 중국의 연구소에서 시작되었다는 정보를 계속적으로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독일의 외교관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이 걱정스럽다. 폼페이오의 주장은 대선 캠페인의 일부임이 분명하다.”
프랑스의 외교관은 퉁명스럽게 답했다 “프랑스는 중국과 등을 돌릴 수 없다. 중국은 매우 중요한 파트너이며 누구도 이를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중국과 파트너-쉽을 유지해야만 한다.”
유럽의 외교관은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 많은 국가들간에 현재 같은 상황에서 지구적으로 번져가는 팬데믹과 싸우기 위해 엄청난 협력이 요구되며….. 중국은 협력의 핵심적 국가이고 WHO도 깊이 관여해야 한다….. 누구도 협력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에 이를 방해하려 한다면, 모두를 화나게 하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의 행동은 이미 많은 국제관계자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이들 전문가 집단은 어려운 시기에 미국이 지도적 힘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사라지고 있는데 이는 트럼프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TV인터뷰 내용, 즉 Yates가 황당무계하다고 지적한 것과 깊이 관련된다고 이야기한다.
일부 목격자들은 트럼프가 코로나를 예방하기 위해 소독제 주사를 맞으라고 제안하는 것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런 위험한 발상에 대하여 전세계 보건당국자들은 즉각적으로 부인하고 나섰고, 호주의 보건행정 책임자는 카메라 앞에서 공개적으로 비웃기도 하였다.
프랑스 파리에 소재한 국제관계 연구소의 책임자는 유럽인들은 팬데믹에 대응하는 트럼프의 모습을 재미있어 한다면서 그의 행동을 공상소설보다 괴이한 것이라고 평했다.
그는 우리에게 즐거움(황당함)과 슬픔을 뒤섞어 제공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대통령에서 기대해선 안되는 내용들이다 라고 프랑스 언론인이 평했다. “트럼프를 바라보고 있으면, 일단은 매우 흥미롭다(우스꽝스럽다). 그러나 결코 즐거운 일은 아니다.”
출처 : CNN Report on 2020-06-25.
CNN Report
전 세계에서는 포스트 코로나(Post COVID-19) 시대를 앞두고 다양한 분야의 역할과 변화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유럽 전 지역의 400개가 넘는 리빙랩이 모인 국제적 연합체인 유럽리빙랩네트워크(European Network of Living Lab,이하 ENoLL)는 지난 4월부터 코로나19(COVID-19: Current actions preparing our digital societies for a post-COVID future)와 관련해 연속적으로 웨비나(자세히 보기)를 열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ENoLL의 혁신 파트너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ENoLL은 지난 7월 14일 ‘유럽의 중소기업과 포스트 코로나19의 디지털 사회를 위한 오픈 혁신’이라는 주제로 마지막 코로나 웨비나를 열었습니다. 페르난도 발라리뇨 ENoLL 회장이 코로나19 이후 유럽의 경제 전망에 관해 발표했고, 이후 유럽의 중소기업 사례를 나눴습니다.
EU 경기침체, 코로나19로 인해 악화될 것
페르난도 회장은 유럽위원회가 지난 2월과 7월에 발표한 각 경제 전망을 비교하며, 경제 불황의 심각성을 언급했습니다. 불과 다섯 달 전만 해도, 유럽 내 채용 시장에 큰 변화가 없었고, 2021년에는 임금 인상도 유지된다고 내다봤으나, 지난 7월 7일 앞선 전망을 뒤엎고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페르난도 회장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침체에 관한 대응과 준비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효과적이고 긍정적인 변화를 어떻게 도모해야 할까요. ‘공동창조(Co-Creation)’, ‘리빙랩 접근법(approach)’으로 코로나19의 위기를 완화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사례들이 제안됐습니다.
임팩트허브: 코로나19를 이기는 글로벌 네트워크
첫 번째 사례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라마 에이전시(LAMA Agency) 입니다. 라마 에이전시는 변화 매니지먼트를 이끄는 곳이자,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해 국제적인 전문가와 기술자들을 잇는 협력 플랫폼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라마 에이전시는 주요 플랫폼인 임팩트허브를 설립했습니다. 임팩트 허브는 코워킹 스페이스로 현재 150명의 멤버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네트워크의 역할로 다양한 유럽 도시들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임팩트허브 역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임팩트허브의 공간 대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도시봉쇄 조치가 취해지자마자 문을 닫아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라마 에이전시는 임팩트허브의 멤버들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거리두기’를 통해 이어나갔습니다.
예를 들어 각 멤버들의 활동을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에 관해선 온라인을 통한 지원을 제공했고, 임팩트허브가 제공하는 긴급 서비스를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 관해서는 웨비나를 통해 정보를 전하는 등 원격 방식으로 멤버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도시 봉쇄 조치가 완화되고, 임팩트허브가 다시 공간을 열었을 때 멤버 전원이 공간을 사용하도록 허용하기보다 공간 이용에 적절한 인원을 수용하되, 글로벌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두며 실용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밈: 위기를 극복하고 서로 상생하는 공간
라마 에이전시는 지난 2019년 폐공장인 ‘매니패츄라 타바키(Manifattura Tabacchi)’를 리빙랩 방식으로 밈(MIM – Made In Manifattura)이라는 공간으로 탈바꿈해 지역 내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원래 담배 공장이었지만, 지난 20년간 폐쇄된 상태였지만, 밈으로 재탄생한 이 공간과 주위는 패션, 미술, 디자인 등으로 활기가 가득합니다. 앞으로는 학교, 아틀리에, 실험실, 코워킹스페이스, 맥주공간까지 다양한 시설로 채워질 예정입니다.
라마 에이전시는 코로나19로 인해 도시봉쇄조치가 내려진 기간 동안 소셜 디스트릭트(Social District)라는 TF를 구성해 코로나19를 대처하도록 지역단위의 초소형 기업(Micro business)을 지원했습니다. TF는 기본적으로 화상 플랫폼을 사용했고, 이웃 기업과 공고한 연결을 이어갔습니다.
