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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제2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사태’ 또 반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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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제2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사태’ 또 반복할 것인가

admin | 수, 2021/03/17- 22:37

2021. 3. 15. 기금운용본부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이하 수책위)에서 상정된 안건에 대하여 동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찬성의결권행사 결정을 공시하였다.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삼성전자 주총안건으로 올라온 ‘사외이사 및 감사 선임’에 대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기금본부 투자위원회를 통해 찬성 의결을 결정한 뒤, 일방적으로 찬성 공시를 하였다. 삼성물산 – 제일모직 합병사태에 일조한 이사의 선임에 찬성한다는 내용을 별론으로 하더라도, 기금운용본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이하 기금위)에서 의결권을 포함한 주주권행사에 관한 의사결정권한을 부여받은 ‘수책위’에 주요 투자기업의 의결권 이슈들의 사전 공유조차 하지 않고 ‘수책위’를 패싱하였다. 심지어 단독 결정이 확인되어 동 안건을 수책위에서 논의해서 결정하도록 하는 수책위 위원 3인이 안건을 발의하였다는 것을 통보받은 뒤에도 그마저 무시하고, 찬성 의결 공시를 강행한 것이다. 실로 기금위의 의사결정구조를 송두리째 무시하는 만행으로 규탄받아 마땅하다. 연금행동은 기금운용본부의 독선, 주무처인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의 관리소홀, 그리고 제도개선에 실패한 정부와 국회를 비판한다.

우선 의결권행사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의 권고사항 정반대의 결정을 기금운용본부가 독단적으로 내린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해명이 필요하다. ISS가 삼성전자 ‘사외이사 및 감사 선임’안건에 대해 반대를 권고한 이유는 현재 후보로 나온 인물들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을 제대로 견제하지 않고 오히려 이에 기생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은 삼성전자의 사외이사 및 감사 선임의 찬반 여부를 떠나, 의결권 행사의 원칙과 내부 의사결정구조가 흔들리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다. 통상적으로 수책위에서 논의하지 않고 기금운용본부가 독단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사안이 매우 경미하거나 근거가 확실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러한 원칙을 지켜야하는 이유는 지난 2016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국정농단세력에 굴복한 기금운용본부의 원죄로부터 기인한다. 당시 박근혜-최순실-이재용이라는 정치·경제권력이 결탁하여 삼성그룹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에 국민의 자산인 국민연금을 이용하려 하였고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과 기금운용본부장이 합작하여 삼성물산-제일모직의 불공정 합병이 이루어졌다. 국정농단이 세상에 밝혀지면서 문재인 정부가 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현재 국민연금기금의 의결권, 나아가 주주권 행사에 있어서 기금운용본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도록 하였다. 대신 수책위와 기금위의 유기적 연계 아래 기금운용본부의 전체 행위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이루어져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기금운용체계가 확립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기금운용지침 제17조의3 제5항에서 공단(기금본부)에서 판단을 하기 곤란한 사항, 수책위원 3인 이상이 요구한 사안 등에 대해서는 수책위에서 결정한다고 모호하게 규정한 것 또한 문제로 드러났다. 기금운용본부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같이 투자위원회에서 3월 10일 독단적으로 결정하였고,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일부 수책위 3인의 위원들이 15일자로 수책위에 정식 안건으로 발의하여 상정된 후 기금본부에 그 사실을 통보하였다. 기금본부는 수책위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이를 무시하고 같은 날인 15일 공시하였다. 사후에 이를 확인한 노동시민사회 수책위원 3인이 항의차원에서 16일 수책위 회의에서 퇴장하였으며, 2인의 위원이 사퇴하였다. 보건복지부는 수책위에서 안건을 논의하기로 하였다는 변명성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를 위해 만들어진 사회연대에 기반한 기금이다. 이러한 기금이 자본의 이해에 충실하여 선량한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기금운용본부의 판단이 객관적으로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그 과정이 기금위의 감시와 통제 아래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과 방향이 이번 삼성전자 주총 의결권행사 결정과정에서 또 지켜지지 않았음이 확인되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번 삼성전자의 ‘사외이사 및 감사 선임’ 의결권 행사 과정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향후에는 기금운용지침을 개정하여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가 투자대상기업의 주총 안건 결정의 주요 정보를 수책위에 사전 공유하도록 하고, 수책위에서 그 중 경미한 사안으로 분류한 것은 기금운용본부가, 나머지는 수책위가 결정하도록 의사결정 구조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기금운용본부와 수책위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하고, 궁극적으로는 기금위 중심의 책임있는 논의와 결정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전문위원의 기금본부에 대한 자료제출 및 안건설명 요구권을 강화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아울러, 수탁자책임활동 관련 인력을 증원하여 수책위원과 전문위원이 실질적으로 기능이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을 하여야 한다.

2021년 3월 17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www.pensionforal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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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사고 9주기, 현재 사고 현장은?
에너지 진짜뉴스 Q&A 6편
(발행일 2020.03.06)

Q. 후쿠시마 원전 사고 9주기, 현재 사고 현장은 어떤가요?

A.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로 원전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후쿠시마와 주변 지역의 바다, 토양, 물, 대기가 방사능으로 오염됐고, 그 피해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어요. 사고 때 녹아 내린 핵연료를 식히기 위해 지금도 매일 냉각수를 주입하고, 이 냉각수는 방사능 오염수가 됩니다. 현재 약 120만 톤에 이르며 약 72%가 기준치 이상의 방사성 물질(세슘-137, 코발트60, 스트론튬90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2019년 12월 기준)​

Q. 일본은 방사능 오염수를 정화하면 괜찮다는데, 사실인가요?

A. NO!일본 정부는 방사능 오염수를 희석 처리하면 바다에 버려도 괜찮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오염수 정화 기술로는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를 정화할 수 없어요. 게다가 정화 처리된 오염수에서도 걸러졌어야 할 스트론튬90 등의 방사성 물질이 안전 기준의 최소 100~20000배 이상 검출됐습니다. (도쿄전력보고서). 이 때문에 2018년 일본 도쿄 전력에서는 정화 처리된 오염수 89만 톤 중 약 75만 톤이 안전 규제보다 높은 방사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고 시인했습니다.

Q. 방사성 물질이 주는 건강 피해는 무엇인가요?

A. 방사성 물질이 체내에 들어오면 유전자와 결합하여 돌연변이를 일으켜암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면 삼중수소가 조류, 해초, 갑강류, 어류 등 해양생물에게 축적되고, 그 해산물을 사람이 먹으면 뇌종양, 선천성 기형, 암 등을 일으킬 수 있어요. 또 다른 방사성 물질인 스트론튬90칼슘과 유사해 뼈에 잘 흡착되고, 많이 축적되면 골수암이나 백혈병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토, 2020/03/14-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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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환경운동연합은 4월 29일 오전 10시,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삼천포 석탄발전소 1,2호기 폐쇄를 환영하고, 기후위기와 미세먼지 주범 석탄발전소의 2030년 퇴출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전국 51개 지역조직과 연합하여 활동하는 환경운동연합은 주요 석탄발전소 앞을 포함한 전국 16개 지역에서 1인시위, 퍼포먼스 등 동시다발 행동을 진행했습니다.

2020년 4월 30일(목)에 38년 가동된 삼천포 1,2호기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될 예정입니다. 삼천포화력은 정부가 정한 석탄발전 폐쇄 연한인 30년을 훌쩍 넘겨 가동된 대표적인 노후 석탄발전소이자 전국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이 2위에 해당하는 사업장(석탄발전소 중 1위)이기도 합니다.

이번 달 말 삼천포 1,2호기는 폐쇄되지만 아직도 한국에는 58개의 석탄발전소가 남아있습니다. 게다가 7개의 신규 석탄발전소가 추가 건설 중입니다. 석탄발전소는 기후위기와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국내 약 28%의 온실가스와 15%의 미세먼지를 배출합니다.

전력자립도가 낮은 서울은 전국에서 가동 중인 석탄발전소로부터 전기를 받아 사용하기에 석탄발전 환경오염 피해 책임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기후위기와 미세먼지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가 점차 커지고 있는 만큼 석탄발전소의 퇴출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명서]

삼천포화력 1·2호기 폐쇄 환영한다!

고성하이 등 7기 석탄발전소 건설 중단 특단대책 마련하라

2030년 석탄발전 퇴출법 마련하라

4월 30일 한국남동발전이 운영하던 삼천포화력 1·2호기(설비용량 1,120MW)가 폐쇄될 예정이다. 6기의 석탄발전소가 가동되는 삼천포화력발전소는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국내 1위 사업장이었다(2017년 기준). 특히 삼천포화력 1·2호기는 각각 1983년과 1984년 가동을 시작해 38년째 가동 중인 대표적인 노후 석탄발전소다. 정부가 석탄발전소 가동 연한으로 정한 30년을 훌쩍 넘겨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과다 배출해왔다. 내일로 다가온 삼천포화력 1·2호기 폐쇄를 적극 환영하는 이유다.

하지만 일부 노후 석탄발전소의 폐쇄에도, 대규모 신규 석탄발전소의 진입으로 석탄발전 비중은 40% 수준으로 최대 발전원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과 재생에너지 확대 추세 속에서 전 세계 석탄발전 비중이 사상 최저를 기록한 상황과는 정반대다. 무엇보다도 7기의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이 이대로 강행된다면 조만간 탄소 배출량이 급증하는 ‘온실가스 폭탄’이 터질 게 뻔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수수방관하며 무책임으로 일관해왔다.

삼천포화력과 바로 인접한 부지에서 2,080MW 규모의 고성하이 석탄발전소 사업이 내년인 2021년을 준공 목표로 건설 작업이 한창이다. SK가스, SK건설, 한국남동발전, KDB인프라가 주주사이며 KB국민은행, 신한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이 자금 대출을 맡았다. 발전기업은 친환경 발전소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삼천포화력 1·2호기가 한 해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6백만 톤(2017년 실적 기준)이라면, 고성하이 석탄발전소의 온실가스 예상 배출량은 최소 1천2백만 톤으로 2배 이상이다. 삼천포화력 1·2호기가 폐쇄되는 날, 다른 한편으로 누가 기후위기를 계속 악화시키며 이익을 얻는지에 대해 우리는 고발한다.

삼천포화력 1·2호기가 폐쇄되지만, 가동 중인 석탄발전소가 58기 남아있다.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계속된 요구에도, 산업통상자원부는 석탄발전의 감축과 최종 종료 시점에 대한 목표와 구체적 이행방안 수립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왔다. 과학의 요구는 분명하다. 파리기후협정에서 합의한 지구온난화 1.5℃ 방지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 세계적으로 2040년까지, OECD 국가들은 2030년까지 석탄발전을 전면 퇴출해야 한다. 정부가 소극적인 석탄발전 감축 계획안만 만지작거리는 사이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정부와 국회에 요구한다.

2030년 석탄발전을 전면 중단하기 위한 석탄발전 퇴출법을 마련하라

건설 중인 신규 석탄발전 사업의 중단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

석탄발전 사업에 대한 모든 금융 지원을 중단하라

재생에너지 확대와 일자리 전환을 위한 방안을 수립하라

2020년 4월 29일

환경운동연합, 경남환경운동연합,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전남환경운동연합, 당진환경운동연합,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 강릉지회, 부산환경운동연합, 서울환경운동연합, 성남환경운동연합, 경기환경운동연합, 수원환경운동연합, 안산환경운동연합, 오산환경운동연합, 안양군포의왕환경운동연합, 대전환경운동연합, 대구환경운동연합, 광주환경운동연합, 전북환경운동연합,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수, 2020/04/29-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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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은 따뜻했으니까…”
지인들과 대화할때 자주 듣는 말인데요.어떻게 느끼시나요?
2019년 연말부터 2020년 1월까지의 날씨를 살펴보았을때 겨울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따뜻하지 않았나요?

​지난 1월 16일 기상청에서 2019년 기후자료를 보도하였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 2019년, 두 번째로 기온 높았다 1973년 이후, 연 평균기온 상위 2위, 연평균 최고기온 상위 1위 ‘

우리나라 연 평균기온 편차 시계열, 평년: 1981~2010년 / ⓒ기상청

기상청에 따르면 2019년은 전 세계 평균기온이 평년대비 0.6℃상승하였고, 우리나라는 무려 1.0℃(평년대비)상승하여 전국기상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래 두 번째로 높았습니다. 북쪽 찬 공기가 주기적으로 남하하며 기온 변화가 크고 쌀쌀한 날씨가 이어진 4월을 제외하고 2019년 내내 전국 월평균 기온이 평년값보다 낮았던 경우가 없었습니다. 즉, 2019년은 평균기온이 1도 이상 상승하여 높은 수치를 보인 것입니다

​기온상승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2019년은 역대 가장 많은 태풍 영향이 있었습니다. 태풍은 해수면 온도가 높을수록 바다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수증기로 인해 강도가 강화되는데 필리핀 동쪽 해상의 높은 해수면온도(29℃)로 인해 상승기류가 강해지면서 한국이 태풍의 길목에 위치하여 많은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2020년 1월 전지구 기압계 모식도 / ⓒ기상청

※ 영향 태풍: 제5호 다나스(7.16~20.), 제8호 프란시스코(8.2~6.), 제9호 레끼마(8.4~12.), 제10호 크로사(8.6~16.), 제13호 링링(9.2~8.), 제17호 타파(9.19~23.), 제18호 미탁(9.28.~10.3.)

