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집] 2021년 보건의료노조 조합원 수기-코로나와 싸운 1년 우리들의 땀과 눈물
보건의료노조_조합원수기_20210707.pdf
보건의료노조는 2021년 상반기 “코로나19와 싸운 1년, 우리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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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깨달은 것은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게 연결된 느슨한 관계라도 도미노처럼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일찍이 한살림은 모든 생명이 전체의 일부인 동시에 부분의 합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웃과 협동함으로써 공동체성을 회복해 나가자고 〈한살림선언〉을 통해 제안했습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개인의 책임을 다하는 공동 행동이 중요하듯, 유기적으로 연결된 우리가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서로 포용하고 연대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과 재택근무, 언택트 쇼핑 등 비대면 방식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안전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만남과 교류를 자제하고 각자 집에서 ‘집콕놀이’나 게임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코로나 블루’라 불리는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아무리 혼자 재미있게 놀아도 인간은 사람과의 연결을 원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세상이기에 다른 이들을 불가피한 연결로 피해를 주는 존재로 보는 대신 호혜적인 연결을 통해 모두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공동체성을 간직해야 합니다.
한살림 조합원은 오래전부터 가까운 이웃과 모여 마을모임, 소모임 등을 함께해 왔고, 생산자 역시 마을 단위로 협력하며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의 의미를 이어왔습니다. 코로나19 이후 한살림 모임도 점차 온라인으로 옮겨가며 방식은 변화하고 있지만, 함께 한살림하는 즐거움을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다음 세대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의 가치는 여전히 지켜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전염병이 일상화될거라는 우울한 전망도 있기에, 앞으로의 관계와 만남은 사람 사이의 온기는 간직하되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로 지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깨끗해졌습니다. 세계여행을 자제하면서 항공기 운항이 줄어들고 각국이 봉쇄 정책을 펼치자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지난해보다 17% 줄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개선은 일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한살림은 인간과 자연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일찍이 생태적 관점의 유기농사를 시작하고, 병재사용운동·공급상자 재사용 등 자원순환운동을 펼쳐 왔습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유한한 지구 자원을 더욱 귀하게 여기고,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적극 행동하는 등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의 일부로서 우리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먹을거리 수출입에 차질이 예상됨에 따라 ‘식량’의 중요성이 부각됐습니다. 주변에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듯 보이지만, 베트남과 인도, 러시아 등 주요 곡물 수출국들은 이미 수출을 제한하고 있고, 세계 곳곳에서 먹을거리 사재기와 농업 노동력 부족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식량자급을 위한 식물공장과 생산성이 높은 GMO 개발을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농업의 본질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코로나19는 먹을거리의 안정적 공급과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였습니다. 성장과 효율 만을 중시한 생산주의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농업의 길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실현해야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와 식료품 등의 수급 불안을 겪으면서, 장바구니 영역을 넘어 자국 내 식량자원을 확보하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국산 먹을거리 생산의 중요성을 느끼는 소비자가 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쌀을 제외하면 밀, 옥수수, 콩 등 곡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합니다. 낮은 식량자급률은 글로벌 식량공급망이 붕괴되는 상황에서 물가 상승은 물론 수급 불가로 이어져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유럽그린딜’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는 생태지향적 농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한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스마트팜 중심의 농정 이야기에 그치고 있어 아쉬운 실정입니다. 한살림은 환경을 보전하는 전통적인 농업의 가치와 역할을 추구하고, 나아가 각 지역의 기후와 풍토에 맞는 농사 방식을 지향합니다.

관행농사에서는 제초제를 뿌리면 간단히 끝나지만, 한살림 농부들은 직접 풀을 뽑거나 우렁이, 오리, 쌀겨 등 자연의 힘을 빌려 유기농사를 짓는다.
식량작물만큼은 다른 나라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책임져야 합니다. 이는 한살림이 유기농업을 지향함에도 국산 잡곡을 취급하는 이유입니다. 또 물품 생산과 조합원 활동을 통해 우리밀과 우리보리, 토박이씨앗을 살리는 운동을 펼쳐 우리 농업의 자생력을 높이며 종 다양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1984년 정부의 수매 중단 뒤, 한살림은 1987년 앉은뱅이밀을 어렵사리 구해 재배한 것을 시작으로 멸종 직전까지 갔던 우리밀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살림은 대규모의 단작농업 형태가 아니라, 중·소농을 중심으로 한 다품종 소량생산의 지역순환 먹거리 체계를 지향합니다. 소농이 생산한 농산물은 대부분 자국 유통되므로 수출입 중단 시 중요한 식량 공급원이 될 수 있고, 주로 가족 노동력을 이용하기에 외국인 노동력 부족 사태에서도 자유로운 편이며, 종 다양성을 유지하기도 좋습니다.

중·소농 중심의 한살림 생산자들은 마을별로 공동체를 구성해 다양한 작물을 자급자족하듯 농사짓는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올해 1분기 동안 건강기능식품 상위 5개 업체의 매출이 지난해 1분기에 비해 약 20% 증가했다고 합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면역 증진을 위한 건강식품이나 음식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먹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감염병에 대한 불안과 스트레스, 애도와 상실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을 위해 보건복지부에서는 ‘감염병 스트레스 정신건강 대처법’을 배포하고,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는 ‘생활 속 거리두기와 함께하는 마음건강지침’을 안내했습니다.
세계적인 감염병은 우리 일상의 모습은 물론 마음 건강까지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감염병이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생활 속에서 몸과 마음을 스스로 돌보고 나아가 내 주변의 이웃도 돌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영양 성분이 많고 효능이 좋다고 해서 좋은 먹을거리는 아닙니다. 한살림은 우리 또한 자연에 발딛고 살아가는 자연의 일부이기에, 때와 철에 맞게 자연에 큰 부담을 주지 않고 자란 먹을거리가 우리 몸에도 이로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살림은 유기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최대한 배제한 농산물을 우선하며, 작물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호르몬제(성장조정제)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는 2001년 정부가 친환경농산물 인증 제도를 실시하기 훨씬 전인 1986년부터 땅을 살리는 농사를 시작해 1998년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한살림 농업·물품 정책과 취급 기준을 정하며 30년 넘게 지켜온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한 신념과 실천입니다.
감정 노동, 스트레스 등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코로나19로 인한 우울, 불안, 트라우마까지 더해졌습니다. 한살림은 몸과 마음이 따로 떨어질 수 없기에 좋은 먹을거리로 몸을 챙기는 것만큼 마음을 돌아보는 일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살림연수원은 10년 전부터 나와 이웃과 세상이 연결되어 있다고 믿으며 ‘자기살림의 기술’을 조합원과 나눠왔습니다. 마음은 우리의 숨겨진 몸이므로, 생활 속에서 마음을 잘 돌보는 것에서 몸의 돌봄이 시작됩니다. 내 마음을 잘 돌아보는 것은 결국 이웃과 세상과 더불어 사는 방법입니다.

한살림연수원 몸마음돌봄 과정 소개
● 몸마음살림연습 : 몸과 마음을 돌보는 방법을 익혀 일상에서 자기돌봄을 생활화할 수 있는 과정
● 몸마음정화식 : 피로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몸의 기운을 바르게 하고, 정화음식을 통해 새로운 기운을 얻는 시간
● 자연과 하나되기 :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생태적 감수성을 회복하고 삶의 활력을 찾는 시간
● 살림행공 : 간단한 동작으로 스스로를 다스리고 몸과 마음의 관계를 이해하는 과정
● 마음닦기 : 호흡과 명상으로 자기를 돌아보고 내면의 고요함과 평화를 얻는 과정
※ 한살림연수원 몸마음돌봄 과정은 코로나19 이후 새롭게 조합원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일정과 내용은 한살림연수원 홈페이지(edu.hansalim.or.kr)에서 확인하세요.

[살림의 눈]
코로나19로 이미 많은 것이 변했고 더 많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전쟁 및 테러 대응을 안보의 기조로 삼았지만 이제는 식량, 건강, 환경, 공동체, 경제, 정치 안보를 중심으로 세계가 재편될 가능성이 높고, 국가의 역할은 점차 강화될 전망이다.
코로나19는 인간의 개발로 서식지가 줄어든 생명들이 인간과 접촉해서 발생했다. 이에 사람들은 지구상의 뭇생명과 공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중국에 의존했던 생산량이 인근 국가로 이동하는 반세계화와 지역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공급망을 바꾸어 생산기지를 자국으로 돌리는 ‘리쇼어링’으로 경제흐름이 바뀔 것이 예상된다. 물질적 성장을 위해 비대해진 도시가 위기 상황에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깨닫게 된 만큼 귀농과 귀촌 등 탈도시 현상들이 가속화되고 생태적 생활양식 등이 더욱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개별 국가뿐 아니라 전 지구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새로운 시각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을 강제당하고 있다. 가히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이다.
코로나19를 통해 전 지구적으로 강제되는 이러한 전환의 깨달음이 한살림에게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눈 맑은 한살림 선배들은 35년 전부터 이 상황을 예견하며 전환을 주장해왔다. 코로나19 사태로 한살림 정신과 한살림운동의 가치는 명확하게 증명되었고, 한살림의 사회적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코로나19로 우리가 새삼 깨달은 사실은, 세계는 이처럼 촘촘히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수퍼확진자가 수많은 사람을 감염시키는 것을 보며 한 사람이 주변과 전 세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도 확인했다. 인간의 번영은 단순히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과 그 안의 뭇생명들과 함께 이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같은 ‘자연에 대한 생태적 각성’은 이미 30년 전 〈한살림선언〉을 통해 강조해온 바이다.
〈한살림선언〉에서 한살림은 다른 생명과 조화를 고려하지 않는 인간중심주의에 반대하며 ‘생명에 대한 우주적 각성’을 강조해왔다. 이들 우주생명을 공경하고 모시고 살리는 문명으로의 전환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이야기 해온 것이다. 동시에 물질적 성장과 경제적 풍요를 통해서는 인류의 위기와 더불어 국가와 계급 간의 갈등만 초래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과정과 관계를 소중히 하며 협동과 자립, 자급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에 대한 공동체적 각성’도 강조해왔다. 그밖에 물질적 풍요를 통한 행복이 아니라 정신적 풍요와 영성적 깨달음과 수양을 통해 인간의 초월적 가치 구현을 강조하며 ‘자기실현을 위한 생활수양활동’을 역설해왔다.
한살림은 코로나19 이후 변화된 상황에서 사업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전환을 상상하면서 더 깊고 길게 한살림운동의 근본으로 집중하는 것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성장이 아니라 성숙의 사회로, 직선이 아니라 순환의 사회로 가야 한다. 탈성장·제로성장 사회에서 행복과 발전을 도모하고, 각자도생이 아닌 협력적 공동체 사회로, 도시집중이 아닌 탈도시 귀농운동이나 농업이 근본이 되는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물질적 욕망의 확대가 아니라 정신적인 행복으로 욕구를 이동시키고, 소비의 경제에 머물지 말고 공유경제로 나아가며, 지역공동체와 마을만들기 등의 공동체 운동을 펼쳐야 한다. 세계화를 맹신하지 말고 지역적 자립의 사회로 나아가며, 석유의존적 문명에서 재생가능한 에너지문명으로 가는 모든 활동들을 조합원 중심으로 다양하게 모색해 가면 좋겠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한살림이 있어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다음과 같은 활동을 집중적으로 제안하고 싶다. 먼저, 농민기본소득운동을 해보면 좋겠다. 코로나19로 러시아나 베트남 등이 곡물수출을 금지한 것에서도 확인했듯, 앞으로도 감염병으로 인해 식량위기가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농업을 살리고 농촌을 살리며 자립·자급하는 일에 국가의 사활이 달린 것이다. 자립을 위한 생산기반 마련의 측면에서 농민기본소득운동은 꼭 필요하다. 이번에 전 국민이 경험한 재난기본소득으로 사회적 동의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만큼, 교육이나 서명·청원 운동 등을 통해 농민기본소득을 정착시키는 데 집중했으면 한다.

두 번째, 그 연장선상에서 귀농운동을 펼쳐야 한다. 도시의 높은 인구밀도는 코로나19가 폭발적으로 확산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려운 도시를 벗어나는 탈도시운동, 우리 식량작급 기반을 늘리는 귀농귀촌운동을 전개하는 일은 앞으로 전 세계적인 흐름이 될 것이다. 부농의 헛꿈을 꾸게 만드는 관변 귀농교육이 아니라 교육과 계몽을 통해 지역의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방향을 한살림이 제시하면 어떨까. 지역에서 건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한살림 선배 생산자들은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자산이다. 이들의 지원과 협력을 받으며 귀농귀촌운동과 농촌공동체운동을 전개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를 기반으로 조합원 개개인과 한살림 매장에서 지산지소운동, 로컬푸드운동을 펼치고 한살림이 지역순환사회를 주도하는 일을 해보면 좋겠다.

세 번째는 공유경제운동이다. 이제껏 살아온 것처럼 자본과 물질에 의지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사람과 관계에 의존하며 협력과 협동해가는 것밖에 없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마을 내에서 나누고 교환하고 공유하는 선물경제, 호혜경제의 작은 지역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매장이라는 공간 자원과 조합원이라는 인적 자원을 충분히 확보한 한살림이 소비주의를 뒤집는 이러한 실천에 적극 나서보자.

