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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 아놀드 팡을 떠나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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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 아놀드 팡을 떠나보내며

admin | 월, 2021/07/12- 18:00
7년간 국제앰네스티의 국제사무국 소속 동아시아 조사관Researcher으로 일했던 아놀드 팡Arnold Fang 조사관이 5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앰네스티를 떠났습니다. 코로나19로 직접 만날 수 없어 온라인 상에서 작별 인사를 해야 했는데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커뮤니케이션팀의 신한나 팀장이 아놀드 팡 조사관과 만나 그간의 소회, 한국지부 회원과 지지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들을 들어보았습니다.
아놀드팡 조사관과 국제앰네스티 신한나 팀장

아놀드 팡 조사관은 홍콩에서, 신한나 팀장은 서울에서 줌으로 만났다.

한나: 안녕, 아놀드. 이렇게 헤어지게 되어 너무 아쉬워요. 아놀드를 잘 모르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과 지지자분들에게 본인을 소개해 주시겠어요?

아놀드: 안녕하세요 저는 아놀드 팡입니다. 앰네스티 국제사무국 소속 동아시아 조사관이고요. 홍콩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 북한, 몽골, 일본 지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전에는 각 나라를 방문하며 조사 활동을 펼치기도 했고, 한국도 자주 방문했었어요. 북한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조사했고, 관련 단체의 역량 강화capacity building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고요. 북한 이슈를 알리기 위해 스위스 제네바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한나: 조사관으로는 얼마 동안 일하신 거죠?

아놀드: 2014년부터 7년 간 일했습니다. 생각해보니 꽤 오랜 시간이네요. 2014년에 입사하자마 한국지부에 방문했었어요. 노마(Noma) 조사관과 함께 갔었어요. 당시에는 사무실이 합정에 있었죠? (노마 조사관은 2007년 촛불집회를 다룬 <한국: 촛불 집회에서 경찰력 집행>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국제앰네스티 아놀드팡 조사관이 한국지부 사무실에서 PROTECT THE HUMAN 피켓을 들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아놀드팡 조사관이 한국지부 사무실에서 “PROTECT THE HUMAN” 피켓을 들고 있다

한나: 저도 그 때 생각이 나네요. 저와 거의 입사 동기였네요. (전 그 후에 잠시 떠난 후 재입사하긴 했지만요) 조사관 업무는 그 전에도 경험이 있으셨나요?

아놀드: 당시 인권 단체에서 조사관으로 일한 것은 앰네스티에서의 경험이 처음이었어요. 그 전에는 국제개발단체에서 일했고, 북한과 관련한 업무를 진행했었습니다.

한나: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놀드: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랬습니다. 처음엔 정말 어려웠습니다. 국제개발 분야에서 북한 프로그램을 담당할 때와는 전혀 다른 관점이 필요했거든요. 국제앰네스티 안에서도 북한이라는 주제는 뜨거운 감자였어요. 북한에 대해 전 세계 여러 지부가 알고 싶어하지만, 북한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북한에 대해 궁금하면 전 세계 지부에서 저에게 문의를 했었고요. (웃음)

한나: 한국지부에 4년 전부터 북한인권 담당자가 생겼어요.

아놀드: 한국지부에 북한 인권 담당자가 있는 것은 큰 성과입니다. 저는 한국지부가 북한 관련 인권 문제를 조금 더 주도적으로 가져가서 전 세계에 알리기를 바라고 있어요.

2016년 3월 9일 북한 인권 보고서 기자회견 현장에서 아놀드 팡 조사관

2016년 3월 9일 북한 인권 보고서 <통제된 사회, 단절된 삶: 북한 내 휴대폰 사용 및 외부세계 정보 제한 실태> 기자회견 현장에서 아놀드 팡 조사관

한나: 북한인권 외에 또 어떤 업무를 진행하셨죠?

아놀드: 여러 국가의 ‘표현의 자유’ 문제를 담당했었어요. 7년 전 국제앰네스티에서 처음 일했을 때 한국 내 시위대를 향한 과도한 경찰력에 대해 다뤘었죠. 홍콩 사람으로 현재 홍콩에서 벌어지는 시위에 대한 과도한 공권력 남용을 볼 때마다 그 때가 떠오릅니다.

조사관이 아니라 한 명의 개인으로 말하자면 지난 7년간 저는 한국사회의 변화를 목격했습니다. 한국사회가 시민들의 투표로 정권을 바꾸는 모습, 2016년의 촛불집회, 시민들의 힘, 피플 파워people power를 봤죠. 그 이후 표현의 자유나 집회 시위에 대한 이슈를 많이 다루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한국사회 내 LGBTI성소수자 인권, 군형법, 트랜스젠더, 여성 인권 이슈 등을 더 다루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조사하는 영역은 아니지만요)

한나: 코로나19 이후에 조사관으로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아놀드: 각 나라 지부를 방문하는 것은 언제나 좋은 경험이었어요. 물에 손가락을 넣고 온도를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현장’을 직접 느낄 수 있었어요. 각 지부의 직원, 협업 파트너, 평범한 시민들을 통해 인권 문제에 대해 듣는 경험이 저에게 정말 중요했습니다. 코로나19로 여행이 제한된 것이 안타까웠어요. 그러고 보니 제가 한국을 마지막으로 방문한 게 2020년 2월 국제앰네스티 세계인권현황 연례보고서 발표 기자회견 때였네요.

한나: 저도 아놀드를 보지 못해 아쉬워요. 이제 앰네스티 조사관이라는 직업에 대해 물어볼게요. 앰네스티 조사관이라는 역할을 누군가에게 추천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아놀드: 먼저, 인권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겠죠. 특히 국제앰네스티에 대해서도요. 국제법과 앰네스티만의 정책, 앰네스티의 입장에 대해 계속 배워야 해요.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엄청난 문서들을 작성해야 하거든요. (웃음). 읽는 사람이 누군지에 따라 각기 다른 글쓰기 방식도 필요해요. 유엔을 상대로 애드보커시 문서를 써야 할 때도 있고, 대중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써야 할 때도 있죠. 글쓰기 방식이 아주 다른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메시지를 읽는 이에 맞추어 잘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조사관은 많은 시간을 글쓰기에 쓰게 됩니다. 글을 쓰기 위한 미팅과 자료 조사, 또 다른 문서 읽기를 포함해서 말이죠.

보고서 『통제된 사회, 단절된 삶』의 표지

보고서 『통제된 사회, 단절된 삶』의 표지

한나: 조사관으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나요?

아놀드: 본인의 개인적인 의견이 있다고 해도 조사관은 앰네스티라는 단체를 대표해서 발언해야 합니다. 중립적인 입장을 표현해야 하고, 경청하는 것이 중요해요. 늘 자신에게 익숙한 주제만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파트너와 이해관계자의 이야기를 잘 듣고 배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나: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 바라는 점이 있나요?

아놀드: 한국과 북한이 조금 더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도, 정보도요. 이산 가족들도 서로 만나고, 서로의 문화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사회 내에선 차별금지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봐요.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여러 소수자들을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합니다.

한나: 한국지부의 회원과 지지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아놀드: 한국 시민들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어요. 이 변화는 희망을 주었죠. 홍콩의 많은 시민들도 한국의 사례를 보고 힘을 얻었고요. 우리가 모두 함께 변화를 위해 행동한다면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시민들에게는 전 세계를 향한 사명이 있는 것 같아요. 시민들의 힘을 보여준 국가니까요, 이 어두운 세계 속에 계속 작은 빛을 내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한나: 마지막 질문이에요. 인권 단체의 조사관으로 일하는 것은 늘 스트레스와 마주하는 일일 텐데요. 본인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나 인내심 유지 비법이 있을까요?

아놀드: 일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일 이외에 다른 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전 요즘 운동을 많이 해요. 음악을 만들기도 해요. (아놀드는 앨범을 발매한 뮤지션이다). 액티비즘 이외에도 나만의 활동이 있어야 해요. 코로나19로 야외활동을 잘 하지 못하게 되면서 베이킹을 시작했어요. 어제도 샌드위치 빵과 사워 도우sour dough를 만들었답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아놀드에게 보내는 굿바이 편지

앰네스티 한국지부 동료들이 아놀드에게 남긴 롤링페이퍼, 온라인 롤링페이퍼로 작성해 보내주었다.

7년간 함께 일하면서 한국사회 내 인권의 변화를 경험한 동료를 떠나보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멀어진 물리적 거리로 직접 전해주진 못했지만 한국지부의 동료들은 온라인 롤링 페이퍼로 아놀드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랜선 너머로 아놀드의 커다란 웃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놀드 팡 조사관, 수고 많았어요!
인터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커뮤니케이션팀 신한나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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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보전] 집으로 돌아간 인도네시아 선원 소식


지난 5월 매체 보도로 시민분들의 관심을 크게 받았던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소식입니다. 약 한 달 전에 선원들이 조사를 마치고 모두 귀가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제야 소식을 전해 담당 활동가로서 더 열심히 소통하고 알려드려야 한다는 책임을 느낍니다.


[caption id="attachment_208531" align="aligncenter" width="800"] 인도네시아 선원들이 살고 있는 거주지를 나타낸 지도[/caption]

환경운동연합은 인도네시아 선원들이 귀국하기 전날 자카르타에서 집으로 갈 차비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모금함을 열었습니다. 다음날 중계 브로커 업체의 방해에도 선원들에게 무사히 차비를 전달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약 한 달여 간의 조사가 진행됐고 선원들은 하나둘 귀가했습니다.
시민분들의 모금이 없어 차비가 없었다면 집에 가야 할 선원들은 얼마나 망막했을까요.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합니다.

[caption id="attachment_208533" align="aligncenter" width="800"] 자카르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선원 집과의 거리, 무려 2,400km가 넘는다.[/caption]

처음엔 환경운동연합도 가장 거리가 먼 선원이 사는 곳이 자카르타에서 약 1,600km 떨어진 곳으로 알았습니다. 나중에 받은 선원들의 주거 위치 지도를 받고 후 가장 먼 거리는 약 2,485km 떨어진 섬이라는 걸 알고 난 후에 십시일반 도움 주신 시민분들께 감사함이 더 커졌습니다. 시민분들의 모금과 시민분들의 관심으로 인도네시아 정부도 적극적으로 선원들에 대한 인권침해와 노동 착취를 조사하고 선원들이 귀가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소식입니다.
선원들이 안전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움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208532" align="aligncenter" width="800"] 안전히 귀가해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준 인도네시아 선원 ⓒ공익법센터어필[/caption]

인도네시아 선원 중 한 명은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한 선원의 사진을 보다 ‘이 아이가 아빠를 다시 만난 게 얼마나 다행일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의 집에서 서너 살로 보이는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한편으로 마음이 시려 왔습니다. 사망한 선원 중 누군가는 아이의 아버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적어도 사진에 있는 아이는 아버지를 잃지 않았겠구나’라는 생각에 부정적인 생각을 버렸습니다.

모두 시민분들의 관심으로 선원들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유튜버가 보도에 대한 한국 시민분들의 관심을 전했고 소식이 일파만파 커져서 인도네시아 정부의 적극적인 행동도 이끌 수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선원 수장 사건은 인권탄압과 노동 착취 문제가 크게 부각됐지만, 상어지느러미의 불법포획으로 연안국에 입항하지 못해 선원들이 사망한 정황이 추측됩니다. 환경운동연합은 모아주시는 모금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연근해 및 원양 어업의 불법·비보고·비규제(IUU) 어업의 근절을 위해 더 열심히 현장에서 뛰겠습니다.

화, 2020/07/21-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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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인권을 이야기하는 나눔의집에 인종차별 현수막이 웬 말이냐!

-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 조계종 나눔의집의 무책임한 태도를 규탄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계시는 곳에 일본인 직원이 웬말이냐?’

이 문장은 극우 집단의 집회에서 나온 발언도, 어느 극우 웹사이트에 올라온 글도 아니다. 지난 21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지내고 계신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 조계종 나눔의집의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외벽에 붙은 현수막의 내용이다.

누가 보아도 이는 역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일본 국적의 직원을 지목하여 게시한 현수막임이 분명하다. 이 직원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자신의 반평생을 바친 사람으로 최근 나눔의집과 관련된 의혹을 밝힌 공익제보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이 직원의 개인사와 무관하게 현수막의 내용은 명백하게 인종차별적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혐오가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고 인종차별적 발언이나 현수막 게시 등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지만 이번 사안은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발언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인종차별적 현수막이 올바른 역사 및 평화와 인권을 이야기하는 나눔의집 부속 건물에 게시된 것이다. 직원들이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나눔의집 측은 해당 현수막은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유족이 게시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과는 관련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현수막은 ‘나눔의집 운영정상화를 위한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원회)의 명의로 게시되었다. 그렇다면 추진위원회는 나눔의집과는 무관하게 운영되는 조직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법인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추진위원회는 어떠한 권한으로 이런 현수막을 설치한 것인가? 특정 직원에 대한 인종차별적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건물 외벽에 게시한 것에 대해 나눔의집은 어떠한 조치를 취할 책임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인가? 나눔의집의 안일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24일 오전 현수막을 붙인 측에서 현수막을 제거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상황에 대한 나눔의집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눔의집에 대한 의혹을 조사하기 위한 경기도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발표 후 시민사회는 이 사태가 하루빨리 제대로 해결되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여생을 좀 더 편안하게 보내실 수 있기를 염원하였다. 그러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나눔의집 운영에 책임이 있는 조계종 법인은 이 사태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기는커녕 변명만을 일삼으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이번 사건은 나눔의집 법인과 시설 측이 나눔의집과 관련된 총체적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나눔의집은 시설 내에서 일어난 인종차별행위를 방관한 것에 대해 그 직원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법인은 이 모든 사태에 책임을 지고 나눔의집 운영권을 반납해야 한다. 그것만이 이 사태에 대한 전국민적 비판에 제대로 응답하는 길이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얼마 남지 않은 생을 편안하게 보내실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일 것이다.

현재 이 사건에 대해 차별행위로 경기도인권센터로 구제신청이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비록 현수막은 철거되었지만 경기도인권센터는 이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여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시민사회는 이 사건뿐만 아니라 나눔의집 사태가 제대로 해결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것이다.

2020년 8월 25일

(총 69개 단체)

4.9통일평화재단, 경기민언련, 경기복지시민연대, 경기시민사회포럼, 경기여성단체연합, 경기여성연대,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광주인권지기 활짝, 국제민주연대, 김근태기념치유센터, 나야장애인권교육센터, 다산인권센터, 두레방,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민주열사 희생자추모(기념)단체 연대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사)겨레하나, 수원여성노동자회, 수원여성의전화, 수원여성회, 수원지역목회자연대, 수원청소년성인권센터, 수원평화나비, 수원환경운동센터, 울산인권운동연대, 원불교인권위원회,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부천이주노동복지센터, (사)한국이주민건강협회 희망의친구들, (사)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 순천이주민지원센터,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사)모두를위한이주인권문화센터, 원불교서울외국인센터, 의정부EXODUS,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 파주이주노동자센터 샬롬의집, 포천나눔의집, 함께하는공동체), 이주민센터 친구, 이주여성인권포럼,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운동공간 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의학연구소, 인천인권영화제,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전국교직원노조수원중등지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진보당 수원시위원회, 참여연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평화비경기연대, 풍물굿패삶터, 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형명재단, KIN(지구촌동포연대)

목, 2020/10/29-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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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상반기 연재되었던 1~3화에서는 탈북인 보건의료 전문가 2인과의 대화를 실었습니다. 이어지는 4, 5화에서는 새로운 북한 보건의료 전문가와의 대화를 통해 최근 북한 보건의료의 모습과 문제점, 코로나19 상황 개괄 및 보건의료 개선 방안에 관해 더욱 심도 있게 고찰해 보고자 합니다.

