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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보건의료와 건강권 ④] 최근 북한 보건의료가 직면한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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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보건의료와 건강권 ④] 최근 북한 보건의료가 직면한 어려움

admin | 화, 2020/11/17- 03:17

앞서 상반기 연재되었던 1~3화에서는 탈북인 보건의료 전문가 2인과의 대화를 실었습니다. 이어지는 4, 5화에서는 새로운 북한 보건의료 전문가와의 대화를 통해 최근 북한 보건의료의 모습과 문제점, 코로나19 상황 개괄 및 보건의료 개선 방안에 관해 더욱 심도 있게 고찰해 보고자 합니다.

앞서 상반기 연재되었던 1~3화에서는 탈북인 보건의료 전문가 2인과의 대화를 실었습니다. 이어지는 4, 5화에서는 새로운 북한 보건의료 전문가와의 대화를 통해 최근 북한 보건의료의 모습과 문제점, 코로나19 상황 개괄 및 보건의료 개선 방안에 관해 더욱 심도 있게 고찰해 보고자 합니다.
 

김신곤 교수
    김신곤 교수
  • –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내분비내과 교수
  • – 남북 보건복지 민관협력 포럼 위원
  • –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상임이사
  • – 통일보건의료학회 이사장
  • –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비상임이사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11월 초 북한 보건의료 전문가로 잘 알려진 김신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내분비내과 교수를 만났습니다. 김신곤 교수는 지금까지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하는 등 오랜 기간 북한의 보건의료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활동을 활발히 펼쳐왔습니다. 그는 북한 보건의료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거시적, 보편적, 유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김신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내분비내과 교수

김신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내분비내과 교수

이번 글에서는 최근 북한 보건의료가 직면한 어려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4최근 북한 보건의료가 직면한 어려움
© BBC World Service

변화 중인
보건의료 상황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지부, 김신곤 교수교수
북한 보건의료는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아시다시피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남북한의 경제 격차는 미미했어요. 보건의료 영역에서는 한때 북한이 우리보다 우월하거나 자랑할 만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무상의료무상치료제가 대표적이죠.

우리는 전국민 의료보험이라는 좋은 제도가 있지만, 사실 이게 시작된 것도 역사적으로 보면 북한에서 온 대남 전단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이게 근거가 없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시 집권 중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북한에서 날라오는 전단에 ‘무상교육’, ‘무상의료’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으니까, ‘우리는 저런 거 하면 안 되나’라고 해서 당시 별다른 토대가 없는 상황에서도 전 국민에 대한 의료보험이 빨리 진행될 수 있었다는 연구도 있죠.

적어도 북한의 보건의료 시스템만큼은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는 것 같네요.
북한이 시행하는 무상의료 시스템의 경우 사회주의 국가뿐만 아니라 유럽의 복지 국가들 중에서도 이를 채택한 나라들이 많아요. 국가가 돈이 있으면 무상의료는 잘 돌아가죠. 하지만, 국가가 돈이 없으면 당연히 이 시스템은 전혀 가동을 못합니다. 북한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과 비교해 건강지표가 나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점차 경제가 붕괴하기 시작하면서 1990년대부터는 아예 손을 놓게 되었죠.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가 시작된 이후로는 북한의 무상의료 시스템은 사실상 동결되어 버렸습니다. 병원에 가도 약은 턱없이 부족하고, 의사가 처방전 써주는 것만 가지고 약을 스스로 구해야 했는데,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장마당을 쉽게 보기 힘들었죠. 그래서 많은 사람이 질병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죽었어요.

최근에는 장마당에 가서 환자 본인이 돈을 지불하고 약을 구입하는 방식, 사실상 유상의료의 모습으로 변화했어요. 결국,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치료받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상황으로 바뀐 것이죠. 구입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금의 변화된 방식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힘든 시간이 되고 있을 것이라 봅니다.

 

© 연합뉴스 헬로포토

장마당 활성화가
가져온 역설

공공의료가 유명무실해졌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최근에는 장마당에서 누구나 약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의약품 접근성 측면에서는 이것이 장점으로 보이는데 부정적인 면도 있나요?
역설이라고 할 수 있죠. 국가가 돈이 있으면 공공의료가 가동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연이은 자연재난으로 국가가 먹고 사는 것을 책임져 주지 못하게 되면서 민간이 마주하게 된 위기가 커졌죠. 당연히 수많은 사람이 죽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국가에서는 장마당을 열어 두기 시작했어요. ‘국가가 책임 못 지니까 자력갱생하라’라는 식으로 숨통을 열어 둔 것이죠. 하나의 고육지책인데 그러면서 사실은 역설적으로 ‘장마당 경제’라는 것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보건의료의 측면에서 장마당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긍정적인 변화도 일어났지만, 부정적인 모습도 나타났습니다. 무엇보다도, 장마당에서 약이 유통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오남용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환자가 의사한테 가서 어디 아프다고 증상을 말한 후 장마당에 가서 약을 사라고 처방전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죠. 다음에 그 환자가 비슷한 증상이 있으면 다시 의사를 찾아갈까요? 아마 그 환자는 전에 받은 처방전을 바탕으로 그냥 자기가 약을 구해서 먹을 겁니다. ‘내가 전에도 이런 증상이 있었으니까 이 약 먹으면 될 것 같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이런 극단적인 예 중의 하나가 흔히 ‘아이나아이소니아자이드, Isoniazid, INH’라고 불리는 결핵약 오남용입니다. 결핵은 소모성 질환이죠. 소모성 질환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 서서히 몸이 축나는 질환이라는 말입니다. 결핵에 걸리면 삐쩍 마르게 되죠. 결핵은 감염자를 쇠약하고 쇠잔한 상태로 오랫동안 사람을 죽이지 않고 지속하다가 결국 사망하게 만듭니다. 또한, 그 사람의 기침과 가래를 통해서 타인의 감염도 쉽게 일으킵니다. 그래서 결핵균은 굉장히 스마트한 균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숙주를 죽이지 않고 오랫동안 괴롭히면서 다른 숙주에게 전염시키는 균이니까요.

아무튼, 결핵은 소모성 질환이라 결핵 환자들을 보면 삐쩍 마르고 못 먹고 그럽니다. 그런데 결핵 환자가 아이나 같은 결핵약을 처음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결핵균이 확 억눌리면서 모처럼 입맛이 돌기 시작합니다. 체중은 당연히 늘겠죠. 그래서 장마당에서는, 정말 황당한 일인데 아이나가 입맛 돋우는 약으로 팔린다고 합니다. 환자 자기가 그냥 경험했다고, 그저 구전으로 ‘이 약 먹었더니 입맛 돌더라’ 그렇게 말이 퍼지게 되니 어떤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입맛을 돋우기 위해 장마당에 가서 아이나를 삽니다. 그러면 실제 그 사람들이 결핵에 걸렸을 때, 그 약이 제대로 듣지 않게 됨으로써 내성만 키우게 되는 꼴이 되는 것이죠. 장마당의 활성화가 불러온 북한 내부의 변화의 바람이, 역설적이지만 보건의료 영역에서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변질하여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죠. 올바른 의료 문화를 위해서라도 보건의료는 장마당에서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연합뉴스 헬로포토

삼중고(유엔 제재, 코로나19, 홍수)의 덫

최근 북한이 맞닥뜨린 어려움으로는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지금은 ‘삼중고’라는 표현을 씁니다. 먼저, 북핵으로 인한 유엔 제재가 있겠고요. 다음으로, 코로나19로 인해 그 어느 나라보다 굉장히 강력한 국경봉쇄를 시행하면서 고립된 상태도 말할 수 있겠죠. 또한, 홍수 피해도 컸습니다.

