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작가 사진 52점 전시 해외 독립운동가 후손, 독립운동 사적지 담겨…온라인 또는 전화로 사전 예약 후 관람 가능
[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 강북구(구청장 박겸수)가 8월18일까지 근현대사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특별사진전 ‘기억, 잃어버린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를 개최한다.
근현대사기념관 주관으로 열리는 이번 사진전은 쿠바 이민 10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으며 김동우 작가가 촬영한 52점의 사진이 준비됐다.
김 작가는 오랜 기간에 걸쳐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의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인터뷰해 왔다.
독립운동가들은 먼 타국의 땅에서 굶주림, 차별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대한인국민회 지방회, 한인교회, 한글학교 등을 세워 정체성을 유지하고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서도 자금 모집 등 활동을 해 왔다.
전시회에서는 쿠바 마나티 항구와 멕시코의 애니깽 농장 등 한인 이주 역사의 상징적인 장소와 3·1운동 2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던 미국의 타운홀,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의 인도 레드포트 훈련지, 네덜란드 헤이그의 이준 열사의 묘적지 등 여러 나라의 독립운동 사적지를 살펴 볼 수 있다. 쿠바와 멕시코,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독립운동가 후손들도 작품 속에서 만날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전시는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관람 희망자는 근현대사기념관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으로 예약하거나 전화신청 후 이용할 수 있다. 비용은 무료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이번 전시회가 세계 곳곳에서 광복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했던 숨은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내고 기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관심 있는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람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10월27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끝내고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 등 지도부의 안내를 받으며 퇴장하는 가운데, 정의당 의원단이 국정화 반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모든 것을 강행한 처음과 끝은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였습니다. 교학사(교학사 검정 역사교과서)가 좌초되면서 검정은 안 된다고, 국정으로 가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실무 총괄 책임자였던 박성민 전 교육부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 부단장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 조사팀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진상조사 및 면담 대상자 모두가 ‘국정화 사건 주연’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박근혜의 청와대다.
교학사 사태 때부터 국정화 염두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는 지난 3월28일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박근혜·김기춘 기획, 이병기·김상률 위법·편법 강행’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국정화를 결정해 추진했고, 김 전 실장 후임인 이병기 전 비서실장과 김상률 교육문화수석 등이 위법·부당한 수단과 각종 편법을 동원해 강행했다는 것이다.
2013년 6월1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나온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언은 국정화의 ‘서막’이었다. “한탄스럽게도 학생들의 약 70%가 6·25를 북침이라고 한다는 것은 우리 교육 현장에서 이 교육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닌가 생각한다.” “교육 현장의 여러 문제점에 대해 다시 한번 점검해보고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신중하게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박 전 대통령의 ‘올바른 역사교육’ 지침이 내려진 뒤 같은 해 8월 청와대가 강력하게 지지한 교학사의 검정 한국사 역사교과서가 최종 검정을 통과했다. 하지만 1천 개 이상의 오류와 친일·독재 미화 등 편향적 서술로 교육 현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이후 현행 검정제도에 ‘깊은 회의’를 느낀 박 전 대통령은 같은 해 9월17일 국무회의에서 검정을 통과한 모든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전면 수정·보완할 것을 지시하면서 “더 이상 불필요한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사실상 국정화를 지시했다.
그해 8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김기춘도 박 전 대통령과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김 전 실장은 10월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교과서는 이념 대결의 문제로 간단치 않다. 전쟁에 임하는 자세로 하지 않으면 박 정권 5년 내에 좌파 척결이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2014년 1월13일 새누리당과 교육부는 당정 협의를 통해 6월까지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편안을 마련하기로 하고, 실무를 담당할 교육부 역사교육지원팀을 신설한다. 하지만 국정화 여론 조성이 뜻대로 되지 않자 2014년 7월 말로 예정된 역사교과서 발행체제 개선 문제, 즉 한국사 국정 전환 여부 결정을 미뤘다.
이때부터 청와대의 압박이 구체화했다. 2014년 7월 최원기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행정관이 권성연 역사교육지원팀장과 통화하면서 국정화 결정을 종용했다. 교육부의 국정화 전환 방침은 2014년 9월 사실상 확정됐다. 이후 난항을 겪던 국정화는 2015년 다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국정화 결정과 실행 과정에 전방위적으로 개입했다.
