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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를 빛낸 사람들 – 이상호 화백이 들려주는 작품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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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를 빛낸 사람들 – 이상호 화백이 들려주는 작품 해설

admin | 목, 2021/03/25- 20:23

일제를 빛낸 사람들

– 이상호 화백이 들려주는 작품 해설

인터뷰 : 이지훈
광주지부 사무국장

전남 영암 출신인 이상호 화백은 조선대학교 서양학과 4학년이던 1987년, 조선대학교 미술패 후배들과의 공동 작품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를 제작해 미술인 최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수감됐다. 악명 높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모진 고문을 받아 출감 후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후 이상호 화백은 불교를 주제로 한 그림에 몰입하면서도 동학혁명, 4·19, 5·18, 통일 등 역사와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당초 작년에 개최 예정이던 제13회 광주비엔날레는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4월 1일부터 5월 9일까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열린다. 광주비엔날레에 초청받은 이상호 화백은 친일파를 주제로 한 ‘일제를 빛낸 사람들’이라는 대작을 출품해 주목받고 있다. 이 작품은 연구소와 광주지부 회원들과 광주시민들의 후원으로 완성되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이상호 화백과의 인터뷰를 광주지부에 부탁하였다. 인터뷰를 기꺼이 맡아준 이지훈 사무국장과 인터뷰에 응한 이상호 화백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 편집자주

 

이상호 화백

이지훈 광주지부 사무국장

 

● 이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 잘못된 역사가 시작된 곳이 궁금했어요. 부정한 권력 앞에 왜 다수의 민중들이 희생되는 시대가 계속되는지. 저는 그 잘못된 역사의 뿌리에는 ‘친일’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친일의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니까 계속해서 굴절된 역사가 이어온 것입니다. 저는 이 잘못된 역사가 후세까지는 연결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제를 빛낸 사람들’이라는 작품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 그림 그리는 데에는 얼마나 걸렸나요?
● 작품에 대한 구상은 2019년도에 처음 했구요. 본격적으로 붓을 든 것은 2020년 1월부터였습니다.

● 혼자서 작업하셨나요?
● 아닙니다. 자료를 모을 때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많이 도와줬습니다. 민족미술인협회 가족들도 많이 도와주고 주변 예술인들도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광주지부 김홍길 회원님이 만든 영상을 보니 미리 소식을 들은 많은 시민들이 응원해 주셨더라구요. 시민들의 응원 소리를 들으면 힘이 안 날래야 안 날 수 없죠.

● 인물 선정 작업이 꽤 어려웠을 텐데요.
● 맞습니다. 개인, 가문, 단체의 명예가 걸린 일이라 참 민감했어요. 더군다나 친일전력을 가진 인물들의 후손들이 대부분 현재까지도 권력의 일선에 계신 분들이거든요. 그래서 공정성, 객관성을 더하기 위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에 수록된 인물들, 그리고 각종 역사 서적에 올라있는 친일인물들 중 친일 전력이 뚜렷한 인물들만 골라 그렸습니다. 이 그림에 빠진 인물들도 언젠가 제가 그림으로 소환할 예정입니다.

● 그리면서 힘들었던 적은 없었나요?
● 친일파들 얼굴을 1년 내내 들여다보며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엔 정이 들더군요.(웃음) 얼굴을 그리고 옷을 입히고 포승줄로 묶고 수갑을 채우는 동안 제 마음 한켠에선 묘한 연민 같은 게 들었습니다.
당신들도 처음에 태어났을 땐 부모님께 사랑받는 총명한 아이였을 테고 배울 만큼 배운 수재였을텐데 어떻게 잘못된 선택을 해서 후세에게 영원히 지탄받는 사람이 되었을까 하는 동정심이 일었어요. 실제로 그림을 보면 느끼시겠지만 하나하나 다 말끔한 용모예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이런 모습으로 후세에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되어 남겨진단 말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측은지심이 들지만 그들이 지은 죄는 역사적 단죄를 받아야 합니다.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1995)

 

이상호 제1회 개인전-역사의 길목에 서서 2015.9.10~16

 

● ‘일제를 빛낸 사람들’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네, 총 92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이 그림 속에 들어있습니다. 가운데에 위치한 크게 그려진 인물들은 지금까지도 그들의 반민족 행적이 이어지는 적극 친일파 19명입니다. 그리고 이들 주위를 73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에 경중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저는 친일의 뿌리이자 주축 역할을 한 인물들을 중앙에 넣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분야별, 시대별로 인물들을 모아놨습니다.
참고로 분야별 인물은 관료 22명, 경제·언론 14명, 군인·경찰 16명, 교육·예술 27명, 친일단체·종교·밀정 13명입니다. 시대별은 1905년 을사늑약 당시 을사오적을 시작으로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흘러갑니다. 을사오적을 중심으로는 대부분 왕족, 관료 출신 매국노들입니다. 을사오적 밑으로는 이용구 송병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진회를 이끌었던 송병준은 경술국치 당시 이완용보다 더한 조건을 일왕에게 내걸었던 일급 매국노입니다. 한때 동학농민혁명에도 참가했던 이용구 또한 나라 팔아먹는 데 앞장섰습니다. 정미칠적, 경술국적 밑으로는 일제로부터 귀족작위를 받았던 매국노들과 경제·금융계에서
국민의 고혈을 빨아먹던 인물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당시 친일파들은 혈연적으로 많이 엮여 있었는데요. 박영효는 철종의 부마(사위)지만 친일로 돌아서 부를 축적한 친일파의 표본인 자입니다. 우리 지역 화순의 농선이라는 기생과의 일화도 있죠. 박기순 박영철 부자는 곡창지대인 전북지역의 대지주 출신으로 일제에 적극 부역해 부를 축적합니다. 깡말라가는 농민들과는 대조적으로 비만한 체격으로 유명합니다. 한상룡은 이완용의 외조카로 속칭 우봉 이씨은행으로 불렸던 한성은행 전무로 엄청난 부를 축적합니다. 북촌에 가면 백인제 가옥이라는 고택이 있는데 그 집의 원래 주인이 한상룡입니다. 그 옆 민영휘는 친일전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입니다.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이 친일전력이 많이 드러나 있는 인물입니다. 나라를 팔아 재산을 늘렸던 친일파들은 나중에 반민특위 1호 검거자인 박흥식이 있습니다. 그 외에 실업계 김성수, 김연수, 금융계 현준호, 김용주, 대지주로는 박기순, 박영철 등 친일 경제인들입니다. 김성수 김연수는 형제지간이고, 현준호와 김용주는 사돈지간이며, 박기순 박영철은 부자지간입니다. 태창직물로 당대 재벌인 백낙승은 일제강점기 때 아들(백남준)을 차에 태워 등교를 시킬 정도로 재산이 많았는데요 당시 차를 총 7대나 가진 거부였습니다. 막대한 재산은 사실 방직공장에서 착취에 시달리던 국민들의 고혈을 뽑아 만든 재산입니다.

