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대북전단금지법을 둘러싼 논란 – 국제앰네스티의 접근법

지역

대북전단금지법을 둘러싼 논란 – 국제앰네스티의 접근법

admin | 월, 2021/05/17- 21:00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 비난 후 폭파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옆 훼손된 개성공단지원센터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 비난 후 폭파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옆 훼손된 개성공단지원센터

대북전단금지법

2020년 12월 14일 한국의 국회 본회의에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약칭 ‘남북관계발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었다. 국회에서 의결된 이 법은 같은 달 29일에 공포되었으며, 공포일을 기준으로 3개월이 지난 2021년 3월 30일부터 법의 효력이 발생했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을 담은 이 특별법은 일명 ‘대북전단살포금지법’ 또는 ‘대북전단금지법’으로 대중에 잘 알려져 있다. (이하 ‘대북전단금지법’)

논란, 그리고 상반된 입장

그러나 대북전단금지법은 입법 단계부터 과도한 표현의 자유 침해 등을 이유로 국내외에서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법안 도입에 대해 찬성과 반대가 팽팽히 맞설 만큼 양 측 모두 자신의 주장에 대한 나름의 명확한 근거와 이유를 가지고 있다.

법안에 찬성하는 측은 안전평화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법안에 반대하는 측은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의 접근법

양측이 우선적으로 내세우는 가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위해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거나 무시되어서는 안 되는 주요한 인권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권적 측면에서 국제앰네스티는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60여 년간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국제인권규범에 근거해 독립된 활동을 펼치며 개별 사안을 다루는 데 있어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불편부당성不偏不黨性, Impartiality’을 유지하고자 노력해 왔다.[1] 이번 대북전단금지법 논란을 바라보는 국제앰네스티의 입장 역시 그동안 일관되게 유지해 온 기준을 바탕으로 한다. 아래 글에서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아놀드 팡Arnold Fang 동아시아 조사관이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국제앰네스티의 접근법을 간명하게 정리해 보았다.

우리는 대북전단금지법과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먼저, ‘시민사회단체는 대북 전단을 살포해야 하는지’, 그리고 ‘한국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 단체의 활동을 제한해야 하는지’이다. 전자는 이들 단체에 의해 다른 이들, 특히 남·북한 사람들이 어떤 위험에 맞닥뜨리게 되는지와 관련이 있다. 후자는 정부가 정당한 이유를 내세워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제한하는지와 관련이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북한을 포함한 수많은 나라의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이슈를 다뤄왔다. 표현의 자유에 대해 우리의 입장은 국제인권법과 일치한다. 바로 ‘모든 사람은 모든 매체를 통하여 국경과 상관없이 정보와 사상을 구하고 받아들이고 전파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모든 매체를 통하여 국경과 상관없이 정보와 사상을 구하고 받아들이고 전파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권리 행사에는 특정한 의무와 책임이 함께 한다는 것도 인정한다. 국제앰네스티는 ‘무위해성의 원칙The principle of ‘Do No Harm’’에 따라 개인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활동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현재 북한의 상황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표현의 자유가 여전히 심각하게 제한돼 있다. 북한 당국의 사전 승인 없이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인쇄물이나 시·청각 자료를 소지한 북한 사람은 자의적 구금, 고문 또는 기타 부당한 대우와 같은 다양한 인권 침해의 위험에 처해질 수 있다.

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전단, USB 드라이브, 또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형태로 북한에 정보를 보내는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북한 사람들과 외부 간 의사소통이 현재와 같이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정보 교류 방식을 추구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활동에 참여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한국 정부가 남·북한 경계를 넘나드는 정보 교류를 포함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계속해서 역할을 할 것을 요구한다. 현재의 표현의 자유 제한이 한국 사람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시행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와 같은 제한을 결코 북한 당국의 위협에 대한 해결책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한국 정부는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분리된 이산가족을 포함해 남·북한 사람들 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허용하는 합법적인 경로를 개설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현재의 표현의 자유 제한이 한국 사람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시행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와 같은 제한을 결코 북한 당국의 위협에 대한 해결책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1. Amnesty International (1978) Impartiality and the Defence of Human Rights, London: Garden House Press.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미국이 인정하든 안하든 백인에게는 뿌리 깊은 선민의식이 있다. 흑인에 대한 ‘태생적’차별이다. 일본도 조선에 대한 선민의식이 있다. 36년간을 지배했다는 자만감이 그것이다. 그럼 대한민국은 조선(북)에 대해 그런 ‘쓸데없는’ 선민의식이 없을까? 있다고 본다. ‘우리보다 못 산다’는 우월감 같은 것들이 우리의식을 강력하게 지배한다. 민주당 당 대표 이해찬의 표현을 빌려 이를 표현하자면 정말 ‘천박한’ 우월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먹고사는 문제로 ‘체제경쟁은 끝났다’는 말도 되지도 않는 소리이다. 유치원생들이나 초등학생들이 싸울 때면 툭하면 나오는 ‘너그 집은 우리 집보다 못살잖아’와 같은 유치한 말싸움이다.

