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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군함도’, ‘희생자들을 위한 후속 조치’ 일본은 왜 안 지키나요?”-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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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군함도’, ‘희생자들을 위한 후속 조치’ 일본은 왜 안 지키나요?”-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

admin | 화, 2021/07/13- 23:25

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1년 7월 13일 (화요일)
□ 진행 : 최형진 아나운서
□ 출연 :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최형진 아나운서(이하 최형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군함도 왜곡에 대해 강한 유감의 표현을 나타냈습니다. 2015년 일본이 군함도를 포함해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당시 후속 조치로 한국인 노동자의 강제노역을 포함한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지켜지지 않으면서 문제가 된 건데요. 우리 입장에선 이런 현장이 어떻게 세계 유산이 됐는지부터 의아하긴 합니다. 군함도,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자세한 내용 짚어보려고 합니다. 2015년 군함도의 등재 심사 당시,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린 독일 현지에서등재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했던 단체가 있는데요. 군함도가 전범기업의 산업시설임을 알리고, 그곳에서 일어났던 강제동원의 역사를 지금까지도 알리고 있는 분들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김승은 학예실장 연결해 들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김승은 학예실장(이하 김승은): 네, 안녕하세요.

◇ 최형진: 먼저 이 질문부터 드릴게요. 지금 유네스코가 ‘강력한 유감이다’, 이런 표현을 했는데 이게 굉장히 이례적이고 강한 수위의 발언입니까?

◆ 김승은: 네, 국제사회에서 권고사항이라고 하는 것이 좀 유연하고 그런 발언으로 보통 표현이 되는데요. 이렇게까지 강력한 권고, ‘강력한 유감’, 이렇게 표명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최형진: 시간을 거슬러 가보겠습니다. 2015년에 독일까지 가셨다고요?

◆ 김승은: 네, 그렇습니다.

◇ 최형진: 거기서 어떤 활동을 하신 겁니까?

◆ 김승은: 당시에 저희가 산업유산시설들에 포함된 장소가 바로 우리 강제동원 전시기에 고통 받았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 산업유산이 등재될 당시에는 1910년까지의 역사만을 미화해서 아시아에서 비서구 국가에서 유일하게 산업혁명이 성공한 것이다, 이렇게만 산업유산의 가치를 일본이 홍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의 역사 속에서는 전쟁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산업혁명이었고, 일본의 근대화라는 것이 아시아의 침략을 통해서 이룬 성과 아닙니까? 그래서 주변국에 대한 역사인식을 전혀 배제한 채로 자신의 어떤 산업혁명이라고 하는 미화된 그런 역사만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당함에 대해서 알리고 싶었고, 그 장소는 저희 강제동원 피해자들만 고생한 곳이 아니라 중국인들도 있었고 그리고 연합군 포로도 같이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곳입니다. 그래서 세계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반성적 차원에서 산업유산들, 그리고 세계유산들을 지정하고 보호하고 해왔는데, 세계유산을 지정하는 유네스코 정신에도 위반된다, 이런 사안을 가지고 저희가 전시회도 열고 워크숍도 진행을 했었습니다.

◇ 최형진: 그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만, 지금 군함도가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되어 있습니다. 등재하면서 이건 지키겠다고 했던 조치들이 지금 현재 이행되지 않으면서, 세계유산위가 강한 유감을 표한 건데요. 당시 등재가 되면서 일본이 취하기로 했던 조치가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 김승은: 네, 앞에서 제가 얘기했듯이 그 시설들이 1910년까지만 미화될 수 있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설들이 가장 강력하게 산업유산으로써의 활동을 했던 시기가 바로 2차 대전 기간이었어요. 그 점들을 포함해서 40년대까지 일부 시설에 한국인뿐만 아니라 여기에 강제적으로, 그러니까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동원됐던 사람들이 강제노역을 했다는 사실들을 포함한 전체역사를 알리도록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인포메이션 센터의 설치와 그 희생자를 기리는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 이 두 가지를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산업유산정보센터라고 하는 인포메이션 센터가 작년에 개관을 했습니다만, 알려야 하는 사실을 부정하는 방식의 전시를 하고 있는 것이죠.

◇ 최형진: 1910년 이전은 미화를 했고, 그럼 1910-1940년의 역사가 안 담겨 있는 겁니까?

◆ 김승은: 전혀 안 담겨 있습니다. 홍보를 할 때는 이 시설들이 어떻게 서구의 영향을 받아서 일본이 산업화를 이루는데 성공적으로 이 시설들을 만들었는지, 이것이 어떠한 규모였는지, 이렇게 산업적인 측면만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산업시설들 속에서 실제로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했던 일본인 노동자의 이야기도 빠져있고, 사람의 이야기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거죠. 그래서 저희가 2015년부터 계속 이야기 했던 것은 그 현장에는 분명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있었다, 강제노역으로 희생된 분들. 그리고 거기서 존재도 없이 사라진 수많은 희생자들을 거기서 기려야 되고, 그들의 목소리가 이 역사 속에 담겨야 한다는 주장을 했던 것이죠.

◇ 최형진: 제가 이쪽에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직설적으로 여쭤보면, 가슴 아픈 역사고요.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고요. 사실 보통 우리 국민들이나 시민들이 생각하면 세계문화유산이라고 들었을 때, 인간의 가치, 예술적인 가치, 이런 게 다 담겨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군함도가 어떻게 유네스코에 등재가 된 겁니까?

◆ 김승은: 그런데 조금만 저희가 생각을 해보면, 유대인 학살의 현장이었던 아우슈비츠도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되어 있습니다.

