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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목물떼새가 사는 법] - 내성천과 낙동강 자연성 회복 소고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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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목물떼새가 사는 법] - 내성천과 낙동강 자연성 회복 소고 #1-2

admin | 월, 2020/12/28- 23:04
● 순간서식처 – 무상無常하여 강에 사는 약자들의 피난처가 되는 자리

“그래서 내성천은 수 천 만년 동안에 여기 생겼다가 저기 생겼다가, 저기 생겼다가 여기 생겼다가 하는데 이런 장소를 뭐라고 얘기 하냐면 순간서식처라 합니다. 순간서식처를 학술적으로 ephemeral habitat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그 순간서식처의 의미가 뭐냐 하면 물의 disturbance, 물의 파괴작용에 의해서 주기적, 비주기적으로 서식처가 불안정한 상태로 변하는 것, 동적으로 변해가는 서식처, 그게 순간서식처인데 그런 순간서식처는 다년생 식물이 살겠습니까? 생명 환이 짧은 1년생이 살겠습니까? 1년생이죠. 그래서 1, 2년생 식물이 들어가는데 거기에 다년 생인 달뿌리풀이 들어오면 이미 끝나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변화가 급진적으로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위성서식처(satellite habitat)가 매우 중요한데, 위성서식처를 중간에 징검다리 해주는 서식처가 있어요. 그 서식처들이 대부분 순간서식처입니다. 생겼다가 없어졌다가, 그걸 이용해서 가는 겁니다. 이게 피난처가 된다는 거예요. 가다가 위험에 처하면 어디에서 피신을 좀 해야 될 것 아닙니까? 피하려면 어딘가 가봐야 될 것 아닙니까? 그것을 순간서식처라 하는데, 있다가 없어지는 서식처가 생기는 거죠” (사람들이 자는 곳과 일하는 곳이 대부분 같지 않듯이 야생동물들도 그러하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공간이 다 서식처에 해당하는데, 이렇게 기능적으로 구분되는 각각의 서식처를 위성서식처라고 한다. 참여한 김윤전님이 현장 강의 내용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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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지평 시민생태조사단 김종원 교수 현장 강의. 2020년 6월. <시민생태조사단>
생태지평에서 2016년도부터 내성천 흰목물떼새의 서식현황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꾸린 시민생태조사단이 2020년도 생태조사를 하면서 관련 분야의 전문가를 현장으로 모셔서 강의를 듣는 시간을 마련했고, 그 첫 강사로 「한국식물생태보감」 저자이며 식생학과 생태학에 권위 있는 김종원 교수를 모셨다. 접하기 어려운 귀한 강의였다. 해질 무렵에야 강의가 끝났는데,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약한 야생동물에게 퇴로를 확보해주는 순간서식처를 가장 인상적인 내용으로 손꼽았다. 우리 강의 특징을 그대로 응축한 한마디이다. 
건강하게 흐르는 강에 존재하는 ‘순간서식처’는 그곳에 있되 늘 변화하는 까닭에 힘이 센 누군가가 움켜쥐는 독점적 전유물의 형태가 되지 않는 그 무엇이다. 하천이 늘 흐르고 움직이며 변동하는 상황에 적응하고 또 이를 이용하면서 살아온 강의 약자들에게는 이런 공간이 삶의 통로이면서 유사시 안전판 또는 퇴로가 되지만 강자들에게는 그래서 그 변화가 오히려 불편한 어떤 차별적인 공간이다. 
다년 생 식물이 아닌 1,2년생 식물이 들어와 산다는 ‘순간서식처’는 강이 만들어낸, 강에서 다양한 생명이 공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다년생인 달뿌리풀이나 왕버드나무 등은 순간서식처로 들어와 오래 머물면 안 되고 강과 육상의 경계에서 살아야 한다. 이들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모래톱을 장악하는 순간 강에서 공존은 깨지고, 강에 의지해서 사는 작은 물새 등이 밀려나며, 그 영향은 결국 사람들에게까지 미쳐서 더 이상 강에 들어가서 물장구를 치거나 모래톱을 걷거나 앉아서 쉬며 즐길 수 없다. 
순간서식처를 우리사회에 비유하여 재구성해 본다면, 여러 삶의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 사회의 사회적 안전망에 의해 유무형으로 제공된 어떤 안전시스템이 늘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통로와 퇴로 또는 피난처를 제공하는 순간서식처는 물 위로 드러난 모래톱 뿐 아니라 물이 흐르는 강바닥에도 있는데, 김종원 교수는 강에서 약자에 속하는 대표적인 종으로 다른 큰 물고기들이 활동하는 낮에는 모래 속에 숨어 있고 위기가 닥쳤을 때도 모래 속으로 숨는 흰수마자를 꼽았다. 흐르는 강물 따라 늘 움직이며 새로워지는 내성천의 고운 모래가 흰수마자의 서식처이면서 피난처인 것이다. 

