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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영화 여파(Aftermath) – 김진혁 교수의 반민특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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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영화 여파(Aftermath) – 김진혁 교수의 반민특위 이야기

admin | 목, 2021/04/29- 02:41

[인터뷰]

다큐영화 여파(Aftermath)
– 김진혁 교수의 반민특위 이야기

인터뷰 : 방학진 기획실장
정리    : 임무성 상임교육위원

성큼 들어선 봄날, 4월 9일(금) 오후에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교수를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에서 만났다. 김진혁 교수는 EBS PD로 재직 중이던 2013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1년 넘게 제작하다 회사로부터 갑작스레 제작 중단 명령을 받고, 결국 그해 EBS를 퇴직하였다. 8년의 세월이 흐른 올해 과거취재했던 반민특위 관련자들을 다시 만나며 재구성한 다큐영화 ‘여파(Aftermath)’를 4월말에 열리는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하였다. 김진혁 교수를 만나 반민특위 다큐 제작 중단에서 ‘여파’ 출품까지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EBS 재직 당시 반민특위를 다루기 시작한 것이 언제이지요?
● 2012년부터 시작해서 2013년 초까지요.

● 아이템 선정은 본인이 했나요? 그 이유는요?
● 제가 했습니다. 해방공간에서의 일들이 궁금했어요. 1945~50년까지. 뒤지다보니 반민특위가 있더라구요. 미군정도 그렇고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반민특위가 눈에 딱 들어오잖아요. 그래서 한 번 연출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고, 연출적으로는 <바시르와 왈츠를>이라는 유대인 감독이 만든, 자신들을 반성하는 애니메이션 다큐에 몰입된 거죠. 두 가지를 섞으면 반민특위에 있었던 일을 비용걱정 안하면서도 눈에 띄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용도 좋고 연출가로서 욕심도 생기고 했어요.

●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도 좋겠습니다. 나중에 저희와 함께 다시 한번 작업해보시죠.
● 그러면 애니메이션 감독을 따로 영입해서 해야 되는데요. 제가 총연출하고요.

● 2012년도에는 어떤 다큐들을 만드셨어요?
● 2012년에는 이거(반민특위) 하나 만들었다고 봐야 해요. 그 밖에도 지식채널, 과학다큐 만들었는데 지식채널 빼고는 그다지 유명하진 않아요. 지식채널을 만들 때 <잊혀진 대한민국>이라는 시리즈를 만들어서 근현대사를 좀 다뤘죠.

● 학창 시절엔 역사에 관심이 있었습니까?
● 대학 다닐 땐 역사에 대해서는 보통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 반민특위에 대해 못 들어 보셨어요?
● 알고는 있었죠. 옛날에 친일청산에 실패했어. 반민특위가 제게는 이 정도였죠. 대학교 때는 깊이 있
게 역사를 알지 못했어요. 저는 오히려 근본적으로 부르주아적이에요. 지금도 사실 근본적으로는 다르진 않다고 생각해요.

● EBS에서 사표를 쓰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 결정적인 계기는 사실 두 번째여서. 2008년에 광우병 파동에 관해 만들었다가, 그것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6개월에서 1년 동안 굉장히 힘들었어요. 회사 가기가 싫더라고요. 사람을 보기가 싫고, 대인기피증 유사한 감정 상태였죠. 한번 더 이러니까 회사라는 공간에 더 있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EBS에 출근하면 뭔가 공황상태가 되었던 거죠.

● 2008년에는 어떤 압력이 있었나요?
● 방송을 내렸잖아요. 2008년에는 방송을 했는데 내린 거고, 2012년은 방송이 나가기 전에 끊은 거고요.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참여정부 때 임명했던 사장이었고, 나중에 개인적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해서 제 내적으로는 상처를 스스로 봉합할 명분을 얻었었죠.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요. 또 하나 이명박 정부가 끝날 때 쯤 그랬다면 제가 참았을텐데, 박근혜 정부가 시작할 때 그러니까 견적이 안 나오는 거예요. 몇 년을 버텨야 하나.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대선 직후라 다 비슷한 기분이었을 거예요. 내가 저 사장하고 또 5년을 지낼 걸 생각하니.