도시봉쇄조치가 완화된 후 다시 공간을 연 매니패츄라 타바키는 완전히 바뀐 모델이 적용된 곳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모든 공간은 실내공간 대신 오픈된 야외공간으로 바뀌었고, 여름에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나무로 둘러쌓인 공간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해당 공간에는 테크니컬 설치작품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지면에 그림을 그린 단순한 작품이지만, 이곳은 시민에게 의미있는 공공장소가 되었습니다. 방문하는 시민 모두 자유롭게 개인 작업을 하거나, 원하는 대로 마음껏 공간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T-FACTOR: 공간의 재정의, 도시재생의 핵심
T-FACTOR는 사회혁신을 지닌 활기찬 도시 거점을 만들어내는 도시재생 프로젝트입니다. T-FACTOR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문화적인 혹은 창조적인 협업, 폭넓은 참여를 어떻게 만들어낼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현재 T-FACTOR 프로젝트는 영국 런던, 스페인 빌바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유럽의 다양한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에서 도시재생은 ‘일시적인 이용’을 통해 시민의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지역 내 의료시스템에 대한 지원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이처럼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네트워크, 리빙랩, 도시재생 등의 방식은 침체된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고 회복의 동력을 제공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 글·정리: 정보라 경영지원실 연구원 [email protected]
전 세계에서는 포스트 코로나(Post COVID-19) 시대를 앞두고 다양한 분야의 역할과 변화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유럽 전 지역의 400개가 넘는 리빙랩이 모인 국제적 연합체인 유럽리빙랩네트워크(European Network of Living Lab,이하 ENoLL)는 지난 4월부터 코로나19(COVID-19: Current actions preparing our digital societies for a post-COVID future)와 관련해 연속적으로 웨비나(자세히 보기)를 열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ENoLL의 혁신 파트너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ENoLL은 지난 7월 14일 ‘유럽의 중소기업과 포스트 코로나19의 디지털 사회를 위한 오픈 혁신’이라는 주제로 마지막 코로나19 웨비나를 열었습니다. 페르난도 발라리뇨 ENoLL 회장이 코로나19 이후 유럽의 경제 전망에 관해 발표했고, 이후 유럽의 중소기업 사례를 나눴습니다. 지난 중소기업 1편에 이어 중소기업 2편에서는 디지털 미식랩에 관한 내용을 전합니다.
포스트 코로나19의 디지털 미식(美食)
발제자로 나선 호세 펠라즈는 사용자 중심 디자인 전문가로, LABe에서 디지털 미식랩(Digital Gastronomy Lab)을 이끌고 있습니다. LABe의디지털 미식랩은 미래 미식(美食), 즉 요리법 분야의 디지털 전환과 혁신을 실험하는 곳입니다.
LABe는 함께 창조하고, 실험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미식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미식 생태계는 리빙랩, 스타트업과 기업을 이어주는 허브, 미식계에서 주요한 인물들과 함께 협력도 할 수 있는 환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미식랩의 중심축, 열린 혁신과 사용자 중심 디자인
LABe는 열린 혁신과 사용자 중심 디자인, 두 축의 미션을 중심으로 혁신 방법론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미식의 기술적 발전과 제품•서비스•경험•비즈니스모델 혁신을 결합하는 이상적인 문화를 지향하고 있는데요. 위 미션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열린 혁신은 그야말로 다양한 관계를 중심으로 한 실험입니다. 기업·사람·기관 간 교류와 협력을 기반한 혁신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움직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통해 시너지가 생기고, 정보와 아이디어의 흐름도 활발해집니다. 여기서 LABe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착수하기 위해 수집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은 문제점과 해결책을 찾는 과정의 중심에 사람을 고려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사용자가 겪는 경험이나 불편함에 공감하며, 실제 사용자들이 원하는 욕구를 찾으며 그 이유를 찾아가는 데 도움을 줍니다.
LABe는 두 축의 미션을 바탕으로 열린 공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공동 작업 공간: 서른 명 안팎을 수용할 수 있는 사무실 공간으로 다양한 사람과 함께 일하는 공간입니다. 이 공간에서는 커피를 마시거나, 회의하거나, 전화하거나, 자체적으로 프로토타입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 프로토타입 공간 및 주방: 공동 작업 공간에서 도출된 여러 아이디어가 있다면 바로 실험할 수 있도록 장비가 갖춰진 공간입니다. 아이디어를 시도하고, 현실에 적용 가능한 지를 테스트해볼 수 있습니다.
■ 테스트를 위한 요리공간: 요리, 제품, 서비스, 경험을 사람들에게 선보여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자신이 실험하고 있는 레스토랑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까다로운 사용자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 실험실: 일종의 다감각을 이용해 맛을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다이닝룸입니다. 306도 테이블로 구성된 10인용 전용 식당에서는 공간에 투사된 영상, 아로마 향, 요리까지 한꺼번에 다중감각 미식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오픈쇼: 미식 분야의 전문가, 셰프, 투자자 및 기타 사업가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어떻게 프로젝트를 만들어갈 지 지식을 교환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LABe는 여러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워크숍을 열고, 동료에게 조언을 구하는 등 프로젝트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다만, LABe도 코로나19의 여파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서로 만나며 교류하는 공간을 당분간 사용할 수 없었지만, 원격 화상 모임으로 코로나19 이전의 프로세스를 그대로 구현했습니다. 예컨대 오픈 워크숍 ‘미로(Miro)’를 활용해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실험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피드백을 수렴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NoLL 코로나19 웨비나 연재를 마치며
희망제작소는 지난 4월부터 정기적으로 개최된 ENoLL의 코로나 웨비나 내용을 총 7회에 걸쳐 간추려 전했습니다. ENoLL 코로나 웨비나에서는 의료, 교육, 기업 분야의 리빙랩 사례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해 불가피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생각 거리를 나눴습니다.
더불어 위기에 적응하는 데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시대적 변화에 따라 가치를 재정의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줬습니다.
[연재①] 코로나19 웨비나 갈리시아 의료리빙랩
[연재②] 코로나19 웨비나 EIT 의료리빙랩
[연재③] 코로나19 웨비나-호주 의료리빙랩
[연재④] 참여 리더십 발휘하는 스페인 미디어랩
[연재⑤] 코로나19, 온라인 학습으로의 도약
[연재⑥] 코로나19와 유럽의 중소기업
[연재⑦] 열린 혁신 추구하는 미식랩
유럽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리빙랩’ 플랫폼은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함께 머리를 맞대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책을 탐색하며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데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이 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글/정리: 정보라 미디어센터 연구원 [email protected]
코로나-19는 한국경제와 노동시장을 여지없이 강타하였다. 노동자들은 일자리 기회를 잃어버리면서 크게 타격을 받았는데, 특별히 제조업과 서비스 관련분야에서 한국의 요소시장들이 심각하게 파열음을 내고 있다. 해당 부문에서 대규모의 실직이 발생하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기술과 경력에 맞는 새로운 직업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3월 한달 동안에 여러 사업체들이 문을 닫으면서 160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시적으로 휴직 또는 실직 상태에 빠졌다. 4월에도 추가로 47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83만 명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이 실직상태 또는 임시직 상태에 빠지면서 실업률이 4.9%에 이르렀다. 한편에서는 수백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원하지 않는 자리로 이동하거나 임금이 깎이지 않으면 동결되는 처지에 몰렸다.