음지에 숨은 결재 라인
2015년 2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부임한 이병기는 국정화 정책을 앞장서 추진했고,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이 비서실장은 2015년 7월부터 국정화 추진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지시를 하달했다. 2015년 7월5일부터 그해 12월21일까지 17차례나 지시 사항이 내려간 것으로 나타난다. 비서실장의 지시는 김상률 교육문화수석-이기봉 교육비서관-김한글 교육행정관을 통해 교육부로 전달됐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국정화 추진을 지시했을 뿐만 아니라, 세부 사안까지 일일이 개입했다. 교육부는 2015년 9월29일 이 비서실장이 “상황실/ 티에프(TF) 구성 운영도 필요할 것”이라는 지시 사항이 나온 직후인 10월5일 청와대 접근성이 좋은 서울 동숭동 옛 국립국제교육원에 역사교육지원티에프를 구성했다. 운영 기간 내내 거의 매일 청와대에서 회의가 열렸고, 청와대가 요구하는 각종 보고자료와 국정화 홍보자료가 생산됐다.
교육부는 청와대 지시를 받은 차관의 지시로 실국별로 학자들을 조직해 2015년 10월16일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학자 102인 선언’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10월30일 서울대에서 열린 전국역사학대회에는 대한민국 어버이연합·고엽제전우회 등 친정부 단체들이 행사장에 난입했다. 이 비서실장의 지시와 10월26일 교육부가 작성한 전국역사학대회 대응 계획과 일치한 것이었다.
교육부는 2015년 10월12일 중학교 역사교과서와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제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담은 ‘중·고등학교 교과용 도서 국·검·인정 구분(안)’을 행정 예고했다. 이 과정에서 행정 예고 의견 수렴 마지막 날인 11월2일 일괄 출력물 형태로 국정화 찬성 의견서가 ‘차떼기 제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황우여 당시 교육부 장관은 국정화 발표 전 마지막 순간까지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마지막으로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황교안 총리는 국정화 발표 대국민담화에서 기존 검정교과서 모두를 “99.9% 편향된 역사교과서”로 몰았다. 청와대는 교육부의 반대에도 국정교과서를 ‘올바른 교과서’로 이름지었다.
편찬 기준은 교과서 서술 내용의 범위와 방향, 쟁점에 대한 서술 지침, 편찬시 유의 사항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2015년 9월 말 김한글 청와대 행정관은 교육부에 편찬 기준에 대한 21건의 수정 요구를 전달했다. “일제강점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대한 특별법,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 등 5개 특별법 관련 항목을 모두 삭제” “‘새마을운동에 대해 서술할 경우 그 성과와 한계를 서술한다’에 ‘한계’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의의로 서술한다’로 교체” 등의 요구가 담겼다. 교육부는 21건 중 18건을 편찬 기준 최종본에 반영했다.
역사과 교과용 도서 편찬심의회는 교과서 편찬에서 집필진과 함께 교과서 내용을 좌우하는 핵심 기구다. 청와대는 선정위원회 심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교수 위원 명단을 바꿔 보냈다. 16명의 편찬심의위원 중 교수 위원 7명 전원을 청와대에서 제시해 지명했지만, 형식상으론 ‘초빙’해 선정한 것처럼 보고됐다.
청와대는 집필진 선정 과정에도 부당 개입했다. 진술에 따르면 집필진 선정은 2015년 10월께 시작돼 11월까지 국편을 통해 진행됐다. 김정배 위원장이 교육부 예비 명단을 참고하고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후보자 목록을 작성하면, 이를 청와대 김상률 교육문화수석에게 보고하고, 이를 박 대통령에게 올려 낙점을 받았다고 한다.
교과서 문구 하나까지 청와대 작품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어떻게 추진하고 관리할지 총 15가지 항목에 걸쳐 직접 꼼꼼하게 지시했다. 2016년 10월8일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을 보면 ‘교과서 임시정부 법통 계승-광복 이후 수립 과정, 6·25전쟁, 이·박 대통령 평가, 북한 정권’ 등을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역사교육연대회의는 2017년 2월2일 국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최종본의 문제점을 발표했다. 연대회의는 “고교 한국사만 653개의 오류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대표적 편향 사례로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가 윤보선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는 부분이 지적됐다. 관권을 동원했음에도 역대 대선 중 15만 표라는 가장 적은 표차였는데, 이런 정황 설명이 전혀 없었다.