● 그럼 한예종에 가시게 된 경위는요?
● 사표를 쓰느니 마느니 고민하고 있었는데, 지금 있는 곳에 결원이 생겨 교수 공채를 한다는 한예종 측의 얘기를 들었죠. 간헐적으로 특강은 했었지만 선생님이 된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는데 그땐 회사를 떠나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더 중요했어요. 회사에 그만큼 있기 싫었거든요. 하지만 말 그대로 공채라 채용이 보장된 것은 당연히 아니었기 때문에 최종 합격하기까지 회사 동료들에겐 말하지 않았어요. 또 당시 EBS 피디협회에서 제 문제로 피켓시위를 하는 등 힘을 써 줬던 상황이라 제가 이직
을 결정한 것이, 사고는 제가 치고 저 혼자 도망간 모양새가 되었죠. 제 나름대로는 제가 나 가는 것이 저 자신만이 아니라 EBS의 부담을 덜어주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쨌거나 동료들에겐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실제로 저로 인해 당시 제 편을 들었던 다수의 피디들이 회사로부터 근태 문제나 외부 강의 등에 대해 집단적으로 강하게 압박을 받았어요. 일종의 의도적인 표적 감사였죠. 그런 짓을 한 당시 EBS 임직원들이 가장 문제이지만 분명 제게도 큰 책임이 있죠.

● 한예종 근무는 어떴습니까?
● 처음에는 만만하게 생각했어요. 수업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시간이다. 한예종은 방송국에 있는 것처럼 저를 간섭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죠. 그게 가장 매력적이었죠. 학생들하고 관계 맺는 게 힘들어요. 한 학년당 20여 명인데, 개성이 강한 친구들이어서 더 힘들어요. 일반종합대학 신방과에 갔으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재미는 있습니다. 배우는 것도 많고 자극도 많은데. 제 에너지의 한계가 있는데 나는 이 정도만 쓸 거라 생각했는데, 더 많이 신경이 써지더라고요.

● 다큐멘터리 제목을 여파로 지은 이유는?
● 원래는 역사적인 개인사로 시작했는데, 내용이 좀 매력적이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제가 들어가기가 싫더라고요. 그래서 안 들어갔다가 설명이 잘 안 되어서 조금 넣었다가 그래도 뭐가 좀 안 되는 거 같아서. 뭐가 비어 있는 듯이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여파’라는 말이 실처럼 쫙 끼워주는 느낌이 나야 하는 거 같아요. 이게 반민특위 후손들분이 특위의 와해로 어떤 여파로 자신의 삶이 영향을 받고, 그걸 뭔가 만들겠다는 저는 그것 때문에 다시 여파를 받고 그리고 개인들만의 여파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여파인거죠. 그걸 기억하던 기억하지 못하던 상관없이. 일단 두 글자라는 점이 맘에 들었어요. 예전에 긴 제목을 써봤는데 반응이 안 좋더라고요. 해직언론 다큐의 제목이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이었는데, 다들 7년~OO 이러기만 하더라고요.
여파는 사실 처음부터 생각했던 게 아니라 음악을 선곡하다 어떤 음악이 귀에 들어와 확인했더니, 애프터매스(Aftermath)이더라구요. 에프터매스가 계산 이후잖아요. 그게 영어로 여파죠. 재밌죠. 이승만 입장에서는 계산 끝난 이후죠. 이게 저는 양가적인 의미를 담으려 노력했는데, 너무 몰아가거나, 민족적인 이런 것도 좋지만 입체감이 안 들고 현실감이 안 나서 담는게 좋은데, 여파라는 말이 이승만의 계산 끝난 이후라는 뜻이니, 세속적으로 생각할 수 있겠구나, 그래서 좋다고 생각했어요.

● 여파의 첫 시작은 언제부터인가요?
● 시작은 제가 한예종에 가서 조그만 카메라를 하나 샀어요. 그때 김정륙 선생님하고 노시선선생님을 임시정부기념사업회에서 잠깐 뵈었어요. 인터뷰하려고. 그때 첫 촬영을 하고 안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돈이 없으니까. 제가 기존에 만들던 거는 애니메이션 다큐라서, 이분들의 증언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부분에 앞서 도입부에 나오고 인터뷰 내용은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로 만들생각이었어요.