2019년 소식에 이어 2020년 첫 소식도 암담했습니다. 지난4일 기상청에서 발표한 1월 기상특성 보도자료에 따르면 전국 평균기온이 (1/1제외하고) 평년보다 높아, 1973년 이후 가장 높은 2.8℃ (평년비교+3.8℃)로 이례적으로 높았습니다. 약한 시베리아 고기압과 잦은 남풍기류 때문에 눈은 오지않고 기온, 강수량은 높은 수치를 나타낸 것입니다.

https://www.cbmpress.com/bbs/board.php?bo_table=vnews&wr_id=4580

마치 기후위기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호주 산불을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서 기후변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작년 한 해 동안 역대 가장 많은 태풍 영향이 있었고 기온상승의 폭이 점점 커지는 것처럼 한국도 기후위기에 처해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 지구는 불타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진실을 직시하고 함께 행동해야 할 때 입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목, 2020/02/06-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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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IPCC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파리협정 목표(2℃ 이하)로는 부족하며 1.5℃로 억제해야 해야합니다. IPCC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203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현저히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에 도달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란 국가 차원에서 탄소(온실가스)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 전략을 수립하는 것인데, 파리기후변화협약의 요청으로 협약 당사국들은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을 올해까지 수립하여 제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환경부에서 ‘2050 저탄소 사회비전 포럼’을 운영하며 전략을 세우고 있고, 오늘 그 검토안을 제출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제출된 검토안에는 한가하고 안이한 내용만 담겨 있었습니다.

​환경부 보도자료 :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 포럼 검토안, 정부 제출

​2050 장기저탄소 발전전략은 향후 진행될 국가 온실가스 저감 정책에 큰 테두리가 될 것입니다. 탄소(온실가스)제로화의 알맹이가 빠진 정책은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성명서]
너무나 한가하고 안이한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 검토안
​2020년 2월5일, 환경부가 2019년 한 해 동안 운영했던 ‘2050 저탄소 사회비전 포럼(이하 포럼)’의 검토안이 공개되었다. 연말까지 세계 각국이 유엔에 제출해야 하는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검토안이다. 2050년까지 온실가스를 얼마나 감축하고, 이를 위해 우리 사회와 경제 각 부문을 어떻게 전환해야 하는지를 담아야 하는 방안이다.​그런데, 이날 공개된 포럼의 검토안은 매우 실망스럽다. 1.5도 지구온도상승제한은 2018년 IPCC 특별보고서 이후 국제사회의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검토안은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너무나 안이하고 한가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검토안에서 ‘탄소중립(넷제로)’를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구체성이 담보되지 못한 공허한 수준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권고안에 담긴 2050년 배출목표로 제시한 5가지 안에는, 탄소중립의 내용이 전혀 담겨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2017년대비 40-75% 감축이라는 현재의 기후위기의 시급성에 비춰볼 때 매우 미흡한 목표만이 제시되어 있다. 더군다나 1-5안 모두 2050년까지 석탄발전과 내연기관차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고, 탄소중립을 위한 감축수단 중 하나로 핵발전을 언급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점이다.​특히 ‘탄소중립’이라는 목표 자체가 모호하고 위험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탄소중립은 화석연료의 사용을 지속하면서, CCUS와 같은 현실성 없는 기술을 통해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처리하겠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과 이를 위한 화석연료의 채굴과 사용의 금지가 기후위기 대응의 가장 중요한 해결책이다. 이를 명확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검증되지 못한 기술중심적 해결책에 기대어 화석연료 사용을 연장하려는 접근에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탄소중립’이 아닌 화석연료 사용의 중단을 통한 ‘배출제로’가 2050년의 비전이자 목표가 되는 것이 합당하다.​이번 권고안은 지극히 경제성장 중심의 목표를 여전히 유지하면서, 기술공학적인 해결책에 크게 기대고 있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비전에는 협소한 경제 기술적 접근이 아니라 사회전반의 폭넓은 시스템 전환을 담아야 한다. 특히,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 서민 등 사회적 약자들이 겪어야 할 고통을 단순히 사회적 비용이나 잠재적 갈등 차원에서만 접근할 일이 아니다.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비전의 설정과 전환 과정의 주체로 설정해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 기후불평등 해결과 같은 사회비전은 이번 검토안에 매우 부족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또한 포럼 내의 청년분과 그리고 우리 기후위기비상행동이 지속해서 강조한 탄소예산 개념을 수용하지 않았다. 1.5도 목표를 위해서 전 지구적인 탄소예산이 있고 그 중 한국의 탄소예산이 얼마인지를 계산하고, 그에 바탕해서 감축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는 것이 합당하다. 하지만 이번 검토안에서는 탄소예산 개념을 채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권고안이 과연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도 부족하며 국제적인 차원의 기후정의 원칙에 부합하기도 힘들다.​올해말까지 제출되는 최종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1.5도 제한을 위한 배출제로의 방향은 타협할 수 없는 규범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런저런 핑계로 한가하게 미뤄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의 안전과 인류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고, 지구 생명들의 미래가 달려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목, 2020/02/06-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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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민족으로서 우리의 건국설화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여 매우 특별하다. 대부분 나라의 경우. 건국설화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배경으로 설정하거나 초인적인 영웅의 이야기로 출발하여 지배권력을 미화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하여, 우리 설화의 경우에는 태백을 거점으로 삼아 상제의 아들인 환웅이 보기에 아름다운 땅을 선택하여 나라를 세우면서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이의 근본으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칼럼_181004(2)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 모셔져 있는, ‘환인, 환웅, 단군왕검’의 초상화

단군신화로 알려진 위의 이야기가 후대에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지어낸 것인지, 오랜 역사 속에 체화되고 전승되어온 이야기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한반도의 역사를 관통하는 문화적이며 정치적인 토대를 형성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인간의 언어로서 가장 감동적이며 성스러운 내용을 담아낸 성경의 주기도문과 같이,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 나라를 세우며(이화세계) 널리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것으로 규범(홍익인간)을 삼는다는 것은 종교사적 견지에서는 황금률적인 표현이며 정치학적 의미에서도 제1의 공의적 원칙이다. 이번 글을 통하여 상기의 원칙들이 한국 역사에 투영된 기록을 찾아가며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가름해 보고자 한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무속적 신앙에 기초한 공동체적 모습으로 수렵사회를 반영한 제천행사가 부여 영고, 동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등 형태로 행하여졌다고 전해지며, 농업이 번성하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단오와 추석과 같이 마을 사람 모두가 함께 음식과 가무를 즐기는 명절로 발전해 왔다고 한다.

이후 신라의 기록을 보면 불교가 전해지면서 지배계층인 화랑이 중심이 되여 향도(香徒)라는 조직이 만들어져 지배질서로서 종교적 규범을 강조하고 생활의 실천적 지침을 삼아 내려오다, 이후 일반백성에게까지 조직이 확산되면서 새로이 절을 짓거나 탑을 쌓거나 불공의 행사에 다중들이 함께 모여 공력을 제공하고 신앙적 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고려 왕조로 들어서면서 종교적 배경과 행사를 위해서 조직되고 활동하였던 향도는 이제 향촌의생활 속에 자리를 잡으면서 香徒가 아닌 鄕徒가 되여 생활의 공간과 내용을 공유하면서 함께 노동하고 함께 즐기고 서로를 도와가는 양속으로 이동했다. 마을의 공동노역, 혼례, 장례, 마을 수호신 제사를 함께 치르면서 자연스레 상부상조적 조직으로 변모해 갔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한민족 역사를 줄곧 관통해온 두레라는 협동적 노동방식과 상부적 자조금융인 다양한 형식의 계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향촌의 통치 방식에서도 지방을 대표하는 인물을 내세워 왕권을 대신하여 중앙에서 향촌으로 파견된 관리 간에 협의 내지는 역할 분담을 이루면서, 읍사(邑司)가 중심이 되어 일종의 지역자치를 이루면서 내려온 셈이었다. 그러나 고려말 성리학이 도입되어 확산되면서 자치적 성격이 강했던 향도와 읍사는 양반 중심의 지배계층에 의해 유교의 가르침과 규범을 가르치는 향약(鄕約)으로 흡수되어 재구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향약은 사원과 함께 향촌에 뿌리를 내린 사림의 지위를 강화하면서 중앙정치의 훈구 세력에 맞서는 일종의 정치적 거점으로 변모한다.

왕권을 정점으로 하는 신분제적 관료체제인 고려와 조선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경제의 축을 이루는 농업 기반인 토지의 사용 및 소유의 형태와 조세정책의 변화에 따라 이해를 달리하는 지배권력간의 이권과 세력다툼, 그리고 권력의 틈새에서 민중들 스스로 자조하고 순응하며 때로는 협약하고 저항해온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경제의 기반과 운용의 결과물을 놓고 지배계급과 기층민중간에 전개되는 ‘정치동력학’적 궤적이다.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확고히 정립한 조선조 초기에는 주요 경제기반인 농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산업정책의 기본으로 정하고 소농의 농민을 중심으로 백성을 위한 민본(民本)의 왕도사상을 정치적 지향으로 삼아 왔다.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 조준 등이 비록 의도했던 균전제를 온전히 도입하지 못했으나 과전 및 직전법을 시행하여 고려 말 혼란하고 무질서했던 토지 소유관계와 조세체계를 바로 잡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왕족과 세도가들의 토지겸병 현상이 심화된다. 수조권을 기반한 토지지배구조가 약화되거나 붕괴되고 매득(買得), 장리(長利,) 개간(開墾) 등 통하여 토지의 사적 소유가 확대되면서 농지를 떠나는 유민(流民)들이 대거 발생하고, 일부 양반들이 사노(私奴) 또는 소작농으로 전락된다.

이에 지방에 기반을 둔 사림세력은 성리학의 창시자인 주희가 만든 주자증손여씨향약을 제도적 모범으로 삼고 사원과 유향소의 부활을 구실로 삼아, 탐욕스런 중앙의 왕족들과 세도가들을 견제하며 나라의 기반인 농촌사회가 무너져 가는 것을 방지하고 성리학을 정치사회적 규범으로 삼아 봉건적 질서를 유지하고자 목숨을 건 정치투쟁을 전개한다.

중종에서 시작하여 명종을 거쳐 임진왜란 전의 선조 대에 이르기 까지 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김안국이 경상도 관찰사 시절에 향약을 한글로 보급한 것을 시작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인물들인 조광조, 이퇴계 그리고 이율곡 등으로 이어지면서 사림파와 훈구파 간에 성리학의 해석을 겸한 권력투쟁과 향약논쟁의 역사가 펼쳐진다.

향약의 내용을 살펴보면 중국 섬서성의 한 향촌에 국한되어 행하였던 여씨향약을 주자가 국가단위의 시행을 위하여 새로이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주나라의 제도를 따라 다음과 같이 주요 4개의 덕목으로 요약하였다.

덕업상권(德業相勸) : 좋은 일, 바른 일은 서로 권한다.

예속상교(禮俗相交) : 미풍양속으로 서로 교제하여 이를 널리 확산시킨다.

과실상규(過失相規) : 잘못한 일은 지적하고 비판하여 바로 잡는다.

환난상휼(患難相恤) : 개인 또는 향촌이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돕고 함께 극복해 나간다.

향촌에 거점을 두고 있던 조선조 사림의 양반들은 상기 향약의 내용과 제도를 무기로 삼아, 한편에서는 중앙정치의 세도가들의 탐욕과 패악을 견제하면서, 동시에 성리학적 윤리도덕을 기반으로 현존의 상하 신분관계를 분명히 하는 가운데 향촌의 공동체에 자발적 참여를 통한 자치기능을 부여하여 스스로 규계(規戒)하고 향촌을 유지 발전시키는 규칙을 세우며 고조선 이래 배달민족의 양속인 향음주례(鄕飮酒禮)의 전통을 지켜 나가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사림파들의 향약 실천에 대한 강력한 요구와 움직임에 대하여 중앙의 왕족과 세도가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어 거부한다. 예건데 인물이 부족하다거나, 인심과 풍속이 투박하여 오히려 역작용의 폐해가 예상되며, 신분제의 붕괴가 염려되고, 왕권의 향촌을 다스리는 힘이 약화된다는 등 이유를 핑계로 삼아 몇 번의 사화를 통하여 사림파들을 숙청하고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다.

