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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주민들이 체크해야 할 정보공개 청구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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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주민들이 체크해야 할 정보공개 청구 변화

admin | 목, 2021/06/03- 02:50

 

2020년 12월 22일, 정보공개법이 개정되었습니다. (링크)

정보공개 담당자의 성실 의무를 규정하고, 정보공개위원회의 위상과 권한을 확대하는 등 많은 내용이 새롭게 바뀌었는데요, 이렇게 새로운 내용들이 많이 추가된 것은 2014년 이후 7년 만의 일입니다. 다양한 변화가 있는 만큼 부칙으로 각 조문들의 시행일을 다르게 정하고 있기도 합니다. 개정일인 2020년 12월 22일부터 당장 시행된 내용도 있지만, 개정 후 6개월, 개정 후 1년으로 시행일을 정해놓은 조문들도 있습니다. 

 

정보공개법 개정에 따라, 시행령과 시행규칙도 개정될 예정입니다.

 

오늘은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2021년 6월 23일 부터 새롭게 시행될 내용들에 주목하여, 정보공개제도의 ‘디테일’이 어떻게 바뀔지, 시민의 입장에서 알아둘 만한 내용들을 정리하여 소개하려 합니다.

먼저 정보공개 청구를 할 때마다 의무적으로 적어야 했던 주민등록번호가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주민등록번호 대신, 생년월일을 작성만으로 정보공개 청구가 가능합니다. 그동안 정보공개센터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보공개 청구 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비판해 왔습니다. 정보공개 청구권은 모든 국민에게 열려 있는데, 구태여 주민등록번호 작성을 통해 청구인을 특정하여 확인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청구인이 특정된다는 것은, 시민의 정보공개 청구를 위축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실제로 몇 해 전 정보공개센터에서 상담한 사례 중에서는 정보공개 청구 사실이 동네에 알려져 곤란한 처지에 놓인 경우가 있었습니다. 군청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더니, 담당 공무원이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청구인을 특정하고, 이장에게 그 사실을 알려 동네에 소문이 났다는 것입니다. 폐쇄적인 지역 사회에서는 누군가 어떤 내용으로 정보공개 청구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이미 2015년에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정보공개청구 시 주민번호를 확인해 처리할 이유가 없다’고 의결한 바 있습니다. (링크)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 개정이 미뤄져 오면서 주민등록번호 요구가 계속되어 오다가, 이제야 불필요하게 신상정보를 수집하던 절차가 사라진 것입니다.

정보공개 청구 과정에서 굳이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할 이유가 없다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판단!

다만, 청구한 정보가 청구인 본인의 개인정보와 관련되어 본인 확인이 필요한 경우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주민등록번호 제출이 필요하다는 점도 기억하고 넘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청구인 권리 강화된 정보공개법 개정

공공기관에서 비공개 통지를 받을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근거가 바로 정보공개법  제9조제1항제5호입니다. 보통 5호 중에서도 “의사결정 과정 또는 내부검토 과정”임을 근거로 비공개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의사결정 과정’이 종료 될 때 청구인에게 이제는 비공개 근거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통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다수 공공기관은 이러한 종료 통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법 개정에서는 5호 비공개 통지 시 아예 내부검토 종료 예정일을 함께 안내하도록 하여 청구인이 미리 종료 예정일을 확인하도록 하는 내용이 추가되었습니다. 이 경우, 공공기관이 제대로 종료 통지를 하지 않더라도, 청구인이 종료 예정일이 지나면 재차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어  편의성이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비공개 통지를 할 경우 정보공개법 제9조제1항 각 호 중 어느 규정을 근거로 비공개 통지를 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라는 내용도 새로 생겼습니다. 정보공개법에 따른 비공개 통지는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각호를 근거로 제시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이러한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법 규정에 따른 비공개 통지가 아니라, 단순히 ‘개인사생활 침해 우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조문  근거 제시 없이 비공개 사유만 간략하게 통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정보공개법 제21조 1항의 제3자 비공개 요청을 비공개 근거로 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정보공개제도의 원칙에 따르면 이러한 비공개 통지는 모두 절차 위반인데, 이번 개정을 통해서 이러한 원칙을 법조문에 확실하게 규정하여 그동안 관행적으로 계속되어왔던 잘못된 통지들을 바로 잡게 되었습니다.