일부의 표현을 빌리자면 ‘북한이 자발적인 형벌을 내렸다’라고도 합니다.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을 선택함으로써 북한이 자신에게 형벌을 가하고 있다는 말이죠. 북한은 유엔 제재 이후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절대적인 상황에서 중국과의 무역으로 그나마 호흡이 가능했는데, 그것마저 코로나19 이후 강력한 국경 봉쇄가 이어지면서 더 힘들어지게 된 것이죠. 그리고 지난여름 있었던 홍수도 매우 큰 피해를 줬다고 알려졌습니다.

세 가지 어려움이 북한의 보건의료에도 똑같이 영향을 주는지요?
유엔 제재, 코로나19, 그리고 홍수라는 세 가지 어려움은 북한 보건의료에 당연히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은 보건의료 시스템은 잘 구축되어 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거치면서 사실상의 유상의료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 폐해가 돌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유엔의 계속되는 제재에 최근의 코로나19, 그리고 홍수가 함께 덮치면서 전반적인 보건의료 상황은 전보다 훨씬 더 나빠졌을 것이라고 봅니다. 보여주기 위한 연극무대 같은 평양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평양을 벗어난 다른 지역에서는 보건의료 상황이 굉장히 심각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고난의 행군 이후 사람들도 나름의 내구력이 생겼습니다. 주민들은 갖은 어려움에도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간 온 것이죠. 그렇지만 병을 얻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죽어간 사람도 분명 많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취약계층,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최근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을 거라고 봅니다.
북한의 식량 수급과 관련하여, 아직도 북한은 식량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보시는지요? 북한 사람들의 영양 상태는 어느 수준인가요?
굶어 죽는 사람들은 이제는 거의 없을 거라고 봅니다. 그래도 식량은 부족하고 무엇보다 균형 잡힌 영양소 공급이 안 되고 있습니다. 통계의 정확성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식량농업기구FAO, 세계식량계획WFP과 같은 국제기구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북한 인구의 40% 정도가 영양 부족 상태라고 합니다. 영양 부족의 척도는 키입니다. 영양이 부족하면 키가 자라지 않고 체중이 덜 나가고 그러죠.

굶어 죽지는 않겠지만 부족한 영양 상태로 인해서 다른 질병에 취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의 영유아 사망률이 높은 이유도 같은 이유인데요. 예를 들어,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아이가 로타바이러스Rotavirus 감염증과 같은 설사병에 걸리면 수액 보충이라도 제대로 하면 괜찮은데 정작 북한의 병원에서는 수액도 제대로 못 주는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사망률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영양 상태를 좋게 하는 것은 기본적인 면역력과 건강과 관련된 최저치를 키워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부족하다는 것은 결국 북한의 건강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죠. 북한의 영유아 사망률이 증가하고, 한국보다 7~9배 높게 나타나는 이유도 이것을 근거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연합뉴스 헬로포토

평양과 평양이 아닌 곳,
두 개의 나라가 공존하는

평양과 다른 지역의 보건의료 수준 격차는 어느 정도인가요?
제가 직접 가 본 곳은 평양뿐입니다. 하지만 평양 밖의 모습은 저와 교류하고 소통하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은 것들이 있습니다. 북한에는 평양과 평양 이외의 지역으로 나뉜 두 개의 공화국이 있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닙니다. 비단 보건의료 영역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보건의료는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국가가 돈이 없으면 보건의료는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립니다. 당장 급한 먹고 사는 문제나 국가 경제와 관련된 가시적인 것들에 우선권이 가다 보니 보건의료는 차순위로 밀리곤 하죠. 그런 모습이 특히 두드러지는 곳은 북한의 어려운 지역들, 지방이죠. 거기서도 시골은 더욱더 그럴 것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전문가는 평양과 지방 간의 보건의료 격차가 상당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평양의 의료 수준은 그래도 조금 괜찮은 편인가요?
사실, 평양의 경우도 크게 나은 상황은 아닙니다. 몇 가지 상징적인 것을 들어 말해 드릴게요. 건물의 경우, 평양에 있는 건물은 외관상으로 굉장히 잘 지어 놓은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갖춰진 장비들은 당연히 제한적입니다. 굉장히 오래된 장비들이 있어요.

저는 2019년 평양시 만경대구역에 있는 ‘최경태내분비연구소’에 간 적이 있어요. 그곳의 경우 입원 병상이 100병상 이상인데 내분비 전문병원으로 100병상 이상인 곳은 우리나라에도 아직 없죠. 그래서 북한에서 소위 가장 큰, 제일 상위에 있는 내분비 종합병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반적인 규모나 시스템은 잘 되어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진료와 연구가 연계되어 있었고, 의료진들의 환자에 대한 열정과 수준도 높았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의 장비들을 직접 보니, CT가 이전에 기증받아 굉장히 오래되었더라고요. 골밀도 검사 장비는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 정형외과, 가정의학과 등등 개원가만 가도 최신 장비가 깔려 있을 정도로 흔해요. 그런데 북한의 소위 최상위 내분비 전문 병원에 골밀도 검사 장비가 있는데, 매우 오래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평양 수준도 이 정도입니다. 물론 평양에서도 최고위층이 가는 병원은 아마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병원은 보여주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네요. 어쨌든 일반인들은 이용할 수 없는 곳이죠.

최근, 그러나 코로나19 이전에 북한의 시 인민병원에 가서 봉사한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민병원인데도 불구하고 보통 가스로 마취를 하는데 마취하는 기계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전신 마취하는 기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수술은 어떻게 하냐고 물어봤더니, 국소마취 내지는 척추마취를 하는데, 응급상황일 경우 척추마취도 어려워요. 왜 그렇냐면 척추마취의 경우 환자가 협조해 줘야 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응급으로 환자의 배를 여는 수술을 한다고 하면, 배는 그냥 국소 마취하고 팔다리 묶은 다음 ‘케타민Ketamine’이라고 재우는 주사가 있는데 그 주사를 놓습니다. 그러다가 환자가 통증 때문에 깨면 다시 약 주입하고 하는 식의, 그런 수술을 하는 상황입니다. 또, 우리는 심장 멎으면 전기충격해 주는 자동심장충격기가 곳곳에 있잖아요? 공공기관도 그렇고… 응급실이라면 심장이 멎었을 때 심폐 소생하는 기계가 있어야 하는데 시 단위 병원에도 그런 장비가 없다고 합니다. 그 정도면 할 말 다 한 거죠. 인도적인 지원은 유엔 제재 상황에서도 예외로 한다고 하지만, 실제 보건의료 영역에서 제재의 여파는 심대합니다.