이상호 전정호 공동전시회-응답하라 1987, 2017.4.25~7.30

아래쪽으로 내려오면서부터는 3·1만세의거 이후 다른 형태의 친일파들이 등장하는데 주로 교육 언론 문화계 출신,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친일파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특히 신교육을 받았던 여성 교육계가 대표적이었는데요. 그 인물들을 이곳에 모아 그렸습니다. 김활란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여성계의 대표적 지도인사로 자리 잡지만 나중엔 제자들을 전장으로 내보내는 등 자진해서 일제에 적극 협력합니다. 나중엔 이승만 독재에 부역하고 박정희 독재에도 부역하면서 권력의 해바라기를 자처했습니다. 아직도 이화여대엔 김활란 동상이 서있어요. 다른 여성 친일파들(황신덕, 박인덕, 노천명, 모윤숙 등)도 사학재단의 설립자로, 대표적인 여류 문인으로 아직까지 존경받고 있습니다. 
언론계의 대표적 친일파는 조선일보 방응모와 동아일보 김성수가 대표적입니다. 친일 사설로 일제에 아첨했고 내선일체를 부르짖으며 어린 학생들을 전쟁터로 내몰았습니다. 
프랑스는 해방 후 나치에 부역하지 않았던 신문이라도 나치 치하에서 15일 이상 간행했던 신문사라면 모조리 폐간시켰습니다. 국민의 여론과 사상을 바르게 이끌고 나가야 할 언론이 나치 치하 식민지 상황인데도 정상적으로 발행됐다는 것 자체가 반민족행위라는 뜻이었습니다.
프랑스가 언론·문화계 인사들에게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에 비해 대한민국 두 신문사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언론사들입니다. 너무도 상반된 현실입니다. 우리 문학계를 대표했던 이광수, 최남선, 서정주 등등은 정말 글 잘 쓰는 천재들입니다만 그 좋은 머리를 일왕의 황국신민이 되기 위해 썼습니다. 2·8 독립선언문을 쓴 이광수는 <민족개조론>이라는 글을 써 한민족을 비하했고 3·1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최남선은 대표적 어용 문인이 됩니다. 더욱 슬픈 일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는 이들이 독립운동가인 줄 알고 배워왔으며 이들의 작품을 줄줄 외워야만 진학할 수 있었던 시대를 살았습니다. 이들 이후로 문학계에는 수많은 친일파가 양산되는데 김억, 김동환, 주요한, 이무영 등이 바로 그들입니다. 예술계 또한 대단한 친일파들이 많습니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는 일본 국적을 원했으니 그의 바람대로 ‘에키타이 안’으로 불러야 맞습니다. 유럽 체류 당시에는 친나치 부역 혐의까지 있는 그가 1942년 만주국의 건국 10주년을 축하하여 만든 연주곡이 바로 <만주환상곡>입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만주환상곡>은 <한국환상곡>으로 이름을 바꿔 우리 애국가의 모태가 됩니다.
일본군 찬양 노래인 <선구자>를 독립군 찬양 노래로 둔갑시킨 조두남. <혈서지원> 등 수많은 징병 권유 노래로 수많은 청년들을 사지로 내몬 박시춘, 남인수. 희망의 나라의 실체가 의문인 <희망의 나라>를 만든 현제명. 친일파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며 부를 축적한 조선 마지막 어용화사 김은호. 매년 전시체제 영화를 보급하며 나운규의 <아리랑>에 먹칠한 영화인 최인규.

 

이상호 제2회 개인전 – 연필로 그린 부처님(2018.5.2~31)에 출품한 녹원전법

 

일제강점 말기가 되어갈수록 신성해야 될 종교계 또한 친일파들이 장악합니다. 조선신궁에 참배하고 일본신도 침례의식과 궁성요배를 강요했던 불교계 이종욱, 권상로. 개신교의 정춘수, 백낙준, 전필순 그리고 대동아성전을 부르짖은 천주교의 장면.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우리나라가 일제의 병참기지화 정책에 휘말리면서 많은 청년들이 출세를 위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됩니다. 혈서지원을 쓰고 일왕에 충성을 맹세하는 일제 황군이 되는 것이었죠. 바로 친일군인들의 등장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멸사봉공’ ‘견마지로’의 혈서를 쓰고 만주군 장교가 되었던 박정희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만주군벌들이 박정희의
지원 전후로 군국주의 전사가 되기 위해 일제 황군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이런 선택을 하기까진 일본 육사 출신 이응준과 김석원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응준(일본육사 26기. 장인 이갑 독립지사 / 사위 이형근 대한민국 국군 군번 1번)은 일본육사 시절 독립군이 되기 위해 탈출한 지청천과 동기였으나 빼앗긴 조선을 되찾는 독립군보다 일본군이 되기로 작정하고 일본군 대좌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김석원은 일본 육사 27기로 일본군보다 더 일본군 같은 맹렬함으로 혁혁한 전과를 올린 인물입니다. 역시 대좌까지 진급했어요. 이응준과 김석원은 해방 이후에도 친일전력을 가진 군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일제를 빛낸 사람들’