공공기관에서 정보공개제도 운영을 위한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한 것 역시 중요한 변화입니다. 사실 공무원들의 입장에서 정보공개 업무는 본래 담당 업무에 딸린 부가적인 일에 가깝기 때문에, 매뉴얼에 따라 정확히 업무처리를 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현재 예고된 시행령에 따라 각 기관이 연 1회의 정기 교육을 실시한다면, 더욱 매끄럽게 정보공개제도가 운영되기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43건의 이의신청 중 은평구청이 정보공개심의회를 통해 심의한 건은 18건에 불과했습니다-_-^

 

특히 은평 주민들이 남달리 체크해야 할 중요한 변화도 있습니다. 지난 2019년, 정보공개센터와 은평구정개혁시민모임은 은평구청의 정보공개심의회 개최 내역을 분석하여 정보공개 이의신청의 대다수가 심의회 개최 없이 임의처리 되었음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는 이후 주민감사로 이어져, 은평구청이 경고 처분을 받기도 했습니다.(링크) 은평구에서 시작된 문제 제기는 지난 해 서울시 전체 자치구로 이어져, 18개 자치구가 정보공개심의회를 자의적으로 미개최했다는 이유로 경고 및 주의 처분을 받기도 했는데요, 이번 정보공개법 개정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기존에는 이의신청에 대해 심의회를 미개최하더라도 청구인이 이를 확인하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무조건 미개최 사유를 청구인에게 통지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심의회 개최 여부와, 미개최 시 사유를 알 수 있게 되어 청구인의 권리가 한층 엄격하게 보호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심의회 미개최로 논란을 빚었던 은평구청이 과연 개정법에 따른 절차를 제대로 지킬지, 은평 주민들은 더욱 더 눈여겨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6월 23일자로 바뀌는 내용들을 살펴봤는데요, 그 외에도 12월 23일부터 시행하게 될 내용들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정보공개심의회의 구성 변화를 챙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까지 정보공개심의회는 ‘위원장을 제외한 위원 중 ½’를 외부 전문가로 위촉해왔습니다.

따라서 만약 기관 임직원이 위원장을 맡는 상황이라면, 외부 위원의 비율이 절반에 미치지 못해 기관의 형편으로부터 독립적인 심의가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법 개정에 따라 12월 23일부터 ‘위원 중 ⅔’를 외부 전문가로 위촉하게 되었습니다. 외부 위원 비중이 절반 이상으로 확 늘어난 것인데요, 이런 변화로 인해 앞으로는 좀 더 독립적이고 적극적인 정보공개심의회를 기대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역시 최근 공무원 위원들의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던 은평구 정보공개심의회(링크)와도 직결된 변화인 만큼, 은평 주민들이 꼭꼭 체크해야 할 ‘디테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은평시민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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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일, 서울행정법원은 대학원생 A씨가 사법연수원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처분취소 소송에서 어이없는 이유로 사법연수원의 손을 들어줬다. 사법연수원을 대상으로 했던 정보공개청구에서 ‘비공개’결정을 받은 A씨가 이에 이의를 제기하였으나 사법연수원은 이를 기각, 결국 행정소송에 이르게 된 것이다. 헌데, 사법연수원은 A씨에게 ‘비공개’ 결정 통지문을 보냈는데 행정법원은 사법연수원이 ‘공개’를 한 것이라며 사법연수원의 처분이 위법한 것이라 볼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1. 서울시립대학교 일반대학원 법학과 박사과정 A씨는 사법연수원을 대상으로 2019년도 사법연수원에서 발간한 민사집행법 외 7권에 해당하는 교재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를 진행하였다. 이에 사법연수원은 ▲‘사법연수원 교재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저작권 침해 우려가 있는 단행본 또는 전자파일 형태로 사법연수원 교재를 제공할 수 없다’ ▲‘사법연수원 교재는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법원도서관 등에서 열람, 대출이 가능함을 알린다’며 비공개 결정을 하였다. 이에 A씨는 이의신청 등의 과정을 거쳐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그런데 서울행정법원은 사법연수원이 ‘해당 정보의 소재 안내’의 방법으로 공개한 것이라고 판단하여 소송을 기각하였다.