◇ 최형진: 그렇군요.

◆ 김승은: 네, 세계유산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인류가 정말 공동으로, ‘어마어마한 인류 공동의 자산이야’ 라고 하는 그런 유산들도 물론 세계유산으로 지정이 됩니다만, 우리 인류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저질러졌던 일들, 다시는 반복되는 안 되는 일들, 그것을 이후에도 계속 교육적 가치로서 보전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겠다는 반성적 성찰을 할 수 있는 장소도 역시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일본에서 산업유산시설로 등재된 곳들 가운데 저희가 얘기하고 있는 다섯 군데, 시설로써는 일곱 군데인데요. 거기가 일본제철의 야하타제철소, 그리고 미쓰비시가 운영했던 나가사키조선소, 그리고 다카시마탄광, 하시마탄광, 미쓰이 재벌이 이용했던 미이케탄광, 이곳은 바로 전쟁과 군수산업을 통해서 성장한 재벌들이 운영한 그런 장소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 어떻게 뒷받침을 했는지 거기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희생이 되었는지, 더 나아가서는 식민지 조선인들, 그리고 중국인 포로들, 중국인 민간들도 강제연행이 되었고, 그리고 연합군 포로들, 이런 사람들이 여기에서 전쟁에 희생되었다고 하는 역사가 같이 설명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 최형진: 그래서 말인데요. 앞서 말씀하신 게 뭐냐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일본은 지금 오히려 부인하고 있다면서요?

◆ 김승은: 지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은 2015년에 유네스코 대사가 직접 현장에서 가혹한 조건 하에서 강제노역을 한 사실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하겠다고 발언한 다음날 바로 부정을 했고, 그 부정들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들을 지난 5년 동안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본 정부가. 그래서 지금 개관된 정보센터 안에는 당시 하시마에 아주 어린 나이에, 그 이후에 거주했던 주민들의 목소리를 가지고.

◇ 최형진: 당시에 어렸던 사람들의 증언만 가지고 된 겁니까?

◆ 김승은: 네, 그 증언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고, 그리고 그 이야기를 근거로 해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완전히 거짓말 내지는 과장, 이렇게 왜곡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게 지금 홈페이지가 한국 사람들 많이 보라고 한국어로도 번역되어서 ‘군함도의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져서 홍보가 되고 있습니다. 그걸 만드는 단체가 지금 도쿄에 있는 산업유산 정보센터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고요.

◇ 최형진: 일본이 어떻게 보면 그야말로 거짓말을 한 거잖아요. 굉장히 화가 나는데요. 군함도, 지옥섬이라고도 불리는데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던 곳입니까?

◆ 김승은: 여기가 기본적으로 섬이기 때문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여러 장소에 끌려갑니다만, 섬이라고 하는 곳은 출입 자체를 할 수 없는 곳이잖아요. 마음대로. 그래서 아마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 곳에다가 여기가 해저탄광이기 때문에 지하로 굉장히 깊이 들어가서 탄을 캐내야 하는,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고온,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고, 그래서 그냥 채탄을 하는 것도 굉장히 고된 일인데, 해저탄광에서의 열악한 환경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상징적으로 표현된 단어가 바로 ‘지옥섬’이라고 하는 표현인 것 같고. 이건 후대에 누군가가 이것을 상징적으로 이야기한 지명, 상징어가 아니라 당시의 사람들이 스스로 여기가 지옥이다, 지옥섬이다, 라고 하는 표현에서 연유된 호칭이거든요. 그래서 당대의 경험을 통해서도 이 작업환경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야 나갈 수 있다, 여기는 살아서는 도저히 나갈 수 없다고 하는 극단적인 상황의 표현으로 지옥섬이라고 불렸던 것 같고. 한동안은 74년인가에 폐강된 이후에 거의 폐허처럼 방치되다가 지금도 시설들이 굉장히 위험해서 지금은 입도가 안 되는 상황도 반복되고 있고요. 그러면서 계속 거기에 산업유산으로써의 미화된 역사만 계속 선전되고 유포되고 그러고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 최형진: 저도 영화나 자료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보긴 했는데, 정말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곳 같습니다. 거기서 실제로 일하시는 분들은 어땠을지 상상하기 쉽지 않은데요. 그럼 일본에서는 이런 사실들을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 겁니까?

◆ 김승은: 아까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출발은 아마 식민지민이기 때문에 당시 식민지 지배 속에서 총동원법이나 이런 법에 근거하여 조선인들을 데려다가 쓴 것은 합법이다, 라고 하는 큰 틀에서의 식민지배 합법론을 주장하는 것이고. 그리고 거기에서의 어떤 노동환경이나 이런 것들의 민족차별은 없었다, 당시 전시에는 다 같이 힘들었다, 한국과 일본 차별 없이, 전시라고 하는 것은 원래 힘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사이좋게 잘 지냈다, 이웃으로 잘 지냈다, 이런 이야기들만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큰 틀에서 보면 식민지배라고 하는 것이 합법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 일본에 의해서 저질러진 모든 것들은 근거 있는 합당한 행동이라고 계속 주장을 하는 것이고요. 우리는 대법원 판결에서도 식민지배가 불법이라고 하는 것을 강하게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당시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갔던 강제노역 역시도 이건 불법 행위에 의해서 저질러진 범죄인 것이고 거기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정당한 사죄와 보상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이런 이야기들을 간접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생존해 계신 분들, 그리고 고인이 되셨지만 생전에 증언 영상을 남기셨던 분들, 이런 분들의 목소리들을 담아서 저희가 이번 7월 16일 날 세계유산총회가 열리는 날인데, 그날에 맞춰서 전시회를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이 실제로 강제동원이라고 하는 경험이 무엇이었는지, 그 분들의 목소리로 온전히 들을 수 있도록 전시를 꾸몄거든요. 그래서 상상하시기 어려우시다면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최형진: 실장님, 이거 취소시켜주면 안 됩니까? 일본이 약속도 안 지켰는데, 어떻게 취소 안 돼요? 죄송합니다. 제가 국민으로서 좀…

◆ 김승은: 제가 권한이…

◇ 최형진: 이거 취소 좀 시켜주세요. 제발.

