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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유아독존 천하관’에 자성의 목소리 높이는 중국 지식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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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유아독존 천하관’에 자성의 목소리 높이는 중국 지식인들

admin | 목, 2021/06/10- 19:28

‘동북공정’이라는 문제

“현대중국의 영토기준으로, 역사상의 중국을 설정해서는 안된다. 고구려는 당나라가 관할하던 지방정권이 아니다. 토번(티벳)도 당나라의 일부가 아니었다”. “조선(반도)과 월남의 문화와 제도는 중국 내륙이나 변경의 소수민족보다 훨씬 더 중국에 가까왔다. 하지만, 두 나라는 독립왕조 성립후, 중국의 일부였던 적이 없다.” 상하이의 명문 푸단대학에는 거자오광(葛兆光), 거젠슝(葛劍雄)이라는 동성의 두 저명한 역사학자가 있다. 각각, 사상사와 문화사 그리고 역사지리학과 이민사 전문가인 두 사람의 또다른 공통점은 “과연 중국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오랜 동안 천착해왔다는 것이다. 2011년 출간직후 한국어 번역본도 나온 <이 중국에 거하라>, 1994년에 출간된 <통일과 분열>은 그들의 대표작들로써 위와 같이 역사상의 고구려에 대한 관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준고전급 반열에 들어갈만한 예전 책들을 굳이 소개한 것은, 최근 한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진 문화분쟁과 관련한 몇가지 오해를 불식하고자 함이다. 김치공정, 한복공정과 같은 신조어는 동북공정에서 비롯한 것일 터인데, 한국에서는 중국사람이라면 민관이 합심하여 한민족과 한반도를 중국에 흡수통합하려는 야망에 불타오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생각에 따르면 정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꼭둑각시같은 중국학자들은 당연히 이 국가대사에 협력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지식인이나 지식대중들은 그리 우매하지 않다. 이 책들은 전문학술서적이 아닌 대중교양서일뿐더러, 두 사람의 강연은 중국의 유튜브격인 삐리삐리에서도 인기가 높다. 특히 거자오광 연구팀이 연재중이며 책으로 출간도 준비중인 <중국에서 출발하는 세계사>  칸리샹(看理想)오디오 강연시리즈는 중국의 지성인들에게 가장 ‘핫’한 콘텐츠중 하나이다.

이 중국에 거하라 – 거자오광

ᅠ사실 두 거교수의 관점과 입장은 조금 다르다. 정협위원이자 중국역사지리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교육부사회과학위원회에 속한 거졘슝교수가 왕이 부장을 비롯한 외교부 간부들에게 정책 조언을 할만큼 관방의 입장도 수용하는 반면 거자오광 교수는 철저히 민간의 학술적 입장을 대변한다. 그래서, 거자오광 교수의 대표저작들은 영어, 일어, 한국어 등으로 번역이 되어 있으며, 외국과의 학술교류도 잦은 편이다. 그는 작년에도 도쿄대학과의 온라인 학술교류를 통해 청나라의 최전성기인 건륭제의 팔순축하연이라는 역사적 외교이벤트를, 중국, 조선을 포함한 이웃나라들, 글로벌이라는 세가지 관점으로 분석한다. 당시 황제의 만기친람형 권력이 지나쳐, 민간의 활력을 억제하는 상황이, 청나라의 쇠퇴로 이어졌음에 대한 신랄한 비평을 남겼다. 시진핑 정권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이 강연은 유튜브뿐 아니라 삐리삐리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거졘슝은 학술로서의 역사와 정책에 활용되는 응용으로서의 역사를 나누어 설명한다. 그는 고대부터 티벳이나 신장지역이 중국의 일부였다는 중국 사학계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한다. 그의 학술적 주장은 엄밀한 고증을 토대로 한다. 중국 역사상 통일보다는 분열된 상황이 민중의 이익에 부합했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청이 황실의 종교적 연대, 유목민족간의 연대를 통해, 신장, 시장, 몽골과 같은 변경지역을 국토의 일부로 삼았고, 이를 이어받은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이 영토의 주권을 보유하게 된 사실에 대해서는 양보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속도로나 철도와 같은 교통수단의 강화, 한족 이민정책을 통해, 이를 공고히 할 것을  주장한다.

ᅠ거자오광은 2004년작인 <고대중국문화강의>에서도 중국인들의 천하관이 유아독존적이었다는 것을 자세히 설명한다. 그러한 생각을 오랜 기간 벗어나지 못한 탓에 반半식민지의 고통으로 귀결됐다는 것을 뼈아프게 인정하는 것이다. 그는 주체성이 강조된 중국과  외부시각속에 자기객관화한 중국관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한족중심의 중국이라는 민족국가의식은, 송나라부터 본격화되어, 도시에서 농촌으로, 중앙에서 지역으로, 그리고 상층에서 하층으로 수백년의 시간을 거쳐 형성되어 온 실체를 지니고 있다. 그는 중국의 지역연구를 통해서 아래로부터, 혹은 탈근대, 후기식민지주의, 혹은 동아시아 관점을 통해 위로부터 ‘중국사’를  해체하려는 시도를 경계한다. 서구와 일본이 자기 이익을 위해, 중국을 분열시키려한 역사의 경험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아시아를 중국과 등치시키며, 서방의 타자와 거칠게 비교하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한자로 기록된, 한국, 일본, 베트남과 같은 이웃 나라의 역사적 시각으로 섬세하게 중국을 살피고자 하는 노력도 최근 10여년간 지속해 왔다. 그래서 한중일 지식인들이 함께 참여해 온 공동역사교과서나 동아시아 담론에 대해서도 나름의 의견을 제시한다.

2017년 고등교육재단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한국이나 일본과 달리, 중국정부의 간섭을 피할 수 없는 역사교과서 논의를 순수 민간협력에 의한 출판 프로젝트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과거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는 기반이 됐던 반서구진영으로의 결집을 호소하는 침략적 아시아주의를 비판적으로 살핀다. 그래서, 주로 일본의 학자들이 제기한 90년대 이후의 새로운 동아시아 담론이 상정하는 역사상의 동아시아 공동체가 오히려 상상에 기반한 것이 아닌지, 정확히 어떤 의도에서 출발한 것인지 묻는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주장처럼 근대에 이르러서야 민족국가 개념이 형성된 유럽과 달리, 17세기 중엽이후 동아시아는 이미 각 나라가 자신만의 민족 주체성을 강화해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증국은 또, 언어나 문화가 동일한 ‘단일민족국가’인 한국이나 일본과도 다른 복잡한 다원일체성을 가진 제국이라는 비대칭성 때문에, 주변 국가와 한통으로 묶기가 어렵다는 점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스스로에 대해서, 그리고 주변국가와의 차이에 대해서 명확한 이해가 선행해야 한다. 그래서, 백영서와 거자오광의 주장을 함께 살핀 이케가미 요시히코는 그가 미래지향적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토론에 대해서는 열려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동아시아 논단으로의 초대, <공생의 길과 핵심현장>이 이끄는 세계

 

이 글의 축약본이 경향신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경향신문의 허락을 얻어, 다른백년에도 옮깁니다.

 

김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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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에 따른 생태교육의 시급성

최근 수년간 급격한 기후변화와 전지구적 생태계 파괴를 경험하고 있는 이 시대의 인류는 불안한 마음으로 디스토피아가 다가옴을 지켜보거나 애써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과학기술 낙관주의에 빠져있다. 현 인류가 처한 이러한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극적인 처방은 과연 있는 것인가? 지구 환경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국제적 노력과 크고 작은 규모의 사회조직체들의 활동으로만 충분한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가 옳다고 믿었던 세계관을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류 문명을 개조하지 않는다면 디스토피아는 예상보다 빠르게 도래할 수도 있다. 기존 과학기술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중심적 환경주의 운동과 교육은 임시방편적이고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반면 인간과 생태계와의 화합을 주창하는 탈인간중심적 종교와 신비주의 철학은 현 인류문명의 토대가 된 과학기술의 견고함에 쉽게 무너져 버릴 수 있다. 현 인류에 닥친 지구 생태계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지만 동시에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이다.