 

2. 사법연수원은 2018년도 까지 사법연수원에서 발간한 교재들을 단행본의 형태로 시중 서점 등을 통해 판매하였으며, 관련 법학자, 변호사 등은 물론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해당 교재를 구입하여 볼 수 있었다. 하지만 2019년도부터 사법연수원 교재를 일반인을 포함 변호사에게도 공개하지 않고 외부에서는 법학전문대학원(일명 로스쿨) 학생들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후퇴를 택한 것이다. 2018년도까지 모두에게 공개하던 정보에 대해 갑자기 2019년도부터 그 접근을 제한하고 특정 소속의 사람들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정보 인권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는 시대에 오히려 국민 대다수의 정보 접근권과 알권리를 후퇴시키는 차별적 정책이다.

 

3. 정보공개 청구 당시 사법연수원은 해당 교재를 제공할 수 있었음에도 ‘도서관에서 열람, 대출이 가능함’을 이유로 “비공개 결정”을 했다. 그런데 법원은 이를 ‘공개’의 형식으로 인정하였고 해당 사건을 기각하기에 이르렀다.
사법연수원은 이미 해당 교재의 전자적 형태의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나 이를 공개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청구 당시 2019년도 교재는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즉, 사법연수원이 ‘공개’했다고 법원이 인정한 소재 정보 역시 잘못된 정보였으며, 청구인인 국민의 정보 공개 요청을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관한 법률’ 제15조 

공공기관은 전자적 형태로 보유·관리하는 정보에 대하여 청구인이 전자적 형태로 공개하여 줄 것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그 정보의 성질상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청구인의 요청에 따라야 한다. 

 

4. 게다가 사법연수원은 대법원 산하 조직인 공공 기관이므로 사법연수원의 기록물, 간행물 등 저작물은 공공 저작물로 저작권법 제24조2 공공저작물의 자유이용 규정에 따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이 저작재산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유한 사진, 영상, 음원, 연구보고서 등으로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저작물”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연수원은 해당 저작물을 “저작권법상 보호되는 저작물”이라고 주장하며 “저작권 침해 우려가 있는 단행본 또는 전자파일 형태로 사법연수원 교재를 제공해 드릴 수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해당 교재의 2019년 이전 저작물 등은 국회도서관 등을 통해 얼마든지 피디에프(PDF) 형식의 전자 파일로 취득할 수 있음을 고려해보면 ‘저작권 침해’를 우려하는 사법연수원의 답변이 어불성설임을 알 수 있다. 결국 A씨가 요청한 정보는 애초부터 공공 저작물로서 모두에게 전자 파일로 제공했어야 마땅함에도 ‘저작권’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5. 정보공개청구제도는 “공공기관이 업무 수행 중 생산하여 보유·관리하는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더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국정운영에 대한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제도”이다. 이 제도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보다 많은 국민의 알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보공개청구 요구에 공공기관의 적극적인 협조가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 공공저작물의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국민 모두가 접근할 수 있도록 사전에 공개되어야 한다. 특히 자유로운 열람 및 이용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전자 파일의 형태로 누구나, 어디서나, 언제나 활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6. 따라서 우리 단체는 공공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사법연수원의 정책적 퇴행을 개선하여 모든 저작물에 공공누리를 적용, 국민 모두에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바이며, 서울고등법원은 1심의 오류를 바로잡고 국민의 알권리와 정보접근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올바른 판결을 내릴 것을 요구한다.

 

2020.5.27.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정보공유연대 IPLeft, 진보네트워크센터

 

[첨부] A씨_사법연수원교재_정보공개소송_의견서법원제출

담당자: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강성국 활동가
전화: 02-2039-8361 E-MAIL: [email protected]


A씨_사법연수원교재_정보공개소송_의견서법원제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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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5/27-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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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개센터가 매 달 민중의소리에 연재하고 있는 공개사유 칼럼입니다.


매일 노동자가 죽는다. 6월 1일 오전 8시, 울산광역시 울주군 소재 사업장에서 청소 작업하던 노동자가 경사로에서 떨어져 죽었다. 같은 날 오후 1시 44분, 충청남도 논산시의 개축 공사 현장에서 보강토 붕괴로 1명이 죽고 1명이 크게 다쳤다. 바로 다음 날인 6월 2일 오전 9시, 경상북도 고령군의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경사지에서 후진하던 차량에 깔려 1명이 죽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아침인 6월 3일 오전 7시 반, 경기도 평택시의 건설현장에서 지게차에 부딪혀 깔린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렇게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의 소식을 알 수 있는 것은 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 사망사고 속보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4조에서는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중대재해가 일어났을 시 지체 없이 지방고용노동청에 이를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안전보건공단은 중대재해 보고가 접수되면, 고용노동청과 함께 산업안전감독 조사를 하고, 조사 내용에 따라 사망 사고 원인을 확인하여 사망사고 속보를 올리고 있다. 이 속보로 인해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일하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사고를 당한 노동자가 어느 기업에 고용되어 일했는지, 원청 기업의 이름이 무엇인지, 이후 어떤 조치가 취해졌고 안전관리가 미비했을 경우 책임은 제대로 물었는지는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는다.