권력의 다툼과 논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향약은 오래된 것으로 이를 실시된 곳마다 사람들이 서로 보살피고 돌아보며, 서로 돕고 질병에 함께 대응하며 구제하며, 자제로 하여금 유학의 가르침을 따라 효제의 뜻을 두텁게 하는 것을 가르치니, 삼대지치(三代之治)를 융성하게 하고 풍속을 아름답게 한다 – 化民成俗”라는 상소에 따라 중종 시절부터 적극적인 시행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매우 주목할 만한 인물이 조선중기 최고의 지성이자 실천적 행정가였던 이율곡 선생이다. 본인이 관직에 있을 당시 향약을 권하면서 파주향약의 서문을 직접 작성하였고 청주목사로 재직 시에는 서원향약을 만들어 시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선조가 향약을 전국적으로 시행하려 하자 오히려 시기가 너무 이르다(時期太旱)고 주장하며 시행을 보류하도록 간곡히 주청하여 계획을 중단시켰다. 더욱 기이한 것은 본인이 훗날 향촌에 머물면서 다시 완성도가 매우 높은 해주향약을 제정하여 보급하였다는 사실이다.

일견 서로 모순되고 상반된 이런 대목은 선조라는 못난 왕의 됨됨이를 살펴보면 이해가 가능할 듯하다. 사림들의 줄기찬 요구에 따라 신하들의 논의를 거쳐 향약의 전국적 실시를 결심할 단계에서 이율곡은, 선조가 민본의 왕도정치에는 별로 뜻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왕권 강화에만 마음이 머물러 있어, 이런 상태에서 향약을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향촌의 자치적 기능과 양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훼방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왕권과 중앙정치의 강화를 위한 하부 조직으로 전락할 것을 심히 염려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점은 필자가 제3 섹타경제론의 서론에서 제기한 지적과도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겨우 유아기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현재단계의 사회적 경제영역은 당연히 지자체를 포함한 정부와 공공기관의 법제적 도움과 재정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揚水論), 제3 섹타가 추구하는 자발적 참여와 스스로 역동적이어야 할 네트워크 형성을 정치와 행정 권력이 저해하거나 왜곡시켜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되풀이 언급하지만, 제2 섹타와 더불어 세 분야 영역 모두 병렬적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율곡 선생이 보여준 천재적이면서도 백성을 진심으로 위하는 실천적 지식인의 전형적 모습을 다시 한번 반추해 볼 수 있다. 그는 단지 패자적 왕권과 세도가들의 영향을 차단한 것만이 아니라, 주자에 의해 체계화된 여씨향약을 당시 조선의 현실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하여 실천적인 내용을 담아내었다. 자발적 참여와 회원들간 원만한 합의를 유도하기 위하여 향약의 조직과 운영에 대한 세칙을 정치하게 기술하였고, 실천적이고 구속력 있는 모임이 되기 위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선악부(善惡賦)의 작성 요령과 규칙을 세밀히 규정하여 향촌내 세력가들이 행할 자의적인 패악을 엄하게 금하였으며, 향약의 기능을 사창(社倉)과 통합하는 사창계약속(社倉契約束)을 제창하여 현대적 의미에서 향촌단위의 사회안전망적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율곡 선생이 지향했던 향약 실천의 뜻을 다시 정리해보자면 단순히 기존의 지배 질서를 온전히 유지하고자 하는 것을 넘어서서, 위로부터의 통치가 아닌 백성들의 자발적 참여에 따른 자치를 이루고, 성리학적 규범 가치를 공유하면서 예(禮)를 통한 윤리적 절제로 향촌의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며, 향촌 단위로 상호부조를 통해 사회경제적 안전망 기능을 부여하고, 전체적인 강제보다는 개인과 공동체간의 관계성 회복에 초점을 두었다 할 것이다.

이는 필자의 앞선 칼럼 ‘인본적인 사회주의자’에서 소개한 19세기 초 프랑스 사상가 사를 푸리에의 기획과 일맥 상통하며 1990년대 노벨경제학을 수상한 인디애나 대학의 오스트롬 교수의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라는 저작에 담긴 구상과 비견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다시 한번 대학자의 경륜과 가르침에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하고 싶다. 안타까운 것은 필자가 역사 공부에 어둡고 한문이 서툴러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분야의 전문학자님들께서 좀더 구체적이고 풍부한 내용을 밝혀주시길 희망할 뿐이다.

아쉽게도 향촌 단위의 자치적 분권을 의도하였던 향약의 보급과 시행은 임진왜란 이후 기존 신분제의 급격한 붕괴, 다양한 원인으로 촉발된 농민층의 분화, 향시(鄕市)를 넘어선 격지 간 상업의 발달, 세도정치의 패악, 삼정의 문란 등으로 멈추어 서게 된다.

반면에 사림의 양반이 주도하였던 향약 운동을 대신하여, 모내기를 도입한 이양법으로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왔던 일반 백성 중심의 집단협동적 노동방식인 두레와 상호부조적 금융시스템인 다양한 계의 모임이 활발히 되살아 나고, 외척과 부패한 관리 등 지배층의 탐욕과 패악에 대항한 산발적인 민란이 지속되면서 새로운 자각과 실천 운동들이 벌어지게 된다.

청제국을 파탄내는 서세동점 흐름과 한국땅에 상륙한 가톨릭과 개신교 등 기독교의 충격 속에 북학파를 시작으로 전개된 다양한 실사구시적 운동, 위로부터 자강을 시도한 개혁파의 시도, 일반 백성들의 근대적 각성을 촉발한 동학을 중심으로 사회변혁운동 등이 전개되었고, 불행하게도 이후 일제강점기, 해방과 분단 등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반쪽뿐인 현대 한국의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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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통일뉴스

2018년 현재, 남한사회는 양가(兩價)적이며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견 일인당 GDP가 3만 불을 넘어서면서 수치상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였고, 국력에 있어서도 세계 11위권을 유지하면서 강력한 미들파워 국가로 부상하였다. 반면에 외부적 조건이 불리한 가운데 양극화가 극심하고 사회적 불안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소득의 불평등 상황이 미국과 함께 OECD국가 중 가장 열악하여 1%의 국민이 20% 정도의 소득을 점하고 있고, 자산소득은 더욱 극심하여 이의 정도를 알려주는 피케티지수(국민순자산/국민총생산)가 10에 근접하고 있으며 (역사적 경험으로 지수가 6을 넘어서면 전쟁을 부추긴다고 피케티는 설명하고 있다), 1%의 부자와 재벌기업들이 민간소유 토지의 50%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자본 시장의 경우는 심한 정도를 넘어서서 1%의 자본가가 90%의 배당소득을 차지하는 등 극한적인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한국의 사회경제적 현실은, 마치 왕족 및 세도가와 이들의 하수인격인 권노(權奴)들이 불법적인 토지겸병의 탐욕으로 국가질서를 뒤흔들고 온갖 수단으로 백성들을 수탈하던 조선중기 이후의 패악스런 모습이 다시 부활한 듯, 더욱 뿌리를 깊이 내린 채 난공불락의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타결책으로 어리석게도 국민소득 4 만불의 수치적 성장론을 제시한다거나 소중한 그린벨트를 풀어서 주택 건설량을 늘려 투기를 막고 주거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상황을 더욱 나쁜 방향으로 악화시킬 뿐이다.

핵심은 소수를 위하는 양적 성장에서 전환하여 일반시민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민본중심의 사회경제적 운영의 철학과 방향 위에서, 저마다 생업에 전념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투기적 부동산 소유에 대해 실질적이며 현실적인 고통을 가하고 불로적 지대소득에 대한 확실한 누진과세를 적용하며, 경제적 성과를 국민 모두가 골고루 향유하는 배분과 순환의 원칙을 정립하는 것이다.

역사적 변혁기에 서있는 한국사회는 당면한 문제를 본질적으로 직시하고 접근해야 한다. 부패하고 탐욕스런 무리와 이를 부추기는 관행 및 제도에 대항하여, 향촌의 사림들이 시도하였던 향약의 시행과 더불어 백성들의 자조적인 운동이었던 두레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것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건국 신화로 전해지는 이화세계와 홍익인간의 역사문화적 DNA를 다시 발견하고, 이를 사회생물학적으로 우리 생활 속에 살아있는 유전적 밈(meme)으로 진화되도록 제도와 관행을 바꾸어 가야 한다.

목, 2018/10/0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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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과 조선업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이 한국산업의 화두가 되었다. 시야를 넓혀서 보면 세계적 규모의 금융과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과정이 겹쳐서 미증유의 산업구조적 변동이라는 거대한 파고가 밀려오는 있다. 해운과 조선업뿐만 아니라, 해외건설, 석유화학, 철강 그리고 현재까지는 잘 버티고 있는 반도체와 액정판넬 및 자동차산업까지 위기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부 전문가의 예언을 빌자면 수 년안에 제조업을 중심으로 백 만명이 넘는 실업이 발생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따라서 해운과 조선업의 구조조정이라는 현안은 단순히 해당 산업과 기업의 범위를 넘어서 한국경제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사안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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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4일 오전, 국회에서 새누리당과 정부가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관련 당정협의를 가졌다. (사진 출처: http://www.ss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5008)

다시 말하면 밀려오는 구조조정 문제를 총체적 관점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와 결단의 원칙으로 해결하면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는 반면에, 당장에 책임회피라는 미봉책으로 처리하면 한국경제가 재기할 수 없는 엄청난 재앙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정권이 벌리고 있는 구조조정 대책을 보면 무책임과 무능함 정도가 미봉책 수준이 아니라 역사적 범죄 수준에 이르고 있다.

재벌들의 족벌경영이 위기 키워

우선 해운산업을 들여다 보자. 2008년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위기 여파로 보호무역주의가 부활하고 무역의 물동량이 격감하리라는 것이 명확했다. 자연스레 한국내 해운업을 영위하는 300여 대부분의 기업은 이를 인지하고 사전적인 사업축소와 인원조정에 들어갔다. 덕분에 2015년 현재 해운협회에 등록된 150여개의 업체중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은 건전한 재무구조와 흑자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오로지 재벌들이 운용하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만이 심각한 결손상태를 보이고 있고, 나아질 전망마저 보이질 않는다.

물론 컨테이너 중심으로 정기선을 운용해야하는 특수한 조건, 즉 전세계를 대상으로 적정 인프라를 유지해야하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을 무시한 채 부채비율을 낮추라고 강요한 정부와 금융당국의 실책이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전적인 책임은 기업을 운영하는 주주의 판단과 경영진의 능력의 문제였다. 한치 앞을 못 내다보고 무리한 용선계약을 맺은 것은 자살행위에 가깝다. 이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회장직을 맡고 있던 면면을 살펴보면 확연해진다.

결국 재벌들의 무능한 족벌경영의 핵심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대마불사라는 환상을 하늘처럼 믿었던 데는 정부 관료와 금융기관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 지금이라도 양사의 자본지분을 결손액만큼 감자하고 채권액을 지분으로 전환한 후 양사를 합병하여 축소조정해야 한다. 이렇게 급한 불을 끈 뒤 시장에 다시 매각하는 것이 순리이다. 쉽게 말하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을 무능한 재벌들의 소유에서 분리시켜 냉정한 시장으로 되돌려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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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이 지난 6월 8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 출처: http://media.daum.net/news/view/print?newsId=20160612194609514)

이와 동시에 ‘롯데그룹 형제의 난’에서 보듯이, 지긋지긋한 재벌상속놀음과 무능한 경영에 국민경제가 멍들고 서민들이 고통받는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이번을 계기로 재벌에 대한 단호한 정책적 조치가 필요하다. 미국이 세계최고의 경제대국을 이룬 배경에는 금산분리와 반독점법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결단의 역사가 있다. 이제 한국에서도 재벌에 대한 타협없는 감시감독의 철퇴를 준비해야 한다 ( 박상인교수의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길> 참조).

정경유착의 다른 이름, ‘서별관회의’

조선산업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재벌에서 정권과 관료로 옮겨간다.

지난 수 십년간 한국 조선업이 세계 일등산업으로 효자노릇을 한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1960-70년대까지 호황을 누리던 유럽의 조선업계는 스웨덴 ‘뮐뫼의 눈물’이 상징하듯이, 대부분의 일반선박 물량을 한국과 일본에게 물려주고 살을 에는 고통 속에서 고기술 고부가가치의 크루즈선, 요트와 탐색선, 특수선 등으로 사업영역을 이동시켰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조선소를 폐쇄시켜야 했다.