대학을 막 졸업한 청년들과 경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신규 일자리가 줄어들고 대부분의 기업들은 현재의 정규직 종업원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어 하고 있으며, 임시직 일자리도 예년에 비하여 반으로 줄어든 상황이 되었다. 청년실업율이 9.3%로 높아졌고, 일자리를 구했다 하더라도 이의 17.3%가 불안정한 임시직(precarious jobs)이다.
적정한(좋은-decent) 일자리에 접근하기에는 구조적인 장애가 조성되어 있어, 여성과 청년들이 노동시장에서 재취업하는 일은 일종의 도전에 해당한다. 일단 열악한 조건으로 취업하면 잠재적인 노동능력이 약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장기간 어려운 상황을 견디어 내야만 한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전체를 관통하며 경제적 지위가 양분되어 간다.
이러한 조건의 한국사회에 팬데믹이 겹치면서, 구조적인 결함과 취약점이 드러나고 상위(primary) 부문과 하위(secondary) 부문의 이중구조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상위 부문은 소위 재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거대기업 집단과 이들과 거래관계를 형성하는 제조업 등 산업 분야의 계열사들로 구성된다. 이들 집단은 코로나-19의 충격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데, 풍부한 자금 여력과 중층적 소유구조 그리고 오랫동안 형성되어온 정부와 특수한 관계에서 보호받고 있다. 이들이 어려움에 빠지면 정부는 곧바로 예외적인 구제정책을 펼친다.
하위 부문은 중소규모(SMEs)의 기업들과 소위 자영업의 상인들로 차고 넘친다. 이들은 주로 소매업을 중심으로 하는 소비시장과 재벌에 종속된 하청분야에 머물고 있다. 이들 중소기업들은 제품의 품질에 의존하기보다는 생존조건 수준의 격심한 경쟁에 빠져 있기 때문에, 시장변동에 따른 혁신 또는 새로운 분야로 전업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매년 인상되는 최저임금을 따라가기도 버겁다. 이들은 시장의 사정에 매달려 그저 생존하고(at mercy) 있는 것이다.
상위 부문에 일하는 노동자는 불황이라는 폭풍우가 몰아쳐도 상대적으로 타격을 입지 않은 채 일자리를 지켜낼 수 있는 반면에, 하위부문의 노동자 상당수는 수개월내에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이러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여러 가지 중층적 요인으로 유지되는데, 예건데 비합리적이며 일관성도 없이 강제되는 각종 규제들과 턱없이 부족한 사회안전망, 정규직의 철밥통 보호기준과 재벌과 하청업체 간의 종속구조 등이 받쳐주고 있다. 이러한 기준들은 유교적(가부장적) 문화와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노동의 생산성을 감추고 있는 구조적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또한 정부는 기업들을 압박(위임)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를 수용하고 조직에 통합하려는 일체의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 고용을 보호하고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이 결여되어 있어서, 하위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불안정한 상황은 영구적으로 지속된다.
팬데믹 위기가 심화되면서, 경제를 정상화하고 경기를 회복시키는 한편에 정부는 상기의 차별을 완화시키는 심대한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재정지출을 통해서 이루어져서는 안되며, 이번 불황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구조적인 문제를 제거해야만 한다. 한국정부는 심려깊은 조치를 통하여,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광범한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물론 한국정부는 코로나-19에 대응하여 대규모의 공공보건의 안전과 경제촉진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한국은행은 두 번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하하였고, GDP 14%에 해당하는 2,700조원규모의 경제촉진 팩키지로 담아냈다. 이에는 이미 대부분의 가구에 지급되는 40만-100만원 상당의 기본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것도 포함된다.
그러나 재난지원금 프로그램은 너무나 포괄적이었고 누진(보충)성이 충분하지 못하며 소모적이었다. 대규모의 지원금은 중산계층에게 현존하는 소비수요를 단순히 대체하면서, 빈민계층의 필요를 충당하고 지원하는 일에는 실패하였다.
또한 시행된 지원금은 중소기업이 도산되는 것을 막지 못했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취약한 노동자들은 여전히 실업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더구나 정부는 오랫동안 시행을 보류해온 개혁, 즉 기업과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투명성 그리고 건강한 경쟁관계를 도입하는데 주저하고 있다. 많은 노동자들은 전통적인 시장영역에서 사라지는 일자리를 서로 잡으려 다투는 반면에, 새롭게 형성되는 산업에는 능력을 갖추지 못해 구조적으로 무시당하고 있다. (편집자 주: 스웨덴의 렌-마이드너 전략과 적극적 노동정책을 참조할 것)
유사기본소득의 이전은 빈약한 사회안전망을 보완하는 반쪽자리 시도일 뿐이다. 더욱 효과적인 정책은 혁신을 유발하고 잠재적인(충분히 발현되지 못한) 기업과 노동력에 신선한 투자를 유도하여 새로운 성장을 발화시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뉴딜정책이 추구하는 내용에는 정부와 관련단체가 중소기업들이 공급사슬의 병목구조를 극복하고 이들을 옥죄는 자금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원하며 노동자들에게 재교육을 제공하여 업무(기술)역량을 제고하는 프로그램이 담겨야 한다.
한국정부는 구조적 개혁을 통하여 노동시장의 통합과 형평성(integrtig & equalizing)을 제고하는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출처: East Asia forum in ANU, Sydney on 2020-08-06.
