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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소개] 뭉우리돌의 바다 / 김동우 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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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소개] 뭉우리돌의 바다 / 김동우 글·사진

admin | 수, 2021/08/04- 23:13

김동우 글·사진 | 수오서재 펴냄 | 2021. 07. 29. | 값 20,000원 | 440쪽 | 150*216(신국판변형(양장) | ISBN 979-11-90382-43-4 (03910) | 담당자 : 최민화 | 070-7713-0145 | 010-9803-1339

■ 책 소개

이 책의 표지 사진은 새벽 다섯 시경 애니깽 농장의 모습이다. 1905년 멕시코로 떠난 1,033명의 한인들이 매일 마주했을 풍경…. 을사조약이 체결되기 불과 5개월 전 ‘묵서가국’이라 불리던 멕시코로 떠난 조선인들이 있었다. 망조에 기운 나라를 떠나 살길을 도모했던 사람들은 애니깽 농장으로 가축처럼 팔려가 노예보다 못한 삶을 산다. 작렬하는 유카탄 반도의 햇볕을 피하기 위해 농부들은 새벽 네다섯 시 검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노동을 시작했다. 하루 일해 겨우 하루 먹고살던 지독히도 고된 삶. 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이들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대한독립을 위해 사력을 다했을 줄은.

인도에 간 한국광복군, 애니깽 농부들, 체 게바라의 동지,
한인 최초 백만장자, 우리 공군이 시작된 땅…
당신이 들어보지 못한 바다 건너 독립운동 이야기

《뭉우리돌의 바다》는 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의 흔적을 발굴하고 기록한 최초의 다큐멘터리다. 작가는 세계일주를 하던 중 인도 델리 레드 포트에서 우연히 그 장소가 한국광복군의 훈련지였음을 알게 된다. “인도라니, 그것도 우리 독립운동사라니!” 임시정부에서 파견한 아홉 명의 한국광복군이 인도에서 영국군과 함께 일본에 맞서 싸웠던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접한 이야기에 작가는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는다. 신내림 같았다는 그날 이후 홀린 듯 독립운동가들의 삶에 사로잡혀 그들의 흔적을 좇기 시작한다.

독립기념관 자료를 샅샅이 뒤져 주소 한 줄, 사진 한 장으로만 남은 국외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다녔다. 2017년부터 카메라와 배낭을 메고 수차례 비행기에 올라 사라져가는 역사의 현장과 그곳에 살고 있는 독립운동가 후손을 사진과 글로 남겼다. 인도에서 시작된 우연이 멕시코, 쿠바, 미국, 러시아, 네덜란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중국, 일본 등 10개국에 운명처럼 이르렀다. 이 책은 그중 바다를 건너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으로 간 한인들의 독립운동 이야기다.

바다를 건너간 한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멕시코와 쿠바의 애니깽 농부들, 하와이 사탕수수 농부들, 프랑스에서 전쟁 시체를 치우던 노동자들 등 고달픈 이민자의 삶 속에서도 한 푼 두 푼 피와 땀의 결정체를 모아 독립자금으로 보탰다. 김구는 《백범일지》 하권의 시작을 미주 한인 동포들의 눈물 나는 지원을 염두에 두고 썼다라고 밝히기도 한다.

이들은 어느 땅에 자리를 잡든 학교를 세워 우리말과 역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쳤고, 숭무학교 등 독립군을 양성하는 기관을 만들었다. “독립전쟁 일어나는 날, 도쿄의 하늘로 날아가리라” 각오로 공군을 양성했던 미국 샌프란시스코 ‘한인비행사양성소’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공군의 모태가 되는 이곳을 지원한 한인 최초의 백만장자는 한 달에 비행기 한 대 값 이상을 운영 지원금으로 내놓았다. 이들은 모두 대한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일생을 바친 ‘뭉우리돌’이었다.

‘뭉우리돌’ 그들은 누구인가
찬란하고 강인한 뭉우리돌의 역사
그리고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누가 남았을까

‘뭉우리돌’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 돌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이 말은 김구의 《백범일지》에 독립운동 정신의 상징으로 나온다.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된 김구에게 일본 순사는 “지주가 전답의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며 그를 협박했다. 그러나 김구는 이 말을 오히려 영광으로 여기며 “오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라고 답했다.

김익주, 이근영, 이종오, 김세원, 임천택, 호근덕, 이윤상, 배경진, 김종림, 김형순, 장인환, 전명운, 황기환, 이우석…. 이 책에 나오는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은 생소하다. 배우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교과서 밖에서 마주한 뭉우리돌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일제가 남김없이 골라내려고 했던 뭉우리돌은 비단 상해와 만주, 국내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전 세계 곳곳에 굳건히 박혀 대한의 독립을 일궈냈다.

찬란하고 강인했던 그들의 흔적을 찾았다. 때로는 남은 기록이 이름 석 자뿐일 때도 있었다. 김동우 작가는 대사관, 한인회 등을 수소문해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찾는다. 불쑥 자신을 찾아온 작가에게 그들은 떠듬떠듬 부모로부터 배운 몇 마디 한국어를 건네며 따뜻한 한국식 밥상을 내왔다. 대한 황실의 후손 율리세스는 큰 반찬통에 담긴 김치를 꺼내와 작가의 입에 넣어주었고, 쿠바의 한인 모임에는 비빔밥이 차려졌다. “손님이 찾아오면 따뜻한 밥상으로 대접하라”는 부모로부터 배운 한국식 손님맞이를 기억하고 지키고 있었다. 독립운동가 호근덕의 후손 빅토르의 민박집에 묵었을 때 그의 아들은 “내가 독립운동 사진을 찍겠다고 네 한국 집에 머물면 넌 어떻게 할 거니? 우리 아버지가 너에겐 돈을 받지 않으시겠대”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선대의 독립운동에 대한 자부심과 애환, 고되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원망, 독립 정신을 이어야 한다는 책임감 또한 모두 간직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독립운동이 가족에게 남긴 게 도대체 뭐냐고요. 예전에는 우리 아버지가 참 훌륭한 분이란 자부심 하나로 살았어요. 그런데 점점 그게 아닌가 봐요.”_청산리 대첩 마지막 생존자 이우석의 후손 이춘덕