◆ 김승은: 그렇다기보다는 저는 취소해서 없애버리는 것보다는 세계유산으로서 우리가 배워야 될, 기억해야 될, 그리고 그 속에서 전쟁은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식민지배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들이 저질러졌는지, 제국주의자들이 저질렀던 역사적인 범죄에 대해서 계속 알려나갈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지금 유네스코의 권고대로 이 산업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전체의 역사, 부국 제국주의 국가들이 산업화를 통해서 작년 같은 경우는 노예노동에 대해서 엄청난 역사적인, 다시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반대운동들이 다시 벌어지는 그러한 상황들을 우리가 목격을 했지 않습니까. 그렇듯이 제국주의라고 하는 그 시대, 지난 200~400년 동안 제국주의국가들이 식민지국가들을 향해서 저질렀던 일들이 제대로 기억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저는 이 장소가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계유산이요. 그래서 저희는 이 피해자들, 연합군 포로들, 중국인 피해자들, 그리고 당시 일본인 노동자들이 그곳에서 어떠한 일들을 겪었는지를 전체 역사를 담아서 소개하는 장소가 되어야 된다, 이렇게 요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 최형진: 한 가지 짧게 여쭤보겠습니다. 지금 도쿄올림픽 앞두고 강행은 합니다만, 세계의 지탄을 일본이 받고 있고, 이번에 세계유산위가 강한 유감을 표했습니다. 일본이 타격을 입거나 자존심이 좀 꺾이는 상황 아니겠습니까?

◆ 김승은: 지금 이 유네스코 권고사항은 사실은 지난 5년 동안 저희 민족문제연구소와 일본에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라고 하는 시민연대단체에서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매년 이러한 사항들의 요구를 넣은 것의 결과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일본이 일방적으로 아마 자신의 입장만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은 더 이상은 전개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더구나 올해는 POW연구회라고 일본에 전쟁포로로 와서 강제노역을 하셨던 그런 피해자분들도 4월에 성명을 발표하셨거든요. 그렇게 연대운동들이 더 거세질 것 같고, 그러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그리고 그것이 산업유산정보센터에 전시되도록 하라는 저희의 활동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외면하고 그런 거짓말을 계속 할 수는 없겠죠.

◇ 최형진: 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김승은: 고맙습니다.

<2021-07-13> YTN라디오

☞ 기사원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군함도’, ‘희생자들을 위한 후속 조치’ 일본은 왜 안 지키나요?”-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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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20/08/25-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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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20/08/25-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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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8/26-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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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
오는 8월 29일은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제 합병된 경술국치 110주년이 되는 날인데요.

독립운동 명문가인 경주 최부자집에서 민간에서는 처음으로
당시 한일병합조약 등사본을 비롯해 독립운동 관련 자료들이 다량 발견됐습니다.

한기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END▶

◀VCR▶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유명한 경주 최부자집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명문가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1910년 경술국치 당시
한일병합조약을 등사한 서류입니다.

한국의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에게 넘겨준다는 제1조부터
총 8개조에 이르는 치욕스러운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원본은 서울대 규장각에 있고 당시 조선총독부 관보에도 실려 있지만,
민간에서 등사본이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INT▶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이사
“(일제가) 강제 병합이기는 하지만 병합에 대해서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서 주로 지방의 유력자들에게 보낸 게 아닌가 그렇게 추정이 되거든요.”

1917년 대한광복회에 거액의 독립자금을 보낸 사실이 발각돼 옥고를 치르던 최부자집
후손 최준에게 당시 유림들이 보낸 위로 서찰도 발견됐습니다.

수인번호 404가 표시돼 있고, 유림 218명의 이름 아래 각각 도장이 찍혀 있어,
최부자의 독립운동 정신이 유림계에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광복회 총사령인 박상진 열사가 최부자에게 보낸 서찰도 나왔습니다.

◀INT▶ 최창호 이사/ 경주 최부자 민족정신 고양회
“집안의 (어른이) 독립운동하시다가 구전으로 내려오던 게 사실 사류로 나오니까 재확인이 되고,
선조분들깨서 얼마나 독립을 위해 활동하셨나 이런 것도 보이고..”

이 자료들은 지난달 이곳 최부자집 안채에서 2만여 점의 고문서와 함께 무더기로 발견됐습니다.

경주 최부자집에서는 2년 전,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자료도 나오는 등 독립운동의 중심에서 있었다는 사실이 고문서들을 통해 속속 확인되고 있습니다.

MBC NEWS 한기민입니다.

<2020-08-25> MBC 

☞기사원문: 경주 최부자집에서 쏟아진 독립운동 자료

수, 2020/08/26-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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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광복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요.

광복 80주년까지 4년 남은 지금, 더 늦기 전에 생존 애국지사의 모습을 남기는 작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철희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광복군으로 활동하며 독립을 위해 싸웠던 김영관 애국지사.

어느덧 올해 98살이지만 또렷한 말투에선 자긍심이 넘칩니다.