마지막은 마음살림운동이다. 한살림은 지난 6~7년간 마음살림위원회를 통해 운동과 수련, 교육프로그램을 준비해왔다. 이러한 격변의 시대를 위해 한살림이 앞서 준비해온 것이다. 한살림의 근본인 생명운동을 마음운동과 결합하여 새로운 행복운동으로 강화하는 데 나서야 한다. 지역에서 마음공부모임을 만들어 명상과 수련을 전개하고 이 모임이 공유운동과 마을공동체운동을 전개하는 단위 역할을 해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대안사회운동, 전환운동을 위해서는 한살림이 목표와 방향을 정해 전국적으로 진행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조합원의 자발적인 실천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혜로운 조합원 개개인이 전환을 위한 대안적 실험과 창조적인 모험을 펼치고, 개별 실천을 통해 검증된 결과가 한살림 전체로 확장되는 방식으로 진행되길 바란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전환을 위한 메시지이며, 다가올 기후변화를 위해 대비하라는 경고임을 환기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구체적으로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이제는 ‘변화를 예측하기’보다 ‘변화를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하다. 한살림은 지금의 상황을 이미 경고해왔고, 준비해온 예언적 목소리였다. 이제 한살림이 실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유정길 | 불교환경연대 녹색불교연구소장, 전 한살림 마음살림위원
글을 쓴 유정길은 1990년 정토회 에코붓다에서 공동대표를 역임했습니다. 불교환경연대에서 불교운동과 환경운동을, 아프간에서 국제개발협력활동을, 평화재단에서 남북문제를, 귀농운동본부와 국민농업포럼에서 농민운동을 전개해왔습니다. 한살림선언에 깊이 공감하며 고양시에서 지역공동체를 위한 협동조합운동을 펼치고, 한살림모심과살림연구소와 한살림연수원 마음살림위원회에서 오랫동안 함께해온 조합원입니다.
미국합중국은 코로나 팬테믹을 대응하는 과정에서 봉쇄정책과 인종차별의 폭력이 발생하면서 합법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의 살해,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몇 건의 경찰에 의한 흑인사망 사건이 즉각적인 시민들의 항의시위를 불러왔으며, 일련의 사태는 지속적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의 확산방지를 위한 봉쇄가 일상화되는 것을 거부하는 운동이 집단화의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경찰의 인종차별적 조치에 저항하는 시위가 광범한 지지를 받으면서 겉잡을 수 없이 전개되고 있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합법성에 대한 위기는 여러 상황적 조건과 얽혀 있다. 이제 수백 수천만의 미국인들은 실직을 당해도 자신이 당하는 고통에 대하여 스스로를 탓하지도 않고 이웃과 하나님을 탓하지 않을지 모른다. 반면에 이들은 1930년대와 1960년대에 분노가 저항과 폭동으로 표출되었듯이, 이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볼지 모른다. 그 동안 익숙했던 일상적 과소비의 습관이 중단된 현재의 상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아야 한다. 더구나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어려움에 처해지고 대중이 열광하던 스포츠가 중단되어 있는 상황이 (스트레스에 쌓인) 일반시민들에게 자신이 처한 세상을 비관적으로 판단하게 만들지 모른다.
그간 미국의 정치질서는 단지 강압에만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강압과 더불어 선거를 통해 합의를 용이하게 만들어가는 기제들로 이루어져 왔으며, 이러한 과정들로 인해 국가전복이 가능하지 않도록 작동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많은 영역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상실되면서 권위에 대한 합법성이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이라는 합중국은 군조직, 경찰, 법원, 정치와 행정시스템 등 기구들을 갖추고 있는데 이중에 시민들은 경찰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행정부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했다. 경찰력은 군대와 마찬가지로 정부에게 반드시 필요한 (강제력의) 무기이다. 인종과 계급 그리고 젠더 위에 군림하는 지배구조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정치질서를 유지하고 방어하는 임무를 지닌다.
현재 일어나고 있듯이, 권위에 대한 합법적인 동의를 형성하지 못하는 경우에, 정부는 국가의 강화된 강제력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국가강제력은 평시에도 결코 방관의 휴식상태에 있지 않다). 이것이 조지 플로이드 살해에 대한 항의시위를 진압하기 위해서 무장경찰과 국가수비대가 동원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군대조직이 대기한 이유이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유지하고 방어하기 위해 필요한 억압기구로써 물리적 폭력에 의존하고 있다.
소위 미국의 위대함에는 인종차별이 필수적이었다. 트럼프가 외치는 ‘위대함’속에 인종차별이 내재되어 있으나, 경제적인 성공이라는 구호 속에 묻혀 있었다. 논쟁의 여지는 있겠지만, 건국의 시절부터 미국의 인종차별은 국가가 후견하는 정책이었고, 그동안 북아메리카의 원주민 학살과 노예제도 그리고 실제적인 인종분리를 진행하여 왔다. 역사를 통해 멕시코 땅을 남서부에 합병시켰고, 쿠바와 필리핀 푸에토리코, 하와이, 괌, 알래스카의 침략 및 정복을 진행하여 왔으며, 이 과정에서 물리적 폭력을 자행하고 종종 잔인한 학살(carnage)의 트라우마를 남겼다.
물리력은 침략과 억압 그리고 폭동에 항상 개입하지는 않지만, 폭력은 억압받는 사회와 지역의 높은 실업률, 가난, 경찰의 잔악함 그리고 감금 등 동반한다. 동시에 폭력의 결과는 개인과 사회의 파괴라는 현상으로 발전하는데, 자살과 심한 음주, 마약복용 등으로 표출된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갖는 제국주의적 성격의 한 측면이며, 자본주의가 정착되면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피와 먼지를 쏟아 붓게 된다’고 마르크스가 논평한 배경이기도 한다.
미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외국에서 자원을 약탈하고 시장을 장악하고 지배하기 위해서 군사력에 의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저임수준에서 일을 해야 하는 숙달된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필요하다. 소수의 혜택을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비참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체제를 정당화시키는 이념과 상응하는 물리력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Chris Parenti(1999)에 의하면, 어쩔 수 없는 모순이 자본주의 심장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으며, 산업예비군을 유지하기 위해 가난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빈민들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위협을 받게 된다. 이런 배경으로 발생하는 모순을 관리하기 위하여 경찰과 감옥 그리고 범죄처벌법 등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1960년대에 항의시위와 폭동이 폭발한 결과로 경찰에 이들 새로운 범죄를 다루는 부서가 팽창하고, 1979년대 중반에 이르러 투옥의 비중이 절정에 이르게 된다. ‘마약과 전쟁’정책을 입안한 Glenn Tonry는 이 정책의 시행으로 미국도시들의 주변(소수인)지역에 집중되면서 많은 흑인들과 라틴계 인종들이 투옥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금지지역(ghetto)이 설정되고 마약의 전쟁은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수행되면서 이 제도는 폐쇄와 폭력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해당 인구들을 부정직하고 위험하며, 격리와 감시대상으로 만들었다.
Pamala Oliver에 의하며, 2004년에 일어난 흑인파워운동에 대해 흑인남성들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대규모의 투옥을 강제 도입하였으며, 억압받는 사람들이 상황에 저항하는 것뿐만 아니라 혁명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는 이들을 ‘위험인물’이라는 범죄의 이름으로 억압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대부분의 경우, 기업독점국가의 형태로) 사적소유권과 이익 그리고 경쟁에 기초하고 있다. 창출되는 부는 사회가 공유하지 않는다. 단지 소수가 소유하며 보상과 명예가 집중되는 상황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념이 필요하다. 부는 어디에서 오는가? 노동을 통해서 발생하며 토지와 자원을 이용해서 발생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는가?
경찰의 효시는 1829년에 영국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당시 영국정부는 산업자본주의의 새로운 경제질서를 지원하고 정치적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제력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따라서 경찰의 역할은 애초부터 부유한 유산계층을 폭도들로부터 보호하고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무질서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동시에 당시 아일랜드를 식민지로 점령하면서 발생하는 폭동과 정치적 반란을 혁신적으로 제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Alex S Vitale는 미국의 경찰은 본질적으로 인종과 계급의 불평등을 통제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흑인과 황색인종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이 경찰의 핵심적 역할이라는 것이다 사적재산권을 보호하고, 폭동을 진압하고, 파업 등 산업의 쟁위행위들을 억제하는 일이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노예제도와 필리핀의 식민지화를 지원하고, 텍사스 원주민을 억압하고 미국의 영토확장을 위한 수단으로 텍사스 원주민을 억압하고 무력화시켜 왔다.
현재 미국경찰력의 목표는 자동화와 탈산업화 및 탈규제화 등으로 빈민층과 소수인종의 집단에서 발생하는 노동의 잉여인구를 관리하는 것이다. Parenti가 지적하였듯이, ‘마약과의 전쟁’은 바로 이러한 정책 목표를 가장한 트로이의 목마였다.
경찰조직과 국가강제력은 항상 정치적 중립이라는 문제를 야기하여 왔다. Charles Tilly의 연구는 강제력과 합법성의 변증적 관계를 잘 보여준다. 그는 사회계약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국가의 성격이 무엇이던 간에, 국가는 가능한 모든 것을 조직하고 폭력을 독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민간적인 단체들과 비교하여 공식적인 기구들과 협력을 도모하며 적용대상인 시민들의 광범한 동의 하에 보다 효과적으로 보다 효율적으로 광범위하게 폭력을 조직하는 과정을 통하여 국가의 합법성이 획득된다고 설명한다.
Stephanie Kent 와 David Jacobs는 가장 권위적인 정치인이 이를 독점한다 하더라도 강제력만으로는 사회가 유지될 없으며, 다른 수단들과 결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연구를 보면, 경찰력이 갑자기 시위 등 진압 과정에서 무기력해지고 대응을 못하는 경우들을 열거하면서, 빈민들이 더 이상 불평등을 수용하지 않고 부의 재분배를 요구한 여러 사례들을 증거하고 있다. 때때로 저항하는 시위대는 설정된 금지선을 넘어서 행동하는데, 이는 폭력에 항거하여 즉흥적으로 진행되곤 한다.
다시 말하면, 시위자는 자신의 뜻에 따라서 금지선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구타를 당하거나 타의로 저지당하면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질서의 확립과 유지를 위해서는 핵심적인 요소가 강제력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민주사회에서 보듯이 자원의 분배가 불평등하여 소수만이 실제적 자유와 권리 그리고 안전을 누린다면, 해당사회는 불안정하게 된다. 현재 미국에서는 유색인종이 범죄를 다루는 것이 법질서의 목표가 되었고, 이에 따라 비대칭적인 처벌을 받으면서 이들 개인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불평등한 관계는 12백만의 경찰 및 군대조직에 의해 유지되고 있으며, 수십 수백 억불의 예산이 이러한 강제력의 기구에 투입되고 있는데, 경찰조직에서 시작하여, 교도관, 국가수비대 그리고 일부 군대조직에 이른다. 이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미국이라는 국가를 유지하고 세계 속에서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국내외 정책을 받쳐주는 기능을 한다.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데 미국 국내에만 7백만 명이 종사하고 있으며, 세계의 경찰력을 유지하는 목적으로 형편없는 조건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에 배치되어 있다.
현재 미국인구의 12%가 흑인이며 15%가 라틴계이다. 그러나 통계에 따르면 이들 2개 그룹에서 구속 수감된 사람들의 60%를 차지한다. 2012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수감된 흑인 숫자는 2,841 명이고 라틴계는 1,158 명에 달하는 반면에 백인의 경우에는 463 명이다. 이렇듯 인종별로 편차를 보이는 수치는 범죄를 다루는 법체계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수감자 수치는 산업화된 국가군에서 가장 높으며, 인종별로 분류하면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다중(mass) 수감 상태는 사회의 주변층에 대한 봉쇄를 의미하며, 흑인과 유색인 그리고 원주민과 빈민층에게 비대칭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사회적 특권과 부유함과는 담을 쌓고 있는 이들 그룹은 동시에 정치적 질서를 가장 위협하는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인종적 접근을 통해 분석해보면 왜 소수인종들이 범죄를 야기하는지 잘 설명해 준다.
경찰력의 집행이 빈민과 소수인종의 집단에 편중되면서, 이들이 다수인 일부 주 단위에서 시민들의 요구에 응하지 못하고 권리를 보호하지 못하면, 범죄는 국가를 무시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들의 시위는 주정부의 합법적인 권위를 붕괴시키고 항거와 폭동과 조건을 형성한다.

조지 플로이드의 살해에 대한 전국적인 시위가 폭발하면서, 그동안 경찰에 의해서 살해된 알려지지 않은 많은 흑인들의 죽임에 대해서도 분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것 역시 비상식적이고 정당화될 수 없는 죽임이었고 이에 대해 경찰은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법집행의 일방강행은 흑인, 라틴계, 원주민 그리고 빈민사회를 격분하게 하고 있다.
이제 문제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게 되었다. 매일 항의와 폭동이 일어나면서, 그동안 비무장의 흑인과 시민들을 반복적으로 살해한 경찰에 대하여 모든 시민들이 주목을 한다. 워싱턴포스트의 보도에 의하며 경찰에 의해 사살 또는 죽임을 당한 시민의 상당수가 백인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흑인들은 비대칭적으로 사살당하였다. 흑인의 인구 비중이 13%에 불과한데, 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수치는 백인의 두 배에 해당한다. 라틴계에도 같은 경우가 적용되며, 미국에서 경찰에 의해 살해당하는 수치 역시 산업국가군에서 압도적으로 높다.
살해의 배경은 비무장 상태와 무장상태, 범죄가 확인된 사례와 단지 혐의를 받고 있던 경우, 그리고 인종적 차별 등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일치하는 것은 법집행 과정의 살해가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핸드폰의 카메라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강제로 수색을 당하지 않았으면, 시민들은 경찰의 요구에 순응하였을 것이다.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상대가 흑인이거나 유색인종인 경우, 경찰이 더욱 무자비하게 취급했으며, 이런 행동이 일부 예외적인 경찰과 소수의 조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권위가 위기에 봉착하면서 기존의 주류 매체들은 흑인들의 항의가 제한된 지역에서만 일어난 것으로 묵살할 수 없게 되었다. BLM(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운동이 성공하게 된 배경에는 운동을 조직한 중심에 흑인들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이 함께 결합한 것이다. 경찰의 잔혹함을 경험한 흑인들과 유색 사회의 자연발생적인 항거와 폭동이 BLM운동을 계기로 하여 이러한 부정의不正義한 행동들이 미국전역과 국제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다문화의 다양한 지원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유명인사들과 스포츠 선수들까지 응원을 보냈다. 갑자기 모든 시민들이 인종차별의 반대운동을 벌리고 있다. 동시에 이번 사건이 기회주의적인 양대 정당의 독점적인 정치시스템, 그리고 잘못된(거대기업이 소유한) 대중매체를 손볼 계기라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게 되었다.
반면에 양당의 정치지도자들과 대중매체의 기업들이 그들에 의해 반쯤 불신을 당해온 정치질서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정치인들과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새로운 앵커들은 조지 플로이드의 살해를 비난하는 동안에도 미국의 현재라는 현상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이들은 논쟁의 초점을 경찰력 행사과정에 대한 훈련, 책임의 당사자에 대한 기소와 해고, 인종문제에 대한 교육, 그리고 현재의 분노를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해소하는 등으로 유도한다. 불행하게도 이들은 극심한 불평등의 미국사회에서 경찰이 수행해야 하는 근본적인 역할과 임부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고 못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조지 플로이드의 살해에 따른 분노를 폭력적이며 불복종적이고 약탈과 방화라는 측면과 결합시키면서, 미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항거의 다양한 수단이 시민불복종과 파괴와 기업재산과 국기의 훼손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과 경찰이라는 조직이 문제라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시위자들을 도적, 테러리스트 또는 러시아나 Antifa(반파시즘)의 외부세력에 조종당하는 자들로 폄하하는 것은 ‘미국이 바로 문제 그 자체’라는 사실을 회피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수백 수천만 명의 시민들은 미국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였고, 정치인 자신들만을 위해 지속되는 정치의 과정에서 소외를 당하고 있었다. 유명한 아나키스트가 다음과 같이 외친 것처럼 말이다 “선거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이는 불법적인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오랜 관행인 착취적인 시스템이 더욱 급진화되었다. 실제로 2011년에 있었던 점령시위와 2013년에도 있었던 BLM운동 역시 정치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면서 발생하였던 것이다. 현재의 운동이 시민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상기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정치 지도자들은 이들을 전혀 대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3년 Ferguson의 경찰살해 등 여러 사건들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더구나 양당 체제하에서 이러한 사건들은 정치적으로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합법성의 위기는 정치권이 경찰살해 사건에 무관심하면서도 당시 금융위기 당시 월가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대비하면서 발생한다. 현재 COVID-19 상황에서도 양대 정당들은 기업구제에 우선적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양대 정당들은 1994년 클린턴 행정부 당시 입안되었던 폭력범죄 법안 등 범죄에 대한 가혹한 입법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법안들은 일부 다중의 수감과 소수인종을 대상으로 하는 가혹한 법집행의 조항을 담고 있었다. 양대 정당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화함으로써 빈민층과 일반시민들에게 경제적 고통과 불안정을 야기시킨 책임을 지고 있다. 이들은 클린턴 시절 사회안전망을 악화시키는 데도 공조하였다.
또한 오바마 시절에는 월가 구제에 온갖 정성을 다 쏟으면서도, 일반건강보험의 도입 대신에 부담자원칙의 건강보험을 채택하였고, 2014년에는 푸드뱅크의 예산을 삭감하는 Farm 법안을 도입하였다.
양대 정당은 미국의 잘못된 현상을 유지시키는 양측의 날개일 뿐이다. Glen Ford는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비록 백악관에 흑인이 주인으로 들어갔어도 인종차별적 자본제 국가는 흔들림없이 지속되었다고 지적하며, 마치 인종차별의 시대가 지나간 것처럼 각색하는 동안에, 기업의 파워는 강화되었고 제국주의적 아젠다는 계속되었다고 비판한다.
1960년대에는 다양한 국가정책이 도입되어, 도시에서 폭동이 줄어들고 정치적 지위와 시장직 등에 유색인들이 참여하고 선출될 수 있는 입법조치가 이루어 졌지만, 이는 사회심리적인 것인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미국이라는 국가가 자본제국주의라는 성격을 변화시키지 않고, 형식적인 조직 개혁에만 안주하면서 현재의 정치적 질서를 고집하는 한 경찰조직의 성격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이번에 겪는 합법성의 위기는 행정부를 포함한 양대 정당에 대한 불신을 담고 있으며, 경찰력은 단지 문제가 많은 국가의 유지 수단이라고 지적하는 것이 옳다. 현재 길거리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항의와 지속적인 시위들이 이를 입증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경찰조직의 책임자로부터 시위현장병력까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침묵의 푸른 선 밖에 숨어 있는 진실로, 시민들을 경찰과 대치하게 만드는 것은 푸른 저지선과 경찰을 대치하는 시민들의 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사회가 지니고 있는 불평등과 불의不義인 것이다.
출처 : Global Research on 2020-06-11.
Vince Montes
사회학 교수이자 의사. 뉴멕시코 대학에서 의학과 사회학을 전공하였고 워싱턴대학 등에서 연구생활을 하였다
코로나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2차와 3차 대유행이 오리라는 데 의견이 일치해 가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 볼 때 1918년 스페인독감과 1968년의 홍콩독감 때도 그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장기화하는 코로나사태는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까?