평택항 고 이선호 사고 이후 6월 3일까지 안전보건공단 사망속보 ⓒ민중의소리

 

글의 처음에 언급한 울주군 추락사 노동자는 울주군청의 공공근로 사업에 참여한 노동자였다. 논산시의 건설현장에서 매몰되어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돼지 축사의 배수관을 공사하고 있었다. 고령군에서 차량에 깔린 노동자는 (주)우석건설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평택시 건설현장에서 지게차에 깔린 노동자는 삼성물산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어느 기업이 사망 사고에 대해 책임이 있는지, 안전보건공단의 속보에서 살펴볼 수 없는 정보들은 노동문제에 그나마 관심을 유지하고 있는 소수 언론의 취재와 보도를 통해 가까스로 공개될 뿐이다.

 

왜 안전보건공단 사망사고 속보에 기업의 이름은 빠질까? 일터에서 노동자가 죽었어도, 그 사업장 이름을 밝힐 법적 의무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 제10조는 1년에 2인 이상 사망사고가 발생했거나, 다른 사업장에 비해 산업재해가 많이 일어나는 사업장, 산재 사실을 은폐한 사업장들에 대해서만 사업장 이름과 발생 건수를 공표하도록 하고 있다. 그것도 원청 기업의 이름은 원청이 산업안전보건법 상 예방조치를 위반했을 경우에만 공개한다. 그 정보도 사망사고 속보처럼 상시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1년에 한 번 공개하는데, 그것도 여러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2019년에 발생한 사고에 대한 정보를 2021년에야 확인할 수 있다. 그마저도 업종, 규모, 사업장명, 소재지, 사망자 수 등의 통계만 알 수 있을 뿐, 사고 원인이 무엇인지, 기업의 예방조치는 적절했는지, 법 위반 사항이 있다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등의 정보는 전혀 확인할 수 없다.

 

그런데 다행히 내년부터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에는 사망사고에 대한 새로운 공표 규정이 생겼다. 중대재해처벌법 제13조는 단 한 사람이 죽더라도 중대재해로 보아 해당 사업장의 명칭, 발생일시와 장소, 재해의 내용과 원인 등을 공표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공개 대상이 매우 제한되어 있고, 사업장의 이름이나 사고자 수 등만 달랑 공개되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비해 괄목할만한 개선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상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사업장만 공표 대상이라는 단서조항이 붙어있는 것이다. 왜 ‘모든 중대재해’가 아니라 ‘의무를 위반한 사업장’만 공표 대상으로 정해두었을까? 기업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제대로 지켰는데, 노동자 개인의 과실로 사망사고가 일어난다면 기업의 명예가 억울하게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일까? 그렇지만 사고 원인이 함께 공개되기 때문에 이런 억울한 상황이 생기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전체 중대재해에 대해 정보를 공개한다면, 어느 기업에서, 어떤 직군에서, 왜 사망사고가 일어났는지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를 예방하는데 오히려 큰 도움이 되는 데이터가 될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단서조항으로 인해 정보공개가 한없이 미뤄지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지금도 산재재해 발생 건수를 공표할 때, 원청의 법 위반 사실이 재판에서 확정된 이후에야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재판이 한없이 길어지는 경우, 산업재해 사업장 공개도 덩달아 미뤄질 수밖에 없다. 2017년에 발생한 사고정보가 기나긴 재판을 거쳐 2021년에야 공표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사고에 대한 여론이 사그라들고 관심이 사라진 후에야 사건에 대한 정보가 대중에 공식적으로 공개된다는 뜻이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3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5개 경제단체장들과 '경제 회복과 선도형 경제로의 도약'을 주제로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1.06.03 ⓒ사진공동취재단

 

6월 3일 기업인들로 이뤄진 경제단체장들이 김부겸 국무총리를 만났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입법예고가 임박하자, “중대재해처벌법이 과도하다”며 기업의 입장을 고려해 시행령을 보완할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과도하다’는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되었어도, 시민들은 여전히 어느 기업에서 노동자들이 사고로 죽었는지 제대로 알 방법이 없다. 매일 사고로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소식을 듣고, “더 이상 죽이지 말라”며 입법 청원에 참여한 10만 명의 시민들이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다. 곧 입법예고 될 시행령의 내용에 따라 중대산업재해의 공표 방법, 공표 기준, 공표 절차 등이 구체적으로 정해진다. 중대재해에 대해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묻는 시민들의 요구로 만들어진 법인만큼, 중대재해에 대한 더 많은 정보들이 시민들에게 빠르게 전달 될 수 있도록 시행령으로 정해야 한다.