앞서 상반기 연재되었던 1~3화에서는 탈북인 보건의료 전문가 2인과의 대화를 실었습니다. 이어지는 4, 5화에서는 새로운 북한 보건의료 전문가와의 대화를 통해 최근 북한 보건의료의 모습과 문제점, 코로나19 상황 개괄 및 보건의료 개선 방안에 관해 더욱 심도 있게 고찰해 보고자 합니다.
 

김신곤 교수
    김신곤 교수
  • –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내분비내과 교수
  • – 남북 보건복지 민관협력 포럼 위원
  • –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상임이사
  • – 통일보건의료학회 이사장
  • –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비상임이사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11월 초 북한 보건의료 전문가로 잘 알려진 김신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내분비내과 교수를 만났습니다. 김신곤 교수는 지금까지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하는 등 오랜 기간 북한의 보건의료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활동을 활발히 펼쳐왔습니다. 그는 북한 보건의료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거시적, 보편적, 유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김신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내분비내과 교수

김신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내분비내과 교수

이번 글에서는 최근 북한 보건의료가 직면한 어려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4최근 북한 보건의료가 직면한 어려움
© BBC World Service

변화 중인
보건의료 상황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지부, 김신곤 교수교수
북한 보건의료는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아시다시피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남북한의 경제 격차는 미미했어요. 보건의료 영역에서는 한때 북한이 우리보다 우월하거나 자랑할 만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무상의료무상치료제가 대표적이죠.

우리는 전국민 의료보험이라는 좋은 제도가 있지만, 사실 이게 시작된 것도 역사적으로 보면 북한에서 온 대남 전단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이게 근거가 없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시 집권 중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북한에서 날라오는 전단에 ‘무상교육’, ‘무상의료’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으니까, ‘우리는 저런 거 하면 안 되나’라고 해서 당시 별다른 토대가 없는 상황에서도 전 국민에 대한 의료보험이 빨리 진행될 수 있었다는 연구도 있죠.

적어도 북한의 보건의료 시스템만큼은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는 것 같네요.
북한이 시행하는 무상의료 시스템의 경우 사회주의 국가뿐만 아니라 유럽의 복지 국가들 중에서도 이를 채택한 나라들이 많아요. 국가가 돈이 있으면 무상의료는 잘 돌아가죠. 하지만, 국가가 돈이 없으면 당연히 이 시스템은 전혀 가동을 못합니다. 북한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과 비교해 건강지표가 나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점차 경제가 붕괴하기 시작하면서 1990년대부터는 아예 손을 놓게 되었죠.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가 시작된 이후로는 북한의 무상의료 시스템은 사실상 동결되어 버렸습니다. 병원에 가도 약은 턱없이 부족하고, 의사가 처방전 써주는 것만 가지고 약을 스스로 구해야 했는데,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장마당을 쉽게 보기 힘들었죠. 그래서 많은 사람이 질병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죽었어요.

최근에는 장마당에 가서 환자 본인이 돈을 지불하고 약을 구입하는 방식, 사실상 유상의료의 모습으로 변화했어요. 결국,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치료받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상황으로 바뀐 것이죠. 구입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금의 변화된 방식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힘든 시간이 되고 있을 것이라 봅니다.

 

© 연합뉴스 헬로포토

장마당 활성화가
가져온 역설

공공의료가 유명무실해졌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최근에는 장마당에서 누구나 약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의약품 접근성 측면에서는 이것이 장점으로 보이는데 부정적인 면도 있나요?
역설이라고 할 수 있죠. 국가가 돈이 있으면 공공의료가 가동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연이은 자연재난으로 국가가 먹고 사는 것을 책임져 주지 못하게 되면서 민간이 마주하게 된 위기가 커졌죠. 당연히 수많은 사람이 죽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국가에서는 장마당을 열어 두기 시작했어요. ‘국가가 책임 못 지니까 자력갱생하라’라는 식으로 숨통을 열어 둔 것이죠. 하나의 고육지책인데 그러면서 사실은 역설적으로 ‘장마당 경제’라는 것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보건의료의 측면에서 장마당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긍정적인 변화도 일어났지만, 부정적인 모습도 나타났습니다. 무엇보다도, 장마당에서 약이 유통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오남용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환자가 의사한테 가서 어디 아프다고 증상을 말한 후 장마당에 가서 약을 사라고 처방전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죠. 다음에 그 환자가 비슷한 증상이 있으면 다시 의사를 찾아갈까요? 아마 그 환자는 전에 받은 처방전을 바탕으로 그냥 자기가 약을 구해서 먹을 겁니다. ‘내가 전에도 이런 증상이 있었으니까 이 약 먹으면 될 것 같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이런 극단적인 예 중의 하나가 흔히 ‘아이나아이소니아자이드, Isoniazid, INH’라고 불리는 결핵약 오남용입니다. 결핵은 소모성 질환이죠. 소모성 질환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 서서히 몸이 축나는 질환이라는 말입니다. 결핵에 걸리면 삐쩍 마르게 되죠. 결핵은 감염자를 쇠약하고 쇠잔한 상태로 오랫동안 사람을 죽이지 않고 지속하다가 결국 사망하게 만듭니다. 또한, 그 사람의 기침과 가래를 통해서 타인의 감염도 쉽게 일으킵니다. 그래서 결핵균은 굉장히 스마트한 균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숙주를 죽이지 않고 오랫동안 괴롭히면서 다른 숙주에게 전염시키는 균이니까요.

아무튼, 결핵은 소모성 질환이라 결핵 환자들을 보면 삐쩍 마르고 못 먹고 그럽니다. 그런데 결핵 환자가 아이나 같은 결핵약을 처음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결핵균이 확 억눌리면서 모처럼 입맛이 돌기 시작합니다. 체중은 당연히 늘겠죠. 그래서 장마당에서는, 정말 황당한 일인데 아이나가 입맛 돋우는 약으로 팔린다고 합니다. 환자 자기가 그냥 경험했다고, 그저 구전으로 ‘이 약 먹었더니 입맛 돌더라’ 그렇게 말이 퍼지게 되니 어떤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입맛을 돋우기 위해 장마당에 가서 아이나를 삽니다. 그러면 실제 그 사람들이 결핵에 걸렸을 때, 그 약이 제대로 듣지 않게 됨으로써 내성만 키우게 되는 꼴이 되는 것이죠. 장마당의 활성화가 불러온 북한 내부의 변화의 바람이, 역설적이지만 보건의료 영역에서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변질하여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죠. 올바른 의료 문화를 위해서라도 보건의료는 장마당에서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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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중고(유엔 제재, 코로나19, 홍수)의 덫

최근 북한이 맞닥뜨린 어려움으로는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지금은 ‘삼중고’라는 표현을 씁니다. 먼저, 북핵으로 인한 유엔 제재가 있겠고요. 다음으로, 코로나19로 인해 그 어느 나라보다 굉장히 강력한 국경봉쇄를 시행하면서 고립된 상태도 말할 수 있겠죠. 또한, 홍수 피해도 컸습니다.

일부의 표현을 빌리자면 ‘북한이 자발적인 형벌을 내렸다’라고도 합니다.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을 선택함으로써 북한이 자신에게 형벌을 가하고 있다는 말이죠. 북한은 유엔 제재 이후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절대적인 상황에서 중국과의 무역으로 그나마 호흡이 가능했는데, 그것마저 코로나19 이후 강력한 국경 봉쇄가 이어지면서 더 힘들어지게 된 것이죠. 그리고 지난여름 있었던 홍수도 매우 큰 피해를 줬다고 알려졌습니다.

세 가지 어려움이 북한의 보건의료에도 똑같이 영향을 주는지요?
유엔 제재, 코로나19, 그리고 홍수라는 세 가지 어려움은 북한 보건의료에 당연히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은 보건의료 시스템은 잘 구축되어 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거치면서 사실상의 유상의료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 폐해가 돌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유엔의 계속되는 제재에 최근의 코로나19, 그리고 홍수가 함께 덮치면서 전반적인 보건의료 상황은 전보다 훨씬 더 나빠졌을 것이라고 봅니다. 보여주기 위한 연극무대 같은 평양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평양을 벗어난 다른 지역에서는 보건의료 상황이 굉장히 심각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고난의 행군 이후 사람들도 나름의 내구력이 생겼습니다. 주민들은 갖은 어려움에도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간 온 것이죠. 그렇지만 병을 얻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죽어간 사람도 분명 많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취약계층,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최근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을 거라고 봅니다.
북한의 식량 수급과 관련하여, 아직도 북한은 식량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보시는지요? 북한 사람들의 영양 상태는 어느 수준인가요?
굶어 죽는 사람들은 이제는 거의 없을 거라고 봅니다. 그래도 식량은 부족하고 무엇보다 균형 잡힌 영양소 공급이 안 되고 있습니다. 통계의 정확성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식량농업기구FAO, 세계식량계획WFP과 같은 국제기구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북한 인구의 40% 정도가 영양 부족 상태라고 합니다. 영양 부족의 척도는 키입니다. 영양이 부족하면 키가 자라지 않고 체중이 덜 나가고 그러죠.

굶어 죽지는 않겠지만 부족한 영양 상태로 인해서 다른 질병에 취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의 영유아 사망률이 높은 이유도 같은 이유인데요. 예를 들어,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아이가 로타바이러스Rotavirus 감염증과 같은 설사병에 걸리면 수액 보충이라도 제대로 하면 괜찮은데 정작 북한의 병원에서는 수액도 제대로 못 주는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사망률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영양 상태를 좋게 하는 것은 기본적인 면역력과 건강과 관련된 최저치를 키워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부족하다는 것은 결국 북한의 건강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죠. 북한의 영유아 사망률이 증가하고, 한국보다 7~9배 높게 나타나는 이유도 이것을 근거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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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과 평양이 아닌 곳,
두 개의 나라가 공존하는

평양과 다른 지역의 보건의료 수준 격차는 어느 정도인가요?
제가 직접 가 본 곳은 평양뿐입니다. 하지만 평양 밖의 모습은 저와 교류하고 소통하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은 것들이 있습니다. 북한에는 평양과 평양 이외의 지역으로 나뉜 두 개의 공화국이 있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닙니다. 비단 보건의료 영역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보건의료는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국가가 돈이 없으면 보건의료는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립니다. 당장 급한 먹고 사는 문제나 국가 경제와 관련된 가시적인 것들에 우선권이 가다 보니 보건의료는 차순위로 밀리곤 하죠. 그런 모습이 특히 두드러지는 곳은 북한의 어려운 지역들, 지방이죠. 거기서도 시골은 더욱더 그럴 것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전문가는 평양과 지방 간의 보건의료 격차가 상당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평양의 의료 수준은 그래도 조금 괜찮은 편인가요?
사실, 평양의 경우도 크게 나은 상황은 아닙니다. 몇 가지 상징적인 것을 들어 말해 드릴게요. 건물의 경우, 평양에 있는 건물은 외관상으로 굉장히 잘 지어 놓은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갖춰진 장비들은 당연히 제한적입니다. 굉장히 오래된 장비들이 있어요.

저는 2019년 평양시 만경대구역에 있는 ‘최경태내분비연구소’에 간 적이 있어요. 그곳의 경우 입원 병상이 100병상 이상인데 내분비 전문병원으로 100병상 이상인 곳은 우리나라에도 아직 없죠. 그래서 북한에서 소위 가장 큰, 제일 상위에 있는 내분비 종합병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반적인 규모나 시스템은 잘 되어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진료와 연구가 연계되어 있었고, 의료진들의 환자에 대한 열정과 수준도 높았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의 장비들을 직접 보니, CT가 이전에 기증받아 굉장히 오래되었더라고요. 골밀도 검사 장비는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 정형외과, 가정의학과 등등 개원가만 가도 최신 장비가 깔려 있을 정도로 흔해요. 그런데 북한의 소위 최상위 내분비 전문 병원에 골밀도 검사 장비가 있는데, 매우 오래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평양 수준도 이 정도입니다. 물론 평양에서도 최고위층이 가는 병원은 아마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병원은 보여주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네요. 어쨌든 일반인들은 이용할 수 없는 곳이죠.

최근, 그러나 코로나19 이전에 북한의 시 인민병원에 가서 봉사한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민병원인데도 불구하고 보통 가스로 마취를 하는데 마취하는 기계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전신 마취하는 기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수술은 어떻게 하냐고 물어봤더니, 국소마취 내지는 척추마취를 하는데, 응급상황일 경우 척추마취도 어려워요. 왜 그렇냐면 척추마취의 경우 환자가 협조해 줘야 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응급으로 환자의 배를 여는 수술을 한다고 하면, 배는 그냥 국소 마취하고 팔다리 묶은 다음 ‘케타민Ketamine’이라고 재우는 주사가 있는데 그 주사를 놓습니다. 그러다가 환자가 통증 때문에 깨면 다시 약 주입하고 하는 식의, 그런 수술을 하는 상황입니다. 또, 우리는 심장 멎으면 전기충격해 주는 자동심장충격기가 곳곳에 있잖아요? 공공기관도 그렇고… 응급실이라면 심장이 멎었을 때 심폐 소생하는 기계가 있어야 하는데 시 단위 병원에도 그런 장비가 없다고 합니다. 그 정도면 할 말 다 한 거죠. 인도적인 지원은 유엔 제재 상황에서도 예외로 한다고 하지만, 실제 보건의료 영역에서 제재의 여파는 심대합니다.

최근 북한에서 여러 변화의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고는 해도 실제 보건의료 영역에서의 열악함은 여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 화에서는 북한 보건의료 현실을 계속 조명하며 이를 개선할 방안은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화, 2020/11/17-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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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저번 글에 이어 전문가와의 대화를 통해 남북 모두가 잇대어 있는 북한의 보건의료 문제를 들여다보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에 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글에 이어 전문가와의 대화를 통해 남북 모두가 잇대어 있는 북한의 보건의료 문제를 들여다보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에 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5모두가 잇대어 있는 보건의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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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은 북한 사회에
치명적인 위기로 다가온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지부, 김신곤 교수교수
코로나19가 북한에 발병했다고 보시나요?
코로나19는 당연히 있다고 봅니다. 당연히 환자는 있을 것이에요. 그런데 진단 자체가 여의치 않죠. 먼저, 진단 키트 자체가 매우 제한되어 있으니까 북한이 검사한 건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북한에서는 다양한 열병으로 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열병으로 죽는 사람들이 코로나19 때문에 생긴 열병인지 아닌지를 알 방법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코로나19에 감염된 환자는 있지만 진단 자체가 안 이뤄질 가능성이 높죠.

다음으로, 환자가 있어도 공식적으로는 0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자기들의 약점이 될 만한 것들은 웬만해서는 드러내지 않습니다. 북한은 아마 마지막까지 코로나19 확진자 0명을 주장하며 ‘우리는 신형코로나비루스를 이겨냈다’라고 자랑할 것입니다.

그러면 실제로 환자가 얼마나 생겼느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환자는 분명히 생겼겠지만 발생 규모 자체는 실질적으로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왜냐하면 북한은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특히 중국과의 국경을 비롯해 육해공을 다 봉쇄했습니다. 1월 말부터 국경을 막기 시작했죠. 특히, 지난 7월 사회안전성에서 조-중 국경에 접근하는 자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다 사살하라고 공표했는데, 이게 그만큼 공식적이지 않은 밀무역을 통해 코로나19가 들어올 상황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개성으로 들어간 월북자가 코로나 의심자로 분류되자 그때 아예 개성 지역을 폐쇄하기도 했잖아요. 어쨌든 국경을 막음으로써 굉장히 힘든 시기가 지속하고는 있지만 코로나19를 차단하고 있는 효과는 분명히 있습니다.