오늘날의 경제위기는 1929년 대공항 당시와 그 발현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당시만 하더라도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는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복지국가’ 관념이 보편화되었으며, 평상시 정부는 경제에 적극 개입하면서 대중의 기본적 생존권도 책임져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과연 국가의 개입 여력은 어느 정도일까?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위기의 징표는 아마도 이 같은 국가 개입 한도와 관련 있을 것이다. 국가가 돈을 푸는 정책이 유효한 한, 경제위기는 비록 국부적 혼란을 가져올망정 결코 체제 전반을 위기에 빠트리지는 않는다는 것이 여러 차례 입증되었다.
예컨대, 2008년 금융위기 시 미국은 경제위기를 불러일으킨 주범이었다. 하지만 달러를 무제한으로 푸는 양화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남들보다 먼저 위기를 탈출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통할까?
그러나 지금처럼 중국과 같은 강력한 전략적 경쟁자가 존재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 때문에 중국변수는 매우 중요하다. 향후 코로나 경제위기와 관련하여 중국은 다음 세 가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국제 소비시장의 역할이다. 코로나사태를 맞이하여 미국의 경제상황은 크게 위축되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활동으로 축소되었다. 이는 세계경제 발동기가 일시 작동을 정지한 것을 의미한다. 다른 나라들도 대부분 이 전염병의 유행으로 급격한 경기위축을 당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정부도 미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기업의 줄도산을 막고 서민생계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부채가 크게 느는 것을 감수하고, 중앙은행을 통한 이자율 인하와 통화증가 정책을 최대한 활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국과는 달리 이들 국가의 화폐는 세계기축통화가 아닌 관계로 곧 국가부채의 임계점에 도달하게 된다. 이론상으로는 국가부채가 GDP의 60%정도까지는 괜찮다고 하지만 그것은 모든 나라에 공평하게 적용되는 기준은 아니다.
IMF는 2010년 보고서에서 선진국은 GDP 대비 60%, 신흥국은 40%를 넘지 않도록 관리할 것을 조언하였다. 따라서 일반 개도국은 이 선 가까이 가게 될 경우 신용등급이 하락되고 외자가 유출되는 등 상당한 대외적 압력을 받게 된다. 유럽연합이 평균 부채율의 120%임에도 여전히 버틸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강력한 독일 경제를 바탕으로 지탱되는 유로화라는 기축통화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가장 다급한 것은 바로 일반 개도국들이다. 그들은 비록 코로나사태로 인해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되더라도 여전히 원유나 식량, 기존 외자대출금 상환에 사용될 달러와 같은 국제결제화폐가 필요하다. 그 때문에 평소 일정한 외환비축이 있어야 하며 외자의 철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 국가들은 코로나사태 하에서 어쩔 수 없이 증가하게 될 정부부채에 대해 미국 정부처럼 여유를 가질 수가 없다. 만약 미국을 대신해 자국 경제를 가동시킬 동력을 제공하는 국가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들에게는 구원자와 다름없을 것이다.
유럽연합과 일본도 개도국보다는 사정이 다소 낫지만, 그렇다고 내부 사정이 그리 여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세계기축통화 국가이기에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있긴 하지만, 그 여력은 미국에는 훨씬 못 미친다. 만약 코로나사태의 여파가 오래 갈 경우 치솟는 실업률과 정부부채 증가 속에서 이들 국가도 사회적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심화될 수 있다. 따라서 이들도 자신들의 경제에 활로를 제공할 수 있는 외부의 동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중국밖에 없다.
중국은 이번 코로나사태로 인해 가장 먼저 피해를 입었지만 또한 가장 먼저 방역에 성공한 국가이다. 중국정부가 취한 방역조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특성에 맞는 상당히 과학적인 방식으로 평가된다. 한국 방역 전문가로서는 유일하게 지난 3월 WHO 공동조사단으로 열흘간 베이징·선전·광둥성·광저우에 출장을 다녀온 이종구 전 질병관리본부장(서울대의대 교수)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공산주의 체제에서나 가능한 우한(武漢) 봉쇄 정책이 어쨌든 유효했다. … 의료진 4만여 명이 우한에 투입됐다. 대형 체육관에 병상을 만들었다. 중증(重症) 정도에 따라 환자를 분류해 재배치했다. 역학대응팀을 1800개 구성해 접촉자들을 찾아내 격리했다. 스마트폰으로 이들의 격리 상태를 매일 체크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자원을 한꺼번에 동원하는 중국을 보면서 전율을 느꼈다.” (조선일보, 2020년3월2일)
중국은 전염병 감염지역을 초기부터 과감하게 봉쇄하고, 전국의 이동을 2주간 금지시키면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범위를 분명히 하였다. 그런 다음 감염지역에 대한 집중적인 의료 지원과 치료를 통하여 오염원을 근원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처럼 일차 방역에 성공한 뒤에도 계속해서 사후 관리를 늦추지 않고 ‘통행바코드 발행’ 등 각종 보완조치를 취하고 있는 중이다. 이를 통해 2차 확산을 방지하면서, 그간의 방역성과를 기초로 지난 3월 중순부터는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재개하였다. 지금은 일부 서비스업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업종이 코로나사태 이전의 가동률을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발표된 중국 통계는 이 같은 경제활동의 재개가 매우 성공적임을 확인시켜 준다. 중국 국가통계국의 3월31일 발표에 따르면, 3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52.0으로 집계되었다. PMI는 50을 넘을 경우 경기 활성화를 보여주는데,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한 지난 2월 지수(35.7)는 물론 <블룸버그> 통신 등이 내놓은 시장의 평균 예상치(44.8)도 훌쩍 뛰어넘는 결과였다. 또 5월7일 중국 해관총서의 발표에 따르면, 중국의 4월 수출도 작년 같은 달보다 3.5% 증가하면서 가파른 회복세를 보여주었다. 이는 로이터통신이 집계한 시장 전망치인 -15.7%와 전달의 -6.6%를 크게 웃도는 것이었다. 중국 내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가장 극심했던 1∼2월 수출 증가율은 -17.2%까지 떨어진 바 있다.
중국 4월 수출이 3.5% 증가를 보인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것은 코로나사태가 발발하기 전인 전년도 동기와 대비한 것이다. 지금처럼 전 세계 교역이 대폭 감소된 상황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성과라 평가받을 만하다. 비록 중국의 같은 달 수입은 작년 동월보다 14.2% 감소했지만, 그럼에도 다른 나라들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희망을 제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할 만한 사건이 있다. 중국 언론들은 지난 5월 중순, 시진핑 주석이 산간벽지의 빈곤마을들을 방문한 기사를 일제히 크게 보도하였다. 시주석의 시찰은 2020년 말까지 빈곤층을 완전히 제로로 만들겠다는 중국 정부가 기존에 내건 ‘전면적 소강사회 건설’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것이라고 해석된다. 그것은 앞으로의 코로나 방역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지난 19차 당 대회(2017년)에서 발표한 ‘두 개의.백년’ 전략목표가 차질 없이 수행되고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정책 추진은, 현재 이미 3억 명을 넘어선 중국의 중산층을 계속해서 증가시킬 것이며, 확대되는 중국시장 규모는 코로나 경제위기로 인해 해외 수요에 목말라 하는 다른 나라들에게 있어선 ‘가뭄 끝에 단비’일 수밖에 없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이번 코로나사태를 계기로 중국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더욱 높이게 될 것으로 보여 진다. 환구시보에 따르면 2018년 중국 내수시장 규모는 이미 미국과 같아졌다.
둘째, 국제 공급중심의 역할이다. 공급측면에서 볼 때, 중국은 이미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국제 분업의 가치사슬로 본다면, 그것은 첨단 기술을 포함한 최상위 고급산업은 미국과 유럽‧일본이 차지하고 단순한 제조기지로서의 낮은 위상에 불과하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덕택에 중국은 유엔의 산업분류에 따른 대분류 41종, 중분류 207종, 소분류 666종 전 산업을 고루 갖춘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이 같은 완비된 산업체계는 코로나 전염병으로 인해 국제 분업 사슬이 자주 끊기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매우 유리하게 작용한다. 다른 나라의 생산 활동이 이것저것 부품공급의 차질로 순조롭지 못한 때, 중국은 나름대로 온전한 경제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품종이 다양하면서도 값싸고 질 좋은 경공업제품은 물론이요, 아직까진 초정밀기계 제작과 반도체에 있어선 일본‧독일‧한국만큼 최고급 제품을 만들어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대체재 공급이 가능한 수준에는 올라와 있다. 특히 국제적 경제교류가 지금처럼 정상적이지 못한 상태에서는, 각국이 마스크나 산소호흡기와 같은 긴급 의료물자에 대해 이것저것 까다롭게 따질만한 게재가 못된다. 중국은 지금의 코로나사태가 가져다준 일시적 공백을 틈타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기술력을 제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셈이다. 마치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 후방기지 역할을 하였던 미국이나, 한국전쟁 발발 직후 유엔군의 후방기지 역할을 하였던 일본과 같은 뜻하지 않은 행운이 중국에 찾아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제 글로벌 타임스는 5월18일 중국의 ‘의료물자 특수’와 관련한 기사에서, “5월 1일 기준 중국이 해외에 수출한 마스크 수는 500억9천만 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중국은 마스크 외에도 이번 코로나19 발생 기간에 방호복 2억1천600만 벌과 의료용 고글 8천103만 개, 적외선 체온계 2천643만 개, 수술 장갑 1억4천만 켤레를 수출했으며, 이 밖에도 코로나19 검사 키트 1억6천200만 개와 산소호흡기 7만2천700대를 해외에 공급했다.
중국은 이번 기회를 활용하여 자신의 독자적인 국제 산업생태계를 구축하고, 국제 분업질서에 있어서의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자 할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은 4차 산업혁명을 계기로 세계 선진국 대열로 도약하기 위한 ‘중국제조 2025’ 전략을 야심차게 추진 중이다. 이 때문에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패권국가인 미국과 전면적인 무역전쟁까지 벌였었는데, 이번 코로나사태는 중국에 날개를 하나 더 달아 준 셈이 된다. 중국은 지금 코로나19 방역으로 인한 손실을 만회할 요량으로 4차 산업 관련한 경제기반 구축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5세대(5G) 통신 기지국, 도시 간 고속철도, 전기차 충전 시설, 빅데이터센터, 인공지능, 산업용 인터넷 등을 ‘뉴 인프라’라고 부르면서 이들 분야에 대한 투자를 강화 중이다.
예컨대, 중국국가전력망회사는 올해 27억 위안(약 4700억 원)을 투입해 전기차 충전 설비 7만8000개를 설치할 예정이다. 다른 전력 회사인 남방전력망도 4년간 251억 위안(4조3500억 원)을 투입해 충전설비 38만개를 설치할 계획이다. 친환경차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급도 2022년까지 2년간 더 연장하기로 하였다.
중국 공업정보화부의 4월23일 발표에 따르면, 5G 가입자 수는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5000만 명을 돌파하였으며, 같은 기간 5G 통신기지국 수도 19만8000개로, 한국의 10만9000개를 2배 가까이 추월했다. 현재 일주일에 1만 개의 속도로 건설 중에 있으며, 금년 말까지 모두 60만개의 기지국을 세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최종적인 건설 목표는 600만 개 이상이다.
여기서 5G 건설에 있어 화웨이나 종씽(ZET)과 같은 국제 경쟁력을 보유한 중국 기업들이 세계 선두에 서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이 무엇보다도 빅데이터에 크게 의존하는 이상, 이를 가능케 하는 기반으로서의 사물인터넷의 실현이 매우 중요하다. 전송시차를 없애고 대용량 전송이 가능한 5G가 충분히 상용화하여야만 사물인터넷의 실현이 가능하다. 그러니 만큼 중국이 이 분야의 선두에 서서 코로나사태로 2만개 기지국 정도에서 멈춰서있는 미국과의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5G는 극초단파를 사용하는 만큼 기지국 건설이 관건이다.
그밖에도 중국은 풍력과 태양열등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이미 총연장 2만8천km에 달한 고속철도망을 더욱 촘촘히 건설해 가는 한편, 원래 계획했던 우주정거장 건설을 위해 천궁(天宫)2호 우주선도 5월20일 성공리에 발사하였다. 2022년 화성탐사 계획을 발표하는 등 後코로나시대를 대비한 정책들이 연이어 나오거나 예정되었던 계획들이 순조롭게 집행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발표가 최근 있었는데,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 따르면 지난 해 국제특허 출원 건수에서 처음으로 중국이 미국에 앞섰다는 소식이다.(아래 표 참조)