 

두 일본 육사 군벌 외에 1940년을 전후해 만주군벌들의 전성시대가 열립니다. 김백일, 백선엽등 대표적인 친일군인 외에도 화폭이 모자랄 정도로 많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독립군에게 총칼을 들이대던 자들이었습니다. 친일군인들은 박정희 독재를 거쳐 최근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권력을 좌지우지하게 됩니다. 이들이 독립지사들과 함께 대한민국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는 것이 참 슬픈 현실입니다.
군인 못지않게 경찰 중에도 무수한 친일 악질 경찰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친일경찰로는 노덕술과 하판락이 있습니다. 너무도 잘 알려진 친일행적으로 굳이 따로 해설이 필요 없는 인물들입니다. 다음 작품이 그려진다면 친일경찰을 더 많이 그려넣을 작정입니다. 
마지막으로 해설하고픈 인물은 바로 우봉 이씨로서 제2공화국 때 문교부 장관까지 했던 이병도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뛰어난 역사학자였던 그는 일제 사학자들 밑에서 식민사관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시키고자 노력했습니다. 조선사편수회 촉탁으로 근무했으며 청구학회, 진단학회 등 학술단체에 관여하면서 수많은 식민사학자들을 길러냈습니다. 이자가 해방 이후에도 심판받지 않고 오히려 서울대 문리대 교수로서 한국 역사학계를 대표하였고 사학계의 식민유제를 잔존시켰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병도를 그릴 때 너무도 분했고 한편으론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자가 사학계 거두로서 대접받고 있다는 사실에…

● 이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궁극적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 불의는 언젠간 벌을 받게 되어있으며 정의는 언젠가 다시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청산되지 않은 불의의 역사라 할지라도 끝내는 바르게 고쳐지는 것이 인간의 이치이고 자연의 섭리입니다. 불의는 정의에 의해 반드시 청산된다는 것을 그림으로나마 보여주고 싶었어요.

●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 많은 시민들이 응원해주셨습니다. 힘들 때마다 제겐 큰 힘이 되었구요. 제 그림을 위해 열심히 응원해주신 시민들에게 모든 공을 돌리고 싶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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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평]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을 환영하고 대법원의 8년 직무유기를 규탄한다.

 

대법원은 오늘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에 따른 노동조합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고용노동부의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을 하였다.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제33조, 외국인의 지위를 보장한 헌법 제6조, 국적에 따른 근로조건의 차별대우를 금지한 근로기준법 제5조, 인종차별금지를 금지한 노조법 제9조 등에 비춰볼 때, 위 판결은 지극히 타당하고 상식적인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 판결이 나오기까지 대법원에서만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을 10년 전으로 돌려보자. 2005년 4월 24일 서울·경기·인천지역에서 취업해 일하고 있던 이주노동자 99명은 지역별 노동조합인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를 설립하고, 같은 달 5월 설립신고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했다. 같은 해 6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은 노조 임원 및 조합원 일부가 출입국관리법상 취업 및 체류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므로 노조법상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다며 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이주노조는 고용노동부의 노조설립신고 반려처분이 법적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노동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헌법상 권리인 노동3권을 출입국관리법상 체류자격이 없다는 임의적 상황에 따라 차별하는 처분은 위법 · 무효이므로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2006년 2월 7일 서울행정법원 제13행정부(재판장 김태종 판사)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여 원고 청구를 기각했으나, 2007년 2월 1일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제11특별부(재판장 김수형 판사)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설립신고서 반려처분이 법적근거가 없는 것으로 위법하므로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2007년 2월 23일 고용노동부가 상고하여 대법원에서 심리가 시작된 이 사건은 대법원의 최장기 미제사건 기록을 갱신하며 무려 8년 동안이나 계류되어 왔다. 김황식 전 대법관, 후임 양창수 전 대법관을 거쳐 권순일 현 대법관에 이르기 까지 주심 대법관만 3명을 거쳤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결과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내국인 노동자들이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하여 노동조합 가입자격이 제한되거나, 이미 가입된 노동조합의 실체가 부정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주노동자들이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체류자격이 없더라도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한, 헌법상 노동3권이 제한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올해 제323차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회에서 채택된 제374차 결사의자유위원회 보고서에서는 8년째 계류된 이주노조 설립신고 상고심을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체류자격에 상관없이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와 단체교섭권을 전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을 한국 대법원과 정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대법원의 8년에 걸친 심리 지연으로, 이주노조는 모진 수난을 겪었다. 아노아르 후세인(방글라데시) 초대 위원장을 비롯해 미셀 카투이라(필리핀) 4대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이주노조 주요 임원들은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 표적단속 되어 강제추방 당하거나, 입국이 거부되었다. 그럼에도 이주노조는 노동조합임을 포기하지 않았다. 노동자의 자주적인 단결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이주노동자 스스로 바꿔보겠다는 창립정신으로 끈질기게 싸워왔다. 우리 모임은 이주노조의 지난 10년 동안의 헌신적인 투쟁에 경의를 표하며 깊은 연대의 마음을 표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이 사건 판결 어디에도, 대법원이 지난 8년 동안 고심한 흔적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대법원은 오히려 사회적 약자인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 눈 감았다. 한국경제의 가장 밑바닥을 책임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폭력과 비인간적인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목소리를 8년 동안 외면했다. 이는 인권의 보장과 정의의 구현이라는 사법부의 존재목적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최고법원의 권위와 존엄은 법원에 출입하려는 이주노조 조합원들의 투쟁조끼를 억지로 벗겨내려는 것이 아니라, 인권보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스스로의 목적에 충실할 때 비로소 인정될 수 있음을 대법원이 지금이라도 깨닫길 바란다.