우선 인류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곳에는 생태철학의 담론이 있어야 하는데, 현대 과학기술의 토대가 된 근대적 세계관을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의 파급력을 가져야 한다. 또한 새로운 생태문명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생태교육이 학교교육 현장에 커리큘럼으로 구체화되어야 하는데, 과학적 자연관과 인본주의적 능력배양 중심의 근대 교육의 한계를 설득력 있게 지적하고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 결과적으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지구의 문화는 과학기술, 생태계, 문명이 공진화하는 선순환 관계를 전제로 하는데, 현재의 환원론적이며 기계론적 과학기술에 대한 탁월한 대안으로서 생태과학의 패러다임이 과학계에서도 인정받아야 한다.

생태철학의 담론은 오랜 역사를 통해 발전하였고 현재에도 유효하지만 생태과학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가장 구체적이며 작은 실천부터 가능한 생태교육의 발걸음은 이미 시작되었고 이를 통해 철학과 과학연구의 새로운 세계관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적 세계관의 한계

17세기에 이르러 중세의 세계관이 종말을 고하면서 시작된 근대에는 인간, 신, 자연 간에 새로운 관계가 설정되었다. 르네상스로 대표되는 인본주의는 교권과 스콜라 철학의 권위로부터 해방된 인격체로서의 개인에 관심을 갖게 하였고, 이로써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이 가능해졌다. 자연사물과 정신의 공통된 존재론적 기원으로서 그 자체가 탐구의 목적이었던 신의 위상은 중세를 벗어나면서 기껏해야 과학적 인식의 객관적 타당성과 보편성을 정당화하는 하나의 지표로 전락하게 되었다. 종교개혁을 가능하게 한 복음주의 신학은 각 개인이 신과의 접촉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개인주의적 구원의 체계를 교리화한 것이다.

근대철학의 합리론과 경험론을 대표하는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론과 베이컨의 우상론은 자연세계의 진리에 접근하고 개인의 지적 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철학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이를 통해 과학혁명이란 이름 하에 자연세계의 여러 단면들을 탐구하는 여러 개별 과학분야가 이 시기에 태동하였다.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된 자연현상은 관찰할 수 있고 양적으로 측정 가능한 것으로 제한됐으며, 수학적 언어만이 이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수단이 되었다.

한편 개인의 자유, 평등, 인권, 복지, 자본, 부의 개념이 근대 이후의 세계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었다. 자연세계는 인간과 분리된 객관적 탐구의 대상이 되었고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자원의 의미로 전락하였다. 일부 환경주의자들에게는 지속 가능한 지구환경이란 인류가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지구자원을 잘 사용할 수 있는 경제적 관점에서 규정될 수 있다. 이는 근대의 사유체계가 지식확장의 주체인 인간과 탐구의 대상인 자연세계가 철저히 분리된 이원론적 실체론을 기반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자연현상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기계론적 인과론을 기반으로 이루어졌고 더 명확한 지식을 얻기 위해 자연세계를 더 작은 단위의 현상으로 환원하여 설명하게 되었다. 예컨대 복잡한 생명현상은 더 작은 단위의 분자수준에서 설명하고, 이를 더 잘 설명하기 위해 화학과 물리학적 지식을 동원하였다. 하지만 생명현상, 기후변화, 국제정치상황 등은 단순히 환원적이고 기계론적인 방식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매우 복잡한 현상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인류문명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여러 기이한 부작용들을 현재의 자연주의적 세계관으로는 설명할 수도, 해결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생태철학의 역사

지구환경 위기의 근본적 원인인 인간중심적 세계관을 극복할 수 있는 생태적 패러다임은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것인가? 제도화된 종교에 예속된 중세의 세계관과 권위에서 해방되어 인간중심적으로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근대의 세계관은 인류의 전 문명에서 볼 때 매우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자연세계를 바라보는 다양한 종류의 세계관이 이미 동서양에 더 넓고 깊이 퍼져 있었다. 따라서 이런 세계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오래 전 동양의 도가사상은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지도, 자연세계를 개별화된 개체와 부분으로 나누지도 않았다. 자연에 존재하는 각 개체들의 개별적 차이를 인정하지만 배타적으로 대하지 않고 자연 개체들의 내재가치가 존재함을 믿었다. 생태학(ecology)의 어원인 그리스어 ‘oikos’(eco)는 가족, 집, 가정을 이루는 가족 구성원, 사회를 이루는 작은 단위 공동체를 의미한다. 자연은 모든 구성원들이 상호작용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함께 지어가는 가정과 같은 것이고 생태지혜(ecosophy)는 노자가 말한 ‘유무상생(有無相生, 있고 없음은 서로 상대하기 때문에 생겨남)’, 즉 타자를 향한 관계적 진상을 깨닫는 직관적 통찰을 의미한다. 불교의 근본인 연기사상과 생명존중 사상에 따르면 법계와 생태계는 모든 존재가 상호 연결된 세계라는 점에서 같고 모든 생명체에 내재된 가치가 바로 불성이라고 가르친다.

기독교에서도 인간의 타락 이전에는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에 분리가 존재하지 않았고, 인식의 주체와 대상이 구분되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은 죄로 분리된 관계성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이고, 사랑으로 연합되는 전 우주적인 공동체가 교회라고 여겼다. 도교, 불교,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심층생태학을 주창한 아른 네스는 자연보존운동을 지향하는 표층생태주의가 여전히 인간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소아(self)에 국한되었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지구 안의 모든 것이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심층생태학은 생물권 전체와의 일체 의식을 경험하면서 최대의 대아(Self)를 실현할 수 있는 세계관이라고 주장하였다.

근대철학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정신과 철저히 분리된 물질의 개념을 공고하게 만들었지만 정신과 육체 사이의 인과적 관계에 대한 그의 기계론적 설명은 모순이 많았다. 또한 과학적 탐구의 대상인 자연은 인류의 발전과 진보의 수단으로만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영향을 받아 기하학적으로 데카르트의 철학을 발전시키려고 한 스피노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데카르트의 이원론과 정반대의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는 『윤리학)』에서 초월적 인격신을 거부하면서 모든 것의 내재적 원인이 되면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신’의 개념을 이끌어냈다.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 안에 있고 신 없이는 아무 것도 존재하거나 파악될 수 없으며 모든 개체들은 시공간 안에서 신의 속성을 특정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양태 혹은 변형태라고 설명했다.

스피노자의 일원론적 자연관에 따르면 신은 자연에 내재할 수 밖에 없으며 신과 분리된 자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의 전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 사건, 경험들은 상호의존 관계에 있고 이 모든 것들은 체계적으로 통합된 전체를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란 무에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스스로의 변화 생성을 의미한다. 스피노자의 생태론은 인과적으로 연결된 유기체로서의 생명에 대한 직관적 인식을 통해 자연전체와 자연법칙을 통찰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은 니체도 초인의 정신은 바로 어린아이와 같이 자연적 삶을 누리고 스스로 자유롭게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19세기 말 이후 생태적 세계관 형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철학자는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이다. 그의 유기체철학 혹은 과정철학은 절대 시공간 속에 외부의 어떤 것과도 관계를 갖지 않고 동일하게 정지해 있는 것으로 존재하고 파악되는 ‘실체’라는 개념의 과학적 유물론을 거부한다. 그에 따르면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로 여겨지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경험을 통해 새롭게 생성되는 현실적 계기(actual occasion)에 의해 구성되어 이름 붙여진 것이다. 각각의 현실적 계기는 그에 선행하는 (과거의 세계 전체인) 경험의 계기들을 통해 자신을 구성해가는 과정으로서의 존재이다. 이런 현실적 존재가 자기를 구성하는 생성의 과정을 파악(prehension)이라고 명명하였다.