늘 같은 모래로 보이지만 강이 본연의 에너지를 잃지 않고 흐른다면 있던 모래는 어느 틈에 내려가고 새 모래가 들어와 형상을 지우고 다시 만들고는 또 사라진다. 강은 본디 무형이고 무상의 강이다. 내성천이 막힘없이 흐르는 한 생태적 조건이 까다롭다고 알려진 흰수마자의 서식처는 늘 새롭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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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수마자가 살기에 적합한 내성천의 고운 모래와 맑은 물. 2012년 10월.
이날 현장 강의가 이어진 대부분의 모래톱에서 달뿌리풀이 크게 자리를 차지한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김 교수님은 달뿌리풀이 모래톱을 잠식하는 현상을 강이 동맥경화에 걸린 것으로 비유했다. 혈관에 플라그가 낀 것과 마찬가지로 보는 것이다. 왕버드나무 군락 또한 여기저기에서 자리를 잡은 채 넓혀가는 것이 목격됐다. 이는 내성천에서 순간서식처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즉 내성천의 모래에 의지하여 살아온 고유종들이 밀려나는 것을 뜻한다. 
강의 공간이 ’육역화‘ 하는 것은 강 에너지가 주로 댐 등에 기인하는 인위적인 교란에 의해 크게 줄어 강안으로 들어온 육상식물을 제때 밀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댐으로 인해 모래가 내려오는 양이 줄어들고, 자유롭게 거침없는 모래의 이동 또한 위축된다. 순간서식처는 사라지고, 내성천의 모래에 의지하여 살아온 여러 종들이 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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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 제19호인 내성천 선몽대일원 일대의 모래톱이 습지로 변하는 모습. 
2020년 10월. <시민생태조사단>
댐에 의해 육역화가 일어나는 강에서는 강바닥에 또 다른 심각한 변화가 생긴다. 떠내려간 만큼의 모래가 상류로부터 내려오지 않는다. 고운 모래가 먼저 떠내려가고 남게 된 굵은 모래의 비중이 점점 높아진다. 이런 현상은 홍수기를 거치며 확연히 나타나는데, 주로 강물이 흐르는 하도를 중심으로 경계의 모래톱까지 또는 보다 넓은 범위에서 굵은 모래와 자갈이 광범위하게 드러난다. 고운 모래에서 살아가는 내성천의 흰수마자에게는 그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변화일 수밖에 없다. 54일간의 긴 장마 후 이런 현상이 뚜렷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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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장마 후 모래가 사라지고 자갈이 드러난 상태에서 정화능력이 떨어진 모습까지 보이는 내성천 중류 일대. 2020년 10월.<시민생태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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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박용훈 – ‘초록사진가’라는 이름으로 미처 알지 못한 아름다운 강, 우리가 잃어버린 강, 위기에 처한 우리의 강들을 사진에 담아 세상에 알리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내성천의 아름다움과 상처를 기록해왔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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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은 보잘 것 없다.

한겨울 강화 갯벌에 나가 본 적이 있는지? 살얼음은 기본이요, “와, 저게 빙산이야, 뭐야?” 할 만큼 커다란 유빙이 갯벌을 덮기도 한다. 칠게며 농게며, 갯지렁이들이 긴 겨울잠에 빠져드는 회색빛 갯벌, 이쯤 되면 풍요로운 생명의 땅이라는, 갯벌에 붙는 수식어가 민망해질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한겨울 갯벌이 마냥 심심하기만 한 건 아니다. 청둥오리며 청머리오리, 홍머리오리, 가창오리, 고방오리, 쇠오리, 넓적부리, 흰죽지…. 정말 많은 오리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우리나라 갯벌과 습지를 찾는다. 생김새도 다르고 하는 짓도 다르지만, 이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수컷이 화려하다는 것.


보통 청둥오리 하면 연상되는 그 모양, 금속광택이 나는 녹색의 머리에 부리가 노랗고 가슴은 밤색인데 목과 가슴의 경계에 흰색 줄이 있으며, 몸통은 밝은 회갈색이고 꽁지깃은 흰색이지만 가운데 꽁지깃만 검게 말려 올라가 있는 모양, 바로 수컷의 형상이다. 그럼 암컷은? 그냥 칙칙한 회갈색이다.

오리류 중에서 특히 화려한 놈을 꼽으라면 부부 금술의 상징(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인 원앙을 들 수 있겠다. 머리 꼭대기는 짙은 녹색이고 머리 뒤로는 길게 늘어진 적갈색 깃털이 있으며 짙붉은 갈색의 가슴과 노란 옆구리, 그리고 은행잎처럼 생긴 선명한 황색의 날개깃, 바로 수컷의 특징이다. 그럼 암컷은? 그냥 칙칙한 회갈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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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지구가열(지구온난화) 때문에 드물게 되었지만, 옛날에는 꽁꽁 얼어붙었던 한강의 얼음덩어리들이 깨져 강화 앞바다로 흘러들곤 했다. “유빙 때문에 배가 못 떠서, 올 설에는 못 가게 됐시다.”하는 게 강화 사람들의 흔한 설 인사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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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의 대가

다른 새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모습, 또는 조류도감에 달랑 한 장의 사진만 있다면 십중팔구 수컷이다. 특히 오리류 수컷은 종마다 확연하게 차이가 나지만, 암컷은 종이 달라도 모양새가 비슷하기 때문에 동정하기가 무척 까다롭다.


대부분의 암컷은 보잘 것이 없다. 몸 색깔도 칙칙할 뿐 아니라 변변한 장식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수컷들은 알록달록하거나 화려한 날개깃을 펼쳐 보이기도 하고, 어떤 놈은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꽁지깃을 자랑하기도 한다. 목덜미를 비롯해 특정 부위의 깃털을 부풀리거나 색이 변하는 놈이 있는가 하면 다채로운 깃털을 마치 치마처럼 펼치고 훌라춤을 추는 놈도 있다. 