미국은 그간 관련 통계가 집계된 1979년부터 40년 연속으로 1위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중국에 선두 자리를 물려주고 말았다. 주목할 만 한 점은, 중국이 미래 산업이라 불리는 5G·드론·인공지능·재생의료 등의 분야에서 압도적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프랜시스 거리(Francis Gurry) WIPO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지식재산권이 세계 경쟁의 초점이 되고 있다”면서, “중국의 급속한 성장은 기술 혁신의 중심이 세계의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조선일보, 2020년4월13일)
이처럼 중국의 최첨단산업 분야에 있어서의 도약은 앞으로 국제 분업의 중심축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전하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이번 코로나사태는 그 같은 변화의 중대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그 어떤 나라도 중국의 이 같은 도약을 저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셋째, 달러패권 종식자의 역할이다. 중국의 이상과 같은 시장과 공급 양 측면에서의 부상은 필연적으로 그에 수반하는 국제통화질서의 근본적 재편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위안화라는 유력한 새로운 기축통화의 등장을 통해 마침내 기존 달러패권은 종식되게 된다.
중국은 그렇지 않아도 달러패권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동안 자국화폐인 위안화의 국제화에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위안화는 2015년 IMF에 의해 정식으로 세계기축통화의 하나로 인정받았으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브릭스은행이 설립되는데 있어서도 중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2013년 이래 일대일로를 야심차게 전개하였는데, 현재 일대일로 정식 회원국은 60여개 국가이며, 참여를 표시한 국가도 120여 개국에 달한다. 중국은 이러한 참여국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위안화의 저변을 넓혀왔다. 2019년 3월에는 상해에 석유선물시장을 개장함으로써 뉴욕선물시장 외에 위안화로 표시되고 결재되는 또 하나의 석유선물 거래시장이 존재하게 되었다.
인민은행은 최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중앙은행이 주관하는 ‘디지털화폐’의 발행을 선언하면서 이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다. 소주 등 몇 개 대도시에서 실제로 사용을 시작하는 등 그 상용화를 위해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인민은행이 6년의 준비 끝에 내놓은 이 화폐는 스마트폰에 저장한 채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5월23일 한국금융연구원의 정기 간행물 ‘금융브리프’에 발표된 한 선임연구위원의 글에 따르면, “중국이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인 일대일로 국가들과 코로나사태를 통해 중국 보건 외교의 혜택을 입은 국가들은 디지털 위안화의 사용을 희망할 수 있다”며 “이들 국가가 디지털 위안화로 무역 결제와 국가 간 송금을 확대하면 위안화의 입지는 급속히 강화할 것”이라고 보았다.(“코로나 사태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곧 등장…위안화 입지↑”, MK증권, 2020년5월23일)
이러한 모든 것이 국제 달러 결제시스템과 달러패권의 영향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중국의 노력이라 할 수 있으며, 이제 중국은 코로나사태가 준 기회를 십분 활용할 것이다.
세계 각국은 지금 중국의 시장과 그 완비된 산업체계를 통해 만든 방역물품을 비롯한 각종 중간재들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중이다. 중국은 이런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여 각종 교역을 위안화로 하거나 최소한 결재에 있어 달러와 위안화 두 화폐를 동시에 사용토록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대종 상품(석유‧구리‧철광석‧옥수수 등) 수출에 주로 의존하는 국가들로서는 값싸고 질 좋은 중국의 제품을 지금 같은 시기에는 더욱 필요로 한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마스크나 방제복, 소독약, 치료제, 산소호흡기 등의 의료용품 또한 절실한 상황이다. 현재 그 같은 요구를 전혀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미국을 대신해, 중국은 지금 그들 나라에 있어서는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되고 있다. 그 같은 사정 때문에 중국이 바라는 위안화 결재를 거절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력한 세계기축화폐가 되기 위한 조건은 다음 두 가지이다. 즉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결재 수단’으로서 기능해야 함과 함께, ‘가치저장 수단’으로서의 기능 또한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볼 때 위안화는 현재 달러보다 유리한 조건에 있다. 달러는 이번 코로나사태를 겪으면서 미 연준의 과도한 통화발행과 미 연방정부 부채의 증가로 인해, 향후 코로나사태가 종식 된 후 세계경제가 정상화 될 경우 악성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고 가치절하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과거 몇 차례 경험을 통해 학습효과를 갖게 된 각국은, 지금은 달러보다 ‘실질 구매력’을 갖는 위안화를 보유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이는 누가 강요하지 않더라도 위안화에 대한 자발적인 보유를 유도할 것이다.
이제 마침내 2차 대전 종식 이후 70년 넘게 유지되어온 달러패권 시대가 정식 막을 내리고, 여러 기축통화 간의 진정한 경쟁 시대가 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경쟁은 세계 공용의 단일한 ‘보편적 화폐’를 탄생시키기 위해 반드시 경과해야 할 디딤돌이라 할 수 있다. 달러를 대체할 세계화폐로는 아마도 현재 IMF 회원국 간에 내부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특별인출권(SDR)’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 진다.
김정호 박사
중국 북경인민대 경제학 박사. 다른백년 고정칼럼 ‘중국의 시각’ 기고자
전 세계에서는 포스트 코로나(Post COVID-19) 시대를 앞두고 리빙랩의 역할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유럽 전 지역의 400개가 넘는 리빙랩이 모인 국제적 연합체인 유럽리빙랩네트워크(European Network of Living Lab,이하 ENoLL)는 지난 4월부터 코로나19(COVID-19: Current actions preparing our digital societies for a post-COVID future)와 관련해 연속적으로 웨비나(자세히 보기)를 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학생들은 강의실이 아닌, 인터넷 화면을 통해 선생님을 만나고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많은 대학들이 내년 여름까지 대면 강의를 취소하고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할 예정인데요.
그렇다면 학교는 온라인 강의를 위해 완벽히 준비하고 있을까요. 학생들은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텅텅 비어버린 학교는 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다양한 매체에서 코로나19 이후 대학 운영에 대한 우려를 비추고 변화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가운데 지난 6월 16일 ENoLL 웨비나에서도 4명의 스피커들이 어떻게 교육을 디지털화 할 것인 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참여 리더십으로 대학의 위기를 대처하는 스페인 미디어랩
첫 번째 발표는, 스페인 그라나다 대학 부설인 미디어랩(Medialab URG)의 에스테반 로메로 프리아스(Esteban Romero Frías) 디렉터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자세히 설명하며 앞으로 대학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제안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미디어랩은 아카데미아와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오픈 실험실입니다. 실제 직면한 상황을 분석하고,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기회를 분산해 사회에 적용합니다. 특히 △시민 참여 △실험 △사회혁신 △시민의 적극성 △개방성과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젝트에 활동하고 있습니다.
먼저 살펴볼 사례는 UnInPública 입니다. UnInPública는 Universities for Public Innovation의 합성어로 공공혁신을 위한 대학 간 이베로아메리카 네트워크입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대학과 사회를 연결하기 위한 이니셔티브를 갖고 있습니다. 시민과 소셜 섹터, 공공 섹터 간의 협업을 중심으로 사회 혁신을 이루고, 또 이를 통해 공공정책 발전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프리아스 디렉터는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것보다 2030 아젠다에 집중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나아가 열린 참여, 쿼드러플 헬릭스 모델 혁신을 기반으로 이니셔티브를 구체화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 5월 열린 컨퍼런스에서는 500명의 참여자, 50명의 스피커와 퍼실리테이터, 대학 43곳 및 기관 17곳이 참여해 코로나19에 관한 대학의 대처와 변화를 논의했습니다.(홈페이지 링크)
파쿨타드 세로(facultad cero)는 화상수업 플랫폼에 익숙하지 않은 교수나 강의자가 앞으로 어떻게 수업을 준비할 지를 고민하는 기관입니다. 단순히 이용자가 플랫폼에 적응하도록 훈련시키기보다 토론과 논의를 통해 전체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링크)
파쿨타드 세로는 경험을 공유하는 디지털 공간을 형성하는 것과 최근에 개발된 교육 혁신을 학습해 교육 과정 설계 개선에 반영하도록 화상회의를 개최하는 것 등을 주요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위 기관은 이미 스페인과 이베로아메리카와의 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참여 리더십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 글: 정보라 경영지원실 연구원 [email protected]
일본은 지난 일년 반 동안 연속적으로 세 번의 경제적 충격을 겪고 있다. 첫 번째 것은 미중 간의 통상전쟁으로 일본의 제조업 분야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면서 경제성장 속도를 낮추었다. 이러한 충격은 소비세를 2019년 10월1일 기준으로 8%에서 10%로 인상하면서 소비수요의 축소라는 두번 째 요인에 의해 더욱 악화되었고, 세 번째 충격은 가장 악성적인 것으로 Covid-19에 의해 일본은 완전한 수렁( full-blown)을 뜻하는 불황에 진입했다.

올림픽을 주최하면서 외국관광객의 목표를 의욕적으로 40백만 명으로 설정하였고 낮은 이자율을 유지하여 전국적으로 도시개발을 진행하여 왔다. 외국의 투자가 유입되면서 부동산 가격과 REIT(부동산투지신탁)지수가 꾸준히 상승세를 유지하였고, 국내은행들도 부동산 영역과 REIT관련 부문에 대출을 늘려 왔다.
관광과 건설 그리고 부동산 개발 등 분야가, 상기에 언급하였듯이, 2019년 제조업에 불어 닥친 불황을 보상하는 과정에서 잠재적인 위험이 발생하였는데, 즉 경제성장이 건설과 부동산 개발과 외국인 관광에 과다하게 의존하게 된 것이다.
팬데믹이 발생하기 이전에도 올림픽이 끝나면, 경기가 위축되면서 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이미 제기되었다. 대부분의 개발 프로젝트는 2020년 초에 완료되었고 과잉공급에 따라 부동산의 실제가격이 부풀려져 있었다. 이제 막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이러한 현안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2020년 2월에 접어 들면서 숙박업과 음식업 그리고 소매업 분야에서 파산이 발생하였다. REIT 지수는 상당하게 떨어졌고 경제와 사회 활동은 팬데믹의 긴급한 상황이 종결되는 6월이 지나야 재개될 전망이다.
그러나 회복의 속도는 여전히 느릴 것으로 전망하는데, 근거에는 COVID-19 봉쇄를 지속해야 한다는 일반여론과 더불어 감염테스트 능력의 한계가 존재한다.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되면서 파산이 늘어나고 은행대출은 악성부채로 전환될 전망이다.
일본의 경제규모는 지난 2분기 동안 축소를 거듭하여 왔는데 연율年率기준으로 지난 4/4분기에는 -7.3%이었고, 올해 1/4분기는 지난 분기 대비하여 -3.4%를 보이고 있다. 더구나 2/4분기에는 -20%로 더욱 악화될 것이 예상된다.
제공하는 구제지원 금액은 대동소이한 반면에, 미국과 유럽에 비교하여 일본정부의 조치는 매우 느리게 진행되어 왔다. 지난 4월초 정부는 명목 GDP대비 21%에 달하는 구제의 지원책을 발표하였다.
지원책은 세금유예와 사회안전망의 지원에 우선순위를 두고 대출수수료 인하와 은행대출에 대한 보증 등으로 이루어졌다. 고용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기업의 임금지원이 지원책에 포함되었지만, 신청절차의 까다로움과 승인의 과정이 지연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신청을 기피하기도 하였다. GDP의 3% 정도가 기업과 개인에게 현금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되었지만, 위기에 처한 기업들에게 추가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애초에 대상 가구당 2800 달러를 현금으로 지원할 계획이었으나, 해당 가구에 대한 자격심사의 까다로움으로 인하여 개인당 935달러를 지급하는 것으로 변경 조치하였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일본의회에서 관련법안의 통과가 지연되어 4월말에나 이루어졌다. 이번 위기를 통하여 공공서비스 즉 연금과 수당, 세금 및 복지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필수적인 주민등록번호(ID)인증에 결함이 있는 것과 더불어 정부의 기능이 부적격한 것이 밝혀졌다.
일본중앙은행(BOJ)의 역할이 미국과 유업의 중앙은행에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지난 5월 초, BOJ는 일반시중은행들에게 일시적인 유동성을 제공하였는데, 9월까지 지불(담보)요구를 늦춘다는 조건으로 최대 1년간(대부분은 3개월이었지만) 0% 금리를 적용하였다. 그러나 BOJ는 인하율의 기준치를 단지 10(10/100%)로 낮추었을 뿐, 이자수수료를 조정하지 않았다. 이에 반하여 유럽중앙은행은 일반은행에게 3년간의 유동성 대여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대폭적인 이자수수료도 제공하였다.
BOJ는 기업의 채권과 상업어음의 매집을 확대하였지만 대기업을 지원하는 것에 머물렀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이미 충분한 현금과 제예금을 확보하고 있고 비상적인 상황을 대비하여 추가로 채권과 어음을 발행한 상태이었다.
전체적인 기업들의 재무사정에 비해 상기의 매집 행위는 전체 GDP의 11% 수준으로 시장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협소하다. 기업에 제공된 은행의 대출규모는 GDP 대비 60%에 달한다. 중앙은행은 EFT(지수연동펀드)를 구입하는 액수를 늘렸지만 영향은 미미한 수준이며, 이는 가계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의 비중은 전체 금융자산의 10%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BOJ 제무표상 부채는 2020년 3월에 비해 겨우 5%정도가 늘어났다. 이러한 증가는 미국연방제도에게 차입을 통해 일반은행에 미국달러를 공급한 결과이었다. 물론 이것이 대형 은행이 외국환시장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돕기는 하겠지만, 국내의 수많은 중소규모 은행과 신용금고들과는 무관한 것이다.
지난 4월 말 BOJ는 다시 기업채권과 상업어음의 매수액수를 확대하였다. 이것으로 자격을 갖춘 대부업체와 금융회사들에게 일시적인 유동성을 부여하겠지만, 이런 조치는 COVID-19 위기로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에게 은행이 대출을 제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책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일자, 중앙은행은 5월에 긴급회의를 개최하여 해당은행들이 중소기업에 적은 이자수수료만을 받는 신용을 확대하는 자금지원의 프로그램을 추가하였다.
물론 이러한 확대조치는 환영할만한 것이지만, 2013년 이래로 지속된 QE 정책 때문에, 더 이상의 통화운용에 한계가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BOJ가 주식시장에서 ETF(증권연동펀드)의 상당한 매입을 통해 이미 상당한 위험을 감수한 마당에 더 이상의 위험을 감당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준다.
팬데믹은 일본정부와 BOJ의 역량을 시험하면서, 동시에 이들에게 경제의 지원에 필요한 만큼 혁신적이며 유연성을 지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출처 : EAF in Sydney on 2020-06-15.
Sayuri Shirai
Keio 대학교 고수이자 일본중앙은행의 기획담당 전직 임원
왜 안 터지나 싶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터졌다.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의 사망 사건. 이번엔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의 조지 플로이드(George Flyod) 사건이다. 체포 과정에서 백인경찰이 무릎으로 흑인 플로이드의 목을 눌려 죽인 끔찍한 사건으로 미국 전역에서 항의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시위가 격렬해지자 통행금지 명령이 내려졌고, 트럼프는 군 헬기 블랙호크를 띄웠으며 과격 시위와 약탈이 계속될 경우 군을 동원해 진압하겠다고 위협을 가하고 있다.(“8 Minutes and 46 Seconds: How George Floyd Was Killed in Police Custody,” New York Times, May 31, 2020; “What Happened in the Chaotic Moments Before George Floyd Died,” New York Times, May 29, 2020).

잊힐 만하면 흑인에 대한 백인 경찰의 과잉·강압에 의한 사망사건으로 시위가 벌어졌지만 이번만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시위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격화되고 있고 잦아들 기미가 안 보인다. 이번엔 백악관 앞까지 시위대가 밀고 들어갔다. 트럼프는 백악관 지하벙커로 대피하기까지 했다. 심상치 않다.
그런데 이번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를 단순하게 흑백간의 인종차별적 인권 유린 문제로만 보는 것은 사태를 잘못 짚은 것이다. 왜 그럴까? 미국의 모든 문제의 정점에는 반드시 인종문제가 있다. 마치 끓어오르는 화산의 마그마가 가장 약한 지반을 뚫고 폭발하듯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가 비등할 때 터져버리는 취약점이 바로 인종이다. 그래서 인종문제는 점잖은 표현으로 종합선물세트, 나쁘게 표현하면 오물통 같은 것이다. 오물이 쌓고 쌓이면 결국 흘러넘치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나는 격화된 시위를 단순히 흑백간의 차별에 분노한 시위, 즉 인종 간 문제 해결 요구로 축소시키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경계하고자 한다. 거기엔 다른 모든 문제들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종문제는 단지 그 분출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나의 우려와 경계는 이번엔 기우가 될 지도 모르겠다. 시위를 전하는 언론들도, 심지어 시위에 나온 필부필부들조차도 이번 사건을 기화로 뭔가 미국에 변화가 있어야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경찰의 잔인한 폭력을 징벌하라는 데만 있지 않고, 망가진 미국 시스템을 전체를 교정할 때가 왔다라고 하는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근접해 있는 것 같아 보여서 그렇다. 과거엔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미국에서 이전에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 많은 호응을 얻지 못하고 단발성에 그쳐버리고 근본적인 문제제기나 비판에는 한 발도 못나가고 그저 흐지부지 끝나버리는 것에 실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성급한 나만의 바람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미국과 미국인 자신이 자신들의 상태가 어떤지에 대해 확실히 알고 난 뒤에나 벌어질 일이었기 때문이다. 뭐든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과외나 학원보다 자기주도 학습이 더 중요하듯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이야기가 사뭇 다른 것 같다.(“The America We Need,” New York Times, April 9, 2020).
미국 언론은 지금 미국은 부싯깃 통(tinderbox)라고 이야기한다.(“American Is a Tinderbox,” New York Times, April 22, 2020). 불똥만 튀면 터져버리기 직전의 일촉즉발의 상태라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미국과 미국인들을 이런 상태로 만들어 버린 것이 되었을까? 그 계기는 코로나19다.