1944년, 만 20살에 경성사범대를 다니다 일본군에 징집돼 중국 저장성으로 끌려갔습니다.

일본을 위해 싸울 수 없다는 마음으로 목숨 걸고 부대를 탈출해 가까스로 광복군에 합류했습니다.

[김영관 / 애국지사 : 태극기를 앞세우고 우리를 마중을 왔더라고요. 저는 그 태극기를 보고 하염없이 그냥 눈물 흘리고 감격을 느꼈습니다. ‘아, 내가 저 태극기를 위해서 여기까지 목숨 걸고 왔구나.’]

그로부터 2년 뒤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여생은 후대에 올곧은 저항 정신을 남기는 데 쏟자고 다짐하고 기념사업회를 세워 일하고 있지만, 갈수록 독립의 정신이 흐려지는 사회가 안타깝습니다.

지사로서의 삶 역시 쓸쓸히 잊히는 건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김영관 / 애국지사 : 역사를 잊은 민족이나 국가에는 미래가 없다. 또 역사적 사실, 역사적 팩트를 잊어버리면, 외면하면 똑같은 일이 또 되풀이된다. 이런 엄혹한 현실을 잊지 말고….]

김 지사와 같은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이들이 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으로 유명한 김운성, 김서경 작가가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생존한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남기는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3D 프린터 등을 이용해 애국지사의 두상과 손발의 형상을 남기는 겁니다.

[김서경 / 작가 : 기록물을 모은다고 생각을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게 언제 어떻게 발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살아계신 분들을, 다 돌아가시기 전에 저희가 기록하는 게 무척 중요할 것 같아서….]

첫 번째 주인공은 김영관 지사.

단순히 외관뿐 아니라 일생의 이야기와 품고 있는 생각들까지 모두 사료에 담을 계획입니다.

치열한 하루하루를 살아온 한 사람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운성 / 작가 : 모든 애환과 아픔과 가족 간의 갈등, 고통 이런 게 있을 거예요. 그런 것들이 일상생활에서 느꼈던 것들을 같이 한번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광복 80주년까지 4년도 남지 않은 지금.

작가들은 그사이 지사 한 분이라도 더 만나 한 마디라도 더 생생하게 남기겠다는 목표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YTN 김철희입니다.

YTN 김철희 ([email protected])

<2021-09-22> YTN

☞기사원문: “더 늦기 전에”…생존 독립운동가 손발까지 영원히 남긴다

수, 2021/09/22-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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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동아 100년 기획전시 연계특강]
‘지금, 언론 개혁을 말한다’

6강.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
‘적폐언론과의 싸움을 선언하다’

※관련영상 

☞Youtube: [안진걸 레알 분노현장]조선일보 고발현장 깽판친 조선기자/왜 우리고발?헐!!! 

Youtube: 6.18 [단독 공개] 조선일보 기자들의 생사람잡는 취재법

총 6강으로 훌륭한 강사님들이 많이 나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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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0/08/2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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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섭씨, 친일단체 ‘수양단’ 발행 단보 9호 공개
거물급 친일파 대거 포진…민족정신 말살 등 자행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이자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인 심정섭씨(77)는 일제 및 천황에 대한 조선인의 절대적 복종을 강요하는 글이 담긴 친일단체 수양단 광주지부의 ‘단보 9호’를 본보에 독점 공개했다. 최기남 기자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들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고 ‘황국 신민화’를 주도해 태평양전쟁으로 내모는데 앞장선 친일단체 ‘수양단’의 만행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공개됐다.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이자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인 심정섭씨(77)는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합방조약이 공포된 국치일(8월 29일)을 사흘 앞둔 27일 일제 및 천황에 대한 조선인의 절대적 복종을 강요하는 글이 담긴 수양단 광주지부의 ‘단보 9호’를 본보에 독점 공개했다.

‘한애(汗愛)’라는 제목의 이 단보는 1924년 1월 조직된 수양단 광주지부가 매월 발행한 것으로 이번에 공개된 단보는 조직이 결성된 그해 9월 26일 인쇄됐다. 가로 18㎝·세로 26.2㎝ 크기이며, 4쪽 분량이다.

단보는 수양단의 2대 강령인 ‘유한단련’과 ‘동포상애’로 시작한다.

이는 ‘땀 흘려 단련하고, 동포를 사랑한다’라는 의미로, 여기서 동포는 일제와 조선인을 모두 아우른다. 이어 조선인이 ‘황국신민’이라는 사실을 한 순간이라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글이 수록돼 있다.

수양단 광주지부는 1922년 8월 발족된 ‘수양단조선연합회본부’의 지역 기구격이다. 수양단조선연합회본부는 ‘유한단련’과 ‘동포상애’를 2대 기치로 내걸고 중견 청년 육성 및 사회 정화를 표방했다.

하지만 이와 달리 조선인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고 ‘황국 신민화’를 주도하는 역할을 주로 수행했고, 그 중심에는 거물급 친일파들이 다수 포진됐다.

실제 이 조직의 고문으로 조선총독과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칙선의원 등을 역임한 박영효가 이름을 올렸고, 경술국적 윤덕영, 을사오적 중 한 명인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 민병석 등 친일파들이 임원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일반주민을 비롯해 농고생, 사범생 등 학생들까지 끌어들여 신사를 참배하고 강습회를 개최해 천황에 대한 복종을 강요했다. 또 대규모 시가행진을 통한 황민화 운동을 전개했다.

수양단의 만행은 이뿐만이 아니다.

