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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미국과 중국 간의 기후문제 협력에 대한 기준과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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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미국과 중국 간의 기후문제 협력에 대한 기준과 원칙

admin | 금, 2021/09/17- 19:51

편집자 주:

역사적으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한 미국과 서구 그리고 현재로서 가장 많이 배출하고 있는 중국이 선도국가군으로서 상호적으로 협력하여 기후위기에 함께 대응하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에는 희망이 없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기후위기의 대응이라는 주제를 자신의 패권을 강화하려는 지정학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는 11월 영국에서 열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6 UN Climate Change Conference)를 앞두고 중국을 방문하여 시전화(Xie Zhenhua) 중국대표를 만났습니다. 케리는 올해 미국 기후특사로서 두 번째 중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케리 특사의 중국방문은 미국이 중국과 손을 잡고 긴급한 글로벌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케리 특사는 미국이 중국과 협력하여 기후변화의 시급한 도전 에 대응하여 대화를 강화하고, 목표를 공동으로 설정하며, 리더십을 발휘하고, 파리협정 목표달성을 위한 모범을 보이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그는 또한 기후변화에 대한 미중 협력이 미중 관계가 직면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기후변화에 진지하게 대처하고 환경적 책임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케리의 방문은 기후변화를 정치적 구실로 삼아 중국의 개발속도를 억제하고자 하는 의도를 반복해서 표출하고 있었습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가을 중국이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정점으로,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케리는 중국의 현재적 탄소중립 약속이 충분히 빠르지 않다고 여러 차례 불평했습니다. 당연히 가능한 모든 국가들은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2050년 또는 그 이전까지 순배출 제로를 달성해야 합니다.

케리의 방문은 국제사회에서 진행되는 석탄화력 프로젝트의 자금조달에 대하여 중국이 공개적으로 이의 전면중단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도록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한편 미국은 반복적으로 중국이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공식화하고 싶어합니다. 케리 특사와 바이든 행정부는 발전단계에 기반하여 기후변화의 온실가스 배출을 완화하기 위한 상당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중국의 무단한 노력을 단순히 무시하고자 합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효과적인 중미의 협력은 파리기후 변화협정의 목표를 실현하려는 “공통적이며 동시에 차별화된” 원칙에 기초해야 합니다.

기후변화는 인류에 대한 전세계적으로 공유되는 실존적 위협이며 전세계적인 협력과 공동행동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각 당사자의 성실한 대응은 각 당사자의 발전단계에 따라 달라야 합니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근거는 개발도상국이 개발을 시작하기 훨씬 전에 선진국이 자연생태에 엄청난 양의 탄소가스를 이미 방출했기 때문입니다.

서구에서 탈산업화가 일어나고 많은 제조업이 개발도상국으로 이전됨에 따라, 탄소의 해외소비는 개발도상국이 배출하는 탄소수치에 크게 의존합니다.

시 주석이 설정한 배출량 감축목표는 파리협정을 확고히 이행하고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인류의 미래를 공유하는 공동체의 건설을 추진하는 책임있는 국가임을 보여주는 중국의 행동과 결의를 반영합니다.

탄소중립에 대한 공약을 존중하고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중국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데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중국 당국은 신선한 공기, 환경을 녹색화하고 자연자원의 현명한 사용을 국가부흥에 연결하는 “녹색변혁”을 요구했습니다. 녹색산업은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었으며 고품질 개발의 개념 하에 중국은 전통적인 부문이 녹색개발을 추구하도록 하고 수많은 녹색산업이 출현하도록 했습니다.

중국의 자동차 공장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광경. 2019

중국은 말 그대로 국가발전의 전략초점을 화석연료 에너지기반 인프라와 경제를 청정에너지 기반 및 기후회복력의 미래로 전환하기 위해 “재편성”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청정기술의 R&D 및 혁신, 중심축을 지원하는 청정기술, 청정에너지 및 인프라에 대한 투자, 청정에너지 전환을 가장 잘 수용할 수 있는 공급망을 개선하는 방법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국은 태양광과 풍력 외에 신소재, 스마트 그리드, 배터리, 전기차 등 핵심 분야에서 역량과 경쟁을 강화할 예정입니다. 이로 인해 중국은 글로벌 기후혁신과 공급망의 중심에 우뚝 서 있습니다.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노력과 후속조치로 중국은 녹색개발의 선구자이자 기후 변화와의 싸움에서 선도적인 핵심국가로 부상했습니다.

워싱턴에 소재한 전략 및 국제연구센터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세계최대 풍력 및 태양 에너지 생산국이자 재생에너지에 대한 국내 및 해외의 최대투자자입니다.

실제로 탄소배출량으로 보면 미국의 1인당 탄소배출량이 중국보다 훨씬 높습니다(2.5-3.0배). 현재는 2025년로 일정을 순연하였지만, 파리협정에서 요구한대로 미국이 2020년 이전에 1000억 달러를 제공하지 못한 것은 오히려 나쁜 본보기가 되어 글로벌기후 거버넌스 진행의 일정을 후퇴시켰습니다.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를 바다에 투기하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등 미국의 이중 잣대는 기후위기의 대응에 대한 타격이며 기후변화의 글로벌 리더라는 미국의 주장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케리의 중국방문은 중국과의 협력에 대한 환영의 의사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글로벌 리더십의 연합 또는 양측의 솔직한 협력은 솔루션과 개발단계의 다양성과 공동번영에 대한 열망이 상호 간에 충분히 인식되고 존중될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원문>

On Meeting The US and China on Green Cooperation dated 21-09-03

China and the US are making a somewhat bumpy journey toward climate cooperation, with Chinese officials and experts still calling for partnership between the two countries to tackle climate change, but urged the US to change its hostile attitude toward China and treat China-US cooperation more sincerely.

They made the call shortly after the two countries’ tense relations had spilled over into their climate talks, with a certain US government official blaming China for not doing enough on climate issues, although the blame is more like an unpleasant sound rather than an interruption of the two countries’ ongoing climate talks.

Vice Minister of Commerce Wang Shouwen on Wednesday called on China and the US to play an “ensemble” of low-carbon cooperation. He made the comment during the China Provinces-US States Green & Low-carbon Cooperation Seminar and Matchmaking in Xiamen, East China’s Fujian Province.

“China and the US share common ground in advancing low-carbon development, and that cooperation will not only serve each other’s goal of cutting carbon emissions but also contribute to strengthening bilateral economic and trade cooperation,” Wang said.

According to information provided by the Fujian Provincial Department of Commerce, the event, which focuses on enhancing climate cooperation between Chinese provinces and US states, has attracted about 260 local government representatives and businesspeople from the two countries, including representatives from US industrial giants like Dell, DuPont and General Motors.

Officials from several US states including Ohio and Washington also said during the fair that they hope China and the US can carry out more pragmatic cooperation in green areas to cope with climate change challenges together.

The conditions for China-US climate cooperation are becoming increasingly ripe not only as China is going to great lengths to meet its carbon neutrality goals, but as the US has seemingly reemerged on the global stage of climate cooperation, with moves like rejoining the Paris Agreement and US President Joe Biden’s reported attendance of the 26th UN Climate Change Conference.

Experts stressed that China will always open its door to cooperation and dialogue in green development, but they criticized the US for showing an “insincere” attitude, placing the two countries’ low-carbon partnership, which could be carried out “in any aspects” theoretically, under much uncertainty.

US climate envoy John Kerry reportedly said recently that China can do more in terms of tackling climate change, implying that China’s efforts are insufficient as long as it continues to build coal-fired power plants.

“The US has shown hypocrisy and short-sightedness on the issue of climate cooperation with China. It has politicized the climate issue and taken it as a diplomatic tool against China, and yet tried to shift the blame to China,” Li Haidong, a professor at the Institute of International Relations at the China Foreign Affairs University, told the Global Times.

He Weiwen, a former economic and commercial counselor at the Chinese consulate general in San Francisco and New York, also criticized the US for “finding fault” with China, as blaming China for not doing enough in tackling carbon emissions does not hold water.

“Power generation using coal, petroleum and natural gas accounts for about 60 percent of overall power generation almost same as in China and The US, while Power generation using recyclable energy accounts for 29 percent in China, compared with the US’ 20 percent. But this does not include carbon emissions from California wildfires and wars the US launched,” he said.

He also said that compared with the US, the UK shows more sincerity in conducting climate cooperation with China.

Shortly after Kerry wrapped up climate talks with Chinese officials earlier this month, Britain’s senior climate change official Alok Sharma also arrived in Tianjin to meet his Chinese counterpart Xie Zhenhua. Sharma was later quoted by Reuters as saying that he “welcomes China’s commitment to climate neutrality by 2060 and looks forward to discussing China’s policy proposals towards this goal.”

 

출처: CGTN(중국국제방송) on 2021-09-08.

황용푸

전문적인 경제평론가이며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사회경력을 시작했으며 UN기구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그는 경제학과 관련된 많은 논문과 책의 저자로 현재 관심은 글로벌 개발 및 중미 연결, 특히 무역, 금융 및 기술문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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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어업 상습 국가” 낙인찍힌 한국 원양어업, 환골탈태만이 답이다

○ 한국이 다시 <불법어업국가>라는 오명을 썼다. 2019년 9월 20일, 미국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 지정 통보를 받았다. 2013년 미국과 유럽연합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가로 지정받은 이후, 규제 강화를 강조한 원양산업발전법 개정으로 2015년에 해제되었지만 겨우 4년 만에 불명예는 되돌아왔다.

○ 불법어업국가로 지정된다는 것은 원양수산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수출길에 차질이 생기는 경제적 손실은 물론, 외교 무대에서 뼈아픈 약점을 잡힌다. 특히, 체제가 불안하거나 경제발전이 더딘 저개발국가들 위주로 된 불법어업국가 목록에 포함되는 것 자체가 국격에 치명타를 입힌다고 할 수 있다.

○ 이번 지정의 발단은 2017년 한국 원양선박이 남극해에서 보존조치를 위반한 사건 때문이다. 국내외 환경단체들은 해당 위반 행위에 대해 수차례 강한 우려를 표하며, 해수부와 원양업계에 이 사건의 심각함과 함의를 알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업계를 대표하는 원양산업협회는 ‘일부 기업의 소소한 위반을 침소봉대하지 말라’며 의미를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 사건을 엄정하게 처리해야 할 해수부도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법적 문제가 없다’, ‘현상태에서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국제여론까지 악화되자 그제서야 관련 원양산업발전법 재개정안을 부랴부랴 마련했다. 그나마도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로, 통과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 위에 언급한 원양산업발전법의 개정안은 작년부터 업계와 시민사회가 참여한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업계의 영향으로 불법어업에 대한 벌금과 제재를 강화하는 정책들이 상당부분 약화된 채 발의되었다. 이마저도 업계에서는 훨씬 더 큰 폭으로 약화하고 싶어했다.

○ 결정적으로, 이 사태는 불법어업 규제가 강화되는 국제적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해수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2018년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 회의에 참가한 당시 정부 대표단은 불법어업 사건을 신속하고 엄정히 처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안이하게 대응을 하였고 이는 결국 오늘의 예비불법어업국 지정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회의에 참가한 정부 대표단 중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불과 약 1년 전 (2018년 10월)만 해도 당당하게 “한·EU, 국제적인 불법어업 근절을 위한 공동선언” 까지 채택한 한국이 또다시 원양 전선에서 추락했다. 불법어업 국가의 오명을 벗고 효과적인 제재를 가하다가 다시 개혁의 긴장 고삐를 늦추면서 벌어진 일이다. 시민단체는 국민을 대표하여 묻지 않을 수 없다. 또다시 억울함을 호소하며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자세로 이런 외교적 망신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불법 어업자들을 확실하게 걸러내어 오히려 불법어업 근절을 선도하는 국제적 리더로 거듭날 것인가? 정부와 업계의 문제 해결의지와 책임있는 행동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이에 시민사회는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 해수부, 특히 본 사태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당시 정부 대표단 대표는 책임을 져야 한다.
○ 불법, 비보고, 비규제 (IUU) 어업이 재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도록 하는, 보다 강력한 제재안을 원산법 개정안에 포함시키고, 불법어업 통제 관리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 원양업계는 불법어업을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업체를 퇴출시키는 등 자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 정부와 업계는 시민사회와 함께 불법 어업 방지를 위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공익법센터어필,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재단

참고:
남극 이빨고기 불법 어업 관련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2070600105

한국 환경단체 성명서:
http://kfem.or.kr/?p=196313

공동선언문 채택:
https://www.yna.co.kr/view/AKR20181018168300098

금, 2019/09/2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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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어업 상습 국가” 낙인찍힌 한국 원양어업, 환골탈태만이 답이다

○ 한국이 다시 <불법어업국가>라는 오명을 썼다. 2019년 9월 20일, 미국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 지정 통보를 받았다. 2013년 미국과 유럽연합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가로 지정받은 이후, 규제 강화를 강조한 원양산업발전법 개정으로 2015년에 해제되었지만 겨우 4년 만에 불명예는 되돌아왔다.

○ 불법어업국가로 지정된다는 것은 원양수산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수출길에 차질이 생기는 경제적 손실은 물론, 외교 무대에서 뼈아픈 약점을 잡힌다. 특히, 체제가 불안하거나 경제발전이 더딘 저개발국가들 위주로 된 불법어업국가 목록에 포함되는 것 자체가 국격에 치명타를 입힌다고 할 수 있다.

○ 이번 지정의 발단은 2017년 한국 원양선박이 남극해에서 보존조치를 위반한 사건 때문이다. 국내외 환경단체들은 해당 위반 행위에 대해 수차례 강한 우려를 표하며, 해수부와 원양업계에 이 사건의 심각함과 함의를 알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업계를 대표하는 원양산업협회는 ‘일부 기업의 소소한 위반을 침소봉대하지 말라’며 의미를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 사건을 엄정하게 처리해야 할 해수부도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법적 문제가 없다’, ‘현상태에서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국제여론까지 악화되자 그제서야 관련 원양산업발전법 재개정안을 부랴부랴 마련했다. 그나마도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로, 통과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 위에 언급한 원양산업발전법의 개정안은 작년부터 업계와 시민사회가 참여한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업계의 영향으로 불법어업에 대한 벌금과 제재를 강화하는 정책들이 상당부분 약화된 채 발의되었다. 이마저도 업계에서는 훨씬 더 큰 폭으로 약화하고 싶어했다.

○ 결정적으로, 이 사태는 불법어업 규제가 강화되는 국제적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해수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2018년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 회의에 참가한 당시 정부 대표단은 불법어업 사건을 신속하고 엄정히 처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안이하게 대응을 하였고 이는 결국 오늘의 예비불법어업국 지정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회의에 참가한 정부 대표단 중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불과 약 1년 전 (2018년 10월)만 해도 당당하게 “한·EU, 국제적인 불법어업 근절을 위한 공동선언” 까지 채택한 한국이 또다시 원양 전선에서 추락했다. 불법어업 국가의 오명을 벗고 효과적인 제재를 가하다가 다시 개혁의 긴장 고삐를 늦추면서 벌어진 일이다. 시민단체는 국민을 대표하여 묻지 않을 수 없다. 또다시 억울함을 호소하며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자세로 이런 외교적 망신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불법 어업자들을 확실하게 걸러내어 오히려 불법어업 근절을 선도하는 국제적 리더로 거듭날 것인가? 정부와 업계의 문제 해결의지와 책임있는 행동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이에 시민사회는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 해수부, 특히 본 사태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당시 정부 대표단 대표는 책임을 져야 한다.
○ 불법, 비보고, 비규제 (IUU) 어업이 재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도록 하는, 보다 강력한 제재안을 원산법 개정안에 포함시키고, 불법어업 통제 관리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 원양업계는 불법어업을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업체를 퇴출시키는 등 자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 정부와 업계는 시민사회와 함께 불법 어업 방지를 위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공익법센터어필,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재단

참고:
남극 이빨고기 불법 어업 관련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2070600105

한국 환경단체 성명서:
http://kfem.or.kr/?p=196313

공동선언문 채택:
https://www.yna.co.kr/view/AKR20181018168300098

금, 2019/09/2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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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어업 상습 국가” 낙인찍힌 한국 원양어업, 환골탈태만이 답이다

○ 한국이 다시 <불법어업국가>라는 오명을 썼다. 2019년 9월 20일, 미국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 지정 통보를 받았다. 2013년 미국과 유럽연합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가로 지정받은 이후, 규제 강화를 강조한 원양산업발전법 개정으로 2015년에 해제되었지만 겨우 4년 만에 불명예는 되돌아왔다.