그런데 화려한 깃털은 보기에 좋다는 것 말고는 도무지 이로울 것이 없다. 먼저 비싼 옷을 입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울긋불긋, 북실북실, 화려한 깃털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폼생폼사’하는 당신이라면 이 정도야 감수할 수도 있겠다. 


더 심각한 문제는, 화려한 깃털은 주위의 눈을 많이 끈다는 점이다. 오우! 돋보이기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시선을 많이 받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러나 야생에서는 천만의 말씀이다. 당신을 주목하는 그 시선은 먹음직한 당신의 육질에 입맛을 다시는 천적의 눈초리일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 천적 중 하나가 인간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화려한 깃털은 인간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중요한 장식품으로 각광받았다. 1912년에는 새의 깃털이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비싼 고가의 상품이었다. 중대백로와 쇠백로의 화려한 번식깃이 가장 큰 인기를 끌었는데, 30그램에 현재 가치로 2천 달러에 팔렸고, 한때 멸종위기에 처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침몰한 타이타닉 호에서 가장 값비싼 선적품이 뉴욕의 모자 제조상에게 배달될 최상급 깃털이었다.)


생각해보라. 시커먼 갯벌이나 메마른 겨울벌판을 배경으로 화려하게 도드라진 깃털, 그것은 '날 잡아 잡수' 하는 신호와도 같다. 더구나 천적의 습격을 받았을 때 화려하고 숱 많은 깃털은 거추장스러운 애물단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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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앙. 앞쪽이 수컷, 뒤쪽이 암컷이다. 
이유 있는 선택권


그렇다면 왜 수컷들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리도 화려한 의상을 선택했을까. 이처럼 이해 안 되는 현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답을 찾은 이가 다윈이다. 다윈은 화려한 깃털의 공작 수컷을 보고 당황했다. 오죽하면 "공작의 꼬리 깃털을 볼 때면 울화가 치민다."고 했을까.
1859년, 다윈은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개체가 생존에 유리한 형질을 후세에 물려준다는 자연선택론을 발표했다. 그런 그가 포식자의 눈에 띄기 쉽고 도망갈 때도 거추장스러운, 다시 말해 생존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아니 오히려 생존을 위협하는 공작의 꼬리를 보았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왜 저놈은 저토록 생존에 불합리한 방향으로 진화했을까?" 오랜 관찰과 연구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암컷’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암컷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는 거다. 바로 ‘성 선택론’이다.


자연에서 성적 선택권은 암컷에게 있다. 제 아무리 잘난 수컷도 암컷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새끼를 낳고 키우는 데 있어 수컷보다 암컷이 훨씬 많은 에너지와 노력을 투자하기 때문이다. 여러 암컷을 임신시키기에 충분한 정자를 가지고 있는 수컷은 암컷이라면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반면 적은 수의 난자를 가진 암컷은 수정에 있어 신중하며 수정 이후 새끼를 기르는데 있어서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 공평한 자연은 수컷에게는 집적댈 자유를 주었지만, 더 많은 투자를 한 암컷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무리 속에서 암컷의 눈에 띄기 위한 수컷들의 발버둥은 화려하거나 과시적인 성적 경쟁으로 나타나는데, 새의 경우 그 극적인 결과가 깃털이다. 어떤 인간의 수컷들은 자신이 성적 상대를 ‘차지했다’고 생각한다. 착각이다. 후대에 물려줄 건강하고 안정적인 유전자를 골고루 갖춘 수컷을 엄선하여 최종적으로 암컷이 선택했다는 것이 자연이 알려주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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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비슷한 암컷들. 왼쪽 위부터 청둥오리, 청머리오리, 원앙, 가창오리 암컷이다.

생존과 번식 사이


이쯤에서 다른 질문을 던져보자. 암컷의 ‘칙칙한’ 생김새는 그저 과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일까. 암컷들에게 번식 기회는 널려 있다. 수컷들이 눈에 불을 켜고 상대를 찾고 있는 마당에, 그들이 성적 과시를 하거나 뽐내며 다니는 곳 어디든 찾아가서 하나를 ‘간택’하기만 하면 된다. 염색을 할 필요도, 화려한 깃털을 만들 필요도, 굳이 쓸데없는 에너지를 들일 필요가 없다. 그런 점에서 암컷은 대단히 에너지 효율적이다.


물론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자식을 양육하는 것이 암컷이기 때문이다. 인간 세상도 마찬가지지만, 나름 노력하는 수컷들도 대체로 육아에 부실하다.(이 핑계를 대면서 육아는 전적으로 암컷의 몫이라는 게 자연의 섭리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건 한마디로 ‘ㄱ’소리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화려할수록 눈에 잘 띄고  천적에게 들킬 위험이 커진다. 둥지에서 알을 품어야 하고, 새끼를 위해 먹잇감을 찾으러 다녀야 하며, 부화 이후에도 새끼들을 데리고 다녀야 하는 암컷이 천적의 눈에 잘 띄면, 자식들의 생존이 커다란 위험에 처한다. 암컷은 물론 새끼들도 주변 환경에 쉽게 숨어들 수 있는 위장색으로 자신의 몸을 감싸게 된 이유이다. 대부분의 새끼들은 수컷이건 암컷이건 성적 능력을 갖추기 전까지 암컷을 닮는다. 간혹 갈매기 같긴 한데 색깔이 거뭇거뭇한 놈이 갯벌에 있는데 무어냐고 묻곤 한다. 유조(어린 새)다. 그러다가 성적 능력을 갖는 연령이 되면 화려한 깃으로 변신하게 된다. 완전히 성장할 때까지는 생존이 우선이었지만, 성적 능력이 생긴 이후에는 번식이 우선 과제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겉치레에 신경 쓰는 수컷에 대해 그저 비웃을 수만 없게 된다. 생존의 위험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종족 번식의 절박함, 피할 수 없는 수컷의 운명인 셈이다. 