“아버지의 독립운동은 한국인으로서 그 시대 사명이었습니다. 가족들은 그 사명 때문에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죠. 하지만 난 자라면서 내 가족이 아버지에 대해 불평, 불만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가족 모두 독립운동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인 거죠.”_안창호의 막내아들 안필영

친일은 꽃길, 독립은 가시밭길. 작가는 오늘날에게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는 이 수식을 지적한다. 한국과 교류가 적은 쿠바에는 아직까지 독립운동 서훈을 전달하지 못한 사례가 15건에 달한다. 2015년 한국일보 통계자료를 보면 국가의 지원을 제대로 받고 있는 후손은 10% 미만에 불과하다. 75.2%에 달하는 후손이 월 개인소득 200만 원 미만이며, 70%는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지 못했다.

작가는 후손을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찍는다. 불과 백 년이라는 시간 만에 우리의 기억과 역사 속에서 희미해진 독립운동을 표현한 방법이다. 카메라 셔터 속도를 길게 설정하고, 셔터가 떨어지기 전에 후손을 파인더 밖으로 나오게 한다. 흐릿하게 사라져가는 독립운동의 역사, 그 현장에서 만난 후손들의 이야기는 짙고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독립운동사의 빈칸, 시간에 파묻힌 영웅들을 찾아
국외독립운동사를 재구성한 최초의 기록물

이 책은 부실했던 국외독립운동 자료를 수집, 축적했다는 점에서 사료적으로도 매우 의미가 크다. 멕시코 한인 디아스포라의 시작점인 ‘살리나크루스 해변’, 안창호가 멕시코 순방 당시 머물렀던 ‘프란세스 호텔’, 한인들이 일했던 애니깽 농장들, 독립운동가들의 묘소, 쿠바 대한인국민회 회관으로 쓰였던 건물, 친일파 미국인을 처단한 ‘샌프란시스코 페리 부두’, 3·1혁명 2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던 뉴욕의 ‘타운 홀’ 등 주요 역사 현장을 직접 답사해 현재의 모습을 온전히 담았다.

국외독립운동사의 현장을 집요하게 추적한 취재기는 연신 놀라움과 흥미로움을 선사한다. 이에 더해 다큐멘터리 작가이자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작가가 가졌던 깊은 고민과 애정이 담긴 110컷의 사진이 책에 실려 있다. 단순히 취재기만 나열된 것은 아니다. 작가는 스스로 독립운동사에 무지했음을 고백하며, 현장의 깊고 내밀한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하고 방대한 자료를 파고든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자 질문이 산더미처럼 늘었다. 모든 단발성으로 끝나는 법 없이 여기저기 가지를 뻗어 나가며 입체적으로 이어졌다. 인물사 또한 단순히 한 사람의 인생으로 끝낼 게 아니었다. 거기엔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 상황이 한데 물려 있었고, 심지어 세계사까지 연결됐다.”

수많은 논문과 단행본, 국내외 기사를 망라해 일제강점기부터 해방에 이르는 독립운동사를 꿰뚫었다. 오늘의 모습과 과거 역사적 사실이 날실과 씨실처럼 얽혀져 이제껏 우리가 들어보지 못했던 놀라운 대한의 독립운동사가 새롭게 펼쳐진다.

“역사는 기억 투쟁이다”_큰별쌤 최태성 추천사
우리가 독립운동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현장에서 작가가 가장 많이 마주한 풍경은 ‘빈 터’였다. 독립의 정신이 흐르지만 아무것도 남이 있지 않은 현장 앞에서 작가는 때론 울분을 토했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사적지 현황과 변변찮은 보훈 정책을 지적하며 기록하고 기억할 때 비로소 역사가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작가의 말대로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독립운동사가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우리는 왜 이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까. 희생과 헌신으로 나라를 지켰던 독립운동가 약 15만 명. 그들은 단지 ‘나라’를 지킨 것이 아니었다. 자유와 평화, 인권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고자 했기에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은 각별하다.

이들의 생은 오늘날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그들이 기필코 남기고 싶었던 고귀한 가치들이 다시금 대물림된다. 우리 모두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 이제 기억하는 것이 곧 독립운동이다.