화이트헤드는 자연의 모든 생명체도 인간이 가지는 경험의 정도는 아니라 해도 파악의 과정과 경험을 가지며 내재적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또한 시공간적으로 상호 연결된 자연 내의 모든 유기체들은 내재적 가치와 도구적 가치를 동시에 가지고 생태계 내에서 생기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간다고 했다. 이렇게 볼 때 자기(Self)의 존재를 세계와 분리시키지 않고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 생태교육의 핵심인 것이다.

 

생태과학의 등장

현대 물리학에서는 기존의 환원주의와 기계론적 인과율로 설명될 수 없는 자연의 복잡한 현상을 유기체적 자연관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의 생물학과 임상의학 분야에서는 복잡한 생명현상을 기계론적이고 미시적 관점에서 다루는 것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오믹스(omics, ‘체학’이라 번역되며 생명과학에서 분자들이나 세포 등의 집합체 전체를 뜻함)라는 분야가 등장해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유전체학(Genomics), 단백질체학(Proteomics), 후성유전학(Epigenomics), 대사체학(Metabolomics), 연결체학(Connectomics) 등이 그 예인데 단백질, 신경세포 등 몸 속의 여러 단위들 간의 상호작용과 연결에 대한 패턴을 분석하여 생명현상을 설명하려는 세부 학문분야들이다. 기존의 기계론적이고 선형적인 방식으로는 복잡한 생명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실험실 연구를 넘어선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 방법론이 복잡한 인과성을 설명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20세기 인공지능과 로봇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이버네틱스란 분야는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들 간의 상호관련성을 밝혀 시스템 스스로가 어떻게 자기를 조직하고 환경에 적응하는지를 개념화하였다. 오늘날 정보기술 분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월드와이드웹 기술도 정보와 데이터들의 연결을 통해 엄청난 양과 종류의 정보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초연결사회를 만들어가는 4차 산업혁명의 개념 역시 사람, 기계, 데이터, 환경이 서로 연결되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혁명적 변화를 의미한다.

이미 과학기술의 페러다임은 환원주의와 기계론을 넘어서 전체적 관점에서 관계와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구현하려고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교육에도 이런 패러다임을 적용할 수 있을까?

 

화이트헤드의 교수학습 원리

화이트헤드는 생태적 교육에 있어서 생태적 자기(Ecological Self)라는 개념을 제안하였다. 즉 생태교육은 한 개인이 세계의 한 부분임을 인식하게 도와주는 도덕교육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실천적 요소라고 하였다. ‘생태적 자기’는 개인을 넘어 이웃, 사회, 인류, 생태계, 우주와의 일체감을 형성하는 기본 개념이며 자기 초월성과 연결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학습자는 세계 속에서 다른 존재들과 상호 의존하면서 상호보완적 관계를 맺고 이 관계성을 통해 생명이 유기적으로 끝없이 탄생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로서의 개별 학습자는 고립된 에고(ego)가 아닌 사회적 관계를통해 다른 존재들과 연결된 자기(Self)의 존재를 경험하는 현실적 계기(actual occasion)이며, 지식이 아니라 지혜의 눈으로 세상의 당면한 문제들을 바라보고 해결하는 것을 학습해야 한다. 학습자 자신과 연결된 다른 존재들의 경험을 함께할 수 있는 마음을 공감이라 하며, 생태적 교육은 자연의 모든 존재들과 공감할 수 있는 내적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가 주장하였듯이 교육은 교실 내에서 생기 없는 관념(inert ideas)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경험과 체험을 통해 창조성을 배양할 수 있는 환경을 학습자와 교사가 함께 가꾸어가는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도덕과 교수학습의 네 가지 방법적 원리를 제시하였다.

(1) 상호성의 원리는 교사와 학생이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라는 관점에 기초한다. 교사와 학생은 양방향으로 경험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상호 파악(prehension)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파악의 주체가 된다. 이렇게 교육은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세계에 대해 배우고 공통의 세계를 창조하는 과정인 것이다.

(2) 관계성의 원리는 도덕이 기본적으로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는 입장에서 관계가 확대되어감에 따라 발생하는 도적적 개념을 이해하고 그에 따른 도덕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원리이다. 즉, 교육은 ‘관계적 자아’에 바탕을 두고 생태환경이나 주변 이웃과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책임감을 발전시키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도덕교육은 다양한 타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를 통해 관계적 자아와 가치관계를 확장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3) 리듬의 원리는 학습자의 정신발달의 리듬적 특성을 고려한 교수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리로서, 인간의 삶과 교육이 주기적으로 순환되는 리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화이트헤드의 리듬의 원리는 그의 합생의 원리(다자가 모여 또 다른 하나의 존재가 되는 원리)와 일맥상통하는데 교육은 지속적인 파악의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과정인 것이다.

(4) 조화의 원리는 추상적 사상을 현실에 응용할 수 있는 능력과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지혜를 강조한다. 교양교육은 조화의 원리를 토대로 추상적 이론을 현실에 응용할 수 있는 조화의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자율과 훈육을 학습자의 정신발달의 특성과 전체 학습의 과정을 고려하여 학습 단계별로 조화롭게 커리큘럼에 적용함으로써 지혜롭고 창의적이며 책임감 있는 사회의 구성원을 길러내는 것이 화이트헤드 교육철학의 핵심이다.

 

생태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생태교육은 근대의 기계론적 패러다임 안에서 생태적 내용만 교육하는 것이 아니다. 인본주의, 과학주의를 넘어 관계, 과정, 연결이라는 사고가 교육의 핵심원리가 될 때 진정한 생태적 교육이 실현될 수 있다. 생태철학과 생태과학에서 도입된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태교육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과 교수학습의 방법론이 재구성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근대적 세계관의 전환과 생태적 자기의 형성이 이뤄져야 한다.

아직 제도권 교육에는 도입되고 있지 않으나 여러 대안학교들과 지역공동체들에서 생태교육을 실천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다양한 생태교육 커리큘럼과 경험적이고 실천적인 학습을 통해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유기적 관계를 깨달을 수 있는 생태적 감수성을 높이고, 타인 및 자연과의 유대감을 통해 정서적으로 안정된 건강한 자아 발달에 도움을 주려는 노력들이다.

생태교육은 과학기술, 생태계, 문명이 공진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하고 구체적인 시도이다. 진화는 한 개체가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환경을 구성하고 관계의 연결망으로 서로 이어져 있는 모든 개체들이 서로에 대해 적응해가는 과정이다. 지구 환경도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그 안에 있는 모든 구성원들과 함께 스스로 적응하고 자기조직화 하는 창조적 활동을 하고 있다. 생태교육은 인류가 지구와 함께 건강하게 진화할 수 있는 실천적 발걸음이다.

 

김홍기

서울대 치의과대학 교수, 의료정보학

월, 2020/01/1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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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70주년을 앞두고 미연방하원에서 한국전쟁 종식 평화협정체결 촉구결의안 동참이 확산(擴散)되고 있다.

