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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영화 여파(Aftermath) – 김진혁 교수의 반민특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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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영화 여파(Aftermath) – 김진혁 교수의 반민특위 이야기

admin | 목, 2021/04/29- 02:41

[인터뷰]

다큐영화 여파(Aftermath)
– 김진혁 교수의 반민특위 이야기

인터뷰 : 방학진 기획실장
정리    : 임무성 상임교육위원

성큼 들어선 봄날, 4월 9일(금) 오후에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교수를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에서 만났다. 김진혁 교수는 EBS PD로 재직 중이던 2013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1년 넘게 제작하다 회사로부터 갑작스레 제작 중단 명령을 받고, 결국 그해 EBS를 퇴직하였다. 8년의 세월이 흐른 올해 과거취재했던 반민특위 관련자들을 다시 만나며 재구성한 다큐영화 ‘여파(Aftermath)’를 4월말에 열리는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하였다. 김진혁 교수를 만나 반민특위 다큐 제작 중단에서 ‘여파’ 출품까지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EBS 재직 당시 반민특위를 다루기 시작한 것이 언제이지요?
● 2012년부터 시작해서 2013년 초까지요.

● 아이템 선정은 본인이 했나요? 그 이유는요?
● 제가 했습니다. 해방공간에서의 일들이 궁금했어요. 1945~50년까지. 뒤지다보니 반민특위가 있더라구요. 미군정도 그렇고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반민특위가 눈에 딱 들어오잖아요. 그래서 한 번 연출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고, 연출적으로는 <바시르와 왈츠를>이라는 유대인 감독이 만든, 자신들을 반성하는 애니메이션 다큐에 몰입된 거죠. 두 가지를 섞으면 반민특위에 있었던 일을 비용걱정 안하면서도 눈에 띄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용도 좋고 연출가로서 욕심도 생기고 했어요.

●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도 좋겠습니다. 나중에 저희와 함께 다시 한번 작업해보시죠.
● 그러면 애니메이션 감독을 따로 영입해서 해야 되는데요. 제가 총연출하고요.

● 2012년도에는 어떤 다큐들을 만드셨어요?
● 2012년에는 이거(반민특위) 하나 만들었다고 봐야 해요. 그 밖에도 지식채널, 과학다큐 만들었는데 지식채널 빼고는 그다지 유명하진 않아요. 지식채널을 만들 때 <잊혀진 대한민국>이라는 시리즈를 만들어서 근현대사를 좀 다뤘죠.

● 학창 시절엔 역사에 관심이 있었습니까?
● 대학 다닐 땐 역사에 대해서는 보통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 반민특위에 대해 못 들어 보셨어요?
● 알고는 있었죠. 옛날에 친일청산에 실패했어. 반민특위가 제게는 이 정도였죠. 대학교 때는 깊이 있
게 역사를 알지 못했어요. 저는 오히려 근본적으로 부르주아적이에요. 지금도 사실 근본적으로는 다르진 않다고 생각해요.

● EBS에서 사표를 쓰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 결정적인 계기는 사실 두 번째여서. 2008년에 광우병 파동에 관해 만들었다가, 그것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6개월에서 1년 동안 굉장히 힘들었어요. 회사 가기가 싫더라고요. 사람을 보기가 싫고, 대인기피증 유사한 감정 상태였죠. 한번 더 이러니까 회사라는 공간에 더 있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EBS에 출근하면 뭔가 공황상태가 되었던 거죠.

● 2008년에는 어떤 압력이 있었나요?
● 방송을 내렸잖아요. 2008년에는 방송을 했는데 내린 거고, 2012년은 방송이 나가기 전에 끊은 거고요.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참여정부 때 임명했던 사장이었고, 나중에 개인적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해서 제 내적으로는 상처를 스스로 봉합할 명분을 얻었었죠.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요. 또 하나 이명박 정부가 끝날 때 쯤 그랬다면 제가 참았을텐데, 박근혜 정부가 시작할 때 그러니까 견적이 안 나오는 거예요. 몇 년을 버텨야 하나.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대선 직후라 다 비슷한 기분이었을 거예요. 내가 저 사장하고 또 5년을 지낼 걸 생각하니.

● 그럼 한예종에 가시게 된 경위는요?
● 사표를 쓰느니 마느니 고민하고 있었는데, 지금 있는 곳에 결원이 생겨 교수 공채를 한다는 한예종 측의 얘기를 들었죠. 간헐적으로 특강은 했었지만 선생님이 된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는데 그땐 회사를 떠나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더 중요했어요. 회사에 그만큼 있기 싫었거든요. 하지만 말 그대로 공채라 채용이 보장된 것은 당연히 아니었기 때문에 최종 합격하기까지 회사 동료들에겐 말하지 않았어요. 또 당시 EBS 피디협회에서 제 문제로 피켓시위를 하는 등 힘을 써 줬던 상황이라 제가 이직
을 결정한 것이, 사고는 제가 치고 저 혼자 도망간 모양새가 되었죠. 제 나름대로는 제가 나 가는 것이 저 자신만이 아니라 EBS의 부담을 덜어주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쨌거나 동료들에겐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실제로 저로 인해 당시 제 편을 들었던 다수의 피디들이 회사로부터 근태 문제나 외부 강의 등에 대해 집단적으로 강하게 압박을 받았어요. 일종의 의도적인 표적 감사였죠. 그런 짓을 한 당시 EBS 임직원들이 가장 문제이지만 분명 제게도 큰 책임이 있죠.