 

2015. 6. 25.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한 택 근

목, 2015/06/2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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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 4.1 ‘푸른환경을지키는 청주시민모임으로 시작된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이 20살 청년나무로 자랐습니다

‘병들어가는 청주의 자연환경을 되살리고 지키자’는 한 뜻으로 모여 만든 단체였습니다

그동안 여러사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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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11/0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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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김련희 송환촉구 준비모임, 통일부 장관 면담 요청

- 김련희씨의 상황과 심경을 설명하고, 통일부를 통하여 가능한 조치 확인하는 시간 갖고자

 

1. 민주언론을 위해 애쓰시는 귀 언론사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 김련희송환촉구준비모임(이하 ‘준비모임’)은 인권과 인도주의, 동포애 정신에 입각한 김련희씨 송환을 위해 지난 10월 구성되었으며, 현재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 양심수후원회, 민들레_국가폭력피해자와함께하는사람들, 민주사회를위한강남서초시민모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통일위원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불교인권위원회 등 8개의 종교, 인권 단체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3. 지난 2011년 9월, 김련희씨는 간 질환 치료를 위해 친척이 사는 중국으로 건너갔다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남한에 잠시 들어올 생각으로 탈북브로커에게 여권을 맡겼지만 돌려받지 못해 뜻하지 않게 귀순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국가정보원 중앙합동신문센터 조사 과정에서 단식투쟁까지 벌이며 남한에 살 이유가 없으니 북한으로 돌려보내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간첩활동을 하면 추방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탈북자명단을 취합하고 경찰청에 자수해 2014년 7월 구속, 지난 4월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상황입니다.

4. 이에 준비모임에서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 이어 8년 만에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노동자축구대회가 개최되는 조건 속에서 세계 인권선언,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헌법상의 행복추구권, 인도주의와 동포애 정신으로 김련희씨를 송환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2015. 10. 22. 통일부 앞 ‘김련희 송환촉구 종교․인권단체 기자회견’을 개최하였으며, 김련희씨의 상황과 심경을 설명하고, 통일부를 통하여 가능한 조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통일부 장관 면담을 요청하였습니다. 면담 요청에 대한 통일부 답변은 2015. 11. 4.(수)를 기한으로 하였습니다.

5. 현재 김련희씨의 어머니는 위독한 상태에서 딸의 무사귀환을 기다리고 있고, 김련희씨의 외동딸은 곧 평양에서의 결혼식을 앞두고 있습니다. 자식과 부모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하루 빨리 해소될 수 있도록 기자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보도를 요청드립니다.

6. 감사합니다.

2015년 10월 28일

김련희 송환촉구 준비모임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 양심수후원회, 민들레_국가폭력피해자와함께하는사람들, 민주사회를위한강남서초시민모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통일위원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불교인권위원회) 

수, 2015/10/28-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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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tion id="attachment_154354" align="aligncenter" width="640"]목포 유달산 이등봉 퍼포먼스 목포 유달산 이등봉 퍼포먼스 Copyright ⓒ환경운동연합[/caption] 19일, 유달산 노적봉에서 유달산 케이블카 반대 기자회견 및 퍼포먼스가 열렸습니다. 이번 기자회견 및 퍼포먼스는 목포해상케이블카저지범시민대책위원회와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케이블카 공화국 저지 전국 행동단’이 함께했습니다. 박홍률 목포시장은 해상케이블카 설치로 관광수요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후 약 10개월 동안 형식적인 공청회와 타당성 조사를 진행하며 일사천리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30년 전부터 논란의 대상이었고 목포 시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케이블카 사업을 시민들과 충분한 공론화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caption id="attachment_154357" align="aligncenter" width="640"]Copyright ⓒ환경운동연합 이등봉에서 바라본 케이블카 노선(소요정과 일등봉 측면 고화도) Copyright ⓒ환경운동연합[/caption]   목포해상케이블은 유달산 소요정(신안비치호텔 뒤편 왼쪽 산자락)과 목포 앞바다 고하도 사이 2.98㎞ 구간에 설치됩니다. 해상케이블카는 최근 민자사업으로 추진을 결정하고 곧 사업자 공모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그러나 목포시가 민간 케이블카 사업자를 위해 시민의 혈세 197억원을 들여 주차장을 건설해주겠다는 것은 분명 특혜일 뿐만 아니라, 가뜩이나 재정상태가 심각한 목포시가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문제는 이 방식대로 케이블카가 설치 운영된다면, 그 이익이 고스란히 개발업자, 운영자, 사업예정지 등 소수의 소유자에게만 돌아가게 된다는 점입니다. 케이블카 정류장 560평에 10~20평(평균) 규모의 30개~40개의 점포 임대가 이뤄지면역경제 활기로 특수를 누릴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 불을 보듯 훤한 일입니다. 이처럼 지역경제 활성화의 확실한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케이블카 추진으로 야기되는 모든 문제와 실패에 대한 책임은 박홍률 목포시장에게 있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목포시민이 받게 될 것입니다. 이날 기자회견에 이어‘케이블카 공화국 저지 전국 행동단’의 케이블카 설치 예정지 조사도 병행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54359" align="aligncenter" width="640"]목포 해상케이블카 저지 기자회견 Copyright ⓒ환경운동연합 목포 해상케이블카 저지 기자회견 Copyright ⓒ환경운동연합[/caption]   염형철 환경연합 사무총장은 현장조사를 통해서, “해발 약 300m에 불과하고 걷기 좋은 유달산을 굳이 케이블카로 올라갈 시민이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막상 유달산 정상인 일등봉에서 바라본 바다의 모습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벌써 간척으로 천혜의 바다 풍경이 망가져버린 상태다. 케이블카가 해상케이블카라도 바다 풍경이 아름답지 않은 이상 전혀 관광객을 모으지 못할 것 ”이라고 말했다. [caption id="attachment_154353" align="aligncenter" width="640"]목포 유달산 일등봉 퍼포먼스 Copyright ⓒ환경운동연합 목포 유달산 일등봉 퍼포먼스 Copyright ⓒ환경운동연합[/caption] 박기철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전국이 케이블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는 산으로 간 4대강 사업이라고 할 만하다. 4대강 사업이 불도저식 사업 추진으로 현재 생태계 파괴 및 예산 낭비의 실패로 평가되듯이, 케이블 카 사업도 마찬가지”라고 우려했습니다. 이어서 대책위 위원들과 케이블카 저지 전국 행동단은 일등봉과 이등봉에 올라 ‘유달산 케이블카 반대’현수막을 펼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19일 목포 유달산 일정을 소화한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 전국 캠페인은 20일 진안 마이산, 21일 무주 덕유산, 22일 영주 소백산, 23-24일 설악산에서 진행됩니다.
화, 2015/10/2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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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료 톺아보기 39