수, 2021/06/09-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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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공개센터가 민중의소리에 연재하고 있는 '공개사유' 칼럼입니다.

2020년 10월 6일, 416가족협의회는 국회의 ‘국민동의청원’에 두 개의 청원을 올렸다. 그중 하나가 ‘4.16 세월호참사 관련 박근혜 전 대통령기록물 공개 결의에 관한 청원’이다. 가족협의회는 청원의 이유로 “4.16 세월호 피해자들은 신원의 권리, 진실(진상규명)에 관한 권리가 있으며 시민들 역시 알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10만명의 동의가 있어야만 국회 관련 상임위에 다뤄지는 이 청원은 지난주만 해도 몇만명이 모자라 맘을 졸이게 하더니 마감을 임박한 하루 이틀 사이에 결국 10만명의 동의를 얻어냈다.

그리고 같은 날인 10월 6일, 또 다른 사건의 유가족인 해상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공무원의 친형은 국방부에 정보공개청구서를 제출했다. “자료를 통해 북한군이 공무원을 발견한 9월 22일 오후 3시 30분부터 시신이 불에 타기 시작해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 오후 10시 11분을 거쳐 불빛이 사라진 오후 10시 51분까지의 시간대에 국방부가 공무원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였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전혀 다른 두 사건의 정보공개요구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사건이 발생했던 당일의 정부 조치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 요구를 다른 사람이 아닌 사건의 직접당사자인 유가족이 한다는 것이다.

어쩌다 유가족들은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일까.

세월호 유가족의 정보공개요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들은 지난 6년 동안 숱하게 정보공개를 요구했다. 시민사회도 함께했다.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소송도 하고, 헌법소원까지 했다. 하지만 유가족과 시민들이 원했던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법원도, 헌법재판소도, 정부도 모두 대답은 같았다. ‘이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

북 피살 공무원 유가족의 정보공개요구 또한 계속 이어지고 있다. 10월 14일에는 ‘해경의 월북 발표를 신뢰하기 어렵다’며 해양경찰청에 해경진술서를 정보공개청구했다. 며칠 전인 10월 28일에는 정보를 은폐하지 말고 공개해달라며 청와대에도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이들은 또 앞으로 몇 번의 싸움을 더 해야 할까.

세월호참사 기록 공개 못 한다는 이유

세월호참사와 관련해 가장 쟁점이 되는 대통령기록은 2014년 4월 16일 사고가 났던 당일에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다. 그중에서도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알고도 대면보고도, 이렇다 할 조처도 취하지 않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이다. 2014년 4월 16일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뚜렷하게 밝혀진 게 없다.

비공개에 대한 정부의 명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날의 기록이 “대통령 지정기록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번 국회청원에서 “봉인된” 대통령의 기록물을 공개해달라고 한 것이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제17조에 따르면 민감하거나 중요한 내용의 대통령기록일 경우 지정기록으로 정해 15년 동안 (개인정보의 경우 최장 30년까지) 보호할 수 있다. 정보공개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열람이나 사본제작 등을 허용하지 않거나 자료제출 요구에도 응하지 않을 수 있는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 2/3 이상의 찬성이 있을 경우, 고등법원장의 영장이 있을 경우, 대통령기록관 직원이 업무 필요에 따라 대통령기록관장의 사전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열람이나 사본제작, 자료제출이 허용된다. 하지만 이렇게 제한적으로 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문자 그대로 공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법 19조에는 지정기록을 열람한 사람은 열람한 기록에 포함된 내용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다. 지정기록 열람은 제한된 일부에게만 열람이 허용되는 것이지, 전 국민에게 공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북 피살 공무원 유가족에게 공개 못 한다는 이유