● 한예종 근무는 어떴습니까?
● 처음에는 만만하게 생각했어요. 수업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시간이다. 한예종은 방송국에 있는 것처럼 저를 간섭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죠. 그게 가장 매력적이었죠. 학생들하고 관계 맺는 게 힘들어요. 한 학년당 20여 명인데, 개성이 강한 친구들이어서 더 힘들어요. 일반종합대학 신방과에 갔으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재미는 있습니다. 배우는 것도 많고 자극도 많은데. 제 에너지의 한계가 있는데 나는 이 정도만 쓸 거라 생각했는데, 더 많이 신경이 써지더라고요.

● 다큐멘터리 제목을 여파로 지은 이유는?
● 원래는 역사적인 개인사로 시작했는데, 내용이 좀 매력적이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제가 들어가기가 싫더라고요. 그래서 안 들어갔다가 설명이 잘 안 되어서 조금 넣었다가 그래도 뭐가 좀 안 되는 거 같아서. 뭐가 비어 있는 듯이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여파’라는 말이 실처럼 쫙 끼워주는 느낌이 나야 하는 거 같아요. 이게 반민특위 후손들분이 특위의 와해로 어떤 여파로 자신의 삶이 영향을 받고, 그걸 뭔가 만들겠다는 저는 그것 때문에 다시 여파를 받고 그리고 개인들만의 여파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여파인거죠. 그걸 기억하던 기억하지 못하던 상관없이. 일단 두 글자라는 점이 맘에 들었어요. 예전에 긴 제목을 써봤는데 반응이 안 좋더라고요. 해직언론 다큐의 제목이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이었는데, 다들 7년~OO 이러기만 하더라고요.
여파는 사실 처음부터 생각했던 게 아니라 음악을 선곡하다 어떤 음악이 귀에 들어와 확인했더니, 애프터매스(Aftermath)이더라구요. 에프터매스가 계산 이후잖아요. 그게 영어로 여파죠. 재밌죠. 이승만 입장에서는 계산 끝난 이후죠. 이게 저는 양가적인 의미를 담으려 노력했는데, 너무 몰아가거나, 민족적인 이런 것도 좋지만 입체감이 안 들고 현실감이 안 나서 담는게 좋은데, 여파라는 말이 이승만의 계산 끝난 이후라는 뜻이니, 세속적으로 생각할 수 있겠구나, 그래서 좋다고 생각했어요.

● 여파의 첫 시작은 언제부터인가요?
● 시작은 제가 한예종에 가서 조그만 카메라를 하나 샀어요. 그때 김정륙 선생님하고 노시선선생님을 임시정부기념사업회에서 잠깐 뵈었어요. 인터뷰하려고. 그때 첫 촬영을 하고 안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돈이 없으니까. 제가 기존에 만들던 거는 애니메이션 다큐라서, 이분들의 증언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부분에 앞서 도입부에 나오고 인터뷰 내용은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로 만들생각이었어요.

● EBS를 그만두고 한예종을 갔지만 이 다큐는 교수님 이름으로 완성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는 거죠?
● 또 마침 여기저기서 상업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반응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예전 원고도 주고 했지만 설왕설래하다 제대로 되진 못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언론노조에서 해직언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데 연출해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그 요청에 저도 감정이입이 많이 되더라고요. 반민특위 아이템보다 먼저 해직언론 다큐를 만드느라 시간이 가고 2017년에 발표하고, 2018년에 노시선 선생님과 전화연락이 되었어요. 이분들에겐 항상 마음의 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때조차도 이분들의 인터뷰를 담아서 작품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근데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심장이 벌렁벌렁했어요. 빚쟁이 느낌이랄까, 미안함 때문에. 그 전에 김정륙 선생님 아드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직접 연락 못 받고 신문기사를 보고 깜짝 놀라 새벽에 가서 조문했지요. 계속 저는 빚이 있는데, 인터뷰만으로는 도저히 작품을 만들수가 없다. 만들어도 누가 보겠느냐는 생각이었죠. 지금 결국 “이걸 누가 봐” 하는 버전으로 만든 겁니다. 근데 이제 노선생님 쓰러지시는 걸 보고 무조건 찍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진행했습니다.

● 여파 출품의 계기는요?
● 만들기 시작했으니, 마무리지어야겠다는 생각에서였죠. 이분들한테 제가 생각해서 만들고자 하는 버전은 아니지만(제가 EBS를 나와서는 만들 수 없는 버전이라는 것을 이해해주셨으면 하고요), 노선생님의 반응을 보면서 이분들은 “인터뷰를 했으면, 뭘 내놔야지” 하는 생각이어서, 복잡한 게 하나도 없고 일단 찍어갔으니 뭘 하나라도 내놔라 뭐 이런 거죠. 알겠습니다, 내놓겠습니다. 했던 거죠.