Ayanna Pressley 의원과 이금주씨(왼쪽)

코리아평화네트워크 등 4개 미주평화단체들은 24일 ‘한머리땅(한반도) 종전지지 결의안’(H. Res. 152)에 매사추세츠 아이아나 프레슬리(Ayanna Pressley) 의원과 뉴욕 폴 톤코(Paul Tonko) 의원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고 밝혔다.

6월 첫째 주와 둘째 주에 걸쳐 진행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온라인 로비 액션 결과, 두 의원이 합류함에 따라 결의안 지지 의원은 대표 발의자인 로 칸나 의원을 포함하면 45명으로 늘어났다.

한국전쟁 종식, 평화협정체결 촉구 결의안은 2019년 2월 북미 싱가포르 정상 회담을 앞두고 로 칸나(Ro Khanna, 캘리포니아 하원의원), 앤디 김(Andy Kim, 뉴저지 하원의원), 바바라 리(Barbara Lee, 캘리포니아 하원의원) 등에 의해 발의되었다.

이번 로비 활동은 남북 관계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고 나날이 한반도 긴장이 고조(高調)되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직접 로비를 통해 미국 의원들을 움직였다는 것에 더욱 의미가 크다.

로비행동의 참가자였던 ‘전쟁에 반대하는 여성(Women Against War)의 멤버인 Maud Easter(마우드 이스터)’은 “폴 톤코 하원 의원실과의 회의 결과로 구속력있는 평화 협정을 요구하는 하원 의원 결의안의 공동 지지자가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톤코 의원은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북한과 외교 대화를 지원했다. 한국 전쟁이 외교에 방해가 된다는 우리 입장을 인정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보스턴 부근 아이아나 프레슬리 의원 지역에 거주하는 이금주씨는 “정말 기쁘다. 가장 진보적인 민주당 의원 중 하나인 의원이기에 우리의 기대도 컸다. 하프레슬리 의원과 3번의 만남을 갖고, 보좌관들과 여러 차례 방문 미팅과 수십통의 이메일, 최근 화상미팅까지 지난 1년6개월간 희망을 놓지 않고 꾸준히 설득했다. 마침내 프레슬리 의원이 코리안 아메리칸과 한국인들의 평화의 열망을 이해하고 지지해 한국전쟁 종식 결의안에 서명을 하게 됐다. 다른 의원들의 설득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온라인 로비 액션은 코리아평화네트워크(Korea Peace Network, KPN), ‘코리아 피스 나우(Korea Peace Now! Grassroots Network, KPNGN)’,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해외동포연대(Peace Treaty Now, PTN)’, 그리고 위민크로스DMZ (Women Cross DMZ, WCD)에서 공동주최하고 있다.

조현숙씨는 “이번 로비 활동에는 26개 주 90개 지역에 거주하는 200명 이상의 유권자들이 참여했으며, 이중 84개 의원사무실과 만남이 진행되었다. 총 참가인원 110명은 한인이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로비주간에는 H Res 152 외에도 한반도 관련 다른 법안들도 로비활동을 펼쳤다. 북한과 위헌적 전쟁 금지 법안인 H.R. 6639, 대북 인도적 지원 강화 법안 H.R. 7218, 상원에는 대북 인도적 지원 강화 법안인 S.3908, 한국전쟁 이산가족 상봉 법안인 S.3395 등이 이번 로비 주간의 주요 내용이었다.

한편 캐롤린 마로니 하원의원(Carolyn Maloney-NY)과 바바라 리 하원의원(Rep Barbara Lee-CA)은 북한과 위헌적 전쟁 금지 법안인 HR 6639의 첫 지지자가 되겠다고 나섰으며, 폴 톤코 (Paul Tonko-NY)도 바로 뒤따라 지지에 나섰다.

에드 마키(Ed Markey-MA) 상원의원과 벤 카딘(Ben Cardin-MD) 의원은 한국전쟁 이산가족 상봉 법안인 S.3395 결의안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메릴랜드 상원의원 벤 카딘 (Sen. Ben Cardin-MD)이 대북 인도적 지원 강화 상원결의안인 S.3908의 첫 지지자가 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각 미팅에서는 위 법안에 대한 지지 및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종전선언에 대한 입장을 내주기를 요청했다. 많은 의원실에서 6.25 주간에 한국전쟁이 70주년을 맞이했으며 종전을 통한 한반도 평화를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각 의원의 SNS에 포스팅 하거나 성명서를 내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번 활동은 ‘하노이 회담’ 이후 북에 최대압박 정책을 가하고 있는 미국 정부를 향해 유권자들의 지속적인 종전협정 요구를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처 : 뉴스로 www.newsroh.com, 2020-06-25 일자.

로창현

뉴스로 대표

금, 2020/06/26-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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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지난 주간 미국 워싱턴에서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한 한반도평화활동가주간KPAW의 모임이 있었다. 아래의 내용은 참석자의 한사람이며 미국 내 저명한 반전평화 및 환경운동가 Garl Smith의 참가 보고서 요약본이다.


미국이 진행하고 있는 가장 ‘오랜 전쟁’의 타이틀은 아프칸이 아닌 한반도에 주어져야 한다. 이는 한반도의 대결이 여전히 공식적으로 종결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한국전쟁은 종전대신에 전쟁 당사자들간에 물리적 열전을 보류하는 정전형태의 Amnesty(사면)합의에 서명함으로써 군사적 대결에서 대치로 전환되었다.

오는 6월 25일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아프칸의 미국전쟁은 18년 동안 열전 중에 있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한국전쟁은 이보다 4배가 넘는 기간 동안 여전히 내연되고 있다.

아프칸에 워싱턴 당국이 개입하면서 그동안 미국시민의 세금이 2조 달러이상 투입되었지만, 한반도를 방어한다는 명분으로 해당지역을 군사화하고 남한지역에 미군을 주둔시키면서 발생한 현재까지 70년간의 비용을 감안하면 아프칸에 투입된 전비를 훨씬 넘어선다.

활동가들을 초청하고 6.25를 기념하는 것과 별도로,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전을 요구하는 Ro Khanna(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의 ‘의원결의-152호’에 동료의원들의 서명참여를 요청하고자 한다.

2 주전에 나는 한국평화활동가주간(KPAW, Korean Peace advocacy week)에 200여 명 활동가들과 함께 참여하였는데, 이 모임은 한국평화네트워크, Korea Peace Now!, 그리고 Women Cross DMZ 등 풀뿌리 시민단체들이 공동으로 주관한 행사이다.

나와 자리를 함께한 6 명은 카리스마가 넘치는 한국계 미국여성들이었는데, 이 중에는 Bay Area 영화제작자이자 활동가이며 “Women Cross DMZ” 다큐를 제작한 Borshay Liem도 있었다.

30분간 워싱턴에 있는 Barbara Lee 민주당 연방의원과 줌을 통한 영상대화가 있었고, 얼굴을 맞댄 토론과 준비된 노트북의 활동보고 그리고 온라인으로 올라오는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전쟁없는세상(WbW)’이 북한의 실상에 대한 소개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하였다.

▪한국은 1200여년 동안 통일된 왕국을 유지하여 왔으나, 1910년 일본이 식민지로 강점하면서 통일된 역사는 끝이 났다. 이후 북한을 만들어 낸 것은 다름아닌 바로 미국이었다.

▪그것은 1945년 8월 14일 즉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직후였으며, 미군부의 2명 장교가 한반도를 가르는 분단의 선을 설정하였다.