국치國恥 식민지조선 방방곡곡에 펄럭이는 일장기

• 강동민 자료팀장

조선군사령부 정문에 걸려 있는 일장기, <사단대항연습사진첩>, 1931

제19사단사령부 정문, <조선사진화보>, 1916

1880년 일본공사관이 개설되자 공사관 수비를 위해 한국에 첫발을 들여놓은 일본군은 1904년 러일전쟁을 계기로 한국주차군사령부를 설치했다. 1910 년 강제병합 후 조선주차군으로 재편한 후 독립운동을 집중적으로 탄압하였으며 1918년 한반도에 상주하는 병력을 배치하여 제19, 20사단을 통할 하는 조선군사령부가 만들어졌다.

 

기원 2600년 기념일에 겸이포에서 열린 축하행사에 동원되어 일장기를 흔들고 있는 수많은 조선인들, <광영록>, 1941

조선총독부에서 진행된 기원 2600년 기념식에 걸린 일장기, <광영록>, 1941

 

 

일장기가 새겨진 국기함
전라남도 함평남공립소학교에서 교내에 봉안전 (奉安殿)을 건립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 작한 것이다.

 

장기를 내건 삼척수비대 앞에서 양반유생에 대한 은사금 수여식이 이뤄 지고 있는 광경, <애뉴얼리포트>, 1911

일제는 한국을 강제 병합한 직후, 원활한 식민통치를 위한 회유책의 하나로 친일귀족들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은사금을 광범위하게 살포하였다.

 

경복궁 근정전에 걸린 일장기, <역사사진> 33호, 1915

경술국치의 상징처럼 사용되는 ‘근정전 일장기’ 사진은 1915년 물산공진회 당시 촬영된 것이다.

 

유난히도 뜨거웠던 2021년 8월, 도쿄 상공에 태극기가 펄럭였다.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2020 도쿄올림픽에서 선전한 우리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린 보상이었다. 100여 년 전 일본의 힘에 짓눌려 굴욕적인 강제조약을 맺고 대한제국의 하늘에 나부끼는 일장기를 떠올리면 믿기 어려운 광경이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은 순종의 칙유를 통해 ‘한국병합에 관한 조약’을 공포하였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국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식민지 조선’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온갖 시련에도 꿋꿋하게 버텨낸 우리 민족이 마침내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35년간의 뼈아픈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일장기’다. 이 나라에 가장 먼저 온갖 살육을 저지른 일본군사령부를 시작으로, 조선의 궁궐, 행정기관인 관공서, 일본어를 ‘국어’로 가르치는 학교, ‘천황의 신민’이 된 가정 등 주변 어디에서든 일장기가 펄럭이게 되었다.
온갖 행사에 동원되어 수많은 일장기를 흔드는 조선 민중들의 모습과 집집마다 일장기를 내걸고 ‘천황’에 예를 올리는 장면은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식민지기 동안 계속된 치욕적인 이 광경은 1945년 8월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나라를 뺏긴 지 111년이 되는 해이자 해방을 맞은 지 76년, 기나긴 시간이 주어졌건만 반성과 화해의 길은 아직도 멀어 보인다.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모진 상흔은 계속 남아 있다. 일본정부는 피해 당사자가 빠진 잘못된 ‘위안부’ 합의와 일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거부, 유네스코 산업유산 등재 시설물에서 ‘강제동원은 없었다’고 주장하며 관련 내용을 기록하지 않는 등 우리와의 관계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망명 독립지사와 동포들이 끼니를 거르면서 가슴에 새기고자 했던 치욕의 망국일인 ‘8월 29일’을 모든 달력에 ‘국치일’로 새겨야 한다. 그리고 조기(弔旗)를 게양하여 잊지 말아야 한다.
기억하자, 피눈물을 흘리던 1910년의 8월을,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1945년의 8월을, 가슴 벅찬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2021년 8월을.