Vladimir Hlasny
현재 이화여자대학의 경제학과 조교수. 미시간 대학에서 노동경제와 사회복지분야의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유엔경제사회이사회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2020 세법개정안
평가와 개선방안 토론회
– 코로나19극복 조세형평성제고 소득재분배강화 재정건정성확보 –

○ 주최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한국YMCA전국연맹
– 2020년 8월 18일 (화) 오전 10시 경실련 강당 –
오늘 경실련 한상총련 등이 공동 주최한 2020세법개정안 토론회가 경실련 강당에서 진행됐다. 유호림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가 발제하고, 홍춘호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정책본부장 정순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조세재정팀장(변호사/회계사) 홍순탁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조세재정팀장(변호사/회계사) 최원석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강동익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정책연구본부 부연구위원이 토론자로 참석하였으며, 박 훈 경실련 재정세제위원장이 좌장을 맡았다.
유호림 교수는 현실적인 상황에 기반하고, 자유시장경제의 근간인 완전경쟁이란 전제를 비판하고자 하는 관점에서 세법개정안에 대해 검토하였다고 했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상황에서 국가채무비율(국민소득대비 국가채무)이 다른 주요 국가들(100%가 훨씬 넘는)에 비해 우리나라는 45% 내외에 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책당국에서 지나치게 재정건전성에 집착하여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정책과 조세정책을 적시에 집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나타내며 감내할 수 있는 재정여력의 범위 내에서 더욱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재정지출과 감세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혁신성장 지원 및 성장동력 강화 관련 세제개편안 중 증권거래세 인하와금융투자소득신설 및 펀드과세체계와 신탁세제의 개편의 경우, 기본적으로 금융과세제도의 개편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혁신성장을 지원하거나 성장동력 강화와는 관련성이 적은 것으로 여겨지고, 시장조성자(우정사업본부의 포함)에 대한 불필요한 증권거래세 감면은 결국 시장조성자들의 불법(또는 편법)적인 거래(자전거래, 무차입공매도 등)를 방조 내지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거래량은 증가하지만 주가가 하락하고 증권거래세가 유실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어 홍춘호 본부장은 소득세 최고세율 10억 원 초과 구간을 신설하고 최고세율을 45% 한부분은 긍정적이라고 하였다. 다만, 법인의 조세부담 형평성을 고려하여 법인세도 함께 조정했어야 함을 언급하였고, 법인세의 최고세율 확대와 함께 세율구간 역시 세분화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간이과세 기준금액 상향(연매출액 4,800만원 -> 8,000만원) 중소기업 및 자영업 지원 측면에서는 일면 긍정적이나, 매출누락 등을 이용한 부가가치세와 사회보험료 회피의 부작용은 여전히 해결 과제임을 밝혔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영업, 비정규직, 특수고용 노동자 등 사각지대 종사자를 포괄하는 복지 확대가 병행될 필요가 있고, 전국민 고용보험 추진 등 정부의 일정한 시도는 의미있어 보이지만 정부의 복지정책 전반에서 볼 때, 여전히 소극적인 것이 문제라고 하였다.
정순문 변호사는 먼저 간이과세 부분에 대하여, 2020년 세법개정안은 부가가치세의 감면 수단으로 간이과세를 활용함으로써 실제 간이과세제도의 도입취지를 크게 왜곡하고 있다. 도리어 세원 투명화를 위해 새롭게 간이과세자 범위로 포섭된 사업자들의 세금계산서 발행의무는 유지하면서, 부가가치세 감면효과만 누리도록 하고 있다. 세금계산서 발행의무를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에는 동의하지만, 사실 간이과세의 본래 취지라는 측면에서만 따져본다면 납득할 수 없는 개정방향임을 지적했다. 부동산 과세 부분에 대하여, 개정안은 기존의 종합부동산세 공제한도를 더욱 상향하여 1주택 보유 고령자의 경우 종합부동산세의 80%까지 공제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고령자라고 하여 무조건 세금의 측면에서 배려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현실적으로 납부가 어려운 경우라면 처분시점으로 이연하여 납부하도록 하는 방법이 우선 고려되어야 한다. 이연납부에 대한 고민 없이 바로 80%에 이르는 종합부동산세를 공제해주는 것은 공평과세의 측면에서 용납되기 어려운 포퓰리즘에 다름 아니다라고 하였다.
홍순탁 변호사는 공제감면이 대폭 확대된 부분을 언급했다. 금융투자소득에서 기존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천만원의 공제한도가 5천만원으로 상향된 것은 과도하고, 손실이월공제 기간도 당초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했고, 증권거래세 인하시기도 앞당긴 마당에 공제한도를 5천만원까지 대폭 확대한 것은 금융투자소득 전면과세의 취지를 퇴색시키고 있다고 했다. 중소기업특별세액감면의 일몰기한이 연장된 것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중소기업특별세액감면은 적용대상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46개 업종이 적용받다보니 혁신적이고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의 육성이라는 목표보다는 단순히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완화시키는 제도가 되어버렸는 바, 제도의 성격을 명확히 하고 지원범위를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부문에 한정해야 한다고 했다. 세액감면이라는 제도가 납부할 세액이 있어야 지원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중소기업의 경영상의 어려움이라는 명분과도 맞지 않음을 언급했다.
최원석 교수는 큰 틀에서 정책과세의 의미부터 다시 살폈다. 조세를 정책수단으로 사용하는 경향은 최근 세법개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나, 이번 2020년 세법 개정도 그런 경향성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세금이라는 규제를 통해 납세자의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정도가 커질수록 납세자들의 의사결정은 가장 최적의 의사결정에서 벗어나 왜곡되거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예를 들어 최근에 공시가격 현실화도 상당히 진전되어 부동산 보유에 따른 세 부담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데, 여기에 더해 세법개정안처럼 종부세율이나 양도세율이 더욱 인상되면 납세자입장에서는 징벌이라고 느낄 수 있고, 특히 1세대 1주택자나 양도세율이 60-70%에 해당되는 경우에 더욱 그렇다고 하였다. 또한 급격하게 증가하는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납세자들의 추가적인 비용을 유발하는 다양한 조세회피 행태들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였다.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으로 세 부담 쏠림현상이 더 심화될 것으로 보았으며, 세 부담 쏠림현상은 조세형평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고, 경제활동 위축 및 부의 해외유출 등 부작용이 우려됨을 지적하였다.