유가족이 국방부에 정보공개청구한 내용은 ‘사망한 A씨가 북측의 총에 맞아 숨진 9월 22일 오후 3시 30분부터 오후 10시 51분까지 우리 군의 북한군 대화 감청 녹음파일과 A씨의 시신을 훼손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꽃이 관측된 같은 날 오후 10시 11분부터 51분까지 40분간 녹화 파일’이다. 그리고 국방부는 11월 3일 유가족에게 ‘공개가 불가하다’고 통지했다. 국방부는 “유가족 측이 요청한 정보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보 공개법이 적용되는 대상이 아니며, 군사기밀보호법 상 비밀로 지정돼 정보공개가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군사기밀보호법은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아니한 것으로서 그 내용이 누설되면 국가안전보장에 명백한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군 관련 문서, 도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 또는 물건으로서 군사기밀이라는 뜻이 표시 또는 고지되거나 보호에 필요한 조치가 이루어진 것과 그 내용”을 1급~3급 비밀로 구분해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법이다. 하지만 군사기밀이라고 해서 아무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군사기밀보호법 제9조에 따라 모든 국민은 군사기밀의 공개를 요청할 수 있다. 비밀보호서약 등 보호조치를 취하고 난 후 제한적으로나마 군사기밀을 제공하거나 설명할 수도 있다(같은 법 8조). 하지만 그때는 법률에 따라 군사기밀의 제출 또는 설명을 요구받을 때, 군사외교상 필요할 때, 군사에 관한 조약이나 그 밖의 국제협정에 따라 외국 또는 국제기구의 요청을 받았을 때, 기술개발, 학문연구 등을 목적으로 연구기관 등이 요청할 때, 이상 네 가지 이유에서만 가능하다. 군사기밀과 관련한 피해당사자의 권리구제가 필요할 때 등의 이유는 언급조차 되어있지 않다.

정부와 국회는 누구의 곁에 있나

지금까지의 정부 대응과 현행법의 한계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유가족들의 정보공개청구한 정보들이 공개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유가족들도 이를 모를 리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왜 유가족들이 멈추지 않고 정보를 공개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일까.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서일 것이다. 정보가 없으면 진상규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상을 규명하지 않고는 유가족들이 사건이 났던 그 날에서 단 하루도,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다 저렇다 설명하는 정부의 말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 피살 유가족은 정보공개청구를 하며 내용의 민감성을 감안해 공개에 따르는 비밀서약까지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는 가족을 잃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유가족의 요청보다는 국가안보의 손을 잡았다. 세월호 유가족은 기록을 공개해달라며 한 달 새에 10만명을 모아 국회에 요구했다. 그러면서 이 기록을 국회의원뿐만이 아닌 특조위와 피해자들에게도 공개해달라고 요청했다.

앞에 했던 질문을 다시 해본다. 어쩌다 유가족들은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사건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정보가 없으니 진실을 알 수 없고, 가족을 앗아간 사건이 여전히 납득 될 리 없다. 온전한 진실과 정부의 짧은 말들은 너무나 멀리 있다.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답할 차례다. 유가족들의 요구에 이들은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국민보다 소중한 국가안보와, 탄핵된 대통령의 예우가 다 무슨 소용인가.


정보공개센터

정진임 소장

수, 2020/12/0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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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가 은평시민신문에 기고한 정보공개 칼럼입니다.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는 기초지자체 고위 공직자들을 감시하기 위해서라도, 재산공개자료 데이터 제공은 필수입니다.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공직자 전체의 투기 스캔들로 번져 나가고 있다. 국회의원이나 개발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국회의원 뿐 아니라 경기 시흥시, 하남시, 인천 계양구, 경북 영천시, 고령군 등에서는 지방의원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에 나섰다는 것이 밝혀져 공무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정보공개센터는 매년 홈페이지에 국회의원들의 재산 내역을 데이터로 정제하여 공개하고 있는데, 이번 사태가 터진 후 해당 게시물의 조회수가 급격하게 늘었다. LH 사태를 계기로 국회의원들이 ‘수상한 부동산’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고자 하는 시민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2021년 3월 기준 국회의원 재산공개 내역 - https://www.opengirok.or.kr/4890 )

관심이 몰리는 것은 국회의원 뿐만이 아니다. 기자들이나 지역의 활동가들로부터 지방의원들의 재산 내역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느냐는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라는 하나의 기구가 관할하는 국회의원 300명과 달리, 지방의원은 광역/기초의원을 통틀어 4천 명에 달하고, 17개 광역시도 각각의 공직자윤리위원회로 관할 기구가 나뉘어 있어 재산 내역도 각기 따로 공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1년 재산공개 소식을 알리는 인사혁신처 보도자료

공직자들의 재산등록과 공개에 대한 사항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담당하며, 매년 3월 말 관보나 공보를 통해 재산 내역을 공개한다. 광역의원의 경우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재산공개를 담당하기 때문에, 대한민국 전자관보 사이트를 통해 재산 내역을 공개한다. 