금, 2021/08/27-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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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tion id="attachment_154108" align="aligncenter" width="640"]copyright © 함께사는길 이성수 copyright © 함께사는길 이성수[/caption]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은 전국 케이블카 현안 지역을 조사하고, 문제점을 폭로하는 전국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15일 그 첫 번째 지역인 신불산에서 퍼포먼스와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우려했던 것처럼, 설악산국립공원 케이블카 승인은 전국의 케이블카 난립을 불러왔고, 설악산케이블카 사례와 마찬가지로 자료조작, 여론왜곡 등 온갖 편법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신불산도 예외는 아닙니다. 100년 된 천연의 신갈나무 숲을 파괴하고, 낙동정맥 마루금 위에 상부정류장을 설치하려는 신불산케이블카는 환경부 가이드라인을 위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무마하려는 관권동원서명작업을 하는 등 여론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케이블카 설치 계획 및 자연환경평가, 경제성분석에 대한 자료도 엉터리이고 찬성하는 시민들에게 조차도 그 내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밀어붙이기 행정으로 인한 결과입니다. 이제라도 과정을 공개하고 신불산의 자연자산을 활용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논의를 같이 해야 합니다. [caption id="attachment_154109" align="aligncenter" width="319"]_O8O0410 copyright © 함께사는길 이성수[/caption]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은 15일 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신불산 케이블카 추진 현장을 찾았습니다. 캠페인단은 신불산 공룡능선에서 대학산악연맹 산악인들과‘신불산 케이블카 반대’대형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아찔한 암벽 위에서 20m 길이의 대형 현수막은 지나가는 등산객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를 본 한 등산객 시민은 “이미 밀양 가지산 얼음골의 케이블도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무슨 또 케이블카냐”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54110" align="aligncenter" width="640"]_O8O0539 copyright © 함께사는길 이성수[/caption]   환경연합 장재연 대표는 “울주군을 찾는 관광객을 대비하여 경제성 분석을 제대로 해야 한다”며, “울산시 전체를 대상으로 분석하는 엉터리 경제분석을 통해 시민세금을 탕진하는 잘못은 지금이라도 멈춰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해남사 주지스님 만초 스님(신불산 케이블카 반대 대책위원회)은“지난 12일 신불산케이블카설치반대 대책위가 기자회견을 연 것은. 케이블카 찬성대책위가 서명작업에 행정기관을 동원하는 도 넘는 행위를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찬성대책위와 행정기관의 결탁을 비판했습니다. 환경연합 염형철 총장은 “대책위에서는 케이블카의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지금 개설되어 있는 임도를 이용하여 전기버스를 이용하면 그들이 주장하는 노약자와 장애인들의 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다”며, “물론 케이블카에 소요되는 588억 이라는 국민 세금의 10분의 1이면 충분하다”고 케이블카 설치를 원점에서 재검토 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울산 신불산을 일정을 소화한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 전국 캠페인은 16일 밀양 가지산, 17일 지리산, 18일 통영 미륵산, 거제 노자산, 19일 목포 유달산, 20일 진안 마이산, 21일 무주 덕유산, 22일 영주 소백산, 23-24일 설악산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 ‪1Km의힘‬, 또 하나의 발걸음이 되어주세요. 전국 캠페인단은 약 800Km에 달하는 전국의 케이블카 현장을 방문합니다. 각 지역 현장에서 퍼포먼스, 문화제, 기자회견, 주민간담회 등을 통해 서로 용기를 북돋우면서 적극적으로 힘을 모으려고 합니다. 또 하나의 1Km의 발걸음으로 '1만 원의 힘'을 보태주세요. 후원계좌 : 우리은행 1005-402-326916 (예금주 : 환경운동연합)   웹자보_20151014 전국케이블카순례(최종)
금, 2015/10/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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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대우조선 비정규직 노동자 강병재 의장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를 규탄한다.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은 어제(2015. 10. 14.) 165일 간의 크레인 고공농성 끝에 사내협력사와 합의를 하고 지상으로 내려 온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조직위원회(하노위) 강병재 의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하였다. 강병재 의장은 사내협력사 협의회가 2011년 한 복직 합의를 이행하지 않자 그 이행을 촉구하기 위하여 크레인 고공농성을 시작하였다. 이후 165일간의 고공농성 끝에 사내협력사와 합의를 하고 지난 9월 20일 농성을 해제하였다. 그런데 검찰은 지난 10. 12.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였고 그에 대해 법원(김성원 부장판사)은 어제 구속영장을 발부하였다. 그간 송전탑, 광고탑, 굴뚝, 크레인 등에 대한 고공농성에 대하여는 농성자들의 절박한 처지와 건강상의 문제 등을 들어 검찰이 구속영장 청구를 하지 않거나 법원이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여 왔다. 그런데 유독 위 사건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을 발부하였는바, 이는 기존의 전례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검찰은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내내, 2011년 합의와 이번 합의가 강병재 의장이 소위 하청노동자 권익을 빙자하여 외부 세력을 동원하여 사용자를 불법적으로 협박한 결과일 뿐이고, 강병재 의장의 농성으로 대우조선해양이 입은 피해가 막심하며, 법원이 이를 엄벌하지 않아 계속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고 법원을 몰아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대우조선 하노위가 실체가 없는 유령 조직이라는 허위 사실 및 대우조선해양이 강병재 의장에 대해 강한 형사처벌을 원하고 있다는 미확인 사실도 서슴지 않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이런 행태는 검찰의 객관의무를 외면하는 것으로서 공권력 행사의 편협성과 부당성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검찰은 자신이 민사소송의 사용자 대리인이 아니라 형사소송의 공권력 주체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검찰이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법원은 마땅히 이를 통제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법원은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아무런 제재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식으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했다면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응당 심리해야 할 구속사유(증거인멸 및 도주우려, 주거 부정 등)는 제대로 심리되지 못했을 것임이 명약관화하다. 우리는 법원도 검찰의 저 편협하고 부당한 태도에 동조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찰과 법원의 위와 같은 조치는, 고공농성이라는 극한의 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의 절박한 현실을 철저히 짓밟는 것이고, 노동운동에 대한 극심한 편견을 노출한 것이자, 불구속 수사 원칙이라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을 스스로 내팽개친 것이다.
 우리는 강병재 의장이 한 행위의 위법성 여부는 형사 재판을 통해 다투면 되고 그 전에 강병재 의장을 구속할 사유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그런 법리적 문제를 떠나 오로지 사용자의 약속 이행을 요구하며 165일 간이나 감옥보다 더 좁고 위험한 곳에서 고공농성을 한 사람에 대해 또 다시 자유를 옭아맬 필요성도 없다고 본다. 이렇게 보는 것이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정신과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를 벼랑 아래로 밀어버린 검찰과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 아울러 강병재 의장의 조속한 석방을 위해 지속적인 법적 조치를 취해 나갈 것임을 밝힌다. 우리는 벼랑 아래로 떠밀린 비정규 노동자의 소박한 소망이 실현되고 견결한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항상 함께 할 것이다.