북한의 체제 특성상 이동의 자유가 없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죠. 코로나19의 기본적인 방역이 무엇일까요? 바로 봉쇄하는 것입니다. 이동 못 하게 하는 것, 접촉 못 하게 막는 것, 그런 고전적인 방역에 가장 충실한 나라가 바로 북한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보건의료 인프라나 치료 시설이 미비하기 때문입니다. 위기의식이 클 수밖에 없죠. 해서 만약 환자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그게 다른 나라처럼 창궐하기 시작하면 감당할 수가 없게 됩니다. 앞에 말한 것처럼 인민병원에 가도 중환자 치료 시설이 없는데 어떻게 대처를 할까요?

코로나19 진단 자체는 못해도 의심자에 대해서는 격리할 것이니까, 그래서 ‘의심 환자’라는 표현으로 내부적으로 보고하고 있죠. 열이 나기만 해도 의심자로 분류해 일단 격리했을 겁니다. 그리고 환자 수가 한국의 1/10이라고 가정해도 사망자 수는 더 많을 수 있어요. 왜냐하면, 북한에는 중환자 치료시설이 부족하니 때문에 그렇습니다. 환자 중에는 경증 환자로 가는 사람도 있지만 중증 환자로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 중증 환자는 사실상 북한에서 치료할 능력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경증 환자 중에서 누가 중증으로 발전하느냐고 하면 결국은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이 중증으로 가는 것이죠. 면역력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양 상태입니다. 영양 상태가 좋지 않으면 훨씬 더 취약한 고위험군이 됩니다. 한국에서는 70, 80대 이상이면 연세가 많아 면역력이 떨어져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지만, 북한은 50, 60대라고 할지라도 영양 상태가 안 좋은 사람들의 경우는 면역력이 매우 취약해 고위험군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중환으로 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유병 규모는 고전적인 방역에 충실한 북한의 특성상 적을 순 있겠지만, 실제로 걸린 사람 중에 사망률은 우리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 봅니다.

북한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극도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만약 본인들이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민들 사이에 코로나19가 확산하게 되면, 북한식 표현으로 하자면 북한 사회에 ‘괴멸적 타격’이 되는 것이죠. 중환자들 쏟아지면 말 그대로 손 놓고 있어야 할 상황이니까요.

북한에서 코로나19 의심 환자를 격리하는 조치는 인권적 측면에서 한국이나 다른 나라의 그것과 다르다는 말이 있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북한에서는 국가가 환자를 케어한다는 개념이 아닌, ‘당신이 의심되니까 남한테 전파하지 못하도록 격리한다’라는 목적이 더 강합니다. 우리는 의심 환자라고 할지라도 무증상은 집에서 자가격리, 경증은 생활치료센터에서, 그리고 중증은 병원으로 이송하죠. 하지만 북한은 병의 경중에 따라서 케어받는 것이 안 되어 있습니다. 국가가 그렇게 할 만한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구금시설 내 수용자나 취약계층을 위한 보건의료 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는지도 궁금합니다.
구금시설의 경우, 제가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아마도 매우 열악한 상태일 것이라 예상합니다. 우리나라도 집단생활시설에 감염병이 생기면 문제가 커지잖아요? 북한 구금시설의 경우도 그 안에 다 모여서 생활하고 하다 보니, 여러 환경이 굉장히 열악할 것이에요. 거기서 아프다고 해서 질 좋은 케어가 되겠나요? 일반인들도 약이 없어서 장마당 나가서 약을 사 와야 하는 상황입니다. 질병이 있어도 제대로 치료되기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죠. 북한 사회 자체가 취약하지만, 특히 그런 곳은 더욱 취약하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결국,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이 공격하는 것은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곳이기에 그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회가 소위 얼마나 인간적이지 못한지, 혹은 사회적인 면역력이 얼마큼 공평하게 공유되지 못하는지, 특히 취약한 부분에서 얼마나 보장이 안 되는지, 그런 것들이 다 드러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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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접근의
필요성

코로나19로 막히긴 했지만 그동안 국제기구, 각국 정부기관, 그리고 NGO가 북한에 다양한 의료 물품을 지원한 것으로 아는데 이런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전에는 그냥 약 보내주고, 먹을 것 보내주고, 물건 보내주고 그러고 끝이었지요. 당연히 그렇게 하면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북한이 대외적으로는 자력갱생을 하겠다고 외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NGO들과 협력하는 것은 자신들에게도 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걸로 인해 북한에서 먹고 사는 사람이 생기니까요. 이렇게 지속해서 이어지는 것들은 다 사회적 기업 모델을 기반으로 합니다.

사회적 기업 모델은 일반적인 기업처럼 이윤을 가지고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결과적으로는 북한의 공공적인 영역이나 취약한 영역에 공급해 주는 모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목표로 북한에 있는 파트너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당신들 봉급은 봉급대로 가져가고, 남는 부분은 여기에다가 이만큼은 도와 달라’고 할 수 있죠.

한 예로, 두유와 칫솔을 예로 들어 보려 합니다. 어릴 때부터 양치 교육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산가족 상봉할 때 북한 사람 중 상봉 리스트에 있다가 결국에 못 나오는 사람들 상당수는 치아 문제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은 치과 치료를 받는 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북한은 치아에 문제가 생길 경우 치아 용품이 부족해서 아예 뽑아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아말감치과 치료에 사용되는 재료도 부족한 상태라 치료가 잘 이뤄지지 않으니까요. 북한에서는 중년만 되어도 치아가 성치 않은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이가 많이 없으니까, 이산가족 상봉할 때 그것을 북한 측에서는 외부에 공개하고 싶지 않겠죠. 그런 치아 치료 같은 경우도 결국은 보건 교육과 치과 치료가 같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쉬운 예방법은 양치질을 잘하는 것이죠. 그러면 뭘 하면 될까요? 사회적 기업 형식으로 이미 들어가 있는 두유 공장 옆에 대나무 칫솔 같은 친환경 칫솔 공장을 만들면 되겠죠. 이것 역시 사회적 기업 형식으로 말이죠. 생산물을 통해 경제생활 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고, 또한 두유를 줄 때 그곳에서 생산한 칫솔, 치약을 한 달에 한 번씩 같이 끼워서 보내주는 것이죠. 그리고 보건교육도 같이 하는 것입니다. 북한의 기관과 파트너쉽 구축해서, 우리가 아이들 먹거리만 보내는 게 아니라 북한의 보건의료인을 세워서 그분들과 같이 치아 관리 교육하는 것도 진행해 볼 수 있는 거죠. 그러면 단지 먹거리만 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치아 건강 교육도 제공하는 것입니다. 치아는 나중에 만성 질환과도 다 관련되니까 특히 중요합니다. 그런 식으로 창의적으로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것들은 제가 관련된 활동을 하는 (사)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에서 준비하고 있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추진하기 힘들기는 하지만요.

하지만 당장의 유엔 제재만 하더라도 북한이 스스로 초래한 결과이기는 하나 보건의료 개선 측면에서는 큰 장애물로 보입니다. 북한의 보건의료, 그리고 나아가서 인권을 개선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단기적으로 유엔 제재가 해제될 가능성은 작겠지만 유엔 제재 하에서 적법하게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됩니다. 유엔 제재에서도 북한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침해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유엔은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하죠. 그러면 그 방향으로 가면 됩니다. 특히, 보건영역에서는 충분히 현실성 있습니다. 먼저 보편성에 있어서, 인도주의적 관점에서는 그 누구도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시급성이 있죠.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시급한 문제가 어디 있나요? 적어도 이 부분만은 열린 시각으로 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현실성인데, 현실성은 국제사회와 북한에 다 명분과 이익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북한이 자존심 상하지 않게, 그러면서 국제사회가 북한의 비핵화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부정적인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고려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보건의료는 상호 간에 명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의 의료 환경뿐만 아니라 인권을 개선하는데 중요한 매개체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의료물품 지원에 대해 일일이 제재 면제를 승인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굉장히 힘듭니다. 그래서 아예 ‘턴키Turn-key, 사용자가 제품을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생산자가 인도하는 방식’ 방식으로 해서 ‘평양종합병원’을 통째로 모델링하는 것과 같이 프로젝트 베이스로 지원하는 것에 대해 국제사회가 고려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그곳에 의료장비가 들어간 후, 그게 성공적으로 운영되면 시 인민병원들도 현대화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통 크게 하자는 것이죠. 아무리 그래도 북한이 의료 장비인 CT나 MRI를 분해해서 군사 무기로 전용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병원은 외부 전문가들이 가서 모니터링을 할 수 있기도 하고요. 적어도 생명을 살리는 문제, 건강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보다 넓은 시각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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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잇대어 있다

코로나19로 남북 보건의료 협력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런 모습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사실, 최근에는 경제 협력에 관한 이야기만 자주 부각되었습니다. 거시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경제적인 협력은 돈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보건의료 협력은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오랜 갈등 관계에 있던 사람들이 돈 가지고 협력하자고 하면 잘 안 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서로에 대한 신뢰를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요? 아무리 증오하고 갈등했던 사람들이라도 자신이 아플 때 치유해주고 보살펴줬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쁜 마음을 품기 어렵습니다. 보건의료를 중심으로 하는 협력이 전제되면 장기적으로 그것이 남북관계 개선의 마중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남북 간의 본격적인 경제 협력을 통해 한반도의 획기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도, 방역 협력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의 K-방역의 성공적인 경험과 북한의 고전적 방역 방식이 서로의 장점을 기반으로 어우러진 ‘한반도형 방역모델’을 만들어낸다면 북한과 같은 상황에 있는 국가에 수출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앰네스티 회원의 관점에서 북한 보건의료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많이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정말 미워요’ 이런 생각을 솔직히 할 수도 있어요. 핵으로 주변국을 위협하기도 하고 얼마 전에 있었던 공무원 피격 사건의 경우와 같이 반인륜적인 일을 벌이는 나라인데 ‘우리가 왜 도와줘야 하냐’는 생각을 하기도 하죠.

보건의료의 측면에서, 그래도 북한을 도와줘야 할까요? 저는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생명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코로나19가 인류에게 준 교훈 중의 하나가 ‘모든 생명은 잇대어 있다’라는 점입니다. ‘잇대어 있다’라는 표현은 ‘서로 이어져 있고, 서로 기대고 있다’라는 뜻이죠. 그게 인간만의 생명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내 생명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후위기만 봐도 우리가 자연에게 못된 짓을 했기 때문에 자연이 우리에게 또 되돌림을 하는 것이죠. 인간과 인간이 서로에게 못되게 하는데, ‘나만 건강하면 된다’라는 삶은 불가능한 삶일 수밖에 없습니다. ‘원 헬스One Health’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인간과 동물과 자연이 다 연결되어 있기에 인간만의 건강도 안 되고, 인간 중에서도 나만의 건강만 중요시해서도 안 된다는 말이죠.

더군다나 지금은 ‘초연결 사회Hyper-connected society’이지 않나요? ‘나만 건강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쉽게 하지만, 특히 감염병이 창궐하는 시대에는 ‘남’이 건강하지 않으면 ‘나’도 위험해집니다. 그래서 ‘잇대어 있다’라는 것입니다. 22만여㎢라는 작은 땅덩어리인 한반도에서 세균, 바이러스, 미세먼지는 남북을 가리지 않습니다. 북한의 민둥산부터 미세먼지, 그리고 각종 좋지 않은 것들, 모두 우리에게 영향을 줍니다. 백두산 화산 폭발도 영화로 나왔잖아요? 만약 백두산 화산이 폭발하면 북한만 영향을 받을까요?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이 당하는 재난은 우리도 당하게 되는 거죠. 그게 결국은 생명은 잇대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 주민의 건강과 생명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북한 사람들이 건강하지 않으면 나도 건강하지 않을 수 있다’라는 말이죠. 보건안보, 생명안보 이런 말이 다 같은 맥락입니다. 그래서 서로 잇대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북한이 건강하지 않으면 우리도 건강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결국, 북한 사람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행동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인식으로 연결이 되기 때문에 북한의 보건의료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이 아무리 미워도 우리의 건강과 생명과 잇대어 있다는 생각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죠.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북한의 보건의료 문제도 북한만의 문제가 아닌, 결국 우리가 함께 짊어져야 할 문제라는 말이군요. 북한의 열악한 보건의료 상황이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로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 모두의 건강권을 위해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북한 보건의료는
‘우리 모두의 건강은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화, 2020/11/1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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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읽다]

UN세계인권선언 70주년 학술대회 기조강연자 인권학자 조효제 교수가 제시하는 정의로운 전환과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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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0/11/27-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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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모두에게 힘겨운 한 해였다. 암울한 뉴스와 곳곳에서 들려오는 혐오, 차별의 목소리가 우리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뚫고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들도 있었다. 편지쓰기부터 탄원 참여, 각종 연대 활동까지, 모두의 마음이 한곳에 모여 변화를 만들어냈다. 이제는 지나버린 2020년을 돌아보며, 작년 한 해 우리가 축하할 인권 승리를 소개한다.

 

수업을 듣고 있는 로힝야 어린이들

수업을 듣고 있는 로힝야 어린이들

 

JANUARY1월

  • 1월, 방글라데시 정부는 로힝야 난민 어린이에게도 학교 교육 및 기술 교육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미얀마에서의 인종 청소 정책으로 로힝야인들이 방글라데시로 피난을 오고 2년 6개월 만에 나온 결정이었다. 그간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인권단체들은 난민 캠프의 로힝야 어린이 약 50만 명에게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캠페인 활동을 벌여 왔다. 이번 결정은 그 활동으로 이룩한 큰 성과였다.
  • 카자흐스탄의 지적 장애인 바딤 네스테로프Vadim Nesterov는 2011년 18세가 되던 해 법적 행위 능력을 상실했다. 자신의 삶에 대해 결정을 내리거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그는 취직을 하거나 결혼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국제앰네스티는 바딤의 사례를 집중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카자흐스탄 정신분석의학 연합이 전략적으로 개입한 끝에, 결국 바딤은 1월 법적 권리를 회복했다. 카자흐스탄의 장애인 인권에 큰 기여를 한 변화였다.