유럽이 겪었던 고통의 과정을 이제 한국 조선업계가 받아 들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해운업과 마찬가지로 보호무역주의 부활이 예견되고, 중국경제의 경착륙이 이야기되면서 일반 선박의 수요가 격감하리라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때마침 터져나온 해양개발 특수가 한국 조선업계를 살려주었다. 지난 십 여년간 삼성조선이 필두로 수주하여 큰 수익을 올렸던 ‘드릴쉽’ 사업을 신호탄으로, 백 여척이 넘는 해양플란트 수요가 한국 조선업계로 몰려들었다. 여기에는 사실상 특수수요로 형성된 해양플랜트를 제작할 곳이 한국 외에는 없었다는 저간의 사정이 있다.

유럽은 인건비와 노동시장의 성격상 이를 수주하여 건조를 수행하기 어려웠다. 싱가포르 조선업이 이를 감당할 만했지만, 우선 ‘반잠수시추선’으로 전문화되여 있었고, 건조 규모에서 일정 수요이상을 감당할 수 없었다. 단순 조선에서 산업플랜트로 다변화 되었던 일본 조선업계 역시 고임금과 더불어 사업영역을 쉽게 변신하여 해양사업을 수익성있게 감당하기 어려웠다. 중국 등 다른 아시아지역은 기술수준에서 제외되여 있었다. 해양플랜트의 특수수요는 한국 조선업계가 황금알을 낳을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좋은 기회를 극적으로 반전시켜 수 조원 손실의 악재라는 구렁텅이로 조선업계를 떨어트린 중심에는 대우조선, 그 중에 남상태와 고재호라는 조연 배우, 그리고 이명박근혜정권과 서별관회의라는 주연 배우가 있었다. 

청와대 본관 서쪽에 위치한 서별관에서는 비공개로 주요 경제·금융 현안을 논의하고 정책을 결정한다. 이명박근혜시대의 ‘서별관회의’는 정경유착의 은밀한 장소였다 (사진 출처: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655035)

이명박 부인의 연고로 대우조선의 사장으로 임명된 남상태라는 인물. 그는 해양플랜트가 가지는 기술적 위험성을 무시하고 발주처의 적정 예가에서 20-30% 이상 저가로, 그것도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일괄수주( 턴키방식)를 무모하게 감행한 자이다.

해양플랜트는 시담에서 수주 그리고 건조와 진수까지 5년 이상의 긴 시간이 필요한 사업이다. 자기 임기에는 진수와 인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하여 예측할 수 없는 위험으로 회사가 망해도 상관없다는 참으로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범죄를 저지른 자이다. 이런 관행은 그의 후임자에게도 되풀이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범죄행위가 대우조선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리한 수주경쟁을 통해 경험과 양질의 조건을 갖추었던 타 조선업체, 즉 삼성조선과 현대중공업에게도 파급되어 적자수주가 일반화되었다. 한마디로 대우조선의 행태는 물귀신작전이였다. 사태는 여기서 멈추질 않았다.

대우조선 경영진들은 자신들의 무능과 범죄행위를 감추기 위해 분식회계를 감행했다. 조선같은 수주산업의 분식회계 기법은 매우 단순하다. 재고와 기성고 부풀리기, 그리고 회수 불가능한 악성채권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대우조선을 감독하고 견제해야 하는 산업은행 관계자들이 이를 몰랐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거짓말이다.

악질적인 경영책임자, 이를 공모한 회계법인, 그리고 이를 눈감아준 산업은행로 이어지는 총체적 부패고리를 통해 전형적인 공범 행위가 이뤄졌다. 더구나 이들 뒤에는 정권 실력자와 출세에 눈 먼 경제관료들이 숨어 있었다. 이는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들이 이번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핵심들이다.

이미 서별관회의를 통해 5조원이라는 국민 세금이 흘러 들어갔고, 앞으로도 우선 10조가 넘는 돈이 들어가야 한다. 더큰 문제는 여기서 멈추질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이다,

뼈를 깍는 구조조정과 책임자 처벌 절실 

눈을 다시 세계조선시장으로 돌려보자.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이지만, 앞으로 보호무역주의가 완화되고, 세계경제가 회복되여 격감했던 신규 조선수요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고 해도 일반 신규조선 수요가 한국 조선업계로 되돌아 올 것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 중국도 열 개의 조선업체 중 7-8개의 업체가 극심한 수주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 인건비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베트남 등 동남아국가들도 이미 조선산업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일반선박의 신규수요는 중국과 동남아 조선소를 채운 다음에야 남는 수요가 한국에 돌아온다고 보는 것이 정상이다.

한국 조선업이 목을 매는 해양플랜트 특수수요는 미국의 세일가스사업이 본격화되여 유가가 50 달러 이하로 떨어지면서 급격히 축소되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해양플랜트사업을 발표하여 한때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Petrobras(브라질 석유공사)가 브라질 경제의 재앙으로 변했고, 정치적 이슈가 되면서 비리혐의로 호세프 대통령까지 탄핵사태를 맞았다. 이미 발주되었던 계약도 시장환경을 구실로 취소되고 건조된 플랜트조차 인수를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유럽정상들이 지구환경회의를 계기로 2050년 이후에는 화석연료로 운용하는 발전소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석유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해양플랜트수요는 이제 가뭄에 콩나듯 나올 것이 명약관화하다.

유럽과 같이 한국 조선업의 미래는 기술집약적이고 고부가가치선 중심으로 재편될 수 밖에 없다 (서울공대 교수들의 공저 <축적의 시간> 참조). 현재의 조선건조 시설과 규모는 너무 방대하다. 순차적인 전환과 축소 그리고 폐쇄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 첫번째 대상은 대우조선이 될 수 밖에 없다.

구조조정에는 반드시 엄청난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고통이 무서워 이를 회피하면 더 큰 재앙이 닥치게 될 뿐이다. 썩어가는 다리는 잘라내야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이명박근혜정권하에서 사태를 책임져야 할 관료들은 썩고있는 다리에 안티푸라민을 발라대고 있었다. 이제 그만해라 !

대우조선소는 폐쇄하고, 서별관회의 참석자들은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나머지 조무래기는 법과 규정대로 처리하면 된다. 12조원에 달하는 구조조정비용은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데 사용하고, 거제지역은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한 특별법으로 지원해야 한다. 책임 회피와 어리석음으로 우리의 미래를 망치는 자들을 절대 용서해선 안된다. 

금, 2016/06/2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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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한겨레신문(2016. 6. 14)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구의역 안전문(스크린도어) 사고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김군의 죽음을 계기로 서울형 노동혁명을 일으키겠다고 말했다. 일단 서울시의 원인규명 작업, 책임자 처벌, 대안을 기대해 보지만, 이것은 서울시만이 감당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나는 한국의 뿌리 깊은 노동 비하 관행, 노동을 오직 비용으로만 보는 이 사회의 주류 지배층의 사고방식과 대학을 나와야 인간대접 받을 수 있다는 이 사회의 관행이 깊게 얽혀서 그를 죽게 만들었다고 본다.

그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144만원의 월급 중 100만원을 저축해서 대학에 진학하려 했다. 그가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노동조건을 감수한 이유는 생활비와 등록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메트로 자회사의 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였으며, 대학을 졸업하면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었으리라.

지난 6월 2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중 숨진 김군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유가족을 만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었던 그는 고용불안 때문에 피켓시위도 했다. 그러나 그는 노동자의 권리를 집단적으로 제기할 수 없었고, 임금인상도 요구할 수 없었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도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손에 공구를 들지 않는 아버지 세대 메트로 출신 간부나 정규직 직원은 400만원의 월급을 챙겨도 자신은 거의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밖에 받지 못하면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이 역 저 역 미친 듯이 뛰어다니면서 ‘노오력’해야 했다.

그가 살았다면 1년짜리 계약은 갱신되었을지 모르지만, 과연 정규직의 희망이 실현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가 되면 과연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열심히 돈을 모아 대학 졸업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자기소개서를 200번이나 써야 하는 지금의 대졸 백수 청년이 되진 않았을까?

그래도 19살의 젊디젊은 그는 이 사회가 만든 교육을 통해 정규직도 되고 관리자도 될 수 있다는 기성의 신화를 의문시할 수는 없었다. 현실을 그냥 감내하기에 그에게 ‘미래’는 너무 크게 열려 있었다. 불행히도 그에게 미래는 없었다.

노동비하/계층상승이라는 도그마는 이 사회 주류층의 이해관계에서 나온 것이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 시간제, 위험 작업장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기보다는 사무실에 앉아 있는 관리자들에게 더 높은 보상과 직업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은 자본주의 일반의 특징이 아니라 한국적 관존민비, 노동천시의 관행이고, 그 최대 수혜자들은 관료와 기업가들이다.

공기업 비용절감, 경영효율을 거의 폭력적으로 강제하면서도 자신들은 어떤 견제나 감시도 받지 않다가 퇴직 후에는 공기업에 한자리 차고앉은 이 나라 고학력 관료들의 특권과 부패, 언론과 지식인들의 반복되는 도그마 유포 역시 이해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기업이 위기에 처하면 경영자를 문책하지 않고 노동자부터 자르는 일은 가장 퇴영적인 한국식 신자유주의다.

메트로 노조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보다는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주요 업무 아웃소싱으로 자식 같은 청년들이 저임금과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모르는 체했고, 시민들은 자신이 비용을 더 부담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그들이 노동자의 파업을 죄악시하는 언론에 박수를 쳤기 때문에 청년들이 이 저임금의 위험한 노동을 감수했고, 대학 진학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다.

현재의 메트로 예산 범위 내에서도 김군은 250만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었고, 노조와 시민사회의 감시권이 있었다면 그는 2인1조의 작업팀에서 일하면서 최소한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한국만큼이나 노동자 권리가 약한 일본도 시간제나 비정규직에게는 돈을 더 얹어준다. 배관공이 교수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고,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 격차를 더 줄일 수 있다면,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노동 존중과 노동권의 개념을 가르칠 수 있다면, 김군은 정비공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면서 대학 가기 위해 그렇게 무리하게 일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금, 2016/06/2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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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아가씨> 두 작품의 관람 가능 연령은 몇 세일까? <아가씨>는 여배우 김민희의 파격적 정사장면이 있다고 하니 당연히 19금이라 여길 듯 싶다.

그렇다면 <곡성>은 어떨까? 몹시 훼손된 신체가 등장하고, 일가족 살인과 같은 끔찍하고도 잔혹한 일도 벌어진다. 그렇다면 과연 몇 세 관람이 적당할까? 정답은 15세 관람가이다.

15세 관람가, 만 15세 이상 관람을 권하는 영상물. 선정적, 폭력적 장면이 나올 수 있으나 청소년들도 충분히 관람할 수 있을 수준의 영상물을 가리켜 15세 관람가라고 부른다. <곡성>의 최종 관람 등급은 15세 관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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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스틸컷.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곡성>이 개봉한 이후 과연 <곡성>이 15세 관람가가 맞는가에 대한 격론이 오갔다. 공포, 스릴러, 미스테리와 같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곡성>에서 가장 강렬한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긴장과 공포일 것이다. 긴장과 공포는 관객에게는 충격으로 흡수된다. 물론 <곡성>에는 존속살해와 같은 끔찍한 일들이 출몰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살해 도구가 직접 등장하거나 살해 장면이 영화적으로 연출되지는 않는다. 직접적으로 연출된다는 점에서 찾자면 <곡성>에 연출된 가장 잔인한 장면은 아마도 닭의 목을 잘라 피를 받는 장면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성>을 보고 난 많은 관객들은 15세 관람가가 지나친 것이 아닌가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는 영화가 무척이나 잔혹하고 공포스러웠다는 고백과도 같다. 비록 회칼이나 도끼로 신체를 훼손하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끝내 마음을 졸인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무섭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공포란 단순히 도구의 노출이나 장면의 재연이라는 물리적 현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한국 영화의 등급은 이렇듯 아리송한 경우가 많다. 얼핏 보면 <곡성>보다 더 잔혹할 것도 없어 보이는 영화 <신세계>는 청소년관람불가이다. 아마도, 범죄조직이 벌이는 범죄라는 점에서 좀 더 엄격하게 폭력성을 살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신세계>에 등장했던 정청(황정민)이 했던 대사, “들어와, 들어와”는 전 연령이 보는 T.V개그 프로그램 및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대사로 차용된다. 이병헌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달콤한 인생>의 대사 중 하나인 “넌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가 전국민적인 유행어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말하자면, 패로디가 굉장한 인기를 끌어 모은 셈인데, 패로디의 원관념이 애당초 19세금이다. 영화의 장면이나 내용이 주말이면 방영되는 짜깁기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 소개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패로디는 단순히 소개된 정도가 아니라 대중적 소비가 축적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원관념으로서의 지위를 갖는 문화-놀이다. 19금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대사가 패로디된다는 것은 그 만큼 그 영화가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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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가 19금이 되고, 또 어떤 영화는 청소년의 관람이 허용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

문제적인 것은 대개의 한국 영화의 등급이 폭력에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선정성에는 과도하게 엄격한 잣대를 댄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선정성에는 단순히 성적인 호기심 유발이 아니라 사회경제 및 정치적 면까지 포함되어 있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가 청소년 관람 불가, 즉 19금을 받을뻔한 맥락도 여기에 닿아 있다. 남북한 병사들이 서로 자유롭게 왕래한다는 묘사가 남북한 관계에 대한 오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주려 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천만관객이상을 동원한 한국 영화는 모두 11편이다. 이 중에서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는 단 한편도 없다. 가장 많은 관람가는 15세 관람가였고, <국제시장>이나 <괴물>과 같은 작품은 12세 관람가였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15세였는데, 왜 <국제시장>은 12세 관람가였는지 그리고 한편 동성애가 암시되는 <왕의 남자>가 지금 같았으면 과연 15세 관람가가 가능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청소년 관람불가야 그래도 동의할 만 하지만 도대체 12세와 15세의 구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등급위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을 영화소비자들 역시 공유하는 사회적 합의여야 한다. 관객수를 몇 백 만 명씩 가늠하는 관람 등급이 도대체 어떤 기준에서 나뉘고 구분되지 짐작할 수 없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검열은 한국 영화계에서 사라진 단어라고 하지만 체감상 영화 등급제도가 검열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는 비단, 영화표를 사는 데 나이가 걸려 민감한 청소년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닐테다. <다이빙벨>과 같은 작품의 상영에 단지 프로그래머들만의 결정이 전부가 될 수 없는 상황도 여기서 멀지 않다.