이 모두를 총칭하면 대한민국 안의 오래된 ‘북(한)판’ 오리엔탈리즘이다. 북한이 무조건적으로 대한민국보다 못해야하고, 사회주의는 무조건 자유민주주의보다 못해야 한다는 지독한 반공이념의 잔재이다. 하지만, 그 편협한 인식을 거둬들이고 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오히려 성립한다.

과연 대한민국은 정상국가인가?

한 국가의 정상성 기준을 ‘먹고 사는’ 경제지표로만 평가할 수는 없을 텐데, 그런 측면에서 대한민국이 북에 대해 배워야 할 것들은 없는지 겸허하게 따져봐야 한다. 왜냐하면 남과 북은 통일로 반드시 다시 만나야 할 민족이고, 미래이기 때문이다. 백년대계가 그렇게 우리 앞을 기다린다.

①하나, 뭐니 뭐니 해도 국가와 국가 간 비교에서 정상이냐 비정상이냐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잣대중의 하나는 ‘자주국가’냐, 아니면 ‘예속(종속)국가’이냐 하는 그것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같은 민족으로써 동일한 식민지 경험이 있지만, 그것을 극복해가는 과정은 정 반대였다. 대한민국은 외세에 대해 좀 자유롭지 못한 반면, 반대로 북은 국가의 생명과도 같은 ‘자주’를 나름 잘 지켜내었다. 세계 최강 유일강대국과 상대하며 극강제재와 압박을 잘 견뎌내었다. 아니, 견뎌오고 있었다고 봐야한다.

이는 제아무리 대한민국이 선거제도라는 민주성과 세계 10위 내외의 경제력, OECD가입국이라 하더라도 미국식 민주주의체제에 포섭되어 ‘미국이 기침만 해도 감기 걸리는 체질’의 대한민국이 좀 본받아야만 하는 북의 국체와 같다.

②둘, 국난을 극복하는 방식의 차이 문제이다.

남과 북은 공히 1990년대 그 성격과 내용은 좀 달랐지만, 똑같이 어려움을 겪었다.

대한민국은 극단적 시장자본체제인 신자유주의정책 수용과 모라토리엄(국가부도)으로 나타났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간 그나마 부족하게 시행되어왔던 국민복지, 노동복지, 인권과 경제권마저도 상당히 후퇴시켰다. 촛불정부라는 문재인 정부도 이 후유증을 제대로 극복해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반면, 북은 그러한 상황-에너지난, 식량난, 외화난 속에서도 아주 높은 수준에서 국가가 시행해왔던 인민복지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말이다. 전반적 무상 11년 의무교육제도(지금은 12년)와 무상 의료치료제도, 무세금제도, 무상 주택분배제도 등은 그대로 지켜져 국가의 무한책임을 다했다.

누가 더 국가적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있는가?

체제와 이념의 프레임을 벗어던지면 국가를 부도내고, 하루아침에 그 평범한 수많은 노동자와 국민 일상의 삶을 파탄으로 몰고 간 그런 대한민국, 그 극복이후에는 권력과 돈으로 갑질‘gapjil’이 일상화되고, 결과 1: 99사회가 되고, 전직 대통령들이 줄줄이 감옥가는 그런 대한민국이 더 정상적인가?

아니면 모든 인민들을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인내를 요구하며 어려운 국가살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들의 전략과 노선을 지켜내려고 했던, 더 나아가 국가의 생명선과도 같은 자주의 문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서 당당한 국가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그런 국가가 더 정상적인가? 쉽지 않는 판단의 문제이다. 하지만, 또한 분명한 것은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듯이 자주 또한 구걸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③셋, 자기언어(국어)에 대한 태도문제이다.

자기 나랏말로 국어를 정해놓고도 세계적 추세라는 미명하에 국어인지 외국어인지 구분이 안 갈만큼 혼용되어진 일상 언어가 판치는 그런 국가와, 자기 민족의 전통과 자기 민족의 언어 순수성을 잘 지켜나가고자 노력하는 그런 국가 중에 어느 국가가 더 정상적이며 어느 국가가 더 비정상적인가?

분명한 것은 우리말, 우리글 장려정책 일환으로 꼭 필요한 외래어가 아니면 모두 우리말로 표현해야 된다는 법률이 대한민국에게는 있다. 그러함에도 대한민국은 자기 국어에 대한 철학과 태도정립이 모순되게도 ‘영어화’된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좀 폼 나 보이려고, 또는 영어·국어, 심지어 신조어까지 혼용해야만 하는 분위기라서 .. 등등, 그렇게 우리 모두는 육체적 몸통만 한민족이고, 정신적 영역의 세계는 미국화에 함몰된다.

또 다른 한 예도 그 민낯이 적나라하다.

법으로 한글 이외의 옥외간판은 법률적으로 처벌대상이지만, 이미 외래어 간판의 천국이 되어 버린 대한민국이다. ‘웃고픈’ 한 현실은 시부모님이 찾아오지 못하게 아파트이름도 외래어로 어렵게 짓는다는 그런 국가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이다. 과연 정상적인가? 국어사용 우선 법률이 있음에도 그 법률은 이미 사문화되어 외래어가 도시 전체를 집어삼켜 무국적의 도시화가 엄청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④넷, 이 외에도 수많은 비교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 수 있다.