최근 북한에서 여러 변화의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고는 해도 실제 보건의료 영역에서의 열악함은 여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 화에서는 북한 보건의료 현실을 계속 조명하며 이를 개선할 방안은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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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최승호 피디의 영화 <자백>과 <그것이 알고 싶다> 1060회 ‘비선의 그림자, 김기춘’의 내용을 참고해 작성하였습니다.


김기춘의 미디어 데뷔, ‘학원침투 북괴간첩단 사건’
기자회견하는 30대 김기춘

기자회견하는 30대 김기춘

1975년 11월 22일, 당시 중앙정보부 대공 수사국장 김기춘이 ‘학원침투 북괴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김기춘은 기자들 앞에서 “북괴의 지령에 따라 모국 유학생을 가장하여 국내에 잠입”한 21명의 ‘간첩’ 명단을 공개했고, 이 ‘간첩’들은 사형 등 중형을 선고받아 장기간 복역하고 일본으로 추방당했다. 당시 재일교포 유학생이 200~300명인 것을 감안하면, 이들 중 10%가 ‘간첩’으로 구속된 것이다.

당시 30대였던 김기춘은 중앙정보부 대공 수사국장으로 사건의 책임자였으며, ‘간첩’들의 자백을 받아내고 ‘북괴를 소탕’한 공로를 인정받아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승승장구_김기춘

김기춘이 ‘간첩’들의 자백을 받아내는데 탁월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간첩을 알아보는 매의 눈? 아니면 누구든 간첩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

간첩을 잡는 특별한 기술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자신의 두뇌”라고.

두뇌대장 김기춘

두뇌대장 김기춘

“간첩은 머리, 두뇌로 잡는 것이지
몽둥이로 잡는 것이 아니다”

1973년에 무려 법무부 ‘인권옹호과’ 과장이기도 했던 그는 당당하게 자신의 ‘두뇌’로 간첩을 잡았다고 했다.
그의 수사에는 인권 침해도 없었고, 과거사 진상규명의 대상도 아니라고. 자신이 고문을 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당당한 김기춘

당당한 김기춘



고문 피해자들, 40년만에 감옥에서 나오다

2008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을 ‘고문에 의한 조작사건’이라고 발표했다. 이어 2012년 6월, 사건의 피해자들이 재심을 청구했고, 무죄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영화

영화 <자백>

당연히 무죄인데 이 소리를 들을 때까지 40년이 걸렸습니다.

-이철, 학원침투 북괴간첩단 사건 고문 피해자

법원은 피해자들을 ‘간첩’으로 볼만한 증거가 없다고 했다.

당시 대부분의 증거는 ‘자백’ 밖에 없었는데 이 자백은 구타, 가혹행위 등 고문에 의해 받아낸 것이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기밀 누설”이라는 혐의조차 “현 시국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것에 불과”하며 “이미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공지의 사실에 불과”하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간첩이라는 시선 속에서 40년 동안을 “창살 없는 감옥”에서 생활해야 했던 피해자들.
40년이 넘어 진실은 밝혀졌지만, 중앙정보부가 파괴한 한 사람과 그 가족의 인생은 어떤 방법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


한국은 나쁜 나라
피해자 이철

피해자 이철

팬티까지 발가벗기고 무조건 패기 시작했습니다. 성기까지 붙잡고 꼼짝 못하게 하고 담배불로 지지려했습니다. 내가 보는 앞에서 내 여자를 겁탈하는 것을 보고싶냐. 장모까지 하려고 한다. 그래서 사정을 했습니다. 모든 말을 들을테니까 그렇게 하지 마시오.

-이철, 간첩 조작 사건 고문 피해자

무죄판결을 받은 이철씨의 아버지는 이철씨가 구속된 날 쓰러서 53살의 나이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3년 뒤 세상을 떠났다. 약혼녀도 간첩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조국에 기대를 가지고 왔다가 인생이 망가진 채 일본으로 돌아간 사람이 많다.
일본으로 가자마자 죽거나 정신병원에 간 사람도 있다.

수사관들이 멋대로 쓰고 마지막에 강제로 지장을 찍게 했어. 안 찍겠다고 하면 때려 죽인다고 하면서 얼굴을 때리고 내 손을 갖다가 멋대로 찍어버렸어. 한국인은 목적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어.

-김승효, 고문 피해자

김승효씨는 아직 재심 신청을 하지 않았다. “지옥 같은 세월”을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며 한국에 가는 것조차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당시 고문으로 인한 자백 후 정신이상증세를 보인 그는 치료받지 못한 채 7년을 감옥에 보냈고, 출소한 후에도 일본에 돌아가 수십 년을 정신병원에 드나들며 지금까지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고문피해자, 김승효

고문피해자, 김승효

암흑의 세월을, 지옥 같은 세월을 잊어버리고 싶단 말이야. 가슴이 아파서 죽을 지경이야. 왜냐하면 무죄로 못됐으니까 죽을 지경이야. 죽고 싶단 말이야. 나는 무죄야.


수사관들은 마치 먹이를 앞에 둔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저에게 굴었습니다. 잠을 안 재운 채, 협박하고 구타하며, 제 몸과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습니다.

-김명수, 재심 청구소송 모두발언 중

“제 사건일지를 가지고 김기춘씨가 청와대에 들어갔다가 온 후, 수사관들은 저를 서울구치소가 아니라 지하 고문실로 데려갔습니다. 3주 동안 그곳에서 취조를 받았습니다. 개돼지 취급을 받으며 강도 높은 취조를 받았어요. 20일 동안 밤잠을 자지 못하게 했어요. 온갖 고문과 언어폭력으로 몸과 정신이 완전히 망가지고 탈진한 상태였어요. 지하실에서 나올 때는, 저는 간첩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 나이 스물여섯이었습니다.

-김명수, 재심 청구소송 모두발언 중

졸지에 간첩 가족이 된 저의 부모형제들은 일가친척, 친지, 교회, 사회공동체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채, 절망과 좌절 속에서 공포의 순간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처럼 고문은 무고한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뿐만 아니라, 그 가족의 한 평생을 송두리째 빼앗는 잔인하고 도구이다.


고문 피해자 있지만, 책임자는 없는 한국

“인권침해해서 간첩 잡았으면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다”고 했던 사건의 책임자는 피해자들의 잇다른 무죄판결 속에서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부활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처벌은 커녕 사과도 없었다. 재심 판결 전까지 당당하게 설교했던 그는 무죄판결이 잇다르자 “자기와 관계 없는” “기억에 없는 일”이라고 했다. 심지어 자신의 친필사인까지도.