무릇 추상적인 기준에는 그림자가 많다. 좀 더 투명한 기준을 제시할 수 없다면 말 그대로 창작자의 견해가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어야한다. 등급을 나누는 일이 권력은 아니기 때문이다.

화, 2016/06/1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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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결과를 만들어낸 민심은 어떤 것이었을까.

14일,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사단법인 다른백년과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가 주관한 ‘여론조사로 살펴본 20대 총선결과’ 발표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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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서는 다른백년 리서치팀의 신승배 교수, 정완규 교수, 강흥수 센터장 등이 분석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번 여론조사는 20대 총선 이후 최초의 전국 조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신승배 교수는 정치효능감, 공동체의식, 기관만족도, 경제상황 인식, 정치상황 인식 등 다양한 변수에 대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정완규 교수는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유권자를 정당별 지지자로 구분한 뒤 각 지지자별 정당지지 이유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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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흥수 센터장은 “오늘은 기초적인 분석결과만을 공개했지만, 향후에 보다 심층적인 분석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여론조사분석결과는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디앤알(data & research)에 의뢰해 20대 총선 직후인 4월28일∼5월2일까지 실시됐다. 지역, 성, 연령별로 비례할당방식으로 표본을 추출했으며, 표본수는 전국 만 19∼69세 성인 남녀, 1173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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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분석결과와 분석보고서는 조만간 다른백년 홈페이지에 공개될 예정이다.

화, 2016/06/1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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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경향신문(2016. 6. 1)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관련한 책을 검색해봤다. <세계의 대통령 반기문> <세계 위인전 WHO?- 반기문>과 같은 어린이용 책 목록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영어 연설문도 많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밑줄 그으며 학습해야 할 텍스트가 된 것이다. 간혹 성인용도 눈에 띈다. 그중 하나를 읽어보다 그만두었다. 독자를 초등학생 취급하는 영웅담이었다. 적어도 한국에서 그에 관해 책을 쓰는 방식은 오직 한 가지 같다. 그렇지 않다면 그를 초인으로만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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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그가 역대 사무총장 가운데 최악으로 평가받는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위인전의 주인공으로 계속 남을 수도 있던 그가 대권을 향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자신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은 결과다. ‘포린폴리시’는 사무총장 후보 시절 미국 외교협회에서 문답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2010년 이렇게 썼다. “단조롭고 어색한 영어, 공허한 답변들은 나를 깊이 잠들게 했다. 후보 때의 낮은 기대를 감안하더라도 임기 3분의 2를 마친 지금 반은 최악이다.”

‘가디언’은 사무총장 되고 처음 워싱턴을 방문, CSIS에서 연설했던 때를 회상하는 기사를 2010년에 썼다. “세계적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기 위해 수백명이 참석했다. 즉각 따분함과 실망감이 찾아왔다. 무미건조한 연설, 진부한 이야기들이 끝없이 되풀이되자 청중은 휴대전화와 블랙베리를 들여다보거나 허리를 굽힌 채 졸기 시작했다. 임기 4년째가 되어도 그는 개선되지 않았다.”

그를 비판할 때 등장하는 용어는 항상 같다. 단조로움, 우유부단, 진부함, 소심함. 여기에 ‘어디에도 없는 사람’ ‘소재불명’ ‘무기력한 관찰자’라는 딱지가 붙는다. 분쟁, 인도주의적 위기에 적시 대처하지 못해 재앙적 사태를 초래했다는 게 이유다. 반 총장 측은 ‘조용한 외교’를 오해한 것이라고 해명한다. 막후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그래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만 하면 곤란하다. 사무총장은 군사력도, 경제력도, 정치권력도 없다. 그런 건 강대국 차지다. 사무총장은 국제 규범, 정의를 대변하는 자로서 도덕적 권위를 활용, 세계의 양심을 일깨우고, 국제여론을 조성해야 한다. 조용한 외교만 했다면 직무유기에 가깝다. 사무총장이 가진 유일한 자원을 내다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사무총장은 결코 조용해서는 안 되는 자리다.

반 총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건 그만하자 사무총장은 본래 잘하기 어려운 자리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진짜 문제는 그의 능력이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다. 한국인은 그가 국제문제를 어떻게 다뤘는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 관심이 없다. 그저 ‘세계적 유명 인사가 된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주는 민족주의적 자부심에 만족했고, 그 만족 때문에 그를 대선 주자로 지지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가 국가를 이끌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해선 또 별 관심이 없다.

이런 식이면 내년 1월1일 그의 결심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세계 최대 기구의 최고 책임자 자리를 10년간 지내자마자 한 국가의 최고 권력 5년짜리를 향해 다시 욕망을 불태울지 말지는 그의 자유에 속하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면 된다. 최고 지도자 자격을 부여할지는 우리 시민의 주권에 속하는 일이다.

국제사회가 평가한 그와 국내에서 알려진 그는 대체로 일치한다. 그는 겸손하나 소심하고, 성실하나 결단력 없는 사람이다. 그를 관료 출신이라고 할 때 단순히 경력사항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업무 태도를 뜻하는 것이다. 관료란 주어진 목표를 잘 알려진 절차와 방법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다.

정치 지도자란 자기 비전에 따라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불확실성 속에서 공동체의 운명을 헤쳐 나가는 사람이다. 그는 이런 덕목을 보여준 적이 없다. 노르웨이 유엔 부대사가 본국에 보고한 대로 그에겐 비전과 리더십이 없다. 내년 대선까지 그걸 갖추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단기 학습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은 당원, 지지자, 정당 지도자들과 갈등하고 경쟁하며 협력하는 과정을 통해 단련되고 검증된 지도력, 이념·정책 없이 국가를 이끌어도 되는지 판단하면 된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범위를 파악하지 않은 채 국정을 맡겨도 되는지 결심하면 된다. 정치 밖 인기로 정치를 하고, 정당을 사적 욕망의 수단으로 써먹어도 되는지 고민하면 된다. 단기 대권 프로젝트라는 대선 지름길을 찾아내 정당 정치를 우회하고 그로 인해 정치적 퇴행을 무시할지 선택하면 된다. 정치가 좋아지지 않아도 삶이 나아질 수 있는지 생각하면 된다.

반기문 문제는 반기문의 문제이기 전에 시민의 문제다. 공동체를 누가 대표하고 이끌지 시민이 숙의하는가의 문제이다.

수, 2016/06/0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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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대응 시민사회 비전 포럼」, 기업의 ESG 열풍 다뤄

자료집 링크 : https://bit.ly/38Y2edk

환경운동연합이 주최주관하는 연속 토론회 「기후위기 대응 시민사회 비전 포럼」이 9월 10일(금) 세 번째 회차를 진행했다. ‘기후위기 시대, 새로운 경제 질서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기후위기 시대의 ESG경영과 산업의 전환, 노동을 다뤘으며 총 3인의 발제와 5인의 토론으로 진행됐다.

첫 번째 발제자인 지현영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국내외 ESG동향과 그린워싱 방지를 위한 제언을 발표했다. 이는 이미 2010년 ISO 26000 지침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들어갔던 요소들로, 최근에는 비재무적 정보로서 사업 영역에서 부각되고 있다. 지 변호사는 이러한 동향에는 환영을 표했으나, 이에 대한 모니터링과 견제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시와 평가에 관련해서도 유럽영국 등의 해외 선진국에 비해 우리의 도입 일정이 더딘 점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 변호사는 그린워싱의 방지 대안으로 투명한 정보공개를 우선 강조했으며, 더 나아가 이를 투자자·소비자가 쉽게 판단 가능해야 하며, 규제 제도 구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집단소송이나 징벌적 손해배상 등의 적극적 수단들도 도입해야 함을 촉구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기후금융을 위한 제안과 지속가능한 금융의 흐름에 대해 설명했다. 세계적인 ESG의 흐름은 탈탄소와 그린사회로 가는 중이라는 것이다. 이 국장은 ESG에 대한 관심 추이가 19년부터 급증하고 있으며, 2035년까지 160조 달러로 투자규모가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한 보고서도 제시했다. 넷제로(net-zero)와 탈석탄 이니셔티브가 확대되는 추세에서, 지속가능한 금융의 활성화와 연결되는 해외 사례들도 소개했다.이 국장은 이러한 생태계 구축과 정보공개 의무화가 필요하다며, 2030년에야 모든 상장사가 의무공시를 하게 되는 현행 국내 로드맵이 너무 느리다고 비판했다. 또한 사업보고서를 통한 의무화 방안이 18대 국회부터 추진되어 왔지만 아직도 통과되지 못한 상태이며,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한 반영을 촉구했다.

마지막 발제자인 김민정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ESG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했다. ESG가 사회적 화두가 된 이유가 기후위기의 심각성 뿐만 아니라, 2008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이윤율 하락의 문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으로 보았다. 김 교수는 결국 ESG는 다국적 금융사들의 이윤 확보를 위한 하나의 수단 정도로 활용될 것이며, ‘기후위기 구원투수’로서의 역할과 우리 사회에 계속되어 온 불평등구조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는 큰 기대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과 소비자가 강조되는 데 비해 노동자의 역할은 경시되고 있다며, 정의로운 산업 전환을 위해서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기후위기 단일 쟁점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현재 노동자들이 피부에 와닿는 문제들과 연결시켜,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은 세계적인 ESG열풍을 볼 때 과거 CSR의 반복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우리의 공시 의무가 너무 늦어지고 있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산업부가 준비 중인 평가지표에 대해서도 우려를 드러냈다. 관이 주축이 되어 획일적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산업별 특성을 반영하기 어렵고, 완결성 있는 지표로 운용 가능할지도 의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과거와 같이 이것이 곧 과도한 인센티브와 규제 완화의 빌미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민간 차원의 감시가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투명하고 적극적인 정보공개가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세계적인 열풍 속에 공시체계와 정보 부족으로 제도 정착이 늦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며, 산업 전환에 대비한 재정 지출 등 디테일한 정부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토론을 마무리했다.

이지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언했다. 말 그대로 너무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환경오염 유발로 악명이 높고, 특히 포항주민들의 암 사망률과 산업재해 사망률에 책임이 큰 포스코가 민간평가에서는 좋은 등급을 받는 상황을 보며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평가지표의 허울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ESG 지표에서 G(지배구조)를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E(환경)와 S(사회)도 충족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세 요소는 수레바퀴처럼 맞물려 있어 어느 하나만 중요하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기업과 정부의 주도보다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감시가 중요하며, 시민사회 차원의 ESG 평가지표 수립을 제안했다.

김선철 멸종반란한국 활동가는 통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린스완(Green Swan; 기후위기로 촉발되는 금융위기)의 의미부터 되짚었다. 그린스완이 결국 기후위기 대응보다는 이윤의 위협을 느끼는 자본기업들의 대처를 중시하는 개념이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이를 마치 새로운 경제질서의 본질마냥 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린뉴딜을 비롯한 정부의 정책들이 기업들이 힘드니 도움을 주자는 차원으로 전락한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ESG와 기후금융이 불필요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러한 방식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기후위기 대응에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민주적 참여가 필요하며, 기업의 자발성에 기대기보다 국가의 공적 규제를 통한 적극적인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양동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지금의 상황이 지속되면 불평등이 더 커지고, 다수의 노동자와 빈민들은 생존자체를 위협받게 될것이라며, 결국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한데 정부의 입장은 너무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대기업들에 대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그린뉴딜같은 대안들로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도 했다. 천문학적인 예산에도, 국제경쟁력 강화와 성장주의, 그리고 대기업 지원을 빼면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사회를 바꿀 뉴딜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다. 그는 탄소중립도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불평등해소와 행복한 일자리 건강한 삶의 지속이라 생각한다며 이를 위한 대전환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도 말했다.

