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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서울 명(소)장(인)을 찾아서-31] 일제강점기 역사 서린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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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서울 명(소)장(인)을 찾아서-31] 일제강점기 역사 서린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

admin | 수, 2021/07/07- 00:35

식민지역사박물관 입구 [사진=김혜진 기자]
관람객들이 작성한 방명록 [사진=김혜진 기자]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서울에는 다양하고 독특한 명소, 그리고 장인(匠人)들이 있다. 일요서울은 드넓은 도심 이면에 숨겨진 곳곳의 공간들과 오랜 세월 역사를 간직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에 다녀온 곳은 국내 최초 일제강점기 전문 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역사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민주주의를 빼앗으려는 자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기르겠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역사, 인권을 유린당한 역사, 친일의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음을 새깁니다.”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 부근 길목에 세워진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한데 담긴 곳이다. 박물관 방문객들은 방명록에 이 같은 문구를 적어 놨다. 강제동원, 위안부, 독도 문제 등으로 오랫동안 한일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의 역사를 정확하게 배워 이성적으로 대응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모습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 입구에 마련된 반민특위 터 묘석 [사진=김혜진 기자]

박물관 입구에 다다르자 ‘반민특위 터’ 묘석이 보였다. 반민특위는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파들의 민족 반역 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1948년 제헌 국회에 설치됐던 특별 기구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청산의 좌절이라는 민족사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1999년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이 표석을 설치했다. 서울시 중구 국민은행 본점 자리인 옛 반민특위 터에 세워졌지만 건물 신축 공사로 인해 2018년 10월 이곳 박물관으로 옮겨 보관 중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 친일인명사전 관련 섹션 [사진=김혜진 기자]
식민지역사박물관 내부 [사진=김혜진 기자]

지난 2018년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단체와 독립운동계, 학계가 중심이 돼 건립한 이 박물관에서는 ‘기억과 성찰’을 주제로 식민지의 상흔과 항일 투쟁의 역사 등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민족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를 되새겨 볼 수 있다.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 역사박물관’이라는 호칭답게 상설전시관에는 1876년 조선 침략의 계기가 된 ‘운요호 사건’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70여 년에 걸친 식민지배, 강제동원의 실상과 그에 부역한 친일파들의 민낯, 항일 투쟁의 역사 등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또 분단과 식민잔재, 이를 극복하기 위한 청산 운동의 과정까지 담겨 있다. 강제병합 당시 순종의 칙유와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 야스쿠니 신사 회신, 3·1독립선언서 초판본, 동학 의병 관련 문서 등 생생한 사료들도 꼼꼼하게 나열돼 있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내 체험 공간 [사진=김혜진 기자]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을 주제로 한 기획전 [사진=김혜진 기자]

기획전시실에는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을 주제로 한 기획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조선·동아일보가 일제강점기 당시 독재정권 하에서 식민지배에 눈 감는 부역 언론의 역할을 해 왔다는 게 골자다. 당시 조선·동아일보에서 보도됐던 신문 지면이 전시돼 있다.

최우현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 주임연구원은 “박물관이 생긴 첫해에 일본에 홍보가 많이 돼 일제 역사에 뜻이 있는 일본인 방문객이 많았다”며 “코로나19로 인해 외국인 방문객이 줄었고 국내 방문객들에게는 박물관이 잘 알려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관람객 장한님 씨는 “사학과 대학원을 다닐 때 박물관이 만들어진다는 걸 알고 꼭 와 보고 싶었다”며 “박물관이 크진 않지만 일제강점기 역사들이 잘 구성돼 있는 듯 하다. 현재 한국어 교육 관련 일을 하고 있는데 전시실에 1920년대 조선어 교육을 했던 책들이 소개돼 있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김혜진 기자 [email protected]

<2021-07-02> 일요서울

☞기사원문: [서울 명(소)장(인)을 찾아서-31] 일제강점기 역사 서린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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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노 히데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 방한
“남북 분단 연원은 일본 식민지배…남북 평화 무드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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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노 히데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야노 히데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은 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는 일제강점기 시절 북한의 피해자들에게도 제대로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에서 모은 성금 1억여 원을 민족문제연구소에 전달하고자 7일 방한했다. 야노 국장이 성금 모금을 위해 만든 팸플릿을 들어보이고 있다. 2018.6.9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일본은 한반도 식민지배뿐만 아니라 남북 분단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가 제대로 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야노 히데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은 9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일본의 식민지배가 아니었다면 한반도는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북한에도 위안부 할머니, 강제동원 피해자 등이 많이 계시는 만큼 일본 정부가 그들에게 제대로 보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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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팸플릿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제공=연합뉴스]