 

이스라엘 불법 정착촌의 모습

이스라엘 불법 정착촌의 모습

 

FEBRUARY2월

  •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있는 이스라엘 불법 정착촌과 연관이 있는 100개 이상의 기업 목록을 공개했다. 이 목록에는 에어비앤비Airbnb,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 익스피디아Expedia, 부킹닷컴Booking.com 등 잘 알려져 있는 업체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국제앰네스티 조사 결과 이들은 불법 정착촌의 유지와 확장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페인의 여성 인권 캠페인 피켓

스페인의 여성 인권 캠페인 피켓

 

MARCH3월

  • 국제형사재판소는 아프가니스탄의 분쟁을 일으킨 모든 당사자를 국제법상 범죄 혐의로 조사하겠다고 결정했다. 지난 2019년 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던 사전 심리 판결을 항소법원이 번복한 것이다. 국제앰네스티는 당시 판결을 강력히 비판한 바 있다.
  • 스페인에서는 국제인권기준에 따라, 동의 없는 성관계를 강간으로 규정하는 법안이 발표됐다. 이 법안은 그 외에도 성폭력 예방 및 대응 조치를 포함하고 있다. 앰네스티는 Let’s Talk About Yes 캠페인 등을 통해, 동의 없는 성관계를 강간으로 규정하자는 캠페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우간다에서는 ‘공공질서 관리법’이라는 법을 근거로 경찰이 공공 집회나 시위를 금지할 수 있는 과도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우간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공공질서 관리법의 일부 항목을 무효화했다. 이번 결정은 정부 반대파와 인권옹호자들에게 한 줄기 희망과도 같은 결정이 되었다.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는 왕 쿠안장 변호사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는 왕 쿠안장 변호사

 

APRIL4월

  • 중국의 인권변호사 왕 쿠안장Wang Quanzhang이 감옥에서 4년 6개월을 보낸 끝에 마침내 가족들 품으로 돌아갔다. 그는 부패와 인권침해를 폭로하는 활동을 했다가 표적이 되어 수감됐었다. 앰네스티는 그가 처음 구금됐을 때부터 그의 석방을 위해 캠페인을 벌였다.
  • 사상 최초로, 미국 아프리카 사령부AFRICOM가 소말리아에서의 미군 공습으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의혹을 다룬 보고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 보고서는 앰네스티가 AFRICOM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캠페인 활동을 벌이고, 보고서 <소말리아에 숨겨져 있던 미국의 전쟁The Hidden US War in Somalia>을 발표한 이후 나온 것이다. AFRICOM은 지금까지 소말리아의 민간인 사망자 13명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으며, 소말리아에서의 미군 활동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과 그 가족들이 직접 민간인 사상자 발생 의혹을 신고할 수 있도록 온라인 신고 포털을 개설했다.
  •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범죄 시점 당시 18세 미만이었던 피고에 대해 더 이상 사형을 적용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사형은 최대 10년의 징역형으로 대체될 예정이다. 그러나, 오용되는 경우가 빈번한 테러방지법으로 유죄가 선고된 청소년들에게는 여전히 사형이 집행될 수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모든 경우에 대한 사형 폐지를 계속해서 촉구하고 있다.

 

고 백남기 사망 사건 관련 캠페인의 일환으로 Die-In 퍼포먼스를 벌인 국제앰네스티 지지자들

고 백남기 사망 사건 관련 캠페인의 일환으로 Die-In 퍼포먼스를 벌인 국제앰네스티 지지자들

  • 4월 23일, 헌법재판소는 故 백남기 농민을 향한 경찰의 직사 살수 행위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경찰의 직사 살수가 故 백남기 농민의 생명권과 집회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2015년, 故 백남기 농민은 물대포의 직사살수에 맞아 중상을 입고 사했다. 이후 국제앰네스티는 이에 대한 <긴급 행동>을 나서기로 결정하고 당시 국회 안전행정위원장을 대상으로 탄원 캠페인을 진행해 과도한 무력을 사용한 법집행공문원에 대한 기소, 효과적인 독립 수사 등을 촉구했다.

 

MAY5월

 

사형수 마가이를 위해 사람들이 쓴 편지

사형수 마가이를 위해 사람들이 쓴 편지

 

JULY7월

  • 앰네스티가 Write for Rights 사례자로 선정됐던 남수단 청소년 마가이 마티옵 은공Magai Matiop Ngong에 대한 사형 선고가 7월 29일 파기되고, 마가이는 사형수 신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마가이와 연대하기 위해 작성된 전 세계 765,000건의 탄원이 큰 기여를 했다. 이 탄원 중에는 한국에서 작성된 3만여 건의 탄원도 포함되어 있다.
  • 앰네스티는 보고서를 통해 세계 최대 정육 회사인 JBS의 공급망에서 불법 산림 벌채와 토지 점유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발표했다. 이후 브라질 로도니아 주의 연방 검찰청에서 앰네스티의 조사 결과에 대해 수사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고 지난 10월, JBS는 2025년까지 불법 삼림 파괴로 문제가 된 “간접 공급자” 농장을 비롯해 자사의 공급망 전체를 모니터링하겠다고 약속했다.

 

웃고 있는 구스타보 카티카

웃고 있는 구스타보 카티카 Gustavo Gatica

 

AUGUST8월

  • 칠레의 평화적 시위를 불법 무력으로 진압했던 경찰 간부 ‘G-3’가 체포 후 기소되었다. 그는 시위에 참여했던 구스타보 가티카Gustavo Gatica의 시력을 잃게 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국제앰네스티는 그 증거를 보고서로 발표하기도 했다.
  • 러시아 양심수인 젠나디 슈파코프스키Gennadiy Shpakovsky는 종교의 자유를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소되었으나, 국제앰네스티의 캠페인 활동 덕분에 감형을 받고 감옥에서 풀려났다.
  • 카타르가 이주노동자를 노동 착취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주노동자가 이직을 하려면 고용주에게 허가를 받아야 하는 요건을 폐지하고 비차별적인 최저임금을 새롭게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카타르는 2022년 월드컵 개최 예정지로, 앰네스티는 이곳의 이주노동자 권리 개선을 위해 수년 동안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런 변화를 환영하는 한편, 이 개선안이 신속하게 전면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다.

 

IS에서 구출된 예지디 생존자들

IS에서 구출된 예지디 생존자들

 

SEPTEMBER9월

  • 소말리아 검찰청장은 기자를 대상으로 한 사건을 담당하는 새로운 부서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국제앰네스티는 소말리아에 기자들이 부당하게 기소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을 확인하고 보고서 <우리는 끊임없는 공포 속에 산다We Live In Perpetual Fear>를 발표해 소말리아의 표현의 자유 침해를 기록한 바 있다. 앰네스티는 이 보고서를 기반으로 당국에 직접 옹호 활동을 벌였다. 현지 언론단체의 압박 역시 이 변화에 크게 기여했다.
  • 앰네스티가 7월 무장 단체 ISIS에 포로로 잡혀 있던 예지디 어린이 생존자의 처우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쿠르드 지역 정부가 어린이에게도 모든 배상이 지급될 수 있어야 한다는 국제앰네스티의 주요 권고사항 중 하나를 실천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

 

OCTOBER10월

 

동의 없는 성관계가 강간임을 외치며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덴마크 시민들

동의 없는 성관계가 강간임을 외치며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덴마크 시민들

 

NOVMENBER11월

 

아르헨티나 임신중지 합법화 법안이 통과되고 기뻐하는 아르헨티나 여성들

아르헨티나 임신중지 합법화 법안이 통과되고 기뻐하는 아르헨티나 여성들

 

DECEMBER12월

  • 대한민국 정부가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사형집행 모라토리움Moratorium on the use of the death penalty 결의안’에 대한 찬성 입장을 확정했다. 이번 투표 결과는 한국이 완전한 사형폐지라는 세계적 흐름에 동참하겠다는 국제적 선언이자 약속이었다. 국제앰네스티는 한국 내 사형제도 법적 폐지를 위해 오랫동안 캠페인을 진행해오고 있다.
  • 12월 30일, 아르헨티나 상원에서 찬성 38명, 반대 29명, 기권 1명으로 임신중지 합법화 법안이 통과됐다. 이제 아르헨티나에서는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 중지 의료 시술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국제앰네스티를 포함해 아르헨티나의 여성 인권을 위해 싸워온 수많은 단체, 활동가, 여성들이 이룩한 승리였다.

2020년, 전 세계 국제앰네스티의 지지자가 1,00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이 모든 변화는 연대하고, 행동한 여러분이 함께 만들어낸 것입니다.
모든 지지자 분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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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1/01/13-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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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를 인권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

아샤

 

평소에 기후 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채식, 플라스틱을 비롯한 쓰레기 줄이기 등 기후 위기에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을 실천해 오고 있습니다. 개인적 실천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어떻게 운동적 관점으로 풀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해오던 차에 지난 여름 기후 위기를 인권의 관점으로 다뤄보는 활동에 다산이 함께 할 의향이 없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혼자서 하던 고민을 함께 나눌 동료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환경단체, 법률단체, 그리고 인권단체들이 함께 하는 기후 위기와 인권그룹이 만들어졌습니다.

 

20156,300여명이 숨지고 어마어마한 재산 피해를 남긴 태풍 하이옌을 겪은 뒤 필리핀 시민사회와 그린피스 남동아시아 그리고 필리핀 시민들은 기후위기를 부른 화석연료기업의 책임을 묻는 진정을 필리핀국가위원회에 제출했습니다. 이 사건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우리는 지난 수년간 우리나라 시민들이 기후 위기로 겪은 피해를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내는 활동을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환경단체와 과학자들의 경고를 통해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는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었지만 많은 시민들이 그것을 자신이 일상에서 겪는 문제와 연결시키지 못한 채 추상적인 문제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는 기후 위기는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문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도 그냥 국가나 기업에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적극적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할 진정인을 모집하는 동시에 진정 제출 이전에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일들이 기후 위기로 인한 것이고 그것이 왜 인권침해인지에 대해 말하는 증언대회를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증언을 해주실 분들을 만나서 사전에 인터뷰를 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기온이 점점 올라감에 따라 더 이상 경북 지역에서 사과 농사를 지을 수 없고 병충해 피해도 더 심각해져 농약을 더 많이 뿌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야기 해주신 성주의 농민. 폭염, 혹한 일수가 늘어나고 장마가 길어짐에 따라 일을 할 수 없거나 위험한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 날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설 노동자. 자신을 그저 국가가 시키는 대로 일을 했을 뿐인데 최근 몇 년간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자신이 마치 범죄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석탄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나아지지 않는 현재를 너무나도 우울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청소년 기후 활동가의 이야기까지. 기후 위기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도 광범위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시민들이 기후 위기로 인해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지만 그냥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초래한 위기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할 문제입니다.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이 문제를 사람답게 살 권리를 침해하는 인권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할 때 서로를 살리는 삶의 방식을 함께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121640여명의 시민이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출하였습니다. 이후 국가인권위가 이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고, 기후 위기에 대한 정책 권고 등을 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켜보고 소통해 나갈 예정입니다. 다산은 2021년에도 기후 위기와 관련된 활동을 지속해 나갈 예정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이 있으면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월, 2021/01/1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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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텍스트 시작]

#마치며_다산인권센터 벗바리 대모집 ' 오라, 인권 전성시대!' 10100프로젝트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위해 다산인권센터는 2020년 10월부터 벗바리(후원회원) 대모집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프로젝트에 관심가져주시고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도 다산인권센터 벗바리가 되실 기회는 활짝 열려있으니, 기간 내 가입하지 못하셨던 분들 혹은 새해를 맞아 새롭게 후원할 단체를 찾고 계신 지인분들이 있다면 다산인권센터를 소개해주세요^_^

bit.ly/다산가입

다시 한 번 프로젝트 기간 내 가입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응원에 힘입어 올해도씩씩하게 활동하겠습니다.

[이미지 텍스트 끝]

목, 2021/01/21-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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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벵갈루루(인도)에서 진행된 세계 인권의 날 행진

2018년 벵갈루루(인도)에서 진행된 세계 인권의 날 행진

사무총장 대행 줄리 버하, “현재 이루어지는 공격은 순전히 그 규모만 놓고 봐도 전례 없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인권 퇴보의 시대: 새로고침’ 캠페인 진행

전 세계 각지에서 인권을 옹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개인과 단체를 향한 억압이 급격하게 증가함에 따라, 국제앰네스티가 ‘글로벌 긴급 모금 탄원Global Emergency Fundraising Appeal’ 캠페인을 최초로 발표하고 인권 억압에 맞설 수 있도록 힘을 보탤 것을 촉구했다.

최근 국제앰네스티 직원 및 지부에 국가 또는 국가의 지원을 받은 공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인권에 적대적인 정부가 더욱 대담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년에는 국제앰네스티 인도지부가 지속적인 습격과 음해 공작을 받은 데 이어 은행 계좌까지 동결되면서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국제앰네스티 나이지리아지부는 인권 옹호 활동을 이유로 폭행 위협을 받고 음해 공작으로 피해를 당했다. 앞서 2017년에는 국제앰네스티 터키지부의 주요 구성원이 허위 ‘테러리즘’ 혐의를 받고 구금됐다.

이번 글로벌 긴급 모금 탄원 캠페인의 목적은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활동하는 기자, 변호사, 활동가와 비정부단체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중대한 인권침해를 보복의 위험 없이 폭로하는 활동을 계속해 나갈 수 있게 돕는 것이다.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 대행 줄리 버하Julie Verhaar는 “인권침해를 알리고 권력 남용에 반대하는 의견을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낙인이 찍히거나 공격을 받는 것은 더 이상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현재 이루어지는 공격은 순전히 그 규모만 놓고 봐도 전례가 없다. 국제앰네스티는 전 세계 비정부단체 및 인권옹호자 커뮤니티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연대한다”며, “코로나19 대유행은 인권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새롭고 복잡한 난관을 만들어냈다. 전 세계 많은 국가가 인권옹호자를 비롯해 공중보건 위기 대응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 결과, 다수의 국가들이 코로나19 관련 조치와 기존 법률을 인권옹호자를 침묵시키는 데 사용했다. 전례 없는 시기에는 전례 없는 해결책이 필요하다. 전세계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막대한 과업에 마주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인권 퇴보의 시대: 새로고침’ 캠페인을 진행하며 전 세계적으로 탄압받고 있는 인권 옹호 활동의 실태를 알리고 인권옹호자의 지지와 후원을 촉구한다. 캠페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국제앰네스티가 이뤄낸 인권 승리 사례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열악한 환경으로 지부가 운영되기 어려운 나라의 인권 옹호 활동 및 국제 운동의 일환으로 국제분담금을 지원하고 있다. 국제분담금은 인권침해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대신해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격받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는 데 사용된다.

위협받는 인권

2020년,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이 서명한 반테러법은 활동가와 비평가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이들을 기소하기 위한 광범위하고 무절제한 권한을 정부에 부여했다. 이와 비슷하게,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Jair Bolsonaro 대통령은 공격적이고 반인권적인 발언을 행동에 옮기며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수많은 행정적, 법적 조치를 가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취임한 2019년 이후 인권옹호자에 대한 위협과 공격은 충격적인 수준으로 증가했다.

또한, 최근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미얀마에서는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 국가고문을 비롯해 집권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고위 관계자 및 지역정부 대표자들이 급습을 받고 체포됐다. 특히, 전세계 많은 국가가 코로나19 대유행을 구실로 억압적 법률을 만들었다. 헝가리에서는 빅토르 오반Viktor Orban 총리 정부가 헝가리 형법을 수정하고 코로나19에 대한 거짓 정보를 유포하면 최대 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하여 기자들을 위협했다.

국제앰네스티에 대한 공격

국제앰네스티 직원과 사무소 역시 최근 몇 년 동안 당국의 공격을 받고 있다. 작년 9월 인도 정부가 국제앰네스티 인도지부의 은행 계좌를 동결하면서 인도지부는 직원들을 내보내고 인권 활동을 무기한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또한 작년 10월 나이지리아 레키 톨게이트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과 관련해 투명성을 높이라고 촉구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국제앰네스티 나이지리아지부 직원이 폭행 위협을 받고 음해 공작으로 피해를 당하였다. 앞서 2017년에는 국제앰네스티 터키지부의 당시 사무처장 이딜 에세르Idil Eser 그리고 이사장 타네르 킬리츠Taner Kilic가 날조된 거짓 테러리즘 혐의로 구금되었다. 이들은 정부가 결백을 증명하는 증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공정한 재판 끝에 2020년 7월 유죄를 선고받았다. 모두 인권침해를 반대하는 캠페인을 하고, 이를 알렸다는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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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1961년 설립된 국제 비정부기구 (NGO, Non-Governmental Organization)로 전 세계 160개국 이상 1,000만 명의 회원과 지지자들이 함께하는 세계 최대의 인권단체이다. 국적·인종·종교 등의 그 어떤 차이도 초월해 활동하며,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경제적 이익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한다. 국제사회에서 합의한 기준들을 바탕으로 조사 활동을 진행하고 표현의 자유, 사형제도 폐지, 고문 반대, 여성과 성소수자 권리 보호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와 협의자격을 유지하고 있으며, 1977년 노벨평화상과 1978년 유엔인권상을 수상한 바 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1972년에 설립되어 국내외 인권 상황을 알리고 국제 연대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수, 2021/02/10-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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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파견된 북한 노동자의 인권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부터이다. 탈북인의 증언을 통해 해외의 북한 노동자가 처한 열악한 노동 환경이 알려지면서 국제사회는 이를 공론화하고 심각한 우려를 표해왔다.