● 마지막 날에 영화제 출품을 하셨다면서요?
● 저에게 뭔가 계기가 있어야 했죠. 인터뷰 말고 이렇게 긴 시간을 찍은 걸 유튜브에 턱 올리면 아무도 안 볼 것 같았습니다. 이런 작품은 권위를 얻어야 해요. 그래서 영화제만 계속 확인하고 있었어요. 작년에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하고 부산영화제에 출품했어요. 안됐어요. 훨씬 더 짧고 효과를 많이 삽입하고, 덜 지루하고 자극적으로 화면 배치도 바꿔가며 만 들었지만 안 되더라고요. 제가 느끼기엔 방송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영화 씬에서는 차분하게 만들어서 뭔가 묵직한 진정성에 소구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영화제 출품 작품은) 그래서 전략을 수정해서 냈지요. 그래도 기대는 안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략을 수정하길 잘했구나. 근데 문제는 이렇게 되면 영화제에서 인정받을 수 있
는 확률은 높아지지만, 일반인이 볼 확률은 더 낮아집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만든 <백년전쟁>이 딱 좋거든요. 사실 그걸 영화제에 출품하면 절대 안 뽑아줘요. <백년전쟁>처럼 만들려고 어떻게 해보다가 포기하고 영화제 버전으로 했는데, 감사하게도 출품하게 되어 후손분들에게 면목이 좀 섭니다.

● 수상 여부는 언제 알 수 있나요?
● 제가 정확하게 영화제에서 무슨 상을 주는지는 잘 모르고요. 경쟁은 아니고 초청 파트로 들어갔어요. 어느 섹션이든 상관없이 주는 상, 섹션별로 주는 상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상을 주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잖아요. 화제성, 명분, 시의성이 있을텐데, 아마 명분쪽일 것 같아요. 5월 8일에 영화제가 끝나요. 사실, 여기 초청받은 것 자체가 상이죠.

● 다큐에 담진 못했지만 남기고 싶은 얘기가 있지 않을까요?
● 다큐에 담은 분들의 내용은 거의 빠뜨리진 않은 것 같아요. 한 분을 빼놓고 했던 게 가끔 뵐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고요. 반민특위 후손분들 중에서 어떻게 보면 못 나오는 분들의 이야기가 더 있을 수 있는데, 제가 적극적으로 취재하듯이 접근하진 않았거든요. 이분들의 삶에 개입하는 걸 최소화했어요. 저는 기자가 아니고 다큐멘터리 만든 사람이라. 물론 다큐멘터리는 어쩔 수 없이 삶의 영향을 주고받기는 하지만, 이걸로 이슈파이팅을 하려는 목적은 아니어서요.

● 연구자이자 교육자이자, 다큐멘터리 작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 당분간 쉬고 싶어요. 한편으로 뭘 만든다면, 러닝타임도 짧고 미시적인 걸로 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 저희들에게는 반민특위 영상이 귀중한 영상이어서 나중에 공유하실 수 있는 거죠?
● 그럼요, 당연하죠. 얼마든지요.

● 저희들이 바라는 것은 반민특위의 복권이지요. 정철용 선생님이 오셔서 유언처럼 남긴 말씀이 독립
운동은 안했지만 반민특위는 했으니 그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반민특위 활동으로 훈장이나 표창을 받을 수 있겠나? 하셨어요. 언젠가는 반민특위 자체가 복권되는 그날을 기대합니다.

● 원래는 2012년 만들 때 반민특위를 극화했었어요. 역사 애니메이션이죠. 노일환 의원 연설하는 장면,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 잡으러 가는 장면 등이 나오죠. 앞부분에 김정륙, 노시선 선생님 인터뷰 나오고요. 오히려 반민특위는 상업영화 쪽으로 개봉을 염두해두고 만들어져도 좋을 것 같아요. 로토스코핑(애니메이션 표현을 최대한 현실과 유사하게 끌어올리고자 애니메이션과 실사 이미지를 합성시키는) 기법에 의한 역사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반민특위’가만들어지는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 끝으로 민족문제연구소 구성원과 회원들에게 해주실 말씀은?
● 민족문제연구소는 뿌리 깊은 나무 같아요. 오디오파일이나 필요한 연구자료 등이 아쉬워 연락하면 바로 해결되잖아요. 연구소 회원으로 계시는 것은 항상 지켜주시는 거니까 자부심을 가질 만합니다. 작업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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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평]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을 환영하고 대법원의 8년 직무유기를 규탄한다.

 