“우린 모두 실패했으나 포기하지 않았던 조상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 부채를 갚기 위해서라도 잃어버렸던 역사를 톺아보고 오롯이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마땅히 해야만 하는 ‘21세기 독립운동’이자 ‘대한이 사는 길’이다.”_본문 중에서

■ 작가 소개

김동우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신문사 기자로 일한다. 그러다 행복이 직장에 없음을 깨닫고 과감히 사표를 던진다. 한동안 여행자의 삶을 살던 중 우연히 인도 델리 레드 포트가 한국광복군 훈련지란 사실을 알게 된다. 목덜미를 타고 이상한 기운이 흐르는 기묘한 체험이었다. 그렇게 독립운동가들의 삶에 사로잡혀 2017년부터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 사진과 글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중국,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러시아, 네덜란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일본 등 10개국의 독립운동사적지와 그곳에 살고 있는 후손들을 취재했고 국내에서도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책은 그중 바다를 건너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으로 간 한인들의 독립운동사를 다룬다. 앞으로 유라시아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를 계속 정리해나갈 예정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근현대사기념관, 갤러리 류가헌 등 전국 각지에서 〈뭉우리돌을 찾아서〉 전시를 열어왔으며 지은 책으로는 《뭉우리돌을 찾아서(사진집)》, 《세계에 남겨진 독립운동의 현장》, 《트레킹으로 지구 한 바퀴》, 《걷다 보니 남미였어》 등이 있다. 국가보훈처 보훈문화상, 다큐멘터리 온빛사진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이메일 [email protected], 페이스북 facebook.com/dw1513, 
인스타그램 instagram.com/road_dongwoo

■ 추천의 글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삶의 자취는 온전히 남는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평화, 인권을 추구한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은 각별하다. 그 안에 우리의 과거뿐 아니라 현재의 실상과 미래의 지향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에네켄 농장에서 어린 후손을 만났을 때 느낀 슬픔과 격정이 떠올랐다. 그들의 척박한 삶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한 것이 무거운 짐으로 남아 있었다. 김동우 작가의 글을 읽는 동안 그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게 되었다. 산 자의 따뜻한 애정과 정성스런 발길로 죽은 이들의 숨결과 자취를 기억하는 데 머물지 않고 다양하고 생생하게 기록해놓은 이 책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철호(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

역사는 기억 투쟁이다. 기억하고 기록하지 않으면 그것은 더 이상 역사가 아니다. 기억 투쟁의 최전선에 있는 김동우 작가. 그는 이미 사라진, 그래서 더는 역사가 아닌 그곳에서 카메라 셔터를 신념으로 누른다. 손끝을 통해 렌즈로 옮겨진 텅 빈 그곳에 사람이 있었음을, 역사가 있었음을 증명한다. 지금의 나와 우리를 있게 해준 역사. 역사를 기억하는 것. 그것은 살아있는 자들의 예의다.
-최태성(한국사 강사, 《역사의 쓸모》 작가)

사라지고 잊히는 것들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우리가 소중한 시간과 공간 속에 살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책. 작가의 오랜 고민과 열정이 사진 한 장 한 장, 글의 한 문단 한 문단에서 느껴진다. 그의 정성스러움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그의 힘든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와 현실 사이에서 애달프고 뜨거운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책에 나온 곳을 직접 가보고 싶어졌다. 언젠가 이름 모를 그의 묘지를 찾아 여기, 당신을 잊지 않고 누군가가 찾아왔다고 시들어가는 꽃 옆에 생기 가득한 꽃을 한 송이, 한 송이 채워 드리고 싶다.
-유준상(배우, MBC 〈같이 펀딩〉 태극기함 프로젝트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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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20/08/25-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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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보기] * 각 목차를 클릭하시면 해당페이지로 이동합니다.

화, 2020/08/25-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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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동아 100년 기획전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 전시연계특강]‘지금, 언론 개혁을 말한다’

5강.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왜 언론은 갈등과 불신을 만드는가? – “기레기”의 탄생과 “가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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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8/26-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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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
오는 8월 29일은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제 합병된 경술국치 110주년이 되는 날인데요.

독립운동 명문가인 경주 최부자집에서 민간에서는 처음으로
당시 한일병합조약 등사본을 비롯해 독립운동 관련 자료들이 다량 발견됐습니다.

한기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END▶

◀VCR▶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유명한 경주 최부자집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명문가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1910년 경술국치 당시
한일병합조약을 등사한 서류입니다.

한국의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에게 넘겨준다는 제1조부터
총 8개조에 이르는 치욕스러운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원본은 서울대 규장각에 있고 당시 조선총독부 관보에도 실려 있지만,
민간에서 등사본이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INT▶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이사
“(일제가) 강제 병합이기는 하지만 병합에 대해서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서 주로 지방의 유력자들에게 보낸 게 아닌가 그렇게 추정이 되거든요.”

1917년 대한광복회에 거액의 독립자금을 보낸 사실이 발각돼 옥고를 치르던 최부자집
후손 최준에게 당시 유림들이 보낸 위로 서찰도 발견됐습니다.

수인번호 404가 표시돼 있고, 유림 218명의 이름 아래 각각 도장이 찍혀 있어,
최부자의 독립운동 정신이 유림계에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광복회 총사령인 박상진 열사가 최부자에게 보낸 서찰도 나왔습니다.

◀INT▶ 최창호 이사/ 경주 최부자 민족정신 고양회
“집안의 (어른이) 독립운동하시다가 구전으로 내려오던 게 사실 사류로 나오니까 재확인이 되고,
선조분들깨서 얼마나 독립을 위해 활동하셨나 이런 것도 보이고..”

이 자료들은 지난달 이곳 최부자집 안채에서 2만여 점의 고문서와 함께 무더기로 발견됐습니다.

경주 최부자집에서는 2년 전,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자료도 나오는 등 독립운동의 중심에서 있었다는 사실이 고문서들을 통해 속속 확인되고 있습니다.

MBC NEWS 한기민입니다.

<2020-08-25> MBC 

☞기사원문: 경주 최부자집에서 쏟아진 독립운동 자료

수, 2020/08/26-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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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광복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요.

광복 80주년까지 4년 남은 지금, 더 늦기 전에 생존 애국지사의 모습을 남기는 작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철희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광복군으로 활동하며 독립을 위해 싸웠던 김영관 애국지사.

어느덧 올해 98살이지만 또렷한 말투에선 자긍심이 넘칩니다.