▪한국전쟁 중에 유엔의 경찰작전(police action)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폭격기들이 63만톤의 각종 폭탄과 32만톤의 네이팜탄을 투하했는데,, 이로 인하여 북한지역에서만 78개의 도시와 5000개의 학교, 1000여 개의 병원과 50만 채의 민간주택이 파괴되었고, 군인이 아닌 60만 명의 일반시민이 사망하였다. 현재까지 북한사람들이 미국을 증오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늘 현재, 북한은 남한의 50개와 일본내의 100여 개 미군기지로 둘러 쌓여 있으며 평양을 폭격할수 있는 거리의 괌섬에 전략핵무기의 장착이 가능한 B-52 폭격기가 대기하고 있다 (최근 비공식적 정보에 의하면, 미군은 중국의 중거리 미사일 사정거리에서 전략폭격기들을 철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백년).

▪1958년부터 미군은 정전협정을 위반하면서 남한에 핵무기를 반입하기 시작하였다. 한떄 950개에 달하는 핵탄두가 남한 내에 배치되기도 하였다.

▪미국은 북한이 제안하는 침략금지조약을 일방적으로 거부(무시)하여 왔다. 이런 배경에서 북한의 다수는 핵무장만이 미국의 침공에서 조국을 방어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외교적 활동이 진행되어 온 것을 지켜 보았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이 플라토늄 생산을 중지하는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제공한다는 일반협정-Agreed Frame에 서명하였다.

▪2001년 출범한 부시정권은 상기의 일반합의를 비난하고 제재를 가했다. 북한은 이에 대응하여핵무기 계획을 재개하였다.

▪북한은 북한을 위협하는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중단하면 미사일시험 역시 보류하겠다고 반복적으로 제안하였다.

▪2019년 봄에 미국은 봄철에 예정되었던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하는 것에 동의하였고, 김정은은 미사일시험을 중단하는 것으로 화답하였다. 이후 이들은 DMZ에서 재회하였으나, 미국은 합동훈련을 재개하였으며, 북한은 전술핵시험을 반복적으로 실시함으로써 대응하였다.

▪이제 미국은 중국이 주도하는 제안에 따라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하고 평화협정에 서명해야 할 시점이다.

지난 주말에 민주당 Barbara Lee연방의원으로부터 우리의 요청을 받아들여 HR6639의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전제안에 서명하고 이의 지원활동에 동참한다는 메시지를 접수하였다.

– 여기까지가 지난주에 있었던 한국평화행동주간 회의에 대한 요약 보고서이다 –

 

지난 해에는 75 명이 참여하였는데, 올해에는 200 명으로 늘어 났고, 이중 50% 정도가 한국계 미국시민들로, 캘리포니아에서 뉴욕 주까지 26개 주에서 자발적으로 참석하였고 워싱턴 수도에서 84 명의 공직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다음과 같은 성과에 대해 성급하지만 보고를 하고자 한다.

Rep. Carolyn Maloney (NY)와 Rep. Barbara Lee (CA) 두 분이 처음으로 HR 6639에 동참하였다.

Sen. Ed Markey (MA)와 Sen. Ben Cardin (MD) 두 분이 상원에 계류 중인 S.3395에 동참하였다.

북한의 인도적 지원법(S.3908)을 공식화하기로 하였으며, 내용은 곧 준비될 예정이다.”

한 회의에서 연방의회 직원에서 “우리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하여 이런 행사를 갖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하자, 그에게서 다음과 같이 황당한 답변을 받았다 “아니, 한국전쟁은 이미 끝난 것이 아닌가요?”

한국전쟁 70주년 행사를 진행하면서, KPAW 기획팀과 참여단체들은(Korea Peace Network, Korea Peace Now! Grassroots Network, Peace Treaty Now, Women Cross DMZ 등) 각자 해당지역의 정치인들에게 함께할 것과 한국전쟁의 종전을 공식적으로 요구할 것을 촉구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한국전쟁의 개시일인 6월 25일에서 정전협정의 서명이 이루어진 7월 27일까지 진행되기를 희망한다.

더불어 한국평화네트워크(Korea Peace Network)에서 정리한 요점을 소개한다.

“2020년은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종결되지 않은 한국전쟁 70주년의 해이다. 전쟁의 지속상태는 군사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한반도에 긴장을 야기하는 원인이다. 평화를 정착시키고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해야 한다.

미군은 여전히 70년 동안 북한과 전쟁상태로 대치하고 있다. 이제는 긴장과 적대를 끝내고 이러한 대결을 해결해야할 시점이다.

대립상태가 해결되지 못하면서 수천 가족들이 여전히 헤어져 살고 있다. 반드시 전쟁을 끝내고 가족들이 다시 결합하고 70년 간의 기나긴 대결과 분단의 고통을 이제 치료하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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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Berkeley Daily Planet via WorldBeyondWar on 2020-06-21

Gar Smith

WbW과 함께하는 반전평화활동가이자, 버클리에서 활동하는 환경운동가 겸 저술가

목, 2020/06/25-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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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이 글은 우리나라에 만연한 정치공학, 정치컨설팅 방법론을 추종하는 음모적 정치학을 반대하여 다수의, 다중의 힘을 근거로 시민을 위한 정치를 만들어가는 방법을 찾는 요량으로 쓴다. 그 일련의 내용 중 첫 번째 글이다.


) 포퓰리즘(Populism)의 의미

위키백과에 따르면, 포퓰리즘(Populism)은 이데올로기 혹은 정치철학으로서, “대중”과 “엘리트”를 동등하게 놓고 정치 및 사회 체제의 변화를 주장하는 수사법, 또는 그런 변화로 정의된다. 캠브리지 사전은 포퓰리즘을 “보통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사상, 정치활동”이라고 정의한다.

포퓰리즘은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에서 유래된 말로, 이는 ‘인민’, ‘대중’, ‘민중’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포퓰리즘은 ‘대중주의’, ‘민중주의’ 정도로 직역할 수 있는 말이다. 이는 ‘대중의 뜻을 따르는 정치행태’라는 점에서 쉽게 부정적인 의미로만 보기 어려우며 민주주의도 실은 포퓰리즘과 맥을 같이한다. 실제로 민주주의를 뜻하는 ‘데모크라시(democracy)’의 유래가 되는 ‘데모스(demos)’ 역시 그리스어에서 ‘인민’을 뜻하는 말로, 포퓰리즘과 데모크라시의 차이는 기원이 되는 언어의 차이에 불과하다고도 설명된다.

‘영국의 롱맨 사전은 ‘포퓰리스트'(Populist)를 부자나 기업가보다는 보통사람들을 대변하는 자’로 가치중립적 의미로 정의하고 있다.

위에서 포퓰리즘, 포퓰리스트에 대한 정의를 살펴 보았다. 이러한 정의에 따른다면 포퓰리즘이라는 것은 민주주의가 가치선으로 대접받는 사회에서는 당연히 좋은 의미가 되는 것 아닌가? 아무리 살펴보아도 이를 비난할 이유가 없는데, 우리 사회는 포퓰리즘이라면 막연히 대중추수, 나쁜 것이라고 치부해 왔다. 특히 보수 정치인들은 포퓰리즘을 격렬하게 비난하며 상대를 공격하는 정치적 수사로 사용하고 있다. 언론과 학계도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의 폐해라거나 심지어 민주주의와 배치된다는 식의 이미지를 심으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하지만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의 하나라면, 이들 정치인과 언론, 학계는 실로 민주주의의 본질을 부정하고 싶었던 나쁜 의도를 가지고, 포퓰리즘을 매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우리 집 토끼, 남의 집 토끼

우리나라 일부 정치인, 특히 리버럴 인사들은 자신에게 표를 주고 지지한 지지층의 이익을 위해 제반 권리와 이익을 돌려주는 일에 몹시도 인색하다. 항상 포퓰리즘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서, 세금받은 돈으로 기업주나 상공인에게 집중적으로 이익을 만들어 주고 정작 표를 준 다중에게는 낙숫물만 바라 보라고 요구하는 상황이 당연시된다. 이들은 왜 ‘남의 집 토끼’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일까?