1938년 5월 29일 전북 이리에서 수양단 호남대회를 개최한 이후 1939년 3월 19일 서울에서 동아신질서 건설을 위한 수양단 총동원대회를 열고 ‘대동아공영권’을 적극 선전했다.

‘대동아공영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가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며 내세운 정치 슬로건으로, 아시아 민족이 서양 세력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일본을 주축으로 힘을 모아 서양 세력을 몰아내자는 게 요지이다.

즉, 수양단은 조선인도 천황의 신민이라는 인식을 강요·주입시켜 민족정신을 말살한 뒤 태평양 전쟁의 총알받이로 내세우는 역할을 주도했던 것이다.

심정섭씨는 “수양단의 단보에 실린 내용을 보면 일제가 주도면밀하게 황민화운동을 전개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며 “끊임없이 황국 신민화 정신을 주입시키고 시가행진 등을 통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결국 태평양 전쟁에 투입시키기 위한 고도의 술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대웅 기자 [email protected]

<2020-08-27> 광남일보 

☞기사원문: [국치일 기획]”조선인 황국 신민화 주도…태평양 전쟁 내몰아”

월, 2020/08/31-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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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의회, 여론조사 통해 결정키로
지역단체 “친일작품 당장 교체해야”

춘향영정을 그린 민족화가 강주수 작품(왼쪽)과 친일화가 김은호 작품(오른쪽).

친일화가 작품 논란으로 교체를 추진했던 전북 남원 광한루원 춘향영정이 시의회의 결정으로 유보되자, 지역에서 교체를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남원정신연구회 등은 남원시의회가 지난 25일 열린 총회에서 의원들의 반대로 친일화가 김은호가 그린 춘향영정의 교체를 취소했다고 31일 밝혔다. 오는 9월10~13일 개최할 예정인 제90회 춘향제는 친일작가 김은호 춘향영정으로 하고, 앞으로 여론조사를 통해 교체를 결정한다는 내용이다.

의원들은 “지금까지 김은호 작품으로 지속했는 데 이제 와서 왜 바꾸느냐”, “아예 영정을 철수하고 안내문을 설치하자”, “지역작가들의 검증된 새 작품을 활용하자”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체를 찬성하는 염봉섭 의원은 “친일은 역사적 사실이어서 재판과도 같은 성격이다. 여론조사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아직 영정 교체를 취소한 것은 아니고, 시간을 두고 결정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유보 결정이 나오자 남원지역 단체들의 성명이 잇따르고 있다. 남원정신연구회가 8월26일, 시민주권남원행동이 8월28일, 남원산성민요연구회가 8월29일 친일화가의 춘향영정을 즉각 철거하라고 촉구했다. 남원정신연구회는 “1931년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3·1운동 정신과 민족혼으로 춘향사당을 건립했다. 새롭게 내걸리게 될 민족화가 강주수는 조선춘향영정을 유관순같은 독립투사 모델로 해 옷을 태극의 색으로 했다. 비열한 친일작품인 일본춘향 ‘하루카’를 지금 당장 민족화가 춘향영정으로 교체하라”고 밝혔다. 강경식 춘향영정교체위원장은 “치욕스런 일본춘향 앞에서 제향을 지낸다니 참으로 원통하다. 부끄러운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춘향영정에 대한 비교표. 남원정신연구회 제공

앞서 남원시는 광한루원 안의 춘향사당에 걸려 있는 춘향영정을 8월 안으로 강주수 화백의 작품을 복제해 교체할 계획이었다. 이 영정의 교체는 영정을 그린 이당 김은호 화가의 친일행적 때문이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김 화가의 이력으로 그동안 시민사회단체 등은 지속적인 교체를 요구해왔다.

교체할 춘향영정은 크기가 가로 80㎝, 세로 160㎝로 전신을 그린 미인도 형태의 초상화다. 이 영정은 김 화가가 1961년에 그린 것을 복제한 것이다. 최초의 영정은 춘향사당이 세워졌던 1931년, 경남 진주 출신 강주수 화백이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중에 일부가 훼손됐다. 1961년 다시 김은호 그림이 기증돼 복제품이 걸려 현재에 이르고 있다.

김은호(1892~1979년)는 일본식 채색화 기법을 익혔고, 조선미술가협회의 일본화부에 참가해 전쟁 지원을 위한 친일 미술작품을 심사하는 등 태평양전쟁 기간 중 적극적인 친일파로 활동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행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됐고,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됐다.

박임근 기자 [email protected]

<2020-08-31> 한겨레

☞기사원문: 친일화가 작품 논란 ‘광한루 춘향영정’, 교체 유보되자 지역서 반발

화, 2020/09/0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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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 3.1혁명을 학살로 억압한 일제, 1923 간토대진재 시 학살재현

▲ 간토학살피해자 제97주기추도식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에서 열린 비대면 온라인 추도식 ⓒ 김종수
▲ 간토학살피해자제97주기추도식배너 민중화가 신학철화백의 허락을 받아 디자인한 배너 ⓒ 김종수

1923한일재일시민연대와 사회적협동조합 기억과평화가 공동주최한 간토학살피해자 제97주기 추도식이 한국 천안시 병천면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에서 지난 1일 열렸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상황에서 간토학살사건 관련단체인,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기억과평화협동조합, 1923인문학연구소, 기장 1923진상규명위원회의 임원들과, 연대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 천안민족문화연구회 대표자,그리고 씨알재단에서도 참여하였다.

임광순 사협 기억과평화 이사의 사회로 오후 2시에 개회하여 헌화를 시작으로 제97회 메시지, 추도사, 연대사, 추도노래가 이어졌다.