1944년, 만 20살에 경성사범대를 다니다 일본군에 징집돼 중국 저장성으로 끌려갔습니다.

일본을 위해 싸울 수 없다는 마음으로 목숨 걸고 부대를 탈출해 가까스로 광복군에 합류했습니다.

[김영관 / 애국지사 : 태극기를 앞세우고 우리를 마중을 왔더라고요. 저는 그 태극기를 보고 하염없이 그냥 눈물 흘리고 감격을 느꼈습니다. ‘아, 내가 저 태극기를 위해서 여기까지 목숨 걸고 왔구나.’]

그로부터 2년 뒤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여생은 후대에 올곧은 저항 정신을 남기는 데 쏟자고 다짐하고 기념사업회를 세워 일하고 있지만, 갈수록 독립의 정신이 흐려지는 사회가 안타깝습니다.

지사로서의 삶 역시 쓸쓸히 잊히는 건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김영관 / 애국지사 : 역사를 잊은 민족이나 국가에는 미래가 없다. 또 역사적 사실, 역사적 팩트를 잊어버리면, 외면하면 똑같은 일이 또 되풀이된다. 이런 엄혹한 현실을 잊지 말고….]

김 지사와 같은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이들이 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으로 유명한 김운성, 김서경 작가가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생존한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남기는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3D 프린터 등을 이용해 애국지사의 두상과 손발의 형상을 남기는 겁니다.

[김서경 / 작가 : 기록물을 모은다고 생각을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게 언제 어떻게 발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살아계신 분들을, 다 돌아가시기 전에 저희가 기록하는 게 무척 중요할 것 같아서….]

첫 번째 주인공은 김영관 지사.

단순히 외관뿐 아니라 일생의 이야기와 품고 있는 생각들까지 모두 사료에 담을 계획입니다.

치열한 하루하루를 살아온 한 사람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운성 / 작가 : 모든 애환과 아픔과 가족 간의 갈등, 고통 이런 게 있을 거예요. 그런 것들이 일상생활에서 느꼈던 것들을 같이 한번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광복 80주년까지 4년도 남지 않은 지금.

작가들은 그사이 지사 한 분이라도 더 만나 한 마디라도 더 생생하게 남기겠다는 목표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YTN 김철희입니다.

YTN 김철희 ([email protected])

<2021-09-22> YTN

☞기사원문: “더 늦기 전에”…생존 독립운동가 손발까지 영원히 남긴다

수, 2021/09/22-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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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동아 100년 기획전시 연계특강]
‘지금, 언론 개혁을 말한다’

6강.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
‘적폐언론과의 싸움을 선언하다’

※관련영상 

☞Youtube: [안진걸 레알 분노현장]조선일보 고발현장 깽판친 조선기자/왜 우리고발?헐!!! 

Youtube: 6.18 [단독 공개] 조선일보 기자들의 생사람잡는 취재법

총 6강으로 훌륭한 강사님들이 많이 나오십니다.

전체 강의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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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시청자 여러분들께 앞으로도 좋은 강의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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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0/08/2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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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섭씨, 친일단체 ‘수양단’ 발행 단보 9호 공개
거물급 친일파 대거 포진…민족정신 말살 등 자행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이자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인 심정섭씨(77)는 일제 및 천황에 대한 조선인의 절대적 복종을 강요하는 글이 담긴 친일단체 수양단 광주지부의 ‘단보 9호’를 본보에 독점 공개했다. 최기남 기자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들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고 ‘황국 신민화’를 주도해 태평양전쟁으로 내모는데 앞장선 친일단체 ‘수양단’의 만행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공개됐다.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이자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인 심정섭씨(77)는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합방조약이 공포된 국치일(8월 29일)을 사흘 앞둔 27일 일제 및 천황에 대한 조선인의 절대적 복종을 강요하는 글이 담긴 수양단 광주지부의 ‘단보 9호’를 본보에 독점 공개했다.

‘한애(汗愛)’라는 제목의 이 단보는 1924년 1월 조직된 수양단 광주지부가 매월 발행한 것으로 이번에 공개된 단보는 조직이 결성된 그해 9월 26일 인쇄됐다. 가로 18㎝·세로 26.2㎝ 크기이며, 4쪽 분량이다.

단보는 수양단의 2대 강령인 ‘유한단련’과 ‘동포상애’로 시작한다.

이는 ‘땀 흘려 단련하고, 동포를 사랑한다’라는 의미로, 여기서 동포는 일제와 조선인을 모두 아우른다. 이어 조선인이 ‘황국신민’이라는 사실을 한 순간이라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글이 수록돼 있다.

수양단 광주지부는 1922년 8월 발족된 ‘수양단조선연합회본부’의 지역 기구격이다. 수양단조선연합회본부는 ‘유한단련’과 ‘동포상애’를 2대 기치로 내걸고 중견 청년 육성 및 사회 정화를 표방했다.

하지만 이와 달리 조선인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고 ‘황국 신민화’를 주도하는 역할을 주로 수행했고, 그 중심에는 거물급 친일파들이 다수 포진됐다.

실제 이 조직의 고문으로 조선총독과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칙선의원 등을 역임한 박영효가 이름을 올렸고, 경술국적 윤덕영, 을사오적 중 한 명인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 민병석 등 친일파들이 임원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일반주민을 비롯해 농고생, 사범생 등 학생들까지 끌어들여 신사를 참배하고 강습회를 개최해 천황에 대한 복종을 강요했다. 또 대규모 시가행진을 통한 황민화 운동을 전개했다.

수양단의 만행은 이뿐만이 아니다.