야노 국장은 이날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에서 모은 성금 1억여원을 민족문제연구소에 전달하고자 7일 방한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을 통해 탄생한 4·27 판문점 선언을 지지한다며 종전선언 이후의 남북과 일본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야노 국장은 “1948년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이후 한국 전쟁도 있었지만, 결국 한반도 분단의 연원은 일본 식민지배에 있다”며 “하지만 그 사실을 일본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이를 알리기 위한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 일본은 자민·사회당이 북한 노동당과 양국 관계 정상화 공동 성명을 발표하는 등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현재 아베 정권은 절대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아베 정권은 대북 압력만 넣고 있는데 이는 북미정상회담 등 화해 과정을 방해하는 길이 될 수밖에 없다”며 “아베 정권의 이런 방해 공작을 막는 것이 일본 시민으로서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야노 국장은 또 “많은 일본인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만 생각하면서 일본을 피해국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일본 때문에 피해를 본 북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일본인들은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북 관계가 더욱 개선되고 종전선언이 나오더라도 향후 북한에 대한 일본의 사과와 보상은 쉽게 진행되지 않으리라고 내다봤다.

야노 국장은 “현재 한일 간에도 위안부 문제나 군인·군속의 강제동원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현재 한일 양국의 상황을 극복해서 향후 북한에 대해서는 더 발전된 해결책을 생각해내야 하는데 정말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시절 공원으로 뒤바뀐 효창공원과 김구기념관, 대공분실을 참관하는 등 식민지배와 강제병합, 한국 현대사 등을 배운 뒤 10일 일본으로 돌아간다.

야노 국장은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내년 식민지역사박물관을 홍보하는 캠페인을 열 계획”이라며 “일제강점기 시절 자행된 인권 유린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육과 학습이 가장 중요한 만큼 앞으로 과거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18-06-09>연합뉴스

☞기사원문: “일본, 일제강점기 북한 피해자에게도 제대로 보상해야”

토, 2018/06/0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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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면담 요청 거부… 경비회사 직원이 입장 전달
변호인단 “비겁하다…신일철주금 한국 재산 압류 절차 밟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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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일철주금 항의방문하는 한일 시민단체·강제징용 피해자측 변호인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 활동가와 강제징용 소송 피해자측 변호인이 12일 한국 대법원의 손해배상 판결 이행을 촉구하는 요청서를 들고 도쿄 신일철주금 본사를 방문하고 있다. 왼쪽부터 야노 히데키 강제연행·기업 책임추궁 재판 전국 네트워크 사무국장,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김민철 집행위원장, 김진영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임재성 변호사, 김세은 변호사. 2018.11.12 [email protected]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한국 대법원 강제징용 소송의 피해자측 변호인들이 12일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손해배상을 촉구하고자 일본 도쿄(東京)의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 본사를 찾았지만 사실상 문전박대당했다.

재판의 원고측(강제징용 피해자들) 변호인인 임재성·김세은 변호사는 이날 오전 한일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마루노우치(丸ノ內)의 신일철주금 본사를 방문했다.

이들은 이번 소송의 원고 중 이미 고인이 된 세 명의 영정 사진과 생존해 있지만 고령인 이춘식(94) 씨의 사진을 들고 신일철주금 본사 건물에 들어갔다.

강제징용 소송의 판결 결과를 받아들여 배상하라는 내용의 요청서를 들고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해 논의하려 했지만, 신일철주금 측은 자사 직원이 아닌 용역 경비회사 직원을 보내 입장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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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일철주금 본사 앞에서 질문 답하는 피해자측 변호인들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지난달 한국 대법원에서 판결이 내려진 강제징용 소송의 피해자측 변호인들이 12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마루노우치(丸ノ內)의 신일철주금 본사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신일철주금 본사를 찾았지만 사실상 문전박대당했다. 2018.11.12 [email protected]

경비회사 직원은 신일철주금 총무과의 지시로 밝히는 입장이라며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이(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 상당히 유감이다. (한일간) 외교 교섭의 상황을 보면서 대처하겠다”라고 준비해온 메모를 읽었다.

경비회사측은 요청서에 대해서는 “리셉션 데스크에 놓고가면 보관하겠다”고 말하고 이를 신일철주금측에 전달할지 언급하지 않았다.

변호인 등은 재차 신일철주금측과 면담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요청서를 전달하지 못한 채 30분만에 건물을 나왔다.