그런데 정반대인 경우도 있다. 호사도요가 그렇다. 호사도요는 암컷이 수컷보다 화려하다. 호사도요 암컷은 번식기에 보통 3~5마리의 수컷을 거느리는데 산란하고 나면 다른 수컷을 찾아 떠난다. 물론 육아의 책임은 수컷에게 있다. 육아의 책임이 호사도요 수컷의 깃털을 칙칙하게 만든 것이다. 결국 암컷이건 수컷이건 후세를 기르고 양육하는 문제가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뜻일 터, 번식과 재생산은 모든 종의 최대 관심사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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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도요. 왼쪽이 수컷, 오른쪽이 암컷.
그러나 제발 이 종만은 자연의 섭리를 벗어났으면 한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종이다. 하나의 종이, 그것도 호전적이고 파괴적이며 무척 영민하기까지 한 하나의 종이 무려 80억 개체에 육박한다는 것은 지구의 불행이다. 호주의 오스틀로이드 부족 사람들은 문명인을 ‘무탄트’라고 부른다. 돌연변이라는 뜻이다. 자연 속의 한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그 수많은 생명들, 샛강, 산과 호수를 사랑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파괴하니, 자연의 입장에서 보자면 분명 돌연변이다. 오스틀로이드 부족은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고 사라져 가는 길을 선택했다. 사실 무탄트들이 사라지는 것이 정답임에도 말이다. 이들은 나이 먹는 걸 축하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생일파티는 ‘보다 나아진 걸’ 축하하는 자리이다. 우리들은 ‘백수(白壽)’를 축하할 자격이 있을까.
“작년보다 올해 더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그걸 축하합니다. 하지만 그건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파티를 열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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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여상경  생태교육허브물새알 협동조합 관리자



강화로 흘러들어와서 어쩌다 새를 보기 시작, 덕분에 심심치 않게 시간 보내며 남은 여생을 준비하고 있는...

월, 2020/12/28-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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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연합야생조류연구회 활동에 늦깎이로 참여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던 2018년 봄, 처음 내성천 흰목물떼새 조사를 접한 소감이자 어렸던 생각은 일곱 글자로 압축할 수 있다.  

흔하지 않은 기회.

탐조를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흔한 종이나 멸종위기종이나 보는 개체마다 모두 신종이던 시절, 멸종위기종은 건빵 속 별사탕 보다는 음식점의 후식사탕에 가까웠다. 레몬 맛을 기대하고 노란 사탕을 집었지만 바나나 맛이고 노란색이 아니면 흰색인가 싶어 고르면 사과 맛이 나오는 그런 탐조 생활. 그 흔하다는 레몬 맛은 아직도 못 먹어봤는데 멋모르고 집어낸 파인애플 맛 사탕이 알고 보니 한 봉지에 두개 나오는 귀한 사탕이라 하고, 그런 줄도 모르고 깨물어서 급하게 삼키던 나날이 잦았다.
내 2017년 첫 봄섬 조사는 유부도였는데 그 때 본 도요새와 물떼새 종들은 도대체 뭘 본건지 아직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멧비둘기가 어떻게 우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유부도를 가게 되면 그저 그 중에 동정이 쉬운 민물도요만 내내 쳐다보고 있다가 배나 신나게 타고 돌아오는 거다. 흥미와 사랑은 있지만 지식은 부족하고 이성적으로는 알지만 감정적으로 겪지 않았던 이름마저 귀해 보이는 멸종위기종. 제아무리 멸종위기종이라 한들 그 종을 목표로 조사하는 분들을 쫓아가면 적어도 한 마리는 보겠지 싶은 얕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조사가 올해로 3년째다. 

동아리에서는 활동 조건을 채운 사람들에게 닮은 새의 이름을 붙여주는 전통이 있었는데, 처음엔 그렇게도 낯설던 자기소개가 나중에는 사람 이름은 기억 못해도 새명은 기가 막히게 기억이 날 정도로 익숙해진다. 그 사이 어딘가 사람의 이름보다 새명부르는 게 조금 더 편안해질 때 쯤 흰목물떼새가 새명인 동생이랑 같은 연구실에 학부생 연구원으로 있게 됐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사심을 채우러 내성천까지 날아가기로 결정했다. 
첫 날 내려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박형욱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아마 평생 못 잊겠지.

“이런 곳을 뭐하러 8만원을 내고 따라다녀요. 차라리 그 돈 모아서 쌍안경을 사세요.” 