자살률, 실업률, 교통 사고율, 노인 빈곤율, 산재 사망률, 입시지옥(1등주의) …. 등등 10여 가지 지표 이 모든 것들이 OECD기준에 대입되면 꼴지 이거나 꼴지 그 다음 순위이다. 수 십 년째 그렇게 일상화된 대한민국이다.

반면, 북은 유엔인권규약 A로 볼 때 국가가 가장 높은 높이에서 모든 인민들에 전반적 무상 11년 의무교육제도(지금은 12년)와 무상 의료치료제도, 무세금제도, 무상 주택분배제도가 보장되고, 국가 구성원 들 중 당원이나 당 간부들의 과로사가 제일 많다. 이와는 달리 대한민국 관료사회는 자기 국민에 대해 ‘개, 돼지’ 취급하는 사회이다.

무얼 함의하고 있는가? 그런데도 우리가 북보다 났다고 할 수 있는가? 전형적인 외눈박이 북(한)인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철저하게 북을 리바이어던(Leviathan)된 괴물로 제조해(manufactured) 그 허상으로 권력유지와 통치기반의 정당성을 확보해야만 하는, 즉 미증유의 반공이념에다 이것도 모자라 더 반북(反北)화된 종북이데올로기를 탄생케 해 한국판 매카시즘(마녀사냥)을 불러들인 대한민국이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과연 대한민국은 정상적인 자유민주주의체제인가?

촛불정부(를 자임한) 대통령께서는 북을 향해 ‘체제경쟁이 끝났다’했지만, 헌정사상 임기 중 대통령이 파면될 만큼 대의민주주의체제는 허약했고, 그와는 또 다른 의미로 현대 정당정치에서 국민적 지지여부로도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정당문제마저도 법(국가보안법)적 잣대가 개입돼 진보정당이 해산되는 너무나도 허약한 체질의 자유민주주의체제가 대한민국이다.

낯설지 않는 대한민국 풍경이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내 안의 티끌은 진작 보지 못하고, 남의 티끌만 크게 보는’ 그런 못난 국가와 똑 닮아있다.

미국에 대해서는 미국을 너무나 닮아싶어 했고, 그 모든 것을 신봉하려했던 우리 대한민국이었지만, 진작 우리안의 또 다른 반쪽, 북에 대해서만은 너무나도 민망한 인식의 소유자들이었다.

이제는 벗어나자.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우리가 북을 찬양할 이유도 없겠지만, 적어도 제대로 된 북 들여다보기는 해야 한다. 불필요한 구시대적 적대의식과 분열구도를 넘어서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북 바로알기 및 배우기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렇게 성큼 통일의 기운이 다가올 수 있게 해야 한다. 충분히 이미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북으로부터도 배울 수 있는 것은 배울 수 있는 그런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국민이 되고 싶다.

토, 2020/08/08- 01:29
2
0

2018년 3월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처음으로 만났을 때, 공식적인 의제는 예측이 충분히 가능한 것들로 평화(안보), 비핵화, 산업지원과 경제발전 등 양국 간의 관계를 심화시키는 내용들이었다. 이는 수십 년 간 상호지원이라는 동맹조약을 맺은 (북한에게는 유일한) 양국관계의 입장에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공개된 언론의 내용과는 달리 양국의 관계가 사실은 매우 긴장된 상태이었다.

북한의 입장에서 중국이라는 든든한 후견인을 둔 것은 다행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국가안보라는 중차대한 사항마저 중국의 손에 맡긴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매우 면밀하게 살펴야 할 내용은 비핵화에 관한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에 있어 미국은 동맹국가들을 압박하여 핵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배제시켜 왔다. 예건데 한국과 대만 등에게 강력한 안전보장과 일본에게 제공한 핵우산이라는 안전장치를 확대 연계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경험이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에 대하여 핵우산이라는 매력적인 안전보장을 제공하면 반대급부로 비핵화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북한은 비핵화에 대하여 결코 동의하지 않고 있다.

중국과 북한은 같은 이념적 배경을 공유하고 있고, 한국전쟁을 지원하는 등 동맹적 관계를 확고히 다지고 있으나, 북중의 동맹관계는 한미일의 동맹에서 보듯이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과는 다르며, 몇 가지 핵심적인 사항에서 차이점을 지닌다.

북한은 정책 결정관계에서 3가지 결정적인 사항에서 결코 양보하지 않는데, 1) 이념에 있어서 주체 사상의 견지 2) 경제에 있어서 중국에 종속되지 않는 것 그리고 3) 핵무장의 정치적 동력을 유지하는 것 등이다.

북한을 창건한 김일성 주석은 일찍이 1960대의 격변하는 지정학적 조건에 대응하여 북한의 생존과 정책 결정과정에서 주체사상을 지도지침으로 삼을 것을 교(지)시한 바 있다. 이어서 아들인 김정일은 주체사상을 실천적 방법으로 더욱 발전시켰고 북한사회의 중심사상으로 위치를 확고히 정립시켰다. 이후 북한은 주체사상을 통하여 외교정책과 경제발전 그리고 국가방위에 있어서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independence & self-reliance)입장을 견지하게 된다.