기초의원의 경우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광역지방자치단체이기 때문에,  광역지방자치단체의 시보나 도보에서 재산 내역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은평구를 지역구로 하는 선출직 공직자들의 재산을 살펴보려면, 국회의원의 경우 국회 공보를, 서울시의회 의원의 경우 대한민국 전자관보를, 은평구의회 의원의 경우 서울시보를 각각 찾아보아야 한다. 만약 우리 동네 공직자들의 재산 내역을 살펴보고 싶은 시민이 있다면, 굉장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겨우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관보와 공보는 PDF 파일로 공개되는데다가, 표 양식도 정렬이나 필터링을 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다. 따라서 이 자료를 데이터 형태로 변환을 해야, 누가 얼마나 많은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지 비교 분석을 하고, 시민들이 쉽게 살펴볼 수 있도록 시각화도 가능해진다.

문제는 관보와 공보의 재산 공개 내역을 자유롭게 활용 가능한 데이터로 변환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론이나 시민사회단체들도 보통 국회의원의 재산 내역들을 정제하는 것에서 그치지, 지방의원이나 지방공사/공단의 기관장까지 재산 내역을 분석하거나 살펴보기에는 어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MBC는 올 해 공직자 재산공개 자료가 공개되자마자, 발빠르게 국회의원들의 재산 내역을 시각화한 페이지를 공개했다. (http://property.assembly-mbc.com) 매우 편리하게 국회의원들의 재산 순위나 자산 구성 비율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웹사이트지만, 이 역시 국회의원들만 공개 대상으로 한다는 한계가 있다.

 

공직자 재산 내역을 시민들이 살펴보기 편리하게 제공하려면 이렇게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만약 공직자들의 재산 내역을 한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한 페이지에 모아놓고, 데이터 형태로 재산을 공개한다면 시민들이 공직자들의 재산 형성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감시하기에 훨씬 편리해진다. 이런 방향이 공직 사회의 투명성을 확대하겠다는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의 취지에도 훨씬 부합하며, 특히 그동안 상대적으로 주목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지역 공직자들에게도 감시의 영역을 확대한다는 차원에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도가 실시된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2021년에도 공직자 재산공개의 주무부처인 인사혁신처는 별다른 개선의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

 

 

인사혁신처가 발간한 2021년 공직자 재산공개 책자.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관할 재산공개대상자 1885명의 재산 내역이 담겨있다.

인사혁신처는 올 해 공직자 재산공개 소식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공직자들의 재산내역이 담긴 두꺼운 자료 책자를 넘겨보고 있는 사진을 함께 제공했다. 그러나 실제로 공직자들의 재산 내역을 살펴 볼 때 필요한 것은 이런 두꺼운 책자가 아니라, 쉽게 검색하고 가공할 수 있도록 정제된 데이터다.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에 대해 뜨거운 분노가 모아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이제는 책자가 아닌 데이터를 기준으로 재산공개 제도를 바꿔나갈 때 아닐까?


월, 2021/04/05-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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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4일, 여수 산업단지의 한 특수고무 생산 공장에서 컨베이어벨트를 청소하던 하청노동자가 산업용 로봇의 팔에 머리를 맞아 쓰러졌다. 로봇이 사람을 포장해야 할 제품으로 잘못 감지하여 작동한 것이다. 사람이 로봇에 접근하면 자동으로 멈추는 안전장치가 작동했어야하나, 공장에서는 포장 작업을 멈추지 않기 위해 안전장치를 강제 해제하고 사용하고 있었다. 기계를 정비하거나 청소하는 작업을 할 때 기계를 정지해놓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지만, 이 상식적인 안전조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포장 작업 공정에서 어떤 사고가 벌어질 수 있는지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로봇 팔에 맞아 쓰러진 노동자는 병원으로 옮겨진지 1시간 만에 숨졌다. 한 해 2000명이 넘는 사람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나라에서, 이 사고는 큰 뉴스거리가 되지 못했다.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구인구직 사이트 워크넷에서 해당 사고가 일어난 공장의 구인 정보를 검색해보았다. 마침 최근에 구인 공고가 올라온 참이었다. 제품 생산라인보조, 3조 3교대, 고무 제품 검수 및 포장, 시급 8590원. 담당 업무를 설명하는 문장 맨 마지막은 ‘어렵지 않습니다.’로 끝났다. 이 모집공고를 보고 현재 13명의 구직자가 지원한 상태라고 표시되었다. 이 13명의 구직자들은 2년 전에 이 ‘어렵지 않은’ 일을 하던 누군가가 로봇 팔에 머리를 맞고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 길이 도무지 없다. 안전관리 미비로 사망 사고가 일어났던 공장임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지원서를 넣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한 해 2000명이 넘는 사람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나라에서, 어느 공장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났는지 하나하나 기억하는 사람이라곤 없으니까.