박형욱 선생님께서는 개인 장비도 없는 학생이 열정만 가지고 조사를 참여하니 대견스러워하시면서도 농담으로 말씀하신 거였지만 사실 그랬다. 그때는 쌍안경도 없어서 동아리 쌍안경을 빌려서 탐조를 다녔었는데, 조사가 힘드니 짐을 가볍게 가져오면 좋다는 말을 듣고 나는 쌍안경의 무게를 줄여버린 것이었다. 그 때 들고 갔던 쌍안경은 스포츠 경기 보면 딱 좋을 쌍안경이었고 조사 내내 이럴 바에는 같은 가격의 뮤지컬을 보러 갔었어야 했다고 후회했었다. 이후 반납을 굉장히 늦게 했었는데 아무도 찾지 않던 그런 전설의 쌍안경. 그런 것을 들고 잘도 첫 조사를 따라다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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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조사 참가비는 이틀 참여에 8만원이었고 조사 참여가 처음이었던지라 당연히 조사에는 참가비가 있는 줄 알았다. 학교 앞 음식점 알바를 짬짬이 한달 해서 버는 30만원 중에 8만원을 선뜻 낼 만큼 흰목물떼새가 보고 싶었으면서도 10만원 하는 쌍안경을 사기는 주저하고 있었던 모순. 이것을 조사 이후로 뼈저리게 후회하고 쌍안경을 마련했다. 그러나 조사에 가면 쌍안경이 없었듯 쌍안경이 있으면 조사를 참여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번식기를 바쁘게 보내게 되며 첫 조사를 마지막 조사로 더 이상 연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2019년 대학원에 입학하며 까치 연구를 시작했다. 탐조를 다닐 때조차 눈 여겨 보지 않고, 귀 기울여 듣지 않던 까치의 존재는 어느 순간 어느 조사를 가도 까치 소리만 듣고 까치의 움직임만 따라갈 정도로 크게 자리잡게 되었고 그렇게 까치의 생활사가 내 생활사가 되는 까접지몽의 삶을 살던 3월의 어느 날. ‘2018년 내성천 조사’ 단톡방에 2019년도 조사 일정에 대한 논의가 올라오고 있었다. 처음으로 흰목물떼새가 아니라 흰목물떼새의 번식에 관심이 생겼다. 알고 접하는 것과 모르고 접하는 것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차이가 있었다. 
 
꼬마물떼새와 외모도 비슷하지만 알도 비슷하다. 둥지를 짓는 위치도 비슷하다. 둘 다 보통 알을 4개 낳으며 4개부터 품는다. 참 비슷하다. 그런데 같지 않다. 같지 않음에서 오는 차이는 누군가를 1m 간격의 이웃과 살 수 있게 만들면서 동시에 다른 누군가를 멸종위기종으로 만들만큼 컸다. 개체의 생존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생존만큼 번식도 중요하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인데 가끔 우리는 당연한 사실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새를 단순히 관찰하던 순간과 새의 번식에 집중해 연구하는 순간의 관심은 다르기 마련이고 나는 그제서야 왜 흰목물떼새가 멸종위기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이 사는 서식지를 파괴하는 행동과 멸종위기종의 번식을 방해하는 것은 같은 맥락의 이야기인데 무게감이 다르다. 개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과 종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음은 약간은 다른 이야기일수도 있다는 것을 부끄럽게도 이 조사를 통해서야 깨닫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개체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는 오히려 번식 시도 빈도가 높을 수 있다. 그러나 개체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어도 번식이 보장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종이 절멸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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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를 다니다 보면 기가 막힐 때가 참 많다. 보통 꼬마물떼새의 알을 발견했을 때 그렇다. 앞서서 빠르게 걸어가던 사람이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꼬마~~.” 비탈길의 달뿌리풀 틈바구니에서 목청을 틔운다. “꼬마 알 4개~~!!” 다가가보면 더 어이가 없다. 지금 이걸 둥지라고 지어 놓은 것 인지. 그럼에도 그 보잘것없는 둥지에서 알을 품고 품어 새끼를 키워낸다. 그렇다면 흰목물떼새는 어떤가. 영역도 넓어서 주변에 다른 새가 있으면 싫고, 다른 새가 없어도 마음에 드는 곳이 없으면 싫고, 심지어 영역도 괜찮아 보이고 모래톱도 넉넉해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싫단다. 그렇게 이것 저것 다 싫다며 번식을 거부하는 흰목물떼새를 보며 가끔씩은 멸종위기종이 멸종위기인 것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생각이었는지는 직접 새끼를 마주하고 나서 깨닫게 되었다. 까치의 번식 생태를 2년째 보고 있다. 만성조인 까치는 처음 부화하고 나서 눈도 못 뜨고 마냥 입을 벌린다. 아늑한 둥지 안에서 다가오는 존재라면 당연히 부모일 것이라 생각하는 안일함일까. 넣어줄 것 없는 상대를 향해 끊임없이 밥을 달라며 울부짖는다. 포식을 당한다면 도망칠 수 없기에 일방적인 살육의 현장이겠지만 평소엔 그저 평온한 일상의 연속이다. 사람의 접근을 지켜보는 부모만 속이 탈 뿐. 그러나 물떼새는 다르다. 아직 난치도 떨어지지 않았지만 달릴 수 있다. 도망갈 수 있다. 새끼 4마리가 모두 달리다 자갈에 숨었다.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가만히 있는다. 과연 이런 존재를 두고 멸종할 만하다고 할 수 있을까?