북한 지도자들은 주변 동맹들과 비대칭적인 관계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독립적인 자주의 지침인 주체를 더욱 중요한 주제로 받아들였다. 주체사상을 도입할 당시 북한은 소련 및 중국과 매우 불편한 상태에 빠졌는데, 역설적으로 경제적 안정과 국가안보에 관하여 중국과 소련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당시 북한의 정책 책임자들은 큰 어려움에 직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북한은 주변 동맹들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와중에 어떻게 경제적 군사적 주권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역사적으로 중국이라는 제국은 빈번하게 한반도 지역을 공략하였다. 현대중국 역시 북한과 여러 번에 걸쳐 이해의 충돌을 경험하였고 양국관계에 심각한 위기를 불러오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당시에 중국인민군이 작전권을 주도하면서 양국의 군대 지휘자들 간에 갈등이 발생하였다. 문화혁명시기에도 중국은 북한에게 군사적 위협을 가했다. 중국은 북한이 먼저 전쟁을 야기하면 상호방위지원조약의 책임을 이행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은 유엔의 북한 제재에도 동의하였다.

중국조차도 북한의 주체에 예외일 수 없으며, 이것이 북한이 현재까지 건재한 핵심적인 배경이기도 하다. 평양당국은 명백한 적국과 마찬가지로 변덕스러운 동맹을 경계한다.  중국에 대한 북한의 과다한 경제적 의존이 역설적으로 북한에 대한 중국의 핵우산이라는 추가적인 가능성을 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현재 군사력과 경제발전의 균형을 의미하는 병진정책을 추구하면서 경제발전을 재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아 2019년 1월에 북경을 방문했을 당시에 의도적으로 경제기술발전 산업단지를 시찰한 것이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여 준다. 과거에는 북한이 시장을 개혁하고 개방하는 것을 주저하였기 때문에, 김위원장이 일대일로BRI 정책의 핵심사항인 경제개발 산업단지를 평가하고 시찰한 것을 북경당국은 크게 환영하였다.

더구나 2018년 기준으로 중국은 북한수출시장의 62.5%을 점하고 수입금액의 95.7%라는 비중을 차지하는 등 북한에게는 절대적인 무역파트너가 되어 있다. 중국은 유엔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경제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비핵화 협상과정에서도 경제적 제재를 완화시켜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절대적인 경제적 관계가 북한이 국가안보를 중국에 의존한다거나 양보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평양당국은 경제적 의존을 의식하여 더욱 독자적인 국가안보를 더욱 고수하려 한다.

제재로 인하여 북한이 제3의 국가들과 경제적 관계를 확대할 수 없는 탓에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은 불가피하다. 북한이 대외무역의 창구를 다변화할 수 없기에 북한의 현안에 대한 중국의 간섭이라는 취약성이 증대한다. 코로나-19의 충격이 북한이 가진 취약성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지난 1월 코로나-19가 발발하자 북한은 중국과 접한 국경을 차단하면서, 지난 3월 중국과의 무역량이 지난 해 대비하여 91.3% 격감했으며 이에 따라 물가가 불안해지고 식량의 안정적 공급이 위협받고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를 통하여 밝혔다.

중국이 이미 사드의 배치에 대한 보복조치로 한국에 대하여 경제조건을 무기화한 바 있기 때문에 북한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에 더욱 경계를 하고 있다. 한국 재벌기업인 롯데그룹이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드배치의 부지를 제공한 바 있다. 중국은 롯데의 중국 내 기업활동을 금지하였으며 한국산 상품과 관광에도 제약을 가하면서, 한국이 GDP의 0.5%에 해당하는 비용을 감내하도록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북한은 국가안보라는 핵심적 사항을 스스로 해결하면서 독립적인 주권국가임을 과시하고자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핵무기의 보유는 북한이 국제사회에 개입하고 국제사회가 북한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지렛대의 역할을 한다.

핵무기 개발을 착수하기 이전에, 북한은 미국과 협상을 개시하기를 강력히 희망하였으나 미국은 이를 묵살하였다. 북한의 군사력이 빈약하면 한반도의 지정학적 이해와 상반된 패권국가와 상대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이에 반하여, 핵무장은 재래식 군사력이 압도적으로 강한 미국과 한국이 북한을 상대(대화)해야만 하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 핵무장을 통해서 북한은 비로소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 일본 그리고 러시아와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가 가능해졌다.

제재와 고립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무장을 통하여 놀랍게도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성공하여 왔다. 핵무장을 성취하기 전인 90년대에도 북한은 핵개발을 무기로 내세워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과 러시아에게서 식량과 에너지 그리고 경제적 지원을 받아 왔다. 당시 북한은 소비에트 붕괴 이후 고난의 행군이라는 경제적 후퇴와 식량난에 따른 기근을 겪던 시절이었다.