대단한 이유는 없다. 한마디로 어리석은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를 관통하는 상식들은 포퓰리즘을 악으로 치부하고 개발경제, 토목과 건설업체를 먹여 살리는 정책으로 경제를 살린다고 주장하고, 기업과 학계에 막대한 보조금을 줌으로써 결국은 대중에게도 낙수가 우수수 떨어질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허무맹랑한 주장들일 뿐이다. 다수를 속이는 주장들이 득세하려 하니 이때 필요한 것이 정치공학이고 정치컨설팅이다. 정치공학은 소수가 다수를 속일 때 힘을 발휘한다. 이미지메이킹에 의존하는 정치가는 본질에 기반한 정치를 하지 않고 포퓰리즘을 거스러는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여러 해 전, 국제 체육대회를 개최한 리버럴 지자체장이 있었다. 이 사람은 ‘자기 집 토끼’는 제쳐놓고 남의 집 토끼들에게 대회를 위한 조직의 운영과 진행과 관련한 기회들을 제공하였다. 그 결과, 남의 집 토끼들은 과연 그를 고마워하고 지지해 주었을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이 지자체장은 재선에 실패하고 자기 집 토끼들을 원망하게 되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보수 기반의 정치인, 즉 소수의 토끼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은 항상, 노골적으로 이 소수의 토끼들만을 위한 정책을 내놓고, 실로 노골적으로 서슴치 않고 실행한다. 그래 놓고는 그 정책과 실행 결과가 전체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사기를 친다. 세금을 깎아주고-나랏돈을 퍼서 기업에 나눠 주고, 필요치도 않은 토목공사를 벌인다. 나랏돈 100을 강에 파묻고 고작 30~40의 모래로 기업이 돈 벌 기회를 만들어 준다. 대기업이 부자가 되어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부자가 되는가? 강남 집값이 오른다고 서울 시민 생활이 좋아지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런데 이런 짓거리를 저질러 놓고는 자기에게 왜 표를 주지 않느냐고 원망을 하다니…

이번 선거에서 극보수세력인 미래통합당이 전국적으로 40%대를 얻은 것, 특히 대구나 부산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결과를 보면서 과연 우리는 어떤 결론들을 내릴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는 보수세력이 항상 그 정도는 있다고 생각하고 말아야 하나? 아니면 그 40% 안에 실은 우리 집 토끼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볼 수는 없나?

토끼 수부터 세어 보자. 우리 집 토끼가 모두 몇이나 되는 지를 계산해 보자. 정치를 하겠다고 생각하고, 민주주의에 기반한 대중정치를 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집 토끼를 원망하기보다는 기초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나에게 표를 주었으면 하는 계층은 누구이고 얼마나 될까?

우리 집 토끼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나는 우리 집 토끼를 위해 뭔가를 해 주고 있는가? 의식주, 일용할 양식, 직업과 복지, 교육, 문화와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이익을 주고 있는가?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제시하고 있는가? 포퓰리즘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주장할 만한 아주 작은 것이라도 제시하고 있는가?

길 닦고, 광장 만들고, 건물 짓고, 개발하는 것, 그런 것 말고 직접 입에 넣어 주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가? 왜 못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극보수세력들은 권력을 쥐는 족족 자기 집 토끼를 위한 세금감면과 규제 완화, 보조금과 억수같은 지원정책으로 입법과 행정을 도배해 놓았다. 그런 것들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위한 뒷거래도 하고, 자신들이 만든 법을 어기기도 하지만 대부분 운이 좋아서 그냥 해 먹고 세세연년 잘 살기까지 한다.

그런 반면, (자칭) 리버럴 정치인들은 중앙정권, 지자체를 막론하고 개별 시민들을 위한 직접적인 이익을 고려한 정책을 말하면 포퓰리즘이라고 공격을 받기 일쑤고, 자기 집 토끼는 배제하고 전체 토끼를 위한 정책을 써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스피커들에 굴복하여 남의 집 토끼만을 위한 정책들을 펴고 있다. 이제까지의 중앙정권에 의한 모든 경제 정책들은 100이면 100, 남의 토끼를 위한 정책들이다. 우리나라처럼 자본가에게 좋은 정책을 촘촘하게 만들어 놓은 나라는 드물다. 더욱이 정말로 잘 훈련된 셰퍼드, 관료집단을 갖추고 자본주의를 위해, 자본주의에 의해, 자본주의의 정치를 하는 나라도 없다.

토끼나라의 토끼들은 좋은 풀을 먹는 것에 명운을 건다. 우리 집 토끼를 위해 일하는 대표를 뽑자. 정치를 한다면 그냥 포퓰리즘을 해 보라.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포퓰리즘, 그것 참 좋은 것이다.

 

) 정치공학과 포퓰리즘

앞서 언급했지만 정치공학은 사실 부끄러운 단어이다. 한마디로 사기치는 것이다. 속살을 드러내지 못하고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것, 진짜를 내세우지 못할 때 들고 나오는 것이 정치공학이고, 어둡고 음흉하고, 그리하여 마타도어도 도배하는 것이 정치공학이다. 물론 프로는 이미지메이킹, 광고와 선전, 선동, 컨텐츠의 개발 등에 대해 거부하지 않고 필요성을 절감한다. 그렇다 프로페셔널한 광고와 선전은 당연히 오늘날의 정치에서 필수 요소이다. 하지만 그것이 기만에 근거한 것인가? 아니면 메시지 전달과 교육효과를 높이기 위한 캠페인인가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오바마식 흑색선전 대처법 참조)

우리나라 인구의 1%는 50만 명이다. 가구 수로는 대략 20만 정도. 사실 보통사람은 상위 1%인 50만 명 속에 포함되기는 참으로 어렵다. 강남에 아파트 한 채가 있다고 이 50만 명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소득이어야 1%에 포함되는 것일까? 상위 1%는 월급이 2,031만원, 순자산 23억원, 이중에 월급/보수가 1/3에 불과하다(2018년 국세청 자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50만 명,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이같이 부자들이다. 나머지 99%는 5000만 명이 넘는다. 하위계층의 수입은 거의 100% 월급/보수에 의존하며, 자산은 비교대상이 아예 되지 않으니 월급/보수로 인한 소득만 비교할 때, 상위 1%는 하위 30%가 받는 월급의 합과 거의 같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은 왜 이들 50만 명의 눈치를 보는 것일까? 나머지 5000만 명은 눈 가리고 귀 막고 살아온 것에 익숙하여 무시하고 괄시받아도 된다고 생각할까?

강가에 오페라하우스를 만들면 비디오 좋고 화면 멋있기는 한데, 딱 거기까지! 결국 그것으로는 배를 불려주지는 못한다. 더욱이 나에게는 가서 볼 기회를 만들어 주지도 않으면서 시민의 공간이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고 우기는 것이지 않은가? 처음부터 상업공간으로 만들어 사적 이익을 취하겠다고 하면 차라리 신경써지 않겠다. 99% 대중으로부터 세금 걷은 돈을 사용해서 1%를 위한 정책을 펴면 이것은 사기이며 공작이고 배임이다. 흔히 사용하는 도둑질이며 일방적인 1%를 위한 퍼주기이다.