계속되는 해외 노동과 인권침해

북한이 자국 노동자들을 파견해 2010년 완공한 세네갈의 ‘아프리카 르네상스 동상’ 건설 당시 모습

북한이 자국 노동자들을 파견해 2010년 완공한 세네갈의 ‘아프리카 르네상스 동상’ 건설 당시 모습

세간에 알려진 일련의 정보를 취합해 보면, 2010년대 중·후반까지 최소 4만 명에서 많게는 10만 명이 넘는 북한 노동자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 파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7년 12월 2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당해 11월 29일에 있었던 북한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제재 내용을 담은 ‘결의 2397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결의 2397호에 따르면 유엔 회원국은 자국에 파견된 모든 북한 해외 노동자를 2019년 12월까지 북한으로 송환해야 한다. 이것은 의무조치로서 회원국이라면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조항이다. 하지만, 2021년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몇몇 나라에서는 상당수의 북한 노동자가 북한으로 송환되지 않은 채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해외로 파견된 북한 노동자는 여러 가지 심각한 인권침해에 노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임금 착복과 과도한 노동 등이 대표적이다. 해외의 북한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열악한 처우는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현대판 노예제로 칭해질 정도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의 삶을 추적해 왔다. 북한 당국의 노동자 임금 착복은 가장 잘 알려진 인권 침해 사례이다. 2019년 미국 국무부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력으로 벌어들인 임금을 손에 쥐기도 전에 적게는 70%에서 많게는 90%에 이르는 돈이 당국에 의해 공제되었다. 북한인권 전문가에 따르면 나머지 임금도 현지 숙박비와 식비 등으로 10~20%를 제할 경우 남는 것이 거의 없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1월, 외신 보도에 따르면 유럽과 중동 등지에서 활약하던 북한 축구선수 한광성은 유엔 제재로 북한으로의 송환이 결정되었다. 한때 십 수억 원에 달하는 연봉을 받으며 유명세를 떨친 그 역시도 현지 생활비로 극히 일부의 연봉만 손에 쥐고 나머지는 모두 북한으로 송금된 것으로 알려진 만큼 해외의 북한 노동자는 예외 없이 대부분의 임금을 착복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단 임금 착복만이 문제가 아니다. 또 다른 문제로 과도한 노동 강요기타 비인도적 대우가 있다. 언론에 따르면 해외의 상당수 작업장에서 북한 노동자는 간부들에 의해 하루 최대 18시간에 이르는 중노동을 강요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노동자로 파견된 경험이 있는 다수의 탈북인 증언에 따르면 북한 노동자는 파견국의 노동법에 대해 전혀 고지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자신들의 법적 권리에 대해서도 인지하지 못했다. 또한, 북한 노동자가 일하는 작업 현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파견된 국가의 현지 노동법에 저촉됨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의 통제로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계속 운영되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일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파견국의 현지 업체가 북한 노동자와 직접 계약을 맺지 않고 현지 북한 대표부 등 북한 당국과 따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으로 파악되었다.

해외 대부분의 작업장에서 북한 노동자는 한곳에 모여 단체로 구금 상태와 다름없이 숙식하며 생활해야 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수년 전 해외 노동과 관련한 심층 보도는 노동자가 간부 등 관리자의 지시에 제대로 따르지 않을 경우 구타 및 기타 부당한 대우가 빈번하게 자행된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이 외에 일과 이후 시간이라도 개인이 자유롭게 움직이거나 외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으며, 외부인과의 접촉도 엄격히 통제된다는 것은 해외 파견 경험이 있는 탈북인의 증언을 통해 널리 알려진 내용이기도 하다. 즉, 개인의 자유로운 외부로의 접근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것이다.

억압과 착취의 굴레 속 삶

쿠웨이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

쿠웨이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

2021년 2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이하 ‘한국지부’는 과거 해외에 노동자로 파견된 적 있는 한 탈북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평양 태생의 림일은 현재 한국에서 작가로 활동 중이다. 1996년 11월, 그는 쿠웨이트의 건설 노동자로 파견되면서 평양을 떠났다. 이듬해인 1997년 3월까지 약 5개월간 그곳에서 일하다 탈출에 성공한 그는 현지 한국 대사관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해외에서 북한 노동자로서 직접 경험했던 임금 착복과 과도한 노동, 그리고 기타 비인도적 대우에 대해 가감 없이 밝혔다. 그의 증언을 통해 본국과 파견국 어느 쪽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는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의 삶을 살펴볼 수 있었다.

비록 25년 전의 일이지만, 시간이 흘러도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의 노동 환경은 별다른 개선의 모습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의 증언은 여전히 유효한 정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래는 한국지부가 림일과 나눈 대화를 그의 시선에서 독백체로 편집한 내용이다.

북한 출신 前 쿠웨이트 파견 건설 노동자 림일

북한 출신 前 쿠웨이트 파견 건설 노동자 림일

저는 림일입니다. 북한 평양이 고향입니다. 태어난 후로 평양에 쭉 살며 일했어요. 1996년 11월 6일, 3년 임기의 해외 파견 건설 노동자로 뽑혀 20여 명의 일행과 함께 평양발 쿠웨이트행 비행기를 탔어요. 이듬해 1997년 3월까지 일하다 탈출해 한국으로 왔으니 쿠웨이트에서 한 5개월 일 한 셈이죠.

11월 6일 자정에 가까운 시각, 쿠웨이트에 도착 후 바로 변두리 지역의 신(新) 주택 단지 개발 지역으로 이동했어요. 지명은 우리말로 ‘움 알하이만Umm Al Hayman, أم الهيمان’이었죠. 쿠웨이트 도착 후 몇 시간 후인 7일 오전부터 바로 일을 시작했어요. 우리가 쿠웨이트에서 머문 숙소는 작업 현장 근처에 있는 2층짜리 폐교였어요. 보통 주택 건설을 하기 위해서는 기초 작업을 하는데 우리는 그런 일을 했죠. 저는 목공목수이라서 목재를 다뤘어요. 목공은 거푸집을 만들고 조립하는 일을 담당했어요.

우리는 새벽 5시에 기상했어요. 오전 6시 30분부터 식당에 가서 다 함께 아침을 먹었죠. 아침 8시에는 현장으로 나가 일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일한 다음 저녁 7시에 식사를 하고 나면 일과가 끝나야 해요. 하지만 일이 정시에 끝나는 날은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계속 야근해야 했어요. 저녁 식사 후 밤 8시부터 다시 현장으로 야간작업을 나가 새벽이 되도록 일했죠. 그것도 주 7일, 휴일도 없이 일했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 온종일 일하고 밤 12시, 새벽 1시가 되어 숙소에 돌아오면 말 그대로 녹초 상태예요. 그렇게 잠을 잤다가 새벽이 되면 또다시 일어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을 나가야 했죠.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 나라도 휴일이 있어요. 우리와 다르게 금요일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쿠웨이트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는 모두 휴일에 쉬었죠. 목요일 오후가 되면 그 사람들은 일을 중단하고 다 나가서 현장에 안 오더라고요. 그런 것을 보니까 너무 신기했어요. 처음에는 그 나라에서 금요일이 휴일이라는 것도 우리는 몰랐어요. 제가 일한 지 석 달 차 되던 때부터 다른 나라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와 일하기도 했어요. 직접 손짓, 발짓을 해 가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금요일이 휴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죠. 북한 간부들은 우리에게 이런 것을 전혀 알려주지 않았어요.

아무튼, 우리는 주말이나 휴일 없이 매일 일해야 했어요. 제가 알기로 쿠웨이트 법으로는 그렇게 일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우리에게는 적용되지 않았어요. 당시 북한 간부들이 ‘충성으로 노동해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자’라는 식으로 노동자를 매일 압박하면서 일을 시켰죠. 말 그대로 정치 선동인 것이죠. 한국 사람들은 이해가 잘 안 가겠지만 북한에서는 이런 정치적 선동에 토를 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쿠웨이트에서 일하는 5개월 동안 노동에 대한 임금은 전혀 못 받았어요. 먼저, 돈 지급 구조에 대해 말해 볼게요. 쿠웨이트 내 해외 노동자 시장은 크게 원청 회사와 여러 단계의 하청 회사로 구성되어 있어요. 쿠웨이트 업체인 원청 회사에서는 건설 오더를 받은 아래 하청 회사에 돈을 지급하죠. 제가 속했던 북한 회사는 그렇게 해서 3단계 정도 거쳐 가장 아래에 있었던 하청 회사였던 것으로 알아요. 즉, 하청 회사 중에서도 제일 싼 값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회사였다는 말이죠. 물론 이 회사는 실제로는 당조선로동당 산하 회사이죠. 그렇게 벌어들인 자금을 모두 당으로 보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적어도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제하고 보내던가 해야 하는데…

우리 말고 또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쉬는 시간에 함께 담배도 피우고 콜라도 마시고 하더라고요.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꼬레아’가 신기하니까 우리에게 ‘꼬레아, 꼬레아’하면서 뭘 막 물어보기도 했어요. 마침 우리도 외국인 노동자에게 ‘우리는 이렇게 일 다 했는데 돈을 왜 안 주나’ 이렇게 궁금한 것을 물어봤는데 그쪽에서는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월급으로 120달러USD를 받기로 했지만 돈을 하나도 못 받고 있는데 당신들은 얼마 받고 있냐고 물어보니 650달러를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나라 근로자로부터 임금에 대해 몰랐던 정보를 얻고 나니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우리 회사도 우리의 몫으로 실질적으로 인당 650달러 수준을 받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당시 이상한 점은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는 현장에만 철조망이 처져 있더라고요. 외국인이 주로 일하는 현장에는 철조망이 없는데 북한 노동자가 일하는 현장에만 철조망이 둘러쳐 있었다는 것이 이상했어요. 처음에 이 점이 궁금해 회사 소속 통역사에게 ‘이 철조망이 무슨 의미인가?’라고 물어봤어요. 그러자 통역사는 ‘쿠웨이트에는 수백 개의 다국적 건설회사가 들어와 있는데 이 나라 노동법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근무하는 현장에는 철조망을 치게끔 되어있다’라고 말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말해주니까 저는 진짜 그런가 보다 생각했죠. 하지만 이 내용을 나중에 제가 현장을 탈출해 한국 대사관에 도착했을 때 대사관 직원에게 말해 주니까 그 직원이 웃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이 나라에 그런 법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그 철조망은 북한 당국에 의해서 북한 건설 회사가 원청 회사에 자발적으로 철조망을 쳐 달라고 의뢰해 설치된 것이었어요. 북한 당국으로서는 노동 인원 관리를 잘해야 하니까, 탈주자가 없어야 하니까 그렇게 한 것이죠. 파견국의 입장에서도 불법 체류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하는 와중에 북한 회사가 먼저 나서서 인원 관리를 제안하니 철조망 설치를 허락했을 거예요.

저는 외국에 나오기 전에 평양에서 교육을 받았어요. 혼자 나가면 위험하다고 세뇌하는 거예요. 이런 사상 교육을 받은 후에야 쿠웨이트로 올 수 있었어요. 평생 당의 사상 교육을 받은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당이 혼자 움직이지 말라고 했는데 이를 어긴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어요. 또한, 북한 사람들은 평생 살면서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감시하는 체제 속에 살아왔어요. 혼자 다닐 수 없다 보니 다른 사람과 함께 다녀야 했고, 이동 시에는 작업반장에게 보고도 해야 했어요.

그리고, 노동자들의 여권은 모두 간부가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탈출할 때에는 여권 없이 탈출했어요. 저는 탈출을 위해 작업반장 앞에서 연출을 하며 사전 준비를 해야 했어요. 몇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탈출할 날이 왔어요. 그날 아침 식사 후 작업반장에게 이동을 보고하고 숙소에 있던 여러 개의 출입구 중 한 곳에서 저와 함께 다니던 사람을 만나기로 했죠. 하지만 그날 저는 다른 출입구로 숙소를 빠져나왔어요. 만약 그 사람을 만나면 온종일 같이 다녀야 했을 테니까요. 저는 곧장 시내로 들어가 한국 대사관으로 향했어요. 그렇게 한국 대사관에 도착할 수 있었고 며칠 후 한국으로 올 수 있었죠.

저는 최근에도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를 관찰하고 있어요. 북한에서, 그리고 한국에서도 소련(러시아) 등지로 벌목공으로 나간 북한 사람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사람들은 정말 심각한 수준의 인권침해를 경험한 것 같더군요. 시베리아 수림 속 누가 죽어도 모르는 그런 곳에서 북한 노동자들은 쌀 같은 기본적인 것 외에는 모두 다 자급자족해서 살아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추운 곳에서 힘든 일을 하는데 받는 것은 없지, 그런데 북한에 있는 주민들과 동일하게 사상 학습, 생활 총화, 당으로의 상납 압박과 같은 스트레스는 똑같이 받다 보니 아무래도 인권 상황이 더 열악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해요.

기자회견에서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의 인권 실태를 증언하는 림일(왼쪽에서 두 번째)

기자회견에서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의 인권 실태를 증언하는 림일(왼쪽에서 두 번째)

사실 저는 쿠웨이트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흔히 사람들이 북한의 인권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구타, 고문과 같은 것은 경험한 적 없어요. 혼자서 숙소나 현장을 마음대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감금으로도 볼 수 있겠으나 강압적인 구금까지는 아니었다고 봐요. 어쨌든 제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그래요. 하지만 저는 말 그대로 노동 착취를 경험했어요. 5개월간 제가 일한 것에 대해 단 한 푼도 못 받고 하루 14~15시간씩 제대로 된 휴일도 없이 노동한 것,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노동 착취이거든요. 하지만 이런 것이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몰랐어요. 인권이라는 말도 제가 한국에 와서야 들었으니까요. 북한 사람들은 인권이 무엇인지도 잘 몰라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북한의 노동권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국내에 있든, 해외에 있든 기본적으로 북한 사람들을 먼저 깨우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방법은 정보를 전하는 것이죠. 시간을 거꾸로 돌려 25년 전의 제가 쿠웨이트 현장에 있다고 가정하고 생각해 보면, 현장의 외국 노동자들을 통해 접한 정보로 제가 처한 부당한 노동 환경을 알게 되었듯이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도 여러 방식을 통해 외부의 정보를 접할 기회가 주어졌으면 해요. 외부의 정보라는 게 특별한 것은 아니고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노동 시간이 부당하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는 정보가 되면 충분할 것이에요. 북한 사람들은 그런 정보를 접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제가 5개월간 쿠웨이트에서 일하며 깨달은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북한 사람은 세상 어디를 나가도 똑같은 북한 사람’이라는 것이에요. 외국이라고 해도 결국 북한 당국의 통제 속에 있는 현장과 숙소라는 울타리 안에만 머물러야 했으니까요. 그곳에서는 말하는 것, 보는 것, 생활하는 것 모두 북한에 있을 때와 다를 바 없었어요. 우리는 현지 TV를 볼 수 없었어요. TV라고 하나 있는 것도 전부 김일성 녹화물만 틀어 주더라고요. 새로운 정보를 보고, 들을 방법이 없다 보니 북한과 마찬가지로 억압받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문제는 지금 해외에 파견나가 있는 대부분의 북한 노동자들도 과거의 저와 비슷하게 정보가 차단된 상황에 놓여 있을 것이란 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북한 당국이 노동자를 통제할 수 없을 테니까요. 반대로 말하면, 해외의 북한 노동자들이 외부 정보를 접할 수만 있다면 언젠가는 자신들의 빼앗긴 권리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통제된 정보 속 인권의 퇴보

공장 현지지도 중 노동자들에 둘러싸여 환영받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공장 현지지도 중 노동자들에 둘러싸여 환영받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림일이 쿠웨이트의 건설 현장에서 북한 노동자로 근무한 것은 약 25년 전의 일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25년이면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남을 오래전이다. 하지만,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세계 각지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는 직종과 직무에 따라 경험 내용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노동 착취에 있어서만큼은 과거와 별반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비참한 수준에 처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북한 내 노동자가 처해 있는 열악한 노동 환경과 북한 당국의 강화된 주민 통제 방식을 고려할 때, 몇몇 측면에서는 오히려 이들의 노동 환경이 과거보다 퇴보했다고도 추론해 볼 수 있다.
 