2004년 한치 앞을 모르는 김기춘

2004년, 한치 앞을 모르는 김기춘

무죄판결 나기 전의 당당한 모습

무죄 판결 후 모든 기억을 잃은 김기춘

무죄 판결 후 모든 기억을 잃은 김기춘

무죄판견 이후 돌연 기억상실 모드

정신적 육체적 각종 후유증과 싸우며 40년을 창살 없는 감옥에서 생활해야 했던 고문 피해자.
40년 내내 한결같이, “공직자”의 자리에서 내려온 적 없는 사건 책임자.

국가권력이 특정집단에 의해 사유화될 경우, 국민들의 삶이 얼마나 파괴되고 불행하게 될 수 있는가를 제 사건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겨주기도 했어요.

존경하는 재판관님,
저 개인 한 사람의 희생으로 족합니다. 앞으로 우리 역사에 더 이상 간첩조작사건과 같은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고, 더 이상 저와 같이 희생당하는 주권자 국민이 나오지 않도록 사법정의(司法正義)가 살아있는 사회를 만들어주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김명수, 고문 피해자 재심 모두 발언 중

“자기가 인권침해를 했으면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다”는 김기춘은 지금 구치소에 있다. 고문 혐의가 아니라 블랙리스트 개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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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7/02/0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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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모스, 작가

<심슨 가족The Simpsons>은 미국의 최장수 시트콤이자 대표적인 사회 풍자 시리즈라는 점 외에도 큰 의미가 있다.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대 문화 컨텐츠로서, 영리한 풍자와 유머를 통해 시청자들로 하여금 세상을 보는 시선을 확립하게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케이블 채널에서 600편이 넘는 전 시리즈 연속방송 정주행을 시도해 본 (그리고 덕분에 엉덩이의 고통도 느껴 본) 사람이라면, 리사 심슨이야말로 스프링필드의 최고 지성인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90년대에 성장기를 보낸 소녀들에게 리사는 훌륭한 롤모델이기도 했다. 당시 흥했던 시트콤 <길모어 걸스Gilmore Girls>의 로리 길모어, <버피와 뱀파이어Buffy the Vampire Slayer>의 버피 서머즈 등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페미니스트 우상이 텔레비전에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리사는 끊임없이 권위에 도전하던 인물이었다. 억압당하는 존재가 있으면 그와 연대하고(상처입은 동물부터 여성 축구선수들까지), 성차별 반대를 부르짖었으며, 그러는 동안 언제나 스스로의 내면의 모순과 싸워 왔다(리사의 인형 말리부 스테이시를 잊지 말자).

이처럼 텔레비전 속에서 누구보다도 변함없이 페미니스트로서의 발언을 멈추지 않았던 리사와 함께 울고, 웃고, 교훈을 얻었던 세월에 기억하며, 리사 심슨이 수십 년 간 최고의 페미니스트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짚어 보려고 한다.

리사가 자신감 있는 여성을 마녀라고 부르는 것을 비판한다.

 


 성차별과 맞서 싸우는 여성 


리사의 페미니스트적 면모가 가장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리사 대 말리부 스테이시”편이다. 리사는 말리부 스테이시 인형이 미치는 악영향에 맞서고자 직접 여자아이들을 위해 말하는 인형을 만들어가며 분투했다. 물론 리사의 인형은 신상 모자를 쓰고 나온 말리부 스테이시의 인기에 크게 밀렸지만, 평범한 어린 소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리사의 열정은 분명 수많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성차별적인 이중잣대와 공놀이를 독점해버린 남자아이들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사회정의는 복잡하게 연결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여성 

발전소 노조 투쟁을 지지하는 노래를 부르는 리사
” 밤이고 낮이고 행진하자. 저들은 발전소가 있지만, 우리에겐 힘이 있다.”

리사는 ‘상호교차성 페미니스트intersectional feminist’라는 단어를 알기도 전부터 이미 환경과 동물권, 노조 문제 등에 관심을 가지면서, 억압적 제도는 모두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것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 문제에 대해 중독성 있는 노래를 만들기까지 했다! 우리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뭘 했던가? 초등학생 때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오늘은 무엇을 했나?


 비주류 의견도 당당히 제시하는 여성 

스프링필드 초등학교에서 리사의 인기는 거의 무좀에 견줄 수준이지만,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 후로 그녀의 사회적 입지는 한층 더 추락했다. 신념을 지킨다는 것은 어렵고 지치는 일이기에 포기를 고민하기도 하지만, 결국 리사는 어려움을 헤쳐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 마음 맞는 친구가 하필 폴 매카트니라서 도움이 된 것인가 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리사가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지켜 가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모순을 인정한 여성 

리사가 좋아하는 잡지 모델 코리

말리부 스테이시는 분명 페미니즘과 어울리는 캐릭터가 아니다. 그러나 리사는 그 왕가슴 인형을 좋아하는 마음, 잡지 모델 코리를 좋아하는 마음, 또래 아이들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스스로를 탓하지 않는다. 리사는 자신이 좋아하는 유치한 것들도 사실 깊이 생각해야 하는 쟁점들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고, 두 가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덕분에 삶이 더욱 재미있어진다는 점을 인정했다.


 권위에 도전하는 여성 

“다 틀렸어! 망할 전체 시스템까지 잘못됐어! 으아아아악!!”

리사는 원칙적으로는 권위를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런 권위자들이 없다면 리사에게 좋은 성적을 줄 사람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리사는 학교의 또 다른 우등생인 마틴 프린스처럼 무조건 권위를 찬양하지 않는다. 대신 주변의 모든 권력자에게 의문을 제기하고, 믿음직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며, 부정이 밝혀진 자들에게는 마땅한 지옥의 불기둥을 내린다. 그리고, 어쨌든 리사는 학교의 모범생이다. 한 방 먹어라, 마틴.


 독립적인 여성 

아직 한 자릿수밖에 안 되는 나이지만, 리사는 혼자서 하는 일을 기피하지 않는다. 그것이 박물관에 가기 위해 마을을 가로질러야 하는 무서운 버스 타기, 거의 매일 혼자 점심 먹기라도 마찬가지다. 리사는 자신이 더 큰 일을 해 낼 운명을 타고난 사람임을 알고 있으며, 멍청이들이 자신을 깎아 내리는 것을 가만 두지도 않을 것이다.


 진실을 밝히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 

케이블 만화 프로그램 역사상 가장 신랄한 풍자로 꼽을 수 있는 리사의 대사를 직접 들어보자.