미국의 역사학자 헨리 코마거(Herny Steele Commager, 1902~1998)는 그의 책 <미국정신>(The American Mind, 1950)에서 “인류 역사상 미국처럼 성공을 거둔 나라는 없다. 그리고 모든 미국인이 그 사실에 대해 안다”라고 썼다. 그러나 코마거가 아직도 살아서 코로나를 겪고 있는 미국을 보고 있다면 아마도 저 문장을 다시 썼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이 거둔 성공은 어쩌면 허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미국인들이 그것이 착각임을 알게 되었다”라고.
뉴욕타임스 칼럼처럼 코로나 침공은 미국 역사상 미국 본토에서 일어난 최초의 침공으로 기록될 만하다.(“The First Invasion of America,” New York Times, May 21, 2020). 그리고 그 결과는 실로 참혹했다. 6월 3일 현재 확진자는 180만 명, 사망자는 10만6천 명을 넘어섰다. 미비한 의료체계와 환경으로 검사조차 받지 못하고 죽어나간 자들이 그 몇 배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걸 감안하면 완전한 참패다. 그러나 참혹함은 미국인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코로나로 인해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창피를 떨었다. 그런데 속된 말로 그 ‘쪽팔림’은 당하는 당사자들만 모르면(혹은 모른 체하면) 아무런 문제가 안 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이 정확한 사태 파악을 어느 순간 하게 되면 그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마치 안데르센 동화의 벌거숭이 임금님과 간신들처럼. 너나없이 벌거숭이 임금님을 칭송하던 이들이 임금이 벌거벗었다며 “올레리꼴레리” 외치는 아이의 돌직구에 정신을 차렸던 것처럼, 코로나가 지금 미국인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일상에 금이 간다. 현상학적 사회학이 알려주듯 당연시되던 것들은 그것의 의문이 제기되지 않는 동안만 그 당연시가 유지될 뿐이다. 일상은 그렇게 깨진다. 당연시 되던 것들이 의문시 되면 모든 것이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이제껏,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는 훨씬 더 해결할 능력이 있고, 그렇게 하고 있으며, 그래서 미국이 세계 제1의 국가로 당당하게 군림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아니라고 떠벌여 그렇게 알고 있던 코로나라란 괴질조차 통제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허둥대는 국가 체계의 무능함과 부실함을 보면서, 그 때문에 자신들의 생명이 절대적 위협을 받게 되면서, 미국인들은 보건문제를 넘어 그 이상의 다른 모든 것들까지 도매금으로 의심하게 되었다. 아차, 꾸나! 미국이란 나라가 벌거숭이 임금님 꼴은 아니었나 하고 말이다.

그리고 나온 말이 “이게 나라냐!”이다.
우리가 몇 년 전 창피해하며 되뇌던 바로 그 말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외침은 무한한 자긍심을 갖고 믿었던 국가에 대한 실망, 좌절, 분노에서 오는 단말마적 비명이다. 그것은 “실패한 국가”에 대한 자괴감의 발로이다.(“We Are Living in a Failed State,” The Atlantic, April 20, 2020). 즉, 창피함에서 오는 미국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의 울림이다. 그러나 그 창피함은 어떻게 이런 나라가 세계최강일 수 있느냐는 다른 나라의 손가락질이(“The World Is Taking Pity on Us,” New York Times, May 8, 2020; “Fintan O’Toole: Donald Trump has destroyed the country he promised to make great again,” The Irish Times, April 25, 2020.) 자조감으로 변하면서 자연스레 생긴 자기모멸이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그렇게 스스로 비웃다 스스로 창피해하고, 결국 자기 연민에 빠졌다.(“The United States Is A Country To Be Pitied,” Washington Post, May 14, 2020). 그리고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최고의 국가 미국에 살고 있다는 생각하는 이들에게 먼저 불쌍한 처지에 놓인 우리 꼴을, 우리 자신의 몰골을 볼 줄 알아야 그 나마 이 나라를 다시 세울 일말의 희망이라도 엿보일 것이라고 일갈하고 있을 정도다.(“There’s No Hope For American Unless We Can Pity Ourselves,” Washington Post, May 15, 2020). 과거에 이런 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어디 감히 세계 제1의 대국 자랑스런 미국의 시민을 깔보며, 어찌 스스로 자신들의 처지를 불쌍히 여긴단 말인가).

코로나 창궐에 속수무책인 나라. 의료체계가 엉망진창인 나라. 실직하면 하루아침에 중산층에서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해버리는 나라. 먹을 것을 무상으로 얻기 위해 몇 킬로미터의 줄을 서야만 하는 나라. 대부분의 국민이 팍팍한 삶으로 끔찍한 하루하루를 버텨야하지만 부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더 배를 불리는 나라. 이런 것을 해결해 줄 생각일랑 눈곱만큼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나라에 대한 불만.
한 번 터지니 한꺼번에 우르르 봇물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모든 게 의문에 휩싸여버렸다. 그러한 고질적 문제와 병폐들 가운데 단 하나라도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나빠지는 나라. 그 정점에 있는 빈곤과 불평등과 인종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아니 어떤 시도조차 하지 않는 나라에 대한 좌절.
빌어먹을 아메리칸 드림은 어디에나 있단 말인가? 그것도 혹시 허구? 그런 회의가 물 밀 듯 밀려오는 지금의 미국이다. 그 민낯이 이번 코로나사태로 수면 위로 완전히 드러나고, 뿐만 아니라 어쩌면 영원히 해결될 수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한 이들의 절망.
천하를 호령하던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 쉽게 이야기하면, 미국이 여러 나라들 중 지존이란 표현)는 빈곤과 불행 그리고 사망의 의미로 희화화되었다.(“Under Trump, American Exceptionalism Means Poverty, Misery and Death,” The Guardian, May 10, 2020). 하다못해 과거의 영광스런 “예외주의” 딱지는 발가락의 때보다 생각 안하던 나라, 한국 같은 나라에게 붙이는 해프닝도 벌어졌다.(“What’s Behind South Korea’s COVID-19 Exceptionalism?” The Atlantic, May 6, 2020).
이렇게 자신이 거주하는 외부환경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 그 다음 수순은 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We’re Discovering Our Character,” The Atlantic, May 6, 2020). 세계 최강 국가의 국민에서 이제는 자신들이 무시했던 제 3세게 국가의 국민과 같은 처지에 놓였다고 생각하게 된다.(“Top Economist: US Cornoavirus Response Is Like Third World Country,” The Guardian, April 22, 2020). 그러면 차별, 불평등, 좌절과 분노, 그리고 절망은 단지 흑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전에는 흑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그래서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로 알았던 것들이 모두 내 자신의 이야기라는 처절한 자각!

그러니 뉴욕타임스가 현재 미국인들 사이에 팽배한 정서를 “공포(Fear), 불안(Anxiety), 분노(Anger), 절망(Desperation)”으로 짧게 규정한 것도 무리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것들이 길거리로 사람들을 나가게 한다. 해서 지금 미국 도처에는 흑인 사망사건의 피해자 조지 플로이드가 흘러넘친다. “내가 바로 목 눌려 숨져간 그 피해자, 조지 플로이드”라는 각성이 사람들을 인종, 지역, 연령, 직업에 상관없이 항의 시위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다. 동변상련과 감정이입. 그것이 길거리를 수많은 조지 플로이드들로 강물처럼 흘러넘치게 한다. 플로이드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In Every City, There’s a George Floyd’: Portraits of Protest,” New York Times, June 2, 2020). 하여 백인 경찰은 단순한 대립각에 서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것은 피폐해진 나의 삶을 질식시키고 있는 기성체계와 못된 세력들로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여태껏 존재했던 차이와 그로 인해 벌어졌던 문화전쟁들을 매우 하찮은 것들로 여길 정도로 코로나의 위력은 대단했다. 왜냐하면 삶과 죽음의 갈림길 앞에서는 플라스틱 빨대냐 종이 빨대냐, 와인이냐 싸구려 맥주냐의 차이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The Coronavirus Makes Our Old Culture Wars Seem Quaint,” New York Times, April 22, 2020). 이처럼 여태까지의 인종차별의 갈등 양상은 코로나 이후 큰 변화를 갖는다. 흑인 대 백인의 대립구도는 지금 “네 편 내 편”으로 갈릴 문제가 아닐 정도로 진화했다. 물론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트럼프는 이들의 정서를 집중 공략해 지지자를 결집시킨다)
어쨌든, 코로나 속에서 많은 이가 참여하는 저항이 가능할까란 칼럼(“Will the Coronavirus Crush the Resistance?,” New York Times, April 21, 2020)이 나온 지 얼마 안 돼 과거엔 볼 수 없던 시위가 터졌고 더 대규모로 더 극력하게 더 오래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이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의 지적도 나온다. 시위와 저항이 미국적인 게 아니라는 비판이다. 그러나 미국식이란 뭔가? 저항정신이야말로 자유를 지키고자 대서양을 건너온 청교도 정신이 아니었는가? 저항정신이야말로 미국적인 것 아닌가?(“The Double Standard of the American Riot,” The Atlantic, May 31, 2020). 사리에 맞지 않는 저항에 대한 이중 잣대는 무시해야 한다.
그럼에도 시위에 참여한 미국인들에게 건네고 싶은 몇 마디가 있다.
첫째,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약탈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약탈은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약탈을 하는 순간 시위의 정당성과 취지는 훼손되고 더 많은 지지를 얻어 낼 수 없으며 상대 쪽에 되치기 당하는 빌미를 줄뿐이다. 또한 약탈로 인해 피해를 입는 이들의 대다수는 같은 처지에 있는 소상공인들과 대형할인마켓의 필수노동자들이다.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코로나로 수 개월간 벌이가 신통치 않았고 감염의 위험성 속에서도 먹고 살기 위해 사지에 나가 일을 해야 했다. 당장의 처지가 어려워졌기에 생긴 물욕 때문에 그들에게 약탈의 위협을 가하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이다. 폭력을 규탄한다면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형편이 어려우면 오히려 구걸을 하는 게 낫다.
둘째, 하는 말 족족, 하는 짓 족족 밉상인 트럼프가 설혹 불에 기름을 붓는 짓을 한다 해도(“Episcopal bishop on President Trump: ‘Everything he has said and done is to inflame violence’,” Washington Post, June 2, 2020; “Editorial: Trump’s failure of leadership for a nation in crisis,” San Francisco Chronicle, May 31, 2020; “Intelligence Experts Say U.S. Reminds Them of a Collapsing Nation,” Washington Post, June 3, 2020), 미국의 모든 잘못을 트럼프 탓으로 돌리는 것은 그야말로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물론 그의 탓도 매우 크다. 하지만 미국이 안고 있는 중증 문제가 모두 트럼프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아니다. 트럼프는 그 일을 다룸에 있어 그 이전의 대통령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을 택했을 뿐이다. 그의 방식은 뻔뻔하고 조잡한 무시 전략. 그래서 일말의 동정심도 없는 것 같이 보일뿐이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골수 지지자들을 결집시킨다.
트럼프 이전의 다른 지도자들은 동정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지 문제 해결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오바마가 그 썩어 문드러진 체계를 고치려 시도했는가? 아니다. 트럼프나 다른 이들이나 모두 자신들이 선택한 정치적 행위를 할(했을) 뿐이다. 누구를 위한? 기득권을 위한 정치적 행위! 대표적인 문제인 계층 계급간의 불평등을 보라. 그것은 트럼프 이후 급증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있었던 미국의 중증 기저질환이다. 심각한 기저질환이 지속되었고 아무도 그것을 치유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오히려 불평등을 부채질 해왔던 기득권세력들, 내가 말하는 제국들을 위해 열심 봉사 했을 뿐이다. 미국은 그 둘의 노선 사이를 왔다 갔다 할 뿐, 아니 트럼프가 나와서 둘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것 같이 보이게 했을 뿐, 관통하는 사실은 단 하나 국민이 아닌 제국을 위한 정치였다. 따라서 모든 문제를 트럼프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문제의 해결커녕 더 엉클어트리는 결과를 초래한다.(이 때문에, 나는 트럼프 정권하에서 미국의 예외주의가 빈곤, 불행, 사망으로 변해버렸다고 말하는 로버트 라이시의 견해엔 동의할 수 없다. 미국의 예외주의는 그가 노동부장관으로 재직했던 클린턴 때도 이미 그렇게 변질 되어 있었다).
따라서 문제는 트럼프가 아니다. 잔인무도한 폭력을 행사한 백인 경찰이 아니다. 물론 이것들도 큰 문제이지만 그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더 큰 근본적인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공부가 필요하다. 내가 보건데 미국의 모든 문제의 핵심엔 원흉인 월가가 있다. 해서 이번 일의 동변상련과 감정이입 다 좋다. 그러나 비판(과 개혁)의 대상을 공략할 때는 대상의 층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흑백문제와 공권력의 만행 문제는 그 수준으로 공략하라. 그리고 일상생활에서의 곤경과 불안한 경제적 삶, 그리고 암울한 미래에 대한 문제는 그것대로 따로 공격 대상을 정해 공략하라. 이 수준에서 생성된 공포와 좌절, 절망과 분노의 유발자로는 원흉 월가가 있으니 월가와 거기에 동참해 당신들의 삶을 척박하게 만들어가는 데 일조하는 정치권에 그 화살을 겨누라. 그렇게 하지 않고 “흑인의 삶도 중요하다”며 “백인경찰의 엄중처벌”만을 요구한다면 뒤에서 비웃을 이들은 월가와 정치가들이다.