처절한 귀여움. 이 매력에 나는 이 조사를 절대 멈출 수 없다. 체력이 남아도는 뽀빠이 타입은 아니다. 폐렴만 앓고 나면 될 것을 음식에 대한 알레르기가 생겨서 초등학생 때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먹고 먹고 계속 먹는 행위를 통해 건강해지고 이제는 야외 조사도 무리없이 다닌다. 너무 잘 먹는게 탈일 정도로. 물론 올 해도 꾸준히 아팠다. 잔병치레는 여전히 많고 매 순간이 체력적 한계임을 느낀다. 그럼에도 주말에 쉴 수 없었다. 평소에도 주말 없이 일하다 돌아오는 황금 같은 휴일에 내성천을 갔다. 야외 조사 일정이 안 맞으면 일정을 비웠다. 어떻게든 참여할 수 있게 시간을 만들어냈다. 내가 절실한 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번식을 원하는 존재들이 있기에 지금 어떤 상태인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돌이켜보니 참여비가 회당 8만원하던 재작년이 가장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3년동안 조사에 실질적으로 참여한 날은 손에 꼽는다. 하천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라 여전히 세발자국 걷고 새롭게 하나를 배운다. 지난 조사에 알려주신 내용은 한참 후에 다음 조사에 참여하면서 그대로 초기화된다. 하다못해 알고 있던 얕은 전공 지식 마저도 머리로 알고 있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음을 조사 구역마다 새롭게 느낀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고 논문을 통해 접한 사실들은 심각하고 중요하지만 울림이 길지 않다. 지식은 쌓여가는데 적용 능력은 한없이 하락한다. 그래서 왜 옛말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지 않나. 조사하는 내내 나는 내성천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만 10년전의 모습을 아는 선생님께선 이전만큼 아름답지 않음을 안타까워하시며 2016년부터 조사를 진행한 선생님께선 매년 강의 모습이 크게 변하였음을 속상해하신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면 무얼하나, 나는 이전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을. 영주댐에 스러져간 흰목물떼새의 서식지를 더 이상 알 수 없는 것을. 조사를 다니다 보면 가슴 한 켠 어딘가 답답함을 지울 수 없다. 처음 조사에 참여할 때는 희망이 내 손에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물 속에 잠겨 있다. 단 2년만에. 8만원을 내고 따라오질 말았어야 했던 것인지, 모르고 살았어도 됐을 진실은 언제나 눅눅하다.
이에 번식에 성공한 둥지는 곱절의 기쁨으로 다가온다. 종종 내성천에서 물떼새 외 새의 유조를 만난다. 작년에는 이소 직전의 제비들이 둥지에 가득 차다 못해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봤고 올 해는 멧새 유조를 만났다. 아직 덜 자란 새끼들을 부모가 챙기고 있는 것을 보면 내가 기른 새끼도 아닌데 그게 그렇게 뿌듯하고 기쁠 수가 없다. 그것은 일주일에 두 세 번씩 만나는 까치들도 예외는 아닌데 올 해 무엇이 문제인지 조사지의 까치들이 번식을 빠르게 시작했고 4월의 때아닌 추위에 많은 둥지의 새끼들이 전멸했다. 

그 중에 유독 번식을 이르게 시작한 짝이 있었는데 이소 직전에 둥지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새끼를 온전하게 이소 시키지 못했다. 둥지가 떨어진 것을 본 누군가의 신고로 야생동물보호센터를 거쳐 우리 집에 오게 된 새끼 2마리로 인해 요즘 육아의 어려움을 몸소 깨닫고 있는 중이다. 끊임없이 귀뚜라미와 밀웜을 들이밀어도 내키지 않으면 먹지 않는 까치를 보며 왜 멀쩡히 잘 살던 새끼가 어느 순간 갑자기 죽어버리는지 알 것도 같았다. 하필 덜 먹고 있을 때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그냥 그대로 죽는 거구나, 텅 비거나 사체가 고스란히 놓여있는 둥지들을 보며 마음 아파하던 어느 날 경상북도에 비가 그렇게나 많이 쏟아졌단다. 60mm가 넘는 비에 둥지들이 흔적도 없이 쓸려 내려갔다. 멍하니 둥지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면 거대한 자연 앞에서 한없이 힘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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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무력함은 무기력함과는 달라서 때로는 원동력이 된다. 인간 문명의 발달이 환경에 미시적으로나 거시적으로나 영향을 미치기에 간접적인 영향까지 모두를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악영향을 최소화하고자 플라스틱 빨대를 쓰지 않고 텀블러를 들고 다니지 않는가. 제대로 아는 것이 가장 어렵고 실천하는 것은 다음의 문제로 나는 지금 제대로 알아가는 단계에 있다. 내 옆의 누군가가 한명이라도 나로 인해 변한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이다. 

내성천 흰목물떼새 조사. 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기를 바라며 두서 없는 글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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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검은꼬리사막딱새 조하은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에코크리에이티브협동과정에서 까치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똑똑한 동물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어 하다가 뒤늦게 대학연합야생조류연구회 활동을 접하게 되어 새를 알기 시작했습니다. 새의 생활사에 맞춰 살다가 자아까지 의탁해서 살 것만 같아요.
화, 2020/07/28-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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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댐 건설 그리고 흰수마자 수난사 -2
○ 치어방류는 계속되어야 한다. 살아남을 가능성? 一將功成萬骨枯!
한국수자원공사는 올해 5월 29일, 내성천 흰수마자 치어방류 사업과 관련하여 5,000마리의 치어를 내성천 하류 낙동강에 방류했다. 2014년 10월 15일, 내성천 중류 미호교 일대에서 예천의 한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함께 치어 2,000마리를 처음 방류한 이후 4번째 방류였다. 수공이 당초 이 사업을 시작할 때 받은 전문가 자문은 내성천에서 친어를 확보하도록 했는데, 이와 관련하여 환경부는 “지역 유전자 보존”이라고 답변했다고 20대 국회 이상돈 의원 정책보고서 「내성천 생물다양성 보전/2019.12.」은 밝히고 있다. 