강동익 연구위원은 현재의 세법개정안은 급격한 조세제도 변화로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려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였다. 코로나19 극복 등을 이유로 한 각종 세제 혜택이 어느 정도 의미가 있지만, 향후 재정여건이 악화될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이러한 조치들로 인한 재정부담의 증가는 추후 면밀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투자세액공제도 한시적으로 정확하게 시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금융세제 개선에 대하여는 일부 상품에 대하여 비대칭적으로 과도한 기본공제 혜택을 부여함에 따라, 상품과 소득 간 세부담의 차이가 과도하게 발생하여 경제적 효율성과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의 우려가 존재한다고 하였다. 특히 시장조성자에 대하여 금융시장의 유동성을 개선하고 효율적인 자본의 배분을 도와주기 때문에 운영할 필요가 분명하고, 상당한 거래를 유발하여 긍정적인 세수효과가 있음을 언급하였다.
좌장인 박훈 교수는 세법개정안이 갖는 여러 효과 등으로 매우 복잡한 부분이 있음을 언급하며, 코로나19 극복, 조세형평성 제고, 소득재분배 강화, 재정건전성 확보 등을 모두 고려하면서도 구체적인 균형성을 잃지 않는 세법개정안이 만들어지도록 계속적인 노력을 다하겠음을 밝히며 토론회를 마쳤다.
중국 정부는 올 2분기에 경제정책을 선택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재정적 수지에 문제가 발생하면, 공공분야의 재정이 심각하게 악화될 것이다. 팬데믹으로 세수가 줄어 들면서 이에 맞추어 재정지출을 줄인다면 성장률이 저하되면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북경발 : 코로나-19로 인하여 경제봉쇄가 취해졌던 지난 1분기의 중국경제는 전년대비 – 6.8%의 경제위축을 가져왔다. 그러나 우환 등 주요 도시의 봉쇄가 풀리면서, 경제는 정상을 되찾기 시작하고 있으며 2분기에는 전년대비 +3.2%의 성장을 보였다. 전문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이후 6%의 잠재성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반기에 상기의 예측이 실제로 실현된다면 중국은 올 한해 2.5% 이상 성장하는 유일한 국가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낙관적 성과를 실현하려면, 시장에서 수요가 살아나야 한다. 지난 몇 년간 국내의 수요부족으로 성장세가 위축되어 왔으며, 팬데믹 상황이 이를 더욱 악화시켰다.
중국 GDP의 55%를 차지하는 국내소비는 사회소비의 기준으로 1분기의 3개월간에 19%가 줄어든 것에 더하여 2분기의 -3.9%가 추가되었다. 소비는 반드시 진작되어야 하며, 올해 남은 기간의 성장여부가 이에 달려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이 쉽지 않을 것이, 가계 부문에서는 지난 봉쇄기간 동안 소진되었던 저축을 다시 채우려 안달할 것(소비축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코로나-19에 타격을 받은 가계에 지원금을 제공해야 하는데, 소비를 진작시킬 만큼 재정적 여건이 만만치 않다.
중국의 수출과 수입이 2분기에 각각 3.0%와 3.3% 줄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순수비중이 1% 수준으로 수출의 성과여부가 하반기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한편 지난 1분기에 16.1%의 심각한 위축을 보였던 고정자산의 투자분야가 2분기에는 작으나마 양의 수치로 전환되었다. 올해 평균의 2.5% 성장을 실현하려면, 소비와 수출부진에 따른 보충하기 위해서 고정자산의 투자가 두 자리의 증가율을 보여야만 한다.
중국에 있어 고정자산에 대한 투자분야는 크게 세 영역으로 구성되는데, 부동산 분야와 제조업 그리고 사회간접자본 부문이다. 부동산 분야는 상반기에 1.5%의 성장을 보였고 하반기에는 5.0%를 시현할 것으로 예측된다. 반면에 제조업 분야는 상반기에 -11.7%로 위축되었으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의 회복이 어려울 전망이다.
따라서 고정자산의 투자에 두 자리 숫자의 성장을 보일 유일한 수단은 하반기에 사회간접자본 부문에 집중 투자를 하는 일이다. 이런 상황의 요구에 대해서는 중국은 이미 과거에 경험을 하였다. 서구의 외환위기를 맞이했던 2008년 11월에 연간 예산을 50%나 증가시키기로 결정하면서, 2009년 연간에 5,700억불을 사회간접자본의 부문에 집중 투자하여 경제를 촉진시킨 경험이 있다. 2018년에 들어서야 신중한 정책적 선택의 과정을 거쳐 사회간접 자본의 투자를 한자리 숫자로 낮추었다.
현재의 정책결정자들은 2008년 경제촉진책을 도입한 이후 발생한 후유증에 대하여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경험의 하나는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투자가 지방정부의 재량(LGFVs, local gov’t financing vehicles)으로 이루어지는 해당 지역은행의 대출방식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채권발행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아직 대규모의 간접시설에 지원할 재정적 여력을 지니고 있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중앙정부가 책임지고 대형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지난 연말 중앙정부가 GDP의 3.6%에 해당하는 5,370억불의 재정적자를 2020년의 목표로 설정하였으나, 이는 성장률이 5.4%이상을 실현한다는 전제에서 이루어 진 것으로 현재로는 비현실적인 것이 되었고, 따라서 기존의 목표를 축소 조정해야 할 것이다. 만약 재정지출을 축소하지 않으면, 중국의 국가재정은 하반기에 급격히 악화될 것이다.
반대로 정부가 재정적자가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지출을 줄이기로 결정한다면, 경제는 2.5% 이내의 성장을 보이게 될 것이고, 따라서 기대한 만큼의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으면서 악순환적으로 재정적인 취약성이 심각하게 증대하게 된다.
이에 따라, 중국정부는 올 하반기에 재정운용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만약 재정을 확장하면 공공재정의 분야가 심각하게 위협(적자)을 받게 될 것이고, 반대로 재정수입의 격감에 맞추어 긴축을 시행하면 성장율이 낮아지면서 민간경제에 잔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나의 개인적 견해로는, 중국의 중앙정부가 경제의 성장을 가속시키기 위하여 단호하게 재정확장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지방정부가 아닌 중앙정부가 추가적인 대규모의 간접시설자본의 투자를 추진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여야 하며, 인민(중앙)은행은 이를 지원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양적완화QE 등 다양한 정책을 취하여야 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재정악화와 부채비율의 증가는 차후에 별도로 다루어야 한다. 중국의 정책결정자들은 등소평의 유명한 명제를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 “성장(발전)만이 분명한 진리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중국당국은 경제부양책을 실시해야 한다.