[보고서] 통제된 사회,단절된 삶: 북한 내 휴대폰 사용 및 외부세계 정보 제한 실태

보러가기 >

 

결국, 이는 정보의 제한이 인권의 증진을 저해한다는 말로 귀결될 수 있다. 그의 말처럼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해외의 북한 노동자들은 제한된 정보 접근으로 인해 세상 밖과 만나지 못한 채 지금도 여전히 울타리 속에 갇힌 노예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이다.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가 특히 문제 되는 점은 이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본국으로부터 착취당하고, 파견국으로부터도 외면받은 채 인권을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이다.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도 북한 당국이 책임지고 보호해야 할 북한 사람이다. 국가에 의해 임금과 노동력 착취를 포함한 다양한 인권 침해의 굴레에 놓여 있으나, 그곳에서조차 울타리 속에 갇혀 자신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는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의 인권은 북한 내 노동자의 인권과 함께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북한 당국은 모두가 접근 가능한 방식을 통해 누구나 적절한 수준의 노동권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자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금, 2021/02/26-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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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의 혐오대항챌린지

혐오에 대항하는 요즘 애들이 모였다!

혐오표현 문제에 관심이 많은 10대와 20대 유스들이 앰네스티의 혐오대항 영상제작 워크숍에 모였습니다. 2020년 9월부터 11월, 국제앰네스티와 미디어오리가 함께 진행한 워크숍에서 참여 유스들은 영상을 통해 혐오표현 문제를 알고, 느끼고, 이에 대항하는 힘을 키웠습니다.

직접 얼굴을 보며 인권X미디어 교육을 진행하려던 애초 계획은 8월 중순 코로나19 확산으로 온라인에서 만나는 것으로 변경되었어요. 단순히 영상 제작에 대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겪었던 혐오에 대한 이야기, 해결점에 대한 고민 등을 나누는 시간이기도 했기 때문에 비대면 교육이 잘 진행될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참여자가 직접 만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온라인을 통해서 생각보다 깊은 울림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날 교육 참여자 갤러리 화면에서 번져갔던 눈물과 감동, 서로 오래 기억할 것 같아요.

혐오는 뭘까, 어떻게 대응하지? 함께 고민을 모으고, 서로 에너지를 나누고, 자신만의 혐오 대항 방법을 찾아나갔던 혐오대항 크리에이터들의 여정을 숏다큐로 만나보아요!

? 요즘 애들의 혐오대항 챌린지 숏다큐 보기

요즘 애들의 혐오 대항 챌린지는 계속됩니다!

  • © Amnesty InternationalCaption
  • 왜? 라고 질문하는 영화, 영상을 만들고 싶어요. 유스들은 어느 세대보다 평등한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인권을 향상하고 혐오에 대항하는 활동도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예슬

  • © Amnesty InternationalCaption
  • 제가 만들고 싶은 영상은 들리지 않았던 사회에 드러나지 않았던 목소리들, 얼굴들을 사회에 내보내는 그런 영상들을 만들고 싶은 것 같아요. 직접적인게 아니더라도 사회에서 통념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왔던 관점들을 보여주는 영상을 만들고 싶어요.

    – 방만

  • © Amnesty InternationalCaption
  • 혐오표현에 있어서 ‘OO충’이라는 표현이 정말 해롭다고 생각이 드는데 이것에 대한 영상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나도 ‘진지충’이라는 얘기 많이 들었는데 친한 친구들끼리 더 그런 거 같아요. 이 표현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듣는 사람이 기분이 나쁘다는 점인데, 더 큰 문제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막아버리는 점 같아요. 카프카의 책 ‘변신’을 인상깊게 읽었는데, 영상 콘티로 만들어서 바퀴벌레 탈을 구해서 찍어보고 싶어요.

    – 정효

  • © Amnesty InternationalCaption
  • 우리 세대는 온라인과 정말 밀접하잖아요. 사건에 대한 인지 속도도 빠르고 행동 변화를 촉구하는 데도 빠르고 다양한 활동도 잘 기획할 수 있어요. 우리가 톱스타도 아니고 인지도가 높은 권위층도 아니지만, 우리가 행동함으로써 혐오표현의 몸집이 작아질 수 있다면 우리가 할 일 정말 멋지게 해내는 거라고 다른 유스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저 자신에게도 말해주고 싶고.

    – 진희

  • © Amnesty InternationalCaption
  • 아무래도 앰네스티를 구독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참여한 거니까 되게 인권에 대해 박학다식한 친구들이 모였더라구요. 다음에 앰네스티 활동이 또 있다면, 좀 더 바깥으로도 홍보해서 새로운 유스들이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유인

혐오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혐오를 일삼는 사람들에게 가닿았으면!

“정작 혐오를 일삼는 사람들은 이런 영상을 못보고, 이미 혐오 문제에 공감하는 사람들만 이런 영상을 보게 되는 현상이 답답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우리 안에서 잘 숙성된 메시지들이 정말 이 메세지가 필요한 이들에게 가닿았으면 좋겠어요”

– 방만

? 교육 참여 유스가 직접 제작한 영상 보기

일상의 우리 By 아현, 방만, 민, 금소영

① 일상의 우리 By 아현, 방만, 민, 금소영

처방전 By 서진희, 마이나, 김예슬

② 처방전 By 서진희, 마이나, 김예슬

왜냐하면 By 서연, 송정효, 진희

③ 왜냐하면 By 서연, 송정효, 진희

#혐오대항챌린지 #영상콘텐츠제작 #요즘애들 #유스 #유스크리에이터 #유스액티비즘 #인권 #앰네스티 #미디어오리

수, 2021/03/0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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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표현? 들어주지 않겠다! 웃어주지 않겠다!

혐오표현 문제에 관심이 많은 10대와 20대 유스들이 국제앰네스티의 혐오대항 영상제작 워크숍에 모였습니다. 2020년 9월부터 11월, 국제앰네스티와 미디어오리가 함께 진행한 워크숍에서 참여 유스들은 영상을 통해 혐오표현 문제를 알고, 느끼고, 이에 대항하는 힘을 키웠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며 참여 유스들이 직접 제작한 영상들을 만나보아요!

참여자제작영상① 일상의 우리

혐오에 노출되고 마주하는 것도, 대항하는 것도 바로 일상 속의 우리

일상의 우리1. 이관: 이(耳)와 이(異) by아현

나는 에이섹슈얼이에요.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럼에도 한 번쯤 죽었다가 일어나 울었던 시간들이 있어요
하지만 입을 열어 귀를 덮었어요. 당신도 함께 말해줘요

일상의 우리2. 우리 안에서만 우리는 by방만

집이 가장 안전하게 느껴져요.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사실 집 밖으로 한 발짝만 나가도 숨이 막힐 때가 많죠.
‘정상’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저는 항상 긴장하고 있으니까.
정상과 비정상이 뒤집히는게 저를 편안하게 해요.
그러다 보면 정상이라는 게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드는거죠.
비정상은 나쁜 건가? 애초에 정상인 나, 비정상인 나,
이렇게 사람이 나뉠 수가 있는 걸까?

일상의 우리3. 우리를 봐요 by민

우리는 너와 나, 그 무엇으로만 규정하기 이전에
이다지도 많은 색깔, 다양한 면을 가진 사람입니다.

일상의 우리4. 틀린 존재는 없다 by금소영

“너 왜 이렇게 살쪘냐, 돼지냐? /
밤 늦게 짧은 옷 입고 다니고 성폭행 당한 여자의 잘못도 있어 /
동성애자? 비정상 아냐? / 여자는 결혼을 빨리 해야 돼 /
남자가 쪼잔하게 / 결정장애냐? /
여자애가 많이 배우면 남자를 이기려고만 들어 /
흑인은 까매서 밤에 잘 안 보이겠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다를 뿐이에요. 다름이 공격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참여자제작영상② 처방전

혐오퇴치 처방전 받아가세요~

처방전1. 웃어주지 않겠습니다 by서진희

없습니다, 재미.
혐오에 웃어주지 않겠습니다.

처방전2. 닫힌 마음에게 by마이나

우리는 닫힌 마음을 어떻게 열 수 있을까?
안전하게 나의 이야기를 말해주세요 들려주세요. 나는… , 나도!
나의 세계가 달라지는 경험으로 이어집니다.
고통의 경험과 치유에 관한 자기표현. 그리고 발견하는 회복 탄력성

처방전3. 위로의 폭력 by김예슬

위로. 그런데 어려워요. 위로 받는 것도, 해주는 것도.
상처를 인정하지 않는 말, 상처받은 사람을 탓하는 말들
“너만 힘든거 아니야. 너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어.
넌 너무 예민해. 약해서 그래. 네 잘못이야. 좋은 게 좋은 거지.
원래 그런거야.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
이런 말 대신 듣고 싶었던, 받고 싶었던 건,
“넌 충분히 잘 하고 있어. 내가 여기 있어. 사랑해”
그리고 가만히 들어주기. 함께 울어주기. 맛있는 것 함께 먹기.
실없는 소리 주고받기. 말없이 안아주기.

참여자제작영상③ 왜냐하면

혐오에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시작하는 말, 왜냐하면.

왜냐하면1 We’re all human by서연

누군가를 바라볼 때 어떤 집단으로 분류하고 계속 라벨링하고 있지는 않나요
사실 각자의 이름과, 복합적인 개성을 가진 존재인데 말이에요.

왜냐하면2 군맹무상 by정효

편견이 담긴 고사성어. 차별이 담긴 말들에 대해서
새삼스럽고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바라봅니다

왜냐하면3 당신이 받아마신 말들은 무슨 색인가요 by진희

당신의 말들은 무슨 색인가요
내가 소수자로서 겪은 경험이 나를 사유하게 하고 깊어지게 합니다
당신의 말들엔 어떤 깊이가 있나요

#혐오표현대항챌린지 #영상콘텐츠제작 #요즘애들 #유스크리에이터 #유스액티비즘 #숏다큐 #청소년 #인권 #앰네스티 #미디어오리

수, 2021/03/0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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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을 위한 시위에 참여해 서로를 안고 있는 여성 시위자들

여성인권을 위한 시위에 참여해 서로를 안고 있는 여성 시위자들

세계 여성의 날은 축하의 시간이어야 하지만, 코로나19로 여성, 소녀, LGBTI가 특히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지금, 이날을 온전히 축하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찬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변화가 많았던 한 해였다. 이번 글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화는 언제든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10가지 주요 성과를 소개한다.
아르헨티나 임신중지 합법화 법안 통과를 위해 시위에 참여한 여성

아르헨티나 임신중지 합법화 법안 통과를 위해 시위에 참여한 여성

1. 아르헨티나 ‘녹색 물결’이 이룬 쾌거

2020년 12월, 여성 활동가들의 오랜 캠페인 끝에 아르헨티나에서 임신중지가 합법화되었다. 이에 따라 아르헨티나에서는 임신 14주까지는 합법적으로 임신중지를 위한 시술을 받을 수 있으며 임신이 이보다 더 진행된 경우에도 강간으로 인한 임신이나 건강상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경우 임신중지가 가능해졌다. 지난 30년간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지가 아르헨티나에서 산모 사망 원인 중 1위로 기록된 만큼, 이번 결과는 앞으로 많은 생명을 구하게 될 것이다.

18개월 전만 해도 임신중지법 개정안은 아르헨티나 상원에서 부결됐었다. 하지만 활동가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고무적인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다. 마리엘라 벨스키Mariela Belski 국제앰네스티 아르헨티나 지부 사무국장은 발의안 부결 당시 이는 “실패가 아닌 하나의 디딤돌”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이후 2년 만에 실제로 임신중지 합법화를 이끌어낸 아르헨티나의 사례는 우리 모두에게 큰 영감이 됐다.

폴란드 헌법재판소 결정에 반대해 거리로 나온 여성들

폴란드 헌법재판소 결정에 반대해 거리로 나온 여성들

2. 제한적인 임신중지법 속에서 끊임없이 싸운 활동가들

지난 1년간 특히 코로나19 대응이라는 미명 하에 성과 재생산권을 제한하는 조치를 도입한 국가가 늘어났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많은 여성활동가들은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다.

2020년 10월 폴란드 헌법재판소는 사실상 모든 경우에서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1월 온두라스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임신중지법이 통과됐다. 일부 국가에서는 코로나19에 따른 봉쇄 조치 중 임신중지 접근성 제약 문제를 해소하고자 원격의료 시스템 등을 도입하는 노력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여성 생식 건강 의료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하지만 여성들은 정부가 바뀌길 기대하면서 수수방관하지 않았다. 이들은 탄원서 신청, 시위 조직, 워크샵 개최, 지원 및 의료서비스 제공 등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 한국의 낙태 비범죄화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런 운동은 실질적인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임신중지가 전면 금지되어 징역형이 내려졌던 태국에서도 임신 12주까지 임신중지를 가능하게 하는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시애라리온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

시애라리온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

3. 시에라리온, 임신한 여학생 등교 금지 철회

2020년 3월 시에라리온에서는 임신한 여학생의 등교 및 시험응시 금지를 철회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2015년부터 시에라리온에서 임신한 여학생들은 낙인 찍히고 교육 받을 권리를 박탈당하여 향후 취업에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에 이 금지 조치는 철회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평등한 교육권에 조금 더 다가간 의미 있는 한걸음이었다.

4. 강간법 개정

2020년 12월, 덴마크에서는 여성인권 및 피해생존자단체가 다년 간 노력한 끝에 동의 없는 성관계를 강간으로 규정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여타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개정 전 덴마크 강간법은 물리적인 폭력, 협박 혹은 강제성이 입증되어야 강간으로 인정하는 시대착오적인 법이었다.

덴마크에서 강간법 개정을 위해 시위로 나온 여성들

덴마크에서 강간법 개정을 위해 시위로 나온 여성들

덴마크 기자인 커스틴Kirstine은 자신이 과거에 강간을 신고한 후 정의 구현이 되기까지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경찰, 변호사, 판사 모두 물리적인 폭력에 대한 증거에 초점을 맞춰 피해자의 동의 여부가 아닌 저항 여부에 치중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다른 국가에서도 유사한 변화가 있었다. 크로아티아도 2020년에 관련 법을 개정했다. 스페인과 네덜란드도 곧 동일한 절차를 밟겠다고 발표했다. 법을 개정한다고 해서 강간을 예방할 수는 없겠지만 동의 여부를 법에 내제화함으로써 강간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목소리가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는 데 크게 일조한다는 점에서 이런 변화는 매우 중요하다.