日사찰 보관 유골 2천770위…오키나와 등 미발굴 유골 2만2천구
2004년 유골봉환 합의에도 일부만 반환…日정부 외면에 韓정부는 소극 대응
(이키<일본 나가사키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해방 후 70여년이나 흘렀지만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다 숨진 징용·징병자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어서도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1일 행안부 과거사업무지원단에 따르면 일본에서 발굴된 뒤 보관 중인 한반도 출신 징용·징병자의 유골은 2천770위에 달한다. 사찰이나 납골당 등 340여곳에 흩어져 있다.
▲ 일본 섬마을 사찰서 열린 강제징용자 유골 131위 추도식 (이키<일본 나가사키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31일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이키(壹岐)섬의 사찰 덴토쿠지(天德寺)가 한일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종교인 등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추도식을 열고 징용 희생자와 가족 등을 포함한 한국인 유골 131위를 안치했다. 새 보금자리를 찾은 유골들은 지난달 중순까지 사이타마(埼玉)현의 사찰 곤조인(金乘院)에 있다가 일본 후생노동성의 창고와 다름 없는 보관 시설로 옮겨지며 안타까움을 샀던 것들이다. 2018.5.31 [email protected]
행안부가 일본 정부의 정보 제공 등을 통해 파악하고 있는 일본 사찰의 유골들은 홋카이도(北海道)·도호쿠(東北) 480위, 간토(關東) 560위, 긴키(近畿) 200위,주부(中部) 570위, 주고쿠(中國)·시코쿠(四國) 220위, 규슈(九州)·오키나와(沖繩) 740위 등이다.
유골 봉환 문제는 지난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출신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골 반환에 합의한 뒤 한때 급물살을 타기도 했다.
합의 후 도쿄도 메구로(目黑)구의 사찰 유텐지(祐天寺)의 유골 423위가 2008~2010년 4차례에 걸쳐 봉환되는 성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이와 관련한 양국 정부간 교섭이 중단되면서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나마 봉환된 유텐지의 유골은 모두 군인과 군속(군무원)의 것으로 강제징용 노동자의 유골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부 간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는 사이 유골 봉환은 양국의 시민단체들의 노력으로 성사되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들은 지난 2015년 일본 북부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숨진 115명의 유골을 도쿄(東京)-교토(京都)-오사카(大阪)-히로시마(廣島)-시모노세키(下關) 등 강제로 끌려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경로로 한국으로 봉환했다.
한편으로는 아직 발굴이 안된 유골들을 찾아내서 한국에 봉환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한국과 일본의 관련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말 격전이 치러졌던 일본 남부 오키나와(沖繩)를 비롯해 남태평양과 동남아시아 등에는 조선인 군인·군속의 유골이 최소 2만2천구가 발견되지 않은 채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6년 3월 ‘전몰자 유골수집 추진법’을 제정해 2차대전 당시 전몰자의 유골을 국가 차원에서 발굴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유족의 DNA를 수집한 뒤 발굴한 유골과 대조 작업을 진행해 유골을 유족에게 찾아주고 있지만 한반도 출신자는 대상에서 제외해 한국인 전사자들의 유골을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찾아서 보관하고 있든, 아니면 앞으로 발굴해야 할 것이든 이들 두 부류의 유골 문제가 모두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은 일본 정부의 외면과 한국 정부의 무관심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사찰에서 보관 중인 유골을 한국으로 봉환하는 일, 전사자 유골의 발굴·대조 작업에 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하는 문제 모두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요청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밝히며 책임을 한국 정부에 미루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는 실무선에서 일본 정부와 접촉을 하면서도 아직 유골 봉환이나 발굴에 대해 공식적인 요청을 하지 않고 있어 일본측의 핑곗거리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 韓시민단체, 일본 정부에 조선인 전몰자 유골반환 촉구 요청서 (도쿄=연합뉴스) 데라사키 유카 통신원 =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이하 보추협)가 8일 일본 정부에게 한반도 출신 전몰자의 유골 반환을 촉구하는 요청서를 전달했다. 사진은 보추협 사무국 역할을 하는 민족문제연구소의 김영환 대외협력팀장(오른쪽)이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일본 후생노동성 담당자(왼쪽)에게 요청서를 주는 모습. 2018.2.8 [email protected]
한국과 일본은 작년 12월 일본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의에서 유골봉환 문제를 협의하기로 했지만, 협의에 속도가 붙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고 ‘재판거래’에 관여한 대법관들은 즉각 사퇴하라!