국내적으로는 핵무장을 통하여 김씨 가문의 권력세습을 합법화하고 안정시켰다. 북한인민해방군은 북한 정권의 군사적 핵심이며 가장 강력한 조직이다. 북한은 ‘선군정치’를 통하여 국내의 현안들을 해결하여 왔고 군사적인 어려움을 극복하여 왔다.

핵무기의 성공작인 개발은 김정은 위원장이 주도한 ‘선군정치’의 결정체이다. 이로써 국가적 이익을 희생시키면서 인민해방군 조직을 무리하게 강화하는 등 그간 김씨 세습가문의 국내정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이 부여된 것이다.

북한은 단순한 국가의 안전을 원하지 않는다. 주체라는 표현 그대로 스스로 안보를 지켜나가기를 원한다. 자력으로 성취한 핵무장이라는 안전보장의 장치를 중국이 제시하는 불안정한 제안(핵우산)과 바꾸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출처 : 뉴욕타임즈NYT on 2020-08-25.

Monet Stokes

존 홉킨스 대학과 중국 청화 대학 등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하였으며, 동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영역에 몰입하고 있는 여성연구자

수, 2020/09/09- 19:30
2
0

9월 24일, 대한민국 국방부는 22일 밤 북한군에 의해 한국 국적의 민간인이 사살되었다고 밝혔다.
9월 25일, 북한 당국은 청와대 앞으로 보낸 통지문을 통해 불법 침입자 단속 과정에서 정체불명 침입자를 사살했다고 밝혔다.
북한 당국은 국제인권 기준에 따라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신속하고 독립적인 조사를 실시하고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번 사건과 관련, 북한은 민간인에 대한 비사법적 살인을 저질렀으며, 한 개인의 생명권을 명백히 침해했다. 이는 극악무도하고 야만적인 행위임이 틀림없다.
국제앰네스티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형에 반대하며, 공정한 재판이나 사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자행되는 비사법적 살인에 반대한다.

토, 2020/09/26- 02:00
2
0

서해상의 이번 공무원 피살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확인받아야하는 인식적 범위만도 크게 세 가지인 듯하다.

하나는, 실체적 진실규명문제이다. 월북이냐, 아니냐. 시신을 불태웠느냐, 아니냐가 그 쟁점이다.

둘째는, 한반도에서 종전선언과, 더 나아가 평화협정 체결이 왜 중요한지가 명백히 가름된다하겠다.

셋째는, 인식이 위 ‘첫째는’, ‘둘째는’, 거기서 절대 멈춰 서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줬다. ‘첫째는’, ‘둘째는’의 상황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본질적 원인이 바로 ‘셋째는’에 있었기 때문이다.

즉, 분단체제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숙명의 문제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달리는 이 분단체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또다시 우리는 언젠가 제2의, 제3의 일촉즉발의 위기정세를 계속 목도할 수밖에 없다.

분단체제는 그렇게 한반도에서 진정한 생명안전도, 종전선언도, 평화체제구축도 가둬놓는다. 분단체제하에서 평화가 관리되어질 수 있다는 것도 허구로 만들고, 분단이 지속되는 한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평화는 절대 불가능을 안내한다. 오직 평화담론체계(철학)에서 벗어나 분단극복을 전제한 평화체제수립에 박차를 가해야만 한다.

이 글은 그 전제하에 시작된다.

이제까지 보여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한마디로 정리하라면 ‘통일 없는 평화’정책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이는 대중에게 ‘통일’ 하면 차근차근 분단체제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아니라, ‘통일 없는 평화’가 가장 현실적이고 세련된 대안인양 착각한 것과 같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이 정부, 혹은 정당 담당자 및 담지자들이 갖고 있는 뿌리 깊은 반(反)북, 혹은 대북 우월의식의 결과이다.

그 결과가 역대 어느 민주당 정권보다도 많은, 3번의 정상회담을 이뤄냈으나 ‘사실상’ 파산된 남북관계는 회복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미국 때문에 그렇다고, 트럼프 때문에 그렇다고, 그렇게 미국과 트럼프 탓을 할 수도 있겠으나, 그 모든 것이 미국 탓일 수만은 분명 없어 보인다. 훨씬 더 이 정부와 집권여당인 민주당의 능력과 의지 탓이 크다.

첫째, 미국의 견제와 압박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으나, 과거 DJ정부 때도, 참여정부 때도 있었다.

둘째, 그럼으로 그 변수‘첫째’로 남북 간의 약속 미(未)이행이 합리화될 수는 없다. 대신, 역설적이게도 이 정부가 얼마나 무능한지를 보여줄 뿐이다.

셋째, 어쨌든 결과적으로 합의문을 내왔다면 이유불문 무조건 이행을 해냈어야 했다. 사인(私人)간의 약속도 함부로 깰 수 없거늘, 하물며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의 약속을 전 세계인과 7천만 겨레가 지켜보는 가운데 엄숙하게 했거늘 그걸 이행하지 않는다? 그 어떤 변명과 합리화과정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해서 미국 뒤에 숨어 미국핑계로 약속 불이행을 정당화하고자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이 정부의 ‘비겁한’ 몸짓이다.

어디에서부터 그 첫 단추가 잘 못 끼워졌을까?