대법원은 오늘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에 따른 노동조합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고용노동부의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을 하였다.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제33조, 외국인의 지위를 보장한 헌법 제6조, 국적에 따른 근로조건의 차별대우를 금지한 근로기준법 제5조, 인종차별금지를 금지한 노조법 제9조 등에 비춰볼 때, 위 판결은 지극히 타당하고 상식적인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 판결이 나오기까지 대법원에서만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을 10년 전으로 돌려보자. 2005년 4월 24일 서울·경기·인천지역에서 취업해 일하고 있던 이주노동자 99명은 지역별 노동조합인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를 설립하고, 같은 달 5월 설립신고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했다. 같은 해 6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은 노조 임원 및 조합원 일부가 출입국관리법상 취업 및 체류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므로 노조법상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다며 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이주노조는 고용노동부의 노조설립신고 반려처분이 법적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노동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헌법상 권리인 노동3권을 출입국관리법상 체류자격이 없다는 임의적 상황에 따라 차별하는 처분은 위법 · 무효이므로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2006년 2월 7일 서울행정법원 제13행정부(재판장 김태종 판사)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여 원고 청구를 기각했으나, 2007년 2월 1일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제11특별부(재판장 김수형 판사)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설립신고서 반려처분이 법적근거가 없는 것으로 위법하므로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2007년 2월 23일 고용노동부가 상고하여 대법원에서 심리가 시작된 이 사건은 대법원의 최장기 미제사건 기록을 갱신하며 무려 8년 동안이나 계류되어 왔다. 김황식 전 대법관, 후임 양창수 전 대법관을 거쳐 권순일 현 대법관에 이르기 까지 주심 대법관만 3명을 거쳤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결과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내국인 노동자들이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하여 노동조합 가입자격이 제한되거나, 이미 가입된 노동조합의 실체가 부정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주노동자들이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체류자격이 없더라도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한, 헌법상 노동3권이 제한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올해 제323차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회에서 채택된 제374차 결사의자유위원회 보고서에서는 8년째 계류된 이주노조 설립신고 상고심을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체류자격에 상관없이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와 단체교섭권을 전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을 한국 대법원과 정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대법원의 8년에 걸친 심리 지연으로, 이주노조는 모진 수난을 겪었다. 아노아르 후세인(방글라데시) 초대 위원장을 비롯해 미셀 카투이라(필리핀) 4대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이주노조 주요 임원들은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 표적단속 되어 강제추방 당하거나, 입국이 거부되었다. 그럼에도 이주노조는 노동조합임을 포기하지 않았다. 노동자의 자주적인 단결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이주노동자 스스로 바꿔보겠다는 창립정신으로 끈질기게 싸워왔다. 우리 모임은 이주노조의 지난 10년 동안의 헌신적인 투쟁에 경의를 표하며 깊은 연대의 마음을 표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이 사건 판결 어디에도, 대법원이 지난 8년 동안 고심한 흔적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대법원은 오히려 사회적 약자인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 눈 감았다. 한국경제의 가장 밑바닥을 책임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폭력과 비인간적인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목소리를 8년 동안 외면했다. 이는 인권의 보장과 정의의 구현이라는 사법부의 존재목적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최고법원의 권위와 존엄은 법원에 출입하려는 이주노조 조합원들의 투쟁조끼를 억지로 벗겨내려는 것이 아니라, 인권보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스스로의 목적에 충실할 때 비로소 인정될 수 있음을 대법원이 지금이라도 깨닫길 바란다.

 

2015. 6. 25.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한 택 근

목, 2015/06/2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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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 4.1 ‘푸른환경을지키는 청주시민모임으로 시작된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이 20살 청년나무로 자랐습니다

‘병들어가는 청주의 자연환경을 되살리고 지키자’는 한 뜻으로 모여 만든 단체였습니다

그동안 여러사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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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11/0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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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김련희 송환촉구 준비모임, 통일부 장관 면담 요청

- 김련희씨의 상황과 심경을 설명하고, 통일부를 통하여 가능한 조치 확인하는 시간 갖고자

 

1. 민주언론을 위해 애쓰시는 귀 언론사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 김련희송환촉구준비모임(이하 ‘준비모임’)은 인권과 인도주의, 동포애 정신에 입각한 김련희씨 송환을 위해 지난 10월 구성되었으며, 현재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 양심수후원회, 민들레_국가폭력피해자와함께하는사람들, 민주사회를위한강남서초시민모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통일위원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불교인권위원회 등 8개의 종교, 인권 단체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3. 지난 2011년 9월, 김련희씨는 간 질환 치료를 위해 친척이 사는 중국으로 건너갔다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남한에 잠시 들어올 생각으로 탈북브로커에게 여권을 맡겼지만 돌려받지 못해 뜻하지 않게 귀순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국가정보원 중앙합동신문센터 조사 과정에서 단식투쟁까지 벌이며 남한에 살 이유가 없으니 북한으로 돌려보내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간첩활동을 하면 추방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탈북자명단을 취합하고 경찰청에 자수해 2014년 7월 구속, 지난 4월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상황입니다.

4. 이에 준비모임에서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 이어 8년 만에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노동자축구대회가 개최되는 조건 속에서 세계 인권선언,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헌법상의 행복추구권, 인도주의와 동포애 정신으로 김련희씨를 송환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2015. 10. 22. 통일부 앞 ‘김련희 송환촉구 종교․인권단체 기자회견’을 개최하였으며, 김련희씨의 상황과 심경을 설명하고, 통일부를 통하여 가능한 조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통일부 장관 면담을 요청하였습니다. 면담 요청에 대한 통일부 답변은 2015. 11. 4.(수)를 기한으로 하였습니다.

5. 현재 김련희씨의 어머니는 위독한 상태에서 딸의 무사귀환을 기다리고 있고, 김련희씨의 외동딸은 곧 평양에서의 결혼식을 앞두고 있습니다. 자식과 부모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하루 빨리 해소될 수 있도록 기자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보도를 요청드립니다.

6. 감사합니다.

2015년 10월 28일

김련희 송환촉구 준비모임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 양심수후원회, 민들레_국가폭력피해자와함께하는사람들, 민주사회를위한강남서초시민모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통일위원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불교인권위원회) 