이번 행사를 주최주관한 1923한일시민연대 김종수 상임대표는 간토학살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일본 내각과 군대, 경찰, 민간자경단을 향한 분노가 일었지만, 10년 넘게 진실규명과 추도활동을 해오면서 점점 분노의 대상이 한국 정부로 바뀌어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종수 대표는 한국 언론이 코이케유리코의 추도사를 내지 않는 것을 비난하면서도 한국 정부가 공식적인 추도사 한 번, 추도식 한 번 열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론에서조차 이를 지적하는 기사를 보지 못했다며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100년이 되는 2023년을 맞을 때에 간토피학살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민관협력으로 준비해야 할 것을 제안했다.

– 100년을 맞기 전까지 남과 북이 함께 간토학살조사에 나서자.
– 100년을 맞기 전까지 1923역사관의 학살지역별 전시를 위해 함께 협력하자
– 간토학살백서제작을 위한 남북한일재일 공동기구를 제안하자.
– 간토학살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시민, 의원이 함께 협력해 가자.

▲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김종수 상임대표 제97주기 추도식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 김종수

일본 국가책임을 묻는 모임의 사무국장 다나카마사타카 교수(일본 센슈대)는, 코로나19로 인해 참가하지 못한 채 보내 온 추도사에서 “도쿄 도지사가 조선인 학살에 대해 ‘역사학자들이 판단할 일’이라며 이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분들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기 때문에 개별 추도사를 내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조선인 학살은 역사학자들이 판단할 것도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모든 분들에 대한 애도의 뜻’ 속에 조선인 희생자가 들어있는 거라면 도대체 어느 부분에 적혀 있는 것입니까? 학살의 사실을 절대 말하지 않는 추도는 도대체 무엇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까? 왜 일본 사회는 희생자의 아픔을 스스로의 아픔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까?”하고 일본 정부와 우경화되어가는 일본 사회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가해의 역사를 진지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촉구해 나갈 것과,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가해의 역사를 기억하며,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힘쓸 것을 희생자 여러분께 다짐한다”고 전해 왔다.

한편 1923인문학연구소를 이끌고 갈 김광열 교수는 100년이 되기 전에 일본 정부의 공식적 사과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진정한 사과를 위해서는 현재도 진행 중인 재일코리안에 대한 헤이트스피치와 혐한문화를 중단해야 하라고 촉구했다.

특별히 천안역사문화연구소의 이용길 대표는 오충공 감독의 인터뷰 속에서 강덕상교수의 ‘일본 제국의 학살의 근원과 뿌리가 동학농민혁명가들을 학살한 일에 두고 있으며, 그들이 다시 3.1만세혁명 시기의 일본 총독부의 학살로 이어졌고, 그 학살자들이 1923년 간토대지진 시에 조선인을 학살한 역사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영상을 보고 전율이 흘렀다’고 말하며, 이제 97년을 맞는 우리들은 왜 일본 정부가 학살의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가를 물어야 하며, 일본의 국가책임을 물어야 할 때이다”하고 일갈하였다.

또 한국에서 추도행사를 위해 천안으로 오는 동안 일본에서 진행되는 일본시민단체들의 추도식과 재일동포들이 진행한 추도식을 인터넷 중계를 보면서 내려 왔다고 하며 “지금 이 시각도 조선인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추도집회를 일본 우익들의 헤이트스피치와 동급으로 취급하며 서약서를 쓰도록 하는 등(물론 서약하지 않았고 추도식을 강행)의 각종 억압을 가하는 한 편, 현재 코로나 사태 속에서 일본정부가 각종 지원에서 재일코리안을 배제하는 일들이 일으너는 등 간토학살에서 나타난 폭력과 억압과 배제는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이러한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스스로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아야 한다.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민주사회 속에서 당연히 없어져야할 차별과 배제를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조차 일부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는 것은 문제이지 않은가? 코로나바이러스는 ‘우한 폐렴’이라고 하거나, 대한의사협회 파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지역의료인들에 대해서는 ‘중국사람이’라고 말하거나, 코로나 마스크 배급에 외국인들을 배제하는 일 등 우리 안에도 배외의식이 존재하고 있음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100년을 3년 앞두고 있는데, 이제 이곳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에서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을 위한 연대활동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음을 함께 기뻐하며, 강제동원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들과 식민지역사박물도 여러분과 함께 평화인권 발걸음에 함께할 것을 약속 드린다”고 연대의 의지를 밝혔다.

▲ 코로나로 마스크를 쓴 채.. 기억과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에서 열린 추도행사참가자 ⓒ 김종수

고난의 현장에서 촛불과 피켓을 들고 예언자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최헌국 목사는 간토학살을 내용으로 한 추도시를 낭독하였고, 세월호 등 사회적 이슈를 내용으로 한 노래와 곡을 쓰고 노래해 온 윤광호 목사의 추모가가 이어졌다.

지난 5월부터 리모델링공사를 시작하였으나 올 해 이상기후로 인한 긴 장마로 인해 공사가 3주 이상 중단되어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의 개관식과 ‘1923인문학연구소’의 개소식, 그리고 학술토론회은 10월 12일(월) 오후 2시로 연기하기로 했다.

토론주제는 1923역사관에 대한 전시구성과 민간의 힘으로 세운 식민지박물관 건립의 사례를 주제로 박물관 학예사인 1923인문학연구소의 성주현교수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의 김승은 학예실장의 발표를 통해 2023년까지 1923역사관의 전시와 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논의를 펼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1923한일시민연대 상임대표입니다. 이 기사는 사회적협동조합의 내부 인터넷신문 미디어기평에도 실립니다.