○ 불법어업국가로 지정된다는 것은 원양수산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수출길에 차질이 생기는 경제적 손실은 물론, 외교 무대에서 뼈아픈 약점을 잡힌다. 특히, 체제가 불안하거나 경제발전이 더딘 저개발국가들 위주로 된 불법어업국가 목록에 포함되는 것 자체가 국격에 치명타를 입힌다고 할 수 있다.

○ 이번 지정의 발단은 2017년 한국 원양선박이 남극해에서 보존조치를 위반한 사건 때문이다. 국내외 환경단체들은 해당 위반 행위에 대해 수차례 강한 우려를 표하며, 해수부와 원양업계에 이 사건의 심각함과 함의를 알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업계를 대표하는 원양산업협회는 ‘일부 기업의 소소한 위반을 침소봉대하지 말라’며 의미를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 사건을 엄정하게 처리해야 할 해수부도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법적 문제가 없다’, ‘현상태에서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국제여론까지 악화되자 그제서야 관련 원양산업발전법 재개정안을 부랴부랴 마련했다. 그나마도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로, 통과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 위에 언급한 원양산업발전법의 개정안은 작년부터 업계와 시민사회가 참여한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업계의 영향으로 불법어업에 대한 벌금과 제재를 강화하는 정책들이 상당부분 약화된 채 발의되었다. 이마저도 업계에서는 훨씬 더 큰 폭으로 약화하고 싶어했다.

○ 결정적으로, 이 사태는 불법어업 규제가 강화되는 국제적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해수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2018년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 회의에 참가한 당시 정부 대표단은 불법어업 사건을 신속하고 엄정히 처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안이하게 대응을 하였고 이는 결국 오늘의 예비불법어업국 지정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회의에 참가한 정부 대표단 중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불과 약 1년 전 (2018년 10월)만 해도 당당하게 “한·EU, 국제적인 불법어업 근절을 위한 공동선언” 까지 채택한 한국이 또다시 원양 전선에서 추락했다. 불법어업 국가의 오명을 벗고 효과적인 제재를 가하다가 다시 개혁의 긴장 고삐를 늦추면서 벌어진 일이다. 시민단체는 국민을 대표하여 묻지 않을 수 없다. 또다시 억울함을 호소하며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자세로 이런 외교적 망신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불법 어업자들을 확실하게 걸러내어 오히려 불법어업 근절을 선도하는 국제적 리더로 거듭날 것인가? 정부와 업계의 문제 해결의지와 책임있는 행동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이에 시민사회는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 해수부, 특히 본 사태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당시 정부 대표단 대표는 책임을 져야 한다.
○ 불법, 비보고, 비규제 (IUU) 어업이 재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도록 하는, 보다 강력한 제재안을 원산법 개정안에 포함시키고, 불법어업 통제 관리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 원양업계는 불법어업을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업체를 퇴출시키는 등 자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 정부와 업계는 시민사회와 함께 불법 어업 방지를 위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공익법센터어필,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재단

참고:
남극 이빨고기 불법 어업 관련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2070600105

한국 환경단체 성명서:
http://kfem.or.kr/?p=196313

공동선언문 채택:
https://www.yna.co.kr/view/AKR20181018168300098

금, 2019/09/2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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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어업 상습 국가” 낙인찍힌 한국 원양어업, 환골탈태만이 답이다

○ 한국이 다시 <불법어업국가>라는 오명을 썼다. 2019년 9월 20일, 미국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 지정 통보를 받았다. 2013년 미국과 유럽연합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가로 지정받은 이후, 규제 강화를 강조한 원양산업발전법 개정으로 2015년에 해제되었지만 겨우 4년 만에 불명예는 되돌아왔다.

○ 불법어업국가로 지정된다는 것은 원양수산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수출길에 차질이 생기는 경제적 손실은 물론, 외교 무대에서 뼈아픈 약점을 잡힌다. 특히, 체제가 불안하거나 경제발전이 더딘 저개발국가들 위주로 된 불법어업국가 목록에 포함되는 것 자체가 국격에 치명타를 입힌다고 할 수 있다.

○ 이번 지정의 발단은 2017년 한국 원양선박이 남극해에서 보존조치를 위반한 사건 때문이다. 국내외 환경단체들은 해당 위반 행위에 대해 수차례 강한 우려를 표하며, 해수부와 원양업계에 이 사건의 심각함과 함의를 알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업계를 대표하는 원양산업협회는 ‘일부 기업의 소소한 위반을 침소봉대하지 말라’며 의미를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 사건을 엄정하게 처리해야 할 해수부도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법적 문제가 없다’, ‘현상태에서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국제여론까지 악화되자 그제서야 관련 원양산업발전법 재개정안을 부랴부랴 마련했다. 그나마도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로, 통과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 위에 언급한 원양산업발전법의 개정안은 작년부터 업계와 시민사회가 참여한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업계의 영향으로 불법어업에 대한 벌금과 제재를 강화하는 정책들이 상당부분 약화된 채 발의되었다. 이마저도 업계에서는 훨씬 더 큰 폭으로 약화하고 싶어했다.

○ 결정적으로, 이 사태는 불법어업 규제가 강화되는 국제적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해수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2018년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 회의에 참가한 당시 정부 대표단은 불법어업 사건을 신속하고 엄정히 처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안이하게 대응을 하였고 이는 결국 오늘의 예비불법어업국 지정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회의에 참가한 정부 대표단 중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불과 약 1년 전 (2018년 10월)만 해도 당당하게 “한·EU, 국제적인 불법어업 근절을 위한 공동선언” 까지 채택한 한국이 또다시 원양 전선에서 추락했다. 불법어업 국가의 오명을 벗고 효과적인 제재를 가하다가 다시 개혁의 긴장 고삐를 늦추면서 벌어진 일이다. 시민단체는 국민을 대표하여 묻지 않을 수 없다. 또다시 억울함을 호소하며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자세로 이런 외교적 망신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불법 어업자들을 확실하게 걸러내어 오히려 불법어업 근절을 선도하는 국제적 리더로 거듭날 것인가? 정부와 업계의 문제 해결의지와 책임있는 행동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이에 시민사회는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 해수부, 특히 본 사태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당시 정부 대표단 대표는 책임을 져야 한다.
○ 불법, 비보고, 비규제 (IUU) 어업이 재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도록 하는, 보다 강력한 제재안을 원산법 개정안에 포함시키고, 불법어업 통제 관리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 원양업계는 불법어업을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업체를 퇴출시키는 등 자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 정부와 업계는 시민사회와 함께 불법 어업 방지를 위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공익법센터어필,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재단

참고:
남극 이빨고기 불법 어업 관련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2070600105

한국 환경단체 성명서:
http://kfem.or.kr/?p=196313

공동선언문 채택:
https://www.yna.co.kr/view/AKR20181018168300098

금, 2019/09/2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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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태문명의 비전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반드시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가치도 그 비전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삶의 중심에 있는 가치이며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일의 핵심이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아름다움을 자기 철학의 중심에 두었다. 그는 관계적 관점에서 세계를 설명했으며 이런 관계들이 “아름다움의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미적 사건들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아름다움의 생산”이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아름다움이라는 원리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를 견고하게 재구조화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대 서구 문명의 지배적 패러다임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이 “보는 사람의 눈”에 달린 것, 단지 의견에 그치는 판단이라고 믿게 됐다. 그래서 아름다움을 피상적이고 사소한 특성으로, “오직 피부 두께”로 거론한다. 이런 가르침은 아름다움을 공공생활에서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예술세계에서는 아름다움이 줄곧 논쟁적인 주제였지만 대개는 화장품, 패션, 성 상품화, 소비자 마케팅의 영역에 갇혀 있었다. 그래서 아름다움이 공공정책, 지방정부, 경제발전, 교육, 공공보건, 환경보호에서도 고려할 가치가 있는 주제라고 제안하는 일은 당황과 조롱 사이의 어디쯤에 있는 무미건조한 감정을 끌어낸다.

자연세계와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에서도 아름다움에 대한 현대성의 편견이 그대로 유지된다. 토지이용계획을 세울 때 산책로를 만드는 것과 건물을 짓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한다면 우리는 미적 결정을 내린다. 구역설정, 쓰레기처리, 대기질과 수질에 대해서도 비슷하다. 물론 우리의 도덕적 코드와 문화적 관계에는 미적 차원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름다움의 사소함을 확신하기 때문에 이런 결정에서 아름다움을 여러 요소 중 하나로 경시한다. 그 결과는 우리 도시와 집들이 싸고 투박하게 지어짐으로써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직접적 경험을 퇴화시키는 비타협적 법칙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생태적 패러다임의 본질이다

사실 아름다움은 생태적 패러다임의 본질이다. 아름다움은 현대 산업기술 자본주의 세계관의 핵심에 도전해 생명을 부정하는 원리와 가정을 소환하는 가치체계이다. 아름다움은 생명체에 내재하는 생동감과 관련이 있으며 존재들간의 관계에서 강화된다. 생명을 긍정하는 관계는 가치를 가지며 아름다움은 우리가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아름다움은 생명, 그리고 생명의 경험들과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가치이며 그래서 다른 존재들의 활기와 연결된 우리 자신의 활기를 북돋운다.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실재를 좀더 정확히 설명하는 포스트 기계론의 패러다임을 구상할 때 아름다움을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 기계론의 반생명성에 대항하기 위해 화이트헤드는 느낌의 형이상학을 제안했고 관계의 느낌을 실재의 가장 기본으로 설정했다. 느낌을 다시 도입하는 것은 기계론의 가정들과 현대사상의 경로에 대항하는 생각들을 순차적으로 끌어낸다. 느낌은 주체성을 요청하고 주체성은 자유, 새로움, 목적, 가치를 요청한다. 생명이 다시 세계로 돌아오는데 이는 생존을 위한 혼란스런 돌진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향한 궁극적 목적으로서의 회귀이다. 화이트헤드는 “아름다움, 도덕적이고 미적인 그것은 존재의 목적이다”(Cited in The Philosophy of Alfred North Whitehead, Paul Arthur Schilpp, editor (La Salle: Open Court, 1941 and 1951), p. 8)라고 썼다.

 

조직의 원리이자 목적으로서의 아름다움

이런 방식으로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예술에 국한돼온 아름다움이 확장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현대 세계에서는 공공영역에서 아름다움에 기울이는 작은 관심이 오로지 예술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공공예술 지원은 공공조각, 벽화, 간판 같은 형식적 활동에 그친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존재의 목적”으로 이해된다면 세계의 구조와 과정이 생명을 긍정하고 의도적으로 “생명의 생생함”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이끄는 비전을 제시하게 된다. 아름다움은 이런 저런 물질적 형태가 아닌, 문화적 커먼즈를 창조하는 조직 원리로서 우리의 공공영역에 다시 들어와야 하며 전반적인 삶의 실천이 돼야 한다.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사회적으로 공정한 새 패러다임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실재의 구조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새로운 형이상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오랫동안 인식해 왔다. 그러나 그들조차 지속가능성과 아름다움이 어떤 관계인지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환경에 대한 글과 함께 제시된 이미지가 아무리 우리의 마음을 열고 “이 아름다운 세계에 등을 돌리지 마시오”라고 외치도록 만들더라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아름다움의 역할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토론을 위한 시각적 자료 이상으로 활용되지 않으며 기계론과 유물론의 형이상학을 전복하는 일의 중요성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이것은 아름다움이 실재가 아니거나 우리가 아름다움의 부재에서 괴로움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아름다움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도록 훈련 받아왔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조직의 원리로서 다시 도입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생태적 패러다임을 향해 움직이려는 노력을 기울여도 여전히 현대적 패러다임에 속박된다. 지속가능성이라는 목표에 접근하는 지배적 방식도 현대성에 명백하게 붙들려 있다. 지속가능성이 공공의 논의에서 견인력을 가질수록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서 거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 기술적 혁신으로 환원된다. 탄소저감기술이 우리의 제1세계 생활양식을 유지해주면서 기후붕괴를 피하는 놀라운 가능성을 갖는 지속가능성의 성배가 되어왔다.

에너지 절약과 재생 가능한 자원기술이 기후안정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에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자신에게 내재한 활력과 모든 존재의 가치를 긍정하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보다 넓고 깊은 토대가 필요하다.

 

지속가능성, 생명에 대한 긍정, 아름다움

“지속가능성”이란 단어는 인내를 최선의 목표로 제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더 큰 의도가 있다. 바로 번성에 대한 관심이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지구에서 끝없이 견디는가” 혹은 “우리가 어떻게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는가”가 아니다. 지속가능성은 그것 자체가 목표가 되거나 에너지 절약과 재생 가능한 자원의 문제로 축소되면 안 된다.

지속가능성이란 개념의 핵심에는 가치, 그리고 무엇이 지속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공리적 질문이 있다. 그것은 (확실히 재생능력이 해답의 필수적 부분이기는 하지만) 단순한 지속을 넘어선 문제이다. 훨씬 위대한 미적-윤리적 비전이 아름다움과 선함이 융합되는 지속가능성의 실천적 작업을 제시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어떻게 하면 생명을 긍정하는 방식으로 살수 있는가”이며 이것은 “우리는 아름다움을 증진시키는 방식으로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도 같다. 그래서 지속가능성은 아름다움과 함께 번성하는 세계에 도달하는 실천적 지침이 된다.

아름다움을 생태문명의 점근선적 목적으로 만들 때 우리는 기계론을 유기체적 세계관으로 대체하는 일을 완성하게 된다. 아름다움을 다시 도입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정신을 만족시키고 고양시키며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의 주체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문명을 재형성할 수 없다.

 

아름다움을 실천하기

“실천(practice)”이란 단어는 영어에서 두 가지 품사-명사와 동사-로 쓰이지만 단수이며 의도적인 반복이란 특징이 있고 삶의 형태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실천은 바람이나 생각을 실용적, 기술적 활용으로 변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실천”이란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어 동사 “성취하다(accomplish)”에서 왔으며 “행동에 적합한(fit for action)“, “효과적인(effective)”, “활기 있는(vigorous)” 같은 단어들과 관련이 있다.

아름다움을 단순한 “우리의 경험”이 아니라 “생명의 구조의 일부”로서 세계에 돌려주는 일은 아름다움의 실천을 우리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만들려는 헌신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 음악에서 스즈키 메소드의 창시자인 스즈키 신이치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네가 밥을 먹는 날에만 (바이올린을) 연습하라.” 스즈키의 목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본사회를 아름다움과 도덕성으로 정의되는 국가로 만들어 재건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세계관을 재형성하려면 악기를 배우는 것처럼 엄청난 연습이 요구된다는 걸 알았다. 낡은 습관을 깨고 새로운 습관을 개발하려면, 새로운 자세를 유지하는 새로운 근육을 만들려면, 인식을 정화하려면, 새로운 느낌을 표현하는 언어능력을 얻으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아름다움을 실천에 옮기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출발점으로 4가지를 제안한다.