수, 2015/10/28-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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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tion id="attachment_154354" align="aligncenter" width="640"]목포 유달산 이등봉 퍼포먼스 목포 유달산 이등봉 퍼포먼스 Copyright ⓒ환경운동연합[/caption] 19일, 유달산 노적봉에서 유달산 케이블카 반대 기자회견 및 퍼포먼스가 열렸습니다. 이번 기자회견 및 퍼포먼스는 목포해상케이블카저지범시민대책위원회와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케이블카 공화국 저지 전국 행동단’이 함께했습니다. 박홍률 목포시장은 해상케이블카 설치로 관광수요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후 약 10개월 동안 형식적인 공청회와 타당성 조사를 진행하며 일사천리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30년 전부터 논란의 대상이었고 목포 시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케이블카 사업을 시민들과 충분한 공론화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caption id="attachment_154357" align="aligncenter" width="640"]Copyright ⓒ환경운동연합 이등봉에서 바라본 케이블카 노선(소요정과 일등봉 측면 고화도) Copyright ⓒ환경운동연합[/caption]   목포해상케이블은 유달산 소요정(신안비치호텔 뒤편 왼쪽 산자락)과 목포 앞바다 고하도 사이 2.98㎞ 구간에 설치됩니다. 해상케이블카는 최근 민자사업으로 추진을 결정하고 곧 사업자 공모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그러나 목포시가 민간 케이블카 사업자를 위해 시민의 혈세 197억원을 들여 주차장을 건설해주겠다는 것은 분명 특혜일 뿐만 아니라, 가뜩이나 재정상태가 심각한 목포시가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문제는 이 방식대로 케이블카가 설치 운영된다면, 그 이익이 고스란히 개발업자, 운영자, 사업예정지 등 소수의 소유자에게만 돌아가게 된다는 점입니다. 케이블카 정류장 560평에 10~20평(평균) 규모의 30개~40개의 점포 임대가 이뤄지면역경제 활기로 특수를 누릴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 불을 보듯 훤한 일입니다. 이처럼 지역경제 활성화의 확실한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케이블카 추진으로 야기되는 모든 문제와 실패에 대한 책임은 박홍률 목포시장에게 있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목포시민이 받게 될 것입니다. 이날 기자회견에 이어‘케이블카 공화국 저지 전국 행동단’의 케이블카 설치 예정지 조사도 병행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54359" align="aligncenter" width="640"]목포 해상케이블카 저지 기자회견 Copyright ⓒ환경운동연합 목포 해상케이블카 저지 기자회견 Copyright ⓒ환경운동연합[/caption]   염형철 환경연합 사무총장은 현장조사를 통해서, “해발 약 300m에 불과하고 걷기 좋은 유달산을 굳이 케이블카로 올라갈 시민이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막상 유달산 정상인 일등봉에서 바라본 바다의 모습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벌써 간척으로 천혜의 바다 풍경이 망가져버린 상태다. 케이블카가 해상케이블카라도 바다 풍경이 아름답지 않은 이상 전혀 관광객을 모으지 못할 것 ”이라고 말했다. [caption id="attachment_154353" align="aligncenter" width="640"]목포 유달산 일등봉 퍼포먼스 Copyright ⓒ환경운동연합 목포 유달산 일등봉 퍼포먼스 Copyright ⓒ환경운동연합[/caption] 박기철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전국이 케이블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는 산으로 간 4대강 사업이라고 할 만하다. 4대강 사업이 불도저식 사업 추진으로 현재 생태계 파괴 및 예산 낭비의 실패로 평가되듯이, 케이블 카 사업도 마찬가지”라고 우려했습니다. 이어서 대책위 위원들과 케이블카 저지 전국 행동단은 일등봉과 이등봉에 올라 ‘유달산 케이블카 반대’현수막을 펼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19일 목포 유달산 일정을 소화한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 전국 캠페인은 20일 진안 마이산, 21일 무주 덕유산, 22일 영주 소백산, 23-24일 설악산에서 진행됩니다.
화, 2015/10/2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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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tion id="attachment_154108" align="aligncenter" width="640"]copyright © 함께사는길 이성수 copyright © 함께사는길 이성수[/caption]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은 전국 케이블카 현안 지역을 조사하고, 문제점을 폭로하는 전국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15일 그 첫 번째 지역인 신불산에서 퍼포먼스와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우려했던 것처럼, 설악산국립공원 케이블카 승인은 전국의 케이블카 난립을 불러왔고, 설악산케이블카 사례와 마찬가지로 자료조작, 여론왜곡 등 온갖 편법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신불산도 예외는 아닙니다. 100년 된 천연의 신갈나무 숲을 파괴하고, 낙동정맥 마루금 위에 상부정류장을 설치하려는 신불산케이블카는 환경부 가이드라인을 위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무마하려는 관권동원서명작업을 하는 등 여론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케이블카 설치 계획 및 자연환경평가, 경제성분석에 대한 자료도 엉터리이고 찬성하는 시민들에게 조차도 그 내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밀어붙이기 행정으로 인한 결과입니다. 이제라도 과정을 공개하고 신불산의 자연자산을 활용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논의를 같이 해야 합니다. [caption id="attachment_154109" align="aligncenter" width="319"]_O8O0410 copyright © 함께사는길 이성수[/caption]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은 15일 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신불산 케이블카 추진 현장을 찾았습니다. 