박혜린 이노마드 대표이사는 신재생에너지 스타트업 운영의 경험을 살려 ESG에 대한 기업들의 고민들을 공유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진단이 필요한데 기업 자체적으로만은 대응이 어려운 면이 있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수용할 수 있는 객관적인 검증 체계가 없는 현실을 언급했다. 또한 기업 내부 이해관계자들의 합의 도출이 쉽지 않고, 실제로 납품을 해야 하는 영세 중소기업들의 입장에서는 동력이 부족한 데 비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과 업계에서도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다”며 향후 보다 많은 논의가 지속되기를 희망했다.

다음 「시민사회포럼」 네 번째 회차는 9월 13일(월) 오후 2시, 환경운동연합 유튜브에서 생중계된다. ‘기후위기 시대, 생명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생명다양성과 생태계 보전을 위한 제안, 동물권인권·여성의 관점에서도 기후위기를 다룰 예정이다.

자료집 링크 : https://bit.ly/38Y2edk

 

토, 2021/09/11-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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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에 제가 여기에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캠페인을 이끌고 싶다고 했을 때 여러분 모두는 저를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웃음이 안 나오시죠?”

유럽의회 의원이기도 한 영국독립당(UKIP) 당수 나이젤 파라지(Nigel Farage)는 의회에서 조롱 섞인 연설을 내뱉었다.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EU 탈퇴로 결론이 난 후였다.

‘인종차별주의자에 가까운 괴짜들’(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정도로 치부됐던 영국독립당과 파라지는 브렉시트 이후 가장 많이 언급되는 정치세력 중 하나다. 미국의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파라지를 유럽의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5위로 선정하면서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그의 가장 큰 성공, 혹은 실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성공’의 문턱에 다다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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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젤은 브렉시트 국민투표에 1000파운드를 건다고 했고, 그의 도박은 성공을 거뒀다. (사진 출처: http://www.express.co.uk/news/politics/649750/Nigel-Farage-bet-1-000-Br…)

대학 포기하고 금융분야에서 사회 첫 발

파라지는 지난 20여 년 전부터 ‘EU 탈퇴’를 주장해 왔다. 그리스와 독일처럼 구조적으로 ‘다른’ 경제체제를 지닌 나라들에 획일적인 금리가 적용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본래 보수당에서 활동했던 그는 1992년 존 메이저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EU 출범의 기틀을 마련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서명하자 당에서 뛰쳐나와 영국독립당 창당 멤버로 합류했다. 예전에는 EU 확대를 부르짖다가 일종의 ‘정치적 승부수’로 브렉시트를 택한 몇몇 정치인들과는 결이 다르다. 적어도 진짜 그게 옳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이젠 더 이상 ‘웃을 수 없게’ 된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그는 정말로 활짝 웃으며 ‘환호작약’했다.

물론 일관성이 언제나 미덕은 아니다. 파라지의 언행에선 일관성을 넘어선 아집과 독선이 내비친다. 자신의 연설에 대해 동료 의원들의 야유가 이어지자 그는 맞받아친다. “여기에 계신 누구도 평생 동안 일을 제대로 끝내거나 비즈니스를 해보거나 무역을 해보거나 일자리를 만들어본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을 그냥 들으세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내가 해 봤는데’ 스타일이다.

파라지는 정치에 입문하기 전 런던금속거래소에서 상품중개인으로 일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런던의 금융가인 ‘더 시티’로 바로 들어갔다. 그는 이런 진로를 선택하는데 크리켓 선수 출신의 교사 존 드웨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선생님은 내가 꽤 대담하고, 연단에 서는데 능숙하며, 세상의 이목을 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끌벅적하며, 뭘 팔아먹는데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있었다.”

파라지가 ‘정치’를 비전을 갖고 사람들을 조직하고 설득해서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잘 먹힐 만한 ‘물건들’을 제시해 인기를 끌고 당선되는 잔기술로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는 드웨스 선생님이 이미 잘 파악하고 있었듯, 잘 팔릴만한 물건들은 잘 안다.

런던과 일부 대도시에는 돈과 기회가 넘치지만 그 외 지역은 날로 쇠퇴하고 있다. 실업은 만연해 있고, 공공서비스는 줄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무척 복잡한 문제지만 쉬운 표적이 하나 있다. 모든 것이 최근 어디서든 손쉽게 볼 수 있게 된 ‘이민자’ 때문이고, 결국 EU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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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최신호 표지에서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영국의 상황을 ‘걸레가 된 유니온잭’으로 묘사했다. (사진출처: 이코노미스트)

파라지는 이런 정서에 편승해 “지하철을 탔더니 영어를 들을 수 없었다”며 사람들을 자극한다. 대놓고 이민자들과 살기 싫다고도 말한다. 그에게 무슬림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제5열’(간첩)일뿐이다. 브렉시트 홍보를 위해 그가 들고 나온 것도 난민들이 떼 지어 유럽으로 들어오는 포스터였다. 난민이라고 주장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경제적 이민이며 일부는 이슬람국가(IS)의 지원군이 될 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영국민족 강조하지만 다문화가정 출신

‘영국 사람’임을 강조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파라지’라는 성은 먼 위그노 교도(16~17세기 프랑스 칼뱅파 신교도) 조상에게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19세기에 런던으로 이주한 독일계 출신이다. 이민자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 온 그이지만, 뿌리에는 프랑스와 독일계의 피가 스며있는 셈이다.

개인적으로 파라지는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독일 국적 여성과 재혼해 두 아이를 낳았다. 그가 라디오 인터뷰 중 옆집에 루마니아 사람들이 이사 와서 신경 쓰인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있다. 그때 사회자는 파라지의 가족에 빗대 “독일 아내와 아이들이 옆집에 있는 것과 차이는 뭔가”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는 “당신은 그 차이를 알지 않느냐”고 눙쳤다.

이런 태도에서 짐작가지만, 파라지는 종종 인종주의자라고 비판받는다. 독립당 소속 유일한 여성 유럽의회 의원이 파라지를 “반여성적인 스탈린주의자 독재자”라고 비판하며 보수당으로 옮기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1차 대전 참전용사여서인지는 모르겠으나, 1차 대전의 격전지를 돌아보는데 큰 열정을 쏟는 그의 모습에서 ‘그레이트’ 브리튼을 열망하는 국가주의적 냄새가 나기도 한다. 물론 술을 엄청 마셔대기 위한 핑계거리라는 얘기도 있다.

한때 EU회의론자로서 그와 가까운 동지였다가 결별한 뒤 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리처드 노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만약 인종주의자라면, 그는 유능한 배우다. 그걸 잘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그가 인종주의자라고 보지 않는다. 그저 구시대적인 대외강경론을 펼치는 애국주의자라고 본다.”

그러나 브렉시트 때문에 영국은 그가 바란 대로 ‘그레이트 브리튼’이 되기보다 ‘브리튼 소국’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벌써 스코틀랜드가 다시 독립을 꾀하고 있고 나라는 계층별, 지역별, 연령별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유럽의회 의원으로 정계 입문….영국 선거에서는 7전 전패

파라지는 전국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잇따른 망언과 구설로 당 내부에서조차 비판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인기는 꺾이지 않고 있다. BBC 기자는 ‘(비판이) 들러붙지 않는 나이젤’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유명인사’에 가깝게 자리매김한 것에는 그의 독특한 인생역정도 한몫 했다.

파라지는 1964년 영국 켄트주 판버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도 ‘더 시티’에서 일하는 주식중개인이었는데, 5살 때 이혼한 알콜중독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20대 초반이던 1985년 그는 교통사고로 죽을 뻔했다. 머리와 왼쪽 다리를 다쳤는데 거의 절단해야 할 만큼 위급한 상황이었다. 회복에는 1년 가까이 걸렸다. 그때 자신을 간호해주던 간호사가 첫 번째 부인이 됐다.

이듬해에는 고환암에 걸려 왼쪽 고환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2010년 총선 때는 지지 호소 현수막을 단 경비행기를 타고 비행하다 추락하기도 했다. 사고 직후에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리 회복해 지팡이를 짚은 채로 동료의 장례식장에 나타났다는 후문이 있다.

파라지는 1999년 남동잉글랜드 지역구에서 유럽의회 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정치인으로서 본격적 첫발을 내딛는다. 그렇게도 혐오하던 EU에 의원으로 입성한 이유를 묻자 그는 “밖에 있기보다 안에 들어가서 그곳을 바꾸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유럽연합에 반대하는 것이지, 유럽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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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젤 파라지(왼쪽 두번째)가 2014년 5월 26일, 영국의 유럽의회 선거에서 영국독립당(UKIP)이 108년 만에 보수당과 노동당의 양당체제를 무너뜨리고 1위로 도약하자 당원들과 환호하고 있다.

그는 2014년까지 연거푸 4선을 이뤄냈다. 특히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영국 양대 정당인 보수당과 노동당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양대 정당 체제가 무너진 것은 108년 만이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2013년 그를 100대 영향력 있는 우익 인사 중 캐머런 총리에 이어 2위로 선정했고, 2014년 <더 타임스>는 그를 올해의 영국인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는 강경파 유럽통합회의론자들이 모여 있는 유럽의회 내 ‘자유와 직접민주주의’ 그룹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이 그룹에는 ‘독일을 위한 대안’ 같은 극우정당도 함께 속해 있다. 그는 의회 내에서 논쟁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EU를 강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주목받았다. 2004년 그는 프랑스 출신의 자크 바로 교통 담당 EU 집행위원의 비리 은폐 시비를 폭로했고, 이듬해에는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의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그의 현란한 ‘개인플레이’에 비해 영국독립당 자체는 아직 기대에 못 비치는 성과를 내고 있다.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강한 면모를 보였지만, 아직 영국 의회 내에서는 단 한 석밖에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파라지 본인도 총선에 모두 7번이나 출마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파라지는 현재 최다 득표자 당선 방식인 영국의 소선거제도가 영국독립당에게는 ‘악몽’이라고 말한다. 2011년 선거제도를 ‘선호투표제’로 전환할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이를 지지하기도 했다.

열심히 마시고, 열심히 담배를 피우는 사람….그러나 ‘전략적 머리’ 없어

파라지를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그가 재미있고, 달변에다, 사리판단이 빠르고 똑똑하다고 말한다. 파라지는 성공회교도이자 크리켓의 광팬이며, 켄트 해안에서 혼자 평온히 낚시하는 걸 즐긴다.

상품중개인 시절 파라지의 고객이었던 친구 스티븐 스펜서는 이렇게 말했다. “특이하고, 행복하고, 쾌활하고, 솔직하고, 유머러스하다는 첫인상을 받았다. 그를 만나러 가면 늘 주변에는 죽이 잘 맞는 중개인들이 뭉쳐 있었는데, 피워대는 담배연기가 4피트나 치솟을 정도였다.”

그러나 리처드 노스는 이렇게 혹평하기도 한다. “골초인데다 와인을 너무 많이 마신다. 라이프스타일은 형편없다. 그는 매우 친근하고, 과장되게 개방적인 사람처럼 다가오지만 그 이면은 매우 불안정하다. 그는 사람들과 디테일하게 오랜 기간 동안 관계를 맺지 못한다. 사실 그는 사람들을 이용하고 소비해버린다. 사람들은 그의 주변에 모여들고 그에게서 힘을 얻지만, 파라지의 내면을 보곤 환멸을 느끼게 된다. 나 같은 사람이 아마 수백은 될 거다.”

각종 ‘독설’과 ‘망언’에서 파라지의 그 불안한 면모가 읽힌다. 그는 2010년 헤르만 반롬푀이 EU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저급한 은행원 외모에 젖은 걸레 같은 카리스마를 가졌다”고 막말을 했다.

지난 3월에는 “국제사회의 현존 지도자 중 푸틴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미 대선에 대해서도 “트럼프의 인물됨이나 시각에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는 걸 막기 위해 나라면 그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해가지 못할 행동들도 보인다. 1999년 파라지는 BBC가 자신의 유럽의회 선거 캠페인을 넉 달 간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불법복제 해 판매했다가 공정거래 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프랑스 됭케르크에서 타고 있던 자동차 바퀴의 너트가 느슨하게 풀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언론에 밝히기도 했다. 자신에 대한 암살 음모가 아니었냐는 것이다.