첫째는, 이 정부 최고 수장인 문 대통령 자신의 대북철학 부재에서 출발한다.

문 대통령은 2018년 7월 예의 그 <신 한반도평화비전(베를린구상)>을 발표하면서 북을 향해 ‘체제를 보장할 테니 대화에 나서라’고 했다. 불필요한 역린(逆鱗)을 그렇게 건드렸다.

또 다른 예는,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를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2018.3.21.)

남북 간 평화공존을 강조한 것으로 믿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따로 또 함께(2국가 2체제)’로 해석할 여지가 남아서 남북 평화공존체제를 주창한 것과도 같다. 맥락을 빼고 직설하면 분단체제를 극복하려는 의지보다는 분단체제를 인정하고, 그 토대위에서 평화체제를 수립하려는 반(反)통일정책이다.

둘째는, 이 정부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보다 더 후퇴한 대북정책에서 그 원인이 확인된다.

하나,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국정좌표에 ‘통일’이 없다.

▶사실상 통일정책은 제로, 아무도 모르는 통일국민협약 추진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통일외교안보분야에서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인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3대 전략, 16대 국정과제(아래 첨부된 그림표 참조)는 아래와 같은데, 그 중 겨우 94번째에 ‘통일 공감대 확산과 통일국민협약 추진’이 있다. 그렇게 있으나 사실상 통일의 ‘통’자가 없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100대 과제 중 통일의 ‘통’자 들어가는 국정과제는 이 94번째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국정과제에서 ‘사실상’의 목표인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평화체제 구축’은 선(先)비핵화전략에 남북관계를 종속시키는 결과 낳아

남북관계와 비핵화문제는 서로 상관성이 있지만, 차별성과 독자성도 분명 있다.

어떻게?

아시다시피 북핵문제는 남북 간 적대관계에서 출발된 문제라기보다는 ‘북미 적대관계’산물이다. 그럼으로 남북관계 문제를 북미관계 문제인 북핵문제 입구에 포박시켜 놓은 것은 ‘옳지’않은 전략(접근법)이 된다.

둘, 한반도평화체제 구축문제는 남북미의 문제이다. 하지만, 통일문제는 민족내부의 문제이다. 즉, 남북문제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남북문제를 풀어갈 때는 한반도평화체제 구축문제의 핵심사안인 핵문제를 굳이 입구에 배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문제를 출구가 아닌, 입구에다 딱 갖다놓으니 남북문제가 절대 풀려질 수가 없다.

셋, 백번양보해 문재인 정부의 선평화체제이행론을 수용한다하더라도 남는 문제는 여전하다.

다름아닌, 그 입구에서 얘기되는 비핵·평화도 통일로 가기위한 비핵·평화라기보다는 오직 전쟁방지를 위한 군사적 평화담론범위를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그러니 언감생심 통일얘기를 할 수가 없다.

예는 아래와 같다.

“~나와 우리 정부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강조, 필자) 평화입니다.(<신 한반도 평화구상> 발표문 중에서)”라는 워딩도 결국은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6.15)선언 첫머리에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고 밝히고, 또 선언 2항에서는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합의해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관계로 발전시킨다고 명확히 하고 있으나, 문 대통령은 그러한 합의사항을 수행할 의사가 없다.

결론적으로 위 ‘하나’, ‘둘’, ‘셋’은 입구가 아닌, 출구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 즉 북핵문제를 입구에서부터 버티게 했으니 남북문제가 절대 풀려지지 않는다. 그 진전-북핵문제 진전 없는 남북관계, 분단문제, 통일관계는 성립될 수 없다.

셋째는, 지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에 합의해놓고도 미국의 내정간섭 기제인 한미 워킹그룹을 생성시켜 그 합의를 무색케 했다. 9월에는 ‘동맹대화’까지 신설했다. 이쯤 되면 제2의 을사늑약이 미국과 체결된 꼴과 같다.

이뿐만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도 추진되었던 이산가족 상봉 및 식량지원(의료품 포함) 등도 기대만큼 충분히 추진되지 못하였다. 정치적 문제도 아닌, 인도주의적 문제인데도 적폐정부보다 더 못한 결과를 낳았다.

상징에 박근혜 정부가 촛불민심을 호도하기 위해 조작해낸 북경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사건이 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아니, 해결할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

또 있다. 유엔 제재와는 별개로 전임 정권들의 ‘과도한’ 행정명령에 의해 이뤄진 금강산관광 및 개성공단도 복원시켜내지 못한다. 이는 이 정부가 말만 꺼내면 자신의 정부가 촛불의 토대위에 있다고 하면서 바로 그 촛불에 의해 축출된 적폐정부들의 분단적폐정책 하나도 청산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치적으로 전혀 맞지 않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그걸 하지 않는다.

넷째는, 통일부가 ‘통일’을 얘기하지 못한다.

통일부가 ‘통일’을 얘기하지 못한다? 참 서글픈 현실이다.

부(部)는 집행단위를 뜻하다. 위원회와 같이 의견개진이나 의결하는 곳이 아니다. 최고통치권자의 철학과 그 정부의 국정과제에 대해 책임지고 집행하는 단위이다.