엄마, 좋은 뜻에서 하신 말인 건 알지만, 경찰은 돈 많은 상류층들의 현상유지에만 힘쓰는 방위군 아닌가요? 안 그래도 사람 많은 교도소에 사람들을 더 밀어 넣느니, 사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부터 해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완벽하지 않은 여성 

심사가 뒤틀리기도 한다. 화도 낸다. 주먹을 휘두르고 마음에 없는 말을 내뱉기도 한다. 질투도 하고, 주눅도 들고, 서툴게 대응하기도 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페미니스트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높은 기준을 만족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이러한 여성 캐릭터가 페미니즘은 매우 냉철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며, 무서운 요구를 하지 않으며, 현재의 상황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리사는 그렇지 않다. 그저 평범하고 혼란스러운 고민으로 가득 찬 삶을 사는 고민이 많고 혼란스러운 사람일 뿐이다.


 첫 여성 대통령 

첫 여성 대통령, 리사 심슨

심슨 2016!
(편집자 주: 힐러리 클린턴 구호 패러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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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7/03/0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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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nter is coming “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은 작가 조지 R.R 마틴의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를 제작사 HBO가 영상으로 옮긴 미국 드라마입니다. 2011년 4월 시즌1 방영을 시작으로 2017년 현재 시즌7까지 방송되었으며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며 미국 드라마 사상 가장 성공한 작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왕좌의 게임>은 중세 유럽을 기본 골격으로 하는 ‘웨스테로스’라는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드라마입니다. 판타지이기 때문에 드래곤이나 마법 같은 비현실적인 요소가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기본 줄기는 유력 가문 사이의 권력쟁탈전에서 비롯되는 음모와 배신, 전쟁과 권모술수로 꾸며지기 때문에 여기에 연루되는 캐릭터들이 겪는 사건과 상황들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언급했다시피 중세 유럽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왕좌의 게임>의 무대가 되는 이 가상세계, ‘웨스테로스’는 상당히 반인권적인 세계입니다. 온갖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는 야만적이고 무시무시한 세계입니다.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주세요. 판타지, SF 등은 단순히 허무맹랑한 허구가 아닙니다. 이 장르들은 언제나 현실의 인간 사회를 거울처럼 보여주었습니다. 상상 속의 디스토피아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들이 실은 다른 세계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혹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비판과 경고인 셈입니다. <왕좌의 게임> 속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죽음과 충격적인 사건들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것은 실제 인류 역사에서 일어난 일들의 아주 적은 복제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란 점을, 잊지 마십시오.

(이하의 내용은 <왕좌의 게임>의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본문에 포함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 소유는 ⓒHBO에 있거나 또는 그 2차 창작물(팬아트)입니다)


<왕좌의 게임>의 배경이 되는 가상세계 웨스테로스

웨스테로스에서 벌어지는 주요 인권침해


 

[사례1] 사형
  • 피해자 : 에다드 스타크 (윈터펠의 영주, 북부의 감시자)
  • 가해자 : 조프리 바라테온 (왕)
  • 강요된 자백에 근거해 즉결사형을 집행함

상황


충직한 에다드 스타크는 자신의 영지인 북부에서 평온한 나날을 보내던 중, 오랜 친구이자 왕인 로버트 바라테온의 부탁으로 수도 ‘킹스랜딩’으로 들어와 왕의 핸드(섭정)로서 국무를 돌보게 됩니다. 그러나 로버트 바라테온은 불운한 사고로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되는데, 에다드 스타크는 왕위를 계승할 왕자 조프리가 실은 왕비의 외도에 의해 낳은 자식이며 따라서 적법한 후계자가 아니란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에다드 스타크는 조프리의 왕위계승을 인정하지 않고 상황을 장악하려 들지만 이미 손을 쓰기엔 늦었습니다. 결국 그는 반역죄로 감옥에 갇힙니다.

에다드 스타크는 반역죄를 거짓으로 자백하고 조프리를 정당한 왕으로 인정한다면 자비를 얻을 것이라는 제안을 받습니다. 철저한 원칙주의자이자 강직한 에다드였지만 인질로 잡힌 딸을 보호하고 최악의 파국만은 피하고자 결국 거짓자백을 합니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조프리는 즉석에서 사형집행을 명령합니다. 심지어 왕의 어머니인 세르세이 라니스터까지 나서서 조프리를 만류해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이로써 에다드 스타크는 반역죄를 자백하고 참수를 당하는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았습니다. 잔인한 왕의 감정적인 말 한마디로 인해 왕국에서 가장 신망받는 인물이 어이없게 죽고 만 것입니다. 더 억울한 건 그를 죽음으로 몰아놓은 그 녀석이 바로 ‘절친의 아들’이란 점이지요. 가여운 에다드!

아이러니한 점은 <왕좌의 게임> 첫 화에서 에다드 스타크가 한 탈영병에게 직접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한다는 점입니다. 이 장면에서 그는 아들에게 사형선고가 가지는 무게감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비록 사형수가 죄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게는 실로 참작할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다드는 그의 증언을 “미친 자의 말”이라며 믿지 않았습니다. 그 스스로 사형집행자였으나 나중엔 억울한 사형수가 되는 에다드 스타크의 추락은 사형이 얼마나 모순적인 제도인지 보여주는 역설입니다.

근거
세계인권선언 제 3조
모든 사람은 생명, 자유 및 신체의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문제점
사형제도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되돌릴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인간이 만들고 집행하는 법과 제도 속에서 행해지는 판결은 무수한 오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혹은 실제로는 혐의가 없음에도 정치적인 의도로 죄를 뒤집어 씌우기도 합니다. 사형을 내릴 수 있는 기준 또한 자의적이란 점 또한 문제입니다. 어떤 나라에선 전혀 죄가 아닌 것이 어떤 나라에서는 사형의 이유가 됩니다. (당신이 사형을 당할 수도 있는 다섯 가지 ‘범죄)
신이 아닌 바에야 도대체 어느 누가 ‘죽을죄’를 정할 수 있겠습니까?

현실에서는
현실에서 사형으로 인해 억울한 죽음을 맞은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셀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많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경우는 더 많겠지요. 허균, 조봉암, 안중근, 소크라테스, 예수.. 이들이 사형을 당하지 않았다고 상상해보십시오.