캠페인단은 신불산 공룡능선에서 대학산악연맹 산악인들과‘신불산 케이블카 반대’대형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아찔한 암벽 위에서 20m 길이의 대형 현수막은 지나가는 등산객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를 본 한 등산객 시민은 “이미 밀양 가지산 얼음골의 케이블도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무슨 또 케이블카냐”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54110" align="aligncenter" width="640"]_O8O0539 copyright © 함께사는길 이성수[/caption]   환경연합 장재연 대표는 “울주군을 찾는 관광객을 대비하여 경제성 분석을 제대로 해야 한다”며, “울산시 전체를 대상으로 분석하는 엉터리 경제분석을 통해 시민세금을 탕진하는 잘못은 지금이라도 멈춰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해남사 주지스님 만초 스님(신불산 케이블카 반대 대책위원회)은“지난 12일 신불산케이블카설치반대 대책위가 기자회견을 연 것은. 케이블카 찬성대책위가 서명작업에 행정기관을 동원하는 도 넘는 행위를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찬성대책위와 행정기관의 결탁을 비판했습니다. 환경연합 염형철 총장은 “대책위에서는 케이블카의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지금 개설되어 있는 임도를 이용하여 전기버스를 이용하면 그들이 주장하는 노약자와 장애인들의 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다”며, “물론 케이블카에 소요되는 588억 이라는 국민 세금의 10분의 1이면 충분하다”고 케이블카 설치를 원점에서 재검토 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울산 신불산을 일정을 소화한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 전국 캠페인은 16일 밀양 가지산, 17일 지리산, 18일 통영 미륵산, 거제 노자산, 19일 목포 유달산, 20일 진안 마이산, 21일 무주 덕유산, 22일 영주 소백산, 23-24일 설악산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 ‪1Km의힘‬, 또 하나의 발걸음이 되어주세요. 전국 캠페인단은 약 800Km에 달하는 전국의 케이블카 현장을 방문합니다. 각 지역 현장에서 퍼포먼스, 문화제, 기자회견, 주민간담회 등을 통해 서로 용기를 북돋우면서 적극적으로 힘을 모으려고 합니다. 또 하나의 1Km의 발걸음으로 '1만 원의 힘'을 보태주세요. 후원계좌 : 우리은행 1005-402-326916 (예금주 : 환경운동연합)   웹자보_20151014 전국케이블카순례(최종)
금, 2015/10/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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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대우조선 비정규직 노동자 강병재 의장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를 규탄한다.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은 어제(2015. 10. 14.) 165일 간의 크레인 고공농성 끝에 사내협력사와 합의를 하고 지상으로 내려 온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조직위원회(하노위) 강병재 의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하였다. 강병재 의장은 사내협력사 협의회가 2011년 한 복직 합의를 이행하지 않자 그 이행을 촉구하기 위하여 크레인 고공농성을 시작하였다. 이후 165일간의 고공농성 끝에 사내협력사와 합의를 하고 지난 9월 20일 농성을 해제하였다. 그런데 검찰은 지난 10. 12.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였고 그에 대해 법원(김성원 부장판사)은 어제 구속영장을 발부하였다. 그간 송전탑, 광고탑, 굴뚝, 크레인 등에 대한 고공농성에 대하여는 농성자들의 절박한 처지와 건강상의 문제 등을 들어 검찰이 구속영장 청구를 하지 않거나 법원이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여 왔다. 그런데 유독 위 사건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을 발부하였는바, 이는 기존의 전례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검찰은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내내, 2011년 합의와 이번 합의가 강병재 의장이 소위 하청노동자 권익을 빙자하여 외부 세력을 동원하여 사용자를 불법적으로 협박한 결과일 뿐이고, 강병재 의장의 농성으로 대우조선해양이 입은 피해가 막심하며, 법원이 이를 엄벌하지 않아 계속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고 법원을 몰아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대우조선 하노위가 실체가 없는 유령 조직이라는 허위 사실 및 대우조선해양이 강병재 의장에 대해 강한 형사처벌을 원하고 있다는 미확인 사실도 서슴지 않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이런 행태는 검찰의 객관의무를 외면하는 것으로서 공권력 행사의 편협성과 부당성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검찰은 자신이 민사소송의 사용자 대리인이 아니라 형사소송의 공권력 주체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검찰이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법원은 마땅히 이를 통제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법원은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아무런 제재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식으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했다면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응당 심리해야 할 구속사유(증거인멸 및 도주우려, 주거 부정 등)는 제대로 심리되지 못했을 것임이 명약관화하다. 우리는 법원도 검찰의 저 편협하고 부당한 태도에 동조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찰과 법원의 위와 같은 조치는, 고공농성이라는 극한의 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의 절박한 현실을 철저히 짓밟는 것이고, 노동운동에 대한 극심한 편견을 노출한 것이자, 불구속 수사 원칙이라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을 스스로 내팽개친 것이다.
 우리는 강병재 의장이 한 행위의 위법성 여부는 형사 재판을 통해 다투면 되고 그 전에 강병재 의장을 구속할 사유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그런 법리적 문제를 떠나 오로지 사용자의 약속 이행을 요구하며 165일 간이나 감옥보다 더 좁고 위험한 곳에서 고공농성을 한 사람에 대해 또 다시 자유를 옭아맬 필요성도 없다고 본다. 이렇게 보는 것이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정신과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를 벼랑 아래로 밀어버린 검찰과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 아울러 강병재 의장의 조속한 석방을 위해 지속적인 법적 조치를 취해 나갈 것임을 밝힌다. 우리는 벼랑 아래로 떠밀린 비정규 노동자의 소박한 소망이 실현되고 견결한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항상 함께 할 것이다.