그래서 공격의 타깃은 썩어문드러진 미국의 시스템의 교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탑다운(위에서 아래로) 방식이어야 한다. 고작 20달러(약 2만 원)짜리 위조지폐 사용 혐의(위조지폐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가 사망에 이를 정도의 중범죄라면, 나라 전체를 강탈하고 전 국민의 삶을 위험에 빠트리는 월가의 대형은행과 사모펀드의 사기와 강도짓은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에 대해 물어야 한다. 처벌은커녕 그들에게 두둑한 보상(구제금융)까지 주고 있는 것에 대한 끝까지 저항이 있어야 한다.(그런데 여러 가지 여건 상 과연 거기까지 갈 수 있을 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과연 <애틀랜틱>의 진단처럼 미국 역사상 2020년이 최악의 해가 될 것인가?(“Is This the Worst Year in Modern American History?,” The Atlantic, May 31, 2020). 귀추가 주목된다.
참고자료
Henry Steele Commager, The American Mind: An Interpretation of American Thought and Character Since the 1880’s (New He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1959).
“We Are Living in a Failed State,” The Atlantic, April 20, 2020.
“There’s No Hope For American Unless We Can Pity Ourselves,” Washington Post, May 15, 2020.
“The United States Is A Country To Be Pitied,” Washington Post, May 14, 2020.
“The America We Need,” New York Times, April 9, 2020.
“‘In Every City, There’s a George Floyd’: Portraits of Protest,” New York Times, June 2, 2020.
“Intelligence Experts Say U.S. Reminds Them of a Collapsing Nation,” Washington Post, June 3, 2020.
“What’s Behind South Korea’s COVID-19 Exceptionalism?” The Atlantic, May 6, 2020.
“The Double Standard of the American Riot,” The Atlantic, May 31, 2020.
“Is This the Worst Year in Modern American History?,” The Atlantic, May 31, 2020.
“Retailers, Battered by Pandemic, Now Confront Protests,” New York Times, June 1, 2020.
“We’re Discovering Our Character,” The Atlantic, May 6, 2020.
“What Happened in the Chaotic Moments Before George Floyd Died,” New York Times, May 29, 2020.
“Will Protests Set Off a Second Viral Wave?” New York Times, May 31, 2020.
“Will the Coronavirus Crush the Resistance?,” New York Times, April 21, 2020.
“The First Invasion of America,” New York Times, May 21, 2020.
“Under Trump, American Exceptionalism Means Poverty, Misery and Death,” The Guardian, May 10, 2020.
“Top Economist: US Cornoavirus Response Is Like Third World Country,” The Guardian, April 22, 2020.
“The Coronavirus Makes Our Old Culture Wars Seem Quaint,” New York Times, April 22, 2020.
“American Is a Tinderbox,” New York Times, April 22, 2020.
“The World Is Taking Pity on Us,” New York Times, May 8, 2020.
김광기 경북대 교수의 연재 ‘인사이드 아메리카’는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일본의 하계국제올림픽 개최여부는 혼선과 귀환 이상의 대사건이다. 이미 일본에게는 1940년에 동경에서 개최하기로 예정되었던 올림픽이 전쟁으로 취소된 경험이 있다. 1896년 국제올림픽이 출범한 이래, 1916, 1940, 1944년 등 세 번의 취소 사례가 있었는데 모두 세계대전 때문이었다. 국제경기행사는 때때로 정치적인 보이콧과 테러 등으로 얼룩지기도 했지만, 팬데믹을 이유로 일단 연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64년에 올림픽이 동경에서 처음 개최된 것은 아시아에서 처음 있던 역사적 이벤트이었고, 이를 계기로 일본은 전후 국제적인 무대에 평화를 존중하고 기술적으로 앞서나간 나라의 모습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당시의 구호는 ‘행복한 올림픽-Happy Olympic’ 이었다.
2011년 세가지 재앙을 동시에 겪은 일본은 이번 2020 이벤트를 ‘돌아온(회복의) 올림픽-Recovery Olympic’이라고 명명했는데 이에 대한 속내는 복합적이다.
일본은 이러한 대규모 국제행사를 유치하면서 한편으로 관광과 여행 스포츠와 교육 건강과 은퇴 등 영역에 투자를 유치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팬데믹 상황에도 불구하고 2021년에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낼 수 있다면, 명실공히 ‘Recovery Olympic’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그러나 성공 여부는 전세계가 바이러스와 싸우는 가운데 COVID-19의 대응에 대한 일본의 정치적 역량에 우선적으로 달려 있다.
팬데믹에 대한 판단지연과 공공보건보다 올림픽 유치를 우선했다는 일본의 정치적 판단에 대하여 국제적으로 광범한 비난이 일어났었다. 이런 배경으로 지난 3월24일 IOC(국제올림픽연맹)과 동경 조직위원회는 공동으로 행사의 연기를 선언하였다. 이런 와중에 최종적인 결정권을 쥐고 있던 일본이 마지막까지 연기를 거부하려고 했다는 점에 국제적 여론이 의구심을 던진 가운데, 참여 예정인 선수들과 경기연맹 그리고 각국의 올림픽조직위원회들이 영향을 미치면서 연기하는 것으로 결정이 이루어졌다.
이런 의구심은 올림픽 개최의 이해를 가지는 다수의 관계자들 사이에 복잡한 상황을 재조명하게 한다.
우선 IOC는 세계보건기구가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개최국인 일본과 협력하여 결국 어려운 결정을 해냈다. 개최국가로서 행사를 준비해온 해당도시 그리고 관련 경기연맹과 조직들과 함께 일해온 지난 7년간의 노력을 뒤로 하고 일본과 IOC는 공동으로 2020년 이벤트의 진행 가부를 결정해야만 했다.
6월 23일 현재, 전세계적으로 9백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오고 50만 명이 사망한 가운데, 경기를 연기한 것은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이 연기되었다는 것이 동경에 주는 신호는 (연기인지 축소인지 취소인지) 불분명해 보인다.
2021년에 행사를 치를 것인지 여부는 IOC-동경 간의 합동운영위원회가 관리하는데, 각자의 조직들은 나름대로 고유의 역할을 가진다. IOC팀은 “여기 우리가 간다-Here We go”라는 팀을, 동경은 “새로운 출발-New Lauch”라는 팀을 각자 구성하였다.
원래의 계획대로 진행했다면, 206개 국가들에서, 33개의 경기항목에 339개의 행사를 통하여 11만 명의 선수들이 참가하고, 7천 명의 수행단과 25천 명의 취재단, 8만 명의 자원종사자들 그리고 매일 90만 명의 관객으로 치렀을 것이었고, 전세계에서 10백만 명이 일본을 찾을 것으로 전망하였다.
일본인들은 총7.8백만 좌석표 중에 4.5백만 표를 이미 구매하였다. 국내에 43개의 경기시설들이 완비되었고, 수십 만의 숙박시설이 예약되어 있었다. 행사관련 조직들이 투자한 비용도 126-252억불에 달한다. 올림픽의 국제중계 수수료 역시 수십 억불에 이르는데 이는 IOC의 수입에 2/3에 해당한다. 한 예로 미국의 NBC사가 미국의 단독 중계권으로 14억불을 지불할 예정이었다.
행사의 연기로 발생하는 일본의 손실액은 27-58억불에 이르고, 만약 취소를 할 경우에는 액수가 415억불에 달할 것이다. 한편, 지난 몇 년 간, 일본을 찾는 외국관광객은 급격한 증가를 보였다. 2019년 한해 일본을 찾은 중국인들만 9백만을 헤아렸다.
COVOD-19의 충격은 일본에게 단순히 동경올림픽2020에 제한된 것이 아니다. 올림픽의 시설과 인프라에 이루어진 투자는 장기간에 걸쳐 회수될 것이며, 환경의 지속성을 위한 결정이라는 특징과 더불어, 1964년 동경올림픽 경험에서 보듯이 투자된 시설들은 지금도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듯이, 행사 이후 시설운용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2021년에 행사를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여부는 우선 국내적으로 COVID-19에 대한 일본의 대응력에 달려있다. 현재의 확진자(17,916명?)와 사망자 숫자(953명?)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나, 정책결정권자들은 이에 대한 회의론과 비판을 씻어내야 하며, 향후 있을 수 있는 재차 유행의 발발을 효과적으로 관리해 내야 한다.
또한 2021년 개최여부는 국제적으로 팬데믹이 관리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는데, 특히 올림픽의 주요 참가국(big hitters)인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이탈리아 등 2016년 리오 올림픽에서 메달순위 10위권에 있던 국가들의 참여가 중요하다. 불행하게도 이들 대부분이 코로나바이러스에 심각하게 감염되어 있는 가운데, 이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지 여부에 달려있다.
주요 국가들의 선수들이 빠진 가운데 열리는 ‘축소올림픽’은 한마디로 인기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동경도지사인 Yuriko Koike는 일본정부와 올림픽조직위원회는 ‘축소된 경기-Simplified Games’를 검토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만약 일본이 2021년 7월까지 전염병을 통제하고 해외유입의 검역을 엄격히 해낸다면, 그나마 행사는 통제된 가운데 제한된 관중으로 치러낼 수 있을 것이다.
마침 2019년에 치른 세계 럭비월드컵 대회의 경험이 소중한데, 토너멘트가 한창 중에 불어 닥친 태풍에도 모든 경기를 무사히 마무리했다. 그러나 팬데믹의 경우에는 이와 달리 새로운 도전일 수 있다. ‘
ToKyo-2020’의 올림픽 행사가 취소가 되던 혹은 축소가 되던, 이는 향후 있을 국제적 대규모의 스포츠 행사들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좌표가 될 것이다. 연기될 ‘ToKyo-2020” 이후 수개월 뒤에 예정된 동계올림픽’Beijing-2022’와 다시 2년 뒤에 열릴 ‘Paris-2024’에 일본의 경험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출처: EAF in Sydney on 2020-06-24.
Helen Macnaughtan
런던 SOAS대학교 부설 국제기업경영 및 일본연구소 소장
코로나19가 북미에 이어 남미로, 이제는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빠른 속도로 확산 중이다.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크게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멕시코는 물론이거니와 브라질을 포함한 대부분 국가에서 거침없이 퍼져가는 이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건 생존의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분명한 현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는 빈곤하지 않다. 살인적인 사회적 불평등이 뿌리 깊은 똬리를 틀고 있는 곳일 뿐, 결코 ‘가난’ 한 대륙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진 덕분에 일찌감치 주변 강대국의 먹이사슬에 저항할 틈도 없이 예속되어 버린 탓에, 외국자본과 소수 매판 자본가 계급이 주축이 되어 형성한 ‘신식민지’가 지금의 라틴아메리카이다.
형식적인 정치적 독립은 중요하지 않다. 자본의 힘이라면 정치 권력쯤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저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지개혁이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쿠데타가 일어났고, 혹독한 독재자에게 저항하여 민중 정부라도 세우면 어김없이 외세의 지원을 받는 반군이 득세하는가 하면, 선거를 통해 집권한다 한들 기득권층인 자본가 계급의 맘에 들지 않으면 ‘우매한’ 대중이 선동에 이끌러 선택한 ‘합법적’이지 않은 정권이 된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20세기 내내 반복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는 여전히 진해 중이다. 유럽의 식민지로 시작해 미국의 ‘신’식민지로 전락한 이 대륙의 운명은 소위 자본주의 시스템이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여지없이 보여주는 곳이다. 이성과 합리가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라, 소수 독점자본의 이해를 보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회를 해체하여 개인 각자도생의 길만을 열어놓았으니,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수많은 라틴아메리카 국민의 설 자리는 벼랑 끝이다.
특히, 지금과 같이 전 세계가 전염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사회로 외면당한 이들에게 남은 것은 코로나19의 위험을 애써 외면하는 일일 것이다. 당장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 막막한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고, 지켜야 할 수칙을 이야기한 들 공허한 소리일 뿐이다. 이를 개인의 문제나 책임으로 치부해 버리지 말자. 자신의 하루 일 노동이 나와 가족 생계의 전부가 되는 사람들에게 중산층의 경제적 여유와 안정을 갖춘 이들에게나 가능할 법한 전염병 대처나 위기 인식 등을 요구하는 것은 더욱 혹독하다. 그렇다. 현재 그들에게 하루의 생계보다 중요한 것은 없지 않은가.
멕시코, 페루, 칠레, 콜롬비아, 브라질 등 소위 라틴아메리카 대부분 국가의 비공식 경제부문은 거의 50%에 육박하고, 이는 구조적으로 국가와 사회시스템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음을 의미한다. 이들에게 삶이란 사회적 공존의 영역이 아니라 원자화된 개인의 치열한 생존의 투쟁이다. 계층의 이동이라는 것은 존재한 적도 없다. 그렇게 차곡차곡 만들어진 라틴아메리카의 이른바 사회질서는 공고하다.
얼마 전 에콰도르 과야낄(Guayaquil)이라는 도시에서 코로나 감염 사망자들의 시신이 길거리에 방치되는 것이 국내에 보도되자, 많은 이들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브라질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사망자를 매장하는 모습이 소개되기도 했다. 외신의 ‘선택’을 받은 극적인 장면들만 국내 포털을 통해 전달될 뿐이다. 미국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제1세계와 제3세계의 기층민중들의 운명은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들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이 어떻게 다수의 국민 혹은 사회의 구성원들을 소외시키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낼 수 있었는가이다. 현재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확산되는 코로나19는 분명 ‘계급’에 따른 ‘선별적’ 감염이 두드러질 것이다. 유명인 몇몇이 감염되고 정치인들이 감염되었다고 해서, 이 전염병의 계급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첨단 기술을 갖춘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고 완치될 수 가능성이 있지만, 사회보장은커녕 의료보험도 없는 다수 기층민중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테니까. 코로나19의 급습은 유럽은 물론 미국과 같은 자칭 제1세계가 구축한 체제가 양산한 사회의 배제시스템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세계적으로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지금, 멕시코에서는 코로나19 감염으로 병원을 찾으면 고통 없이 빨리 죽을 수 있도록 주사를 놓는다는 괴담에 가까운 이야기가 SNS와 Facebook을 통해 번지고 있는 모양이다. 이 같은 문제의 본질은 결국 그 소문의 진위보다는 평소 멕시코 의료체계에 대한 불신과 공중보건 시스템의 부재가 낳은 불안과 공포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당뇨나 심장병과 같은 만성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전체 질병의 70%에 이르지만, 현재 멕시코의 공공의료 시스템으로는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여지는 적다. 그렇다고 민영의료 시스템이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멕시코 전체 인구의 약 천 육백만 명이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안정적인 정치와 시장경제가 정착했다고 알려진 칠레도 별반 다르지 않다. 1973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피노쳇 군부 정권은 일찌감치 미국 시카고 대학 출신의 경제관료들을 앞세워 가장 ‘모범적’인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했다. 그 결과 현재 역내 가장 불평등한 민영 의료시스템을 구축했고, 가장 비싼 약값을 치러야 하는 국가이다. 참고로 최상위 1%가 전체 국부의 26.5%를 소유하고, 반면 취약계층의 50%가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2.1%에 불과하다. 2019년 10월부터 시작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구조적 원인인 셈이다.
이번 코로나19로 지금까지 구축되어 온 의료체계의 붕괴, 의료 민영화, 의료의 공공성 등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비판, 그리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러나, 병상이 부족해 환자들이 방치되고 산소 호흡기가 부족했다는 사실보다 정작 문제의 본질은 과연 바이러스라는 공동의 적으로부터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가이다. 단순히 의료시스템만의 문제로만 좁혀서 다루어질 수 있을까. 국가 예산을 들여 병상을 확보하고 호흡기를 대량 구매하는 것이 위기를 대처하는 퍼포먼스에 그치지 않으려면 말이다. 얼마 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볼리비아의 과도기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의료장비 구매 과정에서 불거진 부패 스캔들로 곤욕을 치렀지만달라진 것은 없다.
상점과 마트에 풍부하게 진열된 손소독제나 마스크는 그것을 구매할 수 있는 이들에게나 해당한다. 그리고, 여전히 라틴아메리카의 상당수 국민은 상점에 즐비하게 진열된 손 세정제를 사는 것이 부담스럽다. 반면, 쿠바에는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 돈만 있다면 흔하게 살 수 있는 잘 포장된 손 소독제 따위는 없다. 이 팬더믹으로 더욱 좁혀오는 경제봉쇄를 차치하더라도, 턱없는 물자 부족은 쿠바인들의 일상이 되었다. 이를 사회주의의 ‘저주’라고 속단하지 않기 바란다. 그 이면에는 반세기가 넘도록 미국의 경제봉쇄를 버텨온 저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니까.
쿠바에서 팬더믹이 시작되고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지역사회 중심으로 시작된 공동행동이다. 쿠바의 모든 의료진과 의대생들이 각 지역으로 파견되고, 노인과 감염 취약계층을 파악하는 특별전담의료진들도 구성이 된다. 이 같은 사회적 행동의 목적은 하나다. 코로나19의 급습으로부터 함께 생존할 수 있는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하려는 사회의 빠른 대처였고, 소외 계층이 없도록 하려는 부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그래서 쿠바는 여전히 옳다. 적어도 코로나19의 급습을 받는 지금.
–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야생동물 거래 위험성 더이상 무시할 수 없어– 11월 G20 정상회의, 야생동물 국제 거래의 영구적 종식 약속해야– 녹색연합, 국제동물보호단체 WAP와 국제 서명 캠페인 펼쳐 오늘(7월 8일) 녹색연합은 56년동안 동물보호를 위한 정책 활동과 글로벌 캠페인을 펼쳐온 국제동물보호단체 WAP(World Animal Protection)와 함께 야생동물 국제 거래 금지를 위한 국제 캠페인 한국 서명운동을 시작한다. 이 서명운동은 […]
랄라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인권 활동가로서, 또 한 아이의 엄마로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갑작스레 다가온 감염병 위기에 모든 공공기관이 멈췄습니다. 학교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당장 일을 중단 할 수 없기에 함께 사는 어린이는 온라인 개학과 동시에 주변 친구, 지인, 다산 사무실을 돌며 하루하루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5월부터는 전일 등교가 아닌, 1주일에 한번만 학교를 가는 시스템으로 등교개학이 시작되었습니다. 1반을 4개로 나눠, 해당 요일에만 1주일에 한 번씩 학교에 갑니다. 어린이는 한 반에 몇 명이 있는지, 전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학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긴 방학이 끝나고 어린이가 처음으로 등교하는 날, 학교 앞까지 따라갔습니다. 마스크를 쓴 선생님과 어린이들을 보며 온전한 얼굴의 표정이 아닌, 눈빛으로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의중을 알아채야 하는 시대가 온 것에 마음이 울컥 했습니다.