모든 정치적 방책은 계층과 계급성을 포함한다. 우리 집 토끼인지 남의 집 토끼인지, 어떤 토끼를 위한 일이어야 하는지는 생각보다 명확하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국민의 대표’라는 자들은 종종 ‘가치중립, 전체 시민을 위한, 우리나라를 위한’ 등등의 헛소리를 잘 한다. 이 말은 앞서서 남의 집 토끼 대표가 우리 집 토끼를 후릴 때 사용하는 말이다. 알고서 사용하면 정치공작이자 허위광고이고 모르고 사용하면 멍청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중, 99%는 사실 포퓰리즘에 굶주렸다. 제대로 복지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1%를 지향하는 관료들이 정권을 잡고, 또 1%로 달려가고 싶은 언론과 학계, 전문가 집단이 끊임없이 역포퓰리즘, 반민주주의, 대기업지향적인 경제논리로 99%를 속여 왔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시민에 근거한, 절대 다중에 근거한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겁먹지 말고 포퓰리즘을 하라. 괜히 건물 짓고, 길 만들고, 광장 만드는 것 이외에는 표나는 일이 없다고 절망하지 말자(사실 이런 것 100날 해도 별 의미 없고, 이미지로 배가 부른 것은 아니다). 남의 집 토끼들은 좋아하겠지만, 그리고 잠시 잠깐 우리 집 토끼에게도 이게 뭔가, 나도 좋아할 만한 것인가 하고 속아 줄 수도 있지만(청계천 흐르는 물이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이 아니고 밥도 국도 되지 않는다는 것), 결국은 세금에서 출발하여 개발이익 형태로 소수에게 이익을 준 것 아니겠나? 우리나라 시민대중은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현명하다. 자세히 내막까지는 몰라도 제반 정책들이 자신과 다른 세상일이라는 것 정도는 누구보다도 빨리 알아차린다.

 

) 정신 차린 정치는 포퓰리즘에 기반해야 한다

그냥 대 놓고 99%를 위한 정책을 생각해 보라.

불황기의 정책이라도 1%를 위한 정책과 99%를 위한 정책은 다르다. 즉 법인세금을 깎아주고, 소비세를 낮춰주고, 이자를 낮추고 유동성을 높여 주고, 정부자금 상환을 미뤄주고, 산업은행에서 융자를 해주고, 대규모 토목사업을 앞당기고, 3기 신도시 사업을 앞당기고 등등 이제까지 너무나 당연하게도 진행되어 온 것들은, 알고 보면 1%를 위한 좀비경제 정책들이다. 이에 반해, 아동병원을 짓고, 기업탁아소를 의무화하고 기존 탁아소를 공립화하고, 노인요양시설을 공공화하고, 기술학교와 공과대학를 짓고 학비를 무상화하고, 중소기업 자립화/자동화를 지원하고, 시장현대화와 집합화를 지원하고, 노동자와 청년을 위한 협동조합 주택을 지원하고, 유기농을 조직하고 농작물 수급조절 시스템을 만들고 하는 등등…. 얼마나 많은 정책들이 있는가! 전에는 한번도 생각지도 못했던 수없이 많은 99%를 위한 정책들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이 포퓰리즘이라고 매도되고 사장되었던 것 아닌가?

도시와 관련된 정책들도 마찬가지이다. 먼저 용적률이라는 괴물을 직시해야 한다. 누가 이런 괴물을 만들고 숭상하게 만들었는가? 용적률 상향을 통한 개발이익은 왜 항상 부자와 기업 몫이 되어야 하는가? SH/LH, HUG/HF는 민낯을 공개해야 한다. 이들은 적폐 덩어리이자 99%의 적이다. 1%를 위한 룰을 만들어 놓고 100%를 위한다고 우긴다. 이들의 역할은 1%가 합법적으로 개발이익을 편취하도록 파이프라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토지를 둘러싼 불공정한 거래, 불공평한 분배, 사장역행의 투기의 폐해에는 전부 그들이 관여되어 있다. 조성원가, 기금사용, 토지분양, 개발계획, 이 전부가 우리나라 부동산 관련 부의 형성과 발전의 출발점이 되었다. (1%가 자산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일에는 정말이지 혁혁한 공을 세웠다!)

도시는 필요하다면 공공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점으로 과감하게 용적률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적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용적률을 엄청나게 제공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던 도시행정이 공공/준공공적 이익을 위한 사업에는 왜 규제를 하는지는 묵묵부답이다. 청년을 위한 협동조합 주택을 짓기 위한 노력은 현재는 완전히 봉쇄되어 있다. 도시재생은 몇몇 활동가를 위한 호구지책으로 전락하였다. 왜 자동차 구입 시 주차장 의무화를 하지 않는 것이지? 기존주택 밀집지역에 주차장, 마을센터, 회의공간, 북카페, 공동식당, 청년주택 등이 함께 있는 집합적인 시설을 만들도록 허가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의도인가? 빈집을 사들여 고밀도 입체주차장을 만들고 그 주변에 공공시설과 청년주거공간과 근린상가를 조성하기만 해도 도시는 보다 활기찰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대구와 부산에서 재난 관련 지원금을 보다 신속하게 집행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적어도 서울과 경기도나 전남북처럼 집행 예정이라고 했어도 어떤 차이가 생겨 날 수 있지 않았을까? 99% 중에 1/2은 자기 집 토끼 아닌 남의 집 대표를 뽑았다. 우리 집 토끼를 대표로 뽑아도 내 입에 뭔가 좋은 풀이 들어 올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해서 아니겠나. 진짜 포퓰리즘은 적은 양이라도 직접적이고 손에 닿는 이익을 우리 집 토끼에게 제공하는 것이다(이 점에서 권영진 대구시장을 보고 배워야 한다. 중앙정부로부터 교부 받은 돈조차 절대 집행하지 않고 버티지 않던가). 이를 경시하는 것은 결국 ‘남의 토끼를 위한 포퓰리즘’을 실천하는 것이다.

불황기에 기업의 파산은 예견되는 것이고 이는 인위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충격은 완화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구조조정, 합리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기업 간의 문제에 개입하기보다는 사회안전망의 확보에 관심이 집중되어야 한다. 의료서비스 확충, 공공서비스 확대, 기술교육/재교육, 공공일자리의 보급, 소상공인 지원 등에 세금이 사용되어야 한다. 포퓰리즘은 다른 무엇보다 이해와 관련된 정책에 초점이 맞춰진다. 즉 99%의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이 다시 그 주머니로 돌고 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월, 2020/05/11-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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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역사적으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한 미국과 서구 그리고 현재로서 가장 많이 배출하고 있는 중국이 선도국가군으로서 상호적으로 협력하여 기후위기에 함께 대응하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에는 희망이 없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기후위기의 대응이라는 주제를 자신의 패권을 강화하려는 지정학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는 11월 영국에서 열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6 UN Climate Change Conference)를 앞두고 중국을 방문하여 시전화(Xie Zhenhua) 중국대표를 만났습니다. 케리는 올해 미국 기후특사로서 두 번째 중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케리 특사의 중국방문은 미국이 중국과 손을 잡고 긴급한 글로벌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케리 특사는 미국이 중국과 협력하여 기후변화의 시급한 도전 에 대응하여 대화를 강화하고, 목표를 공동으로 설정하며, 리더십을 발휘하고, 파리협정 목표달성을 위한 모범을 보이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그는 또한 기후변화에 대한 미중 협력이 미중 관계가 직면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기후변화에 진지하게 대처하고 환경적 책임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케리의 방문은 기후변화를 정치적 구실로 삼아 중국의 개발속도를 억제하고자 하는 의도를 반복해서 표출하고 있었습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가을 중국이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정점으로,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케리는 중국의 현재적 탄소중립 약속이 충분히 빠르지 않다고 여러 차례 불평했습니다. 당연히 가능한 모든 국가들은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2050년 또는 그 이전까지 순배출 제로를 달성해야 합니다.