● EBS를 그만두고 한예종을 갔지만 이 다큐는 교수님 이름으로 완성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는 거죠?
● 또 마침 여기저기서 상업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반응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예전 원고도 주고 했지만 설왕설래하다 제대로 되진 못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언론노조에서 해직언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데 연출해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그 요청에 저도 감정이입이 많이 되더라고요. 반민특위 아이템보다 먼저 해직언론 다큐를 만드느라 시간이 가고 2017년에 발표하고, 2018년에 노시선 선생님과 전화연락이 되었어요. 이분들에겐 항상 마음의 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때조차도 이분들의 인터뷰를 담아서 작품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근데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심장이 벌렁벌렁했어요. 빚쟁이 느낌이랄까, 미안함 때문에. 그 전에 김정륙 선생님 아드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직접 연락 못 받고 신문기사를 보고 깜짝 놀라 새벽에 가서 조문했지요. 계속 저는 빚이 있는데, 인터뷰만으로는 도저히 작품을 만들수가 없다. 만들어도 누가 보겠느냐는 생각이었죠. 지금 결국 “이걸 누가 봐” 하는 버전으로 만든 겁니다. 근데 이제 노선생님 쓰러지시는 걸 보고 무조건 찍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진행했습니다.

● 여파 출품의 계기는요?
● 만들기 시작했으니, 마무리지어야겠다는 생각에서였죠. 이분들한테 제가 생각해서 만들고자 하는 버전은 아니지만(제가 EBS를 나와서는 만들 수 없는 버전이라는 것을 이해해주셨으면 하고요), 노선생님의 반응을 보면서 이분들은 “인터뷰를 했으면, 뭘 내놔야지” 하는 생각이어서, 복잡한 게 하나도 없고 일단 찍어갔으니 뭘 하나라도 내놔라 뭐 이런 거죠. 알겠습니다, 내놓겠습니다. 했던 거죠.

● 마지막 날에 영화제 출품을 하셨다면서요?
● 저에게 뭔가 계기가 있어야 했죠. 인터뷰 말고 이렇게 긴 시간을 찍은 걸 유튜브에 턱 올리면 아무도 안 볼 것 같았습니다. 이런 작품은 권위를 얻어야 해요. 그래서 영화제만 계속 확인하고 있었어요. 작년에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하고 부산영화제에 출품했어요. 안됐어요. 훨씬 더 짧고 효과를 많이 삽입하고, 덜 지루하고 자극적으로 화면 배치도 바꿔가며 만 들었지만 안 되더라고요. 제가 느끼기엔 방송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영화 씬에서는 차분하게 만들어서 뭔가 묵직한 진정성에 소구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영화제 출품 작품은) 그래서 전략을 수정해서 냈지요. 그래도 기대는 안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략을 수정하길 잘했구나. 근데 문제는 이렇게 되면 영화제에서 인정받을 수 있
는 확률은 높아지지만, 일반인이 볼 확률은 더 낮아집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만든 <백년전쟁>이 딱 좋거든요. 사실 그걸 영화제에 출품하면 절대 안 뽑아줘요. <백년전쟁>처럼 만들려고 어떻게 해보다가 포기하고 영화제 버전으로 했는데, 감사하게도 출품하게 되어 후손분들에게 면목이 좀 섭니다.

● 수상 여부는 언제 알 수 있나요?
● 제가 정확하게 영화제에서 무슨 상을 주는지는 잘 모르고요. 경쟁은 아니고 초청 파트로 들어갔어요. 어느 섹션이든 상관없이 주는 상, 섹션별로 주는 상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상을 주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잖아요. 화제성, 명분, 시의성이 있을텐데, 아마 명분쪽일 것 같아요. 5월 8일에 영화제가 끝나요. 사실, 여기 초청받은 것 자체가 상이죠.

● 다큐에 담진 못했지만 남기고 싶은 얘기가 있지 않을까요?
● 다큐에 담은 분들의 내용은 거의 빠뜨리진 않은 것 같아요. 한 분을 빼놓고 했던 게 가끔 뵐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고요. 반민특위 후손분들 중에서 어떻게 보면 못 나오는 분들의 이야기가 더 있을 수 있는데, 제가 적극적으로 취재하듯이 접근하진 않았거든요. 이분들의 삶에 개입하는 걸 최소화했어요. 저는 기자가 아니고 다큐멘터리 만든 사람이라. 물론 다큐멘터리는 어쩔 수 없이 삶의 영향을 주고받기는 하지만, 이걸로 이슈파이팅을 하려는 목적은 아니어서요.