출처 : 포린폴리시FP on 2020-07-27.
Yu Yongding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세계경제의 중국관련과 국제정치분야의 책임자를 지냈고 2004-2006년 간 중국인민은행에서 통화정책위원을 지냈다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쓴 지 반년이 넘었다. 사람들은 이제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달라진 지금, 인천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를 고민하기 위해 인천평화복지연대가 ‘코로나19 대안 모색’ 시리즈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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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 : 현실이 된 기후위기, 인천의 과제는? http://www.incheon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797
#인천in : "경제 문제에만 집중하는 인천시,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 나서야" http://www.incheon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4766
#인천뉴스 : 코로나19 대안 모색을 위한 분야별 토론회 '기후환경 분야' http://www.incheo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4528
코로나19의 출현 이후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앞으로의 의료체계는 지역차원의 복지와 연계돼 구축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인천공공의료포럼과 인천공공성플랫폼이 주최하고, 인천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과 인천평화복지연대가 주관하는 ‘코로나19 장기화를 대비한 인천 보건의료체계 강화 방안 모색 소토론회’가 14일 인천YWCA 강당에서 개최됐다.
< 관련 소식 >
#인천투데이 : ‘선택 아닌 필수’ 인천 공공의료···'지역사회 케어' 수반해야 http://www.incheon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901
#경인일보 : 인천공공의료포럼 등 토론회… 코로나19 토착화 대비 목소리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00817010003279
Too Much Hope – 희망제작소 연구/사업을 담당자에게 직접 물어봅니다.
이번 영상은 코로나19 지역일자리 위기대응 포럼을 진행하고 있는 임주환 부소장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영상 내용
0:00 시작하기
0:52 지역일자리 위기대응 포럼은?
1:23 참여하는 지방자치단체
2:57 지역사회 일자리 위기 전주시 사례 – 소상공인
6:31 지역사회 일자리 위기 거제시 사례 – 조선업
8:24 교육 훈련 과정의 차이 – 전주시와 거제시
10:33 지역일자리 위기대응 포럼의 방향과 목적
13:31 지역일자리 대안 – 고용안전망의 연대적 확대
16:34 지역일자리 위기대응 3차 포럼 예고
18:05 마무리, 시민의 의무
#코로나19 #일자리 #고용위기 #전주시 #거제시
촬영일 : 2020.08.18.
인터뷰이 : 임주환 부소장
진행, 편집 : 안영삼
정리 : 방연주



<필자 소개>
여상경 생태교육허브물새알 협동조합 관리자
강화로 흘러들어와서 어쩌다 새를 보기 시작, 덕분에 심심치 않게 시간 보내며 남은 여생을 준비하고 있는...
지난 광복절 광화문 집회로 한국의 코로나19 양상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그것은 단순히 확진자 수의 급증과 확진 속도의 증가 등 의학적 또는 양적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편의상 광화문 집회 이전을 코로나19 제1기, 이후를 제2기로 나누어 부르도록 하자. 이렇게 시기를 나누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코로나19가 비추는 한국사회의 모습이 광화문 집회를 전후로 너무나 달라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제1기에도 물론 초기에는 한국사회의 정치적 분열이 두드러졌다. 새로운 감염병을 ‘우한폐렴’으로 부르며 중국에 대한 봉쇄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신천지 신자 감염으로 확진자 수가 빠르게 확대되면서 그런 정치적 분열이 더욱 커지는 듯했다. 그러나 정부-산업-의료계의 발 빠른 협업으로 감염병 차단에 성공하면서, 특히 외국의 언론을 중심으로 한국의 감염병 대응에 대한 찬사가 그런 정치적 분열을 중화했다.

물론 정치적 대립의 양상 속에서도 시민들은 여야 성향을 막론하고 정부의 감염병 대응에 매우 협조적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분열의 잦아듦이 순전히 서구 언론의 공적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서구 언론에서 포착한 지점이 바로 시민들의 자발적 협조라는, 그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의 언론들은 ‘어떻게 이런 특이한 현상이 한국에서는 가능한가?’를 분석하느라 열심이었다. 특히 처음부터 대중국 봉쇄정책을 폈던 대만, 싱가포르와 달리 봉쇄정책 없이 감염병 대응에 성공한 한국의 특성을 분석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그러나 정작 그들 또는 그들이 지면을 할애해준 자국 전문가나 재외 한국인 학자들의 의견 중 대세는 ‘유교 문화’나 그와 관련된 ‘집단적 순응성’, ‘독재 경험으로 인한 파시즘적 경향’ 등 봉쇄정책을 폈던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별 차별성이 없는 내용이었다. 한국에 우호적인 마이클 샌델이 ‘공동체 감성’이라는 그나마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표현을 사용했을 뿐이다.
공동체란 무엇인가?
순응성이나 집단주의, 독재 등이 부정적이거나 전근대성을 암시하는 표현인 만큼, 외국의 언론에서 이런 표현들은 대체로 한국 정부의 확진자 추적 및 정보 공개와 관련해서 사용되었다. 특히 강력한 개인정보 보호법을 갖춘 유럽에서 그와 같은 원색적 비난이 돌출했는데, 거기에 재외 한국인 학자들이 가세하면서 한국사회에 대한 오리엔탈리즘 관점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정부 기관의 확진자 정보 추적은 법적 기반을 갖는 것이고, 그 법은 과거 메르스 경험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즉 그것은 한국사회의 ‘독재 적응력’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염병 대응에 대한 이전 정부의 무능함에 대한 ‘비판’에 기초한 것이다.
물론 법 제정이나 집행에 있어서 개인정보 관련 사회적 논의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음은 마땅히 지적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개인정보 인권 감수성이 서구보다 미약하게 관찰되는 경우에도, 순응성이나 집단주의 문화로의 환원은 분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문화적 편견을 재생산하는 오리엔탈리즘에 가깝다. 그뿐 아니라 과거 스페인 독감 이후 ‘전염병의 위력’을 완전히 잊은 듯한 서구에서 일어난 ‘마스크’에 대한 적대감과 지리멸렬한 논쟁은, 그러한 오리엔탈리즘이 문화적 차별주의뿐만 아니라 비과학적 태도와도 결합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와 달리 공동체주의를 주장하는 정치철학자인 마이클 샌델은 한국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착한 임대인 운동’이나 의료인들의 대구 자원봉사 지원과 같은 긍정적 현상들에 기초하여 한국사회의 ‘공동체 감성’에 대해 평가했다. ‘공동체’라는 개념은 서구의 주류 사회학에서는 전근대성이나 집단주의와 거의 다르지 않게 사용된다. 그리하여 전근대적인 공동체적 연대 관계와 근대적인 기능적 연대를 대립시킨다. 반면에 공동체주의에서 사용하는 ‘공동체’는 이미 기능분화가 진행된 서구 자유주의 사회를 대상으로 ‘공동체적 덕성’의 회복을 촉구하는 개념이다. 반면에 과거 사회학에서도 마르크스주의 쪽에서는 ‘노동계급 공동체’라는 의미에서, 근대적 의미로 ‘공동체’ 개념을 사용했다.