케리의 방문은 국제사회에서 진행되는 석탄화력 프로젝트의 자금조달에 대하여 중국이 공개적으로 이의 전면중단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도록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한편 미국은 반복적으로 중국이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공식화하고 싶어합니다. 케리 특사와 바이든 행정부는 발전단계에 기반하여 기후변화의 온실가스 배출을 완화하기 위한 상당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중국의 무단한 노력을 단순히 무시하고자 합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효과적인 중미의 협력은 파리기후 변화협정의 목표를 실현하려는 “공통적이며 동시에 차별화된” 원칙에 기초해야 합니다.

기후변화는 인류에 대한 전세계적으로 공유되는 실존적 위협이며 전세계적인 협력과 공동행동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각 당사자의 성실한 대응은 각 당사자의 발전단계에 따라 달라야 합니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근거는 개발도상국이 개발을 시작하기 훨씬 전에 선진국이 자연생태에 엄청난 양의 탄소가스를 이미 방출했기 때문입니다.

서구에서 탈산업화가 일어나고 많은 제조업이 개발도상국으로 이전됨에 따라, 탄소의 해외소비는 개발도상국이 배출하는 탄소수치에 크게 의존합니다.

시 주석이 설정한 배출량 감축목표는 파리협정을 확고히 이행하고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인류의 미래를 공유하는 공동체의 건설을 추진하는 책임있는 국가임을 보여주는 중국의 행동과 결의를 반영합니다.

탄소중립에 대한 공약을 존중하고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중국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데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중국 당국은 신선한 공기, 환경을 녹색화하고 자연자원의 현명한 사용을 국가부흥에 연결하는 “녹색변혁”을 요구했습니다. 녹색산업은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었으며 고품질 개발의 개념 하에 중국은 전통적인 부문이 녹색개발을 추구하도록 하고 수많은 녹색산업이 출현하도록 했습니다.

중국의 자동차 공장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광경. 2019

중국은 말 그대로 국가발전의 전략초점을 화석연료 에너지기반 인프라와 경제를 청정에너지 기반 및 기후회복력의 미래로 전환하기 위해 “재편성”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청정기술의 R&D 및 혁신, 중심축을 지원하는 청정기술, 청정에너지 및 인프라에 대한 투자, 청정에너지 전환을 가장 잘 수용할 수 있는 공급망을 개선하는 방법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국은 태양광과 풍력 외에 신소재, 스마트 그리드, 배터리, 전기차 등 핵심 분야에서 역량과 경쟁을 강화할 예정입니다. 이로 인해 중국은 글로벌 기후혁신과 공급망의 중심에 우뚝 서 있습니다.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노력과 후속조치로 중국은 녹색개발의 선구자이자 기후 변화와의 싸움에서 선도적인 핵심국가로 부상했습니다.

워싱턴에 소재한 전략 및 국제연구센터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세계최대 풍력 및 태양 에너지 생산국이자 재생에너지에 대한 국내 및 해외의 최대투자자입니다.

실제로 탄소배출량으로 보면 미국의 1인당 탄소배출량이 중국보다 훨씬 높습니다(2.5-3.0배). 현재는 2025년로 일정을 순연하였지만, 파리협정에서 요구한대로 미국이 2020년 이전에 1000억 달러를 제공하지 못한 것은 오히려 나쁜 본보기가 되어 글로벌기후 거버넌스 진행의 일정을 후퇴시켰습니다.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를 바다에 투기하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등 미국의 이중 잣대는 기후위기의 대응에 대한 타격이며 기후변화의 글로벌 리더라는 미국의 주장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케리의 중국방문은 중국과의 협력에 대한 환영의 의사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글로벌 리더십의 연합 또는 양측의 솔직한 협력은 솔루션과 개발단계의 다양성과 공동번영에 대한 열망이 상호 간에 충분히 인식되고 존중될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원문>

On Meeting The US and China on Green Cooperation dated 21-09-03

China and the US are making a somewhat bumpy journey toward climate cooperation, with Chinese officials and experts still calling for partnership between the two countries to tackle climate change, but urged the US to change its hostile attitude toward China and treat China-US cooperation more sincerely.

They made the call shortly after the two countries’ tense relations had spilled over into their climate talks, with a certain US government official blaming China for not doing enough on climate issues, although the blame is more like an unpleasant sound rather than an interruption of the two countries’ ongoing climate talks.

Vice Minister of Commerce Wang Shouwen on Wednesday called on China and the US to play an “ensemble” of low-carbon cooperation. He made the comment during the China Provinces-US States Green & Low-carbon Cooperation Seminar and Matchmaking in Xiamen, East China’s Fujian Province.

“China and the US share common ground in advancing low-carbon development, and that cooperation will not only serve each other’s goal of cutting carbon emissions but also contribute to strengthening bilateral economic and trade cooperation,” Wang said.

According to information provided by the Fujian Provincial Department of Commerce, the event, which focuses on enhancing climate cooperation between Chinese provinces and US states, has attracted about 260 local government representatives and businesspeople from the two countries, including representatives from US industrial giants like Dell, DuPont and General Motors.

Officials from several US states including Ohio and Washington also said during the fair that they hope China and the US can carry out more pragmatic cooperation in green areas to cope with climate change challenges together.

The conditions for China-US climate cooperation are becoming increasingly ripe not only as China is going to great lengths to meet its carbon neutrality goals, but as the US has seemingly reemerged on the global stage of climate cooperation, with moves like rejoining the Paris Agreement and US President Joe Biden’s reported attendance of the 26th UN Climate Change Conference.

Experts stressed that China will always open its door to cooperation and dialogue in green development, but they criticized the US for showing an “insincere” attitude, placing the two countries’ low-carbon partnership, which could be carried out “in any aspects” theoretically, under much uncertainty.

US climate envoy John Kerry reportedly said recently that China can do more in terms of tackling climate change, implying that China’s efforts are insufficient as long as it continues to build coal-fired power plants.

“The US has shown hypocrisy and short-sightedness on the issue of climate cooperation with China. It has politicized the climate issue and taken it as a diplomatic tool against China, and yet tried to shift the blame to China,” Li Haidong, a professor at the Institute of International Relations at the China Foreign Affairs University, told the Global Times.

He Weiwen, a former economic and commercial counselor at the Chinese consulate general in San Francisco and New York, also criticized the US for “finding fault” with China, as blaming China for not doing enough in tackling carbon emissions does not hold water.

“Power generation using coal, petroleum and natural gas accounts for about 60 percent of overall power generation almost same as in China and The US, while Power generation using recyclable energy accounts for 29 percent in China, compared with the US’ 20 percent. But this does not include carbon emissions from California wildfires and wars the US launched,” he said.

He also said that compared with the US, the UK shows more sincerity in conducting climate cooperation with China.

Shortly after Kerry wrapped up climate talks with Chinese officials earlier this month, Britain’s senior climate change official Alok Sharma also arrived in Tianjin to meet his Chinese counterpart Xie Zhenhua. Sharma was later quoted by Reuters as saying that he “welcomes China’s commitment to climate neutrality by 2060 and looks forward to discussing China’s policy proposals towards this goal.”

 

출처: CGTN(중국국제방송) on 2021-09-08.

황용푸

전문적인 경제평론가이며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사회경력을 시작했으며 UN기구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그는 경제학과 관련된 많은 논문과 책의 저자로 현재 관심은 글로벌 개발 및 중미 연결, 특히 무역, 금융 및 기술문제에 있다

금, 2021/09/1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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