1,2차 방류는 내성천에서 친어(어미)를 잡았지만 3차와 4차는 낙동강의 다른 지천인 남강에서 잡았다. 4차 때는 내성천에 방류하지 않고 인근 낙동강에 방류했다. 강은미 의원의 보도자료를 보면 이 4차 방류 관련 입도조사를 정작 서식처인 내성천에서는 하지 않았다. 내성천 흰수마자가 아닌 남강의 흰수마자 치어를 내성천이 아닌 낙동강에 방류한 것이다. 그런데 올해 5월 말 방류 이후 9월과 10월 조사결과 내성천과 낙동강의 모든 조사 지점에서 치어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물론 1~3차에 방류한 1만 마리의 치어도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내성천에서 흰수마자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게 되었고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지적되었으며, 중앙일보가 “1조1030억 들여 초래한 '환경재앙’”이라는 소제목을 달아서 영주댐 문제를 크게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4대강사업으로 낙동강에서는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언론이 여러 차례 다루었던 흰수마자가 그 고향과도 같은 내성천에서조차 완전히 사라졌다는 내용은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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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에서 흰수마자 치어를 처음 방류한 후 세운 입간판. 2014년 10월.


치어를 방류했지만 이후 모니터링에서 확인되지 않는 문제점은 2015년 국감에서 심상정의원이 처음 제기했다. 이후로도 2016년과 2020년에 치어방류는 반복되었고, 역시 확인되지 않았다. 왜 이런 치어방류가 반복되는 것일까? 그 해답은 위의 중앙일보 언론보도에서 짐작할 수 있다. “1조1030억 들여 초래한'환경재앙’” 같은 신랄한 비판은 영주댐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대구지방환경청의 용역으로 수행한 「내성천 유역 자연생태계 모니터링」의 연구수행계획서는 “모래입도의 변화는 내성천에 살고 있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 담수어류인 흰수마자에 영향을 주는데, 수자원공사가 영주댐을 건설하면서 흰수마자 보호를 위해 2014년 10월부터 인공증식 복원을 실시하여 2016년까지 3년간 1만마리의 치어를 방류한 것은 댐으로 인한 흰수마자 서식환경의 변화 문제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런 고리들을 연결해보면 흰수마자 치어를 댐 하류에 반복해서 방류한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댐 하류가 살만하다면 애써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없다. 굳이 남강에서 태어나 잘 살 수 있는 흰수마자를 내성천이나 내성천 하류 낙동강에 방류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앞서 「씨알의 옛글풀이」에 있는 장자의 「소요유」를 소개했는데, 다시 같은 책에 있는 「기해세」란 제목의 당시에 담긴 뜻을 보자.

물 나라 강산이 왼통 쌈판 됐구나.
씨알이 뭣으로 나무 베고 풀 베느냐.
그대게 이르노니 제후 된단 말 마라.
한 장수 공 이루려고 일만 뼈다귀 말랐단다(一將功成萬骨枯)