● 연구자이자 교육자이자, 다큐멘터리 작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 당분간 쉬고 싶어요. 한편으로 뭘 만든다면, 러닝타임도 짧고 미시적인 걸로 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 저희들에게는 반민특위 영상이 귀중한 영상이어서 나중에 공유하실 수 있는 거죠?
● 그럼요, 당연하죠. 얼마든지요.

● 저희들이 바라는 것은 반민특위의 복권이지요. 정철용 선생님이 오셔서 유언처럼 남긴 말씀이 독립
운동은 안했지만 반민특위는 했으니 그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반민특위 활동으로 훈장이나 표창을 받을 수 있겠나? 하셨어요. 언젠가는 반민특위 자체가 복권되는 그날을 기대합니다.

● 원래는 2012년 만들 때 반민특위를 극화했었어요. 역사 애니메이션이죠. 노일환 의원 연설하는 장면,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 잡으러 가는 장면 등이 나오죠. 앞부분에 김정륙, 노시선 선생님 인터뷰 나오고요. 오히려 반민특위는 상업영화 쪽으로 개봉을 염두해두고 만들어져도 좋을 것 같아요. 로토스코핑(애니메이션 표현을 최대한 현실과 유사하게 끌어올리고자 애니메이션과 실사 이미지를 합성시키는) 기법에 의한 역사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반민특위’가만들어지는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 끝으로 민족문제연구소 구성원과 회원들에게 해주실 말씀은?
● 민족문제연구소는 뿌리 깊은 나무 같아요. 오디오파일이나 필요한 연구자료 등이 아쉬워 연락하면 바로 해결되잖아요. 연구소 회원으로 계시는 것은 항상 지켜주시는 거니까 자부심을 가질 만합니다. 작업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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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평]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을 환영하고 대법원의 8년 직무유기를 규탄한다.

 

대법원은 오늘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에 따른 노동조합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고용노동부의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을 하였다.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제33조, 외국인의 지위를 보장한 헌법 제6조, 국적에 따른 근로조건의 차별대우를 금지한 근로기준법 제5조, 인종차별금지를 금지한 노조법 제9조 등에 비춰볼 때, 위 판결은 지극히 타당하고 상식적인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 판결이 나오기까지 대법원에서만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을 10년 전으로 돌려보자. 2005년 4월 24일 서울·경기·인천지역에서 취업해 일하고 있던 이주노동자 99명은 지역별 노동조합인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를 설립하고, 같은 달 5월 설립신고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했다. 같은 해 6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은 노조 임원 및 조합원 일부가 출입국관리법상 취업 및 체류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므로 노조법상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다며 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이주노조는 고용노동부의 노조설립신고 반려처분이 법적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노동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헌법상 권리인 노동3권을 출입국관리법상 체류자격이 없다는 임의적 상황에 따라 차별하는 처분은 위법 · 무효이므로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2006년 2월 7일 서울행정법원 제13행정부(재판장 김태종 판사)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여 원고 청구를 기각했으나, 2007년 2월 1일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제11특별부(재판장 김수형 판사)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설립신고서 반려처분이 법적근거가 없는 것으로 위법하므로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2007년 2월 23일 고용노동부가 상고하여 대법원에서 심리가 시작된 이 사건은 대법원의 최장기 미제사건 기록을 갱신하며 무려 8년 동안이나 계류되어 왔다. 김황식 전 대법관, 후임 양창수 전 대법관을 거쳐 권순일 현 대법관에 이르기 까지 주심 대법관만 3명을 거쳤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결과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내국인 노동자들이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하여 노동조합 가입자격이 제한되거나, 이미 가입된 노동조합의 실체가 부정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주노동자들이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체류자격이 없더라도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한, 헌법상 노동3권이 제한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올해 제323차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회에서 채택된 제374차 결사의자유위원회 보고서에서는 8년째 계류된 이주노조 설립신고 상고심을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체류자격에 상관없이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와 단체교섭권을 전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을 한국 대법원과 정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대법원의 8년에 걸친 심리 지연으로, 이주노조는 모진 수난을 겪었다. 아노아르 후세인(방글라데시) 초대 위원장을 비롯해 미셀 카투이라(필리핀) 4대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이주노조 주요 임원들은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 표적단속 되어 강제추방 당하거나, 입국이 거부되었다. 그럼에도 이주노조는 노동조합임을 포기하지 않았다. 노동자의 자주적인 단결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이주노동자 스스로 바꿔보겠다는 창립정신으로 끈질기게 싸워왔다. 우리 모임은 이주노조의 지난 10년 동안의 헌신적인 투쟁에 경의를 표하며 깊은 연대의 마음을 표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이 사건 판결 어디에도, 대법원이 지난 8년 동안 고심한 흔적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대법원은 오히려 사회적 약자인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 눈 감았다. 한국경제의 가장 밑바닥을 책임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폭력과 비인간적인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목소리를 8년 동안 외면했다. 이는 인권의 보장과 정의의 구현이라는 사법부의 존재목적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최고법원의 권위와 존엄은 법원에 출입하려는 이주노조 조합원들의 투쟁조끼를 억지로 벗겨내려는 것이 아니라, 인권보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스스로의 목적에 충실할 때 비로소 인정될 수 있음을 대법원이 지금이라도 깨닫길 바란다.