‘공동체’ 개념이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지만, 그것의 핵심은 ‘도덕적 가치 또는 문화의 공유’에 있다. 다원주의를 내세우는 자유주의 사회학에서는 가치 중립성을 강조하며 기능분화에 기초한 복잡한 사회에서 도덕적 가치의 공유가 특수주의를 강화하고 보편성을 훼손한다고 본다면,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이나 공동체주의에서는 이념이나 덕성의 공유―즉 공동체적 정체성―에 기초하여 평등 또는 사회정의가 가능하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공동체’ 개념은 사회구성원이 공통의 정체성을 갖는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민족주의나 흑인문화, 고유문화 등을 강조하는 종속이론이나 다문화주의에서도 공동체 개념을 중시한다.
이렇게 보면 자유주의만이 ‘공동체’ 개념에 반대한다고 볼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 제3세계 민족주의, 공동체주의, 다문화주의 등은 모두 반자유주의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유주의 역시 ‘가치의 공유’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보면서 자유주의의 이율배반을 비판하는 관점이 있다.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는 ‘근대 소유계급 남성의 정체성’에 기초한 것으로서 결코 보편적이지 않다. 그리고 이처럼 ‘동질적인 집단 정체성’을 기정사실화하는 모든 관점에 대항하여 ‘차이의 정치학’을 펼쳤다. 따라서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동질성을 강조하는 ‘공동체’ 개념이 아니라, 차이를 당연시하는 ‘도시적 삶’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1】
한국은 공동체 사회인가?
그렇다면 한국사회는 공동체적인 사회인가? 또는 공동체적 감성에 기초하여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가? ‘공동체’의 개념이 도덕적 가치의 공유라면, 위 질문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에서는 이념 대립이 여전히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세대 간 가치변화로 소통이 어려우며, 젊은 층에서는 젠더갈등 역시 역동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제1기에서 공동체적 가치의 공유가 두드러졌다면, 그것은 ‘안전’의 가치, 특히 ‘전염병으로부터의 안전’이라는 매우 특수한 가치의 공유일 것이다. 메르스의 위험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기 때문에, 사회적 이질성이 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의 위협 앞에서 결속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결속력이 한국사회의 ‘공동체’ 속성이 아니라, 재난 앞에서의 ‘실용주의적 연대’의 성격을 갖는 것임을 보여준 사건이 바로 광복절 광화문 집회였다.
광화문 집회를 계기로, 공동체적이었다던 한국사회에서 이제는 ‘이기주의’가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한국사회는 다른 기능분화 사회들과 마찬가지로 공동체도 아니고 이기주의적이지만도 않다. 코로나19 제1기에서 ‘공동체적 대응’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한국사회의 공동체성이 아니라, 오히려 코로나19 재난에 대한 한국사회 특유의 위험성(risk) 인식이다. ‘위험사회’에서 위험은 리스크를 번역한 것이다. 즉 현대 기술문명위험의 사회를 ‘재난사회’가 아닌 ‘위험(성) 사회’라고 부르는 이유는, 재난의 가능성과 현실이 위험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통해 걸러져서 비로소 그에 대한 대응을 부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과거 메르스에 대한 공포와 그와 연관된 정권변화 등 일련의 사건들이 만들어놓은 ‘인식 틀’을 거쳐서 코로나19를 인식했고, 그 결과 정부와 산업체, 의료기관이 모두 합심할 수 있었다. 단지 코로나19 감염병에 대한 공포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해서 가능한 정부 실패와 의료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기업 이미지 제고와 새로운 이윤의 실현 가능성 등 다양한 요인들이 함께 작용하여, ‘공동체적 연대’가 아닌 ‘기능적 연대’를 가능하게 했다. 제도 실패의 위험에 대한 자각이 한국사회의 이질성과 갈등 속에서도 기능적 연대를 가능하게 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연대 속에서 여당의 선거 승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형성된 새로운 정치적 역학관계 속에서 작금의 ‘이기주의’가 ‘공동체 감성’을 거의 완전히 대체하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공동체 감성’이든 ‘이기주의’든 둘 다 완성된 속성으로서 존재하는 한국사회의 어떤 본질적 측면이 아니라, 코로나19 감염병과 한국사회의 정치·경제·문화적 재배치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사회는 전근대적 공동체도 아니고, 독재에 익숙한 순종적 사회도 아니며, 모든 사람이 사회적 덕성에 대한 개념을 공유하는 동질적 사회도 아니다. 오히려 광화문 집회를 전후로 첨예해진 갈등 상황이 우리가 더 잘 알고 있는 한국사회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코로나19의 위력 아래 연대와 통합이 촉진되었던 제1기의 국면이 이제 정부의 부동산 정책, 의사 증원 계획 등의 환경변화로 인해서 제2기의 ‘이기주의’ 국면으로 전환된 것이다.
연대의 희망: 부작용의 정치? 또는 새로운 존재론적 정치?