<2020-09-0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간토학살피해자 제97주기 추도식, 혁명과 학살의 상징 아우내에서 열려

목, 2020/09/0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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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 산학협력단, 학내 일제 잔재 연구 중간보고 친일 음악가들이 만든 교가에 국화·향나무도 버젓이

제주 초등학교 4곳의 교표에 도안된 (왼쪽부터) 일본 가문의 욱광문, 일본 왕실의 국화문과 일장기, 욱일기.(제주대학교 산학협력단 제공)© News1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욱일기 문양의 교표, 친일 음악가가 만든 교가 등 제주 학교 곳곳에 여전히 일제의 흔적이 남아 있어 청산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9일 제주도교육청에 따르면 ‘제주도교육청 일제강점기 식민잔재 청산 연구용역’을 수행 중인 제주대학교 산학협력단은 최근 도내 학교 내 유·무형 일제 잔재에 대한 1차조사를 마쳤다.

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도내 4개 초등학교는 옛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바탕으로 도안된 교표를 사용하고 있다.

교표 한가운데 태양을 상징하는 원이 있고, 그 원에서 빛이 사방으로 펼쳐지는 형상이다.

이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무궁화나 과거 일제강점기 군 관련 배지에서 자주 사용된 월계수 등과 함께 결합돼 있다.

또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1909년 식민통치를 알리며 우리나라에 심었던 가이스카 향나무를 교목으로 지정한 학교도 35곳(초 18·중 11·고 6)에 달했다.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국화나 일제강점기 일본이 들여온 영산홍을 교화로 지정한 학교 역시 각각 8곳(초등), 13곳(초 10·중 2·고 1)으로 파악됐다.

제주의 한 초등학교에 일재 잔재로 꼽히는 가이스카 향나무가 심어져 있다.(제주대학교 산학협력단 제공)© News1

이 뿐 아니라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작사가 김기진·이원수, 작곡가 이홍렬이 만든 교가를 아직도 부르고 있는 학교도 3곳(초 2·고 1)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현황’ 등에 이름을 올린 도내 교장도 현재까지 3명으로 집계됐다.

제주대 산학협력단은 10월까지 현장조사와 공청회, 자문회의 등을 마치고 11월 초 최종보고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제주도교육청 관계자는 “연구용역이 마무리되는 대로 관련 지침을 도내 각급 학교에 권고할 예정”이라며 “일제 잔재에 대한 청산작업은 학내 공론화를 거쳐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0-09-09> 머니투데이

☞기사원문:‘교표에 욱일기라니’…제주 학교에 여전한 일제 잔재

수, 2020/09/09-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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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랑상품권에 지역 독립운동가 넣자
전국 최초 개념 지자체 되기 어렵지 않다

“독립운동을 한 나라의 화폐에 독립운동가 한 명이 없다.”

지난 8월 경남도의회에서 ‘경상남도 대일항쟁기 일제 잔재 청산 등에 관한 조례 제정 토론회’가 열렸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이 발제를 맡았고, 화폐 이야기를 꺼냈다.

“신사임당이 5만 원권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조선시대 이 씨 남자들만 오직 화폐에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 고액권 화폐 논의가 진행됐고 5만 원권 초상 인물은 신사임당, 10만 원권에는 김구 선생이 선정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권이 바뀌고 정치권에서 김구 선생 초상에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자 10만 원권 발행은 무기한 연기됐다. 친일청산 반대 논리로 등장한 색깔론에 법적으로 처벌받은 친일파가 한 명도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해방 후 1950년대 발행된 우리나라 화폐에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거북선, 무궁화 등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물 등이 새겨졌다. 1972년 이후부터 지금 우리는 경제활동을 하며 퇴계 이황(1000원권), 율곡 이이(5000원권), 세종대왕(1만 원권), 신사임당(5만 원권)을 마주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2007년 5만 원·10만 원권을 발행하기 앞서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초상 인물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김구·김정희·신사임당·안창호·유관순·장보고·장영실·정약용·주시경·한용운'(이상 가나다순) 등 10명으로 압축됐다. 당시 보도자료에는 “2차 후보군 가운데는 독립운동가(김구·안창호·유관순·한용운)들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다 여성인물이 선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 유관순 열사의 등장은 후보 간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달굴 것”이라고 적혀 있다. 이러한 국민의 염원은 어디서부터 막혔던 걸까.

김영진 도의원은 지난 6월 도정질문을 통해 “도내 독립운동가 관련 시설물 49곳을 직접 돌아보니, 경남도는 도내 독립운동가를 알리는 표지판이나 안내판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 의원은 국가보훈처에서 받은 경남 출신 독립유공자는 1039명인데, 경남도로부터 받은 서면 자료엔 486명밖에 안 되는 점도 지적했다. 왜 지금껏 우리나라 화폐에 독립운동가 한 명이 없는지 설명되는 대목이다.