특히
아직도 사형이 존재하는 나라에서는 여러가지 죄목과 방법으로 사형이 집행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이란, 수단 등의 일부 국가에서 행해지는 ‘투석형‘은 잔인한 처형방법으로 악명 높습니다. 투석형(投石刑)은 사형수를 땅에 파묻어놓고 상반신 일부만 내놓은 채 죽을 때까지 돌을 던져 죽이는 잔인한 형벌입니다. 만약 스스로 땅을 파헤치고 나오면 살 수 있다는 있으나마나 한 조항이 있는데 그나마도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더 깊게 파묻는 차별적인 형벌입니다. 특히 실제 혐의나 증거와 전혀 무관하게 간통혐의를 받고 투석형에 처해지는 여성이 많습니다. 실제 간통의 여부와 상관없이, 피해자의 고통을 증가시키려는 목적으로 고안된 처형 방법이기 때문에 매우 비인도적이고 끔찍한 사형 방법으로 지탄받고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국제앰네스티는 1977년 ‘스톡홀름 선언’을 발표하면서 전 세계적 사형폐지를 촉구했습니다. 2007년 유엔총회에서 ‘사형의 사용에 대한 모라토리엄(사형집행 유예)’ 결의가 채택되었습니다. 앰네스티는 매년 연례사형현황 보고서를 발표하는 등 사형의 완전한 종식을 위해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중국, 미국, 이란, 파키스탄,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방글라데시, 이집트 등 여전히 사형이 집행되고 있는 나라들에 대한 비판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사례2] 조혼, 강제결혼

상황 1)

  • 피해자 : 대너리스 타르가르옌 (몰락한 왕가 타르가르옌의 마지막 공주)
  • 가해자 : 비세리스 타르가르옌 (몰락한 왕가 타르가르옌의 마지막 왕자)

쫓겨난 왕위 계승자 비세리스 타르가르옌은 도망자 신세라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습니다. 아, 하지만 그는 발상의 전환을 했습니다. 예쁘고 어린 여동생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한거지요. 그는 여동생을 강력한 무장세력(기마민족 도트라키)의 수장(칼 드로고)과 결혼시키는 대신 왕좌를 탈환할 병력을 얻고자 합니다. 여동생 대너리스는 친오빠에 의해 교환가치가 있는 물건 취급을 받은 셈이지요. (대너리스는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명확하게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만 그녀의 오빠는 무시무시한 폭언으로 답합니다. “난 필요하다면 그자의 4만 명의 병사와 말들이 전부 널 강간한다고 해도 그냥 둘 거야”) 결국 그녀는 팔려가다시피 원치 않는 결혼을 합니다. 그녀의 나이는 고작 13살이었습니다. (원작 소설 기준) 그녀의 초야는 강간과 다름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남편의 큰 사랑을 받고 그녀 역시 점점 마음을 열게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가 원하지 않았던 정략결혼이란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자식 농사 뿐입니다.


상황 2)

  • 피해자 : 산사 스타크 (에다드 스타크의 딸)
  • 가해자 : 타이윈 라니스터, 피터 베일리쉬, 램지 볼튼

전형적인 ‘공주병’에 빠져있던 철없는 소녀 산사 스타크의 꿈은 왕자와 결혼하여 왕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빠친구가 왕이었기 때문에 그리 비현실적인 꿈도 아니었죠. 자연스럽게 두 집안 간에 약혼 분위기가 형성되고 소녀의 꿈은 곧 이뤄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빠친구 아들(조프리 바라테온)이 정작 왕이 되자마자 한 일은 아빠(에다드 스타크)를 사형시키는 것이었죠. 그녀는 하마터면 아버지를 죽인 남자와 결혼할 뻔 했습니다. 그의 잔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서, 참수되어 걸려있는 아버지의 목을 그녀로 하여금 강제로 쳐다보게 할 정도로 끔찍한 심성의 소유자입니다. 그런 남자를 남편으로 받아들이고 평생을 살아야한다니 끔찍하죠.

여차저차하여 결국 아버지의 원수와 결혼하는 것은 피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스스로 배우자를 고를 권리 따위는 전혀 없습니다. 그녀는 볼모로 잡혀있는 신세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용당할 뿐입니다. 결국, 그녀의 남편이 된 사람은 원래 약혼했던 조프리의 삼촌인 티리온 라니스터였습니다. 나이, 외모, 가족관계 등 여러모로 보았을 때 산사가 원하던 남편감과는 심각한 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원치 않는 결혼이었을지언정 티리온 라니스터는 여성의 주체적인 의사를 존중할 줄 아는 신사였습니다. 그는 강제결혼을 당한 산사와 동침할 의사가 전혀 없었지요.

 

산사의 세번째 강제결혼 상대는 <왕좌의 게임> 세계의 최악의 악당인 램지 볼튼이었습니다. 그는 오빠와 엄마를 죽인 자의 아들입니다. 게다가 고문과 살인을 일삼는 사람이었죠.

결국 대너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산사의 첫날밤도 강간이었고 그녀의 결혼생활은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아빠를 죽인 남자와 결혼할 뻔 했다가, 그 남자의 삼촌과 결혼했고, 그 다음 오빠와 엄마를 죽인 자의 아들과 결혼하게 되었죠. 산사의 여성성은 철저히 이용당했으며,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 결혼으로 고통받았습니다. 산사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겠죠.

근거
성과 재생산 권리(Sexual and Reproductive Rights)

  • 자신의 몸에 대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
  • 자신의 몸과 건강에 대한 정보와 교육, 서비스를 요청하고 받을 권리
  • 임신 여부와 임신의 시기를 선택할 권리
  • 결혼 여부와 결혼 시기, 파트너를 선택할 권리
  • 성폭행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세계인권선언 제 16조
1. 성년 남녀는 인종, 국적 또는 종교에 의한 어떤 제한도 받지 않고 혼인하며 가정을 만들 권리를 가진다. 그들은 혼인기간 중 또는 그것을 해소할 시에 혼인에 관하여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2. 혼인은 그 의사를 가진 양 당사자의 자유롭고 완전한 합의에 의해서만 성립된다.

문제점
나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사람, 나와 잠자리를 가질 사람은 당연히 나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누구도 이것을 강요, 강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성의 신체와 성은 너무나도 쉽게 도구화되고 물질로 취급 받아 왔지요.

현실에서는
부르키나파소의 여성의 절반 이상이 17세 이전에 결혼합니다. 이는 대부분 가족의 협박과 폭력에 의한 강제결혼입니다. 13세의 소녀가 이미 5명의 아내가 있는 70세 노인과 결혼해야했던 사례도 있습니다.
관습적인 조혼이 성행하고 있는 네팔에는 많은 여성들이 ‘자궁탈출증’을 앓고 있습니다. 이 여성들은 평균적으로 15세에 결혼을 하는데, 신체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상태로 결혼하여 동의 없는 성관계를 강요받은 결과로 자궁탈출증을 앓게 되었습니다. 자궁탈출증은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 더욱 악화되는데 네팔의 자궁탈출증 환자들은 남편과 시댁의 강요로 피임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습니다.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등 일부 북아프리카 국가들 중에는 강간 가해자가 피해자와 결혼을 할 경우 처벌을 피하는 어처구니 없는 법이 있습니다. 모로코의 16세 소녀 아미나 피라일리는 자신을 강간한 남자와 강제로 결혼하게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여론이 들끓자 모로코 의회는 개정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여전히 여성의 젠더에 대한 폭력적인 법 조항들이 철폐되지 않고 있습니다. 모로코의 형법은 성경험이 있는 여성을 강간하는 것을 경험이 없는 여성을 강간하는 것보다 ‘가벼운 죄’로 취급합니다.

또 있습니다. 극단주의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다에시(IS)’는 납치한 여성과 어린이를 전투원에게 전리품처럼 나눠주어 아내로 삼거나 노예로 만드는 전쟁범죄를 저지르며 시간을 중세로 거꾸로 돌려놓았습니다.