 

2015. 6. 25.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한 택 근

목, 2015/06/2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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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민변, 백남기 농민 살수행위 당시

살수차가 촬영한 동영상 확보를 위한 증거보전 신청

 

1. 민주언론을 위한 귀 언론사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 백남기 농민이 지난 11월 14일 경찰의 위법한 직사살수로 의식을 잃은 지 3주가 다 되어 가고 있습니다.

 

3. 그 동안 우리 모임은 위법한 직사살수 행위(이하 “본건 살수행위”)와 관련된 경찰들을 고발하였고,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시민 1만 여 명의 의사를 모아 수사촉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본건 살수행위에 대해 검찰과 경찰의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고, 경찰청장은 관련 동영상 분석에 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만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4. 이에 우리 모임은 오늘 백남기 농민의 따님의 요청에 의하여 본건 살수행위 당시 살수차가 촬영한 동영상을 확보하기 위한 증거보전신청을 하였습니다. 이 증거보전신청은 앞으로 있을 국가배상청구를 위한 증거를 사전에 확보한다는 의미이지만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5. 아울러 법원은 신속한 결정으로 국민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 경찰의 불법행위와 관련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게 하여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무관심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길 바라는 바입니다.

 

 

2015. 12. 3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 모임

회장 한 택 근

 

목, 2015/12/03- 13:56
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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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함께 시민과 함께