첫 등교, 어린이의 급식은 빵고 우유였습니다. 너무 화가 나 학교와 교육청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한 끼가 하루의 영양분일 수도 있을 텐데 왜 이렇게 지급되느냐 물었습니다. 긴 통화를 했지만 결국 돌아가는 답변은 짧은 한마디, ‘감염병이라는 이유’였습니다. 몇일 후, 뉴스 기사를 통해 한 소년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학교가 멈추고, 양육자의 부재와 돌봄 공백 속에서 13살짜리 소년이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는 언론기사였습니다. 돌봄 공백을 메꿔주고, 영양가 있는 하루의 끼니를 챙겨줄 수 있는 학교의 부재는 각기 다른 무게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맞벌이 양육자에게는 돌봄의 대란으로, 어린이들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배움을 누릴 수 있는 관계의 단절로,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틸 영양분의 박탈 등.. 익숙한 공간이 멈춰서자, 그 공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다양한 관계들이 무엇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염병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새로운 삶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그런 시대에 당도해있습니다.
‘감염병이라는 이유’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바이러스의 전파를 차단하기 위해 물리적 거리두기가 시행되었고, 공공기관과 사회적으로 관계 맺기 가능했던 시설이 문을 닫았습니다. 감염병 차단을 이유로 일부 폐쇄병동과 요양시설 등은 코호트 격리를 당했습니다. 감염병 예방을 이유로 집회시위도 금지되었습니다. 감염병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되면서 개인정보 노출되는 일도 있었고, 자가격리 앱, 안심밴드, 구상권 청구 등 징벌적 조치들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위기의 상황이기에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기고, 인권의 원칙이 지켜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감염병이라는 이유’는 모든 원칙과 그 동안 쌓아온 인권의 기본가치를 무력화시켰습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긴급한 시기 만들어진 강력한 조치들이, 일상적으로 자리잡거나 언제든 다시 우리 삶으로 소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염병이라는 이유’는 이중잣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기업의 페스티벌과 백화점 등은 방역 조치 하에서 영업이 가능하고, 노동자들의 집회는 감염을 이유로 차단되었습니다. 공공시설이 문을 닫았지만, 그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다른 시설은 운영 중입니다. 이중적인 잣대는 대부분 힘없는 이들에게 돌아옵니다. 위기에 처한 노동자는 말할 공간이 없고, 공공시설을 이용하던 이들은 일상과 관계가 단절되어버렸습니다. 정말 ‘감염병의 위기’에서 모두를 위한다면 공공기관부터 방역을 철저히 하며, 이용이 가능하게 해야하지 않을까요? 공공기관의 자기 역할 회피가 결국 방역에 문제를 만들고, 오히려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만 돌아오는 것은 아닐지요.
우리는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오늘 나의 공간이, 나의 관계가 또 다른 감염의 경로가 될 수 있는 그런 시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야 하기에, 또 다른 대안을 만들고,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가고 있습니다. ‘감염병이라는 이유’로한 멈춤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을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이 불평등과 모순을 응급처치식으로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성찰과 사회적 논의를 통해 변화의 시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인권은 모두의 일상과 생존, 존엄을 위한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다산의 인권운동이 ‘감염병이라는 이유’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감염병의 위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야 하기에, 오늘도 우리는 인권운동을 합니다.
(91) 신사 숙녀 여러분, 기장입니다! Macho CHO [email protected] 여객기가 날기 위해선 수많은 과정이 요구된다. 우리가 막연히 추측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이륙 직전까지 여객기 안팎으로 많은 일들이 톱니바퀴처럼 촘촘히 맞물린다. 탑승구로 조종사와 기내승무원이 들어가면 승객들도 여권과 탑승권을 만지작거리며 탑승채비를 한다. 사실, 승객을 상대하는 상업 비행 관련 산업은 정확하고 정밀함이 요구된다. 빈틈없는 절차와 광범위한 부분까지 정교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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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슬람공화국은 COVID-19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을까? 미국의 무자비한 압박에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이란의 대표적 지식인 테헤란 대학교의 Mohammad Marandi와 통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혁명이 일어난 이후 이란은 온통 사회정의라는 주제에 집중하였다. 쿠바와 견줄만한 보건의료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는데 재정까지 투입하여 규모를 갖춘 일반병원들이 건립되었다. 코로나가 발발하여 미국이 테스트-키트조차 수입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였지만, 개인병원 수준이 아니라 공적 단위에서 잘 관리하고 대처하여 왔다. 모든 것이 잘 통제되고 있다. 서구와 비교하여도 이란은 방역에 필요한 테스트, 마스크 등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병실은 아직 여유가 있는 상태이다.”
Marandi 의 설명에 추가하여, 테헤란의 언론인 출신인 Alireza Hashemi 역시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이란은 공공 클리닉을 포함하여 일차 보건의료시스템을 광범하게 갖추고 있고 수천 개의 도시들과 마을에 보건소와 건강센터들이 소재하고 있어서, 정부가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Hashami는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이어 간다 “보건당국에 COVID-19 전담센터가 구성되었고 자원공급 업체들이 공급해준 방역장비들을 전국에 배포하였다 최고지도자 Ayatollah Khamenei의 지시에 따라 30만 명의 군인과 자원봉사자들이 자원하여 거리와 공공장소들을 방역하고 있고 있으며, 시민들에게 소독제와 미스크를 배포하고 필요한 테스트를 시행하고 있다.”
Hashemi에 의하면 마스크 등 방역에 필요한 장비를 생산하는 설비를 이란 군대가 이미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테헤란의 상공회의소와 시민단체들이 Nafas(호흡이라는 뜻)라는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의료 자재들과 클리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FaraBourse라는 비공식적인 클라우드 금융을 통하여 테헤란를 거점으로 모금이 진행되면서 필요한 의료 장비와 시설을 구매하여 의료진을 지원하고 있다. ‘지하디’라고 불리는 수 백의 자원봉사 그룹들이 형성되어 신학교와 예배성전 그리고 현장 진료소에서 땀흘리며 일하는 의료 진들에게 개인보호장구들과 신선한 과일까지 공급해 주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연대는 시아파의 문화에서 지극히 당연하며 강력한 전통이다.
Hashaemi에 의하면 이란당국은 이미 한달 전부터 통제를 완화하기 시작했고 최근 몇 주간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조금씩 맛보고 있다고 한다. “이제 전투는 끝나가지만 서구사회가 염려하듯이 2차 대유행의 재발을 염려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경제가 엉망이고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제재로 인하여 경제의 타격이 이미 상당히 진행되었다. 외부에서는 감지했는지 모르겠으나 원유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경제가 돌아가고 있고, 그렇다고 사우디와 이라크, 터어키와 UAE와는 비교할 필요가 없다. 한편에서는, 걸프만 일대에서 일하던 인도와 파키스탄 노동자들이 무리를 지어 고국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두바이는 죽음의 도시가 된 반면에, 구태여 비교하자면, 이란은 바이러스와 싸움에서 이들보다 잘해 내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작년과 올해 작황이 좋아서 식량의 자급자족이 충분한 상태이다.”
Hashemi는 매우 중요한 사항을 지적했다. 코로나 위기가 광범위한 탓에 이란국민들은 힘을 합하여 상부상조하며 새로운 수준의 연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별 단체별 조직별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되어 팬데믹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정부와 의료진을 도와주고 있다.
서구의 거짓(조작된) 정보들은 이란인들이 혁명 이후 특히 1980년대 있던 8년간의 이란-이라크 긴 전쟁을 시작으로 얼마나 심각한 여건 속에서 버티어 살아왔는지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 이러한 시련을 이겨낸 중년세대들에게는 현재의 경제적 위기는 견딜만한 것이다.
Maranti는 경제적 데이터와 연동하며 상황을 분석하여 내용을 제공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이란정부의 예산을 담당하는 책임자는 새로운 사태로 인해 이제 원유는 경제에서 보조적인 역할일 뿐이며 나라의 살림은 원유수입 없이 운용되고 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이란은 십 수년 전 만해도 1190억불의 원유수입이 있었는데 반하여 2019-20년 현재는 겨우 89억불에 지나지 않는다.
이란 경제 전체는 이행기에 접어들었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제조업의 붐이 일어나서 생산품이 국내수요를 넘어서 수출을 지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출의 혜택을 부여하기 위하여 이란 리알화에 대한 대대적인 평가절하를 시도하려고 한다.
2019-20년간에 비非석유 수출액은 413억불에 달했다. 이는 혁명 이후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원유수출액을 추월한 것이며 이중 약 절반은 제조상품이었다. 트럼프의 소위 ‘최악의 압박 max. pressure’라는 제재로 인하여 비非원유 수출액이 줄기는 했지만 약 7%정도 감소하는 것에 그쳤다. 이 모든 것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
이란 상공회의소가 제공하는 구매자지수에 따르면, 일부 봉쇄의 완화가 이루어진 후 첫 달 만에 민간기업들의 생산활동이 이전을 회복했다.
사실인즉, 과자류에서 스테인레스 제품까지 이란의 소비재와 생산재들이 중소규모의 기업들을 통하여 중동의 광범한 지역과 중앙 아시아, 중국 그리고 러시아까지 수출되고 있다. 이란의 고립상황을 감안한다면 이는 기적인 셈이다.
새로운 산업기지 거점들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군장비와 우주항공, 해양산업 그리고 다양한 산업에 수없이 적용되는 티타늄을 예로 들면 Urmia 지역의 탄광에 상당히 매장되어 있으며, 이란의 광물자원 벨트지대에는 상당한 매장량의 금광들이 존재한다. 광물자원분야에서 이란은 세계 15대 국가군에 포함되며, 지난 1월 선진적인 채굴기술을 확보한 이후에는 희귀광물을 축출하는 시험프로젝트를 착수하였다.
이에 대해 워싱턴은 마치 모든 것을 끝장내려는 듯이 (as Terminator) 압력을 가하고 있다.
백악관은 지난 1월에 건설업과 채굴, 제조업과 방직분야를 목표로 추가적인 제제조치를 시행하였다. 이는 위에 언급하였듯이 활발하게 돌아가는 민간기업들을 목포로 삼은 것이며, 결국 수많은 육체노동자들과 가족들을 공격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이는 현재의 Rouhani 행정부를 압박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선량한 이란 시민들의 숨통을 끊으려는 것이다 – I can’t breathe.
이란 국가수비대 및 보건당국과 중국간의 코로나 대응에 대한 협력이 지지부진한 것과는 별도로, 이란과 중국 간 일반전략파트너제휴(CSP)는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이러한 전략적 파트너쉽은 오는 11월에 커다란 시련을 앞두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는 10월이면 기간이 완료되는 이란에 대한 무기수출 금지사항을 연장시키고 안보리결의 2231호에 대하여 스냅백(기존합의에 대한 강제적용)을 작동시키려고 온갖 협박을 가하고 있는데, 이는 안보리 회원국들의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중국의 유엔에서 역할은 분명하다. 트럼프는 이란핵협정을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자의적으로 제제를 가해 왔다. 따라서 미국은 이란에 대한 무기수출금지를 연장시키고 스냅-백 사항을 강제할 권한이 없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이란은 유라시아 연합의 삼각 거점 국가들이다.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나 이들은 중요한 결정에서 화음의 협력을 이루어야 한다. 따라서 지난 주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Lavrov(러시아)와 Zanif(이란) 외무장관 회담에서 이를 강조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이들의 의기투합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러시아 외무장관은 말했다 “우리가 합의한 약속을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입니다 워싱턴은 이란을 압박할 아무 권한이 없습니다.”
이란 외무장관인 Zarif는 전반적 흐름이 매우 위험하다는 자신의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란문제 분석가들과 추가적인 대담을 통해서, 양국 외무장관들은 해당지역의 지정학적 정세와 대치한 두 개의 전선 (테헤란, 바그다드, 다마스커스, 해지볼라의 )에 대한 중요성을 설명하였다. 두 개의 전선이란 미국과 하수인들(사우디, UAE, 이집트의 정치인들)과 수괴인 이스라엘, 그리고 터어키와 카다르 등 이란을 지지하지만(정치적으로 이슬람공화국을 지지하는, 수니파 변종이지만, 무슬림 형제국가군) 하수인이 아닌 형제 국가들과 대치이다.
이들 분석가들 중 필명이 Blake Archer William은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주석을 달았다. “러시아가 상호교역이 거의 없는 이란을 돕는 주요 이유는 이란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레이건 정권과 달리 이란을 설득하지 않고 이란을 중동에서 축출하려 들면서 이란과 무기를 사용하는 대결의 국면으로 치달으면, 중동의 주요 산유국들, UAE 포함하여 카다르, 쿠웨이트, 바레인 이라크 그리고 당연히 사우디의 Qatif 유전지역 (100% 시아파지역)이 항미 투쟁의 영향권에 들어간다.”
여전히 러시아와 중국은 모든 전선에서 이란을 지지하면서, 미국의 협박에 굴복한 IAEA (국제원자력기구)가 2012년 이래 이란을 비난해온 프랑스, 영국, 독일 삼국의 합동결의를 통과시킨 점을 비난하고 나섰다.
또 다른 외교전선의 핵심은 베네수엘라이다. 테헤란 당국은 소프트-파워 전략으로 지구의 남반부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워싱턴이 뒤로는 몬로-독트린(고립주의, 예외주의)를 내세우며 실제로는 무자비한 제제를 가하는 것을 조롱해 왔다.
이란의 5척 유조선이 휘발유를 싣고 성공적으로 대서양을 가로질러 베네수엘라의 전투기와 헬리콥터 그리고 해군함정의 보호를 받으면서 입항의 환영을 받았다.
이는 처음 시도한 시험적인 항해이었다. 테헤란의 석유담당 부처는 카라카스에 매달 2-3척의 유조선으로 휘발유를 인도할 계획을 이미 짜놓고 있다. 이는 이란이 국내에서 생산된 석유를 해외로 반출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상기의 역사적 유조선 운항은 양국 간의 과학적이며 산업적인 협력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세계에 연대의 행동을 과시한 것이다.
칼럼을 마감하면서 필자는 최고지도자 Ayatollah Khamenei가 직접 언급한 지시를 확인하고자 하며, 그의 표현을 그대로 전달한다 “(미패권의) 봉쇄는 무너져야만 한다. 남는 일은 지구의 남반부가 만들어가는 역사이다.”
출처 : Asian Times on 2020-06-28.
Pepe Escobar
브라질 출신의 언론인, Asia Times와 러시아의 RT & Sputnik 및 이란의 Press TV 등에 기고 및 출연 활동 중
코로나로 인한 경제충격을 구제하기 위하여 미국연방의회는 기존의 2.9조 달러에 추가하여 지난 5월 15일 3조 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재차 승인하였다. 연방준비제도 역시 미국의 200년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규모와 빠른 속도로 자금을 경제권에 쏟아 붓고 있다.
밀턴 프리드만이 1963년에 행한 언명 “인플레는 단지 통화현상이다”는 여전히 적용이 가능하지만, 이를 심하게 비판하자면 “재화가 부족한 반면에 돈이 너무 넘쳐나는 현상”의 결과이기도 하다. 어찌했거나, 통화가 팽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의 물가는 목표치의 인플레 밑으로 유지되면서 이러한 경제적 통합운용이 광범하게 인정을 받아 왔다.
동시에 트럼프가 집권하기 이전까지 수십 년 사이에 중국이 미국의 가장 큰 무역 파트너로 부상하였는데, 미국대통령이 지난 5월 14일 FOX TV와 인터뷰를 통해서 중국과 통상을 단절(decoupling)할 것이라는 협박을 공식화하였다.
트럼프가 실제로 미중 간의 단절을 추구한다면, 이는 미국경제가 하강국면에 들어서는 가운데 인플레를 자극하는 것이고, 미국의 경제와 시민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셈이다.
인플레는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촉발될 수 있는 데, 공급사슬의 차단, 팬데믹 와중의 경제재개, 원유가격의 반등 등이 주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COVID-19이 가져오는 의료적 경제적 충격에 대응하여 미국의 정책당국자들은 ‘구제지원법’에 의거하여 상기에 언급하였듯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조직에 6조 달러에 달하는 급진적이고 단호한 지원정책을 진행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2007-9년간에 있었던 금융위기의 지원 액수를 훨씬 능가는 수준이다.
지원정책에 대한 시행을 책임지는 연방준비제도에 의해 풀려나는 엄청난 부채는 분명히 추후에 상환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다한 지원책이 코로나-19에 대한 지나친 반응이었을까? 혹시나 인플레를 자극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인플레 발생의 여부는 정부의 결정에 의존한다. 긴축재정과 증세를 시행하면, 인플레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연방준비제도가 시행하는 ‘헬리콥터 모니’방식처럼 경제에 직접 돈을 푸는 방식은 인플레를 피하기 어렵다.
지속적으로 팽창하는 화폐정책은 은행차입과 통화공급량을 증가시키면서 복합적인 수요를 촉발하고 인플레를 자극하게 된다. 부채가 증가하게 되면 재정적 압박이 발생하여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금리를 인하하도록 압박하게 되는데, 이는 결국 예금자와 채권보유자를 불리하게 하면서 높은 인플레의 위험성을 가져온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과다한 정부의 부채는 국제적으로 제한되어 있는 가용자본에 대한 초과수요를 만들면서 인플레를 유도하는 신호가 된다. 세계 1,2차대전과 베트남전쟁으로 인한 정부의 과다한 차입은 결국 미국에 하이퍼-인플레를 상당기간 불러 왔다.
이에 추가하여, 인플레에 대한 전망은 공급사슬의 차단과 경제활동의 재개 그리고 원유가격의 변동과 관련되어 있다.
봉쇄와 거리두기로 인하여 공급사슬은 심각하게 손상되었고, 일부 국가들의 자국주의적 통상정책으로 안착되었던 국제적 수준의 공급사슬의 흐름에 장애가 발생하였다. 세계적 규모로 경제활동이 급속히 재개되면, 그동안 억제되었던 개인과 기업들의 소비활동이 되살아 나면서 인플레 압력이 형성될 것이다. 미 연방저축공사 FDIC의 조상에 의하면, 지난 1분기에만 1조 달러의 자금이 기업과 소비자에게서 은행의 예금으로 흘러 들어 왔다.
봉쇄가 해제되고 산유국과 동맹들이 산유량을 줄이기로 합의하면서, 석유가격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6월과 7월분의 미국원유 선물거래지수는 지난 몇 주간의 가격추락을 회복하고 있다.