 

2015. 10. 15.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위원장 강 문 대

목, 2015/10/1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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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버스를 부탁해요!

10월 17~18일(1박 2일)

목, 2015/10/1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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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검사 위변조 일본산 폐기물 수입중단촉구 기자회견-

환경부는 일본산 쓰레기 수입 금지하라!

 

 

수, 2015/10/1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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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 국립공원보전특별위원회 발족 기자회견문 국립공원을 지키기 위해 시민의 분노를 조직하고 강력히 저항할 것이다.   [caption id="attachment_154024" align="alignnone" width="600"]SONY DSC SONY DSC[/caption] 지난 8월 28일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승인되었다. 이번 사안은 설악산, 또는 케이블카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개발로부터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인 국립공원마저 무너뜨리려는 자본과 토목정부의 시도가 현실화된 사건이다. 결국 대한민국이 국립공원을 보유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 국가’라는 창피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즉 국가의 품격과 관련된 사건인 것이다. 8월 28일은 대한민국 환경부가 환경파괴합법부로 전락한 수치스러운 날이다. 4대강 때는 환경부가 정권의 강압에 의해 그랬다고나 변명하지만, 이번에는 장, 차관을 필두로 환경부가 오히려 개발과 파괴에 앞장섰다는 점에서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국립공원은 그 나라에서 가장 보호가치가 높은 지역을 후손들을 위해 자연 상태 그대로 보호하기 위하여 지정하는 것이다. 설사 경제성이 있더라도 개발을 금지하겠다고 국가가 지정, 선언한 지역이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나 유물처럼 경제적 동기로부터 터부시되기 때문에 신비로운 장소이고, ‘국가 자존심의 상징’이다. 따라서 국립공원은 개발계획이 아무리 훌륭해도 손대지 말아야 한다.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천연기념물 등 멸종위기종에 대한 부실 조사, 거짓으로 일관한 경제성 분석, 점검되지 못한 안전성 등 어느 하나 논란이 되지 않았던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부처 공무원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위원회에서 전례 없는 표결강행으로 처리되었다. 환경부 최고위 관료들이 개인 영달을 위해 ‘국가의 자존심’을 푼돈에 쉽게 팔아넘긴 사건이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대로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승인되자 전국에서 국립공원 등 자연공원을 토목개발 자본의 먹이로 넘기려는 시도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전경련이 설악산 정상에 호텔과 레스토랑까지 세우겠다고 하는 종합관광계획이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발표되는 마당에 그 어떤 개발계획이 불가능 할 것인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상상을 초월하는 황당한 개발이 전 국토의 자연공원을 훼손하려고 할 것이다. 이들은 대다수 순진한 주민들을 장밋빛 거짓말로 선동하고 있다. 이대로 대다수 시민들이 무관심하게 있다가는 정부 관리들이 어디까지 국토와 국가를 망칠지 모른다. 4대강에 22조란 돈을 퍼부은 결과 지금 모든 강이 녹조로 신음하고 있다. 전북을 살리는 사업이며, 미래의 농지를 확보한다던 새만금간척사업은 지금 어디 있는가. 잘못된 정부의 질주를 막는 길은 시민들의 분노 표출이다. 시민저항을 국립공원에서 시작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국립공원 훼손정책에 대해 항의하고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국립공원 케이블카 반대’‘국립공원 개발사업 반대’,‘국립공원 팔아먹을 만큼 배고프지는 않다’라고. 그리고 행동해야 한다. 그런 외침과 행동이 모여야 국토의 마지막 보루까지 파헤치려는 정부와 자본의 무모한 질주를 막을 수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국립공원의 편에 선 시민들과 함께 국가의 자존심을 지키고, 나라의 미래를 지키고자 한다. 전국으로 퍼져가는 케이블카 난립에 맞서 시민의 분노를 조직하고, 권력과 자본의 폭주를 저지하는 역할에 앞장서고자 한다. 이를 위해 국립공원보전특별위원회를 발족해, 설악산국립공원 케이블카 사업을 비롯한 전국의 케이블카 계획들에 대응하고, 국가 국립공원 정책의 정상화를 위해 뜻과 힘을 모아가고자 한다. 거짓과 억지를 비벼 만든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계획을 철회시키고, 위기를 맞은 전국의 국립공원과 보호지역들을 지키기 위해 활동할 것이다.
  1. 10. 13.
환경운동연합 국립공원보전특별위원회
화, 2015/10/1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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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수자인권위원회 활동소식

한상희 교수 초청 동성결혼 변호인단+민변 소수자인권위 간담회
‘헌법문제로서의 동성혼’ 후기

 

기존의 지배적인 법리에 도전하는 소송에는 어떠한 등장인물들이 있을까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존재는 문제 제기를 하고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나눠주는 당사자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와 운동 의제를 잘 연결시키고 관련자들을 조직하여 대중에게 알리는 운동 주체들이 필요합니다. 또 법리를 연구하고 실무를 준비하는 변호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법리를 제공하는 연구자, 학자 여러분들이 계십니다. 물론 이 법리를 수용하는 사법부의 노력이 있어야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겠지요. 역사적인 사법적 결정의 뒤에는 언제나 각자의 역할을 한 다양한 관계자들 사이의 협업이 있었습니다.

지난 9월 10일 소수자인권위원회 28-3차 회의에서 있었던 동성결혼 변호인단+민변 소수자인권위 간담회 ‘헌법문제로서의 동성혼’은 소송 실무를 준비하는 변호사들이 전문가적 법리를 제공하는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한상희 교수님과 견해를 나누고 토론하는 자리였습니다.