임재성 변호사는 건물 앞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돌아가신 (원고)세 분과 한국에 계신 할아버지(원고)를 대신해서 온 것이니 요구서라도 받아가라고 했지만 놓고가라고만 했다”며 “세상에 이런 법은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렇게 큰 빌딩(본사 건물)을 만드는 데에는 원고 네 분의 젊은 날의 고생과 희생이 있었다”며 “최소한 이 사람들(원고들)의 목소리라면 내려와서 받아가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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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한국·중국 강제징용 피해자 차별 배상 (PG)
[최자윤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임 변호사는 “신일철주금이 (배상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명확히 확인했다”며 “협상에도 응하지 않음에 따라 신일철주금의 한국내 재산 압류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고측은 신일철주금이 포스코와 함께 설립한 합작회사 ‘PRN’의 주식을 압류할 방침이다. 신일철주금은 2007년 설립된 이 회사의 주식 30%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신일철주금은 지난달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강제징용 피해자 4명에게 1억원씩 배상해야 하지만, 배상을 이행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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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시민 활동가들, 신일철주금 본사 앞에서 유인물 배표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활동가들이 12일 오전 출근시간 도쿄 신일철주금 본사 주변에서 한국 대법원 판결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신일철주금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배포하고 있다. 2018.11.12 [email protected]

이 회사는 2012년 주주총회에서는 한국의 대법원 판결에 대해 “어떤 경우에도 법률은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수용할 방침을 밝혔지만, 정작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에는 “일본 정부의 대응 상황 등에 입각해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며 일본 정부의 ‘배상 불가’ 방침을 따를 뜻을 밝히고 있다.

이 회사의 2~3분기 매출은 2조9천34억엔(약 28조8천74억원), 순이익은 1천412억엔(약1조4천8억원)이나 된다.

일본 정부는 신일철주금 외에도 한국에서 비슷한 소송을 제기당한 자국 회사에 배상과 화해에 응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일본 시민단체들의 연합체인 ‘강제동원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소속 활동가들은 이날 오전 출근시간대 신일철주금 본사 앞에서 한국 대법원 판결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신일철주금이 손해배상에 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배포했다.

이날 변호인 등의 신일철주금 본사 방문과 일본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유인물 배포에는 한국과 일본 취재진 100여명이 몰려 큰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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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변호인단의 신일철주금 본사 방문에 몰린 한일 취재진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지난달 한국 대법원에서 판결이 내려진 강제징용 소송의 피해자측 변호인들이 12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마루노우치(丸ノ內)의 신일철주금 본사를 방문하기 앞서 기자들에 둘러싸여 발언하고 있다. 이날 신일철주금 본사 앞에는 한국과 일본 취재진 100여명이 몰려 큰 관심을 보였다. 2018.11.12 [email protected]

<2018-11-12> 연합뉴스

☞기사원문: 영정들고 갔는데…징용피해자 변호인 ‘문전박대’한 신일철주금(종합)

※관련기사

☞경향신문: 징용피해자 변호인들 ‘문전박대’한 신일철주금

☞서울신문: 징용 피해자 변호인단 도쿄 신일철주금서 문전박대

☞한국일보: 징용 피해자 변호인단 도쿄 신일철주금서 문전박대

월, 2018/11/1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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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역적’시즌2. 5회 2부 “박순찬 시사만화가와 함께”]


[팟캐스트 ‘역적’시즌2. 5회 1부 “역전다방_의열단 1편”]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4회 2부 – 김활란동상 옆 친일 알림팻말_이화 친일청산프로젝트 기획단과 함께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4회 1부 “불평등으로 시작된 강화도 조약 1편”]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3회 2부 “임청각 이야기”_이항증선생과 함께(석주 이상룡선생 증손자)]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3회 1부 “내우외환 위기속 흥선대원군(2편)”]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2회 2부 반민특위 김상덕위원장 아들 김정륙선생과 함께]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2회 1부 “내우외환 위기속의 흥선대원군(1)”]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1회 2부 “효창원 역사적폐청산 과제_차영조 선생님”]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1회 1부 “백년의 역사여행을 시작하며”]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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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팟캐스트 ‘역적'(역사적폐 청산)

제작 등: PD 김세호, MC노, 김광진(前)국회의원,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방학진 기획실장, 방은희 교육팀장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역적’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금, 2018/02/0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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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전문가들은 현재 위안부 피해자 관련 심의위원회가 단순히 위안부 피해자 등록이나 사업의 적성성을 심의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더욱더 강력한 특별기구가 필요하다는데에 공통된 의견을 피력했다.

국회 여성가족위는 18일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와 관련한 공청회를 열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다.

현재 발의된 위안부 피해자 관련 개정법안은 크게 △위안부 기림일을 법적 기념일로 지정하는 개정법안 △국가 예산 지원을 통해 추모공간이나 역사관 건립하는 개정법안 △소녀상 등 위안부 피해자 관련 시설물을 정부나 지자체가 보호·관리하는 개정법안 △현재 여가부 산하에서 대통령 소속으로 위안부 피해자 생활안정 지원 및 기념사업 심의위원회를 두는 개정법안 등이다.