그런 통일부가, 그것도 수장인 장관이 강연이나 하러다니고, 그것도 평화얘기, 경제얘기(‘작은 교역’), 상황관리 얘기만 하고 있고, 또 이러저런 민원을 듣고(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검토해보겠다’이렇게 사실상의 NO하는 그런 부서의 수장 자리로 전락되어있다면 이는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또 작금의 상황을 백번양보해 통일부를 이해한다하더라도 3대 전략, 16대 국정과제 중 유일하게 ‘통일’이 들어가는 것이 94번째에 해당되는 ‘통일 공감대 확산과 통일국민협약 추진’의 경우이다. 그렇다면 이것 하나만이라도 주무부서 답게 정말 열심히 추진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출범 3년을 넘긴 지금, 추진되고 있다는 보도나 ‘소문’의 ‘소’자도 듣지 못한다.

대신, 통일부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것은 귀를 의심할 정도로 ‘전쟁반대’, ‘신경제지도’, ‘작은 교역’, ‘신평화비전’, ‘북핵해결’, ‘공동 코로나 방역’ 등 외교부나 국방부, 보건복지부, 경제관련 부처의 장들의 입에서 나와야 하는 워딩들만 듣고 있다.

그러니 일각에서는 통일부가 전쟁반대部, 분단유지部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거나, 존재감이 거의 0에 가까운 있으나 마나한 식물 집행단위라고 조롱한다.

자기 정체성과 위상정립이 절실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반도가 지정학적 숙명을 갖듯이, 분단도 통일이라는 민족적 염원을 반드시 갖는다.

왜냐하면 분단으로 인해 불완전한 국가주권이 형성되어 있고, 국가구성원인 민족이 대립과 갈등으로 국력이 소모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분단국가는 필연적으로 통일과 비례하지 않는 평화가 있을 수 없게 된다.

즉, 남북관계가 진전될 때만이 평화도 앞당겨 질 수 있다는 연관과, 통일의 진전 없이 평화 없고, 평화진전 없는 통일진전도 없다.

그럼으로 평화·통일정책은 수례의 두 바퀴와 같다. 절대 한쪽 바퀴로만 굴러갈 수 없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정부는 ‘평화’라는 한 바퀴로만 수례를 굴리려 하고 있다. 그러니 그 평화마저도 제대로 굴러 갈 수 없고, 악순환만 된다.

빠져 나와야만 한다.

가. 핵 딜레마에서 빠져 나오시라. 북핵문제가 제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한반도평화체제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 양보하더라도 한반도에서의 비핵화는 평화를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나. 한반도문제는 평화의 관점으로, 남북문제는 통일의 관점에서 정책입안을 다시 짜야 한다. 즉, 한반도문제의 핵심은 평화체제와 비핵화이지만, 통일문제에 맞닿아 있는 남북관계는 민족공조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다.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에 연계시키지 않아야 한다. 다시말해 남북관계 복원을 통해 미국을 넘어서야 한다는 말이다. 4.27,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두 정상이 합의한 ‘자주’선언이 그 의미이다.

어떻게 YS보다도 못한 (촛불정부의) 대통령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금, 2020/10/30- 02:21
2
0

편집자 주:

아래의 칼럼내용은 사실상 북한이 싱가포르와 하노이의 두 번에 걸친 북미정상회담에서 일관되게 요구했던 사항이라는 점에서, 이를 미국 내 주요 인사가 공개적인 기고를 통하여 제기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만하다. 다만 지난 70여 년 북한을 끊임없이 위협하여 결국은 핵무장에 이르게 만든 패권적 전쟁국가인 미국에 대한 자기비판이 빠져있는 점이 못내 아쉽다.


핵으로 무장한 북한에 대하여 단지 강압적 억지력만으로는 실수에 의한 핵사용의 위험을 확실하게 예방하거나 관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이 다른 세계와 고립되면 이에 따르는 특별한 위험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부는 김정은 정권과 외교관계 정상화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로스앤젤레스 – 최근 북한이 새로운 대륙간 및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을 공개적으로 과시하면서 평양정권이 미국 본토에 가하는 위험에 대한 우려가 새롭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부는 지난 4년 동안 미국의 대북정책을 검토하고 도널드 트럼프가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진행하였던 핵-정상회담의 경험을 기반으로 새로운 무기통제의 접근방식을 고려해야 합니다.

트럼프의 노력이 실패로 끝난 점에 대하여 누구도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의 북미협상 – 빌 클린턴 시절의 “제네바 일반합의(프레임 워크)”,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6자회담”, 버락 오바마의 “Leap Day?”를 포함하여 결국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중단시키려는 이전 미국 행정부의 모든 시도들은 실패하였습니다. 반대로, 북한은 200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했고, 한반도를 비핵화하겠다는 1992년 한국과의 협정을 준수하지 못했습니다.