특히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고령화는 노동력과 생산력 감소로 이어지며 경제에 치명타를 주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가 출산율 높이기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각종 홍보와 선전, 정책들은 살짝 삐끗하는 순간 여성의 성을 ‘국가 노동력을 생산하는 출산 도구’로 전락시킬 수 있습니다. 임신과 출산은 온전히 여성 개인들의 뜻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데, 국가의 필요에 의한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며 ‘애를 낳으라’고 종용받는 것은 부당한 일이지요. 아이를 낳지 않든, 몇을 낳든, 그것은 오롯이 여성의 권리입니다. 그러니까 참견하지 마세요! 대신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국제앰네스티는..

나의 몸, 나의 권리! 국제앰네스티는 국가가 개인의 성과 재생산을 통제하기 위해 형사법을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등의 개인의 의사결정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해 My Body My Rights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수, 2017/09/0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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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여자를 소비하는 방식, 아니 이제 여자가 게임을 소비하는 방식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내용, 배울 것이 없는 질 낮은 문화콘텐츠, 학업 혹은 일상생활을 마비시키는 위험한 중독성. 게임을 둘러싼 부정적인 편견은 오래되었고, 뿌리 깊다. 일부는 맞기도 하고 혹은 그렇지 않기도 하다. 게임은 꽤 오랜 기간 주류 문화로 인정 받지 못하고 부정적인 시선을 더 많이 받는 하위 문화였다. 특히 한국에서 게임은 오랜 기간 ‘골칫덩이’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간의 정부는 게임을 산업이나 문화가 아닌 마치 ‘질병관리’하듯 다뤄왔다. 언론도 범죄 피의자가 ‘게임을 즐겨했다’는 식으로 게임이 폭력성을 부추긴다고 주장했다.(그 폭력성을 실험한다며 영업중인 PC방의 전원을 내리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계적인 추이에서 게임의 발전은 눈부시다. 단순히 적을 물리치거나 스테이지를 돌파하던 것이 대부분이었던 과거에서 탈피해 소재와 주제가 매우 다양하고 풍부해졌다.1) 덕분에 게임은 정치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는 미디어(김윤상)로까지 기능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래픽과 미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연출의 탁월함이 더해진 대작의 등장은 이제 게임을 영화처럼 종합예술의 반열에 올려놓기에 충분하다. 그 결과 게임은 대중 엔터테인먼트 산업 중 최단 기간에 최대의 매출을 발생시키고 있으며, 문화와 기술의 발전을 집약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미디어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게임은 게임을 둘러싼 편견을 뛰어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게임이 극복해야 하는 편견은 아직 꽤 남아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견고하고 오래된 편견 중 하나는 남성의 전유물이란 것. 어느 정도는 부정하기 힘든 사실인 이 편견은, 이제 게임이 풀어내야 할 눈앞의 미션이 되었다.

HBO의 2016년 드라마 <웨스트월드>SF와 서부극이 뒤섞인 독특한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기억(메모리)을 삭제할 수 있고, 다치거나 죽어도 (기계니까) 고쳐서 부활할 수 있다는 점만 뺀다면 인간과 모든 면에서 똑같은 안드로이드가 만들어진 근미래의 세상. 이 안드로이드들은 자신이 AI인줄은 꿈에도 모르고 스스로를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은 “웨스트월드”라는 가상의 미국 서부극을 재현한 거대 테마파크의 ‘NPC(Non-Player Character)’일 뿐이다. 여기에 돈을 내고 입장한 진짜 ‘사람’들은 마치 게임에 참여하듯이 퀘스트를 풀며 모험을 하거나, 사랑에 빠지거나, 영웅이 될 수도, 악당이 될 수도 있다. 안드로이드는 사람을 물리적으로 해칠 수 없도록 조작되어 있고, 때문에 어떤 손님은 기꺼이 안드로이드를 학살하거나 약탈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만끽한다. 그리하여 이 세계의 여자 안드로이드들은 늘 강간 당하고 죽임 당한다.
갑자기 드라마 얘기를 꺼낸 이유는 이 <웨스트월드>의 여성 안드로이드 ‘돌로레스’가 남성 유저에 의해 유린 당한 수백수천의 날이 여태까지 게임이 여자를 다뤄온 방식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때까지의 주류 게임 문화가 소비해온 ‘여캐’는 그래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초적인 폭력의 세계에서 양념처럼 걸쳐지는 눈요깃거리에 불과했다.

드라마 &lt;웨스트월드&gt;

드라마 <웨스트월드>

드라마 &lt;웨스트월드&gt;

이는 여성 캐릭터의 복장만 봐도 쉽게 드러나는데, 전투와 액션을 다룬 게임에서조차 여성 캐릭터는 오로지 남성 유저의 시각적 만족을 위해 섹스어필하는 의상과 몸매가 강조된다. 대표적인 성상품화로 문제가 된 ‘서든어택2’는 그 옷차림 그대로 게임 내에서 공격 당하는 게 묘사되어 성폭력까지 연상시키는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했다.

 

발매 예정인 플레이스테이션4 기반의 대작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2>의 스틸 이미지가 공개되었을 때, 혹자는 여주인공인 엘리가 ‘가슴이 작아서’ 여성스럽지 못하다며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라스트 오브 어스2>는 좀비 바이러스로 인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종말 이후의 세계)’의 파국 서사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다. 무정부 상태나 다름 없는 이 세계에서는 단지 생존만을 위해 인간성을 극단으로 몰아부치며 서로 죽고 죽이는 지옥 같은 곳인데, 여기에서조차 여성 캐릭터의 몸매를 품평한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라스트 오브 어스>는 배우 앨렌 페이지를 모델로 디자인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후에 다소 수정) 다른 게임에서 모델링 연기로 출연한 탓에 앨렌 페이지 본인은 “영광이지만 기쁘지 않다”로 대답했지만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이자 주체적으로 발언하는 페미니스트로서 엘렌 페이지가 괴물의 시대에 살아남아야 하는 강인한 여자아이의 모델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닌듯하다.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