1938년 5월 29일 전북 이리에서 수양단 호남대회를 개최한 이후 1939년 3월 19일 서울에서 동아신질서 건설을 위한 수양단 총동원대회를 열고 ‘대동아공영권’을 적극 선전했다.

‘대동아공영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가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며 내세운 정치 슬로건으로, 아시아 민족이 서양 세력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일본을 주축으로 힘을 모아 서양 세력을 몰아내자는 게 요지이다.

즉, 수양단은 조선인도 천황의 신민이라는 인식을 강요·주입시켜 민족정신을 말살한 뒤 태평양 전쟁의 총알받이로 내세우는 역할을 주도했던 것이다.

심정섭씨는 “수양단의 단보에 실린 내용을 보면 일제가 주도면밀하게 황민화운동을 전개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며 “끊임없이 황국 신민화 정신을 주입시키고 시가행진 등을 통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결국 태평양 전쟁에 투입시키기 위한 고도의 술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대웅 기자 [email protected]

<2020-08-27> 광남일보 

☞기사원문: [국치일 기획]”조선인 황국 신민화 주도…태평양 전쟁 내몰아”

월, 2020/08/31-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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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의회, 여론조사 통해 결정키로
지역단체 “친일작품 당장 교체해야”

춘향영정을 그린 민족화가 강주수 작품(왼쪽)과 친일화가 김은호 작품(오른쪽).

친일화가 작품 논란으로 교체를 추진했던 전북 남원 광한루원 춘향영정이 시의회의 결정으로 유보되자, 지역에서 교체를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남원정신연구회 등은 남원시의회가 지난 25일 열린 총회에서 의원들의 반대로 친일화가 김은호가 그린 춘향영정의 교체를 취소했다고 31일 밝혔다. 오는 9월10~13일 개최할 예정인 제90회 춘향제는 친일작가 김은호 춘향영정으로 하고, 앞으로 여론조사를 통해 교체를 결정한다는 내용이다.

의원들은 “지금까지 김은호 작품으로 지속했는 데 이제 와서 왜 바꾸느냐”, “아예 영정을 철수하고 안내문을 설치하자”, “지역작가들의 검증된 새 작품을 활용하자”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체를 찬성하는 염봉섭 의원은 “친일은 역사적 사실이어서 재판과도 같은 성격이다. 여론조사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아직 영정 교체를 취소한 것은 아니고, 시간을 두고 결정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유보 결정이 나오자 남원지역 단체들의 성명이 잇따르고 있다. 남원정신연구회가 8월26일, 시민주권남원행동이 8월28일, 남원산성민요연구회가 8월29일 친일화가의 춘향영정을 즉각 철거하라고 촉구했다. 남원정신연구회는 “1931년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3·1운동 정신과 민족혼으로 춘향사당을 건립했다. 새롭게 내걸리게 될 민족화가 강주수는 조선춘향영정을 유관순같은 독립투사 모델로 해 옷을 태극의 색으로 했다. 비열한 친일작품인 일본춘향 ‘하루카’를 지금 당장 민족화가 춘향영정으로 교체하라”고 밝혔다. 강경식 춘향영정교체위원장은 “치욕스런 일본춘향 앞에서 제향을 지낸다니 참으로 원통하다. 부끄러운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춘향영정에 대한 비교표. 남원정신연구회 제공

앞서 남원시는 광한루원 안의 춘향사당에 걸려 있는 춘향영정을 8월 안으로 강주수 화백의 작품을 복제해 교체할 계획이었다. 이 영정의 교체는 영정을 그린 이당 김은호 화가의 친일행적 때문이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김 화가의 이력으로 그동안 시민사회단체 등은 지속적인 교체를 요구해왔다.

교체할 춘향영정은 크기가 가로 80㎝, 세로 160㎝로 전신을 그린 미인도 형태의 초상화다. 이 영정은 김 화가가 1961년에 그린 것을 복제한 것이다. 최초의 영정은 춘향사당이 세워졌던 1931년, 경남 진주 출신 강주수 화백이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중에 일부가 훼손됐다. 1961년 다시 김은호 그림이 기증돼 복제품이 걸려 현재에 이르고 있다.

김은호(1892~1979년)는 일본식 채색화 기법을 익혔고, 조선미술가협회의 일본화부에 참가해 전쟁 지원을 위한 친일 미술작품을 심사하는 등 태평양전쟁 기간 중 적극적인 친일파로 활동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행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됐고,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됐다.

박임근 기자 [email protected]

<2020-08-31> 한겨레

☞기사원문: 친일화가 작품 논란 ‘광한루 춘향영정’, 교체 유보되자 지역서 반발

화, 2020/09/0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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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 3.1혁명을 학살로 억압한 일제, 1923 간토대진재 시 학살재현

▲ 간토학살피해자 제97주기추도식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에서 열린 비대면 온라인 추도식 ⓒ 김종수
▲ 간토학살피해자제97주기추도식배너 민중화가 신학철화백의 허락을 받아 디자인한 배너 ⓒ 김종수

1923한일재일시민연대와 사회적협동조합 기억과평화가 공동주최한 간토학살피해자 제97주기 추도식이 한국 천안시 병천면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에서 지난 1일 열렸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상황에서 간토학살사건 관련단체인,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기억과평화협동조합, 1923인문학연구소, 기장 1923진상규명위원회의 임원들과, 연대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 천안민족문화연구회 대표자,그리고 씨알재단에서도 참여하였다.

임광순 사협 기억과평화 이사의 사회로 오후 2시에 개회하여 헌화를 시작으로 제97회 메시지, 추도사, 연대사, 추도노래가 이어졌다.