방학진 실장은 지역사랑상품권에 지역의 독립운동가를 새길 것을 제안했다. 방 실장은 “지자체마다 지역 화폐가 있고, 지역마다 독립운동가도 있지 않으냐. 자치단체장의 뜻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독립운동가를 책으로 배울 게 아니라 일상에서도 배울 수 있는 환경 만들기, 지자체에서 조금만 신경 쓴다면 어려울 일도 아니다. 도내에는 경남·창원·남해·하동·합천 등 지자체마다 종이권으로 지역 화폐를 발행하고 있고, 전통적인 꽃문양이나 명소 사진이 새겨져 있다. 지역 특성과도 무관한 꽃문양 대신 지역의 독립운동가를 지역 화폐에 새긴다면? 요샛말로 ‘개념 지자체’, ‘전국 최초’가 된다. 어느 지자체에서 먼저 나서 볼 텐가.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혜영 자치행정1부 차장 ([email protected])

<2020-09-09> 경남도민일보

☞기사원문: 독립운동가 알리기, 지역 화폐로

수, 2020/09/09-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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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가 기증한 마스크를 들고 기뻐하는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와 김순흥 지부장 일행. 사진=고려인마을 제공]

[한국타임즈 김혜경 기자]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지부장 김순흥)는 최근 광주고려인마을을 방문해 코로나19 재 확산 방지를 위한 이웃사랑 마스크 500장을 기탁했다.

고려인마을 방문에는 김순흥 지부장과 이지훈 국장, 김홍길 국장, 정영해 전 동신대 교수 등이 함께 했다.

김순흥 지부장은 “최근 잠잠했던 코로나19가 재 확산됨에 따라 또 다시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다 함께 극복하자는 마음을 담아 마스크를 준비했다”며 “광주고려인마을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했다.

이어 “광주고려인마을 주민들은 일제강점기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고려인선조들의 후손이기에 눈물어린 애정이 가슴에 남아있다”며 “앞으로 특별한 관심을 갖고 고려인선조들의 잊혀진 항일 역사를 복원, 고려인동포들이 한민족의 후손으로서 자랑스런 긍지를 갖고 이 땅을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마스크를 후원해 주셔서 감사를 드린다”며 “기탁하신 마스크는 마을거주 고려인동포를 대상으로 소중하게 쓰겠다”고 말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는 순천 회원이 운영하는 사회적기업(마마나스)이 광주이주 독립투사후손 고려인동포들의 안정된 정착과 민족적 자긍심 고취를 위해 면마스크를 기증했다고 전했다.

한국타임즈 김혜경 기자 [email protected]

<2020-09-09> 한국타임즈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고려인마을에 마스크 후원

목, 2020/09/10-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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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독립운동가 동암 차리석(1881~1945) 선생 75주기 추모식

ⓒ 김경준

9일 오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국무위원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동암 차리석(1881~1945) 선생의 75주기 추모식이 서울 효창공원(효창원) 내 임시정부 요인 묘역에서 열렸다.

ⓒ 김경준

차리석 선생은 1919년 4월 11일, 상하이 임시정부가 수립된 이래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임시정부 27년의 전 여정을 함께 한 임시정부의 파수꾼이었다.

ⓒ 김경준

선생을 가까이서 지켜본 독립운동가 수당 정정화는 ‘늘 가난에 찌든 모습’이었음에도 임정의 살림에 보태라며 푼돈을 내주었을 정도로 그 자신에게는 인색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 김경준

“나처럼 임정 살림 뒤치다꺼리를 맡은 사람들은 돈이 필요할 때마다 그분들에게 손을 벌리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지출금액을 일일이 장부에 기록할 필요도 없을 만큼 임정의 살림은 형편없었다.

특히나 돈을 받아쓰는 사람의 마음도 성에 차지 않았지만, 푼전을 내주어야 하는 그분들의 심정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한 것이었으리라. 동암(차리석)과 우천(조완구)은 그런 궁색한 살림을 맡아하면서 자신들에게만은 특히 인색하게 대했을 터이니, 늘 가난에 찌든 모습이었다.” – 정정화, <장강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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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결코 사무에는 소홀하지 않았으니 1948년에 열린 선생의 장례 당시 “탁월한 사무 처리 기능이나 병중에서도 최후의 일각까지 맡으신 사명을 완수하신 강한 책임감은 한국독립운동에 피가 되고 살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백범 김구 선생과 성재 이시영 선생의 추모사에서 그 공로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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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선생은 해방을 맞아 환국을 준비하던 중 1945년 9월 9일, 과로로 그만 병사하고 말았다. 환국한 김구 선생은 가장 먼저 임시정부 요인들의 유해를 봉환하는 사업에 착수했고, 1948년 선생 역시 지금의 자리에 안장됐다.

오늘 추모식은 코로나 19로 인해 최소한의 추모객만 참석한 채 소규모로 열렸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선생을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돋보였다.

LAC그라피티 스튜디오의 레오다브 작가(본명 최성욱)가 직접 그린 차리석 선생의 그라피티 초상화가 놓인 가운데, 최근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를 출간한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는 자신의 책을 선생의 영전에 헌정하기도 했다. 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커피·원두 판매사인 ㈜카페리즈와 합작하여 출시한 ‘효창독립커피’ 차리석 블랜드도 헌정됐다.

행사의 사회를 맡은 방학진 민문연 기획실장은 “차리석 선생은 숭실대학교 전신인 평양 숭실학교 졸업생인데 현재 숭실대에는 선생을 기념하는 기념관, 흉상은 고사하고 이름을 딴 강의실 하나조차 없는 형국”이라며 “친일파 안익태 기념관도 있는데 차리석 기념관이 없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반드시 숭실대 캠퍼스 내에 차리석 기념물을 조성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역설했다.

후손 대표로 답사를 한 차영조 선생(차리석 선생 아들)은 “젊은 청년동지들이 선친을 기억하고 알리고자 애써주는 것에 대해 특별히 감사를 표한다”고 답례했다.

한편 차리석 선생은 한국광복군 군수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오는 9월 17일은 한국광복군 창설 80주년이 되는 날이다.

<2020-09-09>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안익태 기념관도 있는데 차리석은 강의실 하나 없다”

목, 2020/09/10-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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