5. 동성 결혼의 합법화

코로나19 사태로 LGBTI들은 특히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의료서비스, 고용, 주거 등의 어려움이 심화되었고, 봉쇄 조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위험한 환경에서 자가격리해야 한다.

그러나 힘든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소식이 이따금 들려왔다. 2020년에 코스타리카는 중미 국가 중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으며, 북아일랜드에서는 첫 동성 결혼식이 열리기도 했다. 가봉은 합의에 의한 동성간 성관계를 비범죄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앙골라에서는 동성간 성관계 금지를 철회하는 법안이 발효되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몬테네그로는 동성 간 시민 동반자 관계를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크로아티아에서는 동성 커플의 아동 위탁이 합법화되었다. 한국일본에서는 LGBTI를 포함해 사람들을 차별로부터 보호하는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어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모두가 평등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과정에서 얻어낸 중요한 진전이었다. 점진적으로 더 많은 국가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6. 직장에서의 LGBTI 권리 보호

6월 미국 대법원은 민권법에 따라 성적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기반으로 고용 과정에서 LGBTI를 차별하는 것이 금지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마침내 법에 의해 LGBTI가 평등할 권리가 인정된 것이다. 나아가 트럼프 행정부에서 취약해졌던 성소수자의 인권 보호가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변화이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 세계 트랜스젠더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이들을 위한 지원 서비스가 중단되고 트랜스젠더들이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들은 폭력의 위험에 노출되고 더욱 소외되었다.

정부의 구체적인 구제조치나 부양책이 부재하면서 트랜스젠더들은 다른 트랜스젠더 혹은 LGBTI 커뮤니티의 지원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트랜스젠더 활동가들과 LGBTI 커뮤니티가 협력하여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지원을 제공한 고무적인 사례가 일부 관찰되었으나, 정부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상황을 위해 활동가들이 나서야 하는 상황은 있어서는 안 된다.

7. 수단의 여성할례 공식 금지

여성할례가 가장 성행하는 국가 중 하나인 수단에서 2020년 7월 이 관행이 공식 금지되었다. 이 법률이 충실하게 지켜진다면 수백만 명의 여성과 소녀들이 여성할례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루자인 알 하스룰의 최근 모습

루자인 알 하스룰의 최근 모습

8. 여권인권 활동가들의 석방

2021년 2월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인권옹호자 루자인 알 하스룰Loujain al-Hathloul이 3년 만에 석방되었다. 루자인은 여성 운전금지법 폐지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지만 관련 법이 개정됐을 시점에는 남성 후견인 제도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수감된 상태였다. 루자인의 가족과 전 세계 인권 단체는 끊임 없이 루자인의 석방을 위해 싸워왔으며 루자인과 더불어 구금 상태에서 고문을 받고 있는 다른 여성들을 위한 정의 회복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루자인은 현재 보호관찰 대상 분류되어 출국금지 명령을 받은 상태이다.

루자인의 동생 리나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루자인이 집으로 돌아왔지만 자유를 찾은 것은 아니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 정치적 이유로 수감된 사람들이 모두 석방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아직도 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활동을 이유로 수감되어 있다. 정부가 억압적인 법률을 개정하고 고문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때에만 진정한 의미의 정의가 구현될 것이다. 그렇지만 우선 가장 용감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인권옹호가 중 한 명이 석방되었다는 사실을 축하하자.

9. 영국 ‘탐폰세’ 폐지

2021년 영국 정부는 여성 단체의 오랜 캠페인 끝에 ‘탐폰세Tampon tax‘를 폐지했다. 지금까지 영국에서는 위생제품이 사치품으로 분류되어 부가가치세 5%가 부과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유럽연합은 회원국들의 ‘탐폰세’를 전면 폐지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이스탄불 협약 가입 지지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

우크라이나의 이스탄불 협약 가입 지지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

10. 젠더기반폭력에 대해 거세진 대항

전 세계 곳곳에서 봉쇄 조치가 시행되면서 세계적으로 가정폭력 발생률이 급증했다. 팬데믹은 가정폭력의 만연함과 그 심각성에 경종을 울렸고 세계 곳곳에서 이에 대항하는 캠페인이 촉발되었다.

2020년에는 여성들을 여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 여성들이 많았다. 나미비아에서는 성폭력과 여성살해Femicide 철폐를 위한 시위가 열려 수도가 마비됐다. 터키와 우크라이나에서는 여성폭력과 가정폭력 퇴치를 위한 유럽평의회 협약인 이스탄불 협약Istanbul Convention을 지지하는 대대적인 시위가 열렸다. 남미 전역에서는 수백만 명의 여성이 폭력과 불평등에 대항하여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우리는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변화를 이룩하고 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변화에 동참할 수 있고 또한 하고 있다. 변화를 만들어내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그들이 만들어낸 파도는, 절대 멈추지 않는다.

금, 2021/03/12-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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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신장의 인권문제를 미국이 주요동맹을 연결하는 고리로 전면화하자, 영국BBC와 몇개 서방의 간판기업들도 이에 가세하면서 중국과 전면적 하이브리드 전쟁의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아래의 칼럼은 신장문제에 전문가를 자처하는 미국교수의 글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이고 의도적인 내정간섭을 정당화하는 의도와 배경을 담고 있다. 그러나 칼럼내용 대부분은 신장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대중국이 소수민족에게 시행해온 일반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오히려 신장에 대한 중국의 정책이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했던 식민지 역사보다 훨씬 민본적이고 평화지향의 실용적이며 상생적 측면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신장의 구도시 Kashgar 거리의 모습 – 2018

퇴임 직전인 지난1월 19일 폼페이오 전직 국무장관은 위구르 소수민족에 대한 중국 당국의 행동이 ‘민족대학살과 범죄’라고 단정했다. 새행정부의 후임자인 Antony Blinken도 이후 진행된 연방상원의 인사청문회에서 상기의 판단에 동의하였다. 21세기에 민족 대량학살이 진행되고 있다는 단정은, 특히 미국가정에서 대부분의 소비자 제품을 생산하는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도대체 정상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의 문제점이 무엇이든, 중국이 위구르족에 대해 저지른 잔학행위에 대한 증거는 부인할 수 없다.

중국서부 신장지역의 백만 명이 넘는 위구르인과 무슬림들이 집단수용소 교도소 및 기타 처벌 기관에 갇혀 심리적 스트레스 고문, 그리고 최근 BBC에 의해 보고된 바와 같이, 일상적인 강간을 당하고 있다. 감독처벌조직을 통하여 중국정부는 최첨단 기술까지 사용하며 지역원주민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비자발적으로 여성에게 불임시술을 했으며, 아이들을 가족에서 분리하여 기숙학교로 보내고, 강제거주의 노동 프로그램으로 중국전역의 공장에 수십만 명을 파견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중국당국은 해당지역의 위구르어 특성을 지우고, 모스크와 순례지를 파괴하고, 전통적인 마을을 불도저로 밀어내는 등, 위구르족을 억압하고 있다 (편집자 주. 상기의 언급에 대하여 중국은 악의적 왜곡과 과장 그리고 조작으로 21세기 최대의 거짓말을 지어내고 있다고 반발하면서, 개발국가들 중심의 ‘77개국모임’의 대표들을 지역에 초대하여 정확한 실상을 공개하였다, 이들을 포함하여 80여 국가들이 2020년 유엔총회에서 미국의 과장과 조작을 비판하고 중국당국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였다).

위구르족은 신장의 주요 거주민이다. 그들은 대부분 무슬림이고, 자신들만의 투르크어를 사용하며, 중국의 대다수 인구인 한족과 구별되는 문화를 유지해 왔다. 중국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신장에는 1,200만 명의 위구르인이 있으며, 이는 중국의 전체인구 인 14억 명을 감안했을 때 미미한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 공동체를 중국에 복종시키려는 방침을 정한 중국정부는 이들에게 강제적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신장에서 중국의 가혹한 행동은 단지 시진핑의 권위주의적 정권탄생이나 중국공산당(CCP)의 이념을 반영하는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위구르 민족에 대한 탄압은, 이들이 베이징에 의해 오래 전에 정복했지만 현대중국에 완전히 통합되기를 거부하는 가운데, 진정한 자율성을 허용하지 않은 민족과 영토를 둘러싼 근본적인 식민관계에서 발생한 것이다.

1980년 한때, 중국이 위구르족에게 매우 관용적인 방식을 적용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결국은 당국은 신장의 고유한 정체성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당시 중국당국에게 지역의 정책을 변경해달라고 탄원하면서, 이들 변방의 외지인들은 사실상 중국이 선택한 방식과는 매우 다른 국가가 되고자 요구하였다.

 

중화주의 특성을 지닌 식민주의

지난 4년 동안 위구르인에 대한 중국의 행동은 제국주의 시대에 여러 식민지 지역에서 행한 문화적 학살을 되풀이한다. 아메리카와 호주 원주민들이 희생당한 것처럼, 위구르족은 대량투옥과 억류 , 문화유적지 및 상징의 파괴 , 이주, 가족분리 , 강제적 동화에 직면했다 .신장에 대한 베이징의 최근 정책은 위구르족의 거주지에 대한 장기적이고 점진적인 식민지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위구르족이 자신들의 고향으로 여기는 지역이며 중국어로 “새로운 국경”을 의미하는 신장지역은 19세기 중반 청나라에 의해 정복되었고 19세기 후반에는 제국의 변방으로 흡수되었다. 1911년 청나라가 무너지고 새로운 중화민국이 탄생하면서, 중앙 국가권력과 친분관계를 유지했던 한족 지도자들이 지역을 변방의 식민지로 물려받아 통치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중국공산당은 1949년에 지역을 인수하여 통제력을 강화하고자 소련방식의 민족연방주의 체제를 모방하며 신장위구르 자치구로 이름을 변경했다.

소비에트 연방의 공산당은 짜르시대의 식민주의 과잉을 인식하고 기존의 식민지에게 소비에트 연방 내에서 소비에트 문화와 통치의 최전선에 자치적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들 변방의 공화국들은 상징적이지만 심지어 소련에서 탈퇴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 받았다.

그러나 중국은 내몽골, 티베트, 신장 등 영토에서 소련과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소련과 달리, 중국의 “민족자치구”는 거의 자율적이지 않다. 그들은 법적으로 탈퇴할 권리가 없었으며, 원주민 중 소수만이 공산당원으로 정부조직에서 의미있는 권력을 차지했다. 게다가 1959년부터 중국공산당은 신장이 중국의 역사적인 일부라는 견해를 채택하였고 오늘날까지 이를 강력하게 견지하고 있다.

1960년이 지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정부조직에는 자치권한과 현지의 위구르인이 거의 없었다. 중국은 이미 1950 년대 후반에 원주민 간부들을 지도부에서 제한하고 한족의 이주를 장려하여 현저한 인구구성의 변화를 촉진했다. 1953년 당시 한족은 신장인구의 6 % 에 불과했지만, 1982년에는 38 %가 되었다.

이러한 인구통계학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위구르 지역은 1970년대까지 중국공산주의 통치의 변방에 머물러 있었다. 대부분의 한족이주민들은 지역의 북쪽에 정착했고, 카슈가르와 코탄과 같은 남쪽의 위구르 중심지에서 떨어져 살았다.

마오쩌둥 시대의 다양한 사회공학적 캠페인은 중국전역과 마찬가지로 자치구 단위로 실시되어 위구르인을 충성스러운 마오이스트로 변화시키는데 제한적인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까지 신장은 여전히 ​​중국의 변방지역, 특히 위구르인이 압도적으로 밀집해 있는 남부가 지역 내 오아시스와 문화적 중심지역할을 하면서, 언어와 외모가 한족과 매우 달랐다.

1976년 모택동이 사망한 후 권력을 장악한 등소평(Deng Xiaoping)의 개혁시기에는 위구르 인들에게 많은 약속을 했으며, 중국정부는 신장에서 부분적 탈식민화 전략을 잠정적으로 채택했다. 등의 가까운 동료인 호유방(Hu Yaobang)은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중국공산당의 주석으로서 다른 자치구와 더불어 지역단위의 자유화 개혁을 주도했다.

그는 신장에 있는 한족이민자들에게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촉구하고, 전례없는 자치적인 문화 종교 정치의 개혁을 옹호했다. 호유방의 정부는 이전에 폐쇄된 모스크를 재개하고 새로운 모스크를 지을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이에 따라 위구르어 출판과 예술적 표현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호 주석은 심지어 중국의 통치체제 내에서 지치구 지역을 보다 자율적으로 만들 것을 제안했고, 지역의 지도자들을 토착민족 출신으로 기용하며 지역 국가기관에서 소수민족 자신의 문화와 언어를 배양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소수민족의 관대한 포용은 민주화와 자유화에 대한 호 주석의 전반적인 비전과 잘 어울렸다.

그러나 자율적인 위구르 자치구와 민주적인 중국에 대한 호 주석의 희망은 결코 실현되지 않았다. 당의 보수파들은 1987년 호유방을 쫓아내며 전국적으로 학생의 동요를 불러 일으킨 정책을 비난했다. 1989년 천안문 광장에서 벌어진 대규모 학생시위에 대한 진압은 호유방의 축출에 대한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는 정치개혁 시대의 종말을 의미했다. 그러나 위구르 지역의 운명을 결정한 사건은 1991년 소련의 붕괴이었다. 중국은 민족적 자결을 위한 캠페인이 소련 해체의 원동력이라고 인식하고 중국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면서 소련식 붕괴라는 비슷한 운명을 겪지 않았다.

1990년대에 중국공산당은 소요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소위 반분리주의antiseparatism 캠페인을 전개했다. 중앙당국은 무슬림신앙을 자결권으로 간주하면서 종교를 가진 개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더불어 적잖은 인기 예술가와 작가를 체포했다. 이러한 공격적인 캠페인에는 대량 체포 고문 및 처형과 같은 심각한 폭력이 동반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때때로 위구르인들의 폭력적인 저항을 야기시켰다. 그러나 산발적이고 피비린내 나는 투쟁에도 불구하고, 지역에는 조직화된 무장운동은 없었고, 독립탈퇴에 대한 진정한 위협도 없었으며, 신장이 강력한 탄압을 받을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테러라는 구실

미국에서 9/11 테러공격과 워싱턴의 후속선언인 “테러와의 전쟁”은 중국에게 위구르인에 대한 탄압을 재구성할 기회를 제공했다. 중국당국은 자신의 조치가 단지 심각한 테러위협에 대한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신장의 정책에 대한 국제적인 비판을 막기 위해 위구르 무장세력이 알-카에다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미국이 미끼를 던졌다. 2002년 여름, 워싱턴은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아프가니스탄의 작은 위구르인 그룹인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 (ETIM)이 알-카에다와 연계되었다고 주장했다. 미국관리들은 불과 몇 달 전의 중국주장 을 인용하면서 이 그룹을 테러조직으로 분류했으나, 결국 ETIM이 10년 넘게 존재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며 2020년 11월 테러리스트 제외목록에서 이를 삭제했다.

그러나 원래의 명칭은 관성력을 지니면서 신장에서 중국의 탄압을 강화하는데 활용되었다. 대테러를 가장한 중국은 위구르 고향에서 종교에 대한 반대와 탄압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신장에 새로운 인프라와 산업을 건설하는데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여 많은 한족 이민자들을 지역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을 통하여 중국화의 목표에 박차를 가했다.