이번 행사를 주최주관한 1923한일시민연대 김종수 상임대표는 간토학살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일본 내각과 군대, 경찰, 민간자경단을 향한 분노가 일었지만, 10년 넘게 진실규명과 추도활동을 해오면서 점점 분노의 대상이 한국 정부로 바뀌어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종수 대표는 한국 언론이 코이케유리코의 추도사를 내지 않는 것을 비난하면서도 한국 정부가 공식적인 추도사 한 번, 추도식 한 번 열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론에서조차 이를 지적하는 기사를 보지 못했다며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100년이 되는 2023년을 맞을 때에 간토피학살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민관협력으로 준비해야 할 것을 제안했다.

– 100년을 맞기 전까지 남과 북이 함께 간토학살조사에 나서자.
– 100년을 맞기 전까지 1923역사관의 학살지역별 전시를 위해 함께 협력하자
– 간토학살백서제작을 위한 남북한일재일 공동기구를 제안하자.
– 간토학살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시민, 의원이 함께 협력해 가자.

▲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김종수 상임대표 제97주기 추도식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 김종수

일본 국가책임을 묻는 모임의 사무국장 다나카마사타카 교수(일본 센슈대)는, 코로나19로 인해 참가하지 못한 채 보내 온 추도사에서 “도쿄 도지사가 조선인 학살에 대해 ‘역사학자들이 판단할 일’이라며 이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분들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기 때문에 개별 추도사를 내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조선인 학살은 역사학자들이 판단할 것도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모든 분들에 대한 애도의 뜻’ 속에 조선인 희생자가 들어있는 거라면 도대체 어느 부분에 적혀 있는 것입니까? 학살의 사실을 절대 말하지 않는 추도는 도대체 무엇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까? 왜 일본 사회는 희생자의 아픔을 스스로의 아픔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까?”하고 일본 정부와 우경화되어가는 일본 사회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가해의 역사를 진지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촉구해 나갈 것과,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가해의 역사를 기억하며,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힘쓸 것을 희생자 여러분께 다짐한다”고 전해 왔다.

한편 1923인문학연구소를 이끌고 갈 김광열 교수는 100년이 되기 전에 일본 정부의 공식적 사과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진정한 사과를 위해서는 현재도 진행 중인 재일코리안에 대한 헤이트스피치와 혐한문화를 중단해야 하라고 촉구했다.

특별히 천안역사문화연구소의 이용길 대표는 오충공 감독의 인터뷰 속에서 강덕상교수의 ‘일본 제국의 학살의 근원과 뿌리가 동학농민혁명가들을 학살한 일에 두고 있으며, 그들이 다시 3.1만세혁명 시기의 일본 총독부의 학살로 이어졌고, 그 학살자들이 1923년 간토대지진 시에 조선인을 학살한 역사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영상을 보고 전율이 흘렀다’고 말하며, 이제 97년을 맞는 우리들은 왜 일본 정부가 학살의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가를 물어야 하며, 일본의 국가책임을 물어야 할 때이다”하고 일갈하였다.

또 한국에서 추도행사를 위해 천안으로 오는 동안 일본에서 진행되는 일본시민단체들의 추도식과 재일동포들이 진행한 추도식을 인터넷 중계를 보면서 내려 왔다고 하며 “지금 이 시각도 조선인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추도집회를 일본 우익들의 헤이트스피치와 동급으로 취급하며 서약서를 쓰도록 하는 등(물론 서약하지 않았고 추도식을 강행)의 각종 억압을 가하는 한 편, 현재 코로나 사태 속에서 일본정부가 각종 지원에서 재일코리안을 배제하는 일들이 일으너는 등 간토학살에서 나타난 폭력과 억압과 배제는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이러한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스스로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아야 한다.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민주사회 속에서 당연히 없어져야할 차별과 배제를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조차 일부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는 것은 문제이지 않은가? 코로나바이러스는 ‘우한 폐렴’이라고 하거나, 대한의사협회 파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지역의료인들에 대해서는 ‘중국사람이’라고 말하거나, 코로나 마스크 배급에 외국인들을 배제하는 일 등 우리 안에도 배외의식이 존재하고 있음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100년을 3년 앞두고 있는데, 이제 이곳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에서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을 위한 연대활동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음을 함께 기뻐하며, 강제동원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들과 식민지역사박물도 여러분과 함께 평화인권 발걸음에 함께할 것을 약속 드린다”고 연대의 의지를 밝혔다.

▲ 코로나로 마스크를 쓴 채.. 기억과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에서 열린 추도행사참가자 ⓒ 김종수

고난의 현장에서 촛불과 피켓을 들고 예언자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최헌국 목사는 간토학살을 내용으로 한 추도시를 낭독하였고, 세월호 등 사회적 이슈를 내용으로 한 노래와 곡을 쓰고 노래해 온 윤광호 목사의 추모가가 이어졌다.

지난 5월부터 리모델링공사를 시작하였으나 올 해 이상기후로 인한 긴 장마로 인해 공사가 3주 이상 중단되어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의 개관식과 ‘1923인문학연구소’의 개소식, 그리고 학술토론회은 10월 12일(월) 오후 2시로 연기하기로 했다.

토론주제는 1923역사관에 대한 전시구성과 민간의 힘으로 세운 식민지박물관 건립의 사례를 주제로 박물관 학예사인 1923인문학연구소의 성주현교수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의 김승은 학예실장의 발표를 통해 2023년까지 1923역사관의 전시와 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논의를 펼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1923한일시민연대 상임대표입니다. 이 기사는 사회적협동조합의 내부 인터넷신문 미디어기평에도 실립니다.