 

2015. 10. 15.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위원장 강 문 대

목, 2015/10/1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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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버스를 부탁해요!

10월 17~18일(1박 2일)

목, 2015/10/1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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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검사 위변조 일본산 폐기물 수입중단촉구 기자회견-

환경부는 일본산 쓰레기 수입 금지하라!

 

 

수, 2015/10/1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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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 국립공원보전특별위원회 발족 기자회견문 국립공원을 지키기 위해 시민의 분노를 조직하고 강력히 저항할 것이다.   [caption id="attachment_154024" align="alignnone" width="600"]SONY DSC SONY DSC[/caption] 지난 8월 28일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승인되었다. 이번 사안은 설악산, 또는 케이블카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개발로부터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인 국립공원마저 무너뜨리려는 자본과 토목정부의 시도가 현실화된 사건이다. 결국 대한민국이 국립공원을 보유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 국가’라는 창피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즉 국가의 품격과 관련된 사건인 것이다. 8월 28일은 대한민국 환경부가 환경파괴합법부로 전락한 수치스러운 날이다. 4대강 때는 환경부가 정권의 강압에 의해 그랬다고나 변명하지만, 이번에는 장, 차관을 필두로 환경부가 오히려 개발과 파괴에 앞장섰다는 점에서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국립공원은 그 나라에서 가장 보호가치가 높은 지역을 후손들을 위해 자연 상태 그대로 보호하기 위하여 지정하는 것이다. 설사 경제성이 있더라도 개발을 금지하겠다고 국가가 지정, 선언한 지역이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나 유물처럼 경제적 동기로부터 터부시되기 때문에 신비로운 장소이고, ‘국가 자존심의 상징’이다. 따라서 국립공원은 개발계획이 아무리 훌륭해도 손대지 말아야 한다.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천연기념물 등 멸종위기종에 대한 부실 조사, 거짓으로 일관한 경제성 분석, 점검되지 못한 안전성 등 어느 하나 논란이 되지 않았던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부처 공무원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위원회에서 전례 없는 표결강행으로 처리되었다. 환경부 최고위 관료들이 개인 영달을 위해 ‘국가의 자존심’을 푼돈에 쉽게 팔아넘긴 사건이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대로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승인되자 전국에서 국립공원 등 자연공원을 토목개발 자본의 먹이로 넘기려는 시도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전경련이 설악산 정상에 호텔과 레스토랑까지 세우겠다고 하는 종합관광계획이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발표되는 마당에 그 어떤 개발계획이 불가능 할 것인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상상을 초월하는 황당한 개발이 전 국토의 자연공원을 훼손하려고 할 것이다. 이들은 대다수 순진한 주민들을 장밋빛 거짓말로 선동하고 있다. 이대로 대다수 시민들이 무관심하게 있다가는 정부 관리들이 어디까지 국토와 국가를 망칠지 모른다. 4대강에 22조란 돈을 퍼부은 결과 지금 모든 강이 녹조로 신음하고 있다. 전북을 살리는 사업이며, 미래의 농지를 확보한다던 새만금간척사업은 지금 어디 있는가. 잘못된 정부의 질주를 막는 길은 시민들의 분노 표출이다. 시민저항을 국립공원에서 시작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국립공원 훼손정책에 대해 항의하고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국립공원 케이블카 반대’‘국립공원 개발사업 반대’,‘국립공원 팔아먹을 만큼 배고프지는 않다’라고. 그리고 행동해야 한다. 그런 외침과 행동이 모여야 국토의 마지막 보루까지 파헤치려는 정부와 자본의 무모한 질주를 막을 수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국립공원의 편에 선 시민들과 함께 국가의 자존심을 지키고, 나라의 미래를 지키고자 한다. 전국으로 퍼져가는 케이블카 난립에 맞서 시민의 분노를 조직하고, 권력과 자본의 폭주를 저지하는 역할에 앞장서고자 한다. 이를 위해 국립공원보전특별위원회를 발족해, 설악산국립공원 케이블카 사업을 비롯한 전국의 케이블카 계획들에 대응하고, 국가 국립공원 정책의 정상화를 위해 뜻과 힘을 모아가고자 한다. 거짓과 억지를 비벼 만든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계획을 철회시키고, 위기를 맞은 전국의 국립공원과 보호지역들을 지키기 위해 활동할 것이다.
  1. 10. 13.
환경운동연합 국립공원보전특별위원회
화, 2015/10/1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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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수자인권위원회 활동소식

한상희 교수 초청 동성결혼 변호인단+민변 소수자인권위 간담회
‘헌법문제로서의 동성혼’ 후기

 

기존의 지배적인 법리에 도전하는 소송에는 어떠한 등장인물들이 있을까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존재는 문제 제기를 하고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나눠주는 당사자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와 운동 의제를 잘 연결시키고 관련자들을 조직하여 대중에게 알리는 운동 주체들이 필요합니다. 또 법리를 연구하고 실무를 준비하는 변호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법리를 제공하는 연구자, 학자 여러분들이 계십니다. 물론 이 법리를 수용하는 사법부의 노력이 있어야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겠지요. 역사적인 사법적 결정의 뒤에는 언제나 각자의 역할을 한 다양한 관계자들 사이의 협업이 있었습니다.

지난 9월 10일 소수자인권위원회 28-3차 회의에서 있었던 동성결혼 변호인단+민변 소수자인권위 간담회 ‘헌법문제로서의 동성혼’은 소송 실무를 준비하는 변호사들이 전문가적 법리를 제공하는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한상희 교수님과 견해를 나누고 토론하는 자리였습니다.