1. 아름다움으로 이끌라

현대성은 형식과 기능의 관점을 부과했는데 오로지 이런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기능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될 때는 효율성(시간과 비용 모두에서)만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형식이 기능에 종속될 때는 보다 큰 관계의 패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물질적 생산이란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이 계획이 세계의 아름다움에 어떻게 기여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면 기능과 형식은 삶의 위대한 경제를 책임지게 될 것이다. 이 경제는 관계의 전체성과 모든 행위가 전체성으로부터 나온다는 규칙에 기초를 둔다. 미적 문제를 우선으로 한다는 것(관계 없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존재의 활기와 그 활기가 어떻게 전체의 활기에 기여하는지,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런 상호성이 핵심이다: 어두운 하늘의 별빛처럼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빛나게 한다. 화이트헤드가 든 사례는 샤르트르 대성당의 9개 문을 그린 조각작품이다: “이 조각들은 각각 아름다움을 지니면서 전체의 아름다움에 자신을 내어준다.”(Alfred North Whitehead, Adventures of Ideas (New York: The Free Press, 1933), p. 264) 아름다움으로 이끄는 것-삶을 긍정하는 관계로서 이해되는 아름다움-은 즉각 효율성과 금전적 이익을 넘어 생명체계의 활기로 관심을 확장시킨다.

서울의 1호 공공건축가인 승효상은 도시 디자인에 대한 자신의 접근법이 “재개발”보다는 “재생”이라고 설명함으로써 경제발전에서 재생으로 초점을 옮겨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 그의 구분은 1960년대 이후 서울에서 지배적이었던 서구 산업화 모델을 생태적이고 문화적으로 조율된 모델로 대체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승효상의 비전에 따르면 건축가들은 서울이란 장소의 독자성과 생기를 얻기 위해 서울을 둘러싼 8개의 산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는 도시를 “기억과 바람을 가진 살아있는 존재”라고 하면서 “존재하기보다 생성”하는 전체를 디자인하는 최우선 원리로서 전통 문화와 자연-기술과 건축가 개인의 육감이 아닌-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http://www.urbanista.org/issues/local-eyes/news/close-encounters-of-the-...) 세계에 존재하는 살아있음에 대한 그의 옹호(그리고 우리를 삶으로 데려가기 위한 도시 디자인에 대한 그의 헌신)는 생태문명을 형성하고 아름다움을 우리 삶의 조직 원리로 만드는 중요한 발걸음이다.

2. 느낌을 앎의 기초로 만들라

미학(aesthetics)이란 단어는 “느낀다”는 뜻이다. 어원은 그리스어인데 인식하거나 감각한다는 뜻이 들어있다. 반대말인 반미학(anesthetic)은 “무감각하다”는 뜻으로 감각을 무디게 만듦으로써 고통의 공포를 없애는 의학적 발전과 연관돼 대부분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친근한 단어이다.(번역자주: anesthetic은 마취제라는 뜻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느끼고 느낌을 갖는 것, 다른 사람의 느낌을 경험하는 것, 삶을 유지하는 일들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적 세계관은 실재의 구조에서 근본적인 것인 느낌의 부정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느낌, 주체성, 가치는 서로 통한다. 이것은 모두 기계론의 가정에 대한 평형추이며 삶의 형이상학을 향한 주춧돌이다. 살아있는 주체들의 세계에서 세계의 전체성과 세부를 동시에 알 수 있는 것은 철저한 느낌을 통해서이다. 상호적응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느낌이고 상호적응이 가져오는 생명을 긍정하는 결과-즉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도 철저한 느낌을 통해서이다. “무엇이 아름다움 혹은 아름다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느낌의 형이상학에 달려있다. 그래서 아름다움의 실천은 느낌을 근본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실천이자 느낌에 의해 구성되는 전체성에 대한 수용성을 배우는 실천, 그리고 타자와의 관계에서 우리 자신의 삶-정신을 느끼도록 자신을 훈련시키는 실천을 통해 우리의 인식이 보다 정교해지고 “언제나 우리를 둘러싼 것들을 우리의 눈이 볼 수 있고 우리의 귀가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실천이다.

3. 아름다움의 이름을 말하라

서구의 지배적 문화는 아름다움이 단지 주관적 의견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름다움을 개인적 스타일의 문제로 생각하도록 배우고 그것을 사적인 삶에 국한시켰다. 그리고 오직 합법적인 가치체계는 돈과 관련된 것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였다. 아름다움을 공공생활의 한 요소로 여길 때도 기껏해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름다움의 가치를 여행객들이 쓰는 돈이나 생태적 서비스의 형식으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아름다움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간명한 대답을 할 수 없는데 당황할까 봐 걱정된 나머지 우리는 아름다움을 공공적 고려가 필요한 가치로서 언명하는 것을 자제해왔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새로 들어서는 고층호텔이나 대규모 학생기숙사 프로젝트, 대형 조립식건물의 상점을 추하다는 측면에서 반대하지 않았는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런 개발을 반대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이다.

아름다움은 세계에 있는 어떤 것, 그러나 단순히 우리의 사적 감각에 의해 구성된 것은 아닌 경험에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을 검열함으로써 우리 자신에게 심각한 장애를 만들었다. 공공 영역에서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부정하는 형이상학 체계에 굴복했다. 우리는 경제주의에 도전하기에 충분할 만큼 강력하고 만족스러운 비경제적 가치의 형식을 스스로에게서 빼앗았다. 가장 중요하게는 아름다움에 대한 침묵을 통해 우리는 세계를 파괴하는 일의 공모자가 됐다.

우리는 문화를 형성하고 문화적 가치를 강화하는 언어의 힘을 안다. 아름다움의 실천에서 중요한 부분은 모든 구조물, 시스템, 공동체 생활을 규정하는 과정에 대한 공공의 대화에 미적 판단을 다시 도입하는 것이다.

4. 아름다움을 가르치라

우리에게는 삶의 구조를 가치로 가득 찬 관계의 문제로 이해하는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STEM 교과목-과학, 기술, 공학, 수학-에 대한 현재 교육의 선호는 우리가 세계를 그토록 심각하게 파괴하도록 이끌어온 바로 그 사고방식을 계속 껴안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이 커리큘럼에 예술을 더한 STEAM 역시 이런 패러다임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모든 측면에 드러난 생명”(Alfred North Whitehead, The Aims of Education and Other Essays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repr. 1959), p. 10)을 주제로 삼고 삶의 전체성은 미적 과정, 즉 “생명의 생생함”에 기여하고 그것을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생명과 생명의 상호적응을 통해 가장 잘 이해된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교육이 필요하다. 아름다움 중심의 교육은 예술, 예술감상 혹은 철학적 미학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철학과 느낌에 기반한 인식론에 기초를 둔 교육이다. (전체는 부분으로 환원시킬 때 가장 잘 이해된다고 가정하는) 환원주의적 방법론에 근거한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는 논리 중심의 교육과는 대조적으로, 아름다움 중심의 교육은 전체가 부분보다 크다고 간주한다. 무엇보다 이것은 “세계의 활기찬 존재함”을 가정한다. 아름다움의 학습이 우리 대학에서 탐구주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산업적 패러다임에서 생태적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작업이 필요한지를 우리에게 말해준다.

 

결론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경시와 지구의 생명을 지탱하는 서식처의 변형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다. 현대성의 특징인 미적, 도덕적 무관심은 자연세계의 남용과 전반적인 생명에 대한 저평가에 기여한다. 우리의 형이상학, 언어, 교육시스템, 삶의 실천에 아름다움을 다시 가져오는 것은 우리가 생태문명을 창조하는데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샌드라 B. 루바스키

노던아리조나대학교 종교학과 명예교수

월, 2020/02/17-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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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비극적인 산불 사태를 겪고 있다.

지난 몇 주 간의 호주의 모습은 악몽과도 같았다. 화염이 벽으로 형성되고, 하늘이 핏빛처럼 물들었으며 거주민들은 화재를 피하기 위해 해변에 급히 모여들었다. 호주 산불은 매우 강력해서 대형 트럭을 전복시킬 정도로 엄청난 ‘화재 토네이도’를 만들어냈다

여름에 발생한 호주 화재는 지난 1년간 발생한 일련의 재앙적인 기상 이변 중에 가장 최근에 발생한 사건일 뿐이라는 사실이 문제이다. 전례 없는 중서부 홍수, 123도(F)까지 육박한 인도 폭염, 유럽 전반에 걸친 전무후무한 기온을 보인 폭염 등이 잇달았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재앙은 기후 변화와 관련되었다.

필자가 위 사건들이 기후 변화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기보다 ‘관련된 것’이라고 말한 점에 주목해야 하는데, 이것은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이들이 혼란스러워 한 구분이다. 각 기상 현상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기에 뉴스 보도에서는 자연 재해 발생에 기후 변화가 미쳤을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기후학자들은 확률에 초점을 맞춘 ‘극단적인 원인 규명(extreme event attribution)’에 몰두하여 이러한 혼란을 타파하고자 노력해 왔다. 기후 변화가 특정 폭염을 일으켰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지구 온난화로 인해 폭염이 발생할 확률이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확률이 많이 달라졌다고 답할 것이다 “기후 변화로 인해 우리가 보아온 많은 유형의 극단적인 기후 현상이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그리고 기상 결과에는 임의성이 많지만, 사실 임의성은 사람들 대부분이 인지하는 것보다 초기 단계에서 기후 변화를 훨씬 더 위험하게 만든다. 현재까지 연구의 경험에서 추정해 보면 플로리다 전체는 결국 바다에 의해 잠식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훨씬 전에 해수면을 끌어 올리는 치명적인 태풍이 흔하게 밀려들 것이다. 마침내 인도 대부분의 지역에는 사람이 살 수 없게 될 것이다. 더구나 그러한 시점이 도달하기 전에 이미 폭염과 가뭄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것이다.

이렇게 설명해보자. 기후 변화가 야기할 전면적인 결과가 나오려면 수 세대가 지나야겠지만 기후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국지적이고 일시적인 재난이 많이 발생할 것이다. 대재앙이 일상적으로 평범한 사건이 될 것이며 우리 눈 바로 앞에서 항시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기후 관련 재난의 확산이 이를 억제하는 대응조치를 무력화시킬지 여부가 중요한 문제이다.

희망적인 신호가 몇 가지 있다.

첫째는 뉴스 매체가 재해 현상에 있어서 기후 변화의 역할에 대해 보도하는 빈도수가 많아진 것 같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폭염, 홍수, 가뭄 등 재해에 대해 장문의 기사를 내보내면서도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언급하려 하지 않았다. 이제 필자는 기자들과 편집자들이 마침내 불통의 침묵을 깼다고 느낀다. 지난 몇 년간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가 상당히 커지면서 대중들도 주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쁜 소식은 주로 민주당원들 사이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공화당 진영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라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와 원인 규명에 대해 과학계의 논쟁이 심각해지면서, 보수파 정치인들의 반환경적 극단주의가 오히려 격렬해졌다. 공화당과 특히 트럼프 정부는 전반적으로 과학의 보고서에 대해 적대적이 되었다. 과학자들은 사실상 공화당의 딥스테이트(막후 기득권,)의 일원이 아니던가?

더욱이 이것은 단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 호주 정부는 대륙 전체가 불에 타고 있는데도 석탄 산업에 대한 지원을 재차 확인하고, 이런 류의 환경파괴 사업을 보이콧하려는 행위를 범죄로 다스리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결단력 있는 조치가 시행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시점에 반환경주의가 점점 더 극단적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현재 상황의 병적인 아이러니이다.

이제 기후변화의 위험성은 더 이상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니다. 비록 눈 앞에 전개된 재해가 앞으로 닥칠 거대한 참상의 예고편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는 분명히 피해를 확인할 수 있다.

반면에 적어도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오늘날 온실 가스 배출의 급격한 감소를 상당히 쉽게 성취할 것처럼 보인다. 특히 대체 에너지 관련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하는 탓에 트럼프 행정부는 태양에너지 및 풍력 에너지와의 경쟁에 대항하는 석탄에너지 산업을 필사적으로 지원하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2020년 대선 캠페인에 환경정책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인가? 민주당원 대부분은 환경정책이 주요 사안으로 확대되는 것을 꺼리는 것으로 보이며, 필자는 그 이유를 이해한다. 환경 정책에 대한 우파들의 협박은 추상적이고, 먼 미래같이 느끼며, 공화당이 오바마 케어를 해체하려는 시도의 예처럼 현실적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와 관련된 재앙의 파장이 정치적 산술을 바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필자는 선거 전문가가 아니지만, 최근에 발생한 화재와 홍수를 선거홍보의 내용으로 활용하면서, 도널드 트펌프(Donald Trump)와 측근들이 그러한 재앙을 일으키는 어리석은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점을 경고하는 광고를 통해 선거 캠페인이 어느 정도 시민들의 관심을 유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트럼프의 환경정책은 미국과 세계에게 매우 유해하며, 유권자들은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NYT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이자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 교수

목, 2020/02/06-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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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아래 기사는 전 CIA 테러 대응 전문가이자 터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에서 19년간 근무한 군사 정보 장교인 필립 지랄디 (Philip Giraldi)가 작성했다. 지랄디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CIA 지국장이었고 2001년에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한 최초의 미국인 중 하나였다. 그는 워싱턴을 기반으로 하여 미국의 가치와 이해 관계와 상응하는 중동 관련 외교 정책을 장려하고 홍보하는 옹호 그룹인 국가 이익 위원회(the Council for the National Interest)의 기조 실장이다.


미국은 명백히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란과 실제적 전쟁에 돌입했고, 양국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이란 중 어느 국가도 전쟁을 선포를 하지는 않겠지만, 미국이 리퍼 드론으로 바그다드를 공습하여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과 알 무한디스 친이란 민병대의 창설자를 암살함으로써 양국간 갈등이 오래도록 고조될 전망이다.

이란은 미국과 군사적으로 직접 맞설 수는 없지만 고위 군 간부의 죽음에 대응하지 않고 묵인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이란의 보복은 일어날 것이며 그동안 테헤란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 제한적 공격과 대리전으로 의심되어 왔던 행위는 이제부터 이란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더 심화된 행동으로 대체될 것이다. 이란이 상당한 현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페르시아만 전역이 위태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테러리즘 카드도 꺼낼 수 있다. 이란은 중동에 걸친 대규모 디아스포라를 보유하고 있으며, 수 년간 미국의 위협을 받아왔기 때문에 암흑기 속에서 전쟁 준비를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다. 반대로 이란지역 내 미국 외교관, 군인, 심지어 관광객 그 누구도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미국인들에게 ‘공백기간’이 될 것이다. 미국은 이미 바그다드 대사관에 부분적인 철수를 지시했고, 체류 중인 모든 미국인들이 즉시 대피하도록 권고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중동 내 무익한 전쟁을 종결하겠다는 공약으로 2006년 대선에 승리했으나 이번사태로 자신은 거짓말쟁이임을 아주 분명하게 입증했다. 트럼프는 데탕트를 추구하는 대신에, 우선적으로 JCPOA(이란핵 합의)를 파기하고 이란에 대한 제재를 다시 도입했다. 어떤 의미에서 이란은 처음부터 트럼프의 새로운 전쟁 금지 서약에서 예외가 되어 왔다. 이는 직접적으로 트럼프가 미국 유대인 공동체와 근친간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이거나, 이스라엘의 공격적인 벤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총리가 제안한 요청을 수용한 탓일 수도 있다.