그는 석탄발전소 폐쇄를 비판하면서 풍력발전에 반대한다. 영국이 못생기고 역겨운 풍차로 뒤덮일 거라는 것이다. 기후변화도 거짓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2008년 찰스 왕세자가 유럽의회에서 “기후변화에 대처하는데 EU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연설해서 기립박수를 받을 때 파라지는 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왕세자의 발언이 “최고로 순진하고 어리석다”고 했다가 왕실모독죄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파라지는 또 비만이 흡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고 해서 감자튀김(칩)과 도넛 가게를 없애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총기소유와 범죄는 상관이 없다”며 총기소유도 합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리처드 노스의 이런 걱정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열심히 살고, 열심히 마시고, 열심히 담배를 피우고 그게 파라지가 가진 매력이다. 그걸로 지지자들을 끌어당긴다. 그러나 당신이 진지하고 전략적 두뇌를 지닌, 당을 이끌고 발전시키고 확장해나갈 수 있는 정치가를 찾는다면, 그는 그 같은 인물은 아니다. 영국독립당의 비극은 아마도 이렇게 대단히 효과적인 얼굴을 지녔지만 그 인물이 전략적 두뇌가 없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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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젤 파라지는 지난 7월 4일, “할 일을 다했다”며 돌연 영국독립당 당수직을 사임했다. (사진 출처: http://www.itv.com/news/story/2016-07-04/live-updates-nigel-farage-resi…)

파라지는 4일(현지시각) 결국 영국독립당 당수직을 던지는 ‘극적인’ 결말을 스스로 선택했다. 이유는 “내 삶으로 돌아가길 바란다”는 것. 본래 직업적 정치인을 할 생각도 없었고, 자신의 정치적 목표인 EU 탈퇴가 달성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럽의회 의원직은 유지하고 브렉시트 협상 과정에서 ‘무언가’는 할 수 있겠지만 다시는 총선 출마도 하지 않고 당수직에 복귀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가디언>은 이렇게 표현했다. “심각하지 않은 사람, 하지만 심각한 정당”

화, 2016/07/0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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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을 읽다 보면 없던 두통이 느껴진다. 지난 세월도 늘 그러했지만 박근혜정권의 말기적 현상이 심해지면서 아픈 정도가 점점 더 강해진다. 때마침 평소 존경하는 채현국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를 해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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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채현국을 가리켜 “거리의 철학자, 당대의 기인, 살아있는 천상병”이라고 평했다.

채현국 선생님의 전화

채 선배님은 젊은 시절 광산업을 중심으로 20여개의 계열사로 구성된 대기업 수준의 그룹을 소유하시고 직접 경영하셨던 분이다. 그러던 중 동학을 알게 되면서 유무상자(有無相資)정신을 몸소 실천하시고자 재산을 전부 처분하여 대부분을 종업원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남는 재산으로 효암재단이라는 중등교육기관을 설립하는 등, 남은 여생을 봉사와 육영사업에 전념하고 계신 분이다.

동학의 참뜻을 알리는 자리에는 팔십을 넘긴 노구에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돈과 출세에 오염된 시대를 꾸짖으시며 참된 삶이 무엇인지를 일깨우며 살아 가신다. 참으로 귀한 우리시대의 의인이시고 스승이신 분이다.

그런 분이 뒤늦게 전해들은 아래의 이야기에 그만 화가 나셔서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시면서 불호령을 내리시는 모양이다.

내용인즉 국무총리 산하연구기관인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책임자가 공식적인 모임자리에서 ‘나는 친일파다’라고 커밍아웃하면서 “천황만세“를 세 번이나 외쳤다는데 이런 자를 처벌하지는 않고 없던 일로 무마해버리는 박근혜 정권에 대해 왜 항의하지 않느냐고 다짜고짜 저에게 마구 호통치신다 ([Why뉴스] ‘천황폐하 만세’ 외친 이정호 왜 징계조차 안하나? 참조) 

이 글은 채 선배님의 호통에 답하는 글이다.

아직도 ‘일왕의 나라’에 사는 듯한 착각

우선 퍼뜻 떠오르는 장면이 박정희가 대통령시절에도 일본의 지인들을 만나면 일본군가를 즐겨 불렀다는 확인할 수 없는 소문이였다.

일제시절 만주군관학교의 모범생으로 일왕이 내린 표창까지 받았으니, 그 시절 부르던 일본군가야 머릿속에 자동으로 입력됐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해방되고 독립된 국가의 현직 원수가 치욕의 역사였던 식민지제국 점령당사자인 일본국 군가를, 비록 일본 지인들과의 사석에서 불렀다면, 이는 반국가행위에 해당되는 되지 않을까 ?

행여나 박근혜 대통령도 아버지가 부르는 일본노래를 듣고 자라면서 일본제국에 향수를 느끼지는 않았을까 ? 사실이 아니라면 공시적인 자리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세 번이나 외친 자를 정부산하 연구기관에 그냥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위안부라는 사건을 알리고 교육하는 주제는 단순히 한일 정부간의 외교적 현안을 떠나서 아우츠비츠 수용소내 대량학살 등의 홀로코스트 사건과 동일한 선상에서 전쟁이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진 용서할 수 없는 반인류적 패륜범죄에 대한 고발이자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의 과정이다. 이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지속되어야 마땅한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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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국·일본·네덜란드 등 8개 나라의 14개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결성된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한 국제연대위원회’는 지난 6월 1일, 서울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 위안부 관련 자료 2744건을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본부에 등재 신청했다고 밝혔다. (사진 출처: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6/01/0200000000AKR2016060103…)

그런데 최근 일간지 기사를 보면, 미국과 유럽 등에서 뜻있는 해외 동포들이 스스로 연대해  위안부 문제를 후대의 교훈으로 삼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이를 매우 못 마땅하게 생각하면서 간섭과 방해를 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위안부 당사자 할머니들을 거추장스러워하며 해외에서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교포들의 한국 입국을 불허한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말, 일본 정부의 립서비스 수준의 사과와 재단 설립을 위한 소액기부를 받아들임으으로써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고 선언했다. 그 이후로 이제 위안부 문제를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것조차 포기한 듯하다.

용서할 수 없는 역사의 사실, 영원히 기억하고 반성해야 할 반인류적 사건을 단지 10억엔으로 불가역적으로 청산했다고 선언한 한일 정부의 황당무계한 역사적 코메디를 직접 외무장관과 대통령이 나서 국민들에게 알렸던 배경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너무나 상식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박근혜 정권은 무엇을 위한, 누구의 정권인가 ?

조폭만도 못한 ‘오야붕의 나라’

최근 숨겨졌던 또 하나의 사건이 시민사회에 알려졌다. 누구나가 부러워할 서울대를 나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잘나가는 서울남부지청에 근무하던 김홍경이라는 젊은 검사가 자살한 사건이다. 

시시비비를 더 밝혀야 하겠지만, 김 검사의 자살원인으로는 직속 상관인 부장검사가 행한 참을 수 없는 패악과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 과중 등이 주요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가가 내 아들을 죽였다”고 김 검사의 어머니가 울부짖는 가운데 사법연수 동기생들을 포함하여 700여 법조인 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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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경 검사의 사법연수원 동기들이 지난 6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내가 이 사건에 특별히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검찰, 군대 그리고 공무원 내부에 만연한 잘못된 조직문화이다. 소위 일본말로 ‘오야붕’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패거리 조직문화는 그 뿌리를 일본제국주의의 역사, 그중에도 ‘천황 폐하’주의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조폭 문화라는 것이 있다, 그럼에도 내가 아는 한, 한국 조폭의 양아치 문화에는 나름대로 축적된 의리와 폼생폼사라는 얄랑한 규칙이 존재한다. 양아치 규율을 분명히 하되 서로를 감싸주고 재물과 이권이 생기면 함께 나누고 서로를 살필 줄 아는 문화이다.

그런데 김홍경 검사가 겪은 한국 검찰의 조직문화는 한국식 조폭의 양아치 문화만도 못한 일본식 오야봉 문화였던 것이다.

오야봉 조직문화의 특징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까라면 까야하는’ 식으로 무조건 상사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뿌리는 서구 제국주의의 아류로, 더욱 저급하고 악랄해야만 서구를 따라잡을 수 있었던 일본 제국주의의 탄생과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된다.

일제의 근성이 아직도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조직문화는 해당 조직이 존재해야 하는 역할과 근거와 당위에 기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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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위계와 철저한 상명하복을 특징으로 하는 일본의 오야붕 문화는 야쿠자는 물론, 일본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런 오야붕 문화는 국가 단위의 오야붕인 일왕을 전후에 존속케 하는 문화적 토양이 됐다. (사진 출처: http://hambara.tistory.com/80)

지난 30여 년간을 기업활동에 종사해온 필자는 여러 번 일본 중공업계를 대표하는 기업들과 거래한 적이 있었다. 꽤나 큰 거래여서 일본측에서 십 여명씩 내한해 계약이 끝난 뒤 회식자리를 갖곤 했다. 내가 대표이사로 있던 한국기업의 분위기는 술이 몇잔 들어가면 ‘야자타임’으로 넘어간다. 이쯤되면 상사와 부하 관계를 넘어서 형, 동생으로 변하고 평소 가슴에 담아온 이야기를 뱉어낸다. 보는 관점에 따라 틀리겠지만, 이는 한국에서의 매우 중요한 소통방식이고, 활력 요소인 셈이다.

그런데 일본의 기업문화는 전혀 달랐다. 모두의 시선이 오야봉에게 쏠렸다.  오야봉이 술잔을 들어야 잔을 들고, 젖가락을 사용해야 식사를 시작하는 식이다. 대한민국 남자가 겪은 군대문화 그대로였다.  

대동아 전쟁의 전범이었던 일왕이 전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는 일본 사회 전반에 퍼진 오야붕 문화가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오야붕 문화가 한국의 정부 산하 연구기관의 공식모임에서 ‘이정호’라는 몹쓸 인간에 의해 재현되고, 친박 인사들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을 보면, 몹시 쓸쓸하다. 

 

다시 한번 박근혜 정부에게 묻는다. “대한민국은 누구의 정부인가”

행여나 일본 제국주의와 유신의 추억 속에서 엉뚱한 대답이 나오지 않기를 ! 이 땅위에서 또다시 ‘덴노 만자이’가 나오지 않기를 !

목, 2016/07/0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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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스티븐 J. 맥나미 (Stephen J. McNamee) 와 로버트 K. 밀러 주니어 (Robert K. Miller Jr.)의 『능력주의 신화 Tne Meritocracy Myth(3rd.)』(2013)를 완역한 것이다. 두 사람은 모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윌밍턴 캠퍼스의 사회학과 교수와 명예교수로서, 미국사회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탐구해 왔다. 이 저서 이전에도 두 사람은 『미국의 상속과 부Inheritance and Wealth in America』를 공동 편집하기도 했다.8993178615_1

공교육과 학교에 대한 논의와 비판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이미 이반 일리히(Ivan Illich)의 『학교 없는 사회(한국어판), Deschooling Society』(1970), 마이클 애플(Michael Apple)의 『교육과 이데올로기(한국어판) Ideology and Curriculum』(1979),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재생산 (La) Reproduction』 (1970) 등에서는 학교와 자본주의 체제 간의 구조적 근친성, 학교의 계급 재생산 기능, 학교내 지배적 문화자본 등이 논의되어 왔다.

최근에는 『대학의 몰락』(서보명, 2011), 『최후의 교수들』(Frank Donoghue, 2008) 등에서 학력 인플레이션과 대학 졸업장의 유명무실화, 대학교육의 직업교육화에 관한 일련의 논의들이 이어져 왔다.

이 책은 이러한 공교육과 학교 및 고등교육 비판의 연장선상에 있는 논의로서, 학교의 근본적 신화이자 가정인 능력주의를 질문한다. 근대사회의 신자유의주의적 개편 및 이에 따른 일자리 감소로 인해 졸업장은 더 이상 사회경제적 보상으로 이어질 수 없게 되었으며, 따라서 이제는 바야흐로 능력주의 자체를 회의하는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시대의 변화와 그에 따른 공교육의 몰락을 감지케 하는 바, 도대체 그간 학교 그리고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능력주의(meritocracy)는 허구다!

능력주의는 마이클 영(Michael Young)의 풍자 소설 『능력주의의 출현 The Rise of Meritocracy』(1958)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이다. 이 소설에서 미래 사회는 지능지수와 시험 결과 등 개인의 능력을 토대로 이른 바 인재를 선발하는 바, 그 결과는 엘리티즘(elitism)이 지배하는 또 다른 디스토피아(distopia)이다. 즉 능력이 많다고 간주되는 자들이 능력이 없다고 낙인 찍히니 자들을 탄압하고 착취하는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사회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낯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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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라는 용어는 마이클 영(Michael Young)의 풍자 소설 『능력주의의 출현 The Rise of Meritocracy』(1958)에서 처음 등장했다.