더구나 세계화의 흐름은 지난 수십 년간 미국에 인플레를 완화시켜 왔다.
높은 인플레는 경제를 망치는 기구로 이해되면서 미국대통령들에게는 이를 재난으로 받아들였다. 1980년대 대통령에 취임한 레이건은 인플레를 비유하여 “노상에서 만난 강도처럼 폭력적이며, 무장한 괴한이 사람을 내려치는 것과 같이 치명적인 것”이라고 언급했다.
지난 수십 년간은 다행히 ‘인플레 안정기의 시대’로 불리며, IMF가 작년에 언급하였듯이 선진경제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개발국가들도 인플레를 목표치 이내에서 관리했거나 혹은 적정하게 진정시켜 왔다.
그동안 하나의 공식처럼 여겨져 왔던 “필립스-곡선”【1】 즉 인플레와 실업률의 반비례라는 공식을 벗어나, 낮은 실업률과 높은 인플레라는 산뜻한 관계가 붕괴되어 왔다. 솔직히 말하면 상기의 공식이 충분히 이해되고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골드만 삭스의 주장인 ‘실업률 1.0%의 저하는 인플레의 01 -0.2 %의 인상으로 연계된다’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은 ‘필립스-곡선’의 공식과 달리 예외적으로 수평을 유지해 왔다. 2019년의 낮은 실업률이라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인플레를 야기하지 않았다. 실업률이 낮아져도, 인플레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으면서 전통적인 미세조정(fine-tune)이 어려워진 것이다.
이에 사람들은 인플레의 동력이 정말 무엇인지 당황해 하면서, 이를 야기하는 것이 시민들의 인플레 기대심리인지 노동시장의 변동 또는 공급측면에 의한 것이지 기술발전 때문인지 아니면 국경을 넘어선 공급사슬이 국제적 충격을 굴곡시키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게 되었다.
온라인 거래가 가격을 인하하고 사람들의 일상적 거래에 필요한 많은 서비스와 방식들이 무상으로 제공되면서 기술진보가 인플레를 억제할 수도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과 거시정책입안자들은 수십 년간 국제적으로 전개된 세계화가 (인플레 억제의) 보다 중요한 원인이라고 믿고 있다. 세계화는 인플레를 낮추는 역할을 해왔는데 생산시설이 임금과 토지비용이 싼 곳을 찾아 입지하는 동시에 물류와 자본과 기술의 신속한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생산성이 높아지고 공급이 원활해진 것이 배경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중 간의 경제 협력이 단절을 택하는 것보다 미국의 경제에 도움이 된다.
지난 4-5 월의 실업률을 보면 20.5백만 명이 실직을 당하면서 14.7%로 치솟았으며, 이제 스태그플레이션의 시대가 눈앞에 다가온 듯 하다. 현대사를 살펴보면, 높은 인플레의 시대에는 급격한 정책적 변화가 이루어지는데 ‘브레튼우드 체제의 포기’와 ‘세계화에서 탈세계화로 전환’ 등이 그러한 실례가 된다.
트럼프가 미중 간의 결별을 시도한다면 양자의 경제협력이 망가지고 세계화 흐름이 역류하면서 자신의 기반을 와해시키는 꼴이 될 것이다.
양국간 대립과 결렬이 진행되면 물가가 뛰어오르고, 각종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이 터져 나오면서 미국인들은 경제의 침체기 동안 심한 고통을 받게 될 것이고, 트럼프 행정부는 결과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1】 필립스곡선-편집자 주) 일반적으로 실업률과 화폐임금상승율(인플레)와는 반비례 곡선을 형성하는데 이러한 특성을 활용하여 재정금융정책을 통하여 실업률과 물가안정 간의 선택이 가능하다. 그러나 필립스 곡선의 특성이 작동되지 않는 딜레마 영역이 존재하며, 이러한 딜레마 영역의 탈출은 재정금융정책이 아니라 산업구조조정과 강력한 독점금지조치 및 소득정책을 통해야 가능하다.
출처 : CGTN on 2020-05-21.
Huang Yongfu
캠브리지 대학의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다년간 유엔에서 근무했고 미중의 통상과 기술 및 금융 관련 전문가로 활약 중
희망제작소는 지난 7월 8일 전라북도 전주시와 함께 ‘제2차 지역일자리 위기대응 포럼’을 전주시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개최하였습니다.
포럼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지역일자리 위기 상황에서 ‘해고없는 도시, 전주’ 협약을 통해 위기극복을 실천하고 있는 전라북도 전주시의 사례를 공유하고, 지역의 노동과 일자리 거버넌스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지역 노동‧일자리 거버넌스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발표한 전북대학교 경영학과 채준호 교수는 중앙집권적인 노동 및 일자리 정책을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 지자체에서 할 수 있는 정책에 극히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경기도‧광주광역시 등에서 내놓은 적극적 노동‧일자리 정책이 중앙정부의 정책을 견인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지역 노동‧일자리 정책이 중앙정부의 정책을 견인하는 모습을 통해서 지역 정책 실행의 가능성을 보인 만큼, 정책에 대한 중요도를 높이고 지역 일자리 전문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정책을 주도적으로 시도한 지자체들이 지역의 노사민정 거버넌스 등을 통하여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면서 전주시도 현재의 응급 대응의 정책을 넘어 코로나19 이후의 사회적 재난에 대해 협의하고 선도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만들 것을 주문하였습니다.
‘해고없는 도시, 전주’ 협약을 이끌고 있는 전라북도 전주시의 김병수 신성장경제국장은 ‘고용유지 교육훈련 프로그램의 운영 추진 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지역 노사민정이 함께 고용위기를 타개하고자 하는 방법 중 하나로 교육훈련을 통하여, 일자리를 양적으로 확보하면서 질적으로도 성장시키는 프로그램을 구축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유휴인력에 대한 교육훈련 기회를 통해서 단순히 일자리 보전 만이 아닌 일터혁신 사업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하였습니다.
전주시는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기존 정책지원 이외에 별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사업주‧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가칭 ‘전주형 일터혁신 포럼’을 구성하고 교육훈련과정 설정 및 과제발굴에 참여하여 일터혁신 및 교육훈련 기반의 일자리 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기업의 상황에 따라서 이행될 프로그램은 6개월 가량 지역의 교육훈련 전담기관과 함께 노동자에 대한 기본 소양교육, 사업장 환경개선 및 작업관리, 일터혁신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는 CEO 대상의 일터혁신교육, 사업장 내 유휴인력에 대한 직무형 교육훈련 등을 통하여 노동자의 경쟁력 강화 및 일터혁신을 동시에 이루고자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장홍근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전주시의 사례는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며, 기업을 통한 교육훈련 과정생의 모집과 더불어 지역의 노동자들이 교육훈련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참여방식을 고민해야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왜 이 시점에 교육훈련을 문제해결 방법으로 제시했는지에 대해 논리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기업이 필요로 하는 교육훈련에 대한 실수요를 파악해서 주도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스스로가 직접 나설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준비된 토론 이후에는 이번 포럼에 참여한 전문가의 의견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노용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전주시가 코로나19로 인한 일자리위기에서 가장 잘 움직이고 있다고 평하며 정책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효과적인지에 대해 직접 공무원이 발로 뛰어다니면서 실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평하였습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서, 기존의 노동‧일자리 정책은 민간부문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혁신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을 주문하였습니다. 더불어 단기적인 성과보다도 중장기적으로 전주에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도록 거버넌스가 구축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전주, 구로, 대덕, 거제 등 여러 지방정부들과 함께, 코로나19 이후 닥쳐오는 일자리 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모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소극적인 일자리 지키기를 넘어서, 닥쳐오는 위기를 지역 내 혁신을 통해 극복하고 시민과 기업이 더불어 성장하는 길을 찾겠습니다.
– 글: 김세진 기획팀 연구원 [email protected]
– 사진: 기획팀
지난 2월 이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는 전 세계를 뒤흔들 정도로 번지면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문제를 낳았습니다.
코로나19, 일과 삶을 파고든 위기, 그리고 변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생계를 위협받았고, 비말에 의한 감염에 따른 공포 분위기가 만연하기도 했습니다. 일상을 깊숙이 파고든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이면을 들추기도 했습니다. 무차별적으로 지역·인종 혐오를 부추기는 말들이 쏟아지기도 했고,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격리에 따른 피해를 입는 현실을 목도했습니다.
코로나19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모든 분야에서 변화가 불가피해졌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는 대면 중심의 네트워크 방식을 온라인으로 전면적으로 바꿔야 하는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교육, 일터, 의료 분야 등에서도 비대면 전환을 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기에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 ‘뉴노멀’의 흐름을 타고 화상회의, 원격근무, 웨비나 등 기술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를 남기고 있습니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 변화 속에서 희망제작소는 사회혁신 관점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시민 당사자 중심으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주체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양한 부서와 협업, 그리고 시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희망제작소는 다양한 관점으로 코로나19를 바라보기 위해 부서와 협업해 기획연재를 진행했습니다. 기획팀, 자치분권센터는 지방정부와 분야별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했고, 이음센터에서는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후원회원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또 시민들이 직접 바라본 코로나19에 대한 경험을 공동체, 일상, 회복, 희망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에세이 공모를 진행했습니다.
지난 3월 26일부터 6월 30일까지 지방정부, 시민사회, 분야별 전문가 주제별로 묶은 기획연재 10편과 자발적인 참여로 들려주신 시민에세이 21편(공모글 포함), 총 31개의 콘텐츠를 발행했습니다.
기획연재 중에서는 권선필 목원대 행정학과 교수와의 화상 인터뷰를 담은 “코로나19, 관계의 새로운 발견을 요구해”편이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권 교수는 ‘물리적 거리두기’가 한창 진행되던 때 지역 네트워크 기반의 공동체 활동은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에 관한 고민을 나눴습니다.
권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관계의 확장 추세에서 지근거리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며 지속가능한 대면 관계에 대한 점검, 가까운 주변 사람들과 신뢰를 쌓은 다음에 협력하는 방식, 관계에 대한 새로운 측면을 발견해 공동체로 연결하는 지점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시민들이 직접 수필, 에세이, 편지 등 자유로운 방식으로 글을 내는 공모전에서는 주부, 직장인, 청년, 시니어, 결혼을 앞둔 부부 등 다양한 경험담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결혼식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던 시민 김정아 님의 ‘코로나 그리고 결혼’ 편이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대다수 언론에서는 코로나19에 따른 현황과 피해, 혹은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의제 설정에 주력했다면 희망제작소에서는 코로나19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어려움 속에서도 소소한 희망을 발견하는 시민의 목소리를 주목했습니다. 코로나19와 일상이 연결된 상황에서 나름대로 문제를 해석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시민의 힘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잠잠하던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즘, 각자 서 있는 자리에서 감염 예방 수칙을 지켜나가는 동시에 가까운 관계에서부터 작은 희망들을 찾아가는 일상을 이어나가길 바랍니다. 희망제작소의 코로나19 관련 기획연재에 함께 해주신 시민들과 협업에 동참해주신 기관 및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 기획연재
[기획연재①] 코로나19, 위기 속 빛나는 대응
[기획연재②] 코로나19, 지방정부의 대응
[기획연재③] 김승수 전주시장, 시민의 절박함에 사회적 연대로 답하다
[기획연재④]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코로나19 이후 자치분권은 시대적 요구
[기획연재⑤] “코로나19, 관계의 새로운 발견을 요구해”
[기획연재⑥] 희망제작소 후원회원이 본 코로나19, 당연한 것을 지키는 사회
[기획연재⑦] “사회적 돌봄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
[기획연재⑧/기고] 코로나 19 대응과 보건의료의 개편 방향
[기획연재⑨/기고] 재난긴급지원금과 기본소득
[기획연재⑩/기고] 코로나19와 사회경제 정책전환 제언
[시민에세이①] 코로나19가 선생이네
[시민에세이②] 코로나19가 남긴 “How are you?”
[시민에세이③] 코로나19로 인해 바꾼 삶의 목표
[시민에세이④] 우리, 봄을 잃고 다시 얻다
[시민에세이⑤] 재난소득기부운동을 하면서
[시민에세이⑥] 코로나와 나의 일상
[시민에세이⑦] 온라인수업, 돌발상황이 없기를!
[시민에세이⑧] 엄마의 반성문
[시민에세이⑨] 영상통화로 만나는 남편
[시민에세이⑩] 마스크찬가
[시민에세이⑪] “마스크하면 핑크퐁 노래 잘 할 수 있어!”
[시민에세이⑫]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
[시민에세이⑬] “결국 그래도 사람이더라”
[시민에세이⑭] 푸른 숲, 우리 집
[시민에세이⑮] 사이버러버
[시민에세이⑯] 꿈속에서의 대화
[시민에세이⑰] 우리와 앞으로 계속 함께할
[시민에세이⑱] 코로나 그리고 결혼
[시민에세이⑲] 부머 리무버
[시민에세이⑳] 코로나19가 내게 준 행복
– 글: 미디어센터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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