트럼프는 앞으로 벌어질 사안에 대해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 네오콘(neoconservatives, 신보수주의자)과 이스라엘인은 예상대로 결과에 환호하고 있으며, 친이스라엘 민주제도 수호재단 소속의 마코 더보위치(Mark Dubowitz)는 “빈 라덴 사건보다 더 중요하며 (이란) 정권에 엄청난 타격”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이란 전문가’로서 더보위치의 자격이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 경우에는 어느 정도 옳은 주장을 펼친다. 솔레이마니는 이란 내에서 확실히 카리스마가 있고 저명한 인물이다. 그는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내 대리전과 동맹국 사이의 주요 연락망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전 지역에서 이란의 가장 강력한 군사 지도자가 되었다. 하지만 두보위츠는 군대 계급 내 어떤 누구도 대체가 가능하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솔레이마니의 보좌진들과 정보부의 고위 관료들은 확실히 그의 역할을 이어받아 수행할 수 있으며 정책을 이어갈 충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사실상 지난주 미국이 야기한 일련의 어리석은 공격은 해당 지역에서 미군의 철수를 앞당기는 것뿐이다. 미국 국방부와 백악관은 이라크 민병대 헤즈볼라의 소행으로 알려진 미국의 시설 공격 배후에 이란이 있다고 주장해 왔으며, 이로 인해 시리아와 이라크 내 민병대 표적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촉발되었다고 밝혔다. 미군은 이라크 정부의 손님으로 주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델압둘-마흐디 이라크 총리가 “아니다” 라고 부인한 이후에도 공격을 지속해서 강행했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미국의 작전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란은 전 세계와 교전 중입니다”라고 전했는데, 이를 통해 백악관 관료들이 실제로 얼마나 무지한지 확실히 보여주었다. 미국 정부는 최근 사건에 이란이나 이라크 민병대가 관여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격을 통해 이라크 병사 26명이 사망했기 때문에, 바그다드 주재 대사관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불가피해졌다. 해당 시위에 참여한 거리의 시위자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이라크인 들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는 이란이 배후에서 일으킨 시위로 뒤집어 씌었다.

미국도 이라크 정부의 승인 없이 바그다드 공항에서 드론 공격으로 솔레이마니와 무한디스를 살해했으므로 이제 이라크 총리가 미군에게 철수하도록 요구하는 일이 불가피해졌다. 이로 인해 결국 주변 국가인 시리아에 남아 있는 미군의 상황을 더 이상 옹호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시작한 어리석은 전쟁은 누구의 이해관계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이 명백해졌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결과의 법칙에 의해 이 지역의 다른 아랍 국가들이 미국 군인, 선원, 해병대, 공군의 주둔을 재고하게 될 것이다.

이번 전쟁은 불가피하지 않았고 미국의 국익을 위한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향후 몇 주간 발생할 미국인, 이란인, 이라크인들의 사망과 희생은 명백하게 도널드 트럼프의 책임이며, 그것은 관련된 모든 당사자들에게 대재앙이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뿐 아니라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미국의 제국주의적 야망의 몰락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부디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

 

Philip M. Giraldi

전 CIA 테러 대응 전문가

 

본 기사는 아메리칸-헤럴드-트리뷴에 게재된 것을 번역한 것이다.

화, 2020/01/07-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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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데 요구되는 자질은 능력과 공정성으로 통치하는데 필요한 자질과 거의 관련이 없습니다.”– 장 프랑수아 레벨(Jean-François Revel) (1924-2006), 프랑스 철학가 (마르크와 예수, 1970, p. 68)

“첫 번째 진실은 국민이 민간 권력의 성장을 용인하여 민주주의 국가 자체보다 강력해진다면 민주주의의 자유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파시즘이며 개인에 의해, 단체에 의해 또는 민간 권력에 의해 정부에 귀속됩니다.”–프랭클린 D.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1882-1945), 32대 미국 대통령 (1933-1945) (의회 연설, 1938/04/29).

“권력의 아가리는 항상 삼켜버릴 수 있도록 열려 있고, 권력의 갈래는 제멋대로 널려 있어서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자유를 파괴합니다.”존 애덤스(John Adams) (1735-1826), 2대 미국대통령, 1797-1801 (‘교회법과 봉건법에 대한 논문’, 1765).

“정의를 위한 인간의 능력은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지만, 부당함을 향한 인간의 성향은 민주주의를 요구합니다.”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1892-1971), 미국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녀들», 1944)

“박사님, 우리는 어떤 국가를 만들었나요? 공화국인가요 아니면 군주국인가요? — 공화국입니다. 그것을 지킬 수 있는 한에서만.”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 미국 건국의 아버지 (1787년 헌법 제정 회의 말미에 여성의 질문에 대한 프랭클린의 답변)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이 펜실베니아 게티스버그에서 표현했듯이 민주주의는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사상, 양심, 연설, 종교, 집회, 청원, 언론 등)를 보장하는 정치 제도로서 법 앞에서 정당한 법적 절차와 평등을 약속한다. 그것은 정부가 국민들에게 책임지도록 하며 정부가 독단적으로 개인을교도소에 수감시키고 노예화하거나 감옥, 노예, 결박하는 행위 등을 금지한다. 개인은 민주주의 아래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고 정치적 선호를 표현해도 안전함을 보장받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12세기 영국에서 유래한 인신 보호령(Habeas Corpus)의 법적 원칙은 민주국가에서 자유와 해방을 향해 나아갔던 위대한 단계였다. 해당 법령이 적법한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 체포, 구류 또는 투옥을 금지하기 때문이었다.

민주주의는 사회 내의 정치적인 권력이 개념적인 신과 지구상의 가까운 통역자(왕, 황제 등)에서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자주권으로부터 나온다는 근본원리에 기초한 체제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민주주의 아래에서 국민의 동의를 얻어 통치한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자유 정부에서 통치자는 하인이요, 국민은 그들의 상관이자이자 주권자”라고 쓰면서 민주주의 개념을 확고히 만들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체제는 완벽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타락하고 와해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1947년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시도된 정부 형태를 제외하고 가장 나쁜 정치 형태이다”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대의민주주의는 취약한 정부 형태이고, 당연하게 여겨질 수 없다. 대의민주주의가 실존하고 지속하려면 특별한 조건과 지속적인 경계가 필요하다. 그래야 그것이 독재자의 영향이나 다른 유형의 과두제 집권층에 의해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 민주주의는 기본 원리 세 가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

1. 정치적 소수자를 고려하여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선거 또는 국민 투표에서 당선된 국민이 최종 권한을 행사해야 합니다;

2. 법 아래에 국민은 평등해야 합니다 그리고

3. 첫 두 원칙이 지켜지도록 보장하기 위한 헌법 규칙과 정치 및 법률기구가 필요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는 결코 자연스러운 정부 체제가 아니다. 특히 전체주의적 독재정권 같은 독재정권은 폭력, 압살과 개별 군주 또는 과두정치 정부에 의존하여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규제를 가한다. 사실 이에 의해 역사를 통틀어 왕, 황제, 선동가, 폭군, 독재자, 과두 정부가 절대권력을 강탈하고 국민을 지배하며 야당 및 기타 정당을 없애게 되었다.

사실 어떤 민주주의도 권위주의적 압박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민에 의해, 편견이 없는 언론에 의해, 지식인 및사상가에 의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주의 헌법과 부패하지 않은 사법 제도에 의해 변호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Is Democracy Consistent with Islam?

민주주의는 이슬람 제도와 함께할 수 있을까?

20세기 후반에 민주주의 제도를 따르는 국가의 수가 크게 증가했다.

20세기 전반은 두 차례 세계 대전과 심각한 경제 침체로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에서 비롯되어 다수 국가에서 고질적으로 발생한 경제적 사안과 빈곤은 그때 당시 독재자 및 전제 군주들을 위한 왕성한 토대를 만들었다. 그 기간 동안 민주주의 국가의 비율은 31 퍼센트를 넘지 않았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세계에 전제 군주국이 총 137개국이 존재한 반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는 12개국에 불과했다 (즉, 민주주의 헌법과 민중 자유를 위한 보호, 자유 선거, 독립된 사법부를 지닌 국가).

20세기 후반에 상황이 극적으로 변했다. 이전에는 세계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발전이 있었다. 민주주의 국가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향후 전쟁을 방지하겠다는 사명을 가지고 1945년에 유엔이 창설되었다. 비록 회원국 50국 모두가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수호하지 않았지만 일부 50개국은 유엔의 창립회원국이 되었다. 그리고 세계 인권 선언은 민주주의 기본 개념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면서 선포되었다. “국민의 의사가 정부 권력의 기반이 된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 동안, 중요한 지정학적 발전이 두 가지 일어났다.

– 먼저 1945년부터 1960년대까지 미국 및 기타 국가에 의한 압력 아래에서 발생한 공격적인 독립운동을 통해 이전 식민지 정치체제로부터 식민지 국가를 해방시켰다. 이러한 탈식민지화 과정은 아프리카와 특히 오늘날 가장 인구가 많은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로 대표되는 아시아에서도 발생했다. 이로 인해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는데, 그 중 많은 국가가 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했다.

– 두 번째로, 1991년 12월 소련 붕괴와 이어진 해체는 동유럽 내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의 숫자를 극적으로 증가시켰다.

No less than 14 of the former Soviet republics became independent states, besides Russia. 러시아를 제외한 구소련 공화국 14개국은 독립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공화국 중 오직 소수만이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의 발트 3국) 진정으로 민주적이고 자유로우며 공정한 선거를 치룬다. 그러나 새로운 국가 중 일부는 사실상 독재 정권(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하에 있으며 상징적인 선거를 치를 뿐이다. 구소련 공화국 중 기타 5개국 중 몇몇은 더 민주적인 국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민주주의 및 권위주의가 혼재한다.

문제는 2006년 이후로 세계에서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는 감소해왔다는 것이다.

최근 스탠포드 대학연구진은 미국의 도덕적인 리더십이 없다면 모든 민주주의는 추락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경보를 울렸다. 래리 다이아몬드(Larry Diamond) 정치학자는 «역경: 러시아의 분노, 중국의 야망, 미국의 자만으로부터 민주주의를 구출하기»라는 새로운 저서를 출판했다. 그는 이 책에서 미국 및 해외에서 독재주의의 증가 추세에 의해 자유가 어떻게 침해되고 있고,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어떻게 약화하거나 실패했는지에 대해 다루었다. 예를 들어, 그는 최근 2006년까지만 해도 모든 국가의 62%가 민주주의를 따르는 국가로서 기능을 하고 있었으나 2017년에다다르자 그 수가 51%로 감소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언젠가 21세기가 ‘전제 군주의 부상’으로 정의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감지했다.

이는 왜 그러한가? 그 중 주된 요인은 국내 경제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민주 정부의 역량을 약화시킨 경제 및 금융의 세계화로 추정된다. 또한 세계화는 중요한 경제적 구조 변화를 야기했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기술 및 산업의 성장을 촉진해왔지만, 특히 오래된 산업 내 일부 노동자 집단이 뒤쳐지면서 탈산업화 과정과 고임금을 받는 직업이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다.

일부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쇠퇴하는 또 다른 원인은 세계화가 과도하게 빠른 속도로 지나가 버린점에 대한 민족주의자들의 반발 때문일 수 있다. 많은 국가는 점점 허술한 국경지대를 형성하면서 외국에서 온 이민자와 난민의 유입이 증가했고 몇 사람은 “민주주의는 그들에게 잘 적용되지 않으며 더 이상 그들의 이익을 증진하지 않는다”는 말에 설득 당했다.

어느 정도의 민주주의 후퇴 또한 지난 수십 년 동안 목격되어 왔다. 일부국가는 과거 관습처럼 공공 조사 위원회를 설립하기 보다 기술 관료 또는 판사에게 논쟁의 여지가 있는 사회 및 정치적 사안을 해결할 권리를 위임하는 경향성을 보였다.

사실 특히 유럽 연합 내 일부 국가에서 중요한 정치 권력이 국가 정부로부터 선출되지 않은 기술 관료로 이동함에 따라 민주주의 결핍을 초래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 의지를 좌절시키고, 소외시키며 국가 내 정치인에 대한 믿음을 훼손시키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영국인들은 국경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고 싶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EU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다른 국가 중 캐나다를 예로 들면 1982년 이후 다수정치 세력은 소위 판사들의 정부로 이동했다. 판사들로 구성된 정부는 일반적으로 선출된 정부 관료들의 책무를 사법부가 결정할 수 있도록 맡겼다.

위에 언급된 두 가지 원인과 관련된 또 다른 요인은 일부 국가 내 소득 및 부의 불균등 증대와 국내 정치에서 거부를 위한 역할과 관련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부유층을 위한 민주주의’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경제와 금융의 세계화가 국가간의 세계적인 불평등을 감소시켰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산업화된 국가들 내의 불평등을 증가시키기도 했다.

예를 들어 미국 내세계화로 성공한 사람들은 세계화로 패배한 자들에게 보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부과해야 하는 세금을 낮추기 위해 넘치는 부를 활용하여 미국 정부에 영향을 끼쳤다. 이는 불균등 증가에 대한 정치 및 경제적 요인에 추가할 수 있다. 미국 및 기타 국가에서 나타나는 증가하고 불안정한 정치 양극화는 사회적 양심이 결여된 일부 자본가들의 무한한 욕심에 대한 대중적인 반응으로 보여질 수 있다.

 

결론

금세기에 나타나는 민주주의 쇠퇴는 경제적 및 정치적 요인 서로 얽힌 사안으로 보인다. 민주주의로부터의 후퇴를 멈추고 이를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경제적, 정치적 해결책을 모두 찾아야 할 것이다. 자만과 현실 부정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Rodrigue Tremblay (로드리그 트렘블레이 교수)

«세계 윤리 강령, 10 휴머니스트 원리», «신생 미국 제국»의 저자

 

2020/01/02 글로벌 리서치

금, 2020/01/2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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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새로운 10년(decade)의 시작에 들어 왔다. ‘20년대’가 시작되면서 대다수 사람들은 20년대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게 되었다. 현대사에서 매 10년은 더 포괄적인 역사적 서술로 엮인 저명한 상징, 사건 및 주제로 정의되는 경향이 있다. 비록 주어진 사건 또는 발견의 이면에 있는 요소들이 더 오래 지속되거나 깊이 뿌리 박혀 있을지라도 말이다. 예건데, 세계는 1940년대를 전쟁 및 파멸의 시기로, 1960년대를 반체제 문화 및 반항의 시기로, 1990년대를 새로운 ‘현대성’의 시기 등으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역사는 2010년대를 어떻게 돌아볼 것인가? 필연적으로 역사는 항상 나중에서야 깨달음을 주기 때문에 현재의 대답은 불가피하게도 미완성이다. 우리는 세계가 아직 이루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미래 역사가들이 회고할 수수께끼에 오늘날의 사건들이 어떻게 ‘들어맞을지’ 확실히 예상하거나 파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2010년대의 10년사가 1991년에 구축된 ‘자유주의적 합의’가 무너지기 시작한 시대로 개념화되어 역사의 예비 전환점(preliminary turning point in history)으로 회고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0년 동안 통합 및 조화로운 세계에 대한 꿈이 흐지부지 사라졌다.

온라인 대중 매체가 부상하면서 사회가 극적으로 변화하도록 촉진되었고, 성난 반체제 정치 및 정체성 갈등이 뒤끓던 서구에 새로운 형태의 불만을 매개했다. 세계화는 역행했고, 10년이란 시간은 한 때 역사에 국한된 것으로만 여겨졌던 거대한 패권 경쟁이 재현됨에 따라 결국 퇴색되었다.

2010년대는 ‘소셜 미디어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소셜 미디어가 정식으로 출시된 시기는 그보다 10년 전이지만, 페이스북(Facebook), 트위터(Twitter) 및 기타 미디어는 스마트폰이 등장함에 따라 세계 문화로 확고히 통합되었는데 이런 현상은 최근 몇 년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바로 이 장치 곧 스마트폰은 수십억의 인생을 영구적으로 바꾸었고 기존에 시간 할당제로 편리함을 주었던 인터넷을 일상 활동 자체의 본질적 요소로 이에 맞게 편리해질 수 있도록 탈바꿈시켰다. 소셜 미디어는 그 자체가 없는 상황을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 사회에 융합되었다.