상기에 언급한 과거의 외교활동들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과연 핵무기 통제(압박)로 한반도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실제적 의미가 없습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일부 인사(예로서, 존 볼튼과 폼페이오 류)들이 요구한 것처럼, 핵무기를 폐지하거나 검증이 가능한 핵동결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오늘날 모든 핵무장 국가들에서 불 수 있듯이, 핵무기는 김정은 정권의 궁극적인 안보를 보장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핵무장은 한국에 대하여 북한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도와줍니다. 따라서 현재에서 핵심은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고전적인 억지력를 뛰어넘는 새로운 외교적 사고, 특별히 북미 관계의 정상화가 필요합니다. 미국은 현재 한국에 대한 해상항공(항공모함) 및 핵우산을 통해 한반도에 전쟁억지력을 제공하고 있으며, 30,000명 수준의 미국 지상 및 공군 부대가 50만 명의 현역과 예비군을 포함한 잠재적인 3백만 명의 한국군 병력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억지력만으로는 실수로 인한 위험을 확실히 예방하거나 관리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이 다른 세계와 고립되면서 통제할 수 없는 독특한 위험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격리와 고립은 오해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병리학적 불안정을 조장합니다. 문제가 꼬이기 시작하면, 김정은은 의도적 과시와 군사적 위협 그리고 기습 등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억지력을 뛰어넘는 정상적인 외교관계는 중국과 미국의 관계를 포함하여 대립하던 적대적 사이를 평화의 관계로 전환시켰습니다. 오늘날의 북한보다, 냉전 시대의 중국은 모택동의 주도아래 중국은 미국의 이익에 더욱 심각한 위협을 가했습니다. 모택동 정권은 한국전쟁 당시 미국에 대항하여 개입했고, 1950년대 후반에 대만해협의 위기를 조장했으며, 서구열강에 대항하는 민족해방전쟁을 독려했습니다. 1961년 존 F. 케네디 행정부가 집권했을 때 미국은 중국을 떠오르는 악마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군사적 조치를 고려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폭격을 가하지 않았으며 뒤를 이아 집권한 Richard Nixon은 오히려 중국에게 문호를 개방하면서 결국 지미 카터 대통령 재임기간에 이루어진 미중의 관계정상화는 미국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었습니다. 양국 간에 소련과 맺은 핵무기제한조약 같은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군사력은 현재의 갈등속에서도 대체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미소간의 대화를 통한 외교관계 역시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그 가치를 입증했습니다. 미국이 소련에게 쿠바에서 핵미사일을 철수하도록 강제하기 위해 군사적 준비를 강화하는 한편, 워싱턴에 상주한 소련외교관과 미국관리 간의 막후적인 상호역할이 전쟁직전의 교착상태를 종식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냈습니다.

마찬가지로 파키스탄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영향력과 인도와의 관계는 1999년 Kargil 분쟁과 2001년 인도의회에 대한 Jaish-e-Mohammed 테러공격의 여파로 인한 핵전쟁의 가능성을 늦추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김정은 정권의 안전과 생존을 보장하는 핵보유의 중요성으로 인하여, 외교관계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과정이 매우 복잡할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어떻게 하면 북미간에 외교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까’ 방법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의 출발이 양국간의 대사관 개설로 시작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자신감을 불러 일으키고 양국이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니면 협상 당사자들이 양국의 정상화를 위한 세부사항의 협상에 즉시 착수할 수 있을까요?

어느 경로를 택하든, 두 가지의 우선순위가 존재합니다. 1) 북한은 국제적인 대북제재의 해제가 필요하고, 2) 미국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공격능력을 제거해야 합니다.

김정은 자신이 인정하였듯이, 북한경제는 국제적 재제와 국내적 관리실책 그리고 코로나-19 등으로 매우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효과적인 탄도미사일 방어능력MD이 부족한 미국의 경우에는 북한의 핵공격 가능성을 용인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지점, 즉 미국의 대북재제 해제와 북한의 핵공격능력 제거가 상호간에 협상대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협상은 미국의 대북선제공격의 위험을 줄이면서, 북한의 과시적 핵무장에 손대지 않은 채, 북한경제를 개선하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또한 북한의 미국에 대한 ICBM 공격가능성을 배제하고, 한국과 일본의 안보요구를 충족시키는데 유리할 것입니다. 그리고 양국 간에 외교적 대표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 상호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관리할 신뢰의 채널을 갖게 합니다.

김정은 정권이 진지하게 협상에 호응할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는 우선 소위 트랙 II 외교 (미국정부 관계자들과 북한 관리들이 재3국에서 비공식적으로 만나는 외교방식)를 승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시도가 평양당국의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면 공식적인 회담의 기회가 열릴 것입니다. 만약 비공식 접촉이 실패하면, 과거의 방식처럼 북한이 무장해제를 하도록 설득하는 시도를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요점은 양국간의 외교적 정상화가 ICBM과 대북제재를 상호적 교환방식으로 매듭짓는 최선의 길이라는 점을 양국 지도자에게 설득하는 것입니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021-03-09.

Bennett Ramberg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국무부 산하 정치군사 현안부서의 상황분석가로 재직하였으며, 이후 “Destruction of Nuclear Energy Facilities in War”와 “Nuclear Power Plants as Weapons for the Enemy”라는 두 개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월, 2021/03/22- 19:58
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