김동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부관장은 “심의위원회 자체가 위안부 피해자만 등록 가부를 결정하는데 한정돼 있다. ‘심의’를 뺀 위원회 이름을 제안했다”면서 “또한 위안부 문제는 여가부만으로 해결 가능하지 않다. 외교적인 문제, 지방자치단체적 문제가 다 포괄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기구로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또한 “기존에 과거사 위원회를 보면 위원회들이 결과보고서로 활동을 종료하면서 진상규명 현황이라든지 국가 해야할 일들을 공고하는 수준에서 그쳤다면, 위안부 피해자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법의 경우 심의위원회보다는 강력한 역할을 부여해야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소녀상 등에 대해서 정부·지자체가 직접 나서서 보호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도 나왔다. 한혜인 성균관대 역사연구소 연구원은 “소녀상은 여러가지 의미를 지닌 조형물이다”면서도 “하지만 국가가 관리했을 경우 시민사회가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 갈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 시민사회가 지켜나갈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군 위안부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조시현 연구위원은 “예컨대 호적부를 통한 강제동원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데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조사할 도리가 없었던 경우가 있다. 또 국내 조사 뿐만 아니라 해외조사도 어렵다”면서 “특히 위안부 한일 합의에 대한 국제 제소 문제와 관련해서도 일본에서 주장하는대로 청구권 협정이 끝난 것인지 한일 수교회담에 대한 역사적 검증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나 과제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7-09-18> 이데일리

☞기사원문: 여가위, 일본군 위안부 공청회..”심의위보다 강력한 특별기구 필요”

수, 2017/09/2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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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김예진 선생의 부인 한도신 여사 건국훈장 애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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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김예진·한도신 부부 가족사진
(서울=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1938년 독립운동가 김예진 선생의 평양신학교 졸업 후 찍은 가족사진. 뒷줄 왼쪽부터 장남 동명, 김예진 선생, 장녀 선명, 차녀 재명. 앞줄 왼쪽부터 3녀 광명, 4녀 순명, 한도신 여사, 차남 동수. 2016.8.14 [민족문제연구소 제공=연합뉴스] [email protected]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여성이라는 이유로 독립운동가이기에 앞서 애국지사의 아내로 불렸습니다.”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예진 선생을 도와 함께 독립운동을 한 부인 한도신 여사가 99년 만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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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도신 여사의 훈장 전수 받는 김순명 씨 [부산 보훈청 제공]

한도신 여사의 작은 딸 김순명(85)씨는 어머니를 대신해 지난 5일 부산 해운대구 자택에서 보훈청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김 씨는 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어머니의 공적이 재조명 돼 애국지사의 아내가 아닌 한 사람의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아 다행이다”며 “국가와 남편,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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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에게 추서된 훈장 바라보는 작은딸 [손형주 기자]

김 씨는 어머니 한 여사에게 추서된 훈장을 한참 동안 쳐다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1895년 평남 고평에서 태어난 한도신 여사는 스무 살에 독립운동가 김예진 선생과 결혼했다.

한 여사는 1919년 2월 남편의 3·1 운동 거사를 돕기 위해 재봉틀로 대형 태극기를 제작하면서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이후 갖은 고초를 겪었다.

1920년에는 김예진 선생이 참여한 평남도청 폭탄 투척 의거에 사용할 폭탄을 직접 운반하는 활동을 했으며, 1922년부터는 상하이에서 조선 유학생들을 돌보며 기독교 여자절제회를 이끌었다.

1986년 92세에 세상을 떠난 한 여사는 남편의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하며 겪은 고초를 글로 남기기도 했다.

1천200매 분량의 육필 원고는 이후 ‘꿈갓흔 옛날 피압흔 니야기’라는 회상기로 출간되기도 했다.

이처럼 한여사는 남편을 도와 항일 독립운동에 몸을 바쳤지만, 그동안 국가로부터 독립운동 공훈을 인정받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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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한도신 여사를 가리키는 김순명 씨 가운데 여자아이가 김순명 씨이다. [손형주 기자]

남성 독립운동가를 뒤에서 도왔던 여성들의 공적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에다 독립운동가 발굴 사업이 남성 위주로 진행된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을 앞두고 정부가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평가를 시작된 이후 지난 8월 15일 광복절에 독립운동가로 추서됐다.

 

훈장을 대신 받은 딸 김씨는 “일제강점기 때 옥살이를 하던 아버지를 대신해 고무공장에 다니며 넓적해진 손으로 6남매를 키운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김 씨는 “투철한 애국심과 이웃사랑을 실천한 어머니를 잊지 않고 지금이라도 공적을 인정해 여성독립운동가로 인정해준 정부에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여성 독립운동가 재평가 작업을 펼치고 있다.

지금까지 202명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추가 발굴해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1949년 이후 포상을 받은 독립유공자 1만5천여 명 가운데 여성 비율은 여전히 2∼3%에 불과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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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8> 연합뉴스

☞기사원문: “애국지사 아내를 넘어”…99년 만에 훈장 받은 여성독립운동가

월, 2018/10/0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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