결과적으로 대중 소셜 미디어의 부상에는 심오한 정치적 영향이 있었다. 기존 언론매체를 벗어나,이제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견해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새로운 플랫폼과 방식이 생겼다. 그 동안 자주 소식을 접할 수 없던 사람들도 오늘날에는 수백만 명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신문, 텔레비전과 같은 전통적인 매체를 넘어 사람들의 정보원 및 연락망이 다양해졌다.

자연스레 이러한 매체가 없었다면 사회에서 고립되고 소외되었을 이들이 새로이 불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가 생겼다. 2008년 서양 국가들에서 벌어진 금융위기라는 사건과 뒤따른 긴축 재정에 대해 사람들이 소식과 견해를 공유하면서 분노하고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정치가 양극화되기 시작했다.

정치가 양극화되고, 좌파 및 우파의 새로운 움직임이 대중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회에 영향을 미치면서 1991년 이후의 소위 ‘자유주의적 합의’가 산산조각이 났다. 새로이 부상한 포플리즘 운동은 현 상황을 유지하고자 하는 엘리트 계층과 권력 계층을 공격했고, 결과적으로 전세계 곳곳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선거 결과를 야기했다. 이제 ‘중도 정치’를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2010년대는 브렉시트, 도널드 트럼프 등으로 기억되는 시대가 되었다. 확실하게 인지된 세계화의 불확실성 속에서 급속히 형성되는 대중의 불평을 무기 삼아 나타난 현상들이다.

미국 내 변화는 지정학적 파급력을 지닌다. 이른바 1991년 자유주의적 성향을 지닌 서구의 승리가 더 이상의 영향력을 상실하자, 변화하는 세계를 중심으로 엄청난 불안과 불확실성이 자리잡았다. 정치인들은 정치적 문제, 불평등 및 자신들의 실패에 대해 새로운 희생양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에 부상하는 포플리즘을 이용하여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두려움이 조직적으로 자리잡도록 악용하였다.

미국 엘리트 계층은 트럼프 대통령의 부상이 러시아의 잘못이며 모스크바가 소셜 미디어의 거대 기업을 활용하여 편집증을 유발시켰다고 비난했다. 이런 대외 의혹 풍토 속에서 정작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중국에 대한 공포와 미국의 ‘강대국 패권 경쟁’의 부활을 조성하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라는 문구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것이 2010년대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그것은 2010년대가 불확실성과 불안정의시대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고 시사한다.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으로 소셜 미디어 문화가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성난 포플리즘적 민족주의로 변모한 서양사회에 새로운 불안정을 초래했다.

미국은 세계에 대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점점 더 편집증적이 되었다. 이후 미국은 공격적으로 두려움을 유발하고 지정학적 투쟁을 추구하며 오랫동안 유지된 팍스-아메리카나를 여전히 갈망함으로써 실패로부터 벗어나 다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던 시기였다.

 

톰 포우디(Tom Fowdy)

중국 국영방송 CGTN 칼럼니스트

옥스포드 대학교의 중국학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더럼 대학교에서 정치학 전공

목, 2020/01/1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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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과 마카오는 1997년, 1999년에 각각 중국에 반환된 이후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로 정의되는 방침에 따라 통치되었다. 홍콩과 마카오 모두 중국과의 재통합 이후 특별행정구역(SARs)으로서 50년간고도의 자치권을 보장받았다.

두 도시는 중국령이 되었지만 중국 본토로부터 독립된 행정, 입법, 사법 자치권을 통해 독자적인 국정을 관할한다. 홍콩 기본법에는 중국 정부가 외교와 국방에 대한 주권을 갖는다고 규정되어 있다. 자치권 보장이 끝나는 2047년에 과도 시한이 끝나고 나면 홍콩 도시의 미래는 중국에 귀속된다.

선거가 치루어진 이후, 중국 인민일보의 1면 논평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실렸다.

“홍콩은 중국의 홍콩이고 홍콩 사무는 중국 내정에 속한다. 홍콩 문제에 외부 세력의 간섭을 불허하는 것은 중국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브라질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밝힌 바와 같이 중국 정부는 변함없이 홍콩 문제에 대한 외부 세력의 어떠한 개입도 반대할 결의를 지녔다고 전했다”는 내용도 이어졌다.

지난 11월, 홍콩에서 구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중국의 환구시보(環球時報)는 범민주당이 “전체 452의석 중 347석을 차지하면서 압승을 거뒀다”고 보도하며 18개 구 중 17곳을 장악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홍콩 구의회(DC)는 홍콩 입법회와는 다르다. 홍콩 구의회는 “지역 사회를 위해 존재하며,교통, 환경, 거주 환경과 같이 생계와 관련하여 대중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한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는 수개월 간의 ‘반체제 반향’으로 인해 2015년 선거때 47% 투표율과 비교했을 때 71%의 높은 투표율로 이어졌고, 투표 결과 또한 상당히 상이하게 나타났다고 전했다.

“범민주당이 선거에 압승하여 득의만만하자 유권자들 전반에 걸쳐 명백하게 불만스러운 모습이 나타났다.  2015년 이후 이번 선거전까지는 건제파가 지방의회를 차지하고 있었다.” 최대 친중 정당인 민주건항 협진연맹(민건령, DAB)은 기존 119석에서 줄어든 21석을 얻는데 그쳤다.

 

홍콩의 시민 불복종 운동 또는 미국의 색깔 혁명 시도?

이제 민주파는 홍콩행정장관을 선출을 담당하는 선거위원회에서 중요한 대표성을 띄게 된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식 폭력, 공공 기물 파손(반달리즘)과 혼돈 대신에 비교적으로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에 중국을 와해하려는 워싱턴의 양당 강경파들의 분노를 감안했는지 여부는 향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도시 거주민 대부분은 과거에 벌어졌던 폭력적인 상황에 명백하게 반대했다. 그들은 평온하고 정상적인 상황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홍콩을 와해 및 약화시키려는 (내부의 또는 외부의) 시도는 실패할 것이라면서 홍콩 도시는 중국의 특별 행정 구역임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주에 미국을 “세계 불안정의 가장 큰 근원”이라 일컬으며 “미국 정치인들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세계적으로 중국을 모함하고 있습니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대대적으로 일방주의와 보호주의에 관여하면서 다자주의와 다자 무역 체계를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미국이 제로섬 게임을 이어간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중국과 미국 간의 협력과 공영만이 올바른 길입니다”이라고 덧붙였다.

패권주의적 목적을 위해 다른 국가에 대한 우세를 추구하고 상호 협력을 거부하는 것은 확실히 미국의 운영 방식이 아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지방 선거 결과를 보도하면서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이번 구의원 선거는 현재는 철회되었으나 도시의 불안을 촉발시켰던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이후로 홍콩특별행정자치구에서 처음 시행된 여론의 결과입니다.”

“지난 5개월 이상 동안 폭도들은 외부(미국)세력과 협력하여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강화하여 사회 및 정치적 대립, 사회적 정서 내 균열을 일으키고 경제와 민생에 지장을 초래했습니다.”

“수개월간 이어진 사회적인 동요는 선거 과정에 심각한 지장을 주고 있다. 일부 폭도는 선거 당일에도 애국적인 후보를 교란했습니다.”

“오늘날 홍콩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여전히 폭력 및 혼란의 종식과 질서의 회복입니다.”.

신화통신은 선거 결과를 보도하지 않았다. 인민일보 역시 투표율이 높았고, 개표 작업을 완료했으며, 의원 사무실 100곳이 파손되었다는 사실을 약간 더 언급했을 뿐 선거 결과를 보도하지 않았다.

중국 영자신문 차이나데일리는 야당이 승리를 주장하고자 한다면, 동시에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뻔뻔스럽게 무법적 행동을 취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이는 명백한 사실이라고 보도했다. 도시 주민들은 몇 달 동안 CIA에 의한 폭력, 공공 기물 파손, 혼돈 속에서 인질로 잡혀 있었다.

현재의 상대적 평온함이 회복되고 지속된다면 미국이 새로이 중국 내정에 간섭하기 이전의 휴지기일 뿐일지도 모른다.

홍콩에서 보여준 무법천지의 배경은 바로 미국 제국주의의 사회악이다. 그들의 어두운 세력은 자만심, 오만함, 그리고 변화를 꺼리는 마음에 의해 홍콩 시민들이 스스로 파멸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Stephen Lendman(스티븐 렌드먼)

시카고에 거주하는 자유 연구자로서 글로벌리서치의 정기기고자이다.

월, 2019/12/3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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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한 친구에게 도덕과 외교 정책에 관한 책을 집필했다고 전하자, 그녀는 “아주 짧은 소개서 이겠구나”라고 빈정거렸다. 이러한 회의론은 일반적이다. 놀랍게도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미국 대통령의 도덕적 견해가 그들의 외교 정책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참고할 만한 서적은 거의 없다.

저명한 정치 이론가인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는 1945년 이후 미국의 국제 관계론 대학원 교육과정에서 “도덕적인 논쟁은 관행적으로 행해지는 외교적 예의 규칙과 어긋난다”고 서술했다.

회의적인 근거는 명백해 보인다. 역사가들이 미국적인 예외주의와 도덕주의에 대해 기술했을 때, 냉전시대 미국 ‘봉쇄’ 정책의 아버지로 알려진 조지 F. 케넌(George F. Kennan)과 같은 현실주의 외교관들에 의해 오랫동안 미국의 도덕주의-법률주의 전통이 추락된 것을 경고해 왔다.

국제 관계는 무정부 상태의 영역이다. 질서를 규정하는 세계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는 각자의 이해를 방어해야 하고, 생존이 위태로울 때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가치를 지닌 선택이 없는 곳에는 윤리가 있을 수 없다. 철학자들이 “당위는 가능을 예시한다”고 말하듯이 불가능한 일을 하지 않는다고 타인을 나무랄 수는 없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윤리와 외교정책을 결합하는 것은 칼을 선택할 때 잘 드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좋은 것을 고르거나, 빗자루를 사면서 잘 쓸리는 것보다 비싼 것을 묻는 것과 같은 멍청한 실책이며, 따라서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판단할 때는 단순히 외교정책이 도덕적인지 묻기보단 그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는 일부 장점이 있는 반면 어려운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함으로써 회피하기도 한다. 세계 정부가 부재한다고 해서 모든 국제질서도 부재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부 외교 정책 사안은 국가의 생존과 관련이 있지만 대부분 사안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여러 차례 전쟁에 참전했지만 미국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전쟁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인권, 기후 변화, 인터넷 사용의 자유에 대하여 다양하고 중요한 외교 정책을 선택하는 과정에는 전혀 전쟁이 수반되지 않는다.

실제로, 외교 정책 사안 대부분은 엄격한 국가 이성(raison d’état)이라는 공식의 적용이 아니라 선택을 요구하는 조건에서 가치와 균형을 맞추는 과정을 포함한다. 어떤 냉소적인 프랑스 관료는 언젠가 필자에게 “저는 프랑스 이익에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도덕은 무관합니다”고 말했다. 그는 그의 발언 자체가 도덕적인 판단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만일 그가 “모든 국가가 각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려고 한다”고 말하려 했다면 상식적인 논리 또는 싱거운 언급을 중복한 셈이다.

개별적이고 상이한 상황에서 국가 지도자들이 국익을 어떻게 정의하고 추구할 지 선택하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이다.

더욱이 우리가 좋든 싫든 미국인들은 끊임없이 대통령과 외교 정책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부당한 요청을 했다는 전화 통화가 익히 알려지기 이전부터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행실은 뉴스 톱기사에 오르면서 이론적인 질문으로부터 도덕성 및 외교 정책에 대해 회의를 일으켜 왔다.

예를 들어 2018년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 사우디 반체제 기자가 이스탄불 영사관에서 살해된 뒤, 트럼프는 사우디 왕세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잔혹한 범죄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를 무시했다고 비난받았다.

진보 성향의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는 카슈끄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비양심적인 거래이고 사실 관계를 무시한 것”이라고 기술했고, 보수 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Wall Street Journal)은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이나 린든 존슨(Lyndon Johnson)처럼 철저한 실용주의자로 간주되는 대통령을 포함해 역대 어느 대통령도 공개적인 성명에서 가치와 원칙을 준수하는 미국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사설에서 전했다.

석유, 무기 판매, 지역 안정 모두 국익과 관련된다. 다른 한편 많은 사안과 관련하여 우호적인 가치 및 원칙 또한 국익에 중요하다. 어떻게 그것들을 조합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윤리와 관련하여 현재 미국 외교정책에 대한 다양한 판단은 무계획적이고 사고 수준이 형편없으며 현재 논쟁의 다수가 트럼프의 성향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필자가 새로 집필한 저서 «도덕은 중요한가?»에서는 트럼프의 일부 행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통령들이 보인 전례가 있는 행동임을 보여줌으로써 이러한 판단을 바로잡고자 했다.

어떤 통찰력 있는 기자는 필자에게 “트럼프는 특별하지 않지만 극단적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미국인들에게 때론 외교 정책을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과 같은 대통령을 도덕적으로 명료한 진술을 했다며 칭송한다.

마치 잘 표현된 선한 언급이 도덕적인 판단을 하는데 충분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과 조지 W. 부시(George W. Bush)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적절한 수단을 선택하지 않은 선한 의도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결과를 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베르사이유 조약이나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때 우리는 단순히 결과를 통해 대통령을 판단한다.

몇몇은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킨 리처드 닉슨을 칭찬하지만, 그는 미국인 21,000명의 생명을 희생시켜서 체면치레를 위해 ‘그럴듯한 휴전’을 이끌었다. 이는 패배의 길에서 덧없는 휴전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훌륭한 도덕적 추론은 의도, 결과, 수단을 저울질하고 균형을 맞추면서 입체적인 성향을 지녀야 한다. 외교정책은 이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또한, 도덕적인 외교 정책은 타국에서 핍박을 받거나 반체제 성향을 지닌 집단을 돕는 것과 같은 특별하게 뉴스 가치가 있는 행위 외에 도덕적 이익을 조장하는 제도적 질서를 유지하도록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전쟁 때 헤리 S. 트루먼(Harry S. Truman)대통령이 핵무기를 사용하자는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의 권고를 따르기 보다 교착 상태와 국내 정치적 불이익을 수용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와 같은 도덕적인 결단을 포함하는 것이 중요하다.

셜록 홈즈(Sherlock Homes)가 말한 유명한 발언처럼 짖지 않는 개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올해에도 여전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외교정책 논쟁에서 윤리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외교 정책을 판단하기 위해 항상 도덕적인 추론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인지해야 하며, 해당 과정을 더 잘 해내기 위해 꾸준히 학습할 필요가 있다.

 

Joseph S. Nye (조지프 S. 나이)

하버드 대학 교수이자 ‘소프트 파워”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인물, “도덕은 중요한가? 루스벨트에서 트럼프까지 대통령과 외교 정책”라는 신작 출간예정

출처: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2020

화, 2020/01/28-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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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최근 미행정부와 주한 미국대사 및 미군사령관 등의 발언과 행보는 대한민국이 군사적, 외교적으로 미국의 식민지라는 사실을 재확인해 주었다. 따라서 이제는 주한미군 주둔분담금의 인상을 논할 것이 아니라, 주한 미군의 대폭적인 축소와 궁극적으로 철수를 검토하고 요구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반전평화운동에 앞장서 눈부신 활동을 진행하는 ‘전쟁없는세상-WbW’의 미군 해외군사기지 철수운동에 대한 입장을 소개한다.