쓸모없는 댐 하나 지키겠다고, 우리나라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으로 지정하여 법으로 보호하는 흰수마자를 포획, 인공 산란시켜 매번 수천마리씩 방류하여 결과적으로 죽게 한 것인데, 이런 행위를 멸종위기 보전대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그렇게라도 해서 단 한마리라도 내성천에 남겨야 하는 흰수마자라면 애초에 그런 강에 댐을 왜 세웠는지, 그 댐을 세우면서 어떻게 환경부가 사전환경성검토 때 환경성검토협의회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흰수마자를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는지 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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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박용훈 – ‘초록사진가’라는 이름으로 미처 알지 못한 아름다운 강, 우리가 잃어버린 강, 위기에 처한 우리의 강들을 사진에 담아 세상에 알리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내성천의 아름다움과 상처를 기록해왔다. 
화, 2021/02/23-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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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환경보호를 찾다
  대학 다닐 시절, 기말고사 대체 레포트 공지 도중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 여러분의 과제물을 인쇄할 종이에게 미안하지 않을 만한 글을 써오세요.
  동기들은 웃었지만 나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인쇄값 50원이 아까워서 4쪽 모아찍기를 해본 적은 있었어도 종이를 만들기 위해 베어진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 과제물에 정성을 들인 기억은 없었다. 교수님께서는 그저 ‘열심히 하라’라는 말을 위트 있게 하고 싶으셨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한 문장 때문에 유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해 레포트를 썼다. 나중에 내가 ‘고작 이런 글을 쓰려고 종이를 허투루 낭비한 건가?’ 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나무 앞에서 당당할 수 있도록. 물론 그 후기를 들은 친구들은 너도 참 이상한 애라고 말했고 나 또한 웃고 넘어갔지만 그 때 당시의 심정은 그랬다.
  나의 ‘환경에 위한 행동’이라고 명명할 법한 것들은 모두 죄책감에서 시작되었다. 콧구멍에 빨대가 꽂혀있던 거북이 사진을 보고난 후에는 빨대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새들이 마스크 끈에 발목이 묶여 구조되는 경우가 늘었다는 기사를 읽은 다음에는 무조건 마스크 끈을 잘라 버렸다. 집에 쌓여가는 플라스틱 테이크아웃 잔에 다육식물을 심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준 적도 있었고, 지구촌 불끄기 운동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는 밤 11시 이후에는 불을 끄고 지내는 게 습관이 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내가 그린 환경 보호 포스터에는 무조건 ‘지구야 미안해’ 류의 표어가 들어갔다 -대상은 특정 동물로 대체되기도 했지만-. 누군가는 지구를 보호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텀블러나 에코백을 들고 다닌다는데 나는 환경 문제 관련으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미안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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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테이크아웃잔을 활용하여 심은 다육식물
  나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또 지구를 위해 많은 불편함을 감수할 정도로 이타적인 성격도 되지 못한다. 플라스틱을 많이 사용하는 게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코로나를 핑계 삼아 음식을 배달시키고, 잔뜩 쌓인 배달용기 앞에서 한숨 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나마 있던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매번 ‘일회용 젓가락/포크는 넣어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라는 요청사항을 기입하고는 있지만, 가게 측에서 깜빡하고 동봉해주시는 건 어떻게 처리할 방도가 없어 서랍 안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중이다. 숫자가 늘어가는 나무젓가락이 내 한계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져서 가끔은 모두 내다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기까지 한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탓에 그렇게 되었다면, 집에 있으면서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고민하던 차에 일단 쓰레기를 줄여보자고 결론지었다. 우선 쓰레기 중 비율을 가장 많이 차지하던 청소포와 휴지 및 물티슈, 그리고 생리대를 일회용에서 다회용 물건으로 교체하였다. 청소가 끝나고 밀대용 걸레를 세척하는 일이나 외출할 때마다 손수건을 챙기는 건 불편함을 동반했다. 그렇지만 환경뿐만 아니라 내 몸에도 좋은 선택이었을 거라 믿고 몇 달간 이용해본 결과, 일반 쓰레기가 많이 줄어든 것과 동시에 함께 나오던 재활용 쓰레기-휴지심, 물티슈 비닐 등- 또한 덜 나오게 되었다. 가끔은 쏟은 물을 휴지로 닦아 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긴 하지만 그래도 익숙해지는 과정이라고 믿고 있다.
  ‘지구가 점차 더워지고 있다는 증거’라는 제목을 클릭하면 작은 얼음 위에 균형을 잡고 서있는 북극곰 사진이 나오는 게시글을 최근에 열람했다. 묘기에 가까운 자세로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던 북극곰의 사진에서 얼굴을 알아보긴 어려웠으나,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처럼 보였다. 그 날 마트에 갔다가 다회용 봉투에 그려진 바다표범을 보니 기분이 편치 않았다. 계산대에서 순서를 기다리다 평소 발견하지 못했던 코너가 눈에 띄었다. 분리수거함이었다. 칫솔이나 분무기 같이 플라스틱이지만 다른 재질의 부품이 섞여있어 분리수거가 까다로운 물건들을 모아 재활용한다는 안내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동안은 플라스틱이니 괜찮겠지, 하고 버렸던 것들이 분리수거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 돌아와 올바른 분리수거 방법을 검색해보았다. 다른 것들보다도 과일 포장지가 스티로폼이 아닌 일반 쓰레기였다는 점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는 편인 우리나라가 실질적인 재활용 비율은 그렇게 낮을까, 하던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단순히 종류에 따라 따로 버리는 게 전부인 게 아니라 재활용할 수 있도록 이물질을 제거하고 분리배출하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다.
  학창 시절 선생님의 지휘 아래 반 아이들과 학교 근처 공원으로 환경 미화를 나갔던 다음 날, 그 공원을 찾아가 본 적이 있다. 분명 모두들 집에서 가져온 쓰레기봉투를 한가득 채워 떠났는데 여전히 산책로에는 담배꽁초들이 굴러다녔다. 그 때 처음 우리가 애써봤자 다른 사람들이 안 하는데 무슨 소용인지 의문을 품었다. 나의 노력은 무력해보였고, 큰 흐름을 이겨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산처럼 쌓여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볼 때도 똑같은 의문이 고개를 쳐들곤 한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그저 자기만족에서 그치는 정도의 힘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닌가. 대단한 효과를 내고 있다고 단언할 만한 자신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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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렇게 내가 지구에게 느끼는 미안함의 이유는 더 잘 할 수 있지만 환경보호에 대한 실천들을 귀찮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덮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하는 실천이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두가 실천력과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인다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는 부분들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투명 플라스틱 병의 라벨을 제거하고, 카페의 컵 홀더들을 모아 냄비받침을 만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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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유스토리(Youth Story)는 기후위기의 끝에서 청년이 당신에게 보내는 이야기를 담고자 하였습니다.


3부 필자: 김단아


문예창작과 대학원생.



곳곳에서 뛰쳐나오는 환경문제 때문에 양심통을 앓으며 살아가고 있다.


월, 2021/01/2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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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신축년,
몸은 멀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가까운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생태지평의 모든 연구원은 생태사회를 향해 올해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현장과 이론이 만나는 연구소 생태지평 드림 -

목, 2021/02/1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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