[caption id="attachment_151093" align="aligncenter" width="650"]캡처1 출처 : http://www.earthday.org/2015[/caption] 6월 5일은 세계 환경의 날(World Environment Day)입니다. 1972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UN 인간환경회의’ 기념하기 위해 제정됐습니다. 세계가 함께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보전을 다짐하는 날이며, 환경을 위해 수고한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날입니다. 한국도 1996년부터 6월 5일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해 기념식과 함께 각종 시민 참여행사를 통해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습니다. 유엔환경계획, 2015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선정 [caption id="attachment_151096" align="aligncenter" width="300"]sustainable consumption 출처 : http://www.earthday.org/2015[/caption] 유엔환경계획(UNEP)에서는 환경의 날을 맞아 매년 하나의 주제를 선정해 국제적인 관심을 촉구하고 있는데, 올 해는 주제가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입니다. 70억의 지구인들이 하나의 지구를 위해 현명한 생산과 소비의 사이클을 만들어, 새로운 경제적 기회와 시민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기회로 삼자는 것입니다. 2013년의 주제가 비슷한 ‘녹색경제’였던 것을 감안하면, 지속가능한 경제는 하나뿐인 지구를 위한 핵심 과제이고 어려운 주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환경연합, 지구차원의 주제를 공감하고 함께할 환경운동연합도 제 46회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지구차원의 주제를 공감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에 함께할 것을 다짐합니다. 세계적인 경제 침체와 극단주의의 발호 속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정부와 기업들을 이해하고, 합리적인 문제제기와 대안적인 협력을 하고자 합니다. 지구의 수용력과 자원의 효율적 이용, 시민의 건강한 소비 등의 주제에 더 연구하고 새로운 활동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국제사회가 논의 중인 포스트-2015 발전 계획(9월)과 신기후체제 출범(12월) 등에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역할임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 거리가 한국의 경제 성장 정책 [caption id="attachment_151070" align="aligncenter" width="640"]환경의날 환경연합 퍼포먼스 사진3 환경연합은 지난 4일 환경의 날을 맞아 지속가능한 환경을 염원하는 국민의 희망이 '환경 파괴의 ‘판도라 상자’에 갇히지 않도록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도록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음[/caption] 우선 한국 정부의 편향적인 경제성장 정책에는 반대합니다. 사회의 안전장치를 무력화 시키는 규제완화, 비효율을 양산하는 개발정책, 위험 요소를 방치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생산과 거리가 멉니다. 구체적으로 주민의 안전과 건강을 고려하지 않는 ‘공장입지 제한의 완화,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가균형발전을 포기한 그린벨트 해제, 4대강 사업 지역에 섬진강을 더한 ‘5대강 개발 계획, 국제사회에 약속한 '온실가스 저감 약속의 폐기', 국립공원과 주요 생태 거점들에 대한 케이블카 허용 시도’, 설계수명 다한 노후원전의 연장운행 결정 등은 우리사회를 지속불가능하게 만들 것입니다. 정부는 개발시대의 성장 담론을 벗어나야 하며, 건강한 성장,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발전을 위해 정책을 재고해야 합니다.   사회적 기업, 공유 경제 통한 기업들의 실험과 도전이 확산되어야 [caption id="attachment_151097" align="aligncenter" width="736"]캡처 출처 : http://www.earthday.org/2015[/caption] 다음으로 한국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과 환경인식의 개선을 요구합니다. 최근 기업들은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저탄소차협력금제도’를 무력화 시켰고, ‘화학물질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과 유해화학물질관리법’, ‘화학물질관리법’ 등의 시행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가정용에 비해 턱없이 낮은 산업용 전기요금을 당연시 하고, 수도권 과밀화에 따른 혼란과 비효율이 걱정되는 중에도 개발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입지 규제 완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중요한 부분인 기업들이 사회의 존중을 받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희망을 주는 것은 사회적 기업, 공유 경제 등에 대한 실험들이 확산되고 성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주의 깊게 보고 응원하고자 합니다.   환경운동, 지속가능에 영감을 주는 존재로 거듭나야  마지막으로 환경운동 역시 책임을 더욱 새겨야 합니다. 자본의 질주와 정부의 일탈에 맞서 치열하게 부딪히면서도, 표피적인 문제제기를 넘어 근본을 개혁하기 위한 대안 마련에 힘써야 합니다. 과거의 관행을 벗어나,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해 영감을 주는 존재로서 거듭나기 위해 성찰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환경의 , ‘지구와 함께 시민과 함께 [caption id="attachment_151098" align="aligncenter" width="500"]지구와 함께 시민과 함께 출처 : http://www.earthday.org/2015[/caption] 우리는 돈을 먹고 살수 없습니다. 지구상에 마지막 한 그루의 나무가 베어지고, 최후까지 살아남은 물고기 한 마리가 그물에 걸리는 날이 오지 않더라도, 우리는 지구의 소중함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환경의 날,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 하나뿐인 지구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지구와 함께, 시민과 함께 하나뿐인 지구를 지켜내야 합니다.  
목, 2015/06/0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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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보호구제신청 사건 재판부 보정명령 관련 통일부 긴급 면담

 

- 2016. 6. 3(금) 오후 3시, 정부종합청사 내

- 민변 통일위원회 참석자 : 채희준 변호사, 천낙붕 변호사, 장경욱 변호사, 오민애 변호사

- 통일부 참석자 : 통일부 이산가족과 과장 및 담당 사무관

 

1. 민주언론을 위한 귀 언론사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 민변 통일위원회 소속 변호사들은 지난 5월 26일 오후 통일부에 인신보호구제청구 북측 가족들과 수용 중인 종업원들의 가족관계증명 서류를 확보하기 위하여 북한주민접촉신고를 하였습니다.