대한민국은, 외세의 3만 병력을 현지에 주둔시키면서 군대 주둔 비용 대부분을 대한민국이 부담하도록 강요당하고 있고 현지 주둔사령관이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고 유엔에 거부권을 행사할 뿐 아니라 이들의 행위에 대해 국제형사재판소 또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반면에, 대외세력(주한미군)이 동의하지 않으면 북한과 화해조차 할 수 없다.

해당 외세(미제국)는 지구상 거의 모든 국가에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지구상 국가의 약 절반에 중요한 기지를 구축했다. 이들은 전세계를 단순히 통제 또는 지배를 위한 관할 구역으로 나눈다. 외세는 군사적인 목적을 지니고 우주까지 지배하려 하고, 극심한 빈곤에 허덕이는 지역에서도 부를 창출(수탈)하기 위해 국제 금융기관으로 군림하기도 한다. 외세는 자신이 원하는 곳에 기지를 건설하고 원하는 여러 국가들에 핵무기를 포함한 무기를 불법으로 설치한다. 그 점에 있어서 해당 외세는 언제, 어디서든, 법을 위반한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와 같은 중립국조차 미군에게 자국 공항 이용을 허가하고 미국 경찰들이 더블린(Dublin) 공항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에게 미국으로 향하기 전에 수색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아일랜드 내의 기업화된 언론들이 자국 내 수많은 사안을 문제로 삼고 비난할 자유를 누리고 있으나 아일랜드 내의 미군 활동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섀넌 공항(Shannon Airport) 근처 광고판을 관리하는 몇 관련 기업들은 실제로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러한 오늘의 현실은 과거 ‘식민지’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이전 역사적 맥락과 일맥상통한다. 영국인 중심 초기 정착민들은 미국으로 ‘정착’하기 이전에 아일랜드에 ‘정착했다’. 영국인들은 이후 아메리카 원주민의 머리가죽에 대한 보상처럼 아일랜드인들의 머리 및 신체 부위에 대해 금전으로 대가를 지불했다.

이후 미국은 수십 년 간 자국에 ‘정착’할 수 있는 유럽의 이민자들을 받아 들였다. 북아메리카 내 대량학살은 1890년대까지 미국 문화의 일환이었다. 한때 북아메리카를 선점한 프랑스가 영국을 격퇴시킨 전쟁을 아주 미화하여 기술하기도 하였으나, 식민(제국)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식민침탈의 행동을 멈추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를 기화로 그들은 서부지역을 침탈할 핑계를 얻었다.

미국은 북쪽으로는 캐나다, 남쪽으로는 스페인, 서부 개척을 위한 지역정부들, 그리고 끝으로는 멕시코를 침략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북아메리카 토지의 고갈은 미국의 식민지화 방식을 변화시켰지만 좀처럼 속도가 늦춰지지 않았다. 식민지화는 쿠바, 푸에르토리코, 괌, 하와이, 알래스카, 필리핀,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훨씬 더 먼 지역으로 옮겨갔다.

오늘날 미군 표현인 ‘인디언 거주지 Indian Country’는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의 이름으로 명명된 수십 종의 무기로 공격당하는 원격지의 땅을 의미한다.

군사적 정복금지 조항이 생기면서 미국의 식민지화 방식을 또 한번 변화시켰지만 실제로는 식민지화를 지연시키기보다 오히려 가속화시켰다. 1928년 켈로그-브리앙 조약(Kellogg-Briand Pact)으로 상대국의 영토 침략 행위에 대한 합법화를 종식시켰다. 즉, 식민 피지배국가는 해방될 수 있고, 다른 침략자에 의해 정복되지 않음을 의미했다. 이후 설립된 초기 유엔총회 건물은 기존 국가를 위한 51석 외에 추가로 20석이 포함되도록 설계되었다. 건물이 건설될 때 75개 국이 참여했고, 1960년에는 107개 국이 참여했다. 그 이후로 200개 국으로 참여 국가가 빠르게 증가하여 일반인들의 참관을 위해 남겨둔 좌석까지 채우게 되었다.

비록 많은 국가들은 공식적으로 독립국가가 되였으나 실제적인 식민지화 현상은 멈추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에는 영토정복이 여전히 허용되었고, 특히 주권적 독립국가들 내 주둔하는 미군기지에 대해서도 예외가 적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미국 해군은 하와이의 작은 섬인 코호알라웨(Koho’alawe)를 신종무기 시험장소로 점거하고 거주민들에게 퇴거 명령을 내렸다. 이후 코호알라웨 섬은 황폐해졌다. 1942년, 미국 해군은 알류샨 열도인들을 추방했다. 이러한 관행은 미국과 다수 국가들이 저지른 것처럼 1928년 또는 1945년까지도 비슷하게 이어졌다. 1946년,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대통령은 비키니 환초(Bikini Atoll) 내 170명의 원주민들에게는 자신들의 섬에 대한 권리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1946년 2월과 3월에 걸쳐서 트루먼 대통령은 원주민들을 쫓아냈고, 원주민들은 지원 수단이나 사회 구조가 준비되지 않은 채로 다른 섬으로 쫓겨나 난민이 되었다. 이후 미국은 에네웨타크 환초(Enewetak Atoll) 내 147명의 원주민과 리브 섬(Lib Island) 내 모든 원주민들을 퇴거시킨다. 미국의 원자력 및 수소 폭탄 실험은, 사람들이 여전히 거주하던 섬과 사람들이 쫓겨난 섬 모두를 살기에 부적합 한 지역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사람들을 모두 추방시키는 핑계를 제공했다. 미군은 1960년대까지 콰잘레인 환초(Kwajalein Atoll)에서 원주민 수백 명을 추방했다. 이에 에베예(Ebeye)에는 인구 밀도가 매우 높은 빈민가가 형성되었다.

1941년부터 1947년 사이, 미 해군은 푸에르토리코 앞바다에 있는 비에키스(Vieques)에서 거주민 수천 명을 추방하고, 1961년에는 남아있던 8,000명을 퇴거시킬 계획을 선포했으나 2003년에 섬 폭격을 중단하게 되면서 해당 계획을 철회했다. 미 해군은 인근 쿨레브라(Culebra)에서 1948년에서 1950년 사이에 수 천명을 쫓아내면서 1970년대까지 남은 거주민들을 추방하고자 했다. 해군은 현재 화산 폭발로 인해 인구가 이미 감소한 비에키스 섬을 파간(Pagan) 섬으로 대체할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되면 반환해야 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미군은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1950년대까지 계속해서 오키나와 인구의 절반인 25만 명을 그들의 영토에서 추방하여 강제로 난민 수용소로 보내면서 땅과 재산을 약속했으나 지급하지 않은 채 오히려 수천 명을 볼리비아로 일방적으로 실어 보냈다.

1953년 미국은 그린란드 툴레(Thule)에서 이누구이트인 150명을 추방하기로 덴마크와 합의했고, 이누구이트인에게 떠날 시간을 4일 주면서 그렇지 않으면 불도저와 맞서야 할 것이라며 협박했다. 이누구이트인들은 돌아올 권리를 현재까지 거부당하고 있다. 사람들은 작년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그린란드 매입을 제안할 때 당연히 분노를 느끼지만, 미국 시민 대부분은 미군이 그린란드에 어떻게 주둔하고, 정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는 모르고 있다.

미국과 영국 즉 그레이트 브리튼은 1968년에서 1973년 사이에 디에고가르시아 거주민 1500명에서 2000명 모두를 추방했다. 거주민들은 한데 모아져 배에 태워졌고, 그들의 반려견은 가스실에서 살해되었고, 디에고가르시아 섬 전체는 미군의 사용을 위해 점거되었다.

2006년, 미국 본토 내 군사 기지 확장을 위해 미 해군은 대한민국 정부에 부지를 요청했고, 대한민국 정부는 요구에 따라 해당 지역(평택)의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퇴거시켰다. 최근,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에 또 다른 대규모 군사기지를 제공하기 위해 제주도 내 마을(강정), 해안가 및 농지 130 에이커를 황폐화시켰다.

이탈리아, 니제르 또는 그 외 여러 지역의 모든 새로운 군사 기지는 해당국가 내에 주둔함에도 불구하고 지역민들을 추방한다. 그리고 모든 군사 기지에서는 해당국가의 주권, 독립, 법규를 무시한다. 걸프 지역국가(통치자)들은 미군 기지의 도움으로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고, 그러한 과정에서 주권을 포기하고 미국의 지위에 자국의 법규보다 우선권을 부여한다. 이렇듯 미군기지가 일정 지역에 주둔하게 되면, 주둔 자체로 해당 지역민들에게 미국과 지방 정부를 향한 적대감을 선동한다.

미군기지는 영구적인 주둔의 목적을 지니고 있고, 그들이 개입하고 있는 전쟁 중 일부 또한 명백히 영구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다. 미국 언론은 마치 트럼프 대통령이 끝없는 전쟁에 ‘반대’하는 것 처럼 기사를 작성하면서도 트럼프가 실제로 전쟁을 종결할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 걸프 지역 내 아직 미국의 영향력 밖에 놓인 일부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지난 3년간 미국 정부가 지속해온 ‘영구적인 전쟁’으로 인해 아프가니스탄, 예멘,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소말리아와의 전쟁상태에 직면해 있다.

미국만 유일한 식민제국의 국가는 아니지만, 미국은 전 세계 외국 군사기지 중 약 95%를 보유한다. 그리고 미군기지는 자신의 절대적 우월성에 대한 믿음에 기반하여 운영된다. 시민 단체 ‘전쟁없는세상-WbW’은 미국정부가 국제적으로 법치주의를 존중하고 더 이상의 전쟁을 중단하도록 하는 방안이 해외군사기지의 폐쇄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에 새로운 군사기지 창설을 반대하고 기존 기지의 폐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확실히 이루어질 수 있고, 이미 많은 기지들이 중단되거나 폐쇄되었다.

본 시민단체는 군사기지와 식민군국주의에 반대하는 공공교육과 비폭력적 실력행사를 통해 우리의 요구를 관철하려는 노력을 다하고 있다. 또한 군사기지가 야기하는 환경 피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도 한다. 미군기지는 수많은 국가의 지하수를 ‘지속되는 화학 물질’로 오염시켰으나 해당 국가 및 관련 당국은 지역 내 보상 또는 통제에 대한 모든 권리를 거부당했다.

또한 본 시민단체는 미식민주의자들의 선전을 역으로 뒤엎을 수 있는 접근법을 시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모든 지역에 미군기지를 두게 되면 어떻게든 미국이 더 안전해진다는 식의 설명이 행하여지고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본 단체가 지지한 법안이 최근 미 연방하원을 통과한 후 상원을 통과하지 못해 폐기되었지만, 해당 법안은 미 국방부에게 해외 군사기지가 미국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안보에 아무런 효과가 없기보다 어떻게 미국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도록 보고서의 제출을 요구한 것이다. 해외의 군사기지는 군사기지가 존재하지 않을 때보다 식민지 본국을 더 위험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이러한 보고서 연구과정을 통해 폭로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이라크가 요구한대로 즉각적으로 이라크 내 미군기지를 폐쇄해야 할 기회가 생겼다. 전세계 및 미국 시민들은 해당 요구가 실현되도록 이라크 국민들과 함께 해야 한다.

 

데이비드 스완슨(David Swanson)

‘전쟁없는세상World BEYOND War)’ 설립자 겸 상임대표

토, 2020/02/08-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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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경제다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느낄 것인가. 그것은 정보의 문제도, 지식의 문제도 아니고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의 문제이다.” 오래 전 책을 읽다가 메모해둔 구절이다. 작가는 문학작품에 대해서 한 이야기였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직면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에 해당하는 말이고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환경, 생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후변화와 문화적 인식과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미국 예일대의 문화인지 프로젝트) 결과에 따르면 새로운 정보가 자신의 신념체계를 흔들어놓을 우려가 있을 때 인간의 두뇌는 불청객을 격퇴하기 위해 ‘지적인 항체’를 생산한다. 사람들은 현실과 가치관 사이의 갈등을 경험할 때 현실을 부정하는 편향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왜 생태위기 징후에 대해 이런 ‘지적인 항체’를 갖게 되었을까?

뉴욕 타임즈가 레이첼 칼슨의 『침묵의 봄』 이후 가장 중요한 환경 관련 저작으로 꼽은 책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서 저자 나오미 클라인은 “기후변화는 자본주의와 지구와의 전쟁”이고 자본주의가 언제나 아주 쉽게 승리를 거두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전쟁은 벌써부터 진행되어 왔고, (…) 매번 경제성장의 필요성을 내세워 기후행동을 미루고 이미 합의한 온실가스 감축 약속을 깨뜨리면, 자본주의는 이긴다. 위험성 높은 석유와 가스 채취 산업에 아름다운 바다를 내주는 것만이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라고 그리스 사람들을 설득하면, 자본주의는 이긴다. (…) 베이징에서 숨이 차 쌕쌕거리는 어린 자녀에게 귀여운 만화 주인공이 그려진 방진 마스크를 씌워 학교에 보내는 수고쯤은 당연히 감수해야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면, 자본주의는 이긴다. 어차피 우리 앞에는 채취냐 내핍이냐, 오염이냐 가난이냐 하는 암울한 대안만 남아 있다고 자포자기할 때마다, 자본주의는 이긴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오미 클라인, 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2016: 45-46)

여기에는 비단 기업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자연과 세상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에 기반한 삶의 태도와 생활방식도 포함된다. 현재의 글로벌 세계경제질서가 기후변화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위기를 만들어낸 주범은 아니다. 이미 인류는 1700년대 말부터 석탄을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고 그 이전에도 생태계 파괴를 자행했다. 자본주의뿐 아니라 사회주의 경제권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가 『관념의 모험』에서 지적한 대로 인류 역사에는 언제나 너무나 근본적이어서 인식하지 못한 채 넘어가곤 하는 관념이 있어왔다. 그 관념은 그로 인한 피해자들조차도 그러한 관념을 공유할 위험이 있다.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지려면 인식되는 관념뿐 아니라 인식되지 못하는 관념의 전환이 필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문화적 서사가 달라져야 하기에 문명적 수준의 전환이 필요하다. 생태적 위기의 근원 역시 “자연은 무한하고 통제와 지배가 가능한 대상이고 인류는 자연을 지배할 권리와 능력을 부여 받았다”는 우리들의 관념에 닿아 있다.

그렇다면 생태와 조화를 이루는 경제로의 전환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이 기존 사회, 경제 모델의 기저를 이루는 논리적 가정들은 물론이고 거기에 내재한 가치 체계와 그것을 정당화하는 세계관에까지 의문을 제기하는, 문명적 수준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생태적 위기를 초래하는 자연관과 세계관을 넘어 생태와 조화를 이루는 경제시스템에 대한 상상과 전망이 필요하다.

 

자연의 경제와 인간의 경제

오늘날 우리가 생태계라 부르는 개념은 지질학자였던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집필하면서 언급한 “상호 연관된 종들의 얽힌 복합체”에서 유래한다. 다윈은 동물과 식물을 “복합적 관계의 그물에 의해 함께 묶여진 존재”로 규정했고, 에른스트 해켈은 훗날 다윈이 생존경쟁의 조건(들)이라 부른 동식물 간의 “복잡한 상호 관계들에 대한 연구”를 생태학이라 이름 붙였다.