한동안 중국관리들은 종교적으로 신실한 위구르인들에게 탄압을 집중하면서 중앙정부의 정책을 반대하는 일부의 위구르 엘리트들을 구금했다. 그러나 중국은 2017년 이후로 (편집자 주, 2013-2017년 간에 신장지역에서 실제로 테러가 심각하게 자주 발생하여 공안경찰관 수백 명이 희생당하였다) 매우 엄격한 정책을 도입하면서, 사실상 지역의 전체 원주민 인구가 테러리즘이나 분리주의 전투와 공모하는 것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많은 배경과 사건들이 중국 탄압정책의 강화를 촉발시켰다. 시진핑 정권의 독재적 전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 (Belt and Road Initiative)로 알려진 광대한 인프라 및 개발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육로항구로서 신장을 개발할 필요성, 국가 정책에 대한 위구르족의 저항; 그리고 국제적 비판과 무관한 글로벌 강국으로서 중국의 자신감 등이 커지고 있었다.

지난 4년 동안 중국당국은 현지 원주민 인구 10 분의 1 이상을 이주시키거나 대형수용소에 배치하였다. 당국은 남아있는 주민들에게 전례없는 감시를 실시하면서 행동과 모임 그리고 대화들을 추적하여 징후가 있으며 수용소로 격리시켰다. 그 결과로 격리수용된 이들에게 강제노동 프로그램, 의무적인 중국어 교육, 비자발적 불임, 강요된 학습을 실시하고, 지역문화 기념물의 파괴 또는 위생 조치를 포함하여 지역 주민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고안된 국가 캠페인을 준수하도록 강요했다.

2018년 Agence France-Presse가 검토한 공공정부의 문서는 중국 공산당의 전략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예: 관광목적으로 카슈가르 구도시의 양식화 된 리모델링)). 문서에는 위구르인에 대한 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계보를 끊고, 뿌리를 끊고, 연결을 끊고, 기원을 끊는 것”이라고 적고 있었다.

이런 전략은 실제 또는 인지된 테러 위협에 대응하려는 것이 아니며, 베이징의 진정한 목표는 문화적 학살이다. 그것은 위구르 민족의 근거지를 제거하고, 위구르인들의 민족적 연대를 무너 뜨리고, 그들의 거주지를 중국의 상업중심지로 바꾸기를 기획하며,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의 통로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중국은 신장지역이 한족이 지배하는 다른 자치구들을 닮기 원하며,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위구르인과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은 불필요한 것으로 인지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제거해야 할 장애물로 간주하고 있다.

중국당국은 쉽게 진로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부는 신장에서 최근 중국의 행동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목소리와 비판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연방의회는 신장에서 탄압행위에 연루된 중국 공직자와 기업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강제노동으로 만든 제품을 미국의 판매를 금지시키는 등 추가 입법을 고려 중에 있다.  이러한 조치는 인도주의적 위기의 규모를 감안할 때 타당하지만, 다른 국가들에게 중국과 미국 간 강대국 경쟁의 일환으로 보이는 한, 베이징에 필요한 압력을 가할 수 없다.

2020년 45개 회원국이 신장에서 보여준 중국의 행동을 옹호하는 서한에 서명하여 유엔인권 이사회에 제출하였듯이, 많은 국가들이 베이징 입장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의 정책을 바꾸려는 추진은 광범위한 국제적 지원을 가져야 하며 지속적인 경제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외부압력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진정한 변화는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만 올 것이지만, 효과적인 국제압력은 중국의 중요한 의사 결정자들에게 중국의 위구르인에 대한 탄압이 상당한 경제적 손실과 국가평판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확신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위구르인들의 피해를 복구하고 그들과 중국당국 사이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시 주석을 포함한 중국의 고위관리들은 특히 지난 4년 동안 저지른 잔학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 대한 훨씬 더 큰 방안(전략)이 남아 있는데, 청나라에서 물려받은 인종적 다양성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중국은 남미와 스칸디나비아 등 많은 나라에서 진행된 경험을 배워야 한다. 미국은 남미에서(?) 그리고 소련공산당은 1980년대에 스칸디나비아의 원주민들에게 최소한 제한된 주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중국당국은 위구르인들이 자치적인 방식으로 중국을 국가로 받아들이도록 보다 포용적인 정책으로 회귀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현대중국이라는 국가의 성격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대신 중국당국은 위구르 민족과 문화를 멸망시키는 잔인한 종말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

 

출처 : Foreign Affairs on 2021-02-10.

Sean R. Roberts

조지워싱턴 대학교 국제관계 Elliott 스쿨의 재직교수로, The War on the Uyghurs: China’s Internal Campaign against a Muslim Minority의 저자이다

월, 2021/04/05-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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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당국은 지난 3월 미국의 인권위반 사항들을 공개하면서, 워싱턴은 위선을 버리고 인권에 대한 이중잣대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중국정부 정보부처의 보고서는 지난해 미합중국은 코로나-19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당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무질서, 인종차별과 갈등, 사회적 분열 등에 시달려 왔다고 밝혔다.

보고서에서는 미행정부의 무능함으로 50만 명이 넘는 비극적 숫자만큼이나 미국 시민들이 생명을 잃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미국정치는 돈에 의해 좌우되면서 대선을 부유층들의 원맨쇼로 전락시켰으며, 미국정치제도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도는 20년 이래 최저수준으로 추락하였다고 지적한다.

또한 보고서는 미합중국내의 인종차별은 관행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으며, 이로 인하여 소수인종들은 일상적인 시달림을 받고 있으며, 특히 아시안계 미국 젊은이들의 1/4이 인종적 폭력을 경험했다고 밝히고 있다.

흑인계 미국인 George Floyd가 백인경찰의 무릎에 목을 졸려 사망하였으며,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경찰력이 강제로 진압하면서 1만명 이상을 유치장에 가둔 사실을 인용하였다. 또한 부유층과 빈곤층의 양극화가 중대하면서 미국내의 사회적 불평등이 극심해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정부는 지신들 내부의 가혹한 인권상황에 대한 반성은커녕, 다른 나라들의 인권을 무책임하게 비난하면서, 인권에 대한 위선적 이중잣대를 연출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국제적 규칙을 묵살하는 미국의 오만한 태도가 인도주의적 재앙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상기 보고서는 미국측에 위선에서 벗어나 타국에 대한 일방적 괴롭힘과 비난 그리고 인권에 대한 이중잣대를 중단하라고 촉구하면서, 미래를 함께 공유하는 인류의 공동체를 만들고자 국제사회와 함께 노력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보고서 내용을 아래에 관련 도표와 함께 소개한다.

 

미국의 정치적 무질서가 혼란을 야기시킨다- American democracy disorder triggers political chaos

미국의 정치적 무질서가 미합중국에 정치적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동시에 정치권에 대한 금력의 영향으로 선가가 돈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 역시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데, 2020년 10월에 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19%만이 대선의 정확도를 확실하게 신뢰한다고 답변했으며, 이는 2004년 이래 최저수준을 기록한 것이라고 적고 있으며, 정치적 대립 역시 극심하여 민주당과 공화당 간의 이견은 정치적 견해의 차이를 넘어서 점차로 극한대결로 변해가면서 정치적 파당이 증대하고 있다.

정치세력의 ‘균형과 견제’에서 극한거부Veto의 정치로 변질되었으며, 양극단의 파당이 현재의 미국정치의 실제적인 모습으로 자리를 잡았다. 대선 이후 진행된 모습이 미국의 민주적 위기를 적나라하게 대변하고 있으며, 워싱턴의 연장의회 난입점거의 정치적 대혼란은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미국 내 소수인종들은 극심한 인종차별의 고통을 받고 있다 – U.S. ethnic minorities devastated by racial discrimination

미국 내 소수인종들은 극심한 인종차별의 고통을 받고 있으며 이러한 인종차별은 광범하고 구조적이며 일상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인디언 원주민과 아시안계 그리고 아프리카 흑인계의 인권이 제약당하고 있고, 증오범죄가 급증하면서 인종차별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합중국은 역사를 통해 인종청소와 인디언의 학살을 공개적으로 진행하여 왔으며, 수없이 반인류적 범죄를 저질러 왔으며, 아직도 인디언 원주민의 인권은 묵살당하고 있고 이들은 2등 시민 취급을 받고 있다.

여전히 수많은 원주민들은 저소득의 사회에 갇혀 있으며, 위해한 쓰레기장 가까운 주거지라는 환경에 처해져 있어, 여기서 발생하는 독성으로 인하여 암과 심장의 발병률 그리고 신생아 장애가 대단히 높다.

아시안계에 대한 괴롭힘이 증가하는 추세이며, 작년의 경우 아시안계 젊은이들의 1/4이상이 심한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프리카계 흑인들은 미국인구 비중의 13%에 미치지 못하는데 반하여, 경찰에 의하며 사살된 인구 비중의 28%을 차지한다. 2013년에서 2020년 사이 경찰에 의해서 사살된 사건의 98%가 범죄가 아닌 것으로 무혐의로 분류되었으며, 기소된 사건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더구나 발표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유색인종이 코로나-19에 훨씬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에 확진되고 사망한 비율을 살펴보면, 인종에 따라 심각한 정도로 차이를 보이는데, 흑인계의 확진률과 입원횟수 그리고 사망률은 각각 백인에 비하여 3배, 5배 그리고 2배로 나타났다.

유색인종은 실업의 가능성 역시 훨씬 높다. 미국 노동부가 지난 9월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흑인의 실업률이 백인에 비해 2배이다.

부의 불평등 역시 인종에 따라 극심하게 나타나는데, 통계자료에 따르면, 백인 가계의 평균재산은 흑인 가계의 평균재산의 41배이며, 라틴계 가계의 22배에 달한다.

 

지속적인 사회불안으로 공공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 Continuous social unrest threatens public safety in U.S.

지난 해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 지속적으로 총기사건과 폭력범죄가 기록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발생하여 법질서를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고 선언하면서, 이로 인해 미국의 시민사회가 패닉에 빠졌고, 사회적 불안이 계속되면서 공공적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

총기폭력사건의 통계를 보면, 2020년 한해 총기사건으로 41,500명(이중 자살이 대략 20,000명)이 죽었으며 이는 하루평균 110명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년 한해 592건의 총기집단살해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이는 하루평균 1.6건에 달한다.

경찰들이 근무중 무책임하게 총기를 사용하여 이에 대한 미국 전역의 항의시위가 끊이질 않았다. 더구나 경찰조직은 항위하는 시민들에게 강제력을 남용하여 진압하였으며, 다수의 취재기자들을 구속시키기도 하였고, 이에 다시 시민들이 분노하면서 악순환적인 사회불안이 증폭되었다.

코로나-19의 봉쇄와 인조차별의 항의시위 그리고 대선결과 불복종 집회 등으로 2020년 총기류 판매가 기록을 갱신하면서 23백만 종이 팔려 나갔는데, 이는 2019년에 비하여 63%가 증가한 것이며 구매자 중에 8백만 고객은 처음으로 총기류를 구매하였다고 밝혔다.

 

팬데믹 대응에서 보인 미국의 무기력함 -Incompetent U.S. pandemic containment

지구상 인구수의 5%에 못 미치는 미국에서 지난 2월말 기준으로 확진자의 비중에서 25%를 넘어섰고, 사망자의 20%가까이 차지했다.

전염벙의 전문가이자 질병예방센터CDC의 전직 책임자였던 William Foege는 이를 ‘미합중국에서 발생한 대살륙’이라고 명명했다. 미국의 정치책임자들은 해당분야의 전문가들이 보낸 경고를 무시했으며, 팬데믹의 심각성을 평가절하하면서 시민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낸 탓이다.

미국은 해당지역의 봉쇄와 사회적 접촉의 제한을 너무나 늦게 시행하였으며, 이에 더하여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경제활동의 재개를 조급하게 서둘렀다. 추가하여 언급하자면, 감염의 위협은 취약계층, 즉 노인층과 빈민계층, 장애인구, 무주택자, 그리고 수감자들에 더욱 심각하게 나타났다.

팬데믹 통제에 실패하면서 미국시민들은 심리적으로 심각한 압박을 겪으면서 스트레스와 고립을 경험하고 있다.

 

빈부의 격차가 커지면서 심각한 사회블평등이 진행되고 있다 – Growing polarization between rich, poor aggravates social inequality in U.S.

상위 1%의 부유층 자산합계는 하위 50%의 자산합계의 16.4배가 된다고 공식미디어가 수치를 맑히고 있다. 이러한 공식수치는 전염병의 방역에 실패하고 정부가 무기력하게 대응하면서 대량실업과 생계의 위기가 발생한 가운데 발표되어 관심을 끌었다.

2020년 4월에는 실업률이 21.2%까지 치솟았으며, 이는 1930년대의 대공황이래 가장 높은 수치이다.

50백만 명의 시민, 즉 미국인구의1/6과 아동의 1/4이 2020년 한해 일상의 끼니를 걱정했다고 미국생계관련 보고서를 인용한 보도가 있었으며, 팬데믹 와중에 건강보험의 혜택이 급격히 축소되었고, 교육의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디지털-디바이드가 진행되었다.

 

미국은 인도주의적 국제규칙을 일방적으로 무시한다 – U.S. trampling on international rules results in humanitarian disasters

미합중국은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에서도 국제적인 규칙을 일방적으로 무시하여, 국제적인 안전보장에 가장 심각한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미국은 작년 6월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WHO에서 철수하였으며, 일반적 합의에 의하여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국가부터 가스의 배출 감축량을 크게 할당하자는 파리기후 협약에서 탈퇴하면서, 정치적인 단견과 함께 비과학적이며 무책임한 행동을 표출하였다.

국제범죄재판소ICC에게 제재를 가하고 관련 국가들에게 행패를 부리면서, 미국은 타국과 전쟁 중에 저지른 범죄와 자국시민들에게 가해진 경찰폭력을 조사하려는 국제기구의 조사를 거부하였다.

이란과 쿠바, 베네수엘라와 시리아 등에게 미국정부가 일방적인 제재를 가하면서, 팬데믹 와중에 이들 국가군이 의료자재와 장비를 구매하는 것을 어렵게 방해하였다.

양심적인 망명자들을 잔인하게 취급하였으며, 난민행렬의 다수 아동들을 장기간에 걸쳐 부모와 격리시킨 채 수감하였으며, 십여 명의 여성들은 자신들의 의사에 반하여, 불필요한 의료조치를 당했으며 심지어는 자궁제거의 수술까지 당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더구나 8,800여명의 어린 아동들이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와중에 방역의 조치도 취하지 않는 채 추방조치를 당했다.

이에 더하여 당시의 미국대통령(트럼프)은 이라크에서 국제법사의 의무를 불이행한 전쟁범죄를 범한 것으로 확정판결을 받은 용병업체 Blackwater에 대하여 사면조치를 취함으로써, 다른 조직들도 향후 뻔뻔스럽게 동일한 범죄를 반복하도록 조장하였다.

 

코로나-19를 잘못 대응하다 – Mishandled COVID-19

미합중국은 지난 2월 기준으로 50만 명의 코로나 사망자를 기록하였으며, 이는 전적으로 미국 정부가 코로나-19에 잘못 대응한 탓으로 알려져 있다. 존 홉킨즈 대학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이는 전세계 확진자의 1/4, 그리고 사망자의 1/5에 달한다.

“미국이 지구상에 있는 어떤 국가들보다 바이러스의 희생자가 많은 국가가 되었다”고 신임대통령 바이든이 사망자를 애도하는 촛불행사와 침묵의 시간을 가지면서 언급하였다.

 

출처: CGTN(중국국제방송)on 2021-03-24.

목, 2021/04/08-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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