집단적 이해관계를 내세우는 ‘이기주의적’ 이익집단들은 반공동체적 집단인가? 아니면 그들만의 특수 공동체를 형성한 것인가? 이런 물음과 함께, ‘공동체’라는 개념의 중립성 또는 도구적 성격이 드러난다. 즉 ‘공동체’란 단지 특정한 도덕적 감정을 공유하는 집단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관찰 수준에 따라서 공동체와 사회 또는 공동체와 이익집단을 상호배제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호전환이 가능한 개념으로 사용할 수 있다. 자유주의 사회학에서 주장한 ‘기능분화’ 개념은 이 지점에서 문제가 된다. ‘기능분화’가 공동체의 특수적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는 ‘보편성’의 기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나 페미니즘에서 지적하듯이, 기능분화의 보편성 역시 또 다른 특수주의적 가치의 하나일 뿐이다. 다만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부르주아 특수주의를 노동자계급 특수주의로 바꾸어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았다면, 페미니즘은 특수주의 감정의 집단적 동일시 자체를 ‘차이 억압의 기제’로 의심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동체는 억압적이거나 이기주의적으로도, 또 더 많은 평등을 위한 연대의 방식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기주의적인 집단적 목소리, 집단감정을 어떻게 ‘선한 영향력’의 테두리 안으로 제한할 수 있는가? 즉 이제 더는 기능적 연대가 불가능한 것인가?
기능적 연대란 개별 이기주의 행태가 사회 각 부문의 기능적 연동 속에서 역설적으로 사회통합의 결과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초창기에 기능주의와 행보를 같이 했던 급진 구성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후기로 가면서, ‘기능적 연대가 불가능해진 세계사회’에 대해 발언했다. 도덕적 가치의 공유가 아니라 기능 및 이해관계의 분화에 기초한 사회라는 측면에서 한국을 비롯한 현대사회는 여전히 기능적 연대 이외의 다른 형태의 연대를 추구하기 어렵다. 집단적 가치의 공유로 회귀하자고 주장할 경우 독재나 파시즘으로 갈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코로나19의 엄혹한 상황 속에서도 집단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이기주의적 집단 행태가 불거지면서 과연 ‘연대가 가능한가?’라는 불안감이 증폭하고 있다.
루만처럼 새로운 연대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사회학자가 있는가 하면, 새로운 연대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사회학자도 있다. 울리히 벡은 산업사회가 위험요소로 계산하지 않은 생태위험이 부메랑이 되어 산업사회를 강타하면서 새로운 연대가 불가피해졌다고 보았다. 단순한 기능적 연대가 아니라, 연대의 기초가 바뀌는 ‘성찰적(또는 반사적, 재귀적)’ 성격의 연대를 주장했다. 기능적 연대의 바탕이 위에서 보았듯이 이기주의―즉 인간의 합리적 이해추구―라면, 새로운 ‘성찰적 연대’의 주체는 인간이 아닌 산업생산의 부작용―특히 생태위험―이다. 이해관계에 갇혀서 ‘기능적 연대’의 불가능성을 키우는 인간이 아니라, 산업에 의해 파괴된 생명체들 또는 지구가 새로운 정치의 주체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러한 ‘부작용의 정치’를 사회적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위험사회’를 살아가는 인간 행위자들이다. 따라서 벡은 ‘실용주의적 연대’를 주장했다. 인간의 이해심을 부정할 수 없으므로, 이해관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 앞에서 시시각각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근대성 비판은 ‘탈근대성’이 아닌 ‘성찰적 근대성’의 방향을 취한다. 말하자면 ‘성찰적 연대’는 생명의 위협 앞에서 실용주의적으로 조율되는 기능적 연대를 의미한다.
반면에 2000년대 이후, ‘탈근대성’에서 ‘탈인본주의’로 방향을 바꾼 새로운 관점이 지적 세계에서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흔히 ‘신유물론’이라고 불리는 경향이다. 여기서는 인간과 여타 생명체나 물질의 주체적 행위성을 위계적으로 서열화하지 않는다. 특히 페미니스트이자 입자물리학자인 캐런 버라드는, 인간과 물질이 양자역학적 ‘얽힘’의 관계성 속에 공존하므로 인간은 단순한 윤리적 차원이 아닌 존재론적 차원에서 이미 ‘책임의 윤리’에 묶여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책임’은 공동체가 공유하는 가치로부터 윤리적으로 추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존재 방식 자체라는 것이다. 인간의 주체성은 인본주의적으로 주어진 속성이 아니라 물질과의 양자역학적 얽힘으로부터 발생하는 사건―반복되는 사건―이므로, 얽힘의 관계 속에서 물질에 응답하는 능력(response-ability)이 이미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책임이란 바로 그러한 존재론적 응답능력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코로나19 시대에 한국 사회에 요구되는 연대는 ‘이해관계의 합리성’이 인간 존재 조건의 일부에 불과한 것임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이기주의가 자연적 본성이 아니라 (타인을 포함하는) 물질과의 얽힘으로부터 발생한 ‘사건’에 불과하다는 것, 즉 우발적인 존재론적 사건을 의미론적으로 규정하고 고정한 것임을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얽힘이 없으면 그러한 사건도 불가능하므로, 이기주의보다 책임이 더 우선적인 존재의 조건이다. 역설적이지만, 모든 이기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타자와의 얽힘인 것이다.
이해관계를 내세우는 특수집단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어떤 얽힘의 결과인지를 인지해야 한다. 자신의 이익 안에 타자의 이익이 배제된 채 공존한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이해관계의 정치’가 아닌 ‘책임의 정치’로 전환하도록, 사회의 전반적 인식 역시 ‘인간 본성=이기주의’라는 도식을 버려야 한다. 또 그러한 책임의 정치가 공동체의 도덕으로부터 도출되는 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생명체로서 인간의 존재론적 문제임을 겸허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와 같은 ‘책임의 정치’에서는 굳이 공동체적 동질성이라는, 언제든 억압의 기제로 전환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지 않다. 즉 그것은 ‘존재론적 정치’인 것이다.
울리히 벡의 ‘실용주의 정치’는 리스크 개념의 ‘사회적 구성주의’라는 형이상학과 이해관계의 근대적 실재론을 ‘부작용의 정치’를 매개 삼아 절충한 형태이다. 반면에 신유물론의 ‘존재론적 정치’는 이해관계와 같은 사회적 구성물을 ‘사건’으로, ‘얽힘’을 사건의 물질적 발생조건으로 설명함으로써, 책임의 물질적 실재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실재론―버라드의 경우 ‘행위적’ 실재론―을 피력한다. 많은 이기주의적 특수집단들이 주장하는 바와 달리 코로나19가 단순한 ‘음모’가 아니라 살아 있는 바이러스이듯이, 바이러스의 위협에 처한 사회 역시 단순한 사회적 구성물이 아니라 존재론적 실재인 것이다.
【1】 아이리스 매리언 영, 2017, 『차이의 정치와 정의』, 김도균·조국 옮김, 모티브룩.
홍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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