생태(ecology)와 경제(economy)의 영어 표기와 발음은 서로 닮았다. 실제로 다윈은 생명체의 생존과 생활을 위한 활동을 묘사하면서 “자연의 경제”라는 표현을 『종의 기원』 여러 곳에서 직접 사용한다. 그는 “자연의 경제”를 생물학적 개인, 종과 환경 사이에 상호 작용하는 복잡한 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썼고, 이를 반영해서 해켈 역시 생태학을 “자연의 경제에 관한 지식의 본질”이라 정의했다. 다윈이 자연을 “경제”라고 부른 최초의 사람은 아닐 수 있지만 자연과 경제 사이의 연관과 유사성을 언급한 최초의 사람이었음은 분명하다. (Hardy-Vallée, Benoit, “The Economy of Nature: A Brief Introduction”, y, http://naturalrationality.blogspot.com/search?q=Darwin, 2007)

지구가 제공하는 자연의 경제 내에 인간의 경제가 하위체계로 존재하고 있음은 불변의 사실이다. 생산, 분배와 소비 등 인간의 모든 경제활동은 변환된 에너지를 이용해서 물질이나 비물질적 재화를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환하는 과정이다. 자연 생태계에서 경제 시스템으로 에너지와 물질이 유입되어 경제활동에 사용되고 이후 폐기물 형태로 자연 생태계로 배출되는 것을 자원흐름(through-put)이라 한다. 우리의 경제 시스템은 이 같은 자원흐름의 과정을 매개로 자연 생태계 안에 배태되어 있다. (조영탁, 『한국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 생태경제학의 기획』, 2013)

그러므로 생태와 경제는 시스템으로나 순환으로나 당연히 서로 연결되어 있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경제의 순환은 생태계의 순환체계 안에 포함되어 진행된다. 그러나 경제학은 지구 생물권의 존재에 무관심하며 생태계의 순환에 무지하고 경제순환의 물리적 한계를 무시한다. 생태와 경제의 다양한 연관 속 상호작용과 그 효과를 외부성이라는 개념 안에 집어넣은 다음 경제분석의 영역 밖으로 밀어내고 예외적인 경우 아주 제한된 방식으로 그 효과를 고려할 뿐이다. 더욱이 토양이나 기후, 생물다양성 등 지구 생물권의 대치할 수 없는 역할은 전혀 고려 사항이 되지 않는다. 하나의 사례로 인류가 먹는 농작물의 70%는 식물이 열매를 맺도록 꽃가루 운반자 역할을 하는 꿀벌의 도움으로만 경작이 가능하지만 경제학자들 중 다수는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세르주 라투슈, 탈성장사회, 양상모 옮김, 오래된 생각, 2014)

스웨덴의 환경학자 요한 록스트롬이 제시한 후 UN 리우환경회의 등을 통해 수용된 행성한계는 1)기후변화, 2)해양의 산성화, 3)오존 고갈, 4)질소 순환, 5)물 사용, 6)토지 이용 변화, 7)생물다양성 손실, 8)에어로졸 증가, 9)물질 오염 등 9개 영역으로 구성된다. (Rockström et al., 『Bankrupting Nature: Denying Our Planetary Boundaries』, Kindle Edition, 2013) 행성한계가 말해주는 것은 우리가 유한한 생태계에 속해 있고 유한한 세계에서 무한한 성장이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구 자원의 소비가 생물계의 수용 능력, 즉 지구의 생태용량 한계를 넘어 변곡점에 이르면 지구 시스템의 회복력이 손상되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적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경제 시스템이 사용하는 “자원흐름의 규모”가 커지고 “자원흐름의 독성”이 강할수록 자연 생태계의 부담과 피해는 커진다. 지금은 자원흐름의 규모가 자연 생태계의 수용범위를 넘어서려는 상황이고 자원흐름에서의 “감량화”와 “탈독성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조영탁, 위의 책, 2013: 349)

그럼에도 경제학은 거의 대부분 이러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 아마도 언젠가 우리의 미래세대는 생태와 경제가 하나의 동일한 과정임에도 당시 세대가 왜 그렇게 생태와 경제의 연관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놀라움과 의문을 가질 것이다. 이 간극을 연결하고 단절을 메우는 새로운 경제학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실은 이미 오래 전에 미국의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이 “유한의 세계에서 기하급수적인 경제성장이 끝없이 계속될 것으로 믿는 자는 미치광이이거나 또는 경제학자이다”라고 말했지만 그 말은 거의 주목 받지 않았다. 생태학에서 다루는 에너지 흐름과 물질순환을 경제학에서의 경제순환에 명시적으로 도입하고 연결하려는 시도가 생태경제학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경제학의 가장 변방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Costanza Robert, Herman Daly, Richard Norgaard et. al., 『An Introduction to Ecological Economics』, St. Lucie Press, 1997)

생태학과 경제학의 통합, 생태와 경제의 통합은 당위적 차원의 필요성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현상유지는 더 이상 선택 가능한 대안이 아닌 것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턴 보고서(『Stern Review: The Economics of Climate Change』, 2006.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영국의 경제학자 니콜라스 스턴이 온난화의 위험성을 경고한 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로, 기후변화를 경제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환경과 경제가 상충하는 의제가 아니라는 내용을 담았다)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방식의 경제, 사회적 행태가 지속되면 20세기 전반기 공황이나 세계대전과 같은 규모의 파괴적 영향이 나타날 것이고, 그에 따른 온갖 위험과 효과를 전부 고려하면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비용으로 매년 인류 전체 GDP의 5~20%를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도 추정한다. 또한 앞으로 10~20년의 시기가 이후 21세기 후반 기후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고, 지금 행동에 나선다면 최악의 효과를 피하기 위한 비용은 매년 전체 GDP의 1% 정도이므로 비용 대비 편익이라는 경제적 고려에서도 합리적 선택이라고 강조한다.

피크오일, 즉 화석에너지 시대의 임박한 종언 또한 현상 유지가 선택 가능한 대안이 아님을 말해준다. 웬델 베리와 웨스 잭슨은 화석연료의 고갈과 탄소배출의 한계점이 새로운 삶의 양식을 선택하도록 강요하지만, 그러한 한계가 없다면 우리는 원하는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비록 전환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이러한 전환이야말로 인간 사회가 지닌 성찰과 적응의 능력을 보여준다는 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Mary Berry, 『A Conversation Between Wendell Berry and Wes Jackson』, Kindle Edition, 2017)

제4차 산업혁명이 운위되고 “노동의 종말”과 “고용 없는 성장”이 현실화되는 상황도 생태적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 프란츠 알트가 강조한 대로 고용 없는 성장과 생태 위기는 우리가 조망할 수 있는 시간표 안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사회, 경제적 문제이자 동시 해결이 모색돼야 할 문제이다. 알트는 재생에너지로 전환함으로써 생겨나는 일자리는 낡은 에너지원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없어지는 일자리의 5배에 달하며, 앞으로 에너지 전환만큼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프란츠 알트, 『생태적 경제기적』, 박진희 옮김, 양문, 2004: 15, 82)

 

생태적 전환과 사회적 경제

생태적 전환을 위한 대안적 경제의 단위 요소들은 당위와 윤리의 차원에서 이미 실행의 차원으로 내려와서 현실사회 곳곳에서 새로운 실험의 사례들과 성과를 축적하고 있다. 세계경제 위기에서 협동조합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경제가 주목 받고 성장하는 동시에,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대규모 자원의 집중과 소비에 기반한 자본주의적 경제와는 다른 대안경제를 시도하는 소규모 프로젝트들이 성장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의 대표적 사례인 독일의 경우, 체르노빌원전 사고를 보고 충격을 받은 독일 남서부 슈바르츠발트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주민 650명이 원자력 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독점 공급하는 민간기업에 대항해서 1986년 시작한 재생에너지 사용 캠페인이 그 첫걸음이었다. 그로부터 25년후 독일에서는 지역사회의 참여민주주의를 통해 에너지 협동조합이 활발하게 결성되어 2011년말 현재 439개가 되었다. (Osha Gray Davidson, 『Clean Break: The Story of Germany’s Energy Transformation and What Americans Can Learn from It』, Kindle Edition, 2012) 에너지 협동조합 설립 성과로 독일에서는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의 47%가 시민들이나 협동조합을 통해 이루어지고 태양열, 풍력, 바이오매스 등으로 구성되는 재생전기의 65%가 개인이나 협동조합, 지역공동체 소유로 운영된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히 깨끗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아니라 기업이 지배하는 집중된 에너지 시스템으로부터 소규모의 분산적이고 분권화된 사회로의 사회경제적 전환이다. (Arne Jungiohann, Craig Morris, “Germany Shows It Is Worth Fighting for Energy Democracy”, Resilience.org, June 22, 2017)

제레미 리프킨의 제3차 산업혁명 논의는 지금 우리 사회에 유행하는 ‘제4차 산업혁명’ 논의와는 달리, 경제산업구조 재편과 고용전략 수준에 머물지 않고 에너지 분산과 사회권력의 분산이라는 이중의 의미에서의 “파워 투 더 피플(시민에게 권력을 넘기는)” 기획임을 강조한다. 지역과 공동체가 기반이 될 때 보다 수평적이고 분권화된 정치시스템과 보다 분산된 공동체, 협동조합 등의 사회적 경제를 지탱하는 에너지 시스템이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웨스 잭슨 또한 로컬을 지켜내고 유지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가치 있는 일이며 그것이 바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것이라 말하며, 로컬푸드 운동 역시 단순히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경제와 새로운 시스템에 필요한 결정적인 계기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Wes Jackson, “Toward an Ignorance-based Worldview”, Bill Vitek and Wes Jackson, 『The Virtues of Ignorance: Complexity, Sustainability, and the Limits of Knowledge』, Kindle Edition, 2018)

제레미 리프킨은 한걸음 더 나아가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과 새로운 에너지 체계의 결합을 통해 “협력적 공유사회”라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이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했다고 선언한다. 그는 『한계비용 제로 사회』(안진환 옮김, 민음사, 2014)에서 공유경제 확산과 확대의 기술적, 경제적 배경을 설명하는데 현대 자본주의 발전의 성과로 만들어진 커뮤니케이션, 에너지, 물류인터넷 등으로 구성된 글로벌 신경네트워크는 거의 대부분의 재화와 서비스의 한계비용을 거의 0으로 수렴되게 함으로써 자유재와 풍요로운 자원(제한된 자원이 아닌!)을 보편적인 상황으로 만들면서 자본주의적 생산과 배분에서의 시장 영역과 이윤 창출 영역을 축소시키고 글로벌 공유자원의 영역을 급격히 확장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협력적 공유사회”는 앞에서 말한 대로 이미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일상 경제생활 속에 들어와 있는 대안적 경제의 다른 이름이다. 주거, 돌봄, 재생에너지, 도시농업과 도농교류, 보육, 의료, 온라인 오픈 플랫폼과 쉐어웨어 등 다양한 영역에서 출현하고 성장하는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공유경제, 공동부엌, 지역재단, 전환마을 등이 그 형태들이다. 여기에 사회적 금융, 크라우드 펀딩, 지역화폐, 대안화폐, P2P 대출, 타임 뱅크, 크레딧 유니온, 윤리적인 은행 등 새로운 금융 거래 형태들이 협력적 공유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 역시 이 같은 사회적 경제의 구성요소들을 이윤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와 구별되는 협력적 공유경제의 핵심 경제단위로 제시하고 있으며, ILO(국제노동기구)는 이미 10여년전 “생태적, 사회적, 공동체적 목표가 하나로 수렴되는, 지속 가능한 사회발전 모델”로서 사회적 경제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생태문명을 위한 경제 체제

인간은 자신이 빅뱅으로 창조된 우주의 일부로서 최소한 두 번 초신성을 통해 재활용된 우주먼지로부터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아는,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이다. 인간이 자신의 우주적 기원에 대한 인식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인간이 지구 생태계의 교훈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우주와 우리의 관계이며, 웬델 베리와 웨스 잭슨이 청지기 역할이라 표현했던(Mary Berry, 위의 책, 2017), 지구에서 아주 특별한 존재인 인간의 책임 있는 역할이다.

인간이라는 종은 이제 스스로를 파괴하거나 구원할 위치에 있다. (찰스 버치∙존 캅, 『생명의 해방: 세포부터 공동체까지』, 양재섭∙구미정 옮김, 2010:132) 생태적 경제로의 전환이 가능하다면, 그리고 너무 늦지만 않다면 그것은 인류 출현 이래 인류가 행한 가장 위대한 선택이 될 것이다.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사물과 세상, 자연을 인식해온 방법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해서 “무한성장” 이란 관념이 갖는 반생태적, 반우주론적 함의를 돌아보고, “생태적 인간(Homo Eologicus)”을 향한 문화적 진화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생태위기는 우리가 익숙한 사회, 우리가 익숙한 문명의 급진적 변화를 요청하고 있다. 산업사회, 산업문명의 전환은 실로 지난한 과제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궁극적으로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해야 한다. 새로운 문명의 명칭이 무엇이든 핵심은 생태문명, 생태친화적 문명이 될 수밖에 없다. 생태문명을 위한 경제 체제는 지구의 수용능력 안에서 운용되는 생태적 경제가 되어야 한다. 무한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주의 대신 경제생활의 목적과 가치가 반영된 경제활동을 하는 개인과 경제조직, 새로운 경제주체를 만들어내고 경제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와 유∙무형의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그것은 재생에너지와 농업, 교통과 휴먼서비스를 중심으로 분권화된 지역들에 기반한 사회적 경제 생태계의 구축이 될 것이다.

 

정건화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월, 2020/01/27-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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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 후보로 지명하였고, 9월 9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였다. 이 한 달 동안 한국 언론은 조국 법무부장관후보에 대한 사상 유래가 없는 치열한 검증보도를 하면서 이번 사건의 핵심 주역으로 등장하였다. 또한 검찰도 국회인사 청문회가 끝나던 그 시각에 조국 신임장관의 부인을 기소함으로써 또 다른 핵심 주역으로 등장하였다. 이렇게 정치권과 언론, 검찰이 플레이어가 되어서 만든 조국 이벤트는 광화문과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 주최 측 추산 2백만 혹은 3백만의 시민을 끌어내는 마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수많은 시민을 광장으로 호출한 블록버스터급 흥행성공에도 이벤트의 주역인 언론과 검찰이 마냥 웃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검찰은 연일 검찰의 잘못된 수사관행, 수사와 기소독점, 불공정한 검찰권 집행 등의 이슈로 궁지에 몰리고 있고, 언론 역시 부실한 사실검증과 편향된 보도, 의혹 부풀리기 등의 잘못된 보도관행으로 시민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다.

조국장관은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언론 검증 보도량 감당할 수 없을 정도…”,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네이버에서 후보자 신분이던 한 달 동안 관련기사를 검색한 결과 적게는 13만 건, 많게는 80만 건이 검색되었다고 한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장관임명 직후인 9월 10~24일의 15일 동안 주요 신문과 방송에서 보도된 단독기사는 7개 종합일간지 99건, 7개 주요방송국 67건으로 총 166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단독보도 중 검찰 및 법조계를 출처로 하는 보도가 81건에 달하고 있다.

전례가 없는 이렇게 많은 기사와 단독보도들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조국장관을 둘러싼 사건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도리어 정치권과 언론, 검찰에 대한 시민의 저항이 구체회되고 있다. 시민들은 지난 10년간 진행된 서울대 입시의 실태도 알게 됐고, SCI논문의 저자 적격성 기준도 알게 됐다. 동양대에서 조국장관의 딸이 어떤 봉사를 했고, 장관의 부인이 해명 과정에서 손을 떨었다는 사실도 안다. 심지어 장관 딸의 중2 때 일기장의 압수수색 과정과 압수수색에서 검찰이 먹은 식사메뉴까지 안다. 하지만, 정작 사건의 의미와 실체적 진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래서 모두들 추측한다. 이건 시민들뿐만 아니라 정작 보도를 하는 기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기사는 ‘추측 된다’ ‘알려졌다’ ‘의혹이 있다’로 도배되어 있다.