차별과 배제의 정당화
지금은 이미 옛날이야기지만 70년대 처음 등장하였던 동성결혼소송에서는 동성 커플의 결혼권리에 대한 원천적 진입 배제는 크게 2가지 이유로 사법적으로 정당화되었습니다. ① ‘원래부터’ 성별특징적이었던(gendered) 결혼의 ‘정의(definition)’상 포함될 수 없다는 논리와 ② 이성커플, 동성커플 두 집단 간 차등대우를 정당화하는 몇 가지 이유들, 특히 ‘생물학적 재생산(procreation)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기반한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기존의 가족법의 태도, 판례를 지켜볼 때, 논리적으로 성립되기는 어려운 지형입니다. 생물학적 재생산이 결혼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결혼의 필요조건(sine qua non)은 아닙니다. 불임부부, 노령부부, 옥중결혼의 경우를 보아도, 출산가능성이 적법한 혼인신고의 요건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그 외의 이유에 대해서도 차등 대우에 대한 정당화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예전의 기각 논리에서는 ‘혼인의 정의’가 자주 등장했습니다. 70년대 미국의 1세대 결혼소송 Singer v. Hara, Jones v. Hallahan, Baker v. Nelson 등이 그렇습니다.

항소인이 결혼에서 배제되는 이유는 켄터키주법이나 제퍼슨 카운티의 서기의 거부 때문이 아니라, 결혼이 정의된 방식대로 진입할 수 없는 그들 자신의 무자격 때문이다. It appears to us that appellants are prevented from marrying, not by the statutes of Kentucky or the refusal of the County Court Clerk of Jefferson County to issue them a license, but rather by their own incapability of entering into a marriage as that term is defined.
켄터키 항소 법원Kentucky Court of Appeals: Jones v. Callahan, November 9, 1973

하지만 혼인의 정의는 일의적이지도 않았고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동성 간의 결합(same-sex union)을 법적 문화적으로 인정한 역사는 상당히 많습니다. 따라서 과연 해당 관할의 혼인법상 혼인의 정의가 과연 이들을 배제하고 있는지, 만일 그러하다면 그 정의가 유지되는 것이 헌법적으로 합당한지 하는 헌법적 문제가 등장하는 것이 논리적 귀결입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생각지도 않게 저 2가지 쟁점에 도달하는 것을 막는 장벽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헌법 혼인 조항의 문언을 둘러싼 논의입니다. 비교법적으로 헌법에 혼인의 권리가 등장하는 것은 흔한 예는 아닙니다만, 보통 이렇게 등장하게 된 이유에는 역사적 의미가 있고 대체로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개인의 선택을 보장하는 기본권적인 측면이 강조됩니다. 예를 들면 독일기본법은 독일사회가 나치와 제3제국의 참상을 목도하였던 경험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혼인이 권리가 있는 제6조도 예외가 아닙니다. 나치는 “인종적으로 건강한” 아이들을 재생산하기 위해 사적인 영역인 혼인과 성행위를 적극적으로 제한하였고, 기본법 제6조는 혼인과 가족생활에 대한 이러한 국가의 부당한 개입을 막기 위하여 등장하였습니다. 따라서 제6조는 주로 혼인과 가족생활 안에서의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표상하는 조항입니다.

우리 헌법 제36조 제1항도 독일기본법 제6조의 영향을 받았으며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는 문언을 통하여 결혼의 권리의 자유권적인 측면과 평등권적인 측면을 강조합니다.

이 문언에서 결혼과 가족제도가 절대적으로 이성異性성(dual-gendered)을 갖추어야 한다고 읽는 것은, 문리적으로, 연혁적으로, 기본권 해석 측면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이 논리의 위험한 함의는 ‘헌법의 문언상 안 된다’는 쉬운 결론이 더 이상의 논의를 가로막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한 사람이 동성이라는 이유로 삶을 통째로 부정당하기 일쑤입니다. 관계를 인정받고 사회 속에 받아들여지는 것은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 권리입니다. 이러한 부정의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변호인단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헌법 제36조 제1항의 문언은 사실은 맥거핀(MacGuffin)이 아닐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혼인은 고래부터 이성간의 결합이었고 그렇게 남아야만 한다는 ‘무형적인’ 심리적 저항과 ‘끈질긴 직관’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고, 이를 정당화하는 근거를 ‘유형적인’ 문언에서 애써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성결혼 비교법례를 소개하는 논문의 결론에서 간혹 보이는 ‘동성결혼은 시기상조이며, 파트너십이 적절하다’는 주장을 볼 때도 이러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혹시 이러한 결론이 ‘다수의 선호를 반영한’ ‘법감정’의 발현이라면, 사실은 이는 더 이상 다수의 의견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헌법이 부여한 가능성의 현실화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보려하지 않는 것인지 겸허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법제화된 21개국이 주는 교훈이 있다면, 두려워할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불합리한 차별이 구제되는 조금 더 행복한 사회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려하지 않는 것은 수십 년간 서로를 돌보고 의지하며 살아온 법 바깥 커플들의 차별과 고통입니다.

‘성숙한 헌법(a mature constitution)이란 헌신과 협력에 의존하는 것이어야 하지, 배제와 박해에 조력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윌리엄 에스커릿지 교수의 말을 기억합니다.

변호인단의 마음은 하나였습니다. 우리 헌법이 부여한 불평등과 부정의를 구제할 가능성과 의무를 현실화시키는 것입니다. 이 주제에 대하여 한상희 교수님이 곧 발표하실 논문을 기대하며 이날 간담회를 마무리했습니다. 학자님들 파이팅입니다! 한국에도 동성결혼을! :)

소수2 소수1

금, 2015/09/2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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