최근 밝혀진 일제 강제동원 피해 소송을 둘러싼 사법부의 ‘재판거래’와 관련사건(신일철주금)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재개와 관련하여, 피해자의 입장을 밝히고 대법원의 사죄와 관련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아래와 같이 진행합니다. 특히 이 사건의 원고이신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98세) 어르신께서 광주에서 상경하셔서 피해 당사자의 입장을 직접 밝히실 예정입니다.
(아래)
양승태 대법 재판거래 규탄 및 일제 강제동원 피해 소송 전원합의체 심리재개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고
‘재판거래’에 관여한 대법관들은 즉각 사퇴하라!
○ 일시 : 2018년 8월 22일(수) 오전 11시
○ 장소 : 대법원 동문 앞
○ 주최 :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 사회 : 김영환 정책위원장(민족문제연구소)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고 ‘재판거래’에 관여한 대법관들은 즉각 사퇴하라!
내일 일제강점기에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이 신일본제철(현 신일본주금)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2013다61381)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이 사건이 제소된 2005년 2월 28일로부터 13년, 2012년 5월 24일 대법원 판결로부터 6년, 2013년 7월 10일 고등법원 파기환송심 판결로부터 이미 5년이 지났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목숨을 대가로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 사법부가 추악한 ‘재판거래’를 통해 재판을 지연시키는 동안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여운택, 신천수 두 분의 원고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
이 사건의 심리불속행 기간이 끝나는 시점을 전후하여 박근혜의 지시를 받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2013년 12월 1일, 차한성 전 대법관, 윤병세 전 외교부장관, 황교안 전 법무부장관 등과의 ‘4자 회동’을 통해 결론 연기 및 전원합의체 회부를 통한 파기 방안을 논의했으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2014년 초부터 수차례에 걸쳐 윤병세 전 장관에게 해외공관 파견 법관 자리를 확보해줄 것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는 점차 명백한 사실로 밝혀지고 있는 ‘재판거래’ 사건의 실체를 접하며, 이 사건의 본질은 사법부의 독립을 파괴함으로써 삼권분립의 헌법 원칙을 위반한 ‘국헌문란 범죄’임과 동시에 한국 정부가 한일관계를 명분으로 피해를 당한 국민의 권리를 박탈하고 외교주권을 팔아넘긴 ‘주권포기사태’라고 규정한다.
내일 갑작스럽게 속개되는 이 사건의 전원합의체 심리를 앞두고 우리는 과연 지금의 대법원이 공정한 심리를 진행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지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사법부의 독립을 ‘금과옥조’처럼 외치며 추악한 뒷거래를 일삼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상 초유의 사법농단 사태를 두고 진실을 밝히는 노력과 반성의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에 급급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는 일부 대법관들은 이미 신뢰를 잃은 지 오래이다.
우리는 국정농단을 일삼은 대통령을 촛불의 힘으로 탄핵하고 대통령을 새로 선출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만으로 민주주의를 향한 촛불의 열망이 성취된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있다. 우리는 대법원이 전원합의체의 공정한 심리를 통해 사법부의 추락한 신뢰와 권위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인 판결을 통해 이 국면을 어물쩍 봉합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재판거래와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키고 추락한 사법부의 신뢰와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서 정의의 최후의 보루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심리를 진행해야 할 것이며, 이 재판의 결과에 대해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심리를 앞두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뜻을 모아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대법원은 이 사건의 심리에 앞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목숨을 대가로 한 ‘재판거래’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라!
2. 양승태 대법원장 당시 임명된 대법관들은 ‘재판거래’의 당사자들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더 이상 정의로운 판결을 기대할 수 없다. ‘재판거래’에 책임을 지고 즉시 사퇴하라!
3. 검찰은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 사법부의 추악한 ‘재판거래’에 가담한 박근혜, 양승태, 김기춘, 황교안, 윤병세, 차한성 등 모든 관계자들을 철저히 수사하고 처벌하라!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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