전통적으로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과 사회적 보상 사이에 비례적 관계가 있다고 가정한다. 즉 능력이 많을수록 혹은 높을수록 그에 걸맞는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보수를 확보할 수 있으며 또 그래 마땅하다는 것이다. 즉 능력주의에서는 개인의 능력이 성공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가정하며, 학교는 이러한 소질이나 재능의 차이가 객관적으로 드러나고 발현되는 기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러한 능력주의의 가정과 이에 기초한 학교 및 사회의 기능과 작동 방식에 의문을 던진다.

개인의 성공과 성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단순히 능력적 요인만이 아니라 비능력적 요인도 있으며, 오히려 전자보다 후자가 더 결정적이고 장기적이며 지속적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다른 출발선을 제공하거니와, 출발선에서 벌어진 차이로 인해 가난한 집 아이들은 결코 부잣집 아이들을 따라잡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아이나 여성, 소수자들은 항상적으로 사회적 차별에 노출되며,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끊임없이 성취동기를 억압하고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형성하는 사회적 차별 앞에서 능력만큼의 사회적 성취를 달성하기는 어렵다.

나아가 직업을 얻거나 괜찮은 경력을 쌓을 보일 수 있는 것은 거시적인 경제 상황이나 사회구조적 변화, 출생률, 출생시기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호황기에 태어나지 못했거나 운이 나쁘면 타고난 능력치의 발휘는 지난하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전사회에 만연된 능력주의적 환상은 여전히 사회적 성취에서 개인의 능력적 요인을 과대평가한다. 동시에 대표적인 비능력적 요인들, 즉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사회자본과 문화자본, 사회적 차별, 태어난 시기와 개인적 운, 경제상황과 거주지역 등은 본래의 능력적 요인들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한다. 마치 능력적 요인만이 개인의 성공의 결정적 변수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오히려 학교는 이러한 오해를 조장하는 주된 기관이거니와, 학교에서는 중산층 학생들의 선행학습이나 사회문화적 자본, 이들에 대한 부모의 지원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이 모두를 이들의 능력으로 합법화, 정당화한다.

또한 학교는 계급이나 젠더, 종족, 장애, 거시경제 변수와 거주지역 등 소수자들이 처한 사회구조적 조건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이들을 수업태도가 적극적이지 못하고 수업준비를 해 오지 않으며 장래에 대한 비젼이나 꿈이 없는 열등생으로 낙인찍는다. 이처럼 학교는 능력주의의 환상을 적극적으로 유포하는 바, 그 결과 실제로 작용하고 있는 비능력적 요인들을 은폐하고 간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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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근대 능력주의를 상징하고, 그것을 제도화한 것이다. 그렇지만 능력주의라는 근대의 믿음은 가정환경, 계급, 사회적 환경 등의 영향력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는 능력주의라는 근대의 신념이 현실의 불평등을 감추는 이데올로기적 효과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사진 출처: http://allwork.me/86)

사회학 전공자들답게 저자들의 결론은 좀 더 근본적이고 거시적인 지점을 향한다. 즉 지금이라도 능력주의의 환상을 꿰뚫어보는 안목을 가지고, 기회와 분배가 좀 더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지 않으면 진정한 평등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능력주의의 환상에 사로잡혀, 불평등에 면죄부를 주고 또 그것을 영속화할 것인가, 능력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자면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이는 우리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능력주의, 그 필패의 운명

사실 이 이야기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일찍이 알뛰세를 비롯하여, 부르디외, 애플 등 많은 논자들이 학교가 어떻게 계급을 재생산하고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는가를 논해 왔던 터이다. 즉 학교는 자본주의 체제와 구조적으로 유사한 바, 작동하며 그 결과 계급 재생산 기능을 충실히 대리하고 정당화한다.

사실 학교는 모든 인민에게 평등한 교육이라는 근대 부르주아지들의 이상에서 비롯되었다. 일찍이 오귀스트 꽁트(Auguste Comte)가 프랑스에서 최초로 공교육을 실험하고자 했을 때, 인민과 그의 권리는 평등하며 따라서 인민에게 교육에 다가갈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것이 이른 바 ‘기회의 평등’으로서, 취학 연령에 다다른 모든 시민은 공교육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것. 이로써 빈부와 성별, 장애, 국적에 구애받지 않는 의무교육의 이상이 인류 최초로 공교육을 통해 실현될 수 있었다.

이처럼 공화주의자들이 공교육을 통해서 의도한 것은 학교를 통한 사회적 평등의 실현이었다. 즉 신분이 아닌 능력에 의해 개인의 사회적 참여와 경제적 보상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했으며, 학교는 능력주의적 가정을 적극 수용하였으며, 개인의 능력을 판가름하고 측정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지표가 될 것이었다.

여기에는 이전 시기 신분으로 사회적 지위와 재화가 분배되는 것에 반대하여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갈망한 상 퀼로트(sans-culotte, 상 퀼로트는 귀족들이 입었는 퀼로트를 입지 않은, 프랑스의 급진 공화주의자들을 말한다)들의 염원이 있었거니와, 이들에게 학교는 능력에 따른 정의로운 분배를 실현할 수 있는 위대한 사회적 평등의 기제였다. 아울러 그렇게 될 때 도래할 사회는 능력에 따른 역할과 기능이 질서 있고 조화롭게 자리잡힌 사회로서, 근대 국가 곧 리바이어던(The Leviathan)을 실현할 것이었다.

그들에게 학교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었으며, 그 보이지 않는 손이 개인을 그의 자유의지대로 자유롭게 한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오오, 꿈은 얼마나 야무졌던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근대 공교육은 능력주의를 차용함으로써 그 태동에서 이미 근본적인 모순을 배태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영의 소설이 그리고 있는 대로, 능력주의를 채택하게 되면 이는 소질과 재능의 위계라는 또 다른 불평등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능력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비롯되는 바, 능력의 차이는 단순한 차이에 그치지 않고 필연적으로 위계가 되고 서열이 될 것이었다.

아무리, 무슨 짓을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사람의 능력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타고난 능력이라는 개념은 있을 수가 없으며, 여기에는 불가피하게 주되게는 부모의 재산, 직업 등 사회경제적 지위(Social Economic Status, S.E.S.)가 개입할 것이다. 그리하여 가령 이른 바 금수저로 태어난 학생들이 학교에서 교사들의 관심을 받고 학업적 성취를 이루기에 유리할 것이며, 소질이나 재능이라는 것은 결국 이들에게 한정된 개념이 되고 말 것이다.

반대로 흙수저로 태어난 학생들은 소질이나 재능을 발견할 기회도 갖기 어려울 것이며, 그리하여 그것은 애초에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것이 되어 버릴 것이다. 즉 학교교육만으로 모든 학생을 ‘결과적 평등’에 이르게 하기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바, 즉 잘 사는 집 아이는 잘 살기 때문에 학교에 와서 공부 잘 하는 우등생과 모범생이 되고 못 사는 집 아이는 못 살기 때문에 부진아와 부적응아가 될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학교는 기껏해야 입학이라는 ‘기회의 평등’을 제공할 수 있을 뿐, ‘결과적 평등’은 애시당초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

이에 대해 낙관적인 학교 개혁가들이 소수자들이나 그들이 속한 ‘게토 학교’에 헤드스타트 프로그램(Head-Start Proogram, 1960년대 중반 미국 정부가 사회경제적 소수자 집단의 유아를 대상으로 교육, 보건, 복지 등에서 시도했던 일련의 ‘보상 교육(compensatory education)’)이나 양질의 교육환경과 교수자 등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처한 불리한 조건들을 상쇄하거나 만회하려고 시도해 보았지만(이것이 이른 바 ‘보상적 평등’이나 ‘과정적 평등’의 개념이다), 이 또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었음을 지난 역사들이 예증한다.

결국 학교는 학생이 속한 사회경제적 유리함을 성적이나 소질, 재능이라는 이름으로 치환하여 합법성을 부여하였을 뿐으로, 사회경제적 보상의 차등화된 분배의 기준을 귀족이라는 신분적 변수에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해서 백 여 년만에 위대한 사회적 평등의 기제가 되고자 했던 학교의 이상은 근본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마이클 영의 소설에서 그려진 미래 사회가 능력에 기초한 또 다른 위계적, 서열적 사회로 귀결된 것은 다만 우연이 아니거니와, 능력주의에 기초한 근대 사회란 필연적으로 신분에 기초한 중세사회로 회귀할 수 밖에 없다.

비근하게 영화 가타카(Gattaca)는 바로 이러한 우울한 미래를 그리고 있는 바, 능력이라는 변수가 유전인자로 바뀐 미래 사회에서 새로운 신분사회, 계급 사회가 도래한다. 근대의 장밋빛 출발선에서 오래된 미래는 앞서 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셈.

어쩌면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인간이 상상한 모든 아름다운 이상은 필연적으로 타락한다는 비관론을 수긍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순정했던 이상이 제도로 실체화하면서 거기에는 그것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유하려는 인간의 이기심이 개입한다. 그 결과 애초의 드물고 귀했던 이상은 부패하고 타락하여 원래의 고왔던 얼굴빛을 잃는다.

이미 우리는 사회주의의 실험에서 이를 목도하였으며, 능력주의의 기치를 걸고 야심차게 내달렸던 공교육의 실험 역시 그 수명이 다하였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을 포함한 오늘날 근대 공교육이 처한 보편적인 우울한 자화상이라는 것을.

사회적 연대의 정신, 아무도 굶어죽지 않을 권리를 위해

그러나 경솔하게 비관론에 빠질 필요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인류를, 사회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한 고민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필패한 능력주의 앞에서 우리는 이제 다시 무엇을 질문해야 할 것인가.

아마도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철 지난 능력주의를 붙들고 불가능한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삽질”할 것이 아니라, 능력주의를 회의하고 능력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평등과 분배를 고민하는 일일 것이다. 능력주의는 일자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사회구성원 상당수가 중산층으로 상향적 계층 이동이 가능한 산업자본주의 초기에나 적합한 아이디어였다. 당시에는 이른 바 개천 용이 가능했던 사회로서, 학교는, 결혼과 로또를 제외하는, 그러한 계층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매개가 되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에는 이러한 능력주의에 기초한 분배와 계층 상승 모델이 더 이상 유효할 수가 없다.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괜찮은 사회경제적 보상이 극도로 축소되어 가는 상황에서, 이전처럼 대졸자의 상당수가 무난히 중산층으로 편입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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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 사회에서 능력이 없으면 굶어죽어야 하나. 그렇지는 않다. 능력을 절대화하는 환상에서 깨어나 사회적 연대의 정신으로 공동체를 꾸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가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 http://www.earthtimes.org/politics/international-human-solidarity-day-2…)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능력주의에 기초한 계층상승의 가능성이 아니라, 과연 개천에서 용이 나야 하는가, 혹은 능력이 없으면 분배에서 제외되어야 하는가, 능력이 없어도 굶어죽지 않을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일 것이다.

아울러 이것은 우리가 여전히 근대 초 상 퀼로트들의 고민과 궁구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한데, 그도 그럴 것이 평등과 인권의 의제는 인간 사회가 존속하는 한 폐기되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달라진 시대상에 따라 다만 그 고민의 방식과 전략의 수정이 있을 뿐, 더 나은 사회와 공동체를 위한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

공화주의자들은 공교육을 통해 사회적 평등을 도모했으나 오늘날 우리는 공교육을 우회하지 않고 곧장 사회적 평등으로 가는 직선의 길을 상상해야 한다. 소비자본주의의 후기 근대에서도 근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수 밖에 없으며 또 진행형이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인권과 평등, 그리고 사회적 연대의 이름으로.

따라서 향후 한국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일은 계층상승을 하지 않아도 개인의 생존과 존엄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이는 한국사회가 단 한 번도 제도적으로 실현한 적이 없었던 공동체를 이 땅에서 만들어나가는 일이 될 것이며, 계급과 젠더, 장애와 다문화, 연령과 지역을 불문하고 모두에게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살게 하는 것과 같은 말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급박하고 실천적인 아젠다들, 곧 기본소득과 의료보험, 의무교육 강화 및 공공보육 확대, 최저 임금과 최저 생계비, 남녀고용 평등, 차별 금지법 등을 끊임 없이 문제제기하고 논의해 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지금처럼 학력과 학벌을 통한 지위경쟁은 현저히 완화될 수 있을 것이며, 죽은 능력주의를 붙들고 불가능한 평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멈출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사회적 개방성이라는 측면에서 계층 상승의 합법적 통로를 열어두는 것은 여전히 중요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 한정해서라면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는 여전히 중요한 화두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역자 김현정은 삼성경제연구소(SERI)에서 경제·경영 전문 번역가로 일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이 강연에 기초하여 대중 일반을 대상으로 씌어진 것이기 때문에, 원래의 문장 역시 그다지 복잡하지 않고 덕분에 번역 역시 술술 읽힌다. 사회과학에 관한 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이라도 책장을 넘기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목, 2016/07/0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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