언론 보도는 경우에 따라 ‘사실(fact)’이 ‘진실(truth)’을 감추는 경우가 생긴다. 격투기선수 출신인 K씨와 평범한 일반인 L씨의 싸움을 상상해보자. K씨와 L씨는 우연히 만난 술자리에서 말다툼을 벌이다 주먹다짐으로 벌였다. 당연히 격투기 선수 출신인 K씨가 L씨를 늘씬하게 두들겼는데, 이 과정에서 L씨도 저항하면서 K씨를 몇 대 때렸다. 다음날 기사에 L씨가 격투기 선수출신 K씨를 폭행했다는 기사가 나왔다면 어떨까? L씨가 K씨를 때린 건 팩트다. 그렇지만 사건의 실체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진실보도가 아니며, 이런 뉴스가 바로 가짜뉴스다.

바람직한 보도를 평가하는 기준은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에 있어야 한다. 진실보도는 사실성, 완전성, 균형성, 투명성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진실보도는 사실에 기초해야 하며, 사건을 분절화 파편화해서 퍼즐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 사건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체적인 모습을 가감 없이 최대한 모두 그려야 한다. 또한 진실보도는 이해당사자 모두의 의견을 균형 있게 담아야 하고, 취재원이나 정보 소스에 대해서 가능한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기자들은 조국장관에 대한 보도가 과연 이런 기준을 충족하고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봐야 하고, 독자들 역시 이런 기준을 갖고서 보도를 접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조국장관 관련 기사에 등장하는 보도에 남발되고 있는 ‘의혹이 있다’, ‘전해졌다’, ‘짐작된다’, ‘예상된다’, ‘추정된다’ 등의 추상적 서술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는지 되물어봐야 한다. 보도가 가진 사실성은 끊임없는 사실확인, 팩트검증에 의해서 충족될 수 있다. 80만 건에 이르는 보도가 얼마나 사실확인, 팩트검증을 거쳐 작성되었는지 알 도리는 없으나, 보도된 내용 자체만 보아도 대충 짐작이 가능하다.

보도가 얼마나 보도의 완전성을 추구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조국장관 일가에 대한 수십만 건에 가까운 보도들을 통해 조국장관 부인의 손에 떨렸는지, 압수수색이 몇 시간이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검찰이 짜장면을 먹었는지 한식을 먹었는지를 아는 것이 사건의 진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고, 이런 것이 단독이나 특종이라고 올리는 언론사들이 정상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파편화되고, 분절된 사실을 전달하는 기사들이 혹시 본 사건의 진실을 덮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마치 백대 때린 가해자를 폭행당한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마법을 부리려는 의도가 없기를 바랄뿐이다.

현재 조국장관 관련 보도에서 불편한 점은 균형성에도 있다. 우리는 검찰이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검찰의 행위를 공적인 행위 내지 중립적인 행위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검찰이 기소를 하면 당연히 죄가 있으니까 국가가 나섰겠지 생각할 수 있지만, 엄밀히 이야기해서 검찰은 소송의 당사자이다. 검찰이 사건 심판의 주체라면 굳이 재판을 할 필요도 없이 그냥 검찰이 다 판결을 내리면 될 일이다. 그렇다면 언론 보도는 당연히 검찰의 주장과 동등하게 피의자에게 반론권을 제공하는 것이 정당하다. 사실 이런 검찰의존의 관행을 깨고 법원내지 공판 중심의 보도관행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언론계 내에서도 계속해서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여전히 언론은 검찰의존적인 취재관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을 몰고온 논두렁 시계보도의 참극을 겪고도 여전히 언론은 반성을 하지 못하고 있다.

보도는 최대한 투명해야 한다. 보도의 내용은 언제나 검증을 통한 사실확인의 가능성에 열려있어야 한다. 사실에 대한 검증과 재확인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취재원이 투명해야 한다. ‘관계자에 의하면’이 남발되는 기사는 좋은 기사가 아니다. 최소한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이름이 드러나야 하고, 취재과정에서 정보를 제공한 취재원이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 우리는 모든 지식과 정보가 검증가능성에 열려있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룰을 가진 세상을 살고 있다. 아무리 확실하고 논리적인 지식 내지 정보라도 타인의 검증이 불가능하다면 지식이나 정보로서 인정되어서 안 된다.

기자가 진실보도를 하는 것은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는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무한한 팩트 검증도 불가능하고, 사건 전체를 완벽하게 전달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이해당사자들의 사이에서 균형잡힌 보도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기계적 중립은 가능할지 모르나 균형의 추는 항상 모호할 수밖에 없다. 언제나 취재원을 밝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취재원이 공개에 동의를 해야 하고, 취재원이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기자에게 진실보도는 시지푸스의 바위와 같은 것이다.

이 시점에서 조국장관과 그 가족에 대한 80만 건의 보도에 대해서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연 80만 건의 보도가 그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는지? 더 나아가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보루로서 언론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많은 시민들이 왜 기성언론을 불신하고 언론개혁을 이야기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검찰이 스스로 휘두른 검이 자신의 목을 겨누게 되었듯이, 이제 검찰을 개혁하고 나면 그 다음 우리사회의 특권과 반칙을 뿌리 뽑기 위해 개혁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언론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정완규

정책연구소 이음 선임연구원

화, 2019/10/15-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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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미네아폴리스에서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에 의해 무자비하게 살해당하자, 시민운동가들과 시위참석자들은 ‘경찰의 예산을 삭감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했고, 미네아폴리스 시의회는 이에 부응하여 삭감의 의사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정작 구태의연한 민주당 무리들과 선출된 공직자들은 이러한 요구에 식상하여 있다. 민주당 차기 대선주자 내정자인 조 바이든은 경찰예산의 삭감에 반대의사를 밝혔고 경선 과정의 경합자였던 버니 샌더스도 이에 가세하였다.

그러나 미국역사에서 해로운(harmful) 공적 조직에 대해 예산을 줄이려는 생각은 좌파와 민주당원들에게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경찰예산의 삭감을 요구하는 가운데 국방비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이들 좌파 그룹과 민주당원들 사이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국방예산의 삭감이라는 매우 중요한 정치전략이, 사실 그 동안 민주당의 주류와 반전운동가들 사이에 포기되어 있던 상태이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경찰예산의 삭감이라는 요구가 돌출되면서, 세계경찰력이라는 야심을 배경으로, 과다하게 팽창된 국방예산에 대한 삭감요구가 다시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미 1960년대와 70년대에, 뿌리가 깊은 반전운동의 조직으로 자유와 평화를 위한 여성국제연대는 이미 유명해진 다음의 문구를 스티커에 새기었다 “폭격기에 장착할 폭탄의 구매를 중단하고 교육에 필요한 모든 예산을 확보하는 위대한 날을 위하여.”

경찰예산삭감의 요구가 그러하듯이, 국방예산의 절감은 단순히 구호가 아니라, 정치철학이자 투쟁이다. 반전조직들은 국방과 전쟁에 예산의 우선순위를 배정하는 것은 교육과 같이 평화를 위한 재원을 무시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Black lives matter, 그리고 미국시민의 권리 American civil rights의 구호도 같은 흐름을 타고 있다. 노동조합은 경찰예산을 삭감하여 이를 시민들의 심리치료를 위한 서비스와 흑인 거주지역의 사회투자 예를 들어 학교에 투자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 동안 경찰 간부들은 자신들의 조직은 최후의 보루로서 역할을 해왔다고 주장하면서 예기치 않은 예산삭감에 대처하여 왔다. 이런 배경으로 2017년을 기준으로 시카고 예산의 38%가 그리고 미네아폴리스는 예산의 35%가 경찰력 유지에 투입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타격을 받은 뉴욕시 조차 2021년의 예산계획을 보면, 교육과 주거 그리고 보건 등 공공 서비스 분야에서 20억 달러를 삭감하는 반면에, 경찰예산은 고작 0.3%을 삭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2012년 당시 시키고 시장은 시가 운영하던 심리치료 클리닉을 폐쇄시켰고 이로 인해 현재까지도 심리치료를 받으려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채 투입된 경찰들이 시민들에게 공포라는 심리적 위협을 제공하는 원인이 되었다. 전체 인구의 3%에 해당하지만, 심리적 고통을 겪는 시민들의 25-50%가 법적 강제집행이라는 사건을 악몽처럼 경험하였다.

민주당의 역사에서 보면 국방비를 억제하여 이를 사회서비스 분야에 투자하는 것이 한때 주류적 흐름이었다. 1950년대에는 (매카시즘의 광풍시절) 과다한 규모의 국방비를 지지하기도 했지만, 존슨 대통령의 집권시절이었던 1960년대에 극적인 전환을 이루었다.

존슨 대통령은 국방비를 증액하고 이를 우선시하는 위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선언하였다 ”지구의 한편에서 진행되는 미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여인(위대한 사회)과 헤어져야 한다면 우리는 나라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위대한 사회라는) 나의 프로그램은 가난한 이들에게 양식을 공급하고 집이 없는 이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꿈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존슨은 궁극적으로 전쟁을 종결시켰고, 자신의 희망을 사회적으로 전환시키고 정치적 전망으로 밝히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미국이 월남전에 깊이 관여하면서 국방비가 엄청나게 팽창하자) 이러한 재앙 상황에 대하여 부분적인 저항이 70년대와 80년대 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전개되면서 국방비를 삭감하고 군의 예산을 동결하려는 요구들이 이어져 왔습니다.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인 알렌 크랜스톤은 “꼭 필요한 수준으로 국방비를 억제해야 한다’고 경고를 날렸고, 1990년에는 조지아 상원의원인 샘 넌이 향후 5년 간 2,550억불의 국방비를 삭감하자고 제안한 바 있습니다. 콜로라도 하원의원인 팻 쉬뢰더는 레이건이 우선적으로 추진하던 MX 이동식 무기시스템과 B-1 전략폭격기의 예산을 철회시키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민주당 의원들은 결코 과격하지는 않았습니다. 샘 넌의원은 국방예산을 너무 급하게 삭감하길 원하지 않았고, 팬타곤의 비난에 대하여 팻 쉬뢰더는 방위산업체들을 ‘안전의 여왕 welfare queen’ 에 비유하며 레이건 시절의 빈곤층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주의를 수용하기도 했습니다. 요지는 샘 넌과 팻 쉬뢰더가 결코 지나친 좌파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폭력적인 조직의 예산을 줄이고 이를 비폭력적인 해결책에 투입하려는 것은 건전한 상식에 기초한 것입니다. 바이든과 같은 민주당 주요 지도자들이 1982년에서 2007년의 15년 간에 445%가 증가한 경찰 예산에 3억불의 추가지원을 제안할 것이 아니라, 위에 언급한 전례의 선배들 주장에 합류하여야 합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찰예산의 삭감 요구를, 지난 몇 년간 미국에서 어렵게 형성되고 있는, 반전운동의 프로그램에 활력을 부여하는 것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민주당 의원들은 방위비 예산을 통제하려는 노력조차 포기한 듯 합니다. 반전운동을 하는 좌파그룹은 샌더스에게 반전-플랫홈을 마련하도록 요구해 왔습니다만, 그가 경선에 패한 지금, 차후의 대통령 후보감이 될만한 새로운 정치인을 발굴해야 합니다.

이러한 목표의 핵심은 반드시 ‘국방비 삭감’이어야 합니다. 시민 활동가들은 오랫동안 1997년에 제정된 국방수권법 제1033조를 비난하여 왔습니다. 이 조항에 따르면, 군대의 전술적 장비를 경찰조직에 전용할 수 있으며, 경찰은 이에 따라 철갑차량과 SWAT(대테러 특수기동) 대원들을 동원하여 시위하는 시민들과 대처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발하여 하와이 상원의원인 브라이언 샤츠는 1033조의 즉각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시위대 앞에 왜 군대가 무리한 장비들로 과잉 무장해야 하는지 질문해야 할 시점입니다. 화염을 내뿜는 탱크들과 전쟁무기들이 미국 도시의 거리에서 사라지도록 하는 가장 빠른 길은 군대에 과다한 재정이 투입되는 것을 우선적으로 저지하는 것입니다. 군의 예산이 축소되면 미국의 지도자들은 군대를 경제적이며 또한 도덕적이고 명예롭게 운용하는 것에 대해 보다 신중하고 명료하게 숙고하게 될 것입니다.

군대조직은 또한 국내의 사회 저투자(disvestment)와 가난을 직접적으로 악용하고 이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군대인원의 보충부서는 가난한 계층과 빈곤 가정에 각별히 공을 드립니다. 2004년의 경우, 미국 군인들의 2/3가 중위 이하의 가정에서 충원되었습니다. 군인이라는 직업이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일반건강보험의 혜택을 받고 대학까지 진학할 수 있는 특전을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종입니다. 반면에 정부는 가난한 계층과 소수인종의 집단에게 교육과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매우 인색합니다.

정부는 함께 사는 이웃흑인들을 수시로 불러 세우고 괴롭히는 경찰조직에 마구 돈줄을 제공합니다 동시에 예산이 넘쳐나는 군대조직은 가난한 계층에게서 필요한 인원을 보충하면서 미국이라는 끝나지 않는 전쟁터에서 선택의 여지도 없이 서로에게 총질을 하도록 역할을 합니다.

미국은 한 해에, 중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국방비를 넘어서는 1,150억불의 예산을 경찰조직에 쏟아 붓습니다. 이에 더하여 차기 순위의 10 개국의 모든 국방비를 합한 것보다 많은 7,320억불을 국방예산으로 지출합니다.

경제적 선택은 동시에 도덕적 선택이어야 합니다. 경찰예산 삭감을 요구하는 활동가들과 시민들은 세금으로 사람을 무기와 탱크로 무장시키는 미국의 모습이 불가피한 필연이 아니라 선택적인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미국 국방비의 과다지출을 비난했던 과거의 주류 정치인들은 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을 다시 불러 세워야 합니다.

“경찰예산을 삭감하라, 국방비를 삭감하라 – 평화와 평등과 희망에 투자하라.”


참조자료

World BEYOND War의 대표, 데이비드 스완손 제공.

AOC를 포함한 몇 명의 민주당 하원의원들이 3,500억불 규모의 국방예산 삭감 법안을 6월 초에 제출하였다. 이는 미연방의회 사상 최대의 삭감제안이다. 아래는 제안서의 마지막 문장이다.

연방의회는 전쟁을 우선시하고 있는 미국의 외교정책과 전쟁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 경제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위에 상세히 제시한 바처럼 현재의 국방예산에서 3,500억불의 상당액을 삭감할 것을 제안함으로써, 해당 재정기금을 외교적 역량을 증대하고 국내적 필요에 부응하는 프로그램에 사용하여 국가와 시민의 안전을 지켜나가고자 한다”.

제안된 삭감의 상세항목들 (영어 원문 그대로 게재합니다) :

(1) eliminating the Overseas Contingency Operations account and saving $68,800,000,000;

(2) closing 60 percent of foreign bases and saving $90,000,000,000;

(3) ending wars and war funding and saving $66,000,000,000;

(4) cutting unnecessary weapons that are obsolete and saving $57,900,000,000;

(5) cutting military overhead by 15 percent and saving $38,000,000,000;

(6) cutting private service contracting by 15 percent and saving $26,000,000,000;

(7) eliminating the proposal for the Space Force and saving $2,600,000,000;

(8) ending use-it-or-lose-it contract spending and saving $18,000,000,000;

(9) freezing operations and maintenance budget levels and saving $6,000,000,000; and

(10) reducing United States presence in Afghanistan by half and saving $23,150,000,000.

 

출처 : Foreign Policy on 2020-06-15.

Noah Berlatsky

시카고에 거주하는 자유기고가

화, 2020/06/2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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