<2020-09-0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간토학살피해자 제97주기 추도식, 혁명과 학살의 상징 아우내에서 열려

목, 2020/09/0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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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 산학협력단, 학내 일제 잔재 연구 중간보고 친일 음악가들이 만든 교가에 국화·향나무도 버젓이

제주 초등학교 4곳의 교표에 도안된 (왼쪽부터) 일본 가문의 욱광문, 일본 왕실의 국화문과 일장기, 욱일기.(제주대학교 산학협력단 제공)© News1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욱일기 문양의 교표, 친일 음악가가 만든 교가 등 제주 학교 곳곳에 여전히 일제의 흔적이 남아 있어 청산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9일 제주도교육청에 따르면 ‘제주도교육청 일제강점기 식민잔재 청산 연구용역’을 수행 중인 제주대학교 산학협력단은 최근 도내 학교 내 유·무형 일제 잔재에 대한 1차조사를 마쳤다.

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도내 4개 초등학교는 옛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바탕으로 도안된 교표를 사용하고 있다.

교표 한가운데 태양을 상징하는 원이 있고, 그 원에서 빛이 사방으로 펼쳐지는 형상이다.

이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무궁화나 과거 일제강점기 군 관련 배지에서 자주 사용된 월계수 등과 함께 결합돼 있다.

또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1909년 식민통치를 알리며 우리나라에 심었던 가이스카 향나무를 교목으로 지정한 학교도 35곳(초 18·중 11·고 6)에 달했다.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국화나 일제강점기 일본이 들여온 영산홍을 교화로 지정한 학교 역시 각각 8곳(초등), 13곳(초 10·중 2·고 1)으로 파악됐다.

제주의 한 초등학교에 일재 잔재로 꼽히는 가이스카 향나무가 심어져 있다.(제주대학교 산학협력단 제공)© News1

이 뿐 아니라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작사가 김기진·이원수, 작곡가 이홍렬이 만든 교가를 아직도 부르고 있는 학교도 3곳(초 2·고 1)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현황’ 등에 이름을 올린 도내 교장도 현재까지 3명으로 집계됐다.

제주대 산학협력단은 10월까지 현장조사와 공청회, 자문회의 등을 마치고 11월 초 최종보고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제주도교육청 관계자는 “연구용역이 마무리되는 대로 관련 지침을 도내 각급 학교에 권고할 예정”이라며 “일제 잔재에 대한 청산작업은 학내 공론화를 거쳐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0-09-09> 머니투데이

☞기사원문:‘교표에 욱일기라니’…제주 학교에 여전한 일제 잔재

수, 2020/09/09-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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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랑상품권에 지역 독립운동가 넣자
전국 최초 개념 지자체 되기 어렵지 않다

“독립운동을 한 나라의 화폐에 독립운동가 한 명이 없다.”

지난 8월 경남도의회에서 ‘경상남도 대일항쟁기 일제 잔재 청산 등에 관한 조례 제정 토론회’가 열렸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이 발제를 맡았고, 화폐 이야기를 꺼냈다.

“신사임당이 5만 원권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조선시대 이 씨 남자들만 오직 화폐에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 고액권 화폐 논의가 진행됐고 5만 원권 초상 인물은 신사임당, 10만 원권에는 김구 선생이 선정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권이 바뀌고 정치권에서 김구 선생 초상에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자 10만 원권 발행은 무기한 연기됐다. 친일청산 반대 논리로 등장한 색깔론에 법적으로 처벌받은 친일파가 한 명도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해방 후 1950년대 발행된 우리나라 화폐에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거북선, 무궁화 등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물 등이 새겨졌다. 1972년 이후부터 지금 우리는 경제활동을 하며 퇴계 이황(1000원권), 율곡 이이(5000원권), 세종대왕(1만 원권), 신사임당(5만 원권)을 마주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2007년 5만 원·10만 원권을 발행하기 앞서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초상 인물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김구·김정희·신사임당·안창호·유관순·장보고·장영실·정약용·주시경·한용운'(이상 가나다순) 등 10명으로 압축됐다. 당시 보도자료에는 “2차 후보군 가운데는 독립운동가(김구·안창호·유관순·한용운)들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다 여성인물이 선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 유관순 열사의 등장은 후보 간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달굴 것”이라고 적혀 있다. 이러한 국민의 염원은 어디서부터 막혔던 걸까.

김영진 도의원은 지난 6월 도정질문을 통해 “도내 독립운동가 관련 시설물 49곳을 직접 돌아보니, 경남도는 도내 독립운동가를 알리는 표지판이나 안내판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 의원은 국가보훈처에서 받은 경남 출신 독립유공자는 1039명인데, 경남도로부터 받은 서면 자료엔 486명밖에 안 되는 점도 지적했다. 왜 지금껏 우리나라 화폐에 독립운동가 한 명이 없는지 설명되는 대목이다.

방학진 실장은 지역사랑상품권에 지역의 독립운동가를 새길 것을 제안했다. 방 실장은 “지자체마다 지역 화폐가 있고, 지역마다 독립운동가도 있지 않으냐. 자치단체장의 뜻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독립운동가를 책으로 배울 게 아니라 일상에서도 배울 수 있는 환경 만들기, 지자체에서 조금만 신경 쓴다면 어려울 일도 아니다. 도내에는 경남·창원·남해·하동·합천 등 지자체마다 종이권으로 지역 화폐를 발행하고 있고, 전통적인 꽃문양이나 명소 사진이 새겨져 있다. 지역 특성과도 무관한 꽃문양 대신 지역의 독립운동가를 지역 화폐에 새긴다면? 요샛말로 ‘개념 지자체’, ‘전국 최초’가 된다. 어느 지자체에서 먼저 나서 볼 텐가.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혜영 자치행정1부 차장 ([email protected])

<2020-09-09> 경남도민일보

☞기사원문: 독립운동가 알리기, 지역 화폐로

수, 2020/09/09-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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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가 기증한 마스크를 들고 기뻐하는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와 김순흥 지부장 일행. 사진=고려인마을 제공]

[한국타임즈 김혜경 기자]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지부장 김순흥)는 최근 광주고려인마을을 방문해 코로나19 재 확산 방지를 위한 이웃사랑 마스크 500장을 기탁했다.