<라스트 오브 어스>

한편 <라스트 오브 어스>이 첫 발매 당시에는 여성 캐릭터가 패키지에 등장하면 판매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판단한 제작사 고위층이 엘리를 표지 디자인에서 뺄 것을 요구했으나 제작진은 이를 거부하고 엘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또한 개발 도중 실시된 설문조사가 ‘남성 게이머’들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얘기를 듣고 즉시 ‘여성 게이머’도 포함시킬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 사례는 그동안 게임(업계)이 여성을 게임 속에서 성적 대상으로 소비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여성 게이머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다. 게임하는 여성은 아예 없는 사람이었거나, 있더라도 ‘게임실력이 남자보다 떨어지는’ 취급을 받았다. 특히 사용자간의 경쟁이 펼쳐지고 게임 실력이 계량화된 등급으로 평가 받는 게임에서 여성 게이머가 들을 수 있는 가장 후한 말은 “여자 치고는 잘하네요” 라는 말이다. 실시간 온라인게임에서 음성대화가 일반화되고 중요해진 요즘 게임에서는 문제가 더더욱 두드러진다. (게임을 이기기 위해서는 플레이어간의 실시간 협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게임 중 음성대화가 필수적이다) 목소리를 통해 여성임이 ‘노출’되면 그때부터 온갖 성희롱 발언이 터져나온다. 혹은 패배의 원인을 ‘여자가 못해서’로 몰고 가기도 한다. 2016년 발매되자마자 최고의 인기게임의 반열에 오른 <오버워치>는 이러한 성차별적 폐해에 여성 게이머들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아니, <오버워치> 이전의 같은 장르의 <리그 오브 레전드>때부터도 이런 문제는 심각했다. 여성 게이머들은 온갖 인신공격과 성희롱 발언을 피하기 위해 여자임을 숨기고 플레이 했고, ‘여자인 것이 들켰을 때’ 받는 피해와 고통은 오로지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그럼에도 ‘게임을 하는 여자’라는 존재는 어디에서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공론화 되어본 적조차 없다.


‘게임하는 여자’를 욕보이는 남자들은 당연히 ‘여자가 게임을 잘한다’라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게구리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의 ‘게구리’라는 닉네임을 쓰는 ‘여고생’ 플레이어가 압도적인 기량을 자랑하며 승률 80% 이상이라는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이자 이것이 진짜 실력일 리 없으며 핵(게임 프로그램을 해킹하여 승리가 쉽도록 조작하는 일종의 불법 프로그램)을 이용한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중 일부 오버워치 프로게이머들은 제작사인 블리자드에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만약 조작이 아니라면 ‘게구리’에 사과하고 <오버워치> 프로게이머 활동을 접고 은퇴까지 하겠다’고 선언하며 자신만만하게 몰아부쳤다. 어떤 사용자들은 ‘게구리’에게 성희롱과 살해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조사 결과 ‘게구리’의 온전한 실력이었다는 것이 드러났고, 이것은 게임에 만연해 있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지독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낸,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건이 되었다.



놀라운 사건은 또 일어났다. 지난 2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다이스 서밋 2017’에서 <오버워치>의 비주얼 디렉터 제프 카플란이 한국의 ‘전디협’을 소개하며 이를 극찬했다. ‘전디협’이란 ‘전국디바협회’의 줄임말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위 당시 광화문광장에 등장한 재치 있고 기발한 재미를 주는 이름과 로고로 깃발을 만들어 나온 가상의 다양한 단체들에서 시작했다. 그 취지는, 한국의 성차별적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오버워치>의 캐릭터 중 한국인 여성인 ‘송하나(디바)’가 등장할 수 없을 것이라는 문제의식에 기인한다. 그리하여 전디협은 여성이 게임을 하며 겪게 되는 온갖 욕설과 성희롱, 성차별에 대한 증언을 모으고 이를 지적하고, 가상인물 ‘송하나’가 이와 같은 일을 겪지 않고 마음껏 게임을 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행동한다고 선언한다.

전국디바협회 로고


전디협의 이러한 행동강령(?)은 굉장히 놀랍다. <오버워치>의 작가가 밝힌 오버워치 세계관의 가장 기본이 되는 뼈대인 ‘지킬 가치가 있는 미래’와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전디협은 현실의 문제를 비판하여 게임 속의 가상의 여성인 ‘송하나’처럼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의 여성들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

오버워치 캐릭터 '디바' 송하나

오버워치 캐릭터 ‘디바’ 송하나

오버워치 캐릭터 '아나'

오버워치 캐릭터 ‘아나’

블리자드의 <오버워치>의 제작진이 지향하는 ‘글로벌 다양성’과 ‘지킬 가치가 있는 긍정적인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 송하나를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삼은 전디협을 환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같은 자리에서 제프 카플란은 송하나 외에 다른 오버워치의 여성 캐릭터들을 언급했다. 레즈비언인 ‘트레이서’와 60세 여성 저격수 ‘아나’ 등을 거론하며 이들을 ‘보통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새로운 영웅은 언제나 환영이야! ❤ 🌈 #LoveWinshttp://comic.playoverwatch.com/ko-kr/tracer-reflections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에 의해 게시 됨 2016년 12월 20일 화요일

지난 10년간 발매된 슈팅게임에서, 저격수 캐릭터는 모두 남자/군인들이었다. 오버워치는 여성과 성 소수자를 포함하는 캐릭터를 만들고, 이들을 ‘보통’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게임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오버워치 제작진까지 공식으로 나서서 전디협을 극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국에서는 전디협을 평가절하하거나 “메갈”이라는 자의적이고 저열한 딱지를 붙이는 등의 여느 페미니스트들이 받는 흔한 공격과 비방이 멈추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여성 게이머들이 겪고 있는 괴롭힘도 기술적, 정책적으로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임에 만연해 있는 성차별 문화를 극복하기 위한 도전은 겨우 시작일 뿐이다. 이제 고작 게임에서 여성의 존재가 가시화 되었을 뿐이다. 즐기기 위한 게임에서조차 인신공격을 당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어쩌면 오프라인에서보다 더한 괴롭힘을 받아온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각성과 참여가 필요하다. 그것이 게임을 더 풍부하게 만들 것이다. 게임 속 페미니즘에 ‘너프’는 없다. 2)

 

꿀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간사


 

1) 시사점을 던져주는 좋은 게임들

‘발리언트 하츠’는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전쟁의 처절함과 잔혹함을 표현했다. 전쟁을 소재로 했지만 퍼즐 게임에 가까우며 적을 죽이기보단 인명구조를 하거나 남을 돕는 식으로 스테이지를 돌파한다.

‘페이퍼 플리즈(Paper, Please)’는 가상의 공산주의 국가에서 국경 검문소에서 일하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입국을 원하는 사람들을 취조하고 승인하거나 거절할 수 있다. 알몸 수색, 부조리한 노동, 난민과 수용소, 양심과 실리, 혁명과 체제 등 여러가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게임이다.

디스워오브마인

‘디스 워 오브 마인(This war of mine)’은 보스니아 내전(1992-1996) 당시 포위되었던 사라예보 지역을 모티브 삼아 현대 시가전에 대한 증언과 자료를 참조하여 제작되었다. 이 게임은 전쟁으로 봉쇄된 도시에서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다. 이 게임은 전쟁 아동구호 단체인 ‘War Child’를 후원하고 있으며 “현대전에서 당신은 별다른 이유 없이 개처럼 죽을 것이다.”라는 헤밍웨이의 말과 함께 시작한다.

2) 너프
온라인 게임에서 캐릭터 능력치 또는 기술, 아이템의 성능 등을 낮추는 것을 너프(nerf)라고 부른다. 반대의 의미는 ‘버프(buff)’

수, 2017/03/2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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