 

3. 한편 지난 24일 민변 통일위에서 제기한 인신보호구제신청 사건에서 담당 재판부는 1) 위임장을 작성한 가족들과 피수용자들의 가족관계를 증명할 서류 등으로 가족관계를 소명할 것(5.31.자) 2) 민변 통일위 변호사들에 대한 위임의사를 소명할 것(6.1.자)을 내용으로 하는 각 보정명령을 하였습니다.

 

4. 인신보호구제신청 사건 담당 재판부의 보정명령 시한은 6월 13일이고, 시간이 매우 촉박합니다. 시급히 위 보정명령에 필요한 자료를 제출하기 위하여는 통일부의 신속한 북한주민접촉신고 수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5. 이에 민변 통일위원회 소속 변호사들은 북한주민접촉신고 담당 부서인 통일부 이산가족과 담당자들과 긴급 면담을 신청하여 오늘 오후 3시 정부종합청사 내에서 면담을 갖고 보정명령 관련 통일부의 신속한 협력을 요청할 계획입니다.

 

6. 많은 관심과 취재 부탁드립니다.

2016. 6. 3.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통일위원회

위원장 채희준[직인생략]

금, 2016/06/03-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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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벗 환경운동연합…….. …www.kfem.or.kr

(110-806) 서울특별시 종로구 누하동 251번지 전화 02)735-7000 팩스 02)730-1240

영덕핵발전소유치찬반주민투표 논평 제 1보 (1쪽)

영덕군 주민투표 성공, 압도적 반대의견 확인, 정부는 핵발전소 부지고시 철회해야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승리를 실현한 영덕군민에게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

11월 11일과 12일 양일에 걸쳐 실시된 영덕핵발전소유치찬반을 묻는 주민투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투표인명부 18,581명 중 11,201명이 투표하여 투표율 60.3%로 나타났으며, 이번에 투표를 실시하지 못한 부재자를 제외한 총유권자 대비 약 41%에 해당한다. 여러 차례의 보궐선거와 지방자치단체장이 총력을 기울여 추진했던 주민투표의 투표율이 20% 전후였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비율이다. 이 투표율은 중앙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의 갖은 협박과 무차별적 방해공작을 뚫고 나온 것이라 더욱 값진 것이다. 투표결과는 12일 자정 현재 최종 집계되지 않았지만 유치반대가 압도적일 것으로 예측된다. 영덕군민은 청정 고향에 핵발전소를 유치할 수 없다는 자신들의 의사를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영덕군민들의 압도적 반대의견은 지방자치단체장의 핵발전소 유치신청과 정부의 예정지 고시가 주민의견을 무시한 일방적 결정임을 보여주었다. 더구나 헌법과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추진되는 주민투표를 정부가 거부하고, 심지어 주민들이 군의회와 함께 자치적으로 실시하는 정당한 주민투표를 불법 운운하며 불온시 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높은 투표율과 압도적 유치반대로 정부의 반민주주의적 태도와 주민의견을 배제하는 행정에 대한 엄중한 심판을 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영덕군민이 거둔 선거의 결과는 민주주의와 주민자치의 승리다.

이제 정부는 영덕군민의 핵발전소 유치반대 의견을 받아들여 영덕핵발전소 예정지 고시를 백지화해야 한다. 만약 정부가 앞으로도 영덕군에 핵발전소 건설을 강행하려고 한다면 영덕군민은 물론 시민사회 전체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영덕주민들의 주민투표 활동 지원을 위해 전국에서 영덕으로 몰려든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들과 성금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성숙한 시민들은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핵발전소가 유치되는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닌, 우리 세대 나아가 미래세대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있다. 탈핵을 바라는 시민들의 의지가 이번 영덕군 주민투표 승리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정부는 더 이상 시대의 흐름을 거역하지 말고 핵의존 정책을 중단하고 에너지정책을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2015. 11. 13

환경운동연합 대표 권태선 박재묵 장재연 사무총장 염형철

문의 : 염형철 010-3333-3436 [email protected]

금, 2015/11/1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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