고려인마을 방문에는 김순흥 지부장과 이지훈 국장, 김홍길 국장, 정영해 전 동신대 교수 등이 함께 했다.

김순흥 지부장은 “최근 잠잠했던 코로나19가 재 확산됨에 따라 또 다시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다 함께 극복하자는 마음을 담아 마스크를 준비했다”며 “광주고려인마을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했다.

이어 “광주고려인마을 주민들은 일제강점기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고려인선조들의 후손이기에 눈물어린 애정이 가슴에 남아있다”며 “앞으로 특별한 관심을 갖고 고려인선조들의 잊혀진 항일 역사를 복원, 고려인동포들이 한민족의 후손으로서 자랑스런 긍지를 갖고 이 땅을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마스크를 후원해 주셔서 감사를 드린다”며 “기탁하신 마스크는 마을거주 고려인동포를 대상으로 소중하게 쓰겠다”고 말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는 순천 회원이 운영하는 사회적기업(마마나스)이 광주이주 독립투사후손 고려인동포들의 안정된 정착과 민족적 자긍심 고취를 위해 면마스크를 기증했다고 전했다.

한국타임즈 김혜경 기자 [email protected]

<2020-09-09> 한국타임즈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고려인마을에 마스크 후원

목, 2020/09/10-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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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독립운동가 동암 차리석(1881~1945) 선생 75주기 추모식

ⓒ 김경준

9일 오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국무위원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동암 차리석(1881~1945) 선생의 75주기 추모식이 서울 효창공원(효창원) 내 임시정부 요인 묘역에서 열렸다.

ⓒ 김경준

차리석 선생은 1919년 4월 11일, 상하이 임시정부가 수립된 이래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임시정부 27년의 전 여정을 함께 한 임시정부의 파수꾼이었다.

ⓒ 김경준

선생을 가까이서 지켜본 독립운동가 수당 정정화는 ‘늘 가난에 찌든 모습’이었음에도 임정의 살림에 보태라며 푼돈을 내주었을 정도로 그 자신에게는 인색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 김경준

“나처럼 임정 살림 뒤치다꺼리를 맡은 사람들은 돈이 필요할 때마다 그분들에게 손을 벌리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지출금액을 일일이 장부에 기록할 필요도 없을 만큼 임정의 살림은 형편없었다.

특히나 돈을 받아쓰는 사람의 마음도 성에 차지 않았지만, 푼전을 내주어야 하는 그분들의 심정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한 것이었으리라. 동암(차리석)과 우천(조완구)은 그런 궁색한 살림을 맡아하면서 자신들에게만은 특히 인색하게 대했을 터이니, 늘 가난에 찌든 모습이었다.” – 정정화, <장강일기> 中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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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결코 사무에는 소홀하지 않았으니 1948년에 열린 선생의 장례 당시 “탁월한 사무 처리 기능이나 병중에서도 최후의 일각까지 맡으신 사명을 완수하신 강한 책임감은 한국독립운동에 피가 되고 살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백범 김구 선생과 성재 이시영 선생의 추모사에서 그 공로를 짐작할 수 있다.

ⓒ 김경준

그러나 선생은 해방을 맞아 환국을 준비하던 중 1945년 9월 9일, 과로로 그만 병사하고 말았다. 환국한 김구 선생은 가장 먼저 임시정부 요인들의 유해를 봉환하는 사업에 착수했고, 1948년 선생 역시 지금의 자리에 안장됐다.

오늘 추모식은 코로나 19로 인해 최소한의 추모객만 참석한 채 소규모로 열렸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선생을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돋보였다.

LAC그라피티 스튜디오의 레오다브 작가(본명 최성욱)가 직접 그린 차리석 선생의 그라피티 초상화가 놓인 가운데, 최근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를 출간한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는 자신의 책을 선생의 영전에 헌정하기도 했다. 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커피·원두 판매사인 ㈜카페리즈와 합작하여 출시한 ‘효창독립커피’ 차리석 블랜드도 헌정됐다.

행사의 사회를 맡은 방학진 민문연 기획실장은 “차리석 선생은 숭실대학교 전신인 평양 숭실학교 졸업생인데 현재 숭실대에는 선생을 기념하는 기념관, 흉상은 고사하고 이름을 딴 강의실 하나조차 없는 형국”이라며 “친일파 안익태 기념관도 있는데 차리석 기념관이 없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반드시 숭실대 캠퍼스 내에 차리석 기념물을 조성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역설했다.

후손 대표로 답사를 한 차영조 선생(차리석 선생 아들)은 “젊은 청년동지들이 선친을 기억하고 알리고자 애써주는 것에 대해 특별히 감사를 표한다”고 답례했다.

한편 차리석 선생은 한국광복군 군수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오는 9월 17일은 한국광복군 창설 80주년이 되는 날이다.

<2020-09-09>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안익태 기념관도 있는데 차리석은 강의실 하나 없다”

목, 2020/09/10-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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