고용노동부 구인구직 사이트 워크넷 화면
고용노동부 구인구직 사이트 워크넷 화면ⓒ워크넷

비단 이 공장만의 일이 아니다. 연간 10만 명이 산업재해로 다치거나, 병에 걸리거나, 죽는 나라에서 구직자들은 내가 일하고자 하는 곳이 안전한 일터인지 미리 알 길이 없다. 고용노동부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매년 산업재해가 일어난 사업장 명단 일부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긴 하지만, 아마 일자리를 찾으면서 고용노동부 홈페이지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수고를 들이는 구직자는 없을 것이다. 구직자들의 입장에서는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기업정보, 근무조건 이상을 확인하기엔 어려운 현실이다. 내가 앞으로 일할 직장에서 어떤 사고가 발생했는지, 산업재해가 얼마나 일어났는지, 얼마나 위험한 작업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산업재해 기업이 관련 정보 없이 구직광고 내는 현실
고용노동부 워크넷에 재해 정보 제공하고,
산업재해 사업장 정보를 오픈해 민간에도 제공하는 해야

고용노동부가 산업재해 발생 사업장의 명단을 공개하는 이유는 당연히 산업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이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고용노동부 홈페이지나 관보에만 명단이 올라온다면,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는 어떤 사업장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났는지 알 길이 없다. 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명단 공개가 제대로 된 실효성을 가지려면, 무엇보다도 산업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서 앞으로 일할 당사자들에게 그 정보가 알려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인구직 사이트에 구인공고가 올라올 때마다 해당 기업의 산재 발생 현황이 함께 제공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기업의 산재 발생 현황을 구직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차피 지금도 법으로 공개하고 있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간에서 운영하는 구인구직 사이트는 물론이거니와, 산업재해 예방의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구인구직 사이트 워크넷에서도 구직자들에게 이런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 상황이다. 왜? 그럴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직업소개, 구인과 구직과 관련한 사항 전반을 규정하고 있는 법은 직업안정법이다. 현재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최저임금법을 위반한 구인 공고가 올라오지 않거나, 임금체불 사업주가 구인 공고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2015년에 임금체불 사업주 명단공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직업안정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전국택배연대노조와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는 23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글로벌로지스 본사 앞에서 롯데택배 택배노동자 사망사고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택배사에 대한 규탄과 과로사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택배연대노조와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는 23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글로벌로지스 본사 앞에서 롯데택배 택배노동자 사망사고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택배사에 대한 규탄과 과로사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마찬가지로 직업안정법을 개정하여, 구인공고에 구인 기업의 산업재해 현황 정보를 의무적으로 제공하게 한다면 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명단 공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고, 기업의 산업재해 예방 책임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굳이 법 개정까지 가지 않더라도 다른 방법도 많다. 직업안정법 시행규칙을 바꿔, 구인신청서에 필수적으로 적게 되어있는 업체 정보에 산업재해 현황을 기입하게 해도 충분하다. 고용노동부가 의지가 있다면, 지금 당장 산업재해 사업장 명단 데이터를 오픈 API로 제공하여 워크넷이나 민간 구인구직사이트에서 손쉽게 기업 산재 현황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찬성하는 시민들이 70%를 넘겼다. 이제 ‘죽지 않고 일할 권리’가 시대적 과제라는 것에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재해를 줄이고,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대해 정부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응답해야 한다. 기업의 산재 현황 정보를 제공하여, 구직자들에게 더 안전한 직장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그러한 수단의 하나일 것이다.

화, 2021/01/12-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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