차별과 배제의 정당화
지금은 이미 옛날이야기지만 70년대 처음 등장하였던 동성결혼소송에서는 동성 커플의 결혼권리에 대한 원천적 진입 배제는 크게 2가지 이유로 사법적으로 정당화되었습니다. ① ‘원래부터’ 성별특징적이었던(gendered) 결혼의 ‘정의(definition)’상 포함될 수 없다는 논리와 ② 이성커플, 동성커플 두 집단 간 차등대우를 정당화하는 몇 가지 이유들, 특히 ‘생물학적 재생산(procreation)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기반한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기존의 가족법의 태도, 판례를 지켜볼 때, 논리적으로 성립되기는 어려운 지형입니다. 생물학적 재생산이 결혼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결혼의 필요조건(sine qua non)은 아닙니다. 불임부부, 노령부부, 옥중결혼의 경우를 보아도, 출산가능성이 적법한 혼인신고의 요건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그 외의 이유에 대해서도 차등 대우에 대한 정당화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예전의 기각 논리에서는 ‘혼인의 정의’가 자주 등장했습니다. 70년대 미국의 1세대 결혼소송 Singer v. Hara, Jones v. Hallahan, Baker v. Nelson 등이 그렇습니다.

항소인이 결혼에서 배제되는 이유는 켄터키주법이나 제퍼슨 카운티의 서기의 거부 때문이 아니라, 결혼이 정의된 방식대로 진입할 수 없는 그들 자신의 무자격 때문이다. It appears to us that appellants are prevented from marrying, not by the statutes of Kentucky or the refusal of the County Court Clerk of Jefferson County to issue them a license, but rather by their own incapability of entering into a marriage as that term is defined.
켄터키 항소 법원Kentucky Court of Appeals: Jones v. Callahan, November 9, 1973

하지만 혼인의 정의는 일의적이지도 않았고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동성 간의 결합(same-sex union)을 법적 문화적으로 인정한 역사는 상당히 많습니다. 따라서 과연 해당 관할의 혼인법상 혼인의 정의가 과연 이들을 배제하고 있는지, 만일 그러하다면 그 정의가 유지되는 것이 헌법적으로 합당한지 하는 헌법적 문제가 등장하는 것이 논리적 귀결입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생각지도 않게 저 2가지 쟁점에 도달하는 것을 막는 장벽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헌법 혼인 조항의 문언을 둘러싼 논의입니다. 비교법적으로 헌법에 혼인의 권리가 등장하는 것은 흔한 예는 아닙니다만, 보통 이렇게 등장하게 된 이유에는 역사적 의미가 있고 대체로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개인의 선택을 보장하는 기본권적인 측면이 강조됩니다. 예를 들면 독일기본법은 독일사회가 나치와 제3제국의 참상을 목도하였던 경험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혼인이 권리가 있는 제6조도 예외가 아닙니다. 나치는 “인종적으로 건강한” 아이들을 재생산하기 위해 사적인 영역인 혼인과 성행위를 적극적으로 제한하였고, 기본법 제6조는 혼인과 가족생활에 대한 이러한 국가의 부당한 개입을 막기 위하여 등장하였습니다. 따라서 제6조는 주로 혼인과 가족생활 안에서의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표상하는 조항입니다.

우리 헌법 제36조 제1항도 독일기본법 제6조의 영향을 받았으며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는 문언을 통하여 결혼의 권리의 자유권적인 측면과 평등권적인 측면을 강조합니다.

이 문언에서 결혼과 가족제도가 절대적으로 이성異性성(dual-gendered)을 갖추어야 한다고 읽는 것은, 문리적으로, 연혁적으로, 기본권 해석 측면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이 논리의 위험한 함의는 ‘헌법의 문언상 안 된다’는 쉬운 결론이 더 이상의 논의를 가로막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한 사람이 동성이라는 이유로 삶을 통째로 부정당하기 일쑤입니다. 관계를 인정받고 사회 속에 받아들여지는 것은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 권리입니다. 이러한 부정의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변호인단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헌법 제36조 제1항의 문언은 사실은 맥거핀(MacGuffin)이 아닐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혼인은 고래부터 이성간의 결합이었고 그렇게 남아야만 한다는 ‘무형적인’ 심리적 저항과 ‘끈질긴 직관’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고, 이를 정당화하는 근거를 ‘유형적인’ 문언에서 애써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성결혼 비교법례를 소개하는 논문의 결론에서 간혹 보이는 ‘동성결혼은 시기상조이며, 파트너십이 적절하다’는 주장을 볼 때도 이러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혹시 이러한 결론이 ‘다수의 선호를 반영한’ ‘법감정’의 발현이라면, 사실은 이는 더 이상 다수의 의견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헌법이 부여한 가능성의 현실화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보려하지 않는 것인지 겸허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법제화된 21개국이 주는 교훈이 있다면, 두려워할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불합리한 차별이 구제되는 조금 더 행복한 사회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려하지 않는 것은 수십 년간 서로를 돌보고 의지하며 살아온 법 바깥 커플들의 차별과 고통입니다.

‘성숙한 헌법(a mature constitution)이란 헌신과 협력에 의존하는 것이어야 하지, 배제와 박해에 조력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윌리엄 에스커릿지 교수의 말을 기억합니다.

변호인단의 마음은 하나였습니다. 우리 헌법이 부여한 불평등과 부정의를 구제할 가능성과 의무를 현실화시키는 것입니다. 이 주제에 대하여 한상희 교수님이 곧 발표하실 논문을 기대하며 이날 간담회를 마무리했습니다. 학자님들 파이팅입니다! 한국에도 동성결혼을! :)

소수2 소수1

금, 2015/09/2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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